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p.43) - <작별>
얼마 전 하늘이 열린 날, 꼬미가 별이 되었다. 나랑 11년을 함께 한 꼬미는 잘 자다가 잠깐의 경련을 일으켰고, 심장이 멈췄다. 그 짧은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꼬미를 끌어안고 어떡해 어떡해만 외쳤다. 여전히 믿을 수가 없어서 꼬미만 끌어안고 있었는데, 항문이 열렸다. 죽음은 그렇게 내 작은 고양이의 넋을 데려갔다.
너무 말랑해진 몸을 상자에 뉘이고 가만히 두었다. 혹시나 다시 일어날까봐, 다시 숨을 들이쉬고 내쉴까봐. 평생을 꼬미와 함께 한 샤미가 꼬미 옆에 누웠다. 잘 가라고 배웅하는 것일까, 마지막 남은 온기를 기억하려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는 차가워지고 사지가 굳어가는 것을 보며 꼬미가 정말로 떠났음을 느꼈다.
함께 했던 모든 날들이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다. 너도 그랬기를.
부디 고통도 번뇌도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한동안 믿을 수 없었다. 꼬미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꼬미가 없다니... 청소도 하지 못했다. 곳곳에 꼬미털이 있을테니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울어 눈이 상했는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일부러 더 열심히 움직였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울고, 운동을 하다가도 울고, 책을 읽다가도 울고, 일을 하다가도 울었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울고, 밥 먹다가 울고... 그냥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는 꼬미가 없는 하루하루를 꼬미를 그리워하며 보냈다.
그리고 떠올렸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한 편. 단편이지만 강렬했던 이야기.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했던 그 작품, <작별>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한강의 <작별>만 읽었더랬다. 다시 펼쳤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녀는 담담하게 이 생(生)을 정리한다. 꼬미야, 너도 그랬을까, 고통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으니까.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이입했더랬다. 만약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가장 소중한 이들을 만나고 쓸데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가고 싶거나 먹고 싶거나 읽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겠지. 그리고 두려울 것 같다. 살아온 삶이 힘들고 지쳤더래도 죽음은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두려움보단 삶을 잘 마무리하길 원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삶 앞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렇게 처연한 그녀 때문에 눈물이 났었다. 죽음을 앞두고도 '현수' 씨와 '윤'이를 걱정하는 그녀가, 아둥바둥 살면서 그나마 남긴 것을 아이에게 온전히 전하고 싶어하는 그녀가 가슴 아팠다. 손이 녹고 늑골이 녹아가도 살아있는 순간을 살아가는 그녀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이, 그 언젠가를 알 수 없어도 그 순간만큼은 온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 나는 '현수' 씨였고, '윤'이였다. 사랑하는 연인이 눈 앞에서 녹아간다면, 사랑하는 가족이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면 나는...? 글 속의 현수 씨에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이 지나면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추워도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보고, 그녀를 느끼라고. 윤이에게도 말하고 싶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네가 엄마라는 존재가 계속 옆에 있음이 힘들 거라는 건 알지만, 지금 뿐이라고.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빈 자리가 얼마나 커다란 슬픔인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나는 어리석었다. 새벽에 잠시 깼을 때, 꼬미가 손을 뻗어 나를 툭툭 치며 옆에 누웠을 때 좀 더 쓰다듬어 줄 걸. 그냥 끌어안고 잠든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그리고 생각한다. 존재가 소멸함은 어떤 것인가. 어디까지가 존재이고 어디서부터 소멸인가. 존재의 끝이 소멸인가. 꼬미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꼬미는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살아있다. '그녀'가 사람이었다가 눈사람이 되면 소멸인가, 다 녹아버리면 소멸인가. 존재와 소멸의 경계는 어디일까. 어쩌면 사바 세계의 육체란 그저 허상일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있다가 오늘 없다고 그 존재가 존재하지 않음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또한 오늘 없기에 어제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제는 지나가고 없는데.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를 떠올려본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 있으니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어찌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일연, (2020). <삼국유사>. 민음사 (p.535))
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 P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