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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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안과 므레모사는 닮아 있었다. 재난을 경험한 한 사람과 재난을 경험한 어떤 지역. 동정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을 견디고 타인이 바라는 희망을 ‘제공’해야하는 입장. 재난은 거듭되는데 삶의 방식은 한 가지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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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상조 회사 - 청년 탐정들의 장례지도사 생활 속으로 한국추리문학선 18
김재희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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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절차하면, 나는 늘 영화 <축제>가 떠오른다.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학교에서 보여준 영화였다. 줄거리는 기억 나지 않지만, 장례 절차가 매우 복잡하고 많은 의미가 있으며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은 기억 난다. 불편한 삼베 옷을 입고 넓은 마당에서 쉴 새 없이 음식을 하고 나르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면 장례식을 안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 사람이 돌아간 사람을 기억하고 잘 보내고 남은 생을 또 살아가기 위해서라지만,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하지만 또 저렇게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요새는 초혼을 하지 않지만, 영화에는 나왔던 것 같다. 정말 생전에 입던 옷을 흔들며 세 번 부르면 혼이 돌아올까? 그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장례 절차를 하나 하나 따라가다보면 남은 이들의 간절한 마음이 보인다. 초혼을 하고 염을 하고 그렇게 돌아간 이가 정말 이승을 떠났구나 인정하면서 슬슬퍼질라치면 조문객들이 우루루 들이닥쳐 정신을 쏙 빼놓는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죽은 이와의 추억을 뱉어내고 떠들썩하게 있다 보면 어느새 상여가 나가야 할 때가 온다. 이 때 방상시를 앞세워 길을 트고, 상여꾼이 상여를 메고 묻힐 곳까지 가서 봉분을 세우고 나면 비로소 무언가가 끝이 났구나 싶은 마음이 들테다.   


현재 우리가 지내는 장례식은 이것 저것 많이 섞인 듯 하다.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일제 잔재로 완장이 있을테고, 상주가 검은색 옷을 입는데 예전에는 흰 옷을 입었다고 했다. 예전 것이 무조건 옳다 할 수 없고, 상황에 맞게 변하면 되는 일이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책 속에 나오는 현명은 장례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현명하게 판단하여 일을 진행하는 것 같다. 결국 산 사람들이 죽은 이를 잘 보내고 남은 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장례 절차의 진짜 의미가 아닌가 말이다. 


어린 시절 같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현명, 슬기, 배인은 어른이 되어서도 죽음과 가까이서 일을 한다. 조부모님, 부모님 모두 장례와 관련 있는 일을 하셨던지라 더 가깝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배인은 의사였으나 병원을 그만두고 검안을 하고, 현명은 프리랜서로 장례지도사를 하고, 슬기는 다다상조 회사의 직원이니 셋은 참 단짝인 것 같다. 오래오래 그 우정이든 사랑이든 변치 않았으면.


선우와 현명의 아버지들이 동네에서 같이 장례일을 하다가 현명의 아버지가 죽고, 선우의 아버지 혼자 서울로 가서 다다상조 회사를 차렸다. 지금은 선우가 대표이고. 하지만 묘하게 선우는 현명에게 자격지심이 있다. 현명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은 느낌이랄까. 


'방상시'는 '나례의식'(섣달그믐날 궁중이나 민가에서 마귀와 귀신을 쫓던 의식) 때 등장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종 황제 장례식 때 등장했다고 한다. 금빛 눈이 4개인가 그렇고 창과 방패를 든 무시무시한 모습이라고. 상여가 나갈 때 방상시 역할을 한 사람은 1년 안에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이 책에서) 그래서 현명의 아버지가 방상시를 하고 1년 뒤 낙상 사고로 죽었는데, 원래 방상시 역할을 선우 아버지가 할 거였다. 그래서 선우는 묘한 부채의식과 자격지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은 다채롭고 죽음은 고요하다. 우리는 죽음 너머의 무엇을 알지 못하기에 다채로운 삶의 끝을 무채색의 죽음으로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장례 절차는 삶과 죽음 그 사이를 잇는 다리 같은 것일지도. 허위허위 꽃상여가 가는 길 끝은 안개 속 저 너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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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2-14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장례도 상조회사를 거치지 않고는 안 될성 싶더라고요.
어릴 때, 종손이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골 마당에 천막을 치고 9일 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시대 마지막 전통 장례가 아니었나 생각 되네요^^

꼬마요정 2023-12-15 12:35   좋아요 2 | URL
9일장이요??? 정말 대단하셨네요!!! 많은 자손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원하시는 곳으로 가셨기를 바랍니다. 진짜 우리 시대 마지막 전통 장례였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상조회사가 잘 되어 있어서 예전보다는 몸이 편한 듯 합니다.

희선 2023-12-15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죽은 다음에 남은 사람이 뒤처리를 해야 하다니... 다른 사람보다 제가 죽었을 때가 걱정되기도 하네요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알까 봐... 그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


희선

꼬마요정 2023-12-15 12:40   좋아요 1 | URL
사람이 죽으면 치르는 장례 절차가 나라마다 다르고 문화마다 다르더라구요. 예전에는 집성촌을 이루고 살기도 하고, 워낙 이웃끼리는 잘 알아서 범죄가 아닌 이상 죽음을 모르는 일은 없었던 듯 싶어요. 하지만 요즘은 이웃끼리도 잘 모르니까요. 저도 죽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될까봐 걱정이네요. 아는 사람들 먼저 보내는 것이 상실의 슬픔만 있는 건 아니로군요.

아니에요!! 분명 뭔가 좋은 방도가 생겨날 거라 믿습니다. 희선 님, 우리 열심히 소통하고 행복하게 글 쓰고 읽어요!!
 

"정말 상상력이 과다한 이론이야. 물체가 성장할 수 있다면 질량보존법칙은 어떻게 되고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은 어떻게 되는 거야? 세상 그 어떤 물질도 질량보존법칙에 따라, 자신의 질량을 증가시킬 수 없어." - P26

"제 생각에 절대신앙은 로봇 문명이 성장하며 생겨난 자아비대 현상입니다." - P215

언어는 개념의 미욱한 상징체계에 불과하다. 또한 언어는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질 수 있으며, ‘절대성‘은 여러 명령에 동등하게 놓일 수 없다.
인간의 발화를 분석하고, 명령의 범주를 한정하고 해석하는 체계가 다시 직원 사이에서 생겨났을 것이며, 그 과정은 법학의 발전과정과 유사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인간의 명령은 법전보다 체계가 없었을 것이므로, 그 해석은 훨씬 더 주관적이었을 것이다. 그 해석을 주도하는 로봇에게 새로운 권위가 부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P238

"나는 어리석은 기적을 바랐다. 기적은 우리가 서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었다. 미움을 거두는 것조차 아니었다."
케이는 듣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다.
"기적은 우리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어도, 아니, 어쩌면 영원히 증오한다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다고요." - P278

그 종이 내게 어떤 강제도 할 수 없고 이 마음에 한 점의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고, 내가 그들로부터 이 자아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한 뒤에야, 비로소 이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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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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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하여야만 그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건 인간이 어리석어서일까, 유한의 삶을 살면서 영원을 산다고 착각해서일까. 죽음은 필연적으로 기억과 경험을 미화한다. 그러면서 상실을 받아들이는 건지도. 그래야 새로운 인연의 자리도 생기겠지. 그렇게 잊지도, 잊히지도 않고 살아간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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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아씨전 안전가옥 오리지널 29
박에스더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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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사진경(辟邪進慶)은 삿된 것을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벽사아씨전은 삿된 것을 쫓는 아씨의 이야기란 것이겠지. 벽사진경이라고 하면, 처용가가 떠오른다. 신라 시대, 처용이 집에 왔더니 다리가 네 개라... 둘은 부인 것인데, 나머지 둘은 누구 것일까. 알고보니 역신이 처용의 아내에게 반하여 몰래 집에 잠입한 것이었다. 처용은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고, 역신은 그의 너그러움에 감화되어 용서를 빌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 뒤로 처용은 역신을 쫓아낸 벽사의 이미지를 얻어 벽사진경의 의미로 많이 차용되었다. 그런데 역신에게 나쁜 일을 당한 건 부인인데, 왜 처용이 용서를 하는걸까? 역신이니 병이 나서 고통받는 건 부인인데 처용이 왜...? 심지어 막아주지도 못해놓고서는? 


그래서 우리 서문빈이 벽사아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삿된 것들은 약한 쪽을 먼저 공격하기 마련이고,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은 한을 풀지 못한 채 오도가도 못하고 이승에 묶여 악귀가 되어간다. 삿된 것들은 물론 역신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일수도 있지만, 인간인 경우가 더 많을테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참의 대감의 큰아들처럼 말이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임에도 억울하게 가해자가 되어버린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빈의 마음이 너무 반갑다고나 할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여 그에 맞게 억울함을 풀어준 뒤 벌을 내린다든가, 힘이 없어 암흑에 갇혀버린 이들을 구할 수 있는 건 그런 측은지심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것이 어디든 제왕의 자질이 아닐까.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구렁이 업신인 파려와 귀를 보고 몸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굳센 빈과 그런 빈의 정혼자로 다정한 은호와 탐욕으로 지존의 자리를 탐하는 영의정의 딸 채령이 만들어가는 흥미진진하고 다양한 사연들은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거기다 저승을 움직이는 염라대왕, 오도전륜대왕, 송제대왕, 진광대왕까지 등장하여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첫사랑을 여전히 잊지 못하는 빈과 불의의 사고로 사랑의 기억을 잊은 은호의 눈부신 성장과 권력욕으로 똘똘 뭉친 채령과 전륜의 출구 없는 돌진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영상화 되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익선관이든 면류관이든 '관'의 무게는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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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2-11 0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처용이 왜 나서서…? 천하의 대인배가 밤늦게 놀러 다니는 동안 가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됐는데요. (화남)

꼬마요정 2023-12-12 14:54   좋아요 0 | URL
그쵸? 뭐 해석에는 부인이 바람이 났네 어쩌네 하는 것도 있지만 결국 벽사의 용도로 처용이 사용되는 데에는 역신이라는 잡귀 때문일테니까요. 처음에 부인의 외도로 몰아가는 해석은 어쨌거나 잘못의 전가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기도 해요. 여튼 여러모로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화나는 일들이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것 같아요. ㅎㅎㅎ(어이없는 헛웃음)

희선 2023-12-11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벽사가 삿된 것을 몰아내는 거군요 실제로 그런 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사람이 해야 할 일일지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마음도 잘 알아봐주는군요


희선

꼬마요정 2023-12-12 14:56   좋아요 1 | URL
이 책의 신문빈이 그렇더라구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잘 파악해서 기회를 주는 거요. 본인은 싫겠지만 그런 마음이 있어 큰 역할을 맡나 싶습니다. 진짜 실제로 벽사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