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었다 - 고단한 속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부처의 인생 수업
그랜트 린즐리 지음, 백지선 옮김 / 프런트페이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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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지만 얻고자 노력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훌륭한 스승님과 훌륭한 가르침과 나 자신의 의지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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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필요한 세 가지 요소는 무기, 식량, 신뢰다. 통치자가 이 세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 무기를 먼저 포기하고 그다음으로 식량을포기해야 한다. 신뢰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 신뢰가 없다면 버틸 수가 없다.
-공자

민주적 제도, 글로벌 시장경제, 정치 및 경제 엘리트에 대한 신뢰는 최근 수십 년 동안 특히 기존 고소득 국가에서 약화됐다. 이는 보호무역주의, 이민에 대한 적대감, 그리고 무엇보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약 2,5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입헌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원으로 지목한 중산층의 공동화 현상이다. - P127

‘지위 불안status anxiety‘은 포퓰리즘, 특히 민족주의적인 정치인(예: 트럼프)과 목표(예: 브렉시트)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근본 원인을 파악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사고의 틀이다. 누가 이런 불안에 가장 취약할까? 정답은 이것이다. "불안에가장 취약한 사람들은 계층 구조상 밑바닥에서 몇 단계 위쪽에 있 - P128

는 사람들, 즉 사회적 지위가 우려를 불러일으킬 만큼 낮지만 방어해야 할 지위가 그래도 상당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이런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경계선을 지키는 데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꼴찌혐오, 즉 위계질서에서 최하위로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이 소수인종과 이민자에게 위협을 느끼고, 백인이든 소수 인종이든 남성이 여성의 지위 상승에 위협을 느낀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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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1-24 0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신뢰를 가장 먼저 포기한 것 같네요.

꼬마요정 2024-11-25 09:2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을 했네요. 지금의 위정자들이 공자님의 저 말씀 좀 새기면 좋겠습니다.
 
2023년생 순정만화 X SF 소설 시리즈 2
듀나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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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순정만화를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외숙모가 재밌다고 집 옆에 있던 만화방에서 빌려 준 책이었는데, 그 책이 한승원, 김동화 작가님의 <사랑의 에반제린>이었다. 그 뒤로 순정만화의 늪에 빠진 나는 닥치는 대로 읽다가 엄마한테 걸려 여러 번 혼이 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만화책을 읽는 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참 읽다보니 좋아하는 작가도 생기고, 작품도 생겼다. 내가 충격 받았던 작품들은 제법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르미안의 네딸들>이었다. 당시 그리스 신화와 역사를 좋아하던 터라 정말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완결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정말 충격 받았다. 아니, 왜? 여기서?


신일숙 작가님의 작품을 계속 찾았더랬다. <사랑의 아테네>나 <아르미안의 네딸들>, <리니지>, <라이언의 왕녀> 등등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중에 또 충격적인 작품인 <1999년생>이 있었다.


한참을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이 왔을 때, 입에서 비명을 안 지르고 본 내 나이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순정만화라고 다 로맨스만 있는 건 아니었고, 다 지고지순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리더십도 있었고 배짱도 있었고 무력도 있었다. 이미 그녀는 여왕이었고 장군이었고 전사였다. 그런 그녀에게 시련은 로맨스 뿐만 아니라 동료애에서 비롯되기도 하였다. 


사랑에 흔들리는 건 여자라고 편향된 시각이 존재한다지만, 저 먼 시대 달기나 포사 때문에 나라 망하게 한 사람도 있으니까. 소중한 상대를 두고 협박하는 건 어느 시대, 어느 성별에나 있는 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은 지났지만, 그 당시에는 미래였던 시간대인 20세기 말. 어느 날 갑자기 우주에서 외계인이 쳐들어왔고, 지구는 속절없이 당하다가 그들이 추위와 초능력에 약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특히초능력의 경우 1999년에 태어난 이들이 가진 초능력에 특별히 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9년에 태어난 이들 중 뛰어난 초능력을 가진 이들은 갑자기 외계인과의 전쟁에 군인으로 투입되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전투에 내몰린 그들 중 크리스 정이 있었다. 특히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그녀는 최전방이라 할 수 있는 멕시코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로페스 교관이 있었다. 


이야기는 크리스와 로페스의 악연, 아니 자헬 킬레츠와의 악연이 절정으로 이끈다. 그러한 이유로 크리스는 그 사건 이후로도 지금까지 고통 받고 고통을 주고 있었다. 2023년생이 자라서 19살이 되던 2042년까지도 말이다. 


듀나 작가의 <2023년생>은 가루다 팀이 외계인 수석 중 한 명인 에이바 플래너건을 습격하다 캡틴인 수린을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구인들은 이제 외계인 군단의 행성을 찾아내기에 이르렀고 가장 유력한 위치를 찾았다. 그곳은 '지옥'이라 불렸다. 캡틴을 잃은 가루다 팀은 충원이 필요했고, 다국적인들로 이루어진 팀은 뛰어난 능력을 바탕으로 '지옥'에서의 최후의 전쟁을 준비하게 되는데...


에이바 플래너건을 제거하면서 이제 남은 수석은 자헬 킬레츠 정도였다. 외계인 군단은 자신들의 군대가 죽어도 지원군을 보내거나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전히 전쟁 중이기는 하지만 지구에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어느 정도 퍼져 있었고, 전후 시기를 저울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외계인과의 싸움에서 든든한 아군이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는 처치곤란일 초능력자들의 처분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들의 힘만 믿고 민간인을 괴롭히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나 성폭력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10대들을 전쟁에 투입하는 건 옳은 일일까. 과거 소년 십자군처럼 어른들에게 실컷 이용당하고 버려지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어린 나이에 자신들의 힘을 '살육'하는 데 써야 했다. 비록 외계인이라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누군가의 생명을 꺼트리는 일은 참혹할 터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통제하기 힘든 대상이 되었다. 평범한 인간이 초능력자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초능력을 제어할 기술이 필요했다. 일전에 로페스가 사용했던 알코올이 든 목걸이처럼 말이다.


성폭력과 살인을 자행한 이들은 강철불사조 팀이었다. 그들은 교수대에 매달리는 대신 전투에 투입되었고, 이제는 여성 군인들에 대해 음담패설을 나불거렸고, 외계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학살했다. 화가 난 가루다의 예류가 가해자인 이동수를 잡으러 가면서 자헬 킬레츠의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렇게 수석들의 이름이나 외모에 대한 단서를 얻게 되었다.


외계군단의 방해가 있었지만, 팀은 '지옥'으로 향했다. 과연 그들은 왜 지구를 침략했으며, 왜 그렇게 크리스를 괴롭혔을까. 예측한 장소에 '지옥'이 있을까. 불가사의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들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외계군단과의 전쟁이 끝난 후 지구는 어떤 모습을 지닐까. 어떤 체제를 구성하고 어떤 사회를 지향할까. 큰 전쟁 하나가 끝나고 또 다른 다툼은 없을까. 인간은 다투기 좋아하는 존재라 또 어떤 꼬투리를 잡아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할지 모르겠다. 살육의 전장으로 내몰았던 초능력자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들에게 족쇄를 채우려 들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지도 모르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은 그저 꿈일 뿐인 걸까. <삼체>에서도 그랬지만 우주의 질서란 하나의 재앙을 또 다른 재앙으로 덮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당시 <르네상스> 독자들에게 그 반전은 폭탄과 같았다. ‘그 에피소드‘는 <르네상스> 독자들이 순정만화에서는 안전하게 여기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규칙을 깨트렸다. 허겁지겁 앞의 에피소드로 돌아간 독자들은 이 작업이 독자들의 눈앞에서 뻔뻔스럽게 윙크를 던지며 무자비하고 치밀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부터 오직 그 결말만을 위해 달려온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선언이기도 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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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1-22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만화책을 많이 보진 않았는데, 고등학생때 한참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유행했던 생각이 납니다. 저도 짜증내면서도(모두가 여주인공을 좋아해!) 아주 재미있게 보았지요. 원수연 만화도 재미있게 봤고 이미라도 재미있게 봤는데, 꼬마요정 님이 언급하신 <아르미안의 네딸들>.은 ㅋ ㅑ- 주옥같은 문장이 거기 나오지요.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꼬마요정 님의 리뷰 덕에 추억 돋습니다. 아, 저는 순정만화 조금 보다가 ㅋㅋㅋ 학원물로 이동하게 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오늘 우리는>, <반항하지마> 이쪽으로다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꼬마요정 2024-11-25 09:31   좋아요 0 | URL
오오 <점프트리 에이플러스> 진짜 오랜만에 듣습니다 ㅋㅋ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블루> 도 있었고… 전 김혜린 님의 <비천무>랑 강경옥 님의 <별빛속에>랑 황미나 님의 <엘 세뇨르>랑 신일숙 님의 <아르미안의 네딸들>이랑 이미라 님의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장하리라!!! 마음 먹고 성인이 되자마자 사모으기 시작했답니다 ㅎㅎ 아 맞다!! 클램프도 엄청 인기였죠. <동경 바빌론>이나 <x> 정말 재밌었는데… ㅎㅎ

소년 만화는 저 <용비불패>, <열혈강호>, <니나 잘해>, <아일랜드>, <신암행어사전>, <최유기> 이런 거 좋아했어요 ㅎㅎㅎㅎㅎ

감은빛 2024-11-28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은 게임 제목으로 유명한 [리니지]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김진 작가와 신일숙 작가는 소년만화만 주로 보던 저에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었어요. 그러고보니 김진 작가의 [바람의 나라]도 이젠 게임으로 유명하네요.

듀나 작가의 소설들을 좀 읽었는데, 어쩐지 작품별로 편차가 크다는 느낌입니다. 이 책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꼬마요정 2024-11-29 18:35   좋아요 0 | URL
김진 작가님의 <바람의 나라>도 정말 명작이었죠. 결국 완결이 안 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ㅠㅠ 무휼과 세류, 청룡과 주작이 생각나네요. 유리왕이 제일 맘에 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절한 해명태자도 생각나네요... 그나저나 옛날판으로 23권까지인가 모았었는데, 얼마 전에 곰팡이 때문에 다 버렸거든요. 가슴이 아픕니다.ㅠㅠ

듀나 작가의 소설들은 말씀처럼 편차가 있는 듯 합니다. 저도 어떤 작품은 너무 좋은데 어떤 작품은 고개를 갸우뚱 할 때가 있거든요. 이 책은 재미있게 봤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기담집 - 기이하고 아름다운 열세 가지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 지음, 히가시 마사오 엮음, 김소운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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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도 움직이라고 우는 소리에

 무덤이 움직이고

 가을바람 밤새도록 불어

 새벽이 희미하게 밝았도다

 초저녁에 꾼 꿈의 흔적을 보니

 잡초가 무성하게 새벽이 밝았도다.' (p.9)


1904년 경 나쓰세 소세키가 썼다는 <귀신이 곡하는 절에서의 하룻밤>이라는 신체시의 일부이다. 이 절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 사연이 무엇일까 궁금해지는 시였다. 그리워하던 이를 떠나보내고 쓴 시일까, 사랑을 잃고 쓴 시일까, 지나는 길에 그저 빗소리와 곡소리를 듣고 쓴 시일까. 김소월의 <초혼>처럼 처절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저 내 기분 때문인걸까 생각했다. 죽음은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가 없다. 무덤이 움직일만큼 울어도, 밤이 지나지 않도록 붙잡고 싶어도 결국 새벽은 오고 떠난 이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피눈물이 흐를 정도로 미친듯이 울어서 얻을 수 있는 건 남은 이가 함께 갈 수 있도록 무덤이 갈라지는 일(양산백과 축영대 설화 혹은 영화 '양축') 뿐이다. 날이 밝으면 세상은 어제와 같을 뿐, 나만 슬픔에 잠겨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환상문학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서양 작가인 찰스 디킨스나 코난 도일이 매료되었던 유령이 아니라 동양 작가인 그가 생각하는 요괴나 귀신은 어떤 존재이며, 그것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이 기담집은 총 13가지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긴 봄날의 소품>이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 일부를 발췌한 장도 있다. 신체시도 있고, 짧은 이야기들이 엮어져 있기도 하고, 아서 말로리의 <아더왕의 죽음>이나 세익스피어의 <멕베스>나 <해로가>와 같은 다른 이야기들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드러내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중 <취미의 유전>의 경우 러일 전쟁 승전 후 기차역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좀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시절 때문이리라. '만세'의 의미를 생각하며, 전쟁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드러내놓고 비판하지도 않으면서 친구였던 '고'를 떠올린다. 러일전쟁에서 죽은 친구 '고'와 '나'가 알지 못한 고의 여자와 고의 어머니 이야기이다. '유전'이란 단어보다는 '족보'나 '계보'가 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취미로 알아 본 계보 혹은 호기심에서 시작한 계보 추적 이야기가 좀 더 우리에게 와 닿을 것 같다. 그리고 취미라고는 하지만 결말이 제법 다정해서 기억에 남았다.


<열흘 밤의 꿈>은 말 그대로 꿈 이야기이다. 꿈에서 여인은 자신이 죽은 뒤 100년을 기다리라고 한다. 꿈에서 자신의 아이는 눈이 멀었다. 꿈에서 원수를 만나고 배에서 높이 뛰어 물로 뛰어든다. 꿈에서 100년 전에 죽인 원수를 만나고 여자에게 납치된 쇼타로를 구하지만 구하지 못한다. 꿈은 환상이고 무의식이다. 


<긴 봄날의 소품> 중 몇 가지 이야기를 발췌하여 실었는데, 그 중 '고양이 무덤'이 기억에 남았다. 살아있을 적 고양이의 신호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죽고 나니 난리법석을 떠는 모양새가 쓸쓸했다. 무덤에 좋아하던 밥을 가져다 둔들, 좋아하던 장난감을 놓아준다 한들 더 이상 그것들을 먹고 놀 고양이가 없으니 말이다. 죽은 뒤에야 비로소 관심을 주었으니, 하찮은 보상을 던져주고 죄책감을 덜 것인가, 애초에 무언가를 돌본다는 자신의 모습이 흡족해서 애정을 쏟는가. 인간이란 참 이상한 생명체임이 틀림없다.


<하룻밤> 속 여인은 누구일까. 그저 개미인가, 환상인가. 수염 없는 남자와 수염 있는 남자와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여자는 같이 있었을까, 같이 있었다는 환상일까, 그저 한 명이었을까. 졸린 사람들의 중첩된 세상일까. 아니면 그저 하룻밤의 꿈일 뿐인가.


<환청에 들리는 거문고 소리>는 제법 괴담 같은 이야기이다. 무슨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과 연락이 닿지 않는 여인과 갑자기 몸이 아픈 남자와 개 짖는 소리, 그리고 할멈. 그렇게 사람은 소문과 생각에 홀리고 어쩌면 모든 것은 너구리의 짓일지도 모른다. 


<런던탑>은 나쓰메 소세키가 런던에 있을 때의 경험을 살린 이야기이다. 권력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한 구절을 불러온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그렇게 에드워드 5세와 동생 리처드의 슬픈 사연이, 까마귀들의 날개짓이, 알아보지 못할 낙서를 읽어내는 여자가 저 구절과 만난다. 나쓰메 소세키가 만난 유령들은 그에게 몽환을 선사했고, 집주인은 잔인하게도 그 환상을 깨부수었다.  


<환영의 방패>는 지극한 사랑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섬기는 자가 어쩔 수 없이 주인을 배신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배신해야 할 상대의 딸과 어떻게 사랑을 이룰 것인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그 '환영의 방패'에 답이 있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답이 될까. 그들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끝없이 불타오르다가도 끝없이 어둠이 이어지고 검은 연기가 자욱한 그 세계에 모든 것을 남기고. 어쩌면 윌리엄과 클라라 둘 모두를 남기고.


<해로행>은 아서 말로리의 <아더왕의 죽음>을 모티브로 쓴 글이다. '해로가'는 만가(輓歌. 죽은 이를 애도하는 시가)이다. 랜슬롯과 기네비어를 위한 만가인가, 아더를 위한 만가인가, 랜슬롯을 사랑했던 여인들을 위한 만가인가. 끝내 성배를 조우하는 임무를 자신의 아들인 갤러해드에게 빼앗긴 랜슬롯과 다음 왕을 선택할 수 있는 지위를 잃은 기네비어는 각기 다른 곳에서 평생을 참회하며 지내야 했다.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아더는 배신자 모드레드에게 치명상을 입고 모르가나가 다스리는 아발론으로 떠났다. 


<맥베스의 유령에 관하여>는 정말 말 그대로 <맥베스>에 나온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다. 맥베스는 덩컨에 이어 뱅쿠오를 죽인 후 유령을 두 번 만나는데, 이 유령이 한 명인지 두 명인지를 말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두 번 나타난 유령이 모두 뱅쿠오라고. 확실히 유령에 대한 이야기이며, 맥베스의 배경인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다.


<소세키 요괴 구절 모음집>은 말 그대로 소세키가 언급한 요괴글들을 모아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정말 요괴를 만났을까? 그들이 말하는 텐구나 설녀를 만났을까? 해골을 두드려 본 제비꽃은 누구일까. 


스산하고 아름다운 구절들이 많아 요괴에게 홀린 것인지, 소세키에게 홀린 것인지,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기와지붕에서 새는 빗물 소리 고즈넉하고
슬픔 가득한 내 몸에 저승의 죽은 이가 왔도다. - P7

무덤도 움직이라고 우는 소리에
무덤이 움직이고
가을바람 밤새도록 불어
새벽이 희미하게 밝았도다
초저녁에 꾼 꿈의 흔적을 보니
잡초가 무성하게 새벽이 밝았도다. - P9

아무리 큰 태산이라도 작은 카메라 속에 담기고, 수소도 식으면 액체가 된다. 목숨을 건 달콤한 사랑을 한 점에 응축시킬 수 있다면-그러나 평범한 사람에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강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윌리엄 뿐이다. - P270

무시무시한 쓰나미가 지나가자마자 닥친 장마
비 한 모금 마시고 객실을 빠져나가는 반딧불이인가 - P331

3
해골을 두드려본 제비꽃인가

9
인형 홀로 움직이는 긴 낮인가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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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4-11-17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때 열흘 밤의 꿈(그때는 ‘몽십야‘)라는 이름으로 묶인 단편집 되게 인상깊게 읽었었던 기억입니다. 환영의 방패도 되게 재밌었구요. 그때 그거 읽고 판타지 단편 써서 수업 과제로 제출했는데 B받고 좌절....

꼬마요정 2024-11-18 11:22   좋아요 0 | URL
음.. 교수님 많이 옛날분이셨을까나요. 저 그 판타지 단편 궁금합니다. 올려주시면 무조건 A+ 드립니다!!
 
라이프 트렌드 2025 : 조용한 사람들
김용섭 지음 / 부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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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이어져 온 트렌드들이 어느새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은 듯. 이제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기후위기와 끝나지 않은 전쟁, 트럼프의 당선이 우리의 삶에 끼칠 영향력은 엄청날 것이다. 거기다 AI의 영향력까지 더해 우리는 보다 개인적이고 어디에 얽매이지 않은 삶을 꾸려가게 될 것이다. 개인은 움직이지 않아도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면 어느새 알지 못하는 곳에 다다른다. 돌아보면 알게 될 그 곳은 어디일까.

2013년에 시작한 이 책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침내 2025년에는 ‘조용한 사람’들이 욕망의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시대가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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