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목소리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4
버넌 리 지음, 김선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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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지만 통제하지 못하는 무언가 혹은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드러낸 소설이다. 유령 연인에서 오크 씨는 아내인 앨리스가 과거의 사건에 집착한다고 생각한다. 250년 전 니컬러스 오크는 버질 폼프릿의 영애인 앨리스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 앨리스 폼프릿, 앨리스 오크는 지금 앨리스 오크와 놀랍도록 닮았다. 그래서인지 앨리스 오크는 과거 앨리스와 과거 앨리스의 연인이었던 크리스토퍼 러브록에게 집착했다. 물론 남편인 윌리엄 오크는 러브록에 집착하는 아내 앨리스에게 집착했고 말이다.


윌리엄 오크와 앨리스 오크는 사촌 간이다. 그런 식으로 근친혼이 계속되었다면, 당연히 닮지 않았을까? 무엇이 윌리엄 오크를 공포로 몰아갔을까? 아내인 앨리스가 부정을 저지른다는 의심? 아니면 오크허스트 저택에 스며들어 있는 유령의 소리? 그런 윌리엄을 비웃듯 앨리스는 자주 러브록을 언급했고, 자신의 조상인 앨리스가 했던 것처럼 방을 꾸미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유령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조상 앨리스가 남편인 니컬러스와 함께 러브록을 살해했다는 그 끔찍한 사건은 누구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으며, 누가 배신감을 느꼈을까? 조상 앨리스는 어째서 연인을 살해했을까? 과연 그런 사건이 있기는 했을까? 어쩌면 니컬러스는 앨리스를 핑계 삼아 러브록을 유인한 뒤 살해하고 앨리스에게 공범의 혐의를 씌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앨리스는 겉으로는 순응하는 척 하면서 니컬러스를 미치게 만들었던지, 혹은 그 사실이 대대로 오크 씨들에게만 전해졌기에 러브록 이름만 들어도 경기하고, 조상 앨리스의 피를 혐오하게 된 것일지도. 그리고 조상 앨리스가 드디어 복수를 감행한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후손 앨리스는 희생양이 되어 버리니 과거는 반복되는 것인가... 죄책감으로부터 나오는 공포와 혐오는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공포와는 다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전해져 내려오는 그 일이 사실일까 생각했다. 사실이라면, 조상 앨리스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알았던 여자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정말 무서운 것은 사건의 사실 여부도 아니고, 현재를 살던 윌리엄 오크와 과거를 살던 후손 앨리스 오크 사이를 떠도는 유령도 아니다.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편집증과 권태에 휩싸인 그들의 모습과 그들을 바라보는 연민을 잃어버린, 관음증을 가진 화가의 모습이다. 


끈질긴 사랑은 말 그대로 아주 끈질기고 잔혹한 사랑이며 죽음도 갈라놓지 못하는 사랑이다. 현실의 여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과거의 한 이야기에 매몰되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잃어버린 스피리디온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어딘가 살짝 부서진 듯한 이 남자는 여자를 무서워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그렇게 사랑하는 여자인 메데아 다 카르피는 지독한 악녀이고, 죽어서도 남자들을 홀리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메데아를 한 번이라도 본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지독한 고통이 오더라도 결코 그녀를 배신하지 않았다. 스피리디온은 비겁한 추기경이 세운 청동 기마상을 훼손하고 연적의 칼에 찔리지만, 현실에서 도피한 채 거듭된 망상 속에서 행복했을까? 


사악한 목소리 역시 여성적 카스트라토를 경멸하던 남자 작곡가가 결국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성악가인 차피리노가 작심하고 부른 세 곡을 들으면 죽는다는데, 죽기는 싫었나보다. 북유럽의 신화를 오페라로 만들고 싶었던 작곡가는 결국 자신이 혐오하는 목소리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남성적인 곡은 사라지고, 그의 귓가에는 차피리노가 남긴 소리만이 남았다. 좋은 걸 좋다고 말 못 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우기던 자의 말로인가.


위 세 가지 이야기들은 모두 화자가 남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갈망하면서도 무서워한다. 여성이라는 존재를. 


부록인 마법의 숲은 있지만 없는 곳이다. 잘 알지 못해서, 통제하기 어려워서 공포를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던 이들이 없는 곳, 그런 이들이 생기지 않는 곳. 마법의 숲이다. 

메데아 같은 여자를 가진다는 건 필멸의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행복이니, 그만 우쭐해져 - P132

그녀가 베푼 은혜마저 잊기 마련이다. 그녀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자만하는 남자라면 명줄이 길어서는 안 된다. 일종의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오로지 죽음만이, 그런 행복에 죽음으로 값을 치르겠다는 각오만이 그녀의 애인이 될 자격을 부여할 터이기 때문이다. 기꺼이 사랑하고 고통받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것이 그녀를 상징하는 글귀의 의미다. "아무르 뒤르, 뒤르 아무르." 메데아 다 카르피의 사랑은 빛이 바랠 수 없으나 애인은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영속하나 잔인한 사랑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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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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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장난감? 이 제목에서 말하는 장난감은 무엇일까? 세상일까? 실비오가 만든, 혹은 설계한 대포나 기계 등일까? 아니면 돈을 숭배하고 노동을 천대하며 놀이를 멸시하는 세상을 미친 장난감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실비오가 열 네살 때 그는 도적 문학을 좋아했다. 멋진 의적이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을 나눠주는. 어쩌면 실비오는 그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자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계급 혹은 돈 자체에 종속되어 그 생산수단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의적을 꿈 꿨고, 시궁창 같은 현실이 아닌 것을 꿈 꿨다. 똑똑하지만 가난했던 실비오는 책을 사서 보지 못하고 빌려 봐야 했고, 실용과학기술에 능했으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해 고급 일자리에는 가지 못하고 단순 노동을 하는 일자리에서는 해고 당했다. 


'동굴'로 표현되는 첫 일자리는 암울했다. 책을 좋아하는 실비오는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그 곳은 책을 책으로 보지 않는 곳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고, 서점 주인인 가에타노 씨는 인격마저 돈에 팔아먹었다. 그 곳에서 일하는 '구역질 나는 하느님'인 미겔은 부당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일을 한다. 어쩌면 그 모습은 실비오가 도달할 미래의 모습인 것일까?  


도서관에서는 책을 훔치고, 서점에는 불을 지른다. 방화에 실패하지만, 실비오는 그 서점에서 해방되었다. 실직, 부당한 해고 등은 실비오를 좌절하게 만들고, 급기야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지만, 다행히 불발된 권총이 그를 살렸다. 그리고 그는 종이를 파는 영업사원이 된다. 시장통에서 영업을 하며 실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돈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느끼고 절망한다. 그리고 알게 된 '절름발이' 사기꾼에 도둑인 그는 실비오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게 되고...


"살다보면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뼛속까지 타락해서 악랄한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죠.... 또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파멸로 몰아가야 할 때도 있고요.... 우리는 그러고 난 뒤에야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요."(p.262)


유다의 죄를 지었으나 그것이 선한 일이기도 한 모순 속에서 실비오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기쁨을 느낀다. 그것은 삶이었다. 짓지도 않은 죄로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지은 죄로 인해 고통 받는 것, 죄를 지었으나 그것이 죄가 아니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삶은 그러한 것이라는 깨달음 말이다. 실비오는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숱한 고통과 우울이 그를 덮치더라도 삶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살다보면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뼛속까지 타락해서 악랄한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있죠.... 또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파멸로 몰아가야 할 때도 있고요.... 우리는 그러고 난 뒤에야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어요 - P262

난 절대 미치지 않았어요. 진실은 존재해요. 그렇죠... 내게 인생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울 거예요. 그게 바로 진실이에요. 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기쁨이, 기쁨으로 가득 찬 일종의 무의식이 있다고요.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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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25 2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휴머니스트에서 나오는 이 세계문학 시리즈는 항상 뭔가 읽을까 말까 하는 망설임을 유발하네요. ^^

꼬마요정 2022-11-25 23:37   좋아요 1 | URL
그래서 일단 읽고 최대한 천천히 리뷰를 쓰려고 했거든요... 너무 좋으면 좋다고 막 할텐데 그 정도는 아니라서 괜히 선입견 생기게 할까봐 좀 그랬어요... 시리즈 취지는 좋은 것 같은데 생각만큼은 아니더라구요. 그래도 이렇게 책 계속 나오면 좋겠어요. 저, 동 카즈무후랑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기대해용. 밸런트레이 귀공자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니까요. 그리고 그냥 제 생각이라서 다른 분들은 좋으실 수도 있어요. 책은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잖아요. 도전해주세요!! 많은 분들의 리뷰를 읽고 싶습니다^^

scott 2022-11-28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세개
요정님의 평가에 맞게
남주 쓰레기 같은 짓을 한 것 같습니다 ^^

꼬마요정 2022-11-29 14:07   좋아요 1 | URL
쓰레기 같긴 한데 또 아닌 것도 같고 문화 차이인가 하다가도 뭔가 묘하게 잘 살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

그레이스 2022-11-29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강렬하네요.
표지때문에 관심을 두었었는데...^^;;

꼬마요정 2022-11-29 14:22   좋아요 1 | URL
저는 저렇게 느끼긴 했는데 또 다른 분이 읽으면 다르지 않을까요? 제가 못 본 부분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봐 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궁궐 기담
현찬양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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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천예록>, <학산학언>, <용재총화> 등을 보면 우리나라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롭고 신비한데, 이런 기담이나 야사들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진 공포나 열망 같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이야기들을 차용해서 조선 시대 태종 때 교태전 궁녀들을 중심으로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백희는 원래 교태전 소속 나인이 아니었으나, 태종이 원경왕후와 다투고 교태전의 궁인들을 내쫓는 바람에 교태전 나인이 되었고, 당장 교태전은 냉궁 아닌 냉궁이 되어 금부도사 지키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왕권 강화에 목을 맸던 태종은 중전의 가문이 권력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여 원경왕후의 친동기들 및 수많은 인척들이 역모나 각종 죄를 뒤집어 쓰고 사라졌다. 거기다 별 별 가문의 여식들이나 궁녀들을 후궁으로 삼아 원경왕후의 입지를 약화 시켰다. 그러니 원경왕후가 화가 나지 않을까. 태종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원경왕후가 없었다면 그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일등 공신 중의 일등 공신이건만, 여자라는 이유로 내궁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녀가 권력을 누리려면 조정에서 활약하는 남자들이 필요했고, 자신의 가족 및 친척들이 힘이 되어줄 수 있겠지만, 외척이라는 이유로 축출당하고 원경왕후는 홀로 쓸쓸해졌다. 여장부였는데... 이성계도 그렇고 이방원도 그렇고 그 시대 여자들이 무예도 익히고 정사를 돌볼 수 있었다면 그녀들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신의왕후 한씨나 신덕왕후 강씨, 원경왕후 민씨, 인수대비 등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철저히 견제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는 원경왕후가 주인공은 아니고, 그렇게 흉흉하던 시절 교태전 및 곳곳의 궁녀들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피를 뿌린 곳인 경복궁은 도깨비 집터였단다. 백희가 살던 집이 딱 교태전이 있는 곳인데, 백희가 살던 집이 바로 도깨비 집터였다. 백희만이 살아남은, 인간 100명을 잡아먹으면 용이 된다는 비비(영노)가 살던 집이다. 백희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경복궁으로 들어왔다. 영노는 통영오광대 등 탈놀이에서 언급되는 상상의 동물이다. 탈놀이에서 비비가 양반 백 명을 잡아먹는 동물인데, 99명을 잡아먹은 비비에게 쫓기던 양반이 자신은 양반이 아니다 라고 하니까 비비가 양반 아니라도 잡아먹을 수 있다 이런다. 놀란 양반이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 쇠붙이다 이러면 비비가 쇠붙이는 쫀득쫀득하니 맛있다 이런다. 결국 여차저차해서 이 양반이 쫓겨나며 탈놀이는 끝나는데, 이 상상 속의 동물이 어떻게 백희의 목구멍에 살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는 변형되어 있긴 하지만 꽤나 흥미진진했다. 


마치 괴담처럼 궁에 들어오는 궁녀들은 비망록으로 내려오는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다. 그건 궁녀들이 만든 것이고, 으스스하기까지 한 규칙들이 제법 있다. 예를 들어, 고양이매 즉 부엉이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던지, 우물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던지 말이다. 이러한 규칙들이 생긴 연유가 씁쓸하면서도 다정하여 이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여러 기이한 이야기들이 계속 변형되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어? 이 이야기는 조선 중기 이야기인데 태종 때 이야기로 나왔네 하는 것들도 있었다. '강수'가 등장하는데, 강수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사람이다. 강수의 태몽이 머리에 뿔이 난 것이었는데, 아주 똑똑한 유학자였다고 한다. 그런 강수가 조선 태종 때인 이 책에 등장한다. 신라 때부터 살았다고 하니 그 강수가 맞는 것 같고. 그런데 강수의 기이한 일화 중 하나에 귀신을 점호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귀신 점호 이야기가 원래는 임방이 남긴 <천예록>에 나오는 기록이고, 조선 중기 때 이야기이다. 강수의 기이함을 이야기 하기 위해 이 기담을 끌어온 것이다. 버드나무가 가득한 것도 비꼬기 좋아 보였다. 고려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이야기를 이성계에게 갖다 붙인다고 말이다. 목이 마른 훤칠한 장수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바가지를 건네는 이야기 말이다. 


고독, 서묘 이야기 등도 내궁의 암투와 엮여 재미있었고, 궁녀들끼리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며 의지하는 것도 좋았다. 결국 내명부에서 왕의 여자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궁 내의 일을 하며 자부심을 가지는 게 더 좋아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있었기에 궁궐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강수가 등장하고 강수가 궁궐 내의 괴이를 조사하면서 끝이 났다. 이제 강수와 비비와 백희와 노아는 어떻게 될까. 끝내 폐비가 되지 않은 원경왕후의 한은 어떻게 될까. 수많은 피를 뿌린, 심지어 며느리인 세자빈의 가문까지 도륙해 버린 그 왕은 여기서 어떻게 될까. 비비가 잡아먹으면 좋겠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에서 왕과 왕비가 아닌 그들을 보필하던 수많은 궁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기담의 형식을 빌었기에 그들의 애환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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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12-09 17:2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아무리 더듬어도 기억나지 않는 일이 있다. 정말 멋진 순간이었을텐데 왜 기억나지 않는걸까? 어떤 순간이냐고? 바로 슈테판 츠바이크를 만난 순간이다. 내가 나름 남긴 기록을 보면 2007년 4월 <마리 앙투아네트>가 먼저인데, 나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먼저 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리뷰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가 2007년 5월이니까 <마리 앙투아네트>가 먼저가 맞는 것 같은데 내 기억의 왜곡은 뭘까? 심지어 그 사이에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도 읽었다...









근데 도대체 왜 <마리 앙투아네트>를 읽었을까? 그 때 무슨 일이 있었지? 왜 리뷰에 이 책을 이러해서 만났다를 안 적었을까? 앞으로 리뷰 쓸 때 이유도 적어야 하나? 사라져 가는 기억들이 너무 아쉽다. 하지만 무슨 책을 먼저 만났든 상관없이 나는 슈테판 츠바이크를 좋아한다. 그 감정은 기억나서 다행이다. 


그러고 슈테판 츠바이크 책을 막 사 모았다. 어느 순간 왜 사는지도 모르고 막 샀던 것 같다. 오늘 나는 <연민>이 <초조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마 <초조한 마음> 샀을 때는 알았겠지만,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연민>이랑 <메리 스튜어트>에 집착하고 있었다. 


 <메리 스튜어트>는 도서관에서 빌려 봤었다.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의 관계도 흥미진진했고, 프랑스 궁정을 경험한 메리 스 튜어트의 매력과 자유분방함이 엘리자베스 1세를 아주 엄격하고 딱딱해 보이게 했다. 그 때 츠바이크가 왜 엘리자베스 1세가 아닌 메리 스튜어트의 전기를 썼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리뷰나 좀 자세히 써 둘 것을, 지금은 못 구하는데...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봐야 될 것 같다.


 도대체 나에게 슈테판 츠바이크 책이 몇 권이나 있나 싶어서 뒤져보다 보니 <위로하는 정신>을 발견했다. 이 책을 읽고 몽테뉴를 좋아하게 됐는데... 우습게도 <에라스무스 평전>을 읽다가 만 채로 남겨 둔 것을 발견했다. 마저 읽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앞 내용이 생각 안 나니까 다시 읽어야겠다. <촛대의 전설>에도 책갈피가 꽂혀 있다. 어질어질하다. 읽은 책 더 없나 싶어 살펴보니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가 보인다.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이 책 참 가슴 아프게 읽었더랬다. 


책장을 쭈욱 둘러보니 큼지막한 책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딱!! <어제의 세계>. 나 이 책은 왜 샀을까? 읽을 수 있을까? 그래... 나 <전쟁과 평화>도 읽었는데 <어제의 세계> 읽을 수 있어!! 겨우 590쪽이야. 그 옆에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도 있다. 심지어 여기에도 책갈피가 꽂혀 있고... 읽다 만 책 참 많구나. 이 책갈피가 여기 있었구나... 











반대편 책장에는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보인다. 그리고 그 밑에 세익스피어 희곡들과 함께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톨스토이를 쓰다>, <환상의 밤>, <타버린 비밀>이 있고, <감정의 혼란>도 있다. 이 책은 먼지가 너무 많이 붙는다. 특히 우리집처럼 고양이가 많은 집에는 으... 맨날 털 떼야 해... 아닛!! 흐흐흐 이 책도 있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다락방님, 저도 이 책 있답니다. 이 책 왜 샀지? 


내가 가진 책들 중 단일 작가 책으로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1등인 것 같다.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나 <은하영웅전설>, <해리포터>처럼 시리즈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얼른 한 권씩 읽어야겠다. 우와, 읽을 책 많아 좋네... 좋은 것 맞지?


참고로 츠바이크를 검색하면 꼭 나오는 책이 한 권 있다. 제목도 내가 환장하는 거라 한 번씩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작가가 '슈테파니 츠바이크'다.  








이 글은 앞으로 슈테판 츠바이크 책, 내가 뭘 갖고 있는지 확인할 때 중요한 페이퍼가 될 것이다.

 으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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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4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24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11-24 0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티네 저 책은 제가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사둔 것 같은데 그게 기억이 안나네요. 하하.
그나저나 꼬마요정 님, 츠바이크에 진심이시군요! 저는 단일 작가로 치면 누구의 책이 가장 많을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국내작가인 이승우 일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2-11-24 14:34   좋아요 0 | URL
그럼 저도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샀겠군요. ㅎㅎㅎ 어쩌다보니 츠바이크 많이 모았네요. 근데 이 페이퍼 쓰고 책을 꽂다보니... 어슐러 르 귄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 같아요. 조만간 세어봐야겠어요 ㅎㅎㅎ 이승우 작가님 책 이번에 샀는데 얼른 읽어보겠습니다^^

새파랑 2022-11-24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츠바이크 마니아 이시네요~!!
전 다섯권 읽었나? 인데 <감정의 혼란>이 젤 좋더라구요 ㅋ


저 위대한 책탑중에 안보이는 책 중 <보이지 않는 소장품> 이 있습니다~!!

꼬마요정 2022-11-24 14: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보이지 않는 소장품> 제 장바구니에 있습니다!!! 고민하면서 매번 구매목록에서 빠지긴 하는데 언젠가 사지 않을까요... 근데 당장은 안 사야겠어요 ㅎㅎㅎ
새파랑님도 츠바이크 좋아하시네요. 5권이나 읽으시다니!!! <감정의 혼란>이 젤 좋으셨다니 <초조한 마음>이랑 <감정의 혼란>을 먼저 읽겠습니다^^

coolcat329 2022-11-24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 요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읽고 있어요. 얼마 전 에라스무스 평전도 샀구요. 전 츠바이크 책 11권 갖고 있는데 요정님 저보다 많으시네요.😲
저도 앙트와네트로 처음 츠바이크를 만나 세상에 이런 작가가 있다니...혼자 가슴 설레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의 마지막은 늘 저를 슬프게 하구요.
많은 예술인이 스스로 세상을 떴지만 유독 츠바이크의 선택은 저를 가슴 저리게 만들어요.

꼬마요정 2022-11-24 14:38   좋아요 1 | URL
11권!!! 쿨캣님도 츠바이크 마니아시군요!! 반갑습니다 ㅎㅎㅎ
그의 마지막은 정말 슬프죠ㅠㅠ 저는 이상하게 츠바이크랑 김소월 시인이랑 비슷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제가 김소월도 참 좋아하거든요. 글도 비슷하게 아련하고 그 현재의 절망과 자신의 이상 사이에서 휘청휘청 걷는 느낌이랄까요. 진짜 물기가 가득해서 둘 다 너무 애처롭습니다. 아... 가슴 아파요.

scott 2022-11-24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민음사 찐팬 👆마지막 사진 멋집니다 😊

꼬마요정 2022-11-24 14:3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민음사 많긴 합니다. 언제 다 모았는지... ㅎㅎㅎ 근데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요? ㅎㅎㅎ

단발머리 2022-11-24 15: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츠바이크 딱 두 권(초조한 마음, 체스이야기) 읽었는데 항상 마음 속에 숙제 같은 혹은 알밤 같은 작가입니다. 저도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읽어보려고요. (알라딘 대유행) 상호대차 신청해 두었습니다^^
꼬마요정님 츠바이크 책들도 근사하지만 뒷배경도 넘나 멋집니다. 진정한 문학 애호가다운 면모가 아주 빼곡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고에요!!!

꼬마요정 2022-11-24 14:41   좋아요 1 | URL
<마리앙투아네트> 너무 좋아요!!! 알밤 같은 작가라니...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 전 단밤 좋아하는데 너무 비싸요ㅜㅜ(읭?)
얼마 전에 책 정리를 좀 했더니 이렇게 사진 찍으니 뭔가 있어보입니다 ㅎㅎㅎ 칭찬 고맙습니다^^ (근데 저 책들 다 읽으려면 제가 한 300살까지는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11-24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예전에 바람돌이님 리뷰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츠바이크 하면 꼬마요정님도 포함시켜야 겠어요.ㅋㅋㅋ
저는 마지막 사진 도서관에서 찍으신 줄 알았네요?? 펭귄북스 문동 민음사까지??
와....요정님 서재 구경가고 싶어요^^

꼬마요정 2022-11-24 21:33   좋아요 1 | URL
츠바이크 하면 꼬마요정 이러고 싶지만 저는 너무 미천해서요ㅜㅜ 그냥 좋아하는 정도입니다. 저도 좋아해서 막 멋지게 리뷰 쓰고 이러면 좋겠는데 현실은… ㅎㅎㅎ
제 서재 이쁘죠? 이번에 저쪽 벽면 책장 정리를 좀 해서 뿌듯합니다. 근데 저기만 예뻐요 ㅎㅎㅎ

라로 2022-11-25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츠바이크 좋아한다고 나불거렸는데 꼬마요정님의 목록을 보니 무척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책장이 정말 넘흐 멋져요!!! 꼬마요정님은 저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분이셨군요! 책에 진심이신 분!! 앞으로 머릴 숙이겠습니다.^^;;

꼬마요정 2022-11-25 23:40   좋아요 0 | URL
엥? 아니에요!!! 책만 사다 모은 거예요!!! 라로님 엄청 글도 잘 쓰시고 제가 많이 배우는걸요. 책장은 자랑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정리 다 하게 되면 전신샷으로다가 ㅎㅎㅎ 지금은 아래 책장이 매우 더러워서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22-11-27 15: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종이책으로도 오디오북으로도 샀지요. 완독은 아직 하지 못했어요.
츠바이크가 쓴 무슨 평전인가 하는 책도 살 뻔했어요. ㅋ

꼬마요정 2022-11-27 22:33   좋아요 1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 재미있습니다^^ 츠바이크 책이 의외로 많아서 사다보면 큰일나겠더라고요 ㅎㅎㅎ 저도 멈췄습니다!!

그레이스 2022-11-29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를 사랑한 시시, 저도 슈테판 츠바이크 책인줄 알고 샀죠 ㅋㅋ
저도 츠바이크는 모으고 있어요 ㅎㅎ

꼬마요정 2022-11-29 14:23   좋아요 1 | URL
나를 사랑한 시시 사셨군요. ㅎㅎ 전 살 뻔 했어요.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뭔가 위화감이 들어서 다시 보니 스테파니 ㅎㅎㅎ 그레이스님도 슈테판 츠바이크를 사랑하시는 분^^

감은빛 2022-11-29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읽었던 스테판 츠바이크의 단편을 좋아했었어요. 제목이 기억이 안 나네요.

올해는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를 읽었네요. 두 이야기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소개해주신 다른 책들도 찜해놓고 하나씩 읽어가야겠어요.

꼬마요정 2022-11-29 21:13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 책 다 재미있는 것 같아요. 아직 많이 못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좋더라구요. 저도 사 둔 책 얼른 얼른 읽어야겠어요^^ 감은빛 님이 오래 전에 읽으신 이야기는 뭘까요 ㅎㅎㅎ

서니데이 2022-12-08 1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12-09 17:2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겁고 따뜻한 하루 보내시구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 벌써 금요일이라니, 너무 설렙니다!!

책읽는나무 2022-12-17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요정님!!! 축하드립니다^^
저 <백일의 낭군님> 다 봤어요ㅋㅋㅋ
지금 나만 불편한가???ㅋㅋㅋ 요정님 덕분에 디오랑 남지현의 귀여운 연기에 푹 빠져 있었네요^^
암튼 츠바이크 저도 내년엔 좀 읽어봐야겠습니다.
축하드려요. 연말도 잘 보내시고 복도 많이 받으시길♡

꼬마요정 2022-12-18 07:33   좋아요 1 | URL
오 책읽는나무님!! 다 보셨군요. 내용이 참 맘이 아팠더랬죠. 권력을 쥐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흔드는 사람들이 문제에요 정말. 게다가 전 조선에서 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연말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츠바이크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머나먼 섬들의 지도 -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권상희 옮김 / 눌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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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이란 설명이 붙은 책. 지도책을 보며 전체를 상상하는 작가는 ‘동경은 원하던 것을 이루었을 때 얻는 만족감보다 훨씬 더 크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지도책에 나오는 섬들은 수많은 사연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섬에 얽힌 사연을 볼 때면, 내 상상은 너무나 순진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스터 섬은 경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매쿼리 섬에 홀린 견습 사관 헨리 엘드는 결국 펭귄 떼의 희생양이 된 것 같고, 생폴 섬에서 물라토 한 명은 결국 먹혀버린 것 같다. 티코피아 섬에서는 일정 인구 수 이상이 되면 성인들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태어난 아이들을 살해한다. 섬은 결코 낙원이 아니었다. 안노본이란 섬은 방문한 내역은 있으나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을 공개하기는 어렵다. 도대체 주민들과 방문자들 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마 유쾌한 일은 아닌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섬들은 매력적이다. 있지만 없고, 어디 속해 있는 것 같지만 그 누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남은 건 ‘흔적을 남기려는 욕망을 지닌 인간’의 시도 뿐. 그리하여 아마 고프 섬처럼 재앙이 가득한 곳을 만들게 된다. 인간을 따라 밀항한 쥐는 이 섬의 동물들을 다 잡아 먹었다. 헬리콥터는 독이 든 미끼를 뿌려댄다. ‘세계에서 가장 교란이 덜 된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p.62)

인간이 사는 세상의 대부분이 오로지 집이라는 섬으로 바뀐 비자발적 고립의 시기에 내가 또다시 《머나먼 섬들의 지도》에 몰두하고 싶게된 것도 당연하다. 고립을 뜻하는 단어 ‘Isolation‘은 라틴어로 섬을 뜻하는 ‘Isola‘에서 유래하였고 뜻도 ‘섬이 되다‘이다. 나는 다섯 개의 섬을더 찾아냈다. 이 섬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있지만 야생과 경작, 단절과 연결,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 있는 섬들의 혼종성의 핵심으로 인도한다. - P9

실상은 이렇다. 오늘날 그 여정이 얼마나 멀든 상관없이 인간은 항상자기 종족의 흔적과 마주하게 마련이다. 주인 없는 미지의 땅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새로운 시작 또는 대안적인 사회 형태라는 섬과 관련한 악명 높고 유명한 꿈에 필수적이었는데, 이로 인해 영원히 사라지고말았다. - P11

경험적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섬은 축복받은 곳이자 자연의 실험장이다. 다시 말해, 섬에서만큼은 연구 대상을 애써 제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관찰할 수 있다. 물론 외부에서 침입한 동물에 의해섬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멸종되거나 전염병으로 주민들이 죽어나가기전까지의 이야기다. - P27

가장자리 따위는 없는 둥근 지구의 어디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에덴동산은 없다. 멀리까지 탐험해 상상 속 괴물들을 지도 밖으로 쫓아냈지만, 대신 스스로 괴물로 변해버린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 P29

섬을 발견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섬 덕분에 유명해진다. 섬을발견한 일이 마치 창조와 관련된 업적인 것처럼, 찾아낸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있어서, 지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이 이름 덕분에 비로소 어떤 장소가 존재하기라 - P29

도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세례식과 마찬가지로 발견자는 발견물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섬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섬을 단지 먼 곳에서 보기만 했거나, 그 섬이 오래전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는 이름 있는 땅이라 해도 말이다. - P30

섬에 깃발을 꽂는 일이 끝나면, 지도를 제작할 차례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장소가 태어난다. 이 바다 너머의 땅은 점령되고 소유당하며, 정복 행위가 지도 위에서 다시 반복된다. 어떤 섬이든 먼저 정확한 위치가 측정되고 표기된 다음에야 비로소 현실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섬이된다. 모든 지도는 식민 지배라는 폭력의 결과이자 과정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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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1-23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정말 흥미로운데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5개의 섬들]
요정님이 인용하신 구절을 읽어보니 역사적으로 보존해야 할 소중한 섬들이네요 ㅎㅎㅎ

기온 이상으로 빙하가 점점 녹아서 섬들 부터 잠긴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한국도 겨울 같지 않은 11월인데 ,,,,

꼬마요정 2022-11-24 00:39   좋아요 1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사람들이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터전을 해치지 않았으면 했답니다. 기온 이상 때문에 큰일입니다. 점점 피부에 와 닿으니 더 무서워지네요. 지금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갇혀서 못 내려와서 한반도 온도가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시베리아 고기압이 힘을 못 쓰게 되고, 중국 온도도 올라가서 우리나라로 부는 바람이 따뜻하고... 평년 기온이 5도나 높다고 하니까요ㅠㅠ 큰일입니다. 모기도 아직 많아요....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