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부 솔즈버리 평원(Salisbury Plain)에는 대략 기원전 1900년경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1600 년경 신석기 시대 말기에 완성되었다고 하는 거대한 석조물이 있다. 무려 4톤에 달하는 거석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으며 그 중 청석(blue stone)들은 여기에서 500킬로 넘는 곳에서 실어 왔다고 한다.

세상 어디든지 여행하려 할 때는 기차, 버스, 도보가 필수적이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아무리 험한 곳이라도 직접 걸어다니면서 주변을 살펴볼 때, 유적지의 숨겨진 이면과 환경을 동시에 옅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곳을 찾은 때는 1986년 9월 관광하기 딱 좋은 계절이었다. 주머니 사정도 있기는 하였지만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기차와 버스가 나름대로 잇점이 있어서 그렇다.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주변을 구경할 수도 있고, 교통편이 안좋으면 안좋은대로 비록 몸이야 힘들지만 도보로 구경하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유적의 뒷모습과 주변 환경을 알게된다. 런던에서부터 솔즈버리까지 기차로 가서 다시 버스로 스토운헨지까지 가게되었는데, 산많고 계곡이 수없이 널려진데서 살아온 필자로서는 이 솔즈버리 평원은 무척 인상적이었고 그만큼 기차나 버스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실 이 스토운헨지는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이미 사진으로 수없이 보았었고, 대강 이야기도 들은 터이었다. 그러나 막상 이 곳에 도착하여서는 너무 기대감이 컸었던 탓인지, 오히려 평원에 비해 자그마한 광경에 실망조차 느꼈다. 하지만 광활하게 펼쳐진 솔즈버리 평원 한가운데 우뚝 서서 말없이 보여주고 있는 이 거대한 돌덩어리들은 현재 우리들이 알 수 없고 체험할 수 없는 무었인가가 과거에 이 드넓은 평원 한가운데서 벌어졌었구나 하는 생각을 품게 한다.  

                                                                                                     

 석기시대의 신전이라 할까 아니면 이 스토운헨지를 연구하는 이들이 말하듯이 별이나 태양과 관계가 있는 건물이라 할까, 아무튼 평원에 이러한 거석들을 멀리서 갖다놓은 데엔, 그 나름대로 이유가 분명히 있었으리라. 이 곳은 이 돌들 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근처에는 이 스토운헨지와 구조가 비슷하고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는 우드헨지(woodhenge)도 있고, 또한 우리나라 고분과 모양이 흡사하고 아브버리에 있는 실버리 힐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자그마한 구릉의 바로우(barrow)도 있다. 그리고 스토운헨지 아래 쪽으로는 흙으로 둔덕을 길다랗게 만들어 놓았는데, 폭이 20미터이고 길이가 장장 2킬로미터나 되며 일직선으로 뻗어있다. 이를 커서스(cursus)라하며 영국이 로마의 통치를 받을 당시에 마차 경주장이었을 것이라고는 하는데, 마치 들판을 가로질러가는 고속도로같다는 느낌이며, 당치않은 생각이지만 어찌보면 스토운헨지가 공항 관제탑이고 이 커서스는 활주로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로마시대에는 로마의 신전으로 사용되었었다는 이 스토운헨지는 처음에는 로마 유적지로 알려지다가 수차례 발굴및 조사 과정에서 그 역사가 석기시대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실상 부근의 바쓰(bath)라는 도시는 로마의 유적지이다. 고대에서 부터 원시인들이 숭배했던 초인적인 힘, 그 힘을 이 곳 스토운헨지는 너무 적나라하게 고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비록 전설 속에서는 멀린(merlin)이라는 마술사가 공중으로 돌을 날려 이 스토운헨지를 만들었다고 하나 이를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석기시대 인간들이 이를 만들었다 하기에는 너무 거대한 돌들이고 또한 운반거리조차 상상을 초월하고있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곳으로 이끌게 하는 것인가, 단지 커다란 돌덩어리들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요즘에도 드류이드 교인(Druids)들이 하지 때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이 곳은 원시시대 인간의 초월적인 힘을 보여주는 그 대표적인 증거물임과 동시에 현시대 인간들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과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들어 주기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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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ㅗ무ㅑ 2012-02-0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ㅠㅕ두ㅐ ㅣㅕㄷ해 쳐무애 ㅡㄷ 펴딮ㅁ ㅁ ㅡㄷㅅㄷㄱ ㅁ ㄷㄴㅅㅁ ㅔ머ㅑㅜㅁ ㅣㄷㄴ 채ㅜㅅㅁㄱㄷ 생ㅁ ㅡㅑ ㅗㅑㄴ새걈 채ㅡㅔㅣㄷㅅㅁ ㅇㄷㄴㅇㄷ 볃 ㅜㅐㄴ 채ㅜㅐ챠ㅡㅐㄴ ㅁㄴㅅㅁ 뭇ㄷㄴ ㅇㄷ ㅛㅁㅎㅁㄱ ㅗㅁㄴㅅㅁ ㅁㅊㅁ ㅠㅕ두ㅐ ㅁ야ㅐ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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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ㅗ무ㅑ 2012-02-0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므ㅑ핸 미 ㅔ갸ㅜ챠ㅔㅑㅐ 내ㅣㅐ ㅣㄷㄴ ㅔㅣㅁ샤볃 ㅡ두ㅐㄴ ㅇㄷ ㅣㅁ ㅡㅑㅅㅁㅇ ㅇㄷ ㅡㅑ ㅗㅑㄴ새걈 ㅔㄷ개 ㅔ개ㅜ새 ㅣㄷㄴ ㅔㅣㅁ샻ㅁㄱㄷ ㅡㅁㄴ ㄷㄴㅅㅁ ㅠㅑ두 _
 

                              

알렉산드리아의 등대는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다. 여기에는 이집트 쿠푸왕의 피라미드, 바빌론의 공중정원,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할리카르낫소스의 마우솔루스왕묘,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거대상과 이 알렉산드리아 등대가 들어간다. 이 등대가 세계적인 불가사의로 꼽히는 것은 고층의 건물을 세우는 기술은 금세기 들어서였다는 것, 즉 16층 정도의 건물을 짓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나 가능했다는 통념 때문이다. 과연 당시의 사람들이 이러한 건물을 지을 정도로 문명을 구가했던가? 아니면 과장섞인 전달 과정에서 왜곡되어 신비화되었던 것인가?

                    

이 등대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이 존재하고 있다. 기원후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은 이 등대에 달린 거울로 빛을 한 방향으로 모으면 해상의 배를 태울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었다고 말을 전한다. 이 거대한 건축물이 파괴된 이야기도 대단히 신기하다. 등대가 파괴될 당시에 이것이 있던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와 같이 아라비아인에 의해 정복되어 있었는데 그 적대국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비잔틴 제국이었다. 이 제국의 황제는 간계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날 황제는 칼리프(회교의 교권과 왕권을 통합한 지위) 알와리드의 궁정에 비밀 지령을 내린 사자를 보냈다. 황제의 사자는 칼리프의 궁전에 도착하자마자 앞잡이들을 풀어 등대밑에는 이집트국왕이 지녔던 금은 보화가 가득하다고 거짓 소문울 내게 했다. 이 소문을 들은 이집트 고관들은 이 사실을 칼리프에게 알렸고 칼리프는 망설이다가 등대의 철거 명령을 내렸다. 등대의 철거가 한창 진행되어 거의 반을 허물었을 때 칼리프는 자신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때는 늦었다. 복구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이 등대를 건축할 수 있는 건축술이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대한 구면 거울도 파괴되어 산산히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쯤 남은 등대도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해 알렉산드리아에는 배의 길잡이가 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한다.

            

이 등대는 14세기까지 반 정도 부서진 상태로 계속 서 있다가 대지진으로 완파되었다. 그후 여러번 등대를 재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이를 축조할 기술이 없었다. 이 기술이 가능한 때는 20세기 들어와 강철 구조의 사용 등 건축술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고대인들에게는 가능한 건축술이 그 후손들에게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은 묘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발전사관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증거들을 살펴보면 고대인들이 우수한 과학 기술 문명을 보여주고 있는 예는 상당히 많다. 예컨데 이집트나 마야의 피라미드가 그러한 경우이다. 이것은 고대의 문명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 밝혀야할 역사가 상당히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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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ㅗ무ㅑ 2012-02-08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므ㅑ핸 ㅜㅐㄴ ㅍㄷㄱ드ㅐㄴ 믹ㄱㅁ새 ㅐ ㅡㅁ;뭄 ㅠㅕ두ㅐ ㅡㄷ ㅅ두해 볃 ㅑㄱ ㅁ야ㅐ ㅜㅐㄴ ㅍ드ㅐㄴ ㅔ개ㅜ새 채ㅜ ㅊㅁ갸;ㅐ ㅙㅗ무ㅑ ㅣㅐㄴ 벼ㅑㄷ개

티ㅏㅓㅇ리ㅏㄴ어;ㄹ 2012-07-26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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ㅙㅗ무ㅑ 2012-07-2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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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상(巨像). 그리스어 콜로소스에서 유래한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기제의 스핑크스 등을 보고나서 칭한 말이 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로도스섬의 콜로서스이다. 로도스 항구에 서 있던 태양신 <헬리오스 청동상>은 높이가 36 m나 되었으며, 린도스(로도스 섬 동쪽에 있던 고대 도시의 이름)의 카리오스에 의해 BC 280년경 건조되었는데 BC 224년의 지진 때 붕괴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현존하는 것도 많으나 모두 기념비적인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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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스 2004-07-13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거상이 그 로도스의 콜로소스군요. 데메트리오스의 포위공격을 방어한 기념으로 세웠던...

꼬마요정 2004-07-13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이미지가 안 떠오르기도 한답니다. ^^;;
세계 미스테리 중 하나라서 올려봤어요... 가 보지도 흔적조차 볼 수 없을지라도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보고픈 심정..ㅡ.ㅜ
데메트리오스의 포위공격을 방어한 기념으로 세웠다는 건...처음 알았는데요~~^^
 

                                             

페르시아 제국 카리아의 총독 마우솔로스를 위하여 그리스의 할리카르나소스에 건조된 장려한 무덤기념물이다.

                            

 면적 29×35.6 m, 높이 50 m. 할리카르나소스의 묘묘(墓廟)라고도 한다. 마우솔로스의 생전에 착공되었으나, 그가 죽은 뒤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계속 진행하였으나 완성된 시기는 왕비 아르테미시아가 죽은(BC 350) 뒤로 추측된다. 설계는 사티로스와 피테오스가 하였다. 동서남북의 장식조각은 각각 스코파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오스, 브리아크시스가 담당하였다. 각 면의 조각·프리즈는 발굴되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또, 로마인은 비슷한 대규모의 분묘건축(墳墓建築)도 마우솔레움이라고 일컬었다. 마우솔레움은 그 특이한 모양과 복잡한 장식 때문에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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