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카를 > 슈만/[시인의 사랑] 중 16번째 노래

Die alten boesen Lieder

 

"불쾌한 옛 노래들,
기분나쁜 못된 꿈들,
이제 그것들을 묻어버리자
커다란 관을 가져오라.

그 안에 많은 것을 넣겠지만,
무엇인지는 아직 말하지 않으리.
관은 더 커야만 하리라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도.

그리고 관대를 가져오라
단단하고 두꺼운 판자를 가져오라
그것 역시 더 길어야 하리라
마인츠 다리보다도.

또 내게 열두 명의 거인들도 데려오라
그들은 더 힘이 세야 하리라
라인 강가 쾰른 성당의
힘센 크리스토프보다도.

그들이 관을 옮겨
바다 속에 잠기게 하리라
그렇게 거대한 관에는
거대한 무덤이 어울리니까.

그대들은 아는가,
왜 관이 그토록 크고 무거운 것인지를?
나 그 속에 내 사랑과
내 고통을 함께 넣었다네."

 

 



이안 보스트리지 - 시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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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퍼온글] 살해당한 아들을 둔 아버지의 편지

<민노당홈피관리자> - 민지네에서 퍼옵니다. 아래는 꿀땅콩님의 코멘트이며 원문 번역도 꿀땅콩님이 하였습니다. 원제는 <살해 당한 아들을 둔 아버지의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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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들이 참수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닉 버그.

그의 참수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부시 행정부는 이를 이용해서 추락한 전쟁찬성 여론에 다시 불을 붙여보려고 했습니다. 체니와 부시는 앞다투어 기자회견을 갖고 잔인한 테러리스트들과의 일전을 선포했고 전쟁의 정당성을 알리기에 바빴지요. 테러에는 응징 뿐이라는 목소리는 미국 내에서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정략적 움직임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바로 닉의 아버지 때문입니다. 가장 슬픈 순간에 자신의 슬픔을 공동의 슬픔으로 이해한 아버지. 그 아버지의 이 편지는 분노로 또 다른 실수를 할 뻔한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렸고, 닉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부시 행정부에게 치명타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저는 부시라는 이름 대신 노무현을 넣고, 닉이라는 이름 대신 김선일을 넣어 봅니다. 어렵게 자란 착하기 그지 없는 아들을 잃은 두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가슴이 저며옵니다. 이라크에서 일을 하면서 이라크인들을 진정으로 이해했던 두 아들. 부시와 럼스펠드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던 건강한 그들. 그들은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죽음을 통해서 또 다른 죽음을 막고자 하는 두 아버지의 너무나 닮은 용기를 봅니다.

비록 나의 아들이 죽지는 않았지만, 나의 오빠 혹은 형이 참수를 당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비극을 목격한 우리 모두가 우리 김선일 씨를 가슴 깊은 곳에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용감한 아버지들이 정부의 무능과 인명 경시와 침략에 일갈하는 그 자리에 우리 모두 같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선일씨의 명복을 빕니다.
절대로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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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는 결코 내 아들 닉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다.
--내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자들보다도 나는 생명을 앗아가는 정책을 만든 이들을 더욱 비난합니다.

마이클 버그
2004년 5월 21일 금요일
The Guardian

내 아들 닉은 나의 스승이자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다정했습니다. 아닙니다. 사실 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도 친절하고 다정했다고 말해야겠습니다. 그는 그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려한다는 이유로 보이스카웃을 그만두었었습니다. 닉은 언제나 내게 필요한 힘이 되어주었었고, 지금도 내가 그에 대해서 전세계에 말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왜 내 아들의 비극적이고 잔인한 종말의 책임을 부시 행정부에게만 묻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내게 질문합니다. : “당신의 아들을 죽인 그 5명의 살인범들에게 책임을 물어야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그 살인범들을 부시만큼이나 비난한다고 대답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틀렸었습니다.: 지금 나는 확신합니다. 나의 아들을 만난 살인범들은 분명 내 아들과 접촉하면서 얼마나 내 아들이 특별한 사람인지 점점 깨달았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그들이 내 아들에게 잔인한 짓을 하는 그 순간, 그 행위에 그들이 늘 해온 만큼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안도합니다. 나는 그들도 결국 내 아들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그 칼을 휘두른 사람 역시 닉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고 그가 죽이는 것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결국 깨달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또한 그 장면을 지켜보던 다른 살인범들 역시 내 아들의 눈을 보았을 것이고, 최소한 전 세계가 이 사건을 바라볼 시선을 어렴풋이나마 느꼈으리라고 믿습니다. 나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살인범이 되었던 그들이 정확히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부시는 내 아들의 눈동자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아들을 몰랐으며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악한 자입니다. 그는 스스로도 아버지이지만 또 다른 아버지인 나의 고통, 내 가족의 고통 그리고 나아가 전세계가 겪어야 할 슬픔을 알지 못합니다. 그는 그저 정치꾼일 뿐이고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정책결정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조지 부시는 내 아들의 마음과 미국인들의 진정한 마음을 보지 못합니다. 그의 정책으로 죽어가는 이라크인들의 마음은 말할 것도 없지요.

도날드 럼스펠드는 스스로가 이라크 죄수들에 대한 학대의 책임을 지겠다고 합니다. 어떤 결과도 물지 않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 가능합니까? 닉이 바로 그 결과를 짊어졌습니다.

나는 나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들보다도 앉아서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고 타인의 생을 파괴하는 정책을 만드는 이들을 더욱 참을 수 없습니다.

닉은 군인은 아니었지만 군인이 가져야 할 훈련과 봉사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라크에 이라크인을 돕기 위해 갔고 어떤 개인적인 이익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닉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그의 죽음으로 그는 이제 수없이 많은 이들이 되었습니다. 스스로가 위험에 처할 수 있을 때에도 자신이 진심으로 해야한다고 느끼는 일을 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행위는 옳습니다.: 그의 이러한 정신을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알게 되었고, 이들은 또 이 정신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세계는 이 정신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치욕적인 9월 11일날, 미국이 공격받던 그날 우리는 무엇을 했어야 할까요? 아마도 우리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그 일을 했어야할 듯 합니다. 바로 타인을 적이라고 규명하는 것을 중단하고 처음으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는 것을 말입니다. 이 작은 지구에서의 평화적인 공존에 여러 가지 단서들을 붙이는 짓을 그만두고 우리는 처음으로 인류가 자율적이고도 자유롭게 살 권리를 존중하기 시작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정으로 다른 국가들의 주권을 존중했어야합니다. 타인들의 삶을 통제하는 기준들을 만들며 정작 우리 자신들을 위한 기준은 분리해내는 짓을 중단했어야합니다.

조지 부시의 무능한 리더쉽이야 말로 대량 살상 무기입니다. 부시의 무능한 정부는 내 아들을 불법적으로 억류했고, 일련의 무능한 행정착오들을 가져왔으며 결국 닉을 악화되는 폭력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아마도 닉이 억류되지만 않았더라면 나는 그를 다시 안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닉을 (미군이) 팔루자를 포위했을 때까지 억류했던 것이 아니라 이라크 죄수들에 대한 학대가 세상에 알려질 때까지 억류했고 결국 그 보복으로 내 아들의 인생은 막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내 아들이 하던 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의 평화를 위해 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곳에 나는 이제 수 천의 그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닉은 그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제 이 땅에 남은 우리 역시 신념에 따라 행동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제 대서양 양 쪽에 있는 악인들에게 우리가 이 전쟁에 질려있다는 사실을 알려야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살테러단에도 지쳐있으며 서로를 죽이는 일을 중단할 줄 모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계속되는 평화협상 결렬에 대해서도 지쳐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견된 결론을 내기 위해 계속되는 평화 협상들에도 질려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평화를 원합니다.

많은 분들이 닉과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분들에게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에게 기도 속에 평화에 대한 기원도 넣어달라고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기도와 함께 행동 역시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바로 지금 평화를 요구해달라고 말입니다.

 

George Bush never looked into Nick's eyes

Even more than the murderers who took my son's life, I condemn those who make policies to end lives

Michael Berg
Friday May 21, 2004
The Guardian

My son, Nick, was my teacher and my hero. He was the kindest, gentlest man I know; no, the kindest, gentlest human being I have ever known. He quit the Boy Scouts of America because they wanted to teach him to fire a handgun. Nick, too, poured into me the strength I needed, and still need, to tell the world about him.

People ask me why I focus on putting the blame for my son's tragic and atrocious end on the Bush administration. They ask: "Don't you blame the five men who killed him?" I have answered that I blame them no more or less than the Bush administration, but I am wrong: I am sure, knowing my son, that somewhere during their association with him these men became aware of what an extraordinary man my son was. I take comfort that when they did the awful thing they did, they weren't quite as in to it as they might have been. I am sure that they came to admire him.

I am sure that the one who wielded the knife felt Nick's breath on his hand and knew that he had a real human being there. I am sure that the others looked into my son's eyes and got at least a glimmer of what the rest of the world sees. And I am sure that these murderers, for just a brief moment, did not like what they were doing.

George Bush never looked into my son's eyes. George Bush doesn't know my son, and he is the worse for it. George Bush, though a father himself, cannot feel my pain, or that of my family, or of the world that grieves for Nick, because he is a policymaker, and he doesn't have to bear the consequences of his acts. George Bush can see neither the heart of Nick nor that of the American people, let alone that of the Iraqi people his policies are killing daily.

Donald Rumsfeld said that he took responsibility for the sexual abuse of Iraqi prisoners. How could he take that responsibility when there was no consequence? Nick took the consequences.

Even more than those murderers who took my son's life, I can't stand those who sit and make policies to end lives and break the lives of the still living.

Nick was not in the military, but he had the discipline and dedication of a soldier. Nick Berg was in Iraq to help the people without any expectation of personal gain. He was only one man, but through his death he has become many. The truly unselfish spirit of giving your all to do what you know in your own heart is right even when you know it may be dangerous; this spirit has spread among the people who knew Nick, and that group has spread and is spreading all over the world.

So what were we to do when we in America were attacked on September 11, that infamous day? I say we should have done then what we never did before: stop speaking to the people we labelled our enemies and start listening to them. Stop giving preconditions to our peaceful coexistence on this small planet, and start honouring and respecting every human's need to live free and autonomously, to truly respect the sovereignty of every state. To stop making up rules by which others must live and then separate rules for ourselves.

George Bush's ineffective leadership is a weapon of mass destruction, and it has allowed a chain reaction of events that led to the unlawful detention of my son which immersed him in a world of escalated violence. Were it not for Nick's detention, I would have had him in my arms again. That detention held him in Iraq not only until the atrocities that led to the siege of Fallujah, but also the revelation of the atrocities committed in the jails in Iraq, in retaliation for which my son's wonderful life was put to an end.

My son's work still goes on. Where there was one peacemaker before, I now see and have heard from thousands of peacemakers. Nick was a man who acted on his beliefs. We, the people of this world, now need to act on our beliefs. We need to let the evildoers on both sides of the Atlantic know that we are fed up with war. We are fed up with the killing and bombing and maiming of innocent people. We are fed up with the lies. Yes, we are fed up with the suicide bombers, and with the failure of the Israelis and Palestinians to find a way to stop killing each other. We are fed up with negotiations and peace conferences that are entered into on both sides with preset conditions that preclude the outcome of peace. We want world peace now.

Many have offered to pray for Nick and my family. I appreciate their thoughts, but I ask them to include in their prayers a prayer for peace. And I ask them to do more than pray. I ask them to demand peac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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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잉크냄새 > [퍼온글] [펌]도움이 되는 인터넷 헌책방

1. 먼저, 도움이 되는 인터넷 헌책방부터


인터넷 헌책방 가운데 목록을 많이 갖추고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번 찾는 책을 검색기로 돌려본다면 여러모로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고구마> http://www.goguma.co.kr
<남문서점(수원)> http://www.ibuybook.co.kr
<대방 헌책방(헌책음반 사고팔고)> http://www.oldbook8949.co.kr
<모아북> http://moabook.co.kr
<삼우서적> http://www.maniabook.co.kr/
<서울북마트> http://bybook.co.kr
<신고서점> http://singoro.com
<중앙서점(진주)> http://www.rorobook.com
<책사랑(인천)> http://www.booksarang.com
<책창고> http://www.bookagain.co.kr



이곳들은 책 목록을 많이 올려놓고 있습니다. 크기로 치자면 <고구마> <신고서점> <책창고>가 가장 큽니다. 하지만 작은 곳이라고 해서 뒤떨어진다기보다 또다른 내실과 재미가 있어요. 이곳을 찾아가서 검색기로 찾는 책을 살펴본 다음에, 이곳에 없으면 다른 헌책방을 찾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요새는 헌책방 목록을 올리며 책 설명을 올리는 곳들이 늘어나, 그런 설명을 보는 일도 여러 모로 도움이 되지 싶습니다.

<모아북>은 문을 연 지 아직 한 해 안팎밖에 안 되었으나 목록을 놀랄 만큼 꾸준하게 많이 올립니다. 조금씩 목록이 늘어나므로 이곳도 새롭게 도움이 되는 곳으로 더해 놓겠습니다. <대방 헌책방>도 이제는 목록이 웬만큼 올라왔습니다. 다른 헌책방 가운데에도 목록을 부지런히 올리는 곳들이 있는데, 아직은 널리 나누기에는 조금 모자라다 싶어서 따로 알리지는 않겠습니다. 도움이 될 만한 인터넷 헌책방은 [물 좋은 인터넷~!]이라는 게시판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다른 인터넷 헌책방 도움을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5/28) 추천하는 헌책방을 세 곳 더 넣었습니다. 경기도 수원 <남문서점>, 경상남도 진주 <중앙서점>, 서울 낙성대 <삼우서적> 이렇게 세 곳입니다.
(6/6) 추천하는 헌책방을 한 곳 더 넣었습니다. 인천에 있는 <책사랑>입니다.

부디... 헌책방에서 바라는 책을 찾는 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우리 말과 헌책방 쉼터,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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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카를 > 슈베르트/피아노 소나타 D.960/Afanassiev


F.Schubert Piano sonata D.960
Valery Afanassiev
piano


1. Molto moderato



2. Andante sosteunto



3. Scherzo: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Trio



4. Allegro ma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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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렌초의시종 > [퍼온글] 장상환 - 미국은 기업이 지배하는 과두지배국가 (촘스키 강연을 듣고)

미국은 기업이 지배하는 과두지배국가
- 촘스키 강연을 듣고 -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장상환

 내가 현재 교환교수로 나와 있는 매사추세츠대학에서 지난 2월 24일(화요일)에 MIT 언어학과 노엄 촘스키 교수 초청 강연이 있었다. 촘스키 교수는 현재 75세인데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3시부터 5시까지는 PERI(Political Economy Research Institute)의 고든 홀에서 제한된 청중 약 100명을 대상으로 "워싱턴 컨센서스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촘스키는 미국은 소수의 엘리트가 공적 기구를 지배하고 있는 과두지배국가라고 비판했다. 대학의 역할은 관리인을 양성하는 것으로 전락했고, 기업의 역할은 선전(propaganda)을 통해 국민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 후보를 포함한 주요 공직 후보 또한 기업과 매스 미디어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훈련되고 만들어진다(designed)고 말했다.

 그는 17세기 영국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지주계급인 기사와 신흥자산가층인 신사들이 노동자의 정치적 요구를 반대하고 농민과 서민을 직접 지배했는데 현재의 미국도 이와 유사하다고 했다. 이들은 사유재산권을 옹호하는데 이것은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산업적 봉건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산업 민주주의에 모두 위배되며, 이러한 회사 대기업에 의한 전체주의는 민주주의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촘스키는 과거에는 급진적인 언론들이 다수 존재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이제 거대 언론은 기업을 위한 선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업과 매스 미디어는 민중들이 민주주의가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믿도록 하면서 실은 사람들의 행동양식과 신념을 지배하고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홍보와 고객관리(public relations)를 통해 사람들을 철저하게 관리하여, 직장에서는 기술을 배우도록 하도록 유도하고, 직장 바깥에서는 소비에만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기업과 매스 미디어가 보통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조합과 정부를 증오하도록 유도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사실은 학교 교육과 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직인데도 미국 사람들은 이러한 유도에 말려들어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부유한 사람들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는 강력한 정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는 약한 정부가 되도록 조장한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케인즈의 말을 인용해 자유시장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제의 침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민주주의와 대립되며 정부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가장 비합리적인 예로서 촘스키는 미국의 사회보장의 기축 가운데 하나인 보건의료제도를 들었다. 기업들은 보편적 의료보장은 비효율적이라고 선전하고 이에 따라 국민의 18%만 의료보호 개선을 위한 증세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런데 실은 사보험 중심의 의료보건제도를 관리하는 비용으로만 3천억달러나 들어간다는 것이다. 노인의료보장을 위한 비용이 6천 억달러인 것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많은 비용이 쓸데없는데 들어간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약값은 미국이 캐나다 등에 비해서 다섯 배가 비싸니 얼마나 불합리한 제도이냐는 것이다. 이렇게 약값을 높게 하기 위해 제약회사들은 늘씬한 모델을 동 원하여 성분약(generic drug, 특허가 끝난 약을 같은 성분으로 제조한 약, 카피약 이라고도 함)은 오리지널 약에 비해 약효가 떨어진다고 선전해대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광고비용이 전체 매출액의 30%로 연구개발비는 5%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여 엄청나다고 한다.

 촘스키는 회사들은 국제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무역관련 지적 재산권(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ies, TRIPs)을 적극 옹호하여 기업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고 비판 했다. 그런데 이러한 협상을 추진하는 국제기구들의 경비의 40%가 초국적 대기업에서 나오니 결과는 보나마나라는 것이다. 그는 그린스펀이 최근 말한 소수의 부유한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나머지 다수는 불안정해지고 좀 놀라게 되어야 경제가 건강하게 돌아간다고 한 발언을 비난했다.

 촘스키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해서 세계은행의 일부 전문가의 분석도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임금 인하와 고용 불안정을 초래한다는데 동의한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25년간 하위 40%의 소득은 7%나 줄어들었는데 상위 0.1%의 소득은 6배가 늘어났다는 통계를 인용하면서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결과라고 했 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직한 경제학자의 분석을 인용하여 자유무역은 경제 성장에 해롭고 보호무역이 오히려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했다. 기술 혁신도 정부의 구매 등에 힘입어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나는 촘스키에게 "최근 랄프 네이더가 출마 의향을 밝혔는데 네이더는 자신이 부시를 잘 공격함으로서 부시의 낙선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민주당 지도자들은 네이더의 출마가 부시의 당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네이더가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중요한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고 그런 면에서 그는 괜찮은 사람(nice guy)이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적 상황과 선거제도 하에서는 출마보다는 민중들의 조직화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촘스키는 기본적으로 네이더가 진지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고, 결국 그의 출마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입장이었다.

 또 다른 질문자가 민주주의에 대해 인터넷이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느냐고 질문했는데 이에 대해 촘스키는 컴퓨터가 자세한 진단을 바탕으로 좋은 논의와 좋은 제안을 가능하게 하는 면도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온라인은 중요한 정보의 생산을 하지는 못하고 정보의 유통에만 역할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프라인에서의 정보 생산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매스 미디어에 대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은 인터넷망이 잘 구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잘 갖춰져 있는 한국과는 다르다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진지한 탐구보다는 흥미에만 빠지도록 해 어리석은 정신상태로 유도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저녁 7시부터는 "이라크를 넘어서"를 주제로 일반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학부 학생들이 많이 참가하여 700명 넘게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이었음에도 상당수 사람들은 입장하지 못했다.

 촘스키는 여기에서 "이라크를 넘어서"라는 주제를 넘어서 제3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 대외정책의 파괴적 역할을 비판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대답해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기준을 제3세계에도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는 아담 스미스의 이론을 근거로 미국 대외정책을 비판했다.

 군사적으로 지배되는 나라에 시장 원리를 강요한 것이 제3세계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는 부시정부가 2002년 9월에 선언한 국가안보전략을 "공개적인 세계 지배 선언"이라고 비판하고 키싱거 식 현실주의를 나찌즘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실은 미국 외교정책에서 오래된 것인데 부시정부가 이를 공개적으로 선포한 것뿐이라고 했다.

 테러리스트를 숨기는 국가를 공격한다는 부시 정부가 내세운 원칙을 두고 그는 과거에 미국은 테러리스트들과 범죄자들의 공연한 피난처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그 하나의 실례로서 그는 하이티에서 학살을 자행한 엠마누엘 콘스탄트를 미국정부는 인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촘스키는 이집트정부가 인도를 요구한 시크 오마르 압둘 라만를 송환하지 않았던 예를 들었다.

 그런데 그 시크 라만은 나중에 세계무역센터 폭파의 주범으로 기소되었다는 것이다. 중동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준다는 부시 정부가 내세우는 비젼에 대해서 촘스키는 부시 정부의 진정한 동기는 자원 확보와 기업이익 추구일 뿐이라고 냉소했다. 대안이 무엇이냐는 청중의 질문에 대해서 촘스키는 민중의 조직화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강연에서 촘스키는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미국 정부가 소수 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며 외국을 무리하게 침략하고 있다고 비판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미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되었다. 이것은 역시 미국 노동자, 민중들의 몫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 민중들의 의식은 기업이 주도하는 선전에 침식되어 대부분 개인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정부를 미워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촘스키는 이런 딜렘마 속에서 미국 시민들의 신화를 깨는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미국 민중이든 제3세계 민중이든 "답답한 사람이 샘을 파야" 하는 것이다.

[광장] 200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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