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데메트리오스 > 효과적인 암기법이라네요~

전 시험을 이미 끝나고 이정보를 접해 아쉬운면이 없지않아 있지만.-_-;

 

시험 아직 안치신분들!!!(있으려나;; 내주위에서 한명봤는데-0-ㅎ)

 

조금이나마 도움되시구,

 

끝난분들도 어차피,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니........-_-암울..

 

다음카페 알아두면편리한지식 에서퍼왔습니다-ㅎ

 

 

<효과적인 암기법>

1. 취침 전 20분을 최대한 활용하라

자기 전에 정해진 일을 하지 못하면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러한 습관을 '취침의식'이라고 한다. 바로 이 취침의식을 활용하면 기억술에 크게 도움을 준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젠킨스 박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평균 점수차가 없는 학생들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같은 강의를 한 후 다음날 아침에 강의 내용을 테스트 해 보았다. 다만 A그룹은 강의가 끝난 후 바로 자도록 했고, B그룹은 자유시간을 주었다. 실험결과 A그룹의 강의 내용 기억량이 평균 56퍼센트였는데, B그룹은 9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자기 2,30분 전을 최대한 이용하면 몇 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외운 것을 그 자리에서 활용해 본다.

지식은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확실한 것이 된다'는 말이 있다. 확실히 금방 배운 것이라도 활용해 보지 않으면 조금만 변형이 되면 생전 처음 보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한 번 외운 것은 그 자리에서 활용하거나 확인을 함으로써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두도록 한다.


3. 즐거웠던 일과 연관지어 기억한다.

즐겁고 유쾌한 체험은 자주 회상된다. 반면, 불쾌한 기억들은 아주 잊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엔 마치 잊은 것처럼 의식밖에 방치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을 암기법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즉, 외워야 하는 내용을 즐거운 경험과 연관시켜 암기하면, 그 경험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암기 내용이 따라나올 것이다. 가령, 어떤 산봉우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삼각형의 한 공식을 끌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역사는 자신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대하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처럼 자신을 역사의 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암기하는 법이다. 이것은 우뇌의 이미지 만드는 기능을 이용하는 것이데, 이렇게 하면 암기한 내용이 대뇌에 새겨지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5. 다른 의미를 하나 추가하여 외운다.

대개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기억할 때는 에피소드를 만들면 우뇌의 이미지와 작용이 최대한 발휘되어 보다 선명한 기억 테이프가 만들어 진다.

수학이나 물리에 바로 이러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데, 가령,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그저 수식만 기억하는게 아니라 그리스 시대의 석판 따위를 기억해 두면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6. 어려운 것은 쉬운말로 바꾼다.

어려운 개념을 외울 때는 보통 설명을 통째로 외우게 되는데, 이런 방법은 효울적이지 못하다. 이럴 때는 일단 자기가 알기 쉬운 말로 바꿔서 외워본다. 특히 어려운 말을 자기 식의 말로 바꾸는 것은 새로운 정보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또 자기 식의 말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동시에 병행하는 셈이 되어 외우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7. 단어는 문장과 함께 외운다.

영어 과목에서도 설명했지만, 단어는 그 자체만 독립해서 외우는 것보다는 문장과 함께 외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특히 숙어는 문장을 해석해 보면서 메모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숙어집을 만들 때 해당 문장을 함께 적어 놓으면 암기에 큰 도움을 준다.


8. 손과 입을 사용해 외워라(오감을 총동원해서 사용하라).

영어 단어를 외울 때는 입으로만 중얼중얼 외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이렇게 입으로만 외우는 것은 혀나 입술의 느낌으로만 외우게 되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는 동시에 손으로 쓰면서 외우게 되면 시각과 청각, 촉각이 모두 동원되기 때문에 훨씬 암기 효과가 커진다. 한가지 예를 들면, 한 단어에서 'r'인지 'l'인지 잘 기억이 안 날때 한 번 손으로 써보면 금방 기억이 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손이 단어를 암기한 것이다.


9. 암기한 것은 9시간 이내에 복습하라.

심리학자 에빙 하우스는 기억의 유지와 망각에 관한 곡선을 밝혀 냈는데, 처음 암기한 직후의 기억률 감퇴가 가장 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도가 완만해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같은 한 시간이라도 암기 직후의 한 시간에 잊어 버리는 양보다, 다음 날 한 시간 동안 앚어 버리는 양이 더 적다는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날수록 잊어 버리는 양은 점점 더 적어지게 된다. 요컨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기억은 더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쉽게 잊혀지게 된는 것이다. 따라서 잊어버리는 양이 급격할 때 즉, 9시간 이내에 다시 복습을 해 두면 큰 효과를 올릴 수 있게 된다.


10. 중요한 것은 처음과 마지막에 외워라.

심리학에 재미있는 실험이 있는데, 아무 의미도 없는 단어 15개 정도를 일련 번호를 붙여 나열을 해놓고 외우는 것이다. 매번 외운 것에는 O표를, 외우지 못한 것에는 ×표를 해가면서 여러번 반복하면 7번째와 8번째 단어에 가장 많은 ×가 된다고 한다. 우리의 기억은 앞에 암기한 것에 억제를 받아 다음에 암기하는 것은 좀처럼 기억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을 처음이나 끝에 두고 암기하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1. 외울 내용을 시각화하라.

문장 형태로 외우려고 할 때 잘 외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도표나 그림을 그려가며 외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렇게 하면 문장의 형태를 보는 것과는 다른 회로를 통해 머릿속에 들어오기 때문에 외우는 일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12. 암기(暗記)보다는 명기(明記)하라

외운다는 것을 단순히 암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의미는 원래 어떤 내용을 이해하여 자기 머릿속에 남긴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 의미도 없이 외우기만 하는 암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숫자와 같은 의미없는 기호를 외워야하는 경우만 빼놓고는 모두 확실한 의미를 이해하여 기억하는 명기를 하는 것이 좋다.


13. 집중도를 높이기위해서는 조명을 전체적으로 환하게 하지말고 책상위의 책이 있는 부분만을
밝게 하는 것이 집중력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한과목에 너무 매달리지 말아라(흥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20분정도이다)
지루하면 다른과목으로 바로 바꾸어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공부를 공부가 목적이 아닌 한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즐기기위해 모든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 공부한다면 지루한 공부가 한결 쉽게 느껴질 것이다.


* 일상생활에서 기억력을 높이는 비결

실패를 분하게 생각하라 실패 또는 실수한 일이 있다면 분하게 생각하라. 분하게 생각하는 그 기분이 기억력에 탄력을 준다.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져라. 여유를 가질 때만 책임감과 기운이 생긴다. 늘 시간적으로 초조하게 생각하면 잊는 것도 많고, 빠뜨리는 것도 많기 마련이다.

계획적으로 행동하라.

결코 머리는 나쁘지 않은데 금방 잊어 버리거나 중요한 부분을 빼먹고 기억하는 일이 많은 사람은,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계획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전체 일의 진행방향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실수를 줄일 수 있다. 평소 이러한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면 기억력 강화에도 도움을 준다.

 

 

* 근데 벌써 시험 끝났어...OTL

 

 

출처 - 엽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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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urblue > 일제 36년, 4백만명이 죽었다

일제 36년 동안 죽어간 우리 동포 수는 얼마일까? 4백만명이 넘었다.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 수는 얼마였을까? 1백50여만 명이었다. 그들은, 조선 땅에 와 살았던 80여만 일본인의 충견 노릇을 하며 우리 동포 4백만명을 죽이는 데 앞장섰다.

요즘 이 나라 국민은 희한한 굿을 구경하고 있다. '과거 청산'을 놓고 양쪽으로 갈려 벌이는 굿이 그것이다. '역사 청산'이라고도 부르는 그 문제의 화두는 두 가지다. 하나는 친일 · 반민족 행위자 처리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보안법 존폐 문제이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 가는 그 야릇한 굿을 보면서 과거사 청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지난 역사와 거리가 먼 젊은 세대들일수록 큰 깨달음을 얻고 있을 것이다. 왜 그때 '반민특위'가 참담하게 파괴되고 말았는가를! 5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식 세대들의 반대가 그리도 극성스러운데 정작 장본인들이 살아 있었던 그때 얼마나 사생결단 저항했을 것인가. 그들은 민족의 죄인으로 구석에 몰려 있었던 것이 아니고 미 군정에 의해 비호받으며 신생 국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교육계까지 완벽하게 장악한 권력 실세들이 되어 이었다. 완전무장 상태로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서 특위 위원들의 머리가 깨지고, 고막이 터지고, 빗장뼈가 부러지도록 폭행을 감행한 것은 종로경찰서와 중부경찰서 경찰들이었다. 그들 거의가 친일 경찰이었음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러고 나서 이 나라에서는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면 취직이 되지 않았고, 지난 날 독립투사들을 잡아다가 고문했던 자가 대한민국 형사가 되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똑같은 지하실에서 고문을 해댔고, 모든 친일 · 반민족 분자들은 순식간에 친미파와 반공주의자로 둔갑해 권력의 특급 열차를 타고 승승장구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민족반역자의 나라였다. 그러니 사회에 양심과 질서가 설 리 없었으며, 불의와 부정이 횡행하는 속에서 온 세상이 부패하고 타락하는 것은 필연이었으며, 그 결과 나라의 위신도 체통도 서지 않았고, 끝내는 미래마저도 낙관할 수 없게 된 것이 지난 56년의 잘못된 역사였다.

그래서 늦게나마 역사 청산을 하자는 것이다. 그 청소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민족의 존엄성도 국가의 정체성도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는 또 수치와 염치를 외면하고 요령과 술수로 더럽혀지는 지옥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연하고도 신성하기까지 한 일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세력들이 있다. 거기에는 어떤 정당도 있고, 유명하옵신 지식인들도 있으며, 친일파 자손들도 있다. 그들은 입을 모은다.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간 일이다. 괜히 국론 분열과 사회 갈등을 일으킬 뿐이다. 먹고 살려고 한 짓인데 그게 무슨 죄가 되느냐.

다시 되짚어 따져보자. 일제 36년 동안 죽어간 우리 동포 수는 얼마일까? 4백만명이 넘었다. 친일파 · 민족반역자의 수는 얼마였을까? 1백50여만 명이었다. 그들은, 조선 땅에 와 살았던 80여만 일본인들의 충견 노릇을 하며 우리 동포 4백만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그리고 2천7백만 동포를 짓밟으며 혼자 잘 먹고 잘살고자 했다.

역사 청산은 잘못한 그들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처벌할 시기를 놓쳤으니 이제라도 국각의 이름으로 그 잘못이라도 정확하게 기록해 두자는 것이다. 그것도 1백50여만명 전부가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정했다. 그 수가 3만여 명에 불과하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관대하다. 이만한 일도 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국가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우리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셈이다.

조사 대상이 될 3만명의 자식들은 괴롭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번 일을 앞두고 한 가지 사회적 동의와 약속을 해야할 일이 있다. 부모의 잘못을 놓고 그 자식들에게 연좌제적 시선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시대를 살아오면서 국가보안법 못지 않은 악법이 연좌제라는 것을 체험했다. 어디까지나 아비의 죄는 아비의 죄일 뿐 그 죄가 자식에게 전해지는 유전인자는 아니다.

그러므로 자식들은 부모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수는 있지만 사회를 향해 책임져야할 의무도 없고, 대신 사죄해야 할 권한도 없다. 그런데, 자식들이 역사 청산을 반대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새로워지려는 사회에 대한 배신이며, 새로운 민족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자식들은 괴로움을 참아내며 겸허한 침묵으로 역사의 흐름을 따라 가면 된다. 그 동참이 우리의 미래를 여는 빛이 될 것이다.

 

조정래 (작가, 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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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즈마리 > [스크랩]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강간이다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강간'이다

'성범죄는 공론화되어야 한다 ②'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강간'이다(여성의 시각을 바탕으로)

이제 나는 참으로 꺼내놓고 싶지 않은 내 개인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놓는 이유는,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섹스가 여성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 뿐이라는 것과 나아가 '그야말로 성범죄'를 당한 여성의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이런 말 하면 웃을 지 몰라도 어려서 내꿈은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남편의 착한 아내가 되어 사는 것이었다. 물론 그 꿈에는 남편과의 첫날밤을 통해 그의 여자가 되겠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보다 한참 어렸을 때 내가 무척 좋아한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잘 되질 못했다. 그런데, 그의 친구가 몹시 나를 좋아했다. 결국 나는 그의 친구와 사귀었는데, 정말 나를 아끼고 사랑했다. 여전히 그 남자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던 나는 그 남자의 친구가 아무리 나에게 잘해 주어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했다.

어느날 밤, 그와 나는 바닷가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날밤의 그는 참으로 외로워 보였다. 인간이란 존재의 쓸쓸함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았다. 나또한 다른 사람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그는 나에게 오늘밤 함께 있으면 안되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면 함께 있겠다고 했다. 불면 날아갈새라 날 아껴주던 그를 믿었다.

그와 나는 여관에 들어갔는데, 방에 들어서자 마자 그는 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폭력을 가하거나 위협을 한 건 아니었다. 그는 나와 잠자리를 하고 싶다고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물론 나는 거절했고,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 앞을 막아섰고, 절대로 나를 보낼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났고,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그에게 애원도 해보고 화도 내보아도 그는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나는 자꾸 이러면 고함지르겠다고 협박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아무리 내가 큰소리로 난리를 쳐도 우리방에 기웃거리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감금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전화를 할 수도 없었다. 날뛰는 나를 그가 안았고, 그의 완력에 결국 나는 첫 섹스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섹스의 느낌은 '고통' 이었을 뿐이다.

그날 이후로 그는 더더욱 내게 잘해주었다. 나도 이제는 그에게 적응해 보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내 마음 속에서 거부감과 분노가 자라고 있었다. 나는 도저히 그의 강제가 용납되지 없었다. 결국 그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지겠다고 말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는 집에 알리거나 학교에 소문을 내겠다고 협박을 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피를 말리는 것 같은 날들이었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위 첫남자를, 그것도 날 책임지겠다는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할 때는 나도 이미 어느 정도 각오를 한 게 있었다. 내 인생은 끝났다. 나는 결혼도 못할 것이다. 그래도 저런 남자와 살 수는 없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한번만 만나주라고 부탁을 했다. 한번만 만나주면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어느 까페에서 그와 대면해 앉았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올 수 없었다는 그는 엉망으로 취해 있었다. 그는 내게 용서를 빌기도 하고 애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내가 달라지지 않자,

"다른 여자들은 순결을 주면 싫어하던 남자도 사랑하고 잘해 준다는데, 넌 어째서 이러냐?"

나는 그에게 내 순결을 준 적이 없다. 그가 빼앗아 갔을 뿐. 그는 날 사랑해서 날 차지하고 그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그런 방법을 썼지만, 내게 그것은 "강간"일 뿐이었다.

이후로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면으로 그날 일을 생각해 보았다.나 자신을 자책하고 저주하기도 했고, 나자신을 더러운 여자라고 학대하기도 했다. 때로는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친구들의 위로로 조금 상태가 나아지기도 했지만, 그 일은 내게 근본적인 열등감과 우울함을 남겨 주었다. 한동안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땅만 보고 다니기도 했다. 갑자기 누가 등뒤에서 날 손가락질 하며 욕을 할 것만 같은 신경쇠약증에 걸려지내기도 했다.

남자란 아예 피하고 살았었다. 결국 잘될 수가 없을 게 분명한데 남자를 만나봤자 상처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가 나같은 여자를 자신의 애인으로 혹은 아내로 받아주겠어'라는 생각이 나에게 남자를 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 살 수는 없는 것이라, 이후에도 많은 남자를 만났다.

좀 생각이 트여 보이고, 정말 날 이해해주는 것 같아서 내 경험을 말하면, 그 사실을 감당 못하고 멀어져 가는 남자들도 많았다. 정말 좋은 남자들도 만나 마음의 상처나 열등감이 어느 정도는 회복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신경과민과 불안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그들과 성관계라도 가지게 되면 나는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그들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헤어져 버리곤 했다. 아무리 그들이 오해라고, 나에게 잘못했다고 빌어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내 20대는 남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점철되어 있었다. 때로는 나도 잘해 보려고 온갖 애를 써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내 의식이 잘못 되었다고, 요즘 세상에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나자신을 힐난하기도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헤어나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내 인생에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는 두번째 사건이 발생했다. 첫경험과 똑같은 바보같은 일을 두번째 하고 만 것이다.

이날 나는 술에 많이 취해 있었고, 여러 사람이 같이 택시를 탔다. 친한 사람도 있어 마음을 놓고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엉뚱한 곳에 잘 모르는 남자와 둘이서 내리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내가 마음에 들었던 그는 나와 단 둘이 3차를 가겠다고 내 친한 사람보고 내리라고 해서 그 사람은 또 혼자 내렸단다.

그래서, 나는 그만 집에 가보겠다고 했지만, 그는 술취한 여자가 혼자 어디를 가냐고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와 엮이는 게 싫어서 혼자 갈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날 혼자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잘 모르는 남자가 우리집까지 따라 오는 게 싫었다.

그와 길가에서 실강이를 계속 벌이고 있는데, 점점 정신이 가물가물해져 왔다. 나는 원래 술만 마시면 자는 형이라 취했다 싶으면 곧장 집으로 간다. 그 시간은 원래 이미 집에 도착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와 같이 집엘 가는 것도 두려운데, 몸은 점점 늘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관에 가서 자기로 했다. 그는 거기도 혼자 내버려 두고 못 간다고 고집을 피웠다. 그러면, 정말 인간적으로 꼭 약속해 달라고, 양식있는 사람으로 약속을 지키겠다는 확약을 받고 난 그대로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나는 내게 벌어진 상황이 무엇인지 알았다. 또 한번 통탄했지만, 내가 미쳤구나 남자를 믿다니 그런 생각뿐이었다. 다시 한번 나의 어리석음에, 이제는 나자신이 정말 도저히 용서가 안되었다. 다시는 회복되지 못할 치명적인 불신과 상처를 또다시 입었다.

그 남자는 날 계속 쫓아다녔고,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의 실수에 나는 하는 수 없이 그 남자의 연인이 되었다. 잘 모르는 그가 혹시나 이런 사실을 소문내면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을 거란 생각때문이었다. 모르는 남자를 따라 여관에 들어가 자고 나왔다면 누가 날 제정신인 여자로 보겠는가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 남자가 지금의 내 남편이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사이는 매우 삐뚤어진 관계로 발전되었다. 성격도 많이 안 맞기도 했지만, 나는 그에게 지독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가 잘해주고 좋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한번 의견이 안 맞아 싸우면 미친듯이 발작을 하듯 날뛰며 화를 냈다. 게다가 내 어떤 모습도 참아 줄 수 있지만, 헤어지는 것만은 못한다는 남편때문에 나는 거의 내가 노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결혼까지 하고 나서 남편은 많이 진정이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감정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결혼 후 나는 섹스 혐오증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임신을 했다는 것과 아이를 낳은 후에는 육아란 핑계를 대며 섹스를 거부했다. 섹스를 안하니 정말 좋았다. 나는 사실 섹스가 끔찍했다. 유학을 떠나오게 되었을 때에는 남편에게 해방된다는 느낌때문에 살 것 같았다.

남편이 어쩌다 이곳을 방문해도 나는 밤마다 남편을 피하기 위해 밤새워 일을 하곤 했다. 어쩌다 같이 자게 되어도 나는 서서히 노골적으로 남편에게 섹스를 거부했다. 이제는 핑계도 없었기 때문에 더이상 피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나도 내가 왜 그렇게 남편을 싫어하는 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렇게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고, 내게 정말 잘해주는 가까운 친구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편이 남편으로 보이는 것은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남편이 아이의 아빠이자, 내 친구이기만을 바랐다.

나는 결혼 후 남편에게 우리의 첫 관계가 강간이었음을 인정하라고 여러번 말했다. 처음에 남편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인정못한다고 했다. 자신은 정말 좋았고, 또 그래서 결혼까지 했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더 화가 났다. 나는 어떻게 느껴도 상관없단 말인가? 나는 정말 여러번 남편에게 인정을 요구했고, 아주 오랜동안 때로 다투기까지 했다. 결국 남편도 자신의 행동이 내게 상처를 주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제 인식한다.

돌아보면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우리 관계는 제대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하고, 처음부터 절름발이 같은 관계로 시작하고 말았다. 물론 지금에는 나도 나에게 많은 문제점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예전에는 증오심으로 굴절된 시각으로 남편을 바라보다 보니 그 사람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정말 모든 게 미웠다. 이런 감정을 극복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서로 자각하고 달라지는 과정 중에 많은 상처를 주고받고 힘든 날들을 보냈다.

내가 이런 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실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사실 전혀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이미 여러가지 통로로 이야기 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 이야기들은 관념적인 단어들로 나열된 이성적 접근이거나, 실례를 든다고 하더라도 남의 얘기들을 따온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것들은 한번 윤색되어 걸러져 나오기 때문에 이러한 '고통'에 대해 실질적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기껏 직접적으로 얘기한다는 통로가 몇몇 가까운 이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익명으로 인터넷에 올려 고통을 호소하는 정도다. 이래서는 그 고통의 크기를 제대로 알고 인식하기가 힘들다.

사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여성에 속한다. 어쨌거나 날 사랑해서 그랬다고 하고 좋은 남자들을 만난 편이라 결국 상처를 회복하거나 정상적인 생활로 서서히 돌아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저 하룻밤의 경험으로 끝나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기도 하고, 이런 상처들에 대해 연인에게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고 끙끙 앓는 여성들은 부지기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그나마 이런 인간적인 어떤 이해나 교류관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성범죄"의 대상이 된 여성들은 어떤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까? 그들은 나보다 천배, 만배 더 힘들 것이다.

사실 나는 이렇게 앞으로 나서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모든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나의 남편이 이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런 걸 미끼삼아 나를 괴롭히는 폭력남편도 아니며, 이미 오랜동안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서 괜히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는 껄끄러움만 아니라면, 나는 어떤 피해를 당할 가능성도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꺼내 놓았다가 이상한 시선이나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한 일을 겪었거나, 미혼의 여성이었다면 이야기할 용기가 있었을까? 아마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나마 나라도 나서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고통은 다른 여성들이 겪었을 일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고통의 이야기라도 해야만 성에 대해 묻어두고, 덮어두는 일방적인 시선들을 걷어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성범죄를 당한 여성들은 어떤 고통 속에 살고 있을까? 이런 고통도 모자라서 그들이 자신들의 괴로움에 대해 세상에 얘기했을 때 되려 무시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따돌리거나 비난의 시선을 보낼 때 그들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그들의 인생은 어떻게 파괴당했을까? 손쉽게 "너도 원했쟎아", 발뺌하고, "니가 처신을 함부로 해서 그래" 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녀들의 분노가 어떠했을 지 나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저며 온다.

여기 내가 올린 것은 내 개인이 겪은 휴유증의 예일 뿐이다. 휴유증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모두 똑같은 휴유증을 겪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같은 크기의 고통만을 호소하는 것도 아니다. 의외로 쉽게 넘기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치명적인 상처를 받고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휴유증의 증세도 극단적인 섹스추구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극단적 성혐오와 불감증으로 이어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의 휴유증이든 그 개인이 상처를 이겨보려는 눈물 겨운 고뇌와 노력과 더불어 나오는 "비명"들이다. 이 모든 과정들이 개인이 혼자 치러내기에는 너무 벅찬 것인대도, 대부분은 속으로 삼키고 달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더 깊이 깊이 상처가 파고들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여성들은 이런 이야기를 내놓고 하지 않을까? 언제나 왜 언론에서만 떠들고, 나오는 담론들은 이런 예가 있는데 어떻다더라로 끝나는 것일까? 왜 자신의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는 것일까?

아무도 내가 세상에 나서서 발가벗기운 채 손가락질을 당하고 뒤에서 쉬쉬거리며 비웃는 꼴을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러났을 때, 실질적으로 세상에서 매장당하고 마는 현실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성에 관한 담론은 수면 아래로 파고들어 이런 일이 엄청나다더라, 이렇다더라 하는 소문으로만 무성해 진다.

드러나지 않은 성폭력의 희생자는 너무나 많다. 특히 가까이서 범죄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적 '강간'을 당하는 경우도 부지기 수다.

때로 남성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무나 오해를 하고 있을 때가 많다. 내 남편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질 못했다. 그가 고루하고 꽉꽉 막힌 사람도 아니며,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고 여성을 존중할 줄 아는 남자인데도 말이다.

그는 내가 그의 연인이 되고, 결혼했으므로 나도 좋게 받아들이고 그냥 추억쯤으로 여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간에 혹은 부부 간에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여성에게 '고통'의 기억일 뿐이다. 다만 적응하기 위해 수위를 조절하고 나름대로 받아들이려 애쓸 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모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다. 어려서의 첫경험에 대해 그 남자친구에게 원망만 가지고 살던 나는 얼마전에야 그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였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제서야 그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다.

2년쯤 전 우연이 다시 연락이 되어 받았던 메일에 그는 나를 그의 첫사랑으로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첫사랑에게 어떤 시련의 상처를 주었는 지는 알지 못하고 여태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당시의 내가 그를 상대못할 남자라 생각하게 만들었는 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그걸 알았더라면, 내 남편이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여서 그런 일을 당하고 증오심을 키웠고, 그 또한 아무것도 몰라서 자신이 저지른 일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애꿎은 그의 사랑만 박살이 났다.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나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런 힘든 시간을 안 거치고도 서로 좋은 면을 봐주며 신뢰를 쌓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남성들에게 나는 말하고 싶다. 여성이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그 여성에게 "고통"일 뿐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에서라도 일방적인 성행위는 절대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지 못한다.

사랑을 위해 섹스를 하든,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든 모든 섹스는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문제다. 하지만, 여성이 "예스"라고 했을 때 그것은 "섹스"가 되지만 "노"라고 했을 때 그것은 "강간"이다. 어떤 상황과 어떤 관계에서라도 여성이 "안되겠어"라고 말한다면, 치솟은 열정을 거두어낼 수 있는 남자가 진정한 "힘"과 "능력"을 가진 남자다.

나는 그게 얼마나 힘든 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남자들의 의견을 빌리자면, 대단히 힘들다고 한다. 그러니, 그걸 해내는 남자는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가.

더불어 다시 한번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이른바 "성범죄"란 것이 한 인간에 대핸 어떤 고통과 파괴를 해낼 수 있는 폭력인가 하는 것이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과 인격을 파괴한다. 가히 가공할 수준의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폭력을 당한 사람을 우리가 그저 내버려 두어야 하겠는가? 공론화 하고 끄집어 내서 그들을 지켜 주어야 한다. 그들이 여자가 되었든 남자가 되었든. 우리 사회가 당당히 그들을 감싸안고 보호해주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하니리포터 김소연/ ellisabet@bcline.com

편집시각 2002년07월29일10시08분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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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신뢰를 쌓는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인생은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웠다. 
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 15분을 넘지 못하고, 
그 다음은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임도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또 나는 배웠다. 
인생은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일어난 사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 . .
무엇이 아무리 얇게 베어난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사랑의 말을 남겨 놓아야 한다는 것을 . . .
어느 순간이 우리의 마지막의 만남이 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우는 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웅임을
나는 배웠다. 
사랑을 가슴 속에 넘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를 나타낼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음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는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정한 우정은 끊임없이 두터워진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사랑도 이와 같다는 것을 . . . 
내가 바라는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서
나의 모든 것을 다해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
아님을 나는 배웠다.







 
또 나는 배웠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때때로 그들이 나를 아프게 하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 . .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용서를 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고
내가 내 자신을 때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아무리 내 마음이 아프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은 내 슬픔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환경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의 책임인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우리 둘이 서로 다툰다고 해서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 . . 
그리고 우리 둘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고 해서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나는 배웠다.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인간 자신이 먼저임을 나는 배웠다
두 사람이 한가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나는 배웠다.
그리고 또 나는 배웠다. 








앞과 뒤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결국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서 앞선다는 것을 . . . 
내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 의하여
내 인생의 진로가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이제는 더 이상 친구를 도울 힘이 내게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친구가 내게 울면서 매달릴 때에는
여전히 그를 도울 힘이 나에게 남아 있음을 나는 배웠다.
글을 쓰는 일이 대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마음의 아픔을 덜어준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내가 너무나 아끼는 사람들이 너무나 빨리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 . . 
그리고 정말 나는 배웠다.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나의 믿는 바를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것, 
그러나 이 두 가지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받는 것의
그 모두를 . . . 

나는 배웠다  -  오마르 워싱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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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4-12-13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꼬마요정 2004-12-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더 감사합니다. ^^ (헤벌쭈욱~)
 




      "삶은 신선해야 한다." "결코 아는 자가 되지 말고 언제까지나 배우는 자가 되어라."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항상 열어두도록 하여라." 졸졸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시냇물은 썩지 않듯이,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활기에 넘치고, 열정으로 얼굴에 빛이 납니다. 고여있지 마시길... 멈춰있지 마시길... 삶은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삶은 권태로운 것이 아닙니다. 삶은 신선해야 합니다.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삶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고 몰두할 때 행복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결코 아는 자가 되지 말고 언제까지나 배우는 자가 되십시오. 고민은 어떤 일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생기기보다는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에서 더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망설이기보다는 불완전한 채로 시작하는 것이 한 걸음 앞서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새로움으로 다시 시작해 보세요.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항상 열어두도록 하세요. 마음의 밀물과 썰물이 느껴지지 않나요? 밀물의 때가 있으면, 썰물의 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삶이란, 어쩌면 행복과 불행,기쁨과 슬픔, 행운과 고난의 연속 드라마인 것을... 하루치의 발전된 삶이 아름다운 당신에게도 있었기를 소망합니다. - 아름다운 편지 중에서 -


    Forever in love - Kenn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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