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서울에 갔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다. 4월에 겪는 추위는 한겨울 추위보다 더 매서웠다. 온도가 떨어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겨울 코트를 꺼내입고 싶지 않았다. 추위도 많이 타는 주제에, 4월인데 추위야 니가 추우면 얼마나 춥겠냐고 허세를 부리다가 러시아보다 추웠다는 지난 겨울도 넘겨놓고 얼어죽을 뻔 한 거다. 히트텍도 입고, 블라우스도 입고, 니트도 입고, 그나마 좀 두꺼운 재킷도 걸치고... 스카프를 깜박했지만, 뭐 괜찮겠지.. 했다.

 

12시 즈음 서울 도착해서 연남동엘 갔다. 냉면 먹으러. 미친 거지... 이 날씨에 냉면이라니.

 

부산엔 내 맘에 드는 냉면집이 없어서 늘 아쉬웠기에, 서울만 가면 꼭 꼭 냉면 한 끼 정도는 먹었다. 이번엔 연남동에 맛난 집이 있다길래 갔는데, 역시 맛났다. 아, 냉면 너무 좋아~  

 

그런데, 냉면 먹은 것까진 좋았다. 아~주 좋았다. 하지만 먹고 거리로 나왔을 때, 정말 말 그대로 뼈를 훑고 다니는 찬바람을 느꼈다. 머리뼈부터 발가락뼈까지 차갑게 서걱거리는 느낌... 으아아아아

 

아... 난 겨울코트를 입었어야 했다. 얇은 블라우스가 아니라 목폴라를 입고 두꺼운 니트 입고 겨울코트 걸치고 냉면을 먹었어야 했다. 더운 건 견뎌도 추운 건 못 견디면서 무슨 짓을 한 건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뭉크의 절규가 뒷배경으로 깔리면 진짜 딱일텐데.

 

점심을 먹고,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이제 몸 안엔 뜨거운 것들을 쌓아야 할 때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조금 걷다가 또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숙소에 짐을 풀고 또 뜨거운 물을 마시고, 뜨거운 커피와 빵을 조금 먹은 뒤 공연을 봤다. 다시 나와 닭집에서 뜨거운 마늘 닭을 먹고... 그래도 모자라 숙소 앞에서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었다. 어찌나 떨었던지 뜨거운 것들을 채우고 채워도 추웠다.

 

다음날 계속 내 머릿속에는 밤에 먹었던 뜨거운 순대국밥이 떠다녔다. 들깨 가득한 순대국밥... 곁들인 무김치가 어찌나 맛났던지... 그러나 일정상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쌈밥을 먹은 뒤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시고 공연을 보고 빵을 좀 씹다가 지연된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와서 고추장순살닭을 시켜 뜨거운 밥과 먹었다.

 

놀랍게도 계속 먹었는데, 살이 안 찐 거다. 얼마나 추위에 떨었으면, 그렇게 먹었는데... ㅜㅜ

 

공연 보러 서울 갔는데, 내도록 먹기만 하다 온 느낌이다. 추운 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내 영혼까지 젖어버린 기분이다. 문득... 그웬플레인이 떠오른다. 맨발로 눈발 속에서 얼어붙은 산길을 헤매이던 작은 영혼. 더불어 그저 끝없이 펼쳐진 땅에 하얗게 쌓인 눈들이 가득한 러시아까지.

 

나는 너무 추웠고... 그들도 추웠을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월이라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 주구장창 붙어서 일을 하는데, 날씨가 맑았다가 흐렸다가, 따뜻했다가 쌀쌀했다가, 밖에서 보도블럭 공사를 한다고 들들들들 소리를 냈다가 말았다가 난리다.

 

기한이 정해진 일을 할 때, 일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하나씩 쳐 내느라 힘이 든다. 그냥 힘이 드는 게 아니라 매우 힘이 든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일이 많은데 투정 부린다고 여기서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 거다.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기에, 어디든 풀어 놓을 데가 필요했다.

 

돈과 책임감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오늘따라 유달리 떠오르는 여자가 있다.

 

자유로움 그 자체인 여자.

 

자본주의 사회의 상식을 전부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여자.

 

카르멘시타.

 

남편이 있음에도 그녀는 누구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호세는 그녀를 가지려다 인생을 말아먹는다.

 

 

빛나는 태양 아래 너무 짧아 '양말'과 '신발'이 보인다는 치마를 입고

 

캐스터네츠 같은 작은 악기를 손에 들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자유롭게 거리를 누비는 그녀가

 

오늘따라 너무 부럽다.

 

가르시아가 죽어도, 호세가 죽어도

 

그녀는 하루 하루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플에 ‘사고 싶어요’ 혹은 ‘갖고 싶어요’ 있으면 좋겠다.

프랑켄슈타인 특별판이라니.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18-03-1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맞아요. 저도 방금 웅진에서 나온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을 갖고 싶다는 (표지가 복고풍 문고본처럼 보여서 예쁘더라고요) 생각을 했는데 현암사 버전으로 이미 소장중이거든요. 읽고 싶어요 말고 사고 싶어요~ 갖고 싶어요~ 하고 싶어요.

꼬마요정 2018-03-10 18:55   좋아요 1 | URL
이미 갖고 있는 책이 이렇게 이쁘게 나오면 어쩌라는 건지.. 정말 북깨비님두 저랑 같은 생각이셨군요. 아마 알라디너님들 대부분이.. ㅎㅎㅎ

단발머리 2018-03-19 2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의견에 저도 찬성합니다만, 현재로는 읽고 싶어요 밖에 없네요.
꼬마요정님~~ 방문자수 22000명 넘었는데요.
잔치 하셔야겠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꼬마요정 2018-03-19 23:31   좋아요 0 | URL
사고 싶어요 버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방문자수 22000명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읭? 했습니다.^^

CREBBP 2018-03-23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완전 멋지네요~. 전자책으로 여러 권 소장하고 있는데도 저 표지는 왠지 가져야 할 것 같은...

꼬마요정 2018-03-23 17: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전 저 괴물의 눈동자가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머리에 못이 안 박혀 있는 것도 좋구요. 헐리우드가 만들어 낸 이미지의 파급력은 정말 대단하더라구요^^
 

여기,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마셔야만' 힘을 얻는 존재가 있다.

 

여기, 인간과 같은 듯 다른 '하나뿐'인 종족으로 '신부'를 간곡히 원하는 존재가 있다.

 

여기, 다른 사람의 생기를 '빨아들여' '늙지 않는' 존재가 있다.

 

여기, 한 사람의 몸에 '선'과 '악'이 분리되어 들어있는 '위선적인' 존재가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가.

 

내가 드라큘라를 읽으면서 떠올린 책들이다.

 

먼저, 드라큘라.

 

끔찍한 존재이지만 매력적이다. 그냥 매력이 넘치는 게 아니다. 숨이 멎을만큼 매력적이다. 그가 앞에 있는 순간, 그 눈 안의 붉은 기둥을 보는 순간, 생각은 사라진다. 꿈을 꾸는 듯, 안개에 휩싸인 듯 이성은 날아가고 아무 생각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창백해지고, 인간의 삶이 끝나면 강하고 아름다워진다.

 

기독교가 토속 신앙을 지배했다든지, 영국이 겪기 시작한 경제 문제나 새로운 강국들의 등장이 두려워 이민족이나 외국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든지, 남성이 가진 섹스의 공포라든지, 이 모든 것이든 어쨌든 이 책을 둘러싼 해석들이 참 많긴 하다. 책을 읽은 사람들 수만큼의 해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결국 드라큘라의 피는 남았으나 그들은 보지 않는다. 정말 드라큘라는 사라진 것일까.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두려워하고, 부정하고, 없애고 싶어한다. 그래서 종교든 과학이든 무엇이든 동원한다. 자신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책을 읽는 내내, 경건한 듯 하면서도 퇴폐적이고, 아름다운 듯하지만 추악하고, 뭔가 확실한 듯하지만 끝내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드라큘라는 어떤 존재인가. 왜 드라큘라는 '미나'를 선택했을까. 단순히 '복수'와 '번식'이 아닌 다른 끌림이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존재를 저주하는 자가 선택한 존재.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을 알았던 것일까.

 

자신의 존재를 저주하다니.. 그래서 난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다.

 

 

창조주마저 미워하는 존재. 사랑이라고는 받아본 적도 없는 존재. 하지만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

 

불행히도 이름조차 없다. 인간의 명예욕과 호기심 때문에 만들어진 그 존재는 그저 괴물이다. 이름이 없으니 불러줄 이도 없고, 누군가에게 의미도 없다. 그래서 그는 의미를 만들었다. 복수. 자신이 외로운만큼 자신을 만든 이도 외롭고 고통스럽게.

 

추위와 굶주림은 오히려 나았다.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웠다. 손을 내밀어도 잡아줄 이 없고, 내민 손은 처참하게 뿌리쳐졌다. 창조주가 왜 남자였을까. 그 시대가 추구하던 합리와 이성을 대변하는 존재가 남자여서이겠지. 그리고 그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프랑켄슈타인 때문에 고통받은 건 그의 약혼녀 엘리자베스. 그렇다면 여자가 그 괴물을 창조했다면 어땠을까. 하긴, 여자, 소수자, 약자가 투영된 게 괴물인데, 이런 질문이 무슨 소용일까.

 

 

 드라큘라 백작이 피를 마셔야만 한다면, 도리안은 다른 사람의 생기를 빨아야 한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여전히 젊지만, 그림 속 사람은 늙어간다. 늙지 않는다는 것은, 축복 같지만 저주다. 도리안 그레이는 분명 아름다운 젊은이다. 그러나 젊고 아름다운 외모 속은 추악하기 그지없다. 아름다움은 미끼가 되어 희생양을 찾는다.  

 

관계도 없다. 여기 저기서 그에 관한 추잡한 소문이 돈다. 그가 농락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의 적도 늘어난다. 가장 아름다운 그 때를 유지하려는 그 강렬한 욕망은 어디서 오는걸까. 곁에서 도리안을 부추기는 헨리 경이 더 위선적이고 사악해보이는 건 나만일까. 그저 아름다움 그 자체인 도리안을 추하게 물들이는 건 현실적인 헨리 경일지도.

 

위선자하면 떠오르는 건 지킬 박사다. 인간은 이중적인 존재다. 선과 악이 함께 한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다. 자기합리화는 인간이 발명한 자기 자신에게 주는 면죄부다. 인간은 나약하지만 또한 살아남는데 강하다.

 

지킬 박사가 자신의 악을 분리한 이유는 소름끼친다. 자신은 완전무결하면서도 욕망은 모두 충족시키겠다는 욕심이다. 그러나 그 분리된 하이드마저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 것이 그가 실패한 이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 2018-02-04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도리안그레이의초상 읽은지 꽤 됐는데..그 강렬함에 전율한 기억만 남아있네요. 다시 읽어야 겠어요. 이렇게 확장되는 책소개 너무 좋아요^^

꼬마요정 2018-02-04 18:30   좋아요 1 | URL
새삼 작가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같은 글을 써 낸 거 보면 말이죠. 저도 읽으면서 감탄하고 그랬죠. 다시 읽어보시면 또 다른 느낌을 받으시겠죠? 아무래도 위의 책들이 시대가 비슷하다보니 연상이 되더라구요. 대단한 시대에요 19세기는.
 
드라큘라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66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엮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오래도록 내려오던 이야기를 놀랍게도 재미있게 풀어냈다는데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듯. 드라큘라, 미나 너무 매력적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프리쿠키 2018-02-03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문학은 역시 꼬마요정님입니다.
예전 북플활동 열심히 할때 요정님과의 공감대가 생각나네요.
열심히 따라갈께요^^

꼬마요정 2018-02-03 15:57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도 참 과찬이십니다. 저는 한참 모자란걸요. 북프리쿠키님 리뷰나 글들이 얼마나 멋진대요. 저도 글 잘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