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는데,

 

오늘 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일이 있었다.

 

내가 그 일 전문가도 아니고, 큰 일이 난 것도 아니지만

 

혹시나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서 예방하는 차원에서 거래처랑 통화하는데

 

상대방이 다짜고짜 큰 일 난 줄 알고 화를 내는 거다.

 

니가 잘못했니, 왜 일을 그렇게 하느니, 자신 없으면 딴 데 맡기라느니...

 

그러더니 병원 치료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끊기까지.

 

설명하면 말 끊고 화를 내서 일단 그냥 끊었는데.

 

자기가 화가 난다고 나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내용 아주 짧게, 나 기분 나빴다는 식의 말을 돌려서 짧게,

 

그리고 나를 못 믿겠다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최대한 짧게 보냈다.

 

답이 없다.

 

 

나 또한 그렇지만,

 

사람은 왜 자신이 걸려 있는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것일까.

 

나도 다른 문제들에는 아주 관대한데

 

몇 가지 문제에서는 좀 심하게 예민해서 센 말들을 뱉어내고 후회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러지 않을 수 있을까...

 

 

남이 그러는거야, 내가 상대방 마음까지 돌봐줄 건 아니니까 흘려버리고

 

나한테 부당하게 한 건 그러지 말라 하면 되는데

 

내가 나한테, 남한테 그러는 건 마음이 아주 불편하다.

 

이렇게 또 내 단점 한가득 본 느낌이다.

 

나한테 너무 가혹한 건 아닌가 싶다가도

 

순간 순간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에라도

 

 깨달음을 얻거나 고칠 점을 발견한다거나 대견한 점을 발견한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인 것 같아서 다시 즐거워졌다.

 

단순하게, 즐겁게, 편안하게.

 

요렇게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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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돌이켜보면,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싶을만큼 놀라거나 웃기거나 한 일들이 왕창 일어나는 날이 있다. 난 자주 일어나는 편인데.. 아직도 잊지 못할 일들이 한가득이다.

 

비 오는 날 우산대만 남고 비닐이 날아간다거나, 입간판에 바지가 찢어진다거나, 덜 친한 사람들과 어색하게 이야기할 때 축구공이 날아와 정수리를 가격한다거나, 가파른 돌계단에서 구르는 데 낯선 남자가 구르는 날 발로 받쳐 준다거나, 하수구에 한 쪽 발이 빠져 허벅지에 시퍼렇게 멍이 든다거나, 사무실에서 나가려고 문을 여는데 갑자기 안 열려서 감금 상태가 되어 열쇠 수리공을 부른다거나...

 

적다 보니 너무 많아서 놀랍다. 더 있는데, 뭔가 계속 적으면 웃긴데 서글플 것 같다.

 

지난 21일도 그랬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뮤지컬 공연 예매해두고 당일치기로 다녀 오려고 아침부터 부산하게 준비하는데 띵~ 문자가 온 거다.

 

태풍 다나스 때문에 예약한 항공편이 결항되었으니... 어쩌고 저쩌고..

 

뭐? 결항? 나 어떻게 서울 가라고? 아니, 나 그거 스탬프 모아둔 거 쓴 건데? 스탬프 유효기간 다 되어 가는데? 아니, 일단 서울 가야하는데? 기차는? 버스는 늦을거고..

 

다행히 비슷한 시각에 출발하는 기차를 겨우 잡아타고 서울로 향했다. 하지만 어플이 강요한 자리는 복도 쪽이었고, 난 부산에서 서울로 쭈욱 가는데 그 기차는 ktx지만 참 많은 곳을 들렀고, 서는 역마다 사람들은 바뀌고, 난 거의 모든 역을 지날 때마다 탁자를 접었다가 폈다가, 짐을 들었다가 놨다가, 다리를 접었다가 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해야 했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으나 역방향 외에는 없다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냥 주저앉을 수 밖에...

 

그렇게 힘들게 겨우 서울에 도착했는데,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밀려드는 그 습함이라니... 부산은 비가 미친듯이 퍼붓는 중이라 추웠는데, 여기는 더운거다. 엄청 습하게. 그래도 나는 더위에 강하니까. 아주 강한 자신감으로 공항철도를 타고, 5호선으로 갈아타고, 광화문 역에 도착했다.

 

지하에서 올라가는 순간, 읭? 비가 막 오는거다. 나 우산 안 가져왔는데? 서울은 비 안 온다고 했는데? 날 속인거야? 강수확률 7%에 비가 와도 되는거야? 순간 탈출한 영혼을 부여잡을 생각도 안 하고 멍 하니 있다가 다시 계단을 내려 가 우산을 살 만한 곳을 찾았는데 없는거다. 

 

공연 시간은 다가오고, 사람들은 우산을 촥 촥 펴며 자신 있게 계단을 올라간다. 혹시 우산 얻어쓸 수 없을까 살펴보다가 결국 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뛰었다. 최단 거리는 여기서 여기야. 난 10센티미터짜리 힐을 신은 채 도도도도도 뛰어서 세종문화회관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비는 굵지 않았고, 거리는 짧아서 그렇게 젖지 않아도 되어 나름 행복했다.

 

 

마치 공연 보는 게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거 보려고 아침부터 이 난리를 치며 온 건가... 하는 기분도 들고. 하지만 표를 받고 극장 안에 앉자 행복해졌다. 그래. 이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난 온 거야. 우리 삶이란 다 그런거지.

 

무사히 공연을 다 보고 나오는데, 세상엔 자신이 좋아하기 때문에 맹목적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고, 나한테도 그런 면이 있고, 그게 발현되는 건 각자가 가진 상황에 따라 다른 거니까...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차여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건 다 내가 이해한다고...

 

허허허 또 비가 방울방울 내린다. 이쯤되면 비가 나를 쫓아다닌다고 생각해도 될라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또 깜짝 놀란다. 와, 진짜 인기가 많구나. 실물 보니 아이돌은 아이돌 같았다.

 

지하철을 타고, 공항철도를 타고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남아 비행기 시간을 땡겨볼까 알아보니, 내가 산 표가 실속이라 취소하고 재예매를 해야 한다고... 하아... 차라리 취수료 내고 집에 일찍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기존에 예매한 표를 취소하려니 폰으로는 안 된다네... 하아아아... 긴 한숨을 내뱉고 늘어선 줄 뒤에 선다. 그나마 내가 타려는 뱅기값은 취소하려는 표 값이랑 같아서 다행이다 생각하면서.

 

겨우 겨우 표를 바꾸고, 한 끼도 안 먹은 탓에 고픈 배를 채워볼까 싶었더니 음식이 나오는 데 오래 걸린단다... 또 뱅기 시간을 너무 당겼는지, 여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혹시나 지연되나 싶어 살펴 보니 왠 걸... 지연이 없다. 다른 비행기는 대부분 지연인데 내가 탈 비행기는 정시에 떠날 준비를 마쳤다. 세상에, 1분 일찍 탑승이 뜨기까지.. 이야, 지연이 일상이었는데 이런 일도 다 있구나, 이 태풍 때문에 난리 난 다음 날인데...

 

따뜻한 까페모카나 한 잔 마시고 허기를 달랠까 했는데, 얼음 동동 차가운 까페모카를 준다. 주문을 따뜻한 걸로 했는데요... 죄송해요. 다시 드릴게요.

 

까페모카... 너 마저도...

 

갖은 우여곡절 끝에 난 무사히 김해 공항에 도착했다.

 

공연은 만족스러웠는데, 있었던 일이 너무나 웃겨서 공연 후기를 쓰려다보니 공연을 보러 다녀 온 내가 마치 공연한 느낌이 들어 21일 후기가 되어 버렸다.

 

결국 저녁은 밤 9시 반에 돈까스 떡볶이를 먹었다. 아, 내 첫 끼... 너무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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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너무 바빠서 통 책을 읽지 못했다.

 

숫자랑 씨름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 버거웠나보다. 책을 펼쳐 읽는데 같은 쪽을 계속 읽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한 달에 두 권 달랑 읽었다. 뭐, 그것도 장하다. 잘했어.

 

3월이 지나고 뒤치닥거리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4월도 끝나간다. 이게 무슨...

 

책도 안 사고 한 달 반이 넘게 지나다니... (읭?)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서 장바구니에 있는 책들을 훑었다. 그 동안 사고 싶었지만 못 사고 담아두었던 책들을 보니 괜히 마음이 찡했다.

 

머리가 정말 좋아서 읽는 것도 빠르고 이해하는 것도 빠르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헛생각도 했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백 배는 빠른 거 같다. 슬퍼지려는 찰나, 그럼 뭐 어때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이것도 병이려나.

 

솔직히 굿즈가 탐이 났다. 임시정부 컵과 컵받침. 너무 갖고 싶어서 이 책들을 샀다.

 

고려 열전이야 궁금하기도 하고 재밌을 것 같아서 샀지만, 무도 한국사 열전은 순전히 굿즈 받기 위해 끼워맞춘 책이다. 재미있겠지만 갑신정변부터 현재까지의 한국사는 솔직히 너무 우울하다. 순간 순간 승리의 순간들이 있어도, 그 안에 너무 많은 희생들이 울고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가해자들은 처 웃고 있는데 말이다.

 

마크 트웨인의 짧은 글들이라길래 <최면술사>를 읽었더랬다. 너무 재미있었다. 이게 뭐야, 대박.

이렇게 웃긴 사람이었던가. 물론 '붙일 수 없는 제목'은 좀 마음이 아팠지만.

일 때문에 짜증나고, 다 던지고 도망가고 싶었던 때 집어들었다. 아, 읽고 나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뭔가 치유된 듯한 느낌.

이럴 때 이 책을 집어든 난 역시 대단해.라고 생각하게 해 준 멋진 책이었다.

 

 

몰랐는데, 논란이 되고 있는 책인 듯하다. 이런 책은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책이라 출판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원만하게 해결되면 좋겠다.

솔직히 '한정판'이라는 건 엄청난 유혹이다. 갖고 있는 책도 표지나 출판사가 바뀌어서 '한정판' 뭐 이렇게 나오면 나도 모르게 또 사고 있는데, 이런 책은 오죽할까.

나도 어릴 때부터 신화, 전설 이런 이야기들 좋아해서 즐겨 읽고 보고 찾고 그러는데, 확실히 서양이나 일본 괴물, 귀신들에 비해 우리나라 요물들은 딱히 제대로 정리된 곳이 없는 것 같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 전래동화집, 야담집들에 흩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저자의 노력이 대단하다.

 

 <최면술사>가 좋아서 이 책도 샀다. 얇고 가볍고 책표지도 좋고 버지니아 울프도 좋다.

흰 표지라서 그런지 백석 시인이 생각난다. 쌓인 눈을 푹 푹 밟으며 시를 읽어야만 할 거 같다. 하지만 추워서 시인지 주문인지 알 수 없을테지. 그저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면 따뜻한 방 안에서 고구마나 귤을 먹으며 만화책 보는 게 젤 행복한데... 다행히 난 부산에 살고, 부산에는 눈이 잘 오지 않는다. 쌓일 일은 거의 없다. 쌓여도 곧 녹는다. 흔적도 없이.

 

 

조셉 캠벨, 조지프 캠벨... 뭐가 맞는지 예전에 읽었는데 다 잊어버렸다. 요즘 들어 자주 잊어버린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단어가 생각이 잘 안나서 그.. 그.. 이러다가 풀어버리거나 던져버린다.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건지, 나이가 들면서 내 시냅스들이 끊어진 건지... 소중한 시냅스들아... 제발 계속 딴딴하게 연결되어 있어다오.

여튼, 난 신화가 좋다. 신화가 지배계급 이야기라든지, 이데올로기라든지, 그냥 옛날 이야기라든지 다 상관없다. 난 어릴 때부터 신화를 읽으며 많은 위안을 받았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모두 각자의 모험을 하고, 각자의 벽을 넘고, 각자의 틀을 부수고, 각자의 뿔, 솥, 성배 등을 찾는다. 그러는 와중에 누군가는 이카로스처럼 바다에 떨어질 수도 있고, 헤라클레스처럼 미치광이가 될 수도 있다. 곰이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알에서 태어난 이가 왕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이들에게는 어머니, 여신들이 있다.

 

 엄청난 고민에 빠졌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2권짜리를 살 것인가, 한길사에서 나온 10권짜리를 살 것인가. 다음날 받을 수 있다길래 한길사 책을 샀다. 원두도 같이 구매해서 빨리 받고 싶었...

쓰다보니 말을 잇지 못하겠다. 저것이 내 진짜 속내였구나. 사실 2권짜리보다는 10권짜리가 더 알차겠지라고 막 합리화했는데, 생각해보니 동서문화사 책 정말 두꺼울 것 같다. 일단 1권부터 읽고 생각해야겠다. 드디어 <겐지 이야기>를 읽게 되는구나.

 

책이란 참 오묘하다. 읽어도 좋고 보고 있기만 해도 좋다. 밥 안 먹어도 배 부른 느낌. 그냥 책 냄새도 좋고 편안한 기분이다. 내용을 이해하든 못하든 그 안에서 내 마음이 위로 받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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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19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돈이 좀 들겠지만, 한길사 판본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두 판본의 만듦새를 비교하면 한길사 판본이 더 좋죠. 10권짜리 한길사 판본을 모으면 책등에 그려진 그림이 완성된 형태로 나오는데, 직접 보면 소장 욕구가 생깁니다. ^^

꼬마요정 2019-04-19 17:3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좀 전에 1권 받았는데 정말 소장각입니다. 진짜 이뻐요 ㅎㅎ 근데 10권이면 가격이...(ㅜㅜ) cyrus님께서 추천해주시니 더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됩니다. ㅎㅎ

북프리쿠키 2019-04-20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겐지이야기를 시작하시다니 결딴이 부럽습니다 ㅠ

꼬마요정 2019-04-20 17:58   좋아요 1 | URL
음.. 시작은 하지만 끝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ㅎㅎ 뭐 어때요, 삶의 끝자락에 이를 때까지 못 읽을 수도, 다 읽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못 읽는 책이 훠얼씬 많을텐데요 ㅎㅎ 맛이라도 보려면 한 장이라도 시작해보려구요 ㅎㅎ 북프리쿠키님도 같이 읽어요 ㅎㅎㅎ
 

올해도 어김없이 알라딘은 나에게 한 해의 기록을 보여준다.

 

아아,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보고 싶기도 하다.

 

제일 먼저 이만큼의 책을 '만났다'고.. 어쩐지 책장을 더 샀는데 꽂을 데가 없더라니...

 

내가 사랑한 작가가 '윌리엄 세익스피어'라고. 아직 못 읽은 세익스피어 작품이 많은데, 반성하게 된다. 하긴 반성할 게 한 두개도 아닌데 뭐.

 

이렇게 반성을 시작해본다.

 

매일 뭔가를 쓰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해, 읽은 책들 리뷰 적는 것도 못 해, 매일 읽고 싶었는데 그것도 못 해... 아, 못하는 것 투성이 투성이 투성이.

 

읽고 싶은 책을 찾다보면 번역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덕분에 원서를 사긴 했는데, 한 장 읽는데만 어마무시한 시간이 걸리는거다. 다시 한숨만 내뱉으며 나의 무지를 탓하며 책을 덮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순간이랄까. 그래도 그녀는 사전을 갖다 놓고 끊임없이 읽고 쓰고 했지만, 난 한국어를 사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라 영어 사전을 갖다 놓고 끊임없이 읽고 쓰고가 안 된다. 쓰는 건 당연히 생각도 안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예전에 한창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그의 말을 독일어로 이해하고 싶었는데... 좋아하는 작가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같은 언어로 쓴 글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다른 언어로 쓴 글은 얼마나 어려울까. 낯선 언어로 쓰여진 책이 번역도 안 되어 있다면... 거기다 그 언어가 적당히 낯설다면, 그 낯선 언어가 주는 낯선 느낌은 '절망'에 가까운 비참함이 되어 돌아온다. 영어 공부를 참 많이 했는데 아직도 난 영어가 낯설다. 츠바이크는 독일어로 글을 썼는데 난 왜 영어를 이야기하는가. 역시 내 나라 말로 글을 쓰는 것도 이렇게 어렵다.

 

내가 받은 굿즈도 나온다. 아, 그러고보니 '낯선 땅 이방인' 유리컵을 얼마 전에 깨먹었지. 다시 눈물이 고인다. 굿즈 때문에 산 책도 제법 되는데, 마음에 드는 굿즈는 그냥 팔아주면 좋겠다. 다시금 '낯선 땅 이방인' 유리컵에 애도를 표한다. 

 

리뷰를 쫙 쓰고 싶었는데, 이것 저것 핑계를 대면서 미뤘더랬다. 그래서 정리해보니.. 그냥 포기할까... 아니, 무슨 이렇게 좌절과 후회가 많단 말인가. 그래도 내가 열심히 읽은 책들과 열심히 쓴 리뷰가 있는데.. 게으른 자여.. 이렇게 항변하는 나를 밀어버렸다. 밤에 혼자 잘 논다...

 

 푸시킨과 플로베르라니. 단편과 장편의 차이만큼이나 다를 것 같았는데, 마음 속 깊이 숨겨두었던 알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탐욕, 허영... 내가 가진 수많은 단점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꼭 리뷰를 써야겠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자꾸 떠올랐다. 축축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트리니다드의 쨍한 날씨 같은 환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지프 콘래드가 그린 콩고 같다고나 할까. 식민지가 가진 무기력감이 깔려 있고, 그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사람들... 말 많은 사람들... 거기서도 여자들은 참 억척스럽게 살았는데, 로라는 자신의 딸이 죽자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나도 무기력해지는 느낌이다.

 

 

 

 

 

파우스트는 읽을 때마다 인간이 가진 호기심과 갈망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괴테가 정말 대단한 사람이구나'도.

 

결국 파우스트는 구원 받았으나, 누가 구원한 것일까. 공동체적 삶과 세계 시민을 위한 삶은 어떤 것일까. 온갖 부와 명예를 다 누려보았으나 결국 선택한 것은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었다. 파우스트도 성진도 팔선녀도. 사회가 정해놓은 질서에서 최고 우두머리는 아니더라도 그런 이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던, 오히려 그런 지위가 필요하지 않던 삶이었는데 다 던졌다. 이 생의 안락함보다 영혼의 안락함을 선택한 이들. 다른 세상을 경험한 이들은 결코 이 세상에 완전히 속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동화나 삶이나... 동화가 삶이고 삶이 동화인 것일까. 삶이란 이야기가 주는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아무리 꾸며대도 삶의 어두운 그림자는 가려지지 않는다. 하긴, 그림자를 가리려면 더 큰 그림자가 혹은 어둠이 필요할테니. 그림자가 있다는 건,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건 '희망'이란 이름일지도 모르겠고.

유령 이야기가 빠지면 어쩐지 찰스 디킨스가 아닌 것 같다. <닥터 후>의 닥터도 찰스 디킨스 만나고 왔는데. 테닥이었나 맷닥이었나.. 그 에피소드 다시 찾아봐야겠다. 여튼 내가 좋아하는 디킨스. 도덕적인 삶이 사회를 구원할 수 있을까. 모두가 도덕적일 수는 없겠지만, 한 사람의 도덕적 행위가 가진 파급력은 크니까. 누구나 칼턴이나 핍처럼 실수하고, 막 살고, 헛된 꿈을 꿀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칼턴처럼 희생할 수도 없고, 핍처럼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지 않고 감사해하며 남을 위해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에게 환멸을 느낄 때, 이 세상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을 때 그들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그리고 행한 대로 받게 될 거라는 믿음을 준다. 계속해서 탐욕을 부리면 잘 살 것만 같아도 불레만 씨처럼 될 거라고. 아무도 없는 빈 방, 거대한 탐욕이 또 다른 실체가 되어 자신을 짓눌러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고,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난 이 책이 너무 좋다.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좋다. 책이 나에게 구애하는 것 같다. '난 너에게 환희를 줄 수 있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난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아주 열심히, 아주 행복하게, 가끔은 쓸쓸하게.

 

 

 

 

 사람들은 쓸 데 없는 일을 하고, 쓸 데 없이 참견하고, 쓸 데 없이 걱정하고, 쓸 데 없이 돈을 벌고, 쓸 떼 없이 돈을 쓰고... 참 쓸 데 없이 살면서 행복하길 바란다. 도대체, 어떻게 2천년이 넘는 그 긴 시간 동안 인간은 참 한결같을 수 있는가.

 

세네카를 읽은 나도 참 한결같이 쓸 데 없는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가. 그래서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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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가 친구들과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떠나기 전, 내가 굶어죽을까봐 어찌나 걱정하는지 내가 무슨 전래동화에 나오는 떡목걸이 목에 걸고 굶어죽은 남자인 줄 알았다. 오히려 자기랑 있으면 뭘 먹어야할 지 고민인데, 혼자면 먹는 걱정 안 해도 되니 좋구만. 남편은 자기가 요리도 잘 하고 먹는 것도 좋아해서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는 걸 원하고, 나는 대충 아무거나 주워 먹는 걸 좋아해서 가끔 신경전을 벌이기도 하니까.

 

아니, 나도 혼자 잘 할 수 있다고. 혼자 밥도 잘 먹고, 보리차도 끓여 놓고(물론 보리를 너무 많이 넣긴 했지만), 청소도 하고 한다고.

 

근데, 천장에 붙어 있는 모기는 못 잡았다. 키가 작아서 의자 가지러 간 새 날아가고 없는거다. 결국 물렸다.ㅠㅠ

 

오랜만에 혼자 있으니, 책 널부러놓기 딱 좋다. 하루 배송으로 책도 샀다. ㅎㅎ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졸았다가 냥이들이 밥 달라고 깨워서 밥 주고.. 뭔가 푹 쉰 느낌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어느 날...

 

그래도 남편이 빨리 오면 좋겠다. 젤 친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니 뭔가 허전하네.

 

그래서 선택한 책!

 

첫 장부터 베껴 쓰느라 여념이 없다.

 

사실, 난 무위도식이 좋은데 책들은 날더러 자꾸 노력하라 하네.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삶을 사는대로가 아닌 생각한대로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

 

나를 위한 삶은 어떤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영혼이 하는 일이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으려면, 종심(從心) 즉 70이 되어야 하는걸까. 아니, 70이 되어도 안 될 거 같다... 공자조차 일흔 살에야 다다를 경지인데 하물며 나는.

 

게다가 세네카도 그러지 않았나. 사는 것을 배우는 데에는 평생이 걸리고, 죽는 것을 배우는 데에도 평생이 걸린다하니..

 

내가 책을 읽고 위로 받는 건... 사는 법을 배우고 또한 죽는 법을 배울 수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일이겠지. 이럴 땐, 예술가나 배우, 가수들이 부럽다. 그림을 그릴 때, 음악을 연주할 때, 연기를 할 때, 노래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들이 말이다. 그런 쪽으로는 재능도 없고, 노력 할 생각도 없는 나는 결국 공부...만 했는데, 그래서 세상에 나와서 먹고 살려고 일을 하고, 그 일은 스트레스를 주고, 일과 취미를 같이 하기 위해 시간을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고.. 하아...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여건만 된다면 '노는 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닐까.. 아, 물론 한국 사회는 '노는 법'도 잘 모르지...

 

물론, 세네카는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철학'이란 무엇일까. 결국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마음대로 해도 거리낄 것이 없는 상태, 자신을 온전히 아는 것.

 

언제쯤 알 수 있을까. 그 해답을.

그렇지만 우리는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오. 인생은 충분히 길며, 잘 쓰기만 한다면 우리의 수명은 가장 큰 일을 해내기에도 넉넉하지요. 하지만 인생이 방탕과 무관심 속에서 흘러가버리면, 좋지 못한 일에 인생을 다 소모하고 나면, 그때는 마침내 죽음이라는 마지막 강요에 못 이겨 인생이 가는 줄도 모르게 지나가버렸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이오. (p.8)

마치 폭풍이 그친 뒤에도 너울이 이는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인간은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지니 욕망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지요.

그들은 자신의 행운에 질식되어가고 있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부는 무거운 짐인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재능과 달변을 보여주려고 매일매일 피 말리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요!

자신을 위해 자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남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고 있지요.(p.11)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않으면서 남이 거만하다고 감히 불평을 늘어놓아도 되는 것인가요? 그대가 누구든 간에 아무튼 그분은 거만한 눈길로라도 언젠가 그대를 알은 체했고, 귀를 낮추어 그대의 말을 들어 주었고, 그대가 자기와 나란히 걷게 해주지 않았던가요? 그대를 보고 그대에게 귀 기울이는 것을 그대 자신은 가치 없는 일로 여겼는데도 말이오.(p.12)

현인은 언제나 온전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남에게 매이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고, 남들 위에 있기 때문이지요. 대체 무엇이 운명 위에 있는 사람보다 더 위에 있을 수 있겠소? (p.21)

이 학문은 그대에게 신의 실체와 의지와 성질과 형태가 어떤 것이고, 어떤 운명이 그대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육신에서 해방되면 자연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어떤 힘이 이 우주의 가장 무거운 성분을 한가운데에 붙들어두고 가벼운 성분을 그 위에 떠다니게 하고 불은 맨 위로 가져가고 별자리들의 위치를 바꾸게 하는지, 그 밖에도 매우 경이로운 일들을 가르쳐 줄 텐데도 말이오.

그대는 땅바닥을 떠나 마음의 눈으로 이런 것들을 보시오! 아직도 피가 뜨거운 동안 더 나은 것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해요. 이러한 생활방식에서는 많은 고귀한 학문이, 미덕에 대한 사랑과 실천이, 욕망의 망각이, 삶과 죽음에 관한 지식이, 마음의 안식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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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9-16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위도식 좋아해요ㅎ
고전문학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아 좋은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18-09-16 14:19   좋아요 1 | URL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레 움직이도록 하는 거 같아요. 재미도 있구요.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다 읽을 수 없어 아쉬워요^^

2018-09-18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8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