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건 최근 <백철 연구>(소명출판, 2008)를 출간한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이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련던 '한국문학의 연속성'이란 글이 내가 접한 최초의 글인데, 곧이어 대학에 들어와 강의실에서 글의 '저자'를 대면하고서 묘한 감흥을 느꼈던 기억이 새롭다(나는 그의 강의를 네댓 학기 동안 들었다). 20년의 세월은 희끗한 백발을 무성한 백발로 바꾸어놓았지만 이 노(老)비평가/문학사가의 정신만은 아직 '빳빳하다'는 걸 기사에서 확인하게 된다(더불어 그가 젊은 시절 '비틀스'를 좋아했다는 사실도!). 부드러워지려는 정신을 다시 곧추세운다...  

경향신문(08. 02. 21) “향후 100년 문학의 화두는 ‘우포늪에서 우주 상상하기’”

한국문학의 파수꾼, 문학의 구도자…. 이런 말들을 떠올리면서 지난 18일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72)의 댁을 찾아갔다. 베란다 너머로 한강과 멀리 관악산이 한 눈에 보이는 용산의 한 고층아파트. 차분한 독서와 사색의 시간들이 물처럼 고여있는 김윤식 교수의 서재에 발을 들여놓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책이 많다. 마주 보는 양쪽 벽이 책장이다. 창가 쪽으로 책상이 놓여있는데 그 옆에는 자주 보는 책을 꽂아놓은 낮은 책꽂이가 하나 더 있고, 책상 앞뒤로도 책이 여러 겹으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겉장에 보풀이 일어난 누런 책부터 빳빳한 신간까지. 책상 위에는 수백장의 하얀 원고지가 놓여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에 대한 원고를 쓰던 중이라고 했다.

“컴퓨터로 글 쓰는 걸 배우다가 포기했습니다. 그나마 세로로 쓰던 걸 가로로 바꾼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의 저서가 120여권에 이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 많은 원고를 모조리 육필로 작성한 것이다. 그는 최남선, 이광수에서 이상, 임화, 김동인, 염상섭으로 이어지는 근대문학사 연구에서부터 다달이 발행되는 문학잡지의 소설 월평까지 폭넓은 글을 써왔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문단 바깥의 사람들은 짐작하기 어렵다.

처음 소설을 쓰는 풋내기 작가의 글까지 정성스럽게 읽고 분석하는, 소위 ‘현장비평’이라는 것은 흔히 젊은 평론가들의 몫으로 생각돼 왔다. 평론가로 등단을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현장비평을 통해 감을 익히고,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 조금씩 현장비평과 멀어지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로 귀착되는 것이다. 작가는 창조하고 비평가는 그것을 해설한다는, 이상한 상하구조의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일일이 작품을 챙겨읽는 것 자체가 귀찮거니와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성실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평소 그에게 묻고 싶었던 두 가지 질문부터 던졌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꾸준하게 문학현장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내 독창적인 글은 써본 적이 없습니다. 남의 글을 갖다가 열심히 읽고 해설을 열심히 썼는데 그것이 책으로 나와있을 뿐입니다. 왜 네 글을 못썼느냐고 묻는다면 거기 대해서는 역량이 없고 생각도 없었다는 게 솔직한 마음일 거예요. 문학연구와 현장비평은 이래요. 거시적 글쓰기와 미시적 글쓰기인데 이 두 가지를 왔다갔다 하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입니다. 어느 한쪽에 빠지면 오염되고 부패하고 폐쇄되고 말았을 겁니다. 지속성의 근거가 거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김윤식 교수의 문학인생 중심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원조로 일컬어지는 문학평론가 게오르그 루카치가 있다. 그가 자신의 문학 입문과정을 들려주었다.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에 왔는데 당시 대학이란 게 과학으로서의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국어국문학과라고 하면 국어학과 고전문학으로 나눠지는데 국어학은 순경음, 반치음을 가르치고 고전문학은 아래 아가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가르치더군요. 대학 다니는 게 흥미가 없어 군대에 다녀오니 복학생이 됐고 친구가 없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학문 중 어떤 학문이 가장 그럴 법하냐는 걸 고민했지요. 헤겔과 마르크스의 책을 뒤적이다가 루카치란 인물을 발견했습니다.”

‘복되도다, 그 시대는. 창공의 별이 우리가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을 훤히 비춰주는 시대는 복되도다.’ 그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의 유명한 첫 문장을 읊었다. 1970~80년대 그의 수업을 들었던 숱한 제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고, 문학의 길로 접어들게 했던 열정적인 명강의의 일부가 재현되는 듯했다.

“루카치는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서 나아갈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소설이 그 길을 가르쳐준다고 했지요. 작가들은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 동원해 소설을 쓰고, 거기 등장하는 문제적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상실한 유토피아를 찾기 위해 방황을 계속하는 겁니다. 나는 그들의 방황에 동참함으로써 인류사회의 나아갈 길을 공부하고 싶어서 소설을 읽고 문학을 연구했어요. 얼마나 가슴 벅차고 멋진 일입니까.”

그는 70년 하버드 옌칭 장학금을 받아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 도쿄대 정문앞 서점에서 루카치의 책을 구입했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ㅅ자도 꺼내기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후 “대단히 많은 시간을 루카치를 읽고 해석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사회주의 사상가의 책을 읽고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일로 인해 사상을 의심받고 과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도 루카치 전집은 그의 서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글은 벼랑 끝에서 나오는 것…하찮은 글은 없어”

루카치가 설파한 소설의 이론처럼 군부독재가 계속되던 정치적 암흑기에 예민한 촉수로 우리 사회의 향방을 짚어낸 것은 소설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발표되는 수많은 소설 속에서, 그리고 현대 한국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낸 모태인 근대시기 작가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역사에 동참하는 길을 선택했다. 앞서 말한 거시적, 미시적 글쓰기에서처럼 근대문학사와 현장비평이라는 영역은 과거와 현재로 구분되는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이끌고 겹쳐지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일제 식민사관 극복이 눈앞의 과제였던 60년대에 학문의 길로 접어든 그는 문학평론가인 고 김현과 더불어 우리 근대문학의 시작을 영·정조까지 확대 해석한 ‘한국문학사’를 내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설프다”고 했지만 역사학계의 고 김용섭 연세대 교수가 ‘조선농업경제사’에서 증명한 자본주의 맹아론이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서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던 당시의 흥분과 열정이 그의 설명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때는 인문학에 목적이 있었어요. 되찾은 나라를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학문적인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지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전성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도 소비사회로 접어든 오늘날, 너무 잘 살기 때문에 뭘 지키고 이뤄야 할 가치가 없는 때, 인문학이 위기에 처하는 건 당연하지요. 국가에서 연구비 많이 준다고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학에서도 인류사회의 나아갈 바를 암시하는 문제적 인간들이 활동하는 소설의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의 인물들이 사회적, 역사적 존재였다면 지금의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다. 그는 자신이 특별히 좋아하는 두 작가, 이청준과 윤대녕에게서 그러한 세상의 흐름과 변화를 읽었다.



그에게 이청준은 사르트르에게 카뮈가 가졌던 것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사르트르는 ‘이럴 때 카뮈는 어떻게 생각했을까’라고 물었다는데 나는 ‘이청준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게 늘 궁금했고,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었다”고 말한다. 이청준의 매력을 묻자 “그 양반이 광주일고의 천재였는데 평생 아무 일도 안하고 소설만 썼단 말이지”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청준 역시 문학의 길을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산 속에서 길 찾아가기’에 비유하곤 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이 통할 만도 하다.

90년대에 혜성같이 등장한 윤대녕은 ‘은어낚시통신’이란 작품으로 번뜩이는 영감을 주었다. “그것은 사회적, 역사적 조건 때문에 고뇌하고 망가지던 인간들이 생물학적 상상력으로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며 인간은 벌레다, 연어다, 메뚜기다라고 선언한 작품”이었다면서 요즘도 그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한다.

김윤식 교수의 하루는 책읽기와 글쓰기로 채워진다. 오전 8시부터 정오나 오후 1시까지는 학문적인 글을 쓴다. 오후에는 산책을 하거나 볼일을 보고, 저녁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잡지를 읽는다. 눈이 나빠져서 텔레비전은 보지 않고 주로 라디오를 듣는다. 침실에도, 욕실에도, 서재에도, 식탁 위에도 라디오가 놓여있다. 한달에 한번씩 시내 대형서점에 나가 문학잡지를 사들이고 서울대 도서관에 가서 문학사 관련 자료를 찾는다. 그는 “최인훈이 오랜만에 단편을 썼다면 나는 그걸 집으로 가져오지 않고 명동성당에 들고 가서 읽는다. 그것이 애써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예의다”라고 말한다.

평생 글을 써온 그이지만 글쓰기란 언제나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 편하고 배부르고 안정되면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렇다면 선생은 왜 서울대 교수이면서, 명망 높은 문학평론가이면서 계속 글을 써올 수 있었는지 묻고 싶어졌다. “나는 서울대에 있었지만 마음은 서울대 교수가 아니었소. 유명한 문학평론가도 아니었고. 건강도 그렇고, 모든 문제들이…. 말이 안되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

“부드러운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합니다. 패배한 사람들은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엄격합니다. 가파를 수밖에 없지요. 늘 패배한 사람, 가파른 사람, 그런 사람이 가능성 있는 사람 아닌가. 부드러운 사람은 끝장난 사람입니다.”

이어진 건 최근 김윤식 교수가 많이 부드럽고 친절해졌다는 문학동네의 소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좀 바뀐 것은 사실인 듯하다. 최근 그는 10년간 준비해온 ‘백철연구’(소명출판)라는 책을 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문학평론가 백철의 삶과 문학세계를 그린 평전 형식의 연구서이다. 백철은 우리 문학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흔히 백철만큼 글을 많이 쓴 사람도, 알맹이 없는 글을 쓴 사람도 없다는 말을 하지요. 그는 새로운 사조를 늘 받아들였고, 저널리즘적인 글쓰기를 했고, 계속 시류를 좇으면서 살아온 사람이지만, 우리 가운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소. 반드시 깊이있고 일관되게 살아온 삶만이 아름다운지 질문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백철이 국어학과 고전문학으로 양분된 국어국문학과에 현대문학이란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며, 따라서 오늘날 대학의 현대문학 전공자들은 그에게 큰 빚을 진 셈이라고 말한다. 부제에 단 것처럼 ‘한없이 지루한 글쓰기, 참을 수 없이 조급한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문학사 연구와 현장비평을 해온 백철의 모습은 김윤식 교수 자신의 자화상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그는 백철 연구서를 쓰면서 두 가지가 몹시 부러웠다고 한다. 첫째는 그가 천도교라는 배경을 가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점이라고 한다. 두번째는 그의 인생에 늘 건강과 행운, 기회가 따랐다는 점이다. 품위없는 말인지 모르지만 잇따른 상처로 인해 처녀장가를 네 번이나 간 것도 부럽다는 농담까지 했다. 가파르고 치열한 인생만 가치있는 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김윤식 교수는 요즘 식민지시대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어마저 식민지로 삼으려고 했던 1942~45년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일본어문학, 친일문학에 대한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다. 그런 그로서는 문인들의 친일행위에 대한 평가를 놓고 누구보다 깊게 고민했을 법하다.

“작년에 이런 일이 있었지요. 수필가 김소운의 아들이 아버지를 친일작가로 매도한 사람들에게 원망을 털어놓았지요. 그의 말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친일작가라는 것도 맞습니다. 일제에 협력한 글이 명백히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그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준 정부도 맞습니다. 그가 조선시를 일본어로 옮긴 건 큰 업적입니다.”

요컨대 민족국가의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해석돼온 친일이란 문제는 생활사라는 큰 틀 속으로 흡수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친일과 반일의 이분법을 벗어나 다각적인 사고와 조명이 가능해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동시에 국가 민족 표준어 등 근대의 큰 틀이 깨지면서 소설 역시 그 역할을 잃어버렸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상상력을 보십시오. 그리고 일본 만화를 보세요. 자기, 아니면 우주입니다. 소설이 담당해왔던 중간항인 역사나 사회는 빠져있지요. ‘창공의 별’은 사라지고 아주 유치한 동물적 단계와 아주 높은 우주적 단계만 남아있습니다.”

그는 최남선이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지 100주년인 올해를 지나 새로운 한국문학 100년을 내다보는 마당에 ‘소년을 우포늪(배한봉의 시집 제목)에 세워서 우주 가로지르기(비틀스의 노래 제목)’라는 화두를 던진다. 환경적 상상력, 우주적 상상력이 없이는 앞으로 100년을 헤쳐나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상상력을 현재의 소설에서 볼 수 있기에 그는 책을 덮지 않는다.



젊을 적, 그는 그룹 ‘비틀스’를 좋아했다. 그는 ‘비틀스’의 음악이 2차 세계대전 전승국의 자신만만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저항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한다. 유럽 패전국의 아버지들이 퇴폐와 절망, 실존주의로 빠져든 것과는 상반되는 지점이다. 그런 그가 좋아하는 비틀스의 노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러시아 무인화물우주선에 실려 우주 공간에 울려퍼진다는 내용이 얼마전 발표됐다. 고희를 넘긴 김윤식 교수의 상상력 역시 루카치가 바라보던 창공의 별에서 그 배경인 우주로 옮아가고 있는 듯하다.

▲김윤식은 누구인가…한국 근대문학 비평의 거목

1936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났다. 마산상업고등학교를 거쳐 59년 서울대 사범대학 국문과, 62년 서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62년 월간 ‘현대문학’에 ‘문학사방법론 서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68년 서울대 교양학부 전임강사가 되었다. 76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79년 서울대 인문대 교수가 되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근대성의 의미를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으로 밝히는 데 주력하였으며, 특히 1920~30년대의 근대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이 가지는 근대상의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연구대상은 시·소설·비평 등 모든 영역을 포함하며, 이광수·임화·이상·김남천·염상섭 등 수많은 문인의 작가론을 발표했다. 73년 김현과 공동으로 펴낸 ‘한국문학사 논고’에서는 기존의 문학사와는 달리 근대문학의 기점을 영·정조까지 거슬러 올라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왜 '한국문학사'가 아니라 '한국문학사 논고'인지?). 소설을 중심으로 기성작가와 신인작가를 구별하지 않고 문학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현장비평도 활발하게 펼쳐왔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임화 연구’, ‘이상문학텍스트연구’, ‘오늘의 작가 오늘의 작품’, ‘일제말기 한국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한윤정기자)

08. 02. 21.

P.S. 물론 이제 오랫만에 들어야 할 노래는 비틀스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다(http://www.youtube.com/watch?v=Rj-4t9drUlM). "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아무것도 나의 세계를 변하게 할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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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주적 상상력
    from True&Monster 2008-02-22 00:26 
    “요즘 젊은 세대의 상상력을 보십시오. 그리고 일본 만화를 보세요. 자기, 아니면 우주입니다. 소설이 담당해왔던 중간항인 역사나 사회는 빠져있지요. ‘창공의 별’은 사라지고 아주 유치한 동물적 단계와 아주 높은 우주적 단계만 남아있습니다.” - 김윤식 '우주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다 먼지에 불과해'라고 쉽게 나불거리는 일본 만화 속의 캐릭터들은 결국, 자신의 유아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냉소해버린다. - 노..
 
 
로쟈 2008-02-2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담당해왔던 중간항인 역사나 사회가 빠진, 자기 아니면 우주인 세계는 달리 말하면 병리적인 세계죠(혹은 다른 세계). 얼마간의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읽습니다...

yoonakim 2008-02-2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이 대뜸 떠오르는 인상적인 대목이었습니다. 자기와 우주 밖에 없는 이상한 세상, 웅크린 소녀가 핸드폰을 움켜쥐고 우주 공간에 떠있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명확한거 하나도 없고 일주일이 넘는 시간 차를 두고 지구의 남자친구와 문자교환을 합니다. 시간 차는 일주일, 이주일, 한달, 일년 그렇게 길어져 가고...재미있죠?

로쟈 2008-02-22 12:5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만화를 잘 안 봅니다.^^

사량 2008-02-22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김용섭 교수가 타계했나요? "역사학계의 고 김용섭 연세대 교수"라는 표현이 있어서요. 뉴스들을 뒤져보긴 했는데 확인을 못하겠네요. ㅜㅜ

로쟈 2008-02-22 12:54   좋아요 0 | URL
타계하셨다면 아주 최근일 텐데, 저도 부고는 보지 못했습니다...

anathema 2008-02-22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윤식은 누구인가…이명원에 의해 표절 들통난 사람.

로쟈 2008-02-23 01:30   좋아요 0 | URL
먹을 것도 없는 상을 차리면서 그릇마저 깨먹는 이들보다야 윗길이라고 봅니다...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이 내주부터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고 한다. '도시의 기억'을 꼬박꼬박 챙겨읽지는 못했지만 고종석의 연재기사들은 일주일에 하루이긴 해도 지난 몇 년간 아침신문을 읽는 한 가지 즐거움이었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이란 새 주제는 이미 발표한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6)과 제목이 겹친다. 좀 얇은 책이어서 아쉬움을 가졌었는데 새로운 부피를 더해주었으면 싶다. 아니 부피보다는 '볼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모국어는 아니더라도 볼륨은 부피가 갖고 있지 않은 관능을 내포하고 있기에. 더불어,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문학과지성사, 1991; 동문선, 2004)도 내내 곁눈질해야 할 책이겠다. 새 연재 덕분에 봄이 예년보다 일주일 빨리 오고 있다...

  

한국일보(08. 02. 20) 우리시대 美文家, 낱말에 배인 분홍빛 관능을 추출하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다소 삿되게 빌어 쓰자면, 사랑의 말이야말로 ‘모국어의 속살’에 해당할 것이다. 감각이 먼저 귀 기울이는 사랑의 저릿한 말들. 그 뜨겁고 내밀한 언어들이 이제 흙빛 종이 위에 흐벅지게 만개한다. 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이 <도시의 기억>에 이어 새 기획 시리즈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을 매주 월요일 연재한다. 우리말 가운데 사랑을 연상시키는 단어 하나씩을 주제어로 삼아 그 쓰임새, 어원, 상징, 이미지 등을 풀어놓는, 사랑의 자기장에 놓인 한국어들에 대한 관능적인 에세이다.

“슬프게도 여성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내게 로맨스의 대상이 아니지만, 나이 쉰이 되니까 유독 늙은 기분이 들어요. 그 늙은 기분과 싸우려는 거죠.” 연재를 앞두고 집필실에서 만난 이 미문의 스타일리스트는 “지천명이 되고 나니 외려 발악을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환기시키는 새 시리즈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은 199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같은 제목으로 나온 책의 후속편. 30대 후반에 씌어진 사랑의 말과 50세에 씌어지는 사랑의 말들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닮았을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자못 궁금하다. “전작에서 사랑에 관한 직접적인 말들을 어지간히 써먹었기 때문에 이번엔 사랑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말들이 주를 이룰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보면, 감각과 관련된 말들, 정서와 깊이 연결된 말들에 대한 에세이가 될 듯합니다.” 정서적 환기력이 떨어지는 한자어는 표제어에서 배제된다.

아직 주제어 목록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고 위원은 ‘입술, 가냘프다, 아름답다, 어지럼, 누나, 할퀴다, 꽃샘, 매끄럽다, 수줍다, 아깝다, 축축하다, 열없다, 얼굴, 보조개’ 같은 말들을 사랑의 말로 예시했다. 이 열거항들은 숙명적으로 필자가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판타지와 편견들을 드러낼 터. 혹자는 ‘가냘프다’에서 살찌지 않은 여체라는 억압적 당위를 떠올리며 쓰는 이의 정치적 올바르지 않음을 꼬집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존재의 연민에 대한 은유라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가냘프다’를 생각했을 땐 여성의 몸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람 마음이 여리게 되는 상태를 떠올렸어요. 물론 마음의 여림이라는 것도 상황에 따라 정치적으로 그릇될 수 있죠. 하지만 주제어를 뽑을 때 정치적 올바름은 고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건 사랑의 말에 대한 얘기지 정의의 말에 대한 얘기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는 “어떻게 쓰든 이 연재물은 압도적으로 판타지와 편견의 글이 될 것”이라며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앞선 연재물 <도시의 기억>은 그에게 “사사로운 기억과 도시의 객관적 정보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고 한 게 결국 어중간함을 낳은 것 같은 아쉬움”을 남겼다. 연재 서두에 외국 도시로 대상을 한정해 서울편을 쓸 수 없었던 것도 섭섭하다. 서울에 대해 썼다면 24시간 연중 무휴로 깨어있는, 그가 좋아하는 이 도시의 활기에 대해 썼을 것. “<도시의 기억>이 그 도시를 아직 안 가본 사람들에게라면 일종의 영혼의 지도나 역사의 지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거기 가보거나 살아본 사람들한테라면 어떤 기억의 부싯돌이 될 수도 있을 테고.”

1년간 <도시의 기억>을 연재하며 쌓인 문장의 ‘여독’을 풀고 있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름다운 문체의 비법을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글쎄, 문체라. 문체가 문장의 형식적ㆍ양식적 개성 같은 걸 뜻한다면 내 문장에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노력이 아니라 의식을 통해서 생기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 말투를 따라 목소리 하나 더 보태는 일은 어지간하면 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식.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쓰지 않을 말투로 말해야겠다는 의식.” 미문가가 편찬하는 남 다른 말투의 사랑어 사전은 25일 첫 장을 선보인다.(박선영기자)

08. 02. 20.

P.S. 예전에 따로 적은 바 있지만 고종석은 '문제적 작가'가 아니라 '문체적 작가'이고 '문채적 작가'이다. 따로 소설들을 쓰기도 하지만, 그의 산문들을 분류해 넣을 칸이 한국문학에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보다 미려하지 못한 산문들을 쓰는 시인/작가들이 드물지 않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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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08-02-2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종석님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글이 참 반갑네요. <기자들>의 감동은 정말 대단했어요. 그 현란한 언어구사에 넋이 나갔더랬지요. <유럽통신>은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저는 참 열광하는데 어쩐지 마이너 작가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아쉬웠었는데 이 글을 계기로 독자층이 굉장히 더 넓어졌으면 좋겠네요..

아..료자님이 혹시 아실런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경북대학교 대학원 문학치료학과에 입학할까 싶은데 혹시 이 분야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좀 있으신가요? 학계에 계신터라 한 번 여쭤봤네요.

여튼..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매번.

로쟈 2008-02-21 22:50   좋아요 0 | URL
'문학치료학과'도 생겼나요? 졸업 후엔 개업을?!^^

가넷 2008-02-22 13:53   좋아요 0 | URL
문학치료라 해서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독서치료를 말하는 모양이네요.-.-; 제가 알기로는 박사과정은 독서치료 석사학위 소지자 외에 문학,심리학, 문헌정보학 등의 석사 중에서 관련 논문을 썼을 경우에 입학이 가능하다고 들었던 것 같네요. 그 대학원과정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고,

http://www.bibliotherapy.pe.kr/index.html

이곳에 가시면 독서치료와 관련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다중>(세종서적, 2008)이 번역/출간됐다. 두 사람의 대표작인 <제국>(이학사, 2001) 이후에 '다중(multitude)'은 하도 많이 회자되는 말인지라(물론 <제국>의 역자인 윤수종 교수는 '대중'이라고 옮겼었지만) 두 사람의 이 후속작은 이미 번역된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하지만 정작 이번에 출간된 게 '진짜' <다중>이다. 2004년 영어판이 나온 지 4년만이다. 한데 책소개를 위해서 관련자료들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건 <다중>, 곧 네그리와 하트의 정치적 기획을 지지하는 글이 아니라 비판하는 글이다. 미리 김부터 빼놓는 듯도 하지만 비판적인 리뷰는 책의 '급소'와 '논쟁점'를 파악하는 데 요긴하기에 미리 일독해봐도 좋겠다. 참고로 이번에 나온 국역본은 '자율평론' 멤버들이 옮겼으며 '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가 그 부제이다.

 

프레시안(05. 12. 26) "'제국과 다중'론은 미국식 자유주의에의 투항"

[프레시안 사미르 아민/정치경제학자,제3세계포럼 디렉터] 미국의 좌파 잡지인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가 최근호(2005년 11월호)에 〈제국(Empire)〉이라는 저서의 공저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좌파 이론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관점과 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글 '제국과 다중'을 게재해 전세계 좌파 진영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국내에는 <유럽중심주의>, <주변부 자본주의론>,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가치법칙과 사적 유물론>, <모택동주의의 미래> 등이 소개됐었다.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



〈제국주의와 불균등 발전〉 등 30여 권의 저서를 낸 이집트 출신의 세계적인 정치경제학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민은 이 글에서 '제국(Empire)'과 '다중(Multitude)'이라는 키워드로 오늘날의 세계체제를 설명하는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이 "미국식 자유주의에 투항하는 이론"이며, 두 사람의 이론적 관점에서는 "지배자본이 강요하는 일방적 세계화"를 극복해내고 진정으로 민중에 이익이 되는 "진보적 대안"을 창출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과 다중' 이론은 이들의 저서가 국내에서 번역, 출판되면서 진보적 이론가와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일반 지식인과 대중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 왔다. 그 과정에서 일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대체로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데 그친 감이 있다. 〈프레시안〉은 이런 점에서 아민의 글이 하트와 네그리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먼슬리 리뷰〉의 허락을 얻어 그 번역문을 싣는다. 원문은 〈먼슬리 리뷰〉의 웹사이트(
www.monthlyreview.org/1105amin.htm)에서 볼 수 있다.

아울러 이 번역문을 게재하는 것을 계기로 〈프레시안〉은 앞으로 〈먼슬리 리뷰〉에 게재되는 글 가운데 국내 독자들이, 그 논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오늘날의 세계와 담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글을 선별해 비정기적으로 번역 소개할 예정이며, 이렇게 하는 데 대해 〈먼슬리 리뷰〉 측과 합의했음을 밝혀둔다.(편집자)



제국과 다중: 제국주의 이후의 제국인가, 제국주의의 새로운 확장인가?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는 현재의 세계체제를 '제국'이라고 부른다.(주) 두 저자가 '제국'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제국'을 구성하는 주요 특징들을 '제국주의'를 규정하는 특징들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다. 두 사람의 정의에 따르면 '제국주의'는 엄격하게 정치적인 차원, 즉 '어느 한 국가의 공식적인 힘이 자국의 국경 너머로까지 확장된다'는 차원으로 축소된다. 따라서 제국주의가 식민주의와 혼동되고, 결국은 식민주의도 제국주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돼버린다. 이런 공허한 주장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적 담론에 영합하는 것이다. 이 담론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식민주의 제국을 구축하려는 열망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따라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가 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그렇다고 부시(미국 대통령-역주)는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이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제시해주는 분석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이 분석은 자본, 특히 지배적인 자본의 축적에 필수요건이 되는 것들을 식별해내는 데 초점을 둔다. 따라서 이 분석은 지구적 차원에서 부와 권력의 양극화를 낳으면서 제국주의의 정치경제적 체제를 구축하는 메커니즘을 발견해낼 수 있게 해준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정치경제학파 사람들이 그동안 제시해 온 모든 분석들을 일관되게 무시한다. 그 대신 두 사람은 모리스 뒤베르제(프랑스의 정치학자-역주)의 법칙주의나 저속한 앵글로색슨 식 경험주의 정치학을 채택한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제국주의'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여러 다양한 제국들, 예를 들어 로마제국, 오스만제국, 영국 또는 프랑스의 식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러시아와 소련 등에 두루 적용되는 공통의 특징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제국들 각각이 붕괴한 것도 '서로 유사한 원인들'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이런 견해는 어떤 진지한 역사 독해라기보다 피상적인 저널리즘에 훨씬 더 가깝다. 더욱이 두 사람의 견해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특히 현재 유행하는 경향에 영합하는 것이다.

지난 20년 간에 걸친 자본주의와 세계체제의 전개과정에는 당연히 모든 영역에서의 질적인 변환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과학과 기술의 혁명은 그 자체로 최근까지 국가이익의 수호와 관련되던 수준을 넘어 지구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관리의 형식들도 창출할 것이라고 보고, 더 나아가 이것은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보는 지배담론을 두 사람이 신봉한다는 문제점도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지배담론은 심각한 단순화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사실 자본의 지배적 부분들은 세계 자본주의의 초국가적 공간에서 활동하지만, 그들에 대한 통제권은 여전히 확고하게 국가적인 성격을 가진 금융그룹들(예를 들어 미국이나 영국 또는 독일에 근거를 둔 금융그룹들을 말한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유럽'이라는 곳에 근거를 둔 금융그룹은 존재하지 않으니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의 수중에 들어있다.

게다가 이 체제의 경제적 재생산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 변종들을 만들어내는 '정치'의 행위들과 병행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공허하고 통속적인 자유주의만 자본주의 경제가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볼 뿐 그 외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초국가적인 세계국가는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세계화에 관한 지배담론은 회피하고 있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질문을 던져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중심 자본주의의 지배적 부분들(즉 과점집단들)의 지구적 축적 논리와 그런 체제의 정치를 지배하는 논리 사이의 모순이다.



발음이 듣기 좋은 '제국(Empire)'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하트와 네그리가 제시한 체제는 세계화의 모습에 대해 지배담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초국가화(超國家化)'가 이미 제국주의 및 제국주의적 갈등을 근절시키고 제국주의를 '중심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체제로 대체했다. 그리고 제국주의적 관계의 정의인 '중심과 주변 간의 대립'은 이미 극복됐다.

여기서 하트와 네그리는 제3세계 안에도 부(富)의 제1세계가 존재하고 제1세계 안에도 빈곤의 제3세계가 존재하므로 제1세계와 제3세계를 대치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진부한 담론을 채택한다. 물론 미국에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도에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전히 우리는 모두 계급적으로 나뉜 채 세계 자본주의에 통합된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사회구성과 미국의 사회구성이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일부 사람들의 적극적인 역할과 그 나머지 사람들의 수동적인 역할, 즉 세계화된 체제의 요구에 단지 적응하기만 하는 역할을 구분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현실에서 보면 이런 구분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타당하다. 현대 역사의 초기단계(1945~1980년)에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피지배 국가들 사이의 역관계가 그래도 주변부 국가들의 '개발'을 의제에 올리고 피지배 국가들도 세계의 변혁을 위해 스스로 적극적인 행위주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 형태였다. 그런데 그런 관계들이 오늘날에는 지배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극적으로 변했다. 개발의 담론은 사라졌고, 그 대신 적응의 담론이 들어섰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세계체제(즉 '제국'이라는 것)는 과거의 세계체제에 비해 제국주의의 성격을 덜 갖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갖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가 만약 지배자본의 대표들이 글로 써놓은 것들에 주목하기만 했다면 위와 같은 사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두 사람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미국의 기성 주류세력(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의 주요 분파들은 모두 다 자신들의 계획이 지향하는 목표를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그들의 목표는 다른 국민들에게 해악을 초래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의 낭비적 생활방식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지구의 자연자원에 대한 접근권을 독점하는 것, 그 어떤 중간 규모의 세력이라 할지라도 그 세력이 워싱턴의 지시에 저항할 수 있는 경쟁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지구에 대한 군사적 통제를 통해 이런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는 완전히 패배했고 세계화된 형태로 자유주의가 복원된 것은 객관적으로 진보를 의미한다는 유행담론을 채택했다. 체제에 결함이 있다면 그 결함은 체제와의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체제 자체의 논리 안에서 교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네그리가 범대서양주의(대서양 양안에 위치한 미국과 유럽 각국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입장-역주)적 유럽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동참해 워싱턴에 종속적인 극단적 자유주의 헌법을 제정하려는 그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실제 역사는 자유주의 선전가들이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르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에서,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그리고 제3세계의 급진 민족주의 성향을 띤 대중주의 경험들 속에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지난 30여 년 동안 촉발하고 고무해 온 사회적 변혁들은 자본으로 하여금 자신의 지배논리가 초래한 사회적 요구들에 적응하도록 강제하고 제국주의적 야망들을 억제했다. 이런 사회적 변혁의 프로젝트들은 급진적 성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데서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적 변혁들은 대단한 것이었고, 대체로 보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 역사의 초기에 시작된 이런 변혁의 프로젝트들이 훼손되고 붕괴됨으로 인해 가능해진 자유주의의 복원은 잠정적인 것으로서 일보전진이라기보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문제제기를 올바로 하려면 하트와 네그리의 자유주의적 담론을 폐기해야만 한다.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던져진 질문들에 대해 그동안 중요한, 그리고 물론 다양한 이론적 답변들이 나왔고, 그 중에서 특히 새로이 다듬어진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나온 이론적 답변들이 눈길을 끈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이론적 답변들을 무시한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이 제시한 이론적 답변의 개요를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겠다.

과거에는 제국주의가 복수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서로 영속적으로 갈등을 빚는 모습으로 존재했다. 과거에는 과점적 자본집중의 증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삼극동맹(三極同盟, the triad, 미국과 유럽 및 일본)이라는 집단적 제국주의가 등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자본의 지배적 부분들은 삼극동맹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 체제로부터 나오는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이 체제에 대해 통합적인 정치적 관리를 하려는 시도는 복수의 국가들이 존재하는 현실과 충돌한다. 삼극동맹 내부의 모순은 지배적 과점자본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각 국가가 대변하는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 모순을 "경제는 제국주의 체제의 파트너들을 통합시키지만, 정치는 관련 국가들을 분열시킨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해 왔다.



다중은 민주주의를 형성하는가, 자본의 헤게모니를 재생산하는가?

자본주의에 고유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전면에 내세운다.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처음 성립된 계몽주의 시대에는 개인은 교육을 받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 따라서 이성(理性)을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아는 부르주아여야 했다는 사실을 지금의 자유주의는 도외시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자유주의는 자유를 향한 인간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불멸의 진보였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운동인 사회주의도 개인을 부정함으로써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에 의해 협소한 한계 안에 갇히게 되거나 불완전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단지 형식적인 것만이 아니라 분명 실질적인 것이었다.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런 진술에 필수적 보완조건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고서는 더 이상 민주적 진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자 한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진보는 분리될 수 없다.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회주의들은 이 보완조건을 존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민주주의 없이도, 또는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만큼의 민주주의만 있어도 진보를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 지점에서 한 마디를 더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지지자들의 대다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더 이상의 요구를 거의 하지 않고 있거나, 자본주의의 원칙들을 의문시하는 것은 차치하고 가시적인 사회적 진보 없이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범주의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섰는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개인주의적 토대는 개인을 역사의 궁극적인 주체로 설정한다. 그러나 개인이 역사의 주체라는 주장은 구체제(계몽주의의 정의에 따르면 구체제는 개인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체제였다)의 역사에도 들어맞지 않고, 계급이 역사의 진정한 주체가 된 시기에 계급들 사이의 갈등을 토대로 해서 성립된 체제인 자본주의의 역사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의 발전된 사회주의에서는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우리가 바로 그런 역사적 전환점에 이미 도달했으며, 따라서 국가나 민족과 더불어 계급도 더 이상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대신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이미 됐거나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도달한 전환점에서는 두 사람이 말하는 '다중', 즉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들 전체'로 정의된 '다중'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전환점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하트와 네그리의 글은 아주 모호하다. 두 사람은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로의 이행, 비물질적인 생산, 새로운 네트워크 사회, 탈영토화의 출현을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또 규율사회(disciplinary society)로부터 통제사회(society of control)로의 이행에 관한 푸코의 명제들을 거론한다.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말해져 온 모든 것, 각자의 관점에 따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또는 상투적이고 당연해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든 강력히 논박해야 할 것이든, 모든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거대한 단지 안에 뒤범벅 상태로 집어넣어진다. 그러나 현재 유행하는 그 어떤 주장도 쉽게 확신하게 하지 못한다. 네트워크 사회에 대해 마뉴엘 카스텔이 정식화한 이론적 주장이나 제러미 리프킨과 로버트 라이히를 비롯한 미국의 대중적 저술가들이 퍼뜨린 생각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모든 생각들의 뒤범벅 속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새롭고 중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나는 문제의 '다중'이라는 용어가 창안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시기는 20세기를 형성해 온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운동들(즉 노동자들의 운동, 사회주의자들의 운동, 민족해방운동)이 패배한 시기다. 그 중 어떤 패배의 경우에도 그 패배에 내재된 전망의 상실이 일시적인 불안정을 낳는 동시에 그 불안정을 정당화하는 한편, 원하든 원치 않든 그 불안정이 세계를 변혁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된다는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준 이론적 주장들을 양산한다. 그러나 과거의 '리메이크'를 제시하는 것보다는 과거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것에 의해, 그리고 모든 측면에서 사회적 진화에 의해 생겨난 새로운 현실들을 효과적으로 통합하는 것에 의해 점진적으로 새로운 이론적 정식화가 견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는 다양한 기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그런 기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트와 네그리가 다중에 관한 자신들의 담론으로부터 이끌어낸 명제들은 그들 자신이 정식화한 형태로도 그들 자신이 처해 있는 곤경을 증언해준다. 이런 그들의 명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될 가능성을 막 보이기 시작했다는 '민주주의'에 관한 명제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은 다중을 민주주의에 구성요소적 세력이 된다고 정의한다. 이는 참으로 엄청나게 단순한 명제다. 우리가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여기저기서 실시되는 선거들 가운데 일부와 같이 자유주의 권력들, 특히 워싱턴의 권력을 만족시키는 것이 분명한 소수의 표피적 겉모습들을 제외하면, 필수적인 민주주의든 미래에 실현가능한 민주주의든 민주주의는 지금 위협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가 그 정당성을 상실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상황은 종교적 또는 인종적 근본주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고슬라비아에 인종관료주의(ethnocratic) 정권이 들어섰던 것이 민주적 진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예를 들어 러시아의 독재정권에 봉사했던 것과 같은 한 범죄집단의 권력을 무너뜨리는 대신 미국 중앙정보국(CIA)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는 또 다른 범죄집단의 권력을 세우는 선거가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진보인가, 아니면 하나의 조작된 소극(笑劇)인가를 묻고 싶다. 지구를 통제하기 위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전개가 미국 국내에서도 기본적인 민주적 인권을 위축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공격이 저질러지는 데 발단이 된 것은 아닐까? 유럽에서 주요 우파 및 좌파 정치세력들로 하여금 서로 손을 잡도록 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자유주의 콘센서스는 선거과정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모든 질문들에 대해 하트와 네그리는 침묵하고 있다.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하트와 네그리의 명제는 '다중의 다양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다중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을 정의하는 형식과 내용은 물론이고 그 다양성을 창출하거나 위축시키는 힘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하트와 네그리의 모든 글에 걸쳐 중대한 모순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화는 중심과 주변 사이의 격차를 축소시킨다. 사실 그렇지 않다면 세계화는 계속 제국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격차가 더 벌어지고 세계적 차원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의 체제가 구축되면서 하트와 네그리가 말한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두 사람이 말한(사실은 북미와 서유럽 사회들에 대해서만 그들이 말했지만) 전체 체제의 지역적 구성부분들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성은 그 자체로 다양한 성격을 갖는다. 미국에서와 같이 인종적 또는 준 인종적 지역사회들도 있고, 종교와 언어상으로 다양한 지역들이 있으며, 아마도 변혁된 사회현실에 맞게 다시 정의하는 것이 좋을 듯한 계급들도 여럿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다양성들이 열거된 뒤에도 실제로 이야기된 것은 거의 없다. 그런 것들은 사회체제의 생산, 재생산, 그리고 변혁의 과정에서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가? 내가 '정치문화(political culture)'라고 부르는 것을 개념화하지 않고서는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분야에서도 역시 진지하고 적극적인 기여들이 있다. 그 중에는 분명 논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무시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도 하트와 네그리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여를 한 것이 전혀 없다.



개인을 역사의 주체로, 다중을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구성요소적 세력으로 역전시켜 설정한 것은 이상주의적이고 관념적인 발상이다. 이런 발상은 현실의 사회관계들에는 아무런 변혁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 사고의 세계에서만 역전이 일어난 것과 같다. 내가 여기서 사고 또는 사상은 늘 현실의 수동적인 반영일 뿐이라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견해를 각각의 '심급(審級)'이 지닌 자율성을 인정한 토대 위에서 발전시켜 왔다. 사상은 시대를 앞설 수 있다. 나의 문제제기는 이런 일반적인 명제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하트와 네그리의 사상을 포함해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시대를 앞선 것인가, 아니면 아직 극복되지 못한 '패배한 시기'의 현실을 단순하면서도 혼동되게, 그리고 모순적으로 표현하는 것일 뿐인가? 패배한 시기의 여건에서는 다중이 확정적이지 않고 다양하며 분절된 상태의 '다양한 것들'을 구성하는 실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선거에서의 강력한 다수와 같이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듯한 외양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것 이상이 아니며, 역사에서 흔히 그랬듯이 하나의 '접합되었지만 내부적으로 모순을 일으키는 구조'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다중에 관한 이야기는 1970년대의 노동자주의(workerism)가 그랬던 것과 같이 시간이 흐르면서 잊힐 것이다. 이는 〈제국과 제국주의(Empire and Imperialism)〉(Zed Books, 2005)라는 책에서 아틸리오 보론(Atilio Boron)이 지적한 대로 '부분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에의 고착'이 두 경우에 다 해당되기 때문이다.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에 배후로 깔려 있는 정치문화는 미국 자유주의의 정치문화다. 이 정치문화는 미국독립전쟁과 그 당시에 채택된 미국헌법을 근대 개막시기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본다. 하트와 네그리에게 영감을 준 한나 아렌트는 미국독립전쟁이 "무한한 정치적 자유 추구"의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오늘날에 비로소 '세계적 차원에서 최초로 가능해진' 민주주의의 구성요소적 세력인 '다중'의 등장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세계의 미국화'가 승리했음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너도나도 미국 자유주의로 몰려드는 경향은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다른 경로들을, 특히 한나 아렌트가 프랑스혁명을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제한된 투쟁'으로 축소시키고 그렇게 축소된 프랑스혁명에 미국독립전쟁을 대조시키면서 정식화한 '옛 유럽'의 다른 경로에 대한 평가절하를 수반한다. 냉전의 시기에는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등 근현대의 위대한 혁명들이 모두 폄하당해야 했다. 2차대전 이후에 반혁명의 선봉이 된 미국의 자유주의 담론에 따르면 그런 혁명들은 애초부터 전체주의 경향에 의해 오염된 것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이 필요로 하는 것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의문시하지 않는 개척적인 혁명을 이루고 그런 내용의 헌법도 갖춘 '미국 모델'만이 살아남은 것은 그런 혁명들, 즉 자코뱅파에 의한 프랑스혁명의 급진화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의 요구사항들에 의문을 제기했던 혁명들의 유산이 폐기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문화에서는 프랑수아 퓌레(프랑스의 역사학자-역주)가 퍼부은 것과 같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비난, 흔해빠진 반소비에트주의, 그리고 마오주의에 대한 공격을 주요 반혁명 메뉴로 삼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하트와 네그리는 완전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미국의 헌법은 대중적 일탈의 위험성을 완전히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방향으로 작성됐음을 확인해주는 내용의 비판적인 글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고, 게다가 이런 글들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씌여졌다. 그럼에도 하트와 네그리는 이런 글들을 체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이 이룬 성공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들과 같이 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는 유럽의 반동세력 모두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예를 들어 지스카르 데스탱은 극단적 자유주의 유럽 프로젝트의 헌법은 미국의 헌법만큼이나 '좋은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미래의 구성요소적 세력으로 설정된 다중의 열망은 아주 작은 것들로 축소됐다. 예를 들면 자유, 특히 다른 나라로 이주할 자유,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에 대한 권리와 같은 것들이다. 위에서 말한 유럽의 프로젝트는 미국 자유주의에 의해 허용되는 범위 밖으로는 감히 나가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태도를 분명히 보이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유산으로 인정될만한 것들은 모두 다 무시하며, 특히 미국의 정치문화에 의해 거부당하는 '평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새로 생겨나는 글로벌 시민권(또는 유럽 시민권)으로부터 그 효력을 근본적으로 빼앗는 정책들만 실행된다면, 그런 시민권이 변화의 추동력을 갖출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오늘날의 세계화된 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을 건설하는 데는 다른 요건들, 특히 전 세계에 걸쳐 대중 계급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욕구와 열망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하트와 네그리는 전세계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주변부 사회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게 분명하다. 세계의 상이한 국가들과 지역들의 구체적이고 고유한 여건들 속에서 효력을 가질 수 있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전술과 전략에 관한 논의가 하트와 네그리에게 흥미를 유발한 적은 결코 없었던 것 같다.

미국의 개입에 의해 촉진된 '민주주의'가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것과 같은 '선거 소극'을 넘어서는 것을 허용할까?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을 풍요로운 서구로 이주할 권리 정도로 축소시키는 게 합당한 일인가?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에 대한 요구는 정당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장된 소득이 실현되면 자본에게 노동을 고용하도록, 그리고 그 결과로 노동을 착취하고 억압하도록 허용하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파괴되어 그 시점부터는 누구나 자본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따라서 자신의 창조적 잠재력을 확인하게 되는 노동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단순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역사의 주체를 '개인'들로 축소시키고 그런 개인들을 '다중'으로 합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도전과제들에 상응하는 역사적 주체들을 재구축하는 일과 관련된 진정한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한다. 이 주제에 대해 하트와 네그리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답변을 해준 많은 기여들이 있다. 과거의 역사에 나타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들은 분명 현대 역사의 주제들을 '노동계급' 하나로 축소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과거의 네그리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주의자들에게 이런 질책을 할 수 있다. 그들과 달리 나는 피지배 계급과 민중에 이익이 되도록 사회적 역관계를 효과적으로 변혁하는 대중투쟁의 각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유능한 사회적 집단들로부터 형성되는 역사의 주체에 대해 분석해볼 것을 제안해 왔다.

현 시점에서 이런 분석을 하는 것은 제국주의 헤게모니 블록과 매판 헤게모니 블록이 행사하는 권력에 맞서 그것을 물리칠 능력을 지닌 민주적이고 대중적이며 국가적(민족적)인 헤게모니 블록의 형성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민주적, 대중적, 국가적(민족적) 블록의 형성은 나라마다 다른 구체적 여건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다중'이나 이와 비슷한 형태의 일반적인 모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민중과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긍정은, 하트와 네그리가 〈제국〉에서 찬양한 '지배자본에 의해 강요되는 일방적 세계화'를 '협의된 세계화(negotiated globalization)'로 대체함으로써 현재의 제국주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해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는 민주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는 세계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긴 이행과정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다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검토하는 것보다는 이와 같은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보다 깊이 있게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인 게 분명하다.



제국과 다중의 정치문화는 도전과제에 상응하는가?

몇 가지 문화적 요소들, 특히 종교적 요소와 인종적 요소를 불변으로 가정하고 그것을 전제로 인류의 다양성을 바라보는 관점, 즉 '문화주의(culturalism)'가 요즘 유행이다. '공동체주의'의 발달과 '다문화주의'를 인정하라는 권유도 바로 이런 역사적 관점의 산물이다. 이 관점은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과 다르다. 역사적 유물론은 계급투쟁을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형식 및 조건들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런 맥락에서 제시된 분석들은 나라마다 서로 다르게 거쳐 온 다양한 경로들을 이해하고, 각국의 사회 내부에, 그리고 세계체제의 수준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모순들을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분석들은 내가 '현대 세계에 사는 대중의 정치문화 형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내가 문제제기를 한 대상은 하트와 네그리의 저작들에 바탕으로 깔려 있는 정치문화다. 그 정치문화는 역사적 유물론의 전통 안에 있는가, 아니면 문화주의의 전통 안에 있는가? 나는 〈자유주의 바이러스(The Liberal Virus)〉(Monthly Review Press, 2004)라는 책에서 각국 국민의 정치문화를 형성하는 두 개의 경로, 즉 한편으로는 유럽적인 경로,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적인 경로를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이 책에서 내가 전개한 주장의 개요만을 간략하게 상기시키고자 한다.

유럽대륙의 정치문화는 계몽주의와 근대성의 창출, 프랑스혁명, 노동자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 및 마르크스주의의 등장, 러시아혁명 등 형성적 기능을 가진 일련의 대사건들에 의해 구축돼 왔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각각의 경우에 생겨난 '좌파'들에게 유럽 사회에 대한 정치적 관리권을 갖도록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유럽대륙에서 우파와 좌파가 대치하는 정치문화를 구축했다. 승리한 반혁명 세력은 프랑스혁명과 러시아혁명 이후에 그랬듯이 구체제의 복구, 정교분리로부터의 후퇴, 귀족집단과 교회의 담합,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등에 나섰다. 그들은 민중으로 하여금 지배자본의 제국주의 프로젝트를 지지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위해 1914년의 전쟁 발발 직전에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것과 같은 국수주의적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했다.

미국의 정치문화를 구성해 온 주요 사건들은 유럽의 경우와 매우 다르다. 미국의 정치문화를 구성해 온 사건들은 프로테스탄트 중 계몽주의에 반대하는 분파에 의한 뉴잉글랜드 건설, 식민지 부르주아들, 특히 노예를 소유한 지배적 부르주아 분파에 의해 수행된 미국독립전쟁, 변경(프런티어)의 확장을 토대로 한 대중과 부르주아 사이의 동맹 및 그 결과로 나타난 인디언 학살, 사회주의 정치의식의 성숙을 저해하고 그 대신 공동체주의를 들여앉힌 대규모 이민자 유입 등이었다. 미국에서 일어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우파의 영속적 지배'라는 미국 정치문화의 특징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미국은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장하는 나라가 됐다.

오늘날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싸움들 가운데 하나가 '유럽의 미국화'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유럽의 미국화'의 목적은 유럽의 문화와 정치적 유산을 파괴하고, 그 대신 미국에서 지배적인 문화와 정치적 유산을 유럽에 들여앉히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 반동의 길이 오늘날 유럽의 지배적 정치세력들이 추구하는 길이 돼 있고, 그 완벽한 유럽판이 유럽 헌법 프로젝트로 나타났다.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싸움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지배자본, 즉 '북(North)'과 지구인구의 85%를 차지하면서도 삼극동맹이 추구하는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남(South)' 사이의 싸움이다. 이 두 개의 중요한 싸움의 중요성을 하트와 네그리는 무시한다.

미국적 민주주의에 대한 두 사람의 섣부른 찬양은 북미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가들의 글들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이들 비판적 분석가는 '반미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애초부터 비판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로 간주돼 버리고 만다(그런데 누구의 눈에 그들이 그렇단 말인가? 미국의 기득권자들의 눈에?).

여기서 나는 아나톨 리븐(Anatol Lieven)의 저서 〈미국, 옳은가 틀린가(America Right or Wrong: An Anatomy of American Nationalism〉(Oxford University Press, 2004)의 내용을 인용하겠다. 리븐과 나는 이념적 출발점도 학문적 출발점도 다르지만, 이 책의 결론은 나의 결론과 대동소이하다. 리븐은 미국의 민주주의 전통(그 실재에 대해서는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을 이 나라의 태생적인, 그리고 거듭된 이민자들의 유입에 의해 지속되고 재생산된 '반계몽주의(obscurantism)'와 연결시켜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사회는 결국 영국 사회보다는 파키스탄 사회와 더 흡사하다. 게다가 미국의 정치문화는 서부정복의 산물이며, 이는 미국인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은 미국을 가로막지 않는다는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계속 살아갈 권리를 갖는 인디언으로 간주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미국 지배계급의 새로운 제국주의 프로젝트는 공격적 국가주의를 배증시킬 것을 요구하며, 배증된 공격적 국가주의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오늘날의 미국은 오늘날의 유럽이 아닌 1914년의 유럽을 상기시킨다. 모든 차원에서 지금의 미국은 '옛 유럽'에 비해 더 진보하기는커녕 1세기가량 뒤진 상태에 있다. 그런데 이 점이 바로 '미국 모델'이 우파에 의해,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미 자유주의에 투항한 하트와 네그리를 포함한 일부 좌파에 의해 선호되는 이유다.

"제국주의는 시대에 뒤진 구식 용어"라는 '제국'과 "개인이 역사의 주체가 됐다"는 '다중'이라는 두 개의 개념 외에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체념의 어조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현 단계의 자본주의 발전이 긴박하게 요구하는 것들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으며, 그런 자본주의 발전에 스스로 통합되는 것만이 그 결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패배한 시기'의 담론이며, 그 '패배한 시기'는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하트와 네그리의 담론은 자유주의에 투항한 사회민주주의의 담론이고, 범대서양주의에 투항한 유럽주의의 담론이다. 이런 종류의 담론과는 단호하게 결별해야만 좌파라는 이름에 걸맞은 좌파, 즉 민중의 이익을 위해 진보를 고무하고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좌파가 부활할 것이다.



(주)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 〈Empir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and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New York: Penguin, 2004). 두 저자는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된 많은 근본적인 쟁점들, 예를 들어 인지자본주의나 금융자본주의, 노동과 생산의 조직, 그리고 지정학과 관련된 쟁점들은 직접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갖고 내가 두 사람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이보다는 그들이 새로이 전개된 상황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채 상황으로부터 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어 자신들의 생각을 뒷받침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들을 나무라는 것이다. 문제의 상황변화에 대한 독해는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며, 그런 독해들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논하겠다. 〈제국(Empire)〉은 2001년 9월 11일(9.11 테러사건-역자주) 이전에 저술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자국의 물질적 이익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대중의 요구에 따라 인도주의적 이유에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군사적 개입에 나섰다고 주장하는 미국 정부의 저속한 선전의 담론을 하트와 네그리가 수용한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번역/이주명 기자)

08. 02. 20.

Майкл Хардт, Антонио Негри Империя EmpireМайкл Хардт, Антонио Негри Множество: война и демократия в эпоху империи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P.S. '제국'과 '다중'에 대한 옹호로는 역자의 한 사람인 조정환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541984). 참고로, <제국>과 <다중>은 각각 2004년과 2006년에 러시아어본이 나왔다(특히 검은색 표지의 <제국>의 경우엔 자주 드나들던 모스크바대학의 구내서점에서 발견하고 잠시 놀랐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너무 고가에다가 무거워서 구입하진 않았지만).

<다중>을 잠시 뒤적이다가 '축제와 운동'이란 절을 잠시 먼저 읽어보았다. 그건 바흐친을 다루고 있어서이다. 두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문제들>)에서 '다성성'과 '대화성'이란 개념을 빌려다 '다중'을 설명하고 있는데, 내가 접한 바로는 '다중'에 대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정리해두어도 좋겠다. 그러자니 아쉬운 건 국역본 <도스토예프스키 시학>가 유감스럽게도 절판된 상태라는 점. '대중'을 위해서나 '다중'을 위해서라도 다시 나왔으면 한다. 아래는 1929년의 초판본 <도스토예프스키 창작의 제문제>(왼쪽)와 개정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의 제문제>(1963)을 합본해놓은 책(오른쪽, 1994). 둘다 희귀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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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2-20 02:04   좋아요 0 | URL
인구에 회자되었던 회수에 비할 때 <다중>의 국역은 그 시기가 조금 '늦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네요. 감사드립니다. 일독해봐야겠습니다.^^ 덧붙여, 제게도 또한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의 문제들> 국역본의 절판은 참으로 아쉬운 일들 중의 하나인데(국역본의 '성취도'는 어땠는지 사뭇 궁금합니다), 소장하고 있는 두 종류의 불역본도 새삼 다시 들춰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호모 사케르> 국역본의 출간 소식도 들리던데, 로쟈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8-02-20 09:24   좋아요 0 | URL
<시학>은 읽을 만한 번역입니다(아마도 저작권 문제로 다시 못 나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불어본은 두 종이나 나왔나 보군요. <호모 사케르>는 덕분에 확인했습니다. 사실 '비공식' 번역본도 갖고 있어서 절실하게 필요한 책은 아니지만 소문만 무성하던 책이 나와서 반갑긴 합니다. 내달에 읽어봐야겠습니다...

털세곰 2008-03-29 12:11   좋아요 0 | URL
오홋 1929년 초판본의 표지는 저렇게 생겼었군요...^^ 근데 로쟈님은 저런 사진들은 다 어디서 찾으세요?

로쟈 2008-03-29 12:14   좋아요 0 | URL
그냥 몇 군데 검색할 따름입니다.^^;
 

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건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이다. 그걸 옮겨놓으려고 하다가 최근 문제가 된 '영어 몰입 교육'에 관한 기고 기사를 대신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078000/2008/02/021078000200802180698012.html). 두어 주 넘게 화제가 되고 있으니 '이달의 토픽'이라고 부름직하다(물론 '이달의 과일'은 '오렌지'인 것이고). 더불어 아침에 읽은 박노자 칼럼도 덧붙여놓는다(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70368.html).

한겨레21(08. 02. 18) 지적 식민지, 잿더미가 된 우리 말

예나 지금이나 약소국이란 강대국의 말을 열심히 배워야 살 수 있는 운명에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이 운명의 힘은 생각보다 훨씬 더 완강해서, 때로 우리는 이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자주 의식의 산물에까지 이 힘이 깊이 스며들어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조선말과 조선글자를 일치시키겠다며 만든 훈민정음이, 오히려 중국 발음을 이상적인 발음으로 상정하고 이를 실현시키려는 표기원칙을 제시하는 일이 이런 예 중 하나라 하겠다(‘중국’을 ‘듕귁’으로 발음하라는 동국정운식 표기원칙이 이것이다).

이는 우리 문자의 어떤 면을 폄하하려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약소국의 운명과 이것이 배태하는 순응적 삶의 관성은 문화적 무의식의 뿌리를 점령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 강대국의 말은 ‘외국어’가 아니라 사실상 ‘모어’(母語)의 지위를 대체한다. 그리고 이런 언어의 식민화 상황은 삶의 식민화와 다를 바 없는 사태를 낳곤 한다. 여기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래도 언어와 사유 간의 소외 상황이 심화된다는 점일 것이다. 자기 사유를 담는 모어의 지위는 지극히 격하되는 반면, 자기 사유와 무관하게 힘을 가진 강대국의 언어는 물신화돼, 남의 나라 말이 아무런 내용도 없이 ‘신성한 기호’로 현성해 현실에서 전능한 힘을 얻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민족대학’도 ‘글로벌’하게 영어 강의
한국사의 주요 지배세력들의 일단의 출세 사례는 이 점에서 시사적이다. 원나라가 위세를 떨치던 13세기 고려 권문세족에는 몽고어 역관 출신이 많았고, 조선의 주요 개국세력인 조준이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 말을 잘하던 유명한 역관 집안 출신이었으며, 17세기 명청 교체기에 조선 부호들 중에는 다시 변한 세상에서 만주어 통역을 하며 상당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한 역관들이 많았다.

1900년대 초반까지 조선사 어디에도 특별한 자료가 없는 별 볼일 없던 이인직이 한일병합을 사실상 주도하고, <만세보>와 같은 친일 신문의 주필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도, 이완용조차 잘할 줄 모르던 일본어를 그가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광용의 <꺼삐딴 리>에는 ‘일본어-소련어-영어’로의 변신을 통해, 일제시대-인공 시절-1950년대 이후를 초인적으로 살아나오는 카멜레온적 인물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들은 더 이상 ‘반역사적’ 풍자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대통령조차 우리말로 대화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글로벌’ 시대에, 철저히 강대국의 언어만으로 자신의 생존전략을 극대화한 그들은 오히려 ‘글로벌 선구자’들로 재평가돼야 하는 게 아닌가? 이미 세상은 ‘민족대학’을 전통적 상징으로 외치던 국내의 한 유명 대학조차 ‘글로벌 프라이드’로 모토를 변경한 지 오래된 시대가 되었다. 이 ‘글로벌리즘’의 가장 대표적인 표상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이 이른바 ‘영어 강의’다. 단지 영문과에서의 영어 강의가 아니라,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강의에 의무적으로 영어 강의가 개설되기 시작했으며, 신임교수는 영어 강의를 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만 교수 임용 자격이 주어지는 학교들이 늘어가고 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시간강사를 하며 사는 나 역시 앞으로 전임교수가 되려면 이 서약서를 써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난 도무지 내 전공을 영어로 강의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난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를 어떻게 글로벌하게 발음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며, 이 민요조의 율격을 어떻게 글로벌하게 번역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대 한국어로도 번역이 쉽지 않은 <관동별곡>의 수많은 고전어들을 어떻게 영어로 번역해서 수업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춘향전>에 나오는 수많은 사투리나 해학과 풍자로 넘쳐나는 민중적 어법들, 자진모리·중모리·휘모리로 이어지는 그 숨가쁘며 때로는 유장한 우리말의 호흡을 어떻게 글로벌하게 낭독하고 번역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아륀지’ 요구하는 반지성적 흐름

뜻글자(표의문자)로 이루어진 한문학을 어떻게 소리글자(표음문자)인 영어로 번역할 수 있는지도 난감하다. 예컨대 ‘道’는 ‘road’(길)인가 ‘law’(법)인가, ‘logic’(논리)인가 ‘principle’(원리)인가, 그도 아니면 그냥 ‘do’로 번역해야 하는가? 한국어의 어법 체계를 흔들며 다의성을 증폭시키는 김수영 시의 그 모호하고 격렬한 언어의 정치성을 도대체 어떻게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촌스러운 나는 한국말로는 쉽게 떠오르는 서정주 시의 마술적 이미지와 토착적 방언의 세계가 도무지 글로벌 스탠더드화돼서는 이미지로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이 능력에 관한 한 현재에도 앞으로도 전혀 가망이 없다.

바야흐로 ‘최고경영자(CEO) 총장’ 시대다. 대학은 이제 학문이나 교육과는 전혀 무관한 장사꾼들의 천박한 시장논리가 대단한 선진 정책인 양 거짓 선전되고 또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먹히는 시장통이 돼가고 있다. 평생 토목건축업에 종사하며 부동산과 주식으로 부를 축적한 대통령 당선자가, 새 건물 짓기와 대학기금 마련 같은 것을 학문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신과 비슷한 CEO 총장을 인수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그 인수위원장이 주도가 된 얼치기 글로벌리즘이 과목 불문의 ‘영어 몰입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등 교육현장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려던 찰나에 간신히 ‘유보’됐다. 말의 식민화가 삶의 식민화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이 우리 역사의 뼈아픈 사례이긴 하지만, 21세기에 이러한 사례의 극복이 아니라 오히려 노골적인 심화의 모습을 보는 심정은 비통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무슨 민족주의적 감정의 발로가 아니라, 이러한 말의 식민화가 말과 사유의 괴리를 부추기며, 내용 없는 껍데기 언어의 물신성을 더욱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정책은 사고의 심도를 높이고 지적 시야를 넓히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적 관심이 아니라, ‘오렌지’를 ‘아륀지’로 발음할 줄 아는 기업형 인간이 필요하다는 ‘글로벌 장사꾼들’의 요구 이상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대한민국은 사물에 대한 복합적 사고와 세계에 대해 성찰적 시야를 열어주는 깊이 있는 독서가 아니라, 토익·텝스 시험을 위해 자신들보다도 훨씬 일천한 교양 수준을 지닌 원어민 영어 강사들에게 쩔쩔매고 매달리면서 소모되고 있다. 이 현상이 참으로 위태로운 것은, 이것이 사회 전체의 지적 깊이를 현저히 ‘얇고 평평하게’ 하는 반지성적 흐름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숭례문이 불타는 것만 보이는가
그리스어와 계보가 연결돼 있지 않은 독일어는 원래 유럽어 중에 가장 ‘미개한’ 궁벽한 언어였다. 그러나 그 ‘시골말’을 통해 인류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사유 능력을 보여준 것이 괴테나 칸트, 헤겔이나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같은 지적 거인들이었다. 그들 때문에 독일어는 세계적인 언어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진정으로 야심 있는 지도자라면, 자기 언어로 말하고 사고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강대국의 언어를 맹종할 것이 아니라, 우리 언어로 이루어진 지적 문화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우리말로 된 책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스스로 번역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말의 지위를 세계적인 것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지적 식민 백성으로 살아가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여, 숭례문이 불타는 것만 보이시는가? 이미 오래전에 잿더미가 된 것은 당신들의 사고요, 우리의 말이다.(함돈균 문학평론가)

한겨레(08. 02. 19) [박노자칼럼] ‘영어 제국’, 종말이 온다

1792년 가을, 혁명의 화염에 휩싸인 프랑스의 국민 공회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제를 채택했다. 영국은 동아시아로의 경제적 침투 기반을 다지고자 정객 조지 매카트니(1737∼1806)를 대사로 위촉하여 중국행을 명했다. 러시아의 통상 요구에 부닥친 일본의 에도 막부는 영주들에게 연안 방어 강화를 명하여 유럽인들의 도전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세계가 요동쳤던 바로 그때, 조선의 통치자들은 무엇에 몰두하고 있었을까? 1792년 10월19일, 국왕 정조는 신하들을 불러 과거 답안지에 패관소품(稗官小品-중국 소설의 문체)을 이용하면서 경전류의 우아한 문체를 멀리하는 일부 지식인들을 지탄하고 중국 소설 수입 금지를 명했다. 이옥(1760∼1815) 등 문단의 이단아들의 벼슬길을 막을 ‘문체 반정’은 그렇게 예고됐다. 세계가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와 있었던 시점에 중국 소설 문체의 ‘악영향’을 국정의 핵심 문제로 삼은 정조에게 조선의 공용어로서의 한문의 수명이 100여년밖에 남지 않았음을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뛰어난 국왕이었던 그도 ‘성현의 어문’인 한문이 영원토록 세계의 중심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전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어 몰입교육과 ‘오렌지’ 발음을 갖고 열변을 토하는 대한민국 국정 책임자들을 보면서 필자는 패관소품 문체의 퇴치에 올인했던 200여년 전의 국왕을 떠올려본다. 특정 제국이 영원하리라는 맹신과 어리석음으로 나라를 그르친 적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또다시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려 한다. 몰입교육을 논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볼 것이 있다. 과연 영어가 ‘공부의 중심’이 돼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문제다. 일부 특수 직종(학자·기자·외교관 등)을 제외한 다수에게 외국어가 필요한 것은 교역 등 회사에서의 대외 업무 수행과 외국여행 때일 것이다.

무역부터 보자. 2007년에 한국은 영어가 통하는 미국(12.3%), 영국(1.8%), 독일(3.1%)보다는 중화권인 중국(22.1%), 대만(3.5%), 홍콩(5.0%)에 약 2배 더 많은 물건을 팔았다. 외국여행도,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중국과 일본 여행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미국으로 간 이들은 7.2%에 그쳤다. 작년 입국자 통계를 봐도 중국·대만(21%)과 일본(35%)은 미국(9%)과 비교해서 한국 관광산업에서 훨씬 더 중요한 존재다. ‘실용주의적’ 시각으로 외국어 수요를 파악하면 학교에서는 앞으로 제1외국어를 중국어로 바꿀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학술·기술·국제정보망의 주요 언어로서의 영어의 영향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나, 중국어 구사 인구(12억여명)가 영어 구사 인구(약 3억4천만명)에 비해 거의 4배 가까이 된다는 점이나,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되는 중국의 국내총생산이 2026년쯤에는 미국을 능가할 전망이어서 결국 이 우위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권에서는 중국어가 공용어로 통할 상황이 그보다 훨씬 이른 약 15∼20년 안에 올 것에 대비하면서 영어 몰입교육보다는 영어와 중국어 교육 사이의 균형과 효율성을 논해야 한다.

한문을 절대 신성시하고 고전 문체를 벗어나는 일까지도 일탈로 간주해 앞을 보지 못했던 조선 사대부 못지않게 지금 한국 사회 귀족들은 자신들의 문화자본인 영어를 국가적 물신으로까지 만들려 하고 있다. 실사구시 정신이 결여된 그들의 언어관은 자연스레 도래할 동아시아 시대에 역행하고 우리의 미래를 그르칠 뿐이다.(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08. 02. 19.

P.S. 애당초 옮겨놓으려고 했던 인터뷰 기사(http://h21.hani.co.kr/section-021067000/2008/02/021067000200802130697013.html)에서 흥미를 끌었던 대목. '노회한 이데올로그'도 간혹 입바른 소리와 예리한 통찰을 내놓는다는 걸 알게 해준다.

이명박 당선자가 내놓고 있는 대기업 중심의 성장 위주 정책 등을 보면 지나치게 보수층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이명박 당선자가 하는 것을 너무 보수적이다, 성장 위주적이다, 효율만 추구한다, 이렇게 말할 만한 게 별로 많지 않다. 인수위에서 내놓은 몇 가지 정책을 미국의 기준으로 보면 공화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보다도 훨씬 왼쪽이다. 좌파정권 안에서 좌우 대결을 하다 보니, 자연히 왼쪽으로 끌려간 면이 있다. 다만 영어교육을 너무 중시하는 것이 지나치게 효율중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를 잘해야 국가 경쟁력이 있다는 허상을 하나 만들어놓고 영어수업 말고도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명박 교육정책이라는 것은 방법론만 이야기하면서 교육의 목표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국어, 국사 교육을 소홀히 하고 그 시간에 영어교육을 하겠다? 이렇게 하는 것은 무국적 교육이다. 인수위 안은 학원강사들이 모여서 아이디어 짜낸 것처럼 아주 지엽적이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도 그렇고 한반도 대운하 계획도 그렇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는 비판도 있다.
=문제는 내용이 정확한가인데, 그렇다고 대운하 같은 것을 논란에 붙이면 영원히 논란으로 끝날 것이다.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보면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던데 이게 이명박 스타일이다. 이게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하다 보면 반대 세력도 전선이 여러 개니까 분산이 될 것이고, 그렇다 보면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갖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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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전철에서 이번주 <씨네21>을 읽었다. 가판에서 '코언 형제에게 찬사를!'이란 문구를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코언 형제(내겐 '코엔 형제'가 더 익숙한다)는 곧 개봉될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코언 형제이다. 더불어 홍상수의 신작 <밤과 낮>에 대한 기사도 들어 있었으니 손이 안 갈 수 없었다(그리고 든 생각. 좋은 영화들이 나와야 영화잡지도 때깔이 난다!). 기억엔 작년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칸느영화제에 출품됐었는데 나는 그때서야 코맥 매카시란 생소한 거장이 원작자란 걸 알게 됐고 그의 책 몇 권에 대한 판권을 간접적으로 문의한 바 있었다. 그때 이미 국내의 한 무명 출판사로 넘어갔다고 전해 들었는데, 최근에 나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사피엔스21, 2008)를 보니 그게 '사피엔스21'이었던 모양이다(특이하게도 주로 입시문제집들을 내는 곳이다. <크리티카> 같은 무크 비평지와 함께). 올해 들어 가장 기대할 만한 원작과 영화에 대한 소개기사들을 옮겨놓는다.

매거진t(08. 02. 18) [이다혜의 BOOK]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1. 그는 어떤 사람이오, 궁극의 악당?
그런 식으로 부를 사람은 아니지.
당신이라면 어떻게 부르겠소.
웰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머감각이 없는 사람이지.
그건 범죄가 아닌데.
요점은 그게 아냐. 하나 말해 줄까.
말해 보쇼.
자넨 그와 거래를 할 수 없어. 다시 말하지. 설령 자네가 그에게 돈을 돌려준다 해도 그는 자넬 죽일 거야. 그와 얽혀들고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으니까. 다 죽었지. 살 확률이 거의 없어. 아주 특이한 인간이거든. 원칙이 있다고도 할 수 있지. 돈이든 마약이든 뭐든 그런 것 따위를 다 초월하는 원칙.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맥카시

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줄거리는 이렇다. 모스는 죽은 사람과 죽어가는 사람만이 남아 있는 사막의 살육 현장에서 거액이 담긴 돈가방을 발견해 집으로 가져온다. 그 가방을 발견한 순간부터 모스는, 이 일의 끝이 단 하나 뿐일 것임을 알고 있었다. 모스는 시거라는 추격자에게 쫓기며 도주를 시작한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보안관 벨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음울하게 바라본다.

3. 코맥 맥카시는 서부의 작가다. 현대 서부, 멕시코와의 국경 지대에 존재하는 삶과 죽음의 방식이 그의 책에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외에 <피의 자오선>을 관통해 국경 삼부작을 지나 <길>에 이르는 그의 서부에는 처연함만이 핏빛으로 빛난다. 소년들은 길 위에서 너무 많은 죽음을 맞는다. 간결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암시하는 문장들은 책을 덮고 난 뒤 오랫동안, 입 속에서 모래의 칼칼함을, 뜨겁고 건조한 대기의 텁텁함을 느끼게 만든다.

4. 코맥 맥카시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건 잘해봐야 본전이다(라고 쓰고 멍청한 짓이다, 라고 읽는다). 코엔 형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영화화한다는 말을 듣고 처음 든 생각이 그랬다. 당시 나는 맥카시의 소설 5권을 한 달 내내 연달아 읽은 직후였고, 눈만 감으면 소설 속 장면이 꿈 특유의 과장된 필터를 거쳐 꿈으로 형상화되곤 했다. 아무래도 코엔 형제와 맥카시의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이 미친 게 <분노의 저격자>였다. 영화는 책을 그대로 한 땀 한 땀 옮기듯 만들어졌고(몇 부분은 생략되었지만 이 정도면 고스란히 옮겼다는 말에 준한다), 영화는 책과 또 다른 방식으로 살육의 시를, 처연한 묵시록을 써내려갔다.

5. 한동안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던 소설을 읽는 이유, 영화를 보는 이유가 이 한 작품의 소설 원작과 영화 버전으로 수렴되었다. 만일 책을 다 읽고도 영화를 다 보고도 이게 그저 서부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6. 이 나라는 사람들에게 관대하질 않아. 하지만 끝까지 책임을 묻는 경우도 없는 것 같아. 참 묘한 일이지. 끝까지 추궁을 안 하니 말야. 이 하나의 가족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봐. 내가 아직 여기서 무슨 영화를 보려고 얼쩡거리고 있는지 모르겠어. 다들 젊었었지. 그 중 반은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몰라. 여기에 뭐 좋은 점이 있을까? 그래서 내가 한 번 생각해 봤지. 사람들은 어쩌다가 이 나라에는 해결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못 느끼게 됐을까? 그런 걸 느끼질 못하지. 나라는 그저 나라일 뿐이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296~297)

필름2.0(08. 02. 14) 진정한 웰메이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막에서 사냥을 하던 르웰린 모스(조쉬 브롤린)는 이상한 학살 현장을 발견한다. 시체들이 널려 있고, 망가진 트럭 뒤엔 마약 더미가 가득하다. 또 다른 트럭 운전석에는 유일한 생존자가, 조금 떨어진 그늘엔 200만 달러가 든 돈 가방이 있다. 생존자 대신 돈 가방을 챙긴 모스는 한밤중 현장을 다시 찾지만, 마약 딜러들에게 쫓기게 된다. 그러나 더 끔찍한 추격자는 따로 있으니, 마약 조직의 의뢰를 받은 살인마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다. 마침 지역 보안관 에디 톰 벨(토미 리 존스)이 쉬거의 독특한 살인 기법을 알아보고, 필사의 탈주를 감행하는 모스와 유령 같은 사내 쉬거, 보안관 벨 사이의 괴이한 추격전이 시작된다.

‘서부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미국 작가 코맥 맥커시의 2005년 동명 소설을 코엔 형제가 직접 각색한 스릴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위대한 서스펜스를 소유한 영화다. 피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과 무너져가는 세계, 자기 자리를 잃어가는 사람들을 고요히 성찰하며 씁쓸한 어른의 시선을 보여준다. 거의 모든 시퀀스에 냉정한 유머와 조여드는 서스펜스, 소름 끼치는 추격전을 뒤섞는 노련함은 코엔의 영화 중 최고다.

1980년대 황폐한 서부 텍사스 국경 지역의 풍광을 훑는 오프닝부터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사이를 비집는 카메라와 이미지는 <분노의 저격자>(1984)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많다(*원제는 <블러드 심플>. 코엔 형제의 데뷔작이자 내가 제일 처음 본 그들의 영화). 하지만 긴장의 밀도는 훨씬 높다. 손에 땀을 쥐는 정도가 아니라 온몸을 얼얼하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쉬거가 산소탱크에 연결된 호스로 단숨에 사람을 죽여버릴 때부터 등장하는 기묘한 웃음과 살벌한 긴장은 내내 이어진다. 쉬거가 동전 하나로 식료품점 주인의 목숨을 농락하는 순간, 모스가 마약 딜러들이 푼 맹견에게 쫓기는 순간, 코엔 형제의 괴이한 리듬감과 유머감각은 탄복스럽다. 쉬거가 돈 가방 속 추적기의 신호를 따라 모스가 묵고 있는 모텔 방문 앞으로 다가가는 순간, 영화 후반 살육이 벌어진 이후 방 안에 숨은 쉬거와 문 밖에 선 보안관 벨의 모습이 뚫린 자물쇠 구멍 사이로 비치는 순간 등등 곳곳에 심어진 ‘침묵의 서스펜스’는 전율의 체험을 안겨준다.

살인적 서스펜스의 진수는 악의 결정체 쉬거로부터 온다.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과 유령 같은 표정으로 희대의 살인마 쉬거를 소화한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는 엄청난 충격으로 남는다. 늙은 보안관 벨 역의 토미 리 존스, 인간 욕망의 표상 모스 역의 조쉬 브롤린 등 주변 모두를 압도하는 귀신같은 연기력이다. 영화음악가 카터 버웰의 미니멀한 사운드와 정교한 편집, 빽빽한 침묵 속을 가르는 절묘한 산탄총 사운드 디자인, 야만적이면서도 신화적인 텍사스의 풍광 속에 절망적인 인간들의 대결을 잡아낸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까지 모든 요소들이 최상급이다. 웰메이드에도 어떤 경지가 있음을 정말 실감하게 된다.

08. 02. 18.

P.S. 영화에 대해서는 예고편(http://www.youtube.com/watch?v=YOohAwZOSGo)과 자세한 리뷰 '오, 형제여! 여기까지 왔는가'(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5081)를 더 참조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그의 소설들도 작년에 구입했다! 어디에 두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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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8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18 22:35   좋아요 0 | URL
보셨군요.^^ <추격자>와 함께 평론가들이 요즘 열심히 강추하고 있는 영화더군요...

2008-02-18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18 23:35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 읽는 걸로 때우는 영화들이 많아져서요.--; 그래도 두 영화는 볼 계획입니다...

드팀전 2008-02-18 23:12   좋아요 0 | URL
하비에르 바르뎀은 아카데미에서 조연상 받을 성 싶은데..과연 어떨지 두고 봐야지요.^^

로쟈 2008-02-18 23:34   좋아요 0 | URL
주연이 아니고 조연인가요??

twoshot 2008-02-19 01:1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다니엘 데이-루이스한테 갈거 같고 하비에르 바르뎀에겐 조연상이 가지 않나 싶네요. 그나저나 저에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소설보다 영화가 더 강했습니다.

로쟈 2008-02-19 06:58   좋아요 0 | URL
저는 당연히 주연상 후보인 줄 알았더니 조연상 후보로군요. 주연은 따로 있단 얘긴데, 의외입니다.^^;

소경 2008-02-19 20:1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구미가 땡기는 영화네요. 그냥 심상치 않다고만 생각했는데 에피소드들도 읽을거리가 많겠네요. 정말 21일이 기다려져요

로쟈 2008-02-19 20:45   좋아요 0 | URL
네, 끝나가는 방학의 아쉬움을 좀 달래줄 것 같습니다...

turk182s 2008-02-22 00:48   좋아요 0 | URL
이거 초긴장 영화 입니다.. 안볼려다가 본건데 정말 솔직히 그냥 누가보라길래봤는데 예전에 본 "파고"하고 웬지 냄새가 비슷하길래,,, 알아보았더니 역시나 코엔감독이더군요...특히나 사이코패스의 엽기적행각과 각인물들의 조용한 갈등과 개성들이 스토리를 흥미롭게합니다. 다보고 너무긴장했는지 나중에 맥이빠지더군요,정말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