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2007)의 '서문'에 대한 새로운 번역을 옮겨놓는다. 며칠전 컬처뉴스에 리뷰를 썼던(http://blog.aladin.co.kr/mramor/1945199) 출판기획자 이재원씨의 번역이고 그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것이다. 비록 '서문'에 한정된 것이긴 하나 우리에게 주어진 국역본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가와 우리가 랑시에르를 얼마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가를 동시에 보여준다. 참고로 문단은 편의를 위해서 원문/번역문보다 더 잘게 쪼갰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프랑스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어느 여인, 학교에서 히잡을 벗지 않으려는 여학생들, 적자를 내고 있는 사회보장제도, 바칼로레아 제시문 중 왕좌를 차지했던 라신과 코르네유를 끌어내린 몽테스키외·볼테르·보들레르, 자신들을 위한 연금제도를 지키기 위해 시위를 벌이는 임금생활자들, 대안적 입시제도를 도입한 그랑제콜, 날로 대중화되어 가는 리얼리티 TV·동성결혼·인공수정…….

이처럼 그 성격이 이질적인 사건들을 한데 묶어 볼 수 있게 해주는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많은 철학자들, 사회학자들, 정치학자들, 정신분석가들,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작가들은 진작부터 줄줄이 책과 기사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면서 답변을 내놓고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증상은 동일한 질병의 발로인데 이 모든 결과들에는 오직 단 하나의 원인이 존재할 뿐이다. [역시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 원인은 현대 대중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끝없는 욕망이 군림하는 통치체제, 즉 흔히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이런 비난의 독특함을 구성하고 있는지 살펴봐야만 한다. 분명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는 새로울 게 없다. 실상 그 증오는 민주주의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인데,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민주주의라는 단어 자체가 증오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에서 다수[데모스]의 지배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 속에서 정당성을 갖춘 모든 질서의 붕괴를 목도한 자들이 일종의 욕으로 사용한 단어이다.

권력이란 당연히 [남을 지배할 수 있는] 그런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나 그에 걸맞은 역량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혐오의 동의어였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신성한 법의 계시만이 인간의 공동체를 조직해 주는 유일한 합법적 토대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그러하다. 확실히 민주주의를 향한 이와 같은 맹렬한 비난은 동시대의 의제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런 비난 자체가 이 책의 목적은 아닌데, 그 이유 역시 단순하다. 나는 이런 비난을 퍼뜨리는 자들에게 전혀 공감하지 않고 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이에 대해서 논쟁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와 더불어, 역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 비판은 민주주의에 뭔가 알맹이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그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민주주의 비판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해왔다. 먼저 귀족주의적 입법자들과 전문가들의 술수가 있는데, 그들은 민주주의를 무시할 수 없는 현실로 보고 그와 타협하려고 애썼다. 미국 헌법의 제정 과정은 이런 술수의 고전적인 예인데, 미국 헌법은 민주주의라는 현실에서 최대치를 얻어내고자 권력들을 조직하고 공공 기구들간의 균형을 맞추는 한편, 서로 동의어로 간주되는 두 가지 [공공]선(善)을 보호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엄격히 한정했다. 최선의 정부와 소유질서의 보존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실용적 비판의 성공은 자연스레 또 다른 비판의 성공을 북돋웠다. 청년 맑스는 공화주의 헌법의 토대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소유권임을 손쉽게 폭로할 수 있었다. 공화주의 입법자들은 그런 점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맑스는 아직까지 그 원천이 고갈되지 않은 사유의 전형을 정립할 수 있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법과 제도는 단지 외양이자 도구일 뿐으로서, 그 외양 아래서 혹은 그 도구를 통해서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권력을 관철하고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외양[즉, 형식적 민주주의]에 맞서는 투쟁은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 되었다. 진정한 민주주의에서라면 자유와 평등은 더 이상 법제도나 국가에 의해서 대표[대의]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과 감각적 경험이라는 형태 자체를 통해서 구현될 것이었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 책의 주제인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증오는 이 두 가지 모델에 모두 딱 들어맞지 않는다. 비록 그 두 모델에서 빌려온 요소들을 결합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이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증오의 주창자들 모두는 자신들이 단순히 민주주의적인 국가인 게 아니라 딱 잘라 말해 민주주의 자체라고 공언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살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증오의 주창자들 중 더 실제적인 민주주의 같은 것을 요청하는 자는 없다. 오히려 이들은 누구나가 민주주의를 너무 많이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인민들의 권력을 구현하고 있다고 자임하는 제도들에 불평을 늘어놓거나, 그런 권력을 제한하는 어떤 조치를 취하자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이다.

몽테스키외, 매디슨, 토크빌의 동시대인들을 열광시켰던 제도적 장치는 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이들이 불평하는 것은 인민들[이라는 존재] 자체, 그리고 인민들의 습속이지, 인민권력의 제도들이 아니다. 이들이 보기에 민주주의는 타락한 통치체제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사회를 들볶고, 그럼으로써 국가를 들볶는, 문명의 위기이다. 도대체 왜 이들이 이처럼 오락가락하는지는 일견 놀랄 만한 일이다. 실제로 차이의 존중, 소수자들의 권리, 차별철폐 조치 등과 관련된 모든 악을 우리에게 퍼뜨림으로써 [프랑스] 공화국의 보편주의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이유로 미국식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하는 바로 그 자들은, 미국이 무력을 통해서 전세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려고 하면 앞장서 박수를 쳐대는 자들이다.

확실히 [이와 같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중 담론은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우리는 여타의 모든 통치체제 중 민주주의가 최악의 통치체제라는 말을 듣는 데 이골이 나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새로운 반민주주의적 정서는 이 통상적인 공식을 훨씬 더 논란을 일으킬 만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요컨대 민주주의라는 통치체제는 모든 이들이 평등하고 모든 차이가 존중받기를 원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자신을 붕괴시키도록 내버려둔다면 나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달리 민주주의 사회 탓에 허약해진 개인들을 다시 결집시킴으로써 문명의 가치들, 문명들간의 충돌과 관련 있는 그 가치들을 방어하기 위한 전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면 민주주의라는 통치체제는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 새로운 증오가 제시하는 테제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좋은 민주주의란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문명이라는 재앙을 억압하는 민주주의이다. 이어질 본문에서 나는 이 테제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 테제가 맺고 있는 이해관계를 도출해볼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동시대의 이데올로기 형태를 단순히 묘사하는 데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런 분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황을, 그리고 이 세계가 정치라는 말로써 무엇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분석은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양산한 스캔들을 명확히 이해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념의 활기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08. 03. 05.

P.S. 새 번역문을 읽다 보니 거듭 국역본에 유감을 표하게 된다. 그런 공적인 유감에다가 사적인 유감까지 보태고 싶은데, 알고 보니 역자는 몇몇 포스트를 통해서 번역상의 문제를 제기한 나를 명예훼손으로 이미 1월말에 고소까지 했다.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켰다고. 다시 책을 펴들고 역자 서문을 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독자가 주의해야 할 점은 저자의 반어적 표현과 반전을 거듭하는 논의 전개 방식이다. 아마도 저자는 민주주의의 혼란스러움과 반목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논점을 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7-8쪽)

이건 혹 역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고쳐 읽게 되니 말이다. "독자가 주의해야 할 점은 역자의 반어적 표현과 반전을 거듭하는 번역 방식이다. 아마도 역자는 말도 안되는 번역의 혼란스러움과 자신의 몰이해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번역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그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듯싶다. 독자들이여, 역자를 주의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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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 철학 그리고 모순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03-06 11:06 
    * 로쟈님의 2008년 3월 5일자 페이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증오’ 중에서 발췌 - 이처럼 그 성격이 이질적인 사건들을 한데 묶어 볼 수 있게 해주는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다. - 이 세상에 좋은 민주주의란 단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은 민주주의 문명이라는 재앙을 억압하는 민주주의이다.
 
 
anathema 2008-03-06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지적한 번역 오류를 "허위사실"이라고 보는 '구체적'인 이유를 역자 백승대에게 직접 듣고 싶네요.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고 더 공부할 생각이나 할 것이지.

로쟈 2008-03-06 22:5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궁금합니다.

마립간 2008-03-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 내용을 저의 서재에 옮깁니다.

로쟈 2008-03-06 22:50   좋아요 0 | URL
^^

닉네임을뭐라하지 2008-03-06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맥락일 수도 있겠지만,
새삼 이윤기 선생의 '장미의 이름'(강유원)에 대한 대응(?)이 참 대단하다 생각되네요.

로쟈 2008-03-06 22:48   좋아요 0 | URL
번역에도 급이 있고 격이 있지요...
 

아침에 읽은 경향신문 기사의 전문을 찾아 옮겨놓는다. 지난달말 영남대학교에서 열린 '우리시대의 교양' 강좌의 좌담이다. 서경식, 한홍구, 박홍규 교수 등이 주요 참석자이다. 개인적으론 지난주에 옮겨놓은 서경식 교수 인터뷰 기사(http://blog.aladin.co.kr/mramor/1938368)의 '후속편'으로 읽었다.   

경향신문(08. 03. 05) ‘우리 시대의 교양’ 인문학 강좌 좌담 전문

-영남대 법학도서관(2월29일 오후 3시~7시30분)
-참석자: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박홍규 영남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최재목 영남대 교수, 허아람 인디고 서원 대표, 조진석 ‘나와우리’ 상임활동가(사회자), 이 외에도 인디고 서원 식구들과 성공회대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인 교사들, 대구의 철학스터디 모임 ‘철학본색’(http://spermata.egloos.com/) 회원들 외 다수가 참여.

조진석 ‘나와우리’ 상임활동가(사회자)= 오늘 좌담 자리는 제가 서경식 선생님과 박홍규 선생님을 모두 알아 중개하게 되었습니다. 서경식 선생님은 도쿄경제대의 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다가 성공회대에 연구교수로 와계시고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서선생님이 일본에 돌아가시는 날을 몇일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박홍규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두 분의 관심과 애정, 고민 특히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관심이 비슷하다고 여겨져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분간의 작은 만남으로 시작했다가 준비 과정에서 다소 커져서 부담도 되고 기쁘기도 합니다. 오늘 모임을 주최해주신 곳은 영남대 신문방송사입니다. 신문방송사 주간이신 최재목 선생님과, 인디고 서원의 허아람 선생님, 그리고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오신 분들을 포함해 성공회대 교양학부의 한홍구 선생님도 참석해주셨습니다. 또한 영남대 학생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과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순서는 서선생님이 먼저 말씀해주시고, 그 다음에 박홍규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두 분이 먼저 이야기를 풀어주신 다음에 한홍구 교수와 최재목 교수, 허아람 선생님께서 몇 가지 코멘트를 해주시겠습니다. 그 뒤에는 참석자 전체가 질문과 토론 시간을 갖겠습니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 2년간 한국에 머물렀지만 아직 조선어 표현에 서투릅니다. 그냥 편하게 얘기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자리는 교양에 대해 같이 고민하자는 취지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교양이라는 말은 서양어의 번역어입니다. 일본에서도 교양이란 말을 쓰고 있고, 여기서도 쓰고 있습니다만 양쪽 사회에서 뉘앙스가 조금 다릅니다. 여기서는 교양이 없다면 ‘질서가 없다’는 의미, ‘몰상식한 사람’이란 뜻으로 쓰지만 일본에서 교양은 2차 대전까지는 아주 특권적인 말이었고, 대단히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이었어요. 종전 후에 “나는 교양이 있다”는 말은 좋은 말도 아니고 오히려 쑥스러운 말이고,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교양이라는 말의 원래 뜻을 다시 생각하자고 할 때 일본에서는 너무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우리가 교양 다시 발견하고 그 뜻을 재생시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동경경제대에서도 ‘21세기 교양프로그램’이라는 학부 코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문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폭넓게 공부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4년 전부터 시범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토 슈이치라는 일본의 대표적 교양인께서 시카고대 노마 필드 교수를 초청해 강연회와 대담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물이 작년에 한국에 번역돼 나온 '교양,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노마 필드 교수는 대한민국에서도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라는 책이 번역돼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이 분 아버지가 미국 군인이고, 어머니는 일본 사람입니다. 이 말은 좋은 말이 아닌데, ‘혼혈아’라고 볼 수 있죠. 일본에서 인터내셔널 스쿨에서 교육 받았고, 미국에서 일본학과 선생으로 계십니다.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라는 책은 쇼와 천황 즉 지금 천황의 아버지가 1989년에 죽었는데, 그때 일본에 있으면서 보고 느낀 것을 에세이로 쓴 거죠. 시카고와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저와 개인적인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저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미국 정부나 정권이 이렇게 비합리적인 전쟁을 벌이는 것에 대해 미국민 80% 이상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집단적인 열광으로 말입니다. 비판의 목소리에는 아무도 귀 기이울이지 않죠. 그때 저는 노마 필드에게 연락해 “미국에서 교양 교육은 완전 패배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것 가지고 토론해 보자고 했습니다. 제가 도발했고, 이 사람이 일본까지 왔습니다. 저는 적어도 명백한 증거도 없이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사람을 죽이고, 전복시키는 전쟁을 80% 이상의 국민이 지지하는 상태가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의 시대에, 교양이란 게 전쟁을 막을 힘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요. 지금은 누구나 그것이 증거도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라크에 대량 살육 무기가 없었다는 걸 미국 정부도 시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전쟁을 진행 중이고, 지금도 사람 죽이고 있습니다.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비합리적인, 불법한 구속 상태로 피의자가 고문당하고 있다는 것도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물고문 허용법안이 미국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불법 도·감청도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허용된다고 합니다. 2003년에는 찰나적이고 일시적인 열광을 교양이라는 게 막을 힘이 없다고 느껴졌는데, 지금은 아주 일상화된 허위, 거짓에 대해서조차 교양이란 게 무력하다는 게 증명됐다는 느낌입니다.

가토 슈이치 선생님이 많이 얘기하는 것이 있는데. 지금 일본 헌법 9조, 전쟁 군비 포기 조항을 개정하려고 일본 보수파들은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일본 국민 대다수가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상황인데, 나이 90에 가까운 가토 선생이 이것을 반대하는 외로운 시민운동을 벌이고 있어요. 가토 선생이 저희 학교 강의에서 알기 쉽게 비유를 드셨어요. 성능 좋은 자동차를 생각해보자. 그런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학문인데, 교양이 없으면 이 자동차를 타고 어디로 갈지 생각할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교양은 자동차를 타고 어디에 갈 지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한 거죠. 아주 알기 쉬운 얘기니까, 이 얘기를 인용합니다.

대한민국에 오기 전까지 저는 일본 사회와 비교해 교양이라는 것이, 지식인이라는 것이 아직 살아있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홍구 선생님 같은 분들이 많이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문제가 많더군요. 이것은 여담인데요, 제 파트너, 즉 같이 살고 있는 여성이 있는데요. 2년 가까이 연세대 어학당에 다니며 조선말 수준을 6급까지 올렸습니다.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도달해 지금은 논문 쓰는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논문의 내용이 아니라 쓰는 형식을 갖추도록 하는 교육이죠. 온갖 나라 사람들이 와서 들어요. 그 중 중국 사람들이 많대요. 그 어학당 선생님께서 엄격히 하시는 게 '나'라는 말 쓰지 마라는 거예요. 주관적이라는 이유지요. 그렇게 엄격한 명령을 전해 들으며 ‘아, 나를 죽이는 사회, 나를 죽이는 시대가 이 사회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어학당 프로그램이니까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온갖 모든 교육들이 이런 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측면이 있는 듯 합니다. 일본에서는 과거 너무 지나치게 그렇게 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생겼어요. 일본에서는 ‘나’가 없어요. ‘나’가 없는 곳이 일본입니다. 일본에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면 너무 당혹스러워하고, 오히려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냐고 허락을 얻으려고 하는 곳이 일본입니다. 학교에서도 질문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요. 가끔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질문이란 게 “보고서는 A4로 써야 하느냐” “손으로 써도 되느냐” 이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미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나’라는 말 쓰라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저처럼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해야 자율적인 회의와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그런 것 없이 교육하면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가 봐야 합니다.

과거 일본의 역사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예를 러일전쟁 얘기가 나올 때, 일본 우파들은 러일전쟁 때 일본이 이겼고, 일본이 영광스러운 나라라고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학생들은 그걸 판단하려는 의지조차 없습니다. 그 시점에는 온통 세계가 제국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불가피했다, 그 시대에는 그게 정의였을 것이라고도 얘기합니다. 1세기 전에는 세계적으로 노예제도가 남아있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노예제도가 당연한 일인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봅니다 1세기 전에는 여성들이 권리가 없었고,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 지금 이 시점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면 당혹해 합니다. 바로 ‘나’가 없는 사회인 거죠.

일본이 90년대에 그렇게 된 상황을 지금 한국이 급속히 따라가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듣고 싶은데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했는데, 이렇게 나왔습니다(신문을 들어보임). 사진이 별로 잘 안나왔네요.(웃음)

손제민 기자에게 인터뷰 질문을 받으면서 새롭게 알게 됐는데, 한국에서도 ‘전문가’라고 하지, ‘지식인’이라고 잘 안한다고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하는데요.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박홍규 교수님도 일본에 오래 계셨으니 잘 알고 계실텐데 일본의 교수들이 전형적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지식인입니다라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아름다운 오해하지 말길 바랍니다. 겸손한 게 아니라 자신을 비하하고 낮추고 책임 안지려는 태도일 뿐이니까요. "저은 전문분야만 알고 있을 뿐, 그런 것은 잘 몰라요"하는 사람들이 일본사회에 대다수입니다. “제가 지식인입니다” 하면 우스운 사람이 돼버립니다.

박사학위도 없고, 외국어도 잘 못하지만 교수로 임용된 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쉽게 말해 책임회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스페셜리스트’인 것이지요. 우리처럼 대학교에서 근무한 사람들이 육체 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책만 보고, 해외에도 가고, 휴가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왜 누리고 있을까요. 그만큼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스페셜리스트들은 그러지 않아요. 그들은 위에서 시키는 명령대로 할 뿐이에요. 성능 좋은 차, 사람들을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 무기 등 만들라는 대로 다 만들어내는 것이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스페셜리스트’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에이얄 시반이라는 이스라엘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감독이 만든 영화죠. 이 영화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나치의 고급관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능력있는 관리지요. 60년대에 이 사람이 잡혔고, 그것을 잡아 재판한 장면을 다큐로 각색한 영화이죠.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여기서 읽어냈죠. 영화를 보면 악은 평범하지 않아요. 당당하고 뻔뻔해요. 나는 스페셜리스트로서 시키는 대로 충성했을 뿐인데, 뭐가 나쁘냐고 당당하게 말해요. 그런 얘기를 시종일관 하는 게 바로 아이히만이죠. ‘저는 전문가입니다. 지식인이 아니에요’라는 말은 ‘저는 아이히만’이라는 말과 똑같아요. 일본이 아이히만들의 나라입니다.

마루야마 마사오가 패전 직후에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정신구조에 대해 써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사회에 큰 영향을 준 책이 있죠. 일본의 군국주의자와 독일 전범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권한으로의 도피입니다. 자신에게는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죠. 둘째, 규정 사실에 대한 반복입니다. 흐름이나 추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거죠. 그런 게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하는 군국주의자의 정신구조입니다. 악은 악인데, 나치 전범들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의 악이라고 합니다.

‘스페셜리스트’라는 영화를 보니 ‘저는 전문가입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가 어떤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일본에서 60년대는 전공투와 베트남전 반대 등 여러 가지 활동이 있었어요. 거기서 중요한 구호는 ‘자기 부정’이었어요. 전공투는 동경대 의학부에서 시작했는데, 그곳이 원래 아주 봉건적이고 권위적이고 위계가 확립된 제도였어요. 그것을 해체하려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동경대 의학부를 다니면서 무난하게 살면 의사로 살 수 있음에도 ‘자기 부정’을 외쳤어요. 또, ‘산학 공동체’를 해체하자는 것이 구호였어요. 학문 연구는 산업과 자본의 요구가 별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학문의 연구는 산업/자본의 이익이 아니라는 것이죠. 당시에 특히나 군산학 공동체인데, 이 말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월남전 때 강조했죠. 그게 아니라는 거죠. 베트남전 반대와 산학 공동체 해체가 잘 맞아요.

하지만 전공투 운동은 결국 완패했어요. 여기서 대부분 사람들이 체제 내화됐어요. 일본에서는 70년대부터 경제성장이 왔기 때문에, (전공투 세대가) 패배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만연했어요. 패배했기 때문에 성장도 이뤄지고, 그들 자신들도 큰 기업이나 대학교의 사회주류가 됐다는 거죠. 그런 자기기만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게 일본 주류입니다. 산학공동체 해체 요구가 완전히 무너지고 그것이 오히려 일변도로 강화돼 왔어요. 90년대부터 일본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돼서 아주 심한 경쟁 논리가 도입되게 됐습니다. 그럴수록 교양 부분은 계속 줄어들게 됐죠. 고등교육 뿐 아니라 초등교육까지 ‘나’라는 것이 없는 사회가 됐습니다.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 하루 속히 기계화되는 것이 사회적 상승의 길이라는 거죠. 기업들은 ‘나’가 없는 친구들을 데려 오라고 했어요. 기업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교양’이라는 말을 사용했어요. 일 잘하는 친구들 말이죠.

교양이라고 할 때는 마치 동상이몽과 같은 측면이 있습니다. 기업의 이해와 욕구에 따라가려는 것과 인간으로서의 독립성 그런 게 섞여 있습니다. 그런 기업의 요구도 의미가 있고 필요하겠지만, 학자들은 ‘나’라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학생들, 자기 의견을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기업에 들어가서 어떤 쓸모가 있을까 걱정해야 합니다. 대학에 온 학생들에 대해 고등학교 때 손을 들고 몇 번을 말했는지 점수로 계산해서 보내와요. 내용이 별로 없는 질문을 해놓고도, 자신이 발언을 열심히 했는데 점수가 왜 B학점이냐고 묻는 경쟁적이고 인간미라고는 없는 사회가 된 거에요. 그런 일본을 떠나 한국에 오게 됐을 때에는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일본에 있는 저의 동료들도 한국 학생들을 좋아해요. 태도가 좋다고. 그래서 우스개로 “한국처럼 군대가 있어야 한다”고 해요. 군대 덕분에 사람 된다고 말이에요.

연세대 인문학부에서는 30퍼센트 이상은 A학점을 주지 못해요. 컴퓨터와 권력의 결부, 결합관계가 일본보다 여기가 더 강하다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일본에는 원호가 있어요. 시대를 구분해주는. 근데 저 뿐 아니라 일본에서 천황의 원호를 안써요. 군국주의, 천황제도가 부정당했는데, 이제 80년대 말부터 그것을 사용하라 강요받아 거의 그렇게 써요. 저는 지금 서기를 쓰는데 인정을 못받아요. IT와 전근대적인 연호가 결합한 거죠. 아주 면밀하게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관리하는 것이 이 시대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교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한 마디로 저는 ‘신자유주의 전체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는 ‘나’가 없어요. 완전히 억압되고 부정당해요. 주체가 아예 없는 사회지요. 그런 사회에서 ‘우리’, 감히 이야기하자면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나 여러 선생님과 함께 배우고 싶습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 막걸리나 한잔 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어쨌든 여기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장소가 로스쿨이라는 곳인데 제가 30년 가까이 법과대학에 있으면서도 여기는 처음 왔습니다. 지난 해 하반기에 저는 소속을 법과대학에서 교양학부로 옮겼는데요. 이렇게 생긴 장소가 교양을 얘기할 수 있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교실은 처음 봅니다.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컴퓨터 화면에 딱 잡히네요. 로스쿨 하는 데 이런 게 왜 필요한 지 모르겠습니다. CCTV라는 것이 정말 기분 나쁜, 감시사회의 상징 같은 건데요. 이 교양없는 사회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한 법대를 떠난 이유가 법대가 교양없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교양 때문에 모이셨는데 다시 와도 정말 교양 없는 곳이네요. 이런 분위기는, 바로 한국, 일본, 미국.. 바로 글로벌리제이션을 운운하는 세계 전체의 분위기라는 생각이 드네요. 학생들이 잘가는 막걸리집에 가는 것이 훨씬 더 교양스럽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서경식 선생님께서 ‘파트너’라는 말을 쓰셨는데요. 파트너라고 말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궁금했습니다. 파트너라는 말을 저도 오늘 한 번 써보겠습니다. 저의 파트너 왈, 제가 오늘 양복 입고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서 왜 갑자기 양복을 찾느냐고 하는 겁니다. 서경식 선생님이 오셔서 교양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제 파트너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교양 없는 사람이…”라며 피식 웃었어요. 그 사람도 매일 먹고 노는 정말 교양 없는 여자가 감히 교양학부 교수인 저를 교양이 없다고 놀리다니요. “야, 무슨 소리냐. 내가 명색이 교양학부 선생인데…”라고 반박했죠. 집사람의 교양론은, “인간이 상식이 있어야 하는데 너는 상식이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학교 연구실에 가서 입고 다니는 옷이나, 집에 와서 잠자는 옷이나, 밭에 가서 일하는 옷이나 구분도 안되고, 목욕도 안하지, 세수도 안하지, 이발도 잘 안하지, 어떻게 교양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시대별로 상황별로 교양이라는 말은 쓰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서선생님도 한국에서 교양이 있느니, 없느니 그리고 일본에서 교양에 대한 냉소주의에 대한 역사적인 고찰을 하셨지만 서양사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17~18세기 독일 같은 나라에서 괴테가 교양에 대해 말하는 경우에는 좀 긍정적인 의미였는 지 모르겠지만 19세기 오면서 망해가는 귀족, 신흥 부르주아 계층들이 재산과 교양이라고 하는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교양이라는 말을 썼지요. 그런 생각이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많은 비판 받았다는 것을 예술작품 통해 볼 수 있고요. 교양인이라는 인간이 갖는 속성에 대한 비판은 시대를 막론하고 나라를 막론하고 있는 듯 합니다.

서경식 선생님과 김상봉 선생님의 대담에 보면 김상봉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한국의 전통사회에 시·서·화, 유교의 논어·맹자 이런 것을 열심히 읽었던 선배들은 교양이 있었다, 교양인이었다고 얘기하시는 것 같더군요. 다른 부분은 다 마음에 들었는데 그 부분이 저는 좀 별로였어요. 사실 꽤 정확히 읽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나는 생각하기를 지금 육법을 다룬다고 하는 법대 교수나, 시서화를 다룬 선비나 모두 입신양명을 위해, 권력에 빌붙기 위해서 한 것인데 그것을 무슨 교양이라 하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외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예컨대 허균 선생 같은. 그러나 과연 조선시대, 동양에서 동양철학이라고 하는 것에, 그것을 공부한 사람들이 과연 교양인이었느냐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최재목, 한홍구 선생님이 욕하시겠지만, 제 생각이 그렇습니다.

제 생각에는 한국의 교양 문제,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제가 보기에 제일 교양없는 인간인데, 그리고 장관 조무래기들. 그야말로 무교양의 극치이죠. 어떻게 교양 있는 인간이 하나도 없어요? ‘스페셜리스트’ 얘기를 하셨지만,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이명박까지 교양이 없어서 저 모양이다, 대한민국이 이렇다, 교양이 없어서 일본이 저렇게 됐다고까지는 생각지 않습니다. 지식인이라는 말을 저 자신에 대해서도 쓴 적이 없고, 한 번도 그런 얘기를 해본 적도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지금도 하라고 하면 못합니다. 지식인이든, 교양인이든, 지성인이든 뭐든 간에.

저까지 포함해서 우리 시대에 과연 교양이 있는가, 지성이 있는가 물으면 정말, 죄송하게도 한홍구 선생님을 제외하고, 저 자신도 그렇고, 제가 보기에도 전문인으로서의 대학교수, 언론인, 종교인 등 모조리 스페셜리스트, 프로페서라고 하는 전문가들이 지배하는 곳이죠. 전문가만큼 반교양적이고, 교양을 망치는 것은 없다고 봐요. 전문성은 교양의 반대말이에요. 대한민국은 옛날부터 전문가가 다스리는 사회였어요. 양반이고, 고시 합격한 전문가도 대학교수도 우리 시대의 교양에 대해 얘기할 입장이 안되지요. 하여간 교양이 없다는 말 외엔 별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드릴 말씀은 대학교육인데. 6개월 전에 교양학부로 옮겼어요. 30년 남짓 공부한 법대를 떠난 것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양과목이라는 게 모조리 60~70 개 되는 전공학과가 관리하는, 전공학문을 좀 쉽게 가르치는 과목들이에요. 영남대학만 그런가 싶어서 잘 나간다는 서울대, 연대, 고대 커리큘럼을 다 수집했는데 모조리 그래요. 대한민국의 대학에는 교양교육이 없어요. 말만 교양이지 교양교육의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모든 과목들은 이른바 전공학과라는 곳에 전공학문의 개설서 수준의 것으로 하고 있어요. 과목 이름을 바꾸는 것도 유행해서 옛날에는 철학개론인데, 지금은 사상의 교육, 인간의 이해 이렇게 말만 바꿔서 하고 있어요. 초·중·고는 암기교육만 하다가 대학에서 교양교육을 처음 하는데, 문제는 나를 포함한 교수들이 교양이 없어요. 내가 말하는 교양이란 이른바 전문의 벽에 분리돼 있는, 전문가에 의해 망쳐진 세상을 조금은 전체적으로 볼 수 있고, 조금 종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그래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볼 수 있는 교양이 좀 있어야 하는데….

일본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은 조금 달라요. 제가 법과대학을 그만 둔 이유는, 하도 우리 법대생들이 교양이 없다고 생각해서 ‘법과 예술’이라는 과목을 10년 전에 시작했어요. ‘법과 문학’ ‘법과 미술’ 하니까 문과대학, 미술대학에서 들고 일어나요. 자기 학과 전공을 침해하는 교양 과목을 만들려고 하면 절대 안됩니다. ‘커뮤니케이션 윤리’를 만들려고 하니까 이번에는 철학과에서 들고 일어나요. 이번 학기 들어 교양과목을 하나 만들려고 ‘사상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이름을 붙여보니 온 과들이 다 들고 일어나서 결국 타이틀을 ‘위대한 인류의 조상’으로 했어요. 이 교양과목은 미 콜롬비아대에서 교양과목으로 개설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까지 상세하게 붙여줬어요.

‘법과 예술’이라는 과목은 제가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강의하고 돌아오니 없어졌어요. 사법시험과 아무 관계 없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그 과목을 법을 아는 3~4학년을 대상으로 개설했어요. 여러 예술 작품에 나타나는 법 문제, 재판 문제를 다룰 생각이었죠. 문학 작품이나 음악이나 오페라, 미술 작품을 통해 법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를 법대생들에게 교육하려 했는데…. 결국 일반교양으로 해서 법도 모르고, 예술도 모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10년 가량 가르쳤어요. 로스쿨 한다고 또 시끌벅적해요. 저는 반대론자인데, 교육부에서 나온 지침에도 ‘법과 예술’이라는 과목이 선진적인 모델이라고 들어있는데 제가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오니 또 없어져 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대한민국의 몇 개 대학에 전화해 법과 예술 강의를 허용하는 대학있으면 나를 불러주라 가려니까 또 여기서 붙잡아서 결국 영남대에 머무르게 됐어요.

적어도 기본적으로, 교양 교육이라는 것은 종합적인 성격이에요. 입문, 개론 수준이 아닌 여러 각도에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이라든가 뭔가를 통해서 인식을 넓혀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제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 과목이 거의 없어요. 서울대, 연·고대도 마찬가지예요. 교양 교육의 문제점이 대단히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학교 교양학부라는 것은, 성공회대는 어떻게 하는 지 모르겠는데, 교양교육기초대학에 자율학부라는 게 있어요. 교양도 늘리고, 자율도 늘리겠구나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건 진짜 타율학부예요. 교육부에서 입학정원을 줄이라고 하니까 자율학부라는 말도 안되는 과를 만들어놓고 특정 전공학부에 못가는 학생들만 전부 몰려와서 입학은 했지만, 점수 떨어지는 친구들이 와서 1년 정도 있다가 원하는 대학에 가려는 거지요. 그러니까 자율성과는 전혀 관련 없는 그런 과가 됐죠. 서선생님이 계시는 도쿄경제대에서 새로운 교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시작됐는지 꼭 좀 듣고 싶어요. 이래저래 여러 군데 찾아다니며 호소도 해보고, 하소연도 해봤는데 도저히 전공학과가 지배하는 체제 하에서는….

저는 한 가지 사명감이 있는데, 교양학부에서 전공학과의 입김을 없애는 문제입니다. 영문과든 법과든, 자기들 전공의 입문 수준을 어떻게 교양으로 요구할 수 있는가. 지금 교양학부에 교수가 저 혼자 밖에 없어요. 저 혼자 600~700명의 영남대 교수들과 싸워야 하는데, 교양과목 만큼은 전문가가 물러나라고 하고 싶어요. 눈물을 머금고 높은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전혀 씨알도 먹히지 않았어요. 서경식 선생님의 학교에는 전공학과 교수들의 저항이 없었는지 묻고 싶어요.

서양의 교양의 개념의 변천사 그런 걸 말씀드릴 틈도 없지만,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구 귀족이 몰락하면서 신흥부르주아가 탄생한 가운데 재산과 교양이라는 것을 구 귀족을 대신하는 가치관으로 이맛짝에 붙인 게 교양입니다. 그게 일본을 통해 왜곡된 형태로 들어왔죠. 더더구나 식민지 현실에서, 특히 입신양명을 유일한 이상으로 삼는 조선시대의 영향으로 이후 우리나라에 대학교육도 마찬가지로 양반 찌꺼기가 다 모여있는 그런 교육이 됐죠. 서구에서 온 허구적인 레테르가 교양입니다. 20세기 와서 서양사회도 대중사회로 바뀌고 우리도 대중사회로 바뀌는 가운데 교양에 대한 멸시감도 생겨났죠. 저도 교양의 필요성이 더욱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게 아닌가 해요.

이명박 얘기를 잠깐 했지만, 지금 우리 시대 교양이라는 게 영어 잘 하는 것입니다. 혓바닥 식민지이죠. 저도 경향신문에 칼럼을 쓰는데, 2주 전 원고를 보내며 ‘영어를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고 제목을 썼는데 전혀 다른 제목을 달았더군요. ‘국어부터 제대로 사용하라’는 점잖은 제목으로. 그건 이명박을 보고 한 얘기입니다. 김대중씨가 다른 것은 다 좋은데 한 가지 마음에 안들었던 것이 영어를 많이 썼던 것입니다. 노무현은 못하니까 안 썼겠죠. 이명박이 실용외교 한다고 하는데, 취임식 장에서는 영어를 안지껄였어요. 영어 열광, 영어 광견병 수준입니다. 그야말로 영어가 교양의 상징처럼 돼버렸어요. 전문가의 시대에 대학교육의 전문성이 가진 전횡과 함께 근대화의 파행성에 갇힌정치, 경제, 사회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 것을 타파하기 위한 교양 문제, 교양 교육의 재정립이 필요하지 않은가 해요. 우리 전통에서 꼭 찾아야 한다면 교양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중들입니다. 원효는 평화주의 반전론자였어요. 전통 지식인 중에 가장 서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가장 교양인, 지식인이었어요. 反전문, 反관료의 표상이죠. 고려시대까지는 그런 게 있었는데, 조선시대에 와서 단절된 게 아닌가 해요. 더구나 일제시대 이후 우리 대학이 기형적으로 식민지 지배수단으로 됐기 때문에 비전문 아마추어 정신, 학제적인 내용으로 비판적 시각에서 저항적인 지식인의 태도 이런 게 교양인으로서 가장 필요한 게 아닌가 해요.

공공성이나 이웃에 대한 관심, 세계에 대한 관심 등도 당연히 필요한 교양의 요소입니다. 지식인이 있고 없고 이 문제보다, 참 부끄러운 게 저의 파트너라는 사람이 아침에, “야, 텔레비전 보니 교수 하는 사람들 중에 진짜 돈 많은 인간들 많은데, 너는 왜 없니”라고 하더군요. 대한민국 교수들의 표상이라는 게 권력 지향적, 자본 지향적이죠. 그런 작자들이 대학 교육을 시키니 대학이 무슨 교양교육을 시킬 수 있겠어요. 공공성, 사회성, 비전문성, 반자본주의, 국제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는 교양의 의미가 좀더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 볼 수 있다면 다행일 듯 합니다.



조진석=‘지식인은 무엇인가’(‘권력과 지성인’으로 국내에 번역됨)라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보면 “지식인은 아마츄어이고 세계를 우려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두 분들의 말씀 속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한홍구 교수님께서 먼저, 성공회대에 교양학부가 있고 하니 말씀해 주십시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우리 학교의 교양학부 실상을 말씀드리자면 교양이 많아서도 아니고, 교양교육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의 결과도 아니고, 무소속과 같은 것입니다. 교양학부에 교수가 세 명 있습니다. 교육학을 전공한 고병헌 교수와 문학을 전공한 임규찬 교수와 저입니다. 저희는 특별히 소속한 과가 없고 해서 과를 하나 만들자고 하게 됐는데, 일본학과 중국학과가 있듯이 한국학과로 하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얼마나 좋으냐, 학교회의도 없고 그래서 한국학과를 만들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내렸습니다.(웃음)

영남대에서도 찾아보면 그런 분들이 몇 분은 계시지 않을까 해요. 학생이 없다보니까 스승의 날에도 우리 셋이서 모여서 밥 먹습니다. 교양학부는 그렇다고 하고, 성공회대가 교양교육을 그래도 많이 시키는 편입니다. 교양과정이란 게 있어서, 전공들도 있지만 과에서 교양과목을 꼭 개설해야 하는 식이어서 자기 영역이라고 밥그릇 싸움하지는 않습니다. 여기 영남대에 와보니 우리 학교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학교 규모도 비교가 안될 정도 크네요. 우리는 작은 대학입니다. 학생 수가 500명 정도입니다. 그래서 과목 수를 얼마만큼 현실적으로 유지하는가가 문제입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들을 게 없다는 말도 많이 했습니다. 학생 수와 과목의 내용과 방향을 생각해볼 때 비교적 좋은 교양과정을 운영해왔다고 생각했는데요. 2006년부터 과목 정리를 하며 좀 잘라 과목 수가 확 줄었습니다.

고정관념일 수 있겠지만 대학에 꼭 필요한 무슨무슨 개론 하는 것도 몇 개 있습니다. 저희는 그걸 도구과목이라 부르지만,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글쓰기 과목(말과 글이라는 이름의) 등입니다. 우리 학교는 인권과 평화 관련 과목이 굉장히 많습니다. 교양 필수로 꼭 이수하게 합니다. 그런 것 이외에 다른 과목들은 많이 줄였어요. 이유는 돈이 많이 드니까. 강사료 많이 들고, 작은 대학에 등록금 많이 올릴 수 없고, 밥값도 올릴 수 없고. 그 점이 가슴 아프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여태까지는 비교적 다양한 과목을 선보였다고 생각해요. 저도 전공에 구애받지 않아요. 제 과목 중에 군대와 사회라는 게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라면 군대 갔다오고, 군대 갔다온 아버지나 남편 만나 살게 되니까요. 학생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문화답사 기행도 있는데, 한 학기 내내 학생들과 놀러다니는 수업입니다. 대학의 교양과목이라면 대개 200~300명이 듣는 대규모 강의인데요, 우리는 비교적 학생 수가 50명 정도로 유지합니다. 200~300명은 학생과 가르치는 사람이 같이 교감하고, 소통할 분위기는 아니지요. 50명만 되어도 사실 불가능에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5~20명은 돼야 눈 맞춰가면서 얘기라도 할 수 있는데. 교양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라도 하고 있는 데는 그래도 양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양은 어떤 맥락에서 쓰이는가가 중요합니다. 기업에서도 이미 교양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어요. 대학도 고민을 한다면 그런 쪽에 맞추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교양의 위기 또는 인문교양의 죽음,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도 하는데요. 교양의 위기와 인문학의 위기는 사실 다른 얘기.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과의 위기이죠. 인문교양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부분 많아요. 서경식 선생님의 책처럼 굉장히 우울하고 스산한 책들을 열심히 찾아 읽는 독자층이 굉장히 많이 존재합니다.(웃음) 여기저기서 서선생님을 많이 초대해 무척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공계 가보면 이공계의 위기 아닙니까. 공대 쪽을 학생들이 거의 안간다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도대체 위기가 아닌 곳은 어딘가요. 아마도 있다면 돈 되는 곳이 아닌가 싶어요. 신자유주의 전체주의 시대라는 서선생님 말씀에 저도 아주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서선생님께서 한국에 오신 시점이 안좋았다고 봐요. 노마 필드가 일본에서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를 경험하며 책을 쓰셨다면 이번에 서선생님은 일본에 돌아가면 ‘시들어가는 운동권의 나라’를 쓰셔야 하겠죠. 변화 개혁의 열정이 시들어가는 시기에 와서 그런 것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88만원 세대’라고 있죠. IMF 맞고 난 후 한국사회가 엄청나게 변했어요. 저는 박사학위를 위해 오랫동안 미국에 가 있다가 외환위기가 그럭저럭 끝나간다는 99년에 돌아왔어요. 10년만에 한국사회가 정말 엄청나게 달라졌구나 느꼈어요. 그 대가를 지난 번 선거에서 톡톡히 치렀죠. 신자유주의 전체주의 시대에, 나를 죽이는 사회라는 말씀에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수업시간에도 그렇지만, 한 때 질문 던져놓고 후회를 하게 되는 게 한두번이 아니에요. 면접 때 저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학생들은 머리를 굴리며 도대체 질문자의 의도는 무엇일까 땀 뻘뻘 흘립니다. 그런 모습 보며 ‘이건 정말 할 짓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가 주체가 되어 결정하는 것, 여기에 필요한 것이 교양이고 인문학적 지식입니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은 저런 말을 하는가, 왜 나를 꼬시는가 이런 의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뢰가 꼭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의심이죠. 교수들은 왜 저렇게 교양은 없고, 땅만 많을까. 의심의 근거가 있는 합리적인 의심이죠.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 의심을 해보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 말입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너무 세게 몰아부쳤어요. ‘이중기준’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놈이 했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면 우리도 하면 안되죠. 한국군이 한국전쟁 때도 위안부 썼고, 그걸 같이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베트남에서 나쁜 짓을 많이 했죠. 우리가 거리를 두고 같은 잣대를 자신에게도 들이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남만 몰아부치지 않을 수 있는 염치가 아주 중요합니다.

교양이 전쟁을 막을 수 있느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많은 지식인들이 무력감에 빠져들었음을 지적하셨는데, 한국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변화가능성입니다. 한국사회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많이 겪었습니다. 해방 후 당연히 친일파를 청산해야 할 때 역전패했죠. 그 때 정말 다 죽었어요. 그러나 불과 7년만에 4·19가 일어났죠. 그러다가 80년 광주에서 정말 무참하게 깨졌어요. 광주에서 정말 총소리 안들은 사람 누가 있고, 쿨쿨 잔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7년만에 6월 항쟁이 터졌어요. 불과 그 6개월 전만 해도 박종철이 죽을 무렵, 제가 민중신문 기자를 했는데, 신문 1면에 뉴스를 쓰려면 100명만 보여도 쓸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는 100명도 안모였어요. 6개월만에 엄청나게 변화한 거죠. 한명한명이 작게 해서 모인 것이죠. 누가 탁 치고 앞서 나가서 그렇게 된 게 아니예요.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박종철 죽었을 때 짐작이나 했겠어요? 한국현대사에서는 그게 계속 반복돼 왔어요.

지금 젊은이들이 낙담하고 개별화 돼 있어요. 하지만 신자유주의 전체주의 시대에도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키워주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느낄 때, 거기서 연대가 나오고, 공감이 이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교양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다른 사람의 불의에 대해 공감하고 아파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봐요. 엊그제 체 게바라 책을 보니 볼리비아로 떠나면서 자기 딸에게 쓴 편지에 “아파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아라”고 했어요. 저는 그럴 때에야 비로소 속지 않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좌절하지도, 쉽게 기대하지도 않고 마침내 변화시키고 마는 사람이 된다는 거죠.

한국은 독특한 사회입니다. 박홍규 선생이 유교를 부정적으로 보셨는데, 부정적인 것도 많지만 긍정 요소도 많습니다. 지식인이 지배해온 나라, 아까 서선생님은 전문가라고도 했지만, 문자를 아는 사람이 적어도 백성을 교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유교와 공산주의 사회가 독특한 점인데요. 교양이 아닌, 교화해온 사회였죠. 교양과 교화의 차이는 누가 주체냐 하는 거죠. 자기를 살찌우느냐, 타자를 살찌우느냐. 권력 가진 자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 만들어내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국형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군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고 했죠. 중·고교는 아직 공식적으로 그걸 많이 따르고 있어요. 두발검사, 복장검사가 대표적이죠.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그게 좀 완화된 듯 보이지만, 권력이 국가의 군대권력에서 시장, 자본으로 넘어간 것이죠. 돈이 모든 것을 쥐는 상황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 하고 싶은 것 맘껏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오면 고3보다 더 불쌍해지는 상황입니다. 이제 고3 시절은 긴 터널의 끝이 아니라 더 긴 터널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교양은 노예이냐 자유인이냐의 차이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 터널을 그대로 따를 것이냐, 왜 이 터널을 따라가야 하느냐 따져보는 차이입니다. 끝으로 역사 전공자로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노예의 평균 수명은 굉장히 짧았다는 것입니다. 20대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 현실적인 얘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박홍규 선생님이 저를 이지메하며 상당히 즐거워 하셨는데, 별도의 반론을 안하겠습니다. 타당한 말씀입니다. 저는 영남대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박선생님을 꼽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별 다른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박선생님이 법학부에서 교양학부로 옮긴 과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교양학부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가르치는 석박사 과정생들 두고 가기가 부도덕한 것 같아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소문이 나기도 했죠. 저는 현재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박선생님처럼 교양 얘기를 하고자 하는 분이 교양학부에서 자리를 못잡는다고 하면 대학의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주변에서 들린 얘기가, 교양학부에 잘못가면 밥그릇 떨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굶어죽을 각오하고 가라고 하더군요. 그런 게 좋은 가늠이 됩니다. 현재 전문가들은 거의 깡패 수준이기도 한데요. 전문가 속에서 교양을 얘기하고 교양을 새롭게 꿈꾼다는 것은 대학 체제에 부적응하는 지식인 난민들의 콘테이너 박스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노숙 지식인들, 지식인 부랑자의 대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 박선생님이 충분히 말씀하셨는데요. 그러면 왜 그런가. 전공 전문가 집단의 폭력이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릅니다. 환자 개인이 의사 집단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잘 알 겁니다. 지식인이 얼마나 자기 합리화, 자기 변명을 잘 하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대항해 싸운다는 것 역시 바보같은 짓입니다. 저는 이따금 교양교육을 위해서는 대학 내 권력을 이용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교양교육 정상화는 학과 전공 체제가 해체돼야 가능합니다. 정말 죽어서, 정말 교양이란 게 뭔가 이걸 프리하게 생각하는 시점이 오지 않고, 어떤 구조조정이나 권력의 재편이 돼서는 안됩니다. 칸트 왈, 누구 왈, ‘구라’들이 논리 논증하는 게 현재 지식인 집단입니다. 카더라 지식인이 모인 집단이 대학입니다. 에세이도 못쓰고, 자기 얘기 없는 곳이 우리 대학입니다. 지식 불구들이 모인 곳이라고 해도 과언 아닙니다. 제가 언론에 있으면서 글을 좀 써달라고 하면 못쓴다고 합니다. 칼럼을 못씁니다. 자기 얘기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야기 좀 해보자며 팔을 붙들고 해도 안됩니다.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박선생이 그걸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는 소피아, 지혜라는 것과 스킬 교육이 엄밀하게 구분되고, 층위를 달리 해야 할 때입니다. 기능이 중심이 되는 때에 지식, 진리 그 자체를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대화가 안되죠. 소피아는 어떻게 추구되야 하는가 다시 물어져야 할 때입니다. 아마 박선생님은 계속 떠들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떠들다가, 콘테이너 박스에 아무도 안가면 혼자서라도 지키고 계실 분이 아닌가 합니다. 교양이 제대로 되려면 바깥 풍경과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그런 작은 토대들이 제도나 권력을 떠나서 그런 메커니즘을 벗어나서 자기 이야기, 자기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지 않겠나 합니다. 박홍규 선생의 십자가, 저도 돕겠습니다.

조진석= 교양교육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데, 저는 인디고 서원에서 그런 고민을 어떻게 현실화 시키느냐를 보고 있습니다. 특별하게 와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허아람 선생님?



허아람 인디고서원 대표= 최재목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저희 인디고서원의 ‘주제와 변주’에 초대해서 저희와 함께 자리를 가졌습니다. 한홍구, 박홍규 선생님 두 분을 뵌 지 2~3년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희들은 내면화된 자율성, 주체성을 도모했는데 두 분의 얘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네요. 발표가 별로 재미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서경식 선생님의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책을 읽고 지난 7월에 아주 열심히 토론했는데, 오늘 하신 말씀은 그 때와 같은 이야기라 재미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오늘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제가 듣기로는 그동안 앞에 있는 분은 교양교육의 비관적인 시사를 주셨는데 저는 교양교육의 지향을 알려드리고, 제가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을 보여드리면 도전이 될 것 같아요. 저 밖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 제가 말하겠습니다.



인디고 서원이 걸어온 길을 들려드리는 것이 희망의 증거가 될 듯 합니다. 경향신문에서 서경식 선생님 인터뷰를 하며 한국이 30년 전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주제를 다루셨는데요. 인디고 서원에 대해 난 기사 중에는 “충실하게 현실을 살아가고 싶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안다뤄주시는 것을 보니 경향은 좀 불공평한 듯 합니다. 결국 우리가 이 곳에 모여 교양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숨쉬기 위해 쉬고, 먹고 마시기 위해 먹고 마시고, 호기심 만족시키기 위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 자체가 우리 삶 그 자체입니다. 교양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교양이 왜 필요한가의 물음도 결국 우리 삶 자체를 위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교양 역시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교양도 삶 자체이기에 뭘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인들이 자발적인 공동체로 모여서 자유롭게 사는 훌륭한 공동체가 인디고 서원이라고 생각해요.

인디고 서원은 부산 광안리 남천동에 있습니다. 이제 문을 연 지 4년 밖에 안된 인디고서원이 국제적 행사를 개최합니다. 최재목 선생님께서 본질을 추구하기 위해 권력을 이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씀하셨는데, 제도의 개편에도 본질적인 목표 성취하기 위해서는 가장 본질적인 수단으로 가야 할 듯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수단과 방법은 비본질적으로 가도 좋다는 식으로 근·현대사를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 이 모양이죠.

인디고 서원은 아프리카와 호주를 끝으로 지난 1년간 전세계 6대륙을 돌았어요. 그렇게 한 것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내면성, 자유, 상상력, 본질적인 모습을 되찾기 위한 여정이었어요. 6대륙을 돌며 저희가 지정한 6개 카테고리, 문학 ,역사, 철학, 예술, 생태 환경 등 분야의 45명의 초청인들을 선정하고 호주 멜버른 대학의 피터 싱어 교수를 만나는 것을 마지막으로 프로젝트를 종료했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누군가에게로 받았어요. "이런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냥 자다 일어났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싹이 트고 꽃이 피고 그러듯이 우연이었다고. 어떤 타이틀을 위해서가 아니고 가장 본질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는데 그렇게 달려 왔어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지식인들과 함께 대화하는 것이 6대륙의 지식인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저는 두 분과의 만남을 이야기하면서 저희 프로젝트에 대해서 소개하려 해요.

이번에 한국에 오는 분들 중에 두 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선 마크 오너라는 남아공 물리학자입니다. 그는 흑인 청소년 한 사람이 굉장히 빽빽하게 노트를 기록한 것을 보았어요. “왜 이렇게 열심히 적었니?”라고 물었더니 자기 마을에 글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자기가 잘 기록해 자신이 전하기 위해라고 하더랍니다. 마크 오너가 이 소년의 하는 말을 듣고 “내가 이 일을 도와야겠다”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아프리카 전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세계 과학자들 모아 교과서 만들어 그 교과서를 무료로 배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대안을 제시할 때, 대학의 교양교육도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여러 선생님들이 대학 교양 교육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다루고자 할 때, 하소연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작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내가 실천하는 이 지점부터 시작됩니다.

콜롬비아 카르테헤나에도 갔습니다. 여기는 KBS에서 동행하고 취재해 방송되었는데 여기 있는 선생님들도 보시면 좋겠어요. 알바로 선생님이라는 무용가인데,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을 빌리더라도 정말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약 중독으로 찌든 아이를 ‘몸의 학교’를 통해, 무용으로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전, 가난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 그 지역에서 몸의 학교라는 곳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고 인간의 존엄을 표현하는 예술 수단을 이용해 나가는 것 보고 우리의 처지와 환경은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열악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어 병을 들어버린 거죠. ‘춤의 혁명’으로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친구들을 볼 때 지금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뼈저리게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생의 본질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것을 여러분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공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에 대한 것인데요. 근대에서 인간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게 180년 밖에 안됩니다. 그 전에 동아시아에서는 人이라는 말이 쓰였죠. 레비나스 선생님을 모셔서, 타자에 대한 개념을 동아시아 철학에서는 찾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여러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타자성, 타자에 대한 사유, 타자에 대한 배려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돼야 하는 게 자율성, 자기 주체성, 나를 살리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내가 좋은 것을 정립하지 않고는 타자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저희가 지금 레비나스 철학을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데, 대륙을 돌아다니며, 삶의 일상성으로부터 너무나 본질적인 삶을 살아가는 분들을 모셔서 인간성을 되찾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타자에 대한 상상력, 내면에 대한 성찰, 타자에 대한 감정 이입, 윤리적인 관계. 대한민국 공교육이라는 적과 뜨겁게 싸우면서, 비판이 아니라 희망을 가끼이 두고 제시하는 게 인디고 서원입니다. 희망을 가까이 두시고, 불만을 내뱉는 담론이 아니라, 희망을 제시하는 그런 좋은 어른들과 연대하고 싶은 생각이 다시 들었었습니다. 청소년들의 현장을 보여드리고 돌아가고 싶습니다.

조진석= 서경식과 함께 하는 사람들 모임에서 최근 주제로 ‘희망’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한국에서 그런 얘기를 할 만한 자리가 많이 없었습니다. 3월에 서선생님이 일본으로 가시면 그 모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와 그 얘기를 나눌 분들이 한국에 안계실 것인가. 이번 자리는 2월까지 희망이라는 주제를 끝으로 한 모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것입니다. 큰 범위로는 우리 얘기의 주제는 교양입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어떻게 하면 돌파할 수 있는가. 본질적인 지식인라는 것이 교양 속에 담겨 있지 않은가. 현재 교양이란 무엇인가, 이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현실 속에서, 희망이 있는 듯 하지만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을까에 대해 다른 참석자 여러분들과 얘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인디고 서원 박용준 팀장= 지식인 집단과 대중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지식인과 대중의 실천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예전에 인터뷰할 때와 지금 모습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이 땅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토양 위에서 실천을 하고 있는가 묻게 됩니다. 책을 쓴다든지, 토론한다든지 하는 것인데. 사실 모든 변화는 현실적인 실천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듯 합니다. 책을 쓰고 여러 방식으로 사유를 촉발하고, 실천이 일어나기까지 나의 동기부여로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무력감이 느껴집니다. 과연 서경식, 한홍구, 박홍규 선생님이 자신이 속한 일상 속에서 어떤 실천들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소소한 실천들까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런 선상에 놓일 수 있는 것 아닌지요.

조진석= 이 질문을 박홍규 선생님께 돌려드리자면, 대학교수 자리에 30년 가까이 계셨는데, 걷어차고 인디고 서원에 가셔서 공부하시는 게 오히려 건강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가능성을 보지 않습니다. 과감하게 떠나야 할 때 떠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목= 아까 괜히 박선생님의 누를 끼칠까 싶어서 말을 안했는데, 허아람 선생님이 제가 권력을 이용한다는 말을 잘못 받아들인 듯 합니다. 제도 시스템을 활용하자는 뜻이었습니다. 교양과정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위원회를 몇 번 거치고 본회의, 그리고 최종결정까지는 상당히 걸립니다. 정말 양식있는 총장이 있어서, 교양교육이 왜 필요한가 하는 마인드가 확실히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 조금 쉽습니다. 제가 권력을 악용하자는 나쁜 놈은 아니고 그런 뜻에서 한 말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싶어서 첨언합니다.

허아람= 결국 우리가 정권에 곤두세우는 이유가 뭡니까. 개인의 삶을 정책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 정책이 우리 모든 개인의 삶을 짓누르는 시스템입니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주권을 가진 국민이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데, 그 상식이 안통하는 사회에서 교양을 얘기한다는 것이 역설적입니다. 권력이나 제도로서 이용하는 차원이 아니고, 패스하는 정도로서가 아니라, 문제가 있다고 모두 공감하면서도 그 안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래 걸립니다. 작은 시도라도 굉장히 근본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저항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씀에 굉장히 깊게 공감합니다. 우리들의 보이지 않는 적들에 대해 실감하지 않는 무감각한 사람들이 우리 정책을 그렇게 몰아가도록 하고, 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박홍규= 지난 가을에 법학과를 그만두고 교양학부로 옮겼을 때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선생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좀 해볼 수 있을까 방황해왔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 파트너 말따나, 왜 대학에 안온하게 앉아서 헛소리나 하고 변혁을 위한 실천을 못하고 있느냐는 거죠. 어렸을 때 제가 나이 든 분들에게 했던 말을 제가 나이 들어서 똑같이 듣고 나니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지난 가을에도, 조진석 선생 말씀대로 교수 일 그만두고 다른 것을 해보자는 고민을 수 없이 했는데 이렇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20~30년 계속 후회만 하고 방황만 하는 사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저로서는 교양학부로 옮겨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능력에 맞는 것이라고 봅니다.

서경식= 저는 일단 지식인이라는 말을 쓴 이유가 지식인과 대중을 구별하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지식인은 외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혼자서 저항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 지식인입니다. 저는 재일조선인이니까, 일본에서도, 여기서도 마찬가지지만 항상 주변화된 소수자로 살아왔습니다. 일본에서도 우연히 대학 교수가 됐는데, 너에게 일상생활 속의 실천이 뭐냐 묻는다면 글쓰기야 말로 일상 속의 실천이다 이렇게 말씀드려야 할 듯 합니다.

제가 대학교에 임용됐을 때 나이가 50이었는데. 그때 처음 조직생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직의 관점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노동조합원이 되고. 연금이나 보험이나 전부 다 학교에서 전부 대주고, 얼마나 살기 쉽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다들 갇혀 있구나 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시대, 그런 세상에 살고 있어요. 그런 틀을 한 걸음이라도 나가면 낙오할 수 밖에 없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고 있어요. 저는 나이 50까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잘 압니다. 우리 사회의 거의 대다수는 비정규직, 여성, 외국인 등 거의 주변화된 양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집단성, 대중으로 산다는 것은, 대중을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외로움을 대가로 자유로운 판단의 대가로 외로움을 택한 것입니다. 이제서야 생각한 게 아니라 계속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박홍규 선생님이 도쿄경제대에 왜 이런 교양 프로그램이 생겼느냐 하셨는데, 제가 들어가기 전에 도쿄경제대에 차별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유학 온 여성 학생에게 일본 남성이 차별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아야!” 소리가 났을 때 남자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며 농담으로 시작해, 점점 갈등이 고조돼 “너는 매춘부냐, 얼마냐”라는 소리까지 했습니다. 여자가 화를 냈죠. 한국 남자 학생이 그 일본 남학생을 때렸어요. 제가 임용되기 전 일인데요. 이 일본 학생이 자신은 폭력의 피해자라며 한국 학생을 고소했습니다. 이 일을 보며 일부 동료 교수들이 법학만 가르치고 사회에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우리가 조금씩 교양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를 초빙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박사학위도 없고, 대학원도 안갔어요. 그런 사람을 임용하는 어느 정도의 자유로움이 일본에 남아있었어요.

7~8년 전 저를 임용한 사람들은 아주 소수파입니다. 저를 임용한 것에도 여러 가지 중복된 이중적 사고 방식이 있죠. 조금이라도 다른 특색을 내고 학생을 많이 모집할 수 있도록, 교양도 하나의 상품적 가치 선전이 될 수 있는 거죠. 재일조선인을 임용하는 것도 우리가 얼마나 좋은 학교인가 선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게 별로 신기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원래 그런 상황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을 여기서도 그렇게 살 뿐입니다. 물론 대학교수라는 기득권이 됐으니까 비판도 받아야겠지요.

집단성과 달리, 저를 성찰하는 기준이 저에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의 가족관계도 하나의 척도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팔레스타인인으로서 미국 대학의 교수였던 것이. 그 순간 순간 자신의 친구가 있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아니라 멀리 외국에 지금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서 잘 싸우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고 살 뿐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디고 서원이 어떻게 하고 계신 지 모르겠지만 한국사회에 공동체적인 것이 벌어지고 있다고 할 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은 엄격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일상적 실천이 벌어지고 있다고 믿고 있을 때에도 저항이 있을 수 있다 저는 그런 걸 좀 느꼈습니다.

조진석= 21세기 교양프로그램 얘기를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현실에서 쓰이는 교양개념 자체가 모순 투성이고 다른 생각 가진 교수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까, 경기장에서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금 있는 현장이 그렇습니다.

인디고서원 일꾼 한지섭= 훌륭한 선생님들과 함께 있는 것이 영광입니다. 지식인과 교양에 대해. 교수님들이 현실에서 고생하고 있는 것은 잘 알겠는데 그러면 저희는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생 친구에게 “야 니 행복하나” 물으니 “불행해요”라고 해요. “왜 불행한데?” 물으니 “학원가야 되고, 학교가야 되니까”라고 해요. 그 중학생이 하는 말이 “안봐도 비디오쟎아요”래요. 인디고서원 하면서 관심의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나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너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경영학과에 다니고 있는데요. 친구들에게 “교양 뭐 신청할래?” 하면 “학점 잘 받는 것” 한대요. 스키, 수영... 학원 가면 5만원 내면 한달 내내 들을 수 있는 과목을 듣는대요. 모든 게 관심의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아무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 지 생각을 안하는 것입니다. 10년 후 안봐도 비디오인 것을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수님들이 힘드신 점, 아프신 점, 고달프신 점 다 들었으니 이제 “우리는 어떡하라고?” 하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존경하는 교양인을 한 분 정도씩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한홍구= 제가 늙었다는 생각 많이 하게 됩니다. 눈이 침침해서 잘 안보이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눈 앞이 캄캄해지니까요.(웃음) 그런 질문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굴까요. 바로 자기자신이죠. 그거 어쩌라고. 당할 사람도 자기고, 헤쳐나가고, 싸울 사람도 자기입니다. 승리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얘기했지만, 변화되죠. 내가 그걸 볼 수 있을 지는 딴 문제이지만. 역사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 답을 갖고 있다면 거기서도 자기의 선택 문제입니다. 지금 질문한 분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갔고,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고, 인디고를 선택했지요. 인디고가 굉장히 훌륭한 모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속에서 나름대로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끼면서 다른 친구들을 끌어들이는 장을 만들고, 일단 확산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런 작업을 어떻게 다른 지역에서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부산에서는 했는데, 서울에서는 이런 식이 불가능할까, 대구에서 광주에서는? 주제가 있다면 변주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찾는 데서 여러 군데를 다니는 경우도 많겠지만, 특히 사회과학 쪽에서 그렇죠. 서구의 대가다, 제3세계의 누구다, 모셔다 놓고, 어쩌라구요? 그 사람들도 이 곳의 현실은 알 도리가 없는데. 저도 청소년을 위한 역사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는데 그건 내 입장에서 하는 얘기이고, 청소년 입장에서는 다른 문제입니다. 힌트를 얻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기성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줄 수 있는 답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네가 부딪힌 세상이 이런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얘기해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거기서 결단하고, 행동하고, 연대하는 것은 자기자신입니다.

타인의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 교양이라는 부분이 나와 타인의 문제, 공익과 사익의 문제를 너무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 합니다. 내가 있어야 남이 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있다고 했는데. 한국사회가 너무 자기이익을 추구한다, 국익만을 따진다고 하죠. 그런 데서 문제가 비롯되는 것은 맞고 비판해야 하는데, 사익의 추구가 과연 나쁜 것인가 물어야 합니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게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측면 있다고 봅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사익의 추구가 정말 나쁜 것이고, 어떤 지점에서는 나의 사익 추구 싸움이 우리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것인가.

비정규직의 사익을 건 싸움은 우리 사회의 공익과 맞닿은 부분이 있죠. 돈 많은 사람이 사익 계속 추구하면 땅 늘리고 하는 그런 것은 아니겠죠. 사익과 공익의 연결점이 어디겠는가.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로 제도화시켜나가는가, 꿈꾸고, 도전하고, 싸워서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은 질 것입니다. 싸움이라는 게 하고 싶어서 할까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죠. 그런 부분에 있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감을 못하고 있는가 하면, 원산 총파업 때 강주영이라는 여성이 을밀대에 올라가 고공시위를 펼쳤다고 하는데, 그 높이는 지금으로 치면 몇 미터 되지도 않아요. 그런데 요즘은 120m 크레인 위에 올라가 70여일 농성을 해도 어디에도 기사 한 줄 안나오는 세상이 됐어요. 옛날에는 을밀대 가지고 대서특필했는데요.

저 사람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는 선한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은 저 사람이 저기 올라가 있지만, 내일은 내가 120미터 저기 올라가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저 사람의 고통,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 그런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어디 있는지 찾고 그 사람들과 무얼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전에는 대학에서 그런 걸 기대했죠. 70년대만 놓고 봐도, 저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진보했고, 민주화됐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제가 대학에 입학한 지 꼭 30년 되는 해입니다. 자꾸 저의 대학교 1학년 때와 비교하게 되는데.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 제 주변에 장관 아들도 있었고, 재벌집 자식도 있었어요. 그런 애들도 그렇게 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어요. 이 문제는 우리가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파이를 키워서 문제를 풀자는 생각인데, 지금 파이는 초코파이에서 카페트만하게 커졌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걸 왜 푸느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해요.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도 없고, 무능한 사람들은 도태되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생각 공공연하게 퍼져 있어요.

베트남에 파병할 때, 다리 같은 걸 놓을 수도 있고, 돈도 생기는 데 그 때는 차마 그걸 드러내놓고는 얘기 못하겠다고 했어요. 지금은 이라크니 뭐니 당연히 국익으로 얘기하는 사회죠. 과연 어떤 사회가 더 교양있는 사회인가요. 이익에 대한 추구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의 문제예요.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이 한나라당에도, 뉴라이트에도 가 있고, 민주당에 들어가 이상해진 사람들도 많죠. 세상의 변혁을 어떻게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자기 자신을 모든 것을 버려야만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자기 이익을 추구하되 어떻게 공익과 결합할 수 있을 것인가를 다그쳐야 이 사회가 피곤해지지 않고 사회 진보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진석= 박홍규 선생님과 서경식 선생님 두 분이 루신, 사이드, 고흐 등 공통된 인물에 대해 얘기하신 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거기에다 교양에 대해 얘기하신 부분도 비슷해서, 친구로서 만나고 싶어하신 게 아닌가요. 아까 교양인을 추천해 달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박홍규= 모범적인 교양인?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딱 한 가지 이유가 아닙니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워드 사이드, 루신 등을 교양인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고, 이 분들이 학제적, 종합적 지식을 보여준 적도 없어요. 고흐를 그렇게 얘기한다면 우스개같은 얘기이죠. 어떤 인물을 전형적인 교양인으로 꼽을 수 있느냐. 제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사람들 얘기를 해왔을 뿐이죠. 그래도 한 사람을 꼽는다면 사이드입니다.

사이드가 자신이 교양인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어요. 교양을 비판했죠. 리버럴 아츠 차원의 교양 말입니다. 사이드는 그리스 로마 이후 고대 정전에 기반한 미국의 리버럴 아츠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이었어요. 서구 오리엔탈리즘적 지식체계, 예술체계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이었죠. 서구 고전들이 갖는 보편성, 그런 걸 대단히 중시한 사람을 무시할 수 없어요. 사이드 자신이 가장 진지하게 진실을 추구했던 지식인의 모습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교양인이라는 차원에서는 어떨 지 모르겠어요. 뭐 꼭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다 빈치를 르네상스적 인간이라고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우리 사회에서는 대표적으로 오해되고 있는 것이죠. 찰스 퍼시 스노의 ‘두 개의 문화’ 얘기에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을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교양인이라 보지 않아요.

학제적, 가교적, 경계 허무는. 다 빈치가 그림 그리고 비행기를 설계했다고요? 저는 그런 점에서 신지식인 개념이라든지, 최근 기업이 요구하는 그런 교양인의 개념에 대해 대단히 비판해야겠다고 생각해요. 르네상스적인 자기 추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대단히 권력지향적입니다. 다 빈치는 미켈란젤로 등에 비해 훨씬 현실순응적이었어요. 미술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다빈치 닮기, 다빈치처럼 생각하기 등 예찬론식 이야기는 교양인의 모습과는 다르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더라도 각자가 자기에게 맞는 교양인의 모습은 얼마든지 발견하리라 봅니다.

인디고서원의 한 학부모=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참가자 토론할 때 이야기할 주제로, 절망을 느끼는 분위기 속에서 희망이 사라지는 시대에 어떻게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 이야기를 하자고 했는데요. 저는 이 자리가 굉장히 유쾌한 자리로 자리매김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유는 다른 분들은 어떻게 길 찾기를 하는지 듣고 싶어서입니다. 많은 분들이 딱딱하게 말씀하셔서 쉽게 토론하는 자리에 풍덩 빠지는 분위기가 아닌 듯 합니다. 대학생들이 참 많은데, 희망 찾기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하시는지 말씀해주시지요. 지금보다는 좀 더 유쾌하게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최재목= 타자를 위한다는 게 쉬운 것 같아도 쉽지 않습니다. 투쟁한다, 저항한다고 하지만 이것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중국에서는 쓰레기를 버리는 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고 돼 있어요. 그게 교양이 되기도 합니다. 일률적으로 이것이 교양이다, 이대로 살아라 하는 것도 폭력적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떤 교양을 만들어 제공해야 하는 것인지, 다양한 논의를 통해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영남대 법과대 학생= 개인이 길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개인에 달린 문제입니다. 처음에 대학에 들어와 찾은 곳이 ‘새벽을 여는 노래’라는 노래패였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민중가요 노래패죠. 90년대 중반 한총련이 연세대를 때려부수는 사태 즈음해 학회가 생겨났습니다. 선배들이 생각하는 민중가요가 대학생들의 교양입니다. 민중이라고 하는 데에는 대학생이 생각하는 모든 교양이 들어있고,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군대 갔다와서 보니 학회가 없어져버렸어요. 일반 대학생이 생각했을 때 그 길은 일반 대학생이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이죠. 교과과정 이상의 교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04학번 후배를 받으면서 비슷한 일을 떠올렸습니다. 네가 지식인이라면 네가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었어요. 참 말도 안되는 것이죠. 저도 4학년인데, 제가 생각했던 삶을 지금 살고 있는가 물어보게 되요. 스물한살 때 스무살 후배들 앉혀놓고, 네가 사회 나가서 뭐 할거냐고 물었으니. 3~4년 뒤에 그 후배가 와서 형이 한 말 때문에 내가 생각을 해보고 많은 다른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찾아봤다고 했어요. 길이라는 게 어떤 사람의 영향 하에 자기 자신이 찾아가는 것 아닌가 해요. 교양을 얘기한다는 게 교양학부에서 가르치는 수준인가, 경제학의 이해와 같은 전공수업의 입문 수준으로 하는 것인가, 증권투자의 이해를 듣는다면 일반적인 수준에서 증권투자를 이해하는 것인가요. 이것이 과연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양인가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교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 학교에 뭔가 건의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지금 대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교양이 무어라고 보시는지 묻고 싶어요. 교수들은 대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교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인디고서원 이소연 학생= 모두들 좀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보고 있는데 표정이 서로 좋은 영향 줬으면 좋겠어요. 교양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자, 삶을 바라보는 태도라면, 생각해보니 왜 우리가 시대정신에 묶여야 되는가 생각하게 되요. 노예제도가 왜 생겨났고, 왜 없어지지 못했는가. 교양의 역할은 시대정신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바람직한 삶을 사는가와 연결되지요. 저의 길찾기는 배워가는 과정인데, 그것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것에 대해 애정을 갖는다는 것은...

조진석=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할머니 옆에 서세요, 그리고 웃으세요, 사진 찍어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 분들에게 웃으라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죠. 인디고 서원이 오늘 일관되게 얘기하셔서, 저는 심각해질 때는 심각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소연= 지금 이 순간이 인디고서원 프로젝트 하면서 굉장히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라는 존재에 대해 살펴보면서 이 순간과 끝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순간이 굉장히 소중하다 생각해요. 매 순간 치열하게 깨어있고 싶은데 함께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조진석= 증권투자의 이해, 골프 이런 게 전부 교양에 속해 있는데. 그렇다면 교양의 방향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것을.

서경식= 일본의 학생 청년들은 자발적인 다수자입니다. 누군가 권력으로 강제한 그런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차단하고 외면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사니까. 그런데 전부 다 그렇게 되면 몰락하겠다, 전체주의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가르치는 교양이라는 것은 그런 사고방식입니다. 삶의 가치가 여러 개 있어요. 일류회사에 들어가는 것만 인간의 삶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도 그렇게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같이 해보면서, 가령 미술관 가거나, 아우슈비츠에 가거나 하면서 말이죠. 희망이라는 말에 대해, 희망이 없다는 것을 같이 나누는 것이 그만이면 그만인데,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왔고, 저도 그걸 가르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 뭘 가르치느냐 하는 건데 저는 항상 그런 기대를 갖지 마라, 그런 걸 믿지 마라고 해요. 노신의 마지막에 죽음이라고, 7개 유언이라는 게 남에게서 주어지는 것을 기대하지 마라고 해요. 평생 그렇게 살다 죽고 만 사람이 있었다. 그런 얘기 밖에 할 수 없겠네요.

영남대대 법학부 학생2= 박홍규 교수의 인턴 조교입니다. 교양에 있어 현재 상태 내지는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매실을 보면 침이 고이는데 그거와 비슷하게 일제 시대 일어난 수많은 농민운동, 지금의 수많은 파업들이 있죠. 저는 농민들이 독립을 위해 움직였다고 생각지 않고, 파업하는 사람들도 노사화합을 위해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해서 한 것일 테지요. 선생님들이 하셔야 될 것은 그 목표, 교양이라는 것에서 달콤한 사탕,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박선생님은 여러 책을 쓰시고 서경식 선생님도 강연을 많이 하시는데요. 바뀌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 크다고도 보지 않아요. 달콤한 사탕을 제시해주고 그 다음에는 사회의 자정 작용에 맡길 수는 없을지...

허아람= 노예가 될 가능성이 많은 학생이군요. 이상적인 스승이 있다면 그걸 따라가려고 하는 건가요?

학생2= 자만은 아니지만 이상적인 생각들이 있어요. 저도 집에 가면 ‘파트너’가 있고, 자식이 있어요. 저를 위한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아이와 파트너를 위해 사는 삶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데요. 교양에 있어 여기 계신 대다수 참여하시는 분들이 교양이라는 이상이 이뤄졌다면 이뤄진 이상을 제시해주면 충분히 따라갈 의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조진석= 대학의 교양교육이 제도화된 채 이뤄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 정해진 채로 하게 돼 있어요. 제도화 돼 있는 것을 따른다고 노예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걸 요구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고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교육 뿐 아니라 인생살이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노예라고까지 하신 것은 좀 심했다고 봅니다.

인천에서 온 지리 교사= 주제가 광범위하고, 공감이 갑니다. 인디고 서원에서 비판도 하셨고 저희도 공교육 현장에서 많은 고민을 해왔습니다. 박홍규 선생님이 법과 예술을 강의하신다고 하셨는데, 강의명만으로는 그 느낌이 확 오지 않습니다. 그런 게 바로 바로 교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강의하시는 내용이 좀 궁금하기도 하고요.

박홍규= 우선 법학개론이라는 과목이 법에 대한 상식이나 천편일률적인 책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깨뜨릴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법대만이 아니라 중등학교 때 문학 사상, 고전을 읽을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생각해낸 강의입니다. 한 학기는 오페라를 열 몇편 골라서 봤어요. 끼워맞추면 법과 관계없는 게 없어요. 다 법 이야기입니다. 오페라에서 등장하는 사건과 삶이 법과 어떻게 연결되느냐 그런 식으로 풀고. 한 학기는 소설로 했어요. 소설도 대단히 많으니까요. 법대를 다녔다가 소설가가 된 사람도 많고, 소설에도 재판, 법적 분쟁이 수없이 등장하죠. 미술도 그렇고, 시도 그렇죠. 소재가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걸 통해서 법대 학생들에게 작가, 화가들, 음악가들을 소개해주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법에 대한 관점을 이렇게 가졌고 하는 것을요. 제가 10년 수업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예술가가 비판적이었습니다. 법이 좋다고 하는 미친 예술가는 없죠. 저는 또 그게 좋은 거고. 미국 영화도 잘 보여주는 데, 시민참여 다루기 위해서는 미국 재판 영화를 몇 편 보면서 얘기하는 식이었죠.

인디고서원 박용준 팀장= 방금 하신 질문은 교양교육의 목적성, 결과를 낼 수 있것에 대한 가능성, 효용 등과 관련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박선생님의 대답은 한 마디로 얘기하면 법과 예술을 하는 유는 법보다 예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는 것 뿐이네요. 이 대목에서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것이 교육의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의문을 던지고 싶어요. 교육,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향유 나눔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것이 좋겠다는 거죠. 교양이 목적성을 띠기보다 나눔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자신의 길찾기 등 여러가지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그걸 가르치는 게 교양이라면 그것이 과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교양 자체가 인위적인 것이 될 수 있지 않은지요.

한홍구= 교양과 계몽이라는 것의 차이인데요.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도 다를 수 있다고 봐요. 가령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그 자리에 강제로 와서 어떻게 한다면 그 역시 억압이 될 테고, 재미없어질 겁니다. 그걸 흥미를 느끼면 몰입할 수도 있을 거고요. 교양이라는 것이 원래 쓸데없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쓰일 데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대개 당장은 쓸데 없는 것입니다. 성공회대에 채플이 있어요. 채플 중에 아멘 하는 곳도 있지만, 사실 굉장히 좋은 교양과목으로 돼 있는 곳도 있어요. 학생들은 그래도 싫어해요. 서경식, 박홍규 선생 모시기도 하고, 해금 연주자 불러서 조그만 연주회도 갖고 음악가와 얘기 나누면서 더할 나위없이 좋은 교양 프로그램으로 하는데도 학생들은 그런 채플도 싫어해요. 제도화 자체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한계이죠.

어쩔 수 없이 그런 점도 있지만. 옛날에는 선생이 있으면 찾아가는 체제였는데, 지금은 대량화, 제도화돼 일정한 한계가 있는 거죠. 그래도 인문학에서 교양이라면 최소한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그 정도는 해야죠. 학생들 입장에서도 듣는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대학 시스템이 너무 비대해져 있고, 교수 학생들 간에 인간적 관계 내지 대화의 시간이 너무 부족한 점 등 그런 한계를 갖고 있겠죠.

서경식= 법과 예술 강의를 어떤 내용으로 하는지 흥미로웠어요. 고전은 어떤 형식으로 바꿔도 감동을 주게 돼 있어요. 그것이 고전의 힘이죠. 인간이 고뇌를 지닌 존재입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묘사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교양이라고 봅니다. 실용성이 없어요. 타자에 대한 배려는 자신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박교수님과 달리 반 고흐를 엄청난 지식인이라고 보고 있어요. 반고흐 전집 6권 완역판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지식인 말씀을 하셨는데, 본능, 욕망으로 그림을 그린 사람들과는 달라요. 네덜란드인이면서 영어·프랑스어도 했죠. 동생 테오와 싸웠을 때도, 7월 혁명 때도, 일본의 하세가와와는 달랐죠. 고전적인 보편적인 의미가 있어요.

고흐가 행복하게 산 사람이 아니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고정 개념을 깨고, 외로워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야를 주는 게 교양입니다. 그런 교양을 바라지 않는 제도는 성공적일 수 없어요. 저 자신이 그런 시각을 갖게 되어서 겨우 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지금은 어려운 시대입니다. 눈에 잘 안보이는 전체주의에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인간적으로 살 수 있으면 됩니다. 지식인이 누군가의 입에 달콤한 사탕을 집어넣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자신이 몸을 두고 있는 그 장소에서 인간답게 사는 것을 해야 합니다.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는 게 교양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은 질문인데요, 제가 군산학공동체 얘기를 했는데. 제국주의 종주국이나 소위 선진국 얘기죠. 일제시대 생각하면 상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나라 지식인들은 국가와의 거리가 있을 거다 생각했어요. 완전히 국가에 포섭된 사회가 아닐 거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창순 선생님 같은 조선시대 서당교육, 근대적인 제도가 아닌 교양이라는 얼터너티브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했어요.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하면 서당교육이 이뤄졌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런 것도 교양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해요.

한홍구= 이중적인 측면이 있다고 봐요. 한국에 그래도 비판적인 지식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 70~80년대 국가를 상대로 투쟁했기 때문이었죠. 어용지식인도 물론 있었고요. 한국사회가 민주화된 것을 두고, 대한민국은 약간 민주화된 사회다, 물타기형 민주화라고 하죠. 권력에다 계속 물을 부어서 한 민주화라는 거죠. 한나라당 이재오나 김문수가 실권을 갖고 있는 것이 잘 보여주죠. 이 곳이 옛날 민정당과는 다른 곳인데, 김대중, 노무현 10년을 거치며 국가와 지식인의 거리가 상당히 달라진 측면이 있어요. 노 정권 때는 굉장히 기대했다가 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참여한 사람들, 그리고 참여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굉장히 비판적이었지만, 과거청산의 ‘판’이 벌어졌을 때 어쨌거나 했단 말이죠. 그러면서 국가와의 관계가 희미해지고, 거기서 길 잃은 지식인들이 많아졌어요. 과거 비판적 모임인 학단협, 산사연 등에서도 자기 반성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국가가 역진을 할 지 어떨 지 모르겠지만.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 살아나야 할 상황이 됐는데, 70~80년대 비판적 지식인이 됐다고 해서 과연 그 때처럼 거리로 나가야 할 때인가. 아니면 무력감, 열패감에 빠질 것인가. 80년대 이후, 2000년대 들어온 이후 비판적 지식인 재생산 문제는 일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도 그게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어요. 과거 비판적 지식인이 이제 50대 중후반이 됐고, 학계에서는 지도적 위치에 올랐죠. 제자들을 가르치고 권위주의화해요. 선생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우리 학교는 예외적인 경우지만, 우리 학교가 우리가 학계에서 재생산 구조에서 차지하는 것은 거의 미미해요. 각 대학에 포진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단절된 부분에 대한 위기의식이 있어요. 일본에서 우경화가 진행되며 느끼는 것과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르고, 어떤 점이 닮았는지 봐야 해요. 닮아가는 점을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어쨌거나 한국사회는 투쟁으로 극복해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죠. 이것이 발목 잡는 것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어떨 지 모르겠어요. 한국사회에서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이 역동성이 많이 죽긴 했지만 아직 살아 있는 부분이 있죠. 요는 이명박 정권이 5년을 겪으며 어떻게 대응해 나가느냐인데. 제일 심각한 문제가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 세대입니다. 이들이 과거 운동권 세대가 소통이 안되고 거리감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으로 말씀드리자면 작년 2월 부산에 가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 KTX 종업원들이 왔어요. 박종철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돼 왔대요. 그 분들이 “너무 힘들고 외로울 때 큰 힘이 됐다. 굉장히 외로울 때 와서 상준다고 해서 왔다”고 했어요. 그러더니 “근데 박종철이 누구니?”라고 하더군요. 그게 상징적으로 잘 보여줘요. 비정규직 여성으로 첨예한 지점에서 가장 오래 싸우고 있는 그 분들이 “근데 박종철이 누구니?”라고 하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어요. 우리 사회가 민주화 됐는지 안됐는지 의문이 드는데, 그때 싸웠던 분들은 지금 자기네들끼리 싸우는데, 이 지점에서 젊은 세대들이 갖고 있는 싸한 분위기가 있다는 거죠. 진보 세력과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다시 만날 것인가. 이게 일본과 한국이 같은 길로 가느냐 다른 길도 있느냐 큰 분기점이 되리라고 봅니다.(정리/손제민기자)

08.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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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동자 2008-03-06 16:43   좋아요 0 | URL
이 대담 옮겨주어서 감사해요. 잘 읽고갑니다. 늘 일독하는데 처음으로 흔적 남깁니다.

로쟈 2008-03-06 22:37   좋아요 0 | URL
일독하기에 좀 길던데요.^^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2006)을 잠깐 읽었다(이하에서는 그냥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적는다).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와 <주기율표>(돌베개, 2007)가 한달쯤 후에 나오니까 레비에 관한 책으로는 최초였을 테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말미에도 서경식의 '작품해설'이 포함돼 있다. 그의 개인사의 곡절까지 포함해서 이래저래 두 사람의 이름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아무려나 <이것이 인간인가>와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같이 읽게 된 셈인데, 잠깐 읽으면서 받은 인상을 몇 자 적는다. 먼저 판권 표시로 보아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의 일본어판은 1999년에 출간됐는데, 국역본 책갈피에는 이 책으로 "2002년에 일본 이딸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로꼬뽈로상을 받았다"고 돼 있다. 몇 년이 지나서 상을 주는 법도 있나 싶었지만, 역시나 그건 아닌 듯하다. <시대를 건너는 법>(한겨레출판, 2007)의 책갈피에는 "2000년에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으로 이탈리아문학원이 주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고 돼 있는 걸 보면(이탈리아문학원?).

'마르꼬뽈로상'이나 '마르코폴로상'이나 어차피 같은 상일 테니까 서로 다른 연도에 다른 곳에서 상을 받았다는 건 말이 안된다. 짐작컨대, 2000년이탈리아 문화원이 주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을 것이다. 참고로 얼마전에 나온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단테 '신곡' 강의>(안티쿠스, 2008)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그 해의 '마르코 폴로 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책이다(일어본 초판은 2002년에 나왔다).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은 1996년 1월 1일 밀라노에서 토리노로 향하는 보통열차 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는 예의 미술관 이야기다. "이딸리아에 도착하고 10일이 지났다. 피렌쩨는 따뜻했지만 밀라노에는 눈이 내렸다. 그저께에는, 여행할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서둘러 미술관을 돌아보았다. 밀라노에는 이번이 세번째지만, 근대미술관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마리노 마리니의 컬렉션이 충실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14쪽)

사실 서경식이란 이름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도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2002)였다. 그래서 내게도 '디아스포라의 지식인'이라기보다는 '미술 에세이스트'로서 먼저 각인되었다. 이게 보통의 미술평론들과는 좀 다른 종류의 에세이들이긴 하지만. 그런 사정과 무관하게 인용한 대목에 눈길이 간 것은 '마리노 마리니'라는 이탈리아 조각가의 이름 때문이다. 기마상 조각으로 유명한 조각가 말이다. 

현대조각에 조예가 있는 것이 아님에도 '마리노 마리니'란 이름을 기억하는 건  바로 작년 이맘때 국내에서 대규모 전시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비록 초대권까지 받아놓고 가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서경식은 밀라노의 '브레라(Brera) 미술관'에도 찾아가 마리니의 작품들을 관람한다. 그곳에도 "머리와 네 다리를 쭉 편 말의 등에서 기수가 극한까지 뒤로 몸을 젖히고 있"는 마리니의 대작이 있다고 한다(마리니의 기마상은 말년으로 갈수록 기수가 말을 제어할 수 없어서 점점 더 몸을 뒤로 젖히며 그만큼 '고뇌'가 깊어간 것을 뜻한다고).

"하지만 그날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기마상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지나칠 뻔한 작은 남성 조각상이었다. 'Il miracolo'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기적이라는 의미일까. 삐에로인 듯하지만 가슴에 십자가를 건 것을 보면 성직자일지도 모른다. 작은 머리. 비스듬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가냘프고 기다란 목선. 조금 익살맞은 그 모습은 애달프고 간절한 평화 그 자체였다. 나는 이제까지 여러 곳에서 마리니의 작품을 봤지만, 이 작품에 담긴 것과 같은 고요함과 깊은 정신성을 발견한 적은 없다."(14-15쪽)

호기심에 마리니의 작품을 찾아봤지만 'Il miracolo'란 제목이 붙은 그림만이 눈에 띈다. '애달프고 간절한 평화 그 자체'를 보기 위해선 밀라노에 가야 할 모양이다. 한편 저자가 그 밀라노에서 토리노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은 건 순전히 "만난 적이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인물의 무덤을 방문하기 위해서다." 물론 독자가 곧 알게 되지만 그 무덤의 주인이 바로 프리모 레비이다(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서경식은 2002년 봄에도 토리노와 아유슈비츠를 재차 방문한다. '프리모 레비의 자살'을 다룬 일본 NHK의 특집 다큐멘터리가 그의 책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근거로 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간주곡으로 들어가 있는 이야기는 '무덤'과 관련한 저자의 기억들인데, "이 기억은 1992년 여름 중국 동북지방의 옌뻰(*연변) 조선족자치주를 여행하며 윤동주의 묘를 방문했던 때로도 이어진다."(17쪽) 이어지는 윤동주(1917-1945)의 삶과 죽음은 적어도 (일본 독자가 아닌) 한국 독자들에겐 익숙한 것이다. 1943년에 일경에 체포된 윤동주는 1945년 2월 16일 옥사했는데 알다시피 '생체실험'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까지는 '상식'이지만 이어지는 사실은 내가 새롭게 안 것이다. 

 

 

 

 

예전에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세계사, 1998/ 푸른역사, 2004) 등을 들춰보긴 했지만 다루어지지 않았거나 내가 주의하지 않았던 듯한데, 그 새로운 사실이란 이런 것이다.

"후꾸오까 형무소로부터 '사체'를 가져가라'는 전보를 받은 윤동주의 늙은 아버지는 간도에서 한반도를 종단하고 현해탄을 건너가 유골을 가지고 돌아갔다. 유골을 묻을 때, 늙은 아버지는 생전 한 권의 시집도 간행할 수 없었던 아들을 위해 '시인 윤동주의 묘(詩人尹東柱之墓)'라는 묘비를 세워주었다."(20쪽)

<시대를 건너는 법>으로 묶인 '서경식의 심야통신'에서도 한번 다루어진 적이 있는데, 나는 윤동주의 유골을 간도의 '늙은 아버지'가 수습했는지도, 또 직접 묘비까지 세워주었는지도 몰랐다(묘비는 막연히 후대에 세워진 걸로 알았다). 그제서야 조금 떠오르는 사실은 이 묘비를 일본 학자가 발견했다는 점.

"사실 그의 묘를 ‘재발견’한 것은 와세다대학 오무라 마스오 교수다. 1980년대 연변대학에 체류했던 그는 윤동주의 묘를 찾아내 그곳을 일본의 독자에게 알리는 글을 썼다."(<시대를 건너는 법>, 319쪽)

이 오무라 마스오 교수의 책이 <윤동주와 한국문학>(소명출판, 2001)이다. 이왕이면 '조선 학자'들에게 발견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역사는 그마저도 허용하지 않은 듯싶다(모처럼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이상섭 교수의 <윤동주 자세히 읽기>(한국문화사, 2007)가 작년에 나왔다. 언제 읽어봐야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시 '별헤는 밤'에서 시인은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이런 시구절을 적어내려가던 시인의 손길을 떠올리면 애달프고 먹먹하다...

이제 프리모 레비(1919-1987)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자 문학자이며 화학자"('174517'은 아우슈비츠에서 왼팔에 새겨진 그의 수인번호다). "그는 1919년 또리노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또리노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복이딸리아가 독일군에 점령되자 반파시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싸웠지만, 1943년 12월에 체포되었다. 그는 유대계였기 때문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송치되었다. 그 아우슈비츠에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것은 모면했지만, 해방될 때까지 대략 1년의 세월을 노예보다 못한 생활을 하며 보내야 했다."(22쪽)

여기까지는 프리모 레비에 관한 '상식'이라 할 만하다. 한데 내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아우슈비츠 체험 이후에 레비가 토리노의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점. 26살에 생환한 그가 자신의 체험기를 처음 출간한 게 1947년, 그러니까 28살 때이다. 나는 막연히 중년에, 적어도 30대에 쓴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이 인간인가> 국역본에 자세하게 실린 연보를 참조하면, "프랑코 안토니첼리의 소개로 책은 데실바 출판사에서 2,500부만 출판된다. 훌륭한 평가를 받았지만 판매 면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레비는 작가-증언자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화학자로서의 일에 몰두한다."(314쪽) 그러나 초판 출판을 거절했던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1958년 재판을 간행하고 되고 이것이 초판때와는 달리 일약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안네의 일기>, 빅토르 프랭클(Victor Frankle)의 <밤과 안개>, 엘리 비젤(Elle Wiesel)의 3부작 <밤> <새벽> <낮>과 함께 나찌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진상을 전하는 증언문학의 대표작으로서 지금도 널리 읽힌다. 일본에서는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 한 이딸리아인 생존자의 고찰'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에 번역/간행되었다."(22-23쪽) 물론 우리는 작년에야 이 책을 접하게 됐지만 일역판도 생각보다는 늦게 출간됐다. <프리모 레비를 찾아서>가 <이것이 인간인가> 국역본보다 먼저 출간됐고 일역본을 참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은 그에 따라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로 표기되고 있다. 영어본의 제목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하지만 '생존자' 레비는 1987년에 자살했다. '프리모 레비로의 여행'은 그 이유를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것이 인간인가>에 붙인 서경식의 해설에 따르면, "프리모 레비는 생애 총 14권의 소설, 시집, 평론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서경식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은 차례대로 다음의 다섯 권이다. <이것이 인간인가>(1947/1958), <휴전>(1963), <주기율표>(1975),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 아래는 그 영역본들의 표지인데, 나머지 세 권도 모두 국역되었으면 싶다.

영역본의 표지들을 보다 보니 프리모 레비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이 떠오른다. 사실 많이 거슬러 올라가지도 않는데, 지난 2004년 모스크바 체류시에 모스크바대학 본관건물 구내서점에서(서너 평 될까 말까한 공간이다) 나는 처음 '프리모 레비'란 이름과 접했다. 러시아어본이 아니라 영어 중고본들이 서가에 꽂혀 있었고(가장 확실히 기억나는 표지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이다), 나는 여러 차례 망설이다가 구입하진 않았다(언제 읽으랴 싶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저명한 '아우슈비츠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가 이탈리아인이란 것도 당시엔 알지 못했다(북부 이탈리아에서 아우슈비츠까지 잡혀왔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검색해보니 러시아도 사정은 우리와 비슷해서 <이것이 인간인가>가 2001년에, 그리고 <주기율표>가 바로 올해 신간으로 출간됐다. 

Примо Леви Периодическая система Il sistema periodico

프리모 레비와 함께 서경식이 아우슈비츠 증언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더 꼽고 있는 '빅토르 프랭클(Victor Frankle)'과 '엘리 비젤(Elle Wiesel)'은 이미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저자들이다. 한데, '빅토르 프랭클'은 표기가 잘못됐다.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이 맞다(적어도 국내에서 그렇게 소개됐고, 영어 병기도 잘못됐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말이다(국내에는 여러 종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고 가장 많이 읽히는 건 청아출판사본이다).

 

 

 

 

내가 빅터 프랭클(1905-1997)이란 이름을 접한 건 책에서보다 신문의 칼럼들에서였다.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요법을 제창한 것으로도 유명한 프랭클 박사의 지론은 국역된 책들의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의미를 찾는 인간'(<죽음의 수용소에서> 영어본의 원제. 독어본 제목은 <밤과 안개>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 등이 말해주듯이 그것은 '의미의 발견'으로 수렴된다. 최악의 생존조건 속에서도 삶의 의미라는 끈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우슈비츠 체험을 통해서 얻어낸 그의 통찰이다.

그런데, 그의 가장 유명한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서경식의 책에서는 <밤과 안개>라고 거명돼 있어서 잠시 알랭 레네의 원작이 혹 프랭클의 책인가 헷갈렸는데 찾아보니 그건 아니다. <밤과 안개>는 그냥 일역본의 제목인 모양이다. 그럼에도 물론 레네의 영화 <밤과 안개>(1955)와 무관하진 않겠다. 이 역시 아우슈비츠를 고통스럽게 증언하고 있는 영화이니까.   

사실 30분 정도 분량의 이 영화를 나는 아주 오래전 프랑스문화원에서 얼떨결에 봤다(내 기억에 남아있는 제목은 <밤 그리고 안개>이다. 국내에는 <밤안개>로 출시됐고, 보통은 <밤과 안개>로 표기되는 듯하다). 몇 번 드나든 문화원 프로그램에 '알랭 레네'라는 아는 이름이 눈에 띄었고 나는 제목에서 <히로시마 내 사랑> 같은 영화를 떠올렸다. 하지만 웬걸! 영화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나레이션과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서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끔찍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이러한 참상 속에서 살아 남은 또 다른 증언자, '엘리 비젤'은 국내에 '엘리 위젤'(1928- )로 소개돼 있다. 루마니아 태생의 위젤은 작가이지만 특이하게도 198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맘때 그의 대표작들이 번역돼 나왔다(<엘리제르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3부작이 번역되었다).

 

 

 

 

물론 균형있는 독서를 위해서는 몇 권의 책을 이 모든 증언들과 같이 읽어두어야겠다.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다룬 빅토르 퀘페르맹크의 <유대인>(웅진지식하우스, 2008), 볼프강 벤츠의 <홀로코스트>(지식의풍경, 2002), 러버트 위스트리치의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을유문화사, 2004), 그리고 노르만 핀겔슈타인의 <홀로코스트 산업>(한겨레출판, 2004) 등이 그 책들이다.

다시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의 첫장은 '여행'이다. 아우슈비츠로의 여행. 열두 량의 기차에 나눠타고 레비와 함께 수송된 유대인들은 650명(혹은 615명)인데 살아돌아온 사람은 그를 포함해 단 세 명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 살바기 에밀리아가 죽었다. 독일인들에게는 유대인 아이들을 죽이는 일의 역사적 필연성이 아주 자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밀라노 출신 엔지니어 알도 레비의 딸 에밀리아는 호기심이 많고 대담하며 활발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여행하는 동안 그 애의 엄마와 아빠는 사람이 꽉 찬 객차 안에서도 함석통에 담긴 미지근한 물로 그 애를 목욕시킬 수 있었다.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있는 그 기관차의 엔진에서 물을 받아쓰도록 어느 부패한 독일인 기관사가 허락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식간에 우리의 여인들, 부모들, 자식들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도 작별인사를 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른 쪽 플랫폼 끝에 있는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그들을 잠깐 보았다. 그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23-24쪽)

곧장 가스실과 소각장에서 '절멸'될 대다수의 다른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과 달리 '튼튼한 남자들'로 분류된 레비는 다른 서른 명과 함께 트럭을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노동을 통한 절멸'이었다. 곧 지옥이었다("이 저주받을 망령들아, 비통할지어다!")...

08. 03. 02.

P.S. 새학기의 시작은 '바닥에서'부터이다('바닥에서'는 <이것이 인간인가>의 두번째 장제목이기도 하다). 다른 할일들을 잠시 제쳐놓고 따로 몇 자 적어놓은 것은 그래야만 먹먹한 마음의 숨통이 좀 트일 듯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읽다가 눈물이 돌았던 대목은 이런 것이다. 임시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기 전날밤의 풍경.

"모두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 삶과 작별했다.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러 곤드레만드레 취하는 사람, 잔인한 마지막 욕정에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여행 중 먹을 음식을 밤새워 정성스레 준비했고 아이들을 씻기고 짐을 꾸렸다. 새벽이 되자 바람에 말리려고 널어둔 아이들의 속옷이 철조망을 온통 뒤덮었다. 기저귀, 장난감, 쿠션, 그리고 그밖에 그녀들이 기억해낸 물건들, 아기들이 늘 필요로 하는 수백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빠지지 않았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내일 여러분이 자식들과 함께 사형을 당한다고 오늘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인가?"(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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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3-03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페이퍼 보고, 오전 내내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읽었어요. 읽으며 레비의 다른 책들이 몹시 궁금해졌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같이 보고싶은 다른 책들이 많아졌어요! 읽는 속도는 따라주지 않는데 늘 이렇게 욕심만 앞서니 ^^

로쟈 2008-03-03 17:46   좋아요 0 | URL
다른 책들이라고 해야 현재로선 세 권이 전부인데요.^^;

소경 2008-03-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수강한 과목의 계획표에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추천 되어 있어 읽어 볼 명분이 생겼네요. 물론 로쟈님의 페이퍼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가 주 동기지만. 새학기 긴 방학을 끝에 맞이한 붕뜬 개학의 기분을 내어버리기에 아쉽지만 페이퍼를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드는게 꼭 읽어 보아야 할 책 같네요. 서경식씨의 책과 함께.

로쟈 2008-03-05 22:25   좋아요 0 | URL
새학기라지만 저는 목소리도 가라앉았습니다.^^;
 

대책없이 봄이고 3월이다. 3월이라고 또 '3월의 읽을 만한 책'이 발표되었다. 간식 시간에 잠시 틈을 내서 어젯밤에 스크랩해놓은 기사에 살을 붙이도록 한다. 선정도서 및 추천사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웹진(www.kpec.or.kr/webzine)을 참조한 것이다.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문학분야에 추천한 책은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문학동네, 2008)이다. 알라딘에서는 이미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인데 저자는 생소하다. 그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마커스 주삭이라는 <책도둑> 의 저자 이름이 낯설어 다시 살펴보니 그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소설가'라는 평을 받는 작가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런 그의 명성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책도둑> 이 처음 번역되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배경이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철학적인 소설이다."라고 추천자도 적어놓았다.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될 듯하여 생략한다.

내가 보태자면 미국의 중국계 작가 하진의 단편집 <카우보이 치킨>(현대문학, 2008)은 어떨까? 이스마일 카다레의 신작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문학동네, 2008)와 견주어보다가 내가 손을 들어준 쪽이 하진인데, 그건 아직 그의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하진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761943 참조). 여차하면 대표작인 <기다림>(시공사, 2007)에까지 손을 뻗칠 수도 있겠다. 

 

 

 



2. 역사

역사분야의 책으로 추천된 것은 타이먼 스크리치의 <에도의 몸을 열다>(그린비, 2008)이다. 내가 지난달에 과학분야의 책으로 올려놓은 것이어서 따로 설명은 필요 없겠다(http://blog.aladin.co.kr/mramor/1885413). "<에도의 문을 열다> 는 난학(蘭學)이 에도 시대의 일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탐구한 책"이라는 게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간명한 소개다.

나는 에도시대보다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대 그리스에 관심을 두고 싶다. 이번에 새로 번역돼 나온 키토 교수의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갈라파고스, 2008)에 눈길이 가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로 평해지는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1934173 참조). 원제('The Greek')대로 그냥 깔끔하게 <그리스인들>이란 제목이 붙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키토의 책과 함께 나란히 읽어볼 만한 것은 데브라 하멜의 <네아이라 재판소동>(북북서, 2008)이다. 고전학자 인 저자가 "기원전 4세기의 아테네 사회에서 일어난 네아이라 재판 사건을 설명함으로써 당시 시대상을 파악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네아이라라는 고급 창녀를 두고 일어난 재판 과정을 새심히 다루면서, 그와 연관된 역사적 사실들이 자연스레 드러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하므로 그리스 '입문'에 이은 '실습'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저자 자신의 직접적인 책소개는 http://www.youtube.com/watch?v=blwjt0aAvgY 참조).

 

 

 

 

3. 철학

철학분야의 책으로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책은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이학사, 2008)이다. 물론 잘 알려진 책이고 이번에 새로 번역됐다. 추천사에 따르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는 왕년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강연문이다. 강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파리에서 열기로 가득한 청중들 앞에서 열렸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자신의 철학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이하고 자신의 사상에 던져진 이런 저런 비판에 맞서 반박하는 가운데 자신의 실존주의가 휴머니즘임을 천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저자의 주저이자 난해한 철학 작품 <존재와 무> 의 입문서라 불린다."

하지만 추천자가 밝히고 있는 이 책의 의의는 따로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사르트르의 철학이 새로운 주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지독한 개인주의라는 인상을 주던 실존주의가 인간에 대한 애정과 공동체에 대한 이론으로, 실천의 무기로 탈바꿈되는 시발점이 이 강연문이다. 골방의 철학이 광장의 철학으로 전환되는 장면이라 할 수도 있다. 역사상 유례없는 전쟁을 경험하면서 행동하는 지성인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난 철학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역력하다. 의도와 내용, 그리고 문체부터 대중과 만나는 데 성공한 첫 번째 사례로 꼽을 만한 책이다. 점점 전문화되고 어려워지는 요즘의 철학책들이 다시 회복해야 할 목표지점을 표시하고 있는 책이라 할까. 독자는 여기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외치는 가장 드높은 찬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사르트르의 육성은 http://www.youtube.com/watch?v=85vEXo7Wntk 등을 참조.)



이 '드높은 찬가'는 하지만 적잖은 상처와 고통을 뒤로 한 것이다. 때문에 내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소설가이기도 한 어빈 얄롬의 <실존주의 심리치료>(학지사, 2007)와 함께 1945년 이전의 몇 년간이다(얄롬의 책은 '교재'다). 가장 대표적으로 그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책으로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돌베개, 2007)를 들 수 있겠다. 이것은 두번째 장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바닥'에 관한 책이다. 인간성의 바닥이면서 인간에 대한 기대의 바닥.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새물결, 2008)도 이 '바닥'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아감벤 또한 레비와 함께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숙고하고 있는 이탈리아인이로군.  



 

 

 

4. 정치, 5. 경제/경영

정치와 경제/경영분야의 책은 묶어서 다루기로 한다. 손호철 교수가 추천한 정치분야의 책은 전대원의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2008)이다. 저자는 현직 교사라고 하며 "힘없는 일반 국민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권리에 대한 이해는 곧 그 사회에 대한 이해에 다름 아니며 억압이나 부조리와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권리를 아는 것이 문제의식에서 씌어진 이 책은 현직 사회과목 교사가 쓴 책답게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평범한 언어로 중요한 우리 사회의 권리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그리고 정운찬 교수가 경제분야의 책으로 추천한 것은 이해영/정인교의 <한미FTA, 하나의 협정 엇갈린 '진실'>(시대의창, 2008)이다. 알다시피 양국 국회/의회의 비준이 남은 상태인데, "이 책은 FTA를 지지하는 인하대의 정인교 교수와 반대하는 한신대의 이해영 교수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논점을 하나도 빼지 않고 토론한 결과를 한겨레신문 정남구 기자가 정리한 것이다." 해서 한미FTA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으로 추천되었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미국의 좌파 도시사회학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신간 <엘리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와 작년에 나온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 등도 눈여겨볼 책들이다(<빈곤의 역사>에 대해서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2291745565&code=900308 참조). 사실 한미FTA가 낳을 최악의 결과는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와 고착이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정말로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사악한 천국'인 것인지 미리미리 따져볼 필요가 있다.

 

 

 

 

6. 사회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토마스 휴즈의 <테크놀로지, 창조와 욕망의 역사>(플래닛미디어, 2008)이다. 소개에 따르면, "저명한 기술사학자 토마스 휴즈가 십여 년 전 버지니아 대학에서 행한 과학과 예술에 관한 특강 내용을 정리해 2004년도에 발간한 이 책의 원명은 'Human-Built World: How to Think about Technology and Culture'이다. 즉, 기술 자체를 논의한 책이 아니라 기술을 사회문화적 변동과의 연관성 하에서 고찰한 것이다."

거기에 보태진 추천사에 따르면 "기술 문제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지금까지 자크 엘루나 루이스 멈포드와 같은 사회비판론자들에 의해 촉발되어 레이첼 카슨과 같은 기술비판론자들로 계승되어 왔다. 따라서 기술의 사회적 파장을 그 혜택과 해악을 망라한 균형적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 이 책이 과거의 외눈박이 기술관을 시정하는 보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풍성한 인문학적 속살을 지닌 이 책은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의 인식적 간극을 해소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찾아보니 휴즈 교수가 공저한 책으로 <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성되는가>(새물결, 1999)에 거의 10년 전에 소개된 바 있다. 분야로 치자면 '과학/기술의 사회학'에 속할 듯한데, 추천사 덕분에 생각난 책은 루이스 멈포드의 <예술과 기술>(민음사, 1999)이다(을유문화사의 문고본으로도 나왔던 책이다). 레이첼 카슨의 물론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02)의 저자를 말하는 것일 텐데, 찾아보니 '시인의 마음으로 자연의 경이를 증언한 과학자'란 부제를 달고 있는 <레이첼 카슨 평전>(샨티, 2004)이 출간돼 있다(내가 인지하고 있지 않은 책의 80%는 2004년에, 그러니까 '당신이 없는 사이에' 나온 책들이다). 774쪽이니까 3월 한달로는 부족하겠다. 세 달 동안 내리, 그리고 틈틈이 입다물고 읽을 만한 책.





 



7. 과학

장경애 과학동아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은 린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사이언스북스, 2007)이다. 추천사에 따르면, "세포생물학과 미생물의 진화, 지구시스템 과학에 기여한 린 마굴리스. 칼 세이건의 첫 번째 부인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사실 그는 공생진화론으로 학계에 충격을 던져 준 생물학자다. 책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공생이란 고리로 연결하며 생물의 다양성을 공생과 공생진화로 설명하고 있지만 어린 나이에 세이건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학자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어있다. 세포핵 유전과 다윈주의 대신 세포질 유전과 신라마르크주의를 택하게 된 배경과 주류 학계에서 비주류로 살지만 자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소개한 적이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1894262 참조). 이 참에 마굴리스의 다른 책들인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 1999),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1999)도 같이 챙겨볼 수 있겠다. 두 권 모두 아들 도리언 세이건과 같이 쓴 책이다. 찾아보니 마굴리스도 참여한 신간은 <마음, 생명, 우주>(2007)이다. 저명 과학자들과의 대담집이므로 교양서로 소개됨 직하다.

 

 

 

 

8. 예술

예술분야의 책은 마크 스트랜드의 <빈방의 빛>(한길사, 2007)이다. 미국 화가(어쩌면 가장 미국적인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을 다룬 책인데, 추천자인 김춘미 교수에 따르면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1930, 40년대 미국 도시의 평범한 일상을 유화로 담아내어 이름을 낸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이른 일요일 아침 1930> , <펜실베이나 탄광촌> , <주유소> 등의 그림들이 이야기 해주듯 집, 길, 자동차, 기차, 호텔, 어디나 있는 방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린 사람이 호퍼이다."

그리고 "호퍼의 대표작 30점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데, 아마 그의 작품을 감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이 모처럼 제공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의 특별함은 이러한 호퍼의 작품이 마크 스트랜드라는 시인의 글로 새롭게 조망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스트랜드는 <눈보라 한 조각> 이라는 작품으로 1999년 퓰리처상을 탄 바 있는 시인이다." 우리의 경우에도 시인의 논평을 담은 그림책들이 더러 출간된 바 있는데, <빈방의 빛>도 그런 종류이겠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추천한 교양분야의 책은 박종인의 <한국의 고집쟁이들>(나무생각, 2008)이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23명 한국인의 범상치 않은 삶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고 한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신체상의 장애라는 역풍을 맞은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역풍이 있건 없건 그들은 앞을 향해 항해를 계속 해온 사람들이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머리 속으로가 아니라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것은 우리 삶의 범상함 때문일 것이다."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그런 '범상치 않은 삶'의 또 다른 주인공은 지명관 한림대 석좌교수다. "1970-1980년대 일본의 진보 성향 월간지 '세카이(世界)'에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라는 칼럼이 'TㆍK生'이라는 필명으로 연재됐다. 10월 유신 이듬해인 1973년부터 6월 항쟁 이듬해인 1988년까지 15년간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연재된 이 칼럼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에 한국의 정치 상황과 한국인의 민주화 열망을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다. 당시 국내 정보기관의 끈질긴 추적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TㆍK生'의 정체는 연재가 끝난지 15년 뒤인 2003년에야 세카이지를 통해 지명관(84) 한림대 석좌교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 나온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 2008)은 "지 교수가 'TㆍK生'으로서 연재한 칼럼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중심으로 유신 선포와 80년 광주사건, 87년 민중항쟁 등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1970-19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짚어본 책이다." 이미 재작년에 자서전 <경계를 넘는 여행자>(다섯수레, 2006)를 출간하기도 했는데, <한국으로부터의 통신>과 겹쳐 읽으면 되겠다(리뷰는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72964.html 참조).

지명관 교수의 이야기가 너무 '노티' 난다 싶은 독자라면 동시대 사람들을 만난 또 다른 이야기로 영화기자 김혜리의 인터뷰집 <그녀에게 말하다>(씨네21, 2008)도 챙겨둘 만하다. "배우, 감독, 촬영감독 등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뿐 아니라, 소설가, 만화가, 미학자, 사진작가, 북디자이너, DJ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온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10. 전기

끝으로 이제 내 맘대로 고르는 전기/평전류이다. 내가 고른 건 마크 에드문슨의 <광기의 해석>(추수밭, 2008). 저자는 예전에 <문학과 철학의 논쟁>(문예출판사, 2000)의 저자 '에드먼드슨'으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조악한 번역으로 빛이 바랜 책이었다(저자는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제자다). 이번에 '개명'하고 다시 소개된 셈. 책은 '프로이트 최후의 2년'을 다루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히틀러의 삶과 대조하고 있다는 것.

"책은 1909년 오스트리아 빈을 무대로 가난한 고학생 히틀러와 정신분석학의 권위자 프로이트를 대조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 30년 후에 주목한다. 약 30년이 흐른 뒤 세상에 막 등장해서 대중의 열광을 한 몸에 받은 히틀러와, 인생의 막바지에 들어서 암으로 투병한 프로이트가 이 책의 주인공인 것이다. 지은이 마크 에드문슨은 1938년부터 1939년까지 기이하게 수렴되는 두 사람의 인생을 되짚어 보고, 프로이트가 나치 통치하의 빈에서 탈출해 런던으로 망명한 최후의 2년을 따라가면서 파시즘과 근본주의를 열망하는 대중의 심리를 분석한 프로이트 말년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원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죽음>이다(<광기의 해석>이란 타이틀은 물론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살인의 해석>을 염두에 둔 것이겠다).

프로이트의 전모를 일람해보는 건 물론 한두 달 읽기로 마무리될 수 있는 견적이 아니다. 나로선 그의 생애와 저작의 흥미로운 지점들을 염탐해보는 것 정도로 만족하려고 한다. 거기에 도구상자가 되어줄 만한 책은 마르트 로베르의 책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문예출판사, 2007)과 조시 코언의 <HOW TO READ 프로이트>(웅진지식하우스, 2007) 등이다...

08. 03. 01.

 

 

 

 

P.S. 이달의 고전은 베르그송의 두번째 주저인 <물질과 기억>(아카넷, 2005)이다. 최근에 해설서로 김재희의 <물질과 기억: 반복과 차이의 운동>(살림, 2008)이 출간되었기에 떠올린 것인데(알라딘에 아직 이미지가 뜨지 않고 있다), 황수영의 <물질과 기억, 시간의 지층을 탐험하는 이미지와 기억의 미학>(그린비, 2006)까지 '장비'로 챙겨둘 수 있겠다(나는 영어본과 러시아본도 갖고 있다. 준비야 그럴 듯하지만 기동성은 장담 못하겠다). 들뢰즈의 <시네마>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독해야 하는 책인데, 음.. 예전에 '물질'까지 읽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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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8-03-0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 책들도 추천을 해주세요..휘동이가 읽을 책들..

로쟈 2008-03-02 18:53   좋아요 0 | URL
제가 '감'이 전혀 없어서요. 그쪽으론 전문가들이 따로 있습니다.^^;
 

컬처뉴스에서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 2007)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지만 이 번역본은 (한국어임에도!) '읽을 수 없는 책'이다. 그걸 지적하는 게 명예훼손과 무슨 관련이 있나 싶지만 여하튼 역자는 집요하게 자신의 명예를 챙기고 있다(리뷰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나의 페이퍼는 알라딘의 책소개 페이지에서 블라인드 처리돼 있다). 한번 더 이야기하지만, 출판사나 역자나 책을 전량 폐기하고 전면 개역판을 내는 게 그나마 '명예'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컬처뉴스(08. 02. 29) 랑시에르, 데뷔전에서 곤욕을 치르다

“맑스주의라는 단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이단적인 사유에 대한 가장 위대한 표현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가장 이단적으로 맑스주의를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통적인 맑스주의이다.” 프랑스의 맑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이 말을 살짝 비틀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알튀세르라는 이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이단적인 맑스주의자에 대한 가장 위대한 이름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가장 이단적으로 알튀세르를 사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통적인 알튀세르주의자이다.”

올해 초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2005), 『감성의 분할』(2000)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자크 랑시에르(1940~  )는 ‘이런 의미에서’ 가장 정통적인 알튀세르주의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랑시에르는 알튀세르가 『«자본»을 읽자』(1965)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시킨 제자 4인방, 즉 피에르 마슈레(1938~  ), 로제 에스타블레(1938~  ), 에티엔 발리바르(1942~  ) 중 ‘셋째’로서 알튀세르가 그랬듯이 그 누구보다 자신의 분야에서 ‘파격적인’ 사유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공식 데뷔작 『알튀세르의 교훈』(1974)을 통해 스승과 떠들썩하게 결별한 랑시에르가 이 말을 들으면 펄쩍 뛸 일이겠지만 말이다.

랑시에르의 사유가 파격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자신의 분야, 즉 철학에 대한 그 자신의 ‘파격적인’ 정의에서 기원하지 않을까 싶다. 랑시에르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북유럽판에 수록된 인터뷰(2006년 8월 11일자)에서 철학을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저는 철학이 그 자체에게 뭔가 독특한 임무를 부여해 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철학에는 독특한 대상이 없는 셈이죠. 따라서 저는 차라리 철학을 끊임없이 움직이는 위치/자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정의에 부합하게 랑시에르는 문학, 정치학, 미학, 역사학, 사회학, 영화학, 교육학 같은 분과학문의 주제/대상뿐만 아니라 스테픈 말라르메의 상징주의 시, 마르셀 브로타에스의 설치미술,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등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끊임없이 움직였고, 그 여정을 통해 미학과 정치를 조우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주조해냈다. ‘감각적인 것의 배분/나눔’(le partage du sensible)이 바로 그것이다.

 

 

 

 

 

 

 

 

 

 

랑시에르에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치는 ‘치안’(la police)이다. 즉, 한 사회를 위계적으로 조직하고 통치하는 구조 일체가 바로 치안인 것이다. 그렇지만 치안이 단순히 어떤 구조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어떤 구체적인 권력, 예컨대 곤봉을 든 경찰력으로 상징되는 어떤 억압의 구조이기 이전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즉, 감각적인 것)을 나누고 할당하고 분배하는 상징적 구성원리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랑시에르가 말하는 ‘정치’(la politique)는 치안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할 수 없게 만든 존재들,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기 몫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보편적 평등이라는 개념(“우리도 우리의 몫을 가지기에 합당한 존재이다”)에 근거해 각자의 몫을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다. 즉, 치안이 만들어놓은 질서(특정한 분할선에 의거해 감각적인 것을 배분하고 나눠놓은 질서)를 거슬러 감각될 수 있는 것을 다시 나누고 할당하고 분배하려는 행위가 정치이다.

이런 점에서 랑시에르의 정치는 곧 민주주의와 동의어이며, 민주주의는 또 하나의 정치체제라기보다는 치안이 자신의 지배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일체의 아르케(근본 원리)에 대한 부정이고, 아르케에 대한 이런 부정은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다”라는 평등의 공리로 수렴된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랑시에르에게는 정치=민주주의=평등의 공리인 셈이다.

또한 정치든 치안이든 감각적인 것의 나눔/배분을 둘러싸고 형성되기에 랑시에르에게는 정치=미학이다. 단 이때의 미학은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미학이 아니라 그 어원에 충실한 미학이다. 즉, ‘감각적인 것’ 혹은 ‘감각될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to aisthêton’에 충실한 미학(‘감각학’으로서의 미학) 말이다. 이렇듯 랑시에르에게 미학과 정치의 조우는 그 상동성(相同性)의 발견으로 가능해진다.

랑시에르의 저작으로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된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인간사랑/2005)는 정치=민주주의=평등의 공리, 그리고 감각학으로서의 미학=정치학이라는 자신의 두 가지 테제에 근거해 랑시에르가 당대의 프랑스 정치현실에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작품이다.

그 정치현실이란 길게는 실업자운동이 대규모로 일어난 1995년 이후부터, 짧게는 2001~05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정치현실로서, 프랑스 내에서 ‘자기 몫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프랑스 공화주의가 자랑스러워하는 “자유, 평등, 박애”를 자신들에게도 적용하라고 외치면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그런 건 민주주의가 아니야”, “민주주의는 원래 이런 거야”라고 말하며 민주주의의 요구(즉, 평등의 요구)에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찬물을 끼얹고 있는 세태를 말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국역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전혀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건드리기에 따라 ‘엔(사타구니/aine)만큼 후끈 달아오를 ‘엔’(증오/haine)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 책의 날카로움을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무디게 만든 번역 탓이다. 흔히 『국가』와 『정치가』로 옮겨지는 플라톤의 저서를 『공화주의』와 『정치』로 옮겨놔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은 그냥 그렇다고 쳐도,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를 낳은 정세 자체에 대한 무지는 조금 참기 어렵다.

가령 랑시에르가 이 책의 목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는 서론의 첫 번째 문단부터 문제가 심각하다. “가상의 침략 이야기를 꾸며내서 프랑스를 조마조마하게 하는 젊은 여인, 학교에서 자신의 가면을 벗지 않으려는 청소년들 …… 초등학교는 평준화에 근거한 평범화 교육을 창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이렇게 옮겨져야 한다. “실제로 있지도 않았던 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프랑스를 불안에 떨게 만드는 어느 여인, 학교에서 히잡을 벗지 않으려는 여학생들 …… 대안적 입시제도를 도입한 그랑제콜.”

『민주주의 대한 증오』의 옮긴이가 “가상의 침략 이야기”로 옮긴 사건은 지난 2001년 7월 11일, 어느 23세의 여성이 파리의 지하철에서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보이는 6명의 흑인들에게 유태계라는 이유만으로 자신과 자신의 13개월된 아기가 폭행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해 프랑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을 말한다(*영역본 주석에는 2004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소개됐다). 이로 인해 정치권에서는 국내 치안의 문제는 이주민들 때문이라는 극우적 주장들이 빗발쳐 나오곤 했는데, 며칠 뒤 CCTV에 당시 사건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경찰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이 여성의 진술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두고 논란이 발생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옮긴이가 “자신의 가면을 벗지 않으려는 청소년들”이라고 옮긴 에피소드는 지난 2004년 3월 14일 프랑스 의회가 공립학교에서 모든 종교적 상징물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압도적인 찬성 표결로 통과시켜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슬람 여학생들의 히잡 착용 문제를 말한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이기 때문에 “가면”이라고 옮기면 안 된다. 가면이라고 부를 만한 다른 이슬람 상징물은 부르카(안면 가리개)이다. 또한 이슬람 남자들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기 때문에 두루뭉수리하게 “청소년들”이라고 옮기면 원래의 맥락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옮긴이가 “초등학교”로 옮긴 그랑제콜(Grandes Écoles)은 프랑스의 소수 엘리트 양성기관이다.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면 그랑제콜 준비과정에 입학해야 하는데, 이 준비과정에 들어가려면 바칼로레아(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5% 이내에 들어야 한다. 그러고도 준비과정에서 2~3년을 더 준비해 과목별로 한 달간에 걸친 엄격한 경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 그랑제콜의 하나인 파리고등정치학교가 지난 2001년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 출신의 학생들을 필기시험 없이 면접과 서류전형만으로 뽑는다는 새로운 입시계획안을 발표했고, 이는 극심한 찬반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랑시에르는 이처럼 얼핏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에 대해 수많은 지식인들이 내놓은 단 한 가지 답변, 즉 “이 모든 증상은 동일한 질병의 발로인데,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답변을 내놓았다고 말하며 포문을 열기 시작한다. 그러나 역시 안타깝게도, 우리는 공공연히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자들에게 랑시에르가 뿜어대는 그 십자포화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지면의 한계로 더 쓸 수 없으니 자세한 것은 알라디너 로쟈님의 페이퍼(“반목의 철학, 불화의 번역” http://blog.aladin.co.kr/mramor/1911702)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관심 있는 분들은 좀 귀찮더라도 영어본이나 불어본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이것마저 여의치 않은 분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의 요약본이라고 할 만한 랑시에르의 논문 「민주주의는 무언가를 의미하는가?」를 읽으시면 되겠다. 이 논문은 『아듀 데리다』(맥밀란/2007)라는 데리다 사망 추모 강연회 논문모음집에 수록되어 있다(문제는 이 책이 비싸다는 것이다. 74.95달러. 정치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지식의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것도 돈이다!).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이 하자 많은 국역본이 꽤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현상’은 이 국역본의 완성도보다 랑시에르의 사유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텐데, 마지막으로 책을 사놓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몰라 자신을 책망할 몇몇 독자들을 위로하며, 그리고 한국어를 읽을 수 없는 랑시에르를 축하하며 한마디. “랑시에르 선생님, 욕보십니다.”(이재원_출판기획자) 

08. 02. 29.

P.S. 이미 관련기사들을 옮겨놓기도 했는데, 랑시에르는 아감벤과 함께 올 한해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가 될 것이다. 그럴 만한 것이 그의 책들이 한꺼번에 앞다투어 소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적인' 철학자의 새로운 사유가 우리말로 번역/소개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리뷰의 제목대로 그의 '데뷔전' 성적은 별로 좋지 못하다(이 점은 <호모 사케르>가 깔끔하게 번역돼 나온 아감벤과 대조된다).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감성의 분할> 또한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 '분할'이란 제목부터 '분배'나 '배분'으로 옮겨지는 게 더 적절했을 것이다(영어로는 'distribution'). 이 책 또한 불어본이나 영어본과의 대조없이 읽어나가는 건 고난도의 독해력을 요구한다. 앞으로 나올 다른 책들의 사정은 좀 나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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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2008-02-29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적하신 부분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현상인데 올해 자크 랑시에르 책이 쏟아져나올 듯 합니다. "정치의 가장자리에서" "불화" "무지의 스승" "역사의 이름들" "프롤레타리아의 밤들" "이미지의 미래"...
지젝 책이 거의 모두 우리에게 소개되었지만 랑시에르처럼 한 해에 이렇게 많이 쏟아져나오는 현상은 무엇일까요? 하여간...기대해봅니다.

로쟈 2008-02-29 22:50   좋아요 0 | URL
희한한 '한국적' 현상이겠죠. 우리에게 자극을 줄 만한 철학서들이 쏟아져나오는 건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읽을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베토벤 2008-03-0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이 책이 파리 몇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에 의해서 번역이 되었는데도 이 정도라면 개인적인 수준을 넘어서 뭔가 제도적으로
한국 출신의 학생들의 스칼라쉽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를 가질 뻔했기때문입니다. 다행히 증권가출신이면서 프리랜서로 활동셨더군요. 그래서인지 '그럴만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프리랜서 번역가 분들을 무시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분 개인에 국한하자면 말이지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문선 책들중에는 박사급 번역자가 번역한 책들중에도 만만찮은 책들이 있었으니 다시 우울해지려고 합니다.

로쟈 2008-03-01 09:02   좋아요 0 | URL
'파리 몇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의 이상한 번역서도 드물진 않은데요.^^;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고, 좋은 역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여건을 변화시키는 게 중요해보입니다...

람혼 2008-03-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 <감성의 분할>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매우 반가운 마음에 들면서도 구입이 망설여졌던 것은, 일차적으로 바로 그 제목의 번역 때문이었습니다. 이 국역본이 출간되기 전에 랑시에르의 <문학의 정치>를 소개하면서 저도 잠시 언급했던 바이지만(http://blog.aladdin.co.kr/sinthome/1840783), 'partage'의 번역어가'분배'나 '배분'이 되어야 한다는ㅡ즉, 단순한 '분할'이 아닌 '할당'의 뉘앙스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ㅡ말씀에 적극 동감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역자가 단순히 '감성'이라고 옮긴 'le sensible'의 번역 역시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데요, 이는 '감각적인 것'이라고 '적확히' 번역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지적할 수 있겠지만, 가장 일차적으로는, '감각적인 것'을 단순히 '감성'으로 옮기는 '번역적 센스' 안에는 '미학'이라는 분과를 가장 '근대적인' 사유의 소산이자 '역사적' 구성물로 바라보려는 '초월적'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곧 제목의 번역을 볼 때부터, 미학이 지닌 '감각학/감성학'으로서의 기원에 대한 적극적인 고려가 과연 번역에 반영되었을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었죠. 그나저나 로쟈님의 글이 '명예훼손'이라면 이재원 선생의 이 글도 그렇겠군요? 조금 바쁜 일들이 지나가고 시간이 좀 날 때, 저 역시 국역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와 <감성의 분할>을 함께 묶어 글 하나 써서 저 '명예훼손'의 대열에 동참해볼까 합니다.^^

로쟈 2008-03-01 11:45   좋아요 0 | URL
'법정'에서 심심하진 않겠습니다.^^ '감각적인 것'이 보다 정확한 번역이라는 데는 저도 동감합니다. 문제는 우리말로 익숙하지 않은 용례라는 것이죠(본문에선 또 너무 자주 나오는 용어이고). 비슷한 예로 '정치적인 것'이란 용어가 최근 들어 조금씩 쓰이고 있지만 어차피 그 말 자체로는 의미가 소통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