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의 기획연재에서 다시 서평이 특집으로 다루어졌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0). 취지에 따르면, "이번 특집기획은 ‘다시, 서평을 말하다’이다. 지난 <비평> 특집기획 ‘한국 서평의 현 주소’의 문제의식을 더 밀어보자는 주문이 많았다. 이번에는 △좋은 서평의 조건(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1) △문학서평의 갈 길(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2) △사회과학서평의 위상학(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3) △과학서평의 위치와 갈 길(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814) 등으로 나눴다. 지난 특집기획이 일반적인 서평을 놓고 그 지나온 길을 짚었다면, 이번 특집기획은 분야별로 차이를 갈라 ‘그럼 어떻게 쓸 것이냐’를 제안한다." 그 중 문학서평에 관한 꼭지를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8. 03. 31) 비평으로서의 서평과 비평적 판단

문자 그대로 책에 대한 評을 뜻하는 한 서평이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고 해야 할 듯하다. 물론 서평과 비평을 가르는 형식적 기준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다. 지면의 할애 면에서도 구분이 되지만 특히 우리 학계에는 비평을 서평보다 한 급 높은 지적 활동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서평이 비평과 절대적으로 차별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비평안이 없는 독자가 좋은 서평을 쓸 수 있다고 믿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비평적 안목이 뒷받침하지 않는 서평 행위가 玉石을 제대로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뿐더러 더러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데 일조하는 현상을 우리는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현상이 만연해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우리 인문학계 전체를 부당하게 폄훼할 위험도 있지만 2008년 1월 28일자 <교수신문>만 보더라도 대체로 한국의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서평문화’가 튼실하게 정착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싶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3).

다른 한편 <교수신문>이 제시한 여러 통계적 수치나 여론조사 자체도 비판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하나의 텍스트적 성격이 있는 법이다. 따라서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여겨지는 객관적인 데이터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 데이터’와는 약간 성격이 다른, 좋은 서평에 걸림돌이 되는 몇 가지 장애물을 환기해보는 것도 훌륭한 서평의 덕목을 다시 성찰해보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필자가 특히 주목한 장애물은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와 ‘비판을 꺼려하는 전통문화’다.

분과의 경계가 해체되고 비판이 장려되는 학문세계에서 이 두 문제는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져보면 양면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적 행태야 타개해야 마땅하지만 그 나름의 전문성을 살리는 협동작업은 분과학문에서도 필수적이다. 논쟁을 꺼리는 전통문화도 학연이나 지연 등으로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어 패거리화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내는 방편으로 선학들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무분별한 비판도 관행이 되다시피 한 면이 있다. 전문성을 키우되 전공 결속주의에 빠지지 않고 논쟁을 지향하되 격을 갖추려는 노력은 건강한 서평 문화를 키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점이다. 인문학 가운데서도 문학 분야는 그러한 비평으로서의 서평 문화의 토대가 특히 허약한 듯한데, 여기서는 그 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서평의 공정성과 객관성  
문학 서평도 비평의 범주에 속한다면 평단에서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하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겠다. 물론 예전에 ‘죽비소리’라 해 신간이 나오면 익명으로 사정없이 질타한 적도 있었지만 일방적인 찬사와 덕담을 늘어놓는 주례사나 작품의 미덕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흠잡기에 열중하는 죽비소리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에 해당한다. 물론 이 상반된 서평 태도와 거리를 두면서 비판과 찬사를 적당히 섞어 작품을 얼버무리는가 하면, 아예 서평대상과는 무관한 자기의―십중팔구는 수입돼 유통되는― ‘이론’에 몰두하는 논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얼버무리는 경우도 그 간이 절묘하지 맞지 않을 경우 비판의 유효성을 중화시키기 십상일 뿐더러 찬사의 온당한 근거를 댈 수 없기 십상이라서 절충적인 서평의 위험도 주례사나 죽비소리에 못지않다고 봐야 한다.

비평문화에서 주례와 죽비, 절충 등으로 분류되는 서평에도 오랜 관행이 있다. 출판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자본’이 활개 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서평 장르는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는바, 근대가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 자신 프랑스라는 ‘문필 공화국’의 자부심 강한 시민으로서 정열적인 삶을 살다간 발자끄가 『저널리스트』(1843)에서―때로는 자신의 발등을 찍어가면서―풍자한 그대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 평단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문화정치적 세계와 긴밀하게 연동된 언론사와 출판사가 조장하는―발자끄가 그야말로 꼼짝하기 힘든 독설을 퍼부은―파당의식과 이해관계는 과거만의 일이 아님이 절절히 실감된다.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서평으로서의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자 덕목인 공정한 평가와 비평적 객관성이라는 난제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필자 자신도 서평이나 촌평을 여러 차례 하면서 그같은 난제를 충분히 감당했다고 자신하기 힘든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근래 우리 문단의 화제인 김훈의 역사소설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도 그런 난제를 서평으로서의 비평이라는 맥락에서 짚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김훈 역사소설에 대한 서평에서도 눈에 띄는 점은 상반된 평가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두고 독자의 견해가 다른 것은 물론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훈에 관한 대조적인 평가에서 흥미로운 것은, 문학비평을 업으로 삼는 논자치고 그의 역사소설을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하게 읽었다는 느낌을 주는 비평가는―허무주의니 파시스트니 하는 ‘재’를 과장되게 뿌린 비평에 비하면―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부연하자면 <교수신문>에 기고한 오창은의 평문은 이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15). 그런 서평은 오히려 비문학도들이 시도했다.

가령 심사위원들이 “한국문학에 내려진 벼락과 같은 축복”이라며 동인문학상을 수여한 『칼의 노래』(2001)도 그러하다. 국어학자인 이익섭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들을 세세하게 골라내면서 “너무 기초적인 결함을 안고 있는 작품들이 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심사 기준에 뭔가가 더 추가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푸념한 바 있다(<문학과 사회> 2002년 여름호). 또한 역사학자인 정옥자는 이 작품을 두고  “식민사관에서 우리를 집중적으로 세뇌시킨 당쟁론이 여과없이, 아니 더욱 심하게 묘사돼 있”음을 지적하면서 선조와 당대 현실정치에 대한 작가의 편향된 시각을 꼬집은 바 있다(<문학동네> 2006년 가을호).

비록 문학서평을 전문으로 하는 독자는 아니지만 이들은 쉽게 넘겨버리기 어려운 논점을 제시하고 있다. 두 논자의 문제제기는 사실 재현의 정확성과―‘역사의식’과 완전히 동의어라고 말하기는 힘든―역사인식으로 모아진다. 역사소설을 다루는 데서도 이 쟁점은 전혀 간단하지 않다. 가령 『칼의 노래』에서 왜 거북선이 나오지 않느냐, 고고학계도 아직 정확히 밝히지 못한 殉葬의 구체적인 거행과정을 『현의 노래』처럼 그런 식으로 묘사할 수 있느냐고 따지고 드는 것도 역사소설의 평가에서 초점을 흐릴 공산이 다분하다. 史觀의 결여를 비판하는 일은 더 까다로운데, 그것은 문학의 역사화라는―‘역사주의’라는 잣대로 문학을 재단한다는―반론을 불러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성과 역사인식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역사소설을 제대로 논하기 힘든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런 문제가 소설 비평에서의 일반적인 쟁점과 분리되는 것도 아니다. 이익섭은 『칼의 노래』에서 시간이나 사건의 전개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사실’을 적시했지만, 그건 차라리 창작 일반에 해당하는 기본을 환기했달 수 있다. 즉 작품 “뒤에 연보며 海戰圖까지 붙여 역사적 사실과 연관 지으려는 의도가 뚜렷하”고 “史實에 맞추어 소설을 전개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칼의 노래』의 무수한 사실왜곡과 부주의함을 적시한 것이다.   

김훈은 ‘일러두기’에서 15세기의 임진왜란과 5세기의 가야 멸망, 17세기의 병자호란이 배경이 되는 각각의 작품을 다른 무엇이 아닌 오직 소설(=허구)로만 읽혀야 한다고 되풀이해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소설의 이름으로 그같은 왜곡과 부주의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역사소설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팩션’으로 가공된 역사적 소재나 사건이기 때문에 ‘소설’로 읽어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도 사실과 허구의 관계, 더 나아가 ‘역사적 진실’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정옥자는 이보다 더 차원이 높다면 높을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역사소설에서 역사적 사실의 정확성 여부만 가지고는 제대로 해명할 수 없는 것, 즉 작가의 세계관 또는 역사를 보는 관점의 문제점까지를 들추어낸 것이다. 이 관점도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이냐 진실이냐, 역사냐 허구냐를 가르는 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난점에 부딪히게 된다.  
   
전문적으로 읽고 즐기는 독자의 의미
우리 문단에서 비평가라는 이름의 독자들이 이 난점과 어떻게 씨름하고 있는가를 소개할 지면은 없다. 다만 원래 이 글의 주제로 돌아와 짤막한 서평도 비평의 차원을 겸해야만 이 난제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음을 강조할 만하다. 다른 한편 김훈의 역사소설 평가를 둘러싼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어떤 한 탁월한 독자가 홀연히 나타나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낭만적 공상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책을 전문적으로 읽고 즐기는 독자들이 하나의 실체적 집단으로 존재하면서 비평에 값하는 수준의 서평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식과 통찰을 문화적으로 축적할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문단에서 촌평이나 서평의 형식으로 각종 문예지에 실리는 많은 글이 책의 단순한 선전이나 소개의 차원에 그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자족할 수는 없다. 우리 문화현장에서 인터넷 서평을 선도하는 블로거의 활약도 옥석을 분별하는 본격 비평의 지평을 지향해야만 ‘시장’의 들러리 노릇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유희석/ 전남대·영문학, 문학평론가)

08. 04. 01.

P.S. 필자의 주장은 서평도 '평'인 이상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리 분량이 짤막하더라도 비평의 차원을 겸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예전에 적은 대로 약간 다른데(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06), 아무래도 '분량'과 '지면(자리)'의 성격이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10-20짜리 서평(혹은 리뷰)과 50-70매 규모의 비평은 체급이 다른 것 아닐까. 한편으로 서평문화의 걸림돌로 ‘분과학문별 결속주의’와 ‘비판을 꺼려하는 전통문화’에 대해 지적한 대목은 공감하게 된다. 필자가 '침묵의 카르텔'과 '자기의 이름을 내는 방편으로 선학들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무분별한 비판 관행', 어느쪽이 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지적은 이것이다.

"비평문화에서 주례와 죽비, 절충 등으로 분류되는 서평에도 오랜 관행이 있다. 출판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자본’이 활개 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서평 장르는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다.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는바, 근대가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서평이 비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비평도 "사실상 책의 광고를 좀더 고급하게 내주는 포장지"에서 예외가 아니다(비평 또한 출판시장 바깥에 있지 않다). 거기다 문제는 "주례는 주례대로, 죽비는 죽비대로, 절충은 절충대로 얼마든지 포장의 修辭로 동원될 수 있"다는 통찰이다. 이건 아주 래디컬하다. 주례이건 죽비건 '포장의 바깥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기에. 그에 비하면 "비평에 값하는 수준의 서평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상식과 통찰을 문화적으로 축적할" 수 있는 여건에 대한 필자의 요구는 좀 뭉툭하다. "賣文으로서의 무수한 비평문과 거간꾼으로서의 서평가들을 양산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비평의 지평'(공정성과 객관성) 이상의 뭔가 더 뾰족한 수가 필요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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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평에 대해서...
    from Hemingway's I love text 2008-04-02 21:24 
    난 독서토론모임인 책과 세상의 회원이다. 토론은 사실 익숙치 않다. 가입이유는 책이 좋아서, 다른 사람의 시각과 나의 시각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관심분야는 인문사회관련, 역사관련 책이다. 어째튼, 난 책을 고를 때 미리 생각해 둔 책 1권과 인문사회 관련(역사포함) 1권과 다른 사람이 추천한 1권을 고른다. 이렇게 3권 정도 구입한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추천한 1권을 고를 때 신중히 고른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글(서평 혹은 소개)이나 말들은..
 
 
드팀전 2008-04-01 18:08   좋아요 0 | URL
로쟈님 서재가 사진으로 ㅋㅋ

로쟈 2008-04-01 19:31   좋아요 0 | URL
네, 들러리로 들어가 있네요.^^;
 

단테의 <신곡>에 관한 자료를 읽다가 이탈리아의 철학자 '비코'에 관한 얘기가 나오길래 참고할 만한 자료를 검색해봤다. 몇 년 전에 박홍규 교수가 신동아에 연재한 글이 눈에 띄기에 옮겨온다(일독해보기 위해서). 연재물의 타이틀은 '에드워드 사이드에 바치는 弔詞'로 돼 있지만 곧이어 출간된 <박홍교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우물이있는집, 2003)에는 '사이드와 비코'란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사이드 입문으로나 비코 입문으로서 유익해 보인다.   

 

신동아 531호(03. 12. 01) 에드워드 사이드에 바치는 弔詞

9 월24일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오리엔탈리즘’의 번역자이자 오랫동안 사숙한 제자로서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내가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한 후 그의 이름이 한국에도 본격 소개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 글은 사이드의 죽음에 바치는 조사(弔詞)다. 사이드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으며, 누군가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면 당장 ‘오리엔탈리즘’이라 할 만큼 내 인생에 충격을 준 사람이었다.

그런 사이드에게 위대한 스승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18세기의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다. 사이드는 1975년 ‘시작-의도와 방법’이라는 책에서 비코를 언급했고, 1993년 ‘지식인의 표상’에서는 비코를 자신의 영웅이라 불렀다. 이는 사이드가 죽기 직전에 쓴 ‘오리엔탈리즘’ 2003년판 서문에서도 확인된다. 그러나 한국에는 사이드와 비코의 관계는 물론, 비코라는 인물이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비코를 이해하려면 벌린(Isaiah Berlin, 1909~97)이 1976년에 쓴 책 ‘비코와 헤르더’(번역 출간)를 참고해야 한다. 벌린에게도 비코는 정신적 스승이었음에 틀림없고, 사이드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선구자로 비코를 선택한 것처럼, 벌린은 비코를 다원주의의 선구자로 재발견했다. 물론 두 사람의 비코 해석은 약간 다르나 그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만큼 비코는 매력적인 연구대상이다.

물론 비코가 벌린이나 사이드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생전 무명의 학자였고 심지어 많은 오해를 받으며 질병과 빈곤 속에 죽었지만 비코의 사상은 법학, 정치학, 문학, 미학, 민속학, 언어학, 신화학, 역사학, 철학, 수학, 논리학 등 서양의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다만 한국에서 비코의 이름이 생략되었을 뿐이다.

여하튼 벌린이나 사이드만이 아니라 19세기 미슐레나 크로체를 비롯해 후대의 수많은 학자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고 비코를 자기식으로 해석했다. 예컨대 미슐레는 그를 낭만주의자로, 크로체는 그를 헤겔주의자로 보았다. 또 자연주의나 역사주의, 심지어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해석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코를 하나의 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적어도 비코는 누구나 사숙하고자 한 거대한 사상의 원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비코는 18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사람이었다.

잊혀진 그 이름, 비코
잠바티스타 비코(Giambattista Vico)는 1668년 나폴리의 한 서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 1744년 나폴리에서 죽었다. 학교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의 독학을 했다. 그리고 이웃마을에서 가정교사를 한 것 외에는 나폴리를 떠난 적도 없다. 비코의 평생 꿈은 나폴리대 법학교수가 되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월급이 그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수사학 교수로 42년간 일했다. 명색이 교수였으나 끝내 가난을 면치 못했다. 비코는 어릴 때 낙상해 평생 절름발이로 살았고 맏아들은 범죄자, 외동딸은 배냇병신일 만큼 불행한 삶을 살았다. 생전에 그를 학자로 인정한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당시 사회에서 서민출신인 비코가 교수가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비코의 시대는 명석한 관념을 중심으로 한 데카르트가 풍미했으나, 비코는 그런 진리가 수학과 자연과학 이외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았다. 데카르트는 역사를 비롯한 인문과학이란 여행처럼 여흥거리에 불과하며 키케로의 하녀가 갖고 있는 수준의 정보를 제공할 뿐이라고 빈정거렸다. 반면 비코는 수학이나 자연과학에서도 진리란 그 발생을 이해해야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기하학을 증명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인간이 창조한 것만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만든다.”

비코는 당대의 주류였던 자연법이론가, 사회계약론자, 공리주의자, 개인주의자, 유물론자, 이성주의자를 모두 부정했다. 즉 그들이 오류에 빠진 것은 체계적으로 변화하며 발전하는 인간적 전망과 동기의 영속성, 그리고 그 전망과 동기가 다시 인간 본성의 변화하는 요구에 의해 지배됨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불변적이고 선험적인 인간 본성의 존재를 인정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구정신을 통째로 부정했다. 이러한 서구정신이 20세기까지 이어져온 것을 생각하면 비코는 여전히 현대 서양문화에 대한 비판가로 생명력을 갖는다.

그리고 벌린이 말한 대로 비코는 인류가 이제껏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일련의 발전단계에서 각 단계 나름의 개성과 필연성, 특히 정당성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즉 스스로의 내적 성장법칙에 따라 발전하되 외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변하며, 결코 기계적 인과관계에 귀속되지 않는 비물질적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은 자신과 자신이 행하는 일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간격
비코의 사상을 이어받은 벌린은 라트비아 출신으로 영국에 이주한 철학자이자 사상사가였다. 벌린 역시 국내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가 쓴 마르크스 전기와 비코 및 헤르더에 대한 연구서가 번역돼 있을 뿐이다(*이후에 몇 권의 더 소개되었다). 벌린은 일관된 다원주의 옹호자로 유명하다. 다원주의란 복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조화될 수 없으며, 서로 대립하는 가치를 취사선택하거나 우선 순위를 매기는 것에서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주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와 사회제도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선택한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즉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조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합리주의, 특히 진리일원론-영원불변하는 단 하나의 형이상학적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대한다. 벌린은 여러 가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며 그것은 영원불변의 진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근거하는 것도 아니라 인류 공통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 확인된다는 의미에서 다원주의를 주장했다. 나아가 벌린은 진리일원론에서 비롯된 ‘완전한 사회’에 대한 이상도 거부했다. 진리의 발견이 인류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가치가 조화되는 세계를 만든다고 하는 이상을 거부한 것이다. 그러한 이상은 가치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가치의 선택이라는 도덕적 책임을 면제하여 개인의 다양한 삶을 배제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다원주의는 상대주의를 반대한다. 상대주의도 합리주의를 반대하여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가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대주의는 판단의 진위를 결정하는 객관을 부정하고, 자신의 전통과 문화에 완전히 구속되어 타인이나 타문화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다원주의는 상상력에 의해 자신과 자문화의 틀을 넘어 타인과 타문화에 공감하여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다원주의를 주장한 벌린은 사상의 원류를 비코에서 찾았다. 벌린은 비코의 사상을 다음 7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전통적 사고는 인간 본성을 정태적으로 보지만 사실은 동태적이며 동일성을 유지하는 본질을 갖지 않는다.

둘째, 인간은 스스로 역사를 만들기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셋째, 역사와 같은 인문학은 자기 이해를 추구하나 자연과학은 외부세계에 대한 관찰에 머문다.

넷째, 특정 사회의 행동이나 문화는 포괄적인 패턴에 의한 특징을 갖는다.

다섯째, 법·제도·종교·제식·예술·언어·행동 등 인간의 모든 창조물은 작위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형식이며, 그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삶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인 사고에 의하면 신화나 우화, 제식과 유물은 어리석은 원시인의 환상이나 교활한 군주의 기만술로 여겨졌으나 비코는 이를 부정하고 원시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았다. 비코의 ‘새로운 학문’은 이러한 탐구의 열쇠를 제공한다.

여섯째,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곳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원리와 기준이 아니라, 그 탄생의 시공간과 사회발전단계에서 특유하게 사용된 상징들의 목적 및 특수한 용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만이 다른 문화의 신비를 풀 수 있다. 여기서 비코는 비교문화사·비교인류학·비교사회학·비교법학·언어학·민족학·종교·문학·예술사·사상사·제도사·문명사 등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사실 오늘의 사회과학은 모두 역사학적 또는 발생론적 관점에서 잉태됐다.

일곱째, 이로써 전통적인 지식에 새로운 범주인 감각지각이 제공하는 ‘경험적 지식’, 그리고 계시에 의해 보증되는 선험적이고 연역적인 지식 외에 ‘재구성적 상상력’이라는 지식범주가 새롭게 등장했다. ‘재구성적 상상력’이란 상상력을 통해 다른 문화의 정신과 전망, 생활방식에 침투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 상상력이란 사회의 변화와 성장과정을 이와 병행하는 상징의 변화나 발전에 연결함으로써 파악하는 능력이자, 인간의 표현수단인 상징 안에 사회의 자취가 담겨 있다는 견지에서 사회의 발전을 추적하는 능력이다.

비주류의 길 선택한 참된 지식인
벌린은 위 7가지가 모두 사상사의 거대한 진전이고 그 하나로도 철학자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비코가 여러 갈래로 해석됐듯이 벌린은 자신의 다원주의에 입각하여 비코를 해석했다. 적어도 일곱 번째의 ‘재구성적 상상력’이라고 하는 벌린의 지적이 과연 비코에게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지적은 이미 통설로 자리잡았다. 비코에 대한 벌린의 평가는 사이드가 다문화주의의 입장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쓰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사이드는 벌린을 인용하는 데 인색한 편이지만 벌린의 저작을 읽은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잠시 사이드에 대해 살펴보자. 사이드는 1935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으나 1947년 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이집트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망명 지식인 문제를 다룬 ‘지식인의 표상’에서 사이드는 “망명 지식인은 과거의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지도 못하는 중간 상태에 놓여 있으며 한편으로는 향수와 감상에 젖고 다른 한편으로는 교묘한 모방자나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부랑자로 살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여 성공한 ‘교묘한 모방자’는 사이드가 말하는 참된 지식인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은 부랑자이며 주류에서 벗어나 저항자로 살아가는 지식인이다.

이처럼 비주류 부랑적 지식인은 망명 지식인만이 아니라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사이드가 비코를 스승으로 모신 이유는 비코가 바로 그런 지식인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망명은커녕 평생을 나폴리에서 산 비코는 자신이 살았던 18세기 이탈리아 사회에서 고독한 한계인이었다. 한계인이었기에 비코는 당대 주류의 믿음이었던 신의 창조와 절대를 믿지 않았으며, 인간의 행위와 선택은 때와 곳에 따라 변경 가능한 결과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를 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식인의 위대한 원형은 18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다. 그는 나의 오랜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코의 위대한 발견은 나폴리의 무명교수, 생활의 빈곤, 교회와 주위의 알력으로 인한 고독으로부터 생겨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위대한 발견에 의하면 사회현실의 올바른 이해방식은 기원의 지점에서 생긴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 기원을 탐색해 보면 지극히 초라한 상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위대한 저서 ‘새로운 학문’에서 비코는 이를 마치 성인 인간이 말도 못하는 아기로부터 진화했다고 보듯이, 사물을 특정한 시점에서 진화하는 것으로 보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세속적인 세계에 관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관점이라고 비코는 역설한다. 이 세계는 그 자체의 법칙과 과정을 갖는 역사적 세계이지 신에 의해 정해진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비코는 되풀이한다. 이렇게 보는 것은 인간사회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유념(留念)한다는 것이다. 가장 막강한 권력을 그 시작으로 되돌려놓고, 나아가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단한 인물이나 거창한 제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권력자나 제도가 자주 침묵과 복종을 강제할 수 있는 대상은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대한 권력을 언제나 숭고하게 바라보며(그래서 숭배한다) 초라한 ‘인간적’ 시작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망명 지식인은 필연적으로 해학적이고 회의적이며 유희적이다. 비록 냉소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사실 사이드의 해석은 새롭지 않다. 그러나 사이드가 그런 해석을 한 상황은 새롭다. 사이드는 지식인이 부딪히는 두 가지 권력의 유혹을 경계했다. 하나는 그 자신의 출생, 국적, 직업 등에 의해 구속되는 문화다. 또 하나는 사회적·정치적 확신, 경제적·역사적 환경, 자발적인 노력과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결단으로 획득하는 체계다. 사이드는 비코 역시 문화와 체계의 양면에서 그 시대가 강요하는 바를 알았고, 따라서 평생 그런 압력에 저항하며 살았다. 비코는 사이드가 말하는 참된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새로운 학문의 시작
1744년에 쓰여진 비코의 ‘새로운 학문’은 1997년에야 우리말로 번역됐다. 무려 253년이 지난 후였다. 그나마 이탈리아어 원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일본어를 중역한 것이니 앞으로 책임 있는 원어번역이 요망된다. 여하튼 현재의 번역본도 582쪽에 이르는 대작인 만큼 읽기가 만만치 않다. 그 책의 논증을 구성하는 요소인 공리가 114개나 된다. 이는 제1권 ‘원리의 확립’ 중 제2부 ‘원칙’에서 열거된다.

여기서 그 모두를 검토할 수 없으니 일단 사이드의 독해를 따라가 보자. 사이드는 114개 중 가장 중심적인 공리로 106번을 든다. “학설은 그것이 취급하는 소재가 시작되는 곳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말 번역본은 ‘시작되는 곳으로부터’를 ‘시작되었을 때’라고 번역했으나 의문이다. 위 공리는 사이드가 1975년에 낸 ‘시작-의도와 방법’ 서두에 인용되었다. 사이드는 비코를 ‘시작(beginning)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했다. 시작이란 그만큼 비코나 사이드에게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나 사이드가 비코를 ‘시작에 관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한 것은 비코가 시작이라고 하는 문제를 최초로 성찰한 철학자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인간-야만인이거나 성찰적인 철학자거나 간에-실제로 최초의 사람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각자 시작을 만들고 나아가 각자 언제나 최초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했다는 의미에서다. 이러한 시작을 비코는 이교성(異敎性)이라고 부른다. 비코는 이 공리를 “여러 국민의 공통된 자연본성에 대한 새로운 학문의 공리로 삼기 위해 서술한다”고 밝혔다.

한편 공리 24에서 비코는 고대세계가 히브리인과 이교도로 양분된 점에 대해 진실한 신에 의해 창건된 히브리 종교에서는 신점(神占)이 금지된 반면, 이교도의 경우에는 신점이 문명화와 국가생활의 길에 들어서는 토대를 형성했다며 그 차이를 지적했다. 이 두 가지 비코의 공리를 두고 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먼저 공리 106에서 비코는 인간의 지성이 감각 및 상상력 그리고 오성적 판단력 사이에서 상반된 관계를 형성하면서 단계적으로 발전했다는 이해의 패러독스를 깨달았고, 동시에 그 패러독스의 필연적인 귀결로서 현대인이 인류의 ‘시작’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어 인류의 ‘시작’이란 단지 현대 문명시대에 사는 철학자의 경우만이 아니라 원시 미개인-비코는 그들을 ‘최초의 인간’이라고 불렀다-에게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최초의 인간’에게는 바로 ‘이교도라는 것’의 가능성, 즉 히브리의 신적 ‘시원(origin)’으로부터 단절된 곳에서 스스로 ‘시작’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통찰했다고 사이드는 말한다.

여기서 사이드는 멈췄으나 우리는 비코의 본령이 법학이었음을, 특히 그가 당대까지의 주류 법학이었던 자연법론을 비판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연법론이 인간 본성의 불변성과 보편성을 가정했다고 비판하고 “본성은 발생이다”라고 주장한다. 비코에 의하면 본성의 참된 법칙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자연법도, 일련의 보편적 규칙도 아니다. 참된 법이란 특정한 사회환경에서 새로운 생활방식의 표현으로 발생하는 것일 뿐이고 ‘여러 민족의 자연법’뿐이라고 보았다.

신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인간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비코가 민족과 학자의 자만심에 대해 언급한 것을 지적하고 그것이 오리엔탈리즘을 형성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비코는 “인간은 멀고 미지의 것이기 때문에 어떤 관념도 가질 수 없는 사물에 관해서 눈앞에 있는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것은 인간정신이 갖는 하나의 특질”이라고 하는 2번 공리로부터 민족과 학자의 자만심을 도출했다. 곧 민족과 학자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지식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최고 최선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비코는 고대세계를 히브리인 세계와 이교도 세계로 구분하고, 히브리 세계에서는 신점(神占)이 금지되었으나 이교도 세계에서는 신점이 문명화와 국가생활의 기초였다고 공리 24에서 밝혔고, 따라서 원시인이 그 이교도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기독교의 ‘기원(origin)’과 다른 ‘시작(beginning)’을 역사 발생적으로 끝없이 새롭게 만들어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인식했다. 이러한 ‘시작’의 이교도성은 기독교라고 하는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점에 사이드는 주목한다.

여기서 잠시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학문’ 결론 부분을 보자. 비코는 인간이 여러 국민의 세계를 만들어왔으나, 그것은 인간이 설정한 의도와 다르거나 모순된 ‘뛰어난 지성’에 의해 생겨났고, 그 지성은 인간이 설정한 한정된 목적을 더욱 넓히고 지상에서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고 했다. 이어 비코는 야만적인 욕정을 채우는 것밖에 몰랐던 원시인이 정숙한 결혼생활을 하고 가족제도가 생긴 것을 위시해 도시의 발생, 민주적 자유의 발생 등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이 지성의 덕분이지 운명은 아니며, 인간의 선택이지 우연은 아니라고 했다. 이러한 비코의 주장은 종래 ‘신의 섭리’를 찬양한 것으로 이해되어왔으나 사이드는 이를 부정하고, 도리어 비코는 인간의 ‘시작’을 신의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보았다고 독해했다.

추상어와 구체어의 공존

비코는 제2권 ‘시적 지혜’ 중 제2부 ‘시적 논리학’에서 로마법의 노멘(nomen)이란 ‘법’을 말하고 그것과 발음이 유사한 그리스어의 노모스(nomos)도 법을 말하는데, 그 말에서 ‘화폐’를 뜻하는 노미스마(nomisma)가 나오고, 라틴어의 화폐를 뜻하는 눔무스(nummus)가 나온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불어에서는 법을 뜻하는 단어가 루아(loi)이고 화폐를 나타내는 것이 아루아(aloi)다. 그리고 중세의 교회법을 뜻하는 카논(canon)은 동시에 지대(地代)를 뜻했다.

이러한 비코의 설명은 지금까지 언어의 계보성을 밝힌 것으로 이해됐으나, 사이드는 비코가 법을 뜻하는 여러 말이 동시에 화폐라는 뜻이기도 하다는 ‘인접한 복수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체계를 인식했다고 주장한다. 즉 어떤 언어에서 추상어와 구체어의 직접적인 공존은 계보적인 계기성에 의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 상호간의 체계적인 인접성에 근거해 실현된다고 본 것은 비코에 대한 사이드의 새롭고도 대담한 해석이라 하겠다.

나아가 사이드는 비코가 1709년에 쓴 최초의 저서 ‘우리 시대의 학문 방법에 대하여’를 비롯해 여러 저작에서 그러한 인접성, 상보성, 병행성, 상관성을 밝혔다고 말한다. 원래 비코는 ‘여러 국민의 공통된 자연본성에 대한 새로운 학문’, 즉 여러 국민에 공통된 법을 추구하면서 나아가 하나의 공통된 시작을 발견하고자 계보학적인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상관성, 상보성, 인접성의 증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표상’ 머리말에서도 사이드는 비코의 ‘상관성’을 언급했다.



“내 책에서 싸우고자 한 상대는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허구의 구조다. 종속 인종, 동양인, 아리아인, 니그로 등의 인종차별주의적 본질은 말할 것도 없이 그렇다. 나는 과거 식민주의의 폭정을 거듭 당한 나라들에서는 원초의 순수 상태가 서양인에 의해 침해되었다는 의식을 조장하기는커녕, 다음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했다. 즉 그런 신화적 추상개념은 허위이고, 그것과 같이 과거의 식민지국이 서구를 비난하는 다양한 수사도 허위라는 것이다. 문화는 너무나도 혼합적이고 그 내용도 역사도 서로 의존하며 잡종적인 것이므로 외과수술을 하듯이 크게 잘라 동양이나 서양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 나눌 수 없다.”

이러한 사이드의 해석에 대해 논리의 비약이라든가 너무 대담하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비코에 대한 가장 뛰어난 연구로 평가되는 크로체의 ‘잠바티스타 비코’(1911) 이래 60여 년 동안 나온 비코 해석 중 가장 새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러한 비코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 사이드가 텍스트와 현실세계 사이에 서로 통할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본 문학비평에 반대하여 “텍스트는 그 자체가 이미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텍스트와 현실세계를 연결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즉 사이드가 말하는 현실세계가 바로 비코가 말한 ‘여러 국민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적 기원으로부터 단절되고 성스러운 질서에서 벗어난 ‘이교도적인’ ‘여러 국민의 세계’였다.

아이덴티티, 부정, 폭력
사이드는 비코를 비중 있는 사회철학자로 보았다. 그는 ‘아이덴티티, 부정, 폭력’(뉴레프트 리뷰 1988년 9~10월호)이라는 글에서 비코가 ‘새로운 학문’ 제2권 제2부 ‘시적 형이상학’에서 아우토리타스(autoritas, 권위 또는 자기소유권)에 대해 설명한 문장을 예로 든다. 비코는 아우토리타스가 신에서 비롯되며 신은 거인들이 야수적 습관을 버리고 동굴 안에 몸을 숨겨 오랫동안 참고 견디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는데, 사이드는 이를 현대국가의 아이덴티티 형성과 테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독해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설정한 제한을 벗어나려 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처벌을 받고 영원히 갇히는 존재가 되었으며 독수리에 의해 심장을 쪼인다. 그러나 대부분 길들여진 인간은 제우스가 제공한 장소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최초의 인간들은 동굴에서 살다 나중에는 집을 짓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방랑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제우스의 테러는 인간의 테러를 중단시키고 그것을 사회적인, 나아가 국가적인 틀 속에 고정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비코가 제우스의 영웅적이고 일탈적인 테러를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다. 비코에 따르면 권위를 휘두르고 처벌하는 제우스의 압도적인 재능이야말로 근대국가가 행사하는 강제력의 독점을 예상케 한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비롯한 여러 저서에서 근대국가가 강제력을 독점하고 그 권력을 제국주의에 의해 범세계적 식민지 침략으로 확대하면서 동양에 대한 침략과 동시에 학문과 예술의 차원에서도 침략을 합리화하는 오리엔탈리즘을 형성했다고 분석했다. 사이드는 인간의 비참과 억압에 대한 진실의 기준이 개별 지식인의 정당 친화성, 민족적 배경, 그리고 근원적인 충성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이드가 말하는 인간의 비참과 억압에 대한 진실의 기준이란 여러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나 가령 국제적 인권 기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사이드가 말하는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보편성이란 문화적 배경, 언어, 국적 등이 제공하는 안이한 확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위험을 감내하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그것은 대외정책이나 사회정책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여 인간 행동의 단일한 표준을 찾고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뜻한다.

지식인이여, 국가와 전통을 던져라
사이드는 나아가 지식인이 국가와 전통을 떠나서 활동하고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통적으로 지식인은 국가와 전통에 대해 책임진다고 생각해온 것에 대한 비판이다. 즉 사이드는 이러한 집단적 사고가 지식인이 의문을 제기하고 회의를 품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사이드에 따르면 지식인은 국가나 전통이 자연과 신에 의해 부여된 실체가 아니라, 구조화되고 만들어지며 어떤 경우에는 이면의 투쟁과 정복의 역사를 통한 창조물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바로 비코의 역사관에 입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사이드는 그런 지식인으로서 촘스키와 비달, 울프를 예로 든다.

여기서 지식인이 선택해야 할 것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승리자나 지배자에게 편리한 안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안정상태를 거부하고 잊혀진 여러 목소리나 잊혀진 인간의 기억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사이드가 말하는 지식인은 당연히 후자이나 문제는 현실에서 다수의 지식인이 전자라는 점이다.

지식인은 언제나 충성이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특히 지식인은 자국민이 위협을 받으면 당연히 방어적인 민족주의자가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프란츠 파농의 경우에서 보듯 지배자를 교체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영혼의 창조가 문제된다. 타고르도 죽을 때까지 민족주의자였으나 민족주의 때문에 비판을 누그러뜨리지는 않았다.

사이드는 지식인이 자신이 속한 인민의 집단적 고난을 대변하고, 그 고난을 증언하며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시련의 상처를 끝없이 환기하고, 기억을 갱신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책무를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에 더하여 피카소나 네루다의 작품에서처럼 지식인만이 충족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었다. 즉 사이드는 지식인이 위기를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특정한 인종이나 민족이 겪는 고난을 인류 전체와 관련지으며, 그 고난을 다른 고난의 경험과 결합시켜야 한다고 했다.

사이드는 권력에 봉사하고 권력의 보상을 받는 전문가는 비판적이고 왕성한 독립정신으로 분석과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지식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식인이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비전문가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것은 지식인의 글이 불특정 다수의 수용자에게 읽히고 예측할 수 없는 반응에 노출되는 불확실성을 기꺼이 선택한다는 의미다. 사이드 스스로도 전문영역을 이유로 결코 공공정책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그는 또 지식인들이 흔히 자국문화 중심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했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토크빌은 미국의 인디언과 흑인노예 학대를 비판했지만 자국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정책에 대해서는 이슬람이 열등한 종교이므로 통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지식인의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 문화와 사회 및 역사의 실재를 어떻게 다른 정체성과 문화 및 인민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 문화의 영광이나 ‘우리’ 역사의 승리에 대한 과대선전은 지식인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사이드는 최근 이슬람을 둘러싼 미국 지식인의 애국주의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했다.

나아가 사이드는 지식인이 극도로 편향된 권력에 아첨하여 타락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권력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으며 원칙을 존중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식인은 최소한 국제사회가 용인하는 행동 기준과 규범을 따라야 한다. 그 중요한 보기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여러 국제인권규범들이다. 우리 사회와 같이 관리된 대중사회에서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련의 도덕적 원칙들-평화, 화해, 고통의 경감-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상을 실현함에 있어 가장 비난받아야 할 것은 지식인의 회피다.(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08.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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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4-01 22:44   좋아요 0 | URL
실로 오랜만에 비코의 이름을 읽게 되니 갑자기 가슴 속에서 뭔가 '불끈'합니다.^^ 벌린의 <비코와 헤르더>는 개인적으로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오고 있는데, 예전에 출간되었던 대우학술총서 판본은 아마 이제는 절판이겠죠... 그러고 보니 중역본이긴 했어도 비코의 <새로운 학문> 번역본은 그 자체로 '희소가치'가 있었는데, 박홍규 선생의 말마따나 어서 새롭게 번역되었으면 하는 마음 저 역시나 품어봅니다.

로쟈 2008-04-01 23:10   좋아요 0 | URL
지난 학기에 <비코와 헤르더>를 대출했다가 읽는 시늉만 하고 반납한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땐 '헤르더' 때문이었는데, '비코'를 핑계로 언제 다시 대출해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3:48   좋아요 0 | URL
p.헤밀톤 저 사회구조와 사회의식 제 1장에서 비코를 다루었는데 지식사회학의 선구자로 보았네요.딜타이의 verstehen과의 유사성도 언급했구요.몽테스키외를 프랑스의 비코라고 했는데...재밌네요.
10여년전 오리엔탈리즘을 읽다가 이런 책을 법대교수가 번역하다니...수험법학에 몰두하는 학생들은 이런 교수 싫어하겠군...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그후로도 박홍규 씨는 실용법학과는 담을 쌓고 진짜?인문과학 서적을 직접 쓰기 시작하더군요.어쩐지 법대 교수라기보다는 성공회 대학이나 한신대의 인문사회과학부 교수같은 느낌을 주는 존재...

로쟈 2008-04-07 00:28   좋아요 0 | URL
강의도 인문교양쪽을 하시는 걸로 압니다. 전공은 노동법쪽이신 걸로 알지만...
 

경향신문의 '독립언론 10년'을 맞아 이루어진 특별대담을 옮겨놓는다. '김우창 교수에게 듣는다'란 부제대로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이며 진행은 이대근 국제/정치 에디터가 맡았다. 김교수는 경향신문의 정기칼럼 필자이기도 하므로 아주 '내외간'의 대담은 아니다. 사실 이렇게 옮겨놓는 기사들 대부분은 내가 읽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강조를 위한 색칠 등을 하면서 꼼꼼하게 읽어볼 기회를 일부러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형편과 무관하게 꽤 많은 시간을 신문읽기에 투자하는 듯하다...

경향신문(08. 03. 28) “위기의 한국 언론, 가장 필요한 것은 객관성”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는 한국 사회와 언론이 주제였지만 대화는 부동산에서 시작되었다. 역시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땅은 빠질 수 없는 화제였다. 김 교수는 땅값이 오르면 내야 할 세금이 오르는데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그와의 인터뷰는 내내 이런 상식 아닌 상식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었다.

한국이 낳은 탁월한 사상가라는 상찬을 받는 그였지만, 한국 사회와 언론에 관한 그의 견해는 매우 담백했다. 사실과 의견이 서로 왜곡되지 않고 균형을 갖추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만큼 특별한 한국 사회, 한국 언론에 상식과 원칙의 처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이 독립언론으로 새 출발한 지 10년째를 맞아 자화자찬보다 이번 기회에 한국 언론 전체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그 속에서 경향신문의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는 취지를 소개했다. 그러자 그는 바로 말을 받으며 “신문이 자기가 한 일을 무조건 중요하다고 과장하는 것은 격을 떨어뜨리고 눈에 거슬리는 일”이라며 “신문에 나는 것은 언제나 공정하고 공공이익에 입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주제가 벌써 나온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20일 오후 경향신문사 인터뷰실에서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 정년 퇴임하신 뒤 주로 댁에서 지내십니까.

“ 주로 집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집이 시내와 가깝고, 자연이 좋고, 특히 땅값이 안 올라서 좋아요. 한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땅값이 오르면 좋아한다는 거예요. 팔려고 내놓으면 좋겠지만, 살려고 한다면 세금이 오르는데 왜 좋아하죠.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평창동·명륜동·혜화동 같이 서울에서 살기 좋은 데는 땅값이 안 오르고, 혼란스러운 동네는 올라가요.”

- 휴대전화를 사용하시지 않더군요.

“농담으로 하자면, 급한 전화가 있다는 것은 거는 사람이 급한 거지 받는 사람이 급한 것은 아니잖아요. 너무 정보가 많은 게 문제입니다.”

- 매체가 많아졌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체가 다양해져서 민주주의가 향상됐다고 하는데, 이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어떤 칼럼니스트가 썼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의견이 있어도 반드시 지지자가 있게 마련인데 매체가 많으면 이런 의견을 담느라 정말 좋은 의견이 모아지기 힘들다는 겁니다. 물론 의견 표명이라는 면에서 보면 다양한 게 좋죠. 그러나 현실적인 해결책은 1~2개뿐입니다. 여러 의견과 방안을 종합해야 합니다. 전문가에게 종합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절차가 중요한 것이지, 모두가 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문은 인터넷 매체에 비해 접근이 선택적입니다. 그것을 부당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런 기능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매체의 다양화는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에요.”

- 신문을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습니까. 처음 신문을 대할 때 신문은 어떤 것이라는 인상을 받으셨습니까.

“신문을 언제 읽었느냐는 물음은 참 답하기 어려워요.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아버지 때부터 읽었던 신문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보았으니 계속 읽었다고 답할 수 있겠습니다. 신문은 네개를 봅니다. 저는 사실을 중시하기 때문에 사실이 가장 풍부한 신문을 가장 먼저 보고 그 다음 경향신문을 봅니다. 경향신문은 사실과 의견이 적절하게 있어서 좋아합니다. 의견이 매우 강한 신문은 네번째로 봅니다.”

- 즐겨 읽는 면이 있습니까.

“신문 편집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면 기사를 먼저 보게 돼요. 보통 정치기사를 많이 봅니다. 자잘한 세상사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런 기사들을 보면 세상 사는 느낌을 받게 돼요.”

- 혹시 신문기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아니면, 기자가 되면 이런 것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것이라도.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기자가 됐더라면 내게 도움이 됐을 것이란 생각은 했죠. 게을러서 잘 안되는 것을 기자란 직업 때문에 의무감으로 사람 사는 현실에 대해 자세히 봤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요. (기자란 직업에 대해) 그게 부러운 점입니다.”

-한 마디로 정의해서 신문은 무엇입니까.

아침에 신문을 가지러 나갈 때 ‘아직도 세상이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것이 신문입니다. 헤겔이 신문은 현대인의 기도서와 같다고 했어요. 기도서는 아니지만 신문은 세상의 모습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죠. 물론 잘못된 모양도 있고요.”

- 건강한 시민이라면 신문을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신문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신문을 잘 안 읽는다고 합니다. 요즘 누가 신문 보느냐 이런 말이 자연스러워졌다고 합니다.

“신문을 안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신문 외에 정보매체가 많다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시각이나 청각 매체에 비해 정신집중이 더 필요한 일인데 요즘 젊은이들은 정신집중보다 몸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지요. 또 정보 과다로 정보가 필요없다는 인식도 있어요.”

- 그런 흐름을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보십니까. 그런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활자매체의 쇠락은 불가피한 것인가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 사고하고 검증하는 습관이 학교나 사회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지요. 말하는 것과 글쓰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어요. 말은 문장이 완전하지 않아도 되고, 논리가 안 맞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글은 논리와 사고에 입각해야 하고 문법도 맞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글마저 사고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 한국 언론은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터넷 미디어의 발달, 이미지 시대의 도래 등 언론 환경의 변화는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 신문의 타격이 큽니다. 게다가 신뢰도도 매우 낮습니다.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언론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회의 지적인 힘이 약화됐어요. 그 책임은 언론에만 있다고 보기 힘들지만 언론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 투쟁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위기 상황에서는 적절하지만 그런 입장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위기가 완화되고 나면, 사람 사는 방향이 여러 방향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걸 하나로만 묶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객관성입니다. 옳은 것이라고 해서 주관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것으로 옮겨가야 해요. 사실이 무엇이냐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관해서는 의견에 관계 없이 사람들이 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외국신문은 어떤 것을 보십니까, 한국신문과 비교했을 때 인상적인 것이 있습니까.

“외국신문을 보는 게 몇 개 있는데 사실 검증이 중요한 기준으로 되어 있어요. 한국의 경우 정의의 이름일 수도 있고 국익을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위해 사실을 부정하기도 하지요. 사실이란 일어난 일, 틀림없이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선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요. 사실 보도 여부는 주관적 판단에 따라 하는 거지요. 이는 사실에 대한 존중이 약하다는 것도 되고,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뜻도 됩니다.

제가 오래 본 신문 중의 하나가 영국의 가디언입니다. 가디언이 사실을 선정하는 기준은 아주 객관적이에요. 예를 들어 영국 여왕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거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어요. 왜냐하면 그게 중요한 기사도 아니고, 모두의 관심사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경향신문의 오늘 이 기사(3월20일자 1면 ‘반운하=반여당 최대 이슈 부상’)는 매우 좋은 기사입니다. 사실 선정의 기준이 공익적입니다. 그러나 제목 ‘최대 이슈 부상’은 사실이 아닙니다. 최대 이슈라면 유권자들이 이것을 기준으로 선택한다는 것인데,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입니다. 공익적인 판단 기준에서는 아주 중요한 대목을 드러냈지만 ‘부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성이 약한 것이지요.”

- 정의와 국익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신문을 만드는 데 있어 항상 갈등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는 국익이 있고, 야당이 생각하는 국익이 있고, 신문도 저마다 다르게 국익을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문은 국익을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보십니까.

“공익이나 국익, 정의가 중요한 가치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비판적 입장은 늘 유지해야 합니다. 어떤 정치적인 행동도 국익이나 정의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없어요. 그것이 참으로 정의, 국익이 되려면 실현하는 수단은 정의로운지 봐야 합니다. 정의나 국익이란 것이 책임을 기피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에요. 구체적인 예를 말씀 드리자면, 며칠 전 여러 신문에서 대학 강사가 미국 오스틴에서 자살한 사건을 다뤘어요. 비정규직 강사들의 부당한 대접에 공감하기 때문에 유심히 기사를 봤어요. 전적으로 강사들의 처우가 부당하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이 16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가서 호텔에서 자살한 것을 보면 책임 있는 어머니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을 볼 때 사회정의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어요. 한국이 아닌, 미국까지 가서 자살했으면, 다른 이유도 있을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자살하지 않으면 안될 요인이 무엇이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해요. 사회정의의 관점에서만 처리하지 말고 좀더 사실적인 보도를 했으면 합니다. 너무 쉽게 강사 처우 문제로 가버려 충분히 해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사회정의 국익, 이런 것이 우리의 사고를 단축하는 역할을 하면 안됩니다. 사실을 먼저 탐색하고, 생각해보는 일이 필요해요.”

- 신문 역할이 사회 현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사회를 선도하고 계몽하는 것이라고 보십니까. 신문의 역기능으로 사회 갈등을 확대, 증폭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문이 사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말고 조화로운 결과가 나오도록 유도를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신문과 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이 돼야 합니까.

“계몽, 선도와 사실 보도, 이것들이 모두 어울려야 해요. 그러나 사실 보도가 1차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공익의 관점에서, 사회의 건전성에 대한 관심으로 선정돼야 합니다. 여기에 계몽과 선도가 이미 들어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입장을 지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왜냐하면 계몽을 앞세우면 주관적으로 되기 쉬워져요. 사실을 통해 주관적인 입장을 나타내면 어느 정도 검증이 되지만, 계몽을 앞세우면 주관적인 입장이 앞서서 공정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 현재 한국 언론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신문에서 공익을 찾아 보기 어렵다고 하시지만, 신문 각자 나름의 공익에 대한 준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문마다 다른 여러 가지 공익이 존재할 수 있는 건가요.

공익이란 것이 자기가 서 있는 입장에서 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최근 중국의 티베트 문제가 좋은 예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진압이 공익이고, 티베트 입장에서는 아니겠지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탄압이 옳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문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공익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제가 고려대학교에 있다고 해서 그 대학에 모든 것을 바치지는 않습니다. 제 충성심은 진리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들이 신문사 공동체로서 충성심도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사실에 대한 충성심이 필요합니다.”

- 티베트 얘기가 나왔는데, 선생님께서 신문 책임자라면 어떤 관점에서 보도하겠습니까.

“티베트, 중국, 세계시민의 세가지 관점을 모두 보도해야 합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티베트가 자유를 원한다면 자유와 자치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내 개인적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티베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그런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지요. 중국의 52개 소수민족이 모두 자치를 원할 때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일 넓은 관점, 즉 인간의 공적인 정의와 국가 현실 안에서의 정의, 이것이 어떻게 타협될 수 있는가도 보도해야 합니다.”

- 그러면,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이 티베트 사태를 올바로 보도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대체적으로 티베트 입장에서 보는 것이 좋은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서 보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요. 현재 세계적으로 공정한 보도라면 티베트 사람들의 소망을 그대로 보도해줘야 합니다. 지금 국내 사정도 그렇습니다. 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서 경제를 향상시켜야 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과 복지 등을 더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 이 두개를 모두 고려해서 어떻게 수렴해야 하는지도 보도해야 합니다.”

- 여론의 다양성이 중요한데 일부 보수 언론이 여론을 과점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불행한 일이지만 제도적으로 시장을 관리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불매운동도 하고 그랬는데, 전 신문에 쓴 적은 없지만 사석에서는 비판했어요. 정치권력을 통해 다른 신문이 확장을 시도하는 것은 안됩니다. 전 시장을 지지해요. 이런 얘기해도 좋을는지 모르겠지만, 정부 지원을 통해 한국문학 번역해서 외국에 보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요. 그런데 검증 없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번역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아요. 아무 책이나 번역돼요. 그러면 그런 지원이 오히려 외국 보급을 어렵게 합니다. 번역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문학이 있으면 왜 외국출판사가 자기 돈으로 번역하려고 하지 않겠어요. 제도적 지원도 있어야 하지만, 시장경쟁도 중요합니다. 지금 열세에 있는 신문들도 제도나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체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전 경향신문이 좋은 신문이라고 봅니다. 노무현 정부 때 경향신문만큼 비판하고 사실보도한 신문은 없었어요. 결국은 좋은 것이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지기 바랍니다.”

- 여론형성에 있어 신문이 얼마나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다른 미디어가 그런 기능을 해야 하는지요.

“신문만큼 여론형성에 중요한 기구는 없어요. 인쇄매체의 선택적 기능이 중요해요. 더 깊이 있는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뒷받침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사회 전체가 깊이 생각하고 지적 규율을 존중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신문도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특히 시청각 매체를 보면, 너무 여론을 쉽게 형성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방송들을 일본 NHK와 비교할 때 한국 기자들이 너무 급하고 긴박한 느낌으로 보도를 하더군요.”

- 신문의 당파성을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탈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당파성, 인민성, 이념성은 레닌주의에서 나온 말입니다. 레닌주의의 당파성도 그렇고, 마르크스주의에서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강조한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계급의식을 강조하고 노동자계급을 중요시한 것은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이 고통 받는 계층, 보편계급이기 때문이죠. 보편계급이란 이들만 해방되면 사회의 고통이 사라진다고 붙여진 것입니다. 현재 이런 고통을 없애기 위한 해결 방식이나 주장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결 방식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신문은 모든 사람이 고통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쓰시는 장문의 칼럼에 대해 일부에서는 어렵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신문과 문학의 글쓰기는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신문이 사실보도를 훨씬 잘해요. 저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제가 말하고 쓰는 것을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 콤플렉스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런데 경향신문에서 칼럼을 실어주니,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문에는)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상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끌려가다보면 잃어버리는 것이 있을 수 있어요.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람이 있어야지요. 물론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08. 03. 30.

 

P.S. 대담에서 인상적인 건 "매체의 다양화는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김우창에 대한 이해에도 요긴한 포인트로 여겨진다. 한편 계간 <비평>(2008년 봄호)에는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한 패러다임'을 화제로 김우창 교수와의 심층대담이 실려 있다. 아직 읽을 짬을 못 내고 있는데, 요즘 이런 대담은 김우창 교수가 '전담'하는 듯한 모양새다. 한국 사회에 '공적 지식인'이 정말로 몇 안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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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비스사를 바꾸는 바람에 오전에 잠시 새 연결망 설치작업이 있었고 또 그 바람에 약간의 책정리를 하다가 리처드 레인의 <보드리야르, 소비하기>(앨피, 2008)의 원서를 발견했다. 잠시 읽어보게 됐는데, 독일 극작가 페터 바이스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어 몇 자 적어놓는다. 보드리야르는 바이스의 주요 작품들을 불어로 옮긴 번역자이기도 하다.  

 

 

 

 

책의 '왜 보드리야르인가?'란 서론은 "장 보드리야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제로 글을 쓴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일 뿐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그 자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사람이다."(15쪽)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구체적으로 실천한'은 'embody'를 옮긴 것인데, 말 그대로 포스트모더니즘을 구현한,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인 이론가가 보드리야르라는 것.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같은 시리즈로 나온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더니즘을 구하라>(앨피, 2008), <트랜스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앨피, 2007)과 함께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도래와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삼총사'이기 때문이다(제임슨의 명성은 물론 상당 부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반대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여담이지만, 그의 주저 중 하나인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유행'에 있어서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그런 보드리야르(1929-2007)의 경력은 장 폴 사르트르가 주관한 잡지 <현대>에 주로 글을 발표함으로써 시작된다. "사르트르는 대체로 독창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 때문에 모든 세대의 프랑스 사상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그에 더하여 개인적으로 독일의 사회학과 문학에 흥미를 느꼈다."(19쪽) 여기서 '모든 세대'는 'a whole generation'을 옮긴 것이다. 그냥 '한 세대 전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독창적인 마르크스주의 해석'은 짐작에 <변증법적 이성비판> 같은 책을 염두에 둔 멘트로 보인다. 국내엔 이 책의 서론만이 <방법의 탐구>(현대미학사, 1995)로 번역돼 있다. 보드리야르는 그러한 독일 철학에 보태서 독일 사회학과 문학에도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는 것.

"그는 더 전문적인 분야를 일컫는 '문학'이나 '철학' 같은 용어보다 '문화'라는 말을 선호했는데, 왜냐하면 프랑스의 주류를 이루는 지적 사고의 한계 지점에 서 있는 이론가로 자신을 자리 매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주요 지적 라이벌인 미셸 푸코처럼) 전통적이고 체계적이며 철학적인 훈련을 받기보다는 좀더 우회적인 길을 걸었다.(19-20쪽)

'프랑스의 주류를 이루는 지적 사고의 한계 지점'은 'margins of mainstream French intellectual thought'의 번역이다. 그러니까 다 똑같이 유명한 프랑스 이론가/사상가로 알고 있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서 푸코처럼 주류(메인스트림) 정통파도 있고 보드리야르 같은 비주류 주변부파도 있는 것이다. '지적 라이벌인 미셸 푸코'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건 보드리야르의 <푸코 잊기>(1977; 영역본은1987)이다. 푸코의 생전에 나온 책이다! 책이라곤 하지만 분량은 팜플릿 수준인데, '푸코를 잊어버리기'란 제목으로 <세계의 문학>(1989년 가을호)에 번역됐었다(무슨 소리를 적어놓았는지 다 잊어먹었지만).

여하튼 "제도의 경계에 서 있는 이러한 보드리야르의 위치는 주류적 사고의 경계 지점에서 유희하는 그의 후기 출판물들과 유사한 맥락에 서 있다." 그런 비주류성 혹은 가장자리성과 잘 호응하는 것이 독일 극작가들에 대한 관심이다. 특히 페터 바이스와 베르톨트 브레히트.

"1960년대에 보드리야르는 특히 극작가 피테르 바이스(1916-1982)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을 번역하는 데 힘을 쏟았다. 보드리야르는 그 영향력이 과소평가되어 온 바이스의 주요작품 네 편을 번역햇다. <소실점>(1964), <마라/사드>(1965), <토론>(1966), <베트남 해방전쟁의 발생과 전쟁에 대한 담론>(1968). 불안정한 시점의 형식을 취하여 날카로운 정치적 진술들을 담고 있는 이 텍스트들은 보드리야르가 글쓰기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전조로 간주될 수 있다."(20쪽)

Photo: Peter Weiss, 1960er Jahre

'페테르 바이스'는 '페터 바이스(Peter Weiss)'라고 읽어주는 게 낫겠다(물론 '피터 웨이스'라고 영어식으로 읽은 책들도 있긴 하다). 독문학자들이 그렇게 읽고 또 국내에도 그렇게 소개됐다. "그 영향력이 과소평가되어 온"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바이스가 보드리야르에게 끼친 영향을 말한다(The influence of Weiss is usually played down). 그것이 보통 간과됐다는 것. 하지만 주요작을 네 편이나 번역한 이상 모종의 영향관계나 친연성을 고려해볼 수 있겠다.



 

 

  

<마라/사드>는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다른 세 작품은 좀 생소한데, 찾아보니 <토론>이라고 옮겨진 작품은 <수사(Die Ermittlung)>, 영어본으로는 <조사(The Investigations)>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니 우리말로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한국문화사, 2003)로 번역돼 있다. 제목대로 아우슈비츠의 학살을 다룬 '기록극'이라 한다. 11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장의 제목은 아래와 같다.

1 승강장의 노래
2 수용소의 노래
3 그네의 노래
4 생존가능성의 노래
5 릴리 토플러의 종말에 관한 노래
6 하급친위대원 슈타르크의 노래
7 검은 벽의 노래
8 페놀의 노래
9 방공호 구역의 노래
10 치클론 B가스의 노래
11 화장로의 노래

페터 바이스는 유대계였던 탓에 나치 독일을 떠나 오랜 망명생활을 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전기적 내력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그렇다면 대표작 <마라/사드>는 어떤 내용인가? "<마라/사드>는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 장 폴 마라(1743-1793)의 암살사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그러나 바이스는 이 모든 것을 복잡하게 비튼다. 그의 희곡은 한때 샤랑통 시설(Asylum of Charenton)'에 수용된 마르키 드 사드(1740-1814)가 그곳에서 상연한, 마라의 암살 사건을 다룬 연극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마라/사드>는 역사적 현실에 기반한 희곡이면서 동시에 역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20-21쪽)

'샤랑통 시설'은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샤랑통 정신병원'으로 사드가 감금되었던 곳이다. 그리고 <마라/사드>는 <사드 후작의 연출로 샤랑통 정신병원의 재소자들이 공연한 장 폴 마라에 대한 박해와 암살사건(The Persecution and Assassination of Marat as Performed by the Inmates of the Asylum of Charenton Under the Direction of the Marquis de Sade)>이라는 긴 원제를 가진 작품으로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사드가 연출가로 분하여 환자들과 함께 마라의 암살 사건을 극중극으로 재현한다" 때문에 "<마라/사드>는 역사적 현실에 기반한 희곡이면서 동시에 역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Marat/Sade becomes a play located in the historical real, but also one that dislocates history.). 

그리고 바로 그런 점이 보드리야르의 포스트모던적 글쓰기와 상통한다는 것. "바이스의 <마라/사드>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연극 작품이 생산되고 상연된 시대를 바이스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깨닫는 동시에,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방식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정치를 사고하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형식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보드리야르 역시 흔히 수행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분석과는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로테스크한 폭력과 성적 과잉'을 보여주는 희곡을 번역한 보드리야르의 작업을,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21쪽)

이 대목은 원문과의 대조를 필요로 한다. "With Weiss' Marat/Sade, we have a new and interesting form for the explorarion of political ideas, one which strays far from the typical Marxism that informed Weiss' thinking at the time of the play's development and production. Similarly, Baudrillard was exploring different ways of performing Marxist anaylses, and we can tie in his work translating this play of 'grotesque violence and sexual excess' with his interest in the French thinker Georges Bataille(1897-1962)."(4쪽)

내가 읽은 바를 나대로 옮기면 "페터 바이스의 <마라/사드>를 통해서 우리는 정치 사상을 탐구하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형식과 접하게 된다. 이 형식은 이 희곡이 씌어지고 공연되던 시기 바이스의 사고를 틀 지웠던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한참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수행/상연하는 다른 방식들을 탐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그로테스크한 폭력과 성적 과잉'의 희곡을 번역한 그의 작업을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이유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연관지어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보드리야르는 바타이유(바타유)와 접속된다.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사이에 조르주 바타유는 스스로 '이종적 문제(heterogenous matter)'라고 부른 '과잉', 요컨대 쓰레기, 배설물, 폭음과 폭식 등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것에 기반한 글쓰기 이론을 구축했다. 그는 철학의 거장들이 흔히 자신들의 철학은 그러한 세속적 문제를 초월하려는 시도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시하는 영역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21쪽)

바타이유의 이러한 '이질적인' 철학은 당대의 주류 사상가들로부터 거부되었으나 1960년대 이후로 '재발견'된다.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바타유와 그의 저서에 담긴 새로운 관심사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의 프랑스 사상가들이 헤겔과 마르크스라는 제약에 맞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바타유를 참조함으로써 보드리야르를 포함한 사상가들 전체를 반反 헤겔 혹은 반反 마르크스라는 서사 내에 한 묶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22쪽)

참고로 원문은 이렇게 돼 있다: "To understand Bataille, and the new interest in his work, is to understand the way in which modern French thinkers reacted to the constraints of Hegel and Marx; in other words, we can situate a whole host of thinkers that include Baudrillard in one stretch of narrative."(4쪽)   

역시나 나대로 다시 옮기면, "바타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고 그의 작업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현대 프랑스 사상가들이 헤겔과 마르크스의 구속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보드리야르를 포함한 다수의 사상가들을 하나의 내러티브 선상에 위치시킬 수 있다."

지난번에도 언급한 것이지만(http://blog.aladin.co.kr/mramor/1965343) 리처드 레인은 줄리언 페파니스의 책 <이질성과 포스트모던(Heterology and the Postmodern: Bataille, Baudrillard, and Lyotard)>을 높이 평가하는데(<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바타이유, 보드리야르, 리오타르>(시각과언어, 2000)로 소개돼 있다), 인용한 대목은 이 점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아니, 서론에 나오는 것이니까 미리 암시해준다고 해야겠다. 그리하여 다시 읽게 되는 보드리야르는 페터 바이스와 바타이유 사이의 보드리야르이다...

08. 0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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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30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30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30 0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30 0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8-03-30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타이유 이야기가 나와서 개인적으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군요.^^
반가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언제나처럼.

로쟈 2008-03-30 10:13   좋아요 0 | URL
람혼님에게는 기별도 안 갈 내용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터 바이스의 희곡 중 베트남 토론회라는 작품이 있는데 보들리야르가 번역했다는 토론이 혹시 이 작품은 아닌지요...심문이라는 희곡은 따로 있는데요...(중앙일보사 오늘의 세계문학
13번 페터 바이스 관련 흑백화보 설명에서)

로쟈 2008-04-07 00:30   좋아요 0 | URL
<베트남 해방전쟁의 발생과 전쟁에 대한 담론>라고 따로 거명돼 있어서요. 한데 번역된 건가요? 저는 중앙일보 책이 박스에 들어가 있어서.--;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중앙일보 것은 부모와의 이별 번역본이고요.화보에는 바이스의 희곡이 연극무대에 올려진 것을 소개하고 있어요.한번 확인해보세요.박스에 너무 깊이 넣으셨나요...

로쟈 2008-04-07 01:15   좋아요 0 | URL
게다가 창고에 가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4-07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수록 태산이네요..
 

이번주 신간 중에 '사회적 독서'에 가장 적합한 책은 아마도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2008)일 것이다. 영국의 '사회역학자' 리처드 윌킨슨의 저작이고 제목과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란 부제에 내용이 이미 요약돼 있다(특별히 상식에 반하지 않는다). 나머지 400쪽 가까운 분량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들이겠다. 당장에 읽을 시간을 없기에(시간의 배분 또한 불평등하다!) 리뷰들이라도 챙겨둔다.

경향신문(08. 03. 29) '사회적 열등감’이 病 부른다

한 사회에서 건강 수준은 일반적으로 사회 계층이 높을수록 좋아진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가난할수록 건강이 나빠진다고 하겠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부유한 지역의 백인과 가난한 지역의 흑인 사이에는 기대 수명이 16년이나 차이가 났다. 그렇다면 다음의 사례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미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세계 25위에 불과하며, 국내총생산(GDP)이 그 절반인 그리스보다 낮다. 미국 흑인 남성은 코스타리카 남성보다 실질소득이 4배나 높지만 수명은 9년이나 짧다. 뉴욕의 할렘처럼 미국의 극빈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세계 최빈국인 방글라데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높다. 문제는 절대적 소득수준이 아니라 상대적 소득격차, 즉 ‘불평등’인 셈이다.

원제가 ‘(불평등의 효과)인 책이 파고들고 있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건강’이 물질적 환경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우리가 이를 경험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들”에 밀접하게 반응하는 지표라는 것이다. 건강불평등과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연구하는 사회역학 분야의 선구자인 저자(영국 노팅엄대 교수)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좀먹는지를 지난 30여년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보여준다.



건강불평등은 단순히 빈곤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불평등하다면 그 속에 사는 누구나 건강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책은 사회적 불평등이 개인에게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이 스트레스가 다시 건강을 악화시키는 과정을 다양한 연구 성과를 통해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불평등한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심혈관계나 면역 체계를 포함한 우리 몸의 생리적 체계에 악영향을 주고 수많은 질병에 취약하게 만든다. 또 담배, 술 등 기분전환용 약물이나 전문의약품에 의존하게 하고 우울증, 불안, 불행, 혐오감, 소외감, 불안정, 통제력의 상실과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

책에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심리사회적 요인 세 가지가 제시된다. 우선 낮은 사회적 지위. 이는 물질적 생활수준만이 아니라 멸시당한다는 느낌, 열등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느낌, 자신의 일에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느낌처럼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 생기는 모든 사회적 감정을 포함한다. 두 번째 요인은 친구나 신뢰하는 사람이 없고, 참여하는 공동체가 없는 등 빈약한 사회적 관계다. 사회적 연결망이 좁은 사람은 넓은 사람보다 감기에 걸리는 경우가 4배 이상 높다는 결과도 있다. 마지막 요인은 어린 시절 애착관계의 결핍이나 불안정이다. 저자는 이 세 가지 요인들이 모두 ‘사회적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 근저에는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태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사회적 불안, 수치심, 우울, 폭력이라는 감정들은 모두 사회적 비교에서 생긴다”라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한다.

불평등이 미치는 영향이 건강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강력 범죄 발생률과 10대 임신 비율이 높고,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고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성이나 인종적·종교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도 심하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서 수치심을 느끼고 자기 존중감이 심하게 손상된 사람들은 자신이 사회적 약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자존감을 되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책은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인간이 구사하는 방식을 ‘지배의 전략’과 ‘친화의 전략’으로 나누고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전자를 강화시킨다는 데 주목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가 희소자원을 둘러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적 투쟁의 ‘가능성’ 속에 살아왔지만 ‘협력적 전략’도 개발해왔음을 진화론적 탐구를 통해 보여준다. 인간의 뇌가 커진 이유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영장류들의 ‘털 고르기’처럼 인간은 사회적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말하기’ 전략을 사용해왔다. 또 영장류 가운데 인간만이 눈동자에 흰자위가 있다는 사실은 서로에게 시선을 노출해 서로 이해받고 협력하는 전략을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예다.

저자는 건강 불평등을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적극적인 방식은 전체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정치적 의지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사회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고 덧붙인다. 종업원 지주제나 협동조합처럼 좀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식을 우리가 일하는 조직에 이뤄내는 것이다.

책은 소비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아진다고 해서 상대적 박탈감과 관련된 문제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여전히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하게 취급’된다면 건강 불평등, 약물 남용, 폭력과 같은 사회 문제들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때문에 사회적 분열, 편견, 배제와 대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경제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근거 없는 허상을 붙잡는 것과 같으며 엄청난 환경비용까지 지불해야 할 것.”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점을 던져주는 대목이다.(김진우기자)

한국일보(08. 03.29) 불평등의 毒에 사회가 병든다

최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평등주의에 대한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이들은 경쟁력 격차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은 합리적인 것이라면서 평등주의야 말로 선진화의 걸림돌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지배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영국 노팅엄대의 사회역학 교수인 리처드 윌킨스는 평등과 건강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의 허점을 파헤친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구성원 개개인의 수명이 길다는 생물학적 건강은 물론이고 구성원간 신뢰가 있는지,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 참여는 활발한지, 살인 등 강력범죄의 비율은 높은지, 인종이나 지역차별 같은 적대감은 심한지 등 사회적 건강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와 불평등한 사회를 정밀하게 관찰하면서 건강을 정의하는 이러한 요소들이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우선 물질적으로 부유할수록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통념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고 갈파한다. 책에 따르면 일정수준의 부를 축적한 사회는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더라도 더 이상 기대수명이 높아지지 않는다. 가령 1998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평균기대수명을 조사한 결과 부유하지만 비교적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한 나라인 미국은 스웨덴, 일본 같은 부국들은 물론 GDP수준이 절반에 해당하는 그리스보다도 기대수명이 낮았다.

사회적 건강성도 마찬가지. 미국 50개주들의 주민에게 “기회가 된다면 타인들은 당신을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을 던지자, 경제적으로 가장 평등한 주의 주민들은 10~15%만이 ‘그렇다’고 대답한 반면, 불평등한 주에서는 35~40%를 육박했다. 살인율의 경우 주 사이의 불평등 정도에 따라 10배 가량 차이가 났다.

책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물질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발생할 갖가지 사회적 실패를 우려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을 부추켜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과도한 소비에 집착하도록 압박할 것이며 이는 ‘경제성장-자원고갈-환경오염’이라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이들의 경우 소득격차가 커질수록 직장, 집, 자가용 등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재화를 획득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을 열등하게 취급하다고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폭력적 성향을 강화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저자는 “만약 우리가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진심으로 해결하기를 원한다면 이제 더는 불평등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고 말로만 떠들고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될 것”이라며 “불평등이 인간에게 미치는 파장을 더욱 철두철미하게 분석하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이왕구기자)

08. 03. 29.

 

 

 

 

P.S. 저자의 다른 책으론 <건강 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당대, 2004)가 출간돼 있다(저자가 왜 '윌킨스'라고 표기돼 있는지 모르겠다). 원제는 '불건강한 사회(Unhealthy Societies)'이다. 관련서로는 사회역학 분야에서 윌킬슨과 쌍벽을 이룬다는 마이클 마멋의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2006), 그리고 한국사회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보고서로 이창곤의 <추척, 한국 건강불평등>(밈, 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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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세곰 2008-03-29 11:45   좋아요 0 | URL
멕시코에서는 비만을 개인의 식생활 습관의 문제로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물 대신 값싼 탄산음료를 마실 수 밖에 없는 열악한 수도사정 그리고 치안의 불안으로 인한 극도의 제한적 생활로 인한 운동부족 등 이른바 "사회적"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멕시코의 비만인구 비율이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세계적인 뚱땡이 국가 미국도 찜쪄먹는다고 하더군요. 근데 로쟈님은 이 토요일날 최소 아침 8시 전에 기상해서 작업모드로 들어가시나요??? 이 페이퍼 작성시간이 불과 am 8:45 ???

로쟈 2008-03-29 12:09   좋아요 0 | URL
네, '사회적 비만'이라고 해야겠죠(사회적 영양실조가 있듯이).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 가는 토요일이라 일없이(?) 저도 일찍 일어나야 했고, 일어난 김에 리뷰기사들을 좀 읽다가 옮겨놓은 것뿐입니다.^^;

2008-03-29 1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9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위스 2008-03-29 20:59   좋아요 0 | URL
답변 감사합니다.

2008-03-29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Jade 2008-03-29 20:39   좋아요 0 | URL
이 책 보관함에 담아두었었는데, 건강불평등 저자였군요. '구조적 책임'이 좀 더 두드러졌음 좋겠는데, '건강불평등'은 애매한 대안을 제시해서 좀 그랬어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들이 좀 더 잘 제시된 책은 없을까요? ^^;;

로쟈 2008-03-29 21:46   좋아요 0 | URL
대안 제시에 앞어서 문제의식의 공유가 우선되어야 할 듯싶습니다. 특히 정책입안자들이 필독해야겠다 싶고요...

에링 2008-03-30 22:26   좋아요 0 | URL
그리스 GDP가 미국 GDP의 절반이나 될리가요...

로쟈 2008-03-30 22:32   좋아요 0 | URL
1인당 GDP입니다. 최근 수치로는 2/3쯤 되는 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