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381 | 1382 | 1383 | 138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라스콜리니코프 '두 모녀'를 살해하다'의 자투리 글로 쓰다가 분량이 길어져서 따로 자리를 만든다. 외국어 표기에 관한 것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러시아어 '라스콜리니코프(Раскольников)'를 영어로 음역한 표기는 'Raskolnikov'이다. 여기서 [l(ль)]'이 연음이기 때문에(구개음화된 [l]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l']이라고 표기하지만 보통은 경음 과 구별없이 [l(л)]로 표기한다.

해서 우리말로 적을 때도 '라스콜코프'라고 적어야겠지만(나도 그렇게 적었던 적이 있다), 이 경우 우리말에서는 자음동화가 일어나서 '라스콜코프'로 발음하게 된다. 짐작에는 그렇게 되면 어차피 원음과는 차이기 있기 때문에 연음 [l]을 'ㄹ'이 아니라 '리'로 옮기던 관행이 이 경우에는 계속 남아서 '라스콜리니코프'로 굳어졌다(나도 동의하는 표기이다). 역시나 같은 연음 [l]이 쓰인 '고골리(Gogol)'의 경우 '고골'로 표기가 바뀐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고리키(Gorky)'의 경우는 계속 '고리키'라고 표기한다(언젠가 국문과 대학원생이 찾아와서 고리키의 작품을 도서관에서 찾을 수 없다고 문의를 해온 적이 있는데, 짐작에 그는 'Gorky'가 아니라 'Goriky'를 검색했다). 경음 표기를 선호하는 전공자들은 '라스꼴리니꼬프'라고 적는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외국어 표기 원칙이란 어느 정도 관행을 존중하고 임시변통을 허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곧이 곧대로가 아니라 융통성있게 적용해야 된다는 말이다.  

개정된 표기안에 따라 '도스토예프스키' 혹은 '도스또예프스끼'로 표기돼 오던 'Достоевский(Dostoevsky)'는 '도스토옙스키'라고 표기되고 있다(알라딘에서도 표제어를 그렇게 잡고 있다). 이 경우 '도스또옙스끼'라는 이형까지 가능해지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네 가지 표기가 혼용되는 수밖에 없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아직 러시아어 표기에까지는 주의를 두지 않아서 그냥 '도스토예프스키'라고 표기한 경우이다(언론이나 출판물에서 아직 '도스토예프스키'와 '도스토옙스키'가 혼용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의 6장은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다루고 있는데, 'Rushdie'는 예전에 '루시디'로 통용됐던 이름이다. 즉 국내에 번역돼 있는 <악마의 시>는 '루슈디'가 아니라 '루시디'의 작품이다('루슈디'란 표기는 내가 알기에 <분노>에서부터 등장했다). 'sh'를 [시]가 아니라 [슈]로 표기하는 걸 새로운 원칙으로 정한 탓이겠다(그리고 이를 관행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이고).

흥미로운 것은 러시아어 표기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 가령 '푸슈킨'으로 표기돼오던 'Пушкин(Pushkin)'의 경우 개정 표기법에 따르면 '푸시킨'으로 표기되어야 한다(물론 'Pushkin'은 전공자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다양하게 표기돼 왔었다). 'sh'를 [슈]가 아니라 [시]로 읽도록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해서 똑같은 'sh'가 나오더라도 이게 영어인지 러시아어인지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읽어주어야 한다(원래 발음은 별 차이가 없다). 러시아 영화감독 '에이젠슈테인'이 '에이젠시테인'으로, 문학이론가 '슈클로프스키'가 '시클롭스키'로 표기되는 건 이러한 원칙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이렇게 바뀐 이름들로 검색되는 책은 아직 한권도 없다.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기에 '에이젠슈테인'과 슈클로프스키'를 고수한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선집까지 나오고 있지만 일부 언론의 공식 표기는 '발터 베냐민'이다. 심지어는 '월터 베냐민'이라고 표기된 적도 있다!(이 문제에 대해서 예전에 쓴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429974 참조). '베냐민'으로 검색되는 책은 역시나 한권도 없다. 이 정도면 좀 우스운 원칙 아닌가? 한글로 외국어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원칙은 가능하지 않다. 그저 근접하게 표기해주면서 우리말에서의 혼동/혼선을 피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프랑스 작가 'Balzac'을 왜 '발작'이 아니라 '발자크'라고 표기하겠는가?). '원칙'을 자주 바꿔가면서(외국어 표기안은 여러 차례 개정돼 왔다) '원칙주의'를 고집하는 건 보기에 흉하다...  

08. 01. 0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깐따삐야 2008-01-07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나. 월터 베냐민이 누군가요? ㅋㅋㅋㅋ

로쟈 2008-01-07 19:33   좋아요 0 | URL
실수라고 보야겠죠. 한데 '베냐민'이라고 교정돼 있어서 좀 코믹한 효과를 유발하지만...

와넬 2008-01-07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르스타인 베블렌이냐 소스타인 베블렌이냐 하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군요.

로쟈 2008-01-07 23:22   좋아요 0 | URL
그 경우는 모로 가든 '베블렌'이니까요. 고유명사 표기는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이면서 해법이 잘 보이지도 않는 난제입니다...
 

영국의 평론가이자 책 수집가 릭 게코스키의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르네상스, 2007)는 지난 연말에 소개하기도 했고(http://blog.aladin.co.kr/mramor/1753545) 또 구입해서 처음 몇 장을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다(20개 장 중에서 6장까지를 읽었다). 한동안 제쳐두어다가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또 '특이한' 대목이 눈에 띄기에 교정해둔다(사실 이런 핑계로 페이퍼를 쓰다간 교정으로만 공치는 날들이 부지기수일 듯하다).

 

 

 

 

책의 7장은 존 케네디 툴(John Kennedy Toole; 1937-1969)이란 작가의 소설 <바보들의 연합(A Confederacy of Dunces)>을 다루고 있는데, 작가와 작품 모두 생소하기 짝이 없다. 한데 게코스키에 따르면 작가는 이 소설 한 권으로 "미국 남부 출신의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사람이다." 그 '켄 툴'(그의 애칭)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작가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거릿 미첼이나 <앵무새 죽이기>의 하퍼 리 등이라고 하니 그의 지명도를 짐작해볼 수는 있겠다(아래 표지를 보니 소설은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다만, 차이라면 미첼이나 리와는 달리 "툴은 자신의 작품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는 것. "대작이라 자신하는 원고를 출판할 곳을 찾지 못하자, 낙담에 끝에 1969년에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124쪽) 그래서 그는 흔히 "위대한 유작 하나만을 내놓은 작가"로 기억되곤 한다고(실제로는 놀랄 만한 양의 미출간 원고들을 쌓아놓고 있었다고 한다).

전혀 뜻밖인 건 그의 책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는 점. '존 케네디 툴르'의 <조롱>(사람과책, 1995)이 그 문제의 책이다. 한술 더 떠서 <별을 좇아가는 길>(말과뜻, 1997)이란 책도 출간돼 있고(<조롱>은 도서관에서 대출해볼 수 있겠다). 짐작엔 '퓰리처상'이란 타이틀에 기대를 걸었던 듯한데, 독자들의 반응은 썰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충분히 다시 소개됨 직한 작품으로 보인다. 표지에서도 이미 짐작해볼 수 있지만 퓰리처상 수상 이후에 쏟아진 한 서평은 "가격 대비 웃음량으로 판단한다면 최대 할인을 감행한 올해의 작품은 <바보들의 연합>이다."라고 써놓았을 정도. 18개 언어로 소개되어 150만 권 이상 팔렸다고 하니까 세계적인 밀리언셀러이기도 하고(한데, 어째서 한국 독자들에겐 외면 받았던 것일까?).   

 

켄 툴에 대해서는 책이나 읽게 되면 더 늘어놓기로 하고, 이 페이퍼를 쓰게 만든 구절을 옮겨본다: "일반적으로 어떤 인물을 깊숙이 알게 되면 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유하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동정심에 이르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가령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알료나 이바노프바 노파의 아파트에서 두 모녀를 살해하고는 문 뒤에서 공포에 전율한다. 이 장면에서 독자 역시 수치를 느끼면서도 동정을 머금게 된다."(125쪽)

두 가지 오류가 있다. 먼저, 전당포 노파의 이름은 '알료나 이바노프바'가 아니라 '알료나 이바노브나'이다. 이게 저자인 게코스키의 오기인지 역자의 오타인지 모르겠지만(물론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정도면 타이핑상의 문제로 그냥 웃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한데, 두번째 오류는 좀 심각한다. '두 모녀'를 살해했다니? 알다시피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끼로 살해한 사람은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그녀의 이복 여동생 리자베타이다. 그러니까 '모녀'가 아니라 '자매'이다(저자가 엉뚱하게 적어놓았을 리는 없겠고, 역자가 어떤 단어를 옮긴 것인지 궁금해진다).

<죄와 벌>처럼 널리 알려진 작품의 경우에도 이런 오기/오역이 가능하다는 게 아무튼 좀 의외다. 덕분에 관련자료를 뒤적이다가 알게 된 것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작년에 새로운 버전의 <죄와 벌>이 방송을 탔다. 보아하니 국영인 '제1채널'에서 제작한 것인 듯하다(아마도 TV 시리즈물일 것이다). 아래는 1969년작 <죄와 벌>에서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새로운 라스콜리니코프의 얼굴이다.  



이 영화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두 자매를 살해하는 장면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데(http://www.youtube.com/watch?v=BC682qfVvB4), 원작에 아주 충실하게, 그러니까 아주 잔혹하게 묘사돼 있다(임산부나 노약자는 보지 마시길). 짤막한 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TAtwZ033Rtw 참조. 마르멜라도프와 소냐의 모습을 잠깐 볼 수 있다.

한데, 이번 <죄와 벌>의 배역들 가운데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배우는 라스콜리니코프도 아니고 소냐도 아니다. 좀 뜻밖이지만 라스콜리니코프의 어머니 풀헤리야 라스콜리니코바이다. 러시아의 국민배우 엘레나 야코블레바가 맡은 배역이기 때문이다(우리에게는 오래전 <인터걸>(1989)의 주연으로 알려진 배우이다). 한 인터뷰 기사를 보니 안제이 바이다가 연출했던 연극 <악령>에서도 레뱌드키나 역으로 출연한 인연이 있다고(이 연극은 2004년에 초연됐을 때 나도 봤는데!). 오랜만에 낯익은 얼굴을 보니 반갑다...

08. 01. 07.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깐따삐야 2008-01-07 17:15   좋아요 0 | URL
저는 러시아스러운(?) 얼굴들이 좋아요.^^

로쟈 2008-01-07 19:32   좋아요 0 | URL
러시아인들의 얼굴도 각양각색이긴 한데, 그래도 구별이 되긴 합니다. 딱 꼬집어서 특징을 말할 수는 없어도...

소경 2008-01-09 21:54   좋아요 0 | URL
이런 섬뜩한 장면을 오랫만에 보네요. 오한이 드는게..

로쟈 2008-01-09 22:09   좋아요 0 | URL
'러시아식'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6-06 00:15   좋아요 0 | URL
제게 있는 바보들의 연합 번역본은 제목이 <위대한 청개구리> 부제 20세기 동키호테 전.김영일 역 도서출판 예맥1981.퓰리처 상 받자마자 번역했나봐요.제가 구입해 읽을 때가 카트리나로 루이지애나가 폐허가 되었을 때인데 이 소설의 배경이 그 곳이라서 특히 기억에 남네요.물론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분량이 많아서 독파하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쟈 2008-06-06 20:26   좋아요 0 | URL
그렇게 소개가 됐었군요! 덕분에 많이 알게 됩니다.^^
 

새해를 맞은 지 일주일도 지나고 해서 연간 계획을 세워보았다. 그래봐야 해야 할 번역들과 써야 할 논문과 책 들의 주제 및 목록들을 작성해보는 것인데 밀린 것들이 많아서 거의 '천리마운동'을 필요로 하는 작업량이다(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김에 서재활동 계획도 잡아봤는데, 몇 가지 지표를 몰표치로 설정했다. 가령 현재 33만 4천명대인 방문자수를 50만명이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현재처럼 월 2만명 수준이 유지된다면 어렵지 않은 목표치이다), 그리고 즐찾수도 현재 1534명에서 2000명으로 늘리는 것(이건 쉽지 않은 목표치다. 이 서재를 찾을 만한 이들이 무한정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이를 위해서 연간 600편의 페이퍼와 50편의 리뷰를 쓰기로 했다(매달 50편의 페이퍼는 부담스럽지 않지만, 연간 50편의 리뷰는 좀 부담스럽다. 작년만 하더라도 나는 고작 두어 편의 리뷰를 올린 듯하니까. 한데 가끔 지면에 '북리뷰어'라거나 '인터넷 서평꾼'이라고 소개될 때면 좀더 걸맞은 명칭은 '페이퍼꾼'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리뷰수를 늘려잡은 건 그런 겸연쩍음을 좀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설정한 것이다. 달랑 이런 내용만 적어놓는 건 또 멋쩍으므로 시 한편도 옮겨놓는다. 예전에 한번 올려놓았던 것인데(http://blog.aladin.co.kr/mramor/441226) 읽어본 분들이 많지 않을 것이므로 '재방'을 해도 흠이 되진 않을 듯하다. 제목은 '찔레나무 벌레의 모험'이고 한 10여 년 전에 쓴 것이다.

찔레나무 벌레의 모험

모든 것이 되기 위하여 더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나는 나의 과거는 나의 하루는
미친 척한 찔레나무와 찔레나무 한 그루를 기어
올라가는 벌레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건
미친 생각이다 나는 안다

간혹 어깨가 결린다 무거운
돈가방이라도 들고 어디론가 튀고 싶다
꿈이다 아랫배가 고파오고 기온이 떨어진다
모든 것은 꿈과 같다 어젯밤에 본 영화 속의
치킨처럼 목 잘리고 잘 구워진 치킨처럼
잘만 하면 너도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어
나는 결린 사람

나는 꿈에 자주 결석하고 애린에 물들지 않는
다 내가 무얼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표백된 영혼
나는 은근히 다리를 절면서
저 온갖 벌레 같은 인간들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척한다
나는

미칠 지경이다
간혹 나는 사랑의 유언이며 시체가 아닐까
나는 벌레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어이
기어오르고 싶다 자작나무 오동나무 오르지 못할 나무
내게 필요한 날들을 돈다발처럼 세어본다
꿈이다
내가 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힘

이걸 끌고 어디로 가나

어쩌면 이보다 편한 것이 없을 것이다
흥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없다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나는 나의 과거는 과거의 한 조각은
기온이 떨어지면 따스한 곳을 찾는 꿈처럼
무말랭이처럼 입을 다문다

미친 척한 찔레나무와 찔레나무 한 그루를 기어
올라가는 벌레와 꽁무니에 고무풍선처럼 매달린 지구에
생각만 미친다 미친 생각이다 그건

왜 간혹 나는 어깨가 결리는 것일까?

08. 01. 06.

P.S. 기억에 "어젯밤에 본 영화 속의/ 치킨처럼 목 잘리고 잘 구워진 치킨처럼"이란 구절은 닐 조단의 영화 <푸줏간 소년(The Butcher Boy)>(1997)에서 암시를 받은 것이다. 인상적인 영화였지만 지금은 줄거리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찾아 보니 "알콜 중독자 아버지와 자살 중독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악마적인 성격을 가진 아들 프랜시... 타고난 천성과 환경 때문에 깨어져가는 그의 정신세계를 나타낸 작품"이라고 소개돼 있다. 엽기적인 '푸줏간 소년'에 비하면 '찔레나무 벌레'는 얼마나 온순한 것인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깐따삐야 2008-01-0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깨가 결리면 긴장을 푸세요. 로쟈님. 사는 게 다 그렇죠 머.
기온이 떨어지면 따스한 곳을 찾는 꿈처럼
무말랭이처럼 입을 다문다 (요 부분 참 좋으네요.^^)

로쟈 2008-01-07 08:44   좋아요 0 | URL
10년전 얘깁니다.^^; 깐따삐야님이 애독자신 거 같아요.^^

북극곰 2008-01-0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겨찾는 서재 1535번째...^^
즐겨찾는 서재보다 더 빠른 건, "연결"
로쟈님 "홈"은 여기??

로쟈 2008-01-07 13:47   좋아요 0 | URL
네, 당첨되셨습니다.^^ 따로 드릴 건 없지만.^^;

드팀전 2008-01-0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부쳐 보이다..푸줏간 소년으로 번역되었더간요 ^^
달빛 요정 만루홈런이간 뭔가하는 팀의 <쩔룩거리네>인가 하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노래 가사 같아요.반복되는 구절들이 있어서 그런가.랩으로 만들어보세요.
기어 ..오르고 싶다..나는요..자작 나무.웃 오동 나무..헤이 헤이 오르지 못할 오동나무.

로쟈 2008-01-07 16:31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그 정도의 소질만 있어도 페이퍼나 쓰고 있진 않을 텐데요.^^;
 

연세대 대학원신문에서 '러시아 혁명기 문학읽기'를 테마로 한 기획서평을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8069). 서평의 대상이 된 책들은 이 시기 드라마 세 편을 묶은 <광장의 왕>(글누림, 2007)과 플라토노프의 <구덩이>(민음사, 2007)이다. 당초 작년 가을 러시아 혁명 90주년과 맞물려 기획된 것으로 아는데, 온라인 기사는 해가 넘어서야 올라왔다(나는 기사의 필자를 주선한 인연을 갖고 있다).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아래는 고리키 작 <태양의 아이들>의 한 장면).

 

연세대 대학원신문(157호) '사랑하는 자만이 불가능을 알며…’

20세기 초 러시아 문화 공간은 인류 예술사의 어느 지점보다 흥미롭고 역동적이다. 예술은 작품의 내적 공간을 넘어서 현실과 혁명의 과정에 역할하고, 정치적 현실은 때로는 예술을 위기로 내몰고, 때로는 화려한 부활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 혁명 이념은 예술의 모더니즘과 격렬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나고 있었다. 1905년의 러시아 혁명(기든스나 아렌트의 시각에서 보자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혁명이라 불릴 수는 없지만)을 이야기하는 세 편의 드라마가 수록된 『광장의 왕』과, 1917년 혁명 성공 이후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공산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서 『구덩이』는 당시 혁명과 문학적 삶의 관계를 보여주는 치열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실패한 혁명에 대한 세 편의 드라마 - 『광장의 왕』
『광장의 왕』에는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 블로크의 『광장의 왕』,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 고리키의 『태양의 아이들』, 은세기 극작가인 안드레예프의 『별들에게』가 수록되어 있다. 역자가 언급하듯, 이 드라마들에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블로크의 드라마 『광장의 왕』에는 실패한 혁명에 대한 비극적 인상이 지배적이다. 늙어버린 광장의 왕은 더 이상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고, 등장인물들은 구원을 가져다 줄 배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움과 조화가 발현되는 고대 사회를 희망하는 조드치와 고대 그리스적 미의 현현인 그의 딸(블로크의 시 ‘낯선 여인’의 형상과 유사하다), 그리고 광장의 왕은 유토피아적 이상을 상징하며, 배를 기다리는 광대와 ‘소문들’은 그와 괴리된 현실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들 사이에서 부단히 동요하고 있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군중에 의하여 왕과 시인, 그리고 조드치의 딸은 파멸하게 된다.

『태양의 아이들』에는 소설가 못지않은 극작가로서의 고리키의 대가적 면모가 드러나 있다. 작가는 인텔리겐차와 프롤레타리아의 극복될 수 없는 거리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1905년 혁명 실패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 있다. 콜레라가 창궐하고 혁명이 발발한 외부 세계, ‘야수들로 가득한 삶’과 철저히 차단되어 과학과 이성의 성벽 안에 갇혀 지내는 인텔리겐차들은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화학자 프로타소프는 자신을 해하려한 ‘민중’ 예고르를 혐오하면서, “사람들은 반드시 밝고 선명해야 해... 태양처럼......”(277쪽)이라고 말을 맺는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는 글자를 늘 대문자로 쓰곤 했던 고리키적 시각에서 이들 두 진영 어느 쪽도 아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 즉 ‘태양의 아이들’은 아니었다.

드라마 『별들에게』에서 안드레예프는 혁명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대립적 관계를 보여준다. 인간 이성과 영원성에 대한 천문학자 테르노프스키의 확신은 혁명에 의한 현실 전복을 꿈꾸는 아들 니콜라이와 그의 약혼녀 마루샤의 실천적 유토피아 이념과 대립된다. 극의 종결부에서 죽은 니콜라이를 따라 혁명으로, 즉 ‘삶으로 가겠노라’는 마루샤의 말에 테르노프스키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야수들만 죽는다. 죽이는 자들만 죽는다. 하지만 죽임을 당한 자, 찢긴 자, 불태워진 자들은 영원히 산다. 인간에게 죽음은 없다, 영원의 아들에게 죽음은 없다(148쪽)”며 죽음을 통한 불멸의 테마를 역설한다. 

세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비극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실패한 혁명에서 절망만을 보고 있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고리키는 “인텔리겐차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심연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이 심연을 넘는 다리를 놓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민중출신이면서 “점차로 고양되어 지식의 정상에 도달한” 인텔리겐차의 등장으로 이 간극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리키의 인터뷰, 287쪽). 작가의 이러한 믿음은 이후 장편 『어머니』(1906)에서 파벨의 형상을 통해 체현되며, 1917년 혁명 이후에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인텔리겐차가 나타남으로써 현실이 된다. 그 가장 적합한 예가 바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이다.

‘잉여의 사랑’, 또는 ‘성취의 멜랑콜리’-『구덩이』
플라토노프(1899-1951)는 그야말로 ‘혁명이 길을 열어준’ 프롤레타리아 작가였다. 뼛속까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여겼던 플라토노프는 역설적이게도 대표적 ‘반소비에트 작가’로 취급되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냉소적이고 풍자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1930년대 대숙청의 시기에 스탈린은 작가의 열다섯 살 된 아들을 반체제 음모죄로 유형을 보내고, 아들 플라톤은 유형지에서 얻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럼에도 부단히 스탈린의 유토피아와 화해하려했던 작가는 그와 같은 의도를 담은 단편 「귀향」(1946)마저 ‘저주받을 작품’이라는 비난에 처하자, 더 이상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타격을 입고 아들에게 감염된 폐결핵으로 죽게 된다. 『체벤구르』, 『구덩이』, 『행복한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작품들은 작가 생존시에 출판되지 못했지만, 사후 영미문학권을 중심으로 번역, 출판되기 시작했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는 러시아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프레데릭 제임슨의 『시간의 씨앗』에도 언급되듯이, 『구덩이』는 비슷한 시기의 장편 『체벤구르』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디스토피아 소설 중 하나로 읽힌다.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자먀틴이나 오웰, 헉슬리 등의 소설과 달리 『구덩이』는 1920년대 말 스탈린의 ‘대변혁기’ 당대의 현실을 그린다. ‘전체인민의 집’을 짓기 위해 모인 노동자들은 건물의 토대가 될 구덩이를 파고 있다(소설제목은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 공사용 구덩이를 뜻한다. 러시아는 동토라 건물을 지을 때, 토대를 깊고 넓게 판다). 소설 후반부는 부농 척결과 집단화가 진행되는 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의 언어와 사건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오히려 그로테스크하며 낯설다. 잘 읽히지 않는 소설 언어는 브로드스키가 일찍이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시대의 언어’, ‘유토피아의 언어’였다. 이 서걱거리는 말들은 스탈린적 유토피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개인의 사유를 방해하는 국가의 말은 주인공들의 의식에 침투하고, 작가는 이들의 말을 자기 서술에까지 확대함으로써 유토피아가 강제하는 이념적 속성을 노출한다.

그렇지만 소설은 현실에 대한 풍자로만, 또는 블로흐식의 이미 이루어진 것들에 대한 회의, ‘성취의 멜랑콜리’로만 읽히지 않는다. ‘진실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보쉐프의 말에서 볼 수 있듯 작가는 유토피아 건설의 이념을 인간 존재 방식 전체에 대한 의문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에 사회주의 건설의 상징이자 노동자들의 희망이던 소녀 나스탸는 갑자기 죽게 되고, 미래의 집을 위해 파내려간 구덩이는 소녀의 무덤이 된다(아이의 희생이라는 테마는 다분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이다). 작가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일견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결말이 대상에 대한 부정적 관계(풍자)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잉여의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소녀의 죽음으로 사회주의 세대의 파멸을 묘사한 것은, 작가의 실수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실수는 단지 그의 상실이 모든 과거와 미래의 파멸과도 같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잉여의 불안감 때문이다.”(『구덩이』의 에필로그)

암울했던 혁명과 내전의 시기를 겪어낸 러시아의 1920년대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이 가능한 ‘대화와 대안의 시대’였다. 혁명이념에 고취되어 새로운 세계 건설의 기대에 들뜬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실험적 작품들을 선보였다. 국내에도 번역된 불가코프, 자먀틴, 필냐크, 올레샤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당시의 산문들은 형식과 내용, 문체에 있어서 마치 누보로망의 그것처럼 현란하다. 이런 맥락에서 플라토노프의 소설도 아직은 대화가 가능했던 시기의 예술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러한 ‘대화와 대안’의 실험들은 1934년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령의 발표 이후 오직 하나, ‘독백’의 길로 귀결된다.



포스트-포스트소비에트 시대의 소비에트 문학읽기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던 공산주의자들의 실험은 20세기의 종결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듯하다. 실패한 역사의 흔적들을 재빨리 폐기하는 것, 맥도날드 표지와 레닌 초상이 함께 찍힌 티셔츠를 팔면서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척하려는 제스추어에서 우리는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러시아의 문화적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이십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포스트-포스트소비에트 시대에는 친소비에트/반소비에트라는 말조차 더 이상 유표가 아니다. 고리키의 『어머니』도,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도 이제는 이념적 맥락에서 읽히지 않는다. 이들은 추리소설이나 연애소설, 또는 『해리포터』에 밀려 서가의 뒤편에 나란히 꽂혀 있다.

그렇지만, 그럼으로 해서 소비에트러시아문학은 오늘날 새롭게 읽힐 수도 있다. 혁명을 꿈꾸지 않는 시대, 혁명이란 말에 무감각한 독자들이 ‘문학’과 ‘유토피아’가 동의어였던 혁명기 러시아 문학을 만날 때에, 진정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적 체험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만이 불가능을 알고, 그 불가능한 것을 죽도록 원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플라토노프, 「태양의 후예들」)라는 젊은 공산주의자의 낭만에 가득한 선언이 혁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아름답지만 여전히 광포한 이 세상’에서 어떤 식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다.(윤영순_경북대 노문과 강사)

08. 01. 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손택의 <문학은 자유다>(이후, 2007)에 실린 두번째 평론은 '1926년...'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부제는 '파스테르나크와 츠베타예바, 그리고 릴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두 러시아 시인과 한 독일 시인의 관계에 대한 평론이고, 보다 정확하게는 이 세 시인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을 묶은 책 <편지: 1926년 여름>의 리뷰에 해당하는 글이다(책은 어제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파스테르나크와 츠베타예바가 편지를 교환한 건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릴케까지 가세했었다는 건 이번에 알게 됐다. 사정을 알고 보면 또 무지가 용납될 만한 게 이 영역본(1986)의 저본은 러시아어본이 아니라 독어본(1983)이다. 내가 알고 있는 러시아어본은 츠베타예바와 파스테르나크의 편지들만을 묶은 것으로 <영혼들이 보기 시작한다: 편지들, 1922-1936>(2004)이란 제목이고 720쪽 분량이다.

Марина Цветаева, Борис Пастернак Души начинают видеть. Письма 1922-1936 годов

내가 아는 건 2004년판인데, 모스크바에 체류시에 구입하지 않은 게 후회스러운 책들 가운데 하나다(다행히 아직 절판되지는 않았다). 독어본은 1926년에 한정하여, 이 두 사람에다 릴케까지 가세하여 서로가 나눈 예술적 열정(혹은 "예술의 성스러운 섬망 상태")을 모아놓았던 듯하고, 그게 영어로도 번역된 것이다.

1926년이면 츠베타예바가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간 지 4년째 되는 해였는데,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가장 소중하 대화 상대자였다. "파스테르나크는 츠베타예바가 자기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라고 암묵적으로 인정했고 자기가 쓴 글은 츠베타예바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었다."

가족과 함께 파리로 건너간 츠베타예바는 이때 서른 네 살이었고, 파스테르나크는 서른 여섯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당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숭배했던 릴케는 쉰한 살이었는데, 스위스에 있는 요양소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세 사람이 교환환 편지들은 러시아와 프랑스, 그리고 스위스를 세 꼭지점으로 하여 왕래된 것이었다.

 

 

 

 

릴케에 대해 조금의 견식이 있는 독자라면 그가 두 차례 러시아 여행을 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는 러시아가 자신의 진정한 정신적 고향이라고 생각했다: "릴케에게 큰 영향을 준 릴케의 첫사랑이자 스승은 페테르부르크 태생 작가였는데, 그 사람과 함께 두 차례 러시아를 여행했고 그 뒤로 러시아가 자기의 진정한 정신적 고향이라고 생각했다."(42쪽) 

'페테르부르크 태생 작가'로서 릴케의 첫사랑이자 스승(멘토)였던 '그 사람'은 바로 루 살로메이다. 릴케는 1900년 살로메와 함께 두번째 러시아 여행을 떠나는데, 그때 열살이었던 소년 파스테르나크는 릴케를 처음 만나고 짐작엔 인사를 주고받는다(화가였던 파스테르나크의 아버지가 릴케와 면식이 있었다).

"파스테르나크는 릴케가 애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함께 기차에 오르는 모습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했고 그 장면이 파스테르나크의 가장 뛰어난 산문 <안전통행증>(1931)의 첫머리에 나온다.(존경의 뜻으로 두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42-43쪽)

참고로, <안정통행증>은 <어느 시인의 죽음>(까치)으로 번역됐었다. 이에 대해서는 '마야코프스키와 파스테르나크'(http://blog.aladin.co.kr/mramor/834190), '내 울부짖은들 누가 들어주랴!'(http://blog.aladin.co.kr/mramor/1529971)를 참조. 

Рильке и Россия

러시아에서는 <릴케와 러시아>(2003)란 타이틀의 책도 출간돼 있다. 역시나 2004년에 손에만 들었다가 놓았던 책인데, 지금 생각하면 아쉬움이 없지 않다(다 돈의 장난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내가 감당하기엔 견적이 너무 나오기 때문에 미뤄놓을 수밖에 없다(내가 바라는 건 누가 이런 책을 써주는 것이다!). 

세 사람의 편지왕래는 "파스테르나크 아버지의 주선으로 릴케와 파스테르나크 사이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다음에 파스테르나크가 츠베타예바에게 편지를 쓰라고 릴케에게 제안하여 세 사람의 편지왕래가 되었다. 츠베타예바는 뒤늦게 합류했지만, 츠베타예바의 욕구, 대담성, 감정의 솔직함이 하도 강렬하고 도발적인 탓에 곧 세 사람 사이의 대화가 불타오르게 하는 자극제가 된다."(45쪽)

결국 츠베타예바는 릴케에게 만나자고 간청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고 릴케는 침묵에 잠긴다. 츠베타예바에 대해서는 '시인이 쓴 산문'(http://blog.aladin.co.kr/mramor/867577)과 '츠베타예바의 산문'(http://blog.aladin.co.kr/mramor/1779102)을 참조.

하지만 "츠베타예바는 12월말 릴케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 뒤 릴케에게 편지를 쓰고, 이듬해에는 긴 산문으로 된 송시(ode)를 바친다." 파스테르나크도 릴케가 죽고 5년이 흐른 뒤에 완성한 <안전통행증> 말미에 릴케에게 보내는 편지를 포함시킨다. <안전통행증>은 "릴케의 영향 아래에서 쓴 것이며 무의식적으로라도 릴케와 겨루며 쓴 글이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1910)를 의식하며 썼다는 얘기다.

죽음이 갈라놓은 세 사람의 인연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릴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두 사람은 믿지 않으려 한다. 우주적으로 보아 도무지 부당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15년 뒤인 1941년 8월, 츠베타예바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또 놀라고 회한을 느낀다. 1939년, 츠베타예바가 가족과 함께 소련으로 돌아오기를 결심했을 때, 돌아오면 파국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파스테르나크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47쪽) 파스테르나크다운 일이다.

 

손택이 보기에 세 사람의 열정은 서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충만했다. "이 편지들에 쏟아부은 광희(ecstasies)는 서로 떨어져 있었기에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며 서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다." 손택의 결론은 이렇다.

 


"1926년의 몇 달 동안 세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대에게 자기 자신을 내던지고 서로에게 아름답고 불가능한 요구를 할 때 타오른 그 불빛을 가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늘날 '모든 것이 위선적 형식주의에 빠진(파스테르나크의 표현이다)' 지금 그들의 열정과 고집은 뗏목처럼, 등대처럼 바닷가처럼 느껴진다."(47쪽)

 

'뗏목'과 '등대(횃불)'와 '바닷가'에 대한 그리움, 그게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파스테르나크에게서나 손택에게서나, 그리고 우리에게서나 '모든 것이 위선적 형식주의에 빠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위선적 형식주의'는 '바리새주의(Pharisaism)'의 번역인데, '위선적 형식주의'를 가리키는 말이긴 하지만 여기선 직역해주는 게 더 나았다.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이렇다.

"Today, when 'all is drowning in Pharisaism' - the phrase is Pasternak's - their ardors and their tenacities feel like raft, beacon, beach."             

 



 

 

 

 

 

 

여기서 '파스테르나크의 표현(all is drowning in Pharisaism)' 은 그의 시 '햄릿'(1946)에 나오는바, 이 시의 서정적 화자는 햄림이자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햄릿'?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에 실린 '유리 지바고의 시'에서 맨처음에 나오는 시이다(지바고의 시들은 소설의 제 17부에 해당한다. 간혹 '부록'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생략한 국역본들이 있는데 무지하거나 무례한 경우들이다). 엘레노어 로우(Eleanor Rowe)의 영역은 이렇다.

 
The rumbling has grown quiet. I walk out on the stage.
Leaning against a door jamb,
I try to catch in a distant echo
What will happen in my lifetime.

At me is aimed the murkiness of night;
I'm pinned by a thousand opera glasses.
If only it is possible, Abba, Father,
May this cup be carried past me.

I cherish your stubborn design
And am agreed to play this role.
But now a different drama is underway;
This time, release me.

But the order of the acts has been determined,
And the ending of the journey cannot be averted.
I am alone; all drowns in Pharisiasm.
To live life is not to cross a field.

 

같은 대목을 <닥터 지바고>의 범우사판에서는 "세상엔 득실거리는 바리새 사람들뿐"으로 옮겼고, 열린책들판은 "다른 모든 것은 바리새주의에 쏙 빠져 있다"로 옮겼다. 범우사판으로 전문을 인용하면 이렇다. 
 

소요가 멎는다. 난 무대 위로 나선다.

문설주에 기댄 채

멀리 들리는 소리에 귀기울이다.

나의 생애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을까.

 

밤의 어둠이 나를 향해

수천의 쌍안경을 눈알처럼 응시한다.

제발, 하나님 아버지 나의 곁에서

부디 이 술잔을 가져가 주소서.

 

나는 당신의 꿋꿋한 뜻을 사랑하며

맡겨진 이 역할들을 기꺼이 수락합니다.

그러나 지금 다른 연극이 상연되고 있으니

이번만은 나를 그대로 있게 하소서.

 

하지만 연극의 순서는 이미 정해진 것

마지막 길은 피할 수 없다.

나는 외롭다, 세상엔 득실거리는 바리새 사람들뿐

산다는 것은 들판을 지나듯  되지는 않는다.

 

 

시의 제목은 '햄릿'으로 돼 있지만 막 무대로 나가야 하는 배우의 대사는 그리스도의 대사이다(그래서 '햄릿-그리스도'이다). 사실 파스테르나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러시아어로 옮긴 번역자이기도 하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햄릿 배우 중의 하나는 가수이자 배우 비소츠키인데, 그의 <햄릿> 공연 서두에서는 비소츠키가 낭송하는 시가 바로 이 '햄릿'이다(http://www.youtube.com/watch?v=-r01fRADCII). 아래는 러시아어 원시인데, 비소츠키는 (3연을 제외하고) 1, 2, 4연을 절규하듯이 노래한다(그가 연기하는 햄릿의 독백 장면은 http://www.youtube.com/watch?v=QJVsuq0tt24 참조).

 

Гул затих. Я вышел на подмостки.
Прислонясь к дверному косяку,
Я ловлю в далеком отголоске,
Что случится на моем веку.

На меня наставлен сумрак ночи
Тысячью биноклей на оси.
Если только можно, Aвва Oтче,
Чашу эту мимо пронеси.

Я люблю Твой замысел упрямый
И играть согласен эту роль.
Но сейчас идет другая драма,
И на этот раз меня уволь.

Но продуман распорядок действий,
И неотвратим конец пути.
Я один, все тонет в фарисействе.
Жизнь прожить — не поле перейти.

 

러시아 속담이지만, 산다는 것은 들판을 지나는 게 아니다. 만만하지 않고 팍팍하다는 얘기다. 세 시인에 관한 얘기를 (옮겨)적은 건 하루치의 우울을 소진하기 위해서였다. 모름지기 겨울이면 뗏목이라도 타고 어디 눈덮인 통나무집에라도 가야 폼도 나는 게 아닐까 싶지만(삶의 품위를 위해서), 내겐 스티로폼도 없구나...

08. 01. 0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람혼 2008-01-06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치의 우울을 소진하기에도 참으로 만만치 않은, 팍팍한 일상입니다. 그나저나 저번부터 츠베타예바의 글은 정말 관심이 많이 가는데요, 소개 감사드립니다. 기회가 될 때 영어본이라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로쟈 2008-01-06 09:20   좋아요 0 | URL
네,영어본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한두 권 나와 있던 국역본 시집들은 모두 절판 상태구요...

2008-01-06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1-06 15:49   좋아요 0 | URL
네, 그게 정신의 '뗏목'과 '통나무집'도 우리에겐 필요한데, 다들 '팬션'만 찾는 풍토라서요(시인들의 죽음도 우울하고). '호젓한 숲길'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필요한 것인데...

털세곰 2008-01-0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쯔베따예바의 시는 유독 외국독자, 연구가들에게 약간의 관심 밖이죠. 신난했던 삶이 오히려 포커스를 받지 그녀의 시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죠... 아, 다시 생각해보니 관심 밖이라기 보다 외국독자들에겐 러시아 독자보다 뭔가 좀 덜 전달되는 그게 있을 것 같애요. 장애물이랄까... 유독 그녀의 시는 리듬도 그렇고 읽기도 좀 뭐하고...

로쟈 2008-01-08 14:42   좋아요 0 | URL
한동안 러시아에서 연구서들이 쏟아져나온 것과 비교하면 한산한 편이지만, 사실 국가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아닌 이상 문학연구는 연구자 개인의 관심사와 연관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논문이 두엇 가량 있을까 싶은 정돈데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381 | 1382 | 1383 | 138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