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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신간을 만나는 반가움의 반대편에는 없는 돈을 축내지 않아도 좋은 고마움이 있다(*이 글은 2003년 3월초에 씌어졌다). 서점에 갈 때마다 내가 느끼는 것이 바로 반가움이거나 고마움이다. 지난 두주 동안에도 많은 책들이 나왔지만(요즘 출판계를 불황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행히도 눈길을 끄는 책은 많지 않았다. 반가움보다는 고마움이 더 앞섰던 두주였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책들 몇 권을 적어본다.

 

  

 



맨처음에 소개하고 싶은 책은 로저 에버트의 <위대한 영화>(을유문화사)이다. 영화잡지 <프리미어>팀이 옮겼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에버트는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평론가이다. 나는 인터넷상에서 러시아 영화에 관한 그의 기사 몇 편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의 글들은 모아놓으면 더 힘을 발휘하는 거 같다(이와 반대되는 저자들도 많다). 추천사를 쓴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말을 빌면, "젠체하지 않고 냉소적이지 않으며 무한한 애정으로 영화를 껴안으면서 정확하게 분석적 거리를 유지하는 평문"들을 그의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들뢰즈, 라캉을 들먹여야지만 영화평론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주 <씨네21>의 특집도 '48권의 책으로 읽는 감독의 길'이었다. 그중 기자들이 비교적 길게 리뷰를 쓴 책들은 10권인데, 참고로 그 목록을 적어둔다. <채플린-거장의 생애와 예술>(한길아트),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길>(민음사), <나의 인생 나의 영화 장 르누아르>(시공사), <데즈카 오사무- 만화가의 길>(황금가지), <잉그마르 베르이만의 창작노트>(시공사), <히치콕과의 대화>(한나래), <올리버 스톤1,2>(컬쳐라인), <로저코먼-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열린책들), <펠리니>(한길사), <마틴 스코시즈- 비열한 거리>(한나래) 등이다.

나는 이 열권 중에 <감독의 길>(구로자와 아키라)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펠리니>는 그냥 갖고 있으며, <히치콕과의 대화>는 분실했다(조감독하는 동생 친구가 가져가버렸다, 필시). 해서 한때 영화평론에도 생각이 없지 않았던 자신이 다소 부끄러워졌다. 물론 영화관련서들을 몇십 권 갖고 있지만, 그래봐야 최소한 읽을 책의 3할이 못되는 책인 것. 하물며, 봐야할 영화들은 또 얼마나 봤을까?.. 참고로, 아주 최근에 영어로 된 러시아 영화 소개서 한권이 나왔다. 저자는 D. Gillespie이고 책제목은 'Russian Cinema'이다. 200쪽이 안되는 비교적 얇은 분량이다.

 

 

 

 

노마디스트들에겐 반가운 소식으로,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인간사랑)이 번역돼 나왔다(*내가 아직까지 번역서를 안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들뢰즈 책이 아닌가 싶다. 번역에 대해서는 그리 후한 평을 얻고 있지 못한 책이다). 들뢰즈가 쓴 스피노자 책은 두 권인데, <표현의 문제>는 그 중 두꺼운 책이다. 언젠가 철학과 대학원에서 스피노자 강의를 몇 차례 청강한 적이 있는데, 그때 부교재의 한권이었고, 나는 그 영역본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도중하차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나 비중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마이클 하트의 <들뢰즈의 철학사상>(갈무리) 정도를 참고해봐야겠다(*하트의 책은 <들뢰즈 사상의 진화>로 재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또 한권의 철학책. '이달의 철학자' 헤겔의 <믿음과 지식>(아카넷)이 번역돼 나왔다. 서점에 아직 진열되지도 않은 채 쌓여 있는 걸 봤는데, 분량이 그리 두껍지 않다. 헤겔 책을 그래도 남들만큼은 갖고 있는 편이지만, 신간은 전혀 생소하다. 야코비 등의 신학/철학에 대한 비판서인가 싶다. 하지만, 내가 더 바라는 것은 <정신현상학>이 좀더 읽을 만한 수준으로 재번역되는 것이다(*알다시피 이후에 <정신현상학>은 임석진 교수의 번역으로 개정본이 출간됐다. 그것이 '좀더 읽을 만한 수준'인가는 모르겠다. 몇 안되는 서평을 읽어봐도 가늠할 길이 없다).

 

 

 



-쥬디스 버틀러의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인간사랑)도 소리소문없이 번역돼 나왔다(원제는 'Bodies that matter'). 쥬디스 버틀러는 낸시 프레이저와 함께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영미권 여성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이다. 페미니즘적 라캉 독해로 우리에겐 알려져 있는 듯한데, 신간은 최초로 번역된 그녀의 단행본 저작이다. <라캉의 재탄생>(창작과비평사, 2002)에 실린 라캉과 버틀러에 관한 장을 참조할 수 있다.



 

 

 

국내 저작으로는 주은우의 <시각과 현대성>(한나래)이 출간됐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손본 것인데, 이 주제에 관한 가장 묵직한 국내 저작이다. 아직 통독하지 않아서 뭐라 말할 순 없지만, 학위논문으론 김종엽의 <연대와 열광- 에밀 뒤르켐의 현대성 비판 연구>(창작과비평사, 1998)과 함께 가장 궁금했던 책이었다.

 

 

 

 

묵직하기론 <리오리엔트>(이산)도 만만찮다. 종속이론가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신작인데, 나로선 저자의 이름만 얼핏 들어본 적이 있다. 나로선 당분간 읽을 겨를이 없는 이 책에 대해선 중앙일보에 실린 최갑수 교수의 서평을 참조하시길.

 

 

 



영미문학연구회의 고전문학 번역평가 사업이 샘플이 공개됐다. 그 결과는 오늘자 한겨레에 실려 있다. 샘플 작품은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인데, 검토대상이 된 21종 가운데, 14종이 표절번역이었고, 나머지 7종도 거의 읽을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사태는 상당히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영미문학학회지인 <안과 밖>에도 매호 고전 번역을 검토하는 글이 실리는데, 지난호의 경우 도 결론은 디킨즈의 <위대한 유산>을 우리말로는 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평가사업의 보고서가 내년초쯤 책으로 출간된다고 하니까 기다려봐야겠지만(*2005년에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로 출간됐다), 총체적인 문제의 점검에 이어서 새로운 재번역서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사실 이런 평가사업은 다른 분야의 고전들에도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학진(학술진흥재단)이 제대로 돈을 써야 하는 사업분야는 바로 이런쪽이다.

최근 일간지 북리뷰들에서 비판적인 읽기 코너들이 생겨나고 있어 고무적이다. 지난번에 소개한바 있던 중앙일보의 죽비소리가 그 스타트를 끊은 것인데, 출판계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오역이 많은 걸로 지적된 <루시의 유산>과 <붉은 여왕>의 출판사측에서는 해당책들을 환불조치하거나 개정판과 교환해줄 방침이라고 한다. 언론의 파워가 이런 거구나 싶은데, 하여간에 좀 뻔뻔한 (부실한 지젝 번역서들을 양산하고 있는) 인간사랑을 비롯하여 몇몇 출판사들도 이 참에 각성했으면 싶다. 그리고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고 있으므로 책값의 거품도 좀 빠졌으면 싶고.

가만히 입다물고 있으면 좋은 책들이 거저 나오는 게 아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악착같은 관심과 비판이 더욱 요긴한 계절인 듯싶다...

2003.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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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h1999 2006-05-09 02:30   좋아요 0 | URL
제 글에 리플 남겨주신 분 맞지요? 글이 굉장히 많네요..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로쟈 2006-05-09 10:32   좋아요 0 | URL
예, 한 2-3년 되다 보니 많은 축에는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자주 오실 정도는 아니고 가끔 들러주십시오.^^
 

언젠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인 올해가 소비에트 러시아의 최대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는 소개 기사를 옮겨온 적이 있는데, 며칠전 교수신문(06. 05. 04)에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에 부쳐'라는 부제를 단 음악비평 기사가 게재되었기에 이 또한 옮겨온다. 그의 생일은 9월에 있으므로 가을에야 보다 성대한 기념행사들이 개최될 듯하지만, 미리 그의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기사를 가끔씩 읽어보기로 한다. 클래식 음악에는 문외한에 가까운지라 대개는 다른 이들의 의견을 옮여오는 식이 될 것이다. 이번 기사는 허영한 한예종 교수가 기고한 것으로 '冷戰은 그의 음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가 그 타이틀이다.

-레닌과 스탈린, 흐루시초프의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드미트리히(*'드미트리'가 맞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격변하는 20세기의 세계사와 소련의 역사가 그대로 반영된 흥미로운 주인공이다. 조연급이면 피할 수 있었던 비난의 초점이 됐고 그를 사이에 둔 소련과 서방세계의 지속적인 갈등은 지금까지도 많은 음악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쇼스타코비치가 진정으로 소련 공산당의 충실한 당원이었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그렇게 행세를 한 것인지의 문제다. 절묘하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작곡가 자신은 아무런 답을 남기지 않았다. 공식석상에서 자아비판을 하면서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애국지사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어쩌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듯한 수많은 암시를 흘리고 있었다.

-교향곡 1번(1925)으로 약관 스무 살의 나이에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소련이 최고로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긴 쇼스타코비치에게 위기가 오기 시작한 건 그의 오페라 <맥베스 부인> 때문이었다(*얼마전 이 오페라의 원작인 레스코프의 <므첸스크군의 멕베스 부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934년에 초연됐던 이 오페라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다.

 

 

 

 

-그러나 2년이 지나 다시 무대에 오른 <맥베스 부인>을 관람하러 온 스탈린의 말 한마디에 그토록 사랑받던 오페라가 순식간에 비판의 초점이 됐다. 1936년부터 시작된 대숙청의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위기를 넘기게 한 작품이 바로 지금도 가장 자주 연주되는 교향곡 제5번이다. 이 교향곡이 1937년에 초연된 그 날 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교향곡이 감격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소련 최고의 작곡가로 복권된 그는 1938년 신문과 인터뷰에서 “교향곡 5번이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응답이라고들 하니 매우 기쁘다”는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잘못을 반성했다고 보기에는 충분치 못한 답변이었다.

 

 

 

-교향곡 5번에 ‘정당한 비판에 대한 응답’이라는 말이 수식어처럼 따라 다닌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마지막 악장 피날레는 다소 급격하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급전되면서 활발하고 밝은 분위기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분위기의 급변과 체제 순응적인 쇼스타코비치를 연결지으려한다. 긍정주의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러한 피날레를 만들어 넣어 정부의 비난을 피하려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소련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다소 인위적인 미학적 잣대를 내세워 서방세계의 음악계가 추구하던 모더니즘을 비판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는 바로 그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음악으로 비판을 받았고 그보다 다소 쉬운 음악적 내용을 지닌 교향곡 5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실현한 작품으로 보았던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음악은 소리라는 추상적 매체를 사용하는 장르여서 가사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 구체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사가 없는 순수 기악음악의 경우 아무리 구체적 내용이 명시된 표제음악이라 하더라도 그 제목과 달리 감상되고 해석되어질 여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작곡가의 직접 언급이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서 작곡가가 직접 이 곡은 강이다, 또는 이 선율은 나무다, 라고 말하지 않는 한 작곡가가 진정으로 담으려고 한 내용을 짐작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해석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5번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 곡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과 자신의 의견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말하자면 “당신들이 이 곡이 이러하다고 하니 나는 기쁘다” 정도에서 멈춘다. 일반적으로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내용으로만 이해되기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쇼스타코비치의 이러한 태도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15번은 천박하기까지한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의 선율이 등장하는가하면 엄숙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 사용된 ‘운명’ 모티브까지 나온다. 사람들은 이 희한한 조합에서 의미를 찾느라 부산했지만 정작 작곡가는 이 곡의 특별한 내용의 존재를 부인했고 단순히 ‘장난감 가게’와 같은 분위기라는 설명만 제공했다. 또 한번 그의 알다가도 모를 작품 해설(?)에 모두들 어리둥절했다.

-이번에는 다소 다른 예를 들어보자. 대표적인 전쟁 교향곡인 교향곡 7번은 흥미있는 일화와 함께 순수 기악음악으로도 일정한 구체적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나치군이 소련을 침략하자 쇼스타코비치는 곧바로 군에 지원하지만 시력이 좋지 않아 레닌그라드 음악원의 지붕을 지키는 소방부대에 편입된다. 소방 모자를 쓰고 지붕을 지키는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소련의 거의 모든 신문에 실렸고 서방 언론에서도 군인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변신한 작곡가의 모습을 흥미롭게 다뤘다. 같은 해 8월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의해 포위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피난을 떠났지만 쇼스타코비치는 남아서 그의 교향곡 7번의 일부를 완성한 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직접 이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사태가 위태로워지자 당 지도부는 레닌그라드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모스크바에 도착한 그는 이번에는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교향곡 7번에 대해서 작곡자는 긴 내용의 줄거리를 직접 밝히고 있어 그 내용의 해석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통받는 레닌그라드 도시와 소련 동포를 묘사하는 1악장으로 시작해 전쟁에서 승리하는 4악장으로 끝나는 교향곡이라는 것이 작곡자의 변이었다. 비록 가사는 없지만 작곡자의 설명이 수긍이 가는 음악적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쇼스타코비치는 생애 말년에 이 교향곡이 레닌그라드가 포위되기 전에 이미 구상됐고 성경의 94번 시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 교향곡에서 전쟁 분위기를 피하기는 어렵다. 행진곡 풍의 리듬과 북소리는 전쟁을 암시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쇼스타코비치를 철저하게 체제 순응적인 작곡가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그처럼 극적으로 작곡된 교향곡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스탈린 사후, 쇼스타코비치가 선보인 첫 작품이 프로그램이 없는 교향곡 10번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곡을 작곡할 무렵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24살의 피아노연주자 엘미라 나지로바와 은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녀의 이름 ‘엘미라’로부터 이끌어낸 선율 동기(미-라-미-레-라)와 작곡자 자신의 이름으로부터 나온 선율 동기(D-Es-C-H/우리말 음이름으로 옮기면 레-미b-도-시)를 서로 얽혀 놓고 있다. 교향곡 10번은 다시 한번 비평가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정치적 상황이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한 쇼스타코비치는 평소와는 달리 강력한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결국 1954년 4월 초에 열린 작곡가 연맹 대회에서 이 불필요한 논쟁의 종지부를 찍듯이 작곡가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연설을 하며 “이 작품에서 나는 인간의 감정과 열정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끝맺는다. 이 교향곡은 어떤 정치적 해석도 어려워 보인다. 극히 사적인 쇼스타코비치만이 존재하며 이 점을 그는 반성해야만 했다.

-그의 정치적 정체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그의 교향곡을 해석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으로 체제 순응 작곡가였다면 그의 교향곡은 철저하게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해석되고 그렇지 않다면 부당한 정부의 압력에 대항한 서구식으로 위대한 작곡가가 되기 때문이다. 20세기 서방세계의 음악관은 철저하게 미학적 자율성을 중시했기에 미학적으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상반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의 배경은 쇼스타코비치의 진정성과는 다소 거리가 먼 당시로서는, 또 어쩌면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냉전 시대적 대결 구조다. 쇼스타코비치를 소련의 작곡가로 보려는 세력과 그를 서방 세계의 작곡가로 보려는 세력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암투가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다. 분명한 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 그 양면성 중 한 면을 강조하며 자기편으로 유도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 양면을 모두 진정한 쇼스타코비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06. 05. 08.

 

 

 

 

P.S.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게 쇼스타코비치의 평전인데, 국내에는 아직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이론과실천, 2001)밖에 나와 있는 책이 없다(진의성에 대해서 많은 의심을 받고 있는 책이다). 유력한 평전(들)이 조만간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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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5-0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퍼감다^^

로쟈 2006-05-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옮겨오기만 했습니다.^^ 이미지 몇 개 찾아온 것 말고는 수고한 것도 없구요. 한데, 쇼스타코비치의 경우, 일차적으론 그 자신이 모호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는 것과 음악이란 장르 자체가 정치적 매체로서는 좀 비효율적이고 모호하다는 점, 두 가지가 모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자신이 그런 걸 얼마간 의식하면서 줄타기를 했을 수도 있구요. 전공자에 따르면 그는 매우 소심했던 사람으로 자기 의견을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요즘 이 서재를 찾는 분들이 하루에 400여분 안팎이 되는 걸로 뜨지만, 즐찾이 늘거나 주는 것도 아니고 댓글이 더 달리는 것도 아니므로 대부분의 경우 유령-독자들이 아닌가 싶다(아니면 400이란 숫자 자체가 허수이거나). 이런 류의 블로그가 생기기 이전에 혼자 PC에 쳐넣곤 하던 일기와의 차이점이라면 이 '유령들'의 존재인데, 그건 좀 자극적이면서 동시에 성가신 일이기도 하다. 무슨 '유령수업' 같기도 하고...

 

 

 

 

공개된 서재(블로그)인 이상 얼마간의 '공공성'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지만, 또 얼마간은 '사적인' 공간인 이상 나만의 '자유'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해서, 이 공간에 적어놓는 글들은 교묘한 줄타기, 혹은 이중적인 플레이의 산물이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면서, 또 나 자신을 위한 것만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작년 1월초 모스크바 통신에 '언더그라운드에 대하여'라고 올려놓았던 글을 다시 정리해서 옮겨온다. 대체 너의 포지션이란 게 뭐냐, 란 질문을 바람결에 듣기도 하는데, 거기에 답한다는 의미도 있다(그러니까 나는 두 번 대답하는 셈이 되겠다).

글의 내용은 대부분 당시에 읽었던 김규항의 칼럼 '희망에 대하여'에 대해 코멘트를 덧붙이는 것으로 돼 있다(칼럼은 <나는 왜 불온한가>에 포함돼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기생적'이며, 텍스트라기보다는 '곁다리텍스트'이다. 사실, '블로그'가 아니라면 이런 류의 텍스트가 살아남았을 리 없다. 좋은 세상이고, 좋은 세월이다. 그럼, 고대되는 이창동의 신작 <밀양>에서부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보도록 한다.   

 

김훈의 치정소설이 밀양을 배경으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온 이창동의 신작은 밀양이배경이다(나는 두 주 전쯤에 <씨네21>에서 그런 내용이 실린 인터뷰를 읽었다). 밀양(密陽), 혹은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신작의 영어제목이다).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걸 보면, 밀양은 햇빛이 좋은 만큼이나 그늘도 깊은 모양이다. 나는 밀양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잘하면 올해 안에 밀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크린에서.

홍상수의 신작 <극장전>도 크랭크인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불과 작년초를 기준으로 한 얘기인데, 왜 이렇게 코믹하게 느껴지는지!). 그의 행보가 빨라진 건 아마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실패’를 보상하기 위한 것은 아닐까? 그럼, <친절한 금자씨>를 찍는 박찬욱은? <올드보이>의 믿기지 않는 ‘성공’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어쨌거나 이들이 빨리-찍기에 있어서 김기덕과 경쟁하는 것은 (관객으로서) 고무적이다. 허진호도 신작을 찍는다고 하고. 보기에, 한국영화는 현재의 세계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활력을 자랑하는 듯하다. 그건, 그렇고 이어지는 건 김규항의 한 최근(?) 칼럼이다(최근에 인터넷에서 읽은 것일 뿐이어서 정말로 최근의 칼럼인지는 자신할 수 없다. 제목은 ‘희망에 대하여’인가 그렇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 젊은이들의 알록달록한 머리색,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권리, 그 대통령을 욕할 자유, 북한군을 인간으로 그린 영화, 민주적인 노동조합...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어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것들의 9할은 80년대, 그 불의 시대가 준 선물이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하고 스러져간 시대가 있었던가.

이 시작부터 두드러지는 건 그의 ‘나르시시즘’이다: “한국의 80년대는 특별했다.” ‘386’이라는 언론의 표현 대신에 ‘80년대 청년들’이라고 그는 쓰지만, ‘인텔리 청년들’이라고 하는 걸로 봐서 ‘80년대 청년들’의 9할은 ‘80년대 학번의 대학생들’을 지칭한다. 그리고 사실, 그 대학생들/인텔리들이 그렇게 많아진 건 5공의 ‘선심성’ 대학정책 때문이었다(더불어 군사정권은 통행금지를 해지하고, 중고등학교의 두발과 교복을 ‘자율화’했다. 머리에 물을 들이려면 ‘머리’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사립대학의 설립조건을 완화함으로써 대학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졸업정원제라는 걸 도입하면서 대학 입학생 수를 더 늘려놓은 것이다. 해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의 ‘물적 토대’는 역설적이지만, ‘파시스트들’이 마련해주었다.

더불어, 당시는 경제호황국면이었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대졸자 취업문제가 거의 없었다. 90년대 후반 이후 대학생/졸업생들이 좀스럽게도 취업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반면에 ‘80년대 청년들’은 군사정권 타도와 조국의 민주화 같은 ‘대의’에 ‘투신’하다가도 원하기만 하면, 직장인/생활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물론 일부 스러져가기도 했지만. 그런데, 김규항은 그런 ‘희생’에 대해서, 다른 세대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기념관’이라고 세워달라는 것일까?

 

 

 

 

자기 세대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과 나르시시즘이 김규항만의 것은 아닐 것이기에 더 트집을 잡지는 않겠지만(가령, 4.19세대의 자부심, 이명박 세대의 자부심, 김훈 세대의 자부심 등), 그런 자부심을 객관적인 것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주장하면 곤란하다. “인류 역사에서” 운운하는 것이 그렇다. 사실, 그런 청년들의 원조는 러시아이며, 인텔리’란 말 자체가 러시아어 ‘인텔리겐챠(intelligentsia)’의 준말이다(‘인텔리겐챠’란 말 자체는 러시아의 고유어가 아니지만). 그러니 ‘인텔리’라는 부정확한 표현 대신에(흔히 고학력자를 ‘인텔리’라고 지칭하므로) ‘인텔리겐챠’(표준어는 ‘인텔리겐치아’)라고 써주는 것이 옳지만, 김규항은 이 말의 소속을 (무)의식적으로 부인/거부한다. 그 이유는 곧 알게 된다.)

-80년대 청년들의 땀과 피가 땅에 베어(*배어) 파시스트들이 권력의 전면에서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전될 무렵, 현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물론 그것은 사회주의의 붕괴가 아니라 사회주의의 한 졸렬한 시도의 붕괴였지만) 더 이상 왼쪽으로 당기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적인 우경화가 시작되었다. 이 모순된 상황은 일견, 한국은 살 만한 나라가 되었고 사회주의적 가치는 시효를 다한 것처럼 보였다. 10여 년을 극악한 군사 파시즘과 싸우던 청년들의 긴장은 그 변화한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졌고, 정처 없이 흐트러져갔다.

이 대목에서 현실 사회주의 붕괴를 ‘사회주의 한 졸렬한 시도의 붕괴’라고 한 것은 유감스럽다(짐작에는 이 때문에 이 칼럼에서 ‘인텔리겐챠’는 ‘인텔리’가 되었다). 러시아 인텔리겐챠들의 땀과 피가 땅에 배어(이건 ‘비유’가 아니다. 그들의 희생은 사실 양적으로 한국의 ‘80년대 청년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남의 나라 역사라고 해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성취한 것이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며, 2,000만명으로 ‘인민의 적’으로 몰아 희생시켜가면서 건설한 것이 (스탈린식의) 현실 사회주의였다.

이전에 한번 인용한 바 있지만, “스탈린 시대에 소련은 농업집산화, 중공업 중심의 급속한 산업화, 문화혁명 등 여러 조치들을 통하여 위대한 성취와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 내었고,(…) 당시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계속 유지하였고, 그 결과 소련 사회의 모습은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문맹자들의 농업국가에서 국민 다수가 문맹에서 벗어난 도시 중심의 산업국가로 완전히 변모하였다.” 

조금 더 인용하자면, “이런 변화는 소련의 많은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농민 출신의 젊은이들에게는 영웅적인 희생, 교육, 신분 상승 등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도시의 노동자들과 중간계층들은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있다는 확신을 지낸 채, 국민의 모든 힘을 경제 발전에 최대한 동원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호응은 산업 및 관료제의 팽창, 대대적인 숙청, 교육 기회의 확대 등과 연결되면서 노동자 및 농민 출신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그 결과 노동계급 및 농민 출신의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고등학교 학생수는 1926-7년의 1,834,260명에서 1938-9년의 12,088,772명으로 증가하였고, 고등교육기관 학생수는 1927-8년과 1932-3년 사이에 159,800명에서 469,800명으로 증가했는데, 그 중 노동계급출신의 비중은 25.8%에서 50.3%로 증가하였다. 또한 고등교육기관 졸업생들의 승진은 매우 급속하여 이미 1941년에는 1928-32년 졸업생의 89%와, 1933-7년 졸업생의 72%가 국가 및 당의 지도적인 간부로 성장하였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2,000만 명 이상이 희생됐지만, 이게 ‘현실사회주의’였다. 이게 왜 ‘한 졸렬한 시도’인가? 희생자들 때문에? 하면, (A급 좌파가 아닌) ‘B급 좌파’가 정권을 잡게 되면(설마 중앙집권적 권력이라는 게 필요없는 것인가?), 좀 달라지는가? 과연 사회주의건설에 반대하거나 적극 동참하지 않는 세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거기서는 ‘희생’ 혹은 ‘숙청’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가? 가령 개량적 진보주의에서부터, 중도보수, 수구보수, 수구꼴통에 이르는, 그리하여 아마도 현재 인구의 70%는 확실히 넘을 만한, 3,000만 명은 확실히 넘을 만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떻게 개량하고 개조할 것인가? 무엇으로 그들의 동참을 ‘강제’하는가? 그들의 자발적 동참을 기다리는가?

소련은 자연자원이라도 풍부했지만 그마저 없는 한국의 생존은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가? (자본주의 이후) 생산수단의 공유, 공동생산과 공동분배라는 ‘아름다운 원칙’을 과연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일국사회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그럼, 전세계의 사회주의화, 공산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사회주의적 가치’가 시효를 다하지 않았다면, 다른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혹 모든 (이성적인)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실현불가능한 자기모순을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기대하는 건 이런 물음들에 대한 대답 혹은 의견이지만, 김규항의 칼럼은 무력한 ‘적전(敵前) 분열 이후 10년’으로 넘어간다.

-10년이 지났다. 오늘 그들은 대략 셋으로 나뉜 것으로 보인다. (80년대의 내용은 폐기하고 이력만을 팔아 장사에 나선 부류는 접고 가자. 그런 천박함까지 80년대의 이름으로 언급할 순 없으니.) 첫째,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다. 손에 꼽을 만치 적은 그들은 곤란한 처지에 있다. 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고 합의했고, 그런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방식의 운동이 각광을 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지키는 신념은 낡은 것으로 비쳐지기 일쑤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남은 문제들’과 싸우는 유일한 세력이다. 그들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새로운 세상에 접근한 사람들이다.

“오늘 그들은” 대략 셋으로 나뉘었다고 하지만, “어제(=80년대) 그들은” 그렇게 구분될 수 있었을까? “80년대의 내용은 폐기하고 이력만을 팔아 장사에 나선 부류”라고 몰아붙이고 있는 이들의 상당수가 80년대 운동권의 (잘나가는) 핵심들이었다(이 ‘장사꾼’들이 ‘386 국회의원들’을 지칭하는지, ‘벤처사업가’들을 지칭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그들이 10년 후에는 ‘이력을 팔아 장사에 나설 천박한 부류’들로 분류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지금 그들이 그런 식으로 분류되고 걸러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80년대라는 폭압적 상황하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사소한’ 차이들이 ‘오늘’ 드러난 것.

레닌주의의 기치하에서는 스탈린도 트로츠키도 부하린도 모두가 한몸이고 한 통속이었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하고 세상이 달라지자 그들은 스탈린파와 트로츠키파와 부하린파로 분리/분열돼 가고 사회주의의 적통과 반동으로 구분/숙청된다. 그런 식으로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다(김규항의 박노해 비판을 떠올려보라. 하지만, 80년대 누가 박노해를, 혹은 노동해방문학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혹은 김수환 추기경은? 80년대 누가 추기경을 비판할 수 있었을까?). 왜?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쿠스투리차의 영화제목을 빌리자면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이다. ‘80년대의 연속성’이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두환(파쇼정권)이나 김영삼(문민정부), 김대중(국민의 정부), 노무현(참여정부)이 다 똑같다는 것이다. 전선(戰線)의 외양만이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사회적 적대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으며 그런 적대의 혁파를 위해 자신을 희생/투신하는 사람들! 이러한 논리의 자연적 귀결은,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인간개조 혹은 인간복제이며(그것만이 ‘근본적인 변화’이기에), 네그리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기계-인간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이다. 그것은 김규항의 입장이기도 한가?

하지만, 그는 한 문단 내에서 이야기를 묘하게 비튼다.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들은 ‘여전히 남은 문제들’과 싸우는 유일한 세력”으로도 지칭되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라는 건 이들간에도 두 부류가 있다는 얘기인가? 이 문단의 시작에서 이들은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한다고 분명히 언급되었다. 이 두 구절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그들은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는 것인가?

그리고 “여전히 남은 문제들”은 뭔가? ‘남은 문제들’이란 말은 해결된 문제들도 있다는 얘기 아닌가?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해결된 문제들은 무엇인가? “여전히 남은 문제들만” 마저(!) 해결하면 ‘근본적인 변화’가 성취되는가? 여기에 논리적 균열이 있는 건 아닌가? 나로선 이 균열이 “그들은 낡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새로운 세상에 접근한 사람들이다.”라는 역설적인 결론에 의해 봉합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둘째, 이른바 90년대 이후의 변화한 상황을 근본적인 변화로 규정하고 적응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90년대 중반 이후 급부상한 부르주아적 시민운동이다. 그런 새로운 방식의 운동은 80년대의 전체운동 중심 운동의 그물에 담지 못했던 중산층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챙기며, 준 정당에 가까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그 성과야 지나칠 만큼 충분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런 운동이 오늘의 유일한 운동인 양 주장되는 일이다. 그런 주장들은 바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을 어리석고 낡았다고 비난하는 일이 된다.(그들은 여전히 ‘80년대의 연속성’이나 ‘변혁의 전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들의 실제 활동 속에서 그런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유지를 위해 많은 것을 타협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언론에 의지하다 보니 언론문제에 불분명한 입장을 보인다든가, 언론에서 다뤄줄 만한 주제에 편중한다든가, 그 번듯한 살림을 꾸리기 위해선 과격해 보이지 않아야 한다든가 하는 문제들은 그들의 족쇄다.)

여기에 또다른 부류가 있다. 이들과 첫번째 부류와의 종차(種差)는 90년대 이후의 변화를 보는 시각에 달려 있다. 첫번째 부류(=언더그라운드)가 90년대를 80년대로부터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인정하지 않는 데 반해서, 두번째 부류는 그걸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적응한다. 그런데 여전히 ‘80년대의 연속성’이란 말을 쓴다. 그런 그들을 김규항은 ‘부르주아적 시민운동가들’이라고 일컫을 모양이다. 이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이중적인데, 그들의 인식과 운동방식에 ‘반대’하진 않지만, 그것이 운동의 전부인 걸로 간주되는/간주하는 건 반대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운동은 (부르주아적) 한계를 명백하게 갖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들과 달리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운동”을 사람들로 하여금 간과하게(결과적으론 ‘낡은 운동’으로 비난하게)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력을 팔아 장사에 나설 만큼 간교하지도 변화한 상황에 적응할 만큼 재빠르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신념을 지키며 살기엔 변화한 상황의 혼란과 피로를 이길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80년대의 청년들의 가장 많은 부분일 그들은 말 그대로 청년 시절의 노고가 허망해져버린 사람들이다. 남들이 일신의 안위를 준비하느라 열심일 때 거리와 현장을 내달려야 했던 그들은, 꼭 그만큼 경쟁에 뒤진 삶을 어색하게 꾸려간다. <한겨레>를 구독하고 남들보다 진지한 책을 읽고 선거 때면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정당에 투표하기도 하지만, 그런 작은 노력들은 이미 천민자본주의의 정신에 사로잡힌 그들의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이다.

어떤 근거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김규항은 이 세번째 부류를 ‘80년대 청년들의 가장 많은 부분’, 즉 대다수로 규정한다. 아마도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그의 ‘80년대 청년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제한된 범위의 ‘운동권’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소위 ‘운동권’ 바깥에 있었던 나로선 그 속뜻을 알지 못하겠다). 정말로 그 운동권 ‘대다수’는 “말 그대로 청년 시절의 노고가 허망해져버린 사람들”인지? 그래서 “경쟁에 뒤진 삶을 어색하게” 꾸리면서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인지?

나로서 약간 혼란스러운 것은 칼럼의 서두에서 “인류 역사에서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하고 스러져간 시대가 있었던가.”라고 감회를 섞어 얘기한 것과 그 인텔리 청년들(=80년대 청년들) 대다수가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경멸의 대상일 뿐”이라는 이 대목에서의 지적 사이의 간극이다. 내가 아는 ‘그렇게 많은 인텔리 청년들’은 ‘경멸의 대상’이 아니며(그들은 오히려 나보다 잘나간다. 집행유예를 받았던 한 친구는 10년후 내게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를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혹 ‘경멸의 대상’일지도 모르는 ‘80년대 청년들’은 ‘대다수’가 아니라 ‘소수’이다(어떤 다수가 ‘경멸받는다면’, 오히려 경멸받지 않는 소수가 비정상 아닌가?).

‘은근한’ 경멸? “(겉으론 아니지만) 네들이 속으로 날 경멸하는 걸 다 알아!” 같은 건가? 그건 자의식의 일종이고 피해의식의 일종 아닌가? 사회/운동의 대의(大義)를 위해서 거리와 현장을 내달려야 했다면, ‘그만큼 경쟁에 뒤진 삶’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꾸로 그런 경력 때문에 ‘경쟁에 앞선 삶’이어야 정상인가? 더불어, 운동을 했으면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하나? 민주화 운동 유공자들처럼? ‘고상하지만 무력한’ 이들(=아름다운 영혼들)의 주변은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는데, 이 주변인들은 다수인 세번째 부류보다도 더 다수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칼럼의 주장에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라 그 ‘진의’를 좀더 명료하게 해두기 위해서 제기하는 것이다.

-오늘 80년대의 청년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한 사람들을 빼고는) 대개 세상의 경멸에 처해 있다. 희한한 일은,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청년들을 마치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처럼 경멸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동의는 그런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 그 청년들이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에게서까지 받는 그런 경멸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

여기서도 ‘80년대 청년들’이라고 다소간 모호하게 지칭되고 있는 이들은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과 대비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그 모호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청년들’은 ‘한번이라도 데모 해본 놈들’부터 ‘데모현장이 강의실이었던 분들’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갖기 때문이다. 전자라면 절대 다수이고 후자라면 소수 정예이지만, 내가 보기에 김규항은 이들을 뒤섞는다. ‘절대 다수’가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으로서 경멸 받는 것은 넌센스이므로,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이라고 지칭되는 이들은 적어도 운동 경력 때문에 ‘훈장’이라도 달고 나온 이들을 가리켜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로 ‘80년대 청년들’로 지칭될 만큼, ‘인류 역사’를 들먹일 만큼 다수였는가? 운동을 위해서 일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 새삼 주변(=사람들)의 시선에 그토록 민감할 이유는 또 무엇인가? 분명 사람들의 정신이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들의 경멸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오히려 그런 주변인들로부터 환영/존경받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 아닐까? ‘천민자본주의 정신’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사람은 제대로 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존경해줄 수 있는 것인지? 자세하게 읽으려고 하면, 칼럼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들이 수두룩하다.

가령, “희한한 일은, 사람들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그 청년들을 마치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사람처럼 경멸하곤 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동의는 그런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다.”라는 대목은 전형적인 히스테리증자의 담론을 떠올리게 한다(예컨대, 히스테리증자에게는 어떠한 사랑의 고백도 변심으로 의심받을 것이다. “저 남자가 갑자기 무관심해졌어. 딴 여자가 생긴 거야!” “저 남자가 왜 갑자기 친절하지? 딴 여자가 생긴 걸 감추려고 하는군!”).

이 ‘동의’를 ‘존경’으로 바꾸어도 사태는 역전되지 않을 것이다. 히스테리증자에게서는 그 ‘존경’ 또한 ‘경멸’을 위한 준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경멸이 아닌 진정한 동의이며, 존경인지는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 (궁예처럼) 보면 아는가? 하여간에 이런 식의 징징대는 소리는 듣기에 불편하다(영화 <람보>의 끝장면에서 남들의 ‘경멸’에 대해 자못 억울하다는 듯이 징징대는 ‘람보’ 실베스타 스탤론과 무엇이 다른가? 참고로, 이 <람보>는 레이건 시대의 미국, 80년대 시대정신의 영화적 상관물이었다).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다”는 대목은 어떤가? 그들은 무얼 돌려받기 위해서 주었는가? ‘인류 역사’는 차치하고 한국의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모든 앞선 세대는 자신들이 피땀흘린 노고의 대가를 후대에 물려주었다. 이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전 통신문에서 살펴본 김훈의 세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의 ‘물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한국전쟁의 참전세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있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얼 말하자는 것인가?

사실, 김규항이 80년대 청년들이 주었다고 주장하는 건 비판적 사회 ‘의식’ 아닌가? ‘의식화’란 당대의 상투어. 그 ‘의식’이란 소프트웨어는 ‘물적 토대’라는 하드웨어가 없이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결국 이건 하나마나 한 얘기 아닌가? “그 청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을 주었”는데, 어쩌라는 얘기인가? ‘80년대 청년들’은 무슨 특별한 역사적 사명의 유전자라도 갖고 태어났었더란 말인가? 지금의 2000년대 학번들도 노무현 정부가 아닌, 5공 정권하에서였다면, 일신의 안위를 뒤로 한 채 세상을 바꾸는 일에 투신했을 것이다. 그건 한 개인의 앙가주망 이전에 ‘시대정신’이자 시대적 요청이(었으)니까.

-하는 말대로, 그들이 80년대의 후반기에 그렇게 열심하던 사상 투쟁이나 사회구성체 논쟁은 분명 과열된 부분이 있었고 그들의 운동엔 편중된 부분이 있었다. 그들이 90년대의 혼란에 그렇게 무력하게 흐트러진 일 또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해선 그런 오류에 대한 비판은 필요하다. 오히려 80년대가 종료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일은 아쉬운 일이다.

김훈의 인터뷰에서 이 대목에 상응하는 부분은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에 대해서 “물론 그런 것까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라고 답하는 부분이다. 김규항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물론 80년대 운동에 과열된/편중된 부분이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김훈의 경우에도 지적했지만, 이런 판타지야말로 자기기만이다. 나는 당시에 그렇게 ‘열심하던’ 사상투쟁 등속도 혐오스러웠지만(그들은 주체사상이나 스탈린주의는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소프트 스탈린체제’였던 박정희나 그 ‘외설적 이면’으로서의 전두환은 혐오했다), 그러한 ‘오류/과오’까지가 온전하게 80년대 청년 정신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때문에 그와는 분리될 수 없다고 본다

우경화된 파쇼정권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 이상의 ‘좌경화’가 요구되었던 건 당연한 일, 이해할 만한 일 아닌가? 그게 옳거나 그르다고 판정하는 것은 이차적이다. 운동은 이성에 의해 조율되지 않으며, 거기에 언제나 동반되는 것은 ‘광기’이다. 김규항의 지적대로, (80년대 청년들이) “90년대의 혼란에 그렇게 무력하게 흐트러진 일 또한 그런 부분과 관련이 있을 것”인바, (김규항의 주장대로) 그들이 현재 사람들로부터 경멸받는다면, 그건 일정 부분 자기책임이다. 이제 결론이다.

-문제는, 80년대의 오류에 대한 그런 비판들이 새로운 전망을 찾기 위한 생산적인 목적이 아닌 엉뚱한 목적,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확실히 80년대의 정신은 ‘지나친 자본주의’로서 신자유주의 정신과 적대적이며, 80년대의 정신이 아무 구분없이 경멸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거기 있다. 오늘의 정신, 신자유주의의 정신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빈부의 격차를 당연시하는, 모든 경제적 실패를 노동자의 책임으로 넘겨지는, 아이들이 아파트 평수대로 신분을 나누는, 일류대학이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지는, 오로지 돈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부모가 자식에게 선생이 제자에게 올바로 살라고 가르치는 일이 자식과 제자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되는, 정신이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희망은 부당한 경멸을 돌려주는 일에서만 출발할 것이다. 80년대, 그 위엄을 되찾아야 할 때다.

“80년대의 정신이 아무 구분없이 경멸되어야 할 필요가 바로 거기 있다.”라는 대목은 문맥과 맞지 않는데, 오타가 아니라면 아이러니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80년대의 정신’은 ‘신자유주의 정신’과 적대적이기에, 그 ‘신자유주의 정신’이 지배적인 정신, ‘오늘의 정신’이 된 우리시대에 ‘경멸’받는다는 것. 그런 맥락에서라면, 사람들의 경멸은 ‘80년대 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징표일 것이므로 (부당한 것으로 불평해야 할 게 아니라) 오히려 환영해마지 않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80년대 청년들’이 김규항의 주장대로 경멸받는 ‘다수’라면, 신자유주의 정신을 상대로 좌절할 이유는 무엇인가?

저항의 ‘물적 토대’를 문제삼는 거라면 모를까(그건 좀 어렵고 복잡하다), 그가 내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정신’, 곧 ‘의식’ 아닌가? 부당한 결멸 정도를 (되)돌려주는 일에서 ‘희망’이 출발될 수 있다면, 이 또한 너무도 쉬운 일 아닌가? 자신을 은근히 경멸하던 주변 사람들에게 당장 내일 아침부터 경멸의 시선을 되돌려주면 되는 것이니까. 그걸로 80년대, 그 위엄을 되찾을 수 있는 거라면 말이다.

끝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 위엄’의 내용이다. ‘그 위엄’을 되찾아야 하지만, 그리고 그걸 ‘재단언(reassert)’해야 하지만, 정작 그 위엄의 내용은 아직 정리되지/갖춰지지 않았다. 80년대의 오류에 대한 비판이 (그간에 편파적으로 진행되었을 뿐)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80년대가 종료한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그런 오류에 대한 정확한 비판과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일은 아쉬운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그대로 적용가능한 것은 재작년 연말인가 하머바스(독일)와 데리다(프랑스) 등 대표적인 서유럽 지식인/철학자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지젝의 비판이다.

 

 

 

 

자신들의 선언서에서 두 철학자는 유럽이 자신의 “윤리-정치적 유산”을 재단언할 힘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바, 지젝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왜나면, “우리가 미국 정치와 문명 속에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으로 그리고 위험한 것으로 발견하는 것은 유럽 자체의 일부이며, 유럽적 기획의 가능한 결과들 중 하나”(<이라크>, 50쪽)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은 유럽 자체의 왜곡된 거울이다.”(즉 미국이란 거울에 비쳐지고 있는 것은 유럽 자신의 얼굴이다.)

해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은 자기비판이다. “유럽 자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은 미국에 대해서도 침묵해야 한다.”(51쪽) 그것이 지젝의 단언이며, 이는 새로운 주장으로 이어진다. “유럽적 유산의 방어가 연대와 인권이라는 위협받는 유럽적 민주주의 전통의 방어에 국한된다면 전투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 유럽의 유산이 방어되기 위해서는 유럽이 스스로를 재창안해야 한다. 방어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방어해야만 하는 그 무엇을 재창안해야 한다.”(51쪽)

즉 한쪽에서는 우리의 ‘금송아지’를 보호/방어하기 위해서 피 흘리는 가운데, 한쪽에서는 그 ‘금송아지’를 열심히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김규항이 옹호하며 재단언하고자 하는 ‘80년대 정신’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의 오류를 제거한, 순수하게 진보적인 ‘80년대 정신’(=금송아지)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그 정신의 윤곽과 아직 ‘참호’(=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전사(戰士)들, 그리고 대다수 ‘패잔병들’뿐이다. 때문에, “80년대, 그 위엄”을 한편으론 되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아직 없으므로) 만들어내야 한다.

해서, 남들의 경멸에 신경쓰거나 발목 잡혀 있을 때가 아니며, 자화자찬하거나 징징댈 시간이 아니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건, 한가한 질문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극복이 전부인 것을.”(릴케)이란 시구를 조금 비틀어서 말하자면,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전진이 전부인 것을.” 묵묵한 전진이…(*여기까지가 본문이었다. 이어지는 것은 본문에 덧붙인 군말이었다.) 

 

 

 

 

김규항의 칼럼에 대한 논평에 생각보다 길어졌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란 첫문장을 읽으면서부터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해서, 결국은 한때 그의 칼럼의 애독자였지만 나는 더 이상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나는 분류하자면, “세금 왕창 내는” ‘중도 우파’도 부르주아도 아니지만, 김규항의 분류대로라면 ‘80년대 청년’도 아니다. ‘80년대 인텔리’이긴 하지만, 나는 일단 ‘팔아먹을 이력’이 없고, 세상이 좀 달라졌다고 믿기 때문에 ‘80년대적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지 않으며, 남들만큼 ‘간교하지도’ ‘재빠르지도’ 않아서 경쟁에 뒤진 감은 있지만, 그건 자업자득 정도로 여긴다(그러니 굳이 분류하면, 세번째 부류의 ‘변이형’ 정도 될까?).

단 하나, 내가 내심으로 자긍심을 갖는 것은 세상이 좀 달라지긴 했어도 나의 정치적 태도는 80년대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김훈의 분류대로 하자면, 나는 ‘회색분자’이어서(최인훈의 명명에 따르면, ‘회색인’), 그다지 달라질 게 없는 건지도 모르지만. 내 주변에서 80년대에 ‘운동’을 잘하던 이들은 대부분 지금도 잘나간다(한나라당 공천까지 신청해 가면서). 그들에 주눅들어 하던 이들은 지금도 그냥 그 주변에서 주눅든 채 살아가고. 그리고, 나 같은 회색분자는 지금도 회색분자이다(나도 기회주의적으로 좀 처신하고 싶고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빌어먹을 ‘기회’란 게 안 주어진다. ‘기회’는 나를 경멸하는 모양이다). 이건 일종의 생태학이다. ‘운동생태학’. ‘운동윤리학’ 이전에 말이다.

나는 김규항이 자신을 어떻게 분류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에 속하리라, 혹은 속해야만 하리라. 적어도 ‘B급 좌파’라는 명패에 값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손에 꼽을 만치 적은 그들”의 “곤란한 처지”에 합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또한 정말로 ‘곤란한 처지’에 있는지? ‘언더그라운드’의 처지라면, 세 부류를 ‘개관(槪觀)’할 만한 처지가 안된다. 그걸 개관하기 위해서는 언더그라운드 ‘바깥’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하며(그럴 경우, 운동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동시에 그럼에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그럴 경우, 운동방식은 바뀌면 안된다). 그러니까 그의 처지를 규정하는 건 모종의 아포리아이다. 본문에서 “세상이 변했다는 의견에 찬성하고 안 하고를 떠나”라는 애매한/유보적 표현은 짐작에 아마도 그래서 들어갔을 것이다. 김규항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본문에서 한번 언급했던 쿠스투리차의 영화 <언더그라운드>(1995)의 줄거리는 이렇다. “1941년 독일에게 점령당한 유고의 베오그라드. 무기밀매를 하던 블래키와 마르코는 지하실에 무기생산고를 만든다. 이로부터 3년후, 마르코는 블래키를 독일군으로부터 구출해 지하실로 숨게 한다. 하지만 유고가 해방된 후에도 마르코는 지하실 사람들을 속여 계속 무기를 만들게 하는 한편 블래키가 사랑하는 여자 나탈리아를 빼앗고, 티토의 측근이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린다. 블래키의 아들 요반의 결혼식날 언더그라운드는 사고로 파괴되고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믿고 있는 블래키는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화하고 있는 촬영현장에 도착해 진짜 총을 발사한다. 1992년 다시 전쟁에 휩싸인 베오그라드. 마르코와 나탈리아는 블래키의 지하군에 의해 살해된다. 마지막, 블래키의 죽음에 의해 잉태된 꿈의 장면, 모든 죽은 사람들이 햇살 밝은 곳에서 축제를 벌이는데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이 육지로부터 떨어져 나간다.”(김소영 교수의 요약)

유고 내전에 관한 이 ‘블랙 코미디’에서조차도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은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했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세상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명백하게 반대하며 80년대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들”로 분류되는 이들은 이 ‘언더그라운드’의 사람들을 닮았다. 나는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가늠할 수 없다(1980년부터만 잡아도 벌써 25년째이다!). 그들과는 달리 나에게 먹구름 같던 80년대는 지난 김영삼 정부때 전두환, 노태우가 내란수괴죄 등으로 수감되면서 비로소 막을 내렸다. 두 사람이 구속되는 날, 나는 젊은 날 머리속을 내내 감싸던 무거운 안개 같은 것이 걷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87년 6월의 ‘함성’이 그날에서야 비로소 결실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했다). 나는 그 이후의 한국 정치사에 대해서는 케세라 세라, 될 대로 되라이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낙관이다(더 이상의 후퇴는 없을 거라는).

나는 우리의 삶에서 정치가 해줄 수 있는 몫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머지 문제들, “여전히 남은 문제들”은 종교(=종교 없는 종교)와 예술/문학에 의해서 해결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본다(데리다의 저작들 중 일부는 'Acts of Religion'과 'Acts of Literature'란 제목으로 묶였는데, 나의 모든 관심 또한 그 사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내가 엊그제, 그러니까 지난해의 마지막날 저녁에 읽은 단편소설은 체홉의 <다락방이 있는 집>(1896)인데(‘운동’의 방식에 대한 두 가지 입장 차이가 이 단편의 이데올로기적 테마를 구성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화자(=화가)는 이렇게 말한다. “필요한 건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아니라, 정신적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자유입니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대학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내가 보기에, 정신의 자유, 정신의 대학은 정치가 충족시켜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대학(교육)’을 유보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구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굶어죽는데, 어떻게 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고 말할 수도 없다. 그건 또다른 ‘폭력’이다(인간에겐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내게 ‘언더그라운드’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80년대의 연속성’이란 무엇인가? <언더그라운드>에서 2차 대전이 계속 진행중이라고 믿고 있듯이, 군사파쇼 정권과 피억압 민중간의 대립구도의 연속성인가? 아니면, 다국적자본의 신자유주의와 전세계 노동계급간의 대립구도의 연속성? 어쨌거나 5공 때의 구호는 매번 반복되었다.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 “김대중 정권 타도하자!” “노무현 정권 끝장내자!”(하지만, 그 구호들이 언제 실현됐던가? 메아리 없는 구호는 ‘구호를 위한 구호’로 귀결되는 것 아닌가?) 그러한 구호들에서 지속적인 것은 ‘타도하자/끝장내자’라는 ‘관성’이다. 영어로는 ‘overthrow’.

'Overthrow'는 타도/전복하다란 뜻도 되지만, 야구 용어로는 폭투(暴投), 그러니까 투수가 공을 너무 멀리 너무 높게 던지는 걸 말한다.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는 폭투처럼 콘트롤이 안되는 요구이다. ‘근본적인 변화’라는 건 아무도 정의/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와일드(wild)하며, ‘정의(正義)’를 닮았다(짓궂게도 5공의 집권여당은 ‘민주정의당’이었다. ‘80년대 청년들’과 집권여당의 지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치했던 것. ‘민주주의’와 ‘정의’!). 단, 그것이 ‘근본주의’에 붙들리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하지만, ‘폭투로서의 정의(Justice as a Overthrow)’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혹은 위엄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해야 한다.

 

 

 



정의로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는/요구하는 사람들이 왜 경멸 받는가? 그건 힘이 없기 때문이다. 김훈의 표현을 갖다 쓰자면, ‘물적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김훈은 좌파를 ‘멸시’한다). 몽테뉴-파스칼의 통찰을 다시 반복하자면,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 정의 없는 힘은 전제적이다. 힘없는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는데, 왜냐하면 항상 사악한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 없는 힘은 비난을 받는다. 따라서 정의와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것이 강해지거나 강한 것이 정당해져야 한다.”(데리다, <법의 힘>, 27쪽)

책임질 수 없는 구호들만을 남발하는 걸로 자신이 정의(=근본적인 변화)에 편에 서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거나 오만이다. 그건 자신들이 ‘물적 토대’(=힘)를 갖고 있기에 곧 정의롭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오도된 것이다. 자신의 말(=구호)에 책임지고, 그 말에 ‘물적 토대’(=힘)를 부여함으로써, 말의 위엄을 되찾을 수 있을 때만이 정의는 반격/경멸을 받지 않게 된다. 거기에 비하면, “그 청년들이 ‘그 80년대에 데모 한번 안 해본 놈들’에게서까지 받는 그런 경멸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라고 따위의 질문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라는 질문만큼이나 부차적이며 한가하다. 사자가 양을 잡아먹는 것은 그것이 정당(온당)해서가 아니다.



지난주에(*2005년초) 인터넷에는 지난해 10월에 사망한 철학자 데리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창간 50주년 기념연설(발체)문이 영역본과 함께 올라왔었는데(강연은 5월에 있었고, 강연문은 11월호에 게재됐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음의 문단이었다. 나는 한 문단을 둘로 나누어서 영역과 국역을 같이 제시하겠다(국역은 신기섭님의 것을 약간 수정했다).

Caught between US hegemony and the rising power of China and Arab/Muslim theocracy, Europe has a unique responsibility. I am hardly thought of as a Eurocentric intellectual; these past 40 years, I have more often been accused of the opposite. But I do believe, without the slightest sense of European nationalism or much confidence in the European Union as we currently know it, that we must fight for what the word Europe means today. This includes our Enlightenment heritage, and also an awareness and regretful acceptance of the totalitarian, genocidal and colonialist crimes of the past. Europe’s heritage is irreplaceable and vital for the future of the world. We must fight to hold on to it. We should not allow Europe to be reduced to the status of a common market, or a common currency, or a neo-nationalist conglomerate, or a military power.

“미국의 헤게모니와 중국의 떠오르는 힘, 그리고 아랍/이슬람의 신권 정치 사이에 낀 유럽은 독특한 책임을 지고 있다. 나는 ‘유럽 중심적인’ 지식인이 아니며, 지난 40년 동안 정반대의 이유로 곤욕을 치러왔다. 하지만, 나는 한치의 유럽 국수주의도 갖지 않고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유럽연합에 대해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오늘날 ‘유럽’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를 위해서 우리가 싸워야만 한다고 확고하게 믿는다. 여기에는 계몽주의의 전통과 함께, 과거 전체주의의 범죄행위와 인종학살, 식민주의적 범죄행위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한 유감도 포함된다. 이러한 유럽의 전통은 대체될 수 없으며, 세계의 미래를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이걸 지키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유럽이 그저 하나의 시장이나 하나의 통화체제, 혹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연합이나 통합된 군사력 등으로 축소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문단의 이러한 전반부가 연설의 핵심을 구성하지만, 내가 더 주목한 것은 이어지는 후반부의 유보조항이다: “Though, on that last point, I am tempted to agree with those who argue that the EU needs a common defence force and foreign policy. Such a force could help to support a transformed UN, based in Europe and given the means to enact its own resolutions without having to negotiate with vested interests, or with unilateralist opportunism from that technological, economic and military bull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비록, ‘통합된 군사력’이라는 이 마지막 요점에서는 유럽연합이 공동의 방위력과 외교정책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동조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만 말이다. 그러한 힘은 유엔이 기술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불량배 국가인 미국과 타협하지 않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가운데 유럽에 근거를 두고서 독자적으로 그 결의를 실행할 수 있는 기구로 탈바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는 나의 것인데, 강조된 것은, 그리고 데리다가 특별히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바로 ‘힘’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군사력(a military power)’. ‘불량배’(=미국)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유엔이 자신의 결의를 독자적으로 실행하는 걸 도와주기 위해서라도 유럽연합의 힘(군사력)은 불가불 요구된다고 이 ‘해체철학자’는 보는 것이다. 이 힘이 바로 어떤 발언이나 결의에 수행력을 덧붙여주는 ‘물적 토대’이다. 이러한 물적 토대에 의해서 뒷받침되지 않는 정의는 곧 반격 받으며,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 철학자마저 이러할진대, 하물며 ‘운동가’가 세상 사람들의 경멸이나 탓하고 있다는 건 넌센스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9할은 80년대가 준 것이다.”에서 내가 읽는 것은 바로 그 넌센스이다...

06. 0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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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기계 2006-05-08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인적으로 로쟈님의 글을 따로 프린트해서 보관하기도 하는 애독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가끔 로쟈님이 이렇게 자신의 옛글을 정리하실 때 유령 같은 독자의 입장에선 정리하기가 조금 성가시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결벽인지는 모르지만 '초판 글'과 '개정판 글'을 다 함께 챙겨 보관합니다. 정말 맘에 드는 글은 (이미지 버전을 위해) 칼라로 뽑아내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일이지만, 한편으론 로쟈님의 "이중적인 플레이"에 대한 최소한의 화답입니다. 만난 적도 없는데, 자신만을 위한 글을 정리하는 로쟈님의 글을 챙겨 읽을 땐 제게는 로쟈님이 유령 같이 느껴집니다.^^ 꾸벅.

로쟈 2006-05-08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독자 한분이 자수하셨군요.^^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애초에 3조각인가로 나뉘어 올려졌었기 때문에, 한데 모아놓으면 시각적으로도 보기 편하지 않을까 싶네요. 거기에 이미지들도 몇 개 들어가 있으니까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뭐, 핑계를 대자면 그렇습니다. 가끔은 교정과 비판도 해주시길...

로쟈 2006-05-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교수신문'의 기사를 담뽀뽀님의 서재에서 읽곤 합니다. '러시아문학'이란 리뷰란을 따로 빼놓아도 많은 분들이 제 '출신성분'에 대해서 오해하거나 되묻곤 하시더군요...

여울 2006-05-0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수하게 진보적인 ‘80년대 정신’(=금송아지)이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그 정신의 윤곽과 아직 ‘참호’(=언더그라운드) 안에서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소수의 전사(戰士)들, 그리고 대다수 ‘패잔병들’뿐이다. 때문에, “80년대, 그 위엄”을 한편으론 되찾아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런 게 아직 없으므로) 만들어내야 한다.

"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그건, 한가한 질문이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극복이 전부인 것을.”(릴케)이란 시구를 조금 비틀어서 말하자면, “누가 희망을 말하는가? 전진이 전부인 것을.” 묵묵한 전진이" ... 그쵸!!! 좋은 하루 되시구요.

릴케 현상 2006-05-0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라딘에 서재를 만든 계기가 재작년쯤에 네이버에서 '알라딘에 로쟈라는 사람 글이 읽을 게 많다'는 코멘트를 보고 들어와 본 거였더랬는데, 그동안 읽기는 거의 다 읽었더랬는데요^^ 사실 사소한 교정들은 가끔 봐드릴 수 있지만(가끔 눈에 띈다는...) 별로 중요한 건 아닌 듯해서염=3=3=3

로쟈 2006-05-08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중요하지 않더라도 알려주십시오. 서재주인장에게만.^^ 제 눈의 티를 못보는 것처럼 자기 글의 오타나 오류도 잘 눈에 띄지 않거든요. 고친다고는 하지만...

yoonta 2006-05-0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그냥 스킵하려다가 읽었는데 좀 논란의 소지가 있는 글이네요..스탈린식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부분에서 님은 김규항씨가 졸렬한 시도라고 평한것을두고 2000만명이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 획득한 정치제도이기 때문에 혹은 2000만명을 희생시키는 행위자체가 졸렬하지 않고 위대한? 업적 혹은 시도라고 보시는 건가요? 당시의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한 레닌주의노선이 당시의 러시아 상황에서 가장 올바른 결론이었다고 보시는건가요?


p.s.끝까지 읽으려는데 어디가 인용글이고 어디가 님의 코멘트인지 넘 헷갈리네요..
-가 문단 맨 앞에 있는 것이 인용글이고..-가 없는 것이 님의 코멘트인가요? 전에는
(*)표시로 구분하신거 같은데 이글에는 그런 구분이 잘 안되어있군요. 번거로우시더라도 (*)표시 혹은 다른 표시로 확실히 구분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로쟈 2006-05-0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문에만 (-)표시가 있습니다(인용문이 많지 않을 때는 굳이 *표를 달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실사회주의'에 관해서, '가장 올바른 결론'과 '가장 현실적인 결론'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역사는 가장 올바른 경로를 선택하지 않습니다(그것이 '현실적'이지 않을 경우엔 더더욱). '현실 사회주의'와는 '다른 사회주의' '진정한 사회주의'를 꿈꾸는 이들에게 갖는 저의 불만은 그러한 상상력이 '현실 자본주의'에 대해서 면죄부를 준다는 데 있습니다(우리는 또 얼마든지 '이상적 자본주의' '도덕적 자본주의'를 꿈꿀 수 있으니까요).

2000천만명 운운은 '대단하다'는 뜻에서입니다. 그러한 '공포정치'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계급의 전면적인 교체 덕분이었다고들 얘기합니다. 그 많은 자리는 물론 숙청된 이들이 마련해준 것이며, 적어도 그 희생자들의 수만큼 사회적 신분 이동이 가능했던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그러니까 모두가 '피해자'는 아닌 겁니다). 저는 그러한 피의 숙청 없이, 어떠한 방식의 계급투쟁이 가능한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본문에서 지적한대로, 소위 진보좌파라는 이들이 나머지 (최소한) 70%의 '반동분자'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구요. 이에 대한 해명 없이 '가장 올바른'을 늘어놓는 것은 아름다운 소리이기는 하지만, 귀기울여볼 만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yoonta 2006-05-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는 그런 피의 숙청이 필요할만큼 강제와 폭력이 필요한 혁명이라면 차라리 '일어나지 않는게 좋았던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만명의 희생을 치러서 얻은 댓가가 과연 무엇이었던가요? 2000만명을 죽인다음 그 위치를 차지할수있었던 노동계급?들의 신분상승이 그 희생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서 그렇게 피로서 성립된 현실사회주의가 오늘날까지 잘 작동되었던가요?

물론 "가장 올바른 결론"이 항상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 되지는 않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시에 '현실적'이었던 레닌주의,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면죄부"를 준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닙니다..

로쟈 2006-05-09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제와 폭력'이 불필요한 '혁명'에 대해서는 제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하겠습니다(더불어, 레닌-스탈린주의적 '과잉'이 혁명을 이끈 것이므로, 사실상 그러한 '과잉'을 제거한다면 말씀대로 혁명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한데,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건가요? 노동자도 좋고, 자본가도 좋은? yoonta님의 '가장 올바른 결론'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경청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단, 그것이 윤리적인/추상적인 결론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yoonta 2006-05-0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야기하는 일반적 의미의 정치적 혁명에는 일정정도의 "강제와 폭력" 수반될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것이 꼭 2000만명을 숙청시키는 야만이어야만 했을까요?

레닌이 죽기직전에 그랬다죠. 스탈린은 너무 잔혹한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후계자가 될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레닌에 의해 성공한 10월혁명은 스탈린에 의한 권력장악과 그의 전횡을 가능하게한 밑바탕을 마련해주었죠. 로쟈님도 잘 아시겠지만 당시의 러시아에서 볼세비키는 사회주의계열 내부에서도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그들에 의한 혁명은 어떻게 보면 혁명이라기보다는 소수에 의한 쿠테타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혁명?의 성공후 그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을 배신했죠. 모든 권력이 소비에트로 간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은 레닌에게로 갔으니까요..-_- 크론슈타트에서는 레닌에 의한 이러한 권력독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반혁명적 성격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고요..

10월혁명에 대한 평가는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평가는 이런 일련의 논의들을 꼼꼼히 점검해보아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그리 간단히 다루어질만한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가장 올바른 결론"은 아직은 이곳에서 이야기할 상황은 아닌것 같네요. 단 그것이 윤리적이고/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만 밝힙니다.

yoonta 2006-05-09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마저 읽었네요..중 후반부도 마찬가지로 논란거리가 많은 내용이군요..

한마디만 코멘트해보면..그렇다면 좌파가 획득해야만 하는 그 "물적토대"란 무엇인가요? 돈인가요? 아니면 정치적 군사적 권력? 만약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야 말로 좌파가 혐오하고 거부해왔던것들 아닌가요?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물적 토대는 도대체 무엇이죠?

님이 이부분에서 비판하려고 하는 좌파의 문제점 즉 공허한 구호만 남발하고 그 구호의 실천성, 물적토대를 담보하지 못하는 모습들은 여러점에서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호의 의의조차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많은 경우 그들의 구호나 이야기가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애초부터 그들에게 (자본주의적)기회가 주지 않는 현실, "(자본주의적)기회가 그들을 경멸하"는 현실때문이니까요. 그들이 필요로하는 "물적토대"는 자본주의적 기회나 물적토대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하는 물적토대이기 때문이고, 기회이기 때문이니까요.

한가지 동의하는 부분은 왜 우리를 경멸하느냐고 투덜대는 것보다는 "금송아지"를 계속해서 묵묵히 만들어내는 일들을 해야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런점에서 김규항씨의 이글은 그가 아직도 80년대의 향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로쟈 2006-05-0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호의 의의조차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많은 경우 그들의 구호나 이야기가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도 애초부터 그들에게 (자본주의적)기회가 주지 않는 현실, "(자본주의적)기회가 그들을 경멸하"는 현실때문이니까요. 그들이 필요로하는 "물적토대"는 자본주의적 기회나 물적토대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하는 물적토대이기 때문이고, 기회이기 때문이니까요."로 yoonta님의 생각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어떤 입장이신지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이진경주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 차이가 있다면, 나중에 덧붙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의 외부'에 대한 상상력도 시간이 되시면 나누어주시길. 제 기본적인 생각은 노마디즘 유행에 대한 간략한 코멘트의 형태로 조만간 제시될 것입니다...

yoonta 2006-05-09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저는 이진경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자본주의적 외부"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그런 추측을 하셨나본데 그것은 이진경주의 혹은 노마디즘을 염두에두고 쓴 표현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좌파적 상상력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을 목표로 작동되는 것이고 그것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외부'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외부'라는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2006-05-09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5-09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필요없는'은 그대로 놔두어도 될 거 같고, 나머지는 모두 수정했습니다. 저보다 꼼꼼하게 읽으시니까 두렵기도 하네요.^^
 

 

 

 

 

지난주에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의 제2권을 먼저 구입했다. 이전에 나온 국역본 <소통행위이론>(의암, 1995)도 갖고 있기에 제1권의 구입은 일단 미루어둔 것. 영역본도 갖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버텨보자는 생각이었고, 제2권을 먼저 읽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판단에서였다. 저자의 명성과는 다르게 막상 주저들이 번역/출간되면 본격적인 서평이 잘 나오지 않는 듯했는데(물론 내가 눈이 밝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며칠전 교수신문(06. 05. 03)에 홍윤기 교수의 서평이 게재되었길래 이 자리에 옮겨온다(홍교수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의 철학> 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다수의 관련논문을 갖고 있다). '워밍업' 차원에서 도움이 될 듯하기에. 서평의 제목은 '20세기 최후의 파우스튼적 지성의 지향점을 보며'이다.  

-이 몇 년간 공사석을 막론하고 장춘익 교수를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 새로운 뉴스가 아니었다(*장춘익 교수가 <의사소통행위이론>의 역자이다). 생각해 보면 논문심사나 논평 같이 학계의 궂은 일을 본인이 마다한 적이 별로 없는데도 장 교수가 주는 그런 인상은 올초까지 내 마음 속에 깊이 어려 있었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장 교수를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기특한 내 나름의 마음 씀씀이는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장 교수의 은신과는 전혀 별도로 나는 나의 대학원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읽힐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었다. 하버마스의 논변윤리(Diskursethik)에 관한 1980년대의 문고판 책, 즉 <도덕의식과 의사소통적 행위>가 조야하나마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비록 1백여 쪽에 달하지만 보편화용론에 관한 1976년의 초기 논고를 영어본으로 읽게 하는 데까진 성공했어도 2권으로 된 독일어 원본 쪽수만 1천1백27쪽에 달하는 이 장광설을 무슨 수로, 하다못해 영어본으로라도 읽도록 해야 하지 않는냐 하는 부담은 명색이 선생으로서 넘어야 할 교육상의 난제로 근 7년간 마음을 짓눌러 온 부담이었다.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식민지론’에 관한 부분만 예전에 일부 번역됐었고, 그 제1권은 전문이 완역되긴 했었다. 하지만 이 부분 번역자분들의 선구적 노고에도 불구하고 우선 한국어로 읽기가 어려워 이 책에 대한 거부감이 영원히 남을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마음이 저리는 판이었다. 결국 ‘의사소통행위이론’은 여전히 교수로서 나의 교육역량을 계속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물론 직접 번역해 볼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을 독일어로 읽었던 유학시절의 악몽이 조건반사적으로 상기되면서 책갈피를 넘기는 손가락이 또 오그라드는 경련을 느끼곤 했다.

-그런 와중에 장 교수가 이 책을 완역했다는 소식을 좀 늦게 알게 됐다. 첫 번째 생각? 당연히 안도의 한숨이다. 내가 번역하지 않아도 되고, 또 장 교수 번역이라면 우리 친구들에게 한국어 저작처럼 읽게 할 수 있으리라. 그럼 두 번째 생각? 장 교수에 대한 고마움? 천만에! 간사한 것이 인간심리라고 두 번째로는 동학으로서 엄청난 질투심이 들었다는 걸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하, 내가 왜 장 교수처럼 매일 마늘을 먹고 쑥대를 짚어보는 세월을 보내지 않았던고?! 이 번역상의 쾌거를 장 교수가 차지하다니.

-그리고 책을 실제 받아보았을 때, 그리고 그 번역 상태가 거의 ‘우리말’로 쓴 논술처럼 읽혀지면서, 하버마스 또는 여타 유명한 구미 철학자들의 번역본이 한국어로 읽히지 않았을 때 느꼈던 그 전공자로서의 알량한 안도감― 남의 결과물을 앞에 놓고 나도 이 정도는 하지 뭐 하는 바로 그런 옹졸함―을 이번에는 느낄 수 없었을 때, 같은 분야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느꼈을 그 상실감을 아마 교수 독자분은 공감해 주리라 믿는다.

-그 존립 방식에 있어서 19세기 이래 현대 철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모든 철학이 본질적으로 강단철학이 됐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철학을 체계적으로 ‘교육’받게 됐음을 뜻하는데,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문제를 숙고하는 생각함의 절실한 고통’이 철학함의 중요한 과정으로 들어설 여지가 없어졌음을 뜻하기도 하다. 사실 칸트의 3대 이성비판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 및 <대논리학>, <철학강요>, 그리고 맑스의 <자본>은 그것을 ‘읽는 것’이 그들 저자가 생각한 ‘삶을 사는 것’이 되고 그러면서 ‘자기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생각함이 삶이 되는 전 과정을 그대로 체현해 준다.

-독일 지성에는 분명히 앵글로-색슨 계통의 분석적 치밀함이나 라틴 계통의 발랄한 자기체험과는 구별되는, 파우스트적 성숙에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고문화가 약동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 파우스트적 자기성숙에의 집착은 프랑스적 계몽주의를 ‘내면화’시키는 데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는데, 철학이 대거 강단철학이 되면서 그 장점은 도리어 거추장스러운 사변적 번문욕례가 돼버렸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내면적 계몽으로 추동되는 은밀한 정신과정이 거의 필요없게 되어가는 듯한 20세기 후반기에 합리성이라는 주제를 두고 맑스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 선배에 이르는 그 좌절과 방황의 사고 행보를 지치지도 않게 1천 쪽이나 서술해 놓았다. 사실 ‘의사소통행위이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가 장 교수를 질투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게 하버마스를 질투하던 그의 어떤 동료분 말처럼, A4 용지 딱 20매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학원식 논술 대비 방식에 따르면 A4 한 장 안에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딱 4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인간이 표출하는 의견과 행위는 합리적인 성질을 가질 수 있으며(이 때 합리적이라는 것은 이성에 합당하다는 뜻이다), 현대 언어 철학은 이것을 의사소통과정에서 오가는 언어사용의 형식적 조건들 안에서 부인할 수 없이 보편타당한 것으로 확증할 수 있다는 것. (이 때 언어사용의 형식적 조건들이란 ‘말해지는 언어적 표현’의 이해가능성, ‘말해진 명제’의 진리성, ‘말하는 이’의 진실성, 그리고 ‘듣는 이에 대한 책임 있는 응답’을 가리킨다.)

2. 바로 이런 합리성 조건이 ‘개개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안에 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는 이런 식의 합리성을 전면적으로 실현하지 못한 채 사회를 합리화하는 과정이 인간 삶을 物化시키는 과정으로 변질되어 왔다는 것.

3. 이 때 인간의 삶을 물건처럼 만든 가장 주된 원인은 합리성, 사실은 기능적 합리성의 명목 아래 인간의 삶을 기능체계로 분절시켜 그 안에다 부속시킨 사회체계의 메커니즘에 있으며 이에 따라 시민의 생활세계는 체계의 내부식민지로 전락했다는 것.

4. 그리고 ―이쯤 되면 하버마스가 당연히 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안 쓴 필자의 용어를 슬쩍 끼워넣자면― 이런 ‘체계의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생활세계의 해방 잠재력은 바로 이 생활세계의 의사소통과정에서 그냥 굴러다니는 타당성의 요구를 끊임없는 論辨(Diskurs), 즉 장 교수의 ―내가 보기에― 아주 부적절한 번역에 따르면 討議를 통해 체계에 제기해 그 지배력을 항상 잠식시켜 나가는 것뿐인데, 현대 들어 그런 과업은 아직 완결 내지 완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이 책은 분명히 사회학의 문제 영역에서 사회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설정해 놓은 철학적 사고의 구도를 숙지하지 못할 경우 단지 사회학적으로는 충분히 납득되지 못하는 명제들이 빈출한다. 우선 이 책은 루카치가 그 지평을 열었던 서구 맑시즘의 전통에서 정교하게 가다듬어졌던 ‘물화’ 개념을 쓰면서도 20세기 맑스주의적 사회학이나 정치경제학에서 빈번하게 거론하던 3가지 주제어, 즉 소외, 착취,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전혀 투입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이미 현대 사회체계의 정당성 기반을 묻는 하버마스의 준거점이 더 이상 정신분석학이나 정치경제학비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그는 영미사회학의 비조쯤 되는 탈코트 파슨스의 ‘체계’ 개념에서 기능 차원에 몰입해 사실상 간과 내지 배제시켰던 규범 차원을 체계의 한 요인으로 복구시켰다. 다시 말해 어떤 체계적 기능도 정당성 차원의 이의제기를 우회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쨌든 나의 이 기고만장한 요약만 보고 <의사소통행위이론>, 그것도 이 국역본을 직접 읽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식기반사회를 향해 질주하는 21세기에 철학적으로 낙오한다는 것을 뜻한다. 초월자에 기대어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고집할 수 없다는 ‘신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이 확인한 20세기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이 책은 인간이 여전히 파우스트적 자기성숙을 추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책과 씨름하면서 번역투의 짜증스러움을 벗어나는 것이 보장되는 대신 ‘담화행위’(Sprechakt) 같은 보다 친숙한 낱말이 있음에도 ‘화행’ 같은 요상한 번역어를 투입한 역자의 자잘한 부적절성을 독자가 여러군데서 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본다면 번역자에 대한 필자의 질투심이 독자에게도 통했다는 알량한 옹졸함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하버마스는 언어학의 용어들을 많이 가져오는데, '화행' '화행론'은 일차적으로 국내 언어학계에서 관례적으로 쓰는 용어이다. 그것이 '자잘한 부적절성'을 증거하는지는 모르겠다. '즐거움'?).

 

 

 

 

06.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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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이었고 집에 아이가 있기 때문에 일 없이도 바쁜 하루였다. 게다가 아이는 어제부터 목감기 증세를 보이는 터라 사촌들과 놀러가는 일정은 모두 취소되거나 간소화됐다. 내가 아이라고 해도 별반 재미없는 하루였을 것 같은데, 큰 투정없이 하루를 보내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열 속에서 아이는 자고 있다. 영화 <희생>에서 아이가 자고 있는 모습을 잠시 떠올렸다.

수원에서는 어린이날을 기념해 에어쇼를 하던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하여 조종사가 사망한 사고가 일어났고, 평택에서는 미군기지 이전을 위한 강제철거를 둘러싸고 군경과 시위대가 오늘도 충돌했다. 인천 영종대 골프장에서는 미셀위가 컷을 통과했고, 일본 도쿄돔에서는 이승엽이 시즌 6호 홈런을 때렸다. 안팎으로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속은 더부룩하고 마음은 어수선하다(그나마 실시간으로 내리는 밤비가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준다). 이런 날은 문학처럼 '사람으로 붐비는 앎'을 전공한 것이 유감스럽다. 천문학이나 동물학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일부러 그런 책을 찾았다. 다행히도 있었다. "60여년간 평생을 동물 관찰에 바친 러시아의 세계적인 동물학자 V. N. 쉬니트니코프(1874-1956)의 새 관찰 기록"을 담은 <나를 숲으로 초대한 새들>(다른세상, 2006)이 그것이다(출판사 자체가 '다른세상'이군!).(*알라딘에 저자명이 '쉬니트니코흐'라고 표기돼 있는 건 오류이다.)

책은 저자가 1957년 출간한 책 <우리나라의 동물과 새들>에서 조류 부분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같은 책에서 포유류를 다룬 부분을 출간한 <나를 숲으로 초대한 동물들>(다른세상, 2004)에 이은 두 번째 책이다. 그러니까 한권으로 된 원서를 국역본은 두 권으로 분권해서 낸 셈이다.



소개에 따르면, "수많은 새와 동물이 내는 소리를 성대모사하는 재주꾼 새, '새대가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집짓기나 먹이 사냥에서 영리함을 보여주는 새들, 모성이 충만한 새들과 인간의 손길을 낯설어하지 않는 새들까지, 43종에 달하는 새들의 생태를 흥미롭게 엮었다. 각종 진기한 새들의 생태를 알려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오랜 새 관찰 경험을 토대로 표정과 몸짓에서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고 서로 교감을 나누는 지은이의 세밀한 시각이 잘 살아 있다. 본문 가운데 각각의 새들을 그린 삽화를 곁들였다." 위의 박쥐 같은.  

 

 

 

 

알다시피, 이런 동물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을 따로 동물행동학이라 한다. 이에 대한 간략한 소개서로 임신재 교수의 <동물행동학>(살림, 2006)도 최근에 나온 책이다. <동물 행동의 이해와 응용>(라이프사이언스, 2005)과 함께 참고문헌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국내에서 이 분야의 가장 저명한 연구자는 베스트셀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 2001)의 저자 최재천 교수이다(올해 보다 좋은 연구여건을 보장받고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는데, 알라딘에는 저자 데이터가 아직 업데이트돼 있지 않다).

그의 <알이 닭을 낳는다>(도요새, 2006)의 증보판도 얼마전에(지난 3월에) 출간됐었다. 하지만, 이 책은 60여 편의 동물 이야기와 함께 인간 이야기를 곁들이고 있어서 '불만스럽다'. '알면 사랑한다'는 게 저자의 지론이라지만, '알면 슬프다'는 건 나의 오랜(?) 경험이다.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라구요?  

 

 

 

 

두번째 책은 제임스 가드너의 <생명우주>(까치, 2006)이다. 제목에서 이미 암시되는 것이지만, 책은 "우주론적 관점에서 생명의 비밀을 파헤쳐 보는 저작"이며,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의문을 생명 탄생에 대한 의문으로 연결하여 제기했다"고 한다. 순수천문학 책이 아니어서 유감이지만, 나로선 그런 책을 읽을 만한 수학적 지식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대략 이 정도가 마지노선이다. 저자 자신이 다양한 경력을 지난 과학저술가여서, 일반인의 눈높이를 고려했을 법도 하고.

"우주론과 진화론을 연구하는 복잡성 이론가"로 소개되고 있는 저자는 "우주와 생명을 설계하고 창조한 초월적인 존재인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아무 뜻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우주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처럼 지능을 가진 생명이 과연 우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한 축제에 등장하는 하찮은 배우에 불과한 것일까?"란 의문들에 대해, "초연적인 현상에 자연적인 설명을 제공해 주는 카오스와 복잡성 이론을 동원하여 그 답을 제시한다. 그 답은 이른바 "이기적 친생명 우주(Selfish Biocosm)" 가설이다. 지능을 가진 생명이 무작위적인 사건에 의해 출현한 것이 아니라, 우주적 규모에서의 창발과 진화, 그리고 죽음과 부활의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났다는 것."

이쯤이면 과학과 SF를 넘나드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무튼 "물리학, 우주론, 생물확, 생화학, 천문학, 복잡성 이론 등 다양한 과학 분야를 넘나드는 논지로 기존의 창조론과 진화론의 이분법 안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생명의 비밀에 관한 새로운 논쟁점을 제시한다"고 하니까 속는 셈치고 한번 읽어봄 직하다. 저명한 물리학자 겸 과학저술가 폴 데이비스도 저자 제임스의 설명을 '정말 굉장하다!'고 평하는 것으로 봐서 아주 엉터리는 아니라고 봐야겠다.  

사실 '엉터리'란 것은 과학과 정치가 연루되거나 결탁하면서 곧잘 발생한다. '정치는 과학을 어떻게 유린하는가'란 부제를 단 <과학전쟁>(한얼미디어, 2006)은 시사적인 읽을 거리이다. "책은 정치가 과학에 어떻게 개입하는가, 정치가 어떻게 제대로 된 과학 발전의 길을 가로막는가를 미국의 사례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줄기세포 연구, 비만, 흡연, 낙태, 미사일 방위, 환경문제, 기후변화 등 과학적 정보와 연구가 중대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논쟁 사안에서 정치적 신념을 위해 과학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악용하는 행위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 여러모로 미국이란 케이스는 타산지석감이다.

과학의 또다른 아킬레스건은 '상품화'이다. '생명공학시대 인체조직의 상품화를 파헤친다'는 부제의 <인체시장>(궁리, 2006)은 바로 이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신간이다. 공저저의 한 명인 도로시 넬킨의 관점은 <대중과 과학기술>(잉걸, 2001)에서 이미 소개된 바 있다고.

사실, ""나는 한때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바코드가 찍힌 생명공학시대의 신상품이 되었다." 혈액, 골수, 피부, 정액 등 인간의 생체물질이 과학적 연구, 상업적 이익 등을 위해 악용되는 시대에 대한 지은이들의 비판"을 다루고 있다고 하면 작년 여름에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아일랜드>를 막바로 떠올려볼 수 있겠다. 그때만 하더라도 황우석 교수팀의 젓가락 기술은 대한민국 과학의 '자부심'이자 동시에 미래 생명공학시대(안티-유토피아)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었다(인간이 앞으로 '젓가락질'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그 이후에 우리가 경험했던 사태는 '인체시장'과 '과학전쟁'의 복합적 종합이었다. 해서 이 주제에 관하여 한국인들만큼 잘 '계몽된' 국민은 전세계에 없을 거라 짐작되지만, '복습'을 원한다면 밑줄 그어가며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기운을 좀 차리고 '자연'에서 '문화'로, '문화의 전장'으로 다시 들어가 본다. 영국의 대표적인 문화연구자이자 이론가 스튜어트 홀 입문서 <지금 스튜어트 홀>(앨피, 2006)이 출간됐다.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다섯번째 책이다(같이 나온 네번째 책이 <문제적 텍스트 롤랑/바르트>인데, 바르트 얘기는 생략하도록 하자). 홀의 책들은 간간이 소개된 바 있는데, 그의 논문들을 편역한 <스튜어트 홀의 문화이론>(한나래, 2006)이 이제까지는 '정본' 구실을 해왔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이와 단짝이 될 만하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영국 신좌파 그룹에 속해있던 1950년대 이후로 스튜어트 홀의 전방위한 사상적 범위와 연구, 그리고 그에 따른 성취를 요약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문화연구의 주창자로 부상한 것 이외에도, 1980년대 그가 촉발시킨 대처주의와 인종주의에 관한 논쟁, 1990년대 이후의 정체성·디아스포라·민족성에 관한 그의 발언 등을 살핀다."

그럼으로써 "스튜어트 홀의 방대한 연구를 역사적·문화적·이론적 문맥 속에 위치시켜 문화의 정치성,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문제, 정체성의 정치학 등으로 재구성했다. 또한 그가 남긴 지적 유산에 대한 비평가들의 견해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지금껏 저서를 한권도 쓰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사상을 지속적으로 수정·갱신해 온 홀의 핵심 사상과 영향력을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러니 비단 홀 입문서로뿐만 아니라 문화이론('문화적 유물론'이라고도 지칭되는)에 대한 입문서로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

 

  

 

 

'문화연구'로 검색되는 책들은 너무 많기에 생략하기로 하고, 스튜어트 홀이 주도했던 영국의 문화연구와 문화유물론에 대한 소개서 두 권, <문화유물론의 이론적 전개>(현대미학사, 2005)와 <영미 문화연구>(문화과학사, 2000) 정도만을 따로 적어놓기로 한다. 물론 홀 등이 참여한 '교과서' <현대성과 현대문화>(현실문화연구, 2001)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더불어, 최근에 대학에서 각광받고 있는 '문화콘텐츠학'이라는 게 실상은 '이데올로기학'으로서의 '문화연구'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을 '거세'한, 그러니까 '뇌관'을 빼놓은 연구라는 것 정도는 상식으로 해두자. 언제부터인가 대학에서의 학문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가축화되었다(이런 현상이 '큰 목소리'로 상쇄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네번째 책은 우리를 또다른 전쟁터로 안내한다. 마크 몬모니어의 <지도전쟁>(책과함께, 2006) '지리학' 분야의 책으론 상당히 오랜만에 꼽아보는 듯하다. 그간에 <인문지리학의 시선>(논형, 2005) 등의 책들이 출간됐다. '메르카토르 도법'을 둘러싼 '전쟁'을 다루고 있는 책의 내용은 이렇다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지도가 구체인 지구를 평면 위에 재현한 것인 까닭에 왜곡이 생기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지도들이 '메르카토르 도법'을 따르고 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페터스 도법'이라는 또다른 도법이 등장하여 꾸준히 메르카토르 도법을 공격해 왔다고 한다. 2001년 방송된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 등장한 페터스 도법을 따른 지도가 그 예. 이 책이 말하는 '지도전쟁'은 바로 이 도법 사이의 오랜 논쟁을 뜻한다. 400년 전 메르카토르 도법을 만든 네덜란드의 지도제작자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는 어떤 인물이었고, 이 도법에 담긴 세계관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해서 지금의 가장 대표적인 평면지도 도법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 등을 본격적으로 상세히 파헤친다."



메르카토르도법의 세계지도라는 건 사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지도이다. 그리기에도 가장 쉬워서, 지리 시간에 한번쯤은 가로줄, 세로줄을 그어놓고 지리부도의 지도를 베껴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모눈종이에다 그렸던가?). 그때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자연'으로서의 도법이었지만, <지도전쟁>은 그 도법이라는 '문화'를 둘러싼 오랜 논쟁을 다룬다. 이 도법에 담긴 '세계관'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이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순진한' 학생시절 또한 잠시 도마에 오르게 되는 건 아닐는지?

 

 

 

 

최근에 유독 주목할 만한 평전들이 많이 출간됐다. 바사리, 사드, 알카포네, 노신, 파스퇴르 등이 물망에 올라 있는 평전들인데, 내가 다섯번째 책으로 고른 건 롤랑 드 몰레가 쓴 <조르조 바사리>(미메시스, 2006)이다. '희소성'을 고려했기 때문에 선택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메디치가의 연출가'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16세기의 이 걸출한 미술가이자 미술사가인 바사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저자 야코프 브르쿠하르트가 "바사리와 그의 너무나도 중요한 저서가 없었던들, 북부 유럽, 더 나아가서 유럽 전체에는 아직도 미술사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부르크하르트가 언급하고 있는 책은 흔히 <미술가 열전>이라고 줄여서 불리는 책으로 이미 오래전에 탐구당판으로 완역본이 출간된 바 있고, 축약본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한명출판사, 2000)도 나와 있는 책이다(이 책은 몇달 전에 구입한 바 있는데, 저자가 '바자리'로 돼 있다. 내가 본 다른 미술책들에도 '바자리'로 표기돼 있는데, 어느쪽이 맞는 표기인지 모르겠다).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에는 1400년부터 186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구 미술문화를 주도해온 '재현/모방' 패러다임을 아예 '바사리 내러티브'라고 부름으로써 바사리의 미술사적 의의를 다시 확증해주고 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철학으로 치자면, 그가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서양철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 동양철학에서 주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버금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소개에 따르면, "16세기 이탈리아의 미술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사리는 1550년 출간된 <미술사 열전>으로 서양 미술사의 거대한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르네상스 전후기 이탈리아 미술 전반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르네상스'와 '고딕' 등의 표현을 처음 사용하는 등, 미술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명한 저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조르조 바사리에 대한 평전으로서, 미술사서를 써낸 그의 면모 뒤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가와 건축가로서의 활약상에도 주목하여 그의 생애를 종합적으로 그려낸다. <미술가 열전>을 써낸 과정은 물론,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의 천정화, 우피치 궁 등의 비롯한 프레스코 대작들과 건축물을 짓고, 피렌체 공국의 문화예쑬 사업을 주도한 행정가로서의 면도 있었음을 보여준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예술과 정치, 사회적 맥락을 자세히 묘사함과 동시에, 회화, 건축, 장식 작품, 화가, 조각가, 행정가까지 다양한 정체성을 넘나들며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 바사리의 심리와 인간적 면모를 흥미롭게 그렸다."

 

 

 

 

사실 책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의 나의 참견이나 간략한 소개보다 미술사학자 노성두의 서평을 참조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겠다. 한겨레(06. 04. 28)에 실렸던 서평을 대략 옮겨오기로 한다(서평자는 르네상스 서양미술에 관한 국내의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많은 저역서를 갖고 있다).

-르네상스나 미술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바사리는 포기할 수 없는 전범이다. 처음 바사리를 만났을 때 나는 한 마리의 행복한 종달새가 된 느낌이었다. 종달새는 단박에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시골목동 조토가 곱돌을 들고 너럭바위에 양의 모습을 쓱쓱 긁어대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아르노강을 따라 신나게 날아올라서는 괴짜 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대성당의 둥근 지붕을 얹기 위해 석재를 들어 올리는 거중기 그늘 아래로 찾아들어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엠폴리를 거쳐 빈치의 외딴 마을 무성한 올리브 나뭇가지에 앉아서 소년 레오나르도가 짓궂은 미소를 머금으며 아버지를 놀라게 할 끔찍한 악룡을 방패에 그려 넣는 것을 훔쳐보며, “이제 미술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던 것이다.



-바사리는 1550년에 ‘아레초의 화가 조르조 바사리가 토스카나어로 저술하였으며, 그들의 예술에 대한 유용하고도 필요한 서문이 포함된, 치마부에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는 탁월한 이탈리아 건축가, 화가, 조각가들의 생애’라는 아주 긴 제목의 책에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정리한 전기 작가이다. 책 제목이 너무 길어서 보통은 ‘예술가 전기’라고 줄여서 부른다. 고대 이집트부터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중세를 거치면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출몰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기록한 전기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작품은 다락같이 떠받들었어도 정작 작품의 생산주체인 예술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찬밥 신세였던 것이다.

-가령 서기 1세기 로마의 군인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기억할 만한 조각가, 건축가, 화가들의 작품과 일화를 열거한다. 그러나 철광석의 채굴과 정련을 다루면서 청동조각가를 언급하고, 광물의 성질을 조사하다가 안료를 채취하는 법과 화가들의 일화를 슬쩍 건드리고 가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바사리는 정당한 의미에서 최초의 미술사 기록자이자 ‘미술사학의 아버지’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사리의 빛나는 저작이 없었더라면 유럽의 미술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독일 미술사학자 부르크하르트의 말을 굳이 덧붙이지 않더라도.



-이 책은 바사리의 삶을 다룬 평전이다. 바사리의 저작이 예술가가 쓴 예술가들의 이야기라면, 이 책은 전기 작가에 대한 전기인 셈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관념적 꼬리 물기가 미술의 재현 형식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잘 알려진 대로 매너리즘 시대였다. 바사리가 미켈란젤로의 제자이자 16세기 토스카나의 예술에 매너리즘 조형의 세례를 쏟아 부었던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글쓴이 롤랑 르 몰레는 가장 적절한 평전의 대상을 골랐다고 불 수 있다.

-바사리의 업적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쉽지 않다. 소묘, 회화, 프레스코와 건축에 이르는 작품목록은 훑어보기에도 기가 질린다. 완전한 알레고리의 우주로 불리는 카사 바사리의 장식에 숨겨진 수수께끼는 지금도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전기 작업에 등장하는 고딕양식, 비잔틴 양식, 매너리즘, 소묘 예술, 단축법 등 주요 미술용어들은 훗날 양식사를 밝히는 등불이자 미술사학의 징검다리가 되었다. 고대 예술의 부활, 곧 르네상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리나시타’를 사용한 것도 바사리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바사리는 왜 ‘부활’을 필요로 했을까? 그가 꿈꾸었던 부활의 참뜻은 무엇이었을까?

-바사리는 위기의 시대를 살았다. 이탈리아의 가장 참담한 역사를 목격하고 인정해야 했던 불운한 운명이 이탈리아 예술의 운명을 밝히는 책을 써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들린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종교적 반목, 터키와 스페인의 무력분쟁, 합스부르크와 부르봉 사이의 정치적 긴장이 앞날을 알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위기상황에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수백 년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정파를 나누어 모이고 흩어지기를 되풀이했다.

-1527년 로마 대약탈 이후, 예술가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분열된 도시국가들을 통합하고 단일국가의 기틀을 형성하는 일은 차치하고 당대를 호령하던 천재 예술가들이 새로운 후원자를 찾아서 조국을 등지고 유랑을 시작하는 막바지 상황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바사리의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바로 이 순간 바사리는 부활을 꿈꾼다. 그것은 지난 콰트로첸토의 은성했던 황금시대에 관한 희미한 기억이었다. 현실의 역사가 절망을 노래하는 후렴구의 끝자락에서 예술가의 지친 영혼을 이끈 것은 예술가의 삶을 기록하는 전기 작업이었다. 이탈리아의 예술을 기록하고 망각의 늪에서 건져내어 기억의 전당에 헌정하는 작업은 이탈리아의 입술에 예술의 입김을 불어넣어 사위어가는 영혼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무모한 시도이기도 했다.



-예술을 통해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터 잡기의 삽질은 고대 로마의 모범에서 출발한다. 바사리는 고대의 폐허로부터 빛나는 재건을 음모했던 콰트로첸토의 예술정신을 잊지 않았다. 고대 로마는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선조들이 남긴 유산이었다. 르네상스의 장인들이 고대 예술의 모방을 통해 중세의 ‘야만적’ 양식을 극복하는 과정은 하나의 이탈리아라는 정치적 이념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상징적 지표와 다름없었다. 바사리는 고대를 예술의 완전한 실현으로, 중세를 예술의 죽음으로, 그리고 르네상스를 예술의 새로운 부활로 읽는다. 조형예술의 역사서술에 종교적 구원사의 형식을 덧씌운 것이다.

-이 책은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이자 초유의 예술가 전기를 완성한 바사리의 삶의 자취를 유년기부터 임종 그리고 무덤에 누운 뒤 후대의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더듬는다. 여기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바사리의 삶의 방식이다. 천재와 예술적 영감의 가치를 가장 높게 쳤던 매너리즘 시대에 바사리는 근면과 성실을 존재의 덕목으로 삼았다. 비웃음을 사기 딱 좋았을 것이다. 바사리의 인문적 토양은 무수한 기록과 증언의 수집과 정리에서 돋보인다. 수집된 정보들이 예외 없이 그의 두 눈과 두 다리를 통해서 검증된 다음에야 수록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르네상스 예술의 굳은 혀를 풀어준 것은 부지런함과 지칠 줄 모르는 발품이었던 것이다.

06. 05. 05-06.

P.S. 치프킨의 <바덴바덴에서의 여름>을 비롯한 몇몇 소설들이 소개대상에서 빠졌는데, 조만간 따로 페이퍼를 쓰거나 리뷰를 쓸 예정이다. 할말은 많지만, 언제나 그렇듯 생은 짧다. 책에 대한 '수다'를 떠는 데만으로도, 하물며 '학문'임에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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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xov 2006-05-06 00:56   좋아요 0 | URL
노신 스페샬 해주세요 .........-.-

로쟈 2006-05-06 01:00   좋아요 0 | URL
노신의 평전이 나온 건 알고 있지만 소설 말고는 제가 별로 읽은 게 없고, 또 따로 소개가 필요한 작가도 아니기에 제쳐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노신에 대해서 저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스페샬'로 다뤄주시길 저도 고대해 보겠습니다...

기인 2006-05-13 19:53   좋아요 0 | URL
'현대성고 현대문화' 오타입니다 ^^; 스튜어트 홀은 아는 선배가 번역해서, 읽어볼 생각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 국문과는 많이 보수적이라서, '문화' 쪽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이 있지만, 원생들은 이를 뚫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 아카데미, 제도라는 것이 답답할 때가 많은데,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하고만 있습니다.

로쟈 2006-05-13 20:49   좋아요 0 | URL
좋은 지적이십니다.^^ 국문과도 요즘은 문화콘텐츠학과로 개명하는 경우가 있던데, 대세는 아닌가 보군요. 홀의 책은 원서도 갖고 있어서 이 참에 읽어볼 생각으로 있습니다...

2007-09-21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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