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칼럼들을 둘러보다가 레디앙에서 눈에 띄는 글이 있기에 옮겨온다. 필자는 우석훈 교수인데, 한겨레의 북리뷰 섹션에도 칼럼을 연재하는 것으로 안다. 최근 들어 부쩍 자주 눈에 들어오는 필자이다. 알라딘의 저자 프로필을 보면 파리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초록정치연대의 정책실장으로 활동중이라고 한다. 작년부터 출간된 저서들이 눈에 띄며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론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2006)가 있다(이미 이런 소개가 필요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분이긴 하다). 레디앙에는 그의 칼럼이 연재되고 있는데, 프로이트(프로이드)의 (비관적) 문명론을 다룬 이번 칼럼에서는 필자의 유학생활도 슬쩍 엿볼 수 있다(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레디앙(06. 11. 07) "프로이드의 우울한 유언을 생각하면서"

1.
사람들이 가끔 왜 나에게 프랑스로 유학을 갔느냐고 물어보면 이런저런 얘기들로 말을 돌리지만 ‘운동권 학점’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기는 어려웠다는 것이 진실일 것 같다. 그렇지만 프랑스에 가서 좋았던 점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해보면, 사실 별로 없다. 하지 않았어도 좋을 고생을 더 많이 했고, 원래도 비주류인데 평생 비주류로 살 구실을 찾았다고 하면 오히려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어두운 기억 한 구석에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수학을 많이 공부할 수 있었고, 인류학을 공부할 수 있었고, 또 프로이드를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을 꼽을 것 같다. 내가 프로이드를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은 스물 세 살 때의 일이다. 후기 프로이드의 저서는 동구가 무너지던 시절에 그나마 마음을 붙일 수 있던 거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던 셈이다.



동구가 무너지면서 서울에도 충격이 심했다고 하지만 파리는 심리적 거리가 더 가까웠기 때문에 사회와 대학가에 던져진 충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 때 나는 수학 문제 푸는 것과 독서로 허무한 마음을 달래면서 살아갔고, 보통의 20대가 그렇듯이 내 눈으로 세상을 이해해보려고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 시절에 알뛰세나 푸코가 서울에서는 한참 유행했지만, 당시 파리에서는 별로 그렇지는 않았다. 데리다 열풍이 지금도 서울에서는 만만치 않지만 실제로 내가 지냈던 90년대 초반의 프랑스 학계 특히 좌파 학계가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듯이 후기구조주의의 단일한 흐름과 대오를 형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EU 통합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놓고 통합파인 사회당과 비통합파인 공산당이 논쟁 중이었고, 60% 이상의 핵발전 국가인 프랑스의 에너지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당과 녹색당이 논쟁 중이었다. 그 와중에 “개인의 복귀”를 외치는, 나름대로 신자유주의 철학이 화려하게 등장하던 그런 시기였다. 그 와중에 프로이드를 읽던 나는 서울에서나 파리에서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이었고, 주류와는 상관없는 외톨이의 길에 혼자 서 있던 셈이다.

장장 2년에 걸친 프로이드 독서가 끝났지만, 나는 결국 프로이드로 박사 논문을 쓰지는 못했다. ‘맑스와 프로이드’, 이런 주제는 지나치게 우파들이나 좌파들을 모두 자극하게 되는데, 1년을 다시 헤매다가 조안 로빈슨, 로자 룩셈부르크, 그리고 힐퍼딩 같은 고전들을 끄집어내서 겨우 박사논문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프로이디안'인가라는 질문을 가끔 나에게 한다. 나는 프로이드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프로이드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토템과 타부>에서 <동일화>를 거쳐 <문명의 병>까지 이어지는 후기 프로이드 저작은 아직도 풍성한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후기 프로이드는 너무 염세적이다. 열심히 읽다보면 자살에 아주 적합한 핑계거리를 찾아내기 딱 좋은 책들이다.

‘평화’에 관한 단어가 요즘은 유행인가 보다. 그런 말을 많이 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평화라는 말은 간디에서 유래한 생각이 강하다. 물론 모든 평화파가 간디주의자로 환원되지는 않지만, 하여간 최근의 유행은 간디식으로 해석한 “용감한 자들의 선택”이라는 것이 평화 혹은 내 표현대로 하면 ‘극렬 평화주의자’들의 기본 뿌리를 형성한다. 지금 탁발순례 중인 도법스님의 경우가 그렇고 녹색평론의 많은 저자들도 간디의 생각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뿌리대로 올라가면 서양 근대 사상에서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면에 꺼낸 사람은 베트란드 러셀과 지그문트 프로이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사람 다 평화의 사상가들은 아니지만, ‘반전’이라는 흐름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들이다. 러셀과 반전시위를 같이 했던 사람들이 냉전 시기에 핵위기로 달려가던 미국의 그 심장부에서 반전 시위를 하면서, 스퀘어 가든을 매웠던 사람들이다. 그 당시의 반핵이라는 흐름의 후반부로 가면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따로 있지는 않았던 것 같고, 종교와 세속적인 힘들이 모두 “핵폭탄을 없애라!”라는 구호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일종의 ‘공멸’에 대한 두려움들이 존재했던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 중에서 가장 심각한 논쟁을 이끌어내고 사회적 변화까지 만들어낸 영화를 꼽으라면 난 <크림슨 타이드>를 꼽는다. 존 웨인으로부터 시작된 미국 극우파의 마초들 중에 으뜸 마초라면 역시 잠수함 함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에는 핵잠의 함장이 미사일 발사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잠수함이 작전을 나간 동안에 교신이 두절되었고, 통신교란된 상태에서 접수된 전문은 해독이 불가능하다. 미사일을 발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함장과 부함장 사이의 이 작은 함상 쿠테타에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운명이 사실상 달려 있는 셈이다.

해군으로부터 항공모함까지 아낌없는 지원을 받았던 <탑건>과는 달리 <크림슨 타이드>는 해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해군에서는 정 안되면 시나리오의 변경이라도 요구를 했다고 하는데, 하여간 해병대를 가지고 있는 미해군의 최고 엘리트들이 근무하게 되는 핵잠에서 벌어지는 선상 소요사태는 간단하지만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진 셈이다.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 해 핵잠 함장에게 주어지던 핵미사일 발사권이 사라졌다. 냉전의 마지막 시대는 한 사나이가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는 공멸의 직전에 서 있었던 셈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2.
이 공멸에 대한 얘기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했던 사람이 바로 프로이드이다. 거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문명의 병>의 결론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결국 인류는 서로 전쟁으로 죽이면서 종말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생태주의자들은 보통은 지구온난화 혹은 기타 자원과 환경의 문제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런 걸 조금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희망론이 있기도 하지만, 근본주의에 가까워질수록 종말론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 이런 점에서 맑스나 레닌과 같은 “언젠가는 모든 것이 해결된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과 프로이드나 생태주의자들은 생각이 좀 다르다. 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재림’에 의한 ‘구원’의 철학과 종말적 염세론의 기본 시각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어려운 생각은 아니지만, 프로이드의 얘기가 좀 심각한 것은 자본주의적 ‘노동과정’에서 그 근거를 끌어오기 때문에 생각보다 골치 아프다. 가만히 보니까 사람들이 ‘생산’이라고 하는 일이라는 것이 다 뭔가를 찢고 쪼개고 부수는 일이기 때문에 일을 오래 하다보면, 결국 ‘파괴적 본능’이 강해질 것이라는게 프로이드 의 기본적인 생각인 셈이다.(생산에 대해서 시비를 붙은 사람은 루마니아 출신의 경영학자인 조르죠스큐-뢰겐이라는 사람이 있기는 했었다.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는 맑스나 스미스가 이야기한 ‘생산’이 엔트로피라는 눈으로 보면 결국 에너지의 순수한 소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일하는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경구 위에 세운 노동의 사회에서 프로이드의 지적한 얘기가 좀 생뚱맞기는 하다. 신성한 노동이 결국은 ‘파괴의 본성’을 일깨우고, 이렇게 사람들이 점점 더 파괴와 살육에 익숙해져서 인류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라니... 그러나 하여간 프로이드는 세상을 그렇게 보았고, 그게 그의 마지막 결론이니까 학자로서의 프로이드의 마지막 결론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섹스나 사랑 혹은 최면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과 살육에 대한 예언인 셈이다.

3.
프로이드는 연애는 정말 못하는 사람인데, 말년에 루 살로메에 대한 짝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했다. 유럽의 지성 중에는 살로메가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이 가끔 있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도저히 와닿는 바가 없는 말이기는 한데, 프로이드의 결론을 살로메와의 짝사랑과 연결시키면 좀 재밌는 얘기가 나오기는 한다.

프로이드가 공식적으로 맑스에 대해서 지적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대체적으로 똑똑한 사람이라고 본 것 같다. (이건 케인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프로이드는 혁명은 당연한 것이고, 언젠가는 노동하는 사람이 주인이 되어서 더 이상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사람들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도 열렬한 혁명의 지지자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프로이드가 맑스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불만은 혁명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라지고 나더라도 노동 과정에 대한 변화가 특별하게 생겨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폭력을 재생산하는 노동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점이 프로이드의 걱정인 셈이다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별 걸 다 걱정한 셈이다.) 프로이드의 제안은 ‘사랑의 노동’인데, 별 특별한 건 아니고 부부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면 상황이 조금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프로이드의 경우에는 같이 일할 수 있는 이 사람이 루 살로메였기를 열렬히 희망하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김빠지는 얘기 덕분에 인류와 사회의 기원에서 종말에 이르는 프로이드의 거대한 생각은 “사실 별 볼 일 없다”는 걸로 완전히 폄하되었다. 후기 프로이드는 철학사에서나 인식론에서나 완전히 비주류 중의 비주류이고, 그저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심리학자 정도로 이해되게 되었다.

4.
“죽어라고 일하면 행복해진다”는 사회적 테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종종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맑스의 사위였던 폴 라파그(Paul Lafargue)라는 사람인데, 감옥에서 '노동권'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등장할 때 여기에 불만을 품고 '게으름의 권리'에 대한 책을 썼다. 우연한 일이지만 베트란드 러셀도 비슷한 책을 쓴 적이 있다(*'라파르그'와 러셀의 책은 모두 번역돼 있다).

 

 

 

 

<게으름의 권리>라는 책은 오랫동안 잠 자고 있다가 68혁명 이후에 높아진 임금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던 70년대 초반 다시 복권되었고, 이 때 서문을 달았던 사람이 바로 알랭 리피에츠이다. 프로이드는 부인 혹은 애인과 같이 일을 하면 그래도 노동이 좀 행복해지고, 사람들의 폭력에의 욕구가 발현되는 것이 잠시 정지될 것이라고 생각한 셈인데, 이건 좀 "글쎄올시다" 되겠다. 아마 부인과 직장에서도 붙어있다가 일과 가정 모두 파탄날 사람이 없지 않을 것이고, 부인 몰래 직장에서 바람 피는 사람들의 인생도 내가 짧게 지켜본 것으로는 행복하게 된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든 프로이드도 엄청난 낭만파는 낭만파다. 혁명에 관한 얘기가 별 볼 일 없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부인과 같이 일할 수 있게 해주라고 할 정도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프로이드가 없어지기를 바랬던 전쟁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후 200년이 흐른 뒤 사람들은 더 위험한 일이라도 시켜주기만을 바라는 세상이 열리게 되었다. 프로이드에서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스에 이르기까지 1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는 철학이나 문학을 나름대로 시도했다는 점이다(여담이지만 블랙 사바스의 모티브도 반지의 제왕에서 나온다). 묘하게도 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나서는 전쟁에 대한 반성보다는 “부국강병”의 이데올로기가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뭐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5.
프로이드가 다시 복권되는 일이 있을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게다가 줄기세포도 모르던 시절의 어느 촌놈 의사가 사회학과 인류학 그리고 철학 같은 걸 너무 하고 싶어서 의사생활 때려치고 호주의 캥거루에 얽힌 신화부터 다시 공부하면서 혼자 생각해낸 얘기들이라서 화려한 철학사에 대한 얘기도, 화려한 인문학에 관한 얘기도 프로이드에게는 없다(*그런 이유라면 소위 '고전들'이 굳이 읽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미건조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전설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찬 프로이드가, 게다가 ‘남근주의자’로 몰려 마초들의 두목처럼 비쳐지는 지금, 프로이드가 다시 복권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필자가 라캉 이후의 정신분석학에 관해서는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듯하다. 전집이 출간된 지 얼마되지 않은 한국에서만 하더라도 프로이트는 이제야 읽히기 시작하는 것 아닌가?).

프로이드가 촌놈이라면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촌놈이 바로 파레토였다. 근대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신고전학파 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여간 그런 경제학의 기본은 왈라스로부터 나온다. 사람들은 안 믿겠지만 왈라스도 사회주의자였고, 그래서 하에이크가 왈라스의 일반균형 이론이 바로 사회주의 이론이라고 입만 열면 “그건 아니야”라고 외쳤었다. 그 왈라스가 스위스의 로잔느 대학에 경제학과 학과장으로 자기 후임으로 이탈리아까지 가서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파레토인데, ‘파레토 최적’의 그 파레토가 또 당시의 유명한 사회주의자였다.

파레토가 스위스 기슭에서 20년 이상 혼자서 연구하다가 드디어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의 비밀을 풀었다고 의기양양하게 산에서 내려와서 파리에 왔는데, 프로이드의 책들을 보고는 한탄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쓰려고 했던 말들이 이미 다 책으로 나와있는 걸 보고 파레토가 낙담을 했었다고 한다.



6.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질 때 혼자 틀어박혀서 읽기 좋은 책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로이드의 <문명의 병>이다. 가만히 보니까 인류는 죽어라고 일 해서 결국은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면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어느 한 노학자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해보면 가슴 한 구석에 그야말로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나오게 된다. 몰락한 집에 줄줄이 달린 형제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생물학과에서 의사로 전업하고 개업했던 그 집안의 아들이 전쟁을 겪고, 독일 사회와 유럽 전역의 전쟁의 광기로 달려가고 있던 시절을 살아내면서 유언 대신에 세상에 남긴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마약이 있지만,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출발한다.

한국은 마약에 홀린 것처럼 ‘화페물신론’에 흠뻑 빠져있고, 노동의 의미와 삶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보다는, 그야말로 월급과 승진 혹은 ‘안정성’이라는 그게 그 말인 얘기에 흠뻑 빠져있다. 노무현 정부가 “2만불 경제”를 외치던 그 시절에 그게 문제 있다고 얘기하던 인문학자가 아무도 없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했다. 돈이 인류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나?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우석훈 / 성공회대 외래교수)

06. 11. 09.

P.S. 필자가 언급하고 있는 <문명의 병>은 아무래도 <문명 속의 불만>(열린책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원제는 'Das Unbehagen in der Kultur'(1930)이어서 <문화의 불안>(박영사, 1974)으로 번역되기도 했었고, 영역본의 제목은 <문명과 그 불만(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이다. 불역본의 제목이 아마도 '문명의 병' 정도인 모양이다(찾아보니 'Le Malaise dans la Culture'이다). 짐작에 필자는 프로이트의 한국어판 전집에는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참조하지도 않은 듯하다. 그의 프로이트는 여전히 스물 세 살때 파리에서 읽은 프로이트이겠다.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질 때 혼자 틀어박혀서 읽기 좋은 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바로 그 책은 <문명 속의 불만>이 아니라 'Le Malaise dans la Culture'인 것이다. "그 와중에 프로이드를 읽던 나는 서울에서나 파리에서나 여전히 시대착오적이었고, 주류와는 상관없는 외톨이의 길에 혼자 서 있던 셈이다."란 고백에서 알 수 있지만, '문명의 병'을 다루고 있는 이 칼럼은 (흥미롭지만) 한 지식인의 '나르시시즘적 고백'으로도 읽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일 하나가 와 있어서 열어보니 창비주간논평이다. 북핵문제를 다룬 논평이 뜨길래 그냥 지나칠까 했는데 사회학자 김종엽 교수의 논평이 눈에 띄었다. '공적 대의와 사적 행복 사이에 길을 내자'가 제목이고, 80년대 학번으로서 갖고 있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털어놓고 있어서 옮겨놓는다. 

 

 

 

 

뒤르켐 전공자인 김교수의 책으론 처녀작인 <웃음의 해석학, 행복의 정치학>(한나래, 1994)를 읽은 기억이 있다(이런 인문서 독자가 3천명밖에 안된다는 얘기가 서문에 나오는데, 그나마 좋았던 시절의 얘기 아닌가? 요즘은 인문서는커녕 웬만한 소설의 초판을 3천부 찍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복사해서 갖고 있었는데, 그게 책으로 나온 것이 <연대와 열광>(창비, 1998)이다. <시대유감>(문학동네, 2001)부터는 갖고 있지 않다.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새물결, 2002)는 너무 비싼 책이다. 대신에 내가 갖고 있는 건 그의 번역서 <토템과 타부>(문예마당, 1995)이며, 기억에 <사회학의 명저 20>(새길, 2001)에 실린 <자살론>에 대한 해설은 아주 일품이었다(그는 뒤르켐과 프로이트에 대해서 가장 맛깔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아래의 논평은 80년대 학생운동권 세대의 빛과 그림자를 그려보이며 자기반성을 시도하고 있다.

창비주간논평(06. 11. 07) 공적 대의와 사적 행복 사이에 길을 내자 

최근에 권인숙 교수가 쓴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읽었다.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 군사화의 양상과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책인데, 몇가지 점에서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바가 있었다. 우선 우리의 생활양식과 습벽 속에 깃든 군사주의가 분단체제에서 유래하는 것이기에, 권교수의 분석이 분단체제와 일상생활의 내적 연관을 밝히는 뜻깊은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군사주의가 남녀간의 불평등이나 가부장제 문화의 중요한 재생산고리라는 점을 떠올리자 여성학자가 이런 분석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른 한편 남성 학자들이 이런 작업을 해내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화된 군사화가 마음의 습벽에 가장 강하게 영향을 미칠 집단이야 역시 군복무를 한 남성들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점보다 더 내게 생각거리를 던져준 것은 80년대 학생운동을 다룬 장이었다. 권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이 보여주었던 격렬한 전투성에 대해 새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기존의 설명들은 조금씩 논리를 달리하긴 하지만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학생운동의 전투성을 정당화하는 데 반해 권교수는 그런 설명들의 헛점을 짚으면서 80년대 학생운동세대에는 누가 적인지를 지목해주면 그 적에 대항해서 공격적인 전투성을 표현할 성향이 확립되어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 논지를 따라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반공글짓기를 통해서 북한을 맹렬히 공격했던, 그래서 상을 타기도 했던 초등학생이 80년대 대학생활을 거치며 열성적인 운동권이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이 어린시절 받았던 교육내용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그것에 대해 분노하기조차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시위대 앞줄에 각목을 들고 섰을 때 그는 반공글짓기를 통해서 표현되었던 자신의 공격성, 그러니까 비록 동원되고 부양된 것이라 해도 종래 자기 안에 침전되어 성향으로 자리잡아간 공격성에 대해서는 성찰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나의 관심을 끈 이유는, 학생운동세대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면서도 실은 그들이 타도하려는 대상이 만들어낸 문화적 패턴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단지 학생운동의 전투성에 한정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오히려 그 문제는 그 세대의 생활양식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며,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문제들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체제의 모체는 87년 민주항쟁이고, 그런 뜻에서 우리 사회체제를 87년체제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대거 참여함으로써 그 체제를 수립하는 데 주도적이었던 세력은 386세대라고 불리는 학생운동세대이다. 이 세대는 해방후 한국사회에서 대중적인 동시에 대규모의 사회운동을 실천하고 학습한 최초의 세대이며, 민주적 가치에 대한 추구와 신념이 뚜렷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 중 일부는 노무현정부 시기에 국가권력의 중심부에 도달했으며, 사회영역에서도 빠른 속도로 중심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의 중심세력이던 그들이 사회 중심부로 진입했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이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되지도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의 하나는 현재 사회의 중심부에 진입하고 있는 이 세대의 생활양식과 문화 속에 제대로 성찰되지 않았고 그래서 청산되지 못한 문화적 보수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들의 초기 사회화과정을 지배한 것은 박정희체제였으며, 그런만큼 권인숙 교수가 지적한 군사주의를 비롯한 박정희체제의 부정적 유산과 그것이 부양한 욕망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이 만일 그런 부정적 유산, 예컨대 가부장적 문화와 관행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났다면, 그것은 자기 욕망과 마음의 습속을 깊이 성찰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수립하는 데 힘썼던 민주적 제도가 불러온 사회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민주적 규범에 근거한 요구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불편한 것을 수용하는 태도만 해도 그 이전 세대에 비하면 꽤 진보한 것이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요구와 압박이 없는 영역에서는 기존의 문화적 습속이 여과 없이 그들의 생활 속에 자리잡았다. 우리 사회 성원의 머리 한구석을 짓누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주택문제다. 그런데 모두들 어느 지역 무슨 단지 몇평형 아파트를 살지, 그것이 얼마의 재산가치를 가졌는지, 언제 은행융자를 받을지에 대해서만 고심했을 뿐, 어떤 집에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지난 십여년간 공적 논의에 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들 집의 구조와 내부에 대한 문화적 표준을 정해준 것은 아파트 공급업자들이 제공한 모델하우스였을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존재의 다양함을 표현할 기회를 잃었고 그럼으로 해서 그저 이웃과의 사소한 차이에 부심하고 집값 변화에 가슴이 벌렁거리는 사람들이 되었다.


정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세대가 자기 집도 못 바꾼 형국인데 당연히 이런 상황은 불만족을 낳는다. 그래서 일부는 전원주택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곧 여유층의 재테크로 변질되고 주택업자의 사업아이템이 될 뿐이다. 진정성을 가지고 제 손으로 황토집을 짓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은연중에 낭만적 아웃싸이더로 취급된다. '멋지다, 하지만 글쎄 나는 좀……' 이것이 그들에 대한 다수의 반응이다.


이런 양상에는 80년대적 투쟁이 극복하지 못한 자기 한계가 패턴처럼 어른거린다. 그때 민주화투쟁에 투신하는 것은 희생을 모델로 했다. 그래서 희생에 매혹되거나(그것은 때로 분신을 부를 만큼 치명적이기도 했다) 아니면 희생에서 비켜선 것에 대한 회오와 자기혐오에 빠지는 일이 빈번했다. 운동이 광범위했지만, 공적 대의와 사적 삶 사이의 합리적 연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준과 농도의 희생의 분포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패턴에서 독재타도 같은 강한 규범적 요청이 빠져나가면 전위와 대중의 분리가 쉽게 일어나고 사회적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문화적 아웃싸이더로 떨어지게 된다. 공적 대의와 사적 행복을 매개하는 집합적 생활양식이 엿보이지 않는 한, 대안의 추구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적 삶과 공적 삶을 매개하는 생활양식, 현실에 적응하는 것과 그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일하는 생활모델의 창출을 위한 끈기있는 노력은 태부족이다. 이에 비해 양자의 분리에 멍하니 자기를 내맡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그 둘을 매듭지어 묶는 것이 가능할 때에 비로소 아침 신문 사회면을 보며 치솟는 부동산값에 분개하고, 문화면에서 읽는 황토집이나 통나무집 짓는 이의 삶을 몽롱한 향수감정으로 소비하는 분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글러먹었다고 하면서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일이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욕하면서 조기유학 보낸 아이를 위해 송금하는 일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김종엽|한신대 교수, 사회학) 

 

06. 11.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 토요일 강남 교보타워에서 열린 강준만 교수의 대중강연이 오마이뉴스(오마이TV)에 전문 게재돼 있다. <한국현대사 시리즈>(전18권) 완간 기념으로 개최된 강연인데, 지난 10여년간 그만큼 지속적이고 열정적으로 한국사회에 대해 발언한 지식인/학자도 없지 않나 싶어서 나는 이전에 '송건호 언론상' 수상소감을 옮겨놓으며('겸손, 겸손, 겸손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아예 '강준만의 시대'란 표현을 쓴 바 있다. 나는 그에게 찬성하든 반대하든 한국사회에 대한 담론의 한 출발점을 마련해준 공로에 대한 평가는 결코 과장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이유이다. 그의 강연문 요약과 그에 대한 정리 기사이다.

오마이뉴스(06. 11. 04) '좌우 통합을 위한 현대사의 급소'  강연 요약

사람들이 왜 나이 들면 보수화 되느냐. 내 나이 50이 넘어서니까, 나이 들면서 느끼는 게 많다. 난 원래 성격이 소심해서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희망 없다 싶어 의지로 극복했다. 그런데 나이 들면 (소심함이) 다시 돌아온다.

미리 양해 말씀드리겠다. 이 귀한 시간에 머릿속에 정리된 현대사를 말하는 게 예의일 테지만, 이미 적응된 여러분 시각 뒤흔들고 도발적으로 우리가 믿고 있던 상식을 뒤엎어볼 생각이다.

내가 드리고자 하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좌우통합'이라 할 수 있다. 내년부터 봐라. 한국사회 좌우 갈등을 극복하고 중간파 노선 정립 못하면 쓰러질 지경에 와있다. 갈등 노선 골 깊다.

오늘 10가지 이야기를 선정적으로 '급소'라고 했는데 주제는 하나다. 박정희를 열렬히 지지하는 '우'와 박정희를 열렬히 혐오하는 '좌' 사이에 대화가 가능할 때가 있지 않겠나. 좌우 편향된 사람에겐 중간이 기회주의적인 걸로 보일 수 있겠지만, 양쪽에 문제제기 해보겠다.

1. 축복과 저주는 분리 불가능하다

내가 전에 '전쟁이 축복'이란 글을 썼다. 미국은 전쟁으로 큰 나라다. 독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전쟁을 혹독하게 겪고 나서 경제발전 한다. 전쟁 끝나고 나면 기득권층 모두 망해버려 새로 출발할 수 있다. 전쟁 덕분에.

현대사 전공한 학자들도 말한다. 한국전쟁 이후 봉건적 잔재 일소해 버리는 한강의 기적이 일어나는 등 경제발전 이뤘다. 성수대교가 붕괴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우리가 뭐라 했나? 당시 김영삼은 5000년 동안 썩은 나라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정주영 신화 있고, 엄청난 성공신화에 우리가 박수쳤다. 그런데 경부고속도로 만들면서 얼마나 많이 죽었나? 다 10% 위험요소 있다. 어쩌다 성공한 건 축복하면서, 어쩌다 실패하면 영원히 저주받을 것처럼 말한다.

우리 과거를 군사주의라 뭐라 비판하지만 그 핵심 고갱이는 사라졌나? 군사주의가 나쁘기만 했나? 파시즘을 대량학살로만 생각하고 끔찍한 결과를 낳았지만, 지식인이 파시즘에 매료된 요소가 있다. 반자본주의와 민족의 영광을 부르짖으며 독일의 불안한 요소를 다 끌어들였다.

군사주의로 엄청 희생 많았지만 끔찍한 결과만 봐선 안 된다. 군사주의는 일사분란한 거다. 우리에게 이게 사라졌나? 아직 충성과 아첨이 판친다. 신세대가 술 마시라고 해서 마시고 사고 나지 않냐? 다르지 않다. 핵심 정신은 우리 속에 살아있다.

또 하나 개발독재라 비난 하잖나? 그러데 끝났나. 개발이 사라졌나? 그대로다. 박정희 체제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다. 나쁜 점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2. 퇴출시킨 지정학, 공간학을 다시 보자

지정학 악용한 게 히틀러다. 지정학은 가치중립적 개념이 아니다. 강대국에게 이용된 거다. 공간학? 마찬가지다. 공간학은 이런 거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서울 인구밀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거다. 물론 그래서 6월 항쟁 이런 건 좋은 점이지만, 나쁜 점은 아파트값 폭등하거나 환경이 안 좋다. 작은 장소에 한꺼번에 많이 몰아넣으니까.

이게 한국 민주주의에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쏠림이다. 어떻게 노무현 대통령 일개인한테만 책임 묻나? 공동책임이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가 내팽개칠 과오를 진 게 아니다. 싸가지 없던 건 이전부터 유명했다.

동질적인데다 고밀도, 이걸로 다 설명된다. 한국만큼 동질적인 데가 없다. 도시 집중화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인구밀도가. 미국 유럽에선 이런 이론이 나올 수가 없다.

지정학도 마찬가지다. 나부터도 미국 유학 갔다 왔다. 솔직히 내 경쟁력 때문에 갔다. 미국 가서 더 배울 게 있어서 간 게 아니고. 왜 기러기 아빠들이 많은 줄 아나? 내부경쟁력이다. 솔직히 그러다보니 한국 인문사회 다 미국화가 판친다.

유럽파가 미국 유학파가 문제라고 다른 시각 보여주긴 하는데, 그건 '유럽파 억울하다' 그거지. 문젠 외국 나가서 한국에 대해 배우진 않는다. 미국, 유럽 사회 모델을 배운다. 아는 게 그래서 한국사회 분석할 때 그 틀 가져다 할 수밖에 없다. 너무 그쪽 갖고 하다보니 너무 우리 사는 것과 아는 것의 괴리가 생겼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우리 현실이 따로 논다. 현실 문제를 학술적 주제로 올리는 건 천박하게 보인다. 신문 오린 거, 신문 쪼가리 올리면, 원서를 올려야지… 그런다.

3.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갈등 혼란의 주범이다

이런 한국 특수성이, 한국만큼 강한 나라가 없다. 탈근대 강남 일부지역, 근대 서울 보통지역, 전근대는 먹고 살기 힘든 지방 가면 전근대 있다. 그럼 정말 지역으로 분리됐냐? 아니다. 강남에도 전근대 있다.

대학교수가 조교 다루는 솜씨는 전근대 곱빼기로 보인다. 그들이 한국사회 아름다운 인권… 얘기하지만, 사적 생활 돌아가면 조교를 종처럼 쓴다. 우리 모든 분야 걸쳐 그런다.

소통 참 어렵다. 서로 다른 차원에서 얘기한다. 이러니 얘기가 안 된다. 우리는 압축성장해서 전근대를 그대로 갖고 있다. 탈근대, 전근대 이 싸움은 정말 어렵다.

이해하기 쉽게, 노무현 대통령의 신당 창당? 근데 이게 탈근대 원리에 의해 이뤄졌나? 줄서기란 전근대로 이뤄졌단 증거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 파워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대통령은 모를 거다. 청와대 사칭 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더 많이 일어난다.

다른 나라와 차이가 나는 특정 부분 키운 건 군대다. 군대가 특정 부분 키우고 특정 부분 억눌렀다. 군부가 지배한 시절 지냈다. 정치엔 월급 주며 야당 키웠다. 한 세대 정치를 죽여 놨다. 죽여 놨음 부활할 텐데, 버려놨다. 한 시대 버려놨으니 복원하려니 오래 걸린다.

대한민국 정치인은 쓰레기라 부르는 분들 있는데, 그리 부르면 쓰레기 아닌 거 드물다. 분리수거 해야지. 어떻게 한 집단을 싸잡아 쓰레기라 할 수 있나?

실용주의란 말이 한국처럼 오남용 되는 나라가 있을까? 한국은 실용주의가 사치스럽다. 아직은. 우리 공기업 봐라. 어디 실용이 있나? 실용, 아직 하지도 않았다. 미국, 일본은 실용으로 큰 나라다. 미국에 부작용 있다는데, 아직 해보지도 않고 실용주의 욕하냐?

내가 어디서 다원주의 얘기하니 욕하더라. 너무 앞서가고 있더라. 다 바깥에서 들어와서 현실 욕하는데, 내가 디딘 땅 딛고 얘기하자.

박정희 대통령 1기, 2기 나눠야 한다. 3기까지. 5·16 쿠데타 했다고 욕하지만 당시 5·16은 진보세력의 지지 받았던 거다. 적극지지 아니지만 담담하게 소극적으로 인정했다. 그걸 우린 소급해 한꺼번에 뭐라 한다. 이완용이 하면 매국노! 하지만 그에게도 한국 신개혁 기여한 공로가 있다. 명암 있다. 두 가지 다 이야기해주면 안 되나?

4. 사대주의에 대한 이중성을 극복해야 한다

왜 이중성인가? 실리 너무 못 찾는다. 사적영역까지 그리 산다면 아름다울 거 같다. 세계에서 유래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나라일 거다. 그런데 반미주의적 기러기 아빠는 어찌 볼 건가? 만나보면 미국 막 욕한다. 그런데 미국 간 딸 송금하느라 등골이 휜다.

내가 한 번 물어봤다. "당신 같은 반미주의자가 왜?" 그러니 그가 그러더라.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미국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 그러더라. 새빨간 거짓말이다.

물론 안 그런 부모도 있다. 그건 이름 없는 부모다. 앞장섰던 사람만 다 본전 뽑았다. 김영삼, 김대중, 그 분들 성금 모아 이름 없는 분들 도와줬나 모르겠다. 내가 1단 기사로도 그랬다고 본 적이 없다.

진보, 보수 중요하지 않다. 좌우가 투쟁할 때가 아니다. 엘리트와 투쟁해야 한다. 희생까진 아니더라도 자기 욕심을 자제할 사람과 해야 한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더러 "돈 내놔라" 했다가 얼마나 욕먹었나.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재산 반 좀 내놓으십쇼" 그랬더니 나더러 내놓으래서 "난 내놓을 수 없다" 그랬다. 돈 없어서. 애들도 키워야잖아. 내가 책 팔아 떼돈 번 줄 안다.

사대주의 문제, 개인, 가족, 나쁘다고 안 본다. 자식더러 서울대 가지 말라 할 거 같냐? 개인, 가족 차원은 아름답다 생각한다. 강남 산다고 강남을 다 사랑할 거 같냐? 반은 어쩔 수 없이 살 거다. 인프라니까 살긴 살지만 짜증내는 사람 있을 거다.

그렇다고 현실주의로만 가자는 건 아니다. 좌파는 도덕, 우파는 현실, 현실과 도덕 섞으면 안 될까? 도덕과 현실 매번 하나 택해 끝까지 밀고 갈 거냐? 왜? 민주화시대 투쟁 습성 남아 있어서다. 민주화 다음은 없다. 자빠뜨리는 게 목적이다.

싸워 죽느냐 사느냐만 있지, 제3의 대안이 없다. 그게 한 시대 지속됐다. 책임 윤리가 없다. 큰 권력, 큰 집단 리드할 때 그러면 안 된다. 큰 일 난다. 확신이 없으면 나서면 안 된다.

우린 남한테 떠넘기는 심리 있다. 누군가 악역 맡아서 한다. 소설가 방현석이 멋있는 말 했다. "절대 나서면 안 된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누가 아이디어 내놓잖아? 다 덤터기 쓴다. "어? 그래? 김차장이 하지" 우린 다 그런다. 나서는 순간 자기 말에 책임지려 이끌려 다닌다. 말하는 순간 발목 잡혀 산다. 나도 발목 잡혀 살지않나.

5. 높은 해외의존도가 진보를 어렵게 만든다

해외 의존도가 너무 높다. 진보 운동하는 사람들이 요거 감안하는 게 좋다. 진보정당의 가장 큰 적은 냉전수구세력도 냉전꼴통도 아니다. 해외의존세력이다. 엔화가 어떻고 미국 대외정책이 달라지면 걱정해야 하고 그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해외 의존도가 높으니 국가주의 민족주의 바람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독도가 일본땅이니 어쩌니 그런 뉴스에 국민은 스트레스 쌓인다. 국가주의 매료될 수밖에 없다. 한국 월드컵 신드롬이나 그런 게 파시즘 성향이어서가 아니고 스트레스가 늘 쌓여서다.

삼성에 대해 우린 이중적이다. 삼성 비판하다가 외국 여행 한 번 갔다 오면 그게 다 누그러진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가 없어진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6. 기회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세력은 없다

과연 자유로울 수 있나? 기회주의는 한국의 속성이라 본다. 기회주의 내용, 형식 극복해야 한다기 보다 기회주의에 대한 비난은 내용에 대한 비난이다.

의식이란 건 어떤 가치관 노선으로 가다가 다른 쪽으로 돌아선다. 납득할 거 없이 한국 격동의 세월에서 기회주의 나올 수밖에 없다. 기회주의도 아전인수격 개념으로 본질은 유연성 아닌가. IT시대 한국의 유연한 적응력 이런 것도 기회주의와 관련 있다.

난 인터넷으로 공격하는 거 절대 안 본다. 인간인데 알면 기분 좋겠나? 주변에서 뭐라 전해주면 그런가보다 한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밤에 잠 안 오면, 인터넷 들어간다고 하더라.(웃음) 비난 하는 기사 나오면 보지 말아라. 대충 비난 있다더라 내용 뭐라더라 정도만 알면 된다. 그래야 뻔뻔해진다.

7. 지도자 추종은 한국인의 유전자다

현대사 봐라. 인물사다. 실제 인물중심이잖나? 민주화에 김영삼, 김대중 중심으로 움직였다. 지금 정계 개편도 또 인물 중심이다. 근현대사에 왜 우린 그런 인물 중심일까? 한국의 특수적 상황 있다.

고밀도에 쏠림 강하다. 쏠림 강하니 왕따 공포심이 강하다. 이상하게 난 이런 게 타고나길 없었다. 난 혼자 식당에 밥 먹으러 가는데 친구들이 "넌 외톨이구나?" 그러는데, 난 실용주의다. 아니, 혼자 먹는 게 뭐 어때서?

우린 이탈의 공포심이 있다. 사람들이 저리 쏠리면 지도자가 착각한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이 실수한다. 줄이 길면 한국 사람은 가게 돼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리더십을 부정하고 폄하하면 안 된다. 1인주의 개인을 폄하하고 집단주의를 선호하는 게 한국에선 안 먹힌다. 한국에선 스타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출세 욕망이 대단히 강하다. 대학에 학장이 있다. 그거 봉사직이고 고생하는 건데, 사람들이 밥 사주면서 시켜야 하는데, 정반대로 밥 사서라도 하려 한다. 결혼식, 장례식도 중요 이벤트다. 내가 살아온 게 그걸로 평가 받는다.

어찌 리더십 문제가 거기서 이탈할 수 있냐? 인물 중심으로 역사가 흘러갔는데 어떡하나. 한국의 미래는 인적 자원 밖에 없다. 인물 중심으로 하다보니 한국 숙명이다. 북한의 지도자 추종주의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다른 나라에도 정치팬클럽이 있지만 우리나라 '빠'는 유별나잖나?

8. 출세주의와 분열주의는 일란성 쌍둥이다.

사회 개혁 진보 말하는 분들도 이승만을 정권욕의 화신이라 하는데, 이거 아닌 사람 없다. 김영삼, 김대중, 은퇴한다 소리 빵빵 쳤다. 난 정말 은퇴하는 줄 알았다. 다들 내가 중심이다. 내가 중심이 되겠다고 한다.

늘 경쟁은 이전투구다. 왜 괜찮은 사람도 정치권에 가면 달라지냐? 궁금하지? 궁금할 거 없다.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간다.

9. 경제는 자주 악마와 손을 잡는다

박정희 신드롬의 핵이다. 사람들이 내 입장이 모순 됐다고 하는데 난 인정할 건 인정하고 공과를 논의하자는 거다. 우리 국민 경제 발전의 역사를 보자. 한국이 너무 자랑스럽고, 보릿고개 넘고 배고픔 시대 넘어 그 부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뭘 했나?

베트남 전쟁에 참가해 얼마나 벌었으며 70년대 매춘관광해서 얼마나 많이 벌었나? 세계적인 경제대국 선진국 나라 치고, 제국주의 나라 아닌 나라 있던가? 못된 짓한 나라가 잘 산다.

10. 한국은 '각개약진' 공화국이다.

이게 참 문제다. 이것 때문에 한국이 컸다. 무섭다, 교육! 믿을 건 나와 가족 밖에 없다. 부동산 안심해라 하지만 날만 새면 올라간다. 누굴 믿나? 그러니 신뢰를 어디서 찾나? 나와 내 가족이다. 우린 공적 신뢰 없고 사적 신뢰가 대단히 발달한 나라다.

영화 <괴물> 봐라. 믿을 건 가족 밖에 없다. 반면에 영화 <일본침몰>에서 거기 믿을 건 국가 밖에 없다. 자국 국과와 정부를 신뢰하는 나라와 우리와 누가 이기냐?

또 우린 학원 공화국이다. 그런데 왜 학원 업자들, 학원일 하시는 분 욕하나? 같은 대학 선배, 후배 문화가 계속 살아있고, 시민사회에서 문제 제기 안 하는데, 내 자녀 좋은 학벌 갖게 할 맘 안 사라진다. 비싼 유명 대학 다니는 이유가 뭔가? 인맥전쟁이다. 실업자 신세에서 누가 하루아침에 칼럼니스트가 되나? 영원하다, 학벌은.

오마이뉴스(06. 11. 04)  "좌우가 아닌 엘리트와 투쟁해야 한다."

"한국사회 좌우 갈등을 극복하고 중간파 노선 정립을 못하면 쓰러질 지경에 와 있다. 갈등 노선 골 깊다. …하지만 박정희를 열렬히 지지하는 '우'와 박정희를 열렬히 혐오하는 '좌' 사이에 대화가 가능할 때가 있지 않나. 좌우 편향된 사람에겐 중간이 기회주의적인 걸로 보일 수 있겠지만 양쪽에 문제제기를 해보겠다."

강준만은 뒤집기를 시도했다. 우리 시대 '좌파'와 '우파'가 가졌던 고정 관념을 향해서다. 그는 이를 통해 '좌우의 통합'을 역설했다.

사회비평가이자 전북대 교수인 강준만 교수는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4일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가량 '좌우 통합을 위한 한국 현대사의 급소'를 주제로 우리 시대 '좌우'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이날 강연은 그가 1945년부터 1999년까지 55년 역사를 담아낸 <한국 현대사 산책> 시리즈 18권 완간 기념으로 열렸다. 교보문고와 '인물과사상사'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현대사가 주제였지만, 그의 독설은 전방위적으로 흘렀다. 그는 좌우 통합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급소'로 10가지를 콕 집어 지목했다.

1) 축복과 저주는 분리 불가능하다
2) 퇴출시킨 지정학·공간학을 다시 보자
3)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갈등과 혼란의 주범이다
4) 사대주의에 대한 이중성을 극복해야 한다
5) 높은 해외의존도가 진보를 어렵게 만든다
6) 기회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세력은 없다
7) 지도자 추종은 한국인의 유전자다
8) 출세주의와 분열주의는 일란성 쌍둥이다
9) 경제는 자주 악마와 손을 잡는다
10) 한국은 '각개약진' 공화국이다


"매국노 이용완도 신개혁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

강 교수는 "정돈된 생각 갖고 이 자리에 왔다가 혼란된 생각을 하면서, 욕을 하면서 나갈 것"이란 말로 조용히 포문을 열더니, 특유의 거침없는 언변으로 청중들의 혼을 쏙 빼놨다.

이날 강준만 교수가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좌우통합.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예로 든 첫 번째 '급소'는 '축복과 저주는 분리 불가능하다'라는 주제였다.

그는 우선 "미국은 전쟁으로 큰 나라이고, 독일, 일본도 전쟁을 혹독하게 겪고 나서 경제발전을 했다"면서 "현대사 전공한 학자들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사회가 봉건적 잔재 일소해버리는 한강 기적이 일어나고 경제발전 일조한 게 있다"며 전쟁의 이면을 소개했다. 전쟁마저도 동전의 양면처럼 명암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군사주의가 나쁘기만 했나? 파시즘은 대략학살만 생각하지만 그리고 끔찍한 결과를 낳았지만, 지식인이 파시즘에 매료된 요소가 있다"면서 "군사주의는 일사분란한 것이고, 아직도 충성과 아첨이 판치는 등 핵심 정신은 우리 속에 살아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특수성이 강한 나라로, 탈근대, 전근대, 근대가 모두 공존한다"며 "이런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갈등 혼란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가령 그는 "대학교수가 조교 다루는 솜씨는 전근대 곱빼기로 보인다"면서 "그가 한국사회 아름다운 인권 얘기하지만, 사적 생활 돌아가면 조교를 종처럼 쓴다, 모든 분야 걸쳐 그런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신당 창당? 근데 이게 탈근대 원리에 의해 이뤄졌나? 줄서기란 전근대적으로 이뤄졌단 증거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면서 "대통령 파워가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대통령은 모를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소위 '좌와 우'가 극과 극을 달리는 현상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 1기, 2기 나눠야 한다. 3기까지. 5·16 쿠데타 했다고 욕하지만 당시 5·16은 진보세력의 지지 받았던 거다. 적극지지 아니지만 담담하게 소극적으로 인정했다. 그걸 우린 소급해 한꺼번에 뭐라 한다. 이완용이 하면 매국노! 하지만 그에게도 한국 신개혁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 명암이 있다. 두 가지 다 이야기 해주면 안 되나?"

그는 또 "사대주의에 대한 이중성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반미주의적 기러기 아빠는 어찌 볼 건가? 만나보면 미국 막 욕한다. 그런데 미국 간 딸 송금하느라 등골이 휜다"고 이중적인 현실을 지목했다.

그는 이어 "진보, 보수 중요하지 않다. 좌우가 투쟁할 때가 아니다"면서 "엘리트와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좌파는 도덕, 우파는 현실, 도덕과 현실 매번 하나만을 택해 끝까지 밀고 갈 거냐"라고 반문하면서 "민주화시대 투쟁 습성 남아 있어서 자빠뜨리는 게 목적이다, 싸워 죽느냐 사느냐만 있지, 제3의 대안이 없다, 그게 한 시대 지속됐고 책임 윤리가 없다"고 비꼬았다.

"싸워 죽느냐 사느냐만 있지, 제3의 대안이 없다"

그는 '기회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세력은 없다'고 단정했다. 그는 특히 "한국 격동의 세월 속에서 기회주의가 나올 수밖에 없다"면서 "기회주의는 아전인수격 개념으로 보면 그 본질은 유연성 아닌가, IT시대 한국의 유연한 적응력 이런 것도 기회주의와 관련 있다"고 말했다. 기회주의에 대해 손가락질만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정치인은 쓰레기라 부르는 분들 있는데, 그리 부르면 쓰레기 아닌 거 드물다"며 "분리수거 해야지. 어떻게 한 집단을 싸잡아 쓰레기라 할 수 있나"라고 특유의 독설과 유머도 놓치지 않았다.

곧 이어 "높은 해외의존도가 진보를 어렵게 만든다"며 "진보정당의 가장 큰 적은 냉전수구세력도 냉전꼴통도 아니라, 해외의존세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도자 추종은 한국인 유전자"라면서 특정 인물 중심의 현대사에 대한 기존의 비판에 대해 뒤집기를 시도했다. 그는 "한국에선 스타가 있어야 한다"면서 "인물 중심으로 역사가 흘러갔는데 어떡하나? 한국의 미래는 인적 자원 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출세주의와 분열주의는 일란성 쌍둥이"라면서 "사회 개혁 진보 말하는 분들도 이승만을 정권욕의 화신이라 하는데, 이거 아닌 사람 없다. 김영삼, 김대중, 은퇴한다고 소리 빵빵 쳤는데 다들 내가 중심이라고 한다, 왜 괜찮은 사람도 정치권에 가면 달라지냐? 궁금하지? 궁금할 거 없다. 애초부터 그런 사람이 정치권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끝으로 "한국은 '각개약진' 공화국"으로, "믿을 건 나와 가족 밖에 없다"며 강 교수는 "인맥 전쟁 때문에 사교육은 어찌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학벌은 영원하다"고 꼬집었다.(김정훈/조은미 기자)

06. 11. 0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Ritournelle 2006-11-06 15:57   좋아요 0 | URL
제 페이퍼에 강준만 교수의 활발한 활동을 빗대어 '강준만의 나라'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요. 정말 다른 모든 이념적 논쟁을 떠나 이만큼의 학자가 한국사회에 또 있을까 싶습니다. 퍼갈께요. 날씨 추워지는데 건강조심하시고요.

로쟈 2006-11-06 22:12   좋아요 0 | URL
제가 강준만 교수를 높이 사는 것은 그의 '현실/현장' 감각 때문입니다. 추상적인 여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민심에 대한 감각. 대개의 지식인들에겐 결여돼 있지요. 귀가길이 좀 쌀쌀하더군요. 가족을 위해서라도 각자의 건강은 각자가!(각개약진의 정신!)..
 

지난달 마침 북한 핵실험이 있던 날 방한했던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이 문제에 관한 '손익계산서'를 최근에 기고했다고 한다. 프레시안의 기사와 함께 그의 기고 칼럼을 옮겨놓는다. 

프레시안(06. 11. 03) "최대 승자는 북한, 최대 피해자는 미국"

 "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흡족해할 나라는 다름 아닌 북한이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으려고 했고 적어도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다. ... 반면, 가장 손해를 본 나라는 미국이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패권이 약해져 가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미국의 마지막 보루였던 동북아에서마저 미국의 주도권을 밀어내고 말았다."
  
세계적인 석학인 이매뉴엘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지난 1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 기고한 칼럼 <난마처럼 얽힌 북한문제, 승자는 누구인가? (The North Korean Imbroglio: Who Gains?)>을 통해 북한 핵실험의 최대 승자로 당사자인 북한을, 최대 피해자로는 미국을 꼽았다.
  
월러스틴 교수는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할 경우 "동북아 전체가 핵무장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단 일본이 핵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할 것이고 남한과 대만도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월러스틴 교수는 북핵을 다루는 부시 행정부의 태도에 대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고 혹평했다.


  
미국이 주도해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안을 두고는 "'너덜너덜한 넝마(limp rag)' 같아 북한이 만든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며 "만일 민주당 정부가 이런 결의안을 만들어 내놨으면 존 볼튼(제재결의안 채택을 주도한 유엔주재 미 대사)이 제일 먼저 제재결의안의 유약함을 비난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월러스틴은 이어 결의안의 실효성에 불안을 느낀 라이스 국무장관이 직접 동북아를 순방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대해 강력한 대북제재를 설득했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이 공언했던 강력한 대북제재는 허사로 돌아갔다는 지적이다.
  
일본도 겉으로는 매우 유감스럽다며 미국과 함께 강경대응을 부르짖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라고 월러스틴은 진단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아베 신조 정권은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과 핵 보유 등을 정당화할 명분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네오콘들은 일본의 핵무장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지위를 강화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의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속셈에서다. 그러나 "일본의 핵 프로그램은 이들의 의도와는 정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는 것이 월러스틴 교수의 판단이다. 미국과 일본이 50년 간 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었기 때문인데, 일본이 핵을 가지게 되면 일본은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미국에게는 손해인 셈이다.
  
중국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기분이 좋지 않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 영향력의 한계가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미 핵을 갖고 있는 중국에겐 북한 핵보유가 대만과 일본 등 주변국들의 '핵욕심'을 부추기게 될 상황이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명확하게 손익을 계산해 내던 월러스틴 교수도 남한을 두고는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는 나라"라고 평가했다. 집권당은 북한에 포용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일본처럼 미국과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여론상 '중도'가 없다는 것이다. 월러스틴 교수는 "이 문제는 남한의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최대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지윤 기자)

Commentary No. 196, Nov. 1, 2006

"The North Korean Imbroglio: Who Gains?"

North Korea has joined the nuclear club, and everyone else claims they are upset. Are they really? There are five actors that really count in this affair: North Korea, the United States, South Korea, China, and Japan. They have all in fact reacted quite differently.

North Korea is undoubtedly the most pleased of all. They set off a nuclear explosion for several obvious reasons. They are persuaded that having a weapon in hand eliminates the likelihood of a United States attack. And it probably does. They also wanted to be taken more seriously as a world actor. And despite appearances in the last few weeks, they have probably accomplished this too. They wanted to show not only the United States but everyone else, specifically including China, that there was nothing much they could do about North Korea's decision, and they seem to have done that. And underlying all this, their primary objective no doubt is the survival of the regime. And they have probably done as much as is within their power to ensure this. But of course they too are not all-powerful.

The general world analysis of the effect of their action is that it will ensure a spread of nuclear armament, first of all in the region. I agree. Within a very short time, I expect Japan to start its program. It will be followed by South Korea. And then - no one mentions this - it will be followed by Taiwan, thus realizing a totally nuclearized Northeast Asia. Is this good or bad? The answer depends on whose perspective you take.

The United States is surely the most unhappy. In a period when U.S. effective power is declining everywhere, the last zone where it still seemed to have a strong edge has been Northeast Asia. No more. The Bush regime hasn't known what to do. It pushed for a rapid punishment of North Korea by the U.N. Security Council. What it came up with was a limp rag - a resolution that, albeit unanimous, might have been written by the North Koreans. Had a Democratic administration agreed to such a resolution, the first person to denounce it for its weakness would have been John Bolton. But since Bolton is Bush's Ambassador to the United Nations, he has hailed the resolution as a great accomplishment. Unpersuaded by Bolton's rhetoric, Condoleezza Rice has made the rounds of Northeast Asia, saying that she can not impose on anyone how they will implement the limp rag. Still she "expects" that China and South Korea will live up to the obligations she presumes they have, which they have no intention of doing and have said so.

Japan claims that it is very unhappy, and shares the U.S. hardline position. Pardon me for being skeptical. Isn't Shinzo Abe the man who became prime minister by promising to make Japan into a "normal" nation? This is code language for changing the constitution, creating a full-fledged army and nuclear weapons. The North Korean nuclear explosion gives Abe the immediate justification, and he will take it. Indeed, U.S. neo-cons are publicly calling on him to take it. They do so because they believe it will strengthen the U.S. position in the region and make more likely military action against North Korea.

But a Japanese nuclear program may well have the opposite consequence. The one thing that has tied Japan most closely to the United States in the last fifty years has been Japan's dependence on the U.S. nuclear shield. Once Japan has its own nuclear weapons, it has the possibility of being more independent. And sooner or later, it will realize this possibility.

China is of course unhappy, and for many reasons. For one thing, North Korea's action exposes the limits of China's power, which seems as helpless as the United States in this situation. For another thing, nuclear proliferation is not in China's interests. It's not worried about North Korea. It's worried about Japan and, above all, Taiwan.

China and South Korea share the desperate desire to see the North Korean regime survive (no "regime change" in their program). They are both banking on the possibility that their various kinds of economic assistance will bring about a slow and mild liberalization of the regime - more of the Deng Xiaopeng than the Gorbachev variety. Whether this is realistic we shall have to see. But do they have any choice except to bank on it, and work for it?

South Korea is in the most difficult position of the five powers. It is the only country in which public opinion seems split down the middle - between the party in power which believes in "engagement" with North Korea and the opposition which wants to replicate the Japanese position of close alignment with the United States. This will undoubtedly be one of the major issues in next year's presidential elections.

by Immanuel Wallerstein

06. 11. 0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Ritournelle 2006-11-05 17:40   좋아요 0 | URL
이번 월러스틴 방한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도와 주면서 느낀 점이 참 많습니다. 비밀 스러운 이야기도 많이 알고 있고요. 그래도 참 그 나이에 대단한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생들의 질문에 답도 잘해주고요.

로쟈 2006-11-05 17:56   좋아요 0 | URL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오프더레코드인가요?^^ 사회과학적 판단/예측이야 일기예보처럼 시간이 말해주는 것이죠. 다만, 월러스틴의 예측대로 내년 대선이 이 문제로 과잉결정되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됩니다...
 

어제 날짜 경향신문을 보니까 세계연극계의 거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리투아니아의 연출가 네크로슈스의 셰익스피어 공연 소식이 올라와 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당장 오늘부터 주말까지 공연이 이어진다는데, 이번에 그가 들고 온 작품은 <햄릿>과 <맥베드>이다. 공연을 자주 보러다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 국내 초연되는 <맥베드>는 보고 싶은 작품이다(지난 9월에 <맥베드>에 대해 강의할 기회가 있기도 했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은 놔두고서라도) 스케줄이라더니...

경향신문(06. 10. 31)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 ‘오델로’ 네크로슈스 내한공연

(*기사 타이틀에 오타가 있다. '오델로'가 아니라 '맥베드'라고 해야 맞다)

"연출가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연극학교의 중요성을 믿지 않는다. 진정한 아티스트는 자신이 가는 길 뒤에 제자를 남기지 않는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독창적 해석으로 유명한 연극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가 자신의 대표작 두 편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햄릿’과 ‘맥베드’다. 네크로슈스는 언어를 최대한 절제하고 물과 불, 흙, 돌 등 자연물을 통한 은유와 상징을 펼쳐놓는다. 관객은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와 긴장감을 맛보고, 연극을 보고 난 후에도 잔상(殘像)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20여년 전 네크로슈스의 작품을 처음 본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는 주저없이 “연극 천재”라는 찬사를 보냈다. 또 “리투아니아어라는 언어적 한계 때문에 그의 명성이 가려질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서 밀러의 우려는 빗나갔다. 유럽의 변방 리투아니아 출신의 네크로슈스는 현재 유럽에서 최정상의 연출가로 꼽힌다.

그는 햄릿(1997년), 맥베드(1999년), 오델로(2001년)로 이어진 셰익스피어 비극 시리즈로 단숨에 세계 연극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독창적인 연극언어를 선보이며 러시아의 황금마스크상, 스타니슬라브스키 국제연극상, 유럽극장협회의 뉴유러피언 시어터 리얼리티즈상 등을 휩쓸었다.

한국 공연은 이번이 세번째다. 2000년 ‘햄릿’과 2002년 ‘오델로’를 들고와 LG아트센터 좌석을 매진시켰다. 6년 만에 국내 관객에게 다시 선보이는 ‘햄릿’은 리투아니아 록가수가 우유부단한 햄릿으로 분하는 네크로슈스의 대표작이다. 천장에 매달린 육중한 양철 톱니바퀴는 떨어지는 순간 배우의 몸을 두동강낼 것처럼 무시무시하고, 얼음 덩어리로 만든 샹들리에는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물방울을 뚝뚝 떨군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에서 의미없이 배치된 사물은 없다. 그 모든 것을 동원해 햄릿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위협을 형상화한다. 3시간40분에 달하는 긴 연극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맥베드’(*이미지)에서는 셰익스피어의 늙고 추악한 마녀 대신 젊고 매혹적인 마녀들이 등장한다. 맥베드 부부의 욕망이나 악한 본성보다, 두 사람의 끈끈한 사랑과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도 흔들리는 통나무와 위협적으로 내리꽂히는 도끼, 어지럽게 흔들리는 거울들과 무대로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 등으로 강렬한 이미지를 그려낸다. ‘햄릿’은 11월1~2일, ‘맥베드’는 4~5일. LG아트센터.(문학수 기자)

06. 11. 01.

P.S. LG아트센타에서 공연 스틸사진을 몇 장 더 옮겨놓는다.

P.S.2. 이미 적은 대로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건 <맥베드>이지만 아쉬운 대로 <햄릿>의 공연평을 옮겨놓는다. 연극평론가 김소연씨 평으로 컬쳐뉴스에서 옮겨왔다.

컬쳐뉴스(06. 11. 10) 젊은 죽음에 목놓아 통곡하다

연극을 꾸며 숙부의 죄악을 밝히겠다는 햄릿의 결심으로 제1부의 막이 내렸다. 네크로슈스의 <햄릿>(11.1, 2일, LG아트센타)은 과연 소문처럼 강렬한 이미지들로 충만했다. 무대 중앙 상공에 매달려 천천히 돌고 있는 육중한 철제 원반톱, 동물의 가죽을 그대로 두른 듯한 털코트, 무대 상공에서 흩뿌려지는 가는 물줄기가 운무처럼 무대를 감돌고 원반톱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작은 북을 두드린다. 희곡의 인물과 사건은 물, 불, 둔중한 철제 대소도구, 그리고 비재현적 움직임으로 재구성되었다. 거기에다 대사들은 마치 조각 조각의 독백처럼 객석을 향해 쏟아져왔다.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휴식이 필요한 것이야 당연하지만 객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대를 지켜보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LG아트센타에서 개막한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2000년 서울연극제에서 이미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대륙별로 해외프로덕션 회사를 둔 대형 뮤지컬도 아니고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공연도 아닌, 고도의 상징적인 무대언어로 전개되는 연극공연이 다시 초청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상당기간 동안 연극계에서 회자되는 공연이었다. (김아라 연출의 <사천 사는 착한 여자>와 네크로슈스의 <햄릿>을 저울질하다 김아라를 선택한 나는 한동안 주위 동료들로부터 ‘따’를 당해야 했다.) 당시 내 주위에서 오갔던 이 공연에 대한 열광을 대충 요약해보면 곧 무대의 이미지가 얼마나 강렬한 드라마의 언어인가를 체험하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제1부가 끝나고 잠시 극장 밖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다시 조금 전 무대를 생각해보면 ‘충격’이랄 것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 6년 새 우리는 참 많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네크로슈스의 <햄릿>이 초연될 당시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우리에게 러시아 및 동유럽 연극들은 많이 익숙한 것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국제 규모의 공연예술제들이 생겨나고 중대형 극장들이 속속 개관하면서 이렇게 늘어난 중대형 무대들의 상당 부분이 동유럽 연극들로 채워져 왔다. 얼마 전 끝난 2006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보더라도 해외 초청작은 대부분 동유럽 연극이었다.

그런가 하면 마치 LG아트센타를 벤치마킹 하려는 듯 고급 공연장 이미지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예술의전당은 아예 러시아 황금마스크상 수상자들을 줄줄이 초청해 직접 공연을 제작하고 있다. 텍스트를 충실히 따름으로써 텍스트에 숨겨져 있는 이미지가 언어 텍스트를 압도하는 동유럽 연극들은 해체적인 서구 실험극과는 다르게 근대적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미학을 보여주는데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공연예술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들의 연극이 한국연극에도 이미 소개될 만큼 소개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네크로슈스의 <오셀로>도 봤고, 부드소프의 <보이체크>도 봤고, 지자트콥스키의 <갈매기>와 네프도진의 <형제자매들>도 보았던 것이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프다.

찬바람에 머리도 식히고, 옛 소문에 부풀었던 기대도 한 켠으로 밀쳐두고 다시 객석에 앉았다. 제2부의 막이 오르고 햄릿과 호레이쇼는 나무상자를 무대 중앙에 옮기고 그 위에 쇠덩어리로 된 조작기를 올려놓는다. 둥근 핸들 중앙에 달린 쇠막대가 나무 상자 내부로 뻗어내려와 무쇠판에 연결되자 고문대라도 차려놓은 것 같다. 자 이제 곧 햄릿이 꾸민 연극이 시작될 터. 클로디어스와 거투르드, 오필리어와 폴로니어스 그리고 햄릿과 호레이쇼가 카니발이라도 벌이는 듯 긴 원통을 두드리고 소리치며 나무 상자 주위를 돈다. 차례차례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거투르드에게 오필리어에게 클로디어스에게 검댕이를 묻힌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서로 서로 검댕이를 묻히고 거투르드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몸을 구부려 나무상자에 앉아 있던 햄릿도 상자 밖으로 나와 이들과 어울릴 때 이번엔 클로디어스가 상자 안으로 들어가고 상자의 문이 닫힌다. 다시 문이 열리고 클로디어스가 나왔을 때 그는 혼비백산해서 무대를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다가가 “독살장면에서 그 모습 봤지?”라며 선왕이 타살당했다는 믿음을 굳힌다.

세익스피어의 극중극을 검댕이 칠 놀이와 덫에 갇힌 클로디어스로 전개하는 이 장면에서 나는 이제까지 희곡과 대조하면서 지켜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네크로슈스의 이미지들은 세익스피어라는 미로에 갇혀 조각조각으로 부유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몇몇 장면이 재배치되고 희곡의 대사도 정리되어 있긴 하지만 한편 무대 위의 발화들은 거의 그대로 원본을 따른다. 비재현적 무대연출과 대조적으로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그대로 따르는 배우들의 대사는 그 자체의 언어적 의미를 형성한다기보다는 또하나의 무대적 요소로 여타의 이미지들과 충돌하면서 드라마를 심화시키고 있다.

공연 내내 무대 상공에서 천천히 돌고 있는 육중한 철제 원형톱, 투명하지만 날카롭고 차가운 얼음, 그리고 털가죽 같은 코트를 입고도 한껏 몸을 움츠리게 하는 차가운 공기. 이 모든 것들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햄릿이 짊어지고 있는 ‘복수의 의무’의 무게를, 그러한 의무를 짊어지우는 감옥 같은 세상을 은유한다. 그러나 햄릿은 모듬 발로 뜀을 뛰고 철제의자를 기울여 앉는, 아이들의 놀이처럼 오필리어와 사랑을 나누는 여린 청년일 뿐이다. 철제 원형톱에 선왕의 유령이 매달아 놓은 얼음 샹들리에 밑에서 얼음이 녹아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고뇌하는 햄릿은 세계와 맞서는 비극의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의무에 내몰려 떨고 있는 여린 영혼이다. 선왕의 유령이 앉아있던 바로 그 철제 흔들의자에 앉아 햄릿은 선왕처럼 위엄을 부려 보려하지만 의자를 굴리는 것마저도 힘겹다.

 

 

 

 

 

 

 

 

 

마지막 결투. 햄릿과 레어티즈는 객석을 향해 정면으로 나란히 서고 그 뒤로 일군의 젊은이들이 역시 객석을 향해 서 있다. 이제 결투의 시작. 클로디어스가 펼쳐놓은 음모의 덫에 선 햄릿과 레어티즈 그리고 젊은이들은 정면을 향해 칼을 뻗는다. 무대 위의 젊은이들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고 무대 위에는 허공을 가르는 이들의 칼 소리만이 울릴 뿐이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공포스런 울음인지 허공을 가르는 칼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햄릿도 레어티즈도 그리고 젊은이들도 차례 차례 쓰러진다.

연극의 첫장면에서 철제 원반톱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작은 북을 울리던 그대로 다시 물방울이 작은 북을 울리고 있다. 죽어가는 햄릿이 작은 북을 안고 쓰러지자 이제 북소리가 멈춘다. 다시 무대에 등장한 선왕의 유령은 북을 안고 있는 햄릿의 손을 풀려하지만 햄릿의 주검은 북을 놓지 않는다. 선왕은 털코트에 햄릿의 주검을 옮기고 주검이 안고 있는 북을 치며 오열을 터뜨린다.

<햄릿>을 그린 많은 연극들이 몰두하는 것은 결국 햄릿에게 부여된 의무와 의무의 이행을 지연하는 햄릿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윤영선은 <떠벌이 아버지 암에 걸리셨네>에서 <오레스테스>와 <햄릿>을 빌어와 아비-그것은 곧 역사로 확장된다-가 짐지운 의무에 비틀거리는 ‘나’를 그리는데, 때때로 ‘나’를 찾아와 의무를 환기시키는 아비의 유령을 향해 ‘나’는 “아직 술먹는 어린 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윤영선의 ‘나’(햄릿)는 무기력과 냉소로 의무의 이행을 지연시키는 반면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그렇게 비틀거릴 냉소의 여지도 없이 감옥 같은 세상에서 떠맡겨진 ‘의무’를 짊어지고 죽는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에서 물을 매우 다양한 양태와 상징으로 시종 무대에 등장하여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오브제인데, 선왕의 유령을 암시하는 운무에서 복수의 칼을 담은 얼음덩이 그리고 속죄의 기도를 올리는 클로디어스의 물잔 등 물은 모두 선왕과 클로디어스와 연관되어 상징과 은유를 발한다. 이러한 ‘아비’들의 세계에서 복수의 의무를 강요당하는 햄릿이 할 수 있는 것은 복수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강요하는 북소리를 멈추는 것이었다.

강렬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잘 정돈된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충격적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아름답다. 하지만 더 강한 울림은 마지막 북소리와 통곡이다. 네크로슈스의 <햄릿>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아프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11-02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1-02 21:37   좋아요 0 | URL
**님/ 아하, SR님이시군요! 잘 지내시나요? 세미나는 사정상 잠정 휴업에 들어갔답니다. 팀장님이 지방으로 잠수를 타시는 바람에요. 나중에 사정 얘기는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암튼 건강하시고 공부만 너무 많이 하지 마시고.^^

수유 2006-11-09 10:19   좋아요 0 | URL
이 연극을 제가 놓쳤드랬습니다... 엘지 아트였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만..오면 기억을 해야것습니다.

로쟈 2006-11-09 11:32   좋아요 0 | URL
눈뜨고 놓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제 다시 와도 걱정입니다...

수유 2006-11-09 12:54   좋아요 0 | URL
<햄릿>을 보았어야 했는데 아쉬움이 크군요...

로쟈 2006-11-10 23:52   좋아요 0 | URL
공연평을 대신에 추가로 옮겨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