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한겨레의 '18.0도'를 들고 갔다. 설렁탕을 먹으면서 두 꼭지를 읽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설가 유재현의 세설 '캄보디아의 평양냉면집 꽃처녀'이다 . 작가의 소설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동남아기행이나 쿠바 기행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바 있고, <느린 희망>(그린비, 2006)은 대충 훑어본 적이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그래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작가군에 속하는데, 이 세설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읽을 수 있어서 인상적이다.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다(기사의 원문은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3616.html).

2003년 처음 시엠립에 등장했던 ‘평양냉면’은 개점초기에 “아름다운 평양처녀들이 여러분들을 친절하게 봉사해 드리겠습니다.”란 간판의 문구로 보는 이의 심정을 착잡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열심히 봉사한 때문인지 또는 남한 관광객이 급증한 때문인지 평양냉면은 본점보다 두 배쯤 큰 분점을 하나 더 열고 있었다. 귀띔받은 평양냉면의 작년 순익규모는 깜짝 놀랄 액수였다. 또 평양냉면과는 다른 계통이지만 또 하나의 냉면집이 들어서 모두 3개의 북한냉면집이 성업 중으로 모두 남한관광객들을 고객으로 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냉면. 그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모여 연출해내는 분위기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무슨 까닭에 아름다운 평양처녀들은 이역만리 낯선 도시의 어느 한 구석에 갇힌 새(그네들은 한 달에 한 번 집단으로만 외출이 가능했다)가 되어 노래와 춤과 웃음을 팔고 있을까. 불현듯 오래전에 만났던 평양냉면의 실력자인 기름지고 도도한 뽄새의 중년 북한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또 그 얼굴은 이내 고급 모피를 걸치고 단둥의 쇼핑가를 무시로 출입하며 달러 현찰로 사치품들을 사재끼는 북한의 붉은 귀족들과 겹쳐졌다. 한때의 소련과 동구를 몰락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던 노멘클라투라의 북한판이다. 결국 남한 관광객들이 급증하며 뿌려대는 시엠립의 달러를 긁어모으고 있는 자들도 그들 중 하나이며 달러의 향방도 그들의 호주머니다.

노멘클라투라가 탄생하는 순간 평등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사회주의는 이미 사회주의가 아니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에 사회주의의 배신과 오욕을 상징하는 그런 오물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 시점은 개인숭배가 고착되고 한명의 노멘클라투라가 만명의 노멘클라투라에게 면죄부를 하사한 그 시점부터일 것이며,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때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당과 인민을 통치할 권력을 물려받은 그 때부터일 것이다. 북한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볼모로 인민에게 굶주림과 민주주의의 박탈을 야만적으로 강제하는 기괴한 동토의 국가가 되어 있다. 그 체제는 마치 구소련의 음유시인이자 배우이며 가수인 블라디미르 비소츠키가 <뒷걸음 치는 말(Koni Priviredlivie)>에서 고통스럽게 노래한 야만의 말(馬)과 같다.

(*)인터넷판에는 '브이쵸스키'라고 오기돼 있다 노래 제목도 'Koni Priveredlivie'로 잘못 병기돼 있다. 맞는 표기는 'Koni Priviredlivye'이다. 필자는 이 노래에서 뒷걸음치는 말, 혹은 길들여지지 않는 말을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은유, 그래서 북한 체제에 대한 은유로 전이될 수 있는 은유로 이해했는데, 나로선 생소하다(그렇게도 읽을 수 있나?). 여하튼 영화 <백야>의 주제가이기도 했던 이 노래의 동영상을 참조해 보시길. 1970년대 전설적인 시인/가수이자 배우였던 비소츠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hWEOaosGDi0. 노래 가사와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은 바람구두님의 문화망명지 사이트가 자세하다(http://windshoes.new21.org/music-vysotsky.htm)  

나는 죽어간다. 한 포기 이삭처럼 폭풍우 나를 쓰러뜨린다.
새벽, 썰매는 나를 눈 속으로 끌고 간다.



북한의 체제는 그렇게 인민을 동토의 눈 속으로 끌어가고 있으며 그토록 오랜 시간을 꾸준히 뒷걸음쳐 왔다. 이제 그 체제가 도달한 곳은 핵을 앞세운 협박과 막무가내의 구걸이고 한줌 붉은 귀족들의 기득권 사수이며, 고작해야 아름다운 여성들을 음식점 봉사원으로, 노동자들을 러시아와 중국의 벌목장과 동유럽의 공장으로 헐값에 수출하고 그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막장일뿐이다. 이건 사필귀정의 종장이며 사회주의, 인민과 민주주의에 대해 최소한의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북한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호를 지금이라도 떼어내야 하는 이유이다.



시엠립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인가 평양냉면에 들렀다. 여성봉사원들이 부르는 이미 희화화된 ‘휘파람’ 노래는 끝임 없이 비소츠키의 절규로 뒤바뀌어 들렸다. 비소츠키는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할 때까지는 최후의 날을 늦추어다오”라고 애절하게 노래한다. 그러나 북한 인민에게 마지막 피난처는 어디이고 얼마의 날을 늦추어야 하는가. 앞으로 달리는 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시엠립을 떠나던 날의 내 우울한 상념은 해답을 얻지 못했지만 그 가슴 저린 물음은 지금도 줄곧 내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유재현/소설가)

07. 01. 12.

P.S. '휘파람' 노래와 가사는 http://www.tongiledu.or.kr/zboard/zboard.php?id=edu_music&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desc&no=3

휘파람 ♬♪♭ (작사 조기천, 작곡 리종오)

1. 어제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몇 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복순이네 짚앞을 지날 땐 이 가슴 설레여/ 나도 모르게 안타까이 휘파람 불었네

2. 한번 보면은 어쩐지 다시 못볼 듯/ 보고 또 봐도 그 모습 또 보고싶네
오늘 계획 300을 했다고 생긋이 웃을 때/ 이 가슴에 불이 인다오 이 일을 어찌하랴

(후렴) 휘휘휘 호호호 휘휘 호호호/ 휘휘휘 호호호 휘휘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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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1-12 22:23   좋아요 0 | URL
아....비소츠키 노래...정말 좋네요..최곱니다..^^ 그런데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위에 조금 있긴한데..

로쟈 2007-01-12 23:15   좋아요 0 | URL
자세한 건 바람구두님의 사이트를 참조하시길. http://windshoes.new21.org/music-vysotsky.htm
 

출판계의 고질적인 관행/병폐를 짚어보는 기사를 옮겨온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종합/정리한다는 의미는 있겠다. '2007년 한국 출판의 현단계'라고 보아도 좋겠고. 올 연말에는 출판계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기대해보면서 짚을 건 짚고 넘어가도록 해보자.  

 
뉴스메이커(07. 01. 09) 출판계의 고질병 ‘스타마케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과 ‘마시멜로 이야기’(한국경제신문). 두 책의 공통점은 2006년 서점가를 강타한 베스트셀러라는 점이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12월말 현재까지 70만 부가 팔려 2007년 하반기 100만 부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는 2006년 8월 이미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베스트셀러라는 점 외에도 두 책의 공통점은 공지영과 정지영이라는 ‘스타’가 각각 저자와 번역자라는 점이다. 물론 ‘마시멜로 이야기’는 정지영이 아닌 제3의 인물이 대리번역한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시멜로 이야기’가 밀리언셀러로 등극하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10대, 20대에 인기가 높은 정지영이라는 TV스타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정지영은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전까지 ‘SBS 뉴스퍼레이드’ ‘접속 무비월드’ ‘출발 모닝와이드’ ‘TV문화지대-낭독의 발견’ 등을 진행하며 지적인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출판사는 이 점에 착안, 책 광고모델로도 정지영을 내세웠고 수차례에 걸쳐 팬사인회도 열었다.

공지영 소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역시 그가 지닌 스타성과 무관치 않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뿐 아니라 일본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펴낸 ‘사랑 후에 오는 것들’(소담출판사)도 2006년 28만 부가 판매됐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문학성 외에도 대중이 공지영이라는 스타작가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그의 책 판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지영은 2006년 5월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황금나침반)를 출간했다. 이 산문집에서 공지영은 늘 왕따였던 어린시절 이야기와 세 번 결혼해 세 번 이혼했고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낳은 사연 등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기호 소장은 “이 산문집에 실린 공지영의 인생역정 등도 대중이 공지영이라는 스타작가를 한결 인간적으로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정지영의 대리번역 파문에 이어 최근 출판계를 발칵 뒤집은 또 다른 사건은 대필 논란이다. 유명 화가 겸 방송인 한젬마의 최근작 ‘화가의 집을 찾아서’와 ‘그 산을 넘고 싶다’(샘터)가 거의 전적으로 대필작가에 의해 완성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출판계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대필작가, 일명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그림자작가 또는 유령작가)에 대한 환기를 불러 일으켰다. 고스트라이터는 수려한 문장력과 적절한 비유로 책을 완성도 높게 만들지만 책 판권정보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필자이기 때문에 그림자작가 또는 유령작가로 통한다.
 

 

 

이들의 역할은 저자가 쓴 원고를 좀더 매끄럽게 손보는 윤색 수준부터 완전 대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도움을 얻어 책 판권정보에 이름을 올린 저자는 명예와 인세(보통 판매수입의 8~10%)를 챙기는 반면 대필작가는 대부분 인세 대신 원고지 장당 얼마씩 계산하는 식의 수고비를 받는다. 한성출판기획 박영욱 대표는 “가령 대필자에게 원고료로 500만 원을 지불하기로 계약했고 책의 정가가 1만 원이라고 하면 초판을 5000부 찍어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대필자에게 주고 재판부터 발생하는 모든 인세는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에게 준다”고 설명했다.

대필은 주로 자서전 위주로 이루어져왔다. 작가지망생들이나 배고픈 문인들이 부업으로 정치인이나 재벌총수의 자서전을 대신 써주는 것으로 이는 가장 흔한 대필의 형태이다. 출판계 풍문에 따르면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국내 최고의 드라마작가로 손꼽히는 A씨가 2억 원을 받고 대필했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도 대필자가 따로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문인 중 대필작가 시절을 한번쯤 거치지 않은 이는 드물다. 그러나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에 딴죽을 거는 이는 없다.

문제는 이처럼 자서전 위주로 이루어지던 출판계의 관행이 이제는 자기계발서나 수필, 동화에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출판관계자는 “소설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발간되는 서적의 50% 이상은 고스트라이터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는 100%, 베스트셀러 중 6~7권은 대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젬마의 두 책이 문제가 된 것도 이 지점이다. 맨 처음 한젬마의 두 책에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한젬마가 자신이 직접 쓴 초고라며 구성작가에게 준 것은 메모와 자료 더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판 직후 각종 인터뷰에서 대필작가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인 양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한성출판기획 박영욱 대표는 “한젬마씨는 자료라도 줬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심한 경우 대필작가가 취재와 집필을 다하고, 책 판권정보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마지막 교정지만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대필관행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출판사의 도를 넘는 대필관행이 ‘스타’를 내세워 판매부수를 높이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는 점이다. 한젬마의 경우 1999년 ‘그림 읽어주는 여자’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명진출판)를 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출판계에서 명진출판은 기획출판을 통해 스타 저자를 많이 배출한 출판사로 이름이 높다. 1999년 당시 한젬마를 출판사에 소개한 출판전문가 김영수씨(김&정 기획실장)는 “한젬마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에 예쁘장한 외모여서 스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명진출판이 한젬마의 이와 같은 스타성을 더욱 부각시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명진출판이 내놓은 두 책과 이번에 문제가 된 샘터사의 두 책의 표지사진은 모두 스튜디오에서 공들여 촬영한 한젬마의 모습이다.

 


김영수씨는 “요즘엔 작가도 이미지가 따라주지 않으면 책이 안 팔린다”며 “이는 소설부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책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글이 50%이고 나머지는 작가의 외모나 경력, 사생활 등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때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신문 등 인쇄매체와 TV 등 영상매체다. 신문이나 TV를 통해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 쉽게 유명인이 되고 이는 곧 책 판매와 직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책 출간과 동시에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책 성향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을 섭외해 저자를 직접 출연시키면서 스타 만들기에 힘을 쏟는다. 김영수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출판사들은 기획을 통해 스타 만들기가 가능한 사람에게 자전적 에세이를 의뢰하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아예 연예인 등 스타를 내세운 에세이도 줄을 이었다. 1998년 박원숙의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중앙M&B)부터 1999년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2004년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오래된미래) 등 많은 책이 나왔다. 이 중 서갑숙의 ‘나도 때론…’은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다.

그러나 정지영과 한젬마를 둘러싼 파문에서 보듯 부작용도 적잖다. 글솜씨는 물론 너무 바빠 원고를 직접 쓸 시간조차 없는 스타들을 내세우면서 대리번역, 대필문제가 대두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글솜씨가 없는 전문가가 글솜씨가 있는 이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전문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마담으로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고 책의 내용 대부분이 대필자의 창작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출판을 통해 스타가 된 이가 심각한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일도 있다. 1995년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언제나 한국인’(대원미디어 출간)의 주인공 에리카 김(한국명 김미혜)이 한 사례다. 문제는 그의 동생인 김경준씨가 일으켰다. 김씨는 2001년 크게 회자된 ‘옵셔널벤처스 금융사기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전 시장은 2000년 김경준씨와 함께 서로의 머리글자를 딴 ‘LK이뱅크’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김씨는 2001년 당시 코스닥 기업이던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운영하다 거액의 회사 자금을 유용하고 미국으로 도망쳤다. 인터폴의 수배를 받던 김씨는 2004년 5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현재 LA 메트로폴리탄 디텐션 센터에 수감돼 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이 전 시장에게 김씨를 소개한 이는 다름아닌 베스트셀러 저자로 명성을 높인 에리카 김이었다.

출판계에서는 정지영과 한젬마를 둘러싼 파문을 ‘출판계의 황우석 사태’라며 자조한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유영준 팀장은 “국민을 상대로 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사기극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과학계 전체가 욕을 먹고 위축되지 않았느냐”며 “마찬가지로 자기가 쓰지 않은 책을 자신이 썼다며 명예와 인세 등 달콤한 과실만 먹은 이는 비난받아야 하지만 잇따른 이 두 번의 파문에 의해 출판계 전체가 위축될 수 있어 염려스럽다”고 토로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나 출판사들이 두 번에 걸친 파동으로 보조작가가 필요한 서적마저 출간을 꺼릴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대리번역과 대필, 사재기 등 출판계의 도덕성 시비가 당분간 봇물 터지듯 터질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출판계 스스로 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례사비평이 한국문학 죽였다”

 


출판계의 ‘스타 마케팅’은 비단 요즈음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 소설이 한창 대중적 사랑을 받던 시절, 즉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소설가를 ‘스타’로 띄우기 위한 출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책의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당시의 마케팅은 대리번역, 대필, 사재기 등으로 얼룩진 지금의 상황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와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작품을 언론을 통해 띄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등 많은 독자의 아낌을 받았던 작가들이 이때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스타를 만들어낸 주역은 출판사와 평론가, 주류 언론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특정 스타 작가의 작품이라면 완성도와 상관없이 한국 최고의 문학작품인 양 소개하는 주례사 비평이 평론가와 언론의 입을 통해 잇따랐다”며 “궁극적으로 이런 문화가 한국문학을 절벽으로 내몬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례사비평이란 비평가적 양심보다 출판사, 학연·지연 등 특정한 이해관계에 얽혀 마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듯 작품과 작가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풀어놓는 비평행위를 말한다. 2002년에는 이런 잘못된 비평행위를 정면으로 비판한 ‘주례사비평을 넘어서’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비판 없는 비평이 몰고 온 비평의 타락과 문학의 위기’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이 책에서 김명인, 고명철, 이명원, 홍기돈, 김진석, 신철하, 하상일, 진중권 등은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김형중 등 스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기호 소장은 “평론가와 언론은 주례사비평을 일삼고 스타 작가들은 작품을 공들일 여유조차 없이 비슷한 성향의 작품을 연달아 성급하게 생산하면서 현재 한국문학의 자멸을 초래한 것”이라며 “요즘은 팩션이나 일본소설을 제외하면 공지영과 김훈 외에 초판 3000부 이상 팔리는 책조차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이 침체를 면치 못하자 지난해부터 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는 ‘힘내라, 한국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문학회생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수십억 원의 복권기금을 이용해 우수문학도서 구입과 배포,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원고료 지원, 우수 문예지 구입과 배포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학회생프로그램이 오히려 한국문학을 한층 더 고사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작가에게 원고료를 지원하고 한국문학을 출판한 출판사의 해당 책을 사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근원적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정도의 미봉책’이라는 시각도 적잖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국가에서 한국문학의 침체를 손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자세는 좋으나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작가나 출판사에 대한 지원이 궁극적으로 한국문학을 회생시키는 방안이라기보다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박주연 기자)

 

07.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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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7-01-11 08:08   좋아요 0 | URL
이명원이나 권성우처럼 주례사비평을 다룬 책을 쓰면 거의 안팔리더군요.... 강준만도 그렇구.... 어린 물고기를 싹 잡아서 수산자원을 말리는 짓이라고 생각해요...

로쟈 2007-01-11 08:48   좋아요 0 | URL
칭찬/아부도 너무 자주하면 값이 떨어지는 게 상례이죠. 서로 쓴소리 안 하는(같은 식구들끼리는 더더욱) 미풍양속 덕분에 말의 값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비평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문학은 노벨상을 여럿 배출하고도 남을지 모릅니다(고래도 춤춘다니까). 이젠 좀 식상한 문구가 돼버렸지만, '주례사비평'에 대한 비판도 궁극적으론 다른 스타일의 비평을 제시하는 쪽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게 잘 눈에 띄지 않네요...

기인 2007-01-11 08:52   좋아요 0 | URL
아.. 서울대 미대를 나오고 예쁘장해서 스타성이 있는 '한젬마'라니...
미인은 괴로워~
이런.. 저는 요즘 열심히 단편소설 습작하고 있는데, 베스트셀러를 쓰려면 성형수술과 헬스장 가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오.. 근데 장동건 외모고 소설을 쓴다면 ㅋㅋ
내가 쓴 영화에 내가 나왔네~ (맷 데이먼 이군요 ^^; )

기인 2007-01-11 08:54   좋아요 0 | URL
한젬마 씨는 좀 특이하게 생긴 것 같은데, 정지영 아나운서는 진짜 이쁘네요. tv가 없어서 몰랐어요. 어쨌든 퍼갑니다.
이제 작가도 기획사 시대! 아니; 이미 기획사가 있는 거네요;;;

나비80 2007-01-11 23:39   좋아요 0 | URL
수없이 쏟아지는 신간들 중 찬사를 받지 않는 작품이 거의 없는 형국이니 비평가들의 검증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지난 연말에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를 쓰신 이명원, 고명철, 하상일 선생님 등과 만나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류 문단의 경계를 받는 분들이시지만 한국 문학을 바로 잡으려는 열의가 대단하시더라구요. 그분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평의 지평을 열어줄 건강한 신인들이 계속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면 로쟈님이 걱정하셨던 새로운 비평의 시대가 좀 수월하게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비평가들의 치밀하고 정교한 비평 작업이 모든 조건앞에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더불어 독자들도 한국 문학에 대한 주체적인 관심과 질책뿐 아니라 애정도 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쟈 2007-01-12 00:42   좋아요 0 | URL
기인님/ 거의 '공익은 한가해' 수준이시네요. 소설 습작까지 하시고. 내년 신춘문예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소이부답님/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기인 2007-01-14 11:25   좋아요 0 | URL
ㅋ 원래 공익은 그렇습니다. 김연수 선생도 공익 때 소설 열심히 써서 등단했다죠. ㅋ 저는 구상만 많이 해요. 얼른 '물질화'해야 하는데. ㅎㅎ
 

어제 스크랩해놓은 기사인데, 몇 자 보태서 '방주'에 올려둔다. 지난주 언론의 북리뷰들에서 가장 눈에 띈 책은 프랑스의 (신)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황금부엉이, 2006)와 철학자 조중걸씨의 <열정적 고전 읽기> 완간 소식이었다. 두 권(<고전읽기>는 10권짜리이지만) 다 아직 실물을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자는 다음달 '사회적 독서'의 목록으로 올려놓을까 생각중이고(따라서 자세한 페이퍼는 2월에 쓰게 될 듯하다), 후자는 한두 권 정도 견본삼아 읽어볼 생각이다. 논술대비용 고전읽기야 차고 넘치다 못해 범람하는 수준이지만, 조중걸판의 특징은 저자의 독특한 이력과 맞물린다. 기사의 내용대로라면, 저자는 도올 김용옥 이래의 '걸물'이라 할 만하다. 10권짜리 '액면'을 다 펴 보였으니 인터뷰에서 내비친 그의 고성이 허언만은 아니겠다(그는 말로만 떠는 게 아니라 실물을 보여준 셈이므로). 이러한 제도권 바깥의 목소리를 접하며 더불어 기대하게 되는 것은 제도권 '안'의 목소리이다. 한번 겨뤄보자고 청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한국일보(07. 01. 06) 고전을 다 읽으면 세상이 모조리 보인다

꽃자주색 띠지(책 표지에 두른 광고지)에, 그 빛깔보다 더 선정적인 문구(‘생각의 폐활량을 높여라!- 논술 달인을 위한 비밀 레시피’)를 단, 한 철학자의 고전 안내서 10권이 완간됐다. 국내에 적(籍)도 없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철학자 조중걸(50)씨가, 한 두 분야도 아니고 철학 사회 역사 예술 과학 등 서양 지성사의 돌올한 고전들을 모조리 섭렵하고 썼다는 <열정적 고전읽기>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은 영국 학자 키토의 <그리스인>부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윌리스 퍼거슨의 <르네상스>, 앙드레 모루아의 <영국사>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를 소개하는 역사편. ‘폴리스’의 성격과 의미를 뒤지는 첫 텍스트에서 근대 민주주의의 양대 젖줄인 ‘부르주아 혁명(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나아가는, 요컨대 ‘서구 정치사의 흐름’을 되밟아 가게끔 ‘기획’된 책이다. 각각의 고전들이 서구 정치사의 어떤 구비에 있으며, 또 어떤 경로로 흘러가는지 목차만으로도 감을 잡도록 짜여졌다는 의미다. ‘기획’은 개별 텍스트의 구성에서도 엿보인다.

고전이 탄생한 시대적ㆍ지성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전문과 고전 원문(주요 부분 발췌), 원문 번역문, 해설이 각 장을 구성하는데, 장의 꼬리는 다음 장의 머리에 닿아있다. 그 구성이 역사뿐 아니라 철학 사회 예술 과학으로 거미줄처럼 네트워크화한다. 고전으로 훑는 서양 지성사의 개론서이면서, (저자가 의도한 바) 고전을 건져올릴 그물이 되게 한다는, 부분과 전체의 조화로서의 ‘기획’이다. 저자는 부분(책)은 전체(세상)와의 조화로 읽혀야 한다고 말했다. “책도 시대의 소산인 만큼 그 시대의 맥락, 패러다임과 세계관의 연관과 이해 속에서 시대의 일부로 읽혀야 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인문사회계열 77학번. 재학 1년2개월 만에 입대해 82년 제대. 1개월 뒤 프랑스문화원 유학시험에 합격해 그 해 프랑스파리3대학(소르본) 유학. “스승으로 만나 친구로 헤어진” 조르주 뒤비의 지도로 서양예술사와 서양철학을 전공. 미국 예일대로 건너가 문학사와 수리철학으로 2개의 석사학위, 미술사 음악사 수리철학으로 3개의 박사학위를 획득. 그 해 나이 만 32세.

다수의 논문과 몇 권의 대학 교재(영문)를 썼고, 캐나다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아카데미의 한계를 깨닫고 귀국, 강단과 거리를 둔 채 집필에 전념(*생계는 누가 돌보는 것인지? 독신인가?). 미 랜덤하우스와 계약한,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 철학 역사가 어우러질 ‘메타피지컬 인터프리테이션’ 예술사(전10권)를 집필중이다.

저자는 이런 ‘장황한’ 이력의 나열을 불편해 할 것이다. “‘Publish or Perish!(책으로 말하라, 아니면 사라져라!)’ 학위나 경력 따위는 학문 장사꾼에게나 필요한 겁니다.” 대학에 대한, 대학교수에 대한 그의 독설은 거침없다. “한 전직 교수가 ‘50년간 글을 쓴 나도 서울대 논술에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죠? 그 논술문제가 ‘데카르트 자아관과 현대사회의 자아관을 비교하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걸 못 쓴다니…. 무식하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도 됐던 인문학자의 서글픈 고백입니다.” 그게 지금 우리 교수들의 대체적인 수준이라는 말도 했다(*한 '전직 교수'란 이어령 선생을 말한다. 저자의 배포를 짐작하게 한다. 한데, 이어령 선생은 책으로 치자면 저자보다 20배는 더 많이 써내지 않았나?).

유학 초기,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교양에의 갈증과 소외감에 고전을 읽었고, 그 고전 읽기의 노하우를 책에 담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 안내서만 읽으면 어떻겠느냐는 에두른 질문에 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봐도 아마추어는 주인공의 운명(스토리)에만 관심을 쏟지만, 진정한 딜레탕트는 운명의 전개양식을 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원수의 딸을 사랑하게 됐다’와 ‘증오의 가지에 사랑이 싹텄다’가 같을 수 없지요.”

암벽 등반을 즐기고 플라이낚시광(狂)이라 6~8월은 캐나다에서 산다는 철학자. “인문학은 병적인 행복을 정상적인 불행으로 만드는 학문”이라며 세속의 기쁨을 멀리하라고 말하는 학자. 돈과 상을 마다하고 지적 희열과 자유 속에 침잠하고 있다는 러시아의 수학 천재 페렐만을 연상시키는 그는, 만 40살이 된 기자에게도 “공부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말했다.(최윤필 기자)

07. 01. 06. - 07.

P.S. 검색해보니까 조중걸씨는 심산 스쿨에서 서양미술사 강의를 올해 진행할 계획이며, 기사에서 언급된 대로 서양미술사 전반에 대한 그의 해석(철학적 해석)을 담은 원서를 조만간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아놀드 하우저를 넘어설 만한 대작을 기획하고 있다는데, 저자의 포부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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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7 22:32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대단한 학력이군요. 다양하게 또 많게.

로쟈 2007-01-07 22:39   좋아요 0 | URL
세 개의 박사학위논문을 동시에 썼다는 게 믿기진 않지만, 사실이라면 대단하긴 합니다(우리 시스템상으론 대학원 과정을 이수하고 석사논문 등을 제출해야/혹은 시험에 통과해야 박사학위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에).

biosculp 2007-01-10 17:20   좋아요 0 | URL
서점에서 책 보았을때 뭔 또 애들 상대 논술책인가 하고 들쳐보지도 않았었는데 다시 봐야겠군요.
심산에 인터뷰한내용이 있더군요.
http://www.simsanschool.com/bbs/zboard.php?id=board1&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4

로쟈 2007-01-11 00:41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술' 파트만 구입했는데, 아예 참고서 매장에 가 있더군요. 번역도 안된 책들을 정말로 (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권하는 것인지, 컨셉은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논술교사들에게는 유익해 보이는 책입니다...
 

연초부터 각 매체마다 책읽기에 유난한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의 '사회적 독서' 운동에 이어서 한국일보에서는 '우리시대의 명저 50' 시리즈를 연재한다고 한다. '명저'라고는 돼 있지만 목록을 보면, 당대의 베스트셀러들도 많이 망라돼 있다. '명저'라는 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책이란 뜻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한 듯싶다. 아무튼 이 50권에 대한 해제가 다 게재되면 올 한해도 다 가는 게 아닌가 싶다(하냥 섭섭할까?). 50권의 면면들을 구경해볼까라는 '무모한' 욕심도 품어봄 직하지만, 이미 펌글에 도서(상품) 이미지를 집어넣지 말도록 재차 당부를 받은 터라 자제하기로 한다(이러한 펌글도 가급적 자제할 예정이다). 맨숭맨숭하긴 하지만, 목록만을 한번 일람해보는 것으로 '책구경'을 대신해야겠다(시간이 남아서 좋긴 하군).  

한국일보(07. 01. 04) 우리시대의 명저 50

우리 저술의 숲은 건강하고 우람했다. 지성의 숲을 거니는 일은, 굳이 한 그루 한 그루의 결을 더듬고 껴안아보지 않고서도, 황홀하고 뿌듯했다. 책의 전문가들이 전해온 목록의 갈피에서 밀려오던 희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또 저자와 책이 갖는 이름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기획팀은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 고통마저도 행복했다.

추천ㆍ자문단과 기획팀은 선행 연구로 불모의 땅을 일군 선구적 저서와 학문적으로 고전의 무게를 지닌 책, 지식 대중화를 선도한 책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또 특정 저서의 가치 못지않게 해당 저자가 우리 지성사에 미친 영향을 높이 산 경우도 있다. 시대적 담론과 이슈의 중심에 섰던 문제적 저작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고심했다.

식민지 사관과 실증 사학을 넘어 지배집단의 교체라는 독자적 사관으로 한국사를 정립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고난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로 나아가고자 했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서양 신학과 전통 종교사상을 대비하며 우리 문화의 보편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한 유동식의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재야 학자로서 학문적 엄밀성과 함께 역사의 빈틈을 성실히 메워준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 서양고대철학 연구의 수원지로 여전히 마를 기미 없이 푸르게 출렁이는 박홍규의 <희랍철학논고>, 우리 역사에서 ‘자생적 근대화론’ ‘자본주의 맹아론’의 학술적 근거를 실증해 그 문제 의식을 지금까지 이어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 해당 분야에서 아직도 이들의 업적을 넘어서는 저작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김두종, 전상운, 김용준, 유민영 등의 노작들이 그렇게 선정됐다.

암울한 군사독재의 억압을 뚫고 비판적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지성의 균형점을 잡아준 리영희, 1980년대의 질곡에 <민중신학>이라는 독보적인 신학적 응답을 제시했던 안병무, <전태일 평전>으로 1970년대와 80년대 변혁운동의 맥을 이어준 조영래, 마당극이라는 전통 연희의 현대적ㆍ변혁적 연구와 실천으로 당대 문화의 큰 정신을 구축했던 채희완, 억압의 시절을 몸으로 살았고 몸의 고백으로 시대를 움직인 서준식 정수일 홍세화의 저작들도 놓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명저로 꼽혔다.

경제학이 강단을 벗어나 어떻게 현실과 만날 수 있는지를 가슴으로 보여준 정운영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고도의 과학 전문 연구분야를 대중적 글쓰기로 선도한 최재천의 <개미 제국의 발견>, 20세기 신화 열풍을 주도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동양미술의 오주석, 서양미술의 이주헌, 한시의 정민, 미학의 진중권 등은 인문학 대중화의 전범으로 꼽혔다. 또 우리 글과 우리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아프게 일깨운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학의 오랜 딜레마였던 ‘근대’의 숙제를 성실히 풀고자 한 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 등도 목록에 들었다.

기획팀의 어두운 눈과 선택의 편의로 막판에 누락된 소중한 책들도 수두룩하다. 이들 책에 대한 응당한 예우는 눈 밝은 독자들의 몫으로 넘기고자 한다. 우리는 저자들이 먼저 닦은 저 편한 길을 최대한 힘들여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고자 한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지성의 독자들과 함께.

● 추천 위원 기고: 무엇이 책을 숨쉬게 하는가

광복 이후 '나라 세우기'와 상응하는 '학문의 토대 쌓기'는 광복 직후의 혼란상과 한국전쟁의 상흔 탓에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김원룡의 <한국미술사>,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 등이 대표적이다. 수용자, 즉 독자 측면에서 보면 60년대는 전집 출판의 전성기였다. 외판원에게 구입한 문학이나 사상 전집을 거실에 꽂아두는 허영심이 팽배했으나, 그 허영심이란 바꿔 말하면 일종의 지적 허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의 60년대는 배만 고팠던 게 아니다.

특기할 만 한 것은 1970, 71년에 나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내발적(內發的) 근대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김현, 김윤식의 <한국문학사>도 김용섭의 연구 성과에 크게 자극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0년대는 근대화의 기치 아래 개발 독재와 정치적 억압으로 점철된 시대였고, 출판과 책도 그러한 시대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의 시대로도 불리는 1980년대에는 좌파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많은 지식인들이 정당성 없는 권력의 폭압적 전횡에 맞서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되찾은 우리 글과 말로 토대를 쌓고 틀을 짓는 시기, 어떤 의미에서는 각 분야에서 개척자적 노력이 요구되었던 시기가 1950, 60년대라면 1970, 80년대는 학문과 출판과 책이 시대와 현실의 요청에 충실히 응답하려 했던 시기다. 무너뜨려야 할 우상도, 싸워야 할 대상도, 이뤄야 할 목표도 분명했던 시대, 그래서 일종의 전선(戰線) 시대라 칭해도 좋을 그런 시대였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전선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잃은 것은 전선이었고 얻은 것은 다양성이었다. 우리 출판과 책의 지형도는 매우 다채로워진 것은 물론 훨씬 더 독자 지향적으로 바뀌었다. 개성 넘치는 문장 스타일, 입말에 가까운 글쓰기, 엄숙한 강의가 아니라 정겨운 수다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저자들이 부각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미학 오디세이>의 진중권이 그러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윤기가 그러했다.

최근 들어와 많은 이들이 책을 걱정한다. 그들이 보기에 독자들은 더 이상 책의 존엄을 경외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의 얼개와 뜻을 깊이 파고드는 책은 좀처럼 환영 받지 못한다. 책의 위기, 책의 죽음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출판과 책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책은 위기였다. 다만 위기 속에서도 시대의 중추를 정확히 건드리며 한 획을 그은 소수의, 아니 극소수의 책들이 있었기에 책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다.(표정훈 출판평론가)

07.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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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04 09:41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
'강만길 등'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네요. ㅎ 사실 '외'라는 표현은 참여한 학자들의 이름을 생각해봐도 너무 '소외'시키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공저는 '등'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요.
ㅋ 근데 고미숙 선생의 책이라니! 재미는 물론 있지만, 결국 연암의 글은 '우리시대'가 될 수 없다는 걸까요.
'우리시대'라는 것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항상 '우리'라는 게 누구일까 궁금하게 합니다.

로쟈 2007-01-04 10:28   좋아요 0 | URL
이건, 말 그대로 우리시대(동시대) 저자들이 산출해낸 책들을 가리키는데요. 해방이후 현재까지...

biosculp 2007-01-04 18:23   좋아요 0 | URL
죽 보니 읽거나 가지고 있는 책이 21권이군요.
개인적으로는 김용옥, 정운영, 최장집 책이 제일 애착이 가는데

로쟈 2007-01-04 18:57   좋아요 0 | URL
저도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정도군요. 90년대 이후의 책들이 목록의 절반 가량인데, 좀 과대평가된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보다 직접적인 의미의 '우리시대'이긴 하나 선자들의 연령대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작년인가 한 일간지에서 '제3의 문화'의 주창자 브록맨이 이끌고 있는 엣지(Edge) 재단의 저널 '디 엣지'의 신년 설문을 크게 다룬 적이 있다. 작년의 물음은 "당신의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였는데, 경향신문의 기사를 보니까 올해의 질문은 "당신은 무엇을 낙관하는가? 왜?"이다. 기사의 타이틀은 "25년 안에 종교-미신 힘 못 쓴다"라고 돼 있는데, 역시나 과학자들이 현실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좀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듯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과학자들의 이름이 보이고(친숙한 이름들 중에 누락된 것도 여럿 된다), 일부의 주장은 서로 상충되기에 흥미롭다. 연초부터 잿빛 전망들에 다소 우울한 독자들이라면 이 '올해의 질문'에 답해보면서 기운을 좀 내보는 것도 좋겠다.

 

 

 

 

경향신문(06. 01. 03) "25년 안에 종교·미신 힘 못쓴다”

'앞으로 25년 안에 종교와 미신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전쟁과 자폐증은 사라지고 100살이 넘어서도 활동적으로 사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닌 날이 도래할 것이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터넷 잡지 ‘디 엣지(The Edge)’가 과학자와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낙관하는 것은?’이라고 물은 데 대한 답변들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같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대해 “TV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획득이 더 손쉽게 이뤄지고 과학자들이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최종이론 발견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엣지는 사회·자연과학자 집단인 제3의문화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올해의 질문’을 던진 뒤 1월1일 홈페이지(www.edge.org)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157명의 사계의 권위자들이 답변했다(*답변자는 더 늘어나서 최종적으론 160명이다). 이들이 쏟아낸 주제는 물리학의 초끈이론, 정보, 인구증가, 암, 기후, 22세기, 과학의 미래, 고등교육의 세계화, 우정 등 다양했다. 엣지는 과학자나 과학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진다는 전통적인 생각과 달리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종식되고 폭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데에 일부 학자들은 공감을 표시했다. 반면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최종이론에 대해서는 과학들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최상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강조한 심리학자의 진단은 곱씹을 만하다. 대표적인 답변들을 요약해 소개한다.

◇“종교에 대한 경외심 증발”(다니엘 데니트/철학자)=앞으로 25년 안에 종교는 현재와 같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한 정보의 확산은 종교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과 편견을 낳는 사고방식들을 서서히, 그리고 저항할 수 없게 허물어버릴 것이다.

◇“폭력의 감소”(스티븐 핀커/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20세기의 피로 얼룩진 역사로 고통받은 많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를 보면 조직적인 폭력사태는 하향국면에 접어들었다.

◇“자폐증과 디지털 시대의 부상”(사이먼 바론 코언/케임브리지대 심리학 교수)=자폐증이 증가추세이긴 하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다. 상당 비율의 자폐증은 역대 최상의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컴퓨터가 등장한 것은 1953년이다. 많은 아이들이 컴퓨터를 갖게 된 것은 불과 54년이 지난 후이다. 디지털시대는 자폐 심리와도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다른 어린이들이 사람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키워가는 것처럼 많은 자폐아동들도 컴퓨터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키워나갈 것이다.

◇“100살이 넘도록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것”(리오 차루파/UC데이비스대 신경생물학 교수)=21세기 중반에는 100살이 넘는 사람들이 활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세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선진국의 수명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나머지 둘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세포 기능을 통제할 수 있고, 손상된 뇌 부위를 재생할 수 있는 생명의학 분야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에너지 도전”(마틴 리즈/영국왕립연구소 소장)=몇년 전 쓴 ‘우리의 마지막 세기’라는 책에서 파괴적인 퇴보없이 2100년을 버틸 수 있는 문명은 50%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비관적이었으며 그후 나는 낙관주의자가 됐다. 사실 기술적 낙관주의자의 근거는 많다. 하지만 개도국이든 선진국이든 청정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과학의 최우선 과제이다.

◇“올바른 선택이 지배할 것”(자레드 다이아몬드/UCLA 생물학자)=현 상황에 대해 낙관적인 데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대기업이 장기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결국 이익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며, 민주주의 하에서 유권자들은 나쁜 선택보다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진보”(샘 해리스/신경과학 연구자)=끊이지 않는 모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덕성 부분에 있어서는 명백한 진보를 이뤄왔다. 우리의 감정이입 능력은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인류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 상황에 있다.

◇“우정은 생존한다”(주디스 리치 해리스/이론가)=우정에 대해 일부는 비관적이지만 우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정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뿐이다. 사람들은 서로 사귀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볼링을 같이 할 친구는 찾기 힘들어도 대화할 상대는 찾기 쉽다. 대화하는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최상은 아직 아니다”(니컬러스 험프리/런던정경대 심리학자)=나는 1007년에 살았다 하더라도 모차르트 음악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예술적 재능은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07년인 지금 나는 최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어느 시대도 경험하지 못한 예술의 위대한 작품은 항상 우리 미래에 오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낙관주의”(리처드 도킨스/옥스포드대 진화생물학자)=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이 꿈꿔온 물리학의 근본이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최종이론을 발견할 것으로 낙관한다. 또 과학을 통한 각성은 기존의 종교와 새로 생겨나고 있는 종교에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최후의 일격을 가할 것이이다.

◇“최종이론은 성취 못할 것”(프랭크 윌첵/MIT 물리학교수·200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물리학은 모든 현상을 하나로 설명하는 최종이론을 규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라면 최종이론은 매력적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놀라게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이 우리를 계속 환상적이고도 근본적인 방법으로 놀라게 만들 것으로 여긴다.(조찬제 기자)

The Edge Annual Question — 2007

WHAT ARE YOU OPTIMISTIC ABOUT? WHY?

As an activity, as a state of mind, science is fundamentally optimistic. Science figures out how things work and thus can make them work better. Much of the news is either good news or news that can be made good, thanks to ever deepening knowledge and ever more efficient and powerful tools and techniques. Science, on its frontiers, poses more and ever better questions, ever better put. What are you optimistic about? Why? Surprise us!

몇몇 학자들의 답변을 전문 인용한다.

Daniel C. Dennett

The Evaporation of the Powerful Mystique of Religion

I’m so optimistic that I expect to live to see the evaporation of the powerful mystique of religion. I think that in about twenty-five years almost all religions will have evolved into very different phenomena, so much so that in most quarters religion will no longer command the awe it does today. Of course many people–perhaps a majority of people in the world–will still cling to their religion with the sort of passion that can fuel violence and other intolerant and reprehensible behavior.  But the rest of the world will see this behavior for what it is, and learn to work around it until it subsides, as it surely will.  That’s the good news. The bad news is that we will need every morsel of this reasonable attitude to deal with such complex global problems as climate change, fresh water, and economic inequality in an effective way. It will be touch and go, and in my pessimistic moods I think Sir Martin Rees may be right: some disaffected religious (or political) group may unleash a biological or nuclear catastrophe that forecloses all our good efforts. But I do think we have the resources and the knowledge to forestall such calamities if we are vigilant.

Recall that only fifty years ago smoking was a high status activity and it was considered rude to ask somebody to stop smoking in one’s presence. Today  we’ve learned that we  shouldn’t make the mistake of trying to prohibit smoking altogether, and so we still have plenty of cigarettes and smokers, but we have certainly contained the noxious aspects within quite acceptable boundaries.  Smoking is no longer cool, and the day will come when religion is, first, a take-it-or-leave-it choice, and later: no longer cool–except in its socially valuable forms, where it will be one type of allegiance among many. Will those descendant institutions still be religions?  Or will religions have thereby morphed themselves into extinction?  It all depends on what you think the key or defining elements of religion are. Are dinosaurs extinct, or do their lineages live on as birds?

Why am I confident that this will happen?  Mainly because of the asymmetry in the information explosion.  With the worldwide spread of information technology (not just the internet, but cell phones and portable radios and television), it is no longer feasible for guardians of religious traditions to protect their young from exposure to the kinds of facts (and, yes, of course, misinformation and junk of every genre) that gently, irresistibly undermine the mindsets requisite for religious fanaticism and intolerance. The religious fervor of today is a last, desperate attempt by our generation to block the eyes and ears of the coming generations, and it isn’t working. For every well-publicized victory–the inundation of the Bush administration with evangelicals, the growing number of home schoolers in the USA, the rise of radical Islam, the much exaggerated “rebound” of religion in Russia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to take the most obvious cases–there are many less dramatic defeats, as young people quietly walk away from the faith of their parents and grandparents.  That trend will continue, especially when young people come to know how many of their peers are making this low-profile choice.  Around the world, the category of “not religious” is growing faster than the Mormons, faster than the evangelicals, faster even than Islam, whose growth is due almost entirely to fecundity, not conversion, and is bound to level off soon.

Those who are secular can encourage their own children to drink from the well of knowledge wherever it leads them, confident that only a small percentage will rebel against their secular upbringing and turn to one religion or another.  Cults will rise and fall, as they do today and have done for millennia, but only those that can metamorphose into socially benign organizations will be able to flourish.  Many religions have already made the transition, quietly de-emphasizing the irrational elements in their heritages, abandoning the xenophobic and sexist prohibitions of their quite recent past, and turning their attention from doctrinal purity to moral effectiveness.  The fact that these adapting religions are scorned as former religions by the diehard purists shows how brittle the objects of their desperate allegiance have become.  As the world informs itself about these transitions, those who are devout in the old-fashioned way will have to work around the clock to provide attractions, distractions—and guilt trips—to hold the attention and allegiance of their children.  They will not succeed, and it will not be a painless transition. Families will be torn apart, and generations will accuse each other of disloyalty and worse: the young will be appalled by their discovery of the deliberate misrepresentations of their elders, and their elders will feel abandoned and betrayed by their descendants.  We must not underestimate the anguish that these cultural transformations will engender, and we should try to anticipate the main effects and be ready to provide relief and hope for those who are afflicted.

I think the main problem we face today is overreaction, making martyrs out of people who desperately want to become martyrs.  What it will take is patience, good information, and a steady demand for universal education about the world’s religions.  This will favor the evolution of avirulent forms of religion, which we can all welcome as continuing parts of our planet’s cultural heritage. Eventually the truth will set us free.

Steven Pinker

The Decline of Violence

In 16th century Paris, a popular form of entertainment was cat-burning, in which a cat was hoisted on a stage and was slowly lowered into a fire. According to the historian Norman Davies, "the spectators, including kings and queens, shrieked with laughter as the animals, howling with pain, were singed, roasted, and finally carbonized."

As horrific as present-day events are, such sadism would be unthinkable today in most of the world. This is just one example of the most important and under appreciated trend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the decline of violence. Cruelty as popular entertainment, human sacrifice to indulge superstition, slavery as a labor-saving device, genocide for convenience, torture and mutilation as routine forms of punishment, execution for trivial crimes and misdemeanors, assassination as a means of political succession, pogroms as an outlet for frustration, and homicide as the major means of conflict resolution—all were unexceptionable features of life for most of human history. Yet today they are statistically rare in the West, less common elsewhere than they used to be, and widely condemned when they do occur.

Most people, sickened by the headlines and the bloody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 find this claim incredible. Yet as far as I know, every systematic attempt to document the prevalence of violence over centuries and millennia (and, for that matter, the past fifty years), particularly in the West, has shown that the overall trend is downward (though of course with many zigzags). The most thorough is James Payne’s The History of Force; other studies include Lawrence Keeley’s War Before Civilization, Martin Daly & Margo Wilson’s Homicide, Donald Horowitz’s The Deadly Ethnic Riot, Robert Wright’s Nonzero, Peter Singer’s The Expanding Circle, Stephen Leblanc’s Constant Battles, and surveys of the ethnographic and archeological record by Bruce Knauft and Philip Walker.

Anyone who doubts this by pointing to residues of force in America (capital punishment in Texas, Abu Ghraib, sex slavery in immigrant groups, and so on) misses two key points. One is that statistically, the prevalence of these practices is almost certainly a tiny fraction of what it was in centuries past. The other is that these practices are, to varying degrees, hidden, illegal, condemned, or at the very least (as in the case of capital punishment) intensely controversial. In the past, they were no big deal. Even the mass murders of the twentieth century in Europe, China, and the Soviet Union probably killed a smaller proportion of the population than a typical hunter-gatherer feud or biblical conquest. The world’s population has exploded, and wars and killings are scrutinized and documented, so we are more aware of violence, even when it may be statistically less extensive.

What went right? No one knows, possibly because we have been asking the wrong question—"Why is there war?" instead of “Why is there peace?" There have been some suggestions, all unproven. Perhaps the gradual perfecting of a democratic Leviathan—"a common power to keep [men] in awe"—has removed the incentive to do it to them before they do it to us. Payne suggests that it’s because for many people, life has become longer and less awful—when pain, tragedy, and early death are expected features of one’s own life, one feels fewer compunctions about inflicting them on others. Wright points to technologies that enhance networks of reciprocity and trade, which make other people more valuable alive than dead. Singer attributes it to the inexorable logic of the golden rule: the more one knows and thinks, the harder it is to privilege one’s own interests over those of other sentient beings. Perhaps this is amplified by cosmopolitanism, in which history, journalism, memoir, and realistic fiction make the inner lives of other people, and the contingent nature of one’s own station, more palpable—the feeling that "there but for fortune go I."

My optimism lies in the hope that the decline of force over the centuries is a real phenomenon, that is the product of systematic forces that will continue to operate, and that we can identify those forces and perhaps concentrate and bottle them.

Jared Diamond

Good Choices Sometimes Prevail

I am cautiously optimistic about the state of the world, because: 1. Big businesses sometimes conclude that what is good for the long-term future of humanity is also good for their bottom line (cf. Wal-Mart's recent decision to shift their seafood purchases entirely to certified sustainable fisheries within the next three to five years). 2. Voters in democracy sometimes make good choices and avoid bad choices (cf. some recent elections in a major First World country).

Richard Dawkins

The Final Scientific Enlightenment

I am optimistic that the physicists of our species will complete Einstein's dream and discover the final theory of everything before superior creatures, evolved on another world, make contact and tell us the answer. I am optimistic that, although the theory of everything will bring fundamental physics to a convincing closure, the enterprise of physics itself will continue to flourish, just as biology went on growing after Darwin solved its deep problem. I am optimistic that the two theories together will furnish a totally satisfying naturalistic explanation for the existence of the universe and everything that's in it including ourselves. And I am optimistic that this final scientific enlightenment will deal an overdue deathblow to religion and other juvenile superstitions.

07.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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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1-03 09:19   좋아요 0 | URL
음냐 뭐랄까. 저는 데넷은 철학자로서, 사회 철학의 지점에서는 데리다나 지젝이 보다 급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물론 개설서 정도 읽어본 수준이지만...

하이데거의 66년 슈피겔 지와의 대담과 입장이 전혀 딴판이군요.

로쟈 2007-01-03 09:23   좋아요 0 | URL
데닛은 소위 '강한' 인지주의를 대표하고,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종교-미신 종언론'은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라고 봅니다(마르크스의 예언은 어떤가요?). 그리고 물론 그는 '사회철학자'가 아니죠.^^

자꾸때리다 2007-01-03 10:05   좋아요 0 | URL
아. 리플을 지우려고 했는데 그새 다셨네요..ㅡㅡ; 데넷은 사회철학자가 아니죠. 다만 제 생각에는 데넷의 입장들 중에 사회적 함축을 띄고 있는 것들이 그렇다는 것이죠... 특히 'Darwin's dangerous idea'에 담긴 주장 중에는 사회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주장들이 있지 않나요? 부분 부분 읽어보기만 했지만...


전 별로 데넷에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