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9
김준형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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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만나기 힘든 재밌는 책이었다. 포복절도하는 그런 웃음과는 종류가 다르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겠구나... 생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목에서 이미 알렸듯이 이 책은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이다. 책장을 열면 일단 컬러풀한 춘화 몇장이 독자를 기다린다. 수위는 다소 낮지만(좀 더 높았다면 모두 랩핑되어 출간될 운명이었다 한다.) 준비 없이 맞닥뜨리면 움찔! 놀라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제목도 뜯어보면 발그레~ 해질 수 있으니 이런 때를 위해서 북커버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맨 껍데기 그대로 보길 바란다. 이제 이런 책을 본다고 부끄러워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게다가 표지가 제법 잘 빠졌다. 문학동네 문학전집의 디자인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고전문학전집도 비슷한 컨셉으로 간 듯하다. 내게는 좋은 선택이다.  

이 책에는 모두 11권의 패설집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만 추려서 담아냈다. 당연히 시대는 조선 후기의 작품들이다. 정확한 연대와 작가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략적인 유추는 가능했다. 이야기들은 대체로 짧았고, 원문을 같이 실었으며 한자어의 해석을 각주로 달았다. 무려 650쪽이 넘는 긴 책이지만 읽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편이다. 각 잡고서 진중하게 읽을 게 아니라 편안하게 들춰보면서 쿡쿡쿡 웃으면 이 책에 딱 어울리는 반응이라 하겠다.  

읽으면서 주로 '데카메론'을 떠올리게 했다. 흑사병과 같은 극단적인 배경도 없고, 한정된 공간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도 아니건만, 권위 부리는 양반들과 속세에 관심없어 보이는 승려들을 조롱과 해학의 대상으로 삼은 탓일 게다. 수도사들이 승려로 대체된 그런 느낌이다. 귀족들이 양반으로 뒤바뀌고.  

그런 이야기들이 당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하나의 탈출구 역할을 해줬을 거라고 짐작하면 꽤 통쾌하기도 한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시대적인 한계 때문인지 여전히 권위의식이 넘치는 것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이를 테면 양반 하나가 상놈을 괴롭혀서 그가 이야기에 빗대어 양반을 조롱한 것에 대해 패설집을 엮은 이의 촌평이 이렇다.  

양반이라는 세력만 믿고 상놈을 농락하다가 이런 능욕을 당했으니 후회해도 할 수 없지. 다시 말해보자. 비록 복수심에서 나왔다고는 하지만 어찌 이다지도 억세고 모진가. 장비의 성난 모습을 가탁하여 마초에게 할 욕설을 곧바로 양반에게 퍼부었구나. 표독은 극에 달했고, 보복은 너무 심하구나. -135쪽 

가재는 게편, 초록은 동색인 꼴이다. 본문에서 상민이 조롱하는 대목은 사실 그리 심하지도 않건만.  

뿐아니라, 똑같이 책임이 있어도 여자 쪽에 좀 더 박하다는 느낌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싸움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숙종이건만 300년 이상을 '암탉'의 탓으로 돌리고도 굳이 바로잡지 않는 관행의 느낌 말이다. 다음 기록을 보자.  

손은 그녀를 때렸고 발은 그녀를 찼고 양물은 그녀를 찔렀으니, 미워하려면 모두 미워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지금 이 여인은 그중 때리고 찬 것만을 미워하고, 자신을 찌른 것에는 오히려 기뻐했다. (...) 만약 찌르는 것이 은혜가 되어 그렇게 한 것이라면 바늘이나 송곳과 같은 것들도 은혜라 여기며 기뻐할 것인가? 손과 발로써 한 것은 미워했고, 양물로써 한 것은 사랑하였으니 이 여인의 애증의 편벽됨이 심하다고 하겠구나. -146쪽 

바늘과 송곳에 비교하다니, 이제 가당키나 한가. 댁이야말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꼬집어 주고 싶다. 흥! 

<성수패설>에서 '욕됨을 무릅쓰고 색을 탐하다'에서는 상놈의 아내를 탐한 양반과, 그 양반에게 욕설을 퍼부은 자에 관한 재판이 나온다. 지아비가 있는 여인에게 입을 맞춘 것은 어떤 죄인지 대전통편에 쓰여 있지 않고, 양반을 모욕한 죄는 법전에 쓰여 있으니 세 차례 형장으로 때려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야 한단다. 결국 파렴치한 양반은 상놈의 목숨을 손아귀에 쥐고 자신의 욕정을 채운다. 이런 대목은 몹시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인데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전통편은 18세기 말 정조 때에 편찬된 법전인데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시민 혁명이 일어났다. 조선의 신분 해방은 그보다 한 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이 이야기가 조선 '후기'로 한정되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그보다 더 앞선 세대의 이야기라면 부조리와 불합리함은 더 심하지 않을까? 혹은 임진왜란 이전이라면 오히려 사회 분위기가 덜 경직되어 있을까? 역자의 바람대로 다른 세대의 이야기 묶음도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각자 다른 시대 분위기를 엿보고 싶다.  

비슷한 시기에 떠돌던 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패설집에 섞여 들어가기 쉬웠기 때문에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은 이야기도 꽤 자주 등장한다. 중국에서 전해진 이야기 몇 편은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있었다. 중국 배경의 그 이야기들을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영화 '음란서생'에서 인기 작가로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은 양반이었다. 양반을 조롱거리로 삼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엮고 전파시킨 인물들 중에는 그들 지식인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또 구한말에 엮여진 책들은 암울한 시대에 민중들의 애환을 달래줄 해우소의 역할로서 기꺼이 글재주를 쏟은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기꺼이 그런 작가들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고전문학전집'이란 타이틀은 자못 무겁기도 하고 어려울 것도 같은 느낌이지만 막상 접해 보면 몹시 대중적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아직 '한중록'과 이 책 '조선 후기 성 소화 선집' 두 권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다른 책들에 대한 기대도 크다. 깊어가는 가을에 고전과의 만남이라니, 제법 운치있지 않은가? 게다가 '성 소화 선집'이라니, 어쩐지 반항하는 기분도 들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은밀할 것 같은 이야기들, 시원스럽게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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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겠는데요?
이거이거,, 이 책도 장바구니에 들어가야하나? ㅠㅠ

마노아 2010-10-09 08:23   좋아요 0 | URL
11월 30일에 마녀고양이님 장바구니가 어찌될지 궁금해요. 거기 총 몇 권 얼마치의 책이 담겨있는지 맞추는 퀴즈라도 내야겠어요.^^ㅎㅎㅎ

이매지 2010-10-08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 후기였으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ㅎㅎ
그나저나 예나 지금이나 여자에 대해서는 참 박한 것 같아요~

마노아 2010-10-09 08:25   좋아요 0 | URL
고려였으면 더 화끈한 얘기가 나왔을 것 같아요.^^
거기선 여자에게 좀 덜 박했을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

2010-10-10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9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9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2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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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를 워낙 재밌게 읽어서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다. 워낙 전작에서 받은 충격이 컸기 때문에 이 작품에 깃들어 있는 여러 상징에 대한 놀라움의 크기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서양 문명에 대한 이해가 의미 심장하게 읽혔다.  

원작 자체가 길지 않기 때문에 영어판과 독일어판, 그리고 우리말 번역을 다 싣고도 대부분은 문장 속의 숨은 의미에 대한 해석에 할애되었다. 그런 까닭에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늘어지는 기분은 드는 편이다. 저자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워낙 많다 보니 가지치기를 꽤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이야기로 '콩쥐팥쥐'가 있듯이 이 소녀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왔다. 그 옛 이야기를 먼저 프랑스의 샤를 페로가 수집했고, 그로부터 100여 년뒤 그림 형제가 다시 손을 보았다. '신데렐라'라는 이름은 원작 어디에도 나오지 않지만 우리에겐 이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으로 각인되어 있다. 까닭은 영어 발음 탓이다. 프랑스어 '쌍드리옹'의 뜻이 '그을음'인데, 이걸 영어로 번역할 때 '씬데르스'라고 썼고, 그게 '씬데뤨라'가 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부드러운 발음의 '신데렐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 기막힌 운명의 주인공 여아의 이름은 '재투성이'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단순히 발음만 유사한 '신데렐라'라고 부르면 그 의미에 담겨 있는 여러 상징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갖고 있는 슬픔과 역경, 고난의 크기 같은 것 말이다. 다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연상시키는 것이지, 처음 그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으로서는 신데렐라에게서 '재투성이'의 느낌을 떠올릴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이 바로 나온다. 

샤를 페로 작품과 그림 형제의 작품은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그림 형제 작품에는 '무도회'란 낱말이 나오지 않고 '혼인잔치'가 대신한다.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작품은 샤를 페로 이야기인데 이 책은 그림 형제 작품을 최종적으로 따르고 있다. 구박받던 아이가 홀로 슬픔을 달래었던 곳은 어머니의 무덤 가였다. 의붓 언니들이 옷이며 진주, 보석 등을 원할 때, 홀로 어린 가지를 원했던 재투성이 아이. 아이는 그 나뭇가지를 어머니의 무덤 위에 심었고(이를 '무덤가'로 번역한 우리나라 작품을 저자는 성토한다), 자신의 눈물로 나무를 키웠다. 그리고 날마다 세 번씩 나무 밑에 가서 울고 기도했다. 그때마다 새하얀 새 한마리가 그 나무 위로 날아왔고, 소녀가 바라는 말을 할 때마다, 새는 소녀에게 그것을 떨어뜨려주곤 했다. 

그녀는 의붓 언니들과는 영 다른 것을 가리켰다. “집으로 돌아오실 때 모자에 부딪히는 어린 나뭇가지.”
재투성이와 두 의붓 언니는 이렇게 달랐다. 의붓 언니들이 저자에서 파는 물건을 바란 데 반해, 재투성이는 자연이 키운 것을 바랐다. 그것도 아버지 모자에 부딪히는 것을. 바라는 게 무엇인가를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의붓 언니와 재투성이는 바라는 게 달랐기에 사는 것도 달랐다. 그러니 삶을 갈무리한 것도 다를 터. – 113쪽    

왕의 아들('왕자'가 아니라 굳이 '왕의 아들'이라고 꼬박꼬박 명시한다)을 위한 혼인잔치에 가기 위한 준비물도 바로 그 나무 위 새에게서 얻어냈다. 첫날의 잔치에선 금과 은으로 된 옷과 비단으로 수놓은 신발을 내려주었고, 두번째 날은 전날보다 더 당당해 보이는 옷을, 그리고 하일라이트가 될 마지막 날에는 '빛나는' 옷을 입었다. 그리고 이때 신은 신발은 온통 금으로 되어 있는 신발이었다. (요정 할머니나 유리 구두 등은 샤를 페로 원작 버전에서 만날 수 있다.) 

온통 금으로 된 옷과 신발이라니, 기분에는 새하얀 드레스와 유리 구두보다 뭔가 격조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건만, 저자는 '황금'에 대한 서양인들의 집착(?)이 남달랐음을 강조한다.  

우리 문명도 금을 귀하고 특별한 것으로 다루긴 했지만, 서양인들만큼은 아니었던 듯하다. 황금률, 황금시대란 말에서 보듯 그들은 가장 좋은 것, 아니 이상적인 것을 황금으로 표현했다. 심지어는 이러저러한 물질을 금으로 바꾸는 일, 즉 잡스런 성질을 바꾸는 일에, 숱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기꺼이 바쳤던 게 그들의 문명이다. (...)덧없고 허망한 이 세상에서, 변치 않고 언제나 제 꼴을 지켜가는 모습을 그들은 금에서 본 것이다. 또한 ‘금’의 독일 말 골드가 ‘빛나다, 반짝이다’에서 왔으니, 그들은 금과 빛을 한 동아리라고 여겼을 것이다. 빛이 나오는 바탕인 하늘을 나는 새가, 금 옷과 금 신발을 재투성이에게 내려준 점이 이 말에 힘을 실어준다. – 105쪽


우리에게 흔히 '신데렐라'는 '콤플렉스'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면서 왕자님 하나 잘 만나서 인생역전을 시키는 사람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원작 속에서 재투성이 아이는 의붓 언니들보다 미모롭지도 않았거니와, 고난과 역경을 감내할 줄 아는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는 '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한몫 더해준다. 이 부분은 좀 길지만 인용해 보겠다. 

‘재’는 사람을 착잡하게 한다. 그 색깔이 그렇고, 촉감이 그렇다. 잿빛은 맥아리가 없다. 출렁임도 없고 잔잔한 흐름도 없다. 그렇다고 검은 색과 닮지도 않았다. 검은 색은 모든 것을 무화하여 ‘없음’을 오히려 세게 내세운다. ‘없음’을 통해 ‘있음’을 알리는, 기막힌 역설을 검은색은 알고 있다. 잿빛은 다른 색을 고스란히 빨아들이지도 못한다. 튕긴다는 점에서 잿빛은 있다. 그렇다고 다른 색에 힘 있게 맞서지도 못한다. 없다고 할 수밖에. 있는 듯 없는 듯, 잿빛의 꼴이다. 게다가, 조금 전까지 그곳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 잿빛은, 눈빛을 잃은 채 쭈그리고 앉아 있는 늙은이다. – 119쪽

‘재의 수요일’은 가톨릭, 루터교, 성공회가 다 치르는 절기다. 지금은 진탕 먹고 노는 날로 변질되었지만, 본래는 육적인 것을 다 끊는다는 뜻을 가진 카니발(사육제) 다음 날, 즉 예수님이 했던 광야에서의 40일간 금식을 기억하기 위한 사순절의 맨 첫날이 ‘재의 수요일’이다. 이 날 크리스천은 머리에 재를 바른다. 두덴에서 나온 말 뿌리 사전에 따르면, ‘재는 덧없음, 슬픔 그리고 속죄의 상징이다’고 나와 있다. 또한 독일어에 ‘재를 머리에 뿌린다’는 굳어진 말(숙어)이 있는데, 매우 후회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재’의 이런 상징성은 서양 문명의 받침돌들인 그리스·이스라엘·로마에 다 들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호메로스 시대부터 몸에 재를 뿌리거나 재 위에 앉음으로써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드러내 보였다. 로마인들은 새해를 정갈하게 시작하려고 새해 첫날, 재로 목욕을 했다. – 122쪽

잿빛은 사실 우리 문화가 천 년도 넘게 품었던 색이고, 지금도 지긋이 품고 있는 색이다. 불교의 입김 속에서 그랬고, 장자의 날개 속에서 그랬다. 스님들은 잿빛 옷을 걸치고 살아왔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도 그분들은 잿빛 옷을 벗지 않는다. 불기 없는 재, 탈 것 없는 재로 살다가, 드디어 몸조차 재가 되어 회신멸지한다. – 133쪽

재투성이가 키운 개암나무는 순전히 개인적인 나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독일 민족을 이루고 있는 게르만족과 켈트족에게 민속적인 의미를 갖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위키피디아 사전에 보면, 개암나무의 문화적인 결이 잘 나와 있는데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개암나무가 액막이 특성을 가진 것으로 여겼다. 그것으로 뱀이나 마녀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재투성이가 개암 나뭇가지를 어머니 무덤 위에 심은 것이다. 또한 로마에서는 휴전 협정이나 평화 협정을 논의할 때 이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로마, 영국, 독일에서 이 나무는 행운과 풍성한 열매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신부는 결혼식 때 개암 열매를 담은 바구니를 선물 받았다. – 154쪽  


이렇게 풀어내 보니 재투성이 이야기는 보통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말이 '동화'라고 번역하는 탓에, 또 너무나 오래 그런 의미가 관행으로 되어버린 탓에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렸지만, 원어에서의 메르헨은 그저 작은 이야기일 뿐, 동화도 민담도 아닌 것이다. 물론, 어리기만 한 아이들에게 서양의 문명과 그 원형에 대해서 떠드는 건 무척 곤란하다. 아이들에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원작을 무분별하게 훼손하는 것은 당연히 곤란하다. 바른 번역과 해석을 바탕으로 하되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풀어주어야 한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이야기의 원류를 찾아보는 재미를 주는 것도 꽤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청소년 이상의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 책이 될 것이다. '콤플렉스'라는 단어로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어느 소녀의 진실된 이야기와 진정성에 마음을 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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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0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갖고 싶은 욕망이... 그런데
집에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가 1-3권까지 세권을 다 사놓고, 아직 읽지 못 했다는 사실이 생각나버렸어요.

오래 전해진 이야기일수록 생각거리가 많아지나 봅니다.

마노아 2010-10-09 08:29   좋아요 0 | URL
그 책에 대한 언급도 살~짝 나오긴 합니다.^^
'원전'을 읽는 재미가 꽤 컸어요. 원서로 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갈망도 커지지요.
그치만 저는 훌륭한 번역을 기다리겠어요.^^ㅎㅎㅎ

비로그인 2010-10-0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는 순간 이 이야기읽라 짐작했어요.
백설공주-가 아니라 아 뭐지, 눈처럼 흰 아이!-에 이어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이었어요. 난 바다에게 이 책을 읽어주곤 해요.

마노아 2010-10-09 08:29   좋아요 0 | URL
헤에, Jude님의 시선을 끌줄 알았어요. 바다는 이런 이야기도 듣는군요. 바다가 마구 부러워요! 제대로 된 조기교육이라니까요.^^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임석재 지음 / 대원사 / 1999년 10월
품절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팔작지붕은 정면에서 볼 경우 근엄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측면에서는 펄럭이는 듯한 경쾌한 감흥을 자아낸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측면에서 보면 한껏 들뜬 소녀의 몸짓 같은 활성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다만 에너지가 너무 넘쳤달까. 무거운 지붕을 받치기 위해서 보조 기둥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조금 덜 날개를 펴고 기둥이 없어졌다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개심사 범종각은 한국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휜 나무를 다듬지 않고 휜 채로 네 귀퉁이에 사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저렇게 휘고 뒤틀어진 나무도 기둥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여긴 발상 자체가 멋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훌륭한 자태를 뽐내는 개심사 범종각!

갑사 대웅전 기단은 크고 작은 돌들이 불규칙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쌓아져 있다. 주먹만한 돌에서부터 3~4미터씩 되는 큰돌이 정형적 규칙을 거부하며 제멋대로 쌓아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불규칙 속의 질서가 강하게 느껴진다.

규격을 벗어났음에도 질서와 규칙이 엿보인다. 부조화 속의 조화. 자유로우면서도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종묘의 바닥에 깔린 돌길. 살아있는 왕이 정사를 펼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품석은 생략되었다. 길도 세 겹이 아닌 외겹. 어쩐지 겸허해지는 느낌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적 여정을 보여주는 종묘의 돌길.
종묘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질 못했다. 멀리 있지도 않은데...

광활한 평지에 곡선을 그리며 돌아가는 왕릉이 길은 왕이 살아왔던 인생 여정을 상징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망자의 여정인 왕릉의 길은 교만하지 않은 편안한 곡선으로 완만하게 나 있다.

영릉의 길은 완만해 보인다. 세종의 치세 기간 사건이 없었던 게 아니지만, 그래도 조선 중후기의 임금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느껴진다. 훨씬 역동적이었고 긍정의 에너지가 넘쳤지만 그 후대 임금들의 검은 오로라가 너무 짙어서 그리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빡빡함 그 자체. 서양 건축에서 사각형 공간은 모서리를 모두 폐쇄해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준다. 우리의 한옥이 모서리를 열어두어 덜 짜임새 있게 느껴지지만 보다 투명하고 개방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위에서 들여다봐서 그런지 사진 속의 건물들은 너무 답답해서 숨이 턱 막힌다.


아무래도 우리 건축물 이야기는 좀 더 재밌게 보았는데 서양 건축물 쪽은 덜 관심이 가서 사진도 우리 쪽 사진이 훨씬 많다. 그래봤자 모두 여섯 장이지만.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 재미는 덜했다. 우리의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짚어준다는 기획 의도는 좋았는데 그 접점이 생각보다 덜 맞아 떨어졌다. 아귀가 맞는 느낌보다는 그냥 나열하는 느낌?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보게 된 것은 절판된 책이라 구하기 힘들어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오래 끼고 읽었다. 다 보니까 속이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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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9-16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개심사 범종각보고 웃었던 기억이 나요.^^ 옛날 사람들의 건축물은 정말 대단해요.^^

마노아 2010-09-16 23:49   좋아요 0 | URL
직접 보고 오셨군요. 실제로 보게 되면 막 유쾌해질 것 같아요. 묘한 여유같은 것도 생길 것 같고요.^^
 
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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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신문 연재로 한 꼭지 씩 보았는데 그때는 한 사람분의 연재를 보고 다시 얼마 간의 시간을 기다려야 다음 사람의 접근을 볼 수 있었으므로 아쉬웠었다.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한 주제를 두고 두 사람이 어떻게 접근해 가는가를 볼 수 있어서 매력이 더 커져버렸다.  

프롤로그는 정재승이 썼다. 에필로그는 진중권이 썼다. 앞 주제의 첫 이야기를 진중권이 열어서 정재승이 이었다면, 두번째 주제는 정재승이 열어서 진중권이 닫는 구조로 진행된다. 누구 글을 먼저 읽느냐가 중요하진 않았지만 공평하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재밌었다.  

엄선된 주제들도 흥미로웠다.  

프롤로그 : 충돌과 합체의 퍼포먼스

1. 입맛으로 나, 우리, 그들을 구별하는 세상 : 스타벅스
2. 디지털 세상, 어떤 사람이 구루가 되는가 : 스티브 잡스
3. 검색을 잘하면 지능도 발달할까 : 구글
4. 미래를 예측한다는 위험한 욕망 : 마이너리티 리포트
5. 캔버스 위 예술가와 실험실의 과학자 사이 : 제프리 쇼
6. 소년공상만화가 감추고 있는 그 무엇 : 20세기 소년
7. 다음 세기에도 사랑받을 그녀들의 분홍 고양이 : 헬로 키티
8. 기술은 끊임없이 자아도취를 향한다 : 셀카
9. 왜 눈 위의 작은 선 하나가 그토록 중요한가 : 쌍꺼풀 수술
10. 아름다움도, 도덕도 스스로 창조하라 : 앤절리나 졸리
11. 악마도 매혹시킨 스타일 : 프라다
12. 마시는 물에도 산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는 이유 : 생수
13. 나는 모든 것을 다 보고 싶다 : 몰래카메라
14. 웃음, 열등한 이들의 또다른 존재 증명 : 개그콘서트
15. 끼와 재능도 경영하는 시대 : 강호동 vs 유재석
16. 그곳에서는 정말 다른 인생이 가능할까 : 세컨드 라이프
17. 집단 최면의 시간 : 9시 뉴스
18. 작게 쪼갤수록 무한 확장하는 상상력 : 레고
19. 사이버의 민주주의를 실험하다 : 위키피디아
20.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다 : 파울 클레
21. 지식의 증명서? 혹은 사람의 가격? : 박사

에필로그 : 생활 세계의 현상학 
21개의 키워드 중에서 단 몇 개만 빼고는 단연코 모두 다 재밌었다.  

컴퓨터 산업에 미학을 도입했다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 구글이 투자하고 있는 '23andMe' 서비스, 우리나라였다면 사이비 종교라고 지탄받을 대상이 일본에서는 '친구'라고 표현될 수 있는 문화적 이유, 키티의 사생활(?)과 앤절리나 졸리의 따라잡을 수 없는 매력과 생수의 값어치, 9시 뉴스가 9시에 시작하는 이유에 대한 고찰 등등등.  


   
 
 지난 몇 년간 구글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작은 회사 ‘23andMe'에 40억 원 이상의 돈을 투자해왔다. (...) 서비스를 신청하면 일주일 안에 키트와 간단한 설명서를 집으로 보내준다. 이 키트 안에 침을 뱉어서 다시 우편으로 보내면, ’내가 유전적으로 유방암과 당뇨병 등을 포함해 118가지 유전질환에 걸릴 가능성‘을 확률로 표시해 알려준다.
그뿐인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내 조상은 어디에 살았으며, 내 몸속에 다양한 민족의 피가 얼마나 섞였는지, 내 혈육의 뿌리를 찾아준다. 이미 시판되고 있는 ‘23andMe' 서비스의 가격은 399달러(약 45만 원). 필요한 분석 기간은 8주다. 구글은 지금 침 한 번만 퉤 뱉으면 내가 누구인지, 내 몸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세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유전자가 포함된 인간 염색체의 개수가 23이라 ‘23andMe'라는 이름이 붙었다).
2008년 ≪타임≫지가 ‘올해의 발명품’으로 선정하기도 한 ‘23andMe'서비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구글이 세상에 떠도는 정보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몸속에 있는 바이오 정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 52쪽
 
   





이미 시행 중이라는 요 서비스는 유독 눈길을 끈다. 건강에 대한 걱정과 우려뿐 아니라 유전학적 정보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한다면 단일민족 신화가 좀 더 빨리 깨지지 않을까. 모든 사람의 염색체와 유전자가 하나의 정보로 기입되어 저장된다는 것은 께름칙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한 일인데, 이런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이미 그렇게 저장되고 있는 중이 아닐까? 

책날개에서 '따뜻한 상상력의 과학자 정재승'과 '진화하는 인문학자 진중권'으로 소개된 두 사람. 둘 중 누구의 글이 더 내 마음을 사로잡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는데 공교롭게도 거의 비슷하게 마음을 파고들었다. 재밌게도, 이건 진중권스러워!할 때 정재승 글이거나, 이건 정재승답다! 하고 느낄 때 진중권 글일 때도 있었다. 책 제목처럼 완벽한 크로스다.  

산업과 문화와 예술을 넘나들며 두 사람의 판단과 비판과 예찬이 울려퍼지니 이건 일종의 지식 교향곡스럽다. 중간중간 삽입된 삽화는 또 얼마나 재밌고 그럴싸하든지.  




내가 자주 쓰는 이모티콘은 ^^ ㅠ.ㅠ 등등인데, 요즘에는 옆으로 누운 서양식 이모티콘도 비슷한 빈도로 자주 보인다. 그 차이점을 키티의 눈과 함께 설명해 주었는데 표정이 입으로 드러나는 서양식과 눈으로 드러나는 동양식 차이에 놀라워 했다. 확실히 서양인들은 웃을 때 입이 크게 벌어지는 반면 동양인들은 환하게 웃을 때도 입이 크게 벌어지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눈이 더 그게 휘어지는 듯. 문학 작품에서도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웃고 있지 않는 사람의 미소를 섬뜩하게 그리는 모습도 기억난다.  




쌍꺼풀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 눈은 쌍꺼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눈은 홑꺼풀에 크고 긴 눈이다. 박해일이나 이준기가 떠오른다. 표현하기에 따라서 매섭게도 보일 수 있는데 어쩐지 이런 눈들은 참 정직해 보인다. 그렇다고 내 눈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일러스트의 눈은 참 예쁘게 표현되었다. 뭐, 그림이지만.  

이상적인 눈의 크기를 가로 4cm, 세로 1cm, 그리고 눈과 눈 사이의 거리도 4cm로 나왔다. 나로서는 그 수치를 다 넘긴다. 눈이 좀 더 크기도 하지만 얼굴도 같이 크기 때문에 4cm는 택도 없다. 직장 동료들의 눈을 상대로 몇 명을 재 보았는데 대체로 4cm는 넘는다. 우리 모두 아바타 과?? 딱 한 명이 눈과 눈 사이의 거리가 대략 4cm였는데 얼굴이 갸름하고 몹시 작은 사이즈의 소유자였다. 대신 눈 길이도 같이 작아져서 이상적이라는 저 수치에 조금 못 미쳤다. 모두들 과하거나 모자라거나. 과연 저 수치가 가장 매력적인 수치가 맞는 건지... 우리도 자신의 눈에 만족하지 못하는 34.8%? 우리나라와 일본과 대만의 쌍꺼풀 성형 수술의 만족도를 수치로 표현했는데 우리나라가 가장 높았다. 그 만족도가 65.2%여서 만족하지 못하는 34.8%라는 역 수치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만화책에서 홑꺼풀의 인물은 대체로 보기 힘들었다. 배경이 동양이건 서양이건. 좀, 아쉽다.  



   
  졸리는 형해화한 기존 도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도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나간다. 바로 여기서 묘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졸리 특유의 도덕이 탄생한다. 이를테면 졸리는 이혼을 두 번 할 정도로 인습에서 자유로우나, 그렇다고 가족의 가치를 우습게보지 않는다. 그녀는 세 아이를 입양하고, 스스로 세 아이를 낳을 정도로 가정적인 사람이다(사진을 보니 자녀의 구성도 다양하다. 아프리카계, 아시아계, 코카서스계.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다). 덕분에 여전사와 팜므파탈은 동시에 모성의 상징, 모유 수유를 강조하는 동상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 165쪽
 
   




 체인질링에서 모성애를 잘 표현했다고 평가받았지만 대중은 여전히 졸리를 여전사의 이미지로 더 선호하는 듯하다. 다음 주 개봉하는 '솔트'에서와 같은 모습 말이다. 직접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휴가를 떠나는 지극히 가족적인 내면의, 지극히 자유로운 외면의 모습을 가진 졸리. 근래에는 피트 형님보다 졸리 언니가 더 멋져 보인다.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회적 풍자의 길이 사실상 가로막혀 있다 보니, 희극에 내재된 공격성이 쓸데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일까? “너희들 오토바이 타는 형들 부럽지? 가스 마시는 형들 부럽지? 걔들 지금 오토바이 타고 가스 배달하고 있어.” 이런 개그를 들으면서 대중은 폭소를 터뜨린다. 하지만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며 열심히 사는 청년들은 이런 비웃음을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교양과 반성이 없는 개그는 쓸데없이 비열해질 수 있다.

– 229쪽
 
   

두 저자는 각자의 전공과 관심 분야를 십분 살려서 동일한 주제를 말하는데 시종일관 유머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 잰 척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듯하다.  

이 책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뼈있는 교훈도 깔깔 웃게 만드는 코믹함도 두루 갖추고 있는 종합 인문학 교양서. 무엇보다 아주아주 '맛있는' 책이라는 수식어를 꼭 붙여야겠다. 내 책이 아니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는 게 아쉬움이 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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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춘 2010-07-2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은 줄 알았더니 목차보니 빠뜨린 게 많네요.
게다가 역시 모아 읽어줘야 제 맛...
생업 하나 더 들온다니 어서 질러줘야 겠어요. 고맙습니다.

마노아 2010-07-20 11:32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도 재밌더라구요.
산사춘님을 기쁘게 해서 저의 영광입니다. ^^ㅎㅎㅎ

같은하늘 2010-07-20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부터 보고싶어 찜하고 있던 책이네 마노아님의 '맛있는 책'이라는 말에 홀딱 넘어갔어요.^^
거기다 내가 좋아라하는 키티사진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한 몫~~~

마노아 2010-07-20 11:32   좋아요 0 | URL
맛있어요. 영양가와 미감이 아주 훌륭해요.ㅎㅎㅎ
사진들도 멋졌구요. 글이 주는 매력이 아주 철철 넘쳐요.^^

순오기 2010-07-20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재승 진중권의 조합이라는 것만으로도 관심도서에요.
맛있는 책이라니~~침이 꿀꺽!^^

마노아 2010-07-20 11:32   좋아요 0 | URL
저자 이름부터 일단 먹고 들어가지요. 진짜 꿀꺽 삼키고 싶었어요.^^ㅎㅎㅎ

꿈꾸는섬 2010-07-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재밌겠어요. 휘모리님 서재에서 보고 침 흘리고 있었는데 우선 담아두어야겠어요.^^

마노아 2010-07-20 15:16   좋아요 0 | URL
야금야금 읽는 맛이 일품이었어요. 천천히 읽어야 더 재밌는 책 같아요.^^

꿈꾸는섬 2010-07-21 23:43   좋아요 0 | URL
저 이책 질렀어요.ㅋㅋ

마노아 2010-07-22 00:14   좋아요 0 | URL
쿠쿠, 잘 하셨어요. 재밌을 거예요.^^ㅎㅎㅎ
 
감성 지식의 탄생 - 지식채널e는 어떻게 태어나고 진화했나
김진혁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지식e 1권을 처음 보기 전까지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나와 지식채널의 첫 만남은 문자로 시작되었다. 영상도 없고 음악도 없는 상태에서의 만남이었건만 충격적이었다. 화면에서 자막으로 처리되는 그 문구들이 책에서는 줄간을 이용한 '시간 차'가 있었고 그것은 운율을 담아 내 가슴에 꽂혔다. 그래서 지금까지 5권이 나온 중에 1권이 가장 좋았고 애착이 남는다.  

그 후 2권부터는 영상을 먼저 접하고 책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두 일장일단이 있었다. 영상은 영상대로의 장점이, 책은 책대로의 장점이. 그렇게 아꼈던 지식채널. 이 방송을 책임졌던 김진혁 피디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될 때 얼마나 분개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연이 끊기지 않고 이렇게 그의 손길이 담긴 책으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무척 반갑다.  

이 책은 말하자면 지식채널e가 탄생하기까지의 전 과정, 그러니까 a부터 z까지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어떻게 하다가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는지, 프로그램의 길이는 왜 5분을 넘지 않는지, 왜 자막에 그리 힘을 쏟는지, 편집의 방향은 어떠하며, 어떤 메시지를 추구하는지, 피디와 작가와 음악은 누가 담당하고 있는지, 이 방송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과, 수상했던 방송상이며 시청자들의 궁금증 등등, 우리가 궁금해할 법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물론, 그런 질문들과 답변들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적어도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을 눈으로 보고는 와야 할 것이다. 워낙 유명해졌으니, 그런 걱정은 기우겠지만. 

보통의 프로그램은 자막이 화면을 설명하는 부수적 요소에 지나지 않지만, 지식채널e는 반대로 자막이 중심이고 화면을 부차적인 요소로 잡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책으로 제일 먼저 만났기 때문에 자막-텍스트-에 대한 기대와 의존이 더 컸던 편이다. 자막을 단순히 문장이나 단어를 보여주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효과'를 적절히 사용함에 따라 영상 화면으로의 느낌을 주는 편집도 늘 마음에 들었다. 자막이 등장할 때의 효과음도 물론 일등공신. 

지식채널e는 '지식'을 다룰 뿐 아니라, 교훈과 메시지를 늘 잊지 않는 편임에도 그게 불편하지 않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직접적인 훈계가 아니라 좀 더 은유적이고 한 번 더 걸러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제작진의 원래 의도였다는 것이 반갑다. 교육방송이면서도 우리가 흔히 짐작하는 그 교육스러움이 아니라서 말이다.  

영상과 편집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로서는 피디가 직접 설명해주는 화면의 효과는 신기하고 재미날 수밖에 없었다. 박지성 선수 편에서 그에 대한 비난의 문구는 뒤로 물러나며 사라지는 '소멸'의 감정을 담았고, 반대로 의지에는 '극복'의 감정을 담아 앞으로 다가오게 만들었다는 것. 무심코 지나쳤지만 그런 효과에도 제작 의도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박지성 선수 편을 보았는데 소름이 돋고 말았다. 이래서 아는 만큼 더 잘 보인다고 하는 것일 게다.  

지식채널e에 관한 13문 13답도 인상적이었다. 최근의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김진혁 피디는 약한 쪽에 '양보'를 말할 수 있지만 '굴복'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문득 지난 6월 선거 때 진보신당에 쏟아진 비난과 통합에 대한 강권이 떠올랐다. '양보'와 '굴복'은 천지 차이인 것을...  

더불어 프로그램의 성격을 '보수'라고 말한 것이 꽤 충격적이었다.  

<지식채널e>의 정치적 입장은 ‘보수’에 가깝다. <지식채널e>가 말하는 기본적인 메시지가 ‘착하게 살자’는 일종의 ‘보편적인 선’이고, 이것이야말로 보수적 가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 67쪽  

우리에겐 자칭 보수라고 외치는 이상한 정당이 있어서 어느덧 우리에게 '보수'의 의미가 왜곡되어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가치관을 내세운 프로그램이 보수적이다고 하니 괜히 놀랄 수밖에. 진정한 보수란 이렇게 근사한 것임을. 웬지 이 부분은 읽고 나서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정치 판에서 '보수'라고 쓰고 '수구 꼴통'이라고 읽어오던 습관이 있어서 말이다.  

지식채널e는 '소외'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제목만 보고서 흥미를 느껴 클릭했다가 마음이 아파서 한숨을 쉴 때가 많았다. 그게 원망스럽다는 건 결코 아닌데 제목에서 내용을 짐작하기 힘든 부분은 다소 아쉽기도 하다.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고 할 때 바로바로 해당 내용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언급된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았는데 이미 보았던 것인데 제목에서 바로 떠올리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뭐, 내 탓이기도 하지만. 

지식채널e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재미'와 '교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단 5분 동안에 보여주다. 경제적 효과로도 최상의 결과가 아니던가. 최근에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으로 '유럽의 문제아'편이 있었다. 핀란드의 이야기였는데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잡고 말았던 아주 뭉클한 이야기였다. 책 속에서 '프레임'으로 설명했는데, 우린 늘 그 둘을 극단적 대비로 묶어서 하나를 원한다면 다른 하나는 꼭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세뇌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해보지도 않고서 말이다.  

요즘엔 드라마 앞에 '막장'이란 수식어가 자주 붙는데 드라마들도 이 프로그램처럼 '재미'와 '의미'를 같이 추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명품 드라마가 없는 건 아닐 테지만 점점 드물어진다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일일 드라마가 좀 변했으면 하는 삼천포 바람이 있다.   

김진혁 피디의 마지막 연출작은 드라마 형식으로 어렵게 완성한 <거대 우주선 시대>는 아직 영상으로 접하지 못했다. 6부작이라고 하는데 차차 찾아볼 생각이다. 아무튼 이 작품이 결국은 피디님이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의 완성이 되고 말았다. 표현하자면 이렇다.  

함께 사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구하는 것. 

머리와 가슴을 함께 강타하는 메시지다. 신선한 것이 아님에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메시지.  

소외에 대해서 말을 하고, 직접 가르치려 들지 않고, 우리가 몰랐던 지식뿐 아니라 잘못 알고 있는 것까지 파고들어 진실에 다가가고자 애썼던 마인드로 만든 프로그램.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결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 공존.  

우리의 삶 전반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그게 우리를 살게 하는 길이기도 하고.  

책으로 보는 지식e보다는 좀 더 통통 튀는 느낌의 책이었다. 고된 산고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 수고로움에 더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비록 김진혁 피디를 다시 지식채널에서 만나기란 당장에 어렵겠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힘들지 모르겠지만, 지식채널e는 여전히 그 전통을 계승하며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고백하자면, 지식e 5권은 사두고서 아직 읽지 못했는데 당장 비닐을 뜯어야겠다. 너무 좋아서 아껴둔 거라고 한다면 사실 핑계일 테지? 아무튼, 지식채널e의 끝없는 진화를 기대하겠다.

덧)111쪽 중간에 오타가 있다. 정 작가님 얘기 중에 '번뜩하고 아이디가 떠오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라고 적혀 있는데 문맥상 '아이디어'가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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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2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