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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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가 로쟈님의 명성을 익히 아는 관계로 이분의 책을 고른다는 건 심호흡이 필요했다. 여러 책 중에서 그나마 이 책을 골랐던 것은 제목이 주는 평이함의 평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점이 적중했다. 필요 이상으로 겁을 냈다는 듯이 아주 쉽게, 편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 책은 로쟈님이 강연을 했던 내용들을 입말로 옮긴 것이다. 마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을 때처럼 내가 현장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책 읽어주는 교수님, 아니 책을 풀어주는 서평가라니, 참으로 근사하다. 


작품은 크게 두줄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문학 속의 여자, 또 하나는 문학 속의 남자다. 여자 편이든 남자 편이든 내키는 쪽으로 먼저 읽어도 무방하지만, 섞지는 않고 읽기를 저자가 권했다. 읽어 보니 까닭을 알겠다. 흐름! 이어지는 그 흐름을 타보니 더더더 책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드는 게 아닌가!


'마담 보바리'는 내가 읽어보지 못한 소설인데, 이렇게 간접적으로 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계층 의식이 흥미로웠다. 아주 표나게 잘살지도 못하고, 아주 드러나게 못살지도 않았던 중산층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무료함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계기를 만들고 있었다. 작품 속 주인공 엠마가 꼭 그랬다. 

삶이 권태에 빠지는 이유는 시골에 살아서만은 아니고, 무능한 남편 때문만도 아닙니다. 사회적 지위 탓도 있습니다. 권태는 중산층 부르주아의 정서입니다. 그보다 상류층이거나 빈곤층이라면 권태롭지 않아요. 빈곤층은 먹고살기 바쁘니까 권태로울 여유가 없고, 상류층은 정치 활동이나 사교 활동이 많아서 일상생활을 관조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층이 문제입니다. 중산층은 대개 먹고살 만은 하지만 아주 풍족하지만은 않은 상인 집단입니다. 권태라는 건 이렇듯 특정한 사회적·시대적 조건 아래 발생한 것입니다. -25쪽

출산은 엠마에게도 현실에 만족하면서 주저앉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입니다. 육아를 하며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다른 일은 잊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엠마는 아이를 직접 보지 않고 유모에게 맡기는 바람에, 주저앉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놓칩니다. 하층민은 직접 아이를 돌보지만, 중산층 이상은 보통 유모가 대신 돌보죠. 어머니는 아이를 가끔 보러 갈 뿐이에요. 육아도 하지 않고, 노동도 하지 않으니 남은 시간은 권태로 채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편이 변변찮다면 더더욱 그렇게 됩니다. -27쪽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은 '주홍글씨'라고 제목이 적혀 있었는데 이 책에서 소개한 제목은 '주홍글자'이다. 그때는 제목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 의문을 갖지 않았는데, '주홍글자'라고 다시 각인하고 읽게 되니 원문의 느낌은 주홍글자가 맞다고 동의하게 되었다. 이런 수정과 교정도 반갑다. 내가 한 사색은 아니지만, 어쩐지 나도 좀 더 고민해 본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영화로 보았다. 이 책에서도 잠시 언급한 영화였는데 당시 관람하면서 나쁘지 않았지만 크게 좋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내가 원작을 읽고서 보았더라면 느낌이 좀 달랐을 것이다. 지금 이 책에서 소개한 짧은 분량으로도 영화가 더 좋았다고 기억이 조정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톨스토이 작품에서는 ‘적게 먹고, 가급적이면 육식을 자제해야 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채식주의를 주장한다기보다 육식에 반대하는 것인데, 이유는 육식을 통해서 많은 열량을 얻으면 에너지가 남아도니까 욕정을 품게 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절식을 해야 하고, 그래도 에너지가 남으면 노동으로 소진해야 합니다. 톨스토이에게 도덕적 삶이란 그런 구체적인 삶입니다. 로렌스는 도덕에 대한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건강한 욕정을 억압하는 게 오히려 부도덕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적인 본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건강이라고 봅니다. 로렌스가 쓴 편지를 보면 톨스토이를 꽤나 탐독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렌스는 《안나 카레니나》같은 작품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두 작가가 모두 성을 중요한 문학적 화두로 다루지만 결론은 서로 다릅니다.  -97쪽

톨스토이와 로렌스를 비교한 이 부분이 좋았다. 육식으로 인한 에너지의 과잉이 욕망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에 어쩐지 동의하게 된다. 현대인의 식생활은 지나치게 육식으로 변해버렸다. 학교 급식의 경우 일주일에 4-5회는 고기가 나온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그나마 2주에 한번 나오던 생선도 거의 안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채소 위주의 식단은 나부터도 오늘 찬이 좀 부실하네~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축적된 과잉 에너지를 어찌 풀꼬! 폭력적 성향의 게임을 선호하는 것도 어쩌면 육식과 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로렌스의 입장 또한 지지하게 된다. 예전엔 야동의 야자도 못 꺼냈던 것 같은데, 요새는 오히려 그쪽에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건강한 것이라는 공감이 조성되어 있지 않던가. 성자스러운 톨스토이에게 경배를 바치지만, 세속에 가까운 로렌스 쪽이 더 흥미롭다고 여기는 건, 역시 육식 탓이야...;;;;;


남자 쪽 이야기로 건너가 보자. '햄릿'의 긴 망설임에 대해서 얘기할 때 푸훗! 웃고 말았다. 아, 이 진지한 글에 이런 유머라니!!!


《햄릿》은 행수로 따지면 약 4000행 정도 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런 평도 가능했을 겁니다. 존 판던의 인용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운 젊은이에 관한 멋진 희곡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의 지독한 우유부단함 때문에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할 연극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 4시간을 넘겨버렸다. 거의 관객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수준이었다. 연극이 절반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이렇게 소리칠 뻔했다. 빨리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인다! -138쪽

아하하핫, 얼마나 답답했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까!


'돈키호테'에 붙은 소제목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 숭고한 광기에 대하여'라니! 광기와 숭고함이 동격이 되어버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수긍하기 어렵지만 상대가 돈키호테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는 흔히 ‘곱게 미치라’고 충고하지만 돈키호테는 ‘숭고하게 미친’ 사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돈키호테의 모험담을 마주하게 되면 광기 없는 삶이란 무난한 공허에 불과한 게 아닌가도 싶습니다. 일상의 안락에 파묻혀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문득 ‘불쌍한 몰골’로 비칠 때 우리는 다시금 《돈키호테》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해가는 이 방랑기사의 피가 우리에게도 흐르고 있다면요. -193쪽

지나치게 안온하지 못한 일상 덕분에 늘 평온한 일상을 꿈꾸며 사는 나이지만, 그럼에도 돈키호테의 숭고한 광기를 선망하기도 한다. 다들 그런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살지 싶다. 


'파우스트' 편을 읽다가는 무척 우울해지고 말았다. 이 대목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비극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게 된다는 건데, 사실 요즘은 비극의 내용이 달라졌다고도 합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내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거라나요.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하잖습니까. 단, 계약 조건이 좀 특이하죠. 일도 해주고, 영혼도 파는 거니까요. -209쪽

영혼을 사줄 악마가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비극이라니,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이 문장 안에 서러운 '을'들의 모습이 보여서 울적했다. '흑집사'의 세바스찬 같은 악마는 역시 상상의 세계에서만 등장해야 하는가 보다.


등장하는 작품들 중에서 유일하게 처음 들은 게 '석상 손님'이었다. 푸슈킨의 작품인데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대구'를 이용해서 풀어낸 문학적 감각에 감탄했다. 


헤어지면서 돈 구안은 돈나 안나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돈나 안나가 키스를 해주며 “자, 여기 이렇게”라고 말하는데, 러시아어로 키스는 남성명사라서 원문에서는 “여기 키스가 있어요”란 문장이 “여기 그가 있어요”로 표현됩니다(영어로 옮기면 “Here he is"입니다). 교묘한 이 중의적 의미 역시 푸슈킨의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가 옵니다. 기사단장의 석상이죠.

251

돈 구안이 손을 내밀며 “자, 여기……”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돈나 안나의 “자, 여기 이렇게”와 대구를 이룹니다. 러시아어로 손은 여성명사라서 “여기 손이 있네”라는 돈 구안의 말은 “여기 그녀가 있네”라고 표현됩니다(영어로는 “Here she is"입니다). 여기서도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죠. 결국 돈 구안은 돈나 안나를 남겨두고 죽음을 맞습니다. -250쪽

나의 독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독서이건만, 그 바람에 나의 책 읽기가 더불어 즐거워지고 깊어지게 되었다. 얼마나 고맙고도 이로운 사적인 독서인가. 원래도 호의적인 인문학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인문학의 효용과 가치에 대해서 더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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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9-1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 샀는데...사놓고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요.ㅠ
도서관 책 구입할 때 리스트에 넣어야겠어요.

마노아 2013-09-10 14: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데 방금 또 임호부님의 책을 장바구니에 투척!
매일매일 반성하고 또 지르고의 연속이에요.^^;;;

Mephistopheles 2013-09-1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렇게 비객관적인 리뷰라니...ㅋㅋㅋ

마노아 2013-09-10 14:48   좋아요 0 | URL
작품의 제목에 제대로 부합했군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9-10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국정원에 무엇이든 제보하면 국정원 시계를 준다 하는데 아무래도 전 마노아 님을
국정원에 고발해서 시계를 얻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입말 > 이 북한말이라네요 ! 입말'이란 표현을 쓴 것을 보니 마노아 님은 아주 강골 주사파'입니다.
고발하겠어요 ! 씐난다, 야호 !!!



마노아 2013-09-11 08:48   좋아요 0 | URL
엄훠, 엄훠! 저 어저께 얼음보숭이 먹었는데 이것도 모두 신고 대상인가요? 꺄아, 무섭습니당!!!

프레이야 2013-09-10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 녹음하고있는데 아주 명쾌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에요. 편안하게 쏙쏙ㅎㅎ 유머러스하기까지요.

마노아 2013-09-11 08:48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이렇게 유머러스한 분인줄 몰랐어요. 은근히 재밌고 웃기더라구요. 으하하핫^^ㅎㅎㅎ

transient-guest 2013-09-11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멋진 평입니다. 저도 로쟈님의 책은 무조건 사서 읽고 있지요. 가끔씩 꺼내서 다시 읽으면 제가 하고 있는 독서에 대한 견주기도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을수록 책읽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을 느껴요.

마노아 2013-09-11 08:49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한권 읽었는데 긴장 풀고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무척 재밌고 즐거웠답니다.
이렇게 전문적으로 책읽기를 하고 그걸 풀어주는 분이 계신 게 고맙네요. 강연회를 직접 들어도 무척 좋을 것 같아요.^^

2013-09-11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9-11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찬샘 2013-10-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집니다. 찜해 두어야겠어요.

마노아 2013-10-19 14:5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나만의) 재발견이었어요.^^
 
교실밖 지리여행 사계절 교실밖 시리즈 6
박병석.노웅희 지음 / 사계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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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둔 지 꽤 오래된 책을 뒤늦게 찾아 읽게 된 것은 올해는 역사 없이 사회 수업만 맡았기 때문이다. 개편된 교과서는 고등학교 과정이 내려와서 꽤 어려워졌는데, 그나마도 아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위도 경도가 먼저 나와서 쉬운 수업을 위한 도우미가 필요했다. 그때 이 책이 떠올랐다. 대체 언제 사둔 건지도 사실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비록 지리 수업 다 끝나고 읽어서 적용은 못 시켜봤지만, 아무튼 내게는 유익한 독서였다.^^

밑줄긋기에 사진을 많이 포함시켰더니 정작 포토 리뷰에 쓸 사진은 몇 장 남지 않았다. 그래도 포토리뷰에 써야 사진이 크게 보이니 별 수 없다.

신기습곡 산지의 대표 사례 중 하나인 알프스 산맥이다.
높다고는 알고 있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사실 감이 오지 않았다. 좀 막연하게 높이로 짐작했던 것을 사진으로 보니 정말 까마득하게 높아 보였다.
히말라야 산맥은 더 엄청나겠지?

책 속에서 하이디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어릴 적 만화영화로 하던 알프스 소녀 하이디~
사실 그림체랑 하이디의 앞치마와 발그레한 볼 정도만 기억 난다. 하이디가 몽유병 걸렸던 것과 무척 해맑은 아이였다는 대략의 느낌은 남아 있지만 워낙 어릴 때 보아서(사실 다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몰랐다. 이 책에서는 알프스의 자연 환경을 설명하면서 왜 하이디가 겨울에만 학교에 다녔는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었다.
오홋! 재미있구나. 오늘 시민 혁명에 대해서 수업을 했는데 아해들이 '베르사유의 장미'를 보았더라면 훨씬 이해가 빨랐을 것을... 하면서 안타까워 했다. 점점 나이 차가 벌어지다 보니 내가 어릴 적 즐겨보았던, 혹은 커서라도 즐겁게 보았던 프로그램들을 학생들은 알지 못한다. 물론 그네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내가 모른다. 안타까워, 안타까워....

코르크참나무 사진이다. 참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 키큰나무로, 지중해가 원산지이다.
사진에서 나무껍질의 갈색부분은 포도주병마개를 만들려고 코르크층을 벗겨낸 자국이다.

지중해성 기후를 설명할 때는 여행가와 지리 교사의 문답 형식으로 소개를 했는데, 알기 쉬운 사례를 들어가며 잘 설명해 주었다.

102쪽의 설명을 보자.
-우리나라 아이들은 ‘하늘 향해 두 팔 벌린 나무들같이 무럭무럭’ 자라라는 말을 쉽게 알아듣지만, 이탈리아처럼 지중해성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의 아이들은 그 말에 의아해할 것이다. 그 지역의 나무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옆으로 퍼져 있기 때문이다.

오홋! 좋아하는 노래다! 그렇구나. 이런 동요에서도 우리나라의 기후가 드러나는구나. 하긴, 한번도 눈을 보지 못한 사람이 한 겨울의 그 하얗고 차가운 느낌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똑같이 온대기후 안에 속하지만 우리랑 스타일이 아주 다른 지중해성 기후가 한번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입지 조건으로 배산임수가 있는데, 남향 집이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구체적 과학 원리까지는 몰랐다. 그걸 대류 현상으로 설명해 주는데 아주 쉽게 이해가 되었다. 저자 분들은 지리 이야기를 하면서 역사를 비롯한 인문, 과학을 모두 동원하는데 그야말로 융합의 이해라고 할까.
이 책이 94년도에 출간되었다가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고, 그걸 2013년에 읽는데도 여전히 좋은 책으로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겠다.

런던 교외의 밀밭 사진이다.
내가 신기했던 건 '벼' 사진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밀이 이렇게 벼와 닮아 있는 줄 몰랐다. 사실 밀 이삭을 볼 일이 내게 뭐가 있겠는가.
날마다 보는 것은 그저 '빵'일 뿐!
밀레의 '만추' 배경이 황금빛 풍경이었던 건 기억난다. 색깔은 알겠는데 생김새도 이럴 줄은 몰랐지.
가만, 내가 보리 생김새는 알던가? 예전에 50원짜리 동전에 보리 이삭이 있었던 것도 같고... 지금도 있나????

내 생각보다 백인의 비중이 높아서 조금 놀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흑인이 적었던 것도 좀 놀라웠다. 그러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숫자가 2%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260쪽의 설명을 보자.

-질병뿐 아니라 극심한 노동 착취에도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어 갔다. 예컨대 산토도밍고의 인구는 처음 백인들에게 정복될 때는 20만 명이었으나 20년 뒤 1만 4천명, 다시 30년 뒤에는 겨우 2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비극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일어났다.


세상에, 20만 명의 인구가 반세기 만에 2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멸종에 가까운 게 아닌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은, 주객이 전도된 대표적인 사례지 싶다.

난 학창 시절에 지리 과목을 무척 좋아했다. 지리와 역사는 무척 가까운 관계고, 지도 역시 무척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더 이 책이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처럼 호감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이 책은 충분히 즐겁게 읽힐 수 있으리라고 본다. '유익성'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즘 청소년들은 사회 과목을 아주 어려워 한다. 평균 점수가 영어나 수학보다 훨씬 낮다. 오죽하면 수준별 수업을 사회를 시키겠는가. 기본적으로 아해들이 독서량이 없어서 어려운 한자어가 즐비한 우리 교과서를 소화하지 못한다. 교과서의 단어들이 어려운 학생이라면 사실 이 책도 어려울 것이다. 이 책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독해력은 가진 사람에게 더 필요한 책일 것이다. 사실 지금 쓰고 있는 교과서는 구성이 아주 난잡해서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은, 쫌 많이 못 만든 교과서였다. 출판사 이름은 차마 말하지 못하겠네...;;;;
암튼, 그래도 된다면 이 책을 교재로 쓰고 싶다. 즐겁게 읽고, 도판도 쉽게 이해하고, 무엇보다도 세계 속의 한국을, 한국 안의 세계를 피부로 느끼게 되지 않을까. 우리가 가져야 할 더 넓은 눈과 안목도 가지면서...
우리 삶 속에 녹아 있는 무수한 지리적 편린들을 같이 찾아보자고 권하고 싶다. 좋은 책 같이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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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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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e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이 책은 내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기쁨들이 뒤섞여 있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지성의 문을 두드려 주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서 뭉클한 감동까지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즌이 나올 때마다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벌써 시즌8, 여덟 권째 책이다. 게다가 7권가지 누적 판매부수는 무려 100만 권을 돌파했다고 한다. 소설도 아닌 인문 서적이, 게다가 영상에서 시작해서 책으로 옮겨온 원소스 멀티 유스가 이렇게 각광을 받으니 더 놀랍기만 하다. 책에서 먼저 인기를 끌어 영상으로 옮겨간 경우는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보다 신선하다.

 

이 책의 원본에 해당하는 방송은 5분을 넘지 않는다. 시각적인 기쁨이야 영상으로 접할 때 오감이 더 즐겁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말을 다 전달하는 것은 무리일 터, 이렇게 보충수업 하듯이 책으로 빈 칸을 채워주는 것이 참 좋다. 물론, 나의 경우는 대다수 책으로 먼저 보고 나중에 영상을 찾아보는 편이어서 순서가 좀 바뀌긴 하지만...^^

 

 

(3차원 영상의 아름다움을 2차원으로 옮겼지만 그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진을 잘 못 찍었지만 책속 사진은 선명하고 아름답다.)

 

이번 시즌 8에서는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묶어냈다. 결국 사람 사는 이곳, 사람의 이야기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초반에 영상에서 나왔을 문장들이 등장하면 누구에 관한 이야기일까 잔뜩 눈을 빛내며 읽어 내려간다. 초반의 몇몇 힌트만 가지고 주인공을 찾아내면 수수께끼를 맞힌 것처럼 큰 재미를 느낀다. 내가 이전에 몰랐던 인물이 나오면 그 생소함에 또 반가워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역사를 담은 이야기가 나오면 또 열광하게 된다. 이렇게 깊은 의미가! 게다가 광고의 카피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은 몹시 매혹적이어서 독자를 자주 홀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대결은 축구경기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카탈루냐의 수도이자 프랑코 파시즘 정권에 맞선 자유의 성지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수도이자 프랑코 정권의 근간이었던 마드리드, 이 두 지역을 연고로 하는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격돌은 사실상 카탈루냐와 스페인의 대리전과 다름없다. FC바르셀로나의 슬로건이 ‘MES QUE UN CLUB'(클럽 그 이상)인 이유다.-34쪽

 

‘클럽 그 이상의 클럽!’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닌 문화와 역사와 인간 승리를 함께 담아냈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차이점도 놀라웠고, 여기서 파생해서 함께 설명한 협동조합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특히나 한국의 협동조합이 본연의 자세를 잃고 자본주의화해서 경쟁 위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소름도 돋았다. 단지 협동조합이기만 해서는 안 됨을 잊지 말아야겠다. 한 편의 내용이 끝날 때마다 소개해주는 책들도 흥미롭다. 같이 공부하고 참고할 것들이 마구 늘어간다. 즐거운 비명이라 하겠다.

 

그러나 협동조합 운동가 김기섭은, 오늘날 한국의 협동조합이 과연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결사체이자 사업체로서 상생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데, 한국의 협동조합은 결사체로서이 성격을 심각하게 이탈해서 경쟁력 강화, 소비자 주권 등의 시장자본주의 용어는 물론이고 주식회사의 성장·개발방식을 도입하고, 협동조합들끼리 바로 이웃에 매장을 여는 등 경쟁체제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37쪽

 

'마요 광장의 어머니들' 편은, 이 책을 읽은 것이 5월이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독재 정권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과 그들의 유가족이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면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인사들을 불구속기소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1996년 1월 내란과 반란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함께 제5공화국 비리수사를 진행했다. 199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은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12월 22일 ‘지역감정 해소 및 국민대화합’의 명분으로 특별 사면되었다. 납부한 추징금은 532억 원이고 나머지 1,673억 원은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어서” 미납했다. 2007년 1월 경남 합천군은 황강변 ‘새천년 생명의 숲’의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바꾸었다. 일해는 전두환 대통령의 아호다. 2012년 2월 서울 상암동에 박정희기념관이 개관했다. 총 220억 원의 공사비 중 200억 원이 국고보조금이다.  -84쪽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 이 책에서 이분을 다시 만나자 반가움이 한층 더했다. '공공성'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땅이니, 내 집이니, 내 재산이니... 라는 명분으로 공공성을 해치는 것은 얼마나 저급하고 천박한 선택인가.

 

사유지 안에 세워지는 건축은 동시에 지구 위에 구축되는 건축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건축은 그 태생이 공공적”이기 때문이다. 정기용에게 건축은 하나의 독립된 대상이라기보다는 환경과 어우러져 풍경의 일부를 이루며 그곳의 역사, 문화, 사용자의 편의와 정서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는 구체적 사물이다. 여기서 건축가의 역할은 다양한 현대적 삶을 이해하고, 조절하고 판단하고, 공간이 주는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노동을 조율하여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해내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정기용이 말하는 ‘감응의 건축’이다. -168쪽

 

그의 이름 앞에 ‘건축철학자’라고 명명한 것은 적절하고도 적확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경의를 표한다.

 

의미 없는 상상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역사를 돌이켜서 어느 한 부분만 수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무엇을 들어내고 싶은지...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지만 현대사로 범위를 한정 짓는다면 나는 이승만의 집권을 막고 싶다. 친일 청산의 기회를 박탈하고 그들의 영구적 집권을 뿌리 내린 이승만. 나는 거기서 분단과 전쟁과 독재의 모든 씨앗을 본다. 비틀비틀 힘겹게 걸어온 이 땅의 민주주의. 그 만신창이의 역사도 거기서 뿌리를 본다. 이 책에서는 친일인명카드 제작에 인생을 걸었던 임종국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반민특위도 같이 다뤘다. 당연히 이승만 얘기도 나온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 전쟁'이 아니 떠오를 수가 없다. 양으로 따지자면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친일파의 후손들은 질로 따지자면 이 땅의 절대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있다. 대대손손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탑 속에서. 점점 더 희박해지는 역사교육의 현실도 함께 떠올렸다. ‘야스쿠니 신사’를 아냐고 물으니 '야스쿠니 잰틀맨'이라고 대답하는 청소년들을 보며 단순히 아해들의 무지함을 탓할 수가 없다. 국사가 필수과목이었던 내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근현대사는 얼마나 허술하게 배웠던가. 배우지 못해서 모르는 이 아이들이 자라고 난 다음의 대한민국과 우리 역사는 어디를 향해 갈지 두려울 지경이다. 역사는 역시, 가정교육이 답인가....ㅜ.ㅜ

 

방문취업제가 외국인노동자의 가족 동반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한국행을 택한 가정의 이혼율은 25%에 육박한다. ‘한 자녀 갖기 풍조’가 만연하여 신생아수는 10년 전에 비해 1/4로 줄었다. 연변 조선족의 둘째자녀 출생수는 연 900명을 밑돈다. 아이가 없으니 민족학교가 문을 닫고, 민족학교가 없으니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내는 악순환 속에서 역사와 언어에 대한 교육도 부실해지고 있다. 2009년 길림성 조선족 언어사용 실태조사를 보면, 초등학생 62.5%, 중고등학생 48%가 한글을 전혀 모른다. 여기에 중국에서 살려면 중국말을 잘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조선족사회 학부모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으면서 민족학교와 한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271쪽

 

조선족 문제도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가정이 해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1편 우승자 백청강이 바로 떠오른다.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외로움이 사무칠 때마다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는 그 청년 말이다. 통계로 본다면 조선족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얻는다고 해서 내국인이 그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하다. 그런데도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우리 동포를 향한 이 땅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그러니 타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은 오죽할까. 경제 규모가 이만큼이나 성장했지만 우리의 시민 의식 수준은 여전히 성인이 되지 못하고 철없는 아이 수준을 밑도는 듯하다. 배워야 할 게 참 많다. 

 

 

23년간 11번의 선거에서 승리한 스웨덴의 최장수 총리 타게 에를란데르 편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가난하고 어려울 때 복지를 말했던 그 의식이 놀랍고, 오히려 부유해졌기 때문에 나눔이 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갑갑했다. 똑같이 경제 성장을 부르짖었지만 누구는 '함께'를 외쳤고, 누구는 그들만의 리그를 장식했다. 소통의 민주주의. 아득하게 들린다. 부럽고, 부럽고, 그래서 무참하다. 에를란데르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했는데 방송 분량만 보여주고 추가 내용이 없어서 섭섭했다. 내용이 짧아서 섭섭하기란 나로서는 좀처럼 없는 일이다. 긴 것 질색팔색하는 인간인지라... 그만큼 꽉 찬 내용의 지식e 시리즈를 아끼기 때문일 것이다. ^^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죽음은 늘 안타깝지만 그 중에서도 노동자의 절망 자살은 언제나 마음의 짐이 된다. 그 정점에 쌍용자동차가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의 핵심은 ‘죽음각인’, 즉 죽음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데에 있다. 살아서 죽음에 이르렀던 자로서 PTSD 환자들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하다. PTSD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다. 하여 와락의 최우선과제는 ‘일상의 복원’이고, 그 중심에는 ‘밥’이 있다. “엄마가 따뜻한 밥을 해주듯이 기본적인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 와락의 생각이다. -284쪽

 

'의자놀이'에서 그 부분이 생각난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자살을 했는데, 죽기 전에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모두 지우고 엄마 전화번호 하나만 남겨두었다고. 자신의 죽음을 감당해줄 유일한 가족으로 엄마 한 사람만 남겨둔 그 깊은 절망과 외로움이 사무친다.

 

요즘은 그렇게 표기하지 못한다고 하지만(그나마도 인권단체의 항의 이후 바뀐 거지만) 범죄자 공개수배 전단지에 '노동자 풍'의 생김새를 설명할 때가 많았다. 이때의 '노동자'가 풍기는 어두운 그림자라니.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치지 않는 이 땅에서 프랑스의 필수 교육과목 '시민교육'은 부러움을 넘어 감동을, 그래서 더더욱 비교되는 현실에 비참함을 느끼게 했다. 다시 한 번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조카의 수학 시험지가 며칠 전에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수학 전공자나 풀법한 아주 어려운 문제가 버젓이 실려 있었다. 배웠냐고 하니까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그 시험문제를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행으로 배워서 풀어왔다는 거다. 미친 교육, 미친 대한민국이다.

 

심각한 내용과 진지한 주제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 쉬어갈 짬과 웃음의 지점이 있다. 리처드 파인만(1918-1988) 편이 그랬다. 재미로 물리학을 열심히 연구하다가 노벨상까지 받은 이 괴짜 천재는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원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가가 정의한 것처럼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대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신분을 속이고 학생들의 물리숙제를 대신 해주기도 하고, 학점 없는 강의를 수년 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물리학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탄누 투바’를 알게 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서구인이 아직 없었고, 수도가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키질(kyzyl)이라는 이유만으로 투바에 가기로 결심하기까지 했다. 공산권 국가에, 게다가 언어도 통하지 않는 지역에 들어가려는 노력은 몇 번의 좌절을 겪었고, 파인만의 사후에서야 11년 만에 완료된 프로젝트였다.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도시 이름도 신선하고, 그런 것에서 영감을 받아 거대한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그 열정도 대단하다. 우리가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을 한다면 이 지구가 분명 더 아름답게 변해있을 것만 같은데...... 

 

 

‘홍대용 별’이라 이름 붙여진 소행성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성리학 위주의 조선 사회에서 지구가 둥글며 돌고 있다고 얘기했던 학자. 그의 이런 특성을 이해한다면 그 시대에 ‘북학파’라 불렸던 그의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쉬울 것이다.

 

내 취향에는 아주 걸맞은 이 책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시즌8은 유독 앞의 책보다도 읽기에 조금 어렵다는 느낌이다. 청소년 독자도 많다는 것을 고려해서 좀 더 쉽게 서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면 『뿌리 깊은 나무』발행인 한창기 편에서 ‘국판’이나 ‘사륙배판’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 보통의 독자들에게는 아주 낯선 용어가 아닐까. 전반적으로 한자 용어도 많은 편이었던 것도 조금 신경이 쓰였다. 문장이 현학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본/주의, 민족/주의 등등... 무슨 무슨 주의 앞에 ‘/’을 그은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처음에 오타인가 했는데 뒤에도 반복되어서 기술되기에 어떤 이유나 고집이 있는지 궁금하다.

 

206쪽에서 좌익 세력이 모스크바3상 회의 이후 반탁을 외치다가 소련의 입김으로 태도를 바꾸면서 좌우대립이 격화되었다는 표현도 조금 걸린다. 이 부분에서는 ‘동아일보의 오보’ 사건을 먼저 설명해 주고 입장이 바뀐 배경을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수정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189

27일 백범 김구가 피살당했다. >>>26일

225

이 모든 아이들은 최대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 >>>‘제대로’가 아닐지... '최대로'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좀 어색하다. 

 

몇몇 아쉬운 대목을 이야기했지만 그건 이 아름다운 책의 아주 소소한 부분들이다. 이 시리즈가 오래오래 이어지고 더 많은 독자와 더 벅차게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본 작은 투정이다.

 

참, 시청자 참여 ucc 공모전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이 참가했으면 한다.

 

음악과 영상과 또 매혹적인 카피까지, 종합 예술을 자랑하는 지식e에 당신의 창의력을 보태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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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8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9 0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9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30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타블로이드 전쟁 -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세기의 살인 사건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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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 시체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의대생들이 친 장난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시체의 조각을 싼 방수천이 동일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묘하게 흘러갔다. 조각을 짜맞추자 한 사람의 몸이 되었다. 그렇지만 머리는 없었다. 중요한 단서가 되었을 법한 몸통의 문신도 제거된 상태였다. 이 남자는 누구인가? 누가 이 남자를 죽인 것인가? 이 남자는 어쩌다가 이렇게 잔혹한 죽음을 맞이한 것인가?

 

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실화다. 이 책은 소설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1897년 6월 25일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당시의 언론들이 하이에나 떼처럼 달려들어 뉴욕을 온통 들었다 놨다 했던 세기의 살인 사건이다. 그리고 이 사건의 흐름을 주도했던, 아니 흐름을 '창조해 낸' 두 축은 '황색 언론'을 탄생시킨 유명한 신문사다. 1883년에 조지프 퓰리처사 가들인 신문사 <뉴욕 월드>와 1895년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사들인 신문사 <뉴욕 저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하나 더 깃들인다면 허스트가 추가로 발행한 석간 신문 <뉴욕 이브닝 저널>을 들 수 있겠다.

 

앞서 '황색 언론'이란 말을 썼다. 퓰리처와 허스트의 악연은 앞세대 인물인 퓰리처의 과거로부터 이어진다.

 

퓰리처는 <선>의 옛 동료들을 ‘공룡’이라고 공격하면서 재산을 모았고, 그다음에 마찬가지로 명망 높은 신문인 제임스 고든 베넷의 <뉴욕 헤럴드>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문을 내놓아 <뉴욕 헤럴드>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런데 이제 <월드>에서 수련을 받은 허스트가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89쪽

 

퓰리처가 그랬듯이 허스트 역시 똑같은 길을 밟아 퓰리처를 눌러버렸다. 그리고 이 살인 사건이 난 시점은 허스트가 석간 신문인 <뉴욕 이브닝 저널>을 막 창간한 시점이었다. 안 그래도 자극적인 <저널>보다 더 자극적인 기사들을 내뽑던 <이브닝 저널>에게 이보다 더 좋은 호재는 없었다. 그러니 허스트가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것은 안 보고도 뻔한 일! 계속해서 허스트에게 추격을 당하느라 자존심이 상한 퓰리처도 지고 있을 수 없다. 이들의 과열된 취재 경쟁은 셜록 홈즈보다 치밀했고 괴도 루팡보다 더 과감했다. 게다가 지저분하기까지!

 

때는 19세기 말. 기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달렸다. 청동 전조등을 달고 도시를 질주하는 자전거 군단은 폭주족을 연상시켰다. 심지어 허스트는 신문사에 '자전거 사고 전담 변호사'까지 데리고 있었다. 뿐이던가. 혹여나 <월드>에서 취재 과정 중 알게된 새로운 사실을 전화로 전달할까 봐 해당 구역의 모든 공중전화를 점거하고 전화선도 끊어놓았다. 이 정도면 거의 범죄 수준 아닌가! 그러나 아직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들의 기막힌 보도 전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끔찍한 토막 살인 사건보다 더 무서울 때조차 있으니까.

 

퓰리처는 독자들에게 포상금을 걸었다. 시체 토막 사건에 관한 미스터리를 정확히 푸는 사람에게 500달러를 금화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셜록 홈스의 이야기를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셜록 홈즈가 될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킬 게 분명했다. 그러나 퓰리처가 이런 묘안을 짜낼 때 가만 있을 허스트가 아니다. 자수성가한 퓰리처에 비해서 광산왕을 아버지로 둔 허스트의 자금 동원력은 압도적이었다. 퓰리처의 <월드>가 500달러를 제시한 기사가 나온 직후 <이브닝 저널>은 '포상금 천 달러'를 내걸었다. 허스트 다운 전략이다.

 

 

 

이제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평범하지 않은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낵 부인의 초상화다. 당시엔 삽화를 전문으로 전담한 기자가 재빠르게 그림을 스케치하고 그것을 신문사로 보내어서 이렇게 인쇄했다. 책 속에서, 그러니까 당시 실제 신문들이 묘사한 낵 부인은 뭔가 팜므파탈적인 느낌의 여인이었다. 글쎄, 사진으로 느끼기에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사건 때문인지 보통 여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여자 혼자 시체를 토막냈다고 여기기는 아무래도 힘든 일. 사건에는 배후자이거나 공모자이거나 아니면 뭔가 관련이 있는 남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 사람이 마틴 손이다.

 

이 사건은 판결이 나오기까지 반년 정도를 끌었는데 그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내가 뉴욕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매일매일 쏟아지는 기사들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으리라. 요즘 모든 사건 사고를 윤창중 기사가 다 빨아들이는 것처럼, 이 무렵의 기사들은 이 토막 살인 사건이 모두 덮어버렸다.

 

저자가 놀라운 것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을, 정말이지 당시의 보도 자료와 수기 등만 참고해서 재현해 놓는데도 그 긴박감이란 드라마의 '다음 주 이 시간에'라는 문구를 보며 시청을 마치는 기분을 계속해서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얼마쯤 가서는 시체의 주인으로 알려진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것만 같고, 또 얼마쯤 가면 죽었다고 알려진 그 사람이 다음 재판정에 나올 것만 같다. 반전의 반전의 또 반전! 이건 사건 자체가 흥미진진하기도 하지만(죽은 사람에겐 미안!) 그걸 글로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 덕분이다. 웬만한 추리 소설이 명함을 못 내밀 정도다.

 

그리고 무려 19세기의 이야기이다. 아직 빅토리아 여왕이 살아 있고, 자동차보다 마차가 더 익숙한 시절이다. 사진보다 삽화가의 활약이 더 컸던 시대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흥미롭게 보인다.

 

몇 주 전에 인도 총독은 나선형이라든가 고리 모양 등 지문의 모양으로 사람을 구별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채택했지만, 오브라이언 경위를 비롯한 미국 사람들은 인도 경찰이 고안한 이런 괴상한 아이디어에 관심이 없었다.  -144쪽

 

오호라! 지문식별이 인도에서 시작되었구나. 초기에는 이것이 얼토당토 않다고 여겨졌구나!

 

이 토막 살인 사건 때문에 허스트의 신문 판매 부수는 드디어 <월드>를 눌렀다. 탄력 받은 허스트는 흥미진진한 연재 소설을 싣게 되었다는 것을 크게 광고했따. 바로 웰스의 "우주 전쟁"이다. 아핫, 그래, 바로 그 시대였지!

 

하나 더 있다.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서 쿠바에 정박 중인 미 해군 전함 메인호가 의문의 폭발로 붕괴되어 배와 승무원들 대부분이 아바나 바다에 수장되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 사건은 스페인의 짓이 아니건만, <저널>의 허스트는 "확실한 전쟁! 스페인이 메인호를 폭파시키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그는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사건 자체가 필요했다. 그리고 전쟁만큼 확실한 이슈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는 '타블로이드 전쟁'을 이미 하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허스트는 정말 전쟁터에 직접 뛰어들어가 현장을 살피고 오기도 했다. 포탄과 총알은 그를 비껴갔지만 그가 사명감으로 살아남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선정적인 보도에 있어서는 뱀같은 감각을 지닌 이 언론사 사주와 맞먹을 만큼의 배짱과 수완을 가진 이가 바로 낵 부인이다.

 

“난 구경거리가 아니에요.” 낵 부인이 여간수에게 쏘아붙였다. “날 구경할 수는 없다고 말해줘요. 난 전시물이 아니라고.”
그러다가 낵 부인은 다시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저널>과 에덴 박물관이 사건을 가지고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뭔가? 박물관에서 입장료로 50센트를 받는다니, 낵 부인은 시물감에서도 가격에서도 박물관을 누를 수 있었다.
“잠깐만요.” 낵 부인은 자리를 뜨려는 여간수를 불렀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와서 구경하라고 해요. 한 사람당 25센트를 낸다면요.”
오거스터 낵은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174쪽

 

다시 사업을 시작하는 낵 부인이라니!! 희대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살인 사건의 중요 피의자를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서 돈을 낸다. 놀라운 일이건만, 이 관광(?) 수입으로 낵 부인은 짭잘한 수익을 올리고, 그 돈을 이용해서 감옥 안의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구해 주고 세력을 구축한다. 바로 그 권력을 이용해서 마틴 손에게 보낸 편지다.

 

 

 

편지의 내용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짐작하는 낵 부인의 심정과는 많이 다르다. 이 편지에는 또 다른 음모가 깃들어 있는 것일까? 마틴 손의 답장을 보시라. 찢어진 흔적이 있다. 그가 답장을 쓰면서 겪었을 고뇌가 느껴진다. 이 사람은 살인을 주도한 악마인가. 아니면 여자에게 이용당한 순정남인가. 재판이 끝날 때까지 계속 궁금하게 만든 대목이다.

 

작품의 배경에서는 전기의자에 앉혀서 사형을 시키는 제도가 등장한다. 도입한 지 얼마 안 되었고, 그 효과에 대해서도 입증되지 않은 사형 방식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사형 방법이 토막 살해된 어느 남자의 죽음과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독자는 소름이 돋았다. 법정 안에 낵 부인의 전 남편과, 현 애인과, 그리고 약품처리된 토막 시체로 참여한 옛 동거남까지 함께 모여 있던 순간처럼.

 

선정적인 기사의 배후에는 선정적인 기사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 여자들은 마틴 손의 인물에 반해 그의 무죄를 외쳤고, 법정 안에는 한껏 차려입은 여자들이 참관하는 바람에 그야말로 '꽃밭' 같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모든 분위기들을 즐기면서 더욱 부채질하는 언론사들 때문에 이 비극적인 살인 사건은 마치 '축제의 장'이 되고 말았다. 그 현장에서 가장 화려한 칼춤을 춘 것은 당연히 허스트다. 퓰리처는 감각이 많이 떨어졌다. 한 세대 더 앞의 인물이기도 하지만 건강도 잃고 타블로이드 전쟁에서도 계속해서 물을 먹고 있는 츌리처의 <월드>는 더 많은 돈과, 더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비윤리성으로 무장한 <저널>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결말이 오기까지는 퓰리처가 뿌린 죄값이 있었던 거지만...

 

이 책을 보는 동안 100년 이상의 간극이 있음에도 많은 기시감을 느꼈다. 범죄의 잔혹성과 그 범죄를 유발시킨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집착, 그리고 그것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까지, 모든 게 21세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의 천박한 호기심도 판박이였고,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약삭빠른 인간들도 당연히 있었다. 중간중간에 함께 소개되는 희대의 사기꾼들과 여러 놀라운 살인 사건들의 충격적인 모습도 역시 익숙한 모습이었다. 가장 사악한 자가 언론과 종교의 이름으로 죄를 세탁하고 새삶을 사는 기막힌 풍경도 역시 이곳에서도 이미 선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부조리함 때문에 희생되는 인물도 당연히 뒤따른다. 자극적인 살인 사건은 모방범죄를 불러왔고,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기사와 표제에 익숙해져갔다. 포털에서 우리가 지겹도록 보는 '충격', '경악'과 같은 그런 단어들 말이다. 이 얼마나 우리 사는 세상과 닮아 있는가.

 

 

 

살인 사건과 타블로이드 전쟁이라는 두 축을 효과적으로 배치해서 이 작품은 소설보다 더 극적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역사를 짚어보면서 중요한 교훈을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 정도면 일석다조의 효과가 아니던가!

 

자, 이제 정리를 해보자. 이 전쟁은 어떻게 끝이 났을까. 부수 전쟁으로 이야기한다면 단연코 허스트가 이겼다. 무려 400만 불을 투입시키고도 아직도 500만불의 재산이 남아 있던 허스트의 금력을 퓰리처가 어떻게 감당했겠는가. 하지만 퓰리처는 현명했다. 그는 황색 언론 대신 이름을 남겼다. 그것도 고상한 이름을!

 

그래도 <월드>는 자발적으로 선정주의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조지프 퓰리처로서는 허스트의 공격적 마케팅에 허덕허덕 끌려다니는 게 늘 못마땅했었다. 말년에 퓰리처는 <뉴욕 타임스>의 냉철한 신뢰성 쪽으로 끌렸다. 1911년 사망한 뒤에 퓰리처는 역사적 기억 속에서 새롭게 탄생했다. 황색 언론 전쟁은 잊히고, 컬럼비아 대학에 재산을 기부하고 작가와 기자들에게 주는, 그의 이름이 들어간 상이 제정되어 장밋빛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허스트는 반성할 줄 몰랐다. -390쪽

 

오늘날 '퓰리처'의 이름은 황색 언론을 낳게 했던 극단적인 보도 전쟁보다 '퓰리처 상'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회자된다. 반성할 줄 몰랐던 허스트를 결국은 그가 이긴 것이다. 막차는 제대로 탔구나 싶어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그 박수는 이 책의 저자에게도 나눠야 할 듯! 

 

우리의 언론 환경을 생각해 본다. 주식회사 프레시안 대신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선언한 진보 언론 매체도 떠오르고, 지난 대선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어준 쓰레기같은 언론사들도 떠오른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재판을 받았던 언론인 부역자들도 떠오른다. 그만큼 막강하고, 그만큼 중요하고, 그만큼 큰 소명의식을 필요로 하는 자리임이 자명하다. 그래서, 즐겁게 책을 읽고 난 뒷맛이 쓰다. 오늘 주진우 기자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우리의 언론 환경은 19세기보다 못한 것은 아닌지......

 

우리가 소망하고 기대하고 지켜야 할 언론의 모습을 마음 속에 새기며 좋은 책을 추천해 본다. 당신의 관심과 호기심을 충분히 채우면서 긴 여운과 생각할 거리들을 넘치게 남겨줄 것이다. 그래야 하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다.

 

 

덧글) 몇 군데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들이다.

79

오브라이언을 20년 넘게 경찰 일을 하면서 >>> 오브라이언은

153

두 번째로는 꾸러미를 무겁게 만들지도 않았는데 오거스터 빨리 처리하라고 닥달을 하는 바람에>>> 오거스터가

198

그녀가 마틴 손에을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 마틴 손을

266

증인이 굴든수프를 쏘지 않았습니까! >>> 큰 따옴표 방향이 뒤집혔다.

382

위장내막을 얇게 저며 끓여 잿물과 벤젠과 섞은 용액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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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3-05-15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어보았는데 언론이라는 무기로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와 형사들의 활약으로 당시의 사건을 이야기하는 그리고 사건 언론의 변천사를 짧게 이야기하는 당시의 언론의 모습을 볼수 있는 사건의 진실보다는 그사건을 수사하는 기자들이야기가 더 인상적인

마노아 2013-05-15 22:02   좋아요 0 | URL
기자들의 행태와 기사 자체가 엄청 선정적이더라구요. 거기에 달려들어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충격적이구요. 100년 전 모습같지가 않았어요. 말 그대로 리얼다큐더만요.
 
인권여행, 어깨동무 북토크
어깨동무 - 만화가 10인의 마침표 없는 인권 여행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정훈이 외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 창비 / 201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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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인권위원회 기획 세번째 책 어깨동무. 십시일반과 사이시옷을 무척 인상 깊게 읽었고, 그 무렵에 나온 이어달리기가 세번째 시리즈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이어달리기'는 여성 노동에 대해서 다룬 책으로 맥락은 서로 통하기는 했다. 어쨌든 그리하여 만난 인권 시리즈 세번째 책 '어깨동무'도 전작들처럼 무척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첫 작품 십시일반이 2003년도 출간이니 어느새 십년 세월이 흘렀다. 세번째 출간이다 보니 지나치게 무거웠던 앞의 작품들에 비해서 강약을 좀 더 조절한 느낌이었다.  앞의 두 작품이 '차별'에 대해서 힘주어 얘기했다면 이번 편은 '인권'을 주제로 했으며 소재도 보다 고르게 배치하려고 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그 십년 사이 우리의 인권 감수성은 얼마나 성장했느냐를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숨만 쉬면서 땅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자 고개를 들고 책장을 펴보자. 우리 인권 감수성에 불을 지필 작품들을....

 

첫 시작은 정훈이 작가님이 열어주셨다. '꿈의 공장'이라는 제목인데 특유의 개그와 시니컬한 풍자력을 보여주었다. 인류전자의 '휴먼'이라는 새 휴대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회장님은 급작스레 의식불명이 되고 가사 상태에서 염라국을 경험한다.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은 채 이곳에 온 덕분에 천국으로 직행할 것인가, 아님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3년의 대기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이곳의 3년은 인간 세상의 사흘. 남기남 회장은 염라국에서 천국하청기업 조립공으로 일하게 된다.

 

 

이제 감이 오시는가? 염라국의 노고로 천국의 윤택한 생활이 보장된다. 그동안 남기남 회장이 이승에서 당연하게 수행해왔던 작업들이다. 몸소 하청 노동자의 인권 없는 삶을 경험한 남기남은 이곳에서 무려 '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르고, 그 바람에 염라국이 시끄러워지자 조기송환 되기에 이르른다. 살인적인 노동과 형편 없는 식사, 닭장 같은 숙소와 감시와 통제까지. 생지옥을 경험한 그가 다시 깨어나서 바꿀 세상이 기대되지 않는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모든 재벌 총수들이, 악덕 자본가들이 부디 남기남 회장 같은 생생한 경험을 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만화 속에서만 일어나니 문제다. 그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 혹 달라지려나?

 

이번 어깨동무 시리즈에서 가장 임팩트가 있었던 작품은 두번째로 수록된 최규석 작가의 '맞아도 되는 사람'이다. 맞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물론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당연히 아닌 데도 당연히 맞고, 그런데도 억울함을 풀 길 없는 사람들이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마치 그들을 맞아도 되는 사람 취급을 한다는 데에 있다.

 

 

재능교육 노동자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꼭 그들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서 탄압받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정말 박봉의 노동자들도 있고, 제법 괜찮은 연봉을 받던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설령 고액연봉을 받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이렇게 짐승처럼 사냥을 당하고 아무렇지 않게 자살 유혹에 노출되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고액이라고 받아봤자 재벌들이 가져가는 착취에 비교가 될까. 그리고 이들 몇몇 노동자들은 그만큼 고된 노동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몫을 가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알려진 것들이 잘못된 정보일 때도 부지기수다. 다시 '의자놀이'가 떠오른다. 용산 진압 사건에서 이미 간을 본 정부가 쌍용자동차 파업 때에 이 정도의 진압은 국민적 저항이래봤자 감수할 만하겠다 여겼을 거라는 것. 지난 오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 탄압을 보아왔던가. 이제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익숙해진 것처럼 보인다. 마치 북한의 폭격 위협에도 그다지 사재기 현상도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하루하루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들은 맞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피 흘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인지, 왜 피 흘리고 있는지 묻기 전에 그 피를 멈추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들의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신고를 해주고, 문제 있다고 소리를 높여주고, 노동탄압 규탄을 위한 서명이라도 해야 한다. 바로 지금 당장 말이다.

 

손문상 화백은 '은별이'라는 제목으로 강정 마을을 다뤘다. 강정은 평화다!라고 적어 놓은 철조망 아래의 저 담장 그림이 가슴 한켠을 욱신거리게 한다. '맞아도 되는 사람'처럼 역설적인 제목이다.

 

 

김수박 작가의 '사랑이란 이름의 추억 박탈'은 교육 문제를 다뤘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가장 위태위태하게 흘러가는 분야가 이곳이 아니던가. 대한민국에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한숨 나오는 분야가 어디 있겠냐마는 가장 갑갑한 게 교육문제로 보인다. 자녀가 있건 없건 간에 말이다. 아이들의 교육이란 곧 이 나라의 미래이고 내게는 생업도 걸려 있는 문제니까.

 

교육 선진국으로 늘 비교되는 핀란드 얘기도 나왔다. 핀란드는 가난하던 시절에 복지를 시작해서 성공했고, 우리는 극단적인 가난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좀 배불러지고 나니 오히려 복지를 못하고 있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복지를 포률리즘이라 폄하하면서 종북이라 매도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 중에 진심으로 '함께' 잘 살고, '같이' 좋은 교육을 만들기 원하는 자들이 있을까. 또 모른다.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주장들을 포장한 껍데기가 진심이라고 이미 세뇌가 되어 있을 지도...

 

 

현직 국어 교사인 조주희 작가님의 교문 안 이야기는 명랑만화를 떠올리게 할만큼 유쾌했다. 이 무거운 주제의 책에서 잠시 숨 돌릴 여유를 주었다. 말썽 부리고 사고친 아이들을 데려다가 텃밭을 가꾸게 하고, 거기서 재배한 작물을 나눠 먹게 하신 선생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3주 쯤 전에 화단에 대대적으로 비료를 주었다. 똥냄새 가득한 놈으로~ 어제 동아리 활동 시간에 원래 거기서 활동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냄새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적극적인 저항에 부딪혔다. 하핫, 땅냄새 흙냄새까지는 좋은데 똥냄새는 좀 거시기하지... 아해들은 다른 곳으로 재배치 되었다는 후문이다.

 

박철권 작가님의 '그 아이'는 참 먹먹한 이야기였다. 성폭행 당했다고 고백한 학생과, 그 고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교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폭행은 상처의 강도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데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관계가 망가지지 않을지 알 수가 없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어디 쯤에 묻어두지만 그 자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위를 지날 때마다 가슴을 졸이고, 누군가가 그 위를 지나가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또 어떨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서 혼자 구덩이 앞에서 울고 있을 수 있다.

 

작가님도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나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다.

 

 

김성희 작가님의 세대유감은 가장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든 이야기였다. 베이비 부머 세대 부모님과 그들의 자녀들이 이룩한 90년대생 손주들이 있는 그런 가정. 빌딩의 청소 용역으로 일하고 계신 어머니의 걸진 말투와 사투리는 고단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데도 재미가 있다. 위 그림처럼 뻔히 청소하는 것 알면서도 개념 없이 습관적으로 쓰레기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타워'에서 보면 애완견의 똥을 치우지 않는 입주민에게 개 주인이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가 모욕을 당하는 청소 아주머니가 나온다. 위 만화에서는 아주머니가 무척 지혜롭게 말씀해 주셨고, 지적을 받은 직원도 잘 수긍하고 넘어갔지만 험한 상황으로 번질 경우도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새벽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할머니가 새벽 지하철을 타고 알바에서 퇴근하는 손녀를 만난다. 서로가 고단한 인생이다.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로 빚더미에 앉은 채 사회에 떠밀린 취업준비생 이야기는 이제 지나치게 흔해지지 않았는가. 갑갑한 현실을 담아내었지만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지 않고 과하게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히 소임을 다한 것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어지는 윤필 작가의 '늙은 개가 짖는 밤'은 고독사를 다루고 있다. 하루종일 사람이 그리운 할머니는 한달에 한 번 복지사가 다녀가는 날에는 두시간 전부터 준비를 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한달에 한 번 돌아오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에 할머니는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하신다. 아파트에서 많이 짖는다고 버림받은 개와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가족이 되었다. 서로가 나이가 많아 언제 이 세상을 떠날 지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가족. 기어이 할머니가 먼저 생을 달리 했지만 늙은 개는 크게 짖어서 누군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 살기에 바쁘고 이웃 간에 관심이 없는 옆 호수 사람들은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고 타박만 놓을 뿐이다.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옆집과의 거리가 이토록 가까운 인구 조밀 지역에 살면서, 우리와 이웃 간의 관계는 얼마나 멀고도 먼가. 서로가 외로워하면서 서로를 더 밀쳐내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대체 무엇을 위한 번영인가 싶다. 이 화려한 문명 속에서의 인간이란...

 

 

굽시니스트의 '人權Begins'다. 인권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비화를 담고 있는데 특유의 유머감각을 잘 발휘했다. 마치 학대받는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서 등장한 조로처럼 화려하게 선을 보인 한 인물. 그는 자신을 '인권'이라고 소개했다. 어찌하여 인권이 그리 고강한 무공을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애초에 이름도 없고 힘도 없는 마음의 씨앗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시작되는 인류 역사의 현장. 이름도 없던 그가 국가권력에 어떻게 대응하고 대항해 왔는지 지난한 역사가 소개되었다.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인권'이라는 이름을 달기까지의 이야기는 간추린 인류 역사 혹은 철학사로도 보인다.

 

그러나 '인권'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바로 인권이 대접받는 시대가 오지는 않았다. 인류는 더 많은 피와 희생을 치룬 다음에야 흑인에게도, 여성에게도 차례로 인권을 허락했다. 이어 아동에게, 이주노동자에게,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했지만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쪽 손으로 나의 인권을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 상대방의 인권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인권과 서로의 인권을 소중히 여겨줄 때, 강력한 인권 사슬이 되어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은 거저 오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남지도 않는다.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마지막 이야기는 유승하 작가의 '세계 인권 선언의 탄생'이다. 세계 인권 선언이 어떤 배경으로 인해 만들어지게 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선포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의미의 단어라도 혹시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 고려했고, 혹시 의미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들리지 않는 지 몇 번이나 감수를 거쳤다. 그렇게 오랜 다듬기를 마치고 마침내 1948년 12월 10일에 감동적인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인권을 주제로 한 10가지 이야기의 마무리로 잘 어울린다.

 

'어깨동무'라는 제목도 다시 읽어본다. 우리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또 내 어깨를 빌려주어 함께 나아가는 모습. 그 속에 인권의 시작이 있고 인권의 미래가 있다. 나와 너와 우리 모두를 위한, 또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한 인권. 우리가 충분히 물을 주고 따뜻한 볕을 주어 무럭무럭 자라나게 해서 열매도 맺고 꽃도 피워야 하는 인권. 결코 시들게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안에 우리의 생명이 있으니까. 우리의 희망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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