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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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심심찮게 뉴스를 장식하는 기사 중 하나가 '보복운전'이다. 최진기 씨는 도로 위에 서면 확연하게 드러나는 '빈부격차'가 운전자의 심리를 더 극단으로 몰아가게 한다고 진단한 바가 있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차종의 차이에서 이미 모욕감을 받은 것일까? 그런 상대가 나를 제치고 가는 것에 욱하고, 나보다 못한 차를 모는 자가 '감히' 끼어들거나 하면 분노가 폭발하는 것일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수치심을 느끼는 대한민국이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는데, 물질적인 부분에서만 노골적으로 비교하고 열등감을 갖는 것은 아닌지?


모욕을 쉽게 주는 사회 못지않게 위험한 것이 모멸감을 쉽게 느끼는 마음이다. 그것은 또 다른 모멸감을 확대 재생산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68쪽


낮은 자존감이 유리멘탈을 불러오는 것일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들에게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이들이 식당에 가면 종업원에게 지나치게 불친절하게 군다는 것이다. 굉장히 까칠하게 군달까? 내 생각엔 문제 삼을 만큼 상대방이 불친절했던 것도 아닌데 자긴 너무 기분 나쁘다며 틱틱 댄다. 차라리 조목조목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다고 따지기라도 하면 낫겠는데 그러진 않으면서 자신의 불쾌함을 보란듯이 드러낸다. 같이 있는 내가 불편할 정도로. 내가 공통적으로 느낀 건 이들이 '돈 쓸 때' 그런다는 것이다. 평소 '을'로 살면서 느낀 부당함과 서러움을 돈 쓰면서 손님이 될 때 '갑' 행세를 한다고 느껴졌다. 이런 깨달음이 참 슬펐다. 


돈이 만악의 근원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 본질이 사악한 것은 아니다.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돈은 인간에게 자유를 증진시켜주었다. 문명의 탄생과 함께 출현해 1,2세기 전까지 세계 곳곳에 존재하던 노예는 자본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예를 대신해 임노동자들이 대거 도시에 등장했다. 노동자는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일을 할 뿐, 그 누구도 강제로 일을 시킬 수 없다. 이런 변화는 돈이 사회의 지배 원리가 되면서 가능했다. 그런 점에서 돈은 일정 정도의 진보성을 갖는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똑같은 대접을 받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귀족들만 누릴 수 있던 호사를 이제 돈만 있으면 누구나, 얼마든지 향유할 수 있다. -87쪽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바로 그 돈 때문에 빈곤해지고 구속을 받는다. 금융자본의 막강한 힘과 지식 정보 중심의 산업구조 재편, 그리고 비민주적인 국가정책과 경제 시스템 속에서 빈부의 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게다가 시장 원리가 사회질서를 대체하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이 상품화된다. 이제 돈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돈 벌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공급과잉과 노동의 종말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가운데, 밥벌이를 하려면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87쪽


우리는 남들을 열등하게 만들면서 자신의 위신을 세우려 한다. 자기보다 못났다고 여겨지는 부류의 사람들과의 선 긋기를 통해 스스로의 잘남을 확인하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그 절대적인 기준이다. 경제의 수단으로 고안된 돈이 삶의 목적이 된다. 그 결과 삶 자체가 수단이 되어버린다. 사용설명서specification의 약자인 ‘스펙’이 경력 및 자격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90쪽

 

가난은 불편한 것이지 불행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단순히 불편한 것에서 그치던가? 


서울의 청계천이 그러했듯이,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개천이 매우 더러웠고 그 주변에서 하층민들이 애옥살이하고 있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비유는 그런 구체적인 공간 경험에서 나온 것이리라. 하지만 그런 표현을 계속 사용하다 보면, 은연중에 가난을 더러움으로 직결시키는 고정관념이 지속되기 마련이다. 경제적인 궁핍이 단순한 결핍이나 불편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저열함으로 등식화되는 것이다. -170쪽


 자주 쓰는 표현인데 저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저자의 지적이 맞다. 그런데 그걸 인정하고서도 이젠 개천에서 아예 용이 나오질 않고 있다. 속담 자체를 수정해야 할 판이다.


타인의 시선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상처와 아픔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그것으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마음의 습관은 상대방을 그 굴레에 가두어둔다. 그의 모든 성격과 행동을 트라우마와 결부시키면서 비정상의 부류에 묶어버린다. 그 결과 연민의 눈길은 수치심을 자극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보는 자는 자신이 더 낫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다. 일종의 권력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197쪽


 자각을 하든 못하든 저런 우를 범하기 쉽다. 주의하고 경계해야 한다. 같은 선상에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도 이것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차태현과 자신을 좋아하는 김수현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공효진에게 막내 작가가 조언을 한다. 더 미안한 쪽을 버리라고. 동정으로는 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다. 그것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연인사이뿐 아니라 다른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해서 노숙자를 찾은 얼 쇼리스 씨의 이 대목은 감동 그 자체다.


온갖 고통을 모질게 겪어왔고 하루하루 생계가 막막한 이들에게 안부나 위로 대신 다짜고짜 시를 좋아하느냐는 질문, 그것은 그분들의 삶에 대한 깊은 경외감과 신뢰가 없이는 나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여성 노숙인과 미국의 남성 지식인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존재 조건에서 너무나 차이가 크다. 그런데 얼 쇼리스 씨는 그 거리를 뛰어넘어 시詩라는 ‘섬’을 찾으려 했다. 빵의 문제로 허덕이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장미 한 송이에 대한 소망을 클릭해주었다. -257쪽


쉽게 모멸감을 주고 쉽게 모멸감을 느끼는 사회를 살고 있다. 급격하게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고, 급격하게 받아들인 민주주의는 성장속도를 맞추지 못했다. 저자의 지적대로 '역지사지'를 뛰어넘어 '역지감지'가 필요한 때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나자신이 먼저 건강한 멘탈을 가져야 한다. 이 책은 4월에 읽었는데 그 무렵에 나에게 '갑질'을 한 누군가로 인해 큰 모멸감을 느꼈더랬다.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를 썼지만 며칠간 분노가 일었고, 그 후로는 상대방을 볼 때마다 그 감정이 되살아나서 마음이 활활 타오르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상대방이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대로 사과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몇 번에 걸쳐서 자신이 사실은 아픈 상태라는 것을 거듭 말하는 것을 보며 미움이 사라졌다. 그제서야 상대방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타인 위에 군림하지 않고 위엄을 누릴 수 있을까. 부드러우면서도 당당한 기품은 어디에서 우러나올까. 품격은 겉멋이 아니다. 예절은 단순한 고분고분함을 넘어선다. 자기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너그러운 성품에서 격조 있는 삶이 가능하다. 높은 것에 사로잡혀 삶을 창조하기에 자기를 돌볼 줄 안다.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을 자각하며 스스로 채워진 마음이 타인에게 스며들기에 품위 있는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나 위엄과 기품이 사회적 풍토로 자리 잡을 때, 모멸감의 악순환도 줄어든다. 그 길은 자존의 각성과 결단에서 열린다. -307쪽


모멸감의 악순환을 낳는 것은 사회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있지만 개인도 할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앞서 제시한 사례처럼 식당 같은 곳에서 '손님은 왕이다'라는 생각은 제발 하지 말기를. 난 언니의 가게에서 8년 동안 일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자영업의 고단함이 너무 크게 공감이 간다. 불친절한 사장이나 종업원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당신이 불친절한 손님이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안 그래도 피곤한 세상에서 제발 갑질들 하지 맙시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음반이 같이 들어 있다. 책의 주제에 맞게 '힐링'용 명상음악이 들어있지는 않다. 그런 뻔함을 깨버린 것도 참 신선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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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작가의 수첩 - 이이제이
이동형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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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팟캐스트 방송 이이제이를 열심히 듣고 있다. 지금도 지난 주 녹음한 방송을 틀어놓은 채 이 글을 쓰고 있다. 주로 역사 속 인물을 많이 다루는데 그 인물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 현대사에서 굵직한 궤적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모로든 옮겨놓은 사람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주기는 모르겠지만 인터뷰 방송도 곧잘 올라온다. 지금까지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꽤 나왔던 것 같다. 이때의 독립영화는 우리가 연대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영화들이 대체로 많았다. 이 책은 그런 연장선은로 느껴지기도 하는 인터뷰집이다. 



첫번째 인터뷰 대상은 성남시장 이재명이다. 총 8개의 인터뷰 중에서 가장 시원시원한 메시지를 들려주었다. 이분에게선 일종의 '성깔'이 느껴지는데, 이런 의분에 찬 목소리는 고 노무현을 종종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더 응원도 하게 되고, 그래서 또 한편으로 좀 짠하기도 한 그런 기분이 든다. 


우리가 보통 정치에서 말하는 타협과 개방성, 포용이라는 것은 인정할 가치가 있는 나와 다른 것들을 포용하는 거지. 나쁜 것, 없어져야 할 것들과 타협하고 포용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은 나쁜 것들하고도 타협하라 이런단 말이지요. 범죄와 타협할까요? 백만 원 훔칠 거 오십만 원 훔쳤다고 봐 줄까요? 그러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정치라는 이름으로 불의와 타협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나 저는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불의는 제거하고,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나와 다른 가치를 지닌 정당한 일과는 타협하고 적응하고 양보해야 된다는 것이 저의 기본적 입장입니다. -26쪽


정치판에서 무조건 배타적인 게 능사는 아닐 거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불의와 타협하는 것과 정당한 타협 및 용인은 구분해야 마땅하다. 이 초심을 절대 잊지 않기를! 기대하고 또 고대한다. 


저쪽은 전체에 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식구를 확실히 챙기니까 단단한 거예요. 지지율이 안 나눠진다는 겁니다. 왜냐면 전체를 가지고 자기 진영을 먹여 살리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절반도 못 가지고 있는데 전체를 커버 하겠다고 자꾸 남의 집을 집적거리니까 지지기반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28쪽


새정련은 제발 새겨들었으면 한다.(그리고 이름 좀 얼른 바꿔주기를!) 제 식구도 못 챙기면서 되도 않는 오지랖은 그만 떨기를.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은 집권하고서 펼치란 말이다. 


시장 한 명을 잘 뽑아놓고 나니 성남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빚더미 위에 놓여 있던 성남 시의 재정을 완전 탈바꿈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대한민국 전체로 범위를 확장한다면.... 하아... 여기까지만 얘기하자.


두번째 인터뷰는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 이준석 편이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 혁신위원장 역할을 했던 젊은 청년이다. 방송에서 이름은 많이 언급되어 낯설지 않지만 얼굴은 이번에 제대로 본 듯하다. 일부러 색안경을 끼고서 보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딱히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없었다. 


세번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이철희 편도 임팩트가 다소 약했다. 그래도 이런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패배가 내면화 되어있다는 게 크죠. 그래서 자기 편 안 들어 주는 사람에 대해서 인색하죠. 주류나 이기는 데에 익숙한 사람들은 상대를 인정하는 품이 좀 넓어져요. 그런데 자꾸 지다 보면 그럴 여유가 안 생겨요. 대게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품이 좀 좁아요. 왜냐면 보수는 가진 게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좀 넉넉하니까 품이 넓을 수밖에 없죠. 진보는 거기에 도전해서 뭔가를 해야 되니까 힘든 삶을 살아가니까 품이 좁을 수밖에 없는 건 맞아요. -124쪽


원래 보수 쪽 인사들이 입고 다니는 입성도 훌륭하다. 일단 돈이 많으므로..;;; 왜 있는 집 자식들이 요새는 더 예의바르고 성품도 모나지 않더란 말들도 있지 않던가. 그런 연장선상에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진보 쪽 지지하는 사람들도 왜 비지니스석을 탔느냐, 비싼 브랜드 옷을 입었느냐.. 뭐 이런 유치한 걸로 타박 놓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재능기부'를 강요하지도 말고. 그게 열정페이와 뭐가 다른가. 정당한 노동에 대해서 정당한 대가는 꼭 지불하기를! 그리고 이번에도 당연히 질 거라고 미리 포기하지 말기를!


네번째는 국민TV의 김용민 피디다.


박근혜는 14년 동안 정치를 했고 그중, 4년을 당대표를 했고 그 4년 동안 망한 정당 일으켰고 질 정당을 이기게 만들었어요. 물론 그 과정 속에서 벌어졌던 고인에 대한 기만, 구태정치, 줄 세우기 많죠. 하지만 지도자로서 뭔가 통솔하고 뭔가 일사불란하게 조직화하고 결속을 보여줬던 리더십을 국민들이 인정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박근혜까 되면 왠지 안정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서 어마어마한 자본권력 이런 세력들에 맞서서 국민의 권익을 대변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마디로 오해에 기초한 기대를 갖게 했던 것도 박근혜의 강력한 리더십이었거든요. -143쪽


본인의 능력이 있든 없든, 반듯하고 번듯한 생각이 있든 없든, 어쨌든 간데 박근혜는 새누리당 안에서 훌륭한 정치적 자산이었다. 오해에 기초한 기대라 할지라도 그걸 극대화해서 대통령까지 되었다. 지도자의 안정적인 리더십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당의 강력한 지지, 그것 좀 배우시라. 상대방에게서 말이다. 나쁜 짓하는 걸 배우라는 게 아니라 장점은 갖고 오라는 소리다. 듣고 있나 새민련?



사실 사진은 문성근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상임위원장 때문에 찍었다. 두 사람 모두 참 싱그럽게 웃었다. 건강한 웃음으로 보여서 내친 김에 다른 인터뷰이들도 같이 찍었다.


아마 장준하는 목회자로서 혹은 작가로서 아니면 언론인으로서 그것도 아니라면 학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꽃 피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장준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나오라고 그를 불러냈다. 우리에게 희망을 달라고 소리쳤다. 문성근도 그렇지 않을까? 시대가 그를 연기자로서 살게 두지 않는게 아닐까? 연기만 하고 살아야 할 천부적 재능을 지닌 연기자가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이 아닌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가 하루 빨리 “문성근”이라는 이름을 가장 빛나게 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길 바란다. -164쪽


이 부분은 인터뷰 내용 등장하기 전에 이작가가 쓴 부분이다. 진심으로 공감이 갔다. 시대가 그를 불러서, 역사가 그를 필요로 해서 그의 능력이 이렇게 쓰이고 있다. 그 자신의 꿈과 재능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또 그 헌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난 주에 영화 '협녀'를 보았는데, 영화는 정말, 전도연이 왜 이런 영화를 찍었을까 싶을 만큼 형편없었다(이병헌의 연기는 훌륭했다. 전도연은 미스 캐스팅). 그런데 짱짱한 배우들 틈에서 아주 짧은 컷만 나왔지만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 게 문성근이었다. 분량은 이경영이 더 많았는데, 이 분은 말을 빨리 하면 발음이 많이 뭉쳐서 대사 전달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게다가 요새 한국영화 10편 중 8편은 모두 출연하시니 보는 사람이 다 피곤할 지경. 반면 가뭄에 단비 만나듯 드물게 만난 문성근은 무척 반가웠다. 이번에도(?) 악역이긴 했지만, 다양한 많은 영화에서 더 자주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적으로 인구 8천만에 소득 3만 불인 나라가 미국, 독일, 일본 세 나라 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남북한 합치면 일단 8천만이고요. 그리고 연변 자치구까지 합치면 우즈벡, 카자흐스탄까지... 그렇게 하면 9천만이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8천만 이상, 3만 불 이상이 되는 네 번째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거를 자기들의 정권 연장을 위해서 이렇게 허송세월만 하고 있고 더 나아가 북한을 자꾸 떠밀어서 중국에 갖다 바치고 있는 거죠.  -181쪽


말이 발휘하는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반도의 작은 나라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고, 또 그 말에 갇혀서 우리가 가진 것을 너무 하찮게 볼 때가 많은 것 같다. 세상에, 정말 저렇게 세 나라밖에 없단 말인가? 인구 8천만 수준에 소득 3만 불 이상인 나라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방북 성과를 이어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결실을 맺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통일, 안보 이런 것은 원래 보수 쪽 가치 아니던가? 정권 창출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 말고, 국가 전체,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대승적 차원에서 좋은 쪽으로 통일을 이용할 마음은 정말 없는가? 역시 정권교체 말고는 답이 없나? 


방송인 김미화 씨와의 인터뷰는 그녀의 카페 호미에서 이뤄졌다.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찾아가서 바람도 쐬었다고 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검색을 해보니 도저히 대중교통으로 찾아갈 엄두는 나지 않는 곳이었다. 용인시 수지 사는 내 친구 생각했는데 수지와 비교할 수 없는 거리였음..;;;;


팟캐스트를 통해 시사방송 진행하는 김미화 씨를 많이 접했는데 근래에는 방송이 없어서 아쉬웠다. 나는 꼽사리다 들을 때도 말이 장황하고 정리가 잘 안 되는 우석훈 선대인 사이에서 평범한 청취자의 입장에서 균형을 잘 잡아주었더랬다. 인터뷰에서도 그녀의 다부진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현장감이 더 두드러졌다.


SBS아나운서 배성재와의 인터뷰는 주로 정치 시사 얘기하다가 감초 같은 맛이었고, 마지막에는 이이제이 방송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이박사 이종우와 세작 윤종훈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이제이 방송이 2012년 총선 즈음부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초반엔 욕이 난무하는 거친 방송 진행에 거부감이 많이 들었는데, 내용이 워낙 진국이어서 감수하고서 들었더랬다. 그런데 3년이 지나고 나니 그런 거친 언사 없이도 적절한 균형점을 찾은 듯하다. (초반에는 일부러 욕을 많이 하는 컨셉이었다고 한다.) 방대한 자료의 보고는 이작가가 담당하는 것 같고, 물론 다른 두 멤버도 자료를 찾겠지만, 이박사는 재현연기에 뜻밖의 재능을 보이고 있고, 세작은 감성적으로 내용을 잘 정리하는 것 같다. 방송을 통해 이들도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날개를 펼치는 게 보인다. 


전체적으로 인터뷰 내용이 빡빡하지 않다. 입말이 잘 살아 있고, 내용도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실제 방송에서도 사전 질문지를 안 주는 걸로 유명한데, 이 책도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든다. 



출간 직후 이이제이 안가에서 진행하는 이작가와의 만남(?)에서 받은 싸인이다. 엄청 빠르게 휘갈기더니 순식간에 저렇게 써 주었다. 맨 위에 내 이름은 생략~ 


작가님이 책에서 맨 마지막에 인용한 글은 에릭 홉스봄의 "세상은 저절로 바귀지 않는다"였다.


세상은 저절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면. 최소한, 최소한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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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
김진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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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의 시간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바로 그 5분이라는 시간을 통해 무수한 사람의 마음을 홀려버린 사람이 있다. 전 EBS 지식e 피디였던 김진혁. 그가 뉴스타파에서 '세상을 마주하는 시간-5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애청자/애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뉴스타파는 탐사저널의 특성 상 주제가 꽤 묵직한 편인데, 그런 영상 사이에서 마찬가지로 묵직한 주제를 갖고 있지만 좀 더 쉬어갈 여지를 주는 것이 김진혁의 '5분'이다. 지식채널이 그랬던 것처럼 영상과 음악이 주는 효과는 탁월했다. 하지만 5분 안에 모든 걸 담아내기는 힘든 법!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다. 


SIDE A 생각, 하다

TRACK 01 Good night, Good luck 
TRACK 02 복지국가 스웨덴의 비밀 
TRACK 03 주교 지학순 
TRACK 04 역사를 잊은 민족 
TRACK 05 안녕하십니까? 
TRACK 06 4만 7000원 
TRACK 07 천국의 집 
TRACK 08 꿈의 공장 속 ‘노동자’들 
TRACK 09 다메 

SIDE B 경계, 짓다

TRACK 01 세 개의 ‘국가개조론’ 
TRACK 02 사라진 목소리와 공영방송 
TRACK 03 가난한 이들은 왜 보수적이 되는가 
TRACK 04 썩은 상자와 수평 폭력 
TRACK 05 공평하지 못한 세금의 결과 
TRACK 06 모독 vs. 모독 
TRACK 07 전시작전통제권과 세 명의 대통령 
TRACK 08 부동산 불패 신화와 아이 안 낳는 나라 
TRACK 09 꼰대 vs. 선배 

에필로그_ 주인의 자격


A면과 B면으로 나뉘어진 챕터가 꼭 90년대 '길보드 차트'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카세트 테이프를 연상시킨다. 천천히, 꼼꼼히, 곱씹어 읽기 좋은 주제들이다. 실제로, 아주 천천히 읽었다. 대부분 방송으로 이미 봤던 내용들이다. 그때 받았던 충격과 감동, 그리고 안타까움을 함께 담아 읽어나갔다. 붙여놓은 포스트잍이 책의 옆구리를 가득 채웠다. 책의 전체를 줄곧 관통하는 노동자들의 눈물과 비뚤어지고 왜곡된 역사와 불공정한 세상에 대해서 한숨도 가득 뱉어냈다. 그러니 심호흡도 필요하고 쉬어갈 여지가 있어야 한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다.


공화당은 여당인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

매카시에 동조

민주당은 자신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매카시에 동조

언론은 자신들이 공산주의를 옹호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매카시에 동조

매카시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에 만연한 공포 분위기 -20쪽


저 매카시즘에 지금은 어떤 이름을 넣어야 할까. 과거에는 김대중, 이어서 노무현, 그리고 종북에 친노...

뉴스를 듣다 보면(뉴스를 주로 듣는 편이다) 늘 답답해지기 마련인데, 애청하는 CBS의 한 기자가 친노/반노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을 느꼈다. 친노/반노를 나누는 그 프레임에 갇힌 게 아닐까 갑갑했다. 그걸 원하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이 아닐까 하고. 또 어느 방송에서는 한 변호사가 국회의원 전체 명단을 가지고 검색을 해보았다고 한다.(김어준의 파파이스-였던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랬더니 몇 주 전에는 친노로 분류되다가 다시 반노, 그러다가 또 친노로 분류되는 등 기자가 기사 쓰기 나름으로 카테고리가 계속 바꼈다고 한다. 소위 '보수'라고 분류되는, 그렇지만 전혀 보수스럽지 않은 이들은 북한 없으면 어찌 살려고, 노무현 없이는 어찌 살려고 저리 물타기를 하는가 혀를 차게 된다. 사회에 만연한 이 공포. 그래서 그 이름이 곧 천형이 되는 이 병든 사회. 한숨, 아니 쉴 수가 없다.

 

 

“교회가 사회 문제에 직면했을 때 취해야 할 태도는 무산자에게는 참을성을 설교하고 유산자에게는 너그러움을 찬양하는 일이 아니며 문제를 얼버무리지 않고 그 원인을 똑바로 규명하여 해결점을 정확히 제시하는 데 있다.” -지학순 1921-1993


지학순 주교의 행적을 보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도 함께 떠올랐다. 며칠 전 친구가 보내준 캡쳐본이다.


 


저 글은 작년 연말에 쓴 글인가 보다. 그러니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미국에서 동성 결혼 합헌 결정 이전에도 이미 저런 말씀을 하고 계셨던 거다. 엄지손가락 쭉 치켜들어본다.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책의 메시지를 더 이어보자.

 

문제는 정교분리의 목적을 ‘권력의 종교 간섭 금지’가 아니라 ‘종교의 정치 참여 금지’로 오해할 때 생긴다. 2013년 1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국가기관이 개입한 명백한 불법선겅 책임지라’며 퇴진 시국선언을 하자 중앙일보가 11월 25일자 사설에서 “정교분리를 명시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한 것이 비근한 예다. 이에 대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2월 11일 성명을 통해 “정교분리 원칙을 거론하며 교회의 현실 참여에 대해 일각에서 과도하게 우려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을 매우 폐쇄적이고 협의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찍이 주교회의는 ‘쇄신과 화해’라는 문건을 통해, 민족이 고통당하던 일제강점기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선 신자들을 돕지 못했던 일을 반성한 바 있다. -64쪽

 

당신들이 자랑하는 신의 위대한 사랑이, 당신들이 강조하는 그 원칙으로는 얼마나 편협하고 이중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가.

 

좋아하는 뮤지컬 OST중에 '불공평한 이 세상'이 있다. 노트르담 성당의 콰지모도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부르는 노래인데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 

 

불공평한 이 세상 너무도 다른 운명
신이여 이 불행은 나의 잘못인가요
사랑하고 싸우고 타협한 그 일 조차
너무 먼 나의 삶도 하지만 아름다워요
신은 어디있나요 높은 교회인가요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 곁인가요
가난한 목자들의 초라한 경배보다

 

동방박사의 황금 주님도 사랑하나요
 
얼마 전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는 동성애에 대해서 무척 불편한 감정을 느꼈는데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건 교육 탓이지 싶다. 교회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강조하니까 당연히 문제라고 여겨왔던 게 아닐까. 그래서 질문했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배척하고 등돌리는 그 교회에, 예수님은 계실까? 
친구는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문자를 보내왔다.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인데,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런 고민을 하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런 질문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책들이 필요하다. 고민하게 만들고 대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만드니까.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그중 하나인 파업

하지만 동시에

“위력으로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헌법을 제한하는 하위법 형법 제 314조 ‘업무방해죄’

하지만 파업의 본질은 업무방해  -96쪽

 

발레오만도 파업 참가자 32명에게 ‘26억 4800만원’ 청구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에게 ‘2억 6821만 1152원’ 청구

KEC 노조간부 및 조합원 88명에게 ‘301억원’ 청구(파업일수 14일)

철도 노조에게 민영화 반대 파업 관련 ‘162억원’ 청구

한진중공업 노조에게 ‘158억원’ 청구

 

평범한 노동자들에게는 천문학적인 돈

정말이지, 태어나 듣도 보도 못한 저 돈... 저 무지막지한 액수로 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이고, 끝내는 그들이 목숨을 내던지게 만들었던 손배소.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노동자 파업을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이런 걸로 only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제발이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노동 교육을 학교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하여, 어린이들이 일찍부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과 권리를 체험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 내용은 자유, 평등 같은 추상적인 개념부터 노동조합 만들기, 근로계약서 쓰기, 노사 합의 같은 실질적인 부분까지 모두 포함한다. -105쪽

 

이런 교육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오늘 내년도에 있을 자유학기제에 대비한 교육과정 편성에 대한 임시 회의가 있었다. 특히 집중이수제로 1학년에 몰빵시킨 사회과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무엇보다도 선행해서 노동교육을 해야 한다. 노동자가 대다수인 사회에서 노동자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는 얼마나 불합리한가. 이런 공약을 내세우는 사람을 제발 뽑아주자. 그리고 지지해 주자. 당신도, 나도 노동자다. 

가난한 이들은 정말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를 하는가?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 사례도 많이 소개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는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한귀영 연구위원은 빈곤의 보수화, 계급배반투표 현상을 보다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자료를 보면 “50대 이상에서는 소득에 관계없이 박근혜지지 현상이 나타났지만, 40대 이하에서는 가난할수록 민주당 등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200쪽


손낙구는 “조사 결과 사람들은 이제껏 계급에 충실한 투표를 하고 있었다”면서 “문제는 계급배반투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정치 또는 정당 체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201쪽

 

50대 인구의 막강 비중을 알기 때문에 섣불리 희망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계급배반투표가 문제가 아니라 투표할 이유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 이 사회에 방점을 찍자니 한숨은 더 깊어진다. 계급배반투표와 마찬가지로 20대를 겨냥한 세대갈등도 눈여겨 봄직했다. 우리가 으레 그렇다고 여겨왔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은 사례들을 보여주는 것이 고마웠다. 이런 수정, 교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연대책임의식이 결여된 사회

대학 등록금은 대학생들의 문제

쌀 시장 개방은 농민들의 문제

이동권은 장애인들의 문제

노후는 노인들의 문제

각각의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로 파편화된다.

결국

선거 때가 아니면 사회 구성원들의 문제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지는 국회

이런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도 자기 탓이라고만 생각한다. -293쪽

 

당신이 출세하지 못해서, 당신이 잘나지 못해서, 당신이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런 대접을 받고, 취급을 받는 거라며, 이 사회가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런 프레임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런 사회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사회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런 사회를 바꿔나가야 하는 책임 역시 우리에게 있다. 그게 아니라는 걸 믿고, 그러므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러니까 그 변화의 한걸음을 위해서 '연대'해야 한다. 

 

영화 '소수의견'을 보았다. 영화는 픽션임을 강조하며 시작하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때 그 철거민은 어디에 있는가. 그 철거 현장은 그곳에만 있는가. 국가는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에 책임을 지고 있는가? 사과는 하고 있는가? 과연, 이 모든 것들은 '소수'의 의견인가? 

 

세상을 등지고 살 수 없으니, 우리는 세상을 마주하며 살아간다. 그 세상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눈이 공정하고 정의롭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뜻하기를 소망해 본다. 그 시선에 이 책이, 이 영상들이 한줌의 흙이 될 것이다.

덧글)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250쪽과 252쪽에 따옴표가 탈락되어 있다. 다음 쇄에서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얼른얼른 더 많이 팔려서 널리널리 읽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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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6-3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구입비 100만원 지원받아요. 이 책도 구입해야지요~ 연대해야만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할 수 있겠지요!!

마노아 2015-06-30 23:14   좋아요 0 | URL
지원받았군요! 잘됐어요. 좋은 책은 마땅히 도서관에 꼭 있어야지요. 순오기님의 작은도서관도 이 사회의 한줌 흙이네요. ^^

2015-07-01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01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5-07-01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퇴근 후 `소수의견` 볼려고 예약했어요~ 김진혁 피디 「5분」도 좋을 듯...^^

마노아 2015-07-01 08:39   좋아요 0 | URL
어제 이승환은 극장 대관해서 소수의견 단체관람했는데 저는 똑! 떨어졌어요.
그럴 줄 알고 미리 봤나...ㅎㅎㅎ
5분! 좋습니다. ^^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 - 하나의 지구, 서른 가족, 그리고 1787개의 소유 이야기
피터 멘젤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헝그리 플래닛'과 '칼로리 플래닛'에 대한 호평을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책도 소장하고 있지만, 읽지는 못한 상태에서 그 책들의 모태가 된 이 책을 만났다. 1992년 말에서 1994년 초에 30개국의 평범한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5명의 사진작가들이 꼬박 2년을 바쳐서 만든 이 책은, 작가들이 전 세계 30개국의 평균 가족을 찾아가 일주일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들과 그들의 삶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물건들의 의미와 그것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 나아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소비란 무엇인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헝그리 플래닛은 전 세계 서른 가족이 일주일 동안 소비하는 식품 전체를 보여 주는 작업이었다!)

 

이 사진을 찍고서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따라서 당시에 평균치로 보였던 모습들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옛날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전쟁으로 더 열악해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급작스러운 물질적 풍요를 맛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시하는 지표들은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서 봐야 한다.

 

 

시작은 아프리카 대륙부터였다. 말리의 가난한 진흙마을에 살고 있는 나토모 씨 가족의 모습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살림살이가 너무 소박해서, 아니 너무 초라해서 충격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251달러의 나라에 많은 걸 기대할 순 없지만 식구수보다도 세간이 더 적은 것처럼 보인다. 가진 게 없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물론 없는데, 20세기 말이어도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세계의 텔레비전이다. 20년도 더 지났으니 지금 보면 구형 중의 구형이다. 그렇지만 저 볼록한 TV를 우리집에선 작년까지 사용했다. 뭐, 잘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지만, 사실 잘 나오지 않았으므로(16:9 화면 재현이 되지 않으므로) 바꿨다. TV가 인류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보인달까. 그나저나 역시 TV를 가장 잘 보는 방법은 편안한 쇼파 앞인 건가?

 

아시아의 몽골로 가보자. 집안의 세간 살이를 모두 공개하는 가장 큰 사진을 찍은 장면인데, 몽골의 이동식 천막집 게르는 가장 적은 노동력으로 이 사진을 완성시키게 만든 일등공신으로 보인다. 그냥 천막 한쪽만 걷어냈다. ^^ 아버지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물건이 텔레비전인데, 그 순위답게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2위의 부국이었던 일본의 가장 평범한 가족의 집을 공개하고 있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도 문제 없을 것 같아서 첫번째 사진을 일본으로 골랐다고 한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복닥대는 도쿄에서 한 가족이 가진 물건을 죄다 늘어놓을 만한 공간부터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좁은 집에서 나온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사진에서부터 일본 느낌이 난다.

 

일본 다음은 중국인데 이 사진을 찍던 당시에 유엔 183개국 중 부유한 순위로 149위 였다고 한다. 하하핫...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미국의 평범한 가족이 사는 모습을 공개했을 뿐인데, 확실히 다른 집들에 비해 부티가 났다. 엄마 아빠의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공통적으로 성경이었다. 당시 지표로 선진국 중 꾸준히 교회에 나가는 사람 비중 1위를 차지한 나라 답다. 이렇게 신앙을 중시하는 나라인데... 참 역설적이다.

 

 

이 책에 소개된 가족들은 대체로 웃는 얼굴이었다. 꾸민 웃음이 아니라 정말 화사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묵직해졌다.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없다고 엄마 아빠가 동시에 말했다.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전형적인 저녁 식사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참으로 고단하고 가난한 삶이다.

 

 

이렇게 먹을 게 많은 세상인데 저녁을 늘 굶는다니... 설마 종교적 이유의 단식인 걸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슬란드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인 줄 몰랐다. 뭐 몇 년 전에 크게 휘청이긴 했지만...

이 추운 북국의 나라는 겨울 해가 짧아서 사진 찍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준비 마쳐놓으면 해가 질 시간이니까.

악기를 연주하는 가족이라니, 정말 근사한 걸!

 

 

아이슬란드의 역사를 축약해서 알려주고 있다. 오, 관심 가는 걸!

 

 

세계의 화장실이다. 좌변기라도 있는 곳과 구멍 하나 덜렁 있는 곳들이 동시에 눈길을 잡는다. 쿠웨이트 화장실이 가장 번쩍번쩍 빛났다는 게 최대의 반전이랄까.

이 작품은 그 후 20여 년 뒤 이 나라들의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재취재를 하면 더 의미있을 것 같다.

문득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쓸데없는 물욕으로 갖고 싶은 건 얼마나 많은지... 외적으로만 풍요롭고 내적으로는 빈곤한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는 둘 다 풍요롭기를 원하지만....;;;;

 

이제 헝그리 플래닛과 칼로리 플래닛을 읽어야겠다. 그쪽이 더 자극적일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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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4-03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오스 같은 우리집이 부끄러워지는...ㅠ 재취재해서 책이 나와도 좋겠네요.^^

마노아 2015-04-03 07:01   좋아요 0 | URL
우리집도요.^^;;;;
러시아 편은 온가족 사진을 찍은 직후 아버지가 강도살해 되는 일이 있었는데 참 짠했어요. 그후 뒷이야기도 궁금하고 그래요.
 
윌리엄 터너 엽서집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지음 / 유어마인드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북플에서 '읽고 싶어요'에 체크한 것을 본 친구가 기프티북으로 보내주었다.

우울하던 찰나에 반짝 빛이 되어준 깜짝 선물이다. 북플은 그야말로 요물이고! ㅎㅎ


윌리엄 터너 '엽서집'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실제로 엽서 크기다. 15*10 정도의 크기



사이즈는 엽서 크기로 작지만 종이 재질은 두껍다. 모두 24장의 그림이 실려 있다. 



엽서의 뒷면엔 그림 제목이 영어로 표기되었고 그림을 그린 연도도 표시해 놓았다. 

그야말로 깔끔 그 자체다. 원한다면 편지를 써서 누군가에게 엽서로 보내도 좋다. 당연히 우표를 붙이고~



그림의 실제 크기가 표시되지 않은 것은 살짝 아쉽다. 원본 그림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알면 감상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전시회에서 터너의 그림을 몇 번 보았는데, 내 기억에 그렇게 컸던 것 같지는 않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아이사쿠스와 헤스페리에. 신화의 한대목을 옮긴 듯한데 낯설다.



폐허가 된 틴턴 수도원이다. 음, 12월에 본 '인상파의 고향 노르망디'에서 이 작품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거기서 폐허가 된 수도원 그림이 있었고, 그 장소를 사진으로 담아온 작품이 있었는데, 그림보다 사진이 더 좋았었던 기억이 난다. 근데 그게 터너 그림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그 전시회에 터너 그림이 있었던 건 맞지만...



초판 1쇄 발행이 2015년 1월 22일인데 2쇄 발행이 1월 28일이다.

초특급으로 많이 팔린 것일까, 초판을 부러 조금만 찍었던 것일까? ㅎㅎ


영화 미스터 터너를 보지는 못했는데,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요일 코너에서 김혜리 기자가 이 영화를 소개해 준 적이 있다. 비록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작은 엽서집을 통해 그의 그림을 보는 것으로 약간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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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5-02-1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째 사진의 그림,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고 놀랐어요.
생각보다 크기가 작아서요.
인상깊은 그림이라 그림엽서 사왔답니다.

마노아 2015-02-13 01:53   좋아요 0 | URL
우와, 실물의 감동을 느끼고 오셨군요!
전에 일리야 레핀 등 러시아 작가들의 그림은 엄청 커서 액자 크기에도 화들짝 놀랐었는데 참 대조적이에요.^^

rosa 2015-08-24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 전 영국갔을 때, 가는 곳마다 정말 이 작가의 작품이 많아서(근데 왜 난 첨 들어보는 느낌이었는지..), 하여튼 영국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인가보다.. 했었지요. 그래서 사고 싶다, 사와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었답니다. 마노아님이 좋아하는 작가였나요? ^^

마노아 2015-08-24 22:20   좋아요 0 | URL
작년에 전시회에서 그림 보고는 느낌 있다~ 생각했지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님은 아니에요. 그래도 가끔 들여다 보면 은은하게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