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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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크로스다! 1권도 무척 재밌게 읽었던 터라 2권의 출간이 반갑기만 하다. 지금은 혹시 3권 분량이 연재중일까?

 

과학자 정재승과 미학자 진중권이 같은 주제를 두고서 서로의 시각을 교환했다. 때로 겹치기도 하고 때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 재밌었다. 게다가 이들이 선택한 주제들도 흥미롭다.

 

01. 로또 : 혹시 내게도? 누구나 속으로는 대박을 꿈꾼다
02. 오디션 : 경쟁사회의 공포조차 오락의 대상으로
03. 자살 : 왜 인간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04. 키스 : 천국의 언어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05. 트랜스포머 : 변신, 범블비! 육체를 바꿀 수 없는 인간들의 욕망
06. 라디오 : 주파수를 타고 아날로그 감성은 흐른다
07. 학교짱 : 수컷들의 세계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나
08. 뽀로로 : 애나 어른이나 노는 게 제일 좋아!
09. 육식 : 끊을 수 없는 ‘남의 살’에 대한 갈망
10. UFO : 외계인. 있다? 없다?
11. 낙서 : 끄적임이 보내는 의미 없는 아우성
12. 종말론 : 유한한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론
13. 트위터 : 이 작은 새가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14. 고현정 : 미모보다는 의리, 까칠해도 솔질해야 진짜 미인
15. 케이팝 : 만드는 뮤지션 vs 만들어진 상품
16. 나는 꼼수다 : 이것은 디지털시대의 저잣거리 이야기
17. 레이디 가가 : 도발? 예술? 금기를 가지고 노는 아티스트
18. 아랍의 봄 : 혁명을 이끈 스마트 시대의 대자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기승을 부리는 요즘이다. 아마츄어뿐 아니라 프로들마저도 그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고 시험 당하고 환호 받으며 또 좌절하기도 하였다. 그 포문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열었던 게 '나는 가수다'였다. 프로그램을 엄청 열심히 본 나로서는 이 두 사람의 반응이 참 궁금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의 소산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프로 가수들마저도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이 살벌한 세상... 그리고 그 무대라도 올라가기를 원하는 수많은 루저들의 열망이란...

 

자살에 대한 통계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수치라는 게 너무 높아서 충격적이었다. 오늘을 살아내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고, 내일을 기대할 수가 없어서 출산율은 최저를 기록하는 이 나라의 서러운 현실이 아프다. 2005년 무렵까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던 일본이 매년 3000억 원을 투자해 자살의 사망 원인 비율을 19.7%로 줄여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투자 없이 어떤 결과를 맺을까. 제발 건물에만 투자하지 말고 사람에게 투자하자. 예술 직종 사람들은 88만원 세대는커녕 55만원 세대를 살고 있다는 선대인의 강의를 좀 전에 들어서 더 가슴이 아프다. 노동자가 안전하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그리하여 많은 국민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근데 새 정부가 출범하자 마음은 더 무겁다.(빨간 한복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거 대체 누구 아이디어야? ㅜ.ㅜ)

 

 

 

자살 부분에서 나왔던 그림의 이미지가 무척 쓸쓸하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여성이 남성보다 두세배 많지만, 성공률은 남성이 네배나 높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정재승 씨의 관심처럼 성호르몬에 관련된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성장 과정의 차이일까? 나도 자못 궁금하다.

 

인류의 역사에는 아주 유명한 '키스'가 많이 있다. 유다의 키스가 일단 먼저 생각나고, 클림트의 이 유명한 그림도 당연히 떠오른다.

 

 

 

책에는 재밌는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키스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고대 핀란드 사람들은 키스를 매우 불결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여겨서 심지어 발가벗고 섹스를 하는 동안에도 키스만은 하지 않았다. 지금도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는 콧수염이 있는 남자가 습관적으로 사람들에게 키스를 퍼부으면 폭력 행위로 간주해 체포한다. 또 믿지 못하겠지만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 시에서는 아직도 남편이 아내에게 일요일에 키스하는 것을 불법으로 여긴다. 잡혀가는 사람이 실제로 있을까 싶지만 사실이다. -74쪽

 

세상에나... 요일 따져가며 키스를 해야 하다니, 당황스럽다.

독일 보훔에 있는 루르 대학교의 오누르 군투르쿤 교수의 연구도 흥미로웠다. 우연히 공항에서 비행기를 못 타게 된 교수는 유난히 이별하는 사람이 많은 그 공간에서 키스하는 사람들의 얼굴 각도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커플들을 관찰한 결과는 놀라웠다.

 

결과는 매우 명료했다. 2/3 정도 되는 사람들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키스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이며, 태어나기 전 며칠 동안 엄마의 뱃속에서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그 자세가 본능적으로 좀더 편하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두 연인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키스를 하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프의 작품 <키스>가 우리에게 그토록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리라. -78쪽

 

 

왼손잡이들의 키스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둘 모두 왼손잡이라면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두 필자 중 진중권 씨를 더 기대했지만, 내가 따로 글귀를 적은 부분들은 정재승 씨 글이 더 많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대단한 말빨은 진중건 씨가 압권이다. 앞서 자살 파트에서는 이렇게 얘기했다.

 

 

서구에서 이타적 자살의 예는 보기 드물다. 하지만 기독교 문명 안에서도 ‘어떤’ 자살은 과거에 사회적 상찬의 대상이 되곤 했다. 동양의 열사에 해당하는 것이 서양의 순교자다. ‘순교’란 사실상 자살에 해당하나 순교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위해 죽는 것은 씻지 못할 죄에 해당해도 신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최고의 덕목이라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신처럼 이기적인 분도 없다. -57쪽

 

 

아, 어쩐지 무척 공감이 가서 말이다...

 

뽀통령을 모시는 이들이라고 그분을 뽀느님으로 섬기기를 꺼리지 않고, 뽀느님을 섬기는 이들이라고 그분을 뽀통령으로 모시는 데 이견을 달지는 않을 것이다. 천년왕국이 도래하면 어차피 하느님이 세속의 군주들을 제치고 직접 이 땅을 통치하신다지 않는가. 한마디로 뽀로로는 제정일치의 수장, 단군왕검 이후 최초로 한반도에서 다시 정치적 군장과 종교적 수장을 겸하신 분이다. 이러다가 민족의 토템이 곰에서 펭귄으로 바뀌는 사태가 일어날지 모르겠다. -131쪽

 

푸하하핫! 제정일치라는 단어를 이렇게 만날 줄이야! 나중에 단군 이야기 할 때 꼭 써먹고 말테다. 그나저나 뽀로로 파트를 무척 재밌게 읽었는데, 정작 나는 뽀로로 애니는 본 적이 없다. 울 언니는 뽀로로가 펭귄이라는 것을 내가 말해서 알았단다. 어휴, 난 그래도 펭귄까지는 알았는데...^^

그밖에 트랜스포머 얘기하면서 국회의사당의 돔이 열리며 로봇태권V가 출동한다는 얘기를 꺼낼 때도 재밌었다. 준비는 되어 있는데 다만 '여야 합의'가 되어 있질 않아 출동을 못한다는 이 날카로운 지적!!

 

뮤지션은 음악의 생산자이지 생산품이 아니다-라는 지적도 귀담아들어야겠다. 스스로를 생산품으로 팔지 못해 안달인 이들도 물론 많지만, 진정 음악으로 말하고 음악으로 살아나는 이들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

 

UFO의 최초 기록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성경에서도 비슷하게 추정되는 기록도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UFO를 본 적이 있다. 모처럼 날 밝을 때에 하교를 하고 있었는데 후문을 나서다가 하늘에서 반짝 하고 빛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밤이었으면 별이라고 여겼겠지만, 그때는 낮이었고 무척 밝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진 게 더 놀라웠다. 그랬는데 그날 저녁 9시 뉴스에 미확인비행물체가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나온 게 아닌가. 내가 본 그것이었다. 그게 정말 UFO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때의 경험이 재밌었다. 이렇게 드넓은 우주인데, 지구 이외에 생명체가 없다고 한다면 그게 더 안 믿기는 게 아닐까? 우리가 잘 모르지만 어딘가에 분명 '누군가' 있을 것만 같다.

 

광해군 때에도 이런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 눈이 번쩍 했다. 강경옥 작가님의 '설희'가 바로 거기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무려 4백년 이상을 죽지도 않고 영원히 젊은 채 살고 있는 주인공 설희가 바로 그 때에 외계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설희 9권이 나왔다는 알림이 왔다. 음하하핫, 곧 주문해 주겠어!!!

 

 

 

낙서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재밌었던 것은 어느 국제 회담 장소에서 발견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낙서였다. 여러 전문가들은 총리에 대한 입방아를 찧었는데, 알고 보니 그 낙서는 옆자리에 앉았던 빌 게이츠의 것이었다고... ^^

 

 

 

 

낙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도 많지만 낙서 그 자체로 공해일 때도 많다. 예술과 민폐의 경계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달까... ^^

 

 

 

 

 

요새 트위터에 무척 재미를 들이고 있는데, 트위터의 로고를 늘 보면서도 이것이 '새'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나서야 자각했다. 나의 무심함이란...ㅜ.ㅜ

 

140자라는 짧다면 아주 짧은 메시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이 서비스는 무척 흥미롭다. 여러 팔로워들의 글들을 보면서 정보도 얻고, 피식 웃기도 하고, 때로 눈살도 찌푸리게 된다. 엄청나게 쏟아지고 또 빠르게 쌓이는 메시지들에 숨을 헐떡거리게도 되는데, 이제는 바쁘면 바쁜 대로 흘려 보내면서 즐기는 편이 되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 편리한 매체가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의 가입자가 꽤 많구나 싶어 놀랐다. 나로서는 페이스북을 며칠 간 쓰다가 그 어마어마한 인맥 유통 라인에 화들짝 놀라 얼른 탈퇴해 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느 분이 쓰셨듯이 페이스북의 유별난 소속 드러내기는 필요 이상의 자괴감을 사람에게 안겨주는 부작용이 있다. 그런 건 제발 사양하고 싶다.

 

 

 

라면과 육식 이야기도 재밌었다. 영원한 서민 음식 라면에게는 애증의 관심을, 그리고 포기하기 힘든 육식에도 역시 애증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엔 집에서 모처럼 식구들이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 책의 저자 진중권 씨와 정재승 씨도 육식에 대해서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하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의 인물을 뽑는 타임지의 전통을 소개하면서 들어준 사례가 재밌다.

 

 

2006년 <타임>은 “올해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온라인 백과사전, 영상파일 공유 사이트, 블로그 사이트를 비롯한 개인 미디어의 확산”이라며, 이 영역에서 활약한 ‘당신’을 ‘올해의 인물’로 뽑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타임>에서 밝히는 선정 사유. “‘당신’은 월드와이드웹을 파고들어 새로운 디지털 민주주의의 틀을 세우고, 대가 없이 그저 좋아서 하는 일임에도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신‘을 우리의 정부는 탄압한다.

2008년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올해의 인물’을 뽑는 인터넷 투표를 한 적이 있다. 투표 30분 만에 워스트 1위를 달린 것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베스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투표는 중단되고 선정 방식이 바뀌더니, 결과도 수정되었다. 워스트 강병규, 베스트 김연아. 각하가 ‘당신’들한테 욕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368쪽

 

누구 말빨일 것 같은가? 바로 떠오르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이다. ^^

 

책은 마지막까지도 재밌었다. 후기를 쓰면서도 역시 '크로스'를 해버렸다. 정재승 씨는 진중권 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진중권 씨는 정재승 씨에 대해서 몇 마디를 남겼다. 서로 어떤 인연으로 알게 되었는지, 상대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쉬운 점을 남겼다. 정재승 씨는 진중권 씨가 자칭 '조각 미남'이라며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의 그 고급스런 미학적 평가를 본인에게는 내리지 못한다고.... 진중권 씨 역시 질 수 없다. 정재승에 대한 칭찬이 이어짇가 마지막에 외모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자신만큼의 미모만 되었어도 사회적 영향력이 더 컸을 거라고... 이 글을 쓸 때 여러 트위터리안들이 그를 '미학적으로 디스'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는데 성공한 셈으로 보인다. 이것도 편집과 연출의 한 부분일 테지만 유쾌했다.

 

몇몇 오타들도 있었다.

 

17

사실 ‘로또’란 ‘확률상 당첨자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그게 ‘나’일 확률은 거의 없는 ‘심심풀이 도박’이다. 희망 없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의 탈출구’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탈출 확률이 낮은가를 보여주는 절망적인 도박이 바로 로또 아닌가?

(나는 수정했는데, 본문에서는 작은따옴표 닫는 게 하나 부족하다. )

40

강호에 묻힌 제야의 고수 >>>재야의 고수

우리가 ‘나는 가수다’에 열광한 모습을 그 때문이다. >>> 모습은

70

우리이 받는 돈은 >>> 우리가

94

오토봇의 변형은 과학적, 기술적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행여 관객이 지각이라도 할세라 후다닥 돌아가는 고속이 CG에 힘입어 얼렁뚱땅 이루어진다. >>> 지각? 지루가 아니고?

 

책이 워낙 재밌었기 때문에 약간의 옥의 티는 크게 문제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제 크로스 3을 기다릴 차례다. 기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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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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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쪽

진로상담을 하다보면 학생들이 지닌 목표 또는 욕망의 상당부분은 부모에게서 빌려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도 서울대에 가고도 남을 실력이 있었다. 그런데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목표를 이룰 수가 없었다. 너는 할 수 있다. 공부를 위해서라면 너에게 무슨 지원이든 아끼지 않겠다.” 많은 학생들이 이런 장탄식을 듣고 자라면서 은연중에 부모의 욕망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너는 하나님께 바쳐진 아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너를 두고 서원 기도를 했으니 네 진로는 이미 결정된 거라고 강요받았다. 이 지독한 세뇌교육은 의문을 품지 못하게 했고, 의문을 가졌더라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신학대학을 졸업했고, 아직도 신대원을 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고 있다. 물론 그렇게 성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그것이 내 서원이 아니고, 내 소원도 아니고 내 욕망도 아닌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부모의 '욕망' 아닌가? 요새 내 가슴에 울리는 한마디는 이거다. 나를 바꿀 수 없으면 환경을 바꿔라! 엄마 그늘 아래서는 이런 강요된 욕망과 소명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인 나의 현실!

 

 

52쪽

위기가 절정에 달해 모두가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만장일치의 폭력이 시작됩니다. 평소에는 의견이 달랐던 사람들도 누군가를 죽여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는 데 쉽게 합의합니다. 마녀사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가뭄이 극심한 상황에서 기우제를 지내며 왕의 목을 치기도 합니다. 이같은 만장일치적 폭력에는 희생자의 제자나 신하까지 배신을 통해 묵시적으로 가담합니다. 예수를 죽이는 현장에서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그런 예입니다. (...) 이런 폭발적인 폭력과 희생을 통해 사회는 질서와 평화를 되찾습니다. 희생양이 진짜로 페스트를 치유하거나 자연재해를 물리치지는 못하지만, 개인 사이에 극대화되었던 불화를 정리함으로써 위기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에 대해 신성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한 개인을 의심하여 살해하고 추방한 사람들이 이제 그 억울한 개인에 대해 과도한 숭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제 신화화의 과정을 거쳐서 신적인 존재로 부활합니다. 이게 바로 서양의 여러 신화에서 시작되어 예수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희생양 메커니즘’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신화화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장일치의 폭력. 무섭다. 마녀사냥이라고 달리 부를 수도 있는 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다이애나비가 떠오른다. 다이애나비가 죽었을 때 잘 울지 않던 영국 사람들이 목놓아 울고서 묵은 스트레스를 풀었다는 기사를 보았더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단지 슬퍼하고서 스트레스를 풀 사안이 아니었지만, 희생양 매커니즘을 보며 섬뜩함을 느꼈다.

 

57쪽

신문을 보든, 책을 읽든, 학벌주의를 옹호하든 비판하든, 대부분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단지 몇 개의 대학만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어서 누리는 것은 별게 없을지 모르지만, 그 밖에 있어서 누리지 못하는 것은 너무 많습니다. 학벌은 뜨거운 감자입니다. 누구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해법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골칫거리입니다. 모든 사람의 모방욕망이 집중되는 핵이기 때문에 그걸 쟁취하기 위한 경쟁과 그에 따른 상처도 엄청납니다. 학벌사회에서 만들어진 과도한 자신감과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모방욕망과 과도한 경쟁 속에서 우리 내면에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 때려죽이고 싶다는 분노가 자리잡습니다.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신병동으로 변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벌은 일종의 폭약 덩어리입니다. 어떤 계기로든 이 폭약에 불이 붙으면 무엇이라도 태울 수 있습니다.

일베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은 기본적으로 '분노'를 깔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청소년층이라면 지나친 학벌주의로 인한 폐해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또 거기 이용자들 중에는 아주 고학력에 잘 나가는 사람도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쪽으로 보든 거대한 정신병동이라는 말에 공감간다. 다들 많이 아프다.

 

89쪽

중년 남성의 내면에 남아 있는 소년은 ‘지랄총량의 법칙’으로 알려진 ‘지랄’이기도 하고, ‘에너지’이기도 하며, ‘청춘’이기도 하고,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드’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색(色)’, 즉 욕망의 영역에 속한 힘이죠.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소년은 남성의 내면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춥니다. 조물주의 설계에 따르자면 바로 그 즈음에 가장 자연스럽게 분출되어야 하는 에너지입니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그랬던 것처럼 주로는 섹스를 통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욕망을 찍어누른 사람만이 성공이란 달콤한 열매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통해 분출되어야 할 에너지는 엉뚱하게도 도서관, 고시원, 영어학원에서 대부분 소비됩니다. 그런 에너지 소비가 ‘건강한’ 것으로 권장되기도 합니다.

남녀 불문하고 다들 비슷한 형편이라 어차피 연애할 상대방도 시간도 공간도 찾기 어렵습니다. 취직, 고시, 유학 준비에 몰두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더욱 ‘계’에 속한 인간으로 변해갑니다. 그런 극심한 경쟁을 거쳐서 겨우 결혼할 여유를 갖게 되었을 때, 상대방을 고르는 기준도 ‘색’보다는 ‘계’에 속한 것들입니다.

자연스럽게 성검사가 떠올랐다. 가정도 있고, 잘 나가는 검사가 대체 왜 피의자와 그런 짓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이유를, 김두식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도록 설명했다. 이래서 네덜란드는 모든 음성적인 것들을 양성화시킨 것일까? 지하경제의 활성화가 아니라 양성화로? 불법 성매매 문제도 과연 단속이나 음성화로 답이 있을까 싶다.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하고 본능적인데, 이성으로 누르고 덮고 감출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혹은 그렇게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해야 면이 선다는 것일까.

 

105쪽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차가운 진실입니다. 그걸 알면 세상이 스산하게 느껴지죠. 그런데 그 진실이 주는 자유가 있습니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반응에 일일이 신경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승환이 곧잘 얘기하던 '가르마 이론'이 있다. 가르마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꾸면 본인은 어색해서 죽을라 하지만, 남들은 아무도 못 알아본다는 것으로, 곧 세상은 너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관심받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기보다 그 속에서 얻는 자유로움을 누린다면, 그것도 참 괜찮은 셈법 아닌가. 착한 아이 콤플렉스 따위는 버려야 한다고 자꾸 생각하게 하는 요즘이다.

 

240쪽

악의 평범성, 진부함을 이해하지 않고 히틀러만 악마라고 생각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이 만들어 유지하고 있는 수많은 악마적 씨스템의 가면을 벗겨낼 수 없습니다.

언젠가 무슨 심리 테스트 비슷한 질문지에서 본 일이 있다. 여러 사람의 리스트를 두고서 하나씩 하나씩 배제했더니 결국 남는 사람이 히틀러였다는 것. 앞에서 어떤 하자사항이 있어서 제끼고 제꼈는데, 가장 평범하고 문제 없다고 여긴 인물이 히틀러였다는 사실에 엄청 놀랐었다. 악의 평범성과 진부함. 우리같은 소시민의 모습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어린아이들조차도 '무지'를 핑계로 얼마나 사악하고 무서워질 수 있는지도 생각하게 된다. 역시 인간은 참으로 불완전한 존재다. 성선설, 그거 믿을 수 있나?

 

247쪽

마지막 순간까지 엉터리 사법씨스템에 충성하는 사냥꾼들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공통점은 바로 ‘어떤 경우에도 법과 질서는 지켜져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출전도 찾을 수 없는 “악법도 법”이라거나 “나쁜 법도 무법보다는 잣다”는 말들은 오랜 세월 이런 믿음을 대변해왔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그런 믿음을 갖도록 교육받았습니다. 그러나 규범에 대한 과도한 신뢰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한 싸이코패스 못지않게 위험합니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이렇지 않았나. 그가 믿는 법의 질서 안에서 장발장의 헌신과 인류애 등은 결코 소화를 시킬 수가 없었다. 자신의 신념과 부딪히는 것을 감당할 수 없던 그는 제 목숨을 버리면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을 거부했다. 영화 '26년'에서 광주 진압군 출신 경호인 역시 그랬다. 규범에 대한 과도한 신뢰의 무서움을 생각한다. 짱돌을 들어야 할 때 혹시 촛불만 들었던 것은 아닐까 불안한 생각마저도 든다.

 

260쪽

길거리 범죄가 보여주는 외형상의 폭력성 때문에 사람들은 화이트칼라 범죄보다 길거리 범죄를 훨씬 흉악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버스에서 10만원을 소매치기한 절도범은 구속되고 수백억을 빼돌린 대기업 회장은 불구속되어도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수사기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직폭력배가 상대방 조직의 결혼식장에 난입해 칼부림을 벌이면, 검찰이나 경찰은 붙잡힌 조직원들이 “보스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아무리 부인해도 어떻게든 조각을 맞추어 보스를 공모공동정범으로 엮어넣습니다. 그런데 대기업 범죄에서 넘버투인 고용사장이 “모두 내 책임으로 이루어졌고, 회장님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 그러시냐”고 고개를 끄덕이며 넘버투만 잡아넣습니다. 회장님을 잘 보호한 넘버투는 잠깐 징역살이를 마치고 나와 기업에 화려하게 복귀합니다.

 

화이트칼라 범죄, 우리나라에서 지나치게 가볍게 다뤄지는 것 같아 갑갑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자본주의의 최극단을 달리는 미국에서도 그 자본주의의 질서를 헤치는 자들에 대한 평가는 엄정한데, 어째 미국이라면 뭐든 못 배워서 안달인 우리나라에서 그런 법은 안 배우나 모르겠다.

 

272쪽

근본주의 기독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성서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목사님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의심, 동성애가 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예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의심이 기독교 신앙과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1)만약 이런 의심 중 한가지라도 사실이라면, 즉 성서에 오류가 있거나, 목사님에게 잘못이 있거나, 동성애가 죄가 아니거나, 예수 외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면, 2)성서는 더 이상 진리가 아니고, 3)성서가 진리가 아니라면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으며, 4)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원도 있을 수 없고, 5)구원이 없다면 나는 곧 지옥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의심이 곧 지옥행 특급열차라는 논리체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조금의 의심이라도 품으면, 그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고,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지옥에 가야 합니다. 언제나 결론은 지옥입니다.

 

내가 이런 환경에서 줄곧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판단하고, 그랬기 때문에 믿어야 하고, 믿겨지지 않는 상황이 오면 힘들어 하는 악순환의 고리. 그 끝엔 무시무시한 지옥이 있기 때문에 나를 다시 다그치게 만드는 상황들. 이 책은 이 부분에서 나를 가장 열광하게 만들었다. 뭔가 답답한 와중에 한줄기 빛같은 느낌. 동 저자의 다른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도 이 대목이다.

 

274쪽

이런 단순한 프레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작은 불행을 겪어도 우울, 불안, 편집증, 공황상태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든 불행은 내 잘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은 근본주의 교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의심할 줄 모르는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불안의 노예가 되어 이미 충분한 벌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근본주의 기독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분명히 다른 신앙의 길도 있습니다. 성서의 규범이 갖는 역사적 한계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받아들이고도 충분히 좋은 기독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근본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도 어차피 매일 의심하는 삶을 삽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서의 무오류성을 의심하면 기독교인이 아니고 기독교인이 아니면 지옥 가고 이땅에서 불행을 겪는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런 의심을 드러내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 두려움을 걷어내고 의심을 솔직히 나누는 공동체가 오히려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근본주의는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결국은 불행입니다.

나를 반성해 보는 것과 이 책에서 지적한 프레임에 갇힌 사람의 불안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두려움을 걷어내고 의심을 솔직히 나누는 것이 더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옳다. 아, 그런데 이 부분을 보고 나니 다시금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생각이 꼬리표처럼 따라온다. 의혹이 있다면 걷어내고 안심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나. 결과가 뒤집힐지 안 뒤집힐지는 모를 일이고, 그것보다 의혹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인데 말이다.

 

301쪽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이웃과 나누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개인, 사냥꾼의 광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 들이죠. 그런 개인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합니다.

마무리에서 위로를 얻는다. 욕망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작은 연대의 싹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을 견딜 만하게 해줄거라는 것까지도. 여기저기서 '힐링'을 외친다. 힐링이 너무너무 필요할 만큼 아픈 세상에서 살고 있다. 무엇이든 힐링이 될 수 있다면, 책은 그 중에서도 참 괜찮은 힐링 도우미다. '욕망해도 괜찮아' 제목도 마음에 든다. 사실 '욕만 해도 괜찮아'로 읽고 싶을 만큼 삐뚤어진 요즘이지만, 그런 것조차도 괜찮다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자가 힐링에 적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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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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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강자 편을 든다는 뜻 아닌가. 똑같은 룰로 링에서 싸우면 당연히 힘센 놈이 이긴다. 그 룰이라는 것도 힘센 놈들이 만들지 않았나.

나는 중립, 균형을 찾기보다 편파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겠다. 내가 이런다고 약자들이 이기지도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을 계속 던질 것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그래서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말이다. 나는 17살 주진우다. -7쪽

 

'나는 꼽사리다'의 오프닝은 "세상이 바뀌면 없어질 방송, 99%를 위한 편파방송"이라고 나온다. 99%를 위한 편파방송, 마음에 든다. 1%의 소수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1%의 특권층을 위한 방송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니까. 주진우 기자의 말대로 세상이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건 비겁한 일이다. 명백한 '악'을 악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결국 선을 져버리겠다는 말이다. 그거 비겁한 것 맞다. 단테는 이렇게 얘기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예비 되어 있다

그래서 여당도 싫고 야당도 싫다면서 투표하지 않는 인간들이 참으로 싫다. 어느 쪽이든 선택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은 채 꼼꼼히 뜯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이 부당한 특권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독립을 소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달려든 거다. 검찰은 정권의 개가 되고 싶었다. 개 노릇 그만해도 된다니까 안 예뻐한다고 물어뜯은 거다. -43쪽

 

오늘날의 검찰이라면 조선 시대 사헌부 쯤 되겠다. 혹시라도 청탁에 휘말릴까 봐,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했다던 고고함을 오늘날의 검찰은 갖고 있을까. 특혜는 누리면서 명예는 내팽개치고, 온갖 추문에 휘말린 이 검찰, 그러니 개소리 듣는다고 억울할 수 있을까. 억울한 누군가, 제발 그 안에서 물 좀 갈아치우시라. 내부에서부터 자정 좀 해보시라. 부탁이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벌이고 재벌의 가장 큰 리스크는 총수다. 총수가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처리하는 데 회사는 모든 역량을 퍼부어야 한다. 총수는 기업의 엑스맨이다. -79쪽

 

총수의 범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총역량을 동원하는 거대 기업의 모습이라니, 부끄럽다. 국정원 직원이 의혹대로 정말 댓글 알바에 동원된 거라면, 그 역시 얼굴을 못 들만큼 부끄럽다. 내부고발자를 내치고 처벌하고 매장시키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검은 것을 검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로 자꾸 망가져가는 게 아닐까. 세상은 과연 더 나은 문명세계로, 진보의 땅으로 갈 수 있는가?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자기들이 잘해서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고, 국가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싼 이자로 돈 빌려주고, 세금 탕감해주고, 독점 주고, 부동산 투기 눈감아주는 특권이 재벌 성공의 핵심이었다. 삼성이 부동산 투기, 사카린 밀수 등이 없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수입차 규제가 없었다면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재벌의 성공에는 국민들의 희생이 있다. 그런데 이익공유제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오만하고 뻔뻔하다. 이게 천재 경영이다. -80쪽

 

박정희 신화를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국민들이 노력했다. 말도 안 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면서 죽도록 일해서 일궈낸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이다. 당신들이 흘린 땀이다. 그 땀의 열매를 제발 인정해 주시라. 백성이 되지 말고 국민이 되시라. 당신의 자손 역시 백성 아닌 국민이 될 수 있도록.

 

깔때기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표현할 방법을 찾다 떠오른 말이다. 설교를 듣다가 언제쯤 돈 얘기 하겠다 생각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헌금 얘기가 나온다.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든 어김없이 이 깔때기가 들어온다. 천국에 가려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정봉주보다 더 자주 들어온다. 그러니 깔때기의 원조는 조용기 목사다. 막상막하로는 오직 조중동 깔때기가 있다. 이들은 어떤 사안이든 나쁜 일이 생기면 북한 때문이다. 아니면 DJ나 노무현 탓이든지. 조중동은 북한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나라처럼 돈을 뜯는 십일조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 “모든 버는 돈의 십일조, 월급의 십일조를 내라. 그래야 천국 간다.” 이건 성서에 있는 게 아니라 한국 목사들이 개발한 수익 모델이다. 돈을 내라고 이렇게 깔때기를 들이대는 목사도 전 세계에 없다. 조용기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의 대형화·금권화·만능화의 출발점이다. 프랜차이즈 분점 교회를 만들어 비디오를 보면서 ‘아멘’ 하는 교회가 다른 나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114쪽

 

난 심지어 이미 죽은 사람을 헌금 더 내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혼을 올려보내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이번 정권에서 농협 해킹도 천안함도 모두 북한 소행이라고 했다. 세상에, 북한은 못하는 게 없다. 안 해본 게 없다는 가카보다 더 대단하다. 정말 북한 없었으면 조중동은 뭘 가지고 기사를 쓸까. 엄마는 방학을 하자마자 어김 없이 또 기도원 다녀오라고 압박을 하신다. 그동안 오산리 기도원을 다녀오곤 했는데, 이제 도저히 못가겠다. 가면 내내 듣는 설교가 조용기 목사님 찬양이다. 한국 교회 어쩌다 이모양이 되었누....

 

지하철에서 조선일보를 보는 시민을 보면 안쓰럽다. 조선일보에는 지하철을 타는 서민을 위한 기사는 없다. 조선일보는 친일파·독재 세력·수구·재벌의 기득권만을 대변하려는 것 같다. 어떤 사안이라도 그들을 위한 깔때기 기사가 나온다. -151쪽

 

저소득층일수록, 저학력일수록 보수쪽에 표를 준다고 했던 선거 결과가 떠오른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에 병아리 눈물만큼 위로가 되었을 뿐. 역시 국어 교육이 절실하다. 우리 글의 독해부터 일단...ㅜ.ㅜ

 

이들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돈 뺏기는 거다. 그래서 난 5백 원이라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당하게 쌓은 부에 대해서는 뭐든지 해서 추징해야 된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욕먹는 것, 칼을 씌워 광화문 앞에서 석고대죄시키는 것보다 5만 원을 뺏으면 더 슬퍼할 거다. 명예라는 건 애초에 없어서 부끄러운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부당하게 얻은 돈을 다 뺏어야 한다. -203쪽

 

뻔뻔하기로 치면 대한민국 최고라 할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을 향해 비난을 던지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추징금을 회수할라치면 몸서리치게 놀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할 것이다. 일년도 안 남았던가. 추징금 징수 만료일이. 무슨 법이 이따우지. 하아, 한숨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겨놓은 재산이 10조 원가량 된다는 부분은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중 취득하거나 강탈하여 정수장학회, 영남대, 육영재단 등을 남겼다. 박근혜 의원은 세 재단의 이사장을 지냈다. 전국에서 캠퍼스가 가장 큰 대구의 영남대학교도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재산이다. ‘교주’ 박 대통령이 출연한 돈은 ‘0원’이다. 박근혜 전 이사장이 출연한 돈도 ‘0원’이었다. -260쪽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매섭게 몰아붙인 것은 노엽고, 박근혜가 오늘날 300억에 해당하는 6억 원의 돈을 받은 것은 괜찮으신 어르신들, 대체 그 셈법은 왜 그런가요?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의의를 찾았다.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광복 후 64년 세월이 필요했다. 8년 동안 학자 150여 명이 편찬에 참여했다. 먼저 문헌자료 3천여 종에서 인물정보 250만 건을 취합했다. 그리고 20여 개 전문분과 심의와 편찬위원회의 50여 차례에 걸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친일 인사 4389명을 수록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편찬위원들에게 “우리 할아버지를 명단에 올린다는 생각으로 선정과 서술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감수에 참여한 한 교수는 “고증에 고증을 거듭했다. 친일파가 사전에 빠질 수는 있지만 친일 행적이 없는 사람이 올라가거나 내용이 틀린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265쪽

 

친일파가 다시 살아돌아올 것 같아 두렵다. 이미 시작된 것 같기도 해서 떨린다.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이렇게 거꾸로 가는가.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두환보다도, 박정희보다도 더 밉고 더 싫은 것은 이승만이다. 반민특위의 좌절은 곧 대한민국의 좌절이다.

 

호남의 정서는 지역적·패권적 지역주의가 아니라 저항에 가까웠다. 특정 지역에서 20년 넘게 한 사람에게 90% 넘는 몰표를 던졌다는 것은 지역정치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한화갑 전 대표는 “표가 적은 지역은 지역주의를 조장해서 대결하면 무조건 불리하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DJ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가”라고 말했다.

DJ에 대한 가장 흔한 비방 중의 하나는 그가 대통령병 환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자리를 지키기 위해 18년간 독재한 박정희 전대통령과 12년간 독재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 이러한 비난은 없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91쪽

 

빨갱이 취급 받으며 살아온 그 서러운 시간을 등에 업고 묵묵히 표를 던져준 호남인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한주였다. 여행을 가더라도 전라도로, 농산물도 전라도 것을 사겠다는 어느 네티즌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문득, 전주 사는 친구가 놀러오라고 아우성이던 게 떠올랐다. 전주, 다녀올까?

 

독립유공자 유족 6천여 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가 넘고, 봉급 생활자는 10% 남짓이다. 중졸 이하 학력이 55%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광복을 맞은 조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죄가 되고, 자자손손 불행으로 이어질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친일파들은 권력을 유지하면서 자기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독립투사와 그 가족들을 ‘빨갱이’로 낙인 찍고 못살게 굴었다. -299쪽

 

이런 나라에서, 다시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나라를 위해서 헌신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바로잡아야 한다. 제발, 이제라도....

 

주진우의 주기자를 읽은 지도 제법 지났는데, 해 넘기기 전에 리뷰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기억을 더듬어 본다. 무척 뜨겁게 읽었더랬다. 나꼼수를 들을 때도 그랬다. 대선이 끝나고 많은 이들이 이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세상에, 대가도 없이 바른 말 하며 싸워온 언론인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부끄럽고, 슬프다. 동료 시사인 기자들은 묵묵히 출근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속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주기자는 다시 새로운 기사를 준비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폭군 임금을 향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선비가 조선의 역사 내내 있어 왔다. 그런 역할들을 주진우나 이상호 같은 이런 기자들이 지금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선이 끝난 다음 날, 멘붕이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뉴스타파에 정기 후원 회원 가입을 한 것이다. 언론이 바로 살지 않으면 이 나라에 미래란 없을 것이므로.

 

정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는 일은 무척 피곤하다. 하지만 정치가 일상이고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앞장 서서 싸우고 파헤치는 사람도 있는데, 그 기록을 읽는 것조차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고맙습니다. 바른 언론인들, 바른 말 하시는 모든 분들께.

 

덧)

33쪽 내가 우리나라에게 제일 똑똑한데 >>> 우리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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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과 함께 한 시사부흥대성회
보수를 팝니다 -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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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이 대한민국 보수를 파고들었다. 깊이, 아주 깊이! 제목은 몹시 중의적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히트 상품 보수! 건국 이래 거의 대부분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한 보수를 판다는 의미도 되는 거니까. 실제로 그랬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정말 '보수'인가는 접어두더라도, 일단 보수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이들은 천하무적이었다. 그들은 '빨갱이'라는 창을 휘두르며 보수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재단하고 역사를 난도질해 왔다. 그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지닌 보수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이 우리에겐 반드시 필요하다.

 

김용민은 대한민국의 보수를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모태 보수, 기회주의 보수, 그리고 무지몽매 보수! 이중 모태 보수는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아쉬울 게 없이 자라온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의미한다. 새누리당의 박근혜와 정몽준을 떠올리면 되겠다. 기회주의 보수는 대체로 보수와 다른 길, 혹은 반대편 길을 걷다가 어떤 계기로 급작스럽게 보수로 돌아선 사람을 가리킨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재오, 김문수도 모두 이 자리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무지몽매 보수는 흔히 '까스통 할배'라고 지칭되는 부류들이다. 보수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위에 속하고 언제나 보수에게 착취당하지만 보수에게 마음껏 이용당하는 안타까운 이들이다.

 

김용민은 이들을 구분하기 쉽게 분류해 두고 이들의 속성을 또 쉽고 자세히 설명해 준다. 여유롭지만 나약한 모태 보수, 끈질기지만 조급한 기회주의 보수로 말이다. 이들의 뿌리와 성향을 알고 나면 이들의 행보가 쉽게 설명된다. 현실 정치인들이 모델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무척 극적이다.

 

보수를 셋으로 나누었지만 사실 하나가 더 있었다. 굳이 저 범주와 함께 나누지 않은 까닭은 마지막에 설명하는 자본가 보수가 보수 위의 보수로 군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 종류의 보수 모두의 배경에 있으면서 심지어 보수뿐 아니라 진보 진영에까지 장악력을 가졌다. 이들 자본가 보수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서 가장 몸이 달아 있는 부류는 당연히 기회주의 보수다. 그러니 대한민국 역사 속의 보수 정부는 자본가 보수를 배경으로 한 기회주의 보수의 합작품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자본가 보수를 생각하니 이제 종방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 '추적자'의 박근형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경제를 한손으로 쥐고 흔드는 한오 그룹 총수 서회장은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취임도 하기 전에 벌써 경제를 뒤흔들며 세력 과시를 한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평민이 뽑은 로마 호민관에, 그리고 자신은 원로원과 집정관도 넘어서 '황제'로 비유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가 드라마 속에서만 존재할까? 실제로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자본가 보수를 우리는 너무도 쉽게 떠올리 수 있지 않은가. 역시 드라마 속 권력의 화신 김상중도 그런 말을 했다.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라, 서회장이 앉은 그 자리가 자신의 목표라고. 대한민국의 자본가 보수는 정당도, 언론도, 그리고 경제도 모두 쥐고 뒤흔들지 않던가. 되새길수록 끔찍한 일이다.

 

진보에 대한 쓴소리도 피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경직된 진보의 자세가, 눈앞의 이익을 내놓는 보수 앞에서 필패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속상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눈앞의 이익 앞에 당위성을 내려놓기 얼마나 쉬운 존재인가. 이 부분은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가 더 적나라하게 설명되어 있다. 미안하지만 그 책에서 업어 왔다.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 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내리지.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들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버리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 -222쪽

 

언론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사실 언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드라마 추적자에서 김상중이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로 결심한 것이 바로 언론을 틀어쥐는 것이었다. 그래야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충실히 할 테니까. 드라마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는 뉴스에서 신문에서 언론의 비상식적인 행보를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 유력한 대선 후보자가 뱉은 말은 검증도 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은 채 받아 적는 우리의 언론. 그 씁쓸함에 대해서 7월 16일자 변상욱의 기자 수첩에서 제대로 다루고 있다. 졸면서 듣는 바람에 다시 듣기 세차례나 반복했지만 새겨들을 메시지였다.

 

 

 

이 땅에서 기적적으로 진보 정권이 승리를 한다고 하여도 언론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또 다시 제2의 노무현이 나오지 말란 법 없을 것이다. 상상으로도 섬뜩하고 비참하다.

 

김용민은 뼛속까지 친일 친미로 통하는 이 땅의 보수에 대해 그들은 뼈가 없다고 한다.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는 그들에게 뼈란 당치도 않다. 항시 어딘가에 기대려고만 하는 이들이, 이 땅의 자주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세력이 이 나라에선 감히 '보수'라는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다. 소가 웃을 일이다.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관료사회에 대한 분석도 곁들였다. 노무현 정권이 많은 개혁을 시도하고도 성과 없이, 혹은 후폭풍을 더 맞으며 침몰한 원인에 바로 이 관료 사회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에 패착이 있다고 본다. 그는 권력을 나눠주거나 혹은 돌려주면서까지 개혁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영혼이 없다고까지 손가락질 받는 관료들에게 '자율성'은 택도 없는 소리였다. 하물며 연정이라니... 누울 자리 보고 발을 뻗어야 한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종교는 또 어떤가. 이 정권 들어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개신교 얘기를 빼먹을 수 없다. 뭐니뭐니 해도 이 방향으로 또 빠삭한 목사 아들 시사 돼지가 아니던가. 이 나라의 개신교는 신라 시대 '호국불교'를 떠올릴 정도의 호국기독교가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교회의 세와 권력을 확장시키는 것에만 혈안된 그릇된 이들의 행보가 과연 이 나라에 덕이 되겠는가, 독이 되겠는가. 역시 입맛만 쓸 뿐이다.

 

저자가 자주 강조하듯이, 이제 진보 운동은 변화가 필요하다. 심각하게, 인상 써가면서 투쟁하던 시절은 갔다. 힘들어서 그렇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길게 내다보고 즐기면서, 유쾌하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진보는 좀 더 영리해질 필요가 있다. 진정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보다 지혜롭게 굴었으면 한다. 야무지고 똑똑하게, 그리고 재밌게 말이다!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북콘서트의 의미로 시사 부흥회를 가졌다. 당첨되어서 다녀왔는데, 그날 현장에서도 무척 의미있게 강연을 들었고, 대담회도 인상 깊게 보았더랬다. 시간 관계상 깊이 듣지 못했던 부분들을 책을 통해서 알차게 복습을 하고 나니 보수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고, 진보에 대한 영양 보충이 된 기분이다. 빠르고 쉽게 읽히지만 액기스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지 않다. 2012년,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길 원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일독을 권한다. 유쾌하고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덧글) 오타가 있다.

82

우리 경제를 사단 내는 >>>사달 내는

191

이명박은 사람들에 절정의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에게

 

배운 것도 있다. '개기다'로 알고 있었는데 '개개다'가 맞는 표현이라는 것을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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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7-17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사야하나 말아야 하나...이 책에 대한 미련을 끊었는데 마노아님 때문에 또....흠....

마노아 2012-07-17 18:03   좋아요 0 | URL
보수 진보 입문서 정도로 보여요. 대중 교양서로 좋지요. saint236님께는 너무 쉬운 것 아닐까 몰라요.^^

꼬마요정 2012-07-1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흠...

마노아 2012-07-17 18:03   좋아요 0 | URL
나는 꼼수다 뒷담화는 그냥 그랬는데 이 책은 좋았어요. 쉽게 읽히고 재밌거든요.^^

아무개 2012-07-18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의 5.16은 최선의 선택이였다는 말을 듣고
역사가 정말 앞으로 나아가는게 맞는걸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라니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요. 에구........

브론테님께 한국사 관련 서적 추천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역사쪽은 마노아 님이 전문이라고 해서
서재에 방문했다가 좋은 역사책 정보 얻고서도 인사글은 처음 인것 같네요. ^^

마노아 2012-07-18 13:27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마중물 님^^
박근혜의 이름이 연일 거론되는 와중에 대선 정국이 점점 걱정되는 요즘이에요.
이번만큼은 역사에 진 빚을 제대로 갚아야 할 텐데요. 갈길이 참 머네요.ㅜ.ㅜ
어이쿠! 전문이라니 당치 않으십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어요. ^^
 
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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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이 들었던 때가 '뉴스'가 재밌다고 느꼈던 때였다. 지루하기만 하고 나하고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의 나열같던 뉴스에 관심이 생기면서 어쩐지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어느 정도이 시간이 흐르자 뉴스는 '우울증'과 '화병'의 진원지란 생각을 했다. 뉴스를 틀면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고, 목소리가 들린다. 인상 쓰게 만드는 소식들과 숨이 턱턱 막히는 대한민국의 현실들을 지켜보는 건 어쩐지 스스로를 핍박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사회가, 교육이 좀 더 건강해지면 이런 현상에서 벗어날까 싶었는데, 상황은 나아진 게 없었으면서도 뉴스나 시사 방송을 스트레스로 접근하지 않게 만드는 통로가 생겼다. 그게 '나는 꼼수다'였다. 사실 나꼼수에서 까발리는 많은 것들은 모두 어마어마한 것들이어서 스트레스가 없을 수 없다. 그런데 그걸 전하는 방식이 신선했다. 지하철 안에서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폭소를 터뜨리는 일들이 자주 있었다. 이제는 나꼼수 말고도 많은 시사 방송이 쏟아져 나와서 다 챙겨들을 수도 없을 만큼 바빠졌지만 아직도 그 첫번째 길을 만든 것은 나꼼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나꼼수 주역의 김어준의 날 언어를 지승호 인터뷰어가 제대로 살려낸 인터뷰집이며 정치 비평 칼럼집이다. '정치'며 '비평'이나 '칼럼'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 달리 아주 재밌고, 아주 유익하고, 그리고 아주 짠하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컥했던지...

 

책은 기승전결을 아주 잘 탔다. 왜 이 책을 쓸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출발점을 명시했고, 우리나라 정치 지도를 그려내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설명이 필요한 한국판 '좌'와 '우'에 대한 그림을 그려주었다. 아주 쉽고 명확하게!

 

우가, 쎈 놈은 더 가져가도 된다는, 질서와 위계를 당연시하는 수직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좌는 누구나 같은 조건에선 같은 정도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지. 그러니 연대가 키워드가 되는 거고, 그 연대를 작동시키는 엔진은 염치가 되는 거지. 인간이 가진 염치. 우의 엔진이 욕망과 공포인 데 반해서. 그렇게 우는 동물의 반응이고, 좌는 이성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 -44쪽

 

이어서 아주 성실한 불법을 자행하고 계시는 가카에 대한 브리핑이 이어진다. 나꼼수 방송으로 이미 한차례 들었지만, 이렇게 글로 읽으니 이해가 더 잘 된다. 3장의 삼성 편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에서 '재벌'이 얼마나 '반자본주의'적 존재인지를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서 설명해준다. 이제는 제발 대기업이 살아야 중소기업도 살고 서민도 산다는, 달팽이가 싱크대 위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소리 좀 하지 말자. 이제는 제발, 그만 속자!

마사 스튜어트라는 여자가 있어. 그 여자가 5개월을 복역했어. 내부자 거래로. 그 거래로 번 돈이 큰 것도 아냐. 겨우 2억 원 수준이야. 그 여자 재산이 엄청나다고. 2억은 그 여자 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전 세계 최고 갑부 명단에 들어가는 여자니까. 그런데 결국 그 정도 액수 때문에 실형을 살아. 마사 스튜어트의 ‘리빙옴니버스’ 그룹은 오로지 마사 스튜어트 혼자의 힘으로 일궈낸 제국이야. 마사 스튜어트가 곧 그 회사의 이미지 자체야. 그런데 이 여자에게 실형이 선고되는 당일 그 회사 주가가 폭등한다고. 그전에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거든. 그런데 실형이 선고되자마자 주가가 40%나 뛰어요. 위험 요인이 사라진 거니까. 미래에 대한 리스크가 현재의 주가에 반영되는 거잖아. 이 여자에게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그 리스크가 사라진 거지. 우리나라에서는 이건희가 감옥 가면 삼성 망한다고 하잖아. 거짓말이야. 이건희가 감옥 가면 이건희가 망하는 거지. -159쪽

 

정치가 연애라고 하는 김어준 식 어법이 재밌다. 앞서도 좌와 우를 잘 설명해 주었지만, 4장에서 등장하는 연애와의 비유는 그야말로 기똥차다.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 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 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 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요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 조건과 대출 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 내리지. 그렇게 연애 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을 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 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놓는다는 거지.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들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버리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에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틱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 -222쪽

 

우리가 인간다운 '염치'를 알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마땅한 이야기이지만, 진보가 여전히 '죄의식' 마케팅으로 접근하는 것은 늘 힘들었다. 당신이 바른 말을 하는 것은 알지만, 바른말 말고도 더 큰 감동과 매력으로 제발 국민을 설득해 주었으면 하는 거다. 국민이 플라스틱 장미에 더 이상 속지 않을 만큼 말이다. 이 대목에서 김어준은 여러 정치인들을 브리핑 하듯이 언급해 주었는데, 길지 않은 지면에서 대한민국 현대사가 응축적으로 설명되었다. 특히 삼당합당 이후의 비극적인 정치사가 조금은 시원하게 설명되어 반가웠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인터뷰이로부터 늘 필요한 대답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발휘했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자연스러운 귀결이 이루어졌는데, 날 것을 잘 살려내면서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장점이 탁월했다. 재기발랄한 김어준은 '말빨'로도 언제나 최고였는데 이런 표현들은 대체 어디서 나올까 싶을 만큼 재밌었다.

 

그래서 조갑제가 이명박을 싫어하는 거야. 자존심 있는 우파에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폼이거든. 비장미가 거기서 나오거든. 그런데 이명박은 압도적인 수준의 동물적 천박함을 발산하고 있으니까. 인류가 쌓아온 정신적인 성과물 자체가 흔적도 없는 거지. 난 그래서 이명박이야말로 순결하다고 봐. 뇌에 구김살이 없어. 뇌가 완전 청순한 거야. 그래서 이명박에게 중요한 건 이념이 아니라 이권인 거지. 오로지. 그래서 내가 만날 그러잖아. 이명박은 국가를 수익 모델로 삼는다고. -54쪽

 

가카의 주장은 그냥 김경준이 다 알아서, 자기는 모르는 사이, 다스로부터 투자를 받아 왔다는 거야. 정말이지 팔만대장경으로 빨래하는 소리지. -88쪽

 

 

정리하면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거대한 지배의 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는 거지. 그 출발점이자 정점에 에버랜드가 있는 거고. 죽이지. 이런 걸 순환출자라고 해. 이렇게 해서 겨우 61억만 가지고 몇백 조 자산 가치라는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거지. 6만 원으로 타워팰리스를 산 셈이지. 세금은 16,000원만 내고. 워런 버핏 따위는 코흘리개지. 우리 이재용 님이야말로 세계 투자계의 옥황상제야. 141쪽

 

그런 소리를 한 사람들은 민족주의라는 단어 자체에 스스로 포박된 거지. 그 현상을 설명할 어휘로 그걸 채택하는 순간, 그 단어의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는 거야. 단어가 뭐가 중요해. 그 본질이 중요하지. 그런 원형질에 해당하는 원시적 감정조차 스스로 즐기지 못하고 불편해서 경계부터 하는 건 강박에 다름 아니지. 그 원시적 감정을 논리로 걸러내는 건 비인간적인 거지, 진보가 아니라고. 인간이 없는 진보가 어떻게 진보야. 그건 냉정한 지성이 아니라 강박적 논리라고. 진보도 강박이 되면 진상 되는 거라고. -212쪽

 

 

총선과 대선을 연이어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은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수년 간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일이 아주 피곤했다면, 앞으로의 삶도 참으로 막막하다면, 우리 스트레스의 근원이 정치라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되었다면, 부디 많은 사람들이 현명한 투표를 해냈으면 한다. 그리고 그런 현명한 선택에 이 책이 즐거운 도우미가 되었으면 한다.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히 어떤 울림과 잔영을 남겨줄 것이다. 무엇보다 '쫄지 마!'라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그 짧은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같이 느껴보자.

 

부시에게 학을 뗀 미국인들이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만든 것처럼. 그게 그런 거다. 다음 시대엔 또 다음 시대의 자질이 호출될 거다. 하지만 오바마가 천국을 도래시키진 못했듯, 노무현으로 천국이 오지 않았듯, 문재인으로도 천국은 오지 않는다니까. 맞다. 인간 세계에 천국은 없다. 하지만 노무현이 없었다면 이명박이 얼마나 나쁜지 몰랐다. 노무현으로 인해 되돌아갈 지점을 알게 된 것처럼, 문재인은 또 다른 기준이 된다. 역사는 그런 거다. 그런 기준을 가져보느냐, 못 가져보느냐. 이때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 이명박을 버텨낸 우리에게는 문재인 정도를 가질 권리가 있다. 이명박을 겪어낸 우리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 그래서 이 기회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 그건 너무도 슬픈 일이다. 좌우를 떠나, 우리 모두에게, 너무 슬픈 일이다.

해보자.

쫄지 말자.

가능, 하다. -328쪽

 

덧글)

165쪽에 나오는 '비토'는 무슨 뜻일까? 성토? 비판?(뒤에 또 나온다.)

203쪽 통독 이후 독일 >>통일 이후 독일

208쪽 75여 개국 >> 70여 개국이나 80여 개국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문장이 어색하다.

 

표지, 정말 근사하게 잘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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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2-2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추천~~~~
이 책을 총선 전에 한 명이라도 더 읽도록 같이 힘써봐요.

마노아 2012-02-27 13:11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지난 주에 지인에게 이 책 빌려주고 왔어요. 선물할 일이 있으면 선물로도 아주 좋을 것 같아요!! ^^

기억의집 2012-02-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언듯언듯 마노아님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마노아 2012-02-27 13:11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이리 과찬의 말씀을 해주시다니, 제가 다 송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