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곽재구 엮음, 지성배 사진 / 이가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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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시인이 엮은 시 모음집이다. 무려 '달빛으로' 읽은 시라니, 달밤에 읽어야 할 것 같은 충동이 일지 않는가.


네모난 삼각형


_ 김 중

 

어머니 뱃속에서 나는 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놀았다

아픈 그 여자, 숨어서 울 때마다 비가 왔다

그럼 나도 종이로 우산을 접고 따라서 우는 척했다

그 여자 뱃속은 늘 김이 서린 목욕탕의 거울

어느 날은 거기 네모난 삼각형을 하나 그렸다

삼각형인데 각이 네 개나 되지

대각선도 그을 수 있었다

어수룩한 천사들을 붙들고 수다를 떨었던 것이다

기억에, 태어나던 날 도립병원에는 큰 불이 났고

불 그림자 일렁거리며, 난

이 시상한 세상을 향해 힘껏 팔을 뻗었던 것이다

白衣의 바보들은 놀라 주춤 물러섰지만

그 여자, 젖은 나를 꼭 껴안으며

네모난 삼각형을 그려 보이고 기절했다, 오오!

어머니가 삼십 년을 습작하여 발표한 최초의 詩集

그게 바로 나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57쪽


어머니가 삼십 년을 습작하여 발표한 최초의 시집이 나라는 고백! 어머니라는 창조주가 빚어낸 예술품이 나라는 황홀한 인정! 


지하철에서 1

 

최영미

 

나는 보았다

밥벌레들이 순대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98쪽


자극적이고 처연한 표현이다. 발끈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서럽기도 한......



그대가 두 손으로 국수 사발을 들어올릴 때

 

고정희

 

하루일 끝마치고

황혼 속에 마주 앉은 일일 노동자

그대 앞에 막 나온 국수 한 사발

그 김 모락모락 말아올릴 때

 

남도 해 지는 마을

저녁 연기 하늘에 느돞이 올리듯

두 손으로 국수사발을 들어올릴 때

 

무량하여라

청빈한 밥그릇의 고요함이여

단순한 순명의 너그러움이여

탁배기 한 잔에 어스름이 살을 풀고

목메인 달빛이 문앞에 드넓다 -102쪽


고된 노동과, 따뜻한 국수 한 사발이 한 폭으로 겹친다. 함민복 시인의 '긍정적인 밥'이 떠올랐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노동과 식사, 신성한 두 가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히곤 하는 세상에서 그래도 한줌 따스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책꽂이를 치우며

 

도종환

  

창 반쯤 가린 책꽂이를 치우니 방안이 환하다

눈 앞에 막고 서 있는 지식들을 치우고 나니 마음이 환하다

어둔 길 헤쳐 간다고 천만 근 등불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이여

창 하나 제대로 열어놓아도 하늘 전부 쏟아져오는 것을 -109쪽

 

간서치 이덕무가 벗들과 함께 아끼던 경서를 팔아서 술 한잔 마셨던 대목이 떠올랐다.

지금도 이고 지고 꾸역꾸역 쟁여두고 사는 이 많은 책들, 다 치우고 빈 벽에서 자유를 좀 느껴보고 싶을 때도, 솔직히 있다.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을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 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126쪽


'몸에 한 세상 떠넣어 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과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 목울대를 뜨겁게 만든다.

먹는 것은 신성하고, 그 먹거리를 위해 몸에 새겨온 노동의 흔적이 계속 내 마음을 두드린다.


고요

 

이원


시간을 깎는 칼이 있다

시간의 아삭거리는 속살에 닿는 칼이 있다

시간의 초침과 부딪칠 때마다 반짝이는 칼이 있다

시간의 녹슨 껍질을 결대로 깎는 칼이 있다

시간이 제 속에 놓여 있어 물기 어린 칼이 있다

가끔 중력을 따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칼이 있다

그때마다 그물처럼 퍼덕거리는 시간이 있다 -171쪽


다시금 읽어보자니, 어째서 이승우가 떠오르는 것일까? 어째서......



시인은 좋은 시를 골라 읽고, 거기에서 따라오는 감흥을 같이 적었다. 어떤 것들은 시인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어떤 것들은 곽재구 시인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만 느껴져서 공감이 안 되기도 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좋은 시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또 좋은 사진을 같이 만나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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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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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장영희 선생님 글이다. 그리고 역시 오랜만에 보게 된 김점선 선생님의 그림. 두분의 조화가 참으로 곱다.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지금도 좋은 곳에서 두분이 두런두런 사이 좋게 담소 나누며 살고 계실 것만 같다.

 

바람 속에 답이 있다 - 밥 딜런

 

얼마나 많은 길을 걷고 나서야

그는 진정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비둘기는 백사장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휩쓸고 나서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야

다른 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답은 바람 속에 있습니다.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부분) -89쪽

 

밥 딜런이 고인이라고 생각했다. 응? 살아 있네? 밥 딜런이 꼬불꼬불 머리를 가진 흑인이라고 여겼다. 잭슨 파이브 시절의 마이클 잭슨 외모를 떠올렸다. 얼라, 근데 아니네? 그럼 내가 생각한 건 누구지???

 

노래도 있다. 퍼오고 싶었는데 아이프레임이라 주소만...

 

http://youtu.be/vWwgrjjIMXA

 

 

존 레논의 이매진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많은 길, 시간 뒤에 평화가 올 거냐고 묻는다면, 인류가 살아 있는 한 불가능한 건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지만, 크리스마스 2부에 말하기에는 너무 부정적이구나.

 

음유시인으로 잘 알려진 밥 딜런의 유명한 노래 <바람 속에 답이 있다>의 가사입니다. 오래전부터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의 시들이 셰익스피어나 T.S. 엘리엇에 견줄 만하다고 책을 쓴 영문학자 소식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딜런(그가 좋아했던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따온 이름)의 시는 사람(a man)이지만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오랫동안 흑인 남자는 boy라고 불렸죠), 자유가 없는 사람들, 전쟁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사람답게 살 권리', '생명을 지킬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저항의 목소리, 그리고 '다른 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그가 다른 유명한 시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시들은 책 속에 있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90쪽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학급 자치 활동 시간에 두명씩 짝을 지어서 시를 발표하게 했다. 한 명은 시를 준비하고 다른 한명은 배경음악을 준비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고른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못한 길'이었다. 내 짝이 무슨 곡을 준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짝꿍 얼굴도 생각나지 않으므로...;;;;

 

그렇게 알게 된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시도 반갑다.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인생은 꼭 길 없는 숲 같아서

거미줄에 얼굴이 스쳐 간지럽고 따갑고,

한 눈은 가지에 부딪혀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러면 잠시 지상을 떠났다가

돌아와 다시 새 출발을 하고 싶다.

세상은 사랑하기 딱 좋은 곳

여기보다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부분) -117쪽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어차피 운명은 믿을 만한 게 못 되고 인생은 두번 살 수 없는 것.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 날이라는 감격과 열정으로 사는 수밖에요. -118쪽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이고, 또 대한민국인 것 같다. 정치가 경제가 사회가 하 수상하고 어지러워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내가 태어나 내 모국어로 말할 수 있는 이 익숙한 공간을 영원히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 날이라는 표현은 몹시 감동적이고 낭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굉장히 아찔한 말이기도 하다. 그 옛날 무릎팍 도사에 나왔던 최진실이 다시 2,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 시절을 어떻게 헤치고 왔는데 다시 돌아가냐며,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했던 게 떠오른다. 그렇게 말했던 그녀가 얼마 뒤 스스로 세상을 등지지 않았던가. 아, 역시 오늘 떠올리기엔 너무 슬픈 사람이다.

 

낙엽은 떨어지고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가을이 우리를 사랑하는 기다란 잎새 위에,

보릿단 속 생쥐 위에도 머뭅니다.

머리 위 마가목 잎이 노랗게 물들고

이슬 젖은 산딸기 잎새도 노랗습니다.

 

사랑이 이울어 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슬픈 우리 영혼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숙인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며. - 143쪽

 

이 시는 원문의 느낌이 어떨지 내가 알 수 없으나, 번역이 더 기가 막힌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이 이운다는 표현도 그렇거니와 헤어집시다!라고 잘라 말하는 데에서 더 큰 사랑과 절망이 느껴진다.

 

직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따스한 공간이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천천히, 온기를 느끼며 이 시들을 읽었다.

짧지만 황홀했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시와, 신나는 캐롤송을 들으며 멋진 성탄 2부를 맞이해야겠지만, 현실은 어디 그렇던가.

 

그래도 오늘은 야곱과 함께 모처럼 시간을 보내는 날. 작은 촛불이 있을 것이고 와인도 있을 것이다. 잠시 다른 것들은 내려놓고 훈훈해 지자. 그래도 된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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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2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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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어마어마한 강진이 후쿠시마를 강타했고, 그 여파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인근 주민들은 긴급히 대피했고, 이들의 생활터전은 방사능에 오염되어 다가갈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사람은 대피했지만 미처 데리고 가지 못했던, 혹은 허락되지 못한 동물들은 위험한 그 땅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생명들을 두고 볼 수 없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섰고, 이 책의 저자도 그렇게 죽음의 땅에 발을 디뎠다. 한장 한장 사진으로 남기면서 인간의 오만과 욕심, 그리고 어리석음이 빚어낸 처참한 결과를 고발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을 통해 죽음을 고발하는 리얼 다큐다.

 

 

개에 비해서 인간에 대한 경계가 훨씬 강한 고양이들. 몹시 굶주렸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성향을 알기 때문에 먹이를 주고 멀찍이서 지켜보고만 있다. 이 책의 표지를 담당한 사진인데 빛이 들어가서 영민한 눈빛을 잘 못 살렸다.

 

 

먹을 것을 주니 닭에게 먼저 먹으라고 양보하는 착한 개였다. 그야말로 대인배. 네가 인간보다 낫구나.

닭에게는 친절했던 이 개가 인간이 다가가자 짖기를 멈추지 않았다. 최고의 집 지킴이였을 것이다. 이런 순간까지도 임무를 잊지 않는!

 

 

사람을 보자 반가워서 펄쩍 뛰었다던 흰둥이. 하얀 털 때문에 흰둥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이름도 흰둥이였다고!

 

흰둥이의 주인은 흰둥이를 보살피러 다시 돌아왔다. 자신들이 거처하는 대피소에 반려견을 데려갈 수가 없어 두고 갔지만 걱정되어 찾으러 왔던 것이다. 이렇게 사랑 받으며 자라온 어린 흰둥이. 천진하게 놀아달라고 주변을 맴돌았구나.

 

개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축사에 매여 있던 가축들은 처절하게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축사의 문을 열어두었더니 목이 말랐던 소들은 용수로에 빠져서 빠져나오지 못해 또 고통을 겪었다.

겨우 살아남은 돼지들은 살처분 당했다.

 

이 집은 소와 오골계가 사이 좋게 지내고 있었다. 근처에 고양이가 많았기에 닭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게 용했다.

알고 보니 온몸을 던져 집을 지킨 일등 공신이 있었다. 본인은 저렇게 만신창이가 된 채로...

다른 개에게 물린 상처였다.

함께 사는 인간에게 충실한 동물인 개. 인간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킨다. 이 개의 이름은 곤타인데, 곤타는 두 달 넘게 집과 동물 가족을 지켜냈다. 이렇게 집을 지키고, 떠나간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이 많이 있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애정에, 또 그들을 되찾기 위해 몇 번이나 다시 돌아오는 가족들의 마음이 몇 번이나 울컥하게 만들었다.

 

사실, 보통 재앙이 아니었다. 사람을 건사하기도 쉽지 않은 사정이었다. 누군가는 그럴 정신이 어디 있겠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생명이다. 적어도, 최소한 고통스럽게 죽지 않도록 안락사라도 해줘야 마땅하다.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일본은 고양이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 그나마 구조된 아이들이 입양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그런데 만약 이게 우리나라 사정이었다면 이런 구조단체 혹은 개인이 뭇매를 맞을 것이다. 팔자 편하다면서......

 

책에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미국 뉴올리언스의 이야기도 전해줬다. 무려 2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반려동물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연방재난관리국은 대피소에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도록 조처했다고 한다. 하아, 이건 너무 비교되잖아. 이 나라의 재난 관리 수준을 생각한다면......

 

결국 원전으로 돌아간다. 이 시대 원전 지역은 대도시의 식민지라는 저자의 표현에 공감한다. 밀양의 송전탑도 대도시의 식민지가 아니던가......

 

체르노빌의 경험에서, 일본 후쿠시마에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다면 재앙은 또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 끔찍한 참상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원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혹은 않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심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충분한 토론은 이뤄지고 있는가? 어디까지 불편을 감수하고 미래를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각오는 되어 있는가.

결국은 생명의 문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의 문제인 것이다. 이건 이웃나라 머나먼 이야기도 아니고, 나와 상관없는 동물들의 죽음일 뿐이라며 사소하게 넘길 일이 아니다. 죽음의 땅은 이제 우리 차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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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4-12-16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신문에서 읽었지만 도저히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ㅠ_ㅠ; 마노아님 리뷰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ㅠ_ㅠ;;;

마노아 2014-12-16 16:22   좋아요 0 | URL
저는 평소에 개와 고양이에 대해서 그닥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도 보는 내내 참 힘들었어요. 소와 돼지 사진은 차마 못 올리겠더라구요.ㅠ.ㅠ

아무개 2014-12-1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읍
난 못봐요 못볼꺼같아 ㅠㅠ
젠장할 원전!

마노아 2014-12-17 01:05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은 무리라고 이미 생각했어요. 괜히 마음만 더 아파져요.ㅜ.ㅜ

오후즈음 2014-12-16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는것 만으로도 너무 힘드네요. ㅠㅠ 저는 개와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참혹한 이 광경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거니 참 괴롭네요

마노아 2014-12-17 01:06   좋아요 0 | URL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결국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건 아닌지...까지 생각이 드네요. ㅜ.ㅜ

블라썸 2014-12-1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리뷰글 보고 도서관에서 바로 빌렸어요. 사진만 봐도 저는 눈물이 너무 나네요. 책소개 감사드려요.

마노아 2014-12-17 13:5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블라썸님! 저도 소개글 보고서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보았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해요. ^^

개똥같은넘 2014-12-2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울컥하네요.

지금 눈물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멈추고 있습니다. ㅠㅠ

마노아 2014-12-22 07:21   좋아요 0 | URL
슬픈 책이에요. 진실을 들여다보는 건 이렇게 아플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ㅜ.ㅜ
 
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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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김혜순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 뒷모습 열쇠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은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긴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저 먼 곳, 안타깝고 환한 광야가

열쇠구멍 뒤에 매달려 있어서

나는 그 광야에 한 아름 백합을 꽂았는데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복도를 여는 문이라고

죽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 씌어 있다는데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당신이 깜빡 사라지기 전 켜놓은 열쇠구멍 하나

그믐에 구멍을 내어 밤보다 더한 어둠 켜놓은 깜깜한 나체 하나

백합 향 가득한 광야가 그 구멍 속에서 멀어지네 -48

 

소개된 시들이 하나같이 좋다.

그런데 아주 짧은 구절만 소개했기 때문에 전문을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책에 수록된 구절은 붉은색 강조 글씨로 표시했다. 

대부분 몇 구절 정도만 공개했다.

나머지는 여백과 그림이다.

글자수로만 따지면 책값에 어이 없어지겠지만,

그 한 구절 때문에 다른 시들을 찾게 되고,

익숙한 시인의 이름에서 빙그레 웃게 된다. 

순간을, 읊조려 보자.




 

자서/김영승


이 아름다운 밤......

내가 낯선 존재라니......

나는 참 기쁘다.

-56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를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 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의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66  

 

이 얼마나 따뜻한 시인가. 그래도라는 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주택가/김행숙


가정집이 무엇일까

어린 시절은 무엇일까

나는 20세기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당신은 21세기의 어린시절을 기억한다

오늘날 주택가는 그런 곳

너희 엄마 집과 아빠 집의 규칙이 다르듯

누구나 다르게 살아가는 거야

똑같이 보이고 싶어하면서

 

큰 개를 키우는 사람은 큰 개에 의지하고

작은 개를 키우는 사람은 작은 개에 의지한다

자기 머리통보다 작은 개를 꼬옥 껴안고 우는 사람이 있겠지, 오늘밤에도 주택가는 그런 곳

버둥거리는 개가 있어

 

그것은 좋다는 뜻일까, 괴롭다는 뜻일까

말하는 개라면 사실대로 짖을까

말하는 창문이라면 수다쟁이 할멈일거야, 그녀가 마음씨 좋은 할머니래도 당신은 창가에서

더 이상의 독백을 잇지 못하리

밤에 주택가를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밤의 주유소로

환하게 달려오는 차의 속도가 부러워, 당신은 골목에서 걸어나와 골목이 없는 세계로 뛰어간다

착각처럼 무엇이 바뀔까

완전한 착각처럼 무엇을 굳게 믿을까

밤공기가 차가워, 나는 창문을 닫는다

투명한 유리창을 닫고

불투명한 유리창을 닫고 커튼을 쳐버렸다, 화가 난 듯했다

나는 보이지 않았다

-72

 

제목을 보는 순간 저 한구절이 얼마나 크게 와 닿던지......



자본주의의 사연/함민복

 

성동구 금호 4282번지

네 가구가 사는 우편함

 

서울특별시의료보험조합

한국전기통신공사전화국장

신세계통신판매프라자장우빌딩

비씨카드주식회사

전화요금납부통지서

자동차세영수증

통합공과금

대한보증보험주식회사

중계유선방송공청료

호텔소피텔엠베서더

통합공과금독촉장

대우전자할부납입통지서

94토지등급조정결과통지서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아닌가

 

-74




삼 십 세/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78

 

서른을 지나온 지는 한참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 울림에 공감한다.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노혜경


공원길을 함께 걸었어요

나뭇잎의 색깔이 점점 엷어지면서

햇살이 우릴 쫓아왔죠

눈이 부시어 마주 보았죠

이야기했죠

그대 눈 속의 이파리는 현실보다 환하다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세상 모든 만물아 나 대신

이야기하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길은 끝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왔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84




 

속눈썹의 효능/이은규


때론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돌려 받은 책장 사이에서 만난, 속눈썹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

건네 준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건네 받은 사람

온 곳을 모르므로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마음일 때

깜박임의 습관을 잊고 초승달로 누운

 

지난봄을 펼치면 주문 같은 단어에 밑줄이 있고

이미 증오인 새봄을 펼쳐도 속눈썹 하나 누워 있을 뿐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

출처 모를 기억만 떠나는 방법을 잊었다

 

아지랑이의 착란을 걷다

눈에 든 꽃가루를 호-하고 불어 주던 당신의 입김

후두둑, 떨어지던 단추 그리고 한 잎의 속눈썹

언제 헤어진 줄 모르는 것들에게는 수소문이 없다

벌써 늦게 알았거나 이미 일찍 몰랐으므로

 

혼자의 꽃놀이에 다래끼를 얻어온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것은 온다는 역설처럼 당신의 입김 없이도 봄날은 간다

 

화농의 봄, 다래끼

주문의 말 없이 스스로 주문인 마음으로

한 잎의 기억을

당신 이마와 닮은 돌멩이 사이에 숨겨놓고 오는 밤

책장을 펼치면 속눈썹 하나 다시 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거라 믿는, 꽃달

-88

 



푸른 밤/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이었다

-90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94


문득, 나를 위해 살아줘요... 라고 말했던 사람이 생각나서 잠시 심호흡을 해야 했다.


 

개여울/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97

 심수봉이 부른 개여울을 들어보았다. 여전히 처량맞고 청승맞은, 그러나 그게 매력적인 노래였다.



새우튀김/문숙


바다를 버리고서야 몸을 쭉 폈다

단단한 껍질을 벗고

노란 삼베옷을 입고 기름 속으로 뛰어든다

뜨거움이 스미자

육신에 남아있는 생의 관성으로

바싹 몸을 옹그린다

 

작은 삶이란

살기 위해 자주

제 꼬리를 확인하며 몸을 구부려야 하는 것

조금씩 익어가며

구부리고 펴던 기억마저 버리고 있다

 

튀김솥 밑바닥에 가라앉아

제 몸을 다 익힌 새우

점점 부풀어올라 반달이 되어간다

바닥을 박차며 몸을 솟구친다

창밖에선 하늘까지 물기둥 세우는 빗소리

기름 위를 둥둥거린다

오늘밤

캄캄한 하늘에 수염 달린 반달 여럿

노랗게 뜨겠다

-112

 

인터넷 정육점/조인선

 

달력을 넘기다 손이 찢어졌어요

어머니가 웃으시며 붕대로 감싸주셨어요

 

얘야 시간은 날카롭단다

  

-118

 

그야말로 촌철살인!!




결빙/정호승

 

결빙의 순간은 뜨겁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 강

도도히 흐르는 강물조차

일생에 한번은

 

모든 흐름을 멈추고

서로 한 몸을 이루는

순간은 뜨겁다

    

-128

 




슬픔을 모르는 사람/황혜경


몰라?

 

가장 쉬운 말로 하려고 했어

슬픔은 그런 것이니까

침대에서 양발로 딛고 내려오는 아침과

양발로 밀고 시작하는 젖은 아침의 무게가 다르지만

스케일이 큰 문장 뒤에 숨은 자잘한 단어들처럼

슬픔은 함께같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두 사람이 네 사람의 장례를 함께 치르고

나눠 갖고 난 후에 두 사람은

정말 내가 당신 같고 당신이 나 같다, 라고 했대

 

나는 함께같이 슬픈 것들과

더 잘게 애틋하게 슬픔을 잘근잘근

 

당신은 애써 슬픔의 영감(靈感)을 걷어차는 사람

부디, 제발이라는 말을 잘도 잊어버리지

 

당신은 포기가 빠르고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자칫, 절도 있는 태도로 보여 당신은 대범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몇 개의 슬픈 알맹이들이 어떻게 굴러가다가 짓밟히고 터지고 흩어지고 사라지는지도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고

짜임새라고 믿었던 올들이 어떤 계기로 풀리고 묶이고 매듭이 다시 생기는지 보이지 않는 그 슬픔의 과정을 모른다

 

고아에 감상적으로 접근하면 고독한 아이

나는 고아를 잘 모르지만 버려지고 외로워서 슬픈 아이

함께같이 슬픈 나도

 

발이 가장 은밀한 눈물의 부위라고 내가 숨겼을 때 주로 조증(躁症)인 당신의 성기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몇 도였을까 또 나를 비웃었을까, 생각하면

붉가시나무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더 붉은지 더 따가운지

나는 난대의 훈풍 한가운데 서 있어도 춥고도 외롭고도 슬프다

 

두 사람이 네 사람의 장례를 함께 치르고

나눠 갖고 난 후에 두 사람은

정말 내가 당신 같고 당신이 나 같다, 라고 했대

두 사람은 부부였대

 

정말 몰라?

 

나는 함께같이 슬픈 것들과

당신이 없어도 정말 몰라도

슬픔과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거리를 이해하면서

나는 함께같이 슬픈 것들과 같이

나는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을 나는 더 모르고 싶고

-148

 

근래, 종교적 성향보다 정치적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것처럼,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더 싫다. 그야말로 실격!



나만 없는 방/이제야


혼자 있어도 나를 들킨 적이 있다

 

내가 묻은 물건들이 걸을 때

나의 날들이 매달려 있다

 

하지 못한 말을 커튼에게 한다

수요일의 햇빛을 잡은 두 손은 어디 있니

말린 내 손을 맞잡으며 커튼을 닫았다

 

듣지 못한 말을 침대에게 한다

왜 오늘 밤은 천장에 별이 뜨지 않을까

접어두었던 책을 어제를 위해 읽었다

 

놓지 못한 말을 신발장에게 한다

우리가 걷던 시계 없는 길은 벽이 되었나

초인종이 없이도 외출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없는데 방 안 가득

나를 아는 내가 있다

 

닦아도 닦이지 않는 시계가 있는 방

잊어도 잊히지 않는 달력이 있는 방

꿈에서 깨어도 다시 꿈을 꾸는 방

 

바닥 구석에 내 그림자도 있었다

-152

 



돌아와 보는 밤/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은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이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늘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62

 




/황인숙


밤은 네가 잠들기를 바란다

 

자장 자장 자장

 

밤은 차곡차곡 조용해진다

 

밤은 너를 잠재우길 바란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자장

 

밤은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170

 

밤조차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을...

그 고요한 밤을 제발 깨우지 말기를......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김개미

 

여기까지 오느라고 숨이 찬 게 아니야,  

숨이 차서 여기까지 왔어

 

-174



 

완벽한 불판/금란


친절하게 고기가 익어갈 때 우리는 젓가락으로 침묵을 만지작거렸네

 

눈에 까만 연기가 들어온다

연기와 연기와 연기가

 

불판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읽지 않은 책으로 쌓여가고

젓가락은 여전히 빈 페이지를 넘기고 있네

 

모든 오해는 시간을 까맣게 태우고 있지

 

핏방울이 떨어지는 불판 위

고뇌와 고통의 무늬가 다른 사람의 얼굴로 오는 저녁

드디어 골목이 어두워지고

늙은 거리의 누추한 냄새처럼 그곳에 도착했네

 

맨살을 뒤적이는 손가락은 하나씩 잘려 나가고 있다

 

어둠이 불빛에 데이듯 시간의 속살을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그들은 영원히 익지 않을 젓가락으로 앉아있네

 

불 안의 나는 고기처럼 뜨겁고

불 밖의 그들은 서늘해

안과 밖은 다른 나라의 골목으로 여기서 멀어지네

 

불판은 까맣게 타고 있는데

내 얼굴은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다

-188


완벽한 불판이라는 제목에서, 친절하게 익어가는 고기를 상상하면서 한 친구가 떠올랐다. 

고기를 가지고 장난칠 수 없는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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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서민 지음, 지승호 인터뷰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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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만큼 오해를 많이 받고 편견의 대상으로 살아온 상대가 또 있을까 싶다. 나 역시 바로 그 편견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은 이상(사실 이 책 포함해서 기생충 관련 책 네권 째이지만!) 그런 편견은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생충만도 못한!-이라는 욕을 별로 해본 적은 없지만(보통 '벌레'를 더 많이 예로 든다.) 그래도 누군가 이런 표현을 쓴다면 그게 아닌데! 라며 함께 안타까워해줄 정도는 될 것 같다. 기생충 전도사~ 기생충 지킴이? 아무튼 우리의 기생충 박사님 덕분에~


기생충은 같이 공존하면서 ‘이만큼만 주면 여기서 잘 살겠다’ 이런 거고, 바이러스는 ‘우리가 널 다 먹겠다’ 이렇게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미개하고 진화상에서도 밑바닥에 있는 애들이죠. 기생충이 정말 착하다는 증거가 오랫동안 약을 먹어왔는데도 전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회충약만 해도 벌써 30년 정도 먹어왔어요. 그런데도 회충은 지금도 회충약 한 알에 죽습니다. 이런 애들이 없죠. -95쪽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와 서민 교수님의 인터뷰 집이다.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 서민으로부터 학자 서민, 방송인 서민, 가족으로서의 서민, 또 좌파 지식인으로서의 서민 등등, 그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특유의 유쾌한 자기비하식 겸손 유머와, 반어법을 활용한 반전 유머가 가득하고,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이야기도 무겁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이룬 분이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쳤던 많은 시행착오와 굴욕(?) 시절 이야기들이 참으로 편안하게 읽힌다. 컬투의 베란다쇼로 이름을 많이 알렸는데, 정작 나는 그 방송을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방송에서 잡은 캐릭터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정규방송 TV를 거의 보지 못해서 베란다쇼도 사실 몰랐는데, 책 나왔을 때 강연회 갔다가 뒷풀이를 함께 하고, 그 다음에 집에 가서 방송을 한 번 보았다. 교수라고, 혹은 의사라고, 아니면 유명하다고 으시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았지만, 글에서 보여주는 본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방송에 나오니 그게 참 신기했다. 솔직하신 분이구나, 싶었다. 게다가 해맑기까지 하심!


치기도 하고, 경기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로저 페더러라는 선수를 좋아하거든요. 한 선수를 너무 좋아하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페더러가 질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으니까요. 나이 드니까 남의 팬 하기가 더 힘들어요. 페더러가 빨리 은퇴했으면 좋겠는데, 안 하네요.(웃음) -270쪽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강조를 많이 했다. 본인의 인생 전환점을 준 것도 강준만 교수의 책을 읽고나서였다고 여러 번 강조했는데, 이건 의사한테도 예외는 아님을 잘 설명해 주었다.


스토리를 잘 짜려면, 제가 항상 제자들한테 하는 이야기인데,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 특히 소설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합니다. 저도 소설을 많이 읽었더니 논문, 특히 고찰 부분을 잘 쓰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소설은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기본 요건인 거죠.

 

지 : 물리학자 중에서 파인만 같은 사람돌 글을 잘 쓰고, 아인슈타인도 굉장한 문장가였지 않습니까?

서 : 그렇죠.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쥐라기 공원』이 있잖아요. 크라이튼이 하버드 의대를 나왔는데요. 아이디어도 대단히 독특하지만, 이 아이디어를 훌륭한 소설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문장 덕입니다. 이 사람이 책을 읽어온 내공이 담겨 있는 거죠. 존 그리샴도 그렇고요. 과학자나 변호사가 우리나라에서는 글하고는 정말 관계가 없는 사람 같은데요. 이런 사람들이 글을 너무 잘 쓴다는 말이죠. 우리도 직종에 관계없이 모두 글쓰기 교육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소설의 저변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111쪽 


예로 들어준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졌다. 전직 간호사 출신으로서 그 경험을 잘 살려 글에 녹여내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런 다양한 분야를 거친 작가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쥐라기 공원 같은 책이 나오도록~


인성이라는 것, 인문학이라는 것은 사실은 학교에서 배운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 학교는 토익 800이 안 되면 본과 진급이 안 돼요. 사실 토익이 의사랑 얼마나 관계가 있겠어요? 그것보다는 예과 2년 동안 100권의 고전을 읽고 그 시험에 통과해야 본과로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의료 인문학 교실을 만드는 것보다 좋지 않겠어요? -154쪽


문득 든 생각인데,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도 인문학을 먼저 배워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검사 출신, 변호사 출신, 교수 출신 등등 학벌 쨍쨍한 정치인들이 참 많은데, 그들의 행동거지 하는 말들을 보면 지성인이라는 생각이 안 들 때가 많아서 말이다. 공감 능력은 그야말로 바닥을 기기도 하고... 이런 직종의 사람 뿐아니라 사실 전 국민적으로 필요한 공부이기는 하다. 쩝...


개를 굉장히 좋아하는 부부인데, 키우던 개가 죽었을 때 이들 부부가 느낀 슬픔은 가족 하나를 잃은 슬픔이었다. 그걸 공감해주지 못하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을 이야기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나니 마찬가지로 강아지가 죽고 나서 많이 아파했던 친구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함이 들었다. 국민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인의 무딘 감정을 나무랐는데, 그런 식의 공감 부재가 분명 우리에게 많을 것이다. 나는 평소 내가 몰랐던 것을 많이 알려주는, 정보가 담겨 있으면서 감동적인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범주에 들어가 있다. 기생충과 우리나라 의료보건 현실, 갑상선암과 과잉 진료에 대한 이야기 등도 모두 귀기울여 들을 이야기였다. 지난 번에 재밌게 읽은 '기생충 열전'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더 마음에 든다. 거기에는 성실하게 책을 읽고 필요로하는 질문을 만들고, 이야기를 끌어낸 지승호 인터뷰어의 공로도 크다. 


갑상선암에 대해서는 굳이 저뿐 아니라 유럽의 저명 학술지에서도 과잉 진단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회 내부적으로도 그렇게 결론이 났고요. 2~3밀리미터짜리를 뭐하러 떼내나, 빨리 자라는 암이 있고, 천천히 자라는 암이 있습니다. 갑상선암이 사람을 위협하려면 최소한 300년 정도 걸려요. 그것도 짧게 잡아서. -198쪽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이 딱 저랬다. 두달 간격으로 갑상선 초음파 보자고 하고 아주 작다고 하면서 계속 약 먹으라고 하고, 마찬가지로 피검사도 두달에 한 번 하는데 철분제 계속 먹으라고 했다. 그러다가 조금 더 먼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니 모두 정상 범주이니 크게 신경쓸 정도 아니라며 영양가 골고루 섭취하는 정도로 주의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후 첫번째 병원은 안 가고 있다. 이것도 낮은 의료 수가가 한 몫 한 거겠지만 너무 했소!


다른 직업도 그렇겠지만,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가 치료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하잖아요. 플라세보 효과도 그래서 생기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 때 마취약이 떨어져서 군의관이 식염수를 가지고 마취를 했더니 마취가 되더랍니다. 정말 놀랍죠? 그게 다 의사를 믿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신뢰가 없으면, 신뢰가 없기 때문에 나을 병도 안 낫는 현상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236쪽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이 가득한데, 그래도 믿고 기대하게 되는 기생충 학자 하나를 알고 있는 것과 믿고 읽을 수 있게 만드는 인터뷰어가 있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된 독서였다.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하고, 지성미를 느끼게 하는 정보도 있고,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도 가득하니 이 정도만 잘 차려진 성찬이 아닌가. 


덧글) 표지의 기생충 이름은 뭘까? 저번 책에서 본 것 같은데 생각이 안 남. 기생충 이름은 기억하기 힘드네요. 그저 회충 요충만 기억에 남을 뿐... 그 녀석들도 생김새는 사실 기억나지 않음. 공부가 부족했어. ^^

잘사는 나라들이 항상 개발을 해놓고 나서 환경을 지키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사다리 걷어차기와 비슷한 이야기인데요. DDT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죠. DDT가 환경에 특별히 해로운가, 아무리 해롭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거죠. 게다가 DDT가 그렇게 환경을 파괴하는 약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나온 바 있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제한적으로 다시 쓰고 있다는데, 그때 DDT를 금지시킴으로써 말라리아가 박멸 직전까지 갔거든요. 유일하게 말라리아를 박멸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115쪽

지 : 숙주의 몸에서 알 듯 모를 듯 기생하면서 숙주를 해치지 않는 것이 기생충의 정의 중 하나인 것 같은데요. 말라리아는 숙주를 죽게 하는 일이 너무 많은데, 왜 그런 것 같아요?
서 : 모기가 종숙주고, 사람은 중간숙주기 때문에 그런 거죠. 중간숙주는 잠시 머무는 숙주고, 종숙주는 기생충이 그 안에서 출산도 하고 남은 여생을 보내야 할 숙주니, 대접이 다를 수밖에요.
-116쪽

의과대학이라면 기생충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맞다고 봐요. 루게릭병이라고 있는데요, 그게 빈도가 10만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는 굉장히 드문 질환입니다. 그런 병에 대해서는 배우면서 백만 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는 기생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지 : 루게릭병은 영화 소재로 쓰이기도 했잖아요.
서 : 드라마에서 불치의 기생충에 걸린 사람을 해주면 좋겠는데요. 불치의 기생충이 없는 게 문제라는 거죠. 기생충에 걸린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해도 약 한 알이면 낫기 때문에 드라마에 쓸 수가 없어요.(웃음)
-130쪽

의학 관련 논문은 앞부분을 ‘초록’이라고 하잖아요. 초록 중에서도 결론만 읽으면 되는 건데요. 그걸 읽으려면 중학교 정도의 영어 실력이면 가능합니다. 저는 이런 걸 중고등학교 때 가르쳐주면 좋겠어요. 의학 사이트에 가서 논문 읽는 방법에 대해서. 1시간 정도면 투자하면 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런 식으로 광고성 기사나 사이비 책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약간의 검색 기술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러면 자기가 아플 때도 도움이 되죠. 무조건 의사한테 ‘알아서 고쳐주시오’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부를 하면서 답을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172쪽

미국에 쉰 정도 된 독신녀가 있었어요. 그 사람이 베트남에서 아이를 하나 입양했는데, 입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이가 아팠어요. 의사는 면역결핍이라고 우기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려고 하는데, 이 여자가 혼자 공부를 해서 의사보다 많이 알게 된 거예요. 의사는 애초의 진단을 고집하고 여자는 아니라고 싸웠는데요, 결국 그 여자분 말이 맞았어요. 단순한 영양 결핍. 지금은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데요. 그러려면 인터넷에 일반인이 올리는 글을 읽지 말고 의학 논문 사이트에 가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실력 정도면. 초록 몇 줄만 읽으면 되는 거니까.
-173쪽

전 우리나라 재벌들이 제빵이나 치킨 같은 것에 끼어들기보다는 제약 사업에 좀 진출했으면 좋겠어요. 반도체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약인데, 제대로 하나만 개발하면 엄청난 국익을 창출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장하준 교수는 재벌 체제를 일정 부분 옹호했어요. 제대로 된 제약 회사가 되려면 수많은 투자가 필요하니까요.
-178쪽

CT를 찍을 일이 있어서 찍어야지, 건강검진을 위해서 CT를 찍는 것은 과잉이라는 거죠. 특히 심장 CT를 찍는 것은 더더욱 말도 안 되는데요. 우리나라 건강검진 중에서 가격이 비싼 검진이 있어요. 정밀검진이라고 하는데, 정밀검진은 알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알게 해주는 불필요한 검진이에요. 내 폐에 사마귀가 나 있다, 이런 것을 알아서 뭐하겠어요. 알면 괜히 이상하게 숨이 더 가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안 좋잖아요. 아무 문제 안 일으킬 일인데.
-199쪽

의사들의 문제가 그거잖아요. 주변에 의사 친구 말고는 다른 친구가 없고, 다 의사끼리만 놀고. 의사끼리 모여서 우리는 잘났고 너네는 못났다, 이런 특권 의식이 굳어지다 보니 소통이 안 되는 거죠. 의사들끼리는 당연해 보이는 일이지만 다른 애들이 보면 ‘놀고 있네’ 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고, 이게 점점 쌓이면 엄청난 괴리가 발생하는데요. 그걸 극복하려면 책을 읽거나 아니면 일반인들 하고 많이 대화를 하고 그래야 되는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286쪽

지 : 없어져야 될 대표적인 편견이 어떤 게 있나요?
서 : 기생충이 해를 많이 준다는 것이 제일 큰 편견이고요. 두 번째로 기생충은 징그럽다, 이것도 약간 편견이 있는 거고요. 하나하나 보면 귀여운 구석도 있는데요. 물론 징그러운 것도 있죠. 저도 회충은 징그럽다고 생각하지만 안 그런 것도 많은데, 기생충은 다 징그럽다고 생각하잖아요. 마지막으로 기생충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포감이 제일 큰 편견인 거죠.
-303쪽

사람들이 진보적 정치인에 대해서는 잣대를 엄중하게 들이대는 것 같아요. 사실 보수 쪽 보면 일관성은커녕,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여전히 행세하고 있는 반면에, 진보 쪽은 같은 편의 정치인에게도 지나치게 요구를 많이 하고, 한 번 찍히면 끝이잖아요. 다시는 용서를 안 해주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 편의 싹을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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