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민변의 기록 - 세월호의 진실에 관한 공식적 기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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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금요일에 올라오던 김어준의 파파이스가 결방을 했는데(휴가 갔나??) 그 프로에서 '미친김감독'으로 불리는 분이 계시다. 이분이 세월호 관련 영화를 만들고 계시는데, 매번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사실들을 오픈해 오셨다. 최근에는 세월호에 뭔가 강력한 게 부딪혀서 난간이 휘어진 것을 보여주었는데, 부딪치던 순간 잠자던 승객이 벌떡 일어나고, 난간에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장면이 있었다. 대체 그 정체가 무엇인지 많이 궁금하다. 세월호는, 파면 팔수록 더 수상하고 더 끔찍하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찍어둔 사진을 보는 것도 참 괴롭다. 



어제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백 투 더 비기닝'이라는 영화를 소개했다. 타임머신을 발견한 아이들이 과거로 돌아가서 한 일들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 뭐 그런 내용 같았다. 만약 타임머신이 발명되어서 내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을 할까. 일단 당첨자가 안 나와서 누적된 복권 기금이 있는 주간으로 가서 당당히(?) 로또에 당첨되는, 그런 무의미한 상상도 당연히 해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세월호 생각을 했다. 사실 이건 지난 416 직후에도 자주 했던 생각이긴 하다. 배의 구조적인 침몰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배를 타지 말라고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그게 안 된다면 가만히 있지 말고 당장 바다로 뛰어들어서라도 배에서 탈출하라고 전달만 해도 좋겠다고,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역시, 가슴 아프고 무의미한 상상이다.



저 100% 생존율이 아득하기만 하다. 가장 생존율이 희박했던 게 교사였구나. 저 교사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서 죽음을 달리 대접했지. 비러머글!



'전문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건가?



메르스 때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땠더라? 



경향신문 기사에 박대통령의 위기 대응 4원칙 "모른 척한다"라는 기사 제목이 퍼뜩 떠오른다.



구조를 '말'로 하는가?



7시간, 반드시 밝혀야 한다. 반드시...!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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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 - 소월 탄생 110돌에 새로 읽는 작가세계 시인선 1
김소월 지음, 김선학 엮음 / 작가세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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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이라는 제목의 오디션 프로가 있었다. 2회인가 3회인가까지 하다가 어느 순간 끝나버린 이 프로에서 윤상이 멘토로 나왔는데, 멘티 중에 '소월에게 묻기를'이라는 곡을 부른 전은진이 있었다. 그때 처음 이 노래를 들었는데 시인 김소월을 소재로 이토록 아름다운 곡이 있다는 것에 감탄 또 감탄했다. 개인적으로 윤상은 가수보다 작곡가 쪽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그가 부른 노래로는 이렇게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데, 그가 만든 곡으로는 감동 받은 적이 꽤 많다. 전은진의 곡을 듣고 정훈희의 곡을 들었더니 또 와우! 명불허전!이라고 생각했다. 책 이야기 하기 전에 노래 먼저 듣고 가자. 



새삼스럽게 김소월에게 다시 꽂힌 건 이 노래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 김소월의 시를 꽤 좋아했다. 그의 정겨운 시어와 일상에서 유리되지 않은 소재도 좋았고, 충분히 여성스러운 그 감수성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던 시들은 모두 이미 알고 있던, 이전에 접해 보았던 시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불과 백년 조금 전의 시인데, 시어가 지금 쓰는 말과 아주 많이 달랐다. 그러니까 밑에 각주가 꼬박꼬박 붙어야 하는 시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 조금만 현대 입말로 바꿔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만큼. 그래서인지 이미 알고 있던 시들, 그래서 각주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익숙한 시들만이 다시금 내 가슴을 울렸다. 구관이 명관(?) 느낌이기도 하고 익숨함의 힘이 얼마나 센지 새감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내 가슴을 울린 시들을 옮겨 보자.


먼후일

 

먼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리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리면

「믿기지 않았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16쪽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그해에 처음 교사가 된 새내기 선생님이셨다. 가장 좋아하는 시가 이거라며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시를 읊어주셨는데,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는 성격인지라 시를 그대로 '읽으'셨다. 정말 딱딱하게. 당시에도 이 시의 내용이 참 아련했는데, 좀 더 부드럽게, 좀 더 몰입해서 들려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그때도 나는 했더랬다. 잊었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그냥 잊은 것이 아니라 그리다가, 믿기지 않아서 잊었다고 말한다.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먼훗날 잊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설명하든 다 잊은 것. 결과는 똑같지만 시가 어디 그렇던가. 마음은 또 어디 그렇던가. 먼훗날 잊었다는 이 고백이 나는 위로가 되었다. 단숨에 돌아서서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그 사실에, 거기에 남겨진 마음에 아주 조금 덜 서럽게 느끼는 것이다.


초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어!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어!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어!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자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으 산 우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음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사랑하던 그 사람이어! -152쪽


어느 한 구절도 버릴 게 없다. 첫 단락부터 마음을 산산이 부서버린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일제 강점기 시절의 시들은 아무래도 암울했던 조국의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수많은 '님' 연인이기도 하고 종교적 절대자이기도 하고 국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소월의 시는, 그저 내가 사랑 하는 '님'  하나라고만 명명해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그래도 될 것 같다. 


 

어제도 하로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

어디로 갈까.

 

산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마소 내 집도

안주 곽산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아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전혀) 갈길은 하나 없소. -162쪽


이 시도 노래가 있다! 내가 분명히 아는 노래인데, 그게 어떻게 아는 곡인지 모르겠다. 교과서에 실린 곡이었는지, 혹은 가곡이나 민요처럼 불렀는지도 정확히 모르겠다. 하여간 노래가 있다. 노래도 생각난다. 아, 이게 참 신기하다. 소월의 시들은 정말 그 자체로 '노래'다. 곡을 붙이면 덜언래 것 없이 가사가 된다. 진정 천재 시인! 새삼 그의 이른 죽음이 가슴 아프다.


그런데 노래 하면 역시 이 곡(시) 아닐까!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180쪽

 

반어법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얼마나 붙잡고 싶은지, 얼마나 매달리고 싶은지 절절하게 와 닿는다. 


이 시를 부른 가수는 역시 마야가 떠오른다. 엄청난 락보컬로 불렀는데, 그게 또 이 섬세한 시어와 어울린다는 게 몹시 신기했다. 


기왕에 노래 이야기를 했으니 마무리도 노래로 가 보자.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곰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모심타(무심하다)」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님의

무덤엔 풀이라도 태웠으면!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송골매' 편이었나 보다. 알리가 부른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에 흠뻑 반했었다. 그 전에는 몰랐던 노래였다. 가사가 훌륭해서 빠져들었고, 이 역시 소월의 시라는 걸 알고 또 감탄했다. 아, 좋아 좋아, 너무 좋아!!

그렇지만 소스보기가 안 되어 있어서 이 화면은 콘서트 7080 걸로 가져왔다. 아쉽아쉽!(그나저나 알리는 금발이 참 잘 어울리네. 나도 해보고 싶다. 금발 머리!)

고락에 겨운 입술-이 표현이 참 좋다. 순수 우리말이 주는 매력도 크지만, 때에 따라서는 한자어가 주는 무게감도 참 매력적이다. 소월에게 미안하지만 이 시는 원래 시보다 노래의 가삿말이 더 끌린다. 하하핫, 음악이 더해준 매력 때문일 것이다. 필시.

'만약'은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이런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일제강점기가 아닌 지금같은 세상에 살았어도 장수하지는 못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며칠 전 을지로3가에 갔었는데 거기에 고당 조만식 기념관이 있었다. 소월의 문재를 알아봐주신 은사님이라 새삼 더 반가웠다. 비록 들르진 못했지만...;;; 암튼 마찬가지 이유로 김억 선생님께도 감사감사!

소월의 시는 좋았지만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편한 우리 말로 다듬어진 시집으로 다시 만나고 싶다. 한국 정서에 참으로 걸맞는 소월의 시를, 오늘날의 정서로도 오롯이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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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놀이 2015-06-15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흘러도 역시 소월엔 특별함이 있지요...
소월의 시를 노래로 듣고 싶으시다면...박지만의 앨범 <김소월프로젝트-그사람에게>를 추천합니다. 원없이 앨범 하나가 오롯이 소월의 노래! 소월의 시는 그 자체가 노래이기에 가락이 더해질 때 더 사무치는 것 같아요^^

마노아 2015-06-15 21:17   좋아요 0 | URL
우와, 이런 앨범이 있었군요! 그야말로 특별한 프로젝트입니다. 아, 그런데 애석하게도 절판이네요.
음원이나 유튜브 쪽을 알아봐야겠어요.
시 자체가 노래라는 게 적확한 표현 같아요. 이런 감성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_<)

hnine 2015-06-1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월은 제게도 첫시인이지요. 저는 중학교1학년때 국어선생님이 아이오프너 역할을 해주셨지요.
나중에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소월의 시의 `님`을 조국의 현실로만 해석하려는 것은 약간은 억지이고 과장일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마야라는 가수의 진달래꽃을 들을 때 그건 파격이었어요. 그 시인의 그 시를 어떻게 저런 노래로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고, 그래서 좋아하지요.
노래와 시와 역사.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마노아 2015-06-15 21:24   좋아요 0 | URL
`첫시인`에 참 걸맞는 이름 같아요. 소월은요.
한용의 님을 사랑하는 님 하나로만 해석하는 것은 너무 지엽적인 것 같은데, 소월의 님은 확대 해석하면 넘쳐서 지나친 기분이 들어요.
마야의 진달래꽃 파워는 정말, 아주 쇼킹했던 기분이 들었지요. 그렇게 락킹하게 불러도 진달래꽃은 여전히 절절하다는 게 또 놀라웠어요.
오랜만에 만난 소월이 참 반가워요. 종종 이렇게 만나봐야겠습니다.^^

푸른기침 2015-06-1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때 친척 누나의 책장에 있던 소월시집을 읽은게 첫 기억인데,, 그 이후론,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오히려 안 보게 되더군요. 마노아님 덕분에 다시 소월의 시나 뒤적여야겠습니다.
좋은 노래도 잘 감상하고 갑니다.
굿밤요

마노아 2015-06-16 23:46   좋아요 0 | URL
첫사랑 같은 이름이에요. 오랜만에 꺼내보아도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참으로 정겹습니다.
이렇게 가끔 의도하지 않은 책을 만나는 재미가 커요.
푸른기침님도 늦은 밤 편안하게 보내셔요~ 굿밤요!
 
세월호 이야기 - 동시인.동화작가.그림작가 65명이 모여 쓰고 그린
한뼘작가들 지음 / 별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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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명의 동시인, 동화작가, 그림작가가 모여서 쓰고 그린 세월호 이야기다. 너무나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고, 대형사고가 툭툭 터지는 대한민국인지라 이 정도 규모의 재앙도 이제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사례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지금이야 메르스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라지만, 그 직전에도 체감되는 세월호 온도는 낮았다. 중국에서 침몰한 유람선을 보며 다시금 세월호를 생각해 본다. 참 아픈 이름이다.

사람은 배가 아니다.

 

 

김하늘 글/박희경 그림

 

 

배는 침몰할 수 있다

물건이라서

사람은 침몰할 수 없다

생명이라서

 

배가 침몰했다고

사람까지 가라앉으면 안 된다

 

배는 바다가 삼켰어도

사람은

사람이 가라앉혔다

 

배를 삼킨 바다는 가만있어도

사람은 가만있으면 안 된다

 

배는 천천히 건져도

사람은 늦으면 안 된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배가 침몰했다고 사람까지 가라앉으면 안 돼지.

배는 천천히 건져도 사람은 늦으면 안 되었던 거지.

포기하는 건 더더욱 아니될 말!!!

 

 

이목이 용 되던 날

 

홍승희 글/그림

 

(...)

이목은 놀랐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천년 동안 한 번도 흘려 본 적이 없었던, 눈물은 곧바로 동그랗게 굳어 여의주가 되었다.

"슬픔에는 놀라운 힘이 있구나."

여의주를 입에 문 이목은 온몸에 하얀 비늘이 돋아 달빛 아래 빛이 났다. 백룡이 휘휘 바닷물 회오리를 쳐서 넋들을 등에 태웠다. 그리고 천천히 하늘로 올랐다.

 

이무기도 함께 울다가 용이 되었는데, 어찌 그 슬픔을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눈물이 공감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억지로 흘리는 눈물에 진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누구라도 알아챌 수 있다. 대한민국호에 구멍난 건 아닐까 참으로 불안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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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영혼의 여행 - 소크라테스 편 철학그리다 시리즈 1
장 폴 몽쟁 지음, 박아르마 옮김, 얀 르 브라스 그림, 서정욱 해제 / 함께읽는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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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라는 신탁이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신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 하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일종의 '도장깨기' 느낌?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불리던 이들을 만난 다음 소크라테스가 내린 결론은 그 자신 스스로의 무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의 이런 결론은 사람들의 반발을 샀다.

 

 

심플한 그림과 여백의 넉넉함. 그리고 우측 상단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 묘사와 오고 갔던 대사들...

그림책 보듯이 쉽게 접근하라는 손짓으로 보이는 구성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용까지 쉽지는 않다. 쉽게 썼는데, 그 쉬운 내용에 퐁당 빠지기는 쉽지 않다.

철학에 대한 두려움 반 거부 반이랄까.

 

 

500명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이 투표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당을 벌기 위해 배심원단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크라테스의 경우 아테네가 믿는 신을 믿지 않은 중죄에 해당되어 무려 500명이나 참석하게 된 것이다.

투표 결과 유죄 280표, 무죄 220표가 나왔다. 30표만 더 무죄표를 받았더라면 그는 풀려났을 것이다.

 

 

정의를 지키면서 정치를 하려면 목숨을 오래 부지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 콱! 눈에 들어왔다.

공감이 가서 더 서늘한 지적이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고 독배를 받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조금 있었다. 보통은 재판 직후 바로 형집행이 되는데 축제가 겹치는 바람에 형 집행이 뒤로 밀린 것이다. 그 바람에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과 생을 정리할 시간을 확보했다. 그의 제자들이 스승님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그에 관한 기록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상상해 본다면 이 괴짜 철학자의 삶은 제법 근사한 마무리 같았다.

독배를 마시는 게 멋진 죽음은 아니지만 그는 70세까지 살았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했다. 그리고 분명 그가 해낸 것보다 더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해제를 붙인 철학자 서정욱의 글이다. '데몬'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서 나왔구나!

제목도 마음에 들고 그림도 좋고 구성도 좋았지만, 내가 이 책을 잘 소화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그림책 보듯이 쭉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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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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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다

진다

 

꽃은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19쪽

 화무십일홍이라고 했지...


 

씨와 열매 사이에는 세월이 있다.

그것은 비, 바람, 곤충의 습격을 견디는 시간.

어떤 씨도 세월을 생략할 수 없다.-21쪽

 질러갈 수 없다. 누구도. 그건 참 공평하네......



 

봄에게 배울 점은 딱 하나, 뛰어난 위치 선정이다. 겨울 다음이라는 위치선정이다. 추운 겨울이 없었다면 봄은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평범한 계절이었을 것이다. 내 능력을 키우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곳에 나를 데리고 가는 일이다.-22쪽


겨울 다음에 다시 가을이, 그리고 여름, 그 다음에 봄이 와서 다시 여름으로 회귀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어릴 적에 생각하곤 했지. 너무 급작스러운 온도 변화 때문에 말이야...


 

큰방이 큰방인 것은

곁에 작은방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방이 사라지는 순간

큰방은 단칸방이 된다. -29


옷방이 있고 욕실이 있고 주방이 있고 서재가 있고 공부방이 있고 다용도 룸이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다만 칸막이가 없을 뿐......


 



삶은 한 장의 풍경화.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물이 흐르는 풍경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풍경화. 때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풍경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풍경화. 시시하고 지루하고 하품 나오는 풍경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조금은 특별한 풍경화. 그림 속 어딘가에 내가 등장하는 풍경화. 그러니까 풍경화 속에 자화상이 들어 있는 풍경화. 자화상이니까 내 손으로 그려야 하는 풍경화. 하루에 점 하나라도 찍어야 하는 풍경화. 붓이 없으면 손에라도 물감을 묻혀야 하는 풍경화. 먼지가 쌓이면 안 되는 풍경화. 먼지 대신 세월을 쌓아야 하는 풍경화. 세월이 쌓이면 깊이가 쌓이는 풍경화. 깊이가 쌓이면 쉽게 탈색되지 않는 풍경화. 남의 집에 걸어놓을 수 없는 풍경화. 남에게 보여 주는 일에 정신 팔리면 안 되는 풍경화.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게 다 보여줄 수도 없는 풍경화. 남에게 같이 그리자고 조를 수도 없는 풍경화. 누구나 딱 한 장씩만 그려야 하는 풍경화. 처음부터 다시 그리겠다고 떼를 쓰면 안 되는 풍경화. 하지만 실수나 실패가 얼마든지 허용되는 풍경화. 잘못 그은 선, 잘못 칠한 색도 그 위에 덧칠을 하면 다 용서가 되는 풍경화. 등을 돌리지 않는 풍경화. 기다려 주는 풍경화. 그러니 쉽게 찢어서도 안 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아서도 안 되는 풍경화. 다 그리고 나면 누구나 ‘그리 나쁘지 않았던 여행’이라는 똑같은 제목을 붙이는 길고 긴 풍경화. -44


내 손으로 그려야 하는 풍경화... 먼지 대신 세월을 쌓아야 하는 풍경화... 그리 나쁘지 않았던 여행이었다고... 

우리 모두 그리 말할 수 있는 풍경화 한폭 그려내야지. 암 그래야 하고 말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안 심은 데 안 난다.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심는 것은

 

콩이나 팥이 아니라

안이다.-59



그래, 그러니까 로또에 당첨되려면 로또를 사야 하지 않겠어?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끝내는 것이다.

 

저지르는 게 반,

믿는 게 반이다. -63

 그 믿음이, 참으로 힘들단 말이지. 무엇보다도 나를 믿어내는 게 말이야. 

 


 

탑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쌓는다고

한다.

노력

위에

노력을,

정성

위에

정성을

쌓아야

탑이

솟는다.

 

Top도 그렇다. -66

글의 모양도 탑같네. 의도된 글자 쌓기...



 



별을 보려면 하늘을 보지 마세요. 땅을 보세요. 당신의 발끝 1cm 앞을 보세요. 그래요., 그곳이 별이에요. 당신도 별에 살지요. 너무 가까워 잘 보이지 않는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 살지요. 우리의 눈은 지독한 원시.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잘 보지 못하지요.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가까이에 있는 행복도.-97쪽



이런 문장 앞에서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는 썰렁한 지적질은 하지 말자.

 


 

왼손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오른손을 만나는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라고

친구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라고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손을 주었다.-104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자. 그 손이 언젠가 나를 향해 뻗어올 것이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아름답다, 의 첫 글자는

아!

감탄사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탄부터 하라는 뜻이다. 느낌을 억누르지 말고 감정이 시키는 대로 반응하라는 뜻이나. 너무 깊이 들여다보지 말고 너무 세세히 분석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려는 사람이다.

 

불쌍하다, 의 첫 글자는

불!

부정이다. -118


안 될 이유부터 찾는 당신, 변명만 찾는 그 입을 닫으라. 



 


 

깊은 밤이면,

잠 못 드는 새벽이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외로운 척한다.

 

마치 낮엔 외롭지 않았던 것처럼. -142


모두들 그만큼 외롭다. 그러니까 혼자만 서러운 척은 이제 그만... 


 

결혼은

 

격이 맞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결이 같은 사람과 하는 것이다.

 

격혼이 아니라 결혼이다.-174


그 결맞는 사람,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일단 좀 보여달라, 달라, 달라......

 


 

총은 불법 무기이고 입은 합법 무기이다.

 

기능은 같다. -186



말로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말로 입힌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새삼 깨달았던 지난 한주이기도 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말들, 내가 들었던 그 말들...

당장 떠오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워지지 않는다. 버려지지 않는다.

이고 지고 새기고 가야 한다. 그러니, 그 입을 조심하라. 아주 살벌한 무기이니까.



 

신은 당신을 위해 인생이라는 곡을 만들었고 가사는 붙이지 않았다. 가사는 당신 몫으로 남겨 놓았다. 신 작곡, 당신 작사.이 얼마나 행복한 작업인가. 자, 이제 악보 한 귀퉁이에 신이 육필로 쓴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펜을 들면 된다.

 

어떤 가사를 붙여도 좋습니다. 후렴이 있어도 좋고 2절, 3절이 있어도 좋습니다. 사투리도 좋고 비속어도 좋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마구 쓰십시오. 하지만 딱 하나, 표절만은 안 됩니다. 남의 인생을 당신이 노래할 이유는 64분의 1박자만큼도 없습니다.-244




 가사처럼, 제목도 아직 미상입니다. 완성해 가는 중이라고요...


 

인생이 여든이라면

서른아홉은 아직 오전이다.

 

마흔도 쉰도

한낮이다.-294쪽


몹시, 위로가 되는 시간 알리미!


 


 

진주를 품은 조개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다.-307쪽



가장 큰 무기도 될 수 있지만, 또 그만큼 위력적인 힘이 되어줄 수도 있는 그 입... 부디 소중히 다물고 있으라. 진주를 품듯이... 진주는 못 되어도 쓰레기는 품지 말아야지...


한글자로 된 아름다운 말들,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카피 달듯이 예쁘게 포장한 책이다. 기획이 신선하고 재미있는데, 때로 그 '한글자'에 너무 집착하느라 억지스러운 것들도 물론 있었다. 그렇지만 다 보고 나서 아 예쁘다~ 소리는 절로 나온다. 오래오래 두고 볼 정도는 아니라도 말이지.


리스트 중에 '왜'는 있었던가? '응'은? 아마도 '강'은 있었겠지? '공'은? '돌'도 좋다. '눈', '코', '귀'.. 소중한 한 글자가 아주 많다. 찾아보면 더 나오겠지. 한글자 아니어도 좋은 것들, 필요한 것들은 물론 많지만, 한글자의 여운이 크다. 가벼워서 더 무거운 한글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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