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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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씨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은지 오래 지나지 않았는데, 미안하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으니 확실히 내공이 비교가 된다. 여사님 참으로 정정하십니다! 에헴...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준비 운동이었다.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 그림을 실으면서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을 간략하게 소개했는데, 그 책을 읽고서 이 책을 이어서 보니 확실히 이해가 더 쉬웠다. 그때 그 그림과 그 설명이 이 부분이었구나! 하고 맞닥뜨리는 반가움이 이 시대를 이해하는 데에 제법 도움이 되었다.  

로마인 이야기로 알게 된 시오노 나나미는 책을 읽는 동안 나를 무척 열광하게 만들었었다. 그녀가 그려내는 권력자들과 실력자들은 타고난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그들의 부도덕한 부분마저도 매력으로 승화시켰다. 그것이 시오노 나나미의 위험한 점이기도 한데 나쁜 남자에게 끌리듯이 그 마력을 거부하기 어려웠다. 그것이 그녀가 갖고 있는 불편한 성향 때문이라고 쉽게 진단하기도 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생각을 수정하게 되었다. 그녀 자신이 승자에 대해서 과하게 편을 들어주는 부분이 있다고 여전히 여기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일에 더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제는 십자군 원정을 聖戰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없지 않던가. 그들이 종교를 팔아서 얼마나 무수한 사람을 죽이고 입이 쩍 벌어지는 만행을 벌였는지는 많이들 알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굳이 반복할 게 아니라 중세인의 시각을 고려해서 눈높이를 맞춰 설명해준다는 것이 시오노 나나미 화법의 장점이고 매력이다. 그랬기에 이 책의 최고 명대사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문장이 힘을 갖는다. 신이 원하신 전쟁이니 당장 예루살렘으로 향하라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오만한 명령이 동시대인으로는 신이 내린 명령으로 충분히 들렸을 것이다.  

총4부작으로 구상하고 있는 이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에선 1차 십자군 원정을 다루고 있다. 성공했고, 그리하여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던, 가장 '십자군' 다웠던 십자군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컸다. 다음 권에서는 이 정도의 지면을 할애해서 하나의 원정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분량적으로도 말이다. 

지구력이 강한 저자답게 십자군 원정이 제창되기까지의 배경과 기독교도인들의 반응, 그리고 성전을 외치며 일어선 무수한 기사들의 면면을 차분히 지면에 쌓아주었다. 은자 피에르와 민중십자군, 그리고 여기에 목숨과 명예를 건 많은 제후들도 차곡차곡 설명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유럽의 왕과 제후들, 기사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엿보는 재미도 제법 건졌다.  

지중해를 너머 중동 지방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에서 보인 동로마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의 꼼수와, 거기에 반응하는 제후들의 모습도 대조적이어서 즐거웠다. 사람의 언행은 그 사람의 속내를 잘 드러내 주어서 허투루 볼 수가 없다. 알렉시우스와 맞먹는 꼼수 대왕으로 툴루즈 백작 레몽 드 생질이 있다. 가장 연장자였지만 철딱서니 없는 것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보에몬드와 탄크레디의 활약은 무척 눈부셨는데, 특히 가장 과감한 행보를 보인 탄크레디의 젊은 기질은 몹시 매력적이었다. 중세인치고는 과하지 않지만 현대인의 눈으로는 지나치게 이른 죽음이 안타까울 만큼 말이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 십자군들도 충분히 자신의 이익을 반영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그래도 공동의 목표인 성지탈환 앞에서는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이슬람인들의 사분오열은 형제와 친척관계도 소용이 없어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들이 이 싸움을 '종교싸움'으로 아직 인식하지 못했기에 놓치는 부분들이 분명 많았지만 매번 기회를 놓치고 마는 모습에선 또 다시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신이 그것을 계속 바라시지 않았다는 것을 200년에 걸친 전쟁의 역사가 또 증명하지만. 

많은 문장들에 줄을 그었다. 그어지지 않은 문장이 별로 없을 만큼 많이 그었다. 마지막에는 다음 권의 '예고'에 해당하는 마무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시오노 나나미에게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십자군의 제1세대가 만들어내고 확립한 십자군 국가를 그후의 사람들이 어떻게 지켜내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이 왜 굳이 이 멀리까지 온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 허를 찔리기 일쑤였던 이슬람측이 조금씩 태세를 정비해갔으므로, 이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예상하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먼저 행동한 것은, 십자군 제1세대의 퇴장으로 생긴 공백을 유럽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느끼고 있던 현지 사람들이었다. -345쪽

 
   

공교롭게도 오늘은 1187년에 살라딘이 십자군에게 빼앗겼던 예루살렘을 90여년 만에 다시 탈환한 날이다. 미안 십자군! 아직까지는 살라딘이 더 매력적이야. 2권의 발행을 즐겁게 기다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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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0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자군 이야기는 항상 읽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전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 유명하다 하기에 관심은 있으나 읽지를 않는 아주 무서운 독자죠. ^^ 흠...근데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시오노 나나미라 참 고민이기는 합니다.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참으로 주말 저녁의 고민입니다. 하하하 근데 역사적 고증을 시오노 나나미가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런 가치가 있다면 좋죠..

마노아 2011-10-04 10:16   좋아요 0 | URL
디테일한 자료 조사에 대해서 늘 혀를 내두르게 되어요. 무척 꼼꼼한 분이시죠. 읽고서 지나치게 신앙화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럴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 여씨와 유씨 - 건설과 숙청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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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이야기 3권은 여씨와 유씨가 소제목이다. 나라의 주인이 된 후의 이들 부부의 모습인데 서로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는 꽤 궁합이 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향하는 바가 같았달까. 다만 유방은  유씨 천하를 원했고, 그의 사후 여후는 여씨 천하도 가능하다고 믿었던 게 다르지만. 

역사의 패배자로 사라졌지만 인간적인 매력으로는 항우가 유방을 더 앞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사마천의 영향일 것이다. 이 위대한 역사가는 또한 문학가이기도 해서 정치적 패배자였던 항우와 한신 등에게 문학적 영생을 안겨주었다.  

 

척씨 부인과 여후의 대립 구도도 비슷하다. 척부인의 행보를 보면 담대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지혜는 부족했던 듯하다. 하지만 사마천에 의해서 그녀는 가련한 여인으로 재탄생했다. 그림속 척부인의 입술에 세모꼴 연지가 발라져 있다. 당시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에선 이런 소소한 것들을 챙겨보는 재미가 제법 크다.  

오른쪽의 여후는 척부인과 대조적으로 새하얗게 샌 머리가 세월의 힘을 보여주지만 눈빛은 여전히 강렬하고 투쟁적이다. 

 

토사구팽의 어원은 한신이 시작이 아니지만, 한신으로 인해 이 고사성어가 유명해진 것은 사실이다. 한신의 죽음에 대해 후대인들은 또 안타까움을 표현하곤 하지만, 그의 처신이 현명했던 것은 분명 아니다. 그도 나름대로 열심히 계산하고 재고 발도 빼가면서 유방을 상대했다. 철저한 충성을 바쳤던 것은 아니다. 물론, 그의 도움으로 천하의 주인이 되었는데 그렇게 차갑게 버린 비정한 처사를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또한 한신이 자신을 낮추고 몸을 사렸다 하더라도 유방과 여후가 그를 살려뒀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장량이 역시 훌륭하다. 신선이 되겠다며 정계를 은퇴한 것이다. 사마광은 그가 몸을 사리느라 그랬다지만, 장량이 신선사상에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역시 일석이조를 챙길 줄 아는 장량이다. 

유방의 눈은 매우 음흉하게 보인다. 꽤 능글맞고 능청스러운 그의 성격을 표현하고자 그랬나보다. 그런데 눈동자의 저 색은 공포 영화 '주온'을 떠올리게 해서 자꾸 놀라게 된다.  

유방은 군사나 나라 살림이나 모든 면에서 자신이 거느렸던 신하들보다 능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그 사람들을 거느리며 움직였다. 그게 유방의 능력이고 또 그가 제왕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이다. 지극히 동양적인 지도자의 자질이다.  

사마천이 보기에 리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이른바 용인(用人), 즉 사람 쓰는 능력입니다. 지도자 본인이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출 필요는 없으며, 다만 각 분야 능력 있는 인재들의 마음을 얻으면 충분하다는 사상이지요. 이러한 생각이 2천여 년을 내려오면서 동아시아의 독특한 지도자상을 형성했어요. <삼국연의>의 유비나, <수호지>의 송강, <서유기>의 삼장법사 등, 이렇게 무능력한 리더들이 다른 문화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37쪽 

 진나라의 가혹한 법률체제로 지쳐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한나라의 내버려두기 통치 정책은 차라리 편안했을 것이다. 역시 역사는 거울이 되어준다. 그 체제로 백년을 이어갈 수는 없지만 서두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나라의 초기 재상들은 현명했다. 

후세의 어떤 연구자들은 장량을 전형적인 도가 지식인으로 이해합니다. 이전 세대 법가 지식인과는 처신이 사뭇 다르기는 하지요. 법가라면 얼핏 모질고 야박하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회 개혁 세력이었습니다. 어쩌면 사회가 서구화된 요즘, 우리에게 더 익숙한 지식인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한비자>에도 나오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버려도 좋다는 의식이 있었어요. 상앙이니 이사니 실제로 개혁에 나섰던 법가 지식인들 가운데 제 명에 죽은 사람도 없어요. 그들 덕에 바로 민중의 삶이 나아진 것만은 아니었지만요.
그러나 도가 지식인은 달라요.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거꾸로 자기 몸부터 챙겼답니다. 노자는 난세를 피하여 인간사회를 등졌지요. <장자>에는 벼슬살이에 묶였다가는 자기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철학이 등장합니다. 도가 지식인은 소하나 진평처럼 절묘한 처세술로 복이란 복은 다 누리기도 하며, 장량이나 ‘상산사호’처럼 은일지사가 되기도 하죠. 개인을 중시하는 도가 지식인의 모습은 이후로도 동아시아의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였답니다. -97쪽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세워질 때, 새 왕조 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숨어 지내던 많은 처사들. 그들의 후계자들이 훗날 사림을 계승한다. 마지막의 고려 왕조가 그렇게 의리를 지킬 만큼 훌륭했었냐고 생각한다면 전혀 동의할 수 없기에, 충신의 대명사로 꼽히는 정몽주 등은 그저 보신주의자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조선 초의 혁명파 세력들은 보다 건강했다는 느낌이다. 초기 훈구파의 모습은 훗날의 사림보다 훨씬 열린 마인드였는데 역시 시간이 지나 부패하면 더럽기는 다 마찬가지다.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권은 작년에 선물을 받았는데 저자 사인본이었다. 은색 매직으로 분홍 바탕에 사인을 했는데 고대의 한자를 연상시키는 사인이 재미있다. 원래 이런 사인을 썼는지, '한나라 이야기'답게 나름 각색을 한 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앞서 2권에서는 초한쟁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가 읽으면 너무 듬성듬성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는데, 3권의 말미에는 특별부록으로 '열두 꼭지로 읽는 <<초한지>>'가 실려 있다. 이 부분을 먼저 읽는다면 좀 더 이해가 잘 될 테지만, 책의 끝부분에 실려 있기 때문에 대부분은 마지막에 읽게 되지 싶다.  

4권의 주제는 '문경지치'다. 5권의 한무제에 비해서 좀 평화로운 색채가 나타날 것인가. 사뭇 궁금하지만 책의 출간 간격을 생각할 때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야 할 듯하다. 그래도 십자군 이야기보다는 빨리 나오겠지...

은둔생활하던 도가 지식인들을 떠올리면 자연과 더불어 욕심없이 사는, 혹은 속세를 초월한 느낌이 강하지만, 지적한대로 오히려 그들은 방관자이자 제 몸의 안일만 생각한 이기주의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리어 법가 사상가들이 제 몸을 던져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혁명적 인물로도 비친다. 물론, 그 어느쪽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지만...  
관중의 생각과도 관통한다. 그가 제 환공에게 요구했던 지도자의 조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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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2 - 항우와 유방 - 제국의 붕괴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2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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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1권은 내게 무척 파격적인 책이었다. 기존에 만나보지 못했던 진행 형식이 신선해서 매우 매력적이었던 책이었다. 1권의 주인공이 진시황과 이사였다면 2권의 주인공은 항우와 유방이다.

이 시리즈는 기존의 역사 만화들과 달리 '서사'를 가급적 줄이고 장면 장면의 연결로만 이어져 있다. 마치 사진을 느리게 돌려서 만든 영화 같은 느낌? 서사를 줄였기 때문에 초한쟁패의 주요 내용을 전혀 모르는 독자라면 이 책의 묘미는 별로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살이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대적 고증에 힘을 써서 당대의 의복과 무기, 관의 형태 등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그것이 작품의 전개에 극적인 힘을 불어넣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하나의 단점이기도 하다. 사실, 이 시대를 그려내면서 기존의 만화 같은 '배경 그림'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고증에 고증을 더한다 할지라도 상당한 양의 상상을 덧붙여야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런 특징들은 저자의 그림 특색과 맞물려서 이렇게 부조 같은 느낌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니까 이 책을 보면서 그림의 '입체감'을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다. 인물들이 그다지 동양인처럼 보이지 않는 것도 저자의 그림 스타일이라고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매 장면에 주석처럼 따라가는 짧은 설명들이 본문에서 부족한 살이 되어준다. 여백은 충분하지만 할 말은 하고 지나가는 셈이랄까.

한신이 귀족 출신이 아니라고 말한 것과, 호해가 단순한 바보는 아닐 거라는 전제 하에 진행시킨 점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우리에게 지나치게 익숙한 나머지 오히려 '객관화'해서 보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는 머리말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무의식적으로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가 흘러가던 경향이 있었으니 말이다.

동아시아의 고대사만 전설이 넘쳐나는 건 아니어서, 헤로도토스나 플루타르코스 등 서양 고대사 역시 예언과 징조로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텍스트를 낯설게 느끼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다. 반면 이미 지나칠 정도로 익숙해져버린 <초한지>를 우리는 충분히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만일 영화나 그림에서 튜더 시대의 판금 갑옷을 입은 한니발이 포병부대를 지휘한다면, 여러분은 짜증을 낼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 때의 복장을 한 항우나 유방을 보아도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전국시대 말의 유물대로 복식을 고증하면, 그게 더 낯설어 보일 것이다. 동아시아 역사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한니발과 항우가 동시대 인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깜빡깜빡 잊는다. 우리 머릿속에서 한니발은 먼 옛날 사람이지만 항우나 유방은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 4쪽

책을 마무리하며 마지막에 실린 윤성훈 가회고문서연구소 연구원의 '오랑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글도 오래 눈길을 사로잡았다. '夷'라는 글자 하나를 가지고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서 '초'나라와 초 문화를 함께 언급한 것이 좋았다. 얼마 전에 읽은 '춘추전국이야기' 3권에서 매력적인 초나라를 만났는데, 그것을 다시 확인한 기분이 들었다.    

  

초나라 지역은 거대한 장강과 수많은 지류, 안개와 비가 많은 습윤하고 온난한 기후 등의 자연 조건으로 인해 북방처럼 노동 집약적 집단 농업 경제 및 강력한 중앙 집중형 권력이 출현하기 어려웠다. 또한 물의 유연함, 거대한 대자연에 대한 경외가 뿌리 깊었다. 사회 속의 인간관계, 문화와 규율의 법칙성을 중시하는 유교가 북방의 고대 문화를 대표한다면, 인위에 대한 자연의 우위와 기존 질서를 초월한 자유로운 해방을 추구했던 도가 사상은 남방의 사유였다.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도 장강 유역에서 탄생했다. 유가와 도가 사상은 음양의 관계로 중국 문화의 양대 축을 형성한다. 산수의 아름다움에 대한 침잠과 찬탄이 결여된 중국 예술은 상상하기 어렵다. 남방, 즉 초라는 타자로 인해 중국 문명은 그 거대한 풍요를 획득할 수 있었다. – 212쪽 

 마지막으로 '漢'의 유래와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한쪽으로 정리한 부분이 이 책을 진정으로 정리한 느낌이어서 유독 좋았다. 한이라는 글자가 우리나라를 뜻할 때처럼 '나라 이름 한'이겠거니 무심히 넘겼는데 한수 한이라는 글자라는 것을 제대로 확인했다. 

유방이 세운 제국의 이름인 한(漢)은 원래 지명이다. 한은 한수(漢水)라는 장강의 한 지류를 가리키는 한자인데, 이 한수의 중상류 유역이 한중이다. 유방은 패(沛) 출신이다. 패는 원래 송(宋)나라 땅이었다가 송이 멸망한 뒤 초나라에 편입된다. 또한 거병 후 줄곧 초 항우의 휘하였으므로 그는 엄연히 초나라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사건을 계기로 유방의 아이덴티티는 극적인 변화를 맞는다.
한중은 유방과 항우의 근거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외부로부터 격절된 궁벽한 산골이 아니었다. 험한 길이긴 하여도 관중 및 촉 등 주변 지역과 교통로가 확보되어 있었으며, 한중 분지와 사천 분지는 온난하고 강수량이 풍부하여 농업 생산력도 높았다. 또한 혜문왕 이래로 진(秦)에 속하여 왔던 진나라의 고지(故地)다. 한중의 왕이 된 후 유방 집단의 성격은 크게 변모한다. 한중 시절 유방 집단은 군사 및 행정 부문에서 진나라의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였다. 이를 통해 패 지역의 토착적 군사 집단에 불과했던 유방 집단은 전국적 세력으로 급성장하였다. 이에 반해 항우는 군사적 승리를 쟁취하고도 다시 초나라라는 지역성으로 회귀해버렸다. 바로 이 점이 초한쟁패에서 유방과 항우의 운명을 갈랐다. 유방이 한왕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우연한 사건이었으되, 그가 건립한 대제국이 한(漢)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역사의 필연이었다. -213쪽

이 시리즈가 모두 10권으로 기획된 책인데 출간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어서 기다리다가 지칠까 봐 다소 염려가 된다. 줄줄줄 줄거리를 다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만 짚으면서 판화로 찍듯 각인을 시켜주는 책인 것이 느린 간격의 출간으로 찾아오는 지루함을 다소 줄일 수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2권에선 유막둥이가 패배하는 바람에 항우의 인질이 되어 있었다는 아주 잠깐의 등장뿐이었지만 3권에선 주인공으로 등장할 여태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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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7-1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락이 제멋대로 이동해서 몇 번을 수정했는지 모른다. 이런 현상이 아주 자주 발견되고 있다. 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2011-07-13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과 만화 두 장르가 적절하게 어우려졌다고 생각했던 책입니다.
처음 읽을 때는 한나라에 대한 기본 역사 지식이 얕아 사건 위주로 좇아가기가 조금 버거웠는데,
두 번째 읽으면서는 복식과 각주까지 꼼꼼하게 읽게 되면서 책을 더 즐길 수 있었습니다.
김태권 작가가 완성해가는 인문만화는 진행형이겠지만, 콘텐츠에 대한 작가의 책임감은 확실히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4권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요..

마노아 2011-07-13 20:55   좋아요 0 | URL
확실히 1권 읽을 때 좀처럼 만나지 못한 파격성에 한참 흥분했던 기억이 나요.
여타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된 특성이 있지요.
기대하는 작가분인데 벌려놓은 일이 많으셔서 다음 권은 늘 오매불망 기다려야 해요...ㅜ.ㅜ
 
춘추전국 이야기 3 - 남방의 웅략가 초 장왕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3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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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국의 강남 지역은 고대에는 변방의 오랑캐 땅이었다. 역시 당대에 오랑캐로 지목되었지만 당당히 춘추의 패자로 군림했던 인물이 초의 장왕이다. 문자는 잘 몰랐지만 유식한 그 어떤 군주보다도 대담하고 자비로웠던 이 웅략가가 춘추전국이야기 3편의 주인공이다. 영웅시대를 열었던 진 문공이 망명객 시절에 30리 씩 세 번 후퇴해 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면, 장왕에게도 그 성정을 엿볼 수 있는 고사가 있다. '절영지회'다. 촛불이 꺼진 찰나 왕을 모시던 미인에게 수작을 부린 자의 갓끈을 여자가 취했으나 장왕은 불을 켜기 전에 모두의 갓끈을 끊게 해서 그가 누구인지 찾지 않았다. 이때 목숨을 구한 이는 훗날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왕을 지킨다.

장왕이 처음 등극했을 때는 한 나라의 군주가 납치를 당했을 만큼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그런 위기를 겪은 그는 3년간 정사에 손을 놓고 관망하며 때를 노렸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났을 때에는 구정의 무게를 물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구정’이란 주나라 왕실의 권위의 상징인 아홉 개의 거대한 구리 솥으로 제후들은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던 때였다. 이후 춘추의 강국들은 모두 자중지란을 겪으며 혼란스러워할 때 장왕은 솟구치는 기세로 북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춘추의 두 번째 패자였던 진나라를 필의 싸움에서 이기며 누른다. 하지만 장왕은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그는 멈춤을 아는 드문 군주였다.

“응당 승리의 군영을 만들고 적의 시체를 모아 경관을 만드시지요. 듣건대 적을 물리치고는 반드시 자손에게 고해 무공을 잊지 않게 한다고 하더이다.”

그러나 장왕의 생각은 달랐다.

“이는 그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대저 武라는 글자는 ‘창을 멈춘다(止+戈)는 뜻이다.”

이것이 유명한 창을 멈추는 무, 곧 ‘止戈之武’라는 고사의 기원이다. 후대에 지과지무는 무인들의 이상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충무공 이순신의 칼에도 ‘지과’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203쪽

 그의 목표는 북쪽을 경계케 한 뒤 동쪽으로 뻗는 것이었다. 동쪽의 무수한 작은 나라들이 초나라 앞에 굴복했다. 초의 군사들은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심지어 성을 에워쌌을 때는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며 기다리는 군대였다. 그런 군대를 앞에 두고 성안에서 버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초의 진군 속도는 빨랐다. 무너진 동쪽의 나라들은 초의 지배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것은 초 장왕이 그들을 무력으로 억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랑캐 소리를 듣는 남쪽 땅의 군주였지만 그 덕은 중원의 도를 이미 넘어섰다. 그러니 그런 그를 중국의 정신이 놓아둘 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초 장왕의 북벌은 중국사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 ‘오랑캐 군주’가 중원의 군주보다 낫다? 오랑캐의 우월을 인정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즉각 화하인 특유의 민첩성이 발휘되었다. 물론 중원이 오랑캐보다 못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초의 오랑캐라는 꼬리표를 떼면 될 것 아닌가? 장왕 이래 초는 중국사에서 더 이상 오랑캐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전국시대가 되면 초는 대국이자 문명국으로서 위상을 떨친다. 이후 북방에서 유가와 법가 철학이 무르익고 있을 때 남방에서는 기술학과 노장 철학이 만개하게 된다. 남북의 우열 시대는 끝난 것이다. – 227쪽


하지만 초의 기세가 일방적으로 뻗어나갈 만큼 춘추 시대가 만만하지 않았다. 초의 동방 진출은 초나라보다 더 오랑캐 취급을 받던 오의 각성을 불러왔다. 춘추 시대 다음 패자가 등장할 분위기가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다. 초가 싸움에서 유리할 수 있었던 승리의 요인으로 저자는 구리를 언급했다. 또 이제 등장할 오나라는 전차가 아닌 뱃길을 이용해서 싸움에 임하고 운하를 파는 것도 설명해 준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지형적 조건이 이들의 운명을 많이 좌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자'는 구체적인 사람 이름이 아니라 책 이름이었다고 결론지은 것이 눈길을 끌었고, 마지막에 나온 저자의 초 땅 답사기도 관심을 끌었다.

3편은 1편이나 혹은 2편보다는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기는 했다. 한 인간으로서 초 장왕은 진 문공보다 내게 더 매력적이었고, 그를 보좌한 손숙오도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관료였지만, 그래도 관중의 카리스마를 넘어서진 못했다. 그렇다 해도 좀 더 후대로 넘어오니 보다 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확실했다. 더불어 피의 전국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이어서 나올 4권은 '위대한 재상들의 시대'라고 한다. 천하를 주름잡는 패자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런 패자를 있게 한, 혹은 그런 나라를 상대로 작은 나라를 지키려고 애를 쓴 빼어난 재상들의 이야기도 심장을 들뜨게 한다.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건 역시 그 안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이번 편에서도 오자가 몇 개 눈에 띄었다.

60쪽 수신제가체국평천하>>수신제가치국평천하
82쪽 그러나 초의 한 개 현은 작은 나라에 해당했다. >>문맥상 '그러니'가 되어야 할 것 같다.
153쪽 손숙오가 죽자 장왕은 그 아들에게 비옥한 토지는 내렸는데>>>토지를 내렸는데
223쪽 저의 아비 무외는 죽을 줄 알았으니 >>알았으나

그리고 내 책은 새 책인데도 앞쪽 약 60쪽까지는 제본이 들떠서 종이를 넘기자 모두 낱장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몹시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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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0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3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1-06-2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장왕은 몰랐는데, 절영지회는 좀 멋지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요즘 종종 노자가 사람이름이 아니라, 책 이름이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마노아 2011-06-23 00:30   좋아요 0 | URL
저런 고사들을 만나면 막 짜릿해요. ^^
노자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정설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테지만요.
 
춘추전국 이야기 2 - 영웅의 탄생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2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춘추전국이야기 1편에서는 춘추의 질서를 설계한 최초의 경제학자 관중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관중을 등용한 제 환공이 어떻게 춘추의 첫번째 패자가 되었는지를 몹시 드라마틱하게 서술했다. 2편의 주인공은 두번째 패자 진 문공이다. 진 문공을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는 앞서의 이야기가 성인과 영웅의 과도기적 인물이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영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그가 제시하는 성인과 영웅의 구분이 흥미롭다.

영웅이 어떻게 권력을 버릴 수 있는가? 독수리가 어떻게 먹이를 측은하게 여길 수 있는가? 권력은 바로 힘이다. 영웅은 힘을 가진 사람이다. 영웅은 권력을 버릴 수 없지만, 성인은 버릴 수 있다. 또 영웅이 어떻게 뭇 사람들의 칭송을 거부할 수 있는가? 영웅은 힘을 뿜어내고 뭇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 그러나 성인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는다. – 11쪽

성인의 개성은 독단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의 개성은 남성보다는 여성에 가깝다. 성인은 커다란 어머니다. 성인은 오직 부계사회가 고착화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날 수 있다. 그들은 모계사회의 잔영이 남아 있는 곳에서만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영웅은 다르다. 권력을 어떻게 남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영웅은 다만 사람을 모으고 적절히 쓸 뿐이다. 수컷들이 역사를 차지한 이후 ‘성인’들은 사라졌다. (...) 관중과 환공은 영웅과 성인의 중간에 있는 사람이다. – 12쪽

확실히 관중과 제 환공의 이야기는 무림 고수들이 내공을 다투는 이미지였다면, 영웅의 시대로 내려온 진 문공의 이야기는 좀 더 피튀기는 현실적인 느낌이 난다. 저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나라가 위치해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설명하고 있다. 평원에 자리한 제나라와 초나라가 풍요롭고 화려하다면, 골짜기에 위치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강한 나라를 곁에 둔 진나라는 근검절약을 일단 피부로 재현해야 했다.  

문공의 처절하면서도 굴곡진 인생은 관중 사후 춘추시대 중원의 확고부동한 패자로 부상하는 진(晉)나라의 운명과도 비슷하다. 진나라는 지정학적으로 서로는 태생이 무사인 진(秦)나라 사람들을 맞아야 하고, 북으로는 이름 자체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융(戎)과 적(狄)을 상대해야 했다. 그들은 시작부터 이들과의 난타전을 통해 성장했고, 때로는 비굴함도 감수할 만큼 정치적이었다. 이렇게 주변의 강인한 족속들과의 경쟁을 통해 성장한 진은 강골이었다. 그들에게 관중의 인(仁)한 정치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은 껍데기를 버리고 서서히 군국주의적인 본색을 드러냈다. 관중은 적이 비도덕적일 때 쳤지만 이들은 적이 약해지면 쳤다. – 15쪽 

 

(동방의 제나라와 남방의 초나라, 그리고 북방의 晉나라와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서방의 秦나라 위치를 확인해 보자. 평원과 골짜기의 차이가 선명하다. 가운데 푸른 원은 이름뿐인 천자의 나라 주다.)

망명생활을 무려 19년이나 보내고서 환국한 진 문공의 치세 기간은 9년이었다. 군주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예순이 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의 사후는 제 환공이 떠난 뒤의 제나라보다 훨씬 더 튼튼했다. 보다 현실적인 체제를 만들어냈고, 든든한 인재로 둘러싸였던 진나라의 저력이었던 것이다.

진 문공은 아버지 진 헌공은 큰 아들 태자 신생을 제거하고 애첩의 아들을 후사로 삼는다. 그 바람에 문공(중이 공자)과 동생 이오는 각자 망명길에 올라야 했고, 동생이 군주가 된 뒤에도 생명의 위협을 느꼈던 문공은 19년 뒤에서야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때 헌공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저자는 창업군주가 장성한 아들을 시샘하는 경우를 설명해 주었는데 무척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진 헌공뿐 아니라 당 태종, 그리고 청나라의 강희제도 그에 해당하는 사례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넘어온다면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는 좀 다른, 그러나 무척 비슷한 전개다.

관중과 제 환공 시대의 싸움은 무척 우아했었다. 그들은 군사를 일으켜도 피비린내 나게 싸우지 않았다. 주나라의 종법질서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싸움을 정리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진의 문공은 바로 육탄전으로 돌입했다. 전국시대의 살상전에 점점 더 가까워져 가는 것이다. 이 싸움을 재현해 내면서 인류사에서 바퀴가 차지한 역할과 전차 무기의 구체적인 사용법을 설명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중장보병들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다. 처절한 이 싸움들이 춘추 말기의 위대한 사상가들을 낳았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중국은 전쟁사의 보고다. 전쟁의 강렬한 유혹과 그 참혹한 결과를 목도한 많은 철학자들은 전쟁이라는 무서운 괴물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마련해왔다. 춘추 말기의 위대한 사상들은 모두 전쟁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것이다. 적극적으로 전쟁을 없애기 위한 이론도 있었고, 침략전만 배제하자는 이론도 있었으며, 전쟁을 통해서 전쟁을 극복하자는 이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론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전쟁 상태를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쟁의 목적, 수단, 정의 등 모든 방면에서 서양의 어떤 이론도 중국의 이론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 249쪽


개인적인 호감으로는 관중의 매력을 문공이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지만 문공의 카리스마와 정치적 탁월함이 보이는 이 일화는 그의 패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다.

중이(훗날의 진 문공) 일행은 한수를 건너 초나라로 향했다. 당시 초나라 군주는 제나라 환공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던 성왕이었다. 환공이 죽었으니 초나라는 바야흐로 더욱 성할 태세였다. 초 성왕은 중이를 아예 제후를 대하는 예로 환대했다.

"만약 공자께서 무사히 귀국하신다면 무엇으로 과인에게 보답하려하오?"

중이가 예를 올리며 짐짓 의뭉스럽게 대답한다.


"아름다운 여인과 옥, 비단은 이미 군주께서 갖추신 것이고, 깃털, 상아, 가죽은 모두 군주의 땅에서 나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이 晉나라에까지 나돈다면 그야 군주의 나라에서 쓰고 남은 것들일 따름일진대, 제거 어떻게 보답하면 되겠습니까? 제가 군주의 은혜를 입어 진나라로 돌아간 뒤, 훗날 진나라와 초나라가 중원에서 만난다면 저는 군주의 군대를 피해서 30리씩 세번 총 90리를 물러나겠습니다. 그래도 군주께서 기어이 치고자 하시면 저는 활과 채찍을 들고 군주와 겨루겠습니다." -167쪽

쫓겨다니는 망명객 신세로서 승승장구하는 초나라 군주 앞에서도 기죽지 않은 중이 공자다. 성왕이 바란 대답은 '함께 제나라를 치겠습니다'나 '정나라 이남의 일은 끼어들지 않겠습니다' 등이었을 것인데 이때 이미 중이는 훗날 진나라가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이다. 그리고 즉위 후 4년 뒤, 중원에서 초나라와 마주친 진 문공은 장담한 대로 90리를 후퇴해주고 성복에서 초나라를 제압한 뒤 춘추의 패자가 된다. 가히 영웅의 면모를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또 우리가 흔히 쓰는 융과 강, 호의 구분이 몹시 모호하고 섞여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역사 책에서조차 섞여 사용되는 용어들이니 어지러운 것이 당연하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흉노라고 부르는 이들이 곧 융은 아닌 것이다.

융과 호(흉노)는 다르다. 호는 완전한 유목민이며 기본적으로 기마궁수들이었다. 중국 북방의 여러 민족들(융적)이 역학관계에 따라 호에 속하게 되거나 화하에 속하게 되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기원전 4세기 오르도스와 산서성 북부에 출현한 흉노라는 집단은 문화적으로는 기존의 융과는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기존의 융족들은 이들의 문화를 매우 빠르게 배워갔다. (...) 여러 융적들은 화하나 흉노의 문화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니 흉노는 하나의 집합적인 정치체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일단 진 목공이 평정한 융은 아직 흉노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 308쪽


1편에서도 주인공 관중이 등장하기까지는 무려 160쪽을 기다려야 했다. 2권에서도 진 문공이 등장하기까지 150여 쪽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기다림 속에는 이들이 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혹은 될 수밖에 없던 숙명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설명해주는 데에 무척 공을 들였다. 그래서 이 방대한 땅의 방대한 양의 역사가 손에 잡히듯 무척 자세하게 그려진다. 앞장의 마무리에서 뒷장의 주제를 질문하고 그것을 받아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서술 양식은 몰입도를 높여주고 극적 긴장감까지 선사했다.

1편 마무리에서는 저자가 직접 올랐던 오악 중 세 개의 산 등정기를 보탰고, 2편에서는 서북 지역 답사기를 보태며 그 황량한 땅에서 오히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읽은 감상을 이야기한다. 현재 중국의 경제 문화는 동쪽 지역에 훨씬 치우쳐 있지만, 그 화려한 번쩍거림 속에서는 오히려 역사의 숨결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는 것에 공감한다. 600년 고도의 서울에서 역사의 숨결이 잘 안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관중에 이어 영웅 문공, 그리고 3권의 주인공은 초 장왕이다. 남방의 웅략가를 맞이하기 전에 살짝 옥의 티도 얘기해 보자.

24쪽 심하계곡을 계발하고 >>'개발'이 맞지 않나 싶다.
84쪽 공공이 아들 환공이 즉위했다. >>공공의 아들
136쪽 여생이 하는 말을 이렇다. >>>말은 이렇다.
164쪽 일종을 보험을 들어두라는>> 일종의 보험
325쪽 패자와 왕자을 섞어서 쓴다. >>왕자를

앞쪽에는 인쇄 상태가 안 좋아서 글자가 퍼져보이는 현상이 있다. 내가 가진 책은 초판 2쇄인데 혹시 그 다음에는 수정이 됐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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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6-2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락이 제멋대로 이동을 해서 몇 번을 수정했는지 모르겠다. 수정하다 지쳤어요, 땡벌!!

꼬마요정 2011-06-2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역사 중 아버지가 아들을 시샘한 가장 적나라한 예는 아마 고구려의 유리왕과 그 아들 해명태자일거에요. 뛰어난 아들에 대한 질투심으로 결국 유리왕은 해명에게 자결을 요구하잖아요. 덕분에 대무신왕 역시 아들들을 견제하게 돼서 호동과 낙랑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도 나오게 되구요..

리뷰 재밌게 봤어요. 아무래도 이 시기의 이야기는 언제봐도 흥미진진해요... 그쵸??^^

마노아 2011-06-20 20:58   좋아요 0 | URL
유리왕과 해명태자! 아주 적절한 예를 말씀해 주셨어요.
댓글 보니까 뮤지컬 바람의 나라가 떠올라서 검색을 해 보았는데 올해는 하지 않나봐요. 공연 일정이 잡혀 있지가 않네요. 이 뮤지컬에서 2006년 버전에서는 대무신왕보다 해명태자가 더 주인공 같았거든요.
까마득한 옛 일이건만 이렇게 손에 잡히게 그려주는 연구자들이 참 고마워요. 그분들의 노고가 우리의 즐거움이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