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아니 에르노를 싫어하지 않고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두 번 읽었을 정도로 좋아했다. 그래서 이번 책도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읽기 시작했는데 화자가 결혼한 후부터는 읽기가 너무 힘들어 책 던져버릴까 엄청 고민해야 했다. 그래도 아니 에르노니까, 하고 참으면서 꾸역꾸역 읽긴 했지만,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에서 느꼈던 바로 그 짜증이 나온다. 아니 에르노는 이 책에서 여자 아이가 소녀에서 자라면서 받게 되는 성차별도 얘기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얼마나 확 갈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어휴, 너무 피로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결혼하고 나면 여자들 진짜 빡세고 우울하다...는 고발만 계속할건가 싶어 답답하다. 과연 이렇게 고발만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이렇게 여성의 삶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보여주는 게 안하는 것보다 낫겠지만, 읽고 읽고 또 읽는 과정은 피로하기 짝이 없다. 이런 거 진짜 그만 읽고 싶다.


이 소설 속 화자는 외동딸이었고 상점을 하며 아이를 자유롭게 키운 화자의 엄마는 그녀에게 교육을 받게 해주면서 앞으로 쭉쭉 나아가라고, 움츠리지 말라고 한다. 이에 그녀는 어릴 적부터 가사노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넌 이런거 하지마, 넌 이런거 할 사람 아니야, 공부해서 나아가, 남자들 나아가는 만큼 나아가. 그러나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그렇게 키웠다해도 세상은 그녀를 그렇게 두지 않는다. 그녀는 힘겹게 공부를 했지만 여러차례 미래를 생각해 진로를 바꿔야 되는건 아닐까 고민하게 됐고, 그렇게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니, 같이 공부하는 입장이었는데도 집 안의 가사노동이 자연스레 자신의 일이 되는 걸 느낀다. 우리 이런거, 이미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만나지 않았나. 남자 혼자살 때 자기 빨래 자기가 했고 여자 혼자 살 때 자기 빨래 자기가 했지만, 둘이 사니까 모두의 빨래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자가 하게 되는거, 그래서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스테퍼니 스탈'도 나중에 빨래 다 창밖으로 집어 던져버렸잖아.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남편은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왔을 때, 퇴근 했을 때, 집은 자신의 휴식처이길 원하지 자기가 가사 노동에 참여하고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극장에 가고싶어 했을 때는 그 남자의 목을 쥐고 조르고 싶었다, 책을 읽는 나는.




아마 흐린 어느 일요일이었을 거다. 관광 시즌이 지나면 늘 그렇듯 우중충한 오후가 시작될 때였다. 분명히 내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우리는 점심으로 로스 비프, 강낭콩을 먹었고 아마 커스터드도 먹은 것 같다. 마지막에 설거지도 끝냈다. 갑자기 경쾌한 목소리, 자연스러운 문장이 들려온다. "리츠에서 베르그만의 마지막 작품이 상영된대." 또 다른 문장이 들려온다. "내가 오늘 오후에 거기에 가면 당신 화낼 거야?" 내가 침묵하니까, 마지막 문장이 들린다. "아이 보는 데 두 명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나는 주저앉지도 고함치지도 않았다. 냉소적이고 논리적인 결론, 이게 결혼이다, 둘 중 어느 한 명의 우울을 택하는 것, 둘이 함께하는 것은 낭비다. 내 자리는 아이 곁이고 그의 자리는 영화관이며, 그 반대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당연했다. 그는 영화관에 갔다. 나중에 그는 여름이면 테니스 치러 갈 것이고, 겨울이면 스키 나러 갈 것이다. 나는 아이를 보살피고 산책시킬 것이다. 참 멋진 일요일들 ……. -p.230-231



여자는 자기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중등교사 자격증을 따고 드디어 일하러 가게 되었지만, 일하고 돌아와서는 남편이 그러는 것처럼 씻고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신문을 읽는 일은 불가하다. 퇴근후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아이 밥을 차려내고 자신과 남편의 밥을 차려내야 한다. 집안 정리도 그녀의 몫이다. 밖에 나가 일하는 건 같았지만 그녀는 남편만큼 돈을 벌어오지도 못했고, 돌아와서는 또다시 노동이 시작된다.




이런거, 이제 나는 읽기도 지친다.



그런데 여자가 둘째를 가졌다. 임신을 하고 또 아이를 낳고...



아 빨리 읽고 팔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가까스로 다 읽어냈는데 옮긴이의 말은...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정말 나를 미치게 한다. 옮긴이 고광식은 이렇게 썼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커플이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성은 공감을, 남성은 여성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양쪽 모두 상대편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볼 기회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여성의 시각에서 쓰인 이 책에서 배제된 남성의 목소리 또한 들어볼 필요가 있으리라. 그것이 함께 산다는 모험을 조금은 덜 위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옮긴이의 말, 고광식, p.254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를 읽고 '배제된 남성의 목소리'를 언급하다니..


아 끝까지 지치는 독서였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독서에 몰입한다. 그 점에서 나는 지역 소식을 알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저녁 식사 후에 신문을 훑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나를 벗어나, 우리를 벗어나, 굳어진 낯선 그 얼굴이, 어머니가 빠져드는 그 침묵이, 꼼짝도 하지 않는 완벽한 부동자세에 빠져 무거워진 그 몸이, 나는 부럽다. 오후마다, 저녁마다, 일요일ㅇ마다, 어머니는 신문이나 시립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때로는 새로 산 책을 꺼내 든다. 그러면 아버지는 "내가 말하고 있잖아, 그 소설책들 지겹지도 않아!" 하고 고함을 치는데, 어머니는 "이 이야기 다 읽게 좀 내버려둬"라고 대꾸한다. 그때 나는, 나도 읽을 줄 알게 되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어머니를 열광시키는 그 그림도 없는 긴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 P33

적어도 집안을 꾸려가는 건 여자들이다. 돈을 헤프게 쓰면 안된다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담긴 이 문장을 백번도 넘게 들었다. 최소한 일요일에는 대 빼고 광내서 아이들을 가게에 보내고, 술 마시는 데 월급을 탕진하지 않고 사소한 일로 직장을 바꾸지 못하게 남편들을 관리하는 것. 여자들의 거의 모든 불행은 남자들 탓이라는 사실을 나는 어렴풋하게 알게 된다.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의 롤 모델은 내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푼돈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다. - P46

부모님은 내가 숙제를 할 때면, 물론 놀고 있을 때도 그렇지만, 식탁을 차리거나 접시를 닦으라는 말로 절대 방해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넌 너만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자기를 희생하는 맏딸의 미덕이나, 식전주에 어울리는 안줏거리를 가져오는 심부름 잘하는 막내딸의 매력, 그런 종류의 일은 우리 집에서는 필요하지 않고, 심지어 못마땅해 한다. 여자아이가 자신이 쓸모 있다고 여기는 기쁨, 사랑받기 위해서는 자기 방을 잘 정리하고 ‘얌전하게‘ 식탁을 치워주는 걸로 충분하다는 생각 같은 건 난 해본 적이 없다. 나 자신과 나의 미래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 P53

"얘야, 넌 품행으로는 이걸 받을 자격이 없단다. 단정함으로도 못 받아. 알아둬라." 교장 선생님은 나를 엄한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본다. "전 과목에서 10점 만점을 받을 수는 있어. 하지만 그걸로 선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지는 못한단다. 옛날에 정말 재능이 뛰어난 소녀가 있었단다. 너희들 중 누구도 그 아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거야. 그 아이는 시험이란 시험은 다 통과했어, 전부. 그런데 그 아이가 지금 뭐가 돼 있는지 아니?" 쥐 죽은 듯한 고요. 나는 여전히 메달을 받으려고 서 있다. "사람들이 휠체어에 탄 그녀를 밀어주고 있단다. 그 아이는 지금 두 살 정도 지능을 갖게 돼버렸어. 하느님이 내리신 병에 걸린 거란다." 한순간, 내가 반에서 꼴찌였으면 싶다. 물론 그런 생각은 다시 들지 않는다. 하느님은 산수도 문법도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한데 어머니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얌전함이나 암송문 공책에 그려야 하는 작은 그림들은 고양이 오줌처럼 별 볼 일 없는 것이라고 한다 - P71

그러면소도 동시에, 부조리하게도, 대개는 불확실하지만 믿어볼 만한 남자가 어딘가에 존재하기를 희망한다, 예정된 함정, 오 미친 사랑, 초현실죽의적 운명, 나는 그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어떤 남자가 있을 것이다, 나를 모든 함정과 굴욕으로부터 피신시켜줄 남자가 어딘가 있을 것이다. - P162

물론, 나는 한 방에서 그와 2미터 떨어져서 라브뤼예르나 베를렌을 공부한다. 알다시피 아주 유용한 결혼 선물인 압력솥이 가스레인지 위에서 칙칙거린다. 둘이 함께 있으면, 닮은꼴이 된다. 또 다른 선물인 주방용 조리 타이머의 날카로운 소리. 이제 닮은꼴은 끝. 둘 중 한 명이 일어나서, 압력솥 아래의 불을 끄고, 미친 듯 도는 압력추가 느려지길 기다리고, 압력솥을 열고, 수프를 체에 거르고, 다시 자신의 책 더미로 돌아온다, 어디까지 읽었더라? 생각하면서. 나다. 차이는 시작되었다. - P181

대학 식당은 여름에 문을 닫았다. 정오와 저녁에 나는 냄비 앞에 혼자가 된다. 나는 그보다 더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 그저 빵가루 묻힌 송아지고기 커틀릿, 초콜릿 무스나 할 줄 알았지, 특별한 것은 할 줄 몰랐다. 그나 나나, 어머니 치마폭에서 요리를 도운 과거가 없었다. 왜 둘 중에서 나만 이것저것 해봐야 하나, 닭은 얼마나 오랫동안 삶아야 하는지, 오이의 씨는 제거해야 하는지, 그런 걸 알아보려고 왜 나만 요리책을 탐독해야 하고, 그가 헌법을 공부하는 동안 당근 껍질을 벗기고, 저녁을 먹은 대가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가? 어떤 우월성의 명목으로 이런 일이 가능한가? - P181

결혼 초부터 나는, 항상 나를 회피하는 평등의 꽁무니를 쫓아다닌다는 느낌이 든다. - P229

알고 보니 만능 집사는 여성이었다. 그래서 남자와 똑같은 일을 하지만 결코 자신의 가정을 눈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고등학교 정문에 가정을 내려 놓았다가 학교를 나갈 때 가정을 다시 들고 간다. 저녁에 스파게티 뭉치를 끓는 물에 쏟아붓고, 내 주변을 맴도는 아이와 함께 있으면, 정말 사소한 뜻밖의 일도, 최소한의 호기심도 밀어 넣을 자리가 없는, 가장자리까지 꽉 찬 포화상태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감히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다, 어떤 생각들인지 한 번 들어보시라, 선생은 ‘여자에게‘ 정말 멋진 직업이다, 열여덟 시간의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집에 있고, 자신의 아이들을 볼보기 좋은 방학, 꿈, 요컨대 주변 사람들에게 전혀 고통을 주지 않는 직업, 자아를 ‘실현‘하는 여성, 돈을 번다, 훌륭한 아내이자 훌륭한 엄마로 남는다, 그러니 누가 이 직업에 대해 불편하겠는가. - P237

일만 하는 여자들, 흥분하는 여자들은 알다시피 골칫덩어리들이다. 당신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야, 그 말은 내가 내 직업에 대해 입을 닫았다는 뜻이다. - P239

두렵고, 허둥지둥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여성의 인내심, 그들은 그것을 애정이라 부른다. 나는 둘째 아이를 잘 키우고, 세 개 학급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으며, 장을 보고 식사를 만들고 고장 난 지퍼를 바꿔 달고, 아이들의 신발을 사는 경지에 이르렀다. 놀라운 일은, 그가 항상 나를 설득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일주일에 4일하고도 반나절 동안 집에서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는, 특권을 누리는 여자라고. 그렇다면 남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부인을 일주일 내내 도우미로 부리는데, 대체 어떤 남자가 특권을 누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 P248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1-06-28 1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에 특히 공감합니다!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도 삼시 세끼 남편한테 따뜻한 밥 지어주고, 국이나 찌게에 다섯 가지 이상의 반찬 새로 만들어주면서 20년 가까운 (시집살이 말고) 남편살이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요즘 세상에.
제가 여자라도 전업주부니까 세끼는 해주겠는데, 전기 밥솥에다 이틀치 밥 해놓고, 니가 알아서 퍼 먹어. 반찬 냉장고에 있으니까 꺼내 먹고....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요즘 제가 읽은 책들 보면 여성들이 오히려 자진해서 더 지독하게 외통수로 몰아가면서 말입니다,
싸워야 할 거 아녜요!!!
(이하생략.)

하긴 뭐 그런 새끼들하고 같이 사는 여자들도 있긴 하겠지요. (씨... 그럼 갈라서야지, 재산 분할 확실하게 하고 말입니다.)

다락방 2021-06-28 10:45   좋아요 3 | URL
물론 그렇게 된 사회적 환경과 배경이 존재하지요. 특히나 아니 에르노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던 때에는 여자가 교육받는 것보다 결혼 빨리 해서 애낳고 사는 걸 여성의 이상적 삶으로 정해둔 때였으니 더 그랬을 거고요. 그러니 그 삶으로 끌려 들어갔다가 이게 뭐지, 우울하다, 그런데 나만 이러는건가, 다들 이렇게 사는데 나만 이상한건가, 하고 고통스러워 하는거 이해를 하고도 남음이고요. 그런데 이런 소설이나 에세이를 반복해 읽으니까 너무 힘들고 지겨워요. 82년생 김지영이 국내에서도 그리고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받은 이유는 분명 그 삶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감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82년생 김지영 같은 소설을 많이 읽고 싶진 않아요. 특히나 저는 소설속 인물들과 거리두기를 못해서 그런건지 이런 소설 읽는게 너무 화가 나요 ㅠㅠ

잠자냥 2021-06-28 11: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리뷰만 봐도 지치네요, 옮긴이는 뭔 배제된 남성 운운..... 이 책은 보관함에 담아두고 선뜻 사게 되지 않던데 보관함에서도 빼야겠습니다...; 아니 에르노 많이 읽었어;; 굳이 이 책까지 않 읽어도 될 것 같네요;;

다락방 2021-06-28 11:32   좋아요 3 | URL
전 진짜 결혼해서 가사노동하고 독박 육아로 힘들다, 그래도 우리 남편은 다른 남편보다는 좀 낫다.. 이러는 거 그만 읽고 싶어요 ㅠㅠ 너무 힘빠지고 지쳐요 ㅠㅠ 막 속에서 천불이 나요 ㅠㅠㅠ

페넬로페 2021-06-28 1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페이퍼의 글만으로도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지쳤을지 저도 같이 피로감이 느껴져요~~근데 결혼해서 살아보면 뭔가가 딱 양분되지 않는다는게 문제인거죠 ㅠㅠ 그래서 전 인간이 세 끼를 먹는 몸을 리셋시키고 싶어요
어떤 기계(제발 발명해주소서)를 만들어 우리가 다 거기 들어가 바뀌어 나오는 거예요. 아님 알약(제발 만들어주소서)으로 먹는것을 해결하는 방법말고는 집안에서의 노동은 없어지지 않을것 같아요^^

다락방 2021-06-28 12:00   좋아요 3 | URL
네 어차피 딱 5:5는 안되는 것 같아요. 그건 무슨 일에든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것이 여자의 일이다, 라는 것만큼은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남자들은 절반이 아니라 30프로만 해도 뭔가 좋은 남편 되잖아요. 또 세끼 식사 아니어도 가사노동은 너무 많고요. 빨래며 청소는 어쩌나요..
이 리뷰 마지막 밑줄긋기 보면 남편이 아내에게 ‘일주일에 나흘 도우미 쓰니 너는 특권을 누린다‘라고 말하는데, 그런 거요. 그런 마인드. 원래 여자들이 일주일 다 가사노동 하지만 너는 그보다 덜하니 특권을 누린다고 말하는 바로 그 마인드. 진짜 지구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요. 어휴..

새파랑 2021-06-28 11: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치는 독서이셨는데 밑줄은 엄청나군요~!! 리뷰만 봐도 책을 읽은느낌이 듭니다~!!

다락방 2021-06-28 12:00   좋아요 4 | URL
네네. 밑줄 긋고 이렇게 적어두면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되는 밑줄긋기!! ㅋㅋㅋㅋㅋ

난티나무 2021-06-28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 다시 해달라고 출판사에 편지 쓰십시다. 여성 번역가가 다시 한다면 조금 다른 소설이 되지 않을까요.ㅠㅠ
저는 원서로 사두었습니다. 번역본 사지 말아야 겠어요.ㅠㅠ

다락방 2021-06-28 17:17   좋아요 2 | URL
소설 자체의 번역이 나쁜건 아니고요, 다만 제가 너무 스트레스 받아하는 내용들이라서 ㅠㅠ
제가 현재 비혼이고 이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해 더 스트레스 받는지도 모르겠어요. 등장인물과 거리두기를 해야 되는데, 거기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저에겐 지치는 독서가 됐네요. 어휴..

옮긴이의 말은 가끔 왜 있을까 싶어요. 여기서 갑자기 배제된 남자..가 왜 나오는지. -.-

난티나무 2021-06-28 17:24   좋아요 2 | URL
그렇다면 제가 원서를 읽고 번역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 읽을지 알 수 없다는 게 함정이네요. 푸핫.
옮긴이의 말에 딴지를 걸어야 겠군요.

다락방 2021-06-28 17:26   좋아요 2 | URL
네, 난티나무 님. 천천히 시간 되실 때 읽으시고 다 읽으시면 리뷰 써주세요! 후훗.
이 책 저 말고는 다른 리뷰어들은 별 다섯 준 책이긴 합니다.....

공쟝쟝 2021-06-28 19: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옮긴이 밥숟가락으로 정수리샷

다락방 2021-06-29 08:4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
안지나 지음 / 이음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엘리자베스 샌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로맨틱 코메디 Romantic Comedy 2019》를 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로맨스 영화를 보며 낭만적 사랑을 꿈꾸었던 여자들이 이제는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잘못되었는지를 짚어내고 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를테면 능력있는 전문직 여성이 영화에 등장할라치면 어김없이 진흙탕에 넘어진다거나 엉뚱한 실수를 하는 귀여운 면을 가지고 있고, 그녀들은 반드시 사랑을 쟁취한다는 것. 혹은 지금 현실의 나와 비교했을 때 나는 뚱뚱하지 않은데 나랑 비슷한 몸무게의 여자주인공은 영화속에서 비만녀로 등장한다는 것들. 게다가 그 억지 설정들은 어떤가. 남자들은 집착하고 또 집착하고 싫다는데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그러다보면 여주인공이 그 진실한 사랑에 감명받아 그 스토커랑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고 이 다큐멘터리의 끝은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던 차에, '안지나'의 책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를 알게 됐다. 저자가 비교문학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고 게다가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책이라니, 이것은 내가 지금 시청중인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성질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두 매체를 함께 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랴부랴 구매하고 읽었는데 일단 얇은 만큼 금세 읽을 수 있었지만, 이 책이 내가 생각한 그런 책은 아니었다.


나는 웹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다. 웹소설의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사두고 안읽은 책들을 보며 한숨 쉬기도 바쁘다. 그래서 로맨스 판타지란 장르 자체를 알지 못했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면서 제목에서 '로맨스 판타지'를 보았을 때는, 로맨스가 실제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나 마찬가지이므로 그런 용어를 쓴 거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속 그레이 같은 존재가 내게 다가와 나에게 연애하자고 할 가능성은? 이건 가능성이 5프로도 0.5프로도 아니라 정말이지 제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은가. 그런 의미에서 로맨스는 그야말로 판타지다, 라는 뉘앙스로 읽었던 거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참, 순진하기도 하지. 내 생각은 틀렸다. 이래서 사람이 고지식하면 안돼..



로맨스 판타지는 웹소설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였다. 게다가 저자는 그 웹소설을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페미니즘과 여성연대를 캐치하고 현재 웹소설의 흐름을 파악하며 그걸 우리에게 들려주는거다. 주 독자가 10대-20대의 여성들인만큼 쓰는 주체도 그러한데, 그들이 그려내는 웹소설에서의 로맨스 판타지는 로맨스 판타지라는 그 틀 안에서 로맨스를 부정하고 있다고 안지나는 말한다. 그러니까 그들이 현재에서 과거의 어느 때로 간다거나 지금의 나로서는 죽었지만 다른 시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남으로써 다른 인생을 산다는건데, 그렇게 다르게 살아보는 생에서는 기존에 살았던것과 완전히 다른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분명 남자주인공이 등장하고 그 남자와 사랑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은 그 소설 안에서 여성이 자립하고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뿐. 기존의 로맨스라는 장르가 남자와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며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웹소설속 로맨스 판타지 안의 로맨스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사실 그다지 썩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수단일 뿐이라는 거다. 이것이 로맨스 판타지의 장르이니까 일단 이 책 속 주인공이 되어, 이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하긴 할게, 그렇지만 이 나라가 잘 되어가는 것, 불행한 아이를 학대로부터 지켜내는 것, 곤경에 처한 여자를 돕는 것들이 내겐 더 중요해, 그걸 위해 사는 거야, 하는 걸 보여준달까. 내가 읽고 있지 않은 웹소설 속 로맨스 판타지 안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현재에서 이동하는 주인공들이 나오는만큼 가부장제가 어떤 식으로 여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고, 현재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술(혹은 능력)로 그 시대에 맞게 개혁을 이끌어낸다. 그러니까 여왕의 코르셋을 벗겨주고 바지를 입힌달까!



내가 기대한 책은 아니었지만 전혀 알지 못하던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니 재미있었다. 읽다보니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작품들도 여럿 되는 모양인데, 사람들은 각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각자가 아는 방식으로 무언가 읽고 쓰고 있구나 알게 되니 그 점 또한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젊은 여성들이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들의 삶이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 과거의 어느 때에든 여자들의 복장이 불편했을 거라는 것, 우리가 아는 백설공주에서 어린 백설공주가 학대를 당했었다는 것들을 인지하고 그것을 지금이라도 새로운 이야기로 바꿔보고자 하는 것들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을 읽고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누군가는 이렇게 책을 써냈고 여기의 나는 읽는다.



이렇게나 많은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하는데 안티페미인 젊은 남성이 당대표가 되었다며 온갖 신문에 등장하고 또 지지받는 걸 보노라니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힘인가, 권력인가.. 하는 생각에 좀 암담하다. 뭔가 기운 빠지지만 기운 빠진다고 넋 놓고 있으면 안되겠지. 우리들은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자.




신데렐라는 가부장의 보호를 잃고 가정 내에서 보호자에게 학대를 받는 상황이었다. 하룻밤 춤을 함께 췄을 뿐인 왕자가 나타나 그녀에게 공개적으로 구혼했을 때, 신데렐라는 과연 그 구혼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애초에 『신데렐라는 신데렐라가 왕자를 어떻게생각하는지 묘사하지 않는다. 그녀가 가진 조건과 입장에서 볼 때 왕자의 구혼을 거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는 듯이. 영리하게도 『신데렐라는 성대한 결혼식으로 끝나며 신데렐라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신데렐라는 무엇을 기준으로 그녀의 행복을 말하고 있는가? - P45

『신데렐라』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는 젊고 아름다운 신데렐라가 멋진 왕자와 만나 결혼했다는 사실뿐인데 말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대중문화가 암묵적으로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이라는 조건 하에서 결혼을 통한 여성의 사회적 계급 이동을 인정하고 때로 열광하며 소비하지만, 결혼 이후의 삶에는 무관심한 것과 비슷하다. 일단 여성이스스로 결혼을 선택한 다음에 이어지는 부정적인 이야기는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결혼을 선택한 것만으로가정 폭력이나 학대, 부당한 대우, 정신적인 괴롭힘을 받는 것에까지 동의했다는 듯이. - P46

가부장의 보호를 잃고 보호자에게 학대받던 신데렐라가 과연 그 신분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왕자와의 결혼역시 위험한 모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안다고해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들이잘 알고 있는, 하지만 좀처럼 크게 이야기하지는 않는 어떤 진실을 이야기한다. 위태로운 입장의 여성이 오직 불행한 가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택하는 결혼은 도박에 가까운 모험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 결혼 자체가 그렇다. - P46

이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아무도 신데렐라의 결혼식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듯이, 남성과의 낭만적 사랑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겨울왕국)에서 안나와 한스의 서사가 보여주듯이, 이제 아이들조차도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지않는다. 아리스티아가 회귀 후 황후가 아닌 자신의 삶을개척하려 했듯이, 나비에가 하인리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으려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려 했듯이, 이제 로맨스 판타지의 작가와 독자 모두 그 진실을 알고 있다. 황제 옆의 빛나는 듯이 보이는 자리는 기실 누가 앉아도 상관없으며,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공허한 자리라는 것을. - P67

21세기 한국에서도 명절날 모인 친척들이 어린아이에게 애교를 요구하거나 대중매체,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에게 애교를 청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말하자면 자신들에게 귀엽게 보이려는 태도를 의식적으로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는 웃는 낯으로 태연하게 그런요구를 하고 훈훈한 웃음이 터지는 단란한 풍경이 가끔우 어색하게 보인다.
최근의 ‘애교는 약자의 언어’라는 지적은 그래서 수긍할 만하다. 어른은 아이에게 애교를 부리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아이돌에게 애교를 부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때때로 로맨스 판타지에서 애교는 딸의 생존전략이다. - P69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06-15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요즘 웹소설은 그렇군요. 이 글 때문에 웹소설에 대한 편견이 조금 깨졌습니다. 로맨스 판타지라는 말에 저도 다부장님처럼 해석했다는...;; ㅎㅎㅎㅎ

다락방 2021-06-15 16:10   좋아요 2 | URL
저도 웹소설을 읽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게 되지만 편견이 좀 깨지긴 했어요. 로맨스 판타지라는 것이 하나의 장르일 줄은 몰랐네요. 전 이 세상에서 로맨스는 그저 판타지인줄 알았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독서괭 2021-06-15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길티플레져가 로판 읽기 입니다 ㅋㅋ 절대 결제는 하지 않고 1일마다 무료 이런 걸로 찔끔찔끔 보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뺏기지는 않습니다만.. 요즘은 그것도 식상해져서 거의 안 보고 있네요. 이번에 팟캐스트 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멋있으면 다 언니>를 쓴 황선우작가가 출연했는데, 카카오페이지에서 이 책을 기획한 이유가 로판에서는 여성들이 권력을 쥐고 활약하는데 현실로 돌아오면 그게 아니어서 허무하게 느껴지니,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멋진 언니들을 보여주자는 거였다는(취지의) 얘기를 했어요. 이 얘기를 듣고 나서 바로 저 책 주문했습니다 ㅋㅋ 소개해주신 책도 흥미롭네요. 읽어보고 싶어요.

다락방 2021-06-15 16:34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나니까 현실이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결국 여자가 과정과 결과를 바꿔버리는 것은 로맨스 판타지 안에서나 가능한가 싶고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읽고 쓰는 그 많은 여자들이 있는데, 그런 여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책으로 써주기도 하는데, 책에서 눈을 딱 들면(그러니까 웹소설로부터 빠져나오면) 이준석이 당대표 되는 현실이라니... 이렇게 되어버려서. 세상 뭔가.. 싶더라고요. 하하하하하. 이준석이 당대표된게 왜이렇게 힘빠지는지요 ㅠㅠ

꼬마요정 2021-06-15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나비에 황후 반가워요 ㅎㅎ <재혼황후> 좀 재밌게 봤어요. 로맨스 판타지라는 장르였네요. 기존의 질서 속에서 순종하던 인물이 죽음이나 회귀를 통해 정말 다시 살아가는데 자신을 구하거나 가족을 구하거나 나라를 구하거나 하면서 다가오는 사랑을 이루더라구요. 애초에 사랑이 전부였다면 두 번째 삶은 사랑이 어쩌다보니 오더라.. 근데 놓치지는 않겠다 이런 느낌이었어요.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지역감정, 세대갈등도 안 통하니까 남녀갈등으로 가자는 거겠죠.. 갈등을 넘으려면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야 하는 건가봐요ㅜㅜ

다락방 2021-06-15 17:36   좋아요 3 | URL
이 책에서 재혼황후 얘기하더라고요. 그외 몇가지 웹소설 가져와서 로판 흐름과 그 안의 메세지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어요. 저는 웹소설을 모르지만 재혼황후 읽어본 꼬마요정 님이라면 저보다 더 이 책을 재미있고 또 의미있게 읽으실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생에서 죽었지만 다른 세상에서 태어나 자신을 구하고 나라를 구하고 다른 약한 존재를 구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사랑은 뒷전으로 밀린 것 같았어요. 로맨스 판타지라는 장르를 입었지만 결국은 여성들이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 안지나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꼬마요정 님, 이 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ㅠㅠ

잠자냥 2021-06-15 16: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준석 사진 도배되는 현실.... 너무 밥맛 떨어지는 현실... 다요트가 절로 될 듯. ㅠㅠ
근데 다부장님이 며칠 전 트이타에 이준석 사진 올려서(물론 욕하려고지만) 순간 팔로우 끊고 싶어졌.......ㅋㅋㅋㅋㅋ
다신 그러지마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6-15 17:34   좋아요 4 | URL
그건 제가 진짜 잘못했습니다. 저도 뉘우치고 있습니다. 제가 순간 욱하는 바람에 생각이 짧았어요. 여러분들께 큰 폐를 끼치고 말았습니다. 어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프만의 허기
레온 드 빈터 지음, 지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프만은 1968년 9월 6일 이후로 줄곧 불면증에 시달려왔다. 그날 이후 그는 자신의 죄수가 되었다. -p.48



59세의 펠릭스 호프만 대사는 네덜란드에서 체코로 발령받았다. 젊은시절 서기관으로 일을 시작했던 호프만은 타고난 식탐이 있긴 했지만 사랑하는 '마리안'과 결혼하고 그토록 염원하던 딸들을 한꺼번에 둘이나 얻음으로써 그 식탐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는 행복했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딸중에 한 명이 어릴 때 백혈병을 앓고 사망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는 그 이후로 불면증에 시달린다. 대사를 환영한다는 연회가 열린 자리에서도 그는 계속해서 먹고 마시고 혼자 있을 때도 밤이 새도록 먹는다. 그는 잠을 자기 위한 노력을 하는 대신 날이 밝아오는 걸 보면서 먹고 그렇게 한참을 먹다가는 위에 밀어넣었던 음식들을 손가락을 넣어 게워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의 식탐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1968년 딸 하나를 잃어 그가 불행을 맞이하게 됐다면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 남은 딸은 성인이 되어 약물중독으로 죽었다. 그는 진작 승진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대사가 되어 발령받았고 그러나 사랑했던 딸 둘은 자기보다 일찍 죽었으며, 아내와는 그저 한 집에 살 뿐 더이상 다정하지도 않다. 다만 외교관들을 상대로 한 부부 모임에서 정확히 그 역할들만을 해낼 뿐. 그는 허기졌고, 그래서 먹는다. 의사가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며 그만 먹으라고 말리는데도, 그는 콜레수테롤이 정말 건강에 안좋은건지 믿지 못하겠다며 자기 고집대로 한다. 사실 그는 딱히 살 의지도 없고 의욕도 없어 보인다. 그런 그에게 친한 친구이자 직장 동료는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며, 최근에 극장에 가 본 포르노 영화에 네 죽은딸이 배우로 나왔다고 말해준다. 이에 호프만은 놀라서 그 영화를 보고, 그리고 은퇴후 자신의 비상금으로 마련해두었던 돈을 모두 쏟아부어 그 필름의 원본과 복사본을 사들인다. 내 딸이 사람들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는 이 필름을 사람들이 보게할 수 없다.



이렇게 삶에 있어 뭐하나 재미도 행복도 없는 것 같았던 호프만이 스피노자를 읽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에서 체코에 마련해준 관저에는 그간 머물렀던 대사들이 놓고 간 물건들이 쌓여있고, 그 다락방에서 우연히 스피노자의 『지성의 개선 및 지성을 사물의 참된 인식으로 인도하는 방법에 대한 논고』를 발견하게 된거다.

과거 한 때 철학에 대한 관심을 가졌고 인생에 대한 고민도 했던 그인만큼 비트겐슈타인도 읽었고 버트런트 러셀도 읽었으며 한나 아렌트도 읽었지만 또한 시오랑과 레비나스의 책을 읽어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스피노자는 감히 가까이해볼 생각이 없는 호프만이었다. 그런 호프만이 스피노자를 읽기 시작한다. 캐비아를 먹으면서, 샴페인을 마시면서, 거위간을 먹으면서, 와인을 마시면서, 햄을 먹으면서 스피노자를 읽는다. 구절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는 자신의 식대로 해석하고 또 자신이 생각하는 나름대로의 예를 든다. 이건 이런 뜻이 아닐까, 이건 이렇게 예를 들면 될것이다, 하면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진실과 지식과 지복에 대해서 알고자 하고 깨닫고자 한다. 그리고 계속 읽고자 한다. 그가 스피노자를 읽는 것은 그러므로 먹는 중에도 계속되고 그가 배설하는 중에도 계속 된다. 딸의 과거에 대해 알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에도 계속되고 그가 문제에 휩싸여 도망치는 와중에도 그는 스피노자를 들고 간다. 심지어 그의 죽음을 늦춰야 하는 이유도 스피노자에 있다. 끝까지 읽고 싶다는 그 열망에 그에게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심한 허기를 가진 호프만의 스피노자 책 읽기가 전부인 책이 아니다. 호프만 보다 먼저 등장하는 엄청난 비만인-세계에서 가장 비만한 백 명 가운데 한 명- '프레디 맨시니'라는 미국인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프레디 맨시니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거라며 아내의 설득에 넘어가 유럽여행을 가게 되고 그렇게 체코에 도착했다. 때는 1989년. 저녁 식사때 패키지 여행객들의 스테이크까지 다 먹어치운 그였지만 새벽 두시에 허기가 져서 참을 수가 없다. 그러나 프라하의 호텔은 그 밤에 룸서비스가 불가능하고 그가 밖으로 밥 먹으러 나가겠다는데 호텔 보안요원들이 제지한다. 이 새벽에 나간다고? 안돼. 너 불량한 자들에게 잡혀가. 그러나 그는 기어코 바깥으로 나갔고, 택시를 잡아타고 이 새벽에 영업하는 식당을 향해 가려다가 가진 돈을 다 털리고, 그런 와중에 납치사건을 목격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그 납치된 자가 미국 정보부요원이었고 이에 그는 증인이 되어 '안가'로 불려가고 그런데 그 안가에서는 그를 극진히 대접하며 세상 최고 맛있는 칠면조 요리를 대접하고 그래서 그는 거기에서 집에 가기 싫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를 보면 이 책으로 '레온 드 빈터'는 밀란 쿤데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책을 읽기 전의 나는 그 표현을 보고 '이런거 진짜 별로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장 읽지도 않고 오 맞네 맞네, 밀란 쿤데라 완전 딱이네, 하게 되었는데, 특히나 이 책의 끝부분 프레디 맨시니의 삶을 보노라면 '밀란 쿤데라'의 《농담》도 생각나는 것이다. 이중 스파이와 시대적 상황에 대한 갈등과 한 인간의 깊은 내면에 대해 드러내면서 그런데 스피노자까지 배치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겉으로 보면 프레디 맨시니도 그리고 호프만도 그저 식탐에 차 건강을 챙길줄도 모르는 비만인이다. 그런데 프레디는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걸 먹는 걸로 채우고 있으며, 호프만 역시도 지독한 불면증과 고통을 갖고 있었다. 호프만은 자신의 딸들이 이른 나이에 둘다 사망한 것에 대해 '내가 벌을 받은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일찍이 나치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나를 쉬게 해줄 사람들은 내 부모님 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일에도 딱히 열심이지 않고 자기 몸 하나 챙길줄 모르는 호프만이지만 그 내면과 정신이 누구보다 치열했다. 내가 이러는 것은 이 나이에 해서는 안될짓이겠지 너무 수치스러워, 하면서 삶의 지복을 찾고자 하고 진실을 찾고자하는 그라는 인간을, 겉에서 호프만 대사로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들여다볼 수 있을까. 왜 어린 시절 부모의 상실감을 겪었던 그에게 청년시절 찾아왔던 행복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으스러졌을까. 그는 자꾸만 자꾸만 죽어갔던 어린 딸에 대해 생각하고 상황을 망치는줄 알면서도 연회에서 과음하다 쓰러진다. 어쩌면 이것이 상황을 망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지옥불에 뛰어들기도 한다. '어떤 연줄이 있어서 운좋게 저 자리에 있는 것 같은 저 뚱뚱한 인간' 인 호프만이 가지고 있는 그 자신만의 역사가 무엇인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타인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지 못하는 채로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과연 온당할까.



현재를 살고 있는 호프만이지만 늘 불행한 과거와 함께 가고 있었다. 불행환 과거는 당연하게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미래까지 손을 뻗는다.



파괴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을 파괴하는 사람은 그 방법도 다양하지만 대상을 달리하기도 한다. 나를 파괴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을 파괴하기도 한다. 프레디가 이혼을 통보한 아내를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그 욕망과 원망은 자신을 망가뜨리면서 살아온 그가 그 대상을 달리한 게 아닐까.



아주 재미있고 똑똑한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를 좋아하는 이들과 밀란 쿤데라를 모르는 이들, 스피노자를 좋아하는 이들과 스피노자가 대체 뭔데 하는 이들 모두 읽으면 좋을 책이다.



무엇보다 호프만이 스피노자의 『지성의 개선 및 지성을 사물의 참된 인식으로 인도하는 방법에 대한 논고』를 완독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책 안에 그 답이 있다.






그는 허기를 채우기 위한 여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난관을 무조건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그는 약자였다. 위장의 노예였다. - P21

모에 샹동 맛도 그리 나쁘지 않으나 호프만은 테탱제를 선호했다. 동 페리뇽이 최고라고들 하지만 호프만 생각으로는 값만 터무니없이 비싸며, 돈푼이나 있고 감식력은 전무한 졸부들을 위한 샴페인이었다. - P39

스피노자도 직장을 가진 한 가족의 가장이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부를 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의혹을 품기 시작했고, 결국 양자택일하는 도박을 감행하기로 했다. 즉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지복을 찾아 나설 수도 있었고 아니면 소유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 수도 있었다. - P49

스피노자는 지성의 개선과 정화에 이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무엇보다 먼저 대중이 이해할 수준에서 말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학교 교사나 이미 개선된 지성을 갖춘 교양인에게 해당되는 규범이었다. 그래서 호프만 같은 초보자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조언이었다.
두 번째 규범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바로 그만큼만 쾌락을 즐길 것‘, 세 번째 규범은 ‘반드시 생계를 꾸리고 건강을 유지하며, 목적에 저해되지 않는다면 돈이나 다른 물질은 관습에 맞춰 살만큼만 소유하도록 할 것‘이었다. - P71

"프레디, 당신은 그냥 뚱뚱한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당신은 우리 미합중국에서,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비만한 백 명 가운데에 들 겁니다. 우리 비서가 요즘 당신들이 애독하는 잡지의 편집부에 문의해봤는데 백 명의 가장 비만한 사람들 가운데 기혼자는 겨우 네 명에 지나지 않고 또 그 네 명 중 셋은 본인 못지않게 뚱뚱한 상대와 결혼해 누구랄 것 없이 부부가 모두 생활의 대부분을 끝없이 먹기만 하며 지낸다고들 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랑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한 사례는 단 한 명뿐이었는데, 그 유일무이한 실례의 장본인이 다름 아닌 바로 프레디 당신이었다는 겁니다." - P370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21-06-08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전 이 책 미국인 맨시니 나오고, 호프만 나온 부분까지 읽다가 지금 다시 다른 책 읽고 있는데, 걍 쭉 읽어야겠어요. 호프만 딸한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중얼중얼.

다부장님은 스피노자 안 읽으세요? 이 책 보니 읽으실 거 같은데. ㅋㅋㅋㅋ

다락방 2021-06-08 11:35   좋아요 3 | URL
잠자냥 님.. 저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계시네요?
마침 스피노자 입문서 친구가 추천해줬던 거 있어서 사려고 했는데 절판이에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중고도 판매자 중고밖에 없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피노자 읽으면서 호프만의 허기 같이 읽으면 좋을것 같아요. 저는 호프만의 허기를 재독할 예정입니다. 후훗.

Falstaff 2021-06-08 1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흥미 돋습니다. 일단 보관.
그럼 이만.

다락방 2021-06-08 11:33   좋아요 3 | URL
제가 이 책 읽으면서 폴스타프 님과 잠자냥 님 두 분을 생각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이 두 분은 좋아할 것이다!! 폴스타프님은 이 책 읽으시면 엄청 재미난 리뷰 적어주실 것 같아요!

syo 2021-06-08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피노자의 동물 우화>가 절판인 관계로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가 차선입니다. 심지어 얘는 더 쉬워!
그렇지만 가능하면 먼저 대출을 권합니다.....

다락방 2021-06-08 14:56   좋아요 1 | URL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메모메모.
오케바리. 땡큐!

그레이스 2021-06-08 13: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것 같네요
똑똑한 소설,
일단 밀란 쿤데라 좋아하고, 스피노자에 관심있으므로 읽어봐야겠네요.

그레이스 2021-06-08 14:36   좋아요 2 | URL
빌려왔죠
제발 읽고 반납해야 하는데...^^;;

다락방 2021-06-08 14:56   좋아요 2 | URL
아니 댓글 쓰고 한시간만에 가서 빌려오셨네요? 행동력 천재십니다! ㅋㅋ

그레이스 2021-06-08 15:06   좋아요 2 | URL
마침 반납할 책이 있었어요^^
도서관이 집앞이라...

새파랑 2021-06-08 14: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쿤데라라고 하니까 급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 스피노자는...잘 모르지만 ^^

다락방 2021-06-08 14:57   좋아요 3 | URL
새파랑 님 정말 재밌게 잘 읽은 소설입니다. 크- 추천추천합니다!
저는 스피노자도 모르지만 이 책 펼치기 전에는 스피노자 나올 줄도 몰랐답니다? ㅋㅋ

북다이제스터 2021-06-08 1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스피노자를 읽었다. 에서 ‘그리고’가 긴 여운으로 맘에 와 닿습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다락방 2021-06-08 20:06   좋아요 2 | URL
여운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니 좋네요. 잘 읽어주셔서 기쁩니다. :)

붕붕툐툐 2021-06-08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결론은 모두 읽어도 좋다인거죠? 다부장님의 추천이라면 기꺼이~😉

다락방 2021-06-09 08:49   좋아요 2 | URL
네네 모두 읽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붕붕툐툐님은 항상 캐치가 빠르세요. 감 천재 이십니다! ㅋㅋ

새파랑 2021-07-07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옆에 있는 서재의 달인 메달이 장난 아니네요👍👍 당선 축하드려요 😄

다락방 2021-07-08 10:13   좋아요 2 | URL
아이쿠, 감사합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1-07-07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축하합니다

다락방 2021-07-08 10:1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07-07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려요~

다락방 2021-07-08 10:13   좋아요 3 | URL
아이참.. 감사합니다!!
 
허쉬
존 하트 지음, 권도희 옮김 / 구픽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쩌다보니 '존 하트'의 책은 절판된 한 권의 책을 제외하고는 번역된 걸 다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존 하트를 대지는 않지만 존 하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 하고 반가워하며 냉큼 사게 된다. 이번 책도 그랬다. 출간 소식을 알고는 오오 존하트~ 이러면서 잽싸게 구입했었다.


당연히 그간 읽은 존 하트 책의 내용들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존 하트에겐 뭔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신간 소식이 반가운 작가이니 뭔가 있었던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당황한다. 존 하트, 이런 작가였어?


'허쉬 아버'라는 야생의 땅에서 조니는 혼자 살고 있다. 그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고 숲과 늪으로 펼쳐진 곳이다.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은 뭔가 알 수 없는 시선과 힘을 느끼며 그곳에서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는 죽음을 맞게 된다. 살아 돌아온다 해도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고. 조니의 가족과 친구는 조니가 그곳에서 나와 시내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바라지만, 십년 전 여동생과 아버지를 잃은 조니는 이 야생의 장소에서 오두막을 짓고 사는게 편안하다. 이 사회화가 부족한 조니는 이 늪에서 사람이 죽을 때마다 용의자로 의심받게 되고 조니 역시도 이 곳에서 사람을 죽이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한다.


영문을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시체를 부검해보면 사람이 한 짓으로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 허쉬에서 일어난다. 신비와 마법이라는 단어가 책에 등장한다. 나는 이 '신비'와 '마법'앞에 당황하는 것이다.


'샤론 볼턴'도 신비한 일에 대한 소설을 쓴다. 인간의 일같지 않은 사건과 일. 그러나 샤론 볼턴의 소설을 읽노라면 그런 신비한 일 앞에, 그러나 샤론 볼턴이 다 설명해줄 것이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탐욕으로 벌어진 일이며 인간이 벌인 일이라는 것을 샤론 볼턴은 나에게 말해줄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신비한 일을 존 하트가 써버리니 존 하트가 과연 이 일을 설명해줄 것인가 의심하게 되고, 도대체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려는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존 하트는 신비한 일을 신비한 힘으로 남겨둔다. 나는 이 지점에서 존 하트의 허쉬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이 신비한 힘은 분명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이는 차별과, 여성에 대한 혐오를, 그것이 가져오는 불행한 결과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리고 끝까지 여성이 여성에게만 전할 수 있는 이 힘으로 여성들은 다른 곳의 위기에 놓인 혹은 불행한 여성들을 돌볼 것이라고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내 마음을 울리지도 건드리지도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비한 힘이고, 그 신비한 힘이 정말 그렇게 작용한다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이 신비한 힘인걸, 이게 말이 되는가, 하게 되어버리는 거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인디아나 존스를 보듯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만, 사실 나라는 인간의 개인적 취향은 신비로운 세상,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결국은 인간이 사는 이야기,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 인간이 벌인 문제를 인간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신비한 힘 혹은 종교적인 힘이라는 것은 믿는 자에게 그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이런 식의 힘이라면 그저 내게 먼 곳의, 내 손에 닿지 않는 판타지처럼 느껴질 뿐이다. 존 하트,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었어? 전작과 지금 이 작품 사이의 시간동안 존 하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내가 그동안 알아온 존 하트와 다른걸까. 물론 이것도 존 하트이고 저것도 존 하트이며 앞으로 써낼 작품도 존 하트의 작품이겠지만, 다음에 신간이 나온다면 오 존 하트! 하면서 반갑게 사기 전에 잠깐 망설일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21-05-31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니라는 이름에 혹시? 했더니 책소개 보니까 라스트 차일드 10년 후라고 되어있네요. 저도 존 하트 무척 좋아해요. (그러나 신간소식 몰랐네요ㅎㅎ) <라스트 차일드>랑 <구원의 길> 참 좋았는데. 이전의 작품들과는 좀 다른 모양이에요 그래도 읽어볼래요^^

다락방 2021-05-31 14:45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문나잇 님! 존 하트라 산 것도 있지만 라스트 차일드 후편이라 얼른 읽고 싶었어요. 저도 라스트 차일드, 구원의 길 다 좋아했습니다. 으흐흐흐. 이건 좀 기존과 다르고 제겐 별로였는데, 문나잇 님 얼른 읽고 감상 적어주세요! 다른 분들 리뷰가 궁금합니다.
 
메리, 마리아, 마틸다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75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메리 셸리 지음, 이나경 옮김 / 한국문화사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리>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다. 주인공 메리가 남편을 싫어한다는 것, 만나고 싶어하지 않으며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당시에 반항적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말고 이 단편에는 도대체 뭐가 더 있나 싶다.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면서 병약한 친구를 간호하고 그리고 죽음으로 작별하고 그러다 사랑하게 되는 남자도 병약한 남자이며 그러다 죽고.. 뭐 어쩌라는건지. 도약은 한 번에 크게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지금의 여기에서 내가 보기에는 정말이지 착한 여자 컴플렉스로 똘똘 뭉친게 아닌가 싶다. 물론 착한 여자 컴플렉스라는 것도,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기인한 것일테다. 사람들이 자신의 쓸모 혹은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그중에 하나는 아픈 사람 돌봐주기 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병약한 자를 열심히 간호하고 또 간호하는 것은, 타인을 위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 아닌가.


작가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만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면 충분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써야할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한계치 내에서만 인물이나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러니 <메리>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그리고 작가라면 누구나 더 많은 소설, 그리고 다른 소설을 쓰기 전에 한번쯤 거쳐가야 하는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자전적 삶이라면, 울스턴크래프트가 이런 삶을 살면서 [여성의 권리 옹호] 같은 책을 쓴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테다. 그렇다해도 어쨌든 <메리>는 영 답답하다. 페니미즘 소설의 초기작 이라니.. 흐음.



<마리아>는 이 책에 실린 총 세 편의 단편들중 가장 좋았다. 나로서는 <마틸다>에 가장 관심을 두고 기대를 했는데, 마틸다 읽으면서 너무 당황해버렸어. 이건 이따 다시 얘기하고, 일단 마리아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 단편 <마리아>에서 비로소 아, 작가가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사람이지, 하고 연결지을 수 있었다. 남편의 뜻대로 되지 않는 여성임에 정신병원에 감금된 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이 거대한 세계의 은유라 봐도 좋을 것이다. 샤론 볼턴은 자신의 책 [희생자의 섬]에서 주인공이 거주하는 섬을 '비슷한 남자들이 지배하는 세계'라 했었는데, 나는 이점과 닿아있다고 본다. 정신병원이라는, 섬이라는 어찌보면 작은 세계에서 여성을 억압하고 남성의 권력으로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그것을 한 국가로 놓고 전 세계로 놓고 보았을 때도 다르지 않으니까. 부당한 입장에 처한 주인공 '마리아'는 자신의 부당함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잘 안다. 그 점이 주인공 마리아의 그리고 저자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의 가장 용기 있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힘들거나 억울할 때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들여다보려고 하고 인지하는 것, 인지했으므로 기필코 따지고 들고 발언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경지이다.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 원인을 알고자 하는 것은 그 후의 문제 해결을 불러오기 때문에, '원래 그런거야' 라며 관습적으로 넘기려고 하는 경우가 세상엔 훨씬 더 많으니까. 바꾸려고 하지마 너만 힘들어, 왜 바꾸려고 들어 다 불편해지게. 우리는 이런 말을 무수히 듣게 되지 않는가. 알게 모르게 우리가 발언했을 수도 있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장 자크 루소'의 책을 읽고 거기에 반박하기 위해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썼다. 루소의 책을 읽은 사람이 울스턴크래프트 만은 아닐 것이고, 그걸 읽으면서 바보같다고 생각한 사람 역시도 울스턴크래프트 한 명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울스턴크래프트는 읽고 분노했고 썼다.



루소가 그의 탐구에서 한층 높이 올라섰거나, 혹은 그의 눈이 그가 거의 언제나 호흡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안개 낀 대기를 궤뚫어 보았다면, 그의 활동적인 정신은 참된 문명을 확립하고 인간의 완성을 숙고하는 데로 돌진했을 것이다. 맹렬하게 날아서 감각적인 무지의 밤으로 되돌아가는 대신에 말이다. -[여성의 권리 옹호] 제1장,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책세상문고



<마리아>를 읽는다면 바로 이 울스턴크래프트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것, 여성의 재산이 여성의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이것이 불공평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나, 세상은 그녀가 자유롭게 살게 놓아두질 않는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피력해도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죄인이라는 딱지일 뿐. 그녀는 자신의 아이도 그리고 재산도 지킬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오고 그 사랑에 빠져든다 한들, 아아, 세상이여, 그리고 여자들이여 또 남자들이여, 남성은 여성을 구원하지 못한다. 여성이 처한 불리한 상황과 위험을 알고 그 고통을 알고 거기에 들어가 함께 구하고자 하는 것은 같은 성별인 여성이었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남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공감하는 여성인 것이다. 마리아여, 그리고 제미마여, 부디 남은 생은 당신들에게 축복이고 행복이기를.




<마틸다>는 읽으면서 가장 당황스런 작품이었다. 나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너무 재미있게 읽고 흥분해서 여러차례 글을 남겼던 터라, 이 세 단편에서도 마틸다를 가장 기대했는데, 읽으면서 수시로 '도대체 이걸 왜 썼을까'를 계속 생각해야 했다. 여기 어디에 페미니즘적 요소가 있다고 페미니즘을 이 책의 타이틀로 걸어둔걸까. 내가 놓친 무언가가 있는걸까, 나는 꾹 참고 읽어가면서 마지막 해설까지 읽는다. 해설은 내가 놓친 많은 부분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아아 내가 이걸 이해를 못했구나, 할 수 있겠지 했던 거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해설을 읽었고 다른 비평가들의 <마틸다>의 여성주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도 읽었지만 딱히 동의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마틸다는 근친상간을 다룬다. 사랑했던 아내가 아이를 낳고 죽어버리자 아버지는 아이를 사랑할 수 없고 아내를 잃은 괴로움에 그 어린 아이를 자신의 누나에게 맡기고 집을 나가버린다. 가급적 아이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한 것. 그렇게 십육년을 해외에서 지내고 그 사이에 그 아이 마틸다는, 다정하지 않은 고모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언젠가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겠지.. 하면서. 그러다가 십육년만에 아버지가 쫜- 하고 나타났고, 그렇게 나타나서는 매일 수시로 많은 대화를 하고 다정하게 대하며 서로 사랑하며 지내는거다. 부모의 정 없이 살아왔던 마틸다이기에 아버지를 만난 기쁨은 너무 크고 이제 자신이 세상에 의지할 이는 아버지뿐이고 이 시간은 마틸다에게 너무나 행복하다. 아버지도 그간 만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최선을 다해 마틸다에게 잘해주는데, 아아, 마틸다가 십대 후반이고 그녀를 여성으로 보면서 애정을 품게 된 청년의 존재를 알게된 순간,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은 남자의 여성에 대한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딸인 이 소녀가 누군가에게 연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마자 애정이 방향을 틀어버린 거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어쩌면 영영 영국을 떠나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오로지 저 자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리고자 누님께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모든 것을 서신으로 알려주실 때까지 이 도시에 머무르겠습니다. 제가 이곳을 떠나면 제 소식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맺은 모든 관계를 끊어야만 합니다. 저는 방랑자가, 버림받고 떠도는 불쌍한 존재가 되겠습니다. 아무도 없이! 혼자서!"  편지의 다른 부분에서 아버지는 나를 언급했다. "제가 볼 수도 없고, 입에 올릴 수도 없는 그 불행한 어린 것에 대해서는, 누님의 보호에 맡기겠습니다. 그 애를 잘 보살피고 아껴주십시오. 언젠가 제가 그 애를 찾으러 갈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는 어둡습니다. 그 애의 현재를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마리아>, p.320


(진짜 가지가지한다..)


작가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그러니까 우리는 개개인이 저마다 가진 가치관이나 성향이 있을 거다. 경험의 폭이 다르듯이 이해의 폭도 다를 것이고. 마틸다를 썼던 메리 셸리에게는 분명 어떤 의도나 목적, 뜻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했던, 써야했던 그 순간의 어떤 생각이나 의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뭐였든 간에 나에겐 전달되지 않았고, 아버지가 딸에 대한 사랑의 방향을 틀어버린 순간 내게 이 소설은 너무도 읽기 힘들고 당황스런 소설이 되어버렸다.

해설까지 읽고 비평가들의 분석에 대한 것도 읽었지만, 나는 그 모든 비평가들에게 동의할 수 없고, 내가 이 소설 <마틸다>를 읽고 생각한 것은, 한 아이를 방치하고 났을 때 그 아이에게 다가올 불운한 미래였다.


마틸다는 부모의 사랑을 내내 갈구했다. 아버지는 응당 자신이 주어야 할 사랑과 보살핌을 제때에 주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 만나지 못한 시간이 십년 이상이었고, 그렇게 나타난 후에 드디어 마틸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고 좋아했건만, 아버지는 딸을 여성으로 본다. 물론 아버지는 그것이 아주 역겨운 일이며 죄악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여성으로 딸을 봐버린 이상 다시 딸로 보기가 힘들다. 아이일 때 돌보지 못하고 버려두고 간 아버지라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가장 아버지의 돌봄이 필요할 때 내팽개쳐놓고서는 아직 채 성인이 되기 전에 나타나 여성으로 인지하다니. 정말이지 근친상간 이라는 것보다 이 지점에서 더 짜증이 난다. 부모로서 해야 할 의무는 저버린 채 남자가 되어 나타난다? 게다가 그 사이의 나이차 역시도 역겹고. 하나부터 열까지 짜증나는데, 마틸다는 그래서 아버지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는다. 인정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녀는 혼자 지내고 계속 혼자 지낸다. 그녀는 친구도 애인도 아무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그 뒤로 사회화가 되질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버지니아 앤드류스'의 소설 [다락방의 꽃들]에는 어릴 때부터 다락방에 감금되어 온 네남매가 등장한다. 이중 첫째와 둘째인 크리스와 캐시는 아주 어린 쌍둥이 동생들을 돌보면서 서로에게 의지한다. 사춘기때 갇혀 거기에서 몇년을 지내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라고는 서로가 전부인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결국 다락방에서 탈출하고 나서 캐시는 다른 연인을 찾지만, 그러나 크리스는 캐시에게 집착한다. 이 이야기 자체는 근친상간을 다룬 금기의 소설이지만, 그러나 나는 그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감금되어 있는데 대체 어떻게 살란 말인가, 하고. 이들에게 이런 환경이 주어지면 안되는 거였는데, 그런 환경을 준 다음에 그것이 잘못이라고 우리는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와 캐시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나는 비난도 역겨움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



그러나 마틸다의 아버지에 대해서라면 너무나 화가났다. 처음 사라짐부터 나중에 등장해서 다시 그녀에게서 사라지는 이 모든 순간들에 마틸다의 아버지가 생각한 건 자신 뿐이었다. 마틸다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결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렸고, 그 과정에서 마틸다는 외로웠다가 행복했다가 다시 절망하며 고립되어야 했다. 어쩌면 이런 지점에서 여자의 인생 자체가 이렇게 남자에게 휘둘린다는 얘기를 하려고 한건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그저 비극적인 소설이었고 당황스런 이야기였다. 내내 생각한 건, 사람이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예전부터 누누이 말해왔지만, 사람이 단 한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를 올인하는 건 진짜 피해야 할 일이다. 그 상대가 사라졌을 때 내가 무너져서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며, 필연적인 집착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다른 사람이, 다른 관계가, 다른 애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틸다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아버지를 알게되어 행복했을 때, 그녀에게 다른 좋은 관계들이 더 있었다면 이야기는 아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들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과 보냈을 것이며, 지신을 살게 하는 행복과 기쁨들중 일부는 다른 이들로부터 총족되었을 것이다. 또한 아버지로 인해 고통스러웠을 때 그녀를 붙잡아주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녀가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설사 무너졌다해도 고립대신 스스로 일어나기를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관계 자체가 근친상간이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한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이유로 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확보해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너 말고 다른 사람도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마틸다>를 읽고는 그런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됐다. 내 기쁨도 내 행복도 오로지 너야, 나는 너의 것이야. 절대 안된다, 이런 마음은.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도 할거고 저것도 할거고.. 그렇게 살면 안된다. 너를 위해서라면 나는 이건 할 수 있지만 저건 하지 않을거야, 나한테 그런거 시키지마, 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기준을 가지고 너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둘 수 있어야 한다. 너만 있으면 돼, 는 나에게도 위험하고 너에게도 위험하다. 그러면 안된다 진짜. 게다가 그 너가 아버지이거나 딸이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게다가 그 너가 한 명은 어른 남자에 한 명은 미성년자라니. 진짜 뒤집어질 노릇이다. 안된다. 너 말고 다른 사람 이 관계 말고 다른 관계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건 '원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나의 액션도 필요하다. 나의 액션도 나의 리액션도 필요하다. 액션과 리액션을 가진채로 다른 관계를 갖자. 진짜 마틸다 때문에 내가 돌아버리겠다. 휴...



[메리, 마리아, 마틸다]를 읽으면서 선하고 착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는 선하기 위해서 선한게 아닌가. 그것은 과연 옳은가. 우리는 꼭 착해야 할까.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열심으로 돌보는 것은, 과연 상대를 위한 것일까. 그것이 돌봄이든 사랑이든 온 몸을 던지는 것은 자기 파괴를 불러온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어떤 관계든 우리는 반드시 거리를 조절해야 할것이다. 내 인생을 진창으로 몰고 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 책의 단편들을 읽노라면 그 거리가 필요한 걸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할 수 없게끔 만들었던 환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여자들이 높은 지위를 얻을 유일한 길이 남자들의 방탕을 조장하는 것밖에 없으니 사회는 여자들을 괴물로 만들고, 그들의 비열한 악덕을 지력이 열등하다는 증거로 내세운단다. <마리아> - P218

조지는 숙부가 함께 계실 때는 짤막하게 법률에 관한 질문을 하거나 숙부의 뛰어난 판단력을 존중하는 적절한 말을 하는 것 이외에는 별로 입을 열지 않았거든. 그러니 숙부는 그와 함께 계실 때면 늘 그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큰 잠재력을 가졌다고 말씀하셨지.
숙부만 그런 의견을 가진 것이 아니었단다. 하지만 내 말 믿으렴. 증오심 때문에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란다. 다른 젊은이들의 활발한 영혼이 젊음의 폭발을 내던지고 있을 때, 이렇게 적절하게 던진 말, 이 소리 없는 경의의 표현은 생각이 깊거나 겸손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저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고, 상상력이 빈곤한 결과였단다. 패기만만한 망아지가 그와 같은 속도로 날뛸 거야. <마리아> - P220

이런 신중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능력을 익히는 데 필요한 뜨거운 불길이 없고, 그저 어리석지 않다는 이유로 현명하다는 말을 듣는 거란다. <마리아> - P220

한숨이 자꾸만 나오는구나. 하지만 가슴이 여전히 답답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말없이 견디는 것일까? 어째서 남자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아니, 대체 왜 태어난 것일까? <마리아> - P221

"우리 같은 마음은 짝을 만날 뿐, 어울리는 상대를 만나지 못하네."
처음에는 이런 것이 즉흥적인 감정이었으나, 재치 있고 세련된 예의를 갖춘 남자들을 알게 되니 가끔은 너무 일찍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잠시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처지에서 벗어나 잘 알지도 못하는 하늘에서 어린 날개를 펼치려다가 나는 그만 덫에 걸려 평생 새장에 갇힌 처지였다. <마리아> - P225

지는 저는 제 결혼 후에 태어난 그 남자와 하녀의 아이를 데리고 있습니다. 교육과 상황이 남자들로 하여금 더 분방하게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가 질서 유지를 위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록 이 아이의 탄생을 용서해줄 수는 있지만, 이 불운한 아이를 버리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 - P296

울스턴크래프트와 블러드의 우정은 비밀을 공유하는 청소년 시절의 단짝 친구 사이 이상이었다. 산후우울증을 겪던 여동생 엘리자에게 근본적인 문제는 결혼 생활 자체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별거를 조언한 울스크래프트는 패니, 그리고 엘리자와 함께 학교를 설립하고 감정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일종의 여성 유토피아 건설을 시도했다. - <작품 해설> - P440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5-28 1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 현실과는 너무 먼 이야기라 저도 읽으면서 갑갑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해설이 없었으면 아마 리뷰도 쓰기 힘들었을 듯. 제가 의아한건 당시 근친상간에 관한 소설이 어떻게 유행이되었는지 실제로도 유행이었는지예요. 하...

다락방 2021-05-28 12:48   좋아요 2 | URL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며 봐야겠지만 저는 진짜 답답하더라고요. 특히 메리는 왜이렇게 사나 싶을 정도였어요. 병약한 사람들 끌어안고 사는데 여기 어디에 페미니즘적 요소가 있단 말인가.. 하고 말이지요. 너무나 아픈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생각하는 지점에서 스스로를 그 상황에 가두는 것 같기도 했고요. 너무 답답한 소설이었어요.
먼저 완독하신 미미님, 수고하셨어요! 다음달에도 우리 함께 열심히 가봅시다. 다음달 책은 뭔가 가슴을 뻥 뚫어주기를 바랍니다. 으쌰!

잠자냥 2021-05-28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틸다>에서 마틸다가 아버지를 사랑하기로 ‘스스로‘ ‘선택‘했다고 봤어요. (근친상간일지언정) 주체적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인정함으로써 사회에서 추방당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등을 돌렸다‘고 봤는데, 그런 점에서는 전복적으로 보이기도 했고(사회가 금기한 사랑도 욕망하는 주체로서),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지 않았을까 봤는데... 이건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가스라이팅으로 볼 수도 있겠군요.

다락방 2021-05-28 12:51   좋아요 2 | URL
해설에도 주체적 선택이라고 나오던데 저는 여기 어디에서 주체적이고 선택인가 싶더라고요. 아버지가 아이를 방치하지 않았다면, 오만년만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너를 여자로 본다 말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을텐데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그런 지점을 보여주려고 한건가 생각도 했어요. 이것봐라, 여자의 삶이 이렇게 어떻게든 남자에게 휘둘린다, 라는걸 보여주려는건가 하고 말이지요. 제 안에 근친상간-특히 아버지와 딸-을 엄청 밀어내려는 기질이 강해서 이 이야기에서 어떤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제가 너무 밀어내서요. 저한테는 너무 힘든 소설이었어요. 한장 한장 책장 넘기는게 진짜 힘들더라고요. 특히 아버지가 고백하는 부분 있잖아요. ‘다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여자로 보인다는 걸 인지했을 때부터 내 마음도 그러해졌다‘고 하는순간 너무 역겹고 분노가 차오르더라고요 ㅠㅠ 비정상적인 소유욕을 본 것 같아서요. ㅠㅠ

공쟝쟝 2021-05-31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리> 읽으면서 즐거웠어요. 마지막에 메리가 ˝천국은 결혼없는 세상임˝러면서 죽는데 진짜 울스턴크래프트 만만세 했음 ㅋㅋㅋ (하지만 그녀는 결혼을 하고 메리를 낳았다...) 마리아에서 은유를 짚어내신 부분은 제가 생각지 못했던 것 같고요!
마틸다는 읽으면서 이거 근친상간 다락방님 엄청 싫어하겠다.. (저도 싫었음) 이랬는 데 이 리뷰에서 대차게 까주시니, 저는 내말이요. 제말이요, 그러니깐요. ㅋㅋㅋ 이러고 웃는 중입니다!! 6월이다!!!

다락방 2021-06-01 09:02   좋아요 0 | URL
결혼을 했기 때문에 천국은 결혼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마틸다>는 가장 기대했던 작품인데 읽는 내내 견디기 힘들었어요. 저는 근친상간 이라는 것도 싫지만 무엇보다 다른 남자가 딸을 여자로 본다는 걸 인지한 순간 아버지도 그렇게 보잖아요. 그 지점에서 역겨움이 완전 폭발했어요. 인간 쓰레기처럼 느껴짐요 ㅠㅠ
아아 고통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