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시사인) 제758호 : 2022.03.29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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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 산불을 진화하는 소방관들의 기사, 특정 후보에게 투표한 이유, 영화 <벨파스트> 리뷰 들이 좋았다. 김이경의 책 리뷰는 마침 그 책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 포함하려던 터라 읽는게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박지현 위원장의 인터뷰가 좋았는데, 정치를 시작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정치를 시작하면 어떨까, 물었다는 것도 그리고 그들이 모두 응원한다 말해줬다는 것도 인상깊었다. 이 젊은 여성들이 있는한 이 나라가 내 걱정만큼 마냥 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 이 여성들에게 나는 힘을 실어주겠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알게 되는 가장 흔한 루트가 남성 지인이에요. 남동생, 아는 오빠, 남성 친구로부터 '어떤 사이트에서 너를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결국 이 사람도 누군가의 불법 영상을 보러 사이트에 들어간 것이었죠." -p.19 <이것저것 재지 말고 사과하며 정공법으로> 中



아는 여성에게 '너를 어디에서 봤어' 라고 말하는 남성들이 존재하고, 그리고 그것이 잘못됐다, 그러면 안되는거다 라고 말하는 여성들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이다. 바닥으로 한없이 대한민국을 끌고 떨어지는 부류가 있고 이를 악물고 그걸 끌어올리는 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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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3-28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울진 산불이라고 하니...남동생이 그곳에 불 끈다고 일주일동안 동료들과 고생하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상견례를 해야 하는데 동생이 못올 수도 있으니 자기 없어도 상견례 진행하라고...이걸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주말에 비소식이 있었던지라, 늙은 남동생 겨우 참석해서 조용하게 진행했었어요.

기억의집 2022-03-28 23:21   좋아요 2 | URL
남동생분 영웅이시네요!!! 남동생 이번에 결혼 하시나요??

책읽는나무 2022-03-29 09:15   좋아요 0 | URL
어젠 뭔생각으로 다락방님 글에 영~~다른 내용의 댓글을 각각 두 개나 달았었네요?? 약 먹고, 좀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ㅋㅋㅋ
울진 산불 그 글자만 눈에 띄었었네요.ㅜㅜ
동생이 동료들과 일하는 얘기들을 들어 보니까, 그동안 알지 못했었던 소방관들의 노고를 좀 더 자세히 듣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동생이 평소엔 엄청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데 일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조금 철 들어 보이기도 하구요. 동생은 늦게 공부해서 늦게 들어갔는데 아직 영웅같은 행동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동생의 동료분들은 들어보면 영웅이신 듯 했어요.
아...이런 개인 얘기를 제 서재가 아닌 남의 서재에서...^^;;;;
다락방님 죄송요ㅋㅋㅋ

다락방 2022-03-29 11:44   좋아요 1 | URL
울진 산불 꺼주신 소방관 님이 이렇게 지척에 있었네요. 동생분께 감사한다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책나무 님.

공쟝쟝 2022-03-28 1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를 어디서 봤....... 와 ..... 죽이고 싶다. 진짜. 죽여 다죽여버려. (월요일 아침부터 또 인류애 재기하고 있다) 여자들아 다 티스 장착하자 ㅋㅋㅋ!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3-29 11:45   좋아요 0 | URL
진짜 다 티스 장착해서 원하지 않는 침범에는 고추를 다 잘라버리고 갈아버리고 내던져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빡쳐..

기억의집 2022-03-28 2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불꽃 응원하고 얼굴 드러내는 거 정말 힘든 결정이었을 건데 박지현 위원장 너무 감사하고 무한 응원 할 예정입니다. 피해자분들 어떻게 하면 그들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책읽는나무 2022-03-29 09:23   좋아요 0 | URL
저도 박지현 위원장의 얘기를 다락방님 지난 글에서 알게 되었었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었어요.
뜻이 통하는 지인 언니께 열심히 박지현 위원장 얘기를 하면서 돌아다녔어요. 널리 알리고픈, 알려야 할 사람인 것 같아요.

역으로 남성들한테 너도 어디서 본 거 같다. 라고 말하고 다녀야 하나?? 그런 마음이 생기는 분노가!!!!
참, 어떤 해결책이 진정한 해결책인 걸까요? 이런 세상이 참 안타깝습니다.

다락방 2022-03-29 11:46   좋아요 1 | URL
저도 추적단 불꽃을 언제나 응원하고 박지현 위원장도 응원합니다. 있는 힘껏 응원하고 박지현 위원장의 편에 설거예요. 안그래도 대선 이후로 박지현 위원장에 대한 나쁜 말들을-추적단 불꽃의 업적을 폄하한다거나 박지현 위원장이 버릇없다거나, 학력이 별로라거나 등등- 퍼뜨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끝까지 연대할거에요. 아오 나쁜 새끼들 진짜 ㅠ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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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나는 안나와 브론스키에 주목했다. 나와 독서 취향이 너무나 다른 한 친구는 레빈(이름 맞나?)의 생활에 재미를 느꼈다. 우리는 서로의 독서 취향이 다른 걸 알았지만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서는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취향도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해준다는 것이 고전의 매력이라고, 고전은 바로 그래서 고전인거라고 우리는 얘기햇었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래서 고전이구나' 감탄했다. 수도원이라는 소년과 어른 남자들만 있는 환경에서 만난 서로 다른 두 친구가 서로를 동경하고 우정을 쌓고 또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이야기가 뭐 이렇게 재미있을 일이람? 처음 번역된 제목의 '지와 사랑'도 그렇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제목만 들으면 세상 지루할 것 같은데, 게다가 누군가 줄거리를 물어 '수도원에서 만난 두 소년의 우정이야기' 라고 하면 또 진짜 엄청 지루할 것 같은데, 이게 책장을 펼치면 지루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거다. 와 이래서 고전이구나, 이렇게 재미있다니. 고전을 그동안 읽는다고 열심히 읽었으면서도 나는 제목에서 오는 지루함으로 이 책은 저기 치워두고 있었던거다. 아아, 재미있다. 혹시 나같은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여러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재미있습니다. 진짜 재미있어요.



나르치스는 학문으로 자신을 쌓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할지를 알고 수행하는 사람이며, 그 길이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알고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 길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모두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데에도 능한데,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소년 '골드문트'의 길이 수도원에서 학문을 쌓는데 있지 않음을 금세 파악한다. 그가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억지로 누르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가 수도원 바깥으로 나가 경험하며 자신과는 다른 길로 가야 하는 사람임을 알아본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를 애정하고 골드문트 역시 나르치스에게 의지하지만 그러나 그 둘은 함께한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각자의 길로 들어간다.



골드문트는 연애가 좋고 섹스가 좋아서 만나는 여자들마다 다 자고 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 여자들을 관찰한다. 몸짓과 몸의 형태와 감정이 드러나는 면면들을 관찰하고 그들 모두를 사랑하며 그 순간들을 눈과 가슴에 담는다. 어떤 여자는 하루만 사랑하고 어떤 여자는 며칠간 사랑하면서 거기에서 뭔가 큰 통찰을 얻는듯 보이고 책에서도 그렇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외부에서 보면 이여자 저여자 자고 다니는 젊은 놈팽이에 다름 아닌데, 그가 나중에 위대한 작품을 남긴다한들 콘돔없이 여기저기 자고 다녔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어느 때에는 한 기사의 집에 머물면서 양쪽으로 기사의 딸자매를 뉘이기도 한다. 입으로는 언니한테 키스하고 손으로는 동생의 몸을 만지는 짓을 저지르는데, 그거 보면서 와 진짜 남자 작가들은 책을 쓰면 지 로망을 어떻게든 실현하려고 하는구나 싶어서 실소가 나왔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책을 통해 쌍둥이 자매랑 함께 지내는 장면을 쓴 적이 있고, 박범신이야 말해 뭐해, 칠십대 근육질 노인을 동경하는 미성년자 그려내지 않았던가. 펜을 쥐고 쓰는 자의 마음이라지만 골드문트가 자매들하고 한 침대에 눕는 건 진짜 어이가 없었다. 으휴 징그러운 인간들 같으니라고.


게다가 콘돔도 쓰지 않고 피임도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는 그냥 그 날 마주쳐도 섹스하고 오래 공들였다 섹스하고 섹스하고 섹스하고 섹스하고 그 와중에 어떤 여성은 나 임신한 것 같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여자만 그랬을까. 그가 섹스하고 떠나온 많은 길에 분명 아버지 없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 여럿이었을거다. 그러나 골드문트는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죽음을 떠올리고 수시로 나르치스를 그리워하고 또 가슴 깊이 간직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이 모든것들을 형상화할 예술을 갈망하고 창작에 대한 욕망에 불을 지피면서도 '내가 지나온 자리에 아이 없는 아버지가 생겼을것이다'에 대한 생각은 한순간도 해보지 않는다. 


그렇게 몇 년을, 아주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방황하고 그러다 추울 때는 누군가의 집에 신세를 지면서, 노동을 하지도 않으면서 먹고 살 수 있다니 골드문트는 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잘생겼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백인 소년 그리고 백인 청년은 노동하지 않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며 심지어 애인을 만드는데에도 아무런 지장은 없는것 같다. 게다가 너무나 쉽게 백작의 애첩과도 섹스한다. 자신의 몸에 장애를 가진 한 여성은 '내가 건강했다면 니가 다른 여자랑 자러 가지 않았을텐데'하며 그를 향한 마음에 괴로워한다. 모든 여자들은 골드문트를 사랑해 둠칫두둠칫. 오래 방황하고 길에서 떠도는 남자랑 쉽게 자는 여자들에 대해서도 나는 참 거시기했던게, 일단 그의 몸이 청결한 상태가 아니었고 어디에서 누구랑 자고 어떻게 성병을 옮기고 다닐지 모르는데 어째서 왜때문에...


그만두자. 나는 골드문트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이다. 지금은 2022년 3월이고 곧 봄이 올 것이며 스맛폰을 사용하는 시대이고 나는 이십년이상 노동을 한 대한민국의 여자사람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재회한다. 이 책의 백미는 이들이 재회한 뒤부터라고 나는 생각한다. 골드문트는 '다만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사실뿐'(p.163) 이라고 한것처럼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아갔고 그러다 나르치스와 재회한 것이다.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길에서 방황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과 죽음과 그리고 살인을 마주하는 동안 수도원장이 되어 있었다. 나르치스는 나르치스대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대로 간 것이었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가 마련해준 작업실에서 조각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것은 예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기에도 감동을 느낄만큼 아름답고 대단한 것이었다. 골드문트는 자신이 그동안 걸어온 길이, 겪어온 모든 것들이,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이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라 말한다. 이때 나르치스가 자신이 공부한 학문과 이성에 대해 얘기하고 골드문트가 상상과 예술에 대해 얘기하는데 그 장면이 진짜 기가 막히게 좋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을 읽는 나는 어디쯤에 있나를 자꾸 되묻게 된다.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책을 읽기 전에는 '경험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나, 여행하는 나는 골드문트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헤어지면서 그리고 낯선곳에 가보고 또 낯선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때마다 배우고 느끼는 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므로 골드문트가 아닐까 했던거다. 그러나 나르치스의 삶을 가만 보노라면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계속해서 공부하고 타인을 관찰하며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보는 면면들에서는 나는 나르치스와 닮지 않았나 했다. 나르치스는 물리적으로 이동하진 않지만 정신적으로 계속 나아갔던 사람이고 골드문트는 계속 나아가기 위해 물리적으로 움직여야 했던 사람이다. 나르치스는 정착해서 성장하고 골드문트는 방황하며 성장한다. 그는 정착할줄 모르고 정착할라치면 좀이 쑤시는 사람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정착과 방황의 극과 극에 서있다면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을텐데, 곰곰 생각해보면 나르치스 쪽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나도 훌쩍 떠나고 싶고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배우는 바가 있지만, 그러나 나는 반드시 돌아오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떠날 수 있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떠나는 것만큼이나 돌아오는 것을 갈망하고 떠나는 것만큼이나 돌아가는 것에도 설레인다.



나르치스는 수도원장이 되었고 골드문트는 다시 없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그들 모두의 그간의 시간과 경험과 학문이 고스란히 쌓여있다. 그리고 골드문트는 자신이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 절반은 나르치스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진짜 자지러지게 좋은 부분이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여자를 성적으로 대상화시키고 도구화시킨다고 생각하고 그 모든 여자들과 사랑하고 섹스하고 인생을 배워놓고 그들을 그저 소모품 취급한다고 생각한다. 골드문트가 그동안 만나온 그 수많은 여자들을 골드문트는 '여성' 외에 다른 걸로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학문을 하는 것도 성장을 하는 것도 그 여성들의 몫은 아니었다. 작품속 여성들은 사랑만 갈구한다. 이것은 1930년에 쓰여진 작품이 가지는 어쩔 수 없는 '지금의 내가 보는' 이 작품의 한계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각자의 이유로 누군가를 도구화 삼기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사건들과 그런 시간들을 거쳐 돌고돌아 결국 잘 보이고 싶었던 한 사람에게 간다는 것, 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가장 소박한듯 하면서도 그러나 가장 큰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누군가 한 명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살아가는건 아닐까. 



나르치스, 내 인생의 절반은 자네한테 잘 보이려고 했던 일들이었네. 자네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자네가 나한테 말하리라고는 한 번도 기대한 적이 없었다네. 자네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제 자네는 나를 사랑했다고말했네. 나한테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바로 이 순간에, 방랑도 자유도, 세상도 여자들도 모두 나를 곤경에 버려두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말일세. 자네의 말을 받아들이겠네. 고맙네. -p.471



두 소년을 만나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들이 훗날 다시 만나 각자의 삶과 이상에 대해 얘기할 때는 묵직한 감동이 찾아온다. 어른이 된 그들의 대화 부분은 다시 읽어봐도 좋을것 같다. 고전의 참재미가 이 책안에 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은 얌전하게 절도 있는 생활을 했지만 그녀는 다시 예전에 춤추던 시절의 기질이 되살아나서 아버지의 근심을 사고 남자들을 유혹했다는 것이었다. 몇 날 몇 주씩 집을 비우기도 했고, 마녀라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남편이 몇 차례나 다시데려와서 곁에 붙들어두었지만 결국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고도 한동안은 그녀에 관한 소문이 들려왔다. 그 고약한 소문은 마치 별똥별의 꼬리처럼 깜박이다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남편은 그녀가 안겨준 불안과 경악, 치욕과 지울 수 없는 충격 속에서 몇 해를 보내다가서서히 회복되었다. 잘못되고 만 부인 대신에 이제 그는 귀여운 아들을 키우는 데에 마음을 쏟았다. 아들의 용모는 어머니를 빼어닮았다. 아버지는 한을 삭이지 못한 채 억지 신앙에 빠져들어 골드문트에게 어머니의 죄를 씻으려면 평생을 하느님께 바쳐야 한다는 믿음을 키워주었던 것이다. - P92

골드문트의 아버지가 잃어버린 아내에 관해 곧잘 이야기하는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골드문트를 수도원에 맡기면서 수도원장에게 대강의 암시를 주었다. 그리고 이 끔찍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들이 어머니에 관해 알고 있는 전부이기도했다. 그렇지만 골드문트는 그런 이야기를 의식 한켠으로 밀쳐내고 거의 잊어버리도록 교육을 받아왔었다. 그런데 그는 어머니의 진짜 모습도 까맣게 망각하고 상실해 버렸다. 어머니의 진짜 모습은 전혀 달랐다. - P92

그의 배움은 계속되었다. 그가 단기간에 배운 것은 수많은 부류의 사랑과 사랑의 기술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많은 애인들의 경험을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또한 여자들을 그들의 다양한 성향에 따라 관찰하고 느끼고 접촉하고 냄새 맡게 되었다. 그는 갖가지 부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섬세한 귀를 갖게 되었으며, 상당수의 여자들에게서는 목소리의 울림만 듣고도 그들이 지닌 사랑의 능력이 어느 정도이며 어떤 성향인가를 어김없이 알아맞힐 수 있게 되었다. 갈수록 새로운 황홀감을 느끼면서 그는 머리를 목덜미에 기대거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결을 쓸어올리거나 또 무릎뼈를 움직일 수 있는 온갖 다양한 방법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도 섬세하게 감식하는 손가락을 가지고서 어떤 여자의 머리칼이 다른 여자의 머리칼과 어떻게 다르며 또 어떤 여자의 살결과 솜털이 다른 여자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알게 되었다. - P162

그는 바로 여기에 방랑 생활의 의미가 있다는 것, 즉 어쩌면 이처럼 식별과 구분의 능력을 갈수록 더 섬세하고 다양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터득하고 단련하기 위해 한 여자로부터 다른 여자한테로 떠밀려다닌다는 것을 진작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방랑이 그의 운명인지도 몰랐다. - P162

마치 상당수의 음악가들이 한 가지 악기만 다룰 줄 아는 게 아니라 셋, 넷, 혹은 - 그 이상의 많은 악기를 다루듯이, 완벽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여자들과 사랑을 온갖 방식으로 그리고 수없이 다양하게 겪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이런 경험이 무엇에 도움이 되고 또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에게 비록 라틴어나 논리학을 공부할 능력이 있다고는 해도 놀라울 만큼 비범한 재능을 타고나지는 않은 반면, 사랑의 문제 혹은 여자들과의 유희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문제는 힘들이지 않고 익혔으며,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고 경험들이 저절로 축적되고 정돈되었던 것이다. - P162

한번은 골드문트가 그렇게 의도적인 속셈을 가지고 사람들한테 접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응수하면서, 자기는 비록 그런 재주가 없지만 친절하게 부탁을 해서 손님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말하자 키다리 빅토르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골드문트, 너는 그렇게 해도 통할지 모르지. 너는 너무나 젊고 잘생긴 데다 정말 순진해 보이니 그런 외모가 훌륭한 숙박권이 될 수 있단 말이야. 여자들한테는 호감을 주고, 남자들은 이 친구는 정말 순진무구하니까 아무한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보라구. 사람이란 나이를 먹게 마련이고, 동안(童顔)에도 언젠가는 수염이 나고 주름이 생기고 바지에도 구멍이 나게 마련이지. 그러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환영받지 못하는 추한 손님이 되고 말지. 그리고 눈에는 젊음과 순진함 대신에 허기진 기색만 드러나거든. 그렇게 되면 마음이 모질어지고 이 세상에서 뭔가를 배울 수밖에 없게 된단 말이야. - P210

그렇게 되면 마음이 모질어지고 이 세상에서 뭔가를 배울 수밖에 없게 된단 말이야.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두엄더미에드러누워야 하고, 개들이 오줌을 갈긴단 말이야.」 - P210

산모가 신음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은 얼마나 신기했던가! 동료 빅토르가 고꾸라지면서 너무나 조용히, 너무나 빨리 피를 흘리는 모습은 또 얼마나 신기했던가! 그 자신은 또 어떠했던가, 굶주린 나날에는 죽음이 주위에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던가! 굶주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얼마나 추위에 떨고 또 떨었던가! 그리고 어떻게 맞서 싸웠던가! 죽음의 콧잔등을 후려갈기고, 엄청난 죽음의 불안과 격렬한 쾌감을 느끼며 저항하지 않았던가! 도무지 이보다 더 엄청난 일은 겪을 성싶지 않았다. 아마도 나르치스와는 이런 체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밖에는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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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16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나한테 왜 그래요. 참 ㅅㅅ ㅅㅅㅅㅅㅅㅅㅅㅅㅅㅅ 하네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3-16 09:3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그런게 아니라 골드문트가 그런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섹스섹스섹스섹스 왜 말을 못해요 잠자냥 님. 섹스를 왜 섹스라고 못해,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3-16 09:39   좋아요 1 | URL
회사라 차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3-16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주 예전에 읽었는데 제가 읽었던 책이 이 책이 맞나 싶네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라는 다락방님 의견에 극공감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 있다지요. 🤭🤭🤭

다락방 2022-03-16 09:42   좋아요 2 | URL
다들 오래전에 읽은 고전을 저는 이렇게 뒤늦게 읽고 재미있다고 호들갑이네요 ㅋㅋ 그런데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수도원의 두 소년이라니, 너무 지루할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이렇게 재미있다니. 크- 역시 고전은 달리 고전이 아닌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삶의 동력이라고 저는 스스로 그렇게 깨달았던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오긴 한 것 같거든요. 책은 이렇게 제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제 마음을 정리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 경험, 소중한 경험입니다, 단발머리님. 우리 앞으로도 잘 살아봅시다!

잠자냥 2022-03-16 09:3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중학생 때 <지와 사랑> 읽고 독후감 써내서 전교 최우수상 받은 기억이 있는 저에겐 좀 남다른 책인데요, 서른 넘어 다시 읽으니 골드문트는 정말 어떻게 보면 몹쓸 놈이더라고요. 그럼에도 다락방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의 묘미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중에 다시 만나서 각자의 삶과 이상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중학생 때 읽을 때 골드문트의 여성편력 부분은 특별히 정독했습니다. 약간 야릇한 기분에 휩싸여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3-16 09:46   좋아요 5 | URL
세상에, 중학생 때 지와 사랑을 읽으셨다니. 몹시 조숙한 중학생이었네요. 크- 저는 지와 사랑 이라니 너무 진짜 재미없는 책제목이지 않아요? ㅋㅋ 읽을 생각을 전혀 안한 책이었어요. 그리고 지와 사랑이 뭐야, 지와 애.. 라고 해야 맞는거 아니에요? (이런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님 될성부른 나무였네요. 중학생 때 독후감 전교 최우수상이라니.. 멋져. 어릴때부터 잘썼던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독후감 썼던거 아녜요? >.<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나중에 만나 대화하는 마지막 장면은 진짜 좋더라고요, 잠자냥 님. 그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그 과거의 시간들이 있었던거겠죠. 사람은 어떤 포지션이든 소중한 누군가로 인해 살아가기 마련인가봅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저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때 읽었다면 그 약간 야릇한 기분.....으로 읽었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3-16 10:04   좋아요 1 | URL
아니 독후감 쓰면서 태어나는 상상하니까 뿜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사실 어린시절에 야릇한 재미때문에 읽은 고전 좀 많지 않아요?(엄마만 모를 뿐ㅋㅋㅋㅋ)
대표 사례 <채털리 부인> 근데 골드문트 여성편력이 더 야릇함 ㅋ

다락방 2022-03-16 10:22   좋아요 2 | URL
저는 채털리부인 20대에 읽었는데 서로 성기에 이름 붙여주는 거 보고 대충격 받았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3-16 11:35   좋아요 2 | URL
야릇한 상상 하느라 읽은 책 가운데 백미는 역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아닐까 싶은데요?
<북회귀선>은 외설 맞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야릇하게 찌르르하지 않고요 그냥 곧바로, 아이고 얘기 못허겄네.

다락방 2022-03-16 11: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북회귀선은 책방에서 빌려다가 후다닥 넘기며 야한 부분만 골라 읽으려고 시도했던 기억이 나네요. 성공하진 못한 것 같아요. 뭔 내용을 알아야 그런 부분을 골라읽죠. 저 꼬꼬마 때도 그 소설 야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3-19 00:41   좋아요 1 | URL
댓글이 뜨겁네요... ... 금요일 밤입니다... 나는 혼자인데...

Falstaff 2022-03-16 11: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서평 잘 읽었습니다. 역시 다락방님!
전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그런지 골드문트가 저 지랄을 하고 다녔다는 것도 다락방님 글을 읽어보고야 아하, 그랬지, 맞아, 이럴 정도였습니다. 잠자냥 님이 저번에 이 여자, 저 여자 경험한다고 해서 그냥 그러려니(한편으로는 아이고 부러워!) 했는데 이제 보니 그야말로 난리였군요!
다락방님의 4별은 무책임하게 자고 다니는 것 때문에 좀 야박하게 주신 것도 같고, 아무래도 스물다섯 살 다락방 님한테는 조금 과하게 낭만적이라서 그랬던 것도 같네요. 역시 헤세는 십대에 읽어줘야 껌벅 넘어가지 않나 싶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2-03-16 11:39   좋아요 6 | URL
골드문트 님,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쓰니까 마치 이 책을 골드문트 님이 쓰신 것 같네요 ㅎㅎ)
다만,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의 제가 읽기에는 다섯이 후하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과하게 낭만적이라는 표현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십대에 읽었다면, 사실 저는 음.. 뒷부분의 어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대화를 잘 이해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그 부분을 지금 읽어서 너무 좋았거든요. 아 고전 읽는 거 너무 재미있어요. 고전 짱입니다 진짜!! ㅋㅋㅋㅋㅋ

mini74 2022-03-16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르만 헤세 책이 중학교때 필독서 목록이았다는게 이해가지 않는 ㅠㅠ 저는 중3때 개폼 잡으며 크놀프 삶으로부터 세 이야기 독후감 썼는데 제출도 하기전에 언니한테 걸려서 ㅠㅠ 개망신을 당한 기억이 납니다. 막 한자도 좀 섞고 ㅋㅋㅋ 넘 부끄러운 글. 우리나란 독서조차 너무 선행하는 거 같아요.

다락방 2022-03-16 14:52   좋아요 3 | URL
저는 어른이 되어 고전을 읽으면서 이걸 어릴 때 읽어서 뭘 어쩌라는가 싶더라고요.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이해되는게 있는데 말입니다. 미니님 말씀대로 우리가 독서를 너무 선행하려는 것 같아요. 그러니 독서에 재미를 느낄 수 없는거 아닐까요. 물론 아주 똑똑한 사람들은 아이때도 고전을 읽고 고전의 참재미 느끼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읽다가 유시민이 죄와벌을 고딩때 읽고 너무 재미있어 했다는걸 알게 되면서, 아, 똑똑한 사람은 다르구나.. 했습니다. 하하하하하.

Forgettable. 2022-03-17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내 갈등과 우울의 원인이었다.
난 나르치스처럼 살지도 않을테고, 골드문트처럼 살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내 꿈을 자극했다.
내 마음 속의 갈등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펼쳐져서 읽는 내내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라고 2008년에 남겨 두었네요 ㅎㅎㅎ

지와 사랑이었다니 탁월하면서도 지루한 제목 ㅋㅋ 저도 엄청 좋아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니 참 다시 읽어야겠어요.

다락방 2022-03-17 15:17   좋아요 3 | URL
저는 아주 재미있게 읽고 마지막 그들의 대화가 참 좋았는데 이걸 어릴 때 읽으면 제가 그만큼 감동받을 수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저는 만약 이걸 좀 더 어릴때 읽었다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ㅇ
뽀는 2008년에 읽었다니, 완전 꼬꼬마 때 읽었네요. 애긔애긔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3-19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오 너무 잼써!!ㅋㅋㅋ 제가 이거 읽고 이렇게 유튜브에 썼던거 같은데?.. 나&골 두분 사랑 영원히...*
전 다락방님이 골드문트과일거라고 생각했는 데, 의외로 나르치스 쪽이라고 해서 좀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데 또 저는 요즘 제 안에 골드문트를 발견하는 중이고요? (아, 막 자고다닌다는 뜻은 아니고요... ㅋㅋㅋ저 다 끊었어요? 응? 아무도 안궁금해..ㅋㅋ 모험심?)

다락방 2022-03-21 11:34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온갖 여자랑 사랑해놓고 결국 돌아가는 건 나르치스.. 인생 뭐 이래요? ㅋㅋㅋ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사랑 뽀에벌~ 역시 사람은 누구를 사랑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하는것 같아요. 그걸 모르니까 자꾸 방황한다. 그렇지만 방황이 또 인생의 묘미가 아니던가..

저는 우리 인간의 마음 속에는 저마다의 나르치스와 저마다의 골드문트가 있고 그것들이 자기만의 비율로 섞여서 발현된다고 생각하비다. 저는 골드문트 이 자식에게 여자들이 모두 빠져드는게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
그리고, 저도 다 끊었어요!!! (뭘?)

공쟝쟝 2022-03-21 12:18   좋아요 1 | URL
천하의 잡놈 골드문트 라고 외쳤다가 갑자기 알라딘의 골드문트님이 떠올랐는데…. 네?
저 끊은 거 겠죠? 왠지 탈락된 것 같아… 응?

다락방 2022-03-21 13:44   좋아요 2 | URL
일단 우리 끊은거야. 근데... 요즘 연애소설 읽는데 남주가 근육질이라서 .. 아 지금 복잡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3-21 15:24   좋아요 1 | URL
아 근육 집착 진짜.. 그 버릇을 고치…지말자… 난 주말에 본 드라마의 남주혁 얼굴이 안잊히네 …(얼빠..)

다락방 2022-03-21 15:26   좋아요 1 | URL
왜 다들 그렇게 남주혁에 난리지? ㅋㅋ 오늘 아침에도 수연님과 단발님이 남주혁 좋다고 그러시던데 쟝님이 또 그러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남주혁 안좋지롱~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나는 지금 외국배우 등근육 보고 정신줄 놓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 끊을 수 있을까? ㅜㅜ

공쟝쟝 2022-03-21 15:28   좋아요 0 | URL
있어 그런게 눈물 그렁하면 마음 녹아내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ㅋㅋㅋㅋㅋㅋ 알아요 다락방님 취향은 더뤼섹싀 전완근 이두근 광배근(??) 응?? … 끊어야하는 데 ㅋㅋㅋ 참 저 티스 봤어요 ㅋㅋㅋㅋ 아프겠더라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3-21 15:3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프겠더라‘ 가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라 아프겠더라‘ 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3-21 15:36   좋아요 1 | URL
웅… ㅋㅋㅋㅋㅋ 졸라….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락방님이 빵터졋다니까 ㅋㅋㅋ 같이 빵터지넼ㅋㅋㅋㅋㅋ? 많이 졸라 많이 아프겟더라 ㅋㅋㅋ 그러게 *을 아무데나…

얄라알라 2022-04-09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에도 당선작에 당근 다락방님 글
페이퍼와 리뷰,
따블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다락방님 서재에만 들어오면 ㅋㅋㅋ왤케 즐거워지는지요. 범접, 흉내 불가 케미이십니다

얄라알라 2022-04-09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서재 단골인데, 저는 왜 이 글을 놓쳤던 걸까요?^^:; 선정 축하드리러 왔다가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님 닉넴 지우고 올린 후, ‘누구 작품?‘ 요렇게 물어도 플친님들 찾으실 것 같아요. 뭐가 시그니처인거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지와 사랑>일 때 읽었는데, 제목이 어느 시점엔가 다르게 번역되었나보네요. 2022년 3월, 스맛폰 쓰시는 다락방님 시점에서 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너무 재밌습니다!

또 한 번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4-0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작가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작가의 리뷰는 역시 다르고 뭔가 쎄네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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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자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그를 기리고 있을만큼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을 새로 발견해내고 이름 붙인 사람이 그다. 어릴적부터 이름모를 작은 꽃에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다. 이 책의 저자 '룰루 밀러'는 혼돈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를 우연히 알고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 그가 궁금해진다. 그렇게 그의 회고록을 읽는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커리어를 찬찬히 쌓아가는 일이 당연히 그 회고록에서 보여진다. 교수가 되고 학장이 되고 아내를 얻고 결혼을 하는 시간의 흐름과 삶.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물고기들을 잡고 이름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다. 첫 아이가 아직 열살도 되지 않았을 때 아내가 병으로 죽고 그러자 데이비드는 2년도 안되어 제자 한 명과 재혼한다. 새로운 아내는 아직 스무살이 되지 않았고, 열살이 된 데이비드의 큰 딸과 동생을 기숙학교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남편이 떠나는 모든 연구를 위한 여행에 동행할 것을 선언한다. 아내로서 남편의 여행에 동행하는 것이야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나는 전아내로부터 낳은 이 어린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넣고는 새로운 젊은 아내와 세계를 돌아다니는 데이비드가 싫었다. 처음 룰루 밀러가 그의 혼돈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언급했을 때에는 오, 대단한 사람인데?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하는 사람이군, 좋아, 라고 생각해서 흐름을 좇아 읽다가 그가 어린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넣고 아내와 돌아다니는 걸 읽노라니 이 데이비드란 남자가 싫었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에게 매력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닌데? 나는 이 남자 싫은데? 


얼마전에 본 데이비드 포스터의 다큐도 떠올랐다. 왜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기거나 천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생활이 이모양일까. 그래야만 업적을 남길수 있나? 왜 어린 자식들을 이렇게 방치하는거지? 나는 싫었다. 위대한 업적을 남겨 그 사람이 후대에 이름을 널리 알릴지언정, 이런식의 사생활로 주변의 약자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 불행한 어린시절을 기억으로 남긴다는 것이 싫었다. 세상이란 그렇지만 결국은 약자와 사소한 일들에 신경쓰는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는 건 아닐까. 나는 위대한 업적을 좇는 사람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버려두지 않는, 특히나 어린아이들을 버려두지 않는 사람들 쪽이 더 좋아. 나는 그들의 가치를 믿어.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책을 계속 더 읽어야 하는걸까 고민하게 됐다. 다른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나의 관심의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런데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진 사람이 영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것 역시 어쩔 수 없지 않나. 내가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룰루 밀러가 파고드는 사람이 영 내가 보기엔 별로인데, 그런데 읽어야 할까? 룰루 밀러는 이런 거는 개의치 않는건가? 룰루 밀러에게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분류학자인지만 중요한건가? 나는 룰루 밀러까지 별로가 되려고 했다. 그렇게 책의 중간이 되기전까지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 책에 대한 호평을 숱하게 들어온터라 어쩌면 이 책을 안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도 했다. 그만 읽고 '나는 별로' 라고 평을 쓸까, 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읽기로 한다. 이 데이비드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아이들을 방치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선행을 한 사람인가? 나는 이 책의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계속 읽는다. 그리고 중간에 뭐야, 하고 소름끼치게 이 책이 미스테리 소설같아짐에 놀라고, 아니 그래서.. 이건 지금 뭐가 어떻게 되는거지..하는 가운데 룰루 밀러가 끌고가는 대로 이끌리고야 만다. 그리고 룰루 밀러가 말하는 결말에 이르게 되면, 눈물을 펑펑 쏟는다. 아이고야, 이런 얘기를 어떻게 이렇게 진행해요, 하고 울게 된다. 아침에 읽어도 울게 되고 다시 떠올려도 울게 된다. 아니, 룰루 밀러, 이 사람 진짜 뭐지. 글 쓰기 위해 태어난 천재인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내기 위해 머릿속에 큰 그림 그려둔건가, 아니면 펜에 몸을 맡겼더니 둠칫 두둠칫 이렇게 되었나. 



이 책의 중간 이후부터를 말하는 것은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된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을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결말에 대한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 것같다. 나부터도 그렇다. 이 감동은, 모르는채로 룰루 밀러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좇아가며 들었을 때 나를 집어던진다. 단언컨대,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예외없이, 이야기가 이렇게 흐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책의 앞부분, 룰루 밀러가 어린 시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버지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그 어린 룰루 밀러에게 너는 개미 한마리보다 가치가 없다고 말해주었을 때, 그래서 어린 룰루 밀러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살고 있는거야? 고민하는 걸 보면서, 나는 보부아르의 책을 건네주고 싶었다.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우리가 살아가는 건 그대로의 의미가 있어. 보부아르는 말했지. 우리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기 위해 저 위로 오르는 것은, 그걸 타고 내려오기 위한 목표가 있는 행동이라고,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 라는 냉소는 필요치 않다고, 그런 냉소는 냉소가의 몫이지 스키를 타기로 한 사람이 결정한것이 아니라고.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보부아르의 [모든 사람은 혼자다]를 건네주고 싶었다. 아니, 의미가 없지 않아, 우리가 무얼 하고자 하고 그 결말에 이르기 위해 과정을 거쳐내는 것들은 그것 나름대로의 종합적 의미가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공허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룰루 밀러는 스스로 깨닫는다. 이 책 한 권을 얘기하면서 의문을 갖고 의심을 하고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내가 괜히, 그런 룰루 밀러에게 오지랖을 부릴 뻔 했어. 나는 진짜 내 오지랖 고쳐야 돼 증말. 



책을 읽기 전에도 왜 제목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이 제목은 왜인가, 했다.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러나 책을 다 읽어갈 쯤이면 이 책 제목이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인지 알게될 것이고,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질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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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01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오늘 출근하신 줄 알았어요. 다부장님을 휴일에도 컴터 켜고 글 쓰게 만드는 책이군요. 꼭 읽어보겠삼!

다락방 2022-03-01 15:30   좋아요 2 | URL
네네, 꼭 읽어보세요 잠자냥 님.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2-03-01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닛 정말 이렇게 쓰시면 너무 궁금해서 책을 안읽을수가 없잖아요. ㅎㅎ

다락방 2022-03-01 15:31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 님, 이 책 읽어보세요. 두껍지도 않아서 금세 읽으실 거예요. 그리고 분명 놀라워하실 겁니다!

새파랑 2022-03-01 1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고기는 없나요? 이 책 이작가님의 세번째 책에 소개되겠군요 ^^ 저도 갑자기 급 궁금해집니다~!!

다락방 2022-03-01 15:31   좋아요 2 | URL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파랑 님. ㅋㅋㅋㅋㅋ 그건 책을 읽어보면 아실겁니다. 후훗.

꼬마요정 2022-03-01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을… ㅠㅠ 읽을 책이 너무 많습니다ㅠㅠ 기뻐해야 할까요, 슬퍼해야 할까요.ㅠㅠ 이건 슬픔의 눈물이 아닙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2-03-03 09:02   좋아요 1 | URL
이제 눈물을 닦으시고 책을 사세요, 꼬마요정 님! 그리고 읽으시면 됩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또 우리 마음이 참 좋아지지 않습니까. 가치있는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3-01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 리뷰 읽으니 너무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대체 왜 제목이 저리 지어졌으며 뒤집어질만한 결말까지의 모험은 왜인가^^ 이번달은 못 읽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경험해봐야겠네요. 스포는 안 알려주셔서 감사해요.ㅋㅋ

다락방 2022-03-03 09:03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대한 리뷰중에는 읽으면서 계속 장르가 바뀌는걸 경험한다는 것도 있던데, 거리의화가 님, 언제라도 읽으시기를 단호하게 추천합니다. 놀라운 책이었어요!

등롱 2022-03-01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니 이 리뷰를 보니까 초반 몇 장 읽고 더 읽어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덮었는데 다시 펴봐야겠어요!!!! 다락방님의 리뷰를 보니 다른 사람들의 호평을 보고도 시큰둥했던 마음이 단숨에 바뀌었어요~~!

다락방 2022-03-03 09:05   좋아요 0 | URL
등롱 님, 중간까지 ‘이게 뭐여.. ‘하면서도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 다음부터는 ‘뭐라고?!‘ 하게 되고요 결말에 닿게 되면 ‘아 맙소사 이런 얘길 하려고 한거였어?‘ 하게 됩니다. 눈물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니 중간까지의 지루함이나 의문스러움, 갸웃함과 싸우시고 끝까지 가보세요!!

그레이스 2022-03-01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더 궁금해지네요^^

다락방 2022-03-03 09:05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이에요, 그레이스 님. 후훗.

고양이라디오 2022-03-14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 보니깐 엄청 궁금하네요. 이 책 봐야겠어요!!ㅎㅎ

다락방 2022-03-14 14:17   좋아요 2 | URL
꼭 읽어보세요 고양이라디오 님!!

헤스티아 2022-04-12 2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사려고 리뷰보는데 첫번째에 다락방님 리뷰가...^^ 반가워서 댓글달아요. 여전히 많이 읽고 쓰시네요~ 잘 지내시죠? ^^

독서괭 2022-04-23 11: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물고기 책 다 읽어서, 드디어 리뷰들을 시원하게 읽으니 좋습니다😄

공쟝쟝 2022-07-0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부장님! 말씀대로 의미없지 않아요! 하지만 (저같은) 의미주의자들에겐 의미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꼭 필요합니다! 룰루 밀러가 냉소로 그자신을 공격하면서 스스로 몸부림 치는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가 존경하려고 노력했던 인물 같은 자기 기만 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락방님이 눈물흘린 그 장면에서 (와, 연출자의 기획의도 넘나리 보여서) 못 울고 좀 울컥했습니다. 전 마지막 부분에 자신이 믿는 것을 용감하게 뒤집어 엎고 다른 것을 같은 마음으로 다시 준비하는 과학자들 보면서 주말에 이야기 나눴던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다 내던지고 너무 멀리 와버린 제 자신이 기뻤습니다.
 
One Day in December : the uplifting Sunday Times bestseller that stole a million hearts (Paperback) - 『12월의 어느날』 원서
Josie Silver / Penguin Books Ltd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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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조연이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물론, 씬스틸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 인생의 주연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오디션을 보고 보기 좋게 탈락하기도 하고, 가까스로 캐스팅이 되었지만 금세 하차하기도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한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이 있으므로 내 후회 따위 간단히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장했던 second best는, 나는 조연이라고 생각했다. 주연인줄 알고 갔는데 조연이었던, 다른 사람의 삶.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삶.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조연이 결코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는 걸, 재능이 없다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걸.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는 그리고 내 인생에서도 주연이 필요하고 조연이 필요하다. 그래야 풍성한 한 편의 극이 완성된다.



로리는 그런면에서 볼 때 혼자 극을 이끌어가기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미 극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사라를 향한 질투와 부러움을 가진 채로 저예산 영화를 찍어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저기 주연 배우가 눈 앞에 있는데도 제대로 캐스팅하지도 못하고 다른 극에 넘겨준다. 어쩔 수 없지, 하는 체념이 로리에게 잇었다. 이미 다른 극에 출연중인 배우를 중간에 빼앗아 오는 건 도덕에 어긋나니까. 그런 로리가 오스카라는 어마어마한 주연 배우를 만난다.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고 찍었다하면 흥행하는 보장된 주연 배우. 그런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기뻐하고 이 극을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나 로리가 찍는 영화에는 이렇게나 화려한 배우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저기 저 잭, 저 배우가 필요했다.



사라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게 뭔지 알고 적절한 배우가 누구인지 바로바로 캐스팅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로리는 느리게 가는 사람이다. 로리에게 모든 일들은 느리게 진행된다. 극을 구성하는 것도 그리고 주연을 캐스팅하는 것도. 로리가 한 편의 근사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도 필요했다. 천재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전세계 동시개봉 영화를 찍어내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한 편의 영화를 겨우겨우 상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흥행이라는 것이 그 극이 성공했다는 것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든 사람에게는 흥행하지 못했더라도 딱 이정도의 영화가 후회없는, 바로 내가 생각한 그 영화일 수 있다.



나는 오스카라는 조연이 그리고 사라라는 조연이 아까웠다. 각자의 삶에서는 충분히 화려한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인데, 어느 순간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다른 사람의 삶에 조연이 된다. 사라는, 씬 스틸러가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로리의 인생, 그리고 잭의 인생에서 이들은 조연이고 씬 스틸러이다. 십년 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로리와 잭은 처음 만난 순간 강렬함을 느꼈으나 서로를 찾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고, 그렇게 친구의 애인, 애인의 친구로 만나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되었고, 그리고 각자의 사랑을 해나가고, 일을 찾고, 거주지를 옮긴다. 


로리의 인생을 놓고 보면 그리고 잭의 인생을 놓고 보면, 그 십년 이란 시간은 그들에게 필요했다. 천천히 자리잡아 가는 동안 상대를 알아나가는 일이 필요했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필요했다. 시행착오도 필요했다. 내가 사랑하는 너라는 사람을 더 잘 알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 정착하려고 하는 일, 사랑을 느끼고자 했던 일들을 시도하는 것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들이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딱히 악의를 가지고 사랑을 한 것도 섹스를 한 것도 아니었다. 순간순간에는 그 감정에 이끌려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잘 살아보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맞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한 느낌이 내내 그들에게 있었다. 그러니 그것은 잘 될 수 없었다. 미안해, 여기까지 촬영해왔지만 너는 나의 극에 어울리지 않아. 그들은 그렇게 만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라는 말은 잘못됐다. 멈춘 순간, 여기까지 걸어왔던 내가 있으니까.



사라는 잭을 주연으로 삼았다가 잭이 주연이 아님을 알고 다른 배우를 캐스팅한다. 이번에야말로 자기 인생에 맞춤한 배우를 캐스팅했다. 게다가 무대도 옮겼다. 그랬더니 그전보다 훨씬 극이 나온다. 잘된 일이다. 그래서 사라는 로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아름다운 곳으로 옮겨서 너도 살면 어떻겠니, 매일 바다를 보는 삶 좋지 않니, 게다가 내가 너의 이웃이 되잖니. 휴가를 맞이해 사라가 있는 호주에 와서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사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나 로리는 여기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긴 너의 장소이지, 내 것은 아니야. 그러자 사라가 말한다.


'Where's yours?' she says, 'Because I'll tell you what I think. Your place isn't somewhere. It's someone. I'm here because it's where Luke is. You'd have gone to Brussels if Oscar was your place.' -p.401



너의 세상은 어딘데? 내가 생각하는 걸 말해줄게. 너의 장소는 어딘가가 아니야, 누군가야. 내가 여기에 온건 여기가 루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야. 만약 오스카가 너의 장소였다면 너는 브뤼셀에 갔을거야. 

그렇다. 사라는 호주에 왔다. 영국에 살다가 호주로 왔다. 루크가 호주로 와 살지 않겠냐고 했고, 사라는 여기냐 루크냐 선택하라 하면 루크를 선택하겠다고 이 먼 다른 나라로 와 살고 있다. 

오스카도 로리에게 브뤼셀에 가 살자고 말했다. 승진을 했고 이것은 본인의 커리어에 좋은 일이고 그러나 브뤼셀 풀타임 잡이니, 우리 브뤼셀에 가 살지 않을래? 그러나 사라는 거절했다. 아니 갈 수 없어. 나는 엄마가 사는 이 나라에 있고 싶고, 여기에 내 직업이 있어. 오스카가 자신의 벌이로도 먹고 살기 충분하니 너는 일을 안해도 되지 않냐고 한 것도 로리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사라에게도 엄마가 사는 나라가 있고, 사라에게도 그곳에서의 직업이 있었다는 것을. 사라가 가진 게 없어서 호주로 간 게 아니라 호주에 더 갖고 싶은게 있어서 갔다. 로리는 브뤼셀에 있는게 더 탐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머무르는 쪽을 택했다.



나는 사랑을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면 움직인다. 조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처럼, 친구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처럼, 거기에 네가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사랑의 큰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반드시 움직이는 것일까? 당신이 나의 장소이므로 나는 그곳으로 가는것, 그래야만 당신이 내 장소로 인정받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참일까? 아주 큰 확률로 여기보다 당신이 좋다면 움직이는 거야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거기로 움직이는 데에는 그 커다란 마음 외에도 다른 것들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이를테면 그 시간, 그 당시의 자신에게 있는 상황과 환경 같은 것. 어떤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내 발을 묶어놓는 게 아닌가. 만약 브뤼셀로 오라는 사람이 오스카가 아니라 잭이었다면, 그랬다면 로리가 그 때 바로 오케바리 하고 움직였을까? 나는 그 때의 로리에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로리에게는 결단을 내릴 용기와,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함께 만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나는 당신에게로 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어제 친구와 저 문장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머무르는 장소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우리가 머무르는 정착지가 될까. 종착역이 될까. 친구는 자신이 읽는 로맨스 소설에서도 연인이 끌어안으면서 You're my home  이라 말하면서 끝이 난다고 했다.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든 퇴근후 돌아갈 공간이 필요해 집을 마련하고 싶은 것처럼, 정서적으로도 고단함을 쉬기 위해 그리고 더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당신이란 집을 찾게 되는걸까? 


나 역시 당신은 나의 집인것 같아, 라고 생각한 적이 있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이라면 그러니 평생 살면 좋았을텐데, 집이라고 느끼면서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집이었는데. 그런데 헤어졌다. 왜냐하면, 내게는,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역마살이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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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3-01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을 때 로리에 집중해서 읽었는데요, 정확히는 로리와 오스카요. 근데 오늘 다락방님 글 읽는데 사라가 다르게 읽히고 보이고 그러네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람‘ 안에서 찾는다는 것,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서도요.
오스카가 로리에게 브뤼셀로 떠나가고 했을 때, 전 엄마 핑계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직장 문제는 좀 그랬거든요. 니 직장을 옮기면 어떠겠니, 오스카? 이렇게 속으로 물어보기도 했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떠날 수 있는데 왜 로리가 떠나야하니, 뭐 그런 생각에 좀 복잡했어요.
참고로 제가 읽은 책에서는 남주가 떠나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홈에 오는 거죠. 홈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3-01 15:35   좋아요 2 | URL
사라는 매사가 분명한 사람인 것 같았어요. 저는 그런 지점이 좋아요. 로리에게 서운했으면서도 나중엔 그걸 풀고 잭과 로리를 이어주려고 하잖아요. 사실 나랑 연인으로 지냈던 남자가 내 친구의 연인이 되는 것.. 을 저라면 받아들이기 힘들것 같은데(라고 쓰고보니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요. 어떤 남자들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의 길을 자기가 닦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루크를 만난 것도 루크를 따라 호주로 간것도 그리고 호주에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저는 사라가 좋습니다, 단발머리 님. 후훗.

저는 오스카가 로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딱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스카는 자신이 하는 일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나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좀 가진 것 같아요. 로리가 일을 하고 로리가 로리의 일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응 축하해 잘했어 라고는 하지만 그 일을 자신의 일만큼 여기지는 않는달까요. 저는 엄마 때문에 떠나지 못하겠다는 것도 이해했어요. 저도 사실 떠나야 한다면 제일 걸리는 게 늙으신 엄마거든요. 으.. 이 구속감 어쩔까요 ㅠㅠ

전 그냥.. 각자 자신이 사는 곳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멀리 산다면, 굳이 합쳐야 하나요. 걍 가끔 만나고 살면 되지.. 이래서 저는 그냥 이모양인가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3-01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아니 “당신은 나의 집인 것 같아” 이렇게 로맨틱한 말을 한 다음에 “근데 난 하루에 여섯 끼 먹는 역마살 있는 여자야. 안녕~”하는 모습 떠올라 아침부터 빵 터지고 갑니다.

근데 오늘 이분 출근하셨나. 휴일에 글 두 개라니 무슨 일이야!

다락방 2022-03-01 15:37   좋아요 3 | URL
아오 어제 술을 안마시고 잤더니 오늘 평소 패턴대로 눈이 떠져가지고... 안돼 나는 늦잠을 잘것이다, 자라, 자라! 했는데 배가 넘나 고파서 여섯시반에 걍 밥을 먹어 버렸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밥을 먹고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리뷰를 써버린거죠. 치아바타도 굽고, 브라우니도 굽고. 그렇지만 브라우니 망치고! ㅋㅋㅋㅋㅋ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하루에 여섯 끼 먹는 역마살 있는 여자는... 사랑하기 힘든 여자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3-01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저도 떠올려보니 옛날 애인에게 당신이 나의 집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당신이 내 집이면 좋겠다는 바람이었구요, 하지만 그는 제 집이 되어주지 못하겠다싶은 순간들이 왔고 그러면서 아 이건 아닌가 갈등할 때 내가 당신의 집이 되어주겠다 하는 남자가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갈등하는 남자를 뒤로 하고 제 집이 되어주겠다는 사람을 택했어요. 여건과 상황이 사랑과 맞물려야 집을_ 집과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는건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오스카가 로리에게 브뤼셀로 함께 가자 할때 엄마와 직장일 이야기할때 충분히 납득이 된다 여겼는데 만일 오스카 말고 잭이 브뤼셀 아니 대한민국에서 살아야해 해외 파견이야 했다면 당근 따라갔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 곁에 있고싶다는 로리 마음은 진심이었을 거 같아요. 아빠를 갑자기 잃고 엄마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단 마음 아니었을까요. 아빠를 잃고난 후에 엄마마저 곧 잃을까봐 너무 두렵고 공포스러웠던 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돌고돌아 결국 만나 함께 한 그들이 내내 행복하기를.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주고 서로의 비행기, 기차, 자동차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는 이들도 홀로 존재하는 이들도 모두 만족스러운 나날들이요. 저는 락방님 역마살 이야기는 좀 슬프면서도 대단하게 다가와요. 제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더 멋져보이구요. 태그 좀 슬프다.

다락방 2022-03-01 15:41   좋아요 1 | URL
저는 상대를 저의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그 순간 누군가의 집이 되길 원하지 않았던걸까, 생각합니다. 집으로까지 생각했는데 헤어졌다면 거기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당신이 나의 집이 되고 내가 당신의 집이 되어주는 게 같은 순간 찾아들어야 하는데 타이밍이 어긋나도 그들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보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함께 다정하게 오래 지낸다는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임에 틀림없어요.

저도 엄마와 직장 모두 납득이 됐어요. 엄마는, 저한테는 뭐랄까요, 로리가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저는 그냥 엄마를 내내 품고 가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대한민국 장녀라서 그런걸 수도 있고 어쩌면 제 팔자일 수도 있고 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여길 떠나게 된다면, 엄마 살아생전에는 안될것 같아요. 짧은 여행후에 다시 돌아오는 건 엄마가 있어서라는 생각도 해요.

저는 제 역마살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 때문에 슬프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아 임 오케이 입니다. 후훗.오늘 그 뭣이냐, 채널 돌리다가, 그 옷소매... 그거 잠깐 봤는데 16회차 인가 .. 아무튼 키스 무진장 하더라고요.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우리 타미 사극 좋아하는데 이거 보면 안되겠다‘ 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꼰대입니다) , 어휴, 무슨 저렇게 키스를 많이 한담? .. 좋냐? 였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맥주나 한 잔 해야겠어요. 껄껄.

새파랑 2022-03-01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Yore‘re my home 표현 멋지네요 ㅋ 이작가님의 결말은 더 마음에 와닿네요 어마어마한 역마살이라니 ㅋ 역시 멋진 이작가님 답습니다. 아 이번달에는 이책 꼭 읽어야 겠습니다 ^^

다락방 2022-03-01 15:43   좋아요 3 | URL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 뒤 바로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들도 있지만 처음 만나 반했어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 십년이 걸려서야 서로 만나게 되는 커플도 있는 것 같아요. 왜,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엔 또 거기의 이유가 있겠지요.
새파랑 님이 이 책을 읽으시면 어떤 감상을 적어주실지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2-03-01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원서의 리뷰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니. 졸 멋지네..

수이 2022-03-01 16:01   좋아요 2 | URL
제 친구입니다 그 멋진 사람
 
더 사이트 오브 유
홀리 밀러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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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은 예지몽을 꾸는 남자다. 가끔 잠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꿈을 꾸는데 그건 그 사람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암시한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조엘은 이미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꿈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 꿈이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기쁜 일이라면 괜찮지만 비극적인 일이라면 너무 괴롭다. 조엘이 나서서 뭔가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개입함으로써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조엘이 전혀 끼어들 수 없는 미래의 일들을 꿈에서 볼 때면 너무 괴롭다. 그래서 조엘은 잠을 자지 않으려 한다.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으니까. 당연히 그의 이런 생활패턴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던 수의사란 직업도 그만둔다.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어쩌다 꿈을 꾸다 깨면 노트에 메모를 하고 동네 노인들의 개를 대신 산책시키고 가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지낸다. 자신의 예지몽에 대해 말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해 외롭고 괴롭다. 


그런 그가 카페에서 일하는 캘리를 만나게 된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분위기에 캘리는 매력을 느낀다. 본인이 하고 싶은 생태 관련 일을 저리 제쳐두고 죽은 친구를 대신해 카페 일을 하던 캘리는 조엘을 만나 반하게 되고 친해지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연인이 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직업도 갖게 된다. 캘리는 조엘을 너무 사랑하고 조엘도 캘리를 너무 사랑한다. 조엘은 자신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꿈을 꿀것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했지만, 캘리를 사랑하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연인이 되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 조엘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캘리에게 얘기한다. 캘리는 조엘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와 함께 그 문제를 극복하고 싶어하며 그런 가운데 그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조엘은 캘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캘리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캘리가 언제 죽을지를 알게 되고 캘리가 원하는 행복한 삶이 그 전에 찾아올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조엘은 캘리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 인생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어, 그걸 찾아 떠나. 그렇게 그들은 이별을 한다.



로맨틱한 감정이 오랜만에 너무 찾아들어서 이 기분 계속 이어나가야지 싶어 연애소설을 읽고자 했다. 책장 앞에 서서 언제 사두었는지 모를 이 책을 꺼내 들었고, 여기에선 어떤 사랑이야기가 펼쳐질까 설레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로맨스 소설이 재미있으려면 내가 그 소설속 주인공이 되어 사랑을 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랑을 하려면, 그 사람 이야기에 흠뻑 빠지려면, 당연히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책 속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져야 이 로맨스가 나의 것이 되고 재미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조엘은 내가 전혀 사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이렇게나 매력 없는 주인공이라니, 너무 매력이 없고 짜증이 나서 중간에 그만 읽을까를 숱하게 갈등해야 했다. 


그런 한편 짚신도 제 짝이 있다더니 그 말이 얼마나 다행한 말인가를 실감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랑 같은 지점으로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면 조엘은 평생 사랑 한 번 못해볼거 아닌가. 그런데 신은 다행스럽게도 조엘을 사랑하는 여자도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공평한가. 나는 조엘을 안사랑하지만 캘리는 조엘을 사랑한다. 그래,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조엘, 세상에 감사해라. 땡스 갓!


아니 그러니까 캘리가 조엘을 처음 만나게 된건, 조엘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조엘이 자신의 문제점으로 직업도 없는 상태로 지내면서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였단 말이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사랑에 빠진건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 게다가 조엘은 사랑에 빠지면 안된다고 스스로 결심한 사람이라 섹스파트너가 있는 거다. 그런데 캘리는 조엘과 연인이 되기 전 조엘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그에게 섹스파트너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 섹스 파트너와 대화를 한 적도 있다. 도대체 섹스파트너는 있고 직업은 없으며 늘 피곤한 상태의 남자를 왜 사랑하는걸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머리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조엘은 정말로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니 섹스파트너 있는 거 뻔히 알고 내가 그 여자를 봤는데, 그러면서 그 남자랑 연인이 된다는 것이... 나로서는 증맬루 이해가 안되는 것이여... 그러나,


나는 캘리가 아니고 캘리는 내가 아니니, 캘리가 조엘을 사랑한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남도 사랑하지 말라는 법이 없응께롱 캘리가 조엘을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뭘 어쩔 수가 없다. 원래 사랑이란 것이 그렇지 않나. D는 B를 사랑하고 B도 D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A는 F를 사랑하는데 F는 한걸음 뒤에서 Z를 바라보고, Z는 C에게 연정을 품고 C는 J를 사랑하는데 J는 T랑 결혼하고...


나를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해주지 않지만 그러나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캘리를 보면 진짜루 대단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조엘이 캘리에게 '당신은 내 전부예요' 이러는데 가슴이 답답해서 터져버릴 뻔 했다.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연약한 상태에서 섹스파트너 있는 남자가 나한테 '너는 내 전부야' 이러면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갈 것 같아.. 뭐,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더 읽어 말어 던져버려 말어 생각하다가 읽었는데, 그나마 별을 셋 줄 수 있었던 것은 저 뒤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엘과 캘리가 헤어진 후, 그 다음의 이야기. 그 둘은 사랑하는 상태로 헤어졌기 때문에 서로를 잊지 못한다. 가슴 속 성소에 서로를 묻어두었다. 이별을 하고 아파하지만 차츰 상대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넣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캘리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니 세상에.. 여행지에서 만난겁니다. 로리와 오스카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나 캘리가 여행지에서 만난 핀은 생태학자로서 캘리와 대화가 잘 되고 캘리를 사랑해주고 몸 튼튼 마음 튼튼 건강한 사람이고 캘리를 뜨겁게 사랑하고 좋은 아파트도 갖고 있고 그래서 캘리가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준다. 이런 이야기가,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속에 품고 있지만 내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그 속에서 행복도 찾고 다른 사람도 찾아 다른 모양의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까지. 조엘과 헤어진 후의 이야기들이 좋아서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매력없는 남주가 나오는 똥같은 소설이었을텐데, 끝까지 읽으면 이 책은 그래도 나름 괜찮은 책이 된다. 


내가 기대한 로맨스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역시 로맨스는 저마다의 것이며 그리고 삶은 여전히 게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하고 또 이별하고 또 사랑하면서 기쁘다가 슬프다가 다시 기쁘다가 행복하다가 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가슴에 깊이 남고 누군가는 오래 함께 하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우리가 미처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이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캘리와 핀은 호주 퍼스로 신혼여행 가는데 아니 퍼스에 무슨 일 있냐? 사라는 영국에서 일하면서 잘 살고 있다가 루크가 호주로 가 살자고 해서 퍼스로 가 사는데 캘리는 핀과 퍼스로 신혼여행 가고.. 퍼스 무슨 일이야. 사람들 왜 퍼스로 가. 퍼스 왜그러는데. 자꾸 소설에서 퍼스 나와서 괴롭다. 퍼스로 가지마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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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27 17: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러니까 남주가 일도 안 하고 잠도 못자서 극도로 피곤한데 섹스할 힘은 넘치는 놈이군요? 신기한 놈이지만 비호감 맞네요. ㅋㅋㅋ

다락방 2022-02-27 20:05   좋아요 1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는 놓지 못하겠는가봐요. 으 진짜 비호감이에요. 싫어요. ㅋㅋㅋ

독서괭 2022-02-28 22:49   좋아요 1 | URL
진짜 그러네요. 자냥님 요점정리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2-27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퍼스가 엄청 좋은 곳인가 봐요??
조엘은 캘리랑 헤어지길 잘한 것 같은데요?ㅋㅋㅋ

다락방 2022-02-27 20:06   좋아요 2 | URL
퍼스는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저도 가보진 못했지만..
헤어지고 나서 상대를 가슴에 품고서도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삶은 그렇게까지 행복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새파랑 2022-02-27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멘스 소설의 대가 다락방님~!! 세상에도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많은데, 책 속에도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많나 봅니다~!! 전 다락방님이 추천해주신 별 네개 로멘스 소설은 꼭 읽어보겠습니다 ㅋ

다락방 2022-02-28 09:29   좋아요 1 | URL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그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재미는 건너가버리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영화로 나오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훗.

그레이스 2022-02-28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잠사‘인가 했어요. ^^
로맨스는 저마다의 것이고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레이스 2022-03-08 18:46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mini74 2022-03-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곳 ㅎㅎ 락방님 당선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3-08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멘스 황제 다락방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2-03-09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당선작 축하드려요~^^

thkang1001 2022-03-09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