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씽맨
캐서린 라이언 하워드 지음, 안현주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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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에 자신의 집에 침입한 연쇄살인범에게 부모님과 여동생을 모두 잃은 '이브 블랙'은 그 후 할머니와 둘이 살아오면서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혹시나 '그 여자애'라고 알아볼까 두려워 길게 대화를 지속할 수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그 사건 후 이십년이 지난 뒤, 그를 잡고자 한다. '이십년 전의 생존자였던 '그 여자애'가 지금은 그 범인을 잡을 '그 여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것은 이 소설을 시작하기에 가장 근사하고 또 유일한 동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과거 연쇄살인범이었던 짐 도일은 쇼핑센터의 경비로 근무하면서 '낫씽맨'이란 제목의 책이 새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도대체 그 때 그 어린 생존자가 어떤 글을 써낸걸까 그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점 더 과거의 그 때로 돌아가고 게다가 그간 잠잠했던 자신안의 폭력성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낀다. 나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죽여야 한다!



문장이 매끄럽게 잘 읽히기도 하고 내용도 재미있어서 잘 읽히는데, 무엇보다도 시종일관 하나의 주제를 반복해 얘기해주는 점이 좋았다. 간혹 연쇄살인범들에게 매혹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전혀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보통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은 루저이며 실패자라고.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연쇄살인범이 연쇄살인범의 이름을 갖기 전,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낫씽맨이라는 생존자의 수기를 써낸 이브 블랙이 하는 말이고, 이브 블랙이 찾아간 범죄학 교수가 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그 말을 이렇게 매끄러운 문장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읽노라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며칠전에도 어김없이 이십대의 남자가 몇개월 사귀었던 여자친구의 집에 찾아가 살해했다는 기사(‘여친’ 엄마 있는 원룸에서 여친 화장실로 데려가 살해한 20대 (naver.com))를 읽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폭력과 살인은 정말이지 매일매일 기사로 쏟아져 나오는데, 그 남자들은 이 책 속의 이브 블랙이 언급한것처럼 그렇게 여자친구를 죽여서 살인자로 그 존재를 드러내기 전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는 직업이 없었고 여자친구에게 다시 사귀자고 했지만 거절의 말을 들었다. 화장실 바깥에 여자친구의 어머니가 있었는데도, 그는 살인을 저질렀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 숱한 일들 중에서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여자친구를 죽이는 데 썼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범죄자가 되었고 살인자가 되었다. 그가 몇년을 감옥에서 살다 나올지 모르겠지만, 그는 그 후에는 전과자가 된다. 그 자신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이브 블랙의 말처럼, 캐서린 라이언 하워드의 말처럼,  내 앞의 여성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여성을 죽여야 하는, 정말이지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회인으로서도 실패했고 남자친구로서도 실패했으며 이브 블랙의 말처럼 좋은 아들이 되는 것도 실패했다. 모든 실패를 다 뒤집어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그였고 그일 것이다. 


더불어, 열두살의 자신을 끊임없이 자책해야 했던 이브 블랙에게 친구가 했던 조언을 모든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네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그 때의 너의 나이가 된다면, 그 아이가 얼마나 어린지 그제야 알 수 있을 거라고. 그 어린아이가 뭘 할 수 있었을 것 같냐고. 이 세상의 어린 아이들에게 가혹해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가혹해서는 안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의 나에게 아주 오랜 시간 가혹했던 바, 이런 조언들을 소설 속에서 만날 때면 어쩔 수 없이 위로를 받는다.



당연한 이야기를 수차례 반복해주는데 그게 전혀 지겹지 않고 또 재미있는 소설이다.



짐 도일의 삶을 짧게 축약하자면, 그는 전반적으로 별 볼 일 없는 남자였다. 그는 자신이 시도한 모든 일에 실패했다. 군대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경찰에서 진급에도 실패했고 경비로 일했던 슈퍼마켓에서조차 해고당했다. 내가 아는 한, 그가 죽은 날 아내의 얼굴에 난 상처들은 또한 그가 남편으로서도 실패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의 딸이 남은 생을 그가 진정 누구였는지 알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또한 아버지로서의 실패도 보장한다. 그를 아는 모든 이가 그를 싫어했고, 육체적으로도 그는 전성기를 한참 지났다.

반대되는 정보가 부재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범죄 동기는 전형적연쇄살인범 동기 1번, 여성 혐오인 듯하다. 그가 여자들을 싫어한 이유는 그들이 그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그조차도 평범하다. 닥터 위어가 지적했던 대로, 낫씽맨은 연쇄살인범에게 특히 잘 맞는 이름이다. "그를 찾아내면, 아마 그가 사실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에 대해 충격받게 될 거예요."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녀가 옳았다. -p.352





"사실, 한번은 그가 실제로 물리적으로 누군가를 공격하는 동안, 그 개가 그저 가만히 앉아 보기만 한 적도 있어요. 마치 그에게 어떤 초능력이, 어떤 흑마술적인 것이 있어서 우리와는 별개의 사람인 것 같았어요. 그는 그 개들을 조종할 수 있었어요. 어쨌든, 그렇다고들 생각했죠. 하지만 그가 잡혔을 때, 그는 절도 혐의로 잡혔고 그가 훔쳤다는 물건들 중에는 개를 쫓는 기피제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거였던 거죠. 그게 다였어요. 그에겐 특별한 힘은 전혀 없었어요. 그 남자들 중 누구도요." - P163

그녀는 이제 점점 더 크게 말하고 있었다. 더 강해 보였고, 자신의 요점을 명확히 하려고 팔을 휘둘렀다. "우리는 그들이 잡혔기 때문에 그 이름을 아는 겁니다. 이 남자들은, 그들은 살면서 다른 어떤분야에서도 무엇을 성취하거나 특별히 성공적이지 못했어요. 그들은 따분하고 별 볼 일 없는 실패자들이에요. 그리고 저는 그 점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낫씽맨 역시 그렇다는 걸요. 경찰은 그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그렇게 부르지만, 저는 그것이 그의 실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낫씽. 별 볼 일 없는 사람, 실패자. 그리고 저는 그의 정체를 밝혀서 그 점을 증명하고 싶어요." - P163

"연쇄살인범에 매혹되는 건 괜찮아요." 그녀는 수업이 끝나고 자신의 연구실에서 내게 말했다. "나도 그러니까요, 분명히. 그들은 매혹적이죠. 우리와 똑같이 평범해 보이는데 우리는 결코, 절대 하지못할 짓을 저지르니까. 하지만 그들은 특별히 지적이지 않아요. 경찰보다 더 똑똑하지도 않죠. 데이비드 버코위츠 알아요? 샘의 아들?
그는 자신이 저지른 한 범죄 현장에서 주차 딱지를 떼는 바람에 잡혔죠. 그들은 지루하고, 평범한 실패자들이에요. 우리 모두가 10대쯤이면 그럭저럭 익숙해지는 세계에서 제대로 생활하지도, 사랑하지도, 자기들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도 못하는 남자들 항상 남자들이지는 않지만 주로 남자들 - 이고요. 이들은 흑마술사가 아니에에요. 특별한 기술이 있지도 않죠. 사람들은 그들이 잡혔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이름들을 안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아요. 사실, 그들에게서주목할 유일한 부분은 그들이 세상에서 앗아간 것들이죠. 그 희생자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그들의 이름이에요." - P293

나는 닥터 위어에게, 그녀가 아는 사실을 바탕으로 낫씽맨은 어떨 것 같은지 물었다.
"맙소사." 그녀는 말했다. "나한테 소위 ‘프로파일링‘을 시작하게하지 마요. 하지만 이 말은 할게요. 그는 지루할 거예요. 지루하고평범하고 별 볼 일 없고요. 친구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죠. 결혼생활도 대단치 않을 거예요.
정말로 잘하는 것도 없을 테고, 너무나 지루하고 성취감 없는 직업을가졌을 테고요. 그런 직업으로는 암 치료도 못 하겠죠. 근본적으로,
그는 사람들을 강간하고 살해했다는 사실 외에는 그다지 보잘것없을 거예요. 낫씽맨은 연쇄살인범에게 특별히 잘 들어맞는 이름이에요, 이브, 그를 찾아내면, 아마 그가 사실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에 대해 충격받게 될 거예요."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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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17 09: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어도 넘 재미있을거 같아요.~ 이번엔 좀 제대로 처벌했음 좋겠어요. 우발적이니 초범이니 어쩌고 하면서 감형하지말고. ㅜㅜ

다락방 2022-01-17 09:45   좋아요 6 | URL
오, 영화 생각은 안해봤는데 정말 영화로 만들어져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보다 더 많은 사람이 볼 수도 있을테고요.
아 정말 매일 쏟아지는 여성살해 기사가 지긋지긋해요 ㅠㅠ

독서괭 2022-01-17 10: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연쇄살인범에 대한 우상화? 같은 게 좀 있죠. 그걸 정면으로 넌 낫씽맨이야 하며 반박하니 속 시원할 것 같아요!
저 여친살해 사건 넘 충격적이었어요. 그 엄마는 어떡하나요 ㅠㅠ

다락방 2022-01-17 15:00   좋아요 0 | URL
독서괭 님, 저도 그 기사 보고 살해당한 여자도 원통하지만 이 엄마 어떡하나 싶더라고요. 집에 가서 엄마랑 그 기사 얘기하면서 ‘엄마, 그 엄마는 이제 어떻게 살아‘ 하고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요. 나쁜놈도, 죽인놈도 남자친구인데 자책하고 괴로워하는게 엄마의 몫일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요. 어떡해요 ㅠㅠ

공쟝쟝 2022-01-17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은 자신의 실패를 증명하기 위해서 실패를 완성하기 위해서 그녀들을 죽이는 것인가. 그녀들은 고작 실패자들에게 도망치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가.

다락방 2022-01-17 14:59   좋아요 0 | URL
그들은 그것을 실패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모지리들인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낫씽맨은 ‘너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존자의 메세지에 분노로 떨어요. 아 나는요 쟝님, 열등감 있는 남자들이 너무 싫어요... 너무 찌질해. 내가 뭘 못한다, 열등하다, 못났다 생각하면 그렇다면 이걸 어떻게 더 잘해서 더 나은 내가 될까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잘난 너를 안잘났다고 가스라이팅 하자, 혹은 잘난 너를 없애버리자! 이래버려요. 세상 븅신들이야 진짜... 어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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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지 확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워하게 된다는 건 사실이다. 안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많은 책이나 영화에서 그리고 실생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두려워하면서도 기어코  정체를 확인하려고 하는 이유일 것이다. 난 니가 뭔지 몰라 무서워, 넌 뭐니? 그러다 쥐라는 작은 동물이든가 고양이라든가 하는 걸 발견할 때면, 아 그렇게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물론 공포영화에서는 그렇게 안도하고 돌아서는 장면에서 도끼살인마가 나오고 막 그러지만.. 흠흠.


나는 죽음이 두렵다. 몇번이나 언급했지만 죽음이 두렵다. 죽음이 내게 찾아올 것이 두렵고, 죽음이 찾아온다면 그 뒤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이 두렵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헤맨 그 마음을 나는 알겠다. 죽기 싫다. 죽기 싫고 이 세상을 영원히 살아가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노라면 간혹 친구들이 "늙지 않고 아프지 않다면 괜찮겠지만 늙어가고 아파서 거동도 힘들면 그렇게 사는 건 더 힘들것 같지 않아?" 라고 내게 묻곤 한다. 물론 내가 영원히 살고싶다고 말할 때에는 지금 모습 그대로,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늙고 병이 드는, 약해지는 자연스런 현상이 찾아온다 해도 나는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싶고 그 세상을 변하게 하고 혹은 유지하게 하는 사람들을 보고 관계를 맺고 싶다. 


죽음이 두려운 것을 내가 '극복'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 두려움을 끌어안고 가야할텐데, 뭔지도 모르는채로 끌어안고 가는것보다는 아는게 낫지 않을까. 안다면 두려움을 좀 가볍게 만들면서 혹은 다독여가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죽음에 대한 책을 가끔 찾아 읽는다.


이 책,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에서도 언급된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2013년에 읽었는데, 역시나 읽은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렇게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사실, 죽고난 후에는 나의 존재 없음에 대한 걸 내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나는 밤에 자려고 누워서 죽음이 찾아올 것이고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내가 내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내게 속삭인다. 괜찮아, 어차피 죽고 나면 나는 내가 죽었다는 것도 몰라.


그러므로 가장 끔찍한 불행인 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죽음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우리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있든 이미 죽었든 간에 죽음은 우리와 무관하다. 살아있을 때는 죽음이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p.306



유성호 교수는 일전에 채널을 돌리다 <유퀴즈>에서 보게 됐다. 오, 저런 교수님의 책을 읽고싶네,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미 사두었더라 ㅋㅋㅋㅋ 역시 준비성 철저한 퍼펙트 우먼 되시겠다. 유성호 교수는 서울대에서 죽음에 대한 교양 강의를 한다셨는데, 책을 끝내면서는 더 듣고 싶다면 서울대에 입학해서 강의를 들으라 하신다. 교수님.. 그 농담 너무 쎄요..



법의학자가 하는 일에 대해 유성호 교수는 책에서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주체적인 죽음'이다. 내가 내 죽음에 주체적일 수 있는 것. 그것은 당연히 삶과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죽음을 접하게 되지만, 예전에는 생명의 빛이 사라져가는 걸 누군가가 지켜보고 그래서 임종의 자리에 가족들을 불러 이별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죽음 역시도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마땅할 것이겠다. 죽음이 늘 두려워 주체적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면 결국 죽음이 내 삶의 종착지인만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주체적으로 내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숱한 자살시도와 또 안락사 등에 대한 일화들을 이야기하면서 죽고 싶었으나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이해되는 것이다. 


자살에 대해서 지면을 꽤 할애하는데(자살하지 말라고!!), 자살하는데 술의 영향에 대해서도 말한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그리고 마시지 않는 사람도, 술을 마시면 개가 되는 경우를 알고 있고 보아왔을 것이다. 술을 마시면 왜 개가 되냐, 그것이 술이 한 일이냐. 그것은 그 술을 마신 '내가' 한 일이라는 걸 모두 알 것이다. 개였던 사람이 꾹꾹 눌렀던 자기의 개성질이 술을 마시면 억누르지 못하고 발현되어 버린다. 유승호 교수는 알코올이 '억제를 억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억제하고 살다가 알콜을 흡수하는 순간 그 억제를 놓아버린다는 것. 그렇다는 것은 평소에 그것을 억제했다는 것이고 그런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범죄가 그 안에 있었다는 것. 자살 역시 마찬가지. 억제를 억제하는 알코올로 인해 우울한 마음을 부여잡고 있다가 놓아버리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자살을 하는데, 그러므로 우울한 사람에게 술이 치명적이라고 유승호 교수는 말한다.


우리는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주로 술을 마신다. 예를 들어 실연당했을 때 "야 너, 실연당했다며? 술 한 잔 먹고 잊어버려" 라고 한다. 물론 정서적 취약 계층이 아닌 사람으로 건전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상태라면 술 한 잔으로우울한 느낌을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 사회적인 어려움이 있어 우울감이 심각한 사람에게 알코올이 주어지면 그 자체로 문제가 매우심각해진다.

실제 우리나라 통계를 보면 자살자의 상당수가 자살 직전 높은 알코올 수치를 기록했고 알코올이 깰 때쯤 자살을시도했다. 자살한 유명 연예인들 모두가 다 일정 수준 이상의 알코올 수치를 보였는데, 실제 음주 농도가 0.1퍼센트의 만취한 상태에서 자살이 일어난 경우도 여러 건이었다.

물론 단순하게 알코올을 자살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알코올이 자살을 생각해왔던 사람에게 실행력을 높이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기쁠 때 술 한 잔 하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울한 사람에게는 절대로 알코올을 섭취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주 만나는 친구 말고, 오랜만에 만났는데약간의 문제가 있어 보이는 상대에게는 절대 술을 권하면안 된다. 알코올이란 분명 장점에 비해 단점이 많은 물질인것을 명심해야 한다. (p.183-184)



이십대 중반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내게 우울할 때는 술마시지마,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훌쩍 많았던 그의 그 말이 그런데 잔소리로 들리지 않고 그 당시에 오케이, 하며 듣는 말이 되었는데, 그 가르침은 지금까지도 내게 퍽 유용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번 잘 지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심하게 우울한 날에 술생각이 난다면, '오늘 너무 우울하니까 술 마시지 말고 내일 마시자'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연애에서 그는 그것 말고도 여러 가르침을 주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이 가르침이 제일 좋았다. 나는 그로부터, 그 연애로부터 우울할 때는 술을 마시지 말자는 것을 배웠다. 모든 연애에서는 지나고나면 하나라도 꼭 배울 게 있다. 하다못해 '이런 놈은 절대 만나지말고 피하자' 라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여러분, 우울할 때 술마시지 마세요. 기쁠 때 마셔!!


각설하고,

나의 주체적 죽음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결국은 그것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죽음에 대한 강의를 나도 듣고 싶다.. 라고 생각하다가, 그런데 나는 뜻밖에, 정말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맙소사,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기보다 어떤 질병에 의해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급속도로 삶이 무너져 사망에 이르렀던 반면 이제는 의학의 발전으로 질병에 걸렸다 해도 완치율이나 생존율 또한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게다가 뒤에서 다시 살피겠지만,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더더욱 죽음을 멀리하고자하는 사회 풍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죽음을 방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생을 잠시 보류한다면 어쨌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미리미리 죽음이라는 것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두자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끝낼 수 있어야 한다고 반복하는 것이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본인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아프지 않고 건강할 때 준비해야 한다. 학창 시절에 다들 시험을 치러봤을 텐데 시험 보기 하루 전날에 공부하면 성적이 잘 안 나오지 않던가. 조금이라도 일찍 공부를 시작하면 성적이 잘 나오는 경험을 다들 해봤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죽음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죽음을 떠올리는 것을 재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지 말고지금 건강할 때 죽음을 준비해두어야 한다. 2045년 이후에는 혹여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죽음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그처럼 찬란한 칭송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토록 찬란한 내 삶의 모험 같은스토리, 그 마지막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하는지도 지금건강할 때 조금은 치밀하게 계획해두는 것이 찬란한 삶을 끝까지 빛나게 하는 방법이지 않나 싶다. (p.240-241)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콕 집어 2045년이 되면 놀라운 과학의 발달로 영생의 가능성까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네?? 뭐라고요???


아, 내가 이러려고 이 책을 읽었구나. 이 구절을 보기 위해 이 책을 읽었어. 신은 나를 사랑하셔 나를 두렵게 하지 않으시려고 이 책을 읽게 하셨다. 앞으로 23년, 23년만 건강하게 살아가다보면 영생을.. 누릴 수도 있는거야. 할렐루야! 영생의 가능성이라니. 만세! 나는 영생하면서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그래야 영생을 누리는동안 지적인 여성으로 우아하고 건강하게 살아가지.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과학의 발달, 컴온! 나는 영생으로 간다...



(어쩐지 사이비종교 같은 끝맺음이 되어버렸군.)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죽음의 순간을 가족이 모여 함께하기가 어렵다.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처분당하는 것이요즘 우리 사회 죽음의 대세가 아닌가 싶어 씁쓸한 심정이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대세를 거슬러 이제 우리는 죽음을 당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는 쪽으로 생각해볼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 P142

그런데 과연 죽음을 원한 환자들이 모두 그 죽음의 버튼을 눌렀을까? 그렇지 않았다. 신청자의 60퍼센트만 누르고, 40퍼센트의 누르지 않았다. 말로는 번복하지 않고 죽음의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로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죽음을 시행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 P163

그들은 모두 말한다.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자기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해서 실제로 실행했는데, 막상 죽으려는 순간에는 살고 싶었다고 말이다. 그순간에는 모두 다 자기 판단을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다들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중학교 1학년 때 시험을 망친 후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그 나이에도 잘 못 본 시험은 엄청난 시련으로 느껴졌고 내가 세상을 떠나면 그 시련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이정도 수준에서 그러한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실행이 되는 것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충동적‘으로 일어나는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 P175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소속감이 있다면, 가족의 일원, 회사의 일원, 어느 공동체의 일원으로 죽음에 대한 관념은 실제로 실행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 교류가 단절된 상태에서는죽음에 대한 관념이 지속적으로 조금 더 구체화된다. - P175

앞서 통계로 살펴봤듯이 우리나라는 자살의 증가 추세가 유독 가파른 나라다. 그래서 죽음 하면 우선적으로 자살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셸리 케이건 교수가 충분히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자살도 있다고 주장한 것처럼 실제로 충분한 숙고 끝에 내려진 결정이라고 해서 자살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가 금문교에서 투신 자살을 시도했다가 다행히 구출되어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뛰어내린 순간 나는 인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방금 다리에서 뛰어내렸다는 사실을 빼고는요.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였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 P174

알코올 또한 자살과 상관관계가 있다. 실제로 알코올 접근성이 높은 나라는 자살률 또한 높다. 동유럽 국가들 중에는 우리나라보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있다. 최근 OECD통계에서 우리나라를 제치고 자살률 1위를 차지한 리투아니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곳에 가보면 경제도 굉장히 침체되어 있고, 그래서인지 알코올을 상당히 많이 섭취하는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알코올 접근성이 꽤 높은 나라에 속한다. 또한 모든 음주 사고에 대해 외국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은편으로, 알코올에 대해서 굉장히 너그러운 나라에 속한다. - P181

이러한 노인 자살자는 대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인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가족과의 소통이 없었던 경우다. 가족과오랜 기간 연락이 없었던 이러한 경우는 사후에도 가족을찾기가 쉽지 않다. 자식들이 멀쩡히 있는데도 말이다. 노인자살에 관한 흥미로운 통계는 자식이 많은 사람들의 자살률이 굉장히 낮다는 것이다. 자식이 많으면 적어도 그중 하나의 자식과는 정서적 교류가 분명히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노년의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친구가 가장 필요한데, 한국 남자들에게친구가 없다는 것도 자살 증가의 큰 이유다. 헌신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지만 퇴직하면 직장에서 알았던 사람들과는어울리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보니 노인 자살에서 남성 자살이 3.5배나 많은 것이다. - P185

그렇기에 노인 자살은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라고도 할수 있다. 본인의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투자하고 결국 스스로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여성의 자살률 또한 상당히 높다. 어떤 사람들은우리 사회의 자살 증가를 내적 가치관의 부재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는데 일부분 맞는 말이기는 하다. 급속한 산업화과정에서 삶을 지탱해줄 내적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사실상정신과 의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모든 자살의 원인은 정신 질환 때문인 것으로 귀결된다.
물론 사회가 산업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정신 질환이 증가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정신 질환만으로 모든 자살을 해석할 수는 없다. 왜 유달리 노인층과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높은지를 정신 질환이라는 기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 P186

한번 자살 제지를 받은 사람 중 67퍼센트는 다시 자살 시도를 하지 않고 자신의 평균 수명을 다했다. 누군가의 자살 시도는 오랫동안 준비하고 생각해온 결심의 표출이지만 막상 그날 누군가의중재로 당신의 잘못된 판단이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를진심으로 이야기해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죽음이 아닌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살 장소로 유명했던 마포대교에 자살 방지 캠페인을 벌여 자살률을 많이 줄인 것으로알고 있다. 삶의 소중함에 대한 글귀도 붙여놓아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게 하고 경찰도 수시로 순찰하면서 자살자를 방지하고 있는데, 실제로 효과가 있는 굉장히 훌륭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 P191

자살은 예방할 수 있다. 자살 사고는 단계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우선 자살을 오래도록 계획한 후에 자살 시도를하게 되기에 중간에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하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그리고 사회적 안전망까지 잠재적 자살자에 대한 우리의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국가적으로도 자살 방지 정책을 시행하는 데 일정 정도의 예산을 들이는 것을 당연시해야 한다. - P192

결코 자살은 자기 통제 수단의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정서적감정, 사회로부터 소속감이 없어지는 기분, 자포자기와 체념 및 절망 등의 정서 문제에 의해서 발생한다.
혹시나 지금 죽음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들이있다면 자신의 정서 문제가 치료를 통해 회복될수 있으며, 결코 자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알아주기를 바란다.
정서 문제는 신체의 질병, 예컨대 감기 등과같이 적절한 치료와 따뜻한 지지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다. 따라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 삶이라는 소중한 여정이 중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 P202

내가 중환자실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죽음에 대한대화가 단절됨으로써 오는 가족 간의 비극, 그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특히 죽음을 앞둔 환자가 부모님이라면 어떤 자식이라도 대부분, "우리 부모님 꼭 살려주십시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정말 고생 많으셨던 부모님이라서 이렇게 보내드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입원한 경우 대개 말기암 환자이다. 사실상 죽음에 대한 준비가 필요함에도 환자와 가족은 ‘죽음‘을 두고 대화하지 않는다. - P225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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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1-11 12: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미쳐 ㅋㅋㅋㅋ 부장님 영생하고 싶은 사람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아놬ㅋㅋㅋㅋ 저는 영생까진 아니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내다가 차페크처럼 자서전 한편쓰고 준비한 뒤에 존엄사하는 방향으로 방법 찾는 중이요! 근데 또 영생을 영생.. 영생을 고민해야해?
그리고 또 에 뭐랄까 술은 희노애락심심할때 언제나 이유를 만들어내며 마셔왔던 저로서는 다락방님의 그 습관이 부럽고, 습관이 되게된 그 스토리가 넘나 🤭🤭🤭
ㅋㅋㅋㅋ 아무튼 ㅋㅋㅋㅋ 진짜 이렇게 영원히 살려고 하는 사람 제 주변에 처음봅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1-12 08:35   좋아요 1 | URL
나는 다 나같은 줄 알았다가 또 나같은 사람을 나밖에 못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나서 아니 그러면 나같은 사람은 나 밖에 없는건가 했다가 그런데 2045년에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영생 가능..이런거 얘기 나오는 거 보면 영생을 바라는 사람은 그렇다면 아주 많은거 아닌가 싶고 그렇습니다. 아무튼 저는 영생편! 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2016년에 이별하고서는 두 달 내내 술마시고 두 달 내내 울어서 속이 아주 난리가 난 적이 있었어요. 이별..그거슨 무엇... 아휴 역시 삶은 혼자가 진리다!! 아무튼 영생으로 고고씽!!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01-11 1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45년에 무슨 일이…..@.@

다락방 2022-01-12 08:36   좋아요 2 | URL
저는 일단 건강하게 버텨서 영생을 겟하겠어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1-11 12: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생할까봐 걱정하는 인간입니다. 죽는 거 무서워요. 딱 죽는 순간이 얼마나 아플까, 힘들까, 괴로울까, 이게 무섭지 죽은 다음에 벌어질 일은 하나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ㅋㅋㅋ
마누라는 자기 죽으면 제가 다른 년한테 장가갈까봐 먼저 못 죽겠다고 하고,
전 저 먼저 죽으면 돈 많고 젊은 남자 골라 재혼하라고 합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2022-01-12 08:37   좋아요 0 | URL
저는 죽는 순간에 아플까, 힘들까 이런걱정 보다는 ‘윽 내가 죽는다니!!‘ 이런 마음이 제일 힘들고 걱정될 것 같아요. 그 와중에도 ‘안죽고싶다 어떻게 해야 될까?‘ 계속 생각할듯요. 생각을 하자 생각을 그러면 답이 나온다.. 하면서 ㅎㅎㅎ
저는 제가 없는 세상이 몹시 걱정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2-01-11 1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락방님과 같아요. 너무 무서워요. 영생이라 ㅋㅋ 2045년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죠?

다락방 2022-01-12 08:37   좋아요 0 | URL
아, 저 드디어 영생프렌드 찾은건가요? 다들 영생 별로라고 하시는데 블랑카님은 저처럼 죽음이 두렵고 저처럼 영생을 바라시는거죠? 흑. 우리 영생베프 하도록 해요. 2045년까지 버티고 우리 영생친구 하기예요. 약속!!

수이 2022-01-11 13: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골드문트님처럼 영생까지는 좀...... 읽어보고 싶었는데 락방님 리뷰 읽으니 후딱 빌려야겠어요. 죽음은 역시 무섭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섭다고 피해서 끝까지 피할 수 있는 성질의 종류는 아닌지라.

다락방 2022-01-12 08:38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이니만큼 담대하게 넘겨야할텐데, 그것이 자연스런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할텐데 제가 그걸 진짜 못하고 있네요. 그래서 이렇게 죽음에 대한 책을 읽게 되는가봅니다. 저를 더 훈련시키느라고... 아무튼 저는 영생을 택합니다. 샤라라랑~

공쟝쟝 2022-01-11 13: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으로 찬물끼얹어서 죄송한데 2045년 오기 전에 인류 망할거 같지 않아요… 여러분!? ㅋㅋㅋㅋㅋ 영생의 욕망은 공도동망의 길 (어둠의 오라 투척하고 가기 ㅋㅋㅋㅋ)

건수하 2022-01-11 13:45   좋아요 3 | URL
23년 남았는데, 지금보다 23년 전이면 1999년….? 오 이 엄청난 괴리감…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드네요. ㅎㅎㅎ

다락방 2022-01-12 08:39   좋아요 1 | URL
나는 안망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가 안망하길 바라니까! 껄껄.

건수하 2022-01-12 12:24   좋아요 1 | URL
긍정적인 자세 좋습니다! ㅎㅎ

단발머리 2022-01-11 14: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독교적 내세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죽음이 궁금하기는 하고요. 두려운 건, 죽지 않은 상태에서 연약한 육체를 이끌고 긴 생을 유지하는 겁니다. 그니까 정확히 제가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라기 보다는 늙음 되겠죠.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늙음이요.

제가 읽은 <죽음> 관련 책의 결론을, 저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보는데요. 하나는 ‘받아들여라‘.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또 한 가지는 다락방님이 읽으신 책의 그 문장대로, 곧 조만간 ㅋㅋㅋㅋㅋㅋㅋ 인간은 질병을 극복하고 노화를 극복하고 영생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는 전 세계 최고의 부자들부터. 그다음은 일반인들에게도 그런 시대가 열릴 테고. 그 때는 인공심장, 인공신장, 인공무릎, 인조피부 ㅋㅋㅋㅋㅋ인조인간 되는 거죠.

그래서, 저의 관심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그럼 어디까지를 ‘나‘라고 볼 수 있는건가 하는 거에요. 내 뇌가 나인가. 뇌만 그대로 가지고 모든 신체 기관을 리모델링했을 때, 그 존재를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 당연히 고민은 의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렇다면, 나라는 의식을 나는 신뢰할 수 있는가. 나는 정말 나인가.
그래서 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온 뇌과학 책은 이러합니다. 느끼고 아는 존재, 뇌과학공부,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추신 : 2045년 전에 인류가 멸망할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제 생각 ㅋㅋㅋ 생각보다 지구가 참을성이 많더라구요.

공쟝쟝 2022-01-11 14:57   좋아요 1 | URL
오 이런 접근의 뇌과학 공부 ㅋㅋ 저는 거의 찐 유물론자라 ㅋㅋㅋ 인간의 의식 활동이 물질적 근원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서 그래서 물적인 근원이 궁금한데 ㅋㅋㅋ 결국 그래서 뇌과학으로 통한다 ㅋㅋ
추신 : 지구야 미안하다 ㅠㅠ

라파엘 2022-01-11 16:47   좋아요 2 | URL
삶에 답을 제시하고 그것을 설명해준다는 점이 지적인 사람들이 종교를 갖게 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기독교적 내세관을 가진 사람으로서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그것이 궁금하기는 합니다. 게다가 저는 앎에 대한 추구가 강해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가는 늙음의 과정도 자연스럽게 겪으면서 알아가고 싶어요. 다만 삶에서 나이듦과 죽음은 제 선택과 관계없이 겪게 될텐데, 결혼과 육아는 제 선택에 달린 문제여서 때로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혼자인 게 좋은 사람이어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독신을 선택하고 있기는 한데, 결혼과 육아의 모든 과정을 경험적으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도 하거든요. 특히, 육아의 경우에는 한 생명의 탄생부터 나이듦의 과정을 양육자의 입장에서 직접 겪어보고 싶은 마음이 많아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저는 죽음의 문제보다 삶의 문제가 더 고민이네요 ㅎㅎ

다락방 2022-01-12 08:44   좋아요 3 | URL
저는 ‘죽음이 궁금하다‘는게 너무나 신기해요! 인간에게 누구나 찾아오는 죽음을 두고 저는 두려워하는데 단발머리 님과 라파엘 님은 궁금해하시다니. 저는 그걸 닮고 싶습니다. 저도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궁금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분의 댓글을 읽으면서 하게 되네요. 그게 더 나을것 같은데, 그게 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나은 방법 같아서요. 그런데 저는 어쩌자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에휴..
저는 대체적으로 경험주의자 라서 뭐든 경험을 해야 알게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죽음에 대해서는 그런식으로 접근하는게 저에게 완전히 불가능해요. 그래서 좀 더 알아야겠어요.

뇌과학..사실 저는 뇌과학에 대해 크게 신경 안쓰고 관심도 없이 살았다가 좀 알아야 하지않나 싶어서 책을 몇 권 사둔 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단발머리 님께서 빌려오신 <느끼고 아는 존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제게로 오고 있습니다. 뇌과학이, 삶과 죽음 그리고 ‘나‘에 대해 어느정도 답을 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저는 또 그것을 역시 공부해봐야 겠네요.

라파엘 님의 말씀처럼 결국은 삶의 문제라는 것에 동의하게 됩니다. 죽음이 두렵든 혹은 궁금하든 어쨌든 그 모든걸 더불어 가져가거나 해결해가는 과정은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이루지 못한 것,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역시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라파엘 님, 저 역시 비혼이고 육아를 경험한 적 없고 그것은 여태 제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나, 말씀하신 것처럼 그것을 선택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역시, 삶에 충실한게 결국은 궁극적 해결방법인 것 같아요.

바람돌이 2022-01-11 14: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간들은 마치 자기가 인간의 평균수명만큼은 다 살거라고 생각들 하는 경향이 있대요.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듯.... 저는 그냥 사고사만 안했으면 좋겠다는.... 제 마지막 순간을 제가 준비할 시간을 이렇게 생각하는데 또 막상 아파보면 그것도 못할 짓이더라구요. ㅠㅠ 어쨌든 다락방님의 영생은 기원해드릴게요. 음 그다지 권하고싶지는 않지만 딱 한가지 책 읽을 시간이 무한하다는건 좀 좋을듯..... ㅎㅎ

다락방 2022-01-12 08:46   좋아요 2 | URL
책 읽을 시간이 무한하다는 건 너무 좋지만, 벌써 노안 때문에 힘든데 영생하는동안 책 읽는게.. 가능할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진짜 건강관리가 필수겠어요. 무한한 시간 책을 읽으려면 시력이 받쳐줘야 하니깐요. 영생은 또 영생대로 할 게 많네요.. 흠.. 그래도 저는 영생 편! ㅋㅋㅋㅋㅋ

인간에게 누구나 죽음이 찾아오는 바 저 역시도 제 마지막 순간이 갑작스럽기 보다는 준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그 준비과정 내내 저는 너무 힘들것 같아서.. 역시 죽음에 대한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저는 힘들어요 흑 ㅜㅜ

레와 2022-01-11 14: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음은 오히려 기대되고 건강하지 못한 비루한 육체로 오래 살아 남는게 걱정이에요.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보니 (이제 이틀) 활력 넘치는 이 육체가 참으로 좋구나란 생각이 새삼 들었어요. ㅎㅎ


다락방 2022-01-12 08:47   좋아요 1 | URL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긴 하지만, 비루한 육체로 살아남는것 보다는 건강한 육체가 더 좋은 건 말할것도 없겠지요. 그렇다면 영생에 대비해서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체력단련을 해야겠어요. 빠샤!

mini74 2022-01-1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이 인간을 질투한 이유 중 하나가 생명의 유한성이라던데요 ㅎㅎㅎ 죽음도 이제 부익부빈익빈이 되는건가요. 2045년 영생의 삶 또한 부자들 몫이 아닐까요 ㅠㅠ 이제 주택부금 뿐만 아니라 영생부금 들어야 하나요 ㅎㅎㅎ

다락방 2022-01-12 08:49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아, 그 무슨 영화더라.. 주인공이 죽지를 못해서 죽고싶어하는.. 그런식의 영화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자꾸 살아나니까 죽고 싶어하던.. 아 그런 영화들이 몇 편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죽음이 고통스런 삶에 대한 해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오래 살면 그건 지루할까요? 저는.. 안지루할 것 같은데..
말씀을 듣고 보니 체력이고 뭐고 영생에 가장 필요한 건 돈이겠네요. 평생 먹고 살아야 할텐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겠죠. 크- 역시 삶은 고민의 연속이에요.

독서괭 2022-01-11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셸리 케이건의 말이 딱 제가 죽음을 많이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같아요. 전 아픈 게 두렵지 죽음은 별로 두렵지는 않은데 애들 다 클 때까지는 절대 죽지 않기를 바랍니다.. 80세까지 책 읽는 게 가능한 상태로 살다 죽으면 딱 좋을 것 같아요. 막상 그 나이 되면 생각이 달라지겠지만?^^ 미니님 말씀대로 영생의 삶도 부자들 몫일 것 같네요 ㅠㅠ

다락방 2022-01-12 08:50   좋아요 2 | URL
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게 안되네요, 저는 ㅠㅠ
앞으로도 계속, 특히나 영생을 하게 된다면 책을 읽으면서 살고 싶은데, 벌써 노안이니 어쩌나 싶어요. 영생하는 동안 이 눈을 계속 써야할텐데, 영생을 하게 된다면 중간에 눈을 교체하는.. 타이밍도 있을까요? 아, 역시 이게 쉽지 않은일이구나... 그렇지만 영생 하고싶어요 ㅠㅠ

mini74 2022-02-10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하면서 봤던 리뷰입니다
다락방님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2-10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축하드려요

새파랑 2022-02-10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작가님 2관왕 축하드려요 ^^

독서괭 2022-02-10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영생글이 당선되었군요! 다락방님 축하드려요^^

러블리땡 2022-02-11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2관왕 축하드립니다~ 이 책 이북으로 읽었었는데 리뷰 읽으니까 생각나네요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 조용하게 이긴다 우아하게 바꾼다.
이혜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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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세대는 이렇다'고 규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특히나 그 속의 당사자들이라면 더 그럴 것이고. 인간은 무릇 모두다 다를진데, 한 명 한 명에게 고유의 역사가 있고 스토리가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의 집단으로 퉁쳐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무리짓고 구별하는 것이 옳지 않다든가 얄팍하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또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이건 이 책의 저자도 전제하는 바다). 그러나 분명 공통된 조건하에서 그들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라는 건 있다. 같은 성별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 같은 인종에게 같은 나라의 국민에게 같은 지역 사람들에게 흐르는 정서, 같은 사건을 겪은 사람들에게 흐르는 정서. 그것이 세대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그 모두는 하나하나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사람이지만, 이 시대 이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정서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굵직한 줄기에도 '나는 아닌데?' 하면 거기다대고 '너도 그렇거든?!' 할 생각은 없다. 


나이를 먹어가고 사회적 연차가 쌓이고 시대가 바뀌는 걸 목격하면서 나는 점점 내 스스로가 꼰대가 되어간다고 느꼈다. 내가 나를 단속하지 않으면 나의 꼰대 성질이 어김없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려고 했고, 그래서 상대가 나를 꼰대로 여길까봐 걱정이 됐다. 내가 꼰대인 거 뽀롱나면 어떡하지, 나를 꼰대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작은 걱정들. 그러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좀 더 나이가 들고 확실히 내가 요즘의 시대 흐름에는 뒤쳐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 스스로 꼰대임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됐다. 이건 내가 부인할 게 아니라 자꾸 감출 게 아니라 인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부분이구나, 나는 꼰대구나, 하고. 내가 꼰대임을 인정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렇게 내가 꼰대인 걸 알고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확실히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는 다른 특성을 가졌다는 걸 의미했다. 나는 젊은 세대들의 어떤 특성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어떤 특성들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특히 유튜브.. 나는 아직도 유튜브를 보지 않는 사람이고 어떻게도 활용을 안하는 사람인데(크리스토퍼 라이브만 찾아봅니다..), 요즘 세대는 유튜브로 수익을 창출하고 검색조차 유튜브로 하는거다. 아, 당신들은 확실히 나랑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구나!



이 책의 저자는 기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MZ 세대의 끄트머리 쯤이라고 한다. 정치 성향을 물으면 어떤 면에서는 진보이고 어떤 면에서는 보수라고 답하는 사람이다. 진보이기만 하지도 않고 보수이기만 하지도 않은 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일텐데, 내 세대와 나의 윗세대는 확실히 자신의 정치 성향을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저자 자신이 혹여라도 얄팍한 세대론에 휩쓸리는 걸로 보일까 우려하지만, 저자는 그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직장인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자신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이유, 환경을 생각해 일회용품을 쓰지 않으려는 이유, 명상과 요가를 하고 경제신문을 읽는 이유. 그것을 윗세대가 쉽게 '자기계발'로 칭하는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책을 통해 연신 강조한다. 아니, 이건 자기계발로 퉁칠 수 있는게 아니야,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하고 싶고 삶에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거야. 나는 이런 지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저자에게 동의하고 공감한다.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었는데 읽다보니 내가 그렇게까지 꼰대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또 스스로 한걸음 젊은 세대에게 가까워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자세이지만, 그러나 나랑 다른 시간적 공간과 공간적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흐르는 공통된 정서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고 여성학 책 읽기를 즐겨하는 나에게 사실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 같은 것은 전혀 읽을 관심이 생기지 않는 종류의 책이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요즘 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사는지. 그렇게 읽은 이 책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미잇었고 책장도 술렁술렁 잘도 넘어갔다. 물론 어느 지점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뭐랄까, '그건 너 자신에 대한 합리화네' 라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더러 있지만-저자는 국민청원 제도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래서 참여도 잘 하지 않지만 동물에 대한 것은 반드시 참여한다고 한다. 어차피 참여하는 사람이면서 그렇게 말하는 화법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최근 MZ 세대를 다룬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을 읽었고 그 후에 이 책을 읽었는데, 담고 있는 내용이나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들은 아주 똑똑하고 자기 삶을 분명하게 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역시나, 그렇지 못한 요즘 애들이 있지만 그건 뭐 요즘 애들 아닌 사람들에게도 있는 바. 역시 남걱정 할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최선이라 하겠다. 요즘 애들은 대체 왜그래? 가 아니라 '나는 대체 왜이러지?' 를 묻는게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아무튼 이 꼰대의 젊은 세대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될것이며, 이렇게 그들에 대해 알고자 책을 읽는 내가 또 너무 멋지다. 아침부터...


‘레토르트 밥‘과 ‘직접 지은 얼린 밥‘이 본질적으로 같은 것 아니냐는 게으른 사유,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일주일이면 7개나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면서 자연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심한 언어. 삶과 살림에 대한 사소한 태도 한가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생활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앞으로도 과잉에 저항하고 낭비를 거부하며 살 것이다. 그것이 좋은 날 태어나 시대의 풍요를 맘껏 누려온 것에 대한 작은 환원이라고 믿는다. - P36

삶의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러면 정말 유튜브를 틀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지켜보는 게 도움이 된다. 몇 시간이고 볕 잘 드는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대학생, 타지 유학생활 중 터진 코로나로 귀국하지도 못하고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유학생, 재택근무를 하는 와중에도 집밥을 살뜰하게 챙겨 먹는 또래 직장인, 밖에 나가지 못하는 대신 베란다를 멋진 정원으로 꾸며 난생처음 보는 온갖 식물을 능수능란하게 키워내는 주부 등 사소한 순간도 자신만의 에너지로 채워가는 이들을 보노라면, 삶은 큰 의미를 발견하진 못하더라도 꾸준히 살아가는 데서 동력을 얻는 것이라는 깨달음에 닿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자기계발 구호를 외치며 나의 존재 이유를 묻지 ㅇ낳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소한 순간들로 이 위기를 소소하게 타개하는 보통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삶의 태도를 닮고자 노력할 뿐이다. - P190

흡사 ‘번아웃‘을 유발하는 일상에 치인 사람에게 "당장 나가서 사람을 만나세요" "지금 당신의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입니다"와 같은 말은 폭력적이다. 일방적이다 못해 거부감이 든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친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름의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것들이 대부분 그러했다. 진솔한 위로를 건네기보다 ‘더 뛰어라‘ ‘일어나라‘는 식의 단순 처방들, 머무르고 있지 않기만을 강요하는 모든 소음에서 해방되고, 그저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나는 일상을 살뜰하게 경영해나갈 의욕에 사로잡힌다. 어떤 자기계발 강연보다 유튜브의 브이로그를 보고 더 큰힘을 얻는 이유다. - P190

책을 쓰며 세상을 납작하게 해석하는 ‘세대론‘에 영합하는 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 않다. 그러나 다른 연령대와 구분되어 트히 도드라지는 우리 또래의 행동, 그리고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정서를 설명하는 책이 한 권쯤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아무도 1년 뒤를 예상할 수 없는 이 시기를 특유의 예민한 감각을 총동원해 건너가고 있는 ‘나‘.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규범을 조금씩 직조해가는 ‘나‘. 이 모든 ‘나‘를 대신해 세상에 나의 이야기를 내어놓는다. "요즘 애들은 대체 왜 저러느냐"는 무신경한 질문에 대항하기 위하여.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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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1-10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 유튜브는 보시는거 아닌가요? ^^ 뭔가 나이로만 세대를 구분하는건 좀 안맞는거 같긴 하지만 약간 세대별 특징이 있긴 있더라구요. 다르다는게 틀린건 아니지만 다락방님처럼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한거 같아요. 저도 깨어있는 꼰대가 되도록 노력중입니다 ^^ 역시 멋진 부장님~!@

다락방 2022-01-10 11:21   좋아요 2 | URL
공쟝쟝님 유튜브 봅니다! ㅎㅎ 유튜브는 근데 사실 그 사람 개인의 성향인듯도 하고요. 그런데 그걸 이용하는 사람과 딱히 관심 없는 사람의 성향이라는 게 누구나 다 갈릴텐데, ‘요즘 애들‘은 확실히 좀 더 유튜브 친화적인 것 같아요.
맞네요, 새파랑 님. 꼰대가 되지 않을 순 없으니 깨어 있는 꼰대가 되도록 해야겠어요. 후훗. 이렇게 하나 배웁니다.

웽스북스 2022-01-10 17:4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깨어 있는 꼰대라니, 큰 깨달음 얻었습니다. 저도 깨어 있는 꼰대가 되어야겠습니다. : ) ㅎㅎㅎ (초면에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새파랑 2022-01-10 19:41   좋아요 0 | URL
앗 ㅋ 웽스북스님 감사합니다~!! 저도 실천을^^

공쟝쟝 2022-01-10 0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부장님…!!…. 부장님은 꼰대들의 희망이세요! 요즘애들보다 더 요즘애들을 공부하는 부장님 😚

다락방 2022-01-10 11:22   좋아요 3 | URL
어휴 저 메타버스가 도대체 뭔지 몰라가지고 (삼프로 안철수 듣는데도 뭔 소리여.. 이렇게 되어서요) 지금은 막 메타버스 책을 주문했습니다. 일단 한 권 보고 이해안되면 한 권 더 보고 그래야겠어요. 현실 생존 넘나 힘들고 빡세다...

공쟝쟝 2022-01-10 12:40   좋아요 0 | URL
아 막 읽고 싶어요에 체크하신 그책 (비추인데…)보지말고 제가 유튜브 알려드릴게여 그거 한 번 보면 끝나요 ㅋㅋ

다락방 2022-01-10 12:53   좋아요 1 | URL
이미 샀어요.. ㅠㅠ 쟝님 별점 낮더라고요. 힝 ㅠㅠ 그치만 링크 준 영상도 볼게요. 불끈!

mini74 2022-01-10 1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떼가 안 되려 노력하는데, 그럼에도 깔끔한 아메리카보단 뿌연 모카쯤 되는 거 같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2-01-10 11:22   좋아요 2 | URL
라떼가 안 될 순 없더라고요. 저도 ‘아 라떼는.. 안되는데, 하면서도 라떼는..‘ 하고 있더라고요. 아놔 ㅋㅋㅋㅋㅋ 위의 새파랑 님 말씀처럼 꼰대가 안될 순 없고 깨어있는 꼰대가 되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2-01-10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변에 젊은 세대들이 제법 있는데 확실히 다르다는걸 많이 느껴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확 다르달까? 달라서 부럽고 좋아보이는 것도 있고, 저건 좀 아닌데 싶은 것도 있고.... 꼰대와 선배의 경계 어려워요.

다락방 2022-01-10 11:25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바람돌이 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도 다르고 삶의 태도도 다른것 같아요. 물론 이건 개개인의 차이겠지만요. 저는 ‘요즘 애들‘중에 너무 좋은 친구가 있고 그런데 ‘요즘 애들‘ 중에 너무 스트레스 주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이 스트레스 주는 젊은이를 제가 자꾸 미워하게 되는데,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하면 안미워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요즘 애들 공부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요즘 애들에 대해 공부해야겠다 하던 참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거기에 더한거죠. 어휴 직장생활 빡세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01-10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동감되는 바예요. 저도 분명 이젠 꼰대일텐데 스스로 나는 아직 젊어 그렇다 해도 MZ세대가 볼 땐 저 꼰대는 왜 저래 싶을 때가 많을 거라는 것.
하지만 다락방님 말씀처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고 노력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세대별로 생각이 너무 달라 서로를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인 것 같거든요.
저도 꼰대처럼 안 보일 수는 없겠지만 노력해보렵니다. 다락방님 멋져요!

다락방 2022-01-11 10:49   좋아요 0 | URL
제가 멋지다기 보다는요,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젊은 사람을 아주 나이든 사람들 만나는 만큼이나 자주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니 누군가 미워지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나 직급 높은 사람을 미워하거나 대드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불편함이 없는데요, 저보다 어리거나 직급 낮은 사람에 대해 미운 마음을 가지는 건 되게 불편해요. 제가 조심하지 않으면 상대는 큰 상처를 입을테니까요. 그러다보니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직장생활 하려면, 계속 해내려면 알아야겠다... 라는. 멋있다고 자기뽕에 차서 글 쓰긴 햇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잘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흑흑 ㅠㅠ
 
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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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해 20년 이상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일이란 걸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남아있는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대로 그만둘 수도 없다. 세상의 숱한 직장인들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제출하는 상상을 했다가, 퇴직금을 계산해보았다가 그렇게 오늘도 참는다. 그런 한편, 일이란 걸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한다. 얼마만큼의 일을 앞으로 더해야 할까? 이십 년으로도 부족하다면 사십 년을 하면 될까?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라 하니, 친구는 내게 너에겐 그간 성실히 납입해온 국민연금이 있지 않냐 말했다. 그래,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야, 내겐 국민연금이 있어.


그러나 나보다 더 젊은 동료들, 친구들은 내게 어떻게 국민연금을 믿느냐고 되물었다. 그들은 지금 일하고 있어도 안정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어 주식을 공부하고 코인에 투자한다. 유튜버가 되는 건 어떨까 도전해보기도 하고 다양한 플랫폼에 글을 써서 어떻게든 본업 외에 다른 일을 더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고자 한다. 강조하자면, 그들은 재벌이 되고 싶어 부업을 찾는 게 아니다. 지금의 일자리에서 주는 월급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고 정부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줄거라 기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전의 대중교통 안에서 그리고 퇴근한 후의 집에서 내게는 직장인 모드를 꺼두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쓴다. 이 일들은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비로소 내가 나 자신이 되는 일이라고 느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런 일들로 나 역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그 일은 가능할까? 그러나, 그것으로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는 순간, 내게는 살아가는 매 순간이 일이 아닐까. 회사의 안에 있는 시간도 그리고 밖에 있는 시간도 모두 돈으로 연결되고 업무가 된다면, 그중의 일부는 설사 내가 좋아해 시작한 것일지라도 나는 충족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더 빨리 더 많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일을 파악하며 수익 창출이 가능해지는 것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준 것일까? 더 빠르게 더 다양한 경로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가져다준 것은 맞았나. 휴대용 기기를 이용해 투자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운동까지 하는데 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번아웃이란 단어에 더 많이 노출되는가. 왜 우리는 내 이름으로 된 집 한 칸 마련하기가 힘들고, 왜 여전히 가사노동으로 힘겨워하고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을까.


직장에서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신입사원의 면접을 보는 위치가 되었을 때, 나는 내 앞에 놓인 이력서들의 화려함에 당황했다. 어학연수는 기본이었으며 외국어 점수 및 자격증을 비롯하여 고학력자들이 수두룩했다. 나 때는, 이라고 말하는 일은 스스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내 이력서에는 대학 졸업밖에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나의 이력서로 지금 이들과 경쟁했다면 나는 이길 자신이 없다.


나는 이십 년간 일해오며 투잡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러면서도 취미는 여전히 좋아하는 시간으로, 별개의 시간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여유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가진 게 많지 않지만 나를 갈아 넣어가며 살고 싶진 않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건 아닐 테지만,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은 '요즘 애들'은 자연스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뭐든 수익창출로 연결하고 싶을 것이고, 그런 시간들은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번아웃을 가져올 것이다. 여기에 대한 현재까지의 뚜렷한 답은 자신도 알 수가 없다고, 본인도 밀레니얼 세대인 앤 헬렌 피터슨은 말한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계속해 주장한다. 우리가 가치 있는 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혹은 해내고 있는 일들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살아가는 일, 살아서 버티는 일에 눈 뜨고 감는 시간까지 내내 시달리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가치를 드러내는 건 아니라고 책의 처음과 그리고 끝에 재차 강조한다. 어쩌면 지금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유일할지 모르지만 그 외의 답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요즘 애들'이 아니라 '요즘 애들'을 이렇게 만든 그 전 세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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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2-30 0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애들>이 책은 요즘 애들만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처한 현실과 그렇게 만든 어른들을 말해주는 듯 하네요. 각자도생과 과도한 스팩쌓기 안타까워요.게다가 코로나까지...<90년생이 온다>랑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다락방 2021-12-30 09:02   좋아요 4 | URL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딱히 어떤 해결방법을 제시해주지는 못하지만 능력이 아닌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는 말을 해주는 것은 꼭 필요한 말이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어서 팔지 않고 가지고 있긴한데 언제 읽을지는 모르겠어요.

웽스북스 2021-12-30 08: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국민연금 믿는 1인이에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12-30 09:02   좋아요 5 | URL
저는 사실 그전까지 생각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믿고 싶어서 믿으려고요. ㅋㅋ 그걸 믿는 것이 저의 살 길..... 믿읍시다!

그레이스 2021-12-30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진단은 방법을 찾는 첫번째 걸음.

다락방 2021-12-30 11:26   좋아요 2 | URL
열심히 스펙 쌓는다고 돈을 잘 벌게 되지는 않으니 세상을 어찌 살아가나요.. 휴..

거리의화가 2021-12-30 10: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취미에 대한 부분 많은 생각을 갖게 하네요. 좋아하는 일이 투잡이 된다 해도 만족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 기쁨 자체는 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거든요. 물론 그것이 수익으로 연결된다는 가정하에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최소 몇 년 이상은 더 해야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살 수 있겠죠.

다락방 2021-12-30 11:28   좋아요 3 | URL
저도 앞으로의 제 삶을 위해서 투잡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마땅한 세컨잡을 떠올릴 수 없기도 하지만 설사 투잡을 하게 된다면 제 삶이 너무 빡빢하지 않을까 싶고요. 취미가 돈으로 연결되는 건 매우 이상적이지만, 그런데 처음만 이상적이지 어느 순간 돈을 보고 취미를 유지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렇다면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싶어요.
저는 어른이 되면 막연히 삶에 고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먹고 사는 일은 나이 먹어도 계속 고민이네요.

새파랑 2021-12-30 1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작가님의 생각과 고민들이 공감되면서도 너무 멋지네요. 신문 칼럼에 실려야 하는 글 같아요~!!

신입사원들이 이력서는 화려해도 이작가님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글도 더 잘 쓰고 책도 출판하시고~!!
(1인 2메뉴 주문 능력까지 ㅋ)

다락방 2021-12-30 11:29   좋아요 3 | URL
아이고 새파랑 님은 언제나 저에게 좋은 말만 잔뜩 해주시네요.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
1인 2메뉴는 능력이라기보다 식탐이지만 어쨌든 늘 잘먹도록 하겠습니다. (응? ㅋㅋ)

공쟝쟝 2021-12-30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여러가지 기분이 들어요. (아직 생각할 총기까지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거듭 말하지만, 그런데 정말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다는 느낌이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말이 세상에 있구나 그걸 느끼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구나 하는 정도.... 그 정도만 실눈 뜨듯 생각해보겠습니다.

저는 밀레니얼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 imf키즈라는 게 가장 와닿았어요. 불안. 요즘애들에 어떤 정동과 본질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불안 인것 같아요. 불안해요. 투잡안하면 벼락거지 될 것 같아서 불안해요. 불안해서 관계에 의존해봤는 데 관계가 저를 성장시키지 않아서 불안했어요. 그럼 성장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성장하지 않는 채로 있으면 불안해요. 매일 투두리스트를 만들고 그걸 조금씩 지워나가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그렇게 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되게 무가치하게 느껴져요. 그러다 번아웃 상태가 되는데 번아웃에 빠져봤을 떄의 그 무가치함을 알아서 더 불안해요. 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뭐 열심히 돈내서 상담에 의존하고 열심히 투잡해서 안전가옥?을 꾸리고 .... 뭐라도 하자뭐라도 하자.. 그러나 알지. 이 뭐라도 하는 버둥거리는 삶이 세상의 평균을 높여서 또 모두를 힘들게 한다는 거.. 그래서 어떡해? .........

그럴 땐 둔너서 밀린 책이나 읽자~.

다락방 2021-12-31 09:02   좋아요 1 | URL
사실 모든 밀레니얼 세대가 모두 이렇다 라고 할 순 없겠지요. 다만 이런 사회에서 이렇게 되는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정도의 이야기가 맞을 것 같아요.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얘기는 굳이 이 책의 저자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말해주어야 하는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어서, 무엇이 되는 사람이라서 소중한게 아니라 그냥 나는 나 자체로 소중한 거라는 것. 아마 쟝쟝님도 그런 말을 지금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된다면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쟝님이 번아웃 올 정도로 너무나 열심히 사는 것 같아서 좀 살살 해도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기본적으로 저의 삶의 태도와 닮아 있어서 사실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치지 않을 정도로만 하자. 내면의 불안을 다스리도록 해봅시다. 저는 사실 다른 종류의 불안을 갖고 있어서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라는 책을 사두긴 했습니다만... 아아.. 왜 모든게 책인가. 알라딘만 부자된다... ㅋㅋㅋㅋㅋ

아무튼 쟝님 소중해. 오케?

공쟝쟝 2021-12-31 09:42   좋아요 0 | URL
오케오케 아무것도 안해도😁 세상에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도☺️ 나는 존재 자체로 소중해….😋
근데 우리 다르고도ㅠ비슷한게 뭐냐면 …
다락방은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잖아요 ㅋ
저도 사놓고 읽어야지 하는 책 제목
<불안은 우리를 삶으로 이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좀 더 지독한 인간이다 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

다락방 2021-12-31 09:53   좋아요 1 | URL
아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쨌든 우리 둘다 불안하고 그래서 살아보려고 책도 사고 그랬다. 그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1-12-31 09:54   좋아요 0 | URL
응 ㅠㅠ 근데 나 왜 눈물이 나지 (… 아 침 부 터 우는 중…) 안웃겨 ㅠㅠ 우어어어우ㅜㅜㅜㅜㅠㅜ 뭔갈써야겠다ㅜㅠㅠ

독서괭 2021-12-31 0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 이 책 좋으셨군요. 저도 <90년생이 온다> 마저 읽고 읽어봐야겠습니다. 요즘 애들은 정말 부지런히 사는 것 같아요. 조직이 날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인가… 그 결과가 번아웃이라니 슬픈 일이네요..

다락방 2021-12-31 08:59   좋아요 1 | URL
네 좋았어요, 독서괭 님.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다음 책으로는 <자본주의 키즈의 반자본주의적 분투기>를 정해두고 있습니다. 후훗.
저보다 여러모로 스펙이 좋은 젊은 친구들이 힘들게 살고 있는게 너무 이상해요. 좋은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만큼 열심히 노력했을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저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과도 더불어 살아가고 있지만 저보다 젊은 사람들과도 더불어 살아가고 있으므로 더 읽어보려고 합니다.
 
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자전적 에세이 3부작
데버라 리비 지음, 이예원 옮김, 백수린 후기 / 플레이타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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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아가 구조에 나섰다. 실리아는 80대 초반의 배우이자 서점주였다. 1월 하순의 어느 날 저녁, 실리아가 자기 집 부엌에 앉아 있던 내게 웨일스어로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나는 실리아에게 웨일스어를 모른다고 말했다.

"나야 웨일스에서 태어났지만 당신은 아니니까요. 근데 노래를 부르면서 실은 당신에게 글 쓸 곳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실리아는 정원 뒤편에 있는 헛간을 가리켜 보였다. 실리아의 남편이자 이제는 고인이 된 훌륭한 시인 에이드리언 미첼Adrian Micthcell이 봄과 여름에 종종 집필실 삼은 곳이었다. 사과나무 바로 아래 지은 헛간이었다. 정확히 3초 만에 나는 월세를 내고 헛간을 빌려 쓰는 데 동의했다. 실리아는 내가 (그의 표현대로라면) "적잖은 식구"를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하는 처지란 걸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우리는 실리아가 각별히 좋아하고 주로 콜라오 섞어 마시는 하바나 럼을 한 잔씩 마시며 서로의 조건에 맞춰 거래를 성사시켰다. 하바나 럼을 마실 때마다 실리아는 쿠바가 이룩한 높은 문해율의 기적에 잔을 들어 건배했다. "참, 그리고 다음에 또 공동 보일러가 고장 나거든 다들 내 집으로 목욕하러 와요." -p,42-43



 '데버라 리비'는 이혼한 후 딸 둘을 데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다. 복도는 음침했으며 따뜻한 물은 수시로 나오지 않았고 짐을 다 풀어 정리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에 글을 쓸 공간을 아무리 생각해도 마련할 수 없었던 터, 80대 초반의 실리아가 너 글 쓰는 곳 필요하지 않니, 우리 헛간은 어떠니? 제안을 한거다. 글 쓸 공간이 필요했는데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데버라 리비는 당장 계약하고 실리아의 헛간에 책 몇 권을 가져다두고 그곳을 작업실 삼아 글을 쓴다. 이 책도 바로 그 작업실에서 쓴 것이라고 한다. 언덕 위에 있는 집과 작업실을 오가기 위해 전기 자전거도 마련했다. 아침에 일어나 헛간으로 와 글을 쓰고 저녁에는 장을 봐서 자전거를 타고 언덕 위의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십대의 딸에게 줄 저녁을 준비한다. 큰 딸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났다. 그녀와 딸은 좀 음침한 집에 살면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정기적으로 손님을 초대하기도 하고 이제는 가끔 십대의 딸이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십대 아이들 특유의 수다스러움이 집안을 채우기도 한다. 나는 특히 그녀가 와인을 준비해 자신의 친구를 부르고 딸도 친구를 데려와 함께한 저녁 식사의 풍경이 마음에 든다. 유독 되는 일이 없었고 피곤한 하루였던 그 때가 바뀌던 풍경.



결국 와인을 따기로 정하고 친구 릴리에게 한잔하러 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딸기 한 상자를 사 들고 온 릴리가 자기 하루에 대해 이야기하며 목욕물을 받아 줬다. 내 딸과 딸의 10대 친구들이 식탁을 차렸다. 아이들은 큼직한 링 귀고리를 하고 입에는 립글로스를 바르고 있었다. 삶에 미치고 삶에 열광하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흥미롭고 예리하고 배꼽 잡게 웃겼다. 얘네라면 세계를 구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른 건 모두 잊었다. 딸과 딸 친구들과 릴리와 내가 남김없이 먹어 치운 차에 치인 통닭 살처럼, 모두 사라졌다. -p.83


글을 쓰는 사람인 데버라 리비의 먹고 사는 일에 대한, 특히 살아가는 일에 대한 에세이다. 그녀가 만나는 주변의 사람-유독 친절하고 또 다 들리게 흉을 보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들과의 대화, 낯선이들이든 익숙한 이들이든 그녀가 항상 느끼는 남자들과의 '아내의 이름없음'에 대한 단상, 우연히 만난 젊은 여성의 외국어 공부, 자주 마주치는 이웃의 쌀쌀한 오지랖, 그리고 그녀가 읽어온 책들이 단아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들고 인생에 대한 통찰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여성이고, 엄마이고, 딸이고, 친구이고 또 아내였다. 그녀의 어떤 생각들이 그리고 어떤 문장들이 특정하게 나라는 사람을 노린것처럼 확 와서 훅 박혔다.  죽음을 앞둔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찾아가는 장면이 그랬고 특히나 다시 누군가와 함께할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그랬다.



클라라는 자기 고향에서 만드는 화이트 치즈를 내 딸들이 좋아할 거라고 말했다. 순하고 신선한 치즈였다.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또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클라라가 물었다.

"적당한 거리가 있다면요." 내가 대답했다. "장거리라면요."

"아뇨." 클라라가 말했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장거리로는 못살아요.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에서만도 몸의 세포가 달라지는데요." -p.130


궁극적인 사랑의 목표 혹은 완성이라는 것이 둘이 오래오래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따로 있으면서도 그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존재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 거리를 사이에 두고 너와 나의 사랑의 완성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면 역시나 될 수 없는 것이 맞았다. 사랑은 이벤트이기보다 일상이고 조화여야 했던 거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게 아마도 세상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일 것이다. 클라라는,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에서만도 몸의 세포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떠나고 돌아오는 사이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장거리로는 못산다고 말한다. 나는 클라라의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러나 그렇구나, 떠나고 돌아오는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겠구나 싶다.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에서만도 몸의 세포가 달라지는건 너무나 당연하겠구나.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과 시간속에서 우리는 서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예상치 못한 일을 겪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떠나고 돌아오는 공간에서만도 몸의 세포가 달라진다는 것을 누군가 생각하다니, 그런 말을 해준다니, 그것을 내가 이렇게 글로 읽을 수 있다니, 너무 좋지 않은가? 저 문장 너무 좋지 않아요, 여러분? 나는 뒤로 쓰러질 뻔했네.



내게는 이 책, 살림 비용이 올해의 에세이다. 데버라 리비의 다른 책들을 사서 읽어봐야지. 너무 좋다 진짜루 ㅜㅜ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낸다는 건 그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다는 의미다. 모두가 즐거이 누리는 가정, 순조롭게 기능하는 가정을 짓는 일은 수완과 시간과 헌신과 공감 능력을 요한다. 다른 이들의 안녕을 건설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넉넉한 인심에서 비롯하는 행위다. - P21

자기가 치러야 할 대가가 올그런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크단 걸 보부아르는 알았다. 그리고 결국, 자기는 그런 대가를 치를 사정이 안 된다고 결론 내렸다. 제발 파리를 버리고 시카고로 와 함께 살자고 올그런이 사정했을 때, 보부아르는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난 행복과 사랑만을 위해 살 수 없어. 내 글쓰기와 일이 유일하게 의미를 가지는 곳일지도 모를 이곳에서 계속 글을 쓰고 일을 하는 걸 단념할 수 없어."
글을 쓰면서 행복과 사랑과 가정과 아이도 가질 수 있지는 않았을까? 보부아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게 얼마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인지 경험했다. - P87

정원사는 어느 대화 상대에게건 오롯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식물을 가꾸는 것에 버금가는 태도였다. 이 식물이 날씨와 토질에 어떻게 반응하고 다른 식물들과 어우러져 살면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 가늠하는 세심함. 그의 강렬한 푸른 시선을 보고 나는 그가 배우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사물과 사람에 호기심이 있었다. 연기란 특이한 직업이라서, 배우는 다른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 안에 거처해야 한다. - P96

헛간에서 메두사 신화를 연구화는 가정에서 내 안에 메두사가 들어앉았다. 메두사가 내 내면에 깃든 게 반길 일인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메두사는 막강한 힘을 지닌 여자이자 심기가 거슬린 여자였다. 남성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리는 대신 정면으로 되쏘아 보며 맞서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메두사는 신화 중에서도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고, 결국 여자가 잔혹히 참수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여자의 머리(곧 마음, 주관, 주체성)와 몸의 분리로. 여자의 머리가 지닌 잠재력이 그만큼이나 위협적이란 듯이 말이다.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위협적인 여성 권력을 끝장내고 남성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목적에서 메두사를 참수한 것이리라 추정한 바 있다. 그런 메두사가 뜻밖에도 내가 새로이 쓰고 있던 장편 소설로 걸어 들어오기 시작한 거였다. - P97

현대 가정을 둘러싼 변덕스런 정치가 한층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 터였다. 내가 아는 현대적이고 외관상 힘있어 보이는 여자 중의 다수가 다른 이들을 위해 가정을 꾸리고도 보금자리에서 느껴야 마땅할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집보다도 사무실이나 다른 형태의 작업 공간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후자에선 그나마 누군가의 와이프 이상의 지위를 누리기 때문이었다. - P98

그날 밤 어머니 침대 옆에 앉아 책을 읽다 말고 세면기에 분홍색으로 녹아내린 풍선껌 맛 아이스크림을 회환에 찬 눈길로 바라봤다. 사실 책에 집중할 수가 없어 그저 페이지나 훑고 있던 참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어머니 옆을 지키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었다. 그날의 마지막 회진을 돌던 의사가 병실에 들어왔을 때 어머니가 앙상한 손을 들어 보이며 그무렵에 이르러 극도로 작아진 목소리로 용케 고압적이고 위엄 있게 말했다. "조명을 더 가져오라고 하세요. 내 딸이 어둠 속에서 책을 읽고 있잖아요." - P112

몇 주간 골을 내며 냉동고 한끝으로 밀어젖히기만 했던 버섯을 사러 어느 일요일에 잡화점에 들러 보니 터키에 휴가를 갔던 막내 형제가 돌아와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신문에 싼 물건을 선물이라며 건넸다. 포장을 열자 은으로 세공한 격자 무늬 잔 받침과 뚜껑이 달린 희고 자그마한 커피 잔이 나왔다. 그는 내가 예전에 터키 커피를 사면서 유리잔에 마신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유리잔은 차 마실 때 쓰는 거고, 터키 커피에는 이 잔을 쓰는 게 맞거든요." 그가 말했다.
그 잔이 조의를 담은 선물임을 알 수 있었다. - P114

클라라는 자기 도시와 정치관과 가족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내게는 질문을 했다. 어디서요, 언제요, 어디서요? 나는 아홉 살 이전에는 아프리카 남부에서 나라는 사람의 정체가 형성되었고, 나머지는 영국에서 내가 직접 빚었다고 말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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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2-18 21: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보부아르가 시카고로 가지 않은 덕에 그녀의 빛나는 사유를 우리가 얻어낸 것일 수 있겠네요.
그럼 저도 다락방님의 롱디를 응원하렵니다.🤭

다락방 2021-12-18 21:46   좋아요 5 | URL
보부아르 전기 안읽고 미루고 있었는데 저 문장을 만나는순간 얼른 읽고 싶어졌어요. 아니, 나는 행복과 사랑만을 위해 살 수 없어!˝ 라고 말하다니 너무 멋지지 않나요? 진짜 장이에요 보부아르 님 ㅠㅠ 멋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미미님, 우리 읽고 쓰기를 포기하지 말고 살아갑시다!

책읽는나무 2021-12-18 2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림비용이 올 해의 에세이라니....
책표지도 샛노랑 너무 이쁜데요?
아침에 난티님 서재에서도 보니까 책 이쁘다고 생각 했네요~^^

다락방 2021-12-19 09:34   좋아요 2 | URL
책도 예쁘고 훅 치고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아서 너무 좋았어요. 처음 책장 펼칠 때는 깨끗하게 보고 팔아야지, 했는데
다 읽고난 지금은 데버라 리비를 위한 공간을 책장 한 켠에 따로 마련해줘야하지 않나 싶어요.

수이 2021-12-18 2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일 살림비용 최소 50부 판매 예상해봅니다 😎

등롱 2021-12-18 23:08   좋아요 3 | URL
그 1부는 제 몫일 거 같습니다! 리뷰가 훅하고 마음에 들어와서 너무 읽고 싶어졌어요, 작업실 필요하지 않니? 이런 질문이 나오는 에세이라니 벌써부터 빠져버릴 것만 같아요~!

다락방 2021-12-19 09:35   좋아요 2 | URL
50부.. 아니 땡투가 얼맙니까! 금세 부자되겠어요. 껄껄.

등롱 님, 저도 그 부분이 너무 좋았어요. 한 명의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듯이 자기만의 책상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하고 알아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너무 소중하지요.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 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봐주는 사람이라니. 정말 너무 좋지 않나요? 저런 헛간이 있다면 저 역시도 당장 쓰겠다고 할 것 같아요. 저에겐 정말 좋은 에세이였습니다.

등롱 2021-12-19 15:10   좋아요 0 | URL
1부와 2부 세트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부제를 보니 3부가 출간된다는 뜻이네? 하고 몹시 기분이 좋아졌답니다, 아마 이 책이 올해의 마지막 책 쇼핑이 될 것 같은데 이건 내년에도 열심히 책상에서 읽고 쓰라는 영감이구나 싶네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21-12-19 21:12   좋아요 0 | URL
저도 1부 주문하고 그것도 모자라 살림비용 원서도 샀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글쎄, ‘나머지는 영국에서 내가 직접 빚었다‘ 같은거 어떤 문장인지 너무 궁금하지 않겠어요? 소설도 썼다는데 국내에 번역된게 이 에세이 시리즈 두 권 뿐이더라고요. 다른 책들도 번역 출간되길 기다려봐야겠어요. 후훗.

햇살과함께 2021-12-18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아서 1부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읽어보려고요~~

다락방 2021-12-19 09:36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이 책 너무 좋아서 아니, 이 작가 뭐지? 하고는 이 작가 책을 한권씩 한권씩 만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관심가는 작가가 생긴다는 건 너무 좋아요!

난티나무 2021-12-19 0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1부작 샀어요! ㅠㅠ
올해의 책으로 꼽으시는 분이 많아서 더욱 읽기가 겁이 나네요.^^;;;;;;;

다락방 2021-12-19 09:37   좋아요 2 | URL
저도 어제 이거 읽자마자 1부작 주문했다는 거 아닙니까! 이럴 때 행동 빨라서 정말 미치겠어요.
난티나무 님께도 좋은 책이 되어야 할텐데요.

mini74 2021-12-1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췌 문장이 가슴에 콕 콕. 1월에 살 장바구니가 터질듯 해도 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담아갑니다 다락방님 *^^*

다락방 2021-12-19 14:44   좋아요 0 | URL
진짜 훅 들어오는 문장들이 많더라고요.

‘나는 아홉 살 이전에는 아프리카 남부에서 나라는 사람의 정체가 형성되었고, 나머지는 영국에서 내가 직접 빚었다고 말했다. ‘ 이런 문장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요. 나머지는 영국에서 내가 직접 빚었다고 말했다. 저도 언젠가 써먹어보고 싶은 문장이에요!

2021-12-19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9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9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19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