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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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자이다.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그를 기리고 있을만큼 수많은 종류의 물고기들을 새로 발견해내고 이름 붙인 사람이 그다. 어릴적부터 이름모를 작은 꽃에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다. 이 책의 저자 '룰루 밀러'는 혼돈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를 우연히 알고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 그가 궁금해진다. 그렇게 그의 회고록을 읽는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커리어를 찬찬히 쌓아가는 일이 당연히 그 회고록에서 보여진다. 교수가 되고 학장이 되고 아내를 얻고 결혼을 하는 시간의 흐름과 삶.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물고기들을 잡고 이름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지 않다. 첫 아이가 아직 열살도 되지 않았을 때 아내가 병으로 죽고 그러자 데이비드는 2년도 안되어 제자 한 명과 재혼한다. 새로운 아내는 아직 스무살이 되지 않았고, 열살이 된 데이비드의 큰 딸과 동생을 기숙학교로 보내버린다. 그리고 남편이 떠나는 모든 연구를 위한 여행에 동행할 것을 선언한다. 아내로서 남편의 여행에 동행하는 것이야 뭐 그리 대수겠냐마는, 나는 전아내로부터 낳은 이 어린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넣고는 새로운 젊은 아내와 세계를 돌아다니는 데이비드가 싫었다. 처음 룰루 밀러가 그의 혼돈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언급했을 때에는 오, 대단한 사람인데? 문제가 생기면 바로 해결하는 사람이군, 좋아, 라고 생각해서 흐름을 좇아 읽다가 그가 어린 아이들을 기숙학교에 넣고 아내와 돌아다니는 걸 읽노라니 이 데이비드란 남자가 싫었다.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에게 매력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닌데? 나는 이 남자 싫은데? 


얼마전에 본 데이비드 포스터의 다큐도 떠올랐다. 왜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기거나 천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생활이 이모양일까. 그래야만 업적을 남길수 있나? 왜 어린 자식들을 이렇게 방치하는거지? 나는 싫었다. 위대한 업적을 남겨 그 사람이 후대에 이름을 널리 알릴지언정, 이런식의 사생활로 주변의 약자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 불행한 어린시절을 기억으로 남긴다는 것이 싫었다. 세상이란 그렇지만 결국은 약자와 사소한 일들에 신경쓰는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는 건 아닐까. 나는 위대한 업적을 좇는 사람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버려두지 않는, 특히나 어린아이들을 버려두지 않는 사람들 쪽이 더 좋아. 나는 그들의 가치를 믿어.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책을 계속 더 읽어야 하는걸까 고민하게 됐다. 다른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나의 관심의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런데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진 사람이 영 내가 좋아할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것 역시 어쩔 수 없지 않나. 내가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룰루 밀러가 파고드는 사람이 영 내가 보기엔 별로인데, 그런데 읽어야 할까? 룰루 밀러는 이런 거는 개의치 않는건가? 룰루 밀러에게는 그가 얼마나 위대한 분류학자인지만 중요한건가? 나는 룰루 밀러까지 별로가 되려고 했다. 그렇게 책의 중간이 되기전까지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 책에 대한 호평을 숱하게 들어온터라 어쩌면 이 책을 안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도 했다. 그만 읽고 '나는 별로' 라고 평을 쓸까, 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읽기로 한다. 이 데이비드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아이들을 방치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선행을 한 사람인가? 나는 이 책의 앞으로의 전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계속 읽는다. 그리고 중간에 뭐야, 하고 소름끼치게 이 책이 미스테리 소설같아짐에 놀라고, 아니 그래서.. 이건 지금 뭐가 어떻게 되는거지..하는 가운데 룰루 밀러가 끌고가는 대로 이끌리고야 만다. 그리고 룰루 밀러가 말하는 결말에 이르게 되면, 눈물을 펑펑 쏟는다. 아이고야, 이런 얘기를 어떻게 이렇게 진행해요, 하고 울게 된다. 아침에 읽어도 울게 되고 다시 떠올려도 울게 된다. 아니, 룰루 밀러, 이 사람 진짜 뭐지. 글 쓰기 위해 태어난 천재인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내기 위해 머릿속에 큰 그림 그려둔건가, 아니면 펜에 몸을 맡겼더니 둠칫 두둠칫 이렇게 되었나. 



이 책의 중간 이후부터를 말하는 것은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된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을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결말에 대한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 것같다. 나부터도 그렇다. 이 감동은, 모르는채로 룰루 밀러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좇아가며 들었을 때 나를 집어던진다. 단언컨대,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은, 그 누구도 예외없이, 이야기가 이렇게 흐를 줄은 몰랐을 것이다.



책의 앞부분, 룰루 밀러가 어린 시절 인생의 의미에 대해 아버지에게 물었을 때, 아버지가 아무 의미도 없다고, 그 어린 룰루 밀러에게 너는 개미 한마리보다 가치가 없다고 말해주었을 때, 그래서 어린 룰루 밀러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살고 있는거야? 고민하는 걸 보면서, 나는 보부아르의 책을 건네주고 싶었다. 아니야, 그런거 아니야, 우리가 살아가는 건 그대로의 의미가 있어. 보부아르는 말했지. 우리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기 위해 저 위로 오르는 것은, 그걸 타고 내려오기 위한 목표가 있는 행동이라고,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 라는 냉소는 필요치 않다고, 그런 냉소는 냉소가의 몫이지 스키를 타기로 한 사람이 결정한것이 아니라고. 그런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보부아르의 [모든 사람은 혼자다]를 건네주고 싶었다. 아니, 의미가 없지 않아, 우리가 무얼 하고자 하고 그 결말에 이르기 위해 과정을 거쳐내는 것들은 그것 나름대로의 종합적 의미가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인생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고, 우리의 삶은 그렇게 공허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룰루 밀러는 스스로 깨닫는다. 이 책 한 권을 얘기하면서 의문을 갖고 의심을 하고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내가 괜히, 그런 룰루 밀러에게 오지랖을 부릴 뻔 했어. 나는 진짜 내 오지랖 고쳐야 돼 증말. 



책을 읽기 전에도 왜 제목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으면서도 도대체 이 제목은 왜인가, 했다. 아마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러나 책을 다 읽어갈 쯤이면 이 책 제목이 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인지 알게될 것이고,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어질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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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01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오늘 출근하신 줄 알았어요. 다부장님을 휴일에도 컴터 켜고 글 쓰게 만드는 책이군요. 꼭 읽어보겠삼!

다락방 2022-03-01 15:30   좋아요 2 | URL
네네, 꼭 읽어보세요 잠자냥 님.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ㅎㅎ

바람돌이 2022-03-01 11: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닛 정말 이렇게 쓰시면 너무 궁금해서 책을 안읽을수가 없잖아요. ㅎㅎ

다락방 2022-03-01 15:31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 님, 이 책 읽어보세요. 두껍지도 않아서 금세 읽으실 거예요. 그리고 분명 놀라워하실 겁니다!

새파랑 2022-03-01 1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고기는 없나요? 이 책 이작가님의 세번째 책에 소개되겠군요 ^^ 저도 갑자기 급 궁금해집니다~!!

다락방 2022-03-01 15:31   좋아요 2 | URL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새파랑 님. ㅋㅋㅋㅋㅋ 그건 책을 읽어보면 아실겁니다. 후훗.

꼬마요정 2022-03-01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넣고 주문을… ㅠㅠ 읽을 책이 너무 많습니다ㅠㅠ 기뻐해야 할까요, 슬퍼해야 할까요.ㅠㅠ 이건 슬픔의 눈물이 아닙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2-03-03 09:02   좋아요 1 | URL
이제 눈물을 닦으시고 책을 사세요, 꼬마요정 님! 그리고 읽으시면 됩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또 우리 마음이 참 좋아지지 않습니까. 가치있는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3-01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 리뷰 읽으니 너무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대체 왜 제목이 저리 지어졌으며 뒤집어질만한 결말까지의 모험은 왜인가^^ 이번달은 못 읽겠지만 나중에라도 꼭 경험해봐야겠네요. 스포는 안 알려주셔서 감사해요.ㅋㅋ

다락방 2022-03-03 09:03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대한 리뷰중에는 읽으면서 계속 장르가 바뀌는걸 경험한다는 것도 있던데, 거리의화가 님, 언제라도 읽으시기를 단호하게 추천합니다. 놀라운 책이었어요!

등롱 2022-03-01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아니 이 리뷰를 보니까 초반 몇 장 읽고 더 읽어야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덮었는데 다시 펴봐야겠어요!!!! 다락방님의 리뷰를 보니 다른 사람들의 호평을 보고도 시큰둥했던 마음이 단숨에 바뀌었어요~~!

다락방 2022-03-03 09:05   좋아요 0 | URL
등롱 님, 중간까지 ‘이게 뭐여.. ‘하면서도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 다음부터는 ‘뭐라고?!‘ 하게 되고요 결말에 닿게 되면 ‘아 맙소사 이런 얘길 하려고 한거였어?‘ 하게 됩니다. 눈물도 동반하게 됩니다. 그러니 중간까지의 지루함이나 의문스러움, 갸웃함과 싸우시고 끝까지 가보세요!!

그레이스 2022-03-01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더 궁금해지네요^^

다락방 2022-03-03 09:05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이에요, 그레이스 님. 후훗.

고양이라디오 2022-03-14 1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리뷰 보니깐 엄청 궁금하네요. 이 책 봐야겠어요!!ㅎㅎ

다락방 2022-03-14 14:17   좋아요 2 | URL
꼭 읽어보세요 고양이라디오 님!!

헤스티아 2022-04-12 2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사려고 리뷰보는데 첫번째에 다락방님 리뷰가...^^ 반가워서 댓글달아요. 여전히 많이 읽고 쓰시네요~ 잘 지내시죠? ^^

독서괭 2022-04-23 11: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물고기 책 다 읽어서, 드디어 리뷰들을 시원하게 읽으니 좋습니다😄

공쟝쟝 2022-07-04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부장님! 말씀대로 의미없지 않아요! 하지만 (저같은) 의미주의자들에겐 의미없음에 대한 이야기가 꼭 필요합니다! 룰루 밀러가 냉소로 그자신을 공격하면서 스스로 몸부림 치는 시간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가 존경하려고 노력했던 인물 같은 자기 기만 환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락방님이 눈물흘린 그 장면에서 (와, 연출자의 기획의도 넘나리 보여서) 못 울고 좀 울컥했습니다. 전 마지막 부분에 자신이 믿는 것을 용감하게 뒤집어 엎고 다른 것을 같은 마음으로 다시 준비하는 과학자들 보면서 주말에 이야기 나눴던 페미니즘 정치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다 내던지고 너무 멀리 와버린 제 자신이 기뻤습니다.
 
One Day in December : the uplifting Sunday Times bestseller that stole a million hearts (Paperback) - 『12월의 어느날』 원서
Josie Silver / Penguin Books Ltd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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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조연이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물론, 씬스틸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다른 사람 인생의 주연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오디션을 보고 보기 좋게 탈락하기도 하고, 가까스로 캐스팅이 되었지만 금세 하차하기도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한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삶이 있으므로 내 후회 따위 간단히 무시하고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장했던 second best는, 나는 조연이라고 생각했다. 주연인줄 알고 갔는데 조연이었던, 다른 사람의 삶.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삶.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조연이 결코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는 걸, 재능이 없다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걸.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는 그리고 내 인생에서도 주연이 필요하고 조연이 필요하다. 그래야 풍성한 한 편의 극이 완성된다.



로리는 그런면에서 볼 때 혼자 극을 이끌어가기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다. 이미 극을 잘 이끌어가고 있는 사라를 향한 질투와 부러움을 가진 채로 저예산 영화를 찍어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저기 주연 배우가 눈 앞에 있는데도 제대로 캐스팅하지도 못하고 다른 극에 넘겨준다. 어쩔 수 없지, 하는 체념이 로리에게 잇었다. 이미 다른 극에 출연중인 배우를 중간에 빼앗아 오는 건 도덕에 어긋나니까. 그런 로리가 오스카라는 어마어마한 주연 배우를 만난다.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고 찍었다하면 흥행하는 보장된 주연 배우. 그런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기뻐하고 이 극을 제대로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나 로리가 찍는 영화에는 이렇게나 화려한 배우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저기 저 잭, 저 배우가 필요했다.



사라가 자신이 잘할 수 있는게 뭔지 알고 적절한 배우가 누구인지 바로바로 캐스팅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로리는 느리게 가는 사람이다. 로리에게 모든 일들은 느리게 진행된다. 극을 구성하는 것도 그리고 주연을 캐스팅하는 것도. 로리가 한 편의 근사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도 필요했다. 천재적으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이른 나이에 전세계 동시개봉 영화를 찍어내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한 편의 영화를 겨우겨우 상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흥행이라는 것이 그 극이 성공했다는 것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든 사람에게는 흥행하지 못했더라도 딱 이정도의 영화가 후회없는, 바로 내가 생각한 그 영화일 수 있다.



나는 오스카라는 조연이 그리고 사라라는 조연이 아까웠다. 각자의 삶에서는 충분히 화려한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인데, 어느 순간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다른 사람의 삶에 조연이 된다. 사라는, 씬 스틸러가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로리의 인생, 그리고 잭의 인생에서 이들은 조연이고 씬 스틸러이다. 십년 이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로리와 잭은 처음 만난 순간 강렬함을 느꼈으나 서로를 찾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고, 그렇게 친구의 애인, 애인의 친구로 만나 어쩔 수 없이 친구가 되었고, 그리고 각자의 사랑을 해나가고, 일을 찾고, 거주지를 옮긴다. 


로리의 인생을 놓고 보면 그리고 잭의 인생을 놓고 보면, 그 십년 이란 시간은 그들에게 필요했다. 천천히 자리잡아 가는 동안 상대를 알아나가는 일이 필요했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보는 것도 필요했다. 시행착오도 필요했다. 내가 사랑하는 너라는 사람을 더 잘 알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 정착하려고 하는 일, 사랑을 느끼고자 했던 일들을 시도하는 것들은 그들의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들이 그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딱히 악의를 가지고 사랑을 한 것도 섹스를 한 것도 아니었다. 순간순간에는 그 감정에 이끌려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잘 살아보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맞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한 느낌이 내내 그들에게 있었다. 그러니 그것은 잘 될 수 없었다. 미안해, 여기까지 촬영해왔지만 너는 나의 극에 어울리지 않아. 그들은 그렇게 만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라는 말은 잘못됐다. 멈춘 순간, 여기까지 걸어왔던 내가 있으니까.



사라는 잭을 주연으로 삼았다가 잭이 주연이 아님을 알고 다른 배우를 캐스팅한다. 이번에야말로 자기 인생에 맞춤한 배우를 캐스팅했다. 게다가 무대도 옮겼다. 그랬더니 그전보다 훨씬 극이 나온다. 잘된 일이다. 그래서 사라는 로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아름다운 곳으로 옮겨서 너도 살면 어떻겠니, 매일 바다를 보는 삶 좋지 않니, 게다가 내가 너의 이웃이 되잖니. 휴가를 맞이해 사라가 있는 호주에 와서 매일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사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나 로리는 여기가 자기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긴 너의 장소이지, 내 것은 아니야. 그러자 사라가 말한다.


'Where's yours?' she says, 'Because I'll tell you what I think. Your place isn't somewhere. It's someone. I'm here because it's where Luke is. You'd have gone to Brussels if Oscar was your place.' -p.401



너의 세상은 어딘데? 내가 생각하는 걸 말해줄게. 너의 장소는 어딘가가 아니야, 누군가야. 내가 여기에 온건 여기가 루크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야. 만약 오스카가 너의 장소였다면 너는 브뤼셀에 갔을거야. 

그렇다. 사라는 호주에 왔다. 영국에 살다가 호주로 왔다. 루크가 호주로 와 살지 않겠냐고 했고, 사라는 여기냐 루크냐 선택하라 하면 루크를 선택하겠다고 이 먼 다른 나라로 와 살고 있다. 

오스카도 로리에게 브뤼셀에 가 살자고 말했다. 승진을 했고 이것은 본인의 커리어에 좋은 일이고 그러나 브뤼셀 풀타임 잡이니, 우리 브뤼셀에 가 살지 않을래? 그러나 사라는 거절했다. 아니 갈 수 없어. 나는 엄마가 사는 이 나라에 있고 싶고, 여기에 내 직업이 있어. 오스카가 자신의 벌이로도 먹고 살기 충분하니 너는 일을 안해도 되지 않냐고 한 것도 로리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사라에게도 엄마가 사는 나라가 있고, 사라에게도 그곳에서의 직업이 있었다는 것을. 사라가 가진 게 없어서 호주로 간 게 아니라 호주에 더 갖고 싶은게 있어서 갔다. 로리는 브뤼셀에 있는게 더 탐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머무르는 쪽을 택했다.



나는 사랑을 움직임이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랑한다면 움직인다. 조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처럼, 친구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처럼, 거기에 네가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사랑의 큰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랑한다면 반드시 움직이는 것일까? 당신이 나의 장소이므로 나는 그곳으로 가는것, 그래야만 당신이 내 장소로 인정받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참일까? 아주 큰 확률로 여기보다 당신이 좋다면 움직이는 거야 사실이겠지만, 그러나 여기에서 거기로 움직이는 데에는 그 커다란 마음 외에도 다른 것들이 더 필요한 건 아닐까. 이를테면 그 시간, 그 당시의 자신에게 있는 상황과 환경 같은 것. 어떤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내 발을 묶어놓는 게 아닌가. 만약 브뤼셀로 오라는 사람이 오스카가 아니라 잭이었다면, 그랬다면 로리가 그 때 바로 오케바리 하고 움직였을까? 나는 그 때의 로리에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로리에게는 결단을 내릴 용기와,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이 모든 것들이 모두 함께 만나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나는 당신에게로 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어제 친구와 저 문장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머무르는 장소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우리가 머무르는 정착지가 될까. 종착역이 될까. 친구는 자신이 읽는 로맨스 소설에서도 연인이 끌어안으면서 You're my home  이라 말하면서 끝이 난다고 했다.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든 퇴근후 돌아갈 공간이 필요해 집을 마련하고 싶은 것처럼, 정서적으로도 고단함을 쉬기 위해 그리고 더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당신이란 집을 찾게 되는걸까? 


나 역시 당신은 나의 집인것 같아, 라고 생각한 적이 있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집이라면 그러니 평생 살면 좋았을텐데, 집이라고 느끼면서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집이었는데. 그런데 헤어졌다. 왜냐하면, 내게는,


어마어마한 사이즈의 역마살이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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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03-01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을 때 로리에 집중해서 읽었는데요, 정확히는 로리와 오스카요. 근데 오늘 다락방님 글 읽는데 사라가 다르게 읽히고 보이고 그러네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람‘ 안에서 찾는다는 것,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서도요.
오스카가 로리에게 브뤼셀로 떠나가고 했을 때, 전 엄마 핑계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직장 문제는 좀 그랬거든요. 니 직장을 옮기면 어떠겠니, 오스카? 이렇게 속으로 물어보기도 했구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떠날 수 있는데 왜 로리가 떠나야하니, 뭐 그런 생각에 좀 복잡했어요.
참고로 제가 읽은 책에서는 남주가 떠나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홈에 오는 거죠. 홈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3-01 15:35   좋아요 2 | URL
사라는 매사가 분명한 사람인 것 같았어요. 저는 그런 지점이 좋아요. 로리에게 서운했으면서도 나중엔 그걸 풀고 잭과 로리를 이어주려고 하잖아요. 사실 나랑 연인으로 지냈던 남자가 내 친구의 연인이 되는 것.. 을 저라면 받아들이기 힘들것 같은데(라고 쓰고보니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요. 어떤 남자들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의 길을 자기가 닦아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루크를 만난 것도 루크를 따라 호주로 간것도 그리고 호주에서도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것도, 저는 사라가 좋습니다, 단발머리 님. 후훗.

저는 오스카가 로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딱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오스카는 자신이 하는 일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나은 직업이라는 생각을 좀 가진 것 같아요. 로리가 일을 하고 로리가 로리의 일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응 축하해 잘했어 라고는 하지만 그 일을 자신의 일만큼 여기지는 않는달까요. 저는 엄마 때문에 떠나지 못하겠다는 것도 이해했어요. 저도 사실 떠나야 한다면 제일 걸리는 게 늙으신 엄마거든요. 으.. 이 구속감 어쩔까요 ㅠㅠ

전 그냥.. 각자 자신이 사는 곳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멀리 산다면, 굳이 합쳐야 하나요. 걍 가끔 만나고 살면 되지.. 이래서 저는 그냥 이모양인가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3-01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아니 “당신은 나의 집인 것 같아” 이렇게 로맨틱한 말을 한 다음에 “근데 난 하루에 여섯 끼 먹는 역마살 있는 여자야. 안녕~”하는 모습 떠올라 아침부터 빵 터지고 갑니다.

근데 오늘 이분 출근하셨나. 휴일에 글 두 개라니 무슨 일이야!

다락방 2022-03-01 15:37   좋아요 3 | URL
아오 어제 술을 안마시고 잤더니 오늘 평소 패턴대로 눈이 떠져가지고... 안돼 나는 늦잠을 잘것이다, 자라, 자라! 했는데 배가 넘나 고파서 여섯시반에 걍 밥을 먹어 버렸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밥을 먹고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리뷰를 써버린거죠. 치아바타도 굽고, 브라우니도 굽고. 그렇지만 브라우니 망치고! ㅋㅋㅋㅋㅋ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하루에 여섯 끼 먹는 역마살 있는 여자는... 사랑하기 힘든 여자인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3-01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저도 떠올려보니 옛날 애인에게 당신이 나의 집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당신이 내 집이면 좋겠다는 바람이었구요, 하지만 그는 제 집이 되어주지 못하겠다싶은 순간들이 왔고 그러면서 아 이건 아닌가 갈등할 때 내가 당신의 집이 되어주겠다 하는 남자가 갑자기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갈등하는 남자를 뒤로 하고 제 집이 되어주겠다는 사람을 택했어요. 여건과 상황이 사랑과 맞물려야 집을_ 집과 같은 존재를 만날 수 있는건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오스카가 로리에게 브뤼셀로 함께 가자 할때 엄마와 직장일 이야기할때 충분히 납득이 된다 여겼는데 만일 오스카 말고 잭이 브뤼셀 아니 대한민국에서 살아야해 해외 파견이야 했다면 당근 따라갔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엄마 곁에 있고싶다는 로리 마음은 진심이었을 거 같아요. 아빠를 갑자기 잃고 엄마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단 마음 아니었을까요. 아빠를 잃고난 후에 엄마마저 곧 잃을까봐 너무 두렵고 공포스러웠던 순간들이 있어서 그런지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돌고돌아 결국 만나 함께 한 그들이 내내 행복하기를.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되어주고 서로의 비행기, 기차, 자동차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함께 하는 이들도 홀로 존재하는 이들도 모두 만족스러운 나날들이요. 저는 락방님 역마살 이야기는 좀 슬프면서도 대단하게 다가와요. 제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더 멋져보이구요. 태그 좀 슬프다.

다락방 2022-03-01 15:41   좋아요 1 | URL
저는 상대를 저의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그 순간 누군가의 집이 되길 원하지 않았던걸까, 생각합니다. 집으로까지 생각했는데 헤어졌다면 거기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당신이 나의 집이 되고 내가 당신의 집이 되어주는 게 같은 순간 찾아들어야 하는데 타이밍이 어긋나도 그들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그런점에서 보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 함께 다정하게 오래 지낸다는 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임에 틀림없어요.

저도 엄마와 직장 모두 납득이 됐어요. 엄마는, 저한테는 뭐랄까요, 로리가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저는 그냥 엄마를 내내 품고 가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대한민국 장녀라서 그런걸 수도 있고 어쩌면 제 팔자일 수도 있고 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여길 떠나게 된다면, 엄마 살아생전에는 안될것 같아요. 짧은 여행후에 다시 돌아오는 건 엄마가 있어서라는 생각도 해요.

저는 제 역마살을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 때문에 슬프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아 임 오케이 입니다. 후훗.오늘 그 뭣이냐, 채널 돌리다가, 그 옷소매... 그거 잠깐 봤는데 16회차 인가 .. 아무튼 키스 무진장 하더라고요.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우리 타미 사극 좋아하는데 이거 보면 안되겠다‘ 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꼰대입니다) , 어휴, 무슨 저렇게 키스를 많이 한담? .. 좋냐? 였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맥주나 한 잔 해야겠어요. 껄껄.

새파랑 2022-03-01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Yore‘re my home 표현 멋지네요 ㅋ 이작가님의 결말은 더 마음에 와닿네요 어마어마한 역마살이라니 ㅋ 역시 멋진 이작가님 답습니다. 아 이번달에는 이책 꼭 읽어야 겠습니다 ^^

다락방 2022-03-01 15:43   좋아요 3 | URL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진 뒤 바로 결혼에 골인하는 커플들도 있지만 처음 만나 반했어도 숱한 시행착오를 겪고 십년이 걸려서야 서로 만나게 되는 커플도 있는 것 같아요. 왜,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엔 또 거기의 이유가 있겠지요.
새파랑 님이 이 책을 읽으시면 어떤 감상을 적어주실지 궁금합니다.

다락방 2022-03-01 15: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원서의 리뷰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니. 졸 멋지네..

수이 2022-03-01 16:01   좋아요 2 | URL
제 친구입니다 그 멋진 사람
 
더 사이트 오브 유
홀리 밀러 지음, 이성옥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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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은 예지몽을 꾸는 남자다. 가끔 잠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꿈을 꾸는데 그건 그 사람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암시한다.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조엘은 이미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꿈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 꿈이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기쁜 일이라면 괜찮지만 비극적인 일이라면 너무 괴롭다. 조엘이 나서서 뭔가를 바꿔놓을 수 있는 것들, 그러니까 개입함으로써 달라지게 만들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조엘이 전혀 끼어들 수 없는 미래의 일들을 꿈에서 볼 때면 너무 괴롭다. 그래서 조엘은 잠을 자지 않으려 한다.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으니까. 당연히 그의 이런 생활패턴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던 수의사란 직업도 그만둔다.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어쩌다 꿈을 꾸다 깨면 노트에 메모를 하고 동네 노인들의 개를 대신 산책시키고 가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지낸다. 자신의 예지몽에 대해 말해봤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해 외롭고 괴롭다. 


그런 그가 카페에서 일하는 캘리를 만나게 된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분위기에 캘리는 매력을 느낀다. 본인이 하고 싶은 생태 관련 일을 저리 제쳐두고 죽은 친구를 대신해 카페 일을 하던 캘리는 조엘을 만나 반하게 되고 친해지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연인이 되면서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직업도 갖게 된다. 캘리는 조엘을 너무 사랑하고 조엘도 캘리를 너무 사랑한다. 조엘은 자신이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꿈을 꿀것이 두려워 사랑하지 않으면서 살려고 했지만, 캘리를 사랑하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연인이 되고 뜨거운 사랑을 하고 조엘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캘리에게 얘기한다. 캘리는 조엘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그와 함께 그 문제를 극복하고 싶어하며 그런 가운데 그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조엘은 캘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캘리에 대한 꿈을 꾸게 된다. 캘리가 언제 죽을지를 알게 되고 캘리가 원하는 행복한 삶이 그 전에 찾아올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조엘은 캘리에게 이별을 말한다. 네 인생의 정점은 아직 오지 않았어, 그걸 찾아 떠나. 그렇게 그들은 이별을 한다.



로맨틱한 감정이 오랜만에 너무 찾아들어서 이 기분 계속 이어나가야지 싶어 연애소설을 읽고자 했다. 책장 앞에 서서 언제 사두었는지 모를 이 책을 꺼내 들었고, 여기에선 어떤 사랑이야기가 펼쳐질까 설레어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로맨스 소설이 재미있으려면 내가 그 소설속 주인공이 되어 사랑을 해야 한다. 내가 그 사랑을 하려면, 그 사람 이야기에 흠뻑 빠지려면, 당연히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책 속 남자주인공과 사랑에 빠져야 이 로맨스가 나의 것이 되고 재미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조엘은 내가 전혀 사랑할 수 없는 남자였다. 이렇게나 매력 없는 주인공이라니, 너무 매력이 없고 짜증이 나서 중간에 그만 읽을까를 숱하게 갈등해야 했다. 


그런 한편 짚신도 제 짝이 있다더니 그 말이 얼마나 다행한 말인가를 실감했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랑 같은 지점으로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다면 조엘은 평생 사랑 한 번 못해볼거 아닌가. 그런데 신은 다행스럽게도 조엘을 사랑하는 여자도 만들어주었다. 얼마나 공평한가. 나는 조엘을 안사랑하지만 캘리는 조엘을 사랑한다. 그래, 그래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조엘, 세상에 감사해라. 땡스 갓!


아니 그러니까 캘리가 조엘을 처음 만나게 된건, 조엘의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조엘이 자신의 문제점으로 직업도 없는 상태로 지내면서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였단 말이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사랑에 빠진건지 나는 이해를 못하겠다. 게다가 조엘은 사랑에 빠지면 안된다고 스스로 결심한 사람이라 섹스파트너가 있는 거다. 그런데 캘리는 조엘과 연인이 되기 전 조엘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그에게 섹스파트너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 섹스 파트너와 대화를 한 적도 있다. 도대체 섹스파트너는 있고 직업은 없으며 늘 피곤한 상태의 남자를 왜 사랑하는걸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머리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조엘은 정말로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니 섹스파트너 있는 거 뻔히 알고 내가 그 여자를 봤는데, 그러면서 그 남자랑 연인이 된다는 것이... 나로서는 증맬루 이해가 안되는 것이여... 그러나,


나는 캘리가 아니고 캘리는 내가 아니니, 캘리가 조엘을 사랑한다는데 뭘 어쩌겠는가.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고 남도 사랑하지 말라는 법이 없응께롱 캘리가 조엘을 사랑한다고 해도 내가 뭘 어쩔 수가 없다. 원래 사랑이란 것이 그렇지 않나. D는 B를 사랑하고 B도 D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A는 F를 사랑하는데 F는 한걸음 뒤에서 Z를 바라보고, Z는 C에게 연정을 품고 C는 J를 사랑하는데 J는 T랑 결혼하고...


나를 사랑한다고 한 번도 말해주지 않지만 그러나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다는 캘리를 보면 진짜루 대단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조엘이 캘리에게 '당신은 내 전부예요' 이러는데 가슴이 답답해서 터져버릴 뻔 했다.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연약한 상태에서 섹스파트너 있는 남자가 나한테 '너는 내 전부야' 이러면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갈 것 같아.. 뭐,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이 소설을 더 읽어 말어 던져버려 말어 생각하다가 읽었는데, 그나마 별을 셋 줄 수 있었던 것은 저 뒤의 이야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엘과 캘리가 헤어진 후, 그 다음의 이야기. 그 둘은 사랑하는 상태로 헤어졌기 때문에 서로를 잊지 못한다. 가슴 속 성소에 서로를 묻어두었다. 이별을 하고 아파하지만 차츰 상대를 기억 저편으로 밀어넣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 과정에서 캘리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니 세상에.. 여행지에서 만난겁니다. 로리와 오스카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러나 캘리가 여행지에서 만난 핀은 생태학자로서 캘리와 대화가 잘 되고 캘리를 사랑해주고 몸 튼튼 마음 튼튼 건강한 사람이고 캘리를 뜨겁게 사랑하고 좋은 아파트도 갖고 있고 그래서 캘리가 걱정하지 않고 살게 해준다. 이런 이야기가,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 속에 품고 있지만 내 삶을 계속해서 살아내고 그 속에서 행복도 찾고 다른 사람도 찾아 다른 모양의 사랑을 하는 이야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까지. 조엘과 헤어진 후의 이야기들이 좋아서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은 매력없는 남주가 나오는 똥같은 소설이었을텐데, 끝까지 읽으면 이 책은 그래도 나름 괜찮은 책이 된다. 


내가 기대한 로맨스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역시 로맨스는 저마다의 것이며 그리고 삶은 여전히 게속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랑하고 또 이별하고 또 사랑하면서 기쁘다가 슬프다가 다시 기쁘다가 행복하다가 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가슴에 깊이 남고 누군가는 오래 함께 하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우리가 미처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생이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 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캘리와 핀은 호주 퍼스로 신혼여행 가는데 아니 퍼스에 무슨 일 있냐? 사라는 영국에서 일하면서 잘 살고 있다가 루크가 호주로 가 살자고 해서 퍼스로 가 사는데 캘리는 핀과 퍼스로 신혼여행 가고.. 퍼스 무슨 일이야. 사람들 왜 퍼스로 가. 퍼스 왜그러는데. 자꾸 소설에서 퍼스 나와서 괴롭다. 퍼스로 가지마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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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27 17: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러니까 남주가 일도 안 하고 잠도 못자서 극도로 피곤한데 섹스할 힘은 넘치는 놈이군요? 신기한 놈이지만 비호감 맞네요. ㅋㅋㅋ

다락방 2022-02-27 20:05   좋아요 1 | URL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는 놓지 못하겠는가봐요. 으 진짜 비호감이에요. 싫어요. ㅋㅋㅋ

독서괭 2022-02-28 22:49   좋아요 1 | URL
진짜 그러네요. 자냥님 요점정리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2-27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퍼스가 엄청 좋은 곳인가 봐요??
조엘은 캘리랑 헤어지길 잘한 것 같은데요?ㅋㅋㅋ

다락방 2022-02-27 20:06   좋아요 2 | URL
퍼스는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저도 가보진 못했지만..
헤어지고 나서 상대를 가슴에 품고서도 더 행복해질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삶은 그렇게까지 행복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새파랑 2022-02-27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로멘스 소설의 대가 다락방님~!! 세상에도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많은데, 책 속에도 이해가 안되는 사람이 많나 봅니다~!! 전 다락방님이 추천해주신 별 네개 로멘스 소설은 꼭 읽어보겠습니다 ㅋ

다락방 2022-02-28 09:29   좋아요 1 | URL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그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면 재미는 건너가버리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영화로 나오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훗.

그레이스 2022-02-28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잠사‘인가 했어요. ^^
로맨스는 저마다의 것이고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레이스 2022-03-08 18:46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mini74 2022-03-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곳 ㅎㅎ 락방님 당선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3-08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멘스 황제 다락방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2-03-09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당선작 축하드려요~^^

thkang1001 2022-03-09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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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 러버] 에서 애쉬튼 커쳐는 나이 많은 부유한 여성과 연인이 된다.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살면서 그 나이 많은 여성의 집에서 살고 그 여성이 주는 돈을 쓰면서 그녀의 젊은 애인이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이 젊은 남자는 이 나이든 여자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그의 사랑을 잃게 된 것 같은 절망감에 나이든 여성은 산부인과에 가서 수술을 하고 온다. 섹스에 만족을 못느껴서 그러는건가 싶어 자신의 성기를 수술한 것이다. 수술을 하고 얼마간 그녀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이에 애쉬튼 커쳐는 당황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나를 위해 성기 수술까지 감행했으니 평생 그녀에게 사랑을 맹세하겠어'라고 하지 않는다. 그 수술은 그에게도 부담이었고 그리고 어쨌든 그는 그녀를 떠난다. 그가 그의 사랑, 그에게 맞춤한 짝을 찾기 까지 이 나이든 여성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1인이었을 뿐이니까. 상대에게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채로 이렇게 하면 나를 떠나지 않으려나 싶어 성기수술까지 감행하는 여자가 그 영화 안에 있었다. 2009년의 영화이니 내 기억들의 많은 부분은 정확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녀가 수술을 하고 왔던 것, 그러나 그는 떠났던 것에 대해서만큼은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남자를 붙잡기 위해 수술까지 해야해? 라고 영화를 보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시술이나 수술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것은 누가 간단하다고 시간이 조금 걸린다 하더라도 닥치면 두렵고 회복할 때도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 일을 한다. 이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혹은 이 남자를 붙잡기 위해서 혹은 더 많은 남자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왜 여자들은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꾸미고 굶고 제 몸에 칼까지 대야 하는걸까? 여자의 가치라는 것은 남자에게 사랑받지 않으면 무너지는걸까?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 에서 주인공 에이미는 자신의 동생과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는 누워서도 가슴이 봉긋했지, 정말 예뻤어, 라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나는 누우면 가슴이 축 늘어지는데. 나는 이 장면을 아주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누우면 가슴이 축 늘어지는 것이 실제 여자의 육체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 내 가슴이 생긴 모양이라든가 누웟을 때의 형태 같은 것들에 대해 어휴 이건 왜이렇게 못났어를 생각했었는데, 내가 왜 내 가슴을 못났다고 생각해야 했을까? 그건 상대적으로 예쁜 가슴이 어떤건지 알고 잇었기 때문이다. 그 예쁜 가슴을 나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나의 가슴도 우리 엄마의 가슴도 그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가슴이라는게 어떤 것인지를 어떻게 알았을까?



일전에 오프라 윈프리 쇼에 가슴 성형수술을 한 여성이 나왔었다. 유방 수술을 한 이후로 원인 모를 우울함에 시달려 너무나 괴로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병원을 다녀보다가 유방에 넣은 보형물을 빼보자는 이야기가 나왓다고. 그렇게 보형물을 뺐더니 다시 건강해졌다는 이야기였다. 내 유방에 이물질을 넣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일을, 그녀는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그건 많은 여성들이 그렇지 않을까.



나오미 울프는 이 책,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에서 아름다움의 신화에 대해 말해준다. 사실 나는 아름다움은 중요한 게 아니고 아름다움은 절대 가치가 아니다, 라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그보다는 '우리는 그냥 각자의 본성대로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냥 이대로도 충분하고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굳이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게 우리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자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나오미 울프가 부드럽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여자들이 굶주리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직업적인 아름다움 요건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유방 수술이나 성기 수술에 대해 말할 때, 그녀의 어조는 시종일관 강하고 세다. 정신 똑바로 차려 여자들아, 아름다움의 신화에 넘어가지마, 속지마, 그러면 여자들이 나아갈 세상이라는 것은 좁아질 뿐이야. 거식증에 걸린 여성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볼까.



그녀는 정치적으로 깔끔하고 완벽하게 거세되어 학교 공부나 할 정도의 에너지밖에 없어 계속 영원히 실내에서만 빙빙 돈다. 그녀에게는 화를 내거나 조직에 참여하거나 섹스를 좇거나 확성기로 외치거나 야간버스나 여성학 프로그램을 위해 돈을 달라거나 여성 교수는 모두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할 에너지가 없다. 

(중략)

마른 것이 아름다운 것은 마른 것이 몸이 아니라 정신에 하는 것 때문이다. 상을 받을 만한 것은 여성이 마른 것이 아니라 굶주리는 것이고, 마른 것은 그것의 증상일 뿐이다. 굶주리면 흥미롭게도 "해방된" 정신의 폭이 좁아진다. -p.319



위의 구절을 읽어보면 어떤가. 힘을 내고 싶지 않은가.


유방에 대해 하는 말도 들어보자.



여성의 얼굴과 몸매의 이미지를 편집하는 암묵적 검열이 똑같이 여성의 유방 이미지도 편집하여, 여성의 유방이 실제로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게 한다. 문화가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함으로 유방을 가려, 물렁하거나 비대칭이거나 원숙하거나 임신으로 변화를 겪은 유방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는 법이 없다. 문화에서는 진짜 유방이 여성만큼이나 모양이 다양하고 변형도 많다는 것을 거의 알 수 없다. 여성도 대부분 다른 여성의 유방을 보거나 만지는 일이 드물어 유방을 만지면 어떤 느낌인지, 유방이 몸과 함께 어떻게 움직이고 달라지는지, 사랑을 나눌 때는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연령의 여성이(유방의 감촉이 실제로는 얼마나 다양한지를 생각하면 슬픈 일이지만)"오뚝하고", "탱탱한" 것에 집착한다. -p.391


물론 성숙한 여성 가운데 유방이 큰 사람도 많지만, 그들의 유방은 "오뚝하고", "탱탱하지" 않다. -p.393

여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동안 어떤 압박을 받고 어떤 폭력에 노출되었으며 어떤 식으로 제한된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 드러내는 책을 읽노라면, 어쩔 수 없이 포르노가 튀어나오고 어쩔수 없이 페미사이드로 연결된다. 여성과 같이 일을 해도 벗은 여성의 달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벽에 걸어놓고 일하는 남성들의 사례는, 함께 일하는 여성이 한 명의 인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늙은 남자 앵커는 중후하고 실력으로 보여주지만, 그런데 왜 그 남자 옆에는 항상 젊은 여성들이 바뀌어가며 자리할까. 젊고 아름다운 것만이 가치있고, 그것이야말로 여성이 가진 진정한 능력이라고 말하는 이 세상 때문에 여자들은 병들고 죽어간다. 일정 부분 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나오미 울프는, 아니 그러지 말자고 한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지방을 더 많이 갖고 태어나고 그것이 여성 신체의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얘기한다. 유방을 수술하는 것은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일인지도 나오미 울프는 묻는다. 그것이 이런 가슴을 가진 나에 대한 만족일까?



성형외과 의사는 자기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여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여성의 몸에 공인된 판타지를 수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역할에 어떤 환상도 없는 것 같다. 한 성형 잡지에 실린 광고에서는 털 많은 남자의 손이 아교질의 보형물을 움켜쥐어 손가락 사이로 젤(우연히도 네이팜 제조회사에서 만든)이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광고 문구는 이 제품이 인공적인 느낌이 들지 않고 "진짜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주장한다. 움켜쥔 손에. -p.394



움켜쥔 손에.

움켜쥔 손에.

나는 저 문장의 '움켜쥔 손에' 에서 뒷머리가 쭈삣 서는 것 같았다. 움켜쥔 손에. 여자들은 왜 시간을 들여 좀 더 일찍 일어나 속눈썹을 올리고 볼터치를 하고 드라이를 할까. 왜 여자들은 먹을 음식이 앞에 있어도 부러 굶을까. 왜 여자들은 자기 유방에 이물질을 넣을까. 왜 여자들은 성기에 칼을 댈까. 왜, 왜. 우리는 그것을 과연 우리 자신을 위한 만족이라고 말할 수 잇을까? 그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그것이 예쁜 얼굴이라고, 치장하고 사람들을 보는게 예의라고, 이런 가슴이 예쁜 가슴이라고, 이런 몸이 사랑받는 몸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를. 그리고 그 모든 것듣을 무시하고 살아간다면 과연 누가 편한지를, 그리고 누가 싫어할지를. 우리는 정작 우리 자신이 싫어할 것도 아니면서 우리 자신이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세뇌당해 스스로의 몸을 가혹하게 대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것은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누가 말하지? 이것은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 어떤 맥락에서 그럴까? 누가 면전에서 여성의 외모를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면 이렇게 자문해볼 수 있다. 이게 이 사람이 상관할 일일까? 그런 권력관계는 평등할까? -p.442


나는 여자들이 화장하지 않고 다이어트 하지 않고 성형수술하지 않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여자들이 화장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곳은 어디일까? 여자들이 성형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싫어할까?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사라질 것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여자들이 아름다움의 신화에서 벗어났을 때 사라질 기업들이라면, 그 기업들은 처음부터 무엇을 기대했을까? 


단언하건대, 여자들이 아름다움의 신화에서 벗어나 뚜벅뚜벅 자유로운 세상으로 걸어나올 때, 화장하지 않고 예쁘게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고 다이어트 하지 않고 성형수슬 하지 않을 때, 그것을 싫어할 사람이 나는 아니다. 



뻔뻔해지자. 탐욕스러워지자. 쾌락을 추구하자. 고통을 피하자. 마음대로 입고 만지고 먹고 마시자. 다른 여성의 선택을 받아들이자. 우리가 원하는 섹스를 찾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섹스와 맹렬히 싸우자. 자신의 이상과 대의를 선택하자. 규칙을 깨부수고 바꾸어 우리가 아름답다는 느낌이 확고해지면, 그러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꾸미고 과시하고 한껏 즐기자. 감각의 정치학에서는 여성이 아름답다.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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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27 18: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니, 누워서 봉긋한 가슴이 어디 있어요. 판타지에나 있지. ㅋㅋㅋㅋㅋ 저 이번 수술 전에 CT 찍는데 조영제 넣을 주사바늘 꽂아주던 간호사가 유방 수술한 적 있냐고 묻더라고요. 이게 CT랑 무슨 상관일까 싶었지만 관련 있으니까 묻나 보다 하고 맘모톰은 한 적 있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건 취급 안 한다는 얼굴로 대꾸도 없더라고요. CT 촬영 기다리며 앉아 있다가 그때서야 아, 유방 보형물 수술한 적 있는지 물어본 거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 요즘엔 정말 많이들 하나 보다 했더랍니다. 몇 년 전만 해도 MRI나 CT 찍을 때 그런 거 안 물어봤거든요.

아님 내 가슴이 너무 예뻐 보였나?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7 20:09   좋아요 4 | URL
아니 잠자냥 님 가슴 천재인거 아니에요? 보형물 넣은걸로 의심될만큼? ㅋㅋㅋㅋ
저는 유방암 검사할 때 검사해주는 쌤이 이쪽 가슴이 훨씬 크네요.. 라고 말씀해주셔서(개인정보 이므로 어느쪽인지는 비밀!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저도 알아요 ㅋㅋㅋㅋㅋ그것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짜증나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 릴렉스.

아무튼 중력에 매우 충실한 가슴입니다. 제 가슴은. 킁.

잠자냥 2022-02-27 20:10   좋아요 3 | URL
그렇습니다. 저는 글쓰기 천재 가슴 천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다부장 따라하기 못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7 20:11   좋아요 3 | URL
아 이분 글쓰기 천재에 가슴 천재인데 잘난척이 너무 미흡하네요. 흠.. 많이 배우셔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2-27 20:39   좋아요 2 | URL
아...이래서 잠자냥님은 저의 우상,
모든 형이세요!!!ㅋㅋㅋ
부럽네요^^
저는 검사할 때 그 기계이름 뭐죠? 암튼 기계에서 자꾸 빠지니까 가슴이 작아서 자꾸 빠진다고 움직이지 말라고...난 아파서 꼼짝않고 서 있었는데....ㅜㅜ

mini74 2022-02-27 18: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코르셋 대신 현대엔 칼을 대고 무언가를 피부안에 넣고 ㅠㅠ 그 많은 부작용도 그렇지만 엄청난 부가가치 산업이라 오히려 부추기죠 ㅠ

다락방 2022-02-27 20:09   좋아요 4 | URL
네 미니님 저도 그 생각했어요. 여성들이 화장을 안하고 성형수술을 안하고 다이어트를 안한다면 죽어나갈 기업들이 많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절대로 그걸 두고볼 리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ㅠㅠ

미미 2022-02-27 19: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최근 우리나라 십대 여성들의 거식증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나오미 울프만큼 깊이있게 원인을 파고든 전문가는 아직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들어요. 제가 찾아본 바로는 현상에 안타까워하는정도, 피상적인 요인에서 머무는 한계를 느낍니다. 나오미 울프의 책이 앞으로도 얼마간 현실을 반영할것 같아요. 많이들 읽고 더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어요! 다락방님 덕분에 또한번의 통찰을 할 수 있었어요. 다음달도 설렙니다🤭

다락방 2022-02-27 20:11   좋아요 4 | URL
맞아요 미미님. 저도 일전에 기사에서 읽었는데요 최근 바디프로필 찍는다고 급속하게 살을 빼는 것도 문제가 되고요 그리고 뼈만 보이게 마르는 것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몸무게를 막 40키로도 안되게 빼더라고요. 그런 몸으로 어떻게 힘차게 살아갑니까. 몸도 축나고 생활 에너지도 없는데. 제발 자신의 몸을 해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다음달 책의 재미를 제가 보장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2-27 2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통찰!!
다락방님의 리뷰엔 본인만의 오랫동안 해온 고민과 통찰이 느껴집니다.
여성이 노력하는 모습들이 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했는데, 어쩌면 남들의 시선과 그리고 사회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어쩔 수 없이 이용당한 듯한 노력이었다니...그것이 뭐랄까? 좀 충격이었고, 다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었어요. 계속 더 배워나가야 겠구나! 많이 깨닫게 되네요. 읽으면 읽을 수록 더 느껴요.
완독하시느라 수고 하셨어요^^

다락방 2022-02-27 20:13   좋아요 6 | URL
네 저는 나오미 울프의 어조가 제 생각보다 강해서 놀랐고 그래서 좋았어요. 그리고 아주 많은 여성들이 특히나 젊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기성세대도 읽고 우리가 힘을 합해 아름다움의 신화를 부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사회가 여성을 압박하고 이용해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모르고 계속 당하는 것보다는 아는게 나은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가야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2-27 20:34   좋아요 2 | URL
저는 내가 읽은 책 백자평이나 리뷰를 쓸 때, 구매자 분포도를 한 번씩 확인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이 책은 20 대 여성들의 구매 분포도가 월등하게 높아 흐뭇했어요.
물론 완독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ㅋㅋㅋ

단발머리 2022-02-28 09: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모두 그렇지만 말이에요. 이 페이퍼는 댓글을 통해 완성되네요. 댓글들이 왜케 퀄리티가 높은지, 시의적절한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다락방 2022-02-28 09:30   좋아요 2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들 너무 멋져버리고 천재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흑흑 ㅜㅜ
 
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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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처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페미니즘을 주제로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간 어디에서 무슨 강연이 열리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고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가, 아 사람들은 끊임없이 관심가는 주제에 대해 강연을 들으러 다녔구나 처음 실감했다. 그렇게 이름있는 여성학 저자들의 강연을 들으러 다니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 되었다. 내가 혼자 책을 읽어서 알게 되는 것, 깨닫게 되는 것과 강연을 듣는 것은 달랐다.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훨씬 큰 효과를 가져왔다. 내가 혼자 책을 읽는 것보다 더 넓고 더 깊은 세계로 나를 더 빠르게 데리고 갔다. 나보다 오래 공부를 해오고 또 나보다 깊이 공부를 해온 분들이 앞에서 설명을 해주면, 그걸 들으면서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아 사고의 확장이란 이런 것이구나 짜릿한 기쁨이 찾아왔다. 수업을 듣고 나올 때면 흥분이 온몸을 감쌌다. 이런 기쁨, 이런 순수한 앎에 대한 기쁨이 정말 행복했다. 수업을 듣기 전의 나와 수업을 들은 후의 나는 달랐다. 그렇게 강연을 들으면서 만나게 된 친구들도 있었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나는 정말이지 열심히도 들으러 다녔다. 여섯시간의 내리 강연을 듣기 위해 토요일 하루를 몽땅 쓰기도 했고, 어떤 날은 강연을 듣기 위해 케이티엑스를 타고 창원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두어달은 회사가 끝나면 퇴근길 만원 지하철을 타고 대학로에 가 작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더 앞으로 나아가면서 많은 여성학 저자들을 만났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한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로 열심히 들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목말랐다. 혼자 책 읽는 것보다 이런 강연을 듣는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렇다면 이런 교양에 그치는게 아니라 전공으로 수업을 듣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얼마만큼의 가르침을 받고 얼마만큼의 사고가 열린 사람이 될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해보게 되었다. 대학원 등록금은 얼마나 하지? 대학원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책을 읽어보면서 이렇게는 못하겠다 쉽게 포기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유독 좋아한 선생님이 있다. 그 분의 책으로 여성학을 처음 접하고 그리고 그분의 강연이라면 무조건 들으면서, 역시 여성학 강연은 뭐니뭐니해도 이 분이 최고다! 하고 동경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내가 읽는 책이 더 많아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페미사이드를 내 눈으로 목격하고, 현실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선생님과 어느 순간 결이 달라져버린걸 깨달았다. 좋아하고 동경해서 마구 좇아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아 이제는 갈라서야 할 것 같아요, 하고 나는 다른 길로 가버렸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거다. 그렇다고 그 분을 좋아하는 마음을 접었다거나 그 분이 대단하지 않게 느껴졌다거나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다른 많은 여성들이(그리고 남성들도)그분의 강연을 듣고 사고가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기회가 꼭 한번 이상씩은 찾아오길 바란다. 앞으로도 그 분의 책이라면 닥치고 읽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는 나랑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세대차이일 수도 있고 살아온 환경의 탓일수도 있고 성격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온전히 같아질 수 없으니까. 같아지길 바라지도 않으니까. 선생님은 선생님의 자리에서 그리고 나는 나의 자리에서 각자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국은 가르침과 배움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어는 수줍은 학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해 성추행을 당하고 이 일의 부당함에 대해 알리고자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바로 그 때 대학에 너무나 유명한 페미니스트 페이스 프랭크가 강의를 온다. 강의를 들으면서 흥분하고 또 질문과 답을 들으면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리어는 이제 페이스 프랭크를 존경하게 되고 그분처럼 다른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 분이 만드는 잡지, 그분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함께 일하게 되면서 드디어 꿈이 이루어진 그리어는 열심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채식주의자지만 페이스 프랭크에게는 입도 뻥긋 않고 페이스 프랭크가 구워주는 스테이크를 억지로 씹고 삼키려고 한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줄로 믿었다. 


코리는 그리어의 학창시절 부터 이어진 남자친구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부유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던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불행한 일이 닥쳐온다. 코리는 자신이 하던 일을 접고 이제 살아가는 의미와 의욕을 잃은 엄마 곁에 돌아와 엄마를 돌보고 집안일을 챙긴다. 엄마가 자리에 눕기 전에 해왔던 이웃집 청소일도 제가 한다. 그동안 한 번도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해본 적이 없다가 이십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 이런 일들을 내가 전혀 모르는 채로 살았구나, 하면서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늘 엄마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연애도 삐끗한다.



그리어의 친구 '지'는 어릴 때부터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언제나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여러가지 직업을 옮겨가면서 드디어 바로 이것이다 하는 일을 찾게 되었고 거기서부터 보람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믿었던 여성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해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그녀와 함께 일을 하는 것도 여성이다.


이 책, 《여성의 설득》의 주요인물들은 이십대 초반이다. 막 대학생이 된 친구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갖는 이십대 중반을 지나고 이십대 후반으로 들어서고 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릴 때부터 알아온 친구도 있고 또 살면서 깨닫게 된 친구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들 모두 아직, 여전히 이십대다. 나는 어릴때부터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어린 아이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는 수없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고, 피아노를 배웠을 때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고, 내가 보는 직업이라고는 교사가 전부여서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동시통역사가 너무 근사해서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이영애의 마몽드 화장품 광고를 보고는 뭔진 몰라도 이십대 후반쯤이면 엄청난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거라고 막연히 상상해보기도 했다. 호텔리어도 내가 생각했던 일 중에 하나였다. 호텔에서 일하다니 멋지지 않니? 교수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누가 교수님 교수님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그렇지만 그런 모든 것들은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로망 같은 것이었고, 내가 진심으로 계속 말해왔던 것, 그러니까 누가 물어도 변함없이 한결같이 오래 대답해왔던 것 한가지는 어느 순간부터 '글 써서 타임지 표지모델 되는 것' 이었다. 타임지 표지모델이 되어보진 못했지만 글은 쓰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물론 버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다른 무엇을 해야할까에 대해 생각하며 산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을 꾼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아가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이들을 보는게 부러웠다. 이렇게나 젊은데 맞는 걸 찾아가다니. 정말 대단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들의 삶은 얼마나 충만할까.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시행착오는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겪는 것들이다. 배신을 겪었고 죄책감도 겪었다. 존경하던 선생님의 모습에서 어느 순간 '그건 아니지 않나'를 느끼고 뒤돌아서게도 되었고, '내가 그 때 그러는 건 아니었는데'를 되돌아볼 수도 있게 되었다. 부모님은 늘 한결 같았지만 예전에는 나를 방치하던 모습이라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그게 부모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구나, 라고 다른 눈으로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취해 나름의 삶을 소중하게  꾸려오는 사람을 이룬 것 없다 무시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잘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가도 아 내가 잘못했구나를 깨닫게 되는 그 과정들은 모두 성장일 터였다. 그리어도, 코리도 지도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하고 있다. 



그리어가, 코리가, 지가 겪었던 일들이 그리고 페이스 프랭크가 경험했던 일들과 그 일들 사이의 감정들이-죄책감, 연대, 사랑, 기쁨, 흥분- 다 내것과 같았다. 나 역시 누군가를 동경하다가 이제는 아닌 것 같다고 뒤돌아서게 되었고,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내 길은 이것인것 같아 라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같은 상황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성장의 증거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살아온 삶이,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감정들이 다 여기있다. 나 역시도 살면서 기쁨과 흥분을 느끼고 연대하면서 울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삶의 축이 그리움에 지배당하고 있기도 하지만, 틈틈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미움을 겪기도 한다. 때로는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고통스러워 한다. 이십대에 겪는 감정들은 이십대 고유의 것이기도 하지만, 더 나이 먹으면 또 그 나이대 고유의 고통이란 것이 찾아든다. 후회와 죄책감 자책 모두 서른이 되어서도 마흔이 되어서도 찾아드는 것들이다. 여전히 배울 것은 많고 그리고 또 여전히, 내가 그걸 잘못했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를 가지고 살아간다. 



책장을 넘길수록, 뒤로 갈수록 더 좋은 책이다. 그들의 성장이 눈에 보여서 좋다. 필리스 체슬러가 본인의 에세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에서 매꼭지마다 말했던 모순된 감정들-배신하고 연대하는 여성들-의 소설 버전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좀 순해서 아쉽긴 하지만, 여성도 인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를 말해준다. 그걸 굳이 소설로 말해줘야만 아는 걸까 싶지만, 읽으면서 비로소 다시 깨닫게 되는 부분들이 있지 않은가. 


지는 여전히 충격을 받고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여들고 편협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아니야, 그리어, 넌 그런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넌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을 뿐이야. 여자들도 가끔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또 남자들과 여자들이 서로에게 그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나쁜 짓을 한다. -p.476



이 책은 니콜 키드먼이 영화화 하기로 했다는데 또 나 혼자 캐스팅해 본다. '페이스 프랭크'는 줄리언 무어, '지'는 클로이 모레츠, '코리'는 노아 센티네오, '그리어'는 조이 킹. 그런데 내가 캐스팅하지 못하는 하나, 광고주.. 그 남자... 내 감정 너무 실려 누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때나 재이슨 스태덤 갖다 붙일 순 없으니까.... 그 남자, 누구로 하지. 페이스 프랭크 평생 못잊는 그 남자, 누구로 하지.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자.


톰 하디? 

괜찮은데?


죽은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건 어떤 걸까? 코리는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했다. 온 세상을 다 뒤져도 그들을 찾을 수가 없다. 육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시트에 덮인 채 실려 가는 것은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이 증발해버린 것 같은 기분은 다른 문제이다.
강력하지만 기체처럼 특정하기 어려운, 조직적이고 부인할 수 없는 감각. 코리는 동생의 공책 하나를 펴고 깨끗한 페이지를 찾은 다음 적기 시작했다. - P272

곧 그들은 전부 탄원을 하고, 워싱턴으로 가서 거칠게 논의하고떠들썩한 행사에 참석했으며 깡통을 두드리면서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다. 브래지어 불태우기.’ 기자들은 여성 운동에 대해서 그렇게 적었다. 실제로는 브래지어를 불태우는 행사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페이스는 이 시기를 회상하며 그때 벌인 일들이 다소 요란했다고 생각했으나 더 나이 많은 운동가들의 선봉이 극단적으로 행동해야 더 온건한 사람들이 목표를 이어받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상기했다. - P374

싱글이 된 후로 그리어는 애써 이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훌륭하게 다듬었다. 그녀가 만난 모든 남자가 "웨슬리교파에서 빠져나온 지 몇 년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그들의 침대에 들 때 보면 침구가 정리가 되어 있는 경우가 절대로 없거나 정리가 되어 있어도 형편없었다. 아무도 자기 앞가림을 할 만한 시간이나 의욕이 없는 것 같았고, 언제쯤 그렇게할 건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 P427

그리어가 다음 날 이른 오후에 오헤어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와서초인종을 눌렀을 때 지는 언제나 일하러 갈 준비를 다 해두는 것처럼그녀를 맞을 준비를 다 한 상태였다.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라는 긴급상황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리어를 소파에 앉히고 아주 차가운 물한 잔을 들려주었다. 수분 공급은 놀랄 만큼 도움이 된다고 그녀의 강사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물은 공짜고, 어디에나 있었다. 누군가의 불을 꺼줄 수는 없겠지만, 그 사람에게 자신이 진짜 세상의 일부이고 컵을 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런 능력은 잃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었다. 가끔 지는 상대가 컵을 들고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서 손이 움직이고, 목의 일부가 움직이고, 육체가 거기 참여하는 방식을 보며 안도하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P471

"페이스가 화장실에서 너한테 더 많은 관심을 보였을 때 난 약간마음이 아팠어. 정말로! 왜냐하면 대학에 가기 전부터 나는 어린 사회운동가였고 넌 사실상 집에서 책을 읽고 남자친구와 섹스만 했으니까. 하지만 괜찮았어. 그건 그냥 서로 다른 거니까. 난 널 도와주고 싶었어. 넌 기숙사 파티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었지. 수줍음도 많았고, 하지만 유순한 사람들이 지구를 물려받지, 안 그래? 모든 일에 수줍어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걸 요구하지 못했던 사람치고 넌 사실 너에게 필요한 모든 걸 요구하며 살아왔어. 그야말로 나가서 네가 원하는 걸 차지했고, 너 자신을 알렸지. 그날 밤 라일랜드 교회에서 넌 손을 들었어. 나보다 빨리 들었고, 네 질문에 대한 답을 들었지. 그 뒤에 넌 페이스에게 전화를 걸었고, 마침내 그녀와 함께 일하게 됐어. 심지어 그녀에게 프라이팬도 줬지. 그건 대담한 행동이었어." - P478

"그리고 물론 내 편지도 그녀에게 주지 않았고, 내가 장담하는데, 이런 것들은 전형적인 수줍음 많은 사람의 행동이 아니야, 그리어. 이건 달라. 교활한 걸지도 모르지." - P478

"넌 권력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알아. 전에는 그걸 다합쳐서 보지 못했지만, 사실은 그래."
그녀는 말을 멈추고 그리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있지, 난 너희 재단에서 일해야 할 필요가 없었어.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어. 넌 페이스 프랭크, 롤모델, 페미니스트를 위해 일하러 갔고, 난 그러지 못했지. 하지만 그거 알아? 난 두 종류의 페미니스트가 있다고 생각해, 유명한 사람들, 그리고 그 나머지. 그 나머지는, 조용히 가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하지만 별로 인정은 못 받고,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매일같이 말해주는 사람을 갖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야. 나한테는 멘토가 없어, 그리어. 가져본 적도 없지. - P479

하지만 내 인생에는 내 주위에 계속 두고 싶고, 날 좋아하는 것 같은 다른 종류의 여자들이 있어. 난 그들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아. 그들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아. 어쩌면 내가 그런 걸 좀 더 받았어야 했는지도 몰라.
그게 도움이 됐을지도.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고, 뭐, 괜찮아, 좋아. 네가 옳아. 난 거기 있는 걸 분명히 싫어했을 거고, 그렇게 오래 머물지도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걸 알아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았겠지." - P479

매번 집에 올 때마다 그를 보면 그리어는 언제나 깜짝 놀라고 마음이 조금씩 부서졌다. 그가 바로 거기 있지만 더 이상 자신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제 20대 중반, 오래 가지 않을 이 희망의 정점에서 서로 따로따로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는 육체적으로도 점차 변하고 있었다. - P487

그에게 말을 하는 것은, 그녀에게서 그에게로 정보가 넘어가고 그의 뇌에 자리를 잡아 그도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은 굉장히 마음이 놓이는 일이다. - P489

20대는 아직 젊게 느껴지는 때이지만, 표면 아래로 확고하게 십자 형태로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시기이다. 자고 있을 때도 그 기반은 다져진다. 당신이 한 일, 당신이 사는 곳,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이 한밤중에 숨은 일꾼들에 의해 놓이는 보도블록 조각들 같은 것이다. 며칠 전까지 그리어는 믿고, 또 좌절하는 바쁜 삶을 살았다. 20대의 코리는 망가진 어머니를 구출하러 와서 쭉 머무는 사람이었다. - P490

"페미니스트 재단에서 일한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내 지식 범위밖에 있는 거긴 하다만, 그 애는 가족이 무너졌을 때 자기 계획을 포기한 사람이야. 어머니와 함께 있기 위해서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지. 아, 그리고 자기 집을 청소하고, 어머니가 청소하던 집들까지 도맡아 일하고 있어. 난 잘 모르겠다만, 코리가 일종의 대단한페미니스트 같은데. 안 그러니?" - P492

오랫동안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남은 평생 그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아무리 많은 후미진 곳을 돌아다녀도, 아무리 많은 동굴에 들어가거나 커튼을 젖히거나 집에 들어가도 그 사람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사로잡혔다. 죽은 사람은 정말로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과학의 측면에서 이 사실은 굉장히 단순한 것 같지만 상대가 당신이 사랑한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법이다. - P528

그는 이제 그녀의 마음을 얻을 방법이 없었고, 그녀도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다. 상대방과 함께 있지 않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서로의 삶은 점점 더 멀어진다. - P532

그리어가 시트 위에 이불을 펼치고 있을 때 코리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편한 티셔츠로 갈아입고 나온 그에게서 낯선 스킨 혹은 비누 냄새가 났다. 그의 습관이 바뀌었다고 그녀는 약간 우울하게 생각했다.
마치 그녀가 그 변화를 미리 알았어야 했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가 쓰는 다양한 제품을 본 지는 이제 아주 오래 되었다. 사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들, 그게 합쳐져서 친밀함이 된다. - P562

한때 그보다 세 등급 아래 독서 그룹에 있었던 여자에게 그가 대담하게 말했다. 성인기의 아름다움은 독서 그룹이 전혀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 그것은 어떤 것도 보장하지 않았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 중에서 제일 위의 독서 그룹, 퓨마 중의 제왕 퓨마 팀에 있었다 해도 여전히 동생이 죽는 거나 아버지가 떠나는 것,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더 이상 당신의 삶에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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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2-21 0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연을 많이 다니셨구나! 확실히 오프라인에서 눈을 마주대하며 듣고 보는 강연은 책에서 받는 느낌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죠. 강연자가 마음에 들었다면 당연히 더할테구요. 저도 페미니즘 강연은 아니지만 30대 이후 강연을 좀 다녔었어요. 혼자 하는 공부가 함께 하는 공부가 되니 더 배울 수 있는 폭이 커지더라구요.
20대, 30대, 40대 나이가 거듭할수록 경험은 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통이 없는 건 아닌것 같아요. 또 나름의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더라구요. 부딪치고 깨지면서 성장하는 거겠지만...

다락방 2022-02-21 14:41   좋아요 1 | URL
제가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면 더 빨리 더 깊이 더 넓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어요, 거리의화가 님. 그걸 진작 알았다면 저도 공부잘하는 학생이 되어서 지금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그걸 삼십대 중반에 알아서 ㅠㅠ 너무 늦었죠 ㅠㅠ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누군가 가르쳐주면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왜 늦게 안걸까요. 역시 제 인생에 공부는 없는걸까요. 공부로 성공할 인생이 아닌걸까요.

맞아요, 거리의화가 님. 저는 이쯤 되면 그러니까 어른이 되면 될수록 아픔에 더 잘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웬만한 아픔은 넘길 수 잇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직도 어떤 아픔들은 늘 새롭게 느껴지고 크게 타격을 입히더라고요.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겠죠. 성장은 계속 해야 하는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님.

유부만두 2022-02-2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설득’ 페미니즘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이군요?!

단발머리 2022-02-21 11: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미 준비해두었습니다. 소설이라고 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1 14:38   좋아요 0 | URL
제목도 표지도 전혀 소설같지 않아서 저도 선물받고 미뤄둔 책이었는데, 아니 글쎄 소설인 것입니다!! ㅎㅎ

공쟝쟝 2022-02-21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정말로 톰하디에 감기셨군요? 나도.. 톰하디 좋아...... (왜? 왜!!! 좋은 거지? 왉봙한 서양 백인남 싫은데.. 난 티모시 샬라메 같은 느낌이 좋은데.. 왜 갑자기 이 아저씨... 내 마음에 들어온걸까?)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조지클루니 섹쉬하다고 느꼈을 때보다 좀더 거친 섹쉬함을 느꼈어요.......... ㅋㅋㅋㅋㅋ 어쨌든 캐스팅 어쩐지 완벽해보여서 저 이 조합찬성이고, 여성의 설득 보고 싶네요....

단발머리 2022-02-21 11:00   좋아요 0 | URL
톰 하디는 기럭지 부분에서는 정말 최고인데... 나는 티모시 살라메 좋아요. 티모시가 정답이지. 인생의 정답은 티모시.
티모시 너무 약해보이는 단점이 있지. 홍삼을 먹이자. 그럼 괜찮아!!

공쟝쟝 2022-02-21 11:08   좋아요 0 | URL
기럭지는 톰하디보다 샬라메가 더 길걸요? 꺅ㅋㅋㅋㅋㅋㅋㅋㅋㅋ >_<!!!!! 아직도 티모시샬라메랑 손잡고 길을 걷던 꿈이 기억이 나...... (오래전의 꿈인데...) 우리 티모시 홍삼맥이자...(정신차려!)
아무튼 톰하디.. 더티섹시... 역시 다락방님 타입이랄까.. 이마에 주름도 너무 많고... 근데... 나도 톰하디 좋아... 왜지? 너란 남자.. 무슨 매력이냐...

잠자냥 2022-02-21 14:03   좋아요 0 | URL
역시 다부장은 더러운 걸 the love….

단발머리 2022-02-21 14:09   좋아요 0 | URL
푸핫! 🤣🤣🤣🤣🤣

다락방 2022-02-21 14:38   좋아요 2 | URL
더러운 걸 the love... 이 뭐예요 대체. 아 완전 뿜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일단,

1. 티모시 살라메를 한 순간도 좋아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미래는 예측불허라지만 그는 전혀 제 타입이 아닙니다. 심지어 그 뭐여, 이탈리아 영화.. 복숭아 그 영화, 그것도 별로였어요. 으.. 저는 티모시 살라메 진짜 넘나 노노...

2. 네, 톰 하디.. 쟝님 말씀처럼 왉봙한 서양 백인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너무 치인 것.. 미쳤나봐요. 톰 하디 멀쩡한 영화 보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왜 땜에 베놈 보고 홀랑 반했어. 저 나름 괴물 타입인걸까요. 베놈 에서의 톰하디 넘나 좋아요. 미쳤나봐 ㅠㅠ 역시 더러운 걸 the love.....

단발머리 2022-02-21 14:39   좋아요 3 | URL
톰 하지 ㅋㅋㅋㅋㅋㅋ 형은 톰 동지 ㅋㅋㅋㅋㅋ 고치지 마요 ㅋㅋㅋ 톰 하지

다락방 2022-02-21 14:41   좋아요 2 | URL
앗. 봤어요, 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등록하고 나서 하지 보고 뭐여 하고 후다닥 지웠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2-21 19:47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취향 존중해요! 더뤼섹싀 ㅋㅋㅋ 저는 초식남 ㅋㅋㅋ

다락방 2022-02-21 19:49   좋아요 1 | URL
무슨 말이에요 대체. 내가 무슨 더뤼섹스 취향이라는 거야. 아니야. 저는 욕망 없는 백지같은 여자에요. 저 막 더뤼섹스라고 오해하면서 확정짓지 마요. 무슨말이야 대체. 아니야. 저는 섹스 이런거 진짜 노관심이에요 노관심. 네버. 노노노노노.

공쟝쟝 2022-02-21 21:11   좋아요 0 | URL
색스 말고 섹시!요!!! 섹스 말고 섹시!!! 더티섹시!!! 백지같은 욕망없는 다욕방님아ㅋㅋㅋㅋ 톰 하디랑 뭘 하지? 앜ㅋㅋㅋㅋ 톰 하지? 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1 21:13   좋아요 0 | URL
나 진짜 인정하기 싫은데 진짜 짐승남 취향인가봐.. 😩

공쟝쟝 2022-02-21 21:16   좋아요 0 | URL
그걸 왜 본인만 몰라요… 모두가 다락방님이 얼굴을 안보고 배경도 안보지만 전완근을 비롯한 짐승으르렁 에 끌려한다는 걸 알아요.. 뱀파이어보다 늑대인간이라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2-21 21:27   좋아요 1 | URL
아니 왜 베놈이냐고, 왜, 왜.. 😭

단발머리 2022-02-21 21:29   좋아요 2 | URL
내가 이 동네 쫌 있어보니까… 그렇더라구요. 여기는 무슨 심층수 탐험대도 아니면서 맘 속 깊은 곳까지 알아챈다니까요. 인정해요, 락방님 ㅋㅋㅋㅋ 그것이 편한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2-21 21:37   좋아요 0 | URL
나도 베놈 ㅠㅠㅠㅠㅠ 흙컭퀴규ㅠ

단발머리 2022-02-21 21:39   좋아요 0 | URL
그럼 티모시는 내 꺼인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 티모시! 아~~~해!! 정관장 에브리타임 먹을 시간이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