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다른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고 독서를 하기도 했다. 읽는 책은 주로 그가 매년 일정 금액에 맞춰 주문하는 역사서였다. 그는 본인의 말처럼 자신을 위한 번듯한 서고를 꾸미고 있었으며, 구입한 책은 전부 읽기로 했다. 그는 서재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앉아 이 책들을 읽곤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의무로 지운 독서가 나중에는 습관적인 일과가 되었고, 특별한 만족과 진지한 일을 한다는 자각을 그에게 주었다. -4권, p.514


















니콜라이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아버지로부터 빚만 물려받았지만 열심히 일하고 관리해서 재산도 다시 쌓고 있다. 그는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그리고, 독서를 한다. 자신을 위한 번듯한 서고를 꾸미고 있었다는 것도 참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구입한 책은 전부 읽기로 했다'가 눈길을 끈다. 아아, 니콜라이, 독서 생활 시작.. 얼마 안됐지? 그래 그래, 그건 타당한 결심이야. 무릇 책을 구매하고 읽는 사람이란 그런 마음을 먹어야하지. 그런데 그거 아니? 나도 처음엔 그랬단다? 나도 처음엔 책 사고 그거 다 읽은 다음에 다른 책들을 샀거든?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 두권 안읽어도 사고 또 사고 그러다 안 읽은 책이 점점 더 많아지더니, 지금은 집에 안읽은 책들이 훨씬 더 많단다? 어디, 네가 산 책은 다 읽기로 하겠다는 결심 언제까지 지키나 두고보겠어. 결국 너도 나처럼 읽지 않은 책더미에 파묻히게 될걸? 껄껄.



전쟁과 평화는 재미있다.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은 다소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천만의 말씀. 완전히 재미있다. 마지막에 책의 해설을 보니 등장인물이 557명 이란다. 그렇게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름 러시아 이름이고 그러면 읽기 힘들겠쥬? 그런데 여하튼 재미있고 어느 순간에는 이름과 인물도 헷갈리지 않게 된다. 재미있다. 톨스토이가 들려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삶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무엇보다 한 등장인물의 죽음에서(스포일러가 될까봐 이름을 밝히진 않겠다) 그가 자신에게 오게될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그리고 결국 죽었을 때, 나는 '만약 그가 온 몸으로 죽음에 저항했다면, 그의 경우에는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죽음을 받아들였지 저항하지 않아서, 그렇게까지 죽진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죽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를 사랑한 주변 사람들의 입장에서 안타까웠다. 그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그의 뜻이고 그의 의지이겠지만,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가 조금만 더 애써주지, 더 힘내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달까. 그러나 거듭되는 인물들의 죽음 앞에-전쟁때였다- 뭐가 됐든 언젠가는 인간은 죽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나 역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읽다보면 톨스토이의 삶과 세상에 대한 시각이 도드라진다.

그는 어떤 개인적인 영웅이 세상의 역사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 일들은 그 전에 일들과 그 전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사람들과 다 얽혀서 일어난 일이라는 거다. 그런 한편 그는 경험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같다는 생각도 했다. 니콜라이라는 등장인물이 직접 농업에 뛰어들고나서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알면서 재산을 불릴 수 있게 되는데, 이는 그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레빈을 떠올리게 한다. 레빈 역시 직접 농민들과 농사 짓는 일을 했었으니까. 그뿐인가. 피에르의 경우 전쟁 포로로 잡혀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동안 프랑스 병사들과 그리고 잡힌 러시아 포로들을 보면서 인생에 대한 시각이 변화한다. 운이 좋게 그는 포로였어도 살아남았는데, 그 때의 일을 얘기하다보면 피에르는, 그러나 그 시간을 겪는 쪽이 좋았다고 한다. 자신이 달라졌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이 나에게 포로가 되기 전 상태로 남고 싶은지,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겪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부디 다시 한번 포로가 되어 말고기를 먹고 싶어요. 우리는 일단 익숙한 길에서 밀려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직 그곳에서 새로운 좋은 곳이 시작되지요.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행복도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있어요.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말입니다." -4권, p.442



이 부분에서는 필립 베송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그의 [포기의 순간]이.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위의 문장은 책 속에 나온 문장은 아니고 필립 베송이 파리 박람회에서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주던 중 한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곧 이 책, 포기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불의의 사건 이라는 건, 겪지 않는 쪽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내 인생에서 그건 없었으면 좋았을거라고, 그것이 준 상처가 너무 크다고, 결코 다른 사람들은 이 일을 겪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몇몇 일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된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사람은 하나의 인생 밖에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단정할 수 없지만, 나에게 일어났던 그 일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나 역시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주 늦되다. 꼭 스스로 경험을 해야만 '아 이래서 그런거구나' 라고 깨닫는 편이랄까. 그러다보니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가만 앉아서 남들의 말만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육체적 에너지도 감정적 에너지도 소모가 덜할텐데, 굳이 경험하느라 에너지를 소진하고, 그 후에 비로소 '아 이게 이거구나' 하게 되어버리니까. 필립 베송은 자신의 책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데,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p.140)' 라고 말하는데, 나 역시 그들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톨스토이 역시 경험으로 배우는 사람인 것 같다. 삶에서 그런걸 추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전쟁과 평화를 읽으면서 했다. 음,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를 봐도 그렇고, 작가라는 직업은, 결국 경험으로 변하게 되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게 아닌가? 



재미있게 읽었지만 에필로그에서 좀 실망했고, 그리고 아까 댓글을 달면서 생각했는데, 이 네 권에 걸친 책에서 내가 어느 누구도 애정을 갖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아,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톨스토이를 넣지 않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들 중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되진 않는다. 순간순간 어느 인물들에게 공감할 순 있다. 이를테면 마리아 공작 영애는 억압적인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그 아버지가 병에 걸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신에게 찾아올 자유에 대해 기뻐한다. 그러다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하면서 죄책감을 갖고. 그런 생각의 흐름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거 아닌가.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 마찬가지. 각각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도 있고 공감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내가 애정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재미있었지만 나를 뒤흔들지는 못했다. 그래서 읽노라면 어쩐지, 나도 모르게 빅토르 위고가 자꾸 생각났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읽다가 눈물 콧물 다 흘렸던 게 생각난거다. 그때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아아, 이 사람 왜이렇게 외로워, 하면서 울었더랬다. 누가 좀 와줘, 이 사람 이렇게 혼자두지마, 하고. 게다가 [웃는 남자]는 어떤가. 초반에 추위에 떨면서도 소년이 갓난 아기를 구해주는 장면에서, 아아 대체 인간이란 뭐란 말인가, 하며 가슴이 뜨거워졌단 말이지. 그러니까 빅토르 위고는 나를 가만두지 않고 어떤 격한 감정으로 내팽개치는데 톨스토이는 나를 격한 감정으로 이끌지는 않는 거다. 재미있고 톨스토이 정말 대단하지만, 그래서인지 어쩐지, 흐음, 위고쪽이 더 대단한 것 같은데? 하게 되어버리는거다. 그러고보니 나 프랑스 소설 안좋아하는데 레미제라블과 웃는 남자에는 크게 감명받았었네? 


여러분, 레미제라블 읽어보세요. 이거 진짭니다. 이거 짱이야. 레미제라블을 읽자!! ㅋㅋㅋㅋ 톨스토이 얘기하다가 갑자기 레미제라블 추천 ㅋㅋㅋㅋㅋ


하여간 재미있게 잘 읽었다. 펼치기 전에는 이 책에서 그렇게나 자주 나폴레옹을 만나게 될 줄을 내가 몰랐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예전에 막스 갈로의 나폴레옹 총5권 끙끙대며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섯권에 걸친 책이었는데 그거 다 읽고나서 기억나는건 나폴레옹 여드름 피부였다는 것.. 중간에 여드름이 터졌다는 묘사가 나오는거다. 아니, 그 .. 여드름 터진 것 까지는 말 안해줘도 돼요..















금요일에는 친구들을 만났다.

여자1 남자1 이었는데, 둘다 알라딘에서 진행한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 한때 참여했던 친구들. 여자1이 그 때 여성주의 책을 읽었던 것들이 훗날 도움이 많이 되었다, 고 얘기해주어 고마웠는데, 이에 질세라 남자1이 '남자인 나에겐 더 도움이 되었지' 라고 말해주었다. 무언가 했는데 그걸로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인생 진짜 잘 산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느끼기 위해서는 그들이 읽어야한다는 스스로의 행위가 있었던 것이 먼저이지만. 하여간 누군가 행동하고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거, 만남의 기쁨이 아닌가. 




책을 샀다. 이번엔 조금만 샀다.


















[나의 작은 무법자]는 어떻게 사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밤의 종말]은 투비에서 즐겨 찾는 분의 리뷰를 읽고 사게 되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친밀한 사이]는 인스타에 본문 인용한 광고가 자주 나오는데 마침 잠자냥 님의 서재에서도 본 책이었다. 굿굿. 이렇게 세 권만 샀다.


책 탑 페이퍼 월요일에 올려야하는데, 와 이번달 안에 전쟁과 평화도 읽어야 되고 아기 퍼가기 시대도 읽어야해서 정말 정신이 없었다. 회사 일도 바쁘고 일 끝나면 책 읽느라 바빴다. 2월 27일 현재, 그러나 다 읽었다. 만세!! ㅋㅋㅋㅋㅋ




그리고 꽃을 샀다.


인스타그램 보면 가끔 집에 꽃 사서 장식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커다란 꽃다발을 풀고 가지를 사선으로 잘라서 화병에 꽂고 그걸 방이나 거실등에 두는 단순한 장면인데 참 좋아보였더랬다. 그런데 그 집이 엄청 넓고 깔끔하긴 하더라. 그래서 산건 아니고, 5천원 쿠폰도 주면서 무료배송..이기에 저렴하게 샀는데, 마침 사고 나니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것들이 떠올라 좋았어!! 하면서 나도 펼쳐두고 하나씩 가지를 잘라 화병(이 아니라 물병)에 하나씩 꽂는데, 하아- 몇 개 하지도 않고 갑자기 빡이 쳤다. 


하기 싫어..

귀찮어..

아 이거 언제해...


막 이렇게 되어가지고, 아아,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나는 이런거 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이런게 적성에 맞지 않아! 하고 버럭 화를 내버렸다.



일전에 루꼴라로 크리스마스트리 샐러드 만든다고 하다가 몇 개 하지도 않았는데 빡쳐서 치워버렸던게 생각났다. 보다 못한 엄마가 '내가 할게' 하면서 해주셨지... 아아 나는 이런거 안되는 사람이야.


그 글은 여기 ☞ https://tobe.aladin.co.kr/n/305941



엊그제 집에서 술 마시면서 <샬라샬라> 보는데 ㅋㅋㅋ 이 멤버들이 옆집 부부를 초대했다. 옆집 부부는 식사를 하면서 남편은 인도 사람이고 아내는 독일 사람인데 인도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너무 크게 열어야돼서 그게 싫어서 라스베가스에 둘이 가서 결혼식을 했다, 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어가 잘 안되는 멤버들은 그 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들으면서 반응하고 잇던 장혁은 다 듣고나서 멤버들한테 이러는거다.


"할아버지가 인디안이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 진짜 개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이상하게 너무 웃겨가지고 그 다음에도 계속 순간순간 생각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샬라샬라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다. 회사 동료랑 여동생한테 추천했는데 여동생도 엄청 재미있게 보고 초등5조카도 재미있게 본다고.


아 맞다 초등5조카가 영어 공부 하면서 필로소피, 철학 이란 단어를 새로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철학'이란 자체를 처음으로 접한거지. 이게 뭔지 찾아보더니 제엄마에게 이랬단다.


"엄마, 이모는 철학과 졸업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동생이 아니라고 했더니 조카가 아니야? 이러면서 놀랐다고. 아니, 왜 내가 철학과를 졸업했다고 생각하지 조카야? 나 너무 철학적이었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만 줄인다.

빌라르스키, 공작 영애, 의사, 그리고 요즘 만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에르는 모든 사람들의 호의를 끌어내는 새로운 특징을 보였다. 그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사물을 생각하고 느끼고 바라볼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로는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피에르를 불안하고 짜증스럽게 했던 저마다의 이런 당연한 독자성이 이제 그가 사람들에 대해 품는 공감과 흥미의 토대가 되었다.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시각 사이에, 혹은 그 시각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나 때로 완벽하기까지 한 모순은 피에르에게 기쁨을 주고 조소 어린 온화한 미소를 불러일으켰다. - P416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람들이 나에게 포로가 되기 전 상태로 남고 싶은지, 그 모든 것을 처음부터 겪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부디 다시 한번 포로가 되어 말고기를 먹고 싶어요. 우리는 일단 익숙한 길에서 밀려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직 그곳에서 새로운 좋은 곳이 시작되지요.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행복도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있어요.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말입니다." - P442

"있잖아, 마리." 나타샤는 갑자기 마리야 공작 영애가 그녀의 얼굴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은 어쩐지 깔끔하고 윤기 있고 산뜻해졌어. 마치 욕조에서 나온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지? 정신적으로 욕에서 나온 것 같다니까. 그렇지?" - P443

그녀가 이따금 그를 이해하려 애쓰며 그의 공-그가 농노들에게 선을 베푼 것- 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는 화를 내며 대답하곤 했다. "결코 그렇지 않아.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난 그들을 위해 이런 일을 하지는 않아. 그런 것은 전ㄴ부 시 나부랭이고 할멈들의 옛날이야기야. 이웃의 행복이라는 것이지. 난 내 아이들이 구걸하지 않기를 원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난 우리 재산을 모아야 해. 그게 전부야. 그러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하고 엄격함이 필요하지... 그런 거라고!" 그는 다혈질답게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물론 공정함도 필요해." 그는 덧붙였다. "농민이 헐벗고 굶주리고 말도 한 필밖에 갖고 있지 않다면 그자는 스스로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을 테니까." - P509

겨울이면 다른 마을을 방문하기도 하고 독서를 하기도 했다. 읽는 책은 주로 그가 매년 일정 금액에 맞춰 주문하는 역사서였다. 그는 본인의 말처럼 자신을 위한 번듯한 서고를 꾸미고 있었으며, 구입한 책은 전부 읽기로 했다. 그는 서재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앉아 이 책들을 읽곤 했다.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의무로 지운 독서가 나중에는 습관적인 일과가 되었고, 특별한 만족과 진지한 일을 한다는 자각을 그에게 주었다. - P514

예카체리나 필리포브나 티타리노바(Ekaterina Filippovna Tatarinova, 1783~1856). 1812년 전쟁에서 활약한 부흐회브덴 장군의 딸이다. 페테르부르크에 ‘영적 연합‘이라는 신비주의 종파를 설립하고 자신에게 예언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종파는 치유와 점을 신봉하며, 제정 러시아의 비밀 교단인 스코프치(성욕에 저항하기 위해 남성의 성기를 거세하고 여성의 유방을 절제하는 의식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로부터 격렬한 원무를 통해 황홀경과 예언의 영을 이끌어 내는 의식을 차용했다. 이 교단은 1837년까지 존속했다. - P555

"나타샤는 정말 웃기는 애야. 사실 남편을 깔아뭉개고 살면서 일단 상황이 논의로 발전되면 그 애-자신의 언어도 없으면서-는 그냥 남편의 언어로 지껄인다니까." 니콜라이는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부추기는 뿌리치기 힘든 갈망에 굴복하며 덧붙였다. - P574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쩌면 불의의 사건을 겪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자기 자신이 되는 데,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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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5-02-27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은 톨스토이 아니고 빅토르 위고라니 ㅎㅎ 톨스토이 옹께서 실망이 크시겠어요 ㅎㅎ
꽃들이 물을 좀 더 먹으면 더 싱싱하고 이쁠 것 같네요. 지금은 먼 길 와서 힘들어보입니다. ㅠㅠ

다락방 2025-02-27 09:30   좋아요 1 | URL
으흐흐흐 톨스토이 재미있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저게 배송 오자마자 찍은 사진이거든요. 엊그제인데, 어제 퇴근후 집에 가보니 확실히 더 선명하고 예뻐졌더라고요!! >.<

독서괭 2025-02-27 09:36   좋아요 1 | URL
톨스토이 1패! ㅋㅋㅋ

다락방 2025-02-27 09:50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 님, 쏘리~ ㅋㅋㅋㅋㅋ

망고 2025-02-27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다락방님도 꽃을 다 사셨네요ㅋㅋㅋㅋ계란꽃 마가렛인가요? 예뻐요^^
저도 ˝전쟁과 평화˝ 읽고는 싶은데ㅠㅠ 너무 길어요 게다가 다락방님이 어느 캐릭터에도 애정을 갖지 않았다니...아 망설여집니다ㅋㅋㅋ대신 레미제라블을 읽어봐야 겠습니다🤣

다락방 2025-03-04 08:06   좋아요 0 | URL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고요 특가로 저렴하게 떴는데 첫구매라 쿠폰까지 줘서 ㅋㅋ 어디 한 번? 하고 사봤습니다. 세상에 이게 도착했을 때보다 하루 이틀 지났을 때가 더 예쁘더라고요. 뭔가 생기었어지고 더 환해졌어요. 후훗.
레미제라블은 강력하게 권합니다, 망고 님!!

단발머리 2025-02-27 1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일단 익숙한 길에서 밀려나면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직 그곳에서 새로운 좋은 곳이 시작되지요.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행복도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것이, 많은 것이 있어요. 그것이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말입니다.

442쪽 좋아서 북플 화면 그대로 캡쳐해 두었어요. 저도 그런 쪽에 속하는데, 익숙한 길에서 밀려날 때 두려움이 많은 사람 같아요. 익숙한 게 좋거든요. 지겨운건 잘 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제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구요. 알라딘 서재에서 다락방님 글 보고 레미제라블 읽었던 사람이 바로 저이고요 ㅋㅋㅋㅋ내내 읽은 거 자랑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레미제라블 다른 책은 아직인데, 파리의 노트르담은 준비된 상태입니다. 감정을 격동시킨다는 점에서 저도 톨스토이보다는 빅토르 위고가 혹은 그의 작품이 예술에 가깝다고 생각하기는 해요.

중학생인 저에게 묻는다면 ㅋㅋㅋㅋㅋ 물어봐주세요ㅋㅋㅋㅋ 저의 인생책은 <부활>입니다. 사실 그 속의 사랑 이야기 뿐만 아니라, 토지 소유권과 관련된 계급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 또 마지막에 남주가 회심? 혹은 회개의 변이 있거든요. 거기가 아주 압권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제게 톨스토이는 뭐랄까, 너무 선생님이시다. 가르치시고, 훈계하신다ㅋㅋㅋㅋ 이런 느낌이 강해서요. 그래서 <전쟁과 평화> 이야기하다가 급 ‘레미제라블‘ 읽어보세요, 를 완전 이해하게 됩니다.

꽃 너무 예뻐요.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엔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저는 루꼴라 트리 샐러드에 한 표를 드리오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5-02-27 23:32   좋아요 1 | URL
헉 인생책이 부활이라고요? 저 부활때문에 톨스토이 안 읽었는데요. 너무 너무 싫어서요. 저도 어릴 때 읽어서 뭘 몰라서였을까요? ㅠ.ㅠ 저는 고등학생 때 읽었는데 단발머리님은 중학교 때 읽고 걸작을 알아보다니 역시 천재!!
지금 전쟁과 평화는 언젠가는 읽겠지 하면서 사두었는데 레미제라블을 사야 할까요? 우리집 딸래미가 지금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고 있던데 그냥 사서 저도 읽을까요?

다락방 2025-03-04 08:10   좋아요 0 | URL
저는 파리의 노트르담은 레미제라블 이나 웃는 남자에 비해 조금 별로라고 느꼈어요. 웃는 남자 역시 강하게 권합니다. 도입부부터 압권이에요. 뮤지컬은 어느만큼을 잡아냈을지 모르겠지만, 책의 훌륭함을 결코 담아낼 수 없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평소 소설은 프랑스보다는 러시아인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톨스토이 보다는 위고 입니다. ㅎㅎ

익숙한 길에서 밀려날 때의 두려움은 사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거 아닐까요? 만났던 사람, 갔던 식당, 갔던 장소가 더 편하다는 건 누구에게나 공통일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새로운 걸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종종 오긴 하지만, 그러나 익숙한 곳에서 밀려났을 때 비로소 다른 시작이 가능해지는 건 또 사실이고.. 삶이란 것을 결코 만만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저 문장이 좋아서 밑줄 그었는데 단발머리 님도 캡쳐를 해두셨네요. 아마도 그건 우리 모두 공통된 것을 느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중학생인 단발머리 님의 인생소설이 부활.. 이라니. 중학생인 저의 인생 영화 더티 댄싱.. 이었던 사람으로서, 아아, 왜 내 인생책은 부활이 아닌가, 를 생각하며 앞으로 읽을 도서에 부활을 올려둡니다!!


바람돌이 님/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시대의 역사가 줄줄이 나오는 관계로 바람돌이 님은 특히나 더 재미있게 보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람돌이 2025-02-27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다가 사서 읽으려고 꽂아둔 전쟁과 평화가 눈에 확 들어와서 또 죄책감이 막...... ^^;; 언젠가는 읽겠죠. 전쟁과 평화도 레미제라블도....
꽃 꽂는거 힘들죠. 저도 가끔 꽃 사거든요. 근데 이거 진짜 예쁘게 꽂는거 어려워요. 예전에 딴에 잘 꽂았다고 사진찍어서 보여줬다가 비웃음당했어요. ㅎㅎ 그래도 봄이 오면 꽃 사고 싶어요. 그래도 지금 우리집엔 딸래미 졸업덕분에 꽃병 3개에다가 꽃을 잔뜩 꽂아놓고 힐링하고 있어요. ^^

다락방 2025-03-04 08:12   좋아요 0 | URL
전쟁과 평화는 위의 댓글에도 썼지만, 바람돌이 님이 저보다 천 배는 더 재미있게 읽으실 것 같습니다. 일단 역사에 대한 지식을 장착된 상태에서의 읽기니까요. 많이 아는 만큼 더 많이 보이잖아요. 강추합니다.

꽃을 예쁘게 꽂지 못해서 스트레스 받았다기 보다는 꽂는 일 자체가 너무 짜증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뭔가 차분히 앉아서 아름답게 만들어내는 일.. 같은걸 제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보면 좋은데 제가 그 좋게끔 만들어내는 걸 잘 못한다는.... 하하하하. 제가 그래서 요즘 원두도 안내려요. 물 끓이고 뜨거운 물 붓고..하는게 역시 너무 견딜 수 없어져서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란놀 2025-02-2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란,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무몸’을 빌려서 담은 꾸러미이니, 이 책 곁에 꽃송이를 나란히 놓으면, 둘이 푸르게 어울리는구나 싶어요.

다락방 2025-03-04 08: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책과 꽃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책과 샌드위치도 잘 어울리고 책과 와인도 잘 어울리고.. 하여간 책은 다 잘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잠자냥 2025-02-28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철학과 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철학자 다락방🤣🤣

다락방 2025-03-04 08:14   좋아요 0 | URL
차라리 철학과를 졸업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좀 더 현명해졌을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꼬마요정 2025-02-28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저도 갑자기 다락방 님 철학과 졸업이었던가 생각했습니다. ㅎㅎㅎ 저는 <전쟁과 평화>에서는 안드레이가,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레빈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다락방 님이 바로 위고 말씀하시니까 막 전율이 느껴져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웃는 남자>에서 우르수스에게 느꼈던 감정과 차이가 나서요. 저도 울면서 봤어요ㅠㅠ <노트르담 드 파리>도 그렇구요. 아아, 그렇군요. 위고는 정말 천재예요!!!

저는 꽃을 사지 않습니다. 꽃병에 꽂아둘 수가 없어요... 냥이들이 다 먹고 떨어트리고 난리거든요...ㅠㅠ

다락방 2025-03-04 08:16   좋아요 1 | URL
저는 레 미제라블 의 마지막 권에서 정말 눈물 콧물 쏟아가면서 봤고요, 웃는 남자는 도입부가 정말 압권이었어요. 날도 추운데 어린 소년이 지나가다가 갓난 아기를 구하는 장면이요. 와, 인간 진짜 뭐지.. 자기가 힘든데도 다른 생명을 기어코 구하고자 하는, 이런거 뭐지, 하면서 위고에게 감탄했었습니다. 이런 ‘와, 인간 진짜 뭐지!‘ 같은 감정을 톨스토이가 주지는 못하더라고요. 위고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 꽃은 살 때 물에다 같이 넣는 보존제라고 하나 그런걸 같이 줘서 넣었는데 여전히 싱싱합니다!!

꼬마요정 2025-03-07 16:35   좋아요 0 | URL
진짜!!!!! <웃는 남자> 읽을 때 그윈플렌 버림 받고 그 추운 날... 데아 구하는 데...하아... 저 날씨 엄청 추울 때면 얘네들 생각나요. 옷 껴입고 있는 나도 이렇게 추운데 얇은 옷차림에 신발도 변변찮은 애기가 얼마나 추웠을까 하구요 ㅠㅠ 아, 마음이 정말.... 위고 천재!!
 

"누가 나에게 내가 이처럼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면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이 감정은 내가 예전에 품은 감정과 전혀 달라. 나에게는 온 세상이 둘로 나뉘어있어. 하나는 그녀야. 거기에는 모든 행복과 희망과 빛이 있지. 또 다른 하나는 그녀가 없는 모든 곳이야. 그곳에는 우울과 어둠뿐이야..." -2권, p.446~447



















지금부터는 전쟁과 평화 2권에 대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니 내용을 모르는채로 이 책을 읽고싶다면 이 페이퍼를 패쓰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패쓰하기엔 너무 재미있는 글일거야..)



볼콘스키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볼콘스키는 참전했다 돌아왔고 여동생과 아버지에게 아이의 돌봄을 대부분 맡기고 따로 나가 살면서 가끔 본가에 들러 아들도 보고 아버지와 여동생도 만난다. 정확한 나이는 안나왔지만 삼십대 중반정도인 것 같다. 

그런 볼콘스키가 나타샤를 알게 된다. 밝고 사랑스러운 나타샤. 꾸밈없고 구김없고 환한 나타샤. 그런 나타샤를 사랑하게 되고 그런 나타샤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 그를 사랑한다. 그전에도 다른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은 여러번이었지만, 그러나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볼콘스키도 이런 사랑이 내게 올 줄이야! 했지만 나타샤에게도 마찬가지였던거다.


볼콘스키는 나타샤와 결혼하고 싶다. 그래서 아버지의 허락을 받으러간다. 세상 고집 센 볼콘스키의 아버지는 이 결혼이 영 못마땅하다. 그래서 조건을 내건다. 네 건강도 챙기고 너 어차피 아들 가정교사 찾으러 외국간다 했으니, 일단 외국 갔다가 한 해만 결혼을 연기하라고. 그게 이 결혼의 조건이라고 했다. 한 해가 지나도 네가 변함없다면 그러면 결혼해라, 하는거다. 이에 볼콘스키는 나타사에게 청혼하면서 이 조건에 대해 얘기한다. 난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했고 그래서 너랑 결혼하고 싶어, 너도 그래? 응 나도 그래! 그런데 우리 아빠가 1년만 있다 하라고 하거든, 우리 1년만 기다리자. 그러자 우리의 나타샤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해요! 안 돼요, 그건 너무해요, 너무해!" 나타샤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며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난 한 해가 지나기를 기다리다 죽고 말 거예요. 그럴 수는 없어요. 그건 너무해요." 그녀는 구혼자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연민과 망설임의 표정을 알아보았다. "아니, 아니에요, 뭐든지 하겠어요."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그치고 말했다. "정말 행복해요!" -2권, p.457-458



그녀는 도대체 이 일년을 왜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건 너무나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알겠다고 수긍한다. 그래, 일 년, 기다려보자, 기다리면 되지. 볼콘스키는 일 년 후에 결혼하자고 하면서, 그런데 그 일 년 사이에 혹여라도 네 마음이 변하거나 한다면 너는 자유롭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나타샤의 마음이 변할 가능성, 그리고 거기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말고 갈 곳을 향해 가라는 것. 나타샤는 도대체 왜 자기한테 그런 말을 하냐며 그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하지만, 아, 열여섯 아름다운 여성에게 일 년이란 도대체 어떤 시간인가. 일 년안에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있는가.



사랑하는 남자와 일 년간 만날 수가 없다. 간혹 사랑을 맹세하는 편지는 주고받지만 어느날은 불쑥 아, 그가 왜 내 옆에 없는거지, 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지, 하며 지금 내 옆에 없는 그를 원망한다. 그러다가도 그와 결혼하고나면 펼쳐질 미래에 대해 긍정회로를 돌리기도 하면서 그녀는 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니, 견디고 있다. 일 년, 어쩔 수 없이 보지 못하고 지나가야 할 일 년, 이 일 년이란 이들에게 있어서 어떤 시간이 될것인가.


어떤 사람들에게 일 년은 짧고 어떤 사람들에게 일 년은 길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에게 만나지 않고 지내야하는 일 년은 잔인하게 길게 느껴질것이다. 물론 나의 경우에는 '고작 일 년이구먼' 했지만.. 아마 이게 바로 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일 년이면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 있지만 또 아주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일 년이면 아이를 임신하고 낳을 수도 있을만큼의 긴 시간이고 그런데 일 년이면 바로 어제처럼 늘 같은 루틴으로 살아가고 별다른 변화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세상의 많은 연인들에게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누군가는 별 탈없이 그 일년간 그리움과 기다림을 간직한 채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러나 누군가는 도저히 견딜 수 없고 자신을 향한 온갖 유혹에 휘둘리기도 할것이다. 유혹이 찾아온다, 안되는거지? 그렇지만.. 펑- 하고 터져버리는거다. 



일 년이 되려면 이제 조금 남았는데, 그런데 나타샤에게 유혹이 찾아온다. 이 아름답고 밝은 여성에게 세상 난봉꾼이 찾아든다. 이 난봉꾼, 이 난봉꾼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숨긴채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너무 예쁘거든. 여신같거든. 그는 그녀에게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고백하고, 그녀에게 약혼한 남자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입술을 부딪친다. 하아- 우리의 나타샤, 저항할 수가 없다.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하지만 .. 그런데 이런 사랑도 그전에 없었다. 당연하지. 열여섯에게 사랑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모든 사랑이 내가 알던 사랑이겠나. 이 사랑도 처음, 이런 감정도 처음.. 다 그런거 아니겠나. 그리고 마흔여섯이어도 마찬가지지. 모든 사랑은 다 조금씩 결이 다르지 않나. 여하튼 나타샤에게 이 사랑은 바로 옆에 있는 실체, 육체적으로 생생한 그런 사랑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내 옆에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다가, 나를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내 입술에 입술을 갖다 대는 너무나 잘생긴 남자... 아, 모르겠다, 두 명을 사랑하면 안되나요? 나타샤는 이 난봉꾼에게 자기의 마음을 준다. 그리고 이 난봉꾼의 뜻대로 난봉꾼과 결혼하기로 한다. 다만 어떤 이유인지 이 난봉꾼은 정식으로 방문하고 청혼하고 이러는대신 도망가자고 한다. 그러니 나는 그랑 도망치겠어. 도망가서 아무도 몰래 그와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겠어! 그녀는 볼콘스키의 누이에게 그리고 볼콘스키에게 결혼하지 않겠다 한다. 그리고 오늘밤, 난봉꾼이 찾아오면 나는 도망가는거야!! 휘비고!!



그러나 소냐가 이를 눈치챈다. 어라, 쟤 이상한데? 그리고 나타샤에게 도망가자 쓴 난봉꾼의 편지도 읽는다. 이 남자 사기꾼같아, 이상하지 않니? 왜 집에 정식으로 찾아오지 않아? 너 그러면 안돼. 나타샤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모함하는 소냐가 원망스럽고 저리 가버렷! 한다. 그러나 나타샤의 계획을 눈치챈 소냐는 어떻게든 이걸 막아보고자 한다. 나타샤가 그 남자 따라가는 순간 모든게 끝장이다, 하고. 아아, 나타샤여, 그 길을 가지마오..



사랑이라는 게 그렇다. 그 사랑에 빠져있으면 상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부분 주변에서 반대해도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나타샤는 난봉꾼을 난봉꾼이라고 말하는게 싫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안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믿을 수가 없다. 그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마! 그러나 나타샤는 강제적으로 이 사랑의 불발을 맞이하고 그리고 그 남자가 사실 유부남이라는 것도 듣게 된다. 하아.. 나타샤는 미치겠다. 나타샤는 만신창이가 됐다. 그런데 볼콘스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타샤는 모든게 자기 잘못이며 이런 자신을 그에게 받아달라 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나는 이미 망가졌어.. 사실 이 책을 읽는 지금의 입장에선 그게 뭐 대수라고 싶지만 책에서 이 시대 배경에는 그녀는 마치 망가진 여자처럼 다루어진다. 나는 볼콘스키가 이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그녀에게 모든게 괜찮다고,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할 줄 알았건만.. 그는 그 소식에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의 친구를 통해 그녀로부터 받았던 편지를 그녀에게 대신 돌려주라 말한다. 물론 마음은 자기 나름대로 아팠겠지만, 야 이놈아, 니가 일 년 기다리라고 한거잖아!!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 년을 기다리라고 하는거야. 그 안에 일어날 가능성을 알고 있었으면서!! 사람 테스트하는거야 뭐야..



일 년, 그 빈 시간이라는 거, 그건 일 년이 아니라 더 짧은 시간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뭐 이건 사실 헤어짐이 아니라 옆에 있어도 마찬가지겠지만. 

오래전 내 친구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오래전 페이퍼에 언급한 적 있는데, 내 친구는 소개팅을 받았고 소개팅 자리에서 그 남자와 서로 호감을 가졌으며 그렇게 손잡고 집에 바래다주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런데 바로 주말이었고 그 주말은 나를 포함한 친구들과 여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마 그 때 우리가 지리산을 갔던가... 우리가 가는 차 안에서도 친구는 그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 잘 다녀오라고. 분위기는 좋았고, 웃으면서 통화한 친구는 다녀와서 만나자고 했다. 그래서 그 차 안에 있던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웃으면서 이열~~ 했었는데, 그 주말이 지난 후 친구는 그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안하다고 못만나겠다고. 주말동안 인라인 스케이트 타러 갔다가, 거기에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가 좋다고...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 나에게 당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가능성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라고 부탁하며 다짐을 받기도 하고 볼콘스키처럼 너는 자유로워 변화가 찾아온다면 가렴, 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열려있는 많은 가능성을 안다. 그래서 일 년은 너무 길다.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일 년이 뭐 그렇게 힘들다고, 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나는 이것이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 성향임을 안다. 나는 롱 디스턴스 연애를 했을 때 일 년에 한 번 볼까말까였다. 그런데 그것이 나에게는 힘들지 않았다. 아주 많은 친구들이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힘들지 않아?' 라고 내게 물었고, 그러면서 '나라면 그렇게 못해' 라고 덧붙였을 때, 나는 다들 왜그러나 했다. 그때 내 반응은 그랬다. 


"왜 그걸 못한다고 생각해?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멀리 있어, 그러면 그 사람 사랑하면서 그냥 사는거 아니야? 그러면 그냥 누구나 다 할 수 있는거 아니야?"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이게 나라서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는 단단한 일상이 있고 나에게 이 장거리 연애는 이대로도 충분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에게도 이건 힘든 일이었다. 나는 힘들지 않았고, 그가 나를 보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나는 그냥 평생 이렇게 일 년에 한두번 너 만나면서 살고 싶다고도 얘기했었다. 그렇게 사는거 나는 좋다고. 그리고 그건 나의 진심이었다. 아직도 나의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에게 이것은 가능하고 이것은 좋다. 그러나 상대는 그럴 수 없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 없는 것 같다. 그는 내게 이별을 통보했고 그리고 그는 일상을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일 년에 한 번 만나는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으면서 사소한 걸 동시에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와 통화를 했는데, 그가 그랬다. 일상을 함께 하는게 자신에겐 너무 중요했다고.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제서야 내가 연애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이 장거리 연애가 얼마든지 괜찮고 딱히 일상을 함께 하자 않아도 역시 괜찮았다. 오히려 간혹 그와 함께 사는걸 상상했을 때 조차도 그의 옆에 붙어있고 싶진 않았다. 나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인데, 그와 함께 사는 걸 상상할 때에도 그 여행에 그가 함께는 아니었다. 그는 집에 있다가 여행에서 돌아오는 나를 맞이하는 걸로, 나는 언제나 상상을 했다. 내가 그린 그림에서는 우리가 늘 붙어있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은, 그런 나에게 하루, 한 달, 일 년, 십 년은 다른 사람에 대한 가능성이 딱히 열리지 않는다는 거였고, 상대에게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였다. 나는 이 장거리 연애가 불편하지 않은데, 그런데 이 장거리 연애가 상대에게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거였다. 그에게 다가올 무수한 가능성들을 그가 어떻게든 떨쳐내고 있는데, 그것이 힘들 거라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내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단단해서 딱히 휘둘릴 일이 없었는데, 그런데 그는 번번이 다가오는 유혹에 지쳐가고 있었던 거였다. 그에게는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나에게는 나는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은 필요가 없었다. 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상대도 같을거라고 크게 잘못 생각했다. 



나는 나타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타샤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키스를 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다른 남자랑 떠나기로 약속한 것 자체가 나타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타샤는 잘못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타샤가 그런 남자를 만난건 잘못이다. 아니 그건 잘못이라기보다 유감이다.  나타샤가 새로이 사랑에 빠진 남자가 좀 좋은 남자였더라면, 정정당당하고 싱글이었다면, 나타샤의 이 사랑이 도대체 어디가 잘못됐단 말인가. 그러나 나타샤가 만난 남자가 이 시대의 난봉꾼이라서, 어라 예쁘네 꼬셔볼까? 안되면 말고~ 하는 그런 남자라서, 이미 결혼한 남자라서 그리고 다른 예쁜 여자를 만나는 순간 나타샤 역시 내다 버릴 사람이라서, 그런 남자라서 그게 유감이다. 

우리는 젊은 시절 숱하게 잘못을 겪고 살아간다. 그 잘못들 덕에 우리는 그 다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나쁜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남들에게 다 보이는 그의 나쁜 점이 내게는 보이지 않아 나쁜 사랑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어른이 된다. 그렇지만 그건 잘못이 아니다. 나쁜 남자(여자)가 잘못한거지 그 사람을 사랑한 내가 잘못한건 아니다. 내가 나쁜 상대를 만났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랑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고, 그것이 다른 사랑을 하지 못하는 조건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타샤가 살았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아서, 그래서 나타샤는 내팽개쳐졌고 나타샤는 병이 든다. 나타샤여, 힘을 내..


일 년은 너무 길고 일 년은 너무 짧다. 

일 년은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일 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그 일이 내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됐지만, 그런데 어쨌든 찾아왔고 진행됐다면, 그러면.. 그건 그냥 내 운명에 있던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타샤에게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치지기 위해 볼콘스키라는 진지한 사랑이 등장하고, 그런데 일 년의 공백이 주어지고, 그런데 왜 난봉꾼이 갑자기 등장을 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 난봉꾼이 소냐에게 찾아왔다면 소냐는 그 난봉꾼을 사랑하지 않고 물리쳤겠지만, 문제는 이런 식의 가능성은 사실 부질없다는거다. 왜냐하면, 그 난봉꾼은 소냐가 아니라 나타샤에게 찾아왔거든. 그게 사랑의 비극이고 그게 사랑의 재미있는 지점이다. 


일 년은 너무 길고 일 년은 너무 짧다.

누군가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겐 수차례의 커다란 일들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일 년간, '자니?' 라는 물음에 반가워 응답할 수도 있지만, 일 년간, '자니?' 라는 물음에 '쉿 나 애기 깨니까 연락하지마' 라고 응답할 수도 있다. 일 년은 너무 짧고 일 년은 너무 길다. 어찌됐든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그 안에 있다. 





샌드위치나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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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2-21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재미있게 읽었어요. 톨스토이 저는 진짜 의문인 게 속에 여성 자아가 따로 있나 싶게 여성의 심리를 잘 알더라고요. 저도 나타샤에 완전 이입해서 읽었던 기억 나요. 아, 그리고....마지막 결말(스포는 안할게요) 가장 톨스토이다운 엔딩이었어요. 주말 인라인 사연 ㅋㅋ 너무 웃기네요. 캐나다와 커피 <전쟁과 평화> 너무나 어울려요.

다락방 2025-02-21 13:34   좋아요 1 | URL
아, 톨스토이 다운 엔딩이라니!! 너무나 궁금합니다. 뭘까요, 어떻게 되는걸까요. 저 이제 막 2권 끝낸 참이라 3,4 권이 남아 잇습니다. 얼른 읽고 싶네요. 너무 재미있어요! 저는 안나 카레니나 때도 그랬지만 톨스토이는 남자도 되고 여자도 되고 심지어 개도 되는구나 했었습니다.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2-21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보장 하시더니, 역시나 재밌군요!! 일년이란 시간에 온갖 일이 일어날 수 있겠죠 정말..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하는 쪽이라서, 장거리 연애는 못했을 것 같아요 ㅜㅜ 모든 걸 함께해야 되는 건 아닌데,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고 손잡고 싶을 때 손 잡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전쟁과 평화 재밌는 소설이었군요.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안 났는데 ㅎㅎ 다락방님의 다음 재미난 글도 기대합니다!!

다락방 2025-02-26 10:43   좋아요 2 | URL
전쟁과 평화는 여러모로 아주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지금 4권을 읽고 있는데 톨스토이 정말 여러 방면으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구나 싶고요, 캐릭터도 정말 다양합니다. 언젠가는 꼭 읽기를 권합니다, 독서괭 님!

사실 일년이 아니라 이틀이어도 뜻밖의 일은 생기기는 하죠. 하루만에도 가능한데 무려 일년이라뇨. 아무 일도 없기가 더 힘든 시간이 아닐까 싶어요.

햇살과함께 2025-02-22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실눈 뜨고 봤네요. 궁금하지만... 전쟁과 평화 얼른 읽어야겠네요.

다락방 2025-02-26 10:43   좋아요 2 | URL
햇살과함께 님! 전쟁과 평화 너무나 재미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얘기하는 전쟁도 사랑도 죽음도 모두 다 흥미진진합니다!!

관찰자 2025-02-24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읽어봐서 정확히 톨스토이 선생이 어떻게 여자도 되고, 개도 되는 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하루키 한창 읽을 때, ˝하루키는 여잔가? 어떻게 이렇게 여자의 심리를 다 아는 것처럼 글을 쓰지?˝ 했던 기억이 있는데,
약간 그런 느낌일까요?
다락방님 리뷰를 읽어보니 <전쟁과 평화>는 전쟁이야기일까? 사랑이야기일까? 궁금해져서 더는 못 참겠어요>.<

다락방 2025-02-26 10:44   좋아요 1 | URL
전쟁과 평화는 전쟁이야기이며 사랑이야기이며 살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톨스토이가 얘기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즐겁게 읽힙니다. 읽어보세요, 관찰자 님!!

단발머리 2025-02-2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1권 읽고 멈춤한 상태라 ㅋㅋㅋㅋㅋㅋ (어떻게 멈췄는지 묻지 말아주세요) 다락방님 이 페이퍼 나중에 읽으려고 ‘좋아요‘만 누르고 안 읽었는데 여태 궁금해서 읽었는데 읽기를 잘한거 같아요.

저도 다락방님이랑 비슷한데 나타샤가 사랑에 빠진 건 문제가 안 되는 거 같아요. 일년은 엄청 긴 시간이고,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건 예상할 수 없을테니깐요. 요는 난봉꾼인데, 그니깐 그 남자가 진심이 아니었다는데 문제가 있겠지요. 전... 안 읽은 사람으로서,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래서 조심해~!‘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 락방님 페이퍼 읽고 나니 저도 읽어야겠다, 하지만 시간이 좀 많이 필요하겠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전 문학동네 판으로 1권만 읽었습니다.

위에 블랑카님이 댓글에 ‘캐나다와 커피 <전쟁과 평화> 너무나 어울린다‘고 하셨는데, 완전 동감입니다.
행복한 인생에는 역시나 러시아소설, 역시 커피, 배경은 캐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27 07:46   좋아요 1 | URL
저 전쟁과 평화 다 읽었어요!! 만세!!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래서 조심해!˝는 아니고요, 전쟁과 역사적 사건들 모두에 있어서 같은 시점을 가지고 있는데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해서 그 일이 그렇게 되었다기 보다는 모든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맞물려서 그 일이 그렇게 된것이다, 라는 거거든요. 나타샤가 난봉꾼을 만난건 안타깝지만, 그런데 사랑하는 남자를 보지 못하는 시간이 길었고, 마침 그 참에 새로운 남자가 다가왔고, 그런데 그 남자는 육체적으로 들이밀고 그래서 아프고... 하다가 4권에 이르러 나타샤를 만나게 되면, 아아 일은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이로구나.. 싶거든요. 하여간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물었지만 빅토르 위고 쪽이 저는 더 좋습니다. ㅋㅋㅋ

행복한 인생에 뭐 있겠습니까, 친구와 맛있는 것과 책과 캐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5-02-2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나타샤 힘 내!!! 저도 저 부분 읽을 때 그랬어요, 안드레이 너가 1년 유예기간 가지자 했잖아!! 하면서요. 마음이 떠날 수도 있다고까지 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게다가 나타샤는 한창 나이 아닌가요. 말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기고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날 나이인데... 아나톨 나쁜노무스키!! 저는 3권이 제일 좋았어요. 안드레이를 제일 좋아했거든요. 나타샤도 너무 매력적이지만 이상하게 저는 안드레이가 무척 좋았어요 ㅋㅋㅋ 톨스토이는 정말... 대단한 작가예요!!

다락방 2025-02-27 07:48   좋아요 1 | URL
마지막 에필로그 보면 니콜라이랑 피에르랑 언쟁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피에르는 혁명해야 한다고 하고 니콜라이는 나라가 부른다면 나는 너도 죽일 수 있다! 고 하는데, 그렇게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잘 써낸 걸 보면 톨스토이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음 저는 니콜라이가 농노들과 함께 일하고 영지 관리하는게 좀 좋더라고요. 무릇 윗대가리라면 그런 정신을 가져야 하는게 아닌가 싶고요. 그들이 잘 살아야 결국 나도 잘산다, 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톨스토이 소설에서는 그 누구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안나 카레니나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사실 그 누구도 애정하지 않았는데 전쟁과 평화도 재미있지만 어느 캐릭터가 딱히 좋지는 않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 읽었다, 만세만세!!

잠자냥 2025-02-2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니…?

다락방 2025-02-28 18:00   좋아요 0 | URL
어디갔다 이제와요.. 🥹
 

사실 여행지에서 먹었던 것에 대해서는 투비에 쓰곤 했었는데,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알라딘에 쓰는게 예의일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언젠가의 내가 이걸 먹어보고 싶다고 썼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크로크 마담. 기억하는 분 계실런지..


그 당시 썼던 페이퍼는 여기 https://blog.aladin.co.kr/fallen77/12855414


그러니까 2021년, 나는 내 사랑 잭 리처를 읽었다. 리 차일드의 [퍼스널] 이었다. 잘 먹고 신체 건강하고 윤리 감각 바로 잡힌 우리의 잭 리처는 그 날, 크로크 마담을 주문해 먹었다.




일단 커피가 급했다. 큰 포트 째로 부탁한 뒤, 햄과 치즈를 넣은 토스트 위에 계란프라이를 올린 크로크 마담과 쌉쌀한 초콜릿 스틱이 들어간 사각형의 크루아상, 팽 오 쇼콜라 두 개를 주문햇다. 아침식사로는 약간 부담스러운 분량일 수도 있겠지만 내 위장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전자책 中





그간 크로크 무슈는 먹었었는데 바로 저 때, 나는 크로크 마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뭐야, 크로크 '마담' 이 있어? 그렇게 나는 부랴부랴 검색을 해보았다.



사진은 좀 보잘것없게 나온 것 같은데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잭 리처도 먹었던 크로크 마담, 나도 먹어보겠다 벼르고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싱가포르에 가서 무얼 먹어볼까나~ 하면서 여행 책자를 보았는데, 다른건 이미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서 먹어본 것들이었지만, 그래서 흐음, 역시 카야토스트랑, 락사랑... 하다가 아앗, 크로크 마담이 여행책자에 있는게 아닌가! 뭐라고? 여행책자에 브런치로 소개될만큼 싱가포르에서는 크로크 마담이 대중적인거야? 좋았어! 바로 지금이다, 바로 지금, 내가 크로크 마담을 먹어볼 그 때야! 


그렇게 나는 둘째날 이른 아침에 달린 후 새우누들을 먹다 남기고(응?)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한 후에 집에서 가져온 누룽지에 물 부어 먹고(응?) 나갈 준비를 한 뒤에 가방 싸들고 나가서, 가만 있자 이 크로크 마담 파는 까페가, 어머 ㅋㅋㅋ 호텔 앞에 있네? 하면서 씐이 나서 까페로 갔다. 그리고 포부도 당당하게 크로크 마담을 주문했다. 커피와 함께. 샤라라랑~







껄껄.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사실 저 방울토마토도 다 먹으려고 했는데 하나 먹으니까 확 비린 거다. 그래서 더 먹지 못하고 이렇게 두 개 남긴채로 접시를 깨끗하게.. ㅋㅋㅋㅋㅋ 드디어 먹어봤다 크로크 마담! 잭 리처가 먹었던 크로크 마담, 나도 먹었다. 만세!! ㅋㅋㅋㅋㅋ


가만있자, 그런데 크로크 마담 너무 비쌌고, 커피 양도 적어서 다 먹었고.. ㅠㅠ 나는 책 좀 읽다 갈건데.. 해서 카푸치노 한 잔을 또 주문했다. ㅋㅋㅋㅋㅋ 책 좀 읽다 갈거라니까?




어제는 직장 동료로부터 초콜렛과 함께 엽서를 받았다. 거기에는 '단순 직장동료에 그치지 않고 조금 더 가까운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동료와 함께 어제 양꼬치에 소주를 먹었는데, 경장육슬을 주문하자 이런거 처음 본다고 너무 맛있다며 이렇게 또 모르던 거 하나를 알게 된다고 좋아했다. 그리고는 집에 가는 길, 너무너무 즐겁다고 했다. 집에 가서는 너무너무 재미잇었다고 또 문자를 보내왔다. 나보다 스무살 어린 후배한테 조금 더 가까운 인연이 되고 싶다고 엽서 받는 그런 여자 어떤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여간 멋짐이 터져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렇지만 소주에 칭따오까지.. 초큼 피곤하네...  그나저나 술 마시느라 2월에 읽어야 할 책들의 진도가 안나가고 있어. 발등에 불떨어졌다. 얼른 읽어야지, 부지런히 읽어야지. 


다른 여행 이야기는 투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샤라라랑~


https://tobe.aladin.co.kr/n/317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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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2-1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맛있어 보인다. 특히 저 진한 커피.. 맛있었어요?
뭐야 다락방 발렌타인데이 고백받은 거야? ㅋㅋㅋㅋㅋ
20대의 다락방은 그 시절 만난 남자들이 모두 가난하여 ㅋㅋㅋㅋ 경장육슬을 알지 못했는데 그동안 내돈내산으로 많은 경험(특히 음식 부분)을 쌓아 그 경험을 현재 수많은 이대녀들에게 전수하며 가까운 인연이 되길 바라는 멋짐 터지는 여성이 되었군요.

다락방 2025-02-20 09:17   좋아요 0 | URL
저는 잠자냥 님처럼 그 커피 자체의 어떤 풍미 같은걸 잘 느끼지는 못하는 사람이지만, 카푸치노는 맛있었고요 저 진한 커피는.. 진한 커피였습니다! 그런데 이 까페가 유명한 까페여서 어쩌면 맛있는 커피였을지도.. 하하하하하.

20대의 다락방이 만난 남자들이 죄다 가난했지만 40대의 다락방이 만난 남자들도 가난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제가 벌어서 제가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인데, 그런데 저보다 돈 많은 남자를 만나본 적 없는 이 슬픈 이야기... 그러므로 남자를 만나지 않는게 남는 장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하튼 제 경험은 제가 합니다. 빠샤!! 젊은 여자들이 기다려, 내가 다 경험하게 해줄게!!!!!

blanca 2025-02-1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푸치노, 크로크 마담, 전쟁과 평화의 조합 캬... 그리고 스무 살 어린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운 인연이 되자는 고백까지..완벽하네요.

다락방 2025-02-20 09:15   좋아요 0 | URL
삶은 순간순간의 완벽함으로 연속되는 것 같습니다. 후후후후훗. 다 너무 좋아요. 맛있는 음식, 책, 좋은 사람. 샤라라랑~

망고 2025-02-1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장육슬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 봤어요ㅋㅋㅋ 크로크 마담과 커피와 책과 스무살 연하한테 고백받는 멋진 다락방님😆 저도 맨날 맛있는 거 사주는 멋진 여성이 주변에 있으면 당장 고백할텐데요ㅠㅠ 그러고보니 엄마한테 고백해야지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20 09:14   좋아요 2 | URL
아하? 경장육슬은 주문했을 때 실패하지 않는 음식중 하나입니다. 저 때문에 처음 먹어보게된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더라고요. 그냥 생야채 건두부에 싸먹는건데 이게 뭐라고 맛있어? 막 이럽니다. ㅋㅋ 나중에 한 번 도전해보세요!!

그리고 망고 님, 엄마한테 고백하시는 거 절대 찬성입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2-20 09:54   좋아요 1 | URL
경장육슬 징짜 맛있어요! 망고 님도 분명 좋아할 겁니다!!!
양꼬치 먹을 때 곁들이기 좋은 메뉴~!!

망고 2025-02-20 10:56   좋아요 0 | URL
먹어보겠습니다😋

독서괭 2025-02-21 15:23   좋아요 0 | URL
저도 경장육슬 안 먹어봤어요!! 기억해두렵니다.

관찰자 2025-02-1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페이퍼를 읽다가
링크를 타고 가지도 않았는데,
2021년에 다락방님이 쓰신 잭리처와 크로크 마담 이야기가 기억이 나서
깜놀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로써 크로크 마담은 또 한번 유명세를 타는 군요. ㅋㅋ
존재조차 몰랐는데(빵을 안좋아함),
먹고 싶다.>.<

다락방 2025-02-20 09:14   좋아요 0 | URL
저는 확실히 고기 들어간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햄과 치즈요. ㅋㅋ 요즘엔 잠봉뵈르 샌드위치가 너무 맛있어서, 이거 프랑스에서 먹으면 얼마나 더 맛있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프랑스 가게 된다면 잠봉뵈르샌드위치 먹어봐야겠어요. ㅋㅋ 맨날 먹을 생각만 하고.. ㅠㅠ
친구가 ‘왜 너는 여행가면 인스타에 먹을거 사진만 올려? 풍경도 좀 올려! 난 풍경 보고 싶단 말이야!˝ 하는데, 그러고보니 저는 풍경 사진을 안올리는... 죄다 음식 사진만 올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25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행 때, 싱가폴에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 책을 가지고 갔습니다만 너무 할일이 많아서(걷고 먹고 걷고) 책을 펴보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크로크 마담도 못 먹어봤구요. 다시 한 번 싱가폴 여행을 결심합니다^^

고백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페이퍼로 써주시기를... 이런 에피소드 소듕합니다!!

다락방 2025-02-20 09:12   좋아요 1 | URL
껄껄.. 저도 여행갈 때마다 책을 여러권 챙겼는데 제대로 읽고 온 적이 없어서 최근에는 욕심을 줄여 두세권 정도만 가지고 가거든요? 그런데 한 권도 제대로 못읽고 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먹고 걷고 먹고 걷고 자고.. 하느라 읽을 시간이 없어요. 하하하하하. 그렇다면 책을 안가지고 가면 될텐데 기어코 무겁게 들고 가고야 마는 ... 하하하하하.

고백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뭐 더 할 건 없고요 ㅋㅋ 양꼬치에 소주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단발머리 님 얘기도 잠깐 했어요. 내 친구가 여기 데려왔는데 양꼬치 정말 맛있게 잘 먹더라고! 하면서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5-02-2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크 무슈만 알았지 저도 마담은 첨 들어봐요!! 맛있어 보여요!!
스무살 어린 후배가 더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선배는 대체 어떻게 해야 될 수 있는 건가요? 부럽다 부러워.. 역시 다락방님 매력 터지네요. 나에게도 다락방님 같은 선배를 달라!!

다락방 2025-02-26 10:55   좋아요 1 | URL
으 갑자기 크로크 무슈 먹고싶네요. 그렇지만 싱가폴에서의 크로크 마담은 너무 비쌌어요! 다른 곳에서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먹어보고 싶습니다. 의외로 유럽 이나 미국이라면 좀 저렴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러면 저는 또 유럽에 가야할까요?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5-02-2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크 무슈는 먹어봤습니다만 ^^

다락방 2025-02-26 10:55   좋아요 1 | URL
흐흐 저도 크로크 무슈에 더해 이제 크로크 마담까지 먹어본 사람이 되었습니다!! ㅋㅋㅋㅋㅋ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 가끔 일기를 쓰는데, 최근 쓴 일기에 누군가 댓글로 <샬라샬라> 라는 예능을 추천해주었다. 보통 예능에 대해선 관심이 1도 없는 나이지만, 아니 세상에 중년 아재들의 2주간의 어학연수를 보여준다는게 아닌가. 오오??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는 싱가폴에 혼자 가는 거였고 밤에 숙소에서 보면 되겠다 싶어서 유료로 구매를 했다. 히융.. 제가 구독하는 ott 로는 볼 수가 없더라고요.. 히융..




와 그런데 정말 내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지금 현재 2회까지 방송했는데,

영국 캠브리지로 2주간 어학연수를 떠나는 이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52 세라고 한다. 성동일, 장혁, 김광규, 신승환, 엄기준 이 영어 공부하러 떠나는데, 다들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나 장혁의 경우 개인 과외도 많이 받았었다고 한다. 신승환은 자녀들 영어 교육 시키면서 자기도 지금 공부하고 있다고 했고. 신승환은 그래서 토익도 계속 보고 있는데 자꾸 점수는 떨어진다고 했다. 여하튼 이들이 캠브리지에 있는 어학원에 가기 위해서 반편성 레벨테스트를 봤는데 필기에서는 100점 만점에 성동일이 8점으로 꼴찌였다.


이들은 영어를 못한다. 그나마 잘하는 사람이 장혁인데 장혁도 문장에 the 를 수시로 넣는다. 이건 무슨 습관 같은데, 단어 앞에 일단 무조건 the 를 넣고 보는 것 같았다. 하여간 이 다섯명이 런던 히드로 공항에 내려서 숙소까지 찾아가야 하는데 영어를 잘 못하는 바람에 길을 물어봐도 현지인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너무나 힘들게 네 시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은 학교에 입고 갈 잠바도 다같이 구입하고 밥도 해먹고 하다가 드디어 월요일이 되어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스피킹 테스트에서도 다들 제대로 말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답답해하기도 했다. 김광규는 말은 해야겠고 그런데 못하겠고 하다보니 답답한 마음에 자꾸 한국어가 튀어나왔다. 내가 볼 때는 다들 비슷한 실력인것 같았는데 성동일과 김광규는 초급반으로 장혁, 신승환, 엄기준은 중급반으로 배정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클래스에서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등 다른 국적의 학생들과 영어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어학연수를 가고 싶어서 알아보았을 때 나는 한달짜리 프로그램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내 생각은 '한 달 가서 무슨 공부가 돼?' 였다. 그거.. 그냥 놀러가는 거 아닌가? 어떻게 한달동안 공부하고 온다는거야? 그게 돼? 하는게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에서는 이탈리아로 어학연수 일주일 가는 사람도 있었고, 영화 <굿모닝 맨하튼>에서도 일주일인가 이주일 짧게 어학연수를 받는게 나오지 않았던가. 스페인 어학연수도 검색해보면 한달짜리 들이 있다. 한달.. 이게 된다고?


그런데 <살랴살랴>를 보니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선생님들이 반의 레벨에 맞추어서 수업을 이끌어가는데 무조건적으로 다 영어로 하기는 하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발음해주고 무조건 말하게 시키는거다. 물론 영어를 못하니까 그마저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아 멤버들은 옆 사람이 교과서에서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보기도 하고 선생님의 특별 지도를 받기도 하면서 이 수업들을 해내가지만, 오, 이거 되겠다 싶은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동일의 다크서클이 진해지고 김광규의 낯빛도 어두워지지만, 오 되겠는데? 2주로 확 영어 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주 후에 이들이 어떻게 변할지 너무 궁금해지는거다. 나이가 많다보니 김광규는 집에서 복습을 좀 할래도 노안 때문에 잘 안보여가지고 힘들어하지만... ㅠㅠ 오, 될 것 같은거다. 과연 이 프로그램이 끝날 때 이들은 얼마나 많은 발전을 이뤘을까. 너무 궁금해지는거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나에겐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성동일과 엄기준 이었다.

성동일의 경우 레벨테스트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현지에서 사람들과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다. 모르면 일단 아는 단어 총 동원해서 사람들에게 묻고 답을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일단 부딪혀보는 성격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은거다. 그런데 성동일에게서 인상적이라고 느낀건 그런 성격이 아니라 그의 삶이었다.

성동일은 가난한 무명 생활을 거쳤고 그에게 그의 가족은 가장 소중한 존재들이다. 성동일은 비록 영어를 못하고 그래서 이렇게 배우러 왔지만, 성동일의 자녀들은 자유자재로 영어 구사가 가능하다고 한다. 큰애가 16살 둘째가 13살 막내가 몇 살이더라..하여간 둘째의 경우는 영국에서 안가본데가 없다고 한다. 자녀들은 십대에 영어를 마스터하게끔 뒷바라지 해줬지만 정작 자신의 배움은 이제 시작이라는거, 아니 그나마 그것도 프로그램 때문에 이렇게 본격적 영국에서의 배움이 시작되었지, 만약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내가 모르긴 하지만, 아마 성동일의 영어 배움은 진행되지 않았을 것 같은거다. 나는 잘 말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내 자식들은 잘 말하게 하는 그 부모 특유의 정서가 그에게서 느껴지는거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고 그리고 아니 에르노 생각도 났다.


성동일은 영국으로 떠나기전 인터뷰에서 '우리 때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A B C D 를 배웠다'고 말했다. 

나도 그랬다.

나의 경우에도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알파벳을 배웠고, 내가 알파벳을 배우고 외운건 중학교 때였다. 나는 소문자의 존재도 중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그런 내게 Good Morning 이 도대체 왜 '굿 모닝'으로 발음되는건지는 너무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중학교 입학전에 과외를 좀 하고 들어온 애들은(많지는 않았다) 이걸 읽을 수 있었고, 누군가의 필통에서 저 글자를 보고 '이건 굿모닝 이잖아'하는 걸 듣는 순간,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나는 도무지 이 글자를 그리고 이걸 읽는 그 아이를 무엇보다 이걸 읽지 못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몇 번 얘기했지만 한글을 좀 빨리 익혔다.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미 한글을 알고 온 아이는 거의 없었고, 입학 전부터 글씨를 읽는 내가 신기해 동네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이 '너 진짜 읽는거니? 이거 읽어봐' 하고 책이나 신문을 들이민적이 수차례였다. 나는 엄마와 친척집이나 이웃집에 방문하면 엄마가 그집 주인과 얘기할 때 그 집 돌아다니면서 보이는대로 책을 꺼내 보곤 했다. 피아노 선생님 집에 놀러갔을 때도 책을 구경하고 꺼내 읽고 그랬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는 책이 없었거든. 하..그런데 지금 책더미에 갇힌 내가 되었네...(잠깐 눈물을 닦자).


국민학교 때의 나는 여러가지 의미로 잘난 아이었고 그래서 중학교에 갔을 때 '걔가 너야?'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랬다. 국민학교때 잘났던 나였다. 그런데!! 굿모닝을 이해하지 못했고 아이 엠 인수를 모르겠는거다. 아 또 눈물이 나려고 하네.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엄마가 헌책방에서 사준, 표지도 없는 영어 참고서를 들여다보면서 I am Insu 가 왜 나는 인수인지를 모르겠어서 그 문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울었더랬다. 이게 왜 나는 인수야 ㅠㅠ 나는 모르겠어 ㅠㅠ 나는 정말로 중학교때 '나는 인수다'를 몰라서 울었다. 영어 시간이 지옥 같았다. 선생님은 father 와 thank you 에서의 th 발음이 다르다고 칠판에 쓰면서 설명하시는데, 그 말 자체가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거다. 발음기호.. 뭐에요? 알파벳을 이제 겨우 다 외운 나에게 스펠링, 발음기호, 단어.. 등은 너무나 어려운 것들이었고 그걸 읽는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부지런히, 선생님이 문장 읽어즐 때 그 단어들 밑에다가 한글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써야했다. 그래야 따라읽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질문할 때마다 곧잘 대답하곤 하는 애가 너무 부러워서, 어느날은 그 아이에게 가 묻기도 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해? 라고. 그러자 그 아이는 '나 과외 해.' 라고 말했다. 나는 집에 가 엄마에게 '엄마, 나도 영어 과외시켜주면 안돼?' 물었더랬다. 엄마는 그건 할 수 없다고 했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참고서를 붙들고 한참을 쳐다보다 잠들어야 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나는 이 모든 단어와 문장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영어 선생님은 무섭기까지 했다. 나는 영어가 싫었고 무서웠다. 정말 너무나 끔찍했다. 


그런데 친구가 가진 중학생용 영어 사전을 알게 되었다. 그 사전에서는 단어를 찾으면 어떻게 읽어야 되는지 한국어로도 써져있더라. 나는 엄마를 졸라 그 사전을 샀고 그래서 교과서 단어들을 찾아 그 발음들을 써넣었다. 정말 간신히, 간신히 영어 수업시간에 맞지 않으면서(?) 버텨나갔다. 간신히, 간신히. (김광규는 영어 시간에 선생님에게 맞아서 영어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다.) 세상 똑똑한 줄 알았던 내가 세상 똥멍충이로 영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정말 비참했다. 모르는채로 멍청한채로 보낸다는게 너무 비참했다. 학교 가기가 너무 싫었고 영어 수업 시간이 너무 싫었다. 나의 화려한 시절은 영어 때문에 한순간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잘났던 나여, 안녕.....


그러다 영어 선생님이 전근을 가시면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여선생님이 오셨고 이 선생님은 전혀 무섭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 놓고 영어를 포기했다. 영어 점수는 그전보다 더 떨어졌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이제 마음 놓고 영어를 포기해도 된다! 선생님이 질문하고 일어나서 대답을 해야 하는데 그게 내 차례가 되면 나는 그냥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모르겠거든. 그러면 선생님은 그냥 앉으라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게 앉는 내 자신은 너무나 쪽팔렸다. 하... 내 영어 역사를 얘기하려고 했던게 아닌데... 이렇게 또 길게 하소연하게 되어버렸네.


그렇게 영어를 무섭고 싫어하는 나인 채로 중학교 시절을 그리고 평생을 보낼 줄 알았는데, 오, 이 젊은 여선생님이 나를 구원하셨으니, 아아, 나에게 꼭 맞는 맞춤 학습법을 선생님으로부터 배웠네. 선생님은 어느날 팝송 가사를 칠판 가득 적으시고 커다란 라디오를 가져와 그 노래를 틀어주신거다. 해석도 해주셨다. 와, 가사를 보면서 팝송을 들으니까 가사가 들리잖아요? 무슨 말인지 몰라도 칠판을 보면서 따라 부를 수가 있잖아요? 이걸 반복하니까 외워지잖아요? 이것이야말로 신세계다. 게다가 그즈음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가지고 ㅋㅋㅋ 맨날 집에서 비디오 두새개씩 빌려다 보는 바람에 ㅋㅋㅋㅋ 영화에 흥미를 갖게 됩니다. 온갖 유명한 영화를 다 봐버려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화들 까지도 막 빌려와서 보게 되고 ㅋㅋㅋㅋ 아무튼 그러다가 나는 영화에 나온 팝송을 외우게 되고 단어 실력이 월등히 올라가며 듣기평가 점수도 계속 만점을 받게 되고 ㅋㅋㅋㅋㅋ중학교2학년 때는 외삼촌이 붙들고 앉아 두꺼운 영어사전 맨 앞의 발음기호 나와있는걸 가르쳐주어서 달달 외워가지고 이제 한글로 써놓지 않아도 단어도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무럭무럭 성장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영어과목인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발음도 해석도 완벽해! 영어 선생님 해라!!' 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문법책 한 권 보지 않고 그런 말을 들었다. 인생역전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수능 점수로 대학 원서 써야했을 때 영문학과 가고 싶다는 나에게 선생님은 "너 영문학과 쓰면 대학 떨어져" 라고 하셨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다시 원래 하려던 얘기로 돌아오자.


몇해전 엄마 아빠를 모시고 남동생과 괌으로 여행을 갔었다. 남동생과 나는 짧은 영어로 길을 묻고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차를 렌트했다. 영어를 전혀 모르시던 아빠는 이 낯선 나라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크게 당황하고 화도 내셨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엄마에게 "우리 애들은 어떻게 저렇게 영어를 잘하게 됐지" 하며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셨다. 아빠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데 아빠의 자식들은 영어로 길을 찾고 있었다. 엄마는 영어를 못하는데, 엄마의 딸은 영어로 길을 찾아 엄마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 일이 좀 마음을 아프게한다. 이걸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게 마음이 좀 아프다. 내가 결국 엄마 아빠보다 영어를 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선 분명 부모보다 더 나은 자식이 된 것 같지만,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그 부모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 성동일을 보는데 그런 내가 생각나는 거다. 영어라는 외국어를 통해 부모보다 더 나은 계급으로 편승해버린 일이랄까. 


성동일은 자신의 둘째에게 전화를 해서 영어 때문에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고 얘기하고서는 런던에 왓는데, 너는 런던 와봤지? 물으니 성동일의 둘째는' 나는 영국(에 있는 도시) 다 가봤지', 하는거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떻게 너는 십대인데 영국의 곳곳을 다 가보고 영어를 마스터할 수 있게 되었니? 그건 너에게 그걸 지원하는 아빠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걸 잊어서는 안돼.




그를 멸시한 세계에 내가 속하게 되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요, 심지어는 그의 삶의 이유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p.127)











나는 못하지만 내 자식은 잘한다. 나는 못하지만 내 자식은 잘해, 라는 그 정서.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거 아닐까. 자신의 자녀가 영어를 잘한다는 자부심, 자랑스러움을 안고, 그러나 영어를 못하는 성동일이 이제 자신의 영어를 배우려고 한다. 2주간 그가 배우게 될 영어가 확실히 늘어도 자녀만큼 잘하게 되는 일은 아마 힘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고 익히는 것은 즐겁지 아니한가. '내 자식은 영어를 잘해' 를 넘어서 그 자신도 할 수 있게 되는건 얼마나 좋은가. 배움은 할 수 있다면, 물론 힘들겠지만, 나이 들어서도 이어지는게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엄기준도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실 엄기준의 연기를 내가 본 일이 거의 없기는 하다. 내가 텔레비젼을 잘 안봐서.. 예전에 무슨 시트콤에서 봤던게 전부인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짧게 본 것만으로도 엄기준은 좀 지적으로 보였던 터다. 영어를 못해서 어학연수 하러 가야한다는 이 자리에 나온게 좀 의아한 사람이랄까. 그런데 엄기준은 정말 영어를 못했다. 이 영어를 못함이 영어의 지식이나 실력 탓이라기보다는, 성격 탓으로 내게는 보였다. 그리고 그 점이 정말 의외였다.


많은 연예인들이 대중 앞에 서야하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성격도 파워 E 일거라고 짐작하게 되지만, 그러나 아주 많은 연예인들이 극도로 내성적임을 밝히곤 한다. 촬영이 없을 때면 집에만 있어야 한다, 사람들 만나면 기가 빨린다는 얘기를 하는 연예인들을 곧잘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와 연예인이라는 거는 정말 철저하게 직업이었던 거구나, 자기 정말 성격은 이렇게 내성적인데도 사람들 앞에서는 잘만 하네, 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엄기준이 딱 그런 케이스 같았다. 아예 못알아듣는게 아닌 것 같은데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그가 의외였다. 수업 시간에 다른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데, 혼자 떨어져서 빙빙 돌기만 하는거다. 다른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하는 일이 그에겐 퍽 어려운 일로 보였다. 게다가 그걸 영어로 해야 해? 그에게는 그게 정말 어려운 일로 보였다. 뮤지컬도 하는 사람이, 유명한 드라마에도 곧잘 나오는 사람이, 그런데 저렇게 조용하고 내성적이라니. 이게 정말 인상적인거다. 결국 선생님의 도움을 재차 받아가며 어느 틈에 다른 학생들에게 질문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래서 엄기준이 채운 질문과 답의 양은 다른 학생들보다 적었다. 아마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기까지 속도는 좀 느리겠지만, 일단 말을 걸게 되면 엄기준은 영어가 빨리 늘지 않을까? 내 성격은 성동일에 더 가깝기 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걍 일단 던져보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동일이 영어를 잘 못하는 채로 말 거는 거에 대해서는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엄기준을 보면서는 실력은 성동일보다 좋은것 같은데 좀처럼 다가가지를 못하네? 확실히 사람들앞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과는 구분되는 것인가... 하고 관심있게 지켜보게 된다. 성격이란 무엇인가...


아, 이것말고도 할 얘기가 많은데... 싱가폴 다녀온 얘기도 해야하는데.. 페이퍼가 너무 길어지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그리고,

책을 샀다.



어제 올렸어야 되는데, 아휴 너무 바빠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토요일에 싱가폴 달리기 얘기는 썼으니까 다들 그거 읽으셔유...


지난 주에 산 책은 딸랑 두 권. ㅋㅋ 목요일에 싱가폴 가느라 책을 덜 살 수 있었다. 아니면 여기에 몇 권 더 추가됐을거야. 껄껄.
















[교회 옆 미술관]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너무 기대된다. 보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좋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언어의 요가] 역시 좋을 것 같다. 언어에 관심이 많다. 결국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씨발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너무나 명확하게, '씨발년을 말하는 사람' 이다.  그걸로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 여러가지 의미로 나는 언어에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요가에서 'asana' 는 영어에서의 'pose''를 뜻한다. '사바 아사나' 는 송장 자세, '브릭샤 아사나'는 나무 자세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사나 앞의 저 단어의 뜻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사바, 는 송장이란 뜻이겠구나, 브릭샤는 나무란 뜻이겠구나, 하고. 이런 거 너무 재미있지 않나. '트리코나 아사나'는 삼각 자세인데 '파리브리타 트리코나 아사나'는 변형된 삼각 자세이다. 그렇다면 트리코나 는 삼각형, 파리브리타 는 변형이란 뜻이겠구나, 할 수 있다.


재미있지 않나요?


게다가 요가의 언어는 발음의 묘미도 있다.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 라고 선생님이 다운독 자세를 주문하면, 그 자세를 따라 하면서 나도 역시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 하고 속으로 읊게 된다. 언어에 관심이 많고 요가의 언어를 사랑한다.


지금 내가 구입한 이 책은 그러나 반다, 조절, 마음, 의존 등등의 언어에 대해 얘기하는 것 같다. 읽어봐야지.



자, 이렇게 긴 페이퍼를 마칩니다. 우리는 내일 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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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2-18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8점 성동일에서 아니 에르노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 ㅋㅋ
아 저런 프로그램이 있군요?
성동일이 엄기준보다는 금방 실력이 늘 것 같기는 해요.
성동일은 회화 실력이 엄기준은 독해 실력이 더 먼저 늘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엄기준 같은 성격이라 영어로 말하는 거 극도로 싫어하거든요. ㅋㅋㅋ(차라리 영어 책을 읽겠노라)
예전에 친구들하고 터키 갔을 때 거기서 터키에 사는 친구를 만났어요(같이 여행 간 친구의 유학 시절 친구), 그때 같이 여행 간 제 친구들은 다 영어를 잘해서(다들 영문학 전공 ㅋㅋㅋㅋㅋㅋ) 다들 그 터키 친구랑 한국말로 하듯이 대화하는데.. 전 그냥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아니 이런 일이!! 그 친구랑 저 딸랑 둘만 남겨진 상황이 생긴 거예요!
와.. 진짜 그 서먹함 ㅋㅋㅋㅋㅋㅋㅋ 터키 친구는 제게 여러 가지로 말을 거는데(제가 또 다 알아듣긴 함) ㅋㅋㅋㅋㅋ 저는 답을 다 단답형으로 하니까 ㅋㅋㅋㅋㅋㅋㅋ 결국 그 친구가 대화 포기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 시간은 곳통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님은 성동일스러워서(엥?ㅋㅋㅋㅋㅋㅋ) 금방 늘 거 같아요.
참 다락방 님이 말한 저 중학생용 영어사전 ㅋㅋㅋㅋ 저도 그거 썼어요. 그 시절 저의 소중템 ㅋㅋㅋ

다락방 2025-02-18 10:09   좋아요 2 | URL
바빴어요? 나 토요일에도 페이퍼 썼는데... (시무룩)

잠자냥 2025-02-18 10:14   좋아요 1 | URL
토욜엔 작업실 출근 안 하자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18 11:46   좋아요 1 | URL
엄기준이 진짜 딱 단답형으로 하더라고요. 뜻 통하는 단어만 해요. 게다가 먼저 말거는건 절대 안하고요. 연기자라는 건 그에게 철저히 직업이고 일이었구나 싶더라고요. 그 점이 참 흥미로웠어요. 일을 할 때는 다른 성격이 나온다는 지점이 말이죠. 제 경우엔 일을 하나 친구를 만나나 여행을 다니나 다 똑같은 성격인데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저도 영문학 전공하고 싶었지만, 영문학 원서 쓰기엔 점수가 안된다고 ㅋㅋㅋㅋ 사람들 지원 잘 안하는 과에 써야 된다고 해서.. 담임 선생님 말을 듣고 ....... 대학생은 되었지만 결국 대학생활에 흥미를 전혀 붙이지 못하는 그런 학생이 되었습니다. 다 지난 일입니다. 버리고 싶은 내 20대... 흠흠. 그렇지만 뭐 중년 되어서는 잘 늙고 있으니까요. (응?) ㅋㅋㅋ 잠자냥 님 같은 친구도 만나고. 인생 개꿀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5-02-18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전히 영어가 고민이고… 저는 이게 더 부끄러워야 할 상황인지라 더 부끄럽고요ㅋㅋㅋㅋㅋ 요즘 공고 찾아보면서 이력서 쓰는 시즌인데 ‘영어능통자’를 찾더라구요. 언제 능통해질것인가. 능통해지기는 할 것인가. 그런게 고민…

전… 제가 보기에(락방님과 원서모임 1년반 이상 기경험자) 락방님은 환경이 열리면 금방 영어실력이 늘거 같아요. 일단 고등학교때 영어쌤께 그런 코멘트를 들었을 정도로 기초가 탄탄한거고요. 성격이 성동일 부럽지 않은터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친해지면서 구체적으로는 바로 친구(애인도 좋음) 사귀면서 영어 실력 폭발!
이 프로 저도 봐야겠어요. 계속 여기저기 다니느라 틈이 없었답니다ㅋㅋㅋㅋ

다락방 2025-02-18 11:50   좋아요 1 | URL
영어는 왜 우리에게 이렇게 오랜 시간 고민인걸까요?
그리고 영어 능통자는 또 왜그렇게 많은가요? 저 프로가 좋았던 건 요즘 티비 틀면 영어 능통자 너무 많이 나오는데 저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영어 못하는 자신을 내보이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고요. 수업에 집중하면서 점점 기빨리는 그들을 보는 것도 남 얘기가 아니더라고요. 저거, 곧 내 얘기다... 하아. 나이 들어 공부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도 김광규처럼 노안이 제 공부를 방해할 것 같아요 ㅠㅠ 나에게 노안은 왜이렇게 빨리 왔는가 ㅠㅠ

제가 해외 어학연수를 가게 된다면 ㅋㅋㅋ 문란한 성생활을 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문란한 성생활을 하게 되면 단발머리 님께만 말씀드릴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어떻게든 영어 실력 폭발해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폭발하자 영어실력!! 으르렁-

이 프로그램 보시게 되시면 단발머리 님 감상도 들려주세요. 제 동료는 제 추천으로 이거 보더니 너무 재미있다면서 자신은 장혁 때문에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오... 신기했어요. 저는 장혁에게는 별로 관심이 안갔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25-02-18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한 예능이 많이 나오네요. 저는 연예인들을 저렇게 대놓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예능을 결코 좋아할 수가 없더라구요. 게다가 대체로 나이 많은 남성들이 주로 나오는 것도 싫구요. 세명은 알고 두명은 모르겠네요. 예능이 싫기는 하지만, 저렇게 영국에 있는 어학원에 다니게 해주면서 출연료도 벌 수 있다면, 그건 좋은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내 일상이 그대로 화면에 담겨 전세계로 송출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저는 다락방님과는 달리 처음부터 영어가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렵기는 했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 자체를 설레는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나중에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울 때에도 재미있었구요. 팝송 가사를 한글로 적어서 외우는 것 그 시절에 대부분 했던 일이었죠. 제가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도 팝송 덕분이었어요.

다락방 2025-02-18 11:54   좋아요 0 | URL
저도 예능 안보는데 저건 재미있더라고요. 음 그리고 그들이 웃음거리가 되진 않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건 현실적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같고 저희 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웃음거리가 됐다고 보면서 생각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저렇게 여러가지 이유로 영어를 못하는데(실력 부족이나 내성적 성격) 그들이 이 연수로 인해 어떻게 바뀔까에 대한 기대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나이 들어서 노안도 찾아오고 기억력도 예전같지 않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걸 보여주는 건 또 그대로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그들의 공부가 전세계로 송출되는 것에 대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팝송으로 영어를 공부하는 건 제 경우에 너무 잘 맞는 방법이었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해보기를 추천하는데, 제가 추천한다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는건 또 아니니까... 하여간 팝송으로 영어 공부하는 건 정말 좋다고 생각합니다!!

감은빛 2025-02-18 14:13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연예인이 웃음거리가 된다고 표현한 건 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보통 생각나는 예능이 그렇다고 쓴 거였어요. 그렇지 않은 예능도 분명 있겠지요. 다른 누군가가 내 관심사를 공부하는 걸 보는 건 확실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게 유명한 연예인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전 여전히 예능 방송 프로그램의 돈을 위해서는 뭐든지 한다는 속성 때문에 반감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삐딱한 인간이라 어쩔수 없는 것 같아요. ㅎㅎㅎㅎ

blanca 2025-02-18 1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프로가 있었군요. 저도 어학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긴 한데...일어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됐는데 정말 너무너무 못하는 거예요. 그러다 요즘 성시경이 일본에서 활동한 영상을 보는데 정말 좌절감이 들 정도로 너무 잘해서,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는데 이렇게 현지인처럼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럼 나는 안되겠다 싶은 좌절감이...저는 영어 공부를 진짜 한맺힌 사람처럼 했던 사람이라 그렇게 사십대 이후에 처음 일어를 시작해서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을 보니 상대적으로 열패감이 들어요. 저는많이 읽는 사람이지만 그런 면에서 언어감이 좋은 건 아니구나 싶은 현타가 왔어요. 제가 관심 있는 분야라 댓글 길게 답니다.

다락방 2025-02-20 09:20   좋아요 0 | URL
어 일어 공부 어떻게 하세요, 블랑카 님? 저는 듀오링고 추천합니다. 듀오링고로 일어 공부를 해보진 않았지만, 영어와 스페인어 하면서 생각한 건 듀오링고가 정말 도움이 된다는 거였어요! 혹시 일어 공부가 어려워 뭔가 다른 방법이 더 필요하시다면 거침없이 듀오링고로 고고!! ㅎㅎㅎ (듀오링고 전도사)
외국어 정말 잘 익히는 사람들이 있긴 하더라고요. 그 여행 유튜버가 .. 여행하는 프로를 잠깐 티비에서 본 적 있는데, 영어도 하고 러시아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더라고요? 검색해보니 대학에서 러시아통상학과 였나, 뭐 그런거 졸업했대요. 영어과 나온다고 다 영어 잘하는건 아닌데 와 저렇게 되려고 노력 많이 했겠구나 싶었어요. 그 유튜버는 포르투갈 가기 전에 잠깐 공부해서 스페인어로 대화도 되더라고요. 특히 더 잘 익히는 사람들이 있긴 한것 같아요. 전 아니지만... ㅠㅠ

화이팅!!

관찰자 2025-02-1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요가디피카>를 읽어보세요. 동작에 대한 설명이 길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지루할 수 있지만 요가 관련 서적 중에는 가장 재미있어요^^ 수학의 정석과도 같은 책! 그렇다고 수학의 정석이 재밌다는 말은 아님요

다락방 2025-02-20 09:21   좋아요 0 | URL
어휴 이건 또 뭔가요. 저 집에 요가 관련 책 사놓은 것도 너무 많네요. 그런데 막 또 사기 ㅋㅋㅋㅋㅋ
수학의 정석도 성문 기본영어 처럼 너무나 깨끗했던 학창 시절의 교재들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싱가폴에는 어제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전날 밤을 꼬박 비행기에서 보냈다.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호텔까지 왔다. 혹시 지금 체크인이 가능하냐 물으니 안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샤워실을 빌려줄 순 있다고 했다. 전날 아침에 출근전에 닦은게 마지막인 터라 꼬박 하루를 못닦았으니 샤워가 간절했다. 그렇게 짐을 끌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는데, 문을 잠가도 잠기는게 아니라 열리는 시스템이다. 이게 뭐여? 보니, 문을 잠그면 밖에서 봤을 때 손잡이 부위에 빨간색으로 표시되기는 한다. 이걸 과연 보고 열지 않을것인가, 누군가는 반드시 열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샤워를 하자, 내 짐작이 틀리기를 바라자, 하고 샤워를 했는데, 샤워를 마치고 커다란 타월로 몸을 감쌌는데, 마침 그 때 누군가 문을 열어버린 겁니다. 껄껄. 다행히도 여자였고 게다가 그 여자가 한국 사람이었어. 나랑 같은 비행기 탔나봐요. 나는 "사람 있어요!" 라고 한국말로 말했고 상대도 "죄송합니다" 한국말로 말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 스킨과 로션도 바르고 하여간 아까 그 분을 또 마주쳤다. 정말 죄송하다고 그 분이 말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여기 잠기는게 아니라 빨간색 표시만 되더라고요, 하고.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도 했지만 운동복 꺼내기도 거시기하고 아직 지리도 모르니, 첫날은 뛰지 않았다. 그렇게 정말 부지런히 걸어다녀서 점심 먹을 때쯤엔 이미 걷는 것 만으로 이만보가 되어있었다. 신이시여.. 나니까 이렇게 돌아다니지 진짜 다른 사람한테 같이 여행하자고 말 못하겠다. 날도 더운데 땀 뻘뻘 흘리면서 반나절동안 이만보 걷는 여자 어떤데?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혼자 다니겠습니다. ㅎㅎ


호텔 예약할 때 지도로 주변에 공원과 강이 있는걸 확인했더랬다. 첫날 돌아다니면서 보니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이 있었다. 오, 여기서 달리면 되겠어! 나는 동생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내일 여기를 달리겠어!! 


그리고 오늘 아침. 여섯시 조금 넘어 일어났는데 바깥이 아직 어둡다. 흐음. 나가기에는 너무 어두운데? 사실 이 시간쯤에 나가 달리고싶긴 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꺼려졌다. 흐음. 한시간 더 자고 일어날까? 싱가폴은 평소 아침 일곱시에 해가 뜬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미 깼는데 잠이 다시 올 리 없었다. 흐음. 나는 창밖을 보았다. 어둡지만 누군가 도시를 뛰고있는게 보였다. 그래, 나가보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슬렁슬렁 나가다보면 해가 뜰지도 모르지. 그렇게 나는 옷을 차려입고 워치를 하고 객실을 나섰다. 리셉션에 가 한 시간 후에 돌아올테니 가방 좀 보관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구글맵을 켜두고 어제 봐둔 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니 조금씩 밝아졌고, 달릴 수 있는 강에 다다르니 어, 이제 거의 밝아졌는데 아직도 달이 보이네? 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원래는 다리에 도착하면 아래로 내려가서 왼쪽으로 달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 앞으로 사람이 달리면서 오른쪽으로 가는게 아닌가. 그래서 오른쪽으로 따라 달렸다. 오랜만에 달리는거니 천천히, 천천히 달리자. 5km 목표로 달리자. 제발 그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와 그런데 너무 신났다. 무엇보다 달리는 사람이 무척 많은거다. 무리지어 뛰는 사람들은 아마도 달리기 크루들인것 같고 혼자 뛰는 사람도 많았다. 젊은 여자 나이든 여자 젊은 남자 나이든 남자 동양인 서양인 천천히 뛰는 사람 빨리 뛰는 사람. 정말,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뛰고 또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달리다보니 여긴 어제 내가 와보지 못했던 곳이라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었다. 신난다, 신난다 하면서 달렸다. 신난것에 비해 속도는 느렸지만, 뭐 느리게 달리면서 살자. 느리게 달려도 심박수 높습니다..하아. 아직 내 몸은 달리기에 단련된 몸은 아닌가보다. 어쨌든 그렇게 달렸다, 싱가폴에서. 만세!!


껄껄. 씐난다!!










보통 여행갈 때 손수건을 여러개 챙기는 편인데 이번에는 손수건을 하나밖에 안가져왔다. 그나마도 늘 가방에 넣어다녔기 때문에 그 하나가 있는거지 아니면 아예 없을 뻔. 걸을 때 땀이 나서 닦아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어서 어쩌나. 오늘 아침에 빨아 널었는데 안되겠다 싶어 하나 더 사려고 돌아다녔건만 그 어디에도 손수건을 팔지 않았다. 무지에서는 핸드타올을 주더라. 아니아니 낫 핸드타올, 행커치프 했는데 이것 뿐이라고 했고 유니클로에 갔더니 우린 행커치프 없어, 무지에 가봐, 하길래 무지에 없어 나 거기 갔다왔어, 했다. 휴.. 로드샵들도 들어가봤는데 행커치프 다 없네요.. 여러분.. 손수건 안쓰나요? 나는 손수건 필수품인데... ㅠㅠ 


지금 숙소에 돌아와보니 아침에 빨아 널은 손수건 거의 말라서 그냥 이거 쓰고 새로 안사는 걸로...못산거지만.....


이제 좀 쉬다가 저녁엔 삼겹살 먹으러 나갈 예정이다. (네?)

소주도 한 병 할 생각인데 아니 .. 소주가.. 여기 식당에선 2만원인 것 같아요. 네.. 할 수 없죠. 일단 저녁은 이따 다시 생각해보는 걸로.

피곤하다. 

오늘은 그나마 중간에 까페에서 책 읽느라 앉아있었는데, 그래도 아침에 달렸기 때문에 벌써 또 이만보... 네.....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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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2-15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너무 부럽고 너무 멋있어요. 흑... 다락방님은 제가 살고 싶은 삶을 대신 살고 있습니까?

다락방 2025-02-17 12:3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블랑카 님, 지금은 돌아와서 한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진짜 빡세게 살고 있네요, 저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망고 2025-02-15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관광지에 가면 지도 그려진 손수건 곳곳에서 파는데 거기는 없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혹시 모르니 관광지 기념품 가게를 살펴보셔요😆

다락방 2025-02-17 12:34   좋아요 0 | URL
이렇게 덥고 습한 나라에서 도대체 왜 손수건 구하기가 힘든걸까요? 그러고보니까 땀흘리고 다니는 사람은 나뿐인가 싶기도 하고.. 하여간 있는 손수건으로 빨아서 썼습니다. 어휴..

단발머리 2025-02-1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다락방님 사진 보니깐 저도 위아래 반팔 입고 너무 뛰고 싶어요! 사람들이랑 같이 뛰면 더 신날 것 같고요.
좋은 시간 꽉꽉 채워서 야무지게 뛰고 오세요~~

다락방 2025-02-17 12:35   좋아요 1 | URL
확실히 달리는 사람들 보면 제 달리기도 더 흥을 받기는 하는것 같습니다. 그래봤자 여전히 느리고 실력 향상은 안되는것 같지만... 마지막 날도 20분 호텔 주변을 달렸습니다. 제가 여행 후기도 써야하고, 샬라샬라 후기도 써야하는데. 단발머리 님, 샬라샬라 보세요? 완전 재미있어요!! >.<

햇살과함께 2025-02-15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얼른 따뜻해져서 저렇게 가벼운 옷 입고 뛰고 싶네요! 저도 손수건 필수예요!

다락방 2025-02-17 12:35   좋아요 1 | URL
역시 따뜻할 때 뛰는게 좋습니다. 옷도 가볍고 콧물도 덜 나고 말이지요. 저는 손수건 정말 사랑하는 아이템 입니다!!

hnine 2025-02-15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싱가폴에 달리는 사람들 많지요. 보태니컬 가든에 갔는데 거기서도 열대림 사이를 소매없는 러닝복 입고 달리는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2년 전인데.
사진 속에 제가 묵었던 숙소도 보이네요, 히~~

다락방 2025-02-17 12:36   좋아요 0 | URL
네, 제 생각보다 달리는 사람들 많더라고요. 그리고 겉에서 보기엔 국적도 너무나 다양했고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 뛰노라니 너무나 신났습니다. 달리기를 잘한 것 같아요. 후훗.

관찰자 2025-02-17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엄마가, 저보고 오래 살고 싶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ㅋㅋ 무병 장수 하는 동물 중에 뛰는 것들은 없다며. 대표적으로 장수하는 거북이를 좀 보라며.... 다락방님, 괜찮으신거죠??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17 17:30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페이퍼 쓸 작정 하고 출근했는데 출근하자마자 너무 바빠서 글을 쓸 틈이 없었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오늘 저녁엔 치킨이나 먹자!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저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타입이긴한데, 만약 느긋한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몸무게가 세자리 수가 되었을 겁니다 ㅠㅠ

독서괭 2025-02-17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싱가폴이시구나!! 하고 씐나서 댓글 보니 이미 귀국하셨구나…. 제가 너무 늦게 봤군요 ㅠㅠ
달리기 넘나 멋집니다~ 싱가폴이 더운데도 러닝을 많이들 한다더라고요.이열치열인가?? 맛난 것도 물론 많이 드셨겠죠??

다락방 2025-02-17 17:31   좋아요 1 | URL
ㅋㅋ 제가 짧게 다녀왔습니다. 여행은 저에게 이제 일상이므로 ㅋㅋ 퇴근하고 슝- 날아갔다가 다시 또 슝- 와서 바로 출근하고. 제 인생은 왜 이런건지, 제가 살고 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싱가폴에 있는 동안 비가 왔는데요 비 그치고 나니까 와.. 습도가 그런 습도가 없어요. 호텔 나서자마자 땀이 줄줄 났습니다. 하하하하하.
카야토스트 질리게 먹고 왔어요. 보쌈도 먹고 왔답니다? (응?) 여행 이야기는 차차 풀어놓을게요. 아 바쁘다 바빠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2-18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인간은 뭔가 조용하다 싶으면... 어딘가 가 있음.
지난주 목욜인가 금욜인가 조용해서 이 인간 싱가포르 간 거 아냐? 했더니 역시ㅋㅋㅋㅋ
(트위터에서 2만 보 걸었다는 거 보고 역시 이 인간 갔군 했어요) ㅋㅋㅋㅋ
한국이 아직까진 사계절이라 다행이에요.
여름만 있거나 겨울 없어지면 다락방은 몸 부서지게 사계절 내내 뭔가 하고 있을 듯 ㅋㅋㅋ

근데 결국 삼겹살 먹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18 11:44   좋아요 0 | URL
제가 지금 한 달에 한 번씩 다녀오고 있어가지고 ㅋㅋㅋ 한 3개월간 좀 안가고 쉬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다니면서 걷는거 먹는거 다 좋은데 숙소 돌아오게된 밤이면 외로워요.. ㅋㅋㅋㅋㅋ

삼겹살 못먹고 수육 먹었는데 요건 따로 페이퍼 쓰도록 하겠습니다. 인생 수육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혼자서 싱가폴에서 소주 마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소주 2만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혼자 수육 먹느라 7만원 썼어요. 미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