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차례 얘기했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미국에서 그것도 뉴욕에서 살고 싶었다. 평생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인생의 얼마만큼은 뚝 떼어내어 뉴요커가 되어보고 싶었다. 물론 내가 그리는 뉴요커로서의 나는 좋은 집에 살고 돈이 많아야 했다. 가끔은 친구들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고 깔깔대고 웃는 삶, 아침이면 분주히 직장으로 이동하며 한껏 세련되게 차려입고 직장에서는 프로페셔날하게 일하는 나.. 를 꿈꾸었던 거다. 어릴적엔 당연히 그게 가능할거라 믿었고 나이들수록 그건 좀 더 먼 훗날로, 조금 더 나중에로 미루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뉴욕에 단지 여행객으로, 방문자로만 세차례 방문했다.


작년 2019년 여름, 나는 세번째 뉴욕을 방문했을 때에야 내가 뉴욕에서 '살고싶다'고 생각한 것이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에서 설사 살 수 있다 해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형태로 살아지는 삶은 아닐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 아, 내 꿈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나는 이곳에서 거주할 순 없겠구나, 이곳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나에게 빈곤을 안겨다 주겠구나, 나는 내가 그동안 꿈꾸던 모습으로도,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으로도 살 수 없겠구나, 하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거다.



쉽게 말하면 한국에서는 바깥에 적혀진 메뉴의 가격만 보고도 내가 얼마를 소비할 수 있는지가 예측 가능하다. 자, 돌솥비빔밥이 1만원이라고 써져있다면, 나는 들어가서 1만원을 내고 나올 것이다. 좋아, 내 지갑에 지금 1만5천원이 있으니, 소주도 한 병 마시자, 까지가 된다. 소주까지도 가능하겠어. 그렇게 나는 식당에 들어가 돌솥비빔밥과 소주를 시켜 맛있게 먹고는 당황하지 않고 계산을 하고 나올 수가 있다.


그러나 뉴욕에서라면 그것이 불가능하다. 돌솥비빔밥이 1만원이라고 바깥에 써져있고 내 지갑에 15,000원이 들어있다면, 나는 마음 놓고 그곳에 들어갈 수가 없다. 일단 들어가서 돌솥비빔밥 하나를 시켜놓고 먹으면 나중에 계산서에 거기에 세금이 붙고 팁이 붙는다. 팁을 적힌대로 주지 않는다고 나를 잡아가지는 않겠지만, 만원 예상하고 들어갔다가 내가 얼마를 쓸 지 알 수 없다는거다. 다만 만원을 훌쩍 넘기는 돈을 쓸 거라는 것, 그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만원짜리에는 세금이 얼마 붙고 팁이 얼마 붙을 거라는 것을 계산해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만원이라고 써진 메뉴를 보고 만원 있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 만원짜리 메뉴를 보고는 만원이상을 가져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 나는 이곳에서 살 수 있을까?



여행객으로서의 나는 친구와 함께 좋은 레스토랑에 들러 스테이크를 먹었다. 친구와 나는 스테이크를 몹시 좋아해서 스테이크를 시켰고, 사이드로 시금치와 샐러드를 시켰다. 좋은 와인도 한 병 주문했다. 우리가 그날 먹은 저녁 한끼에만 30만원 이상을 썼다. 또 어떤 하루에는 친구가 평소 가보고 싶었다던 유럽식 레스토랑엘 가서 샐러드와 스파게티와 라자냐를 먹었다. 역시 훌쩍 돈이 깨졌다. 팁까지 챙겨주고 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아침으로 먹은 프렌치 토스트는 정말 맛있었고 양이 많았다. 핫케익에 메이플 시럽은 얼마나 맛있던지! 그러나 아침을 먹고서도 역시 세금이 붙고 팁을 줘야했다.


나는 과연 여기에서 생활인으로서 살 수 있을까?

그러니까 만약 내가 여기에서 '살기'를 선택한다면 나는 지금 먹었던 것을 앞으로도 계속 먹고 살 수 있을까?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병으로 시켜두고 각자 원하는 사이드를 추가로 주문해 먹는 것이 가능할까?




내가 뉴욕에 여행객으로 잠깐 방문해 하루에 30만원 이상하는 호텔에 묵고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20년을 일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호텔을 예약하고 미술관에 가고 와인을 병째 주문해 마실 수 있는 것은, 내가 여기에서 20년을 일해 경력을 쌓았기 때문이며 그 경력에 맞게(사실은 그보다 적게) 돈을 받고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내가 만약 갑자기 훌쩍 미국으로 오게된다면 내가 여기에서도 '차장'으로 대우받으며 살 순 없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아마 아주아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었다.



물론 내가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어디에 살아도 굶어죽을 사람은 아니다. 나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고 꾸준한 사람이고 한결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 성실히 일해서 굶어죽지 않는다는 것이 '잘 산다'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휴가때면 비행기를, 호텔을 예약하는 삶을, 미국에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포기해야 할 것이었고, 게다가 좋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먹고싶은 걸 주문하는 삶 역시 불가능해질 것이었다. 나는 뉴욕의 호텔에 머무르며 이곳의 숙박비가 얼마나 비싼지 체감했다. 좋은 호텔이 아닌데도 그랬다. 아마 거주비로도 많은 돈이 나가겠지. 나는 마트에서 일할 수도 있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수도 있고 청소를 하면서 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몸이 고단할 정도로 열심히 돈을 벌어도 오늘 하루 집값을 내고 세탁을 하고 밥을 사 먹으면 내일 또다시 돈이 없을 것이었다. 호기롭게 좋은 레스토랑에 가는 삶이 불가할 것이었다. 결국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라면, 나는 내가 살아온 곳에서 살아가야 했다. 내가 일한 시간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곳에서.



















나는 내가 만약 갑자기 미국에서 살게된다면 가난해질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난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의 구체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내가 이 낯선 땅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맞이하게 될 가난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구체적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그저 여행을 못다니고 와인을 병째 주문하지 못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린다 티라도'는 《핸드 투 마우스》에서 말해준다. 빈곤은 단지 그런 게 아니라고. 원하는 걸 먹지 못하는 것,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빈곤하다는 것은 나쁜 소비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나쁜 소비라는 걸 알면서도, 그 나쁜 소비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한다. 린다 티라도는 토스터기로 예를 든다.




좋은 품질의 물건은 처음 살 때 돈이 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토스터기를 사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하다. 하지만 그 좋은 토스터기라는 것이 지금 30달러고 제일 후진 토스터기가 10달러라면, 얼마나 자주 토스터기를 교체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10달러짜리가 답이다. 왜냐하면 난 10달러밖에 없으니까.

돈을 아끼기 위해서 사실은 돈이 더 드는 것이다. (p.183-184)




고백하자면 나는 저 나쁜 소비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 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항상 속으로 답답해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싸구려를 계속해서 많이 소비해 결국 비싸고 좋은 걸 소비하는 것과 실질적으로 쓴 금액에서 차이가 안나는 거다. 그런 소비는 롱패딩에서도 나타났고, 신발에서도 나타났다. 가전제품으로도 마찬가지. 싼 게 비지떡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러 싼 걸 사고 결국 금세 낡고 고장나고 따뜻하지도 않아서 다시 하나를 또 사야 하는 것.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결국 좋은 거 하나 사는 돈을 훌쩍 넘는 돈을 쓰게 되는 거다. 왜그러지? 롱패딩 같은 거는 그냥 하나 좋은 거 사면 되잖아? 린다 티라도가 예로든것처럼 토스터기도 그렇다. 그냥 좋은 토스터기 하나 사서 잘 사용하면 되잖아? 왜 10달러 짜리 사서 나중에 또 사고 나중에 또사고 사용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빡치고... 왜 돈을 써놓고도 스트레스를 받아야하지?

물론 나 역시도 그런 소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린다 티라도가 저렇게 토스터기에 대해 얘기해줄때야 비로소 내가 빈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몰라서 당장 눈앞의 10달러짜리 토스터기를 사는 게 아니었어. 30달러짜리가 스트레스도 없고 장기간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알았지만, 지금 30달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설사 30달러를 가지고 있다 해도 토스터기 하나에서 고민하는 삶이라면 다른 생활용품에 대해서라면 어떻겠는가. 아마 토스터기에 쓸 돈을 피자 한 판 주문하는데 보태 쓸것이다, 빈곤한 삶이라면.



10달러짜리보다 30달러짜리를 사는게 더 효율적이고 정신건강에도 좋을 거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10달러짜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삶, 그게 빈곤이었다.


나는 내가 만약 지금 거주지를 뉴욕으로 옮긴다면, 바로 이런 빈곤속으로 빠져들겠구나, 생각했다. 단순히 먹고 싶은 걸 못먹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명하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런 빈곤속으로 빠져들게 될거야.



린다 티라도가 이렇게 빈곤한 것이 그녀가 성실하지 않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그녀는 일자리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다. 투잡을 하는데도 병원도 가지 못하고 하나의 일자리를 혹여라도 잃을까 전전긍긍 해야한다. 최저임금만 받아서는 생활이 불가했다. 당장 방값내고 밥한끼 먹는 것으로 가진 돈을 전부 써야 했다.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복지도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었다. 복지를 적용해주는 보건소는 멀리 있었고 그나마도 찾아가면 심각한 증세에 있어서는 '전문의'를 찾아가라 한다. 푸드스탬프는 이중발급이라며 벌급을 물라하고(그건 린다 티라도의 잘못이 아니었다) 은행에서는 일정 잔고를 유지하지 못하면 수수료만 나갔다.


결국 그녀는 병원에 가는 것도, 완벽하게 나쁜 치아를 관리하러 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빈곤하기 때문에 그녀는 견인된 차를 찾을 수가 없어 일자리에 걸어가야 했고, 일자리에 걸어가느라 체력이 딸리고 기진맥진해서 결국 일자리를 놓치기도 하고, 일자리를 놓치면 집에서 쫓겨나야 하고... 그러니까 빈곤이란 단순히 나쁜 소비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더 좋은 직업을 구하고 싶어도 면접을 준비할 시간과 돈이 없었다. 빈곤은 그저 빈곤에 머무르게 했다. 나쁜 근로조건이, 최저임금이, 나쁜 소비가 계속 빈곤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했다.





최근에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10억을 정기예금 들어둔 사람이 2프로의 낮은 이자율을 적용해도 1년이면 2천만원의 이자가 생기는 거였다. 그 사람이 10억만 정기해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고. 2천만원이 아무리 세전금액이라 해도, 사회초년생의 연봉에 맞먹는 돈이었다. 누군가는 아침일찍 일어나 만원지하철에 시달려 출근을 하고 퇴근때까지 직장에 묶여있다가 퇴근후엔 기진맥진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며 벌 수 있는 돈이, 누군가에겐 그저 있는 돈을 묶어 두는 것만으로도 생겨나는 것이었다.




어제는 잠들기 전에 잠깐, 1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펼쳐 들었다. '케이시 윅스는 이 책에서 '다른 계급'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노동윤리는 헌신적인 생산과 절제된 부의 획들을 주문함으로써, 불충분한 보상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는 한 계급과 저축으로 부를 축적하는 다른 한 계급을 낳았고, 이것이 초기 자본주의 발달의 기초가 되었다. (p.85)



모든 빈곤계층은 불충분한 보상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는 계급에 다름 아니다. 부를 축적하는 계급과는 다른 계급.



케이시 윅스는 6시간 노동을 주장할 거라고 했다.






기본소득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나면, 4장에서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분석하기 위한 길잡이를 얻게 된다. 4장에서는 임금 감축 없는 하루 6시간 근무 요구를 살펴볼 것이다. (서문, p.60)









바로 전에 읽은 《핸드 투 마우스》생각이 났다. 임금 감축 없이 그게 가능할까. 그게 가능해진다면 린다 티라도와 그의 수많은 동료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될까?


이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를 읽어야겠다.







바닥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빈곤 상태와 빈곤을 아주 살짝 벗어난 상태를 주기적으로 오간다. 때때로는 괜찮지만 때때로는 물 밑에 잠기는 것이다. 연도에 따라, 직장에 따라, 또는 건강에 따라 변한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계층 하락은 모래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완전히 휩쓸릴 때까지 당신의 선택권을 계속 제한한다는 것이다.- P27

솔직히 말하면, 나는 힘센 특권층들이 솔직해지면 일을 하며 겪는 굴욕이나 비하는 마다치 않을 것 같다. 노동환경이 끔직하다는 것을 그들이 그저 인정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우리가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하며 일자리와 먹을 것과 머리 위에 얹힌 지붕에 감사하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참으로 비참한 일이지만 우린 진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그 모든 일과 비참한 노동환경에 대한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할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 성취감이나 윗선에서의 존중 또는 고용안정 같은 것 말이다.- P61

일반적으로 건강과 가난은 양립할 수 없다. 신체적인 문제점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부자는 그러한 문제점이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손을 쓸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없다. 예방진료를 받을 수 있고 비타민과 헬스장 회원권을 살 수 있는 부자들이 가난한 우리를 그들 아래로 보는 것, 마치 우리가 자기 몸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인 양 생각하는 것은 우리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분노가 치미는 일이다. 우리는 안다. 다 알고 있다. 그저 돈이 없을 뿐이다. - P70

과한 관련한 주제에 대해선 내가 신뢰하는 잡지인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연구 논문에 의하면, 가난할 때 사람의 뇌는 그 능력이 실질적으로 저하된다고 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뇌의 너무나 큰 부분이 빈곤과 관련된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일, 예를 들면 인생 같은 것에 쓸 수 있는 용량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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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21 11: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임금 축소 없이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확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충분한 근거를 찾지는 못 했지만요. 우리 돈, 우리 세금은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고 믿거든요.
책표지는 무척이나 감각적인데 내용은 생각할 거리를 전해주는 책이네요.
<우리는...> 이 책과도 잘 어울리고요.
읽기 진도가 지지부진한테 다락방님 페이퍼 읽고 나니 전투력 만랩!!!!
잘 읽고 또 배우고 갑니다^^

다락방 2020-01-21 11:16   좋아요 3 | URL
저도 1월 도서가 안읽히던 참에 [핸드 투 마우스] 읽으니까 뭔가 자연스레 연결이 되면서 읽을 의욕이 생기더라고요. 딱히 그거 읽으려고 고른 책은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핸드 투 마우스는 평이 좋은만큼 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는데요(전 막 좋지는 않더라고요), 제가 빈곤에 대해 무지했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과 환경을 잘 모르면서 답답해하기는 쉬운것 같아요. 반성반성.
아울러 케이시 윅스의 책도(제목이 너무 길어 자꾸 다른식으로 부르게 되네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의욕 뿜뿜합니다. 자, 갑시다. 고고씽!!

공쟝쟝 2020-01-24 11:37   좋아요 0 | URL
우왜오열 로 줄여 읽기 제안드립니다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1-24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핸드투마우스.. 소개해주신 글만 봐도 눈물이...(저에겐 서울이 뉴욕입니다..)

단발머리 2020-01-24 11:58   좋아요 1 | URL
핸드투마우스 같이 읽어도 좋을거 같아요. 전에 나눴던 이야기 생각나서, 저에겐 서울이 뉴욕입니다,가 너무 실감나네요~~~~

공쟝쟝 2020-01-24 12: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러게 말이죠 ㅋㅋㅋ 왜 서울와가지구 ㅠㅠㅠㅠ 토스터기... 좋은 후라이팬 하나 갖고 싶네요 ㅋㅋㅋ

다락방 2020-01-25 12:27   좋아요 1 | URL
쟝쟝님, 어제는 잘 쉬셨습니까. 저는 책 싸들고 까페로 나왔습니다. 집이 북적거릴 것 같아 나왔는데요. 오늘 다 읽고 들어갈 수 있을지..

핸드투마우스는... 읽다보면 또 가슴이 답답해져서... 어휴... ㅠㅠ
핸드 투 마우스는 우리 1월의 도서와 같이 읽기에 매우 좋은책임은 분명합니다. 빠샤!
 

레이니즘... 떠올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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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20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를 좋아했던 시절이 막 떠오르네요. 나도 미안....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21 07:44   좋아요 0 | URL
세상에 누가 자기 이름에 스스로 이즘을 붙입니까........ 제가 그거 보면서 ‘자뻑이 도가 지나친데?‘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의 망상 이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이 작가도 레이니즘.. 생각하면서 쓴거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 영화쿠폰 안쓰시는 분 저 좀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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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혹은저녁에☔ 2020-01-1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2152710745934

다락방 2020-01-19 00: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등록하고 예매했어요!! >.<

2020-01-18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1-19 00:13   좋아요 0 | URL
우엇 감사합니다! >.<

다락방 2020-01-1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끝!!

공쟝쟝 2020-01-2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찬 알라딘 생활이시네욥 !! ㅋㅋ 저도 다음엔 드릴게요

다락방 2020-01-20 10:10   좋아요 1 | URL
그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어제 얻은 쿠폰으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회차 관람하고 왔습니다. 공쟝쟝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공쟝쟝님이 참 좋아하실 겁니다!!

공쟝쟝 2020-01-20 12:01   좋아요 0 | URL
앗!! 저저저! 잠자냥님 리뷰보고 안그래도 노리고 잇엇는데!!!
 

그는 엄마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순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태어난 것도 엄마를 기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와 결혼했다는 일종의 증거물이었고, 배운 대로 사는 삶이 낳은 예상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프라납 삼촌은 달랐다. 삼촌은 엄마의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지옥 천국」, 줌파 라히리, p.85)




'순전한 기쁨'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순전한 기쁨'이라니 대뜸 '줌파 라히리'의 「지옥 천국」이 떠올랐고, 당연한듯 프라납 삼촌이 떠올랐다. 화자의 엄마가 프라납 삼촌을 좋아하는 이야기라,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와는 매우 결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다른 건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순전한 기쁨'이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난 다른 것에서 온다고 했을 때, 나 역시 지옥 천국의 엄마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에서 그것을 찾는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지옥 천국의 인용문을 가져오려고 찾았는데, 아 이 미친 기억력의 왜곡이여... '순전한'은 기쁨에 붙은 수식어가 아니라 '행복'에 붙은 수식어였네. 나는 어제 내내 '순전한 기쁨'이야, 이건 순전한 기쁨이지, 줌파 라히리가 말한 바로 그거야, 했는데 아아, 순전한 행복 이었어...



마침 오늘 아침에 읽기 시작한 책에서도 얼라리여, '순전한 기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아니, 이것이 뭔일이래. 어제 하루종일 '순전한 기쁨'을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전혀 다른 책에서 만나는 순전한 기쁨 이라니. 순전한 기쁨 이라는 워딩 자체가 그렇게 흔한 워딩이 아닌데, 계속 생각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삶이라니. 일전에 나는 내가 소설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문학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포용하는 문학적인 삶...


아, 다시 말하지만 그러나, 줌파 라히리는 프라납 삼촌에게서 얻은 것이 순전한 '기쁨'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기억력은 왜곡되었어..




어제 동료랑 점심을 먹는데 어떤 얘기 끝에 동료가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만날 때 꼭 붙어있고 싶다'며 애인에 대한 얘기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겠지만 이 동료에게도 애인은 매우 중요하고 애인은 언제나 우선순위이다. 그러니 그토록 사랑하는 애인과 만나는 횟수는 항상 자기 바람보다 못미칠 것이고 그렇게 만나면 한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을것이며,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동료는 내게 한것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붙어있는 건 아무리 사랑해도 내게는 힘든일이며, 각자 좀 떨어져서 혼자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혼자 있는 게 행복하다면, 나는 그게 섞여 있는 사람인거다. 어쨌든 이 동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은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퇴근길에 책을 읽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알로이스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전기였다. 한나 아렌트라면 악의 평범성 이라든가 하이데거 정도로 그 유명세만 알던 터라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 하고 빌려온 참이었다. 마침 표지를 보니 그렇게 어렵게 쓰여져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이번달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에서도 언급되지 않던가.



















근데 이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은 거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은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가 태어나고 공부하고 연인을 만나고 스승을 뛰어넘는 철학자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거다. 한나 아렌트는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여성주의를 무시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참정권에도 관심이 없었으니. 그녀의 그런 점이 어떤 남자들에게는 더 어필했던 것 같고.



한 다과모임에서 그녀느 역시 야스퍼스에게서 공부를 하고 있는 베노 폰 비제를 알게 되었다. 그는 훗날 문예학자로서 이름을 얻게 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심지어는 결혼 얘기까지 있었다. 세 살 위인 폰 비제는 한나에게 매혹되었다. 특히 그녀의 눈에서 풍기는 '암시적인 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훗날 비망록에서 "그 눈을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두 번 다시 헤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움이 일었다"고 회상한다. 그에게는 한나가 '여성 참정권론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p.61)



1964년 10월 28일, 한나 아렌트의 모습이 독일 제2방송ZDF에 나왔다. "인물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권터 가우스가 그녀를 인터뷰했다. 가우스는 대담이 시작될 때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첫 번째 여성이라고 말하며, 여성 해방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한나는 여성 해방 문제에 있어서 자신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을 뿐이에요." (p.241)



굉장히 지명도 있는 사람이었던만큼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고 여성주의를 주장해주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두고 산 게 아니라도 남성들만 나왔던 프로그램에 '여성으로서' 나오게 된다는 것,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보다 더 유명해졌다는 것등은 다른 여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기사를 쓰고 나서는 수많은 유대인들로부터 공격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너지거나 자기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것에 목소리를 낸것도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여성을 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다른 여성에게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살아있고 이런 나의 글을 본다면 '아니, 여성주의랑 엮지 말라니까 왜 니 맘대로 엮고있어!'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유명해지고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다른 여성들에게 너무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바, 한나 아렌트가 '난 여성주의에 아무 역할도 안했어' 라고 해도 계속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제일 처음 만난 연인이 '하이데거'인만큼 하이데거 얘기를 안할 수가 없고, 하이데거 애기를 할라치면 일단 빡이 치는 건 또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인것이야...

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태어났고 매우 총명해서 어릴 적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이른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다. 한나는 학생으로 하이데거는 교수로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 때 하이데거의 나이가 35세. 하이데거가 1889년생이니 둘의 나이차이는 17년이고 그러니까 그 때 한나의 나이는 18세였던 거다. 씨부럴. 한나가 하이데거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이 총명하고 젊고 아름다운 한나에게 35세 중년남 하이데거는 반해버리고 마는 것이야. 그래서 지가 먼저 편지를 쓰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둘 사이의 나이차이도 빡치지만,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도 빡치지만, 그당시 하이데거는 유부남이었다. 아내와 아들들도 있었다고. 그러면서 뻔뻔하게 어떻게 18세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가 있지? 정말이지 ... 어처구니가 없다.



하이데거는 기혼자였고 두 아들의 아버지였다. 처음부트 그는 한나에게 자신의 결혼과 경력을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한나는 이 게임 규칙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온갖 궁리를 짜내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창문을 열어놓는다거나 램프를 켜놓는 것과 같은 비밀 신호를 정했다. 두 연인은 비밀이 들키면 어쩌나 늘 불안했다. (p.50)


그는 편지에서 그녀만큼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는 이는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나는 그의 좋은 정령이며, 그녀는 그의 사상에 영감을 주었다. 훗날 그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존재와 시간』을 쓸 수 없었으리라고 고백한다.

한나는 예속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는 "내 사랑으로 인해 당신이 더 힘들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묵묵히 순종하며 그의 은밀한 지시에 따랐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는 선생이었고 그녀는 제자였다. (p.55)




한나도 하이데거를 사랑해서 둘은 사랑하지만, 하이데거는 한나를 자신의 지적인 '동반자'로 보기 보다는 보조자 취급을 했다. 너는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너 스스로 혼자 설만큼 똑똑한 건 아니야, 정도의 느낌이랄까. 나중에 한나가 하이데거보다 더 유명해지고난 뒤에도 한나의 작업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는 게 합의되어 있었다.



한나는 자신이 하이데거의 수호자이며, 그의 정신적 균형과 철학적 작업의 수호자임을 느꼈다. 그녀의 말에서 위대한 마법사 하이데거에 대한 옛 경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그가 마련해준 귀빈석에 앉아 그의 강연도 들었으며 강연 내용에도 감탄했다. 그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는 물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나가 언제나 '마치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암묵적 합의였다. (p.157)


한나와 하이데거가 동시에 싫어지는 일은, 하이데거의 아내를 만나 친해지려고 했던 일이다. 한나는 '하인리히 블뤼허'랑 결혼해 사이좋게 오래 살았지만, 하이데거를 인생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나치당에 들어갔었다는 사실 때문에 끝내 괴로워하면서도 그러나 하이데거랑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어했다. 하이데거는 자신과 한나의 오래전 관계를 아내에게 말했는데, 아니, 어느 아내가 자신의 남편과 사랑했던 여자를 다정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국에 정착해 살면서 독일에 방문할 때면 하이데거를 찾아가는 한나를 하이데거의 아내가 반가이 맞을 리 없다. 하이데거와 한나 둘만 있게 두지 않으려 하고 질투하며 표독스럽게 구는데, 이에 한나는 너무 짜증을 내는 거다. 누가 나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짜증나는 건 모두에게 마찬가지겠지만, 아니, 그 아내가 어떻게 친절하게 한나를 대하냐고. 이 둘을 소개시킨 하이데거는 대체 뭐하는 놈이야... 삼십대 중반의 유부남 주제에 18세 제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더니, 나중엔 '나 한나랑 사랑하는 사이였어' 이러면서 아내에게 소개해.. 철학은 뭡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뭐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대체 하이데거라는 이 '남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던거야? 철학이 뭔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철학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왜 때문에 아내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바람폈던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사이가 좋기를 바라는가... 삶을 쥐뿔도 모르는데?

한나는 그녀가 짜증낸다고 너무 신경질적이라고 남편에게 편지 보내면서, 하이데거의 정치적 과오들도 뒤에서 아내가 조종한거였다고 쓴다. 하아- 아내가 조종했다는 것이 팩트인지도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해도 아내가 그러라고 했다고 나치당에 들어간 게 뭐 아무 잘못 없는 게 되는가.. 자신의 머리로 판단 못하는부분?


나는 한나 아렌트가 참 좋아졌는데, 저 부분에서만큼은 진짜 딥빡이 온다. 아니, 아내의 입장이 되어보면 말이다, 한나가 집에 딱 왔어. 그러면 " 꺅 >.< 너무 좋아, 반가워요, 남편의 전 내연녀, 내집처럼 편히 머물러요~" 이게 되는가? 쯧쯧...

물론 저거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자기가 화낼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자기중심적인지라 자기 기분, 자기 상황이 먼저지. 한나는 자기 기분에 충실했던 거야...




인상적인 건 남편 '하인리히'와의 관계였다. 뉴욕으로 건너가서 하인리히는 거기에서 일자리를 구해 강의를 하는데, 한나는 주중에 남편과 떨어져야 할 일이 많다. 여행을 비롯해서 강연 초청까지 여기저기 막 다녀야 하는, 역마살 낀 삶을 살고 있는 것. 실질적으로 남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신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지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나는 여기 비행기 타고 먼 곳에 와있고 당신은 거기, 아주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삶이라니. 이 지점이 아까 말한 회사 동료와는 전혀 다른 지점이고 또 나랑은 같은 지점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육체적 물리적으로 내 옆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람의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함께하고 내 영혼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한나가 아주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28년동안 함께 살았어. 그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어." (p.248)



그녀는 열정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즐겼다. 메리 매카시는 한나가 일찍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마치 자기 자신도 잊은 듯이 꼼짝도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있었다. 방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까치발로 살금살금 그녀 곁을 지나가야 했다. 한나는 은거할 수 있는 그런 국면이 필요했다. 그녀에게는 그다음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 토론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 식으로 고요히 생각하는 국면이 지난 다음에 그녀가 말을 거는 최초의 사람은 대부분 하인리히 블뤼허였다. 그와의 대화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았다. (p.279)




한나는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사유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수밖에 없다. 사유란 무릇 그런 것이니까. 그런 그녀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닌 타인. 이것은 얼마나 고맙고 또 다행한 존재인가. 24시간 365일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각자가 서로 떨어져있더라도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다니, 너무 좋지 않은가. 그건 하인리히에게도 또 한나에게도 서로가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사람은 생애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보인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얘기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유대인 학살 당시 나치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한다. 그당시 현재의 법률로 그를 처벌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또한 그녀는 아이히만이 그저 어리숙한 한 남자였다는 것에 당황한다. 그럼으로써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한나 아렌트가 생각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고 그것으로 사유하면서 말과 행동을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열정적이라, 아 그녀가 자꾸 위로 쑥쑥 올라갈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는 좀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유대인 별 표시를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대해 덴마크왕은 자신이 그 별을 다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식으로 '저변이 더 확대된' 저항은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독일의 지휘관들은 기이할 정도로 양보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베를린에서 오는 지시들을 무시하고 믿지 않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들의 "냉혹함"은 "햇볕 속의 버터처럼 녹아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는 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이미 전체주의에 대한 책에서 기술한 전체주의 체제의 한 속성을 시사한다. 그런 식의 체제는 아무리 살인적이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나타나면 대단히 쉽게 내부적으로 와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질이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무실체성을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한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악마화한다면, 비록 악마적인 위대함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어떤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악마화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항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내맡겨져 있는 검은 세력과 관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일깨운다. 이 외견상의 어두운 세력 뒤에는 사람들이 어떤 대항 행동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조직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이 힘을 합헤 공동으로 사태를 이끌어가는 것은 명령과 복종과 무책임에 근거를 둔 모든 테러 체제보다 언제나 영향력이 크고 또 "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히만을 "어릿광대"라고 불렀고 그가 체현한 악을 "평범"하다고 했던 것이다. (p.233-234)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괴물로 보지 않고 평범하게 봤다는 것, 게다가 유대인 학살을 돕는 유대인이 있었다고 쓴 것 때문에 한나는 유대인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는다. 그녀와 친한 사람들조차도 그녀를 비난한다. 그녀가 나치의 악을 극소화 시키고 있다는 것.

한나의 강의는 매우 유명하고 교수로서 이름도 높아 대학마다 그녀를 교수로 모시려 하고 그녀의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머무르는 미국에서 너무 비난을 받아 매스컴의 초대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로부터 악의 평범성 때문에 등을 돌렸는데, 그녀가 언제나 스승이라고 생각했던 '카를 야스퍼스'는 그녀의 말을 지지하고 또한 남편 '하인리히'도 그녀 편이다. 단지 편으로써 편이 아닌, 그 말을 이해해주는 것. 나는 이런 지점들이 그녀가 인생에서 가진 행운이라고 보여진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다. 사실 그건 지금 적용해도 틀린 말이 아니고. 강남역 살인사건에 있어서 가해자가 과연 '괴물'이어서, 그가 '근본 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일을 저지른걸까? 그가 다른 남성들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나? 악의 평범성은, 이런 부분에서도 적용되는 거 아닐까?



그러나 내가 그 당시의 유대인이었다면 나는 한나 아렌트의 편에 섰을까? 한나 아렌트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치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 악이 특별했던 게 아니야, 평범했던 거야, 그를 영웅화 시키지마'라는 말을, '아 맞다 그렇지' 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라면 한나 아렌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언지 알겠는데, 그 당시에 그 피해자속의 나였다면 나 역시도 한나 아렌트를 비난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자, 다시 순전한 기쁨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순전한 기쁨을 느꼈다.

한나 아렌트의 탄생과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정말 기뻤다. 기뻤다는 단어가 책의 내용상으로 적절하진 않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 한 위대한 여성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책을 읽는다는 게 너무 기뻤던 거다. 책 너무 좋다. 책을 한 권 읽음으로써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내가 조금 더 달라지 기분, 책을 읽기 전보다 뭔가 더 채워진 기분. 나는 이것이 너무 기뻤다. 너무 짜릿했다. 이것은 짜릿하고도 순전한 기쁨이야. 어제 퇴근길에 순전한 기쁨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그러나 회사 동료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순전한 기쁨은 자기만의 몫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늘 붙어있고 싶은 마음, 그래서 붙어 있을 때 행복한 그 마음은 누군들 모를까. 그러나 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나는 이런 게 더 기쁜거다. 심지어 최고의 기쁨이야. 우선순위의 기쁨이다. 그러니까 좀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좀 전보다 내가 더 채워진 것 같은 이 순간, 책을 읽는 이 순간,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 감동하고 생각하고 돌이켜보는 이 순간. 이 순전한 기쁨이라니!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 책과도 대화를 하게 되지만 나와도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순간이 순수하게 너무나 기쁜 것이다. 순전한 기쁨!!



기쁨도 각자의 몫이고 행복의 기준도 저마다 다른 것이고 그러니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멋대로 조언해서는 안되지만,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아, 책을 읽어라! 하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누가 오지랖 떠는 거 보는 거 세상 싫지만, 그래서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여러분, 책은 읽어야 해! 책은 나 자신과 풍부한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 삶이 충만해진다고!!




한나 아렌트는 제일 처음 하이데거를 선생으로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 스승을 앞지르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나는 이것도 너무나 너무나 좋다. 이런 실재한 여성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한나 아렌트를 더 읽어봐야겠다.

지금 기분으로는 이 책을 읽은 게 너무 기뻐서 책장 한 칸을 온통 한나 아렌트로 채우고 싶다.






















아, 아침부터 페이퍼를 너무 열정적으로 썼더니 출출하네. 백설기 뜯어먹고 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오레오도 있고 귤도 있고 백설기도 있고 커피도 있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 만세!



덧붙임) 바로 위에 링크한 《한나 아렌트의 말》사려고 했는데 내가 이미 사둔 책이란다... 네???????????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러면 내 책장에 이 책이 있단 말이야????????????? ㅜㅜ




마르타는 편물공장에서 일거리를 맡아왔다. 67세의 나이로 낯선 세계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거의 집에 머물면서 한나와 하인리히를 위해 살림을 했다. - P109

알프레드 케이진은 한나가 친구들 사이에 끼친 첫 번째 영향을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40대 후반의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매력적이고 정열적인 유대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상냥하고 재치 있고 혀가 매서운 만큼이나 여성적이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양이 있었다. 새로운 우정에 매혹되면 그녀의 유대인 용모와 칼칼한 목소리는 명상에 잠긴 듯한 다정함으로 변했다. […] 그녀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왜냐하면 그녀의 새로운 고향과 영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억양과 열정과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P122

야스퍼스가 하이데거를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녀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말 인격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이데거가 무너진 후 처음 쓴 글 「휴머니즘에 관하여」도 그녀는 좋게 보지 않았다. ˝문명을 욕하고 존재Sein를 y자[Seyn]로 쓰면서 토트나우베르크에서 살았던 삶은 사실 쥐구멍 속으로 숨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숨어든 건 순례를 하듯 자신을 찾아와 경탄을 표하는 사람들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P125

한나는 뉴욕에서 충만한 삶을 살았다. 요구 사항이 많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마음에 담고 있는 책을 썼으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러나 한나의 어머니는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마르타 아렌트에게 미국은 영영 낯선 존재였다. 그녀는 95번가의 가구 딸린 방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사위를 잘 이해하지 못햇다. 하인리히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다시 재야학자로 살아갔다. 그는 독자적인 철학적 구상으로 전 서구 사상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지고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는 한나가 책을 쓰는 데 자극과 조언을 주는 대화 상대자였다.-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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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15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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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5 14:26   좋아요 1 | URL
아이고 별말씀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매우 좋아하고 있다)

잠자냥 2020-01-1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그 *빻은* 관계 때문에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도 더 읽어봐야겠지요. ㅎㅎ
(똑똑한 사람이 어쩌다 그런 사랑을;; 음..)
우리가 읽은 <나 시몬 베유>의 시몬 베유는 다락방 님이 페이퍼에서 구구절절 쓰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주장을 비판했지요. 저는 ‘악의 평범성‘도 공감하지만, 시몬 베유의 비판도 이해가 가요. 암튼 두 여성 다 멋지긴 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하이데거 이야기 하시면서 흥분하셨나봐요. ㅋㅋㅋ아렌트 관련 네 번째 인용문에서 ˝한나는 예쏙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p.55) 예쏙적 ㅋㅋㅋㅋㅋㅋ 너무 예속되었다고 생각하셨나봐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15 14:38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것을 평생에 걸쳐 가져간건(심지어 중간에 그가 그녀로부터도 비난당할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너무 어릴 때 만난 첫사랑 혹은 첫남자 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이데거가 더 싫고요. 제 경우에도 제 첫사랑을 잊는데 되게 오래 걸렸거든요. 그나마 나중에는 다른 시각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고요(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한나 아렌트에게 어릴 적에 만난 스승이자 남자인 하이데거는 너무 강한 사람이었고 잊지 못할 사람이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가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을 안해볼 수가 없어요. 그랬다면 한나 아렌트도 사랑에 빠진 그 당시라면 몰라도, 나중에는 하이데거와 하이데거와의 관계 그리고 하이데거 아내와의 관계도 다르게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이건 지금의 제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시몬 베유는 보부아르와도 선을 그었는데 한나 아렌트를 비판했군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뭐랄까. 멋진 여성이 다른 멋진 여성을 비판하는 게 너무 멋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각자 자기 주장을 가지고 멋져서 너무 좋아요. 세상에 멋진 여자가 많아서 좋군요. 물론 아직 충분하진 않습니다. 더 나와야 해요, 더!


하이데거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싫어. 하여간 철학한다는 남자들은 죄다 별로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저 [나, 시몬 베유]는 안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1-16 07:50   좋아요 0 | URL
[나, 시몬 베유]를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의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비판하는 걸 읽으면서, 시몬 베유라는 사람 대단하구나 했어요. 자기만의 경험을 토대로 사상을 발전시키고 (꼭 사상이라고 지칭할 필요도 없지만) 그에 기인하여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건전한 상황인 것 같다. 시몬 베유와 한나 아렌트가 다 훌륭해보기에 하는 지점이었죠. ..

그나저나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에게 푹 빠져 산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 심정에 대해 뭐라 말할 순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게 마련인지라. 하이데거가.. 나쁜 넘인거죠. 흥. (라고 비난의 화살을 하이데거에게 확 돌려버린다)..

아 아침부터 졸린데 이 글 읽고 깼어요. 요즘 넘 피곤해서 책이 잘 안 읽혀지는 게 넘 괴롭구나 생각하며 출근했거든요. 책만 읽으며 살 순 없겠죠.. 먹기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출근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피곤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책 읽을 시간이 줄 수 밖에 없고.. 악의 순환고리에요. 쩝.

다락방 2020-01-16 08:15   좋아요 1 | URL
제가 시몬 베유 책을 세 권을 사서 그 중에 두 권을 읽고 한 권을 팔았거든요. 근데 그 한 권이 바로 [나, 시몬 베유] 였어요. 하아. 어제 잠자냥 님의 댓글과 오늘 비연 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제가 무슨짓을 한건지..너무 후회가 밀려오네요. 안그래도 새책 팔면서 팔까말까 엄청 망설였는데... 팔지말걸. 저 너무 악의 평범성 비판한 부분 읽고 싶고요... 그렇다면 저는 정가에 사서 중고가로 팔고 다시 정가에 사야 하는걸까요? 슬픔 ㅠㅠ 그렇지만 너무 읽고 싶네요. 제가 왜 팔았을까요? ㅠㅠ


저도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관계에서는 하이데거가 나쁜놈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뻔뻔한 새끼에요. 나이도 훌쩍 많은 유부남이 어디 어린 여학생에게 사랑한다고 껄떡댑니까? 그러면서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가며 만나고. 진짜 제일 싫어요. 나쁜 새끼...

저도 회사 안다니고 책만 읽으면 얼마나 신날까 생각하는데... 그런데 회사를 안다니면 책을 또 어떻게 사죠 ㅠㅠ
인생이란 게 이런건가 봅니다. 하나를 취하기 위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
인생....

비연님, 오늘도 화이팅요! ㅠㅠ

잠자냥 2020-01-16 11:13   좋아요 1 | URL
ㅎㅎ 댓글 달고 보니 제가 한나 아렌트를 비난(?)한 거 같군요. ㅋㅋㅋㅋ 아니 왜 그런 남자를 만나! 하면서요.물론 하이데거가 나쁜 노....옴이지요. 에휴. 거기에는 덧붙일 말도 없어요.

다락방님 그 책을 그렇게 팔아버리셨군요!
그럴 땐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거예욧....
전 시몬 베유가 아렌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보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하는 점이 정말 당차 보였습니다. ㅎㅎㅎ 근데 또 그게 그냥 비난이 아니라 말이 되니까 더 멋진!

다락방 2020-01-16 11:34   좋아요 1 | URL
그래서 제가 도서관도 검색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도서관에 없더군요..
앗. 해가 바뀌었으니 신청해야겠어요!!

(잠시후) 희망도서 신청하고 왔어요! 그런데 한나 아렌트 비판하는 부분 너무 멋있어서 결국 구매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무슨짓을 한것인가 내가 ㅠㅠ

단발머리 2020-01-18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다락방님 이 페이퍼를 읽어야 할 듯합니다!!! 너무 좋으네요!!
저 역시 <나, 시몬 베유>에서 한나 아렌트에 대한 시몬 베유의 가열차고 야무진 비판이 기억나요.
시몬 베유 같은 유대인 생존자들의 비난을 예상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나 아렌트의 학자적 고집과 확신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구요.

전 그래픽노블 <한나 아렌트, 세번의 탈출>에서 하이데거와의 관계를 서술하면서 ‘마음에 그늘이 졌다‘ 그 표현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사랑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제자라니..... ㅠㅠ 슬퍼요.

다락방 2020-01-20 10:09   좋아요 0 | URL
저도 한나 아렌트를 읽게 되어서 너무 좋았어요. 이 책을 읽을 때 얼마나 독서에 대한 사랑이 샘솟던지요. 도대체 이렇게나 좋은 독서를 왜 국민 전체가 하지 않는걸까요? 사람들은 왜 책을 안읽을까요, 단발머리님? 이렇게나 좋은데??

저는 도서관에 [나, 시몬 베유] 희망도서로 신청했습니다. 제가 왜 섣불리 그걸 팔아버려가지고... 그러니까 돈에 눈이 어두워서 읽지도 않고 팔았습니다. 아, 한심한 인간이여... 이렇게 금세 읽고싶어질줄은 나는 몰랐네. 흑흑. 한나 아렌트 비판에 대한 부분은 너무 읽어보고 싶어요. 한 똑똑한 여자가 다른 똑똑한 여자를 비난하는 글이라니. 너무 멋져요 ㅠㅠ

저는 [한나 아렌트의 말] 사려고 했는데 이미 구매한 도서라고 해서 어제 책장 앞으로 가 대체 어디에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찾아냈다고 합니다. 찾아서 책상에 꺼내두었는데, 그렇게 읽으려고 책상에 꺼내둔 책이 또 쌓이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또 안읽고 다시 정리한다며 싹 다 넣어두겠지요. 인생은 뭔지... 킁킁.

 















'로버트 브린자'는 남자 작가이다. 전편인 《얼음에 갇힌 여자》에서 주인공인 '에리카' 형사를 통해 여성 피해자들에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아, 이 작가는 세상을 두루 보려고 하는구나, 노력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 남자 형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지만 고집스럽게 제 역할을 해내려는 에리카의 모습을 나는 무척 좋게 봤더랬다. 남자 작가라고 다들 그렇게 여성혐오적인 작품만 쓰란 법은 없지, 어떤 남자들은 성평등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수도 있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남자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고 로버트 브린자는 성평등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작가라고 나는 판단한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이트 스토커》에서는 남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어쩌면 게이일지도 몰라 게이혐오에 촛점을 맞춰 수사중이다. 에리카가 맡은 사건의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는 '아이작'이라는 남성인데 이 남자 역시 게이다. 에리카와 사이 좋게 지내면서 서로의 고민들을 말하기도 하고 함께 자주 저녁 식사도 한다. 그 날도 아이작은 에리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에리카는 곱게 차려입고 아이작을 방문했다. 긴 여름 드레스와 맵시 있는 머리, 대롱대롱 매달린 은제 귀걸이(p.137) 차림으로. '맵시 있는 머리'라는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리카가 평소의 출근하는 차림이 아닌, 여느 날과는 다른 '꾸민' 옷차림으로 아이작을 방문한거다. 그런 모습에 아이작은 놀라고 감탄한다.



"이야, 내 앞에 선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시죠?" (p.137)



자, 아이작의 감탄은 타당하다. 우리가 영화에서 종종 보던 장면은 어떤가. 한껏 꾸민 차림으로 데이트를 하려고 하면 남자들이 항상 그런 여자에게 감탄하지 않는가. 꾸민다는 것은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음을 의미한다.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이 자리에 신경쓰고 나왔다는 걸 티내고 싶고. 그래, 이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차려입을 수 있고, 차려입은 만큼 내가 차려입었다는 걸, 신경썼다는 걸 상대로부터 듣고 싶은 마음도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아이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감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그녀는 말했다. (p.137)



나는 에리카의 이 반응에 너무 놀랐다.

자, 생각해보자.

내가 오늘 데이트가 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좀 신경써서 옷을 차려입었다. 머리도 신경 쓰고 옷도 신경쓰고 평소에 하지 않던 귀걸이도 했다. 그렇게 상대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한거다. 그렇게 차려입었더니 상대는 평소의 내 차림도 아는 터라 내 모습을 보고 우와, 하고 감탄할 수 있다.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상대가 내게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했을 때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어떤걸까?



일단 칭찬을 들었으니 '고맙다'고 반응할 수 있겠다. 에리카와 아이작은 일터에서 만난 사이이고 그러면서도 사적으로 가끔 사이좋게 식사하는 사이이니 '하하 고마워' 정도로 감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혹은 위의 에리카의 반응처럼 무심히 넘기려는 듯, 평소에 내가 어땠길래 그래?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려고 했다면, 나였다면,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보통의 여자들이었다면,



내가 평소에는 어땠다고 그래?

내가 평소에는 날나리 같았어?

내가 평소에는 양아치 같았다는거야, 지금?

내가 평소에는 천박했어? 어?

내가 평소에는 거지같았니?

내가 평소에는 초라했어?

내가 평소엔 야하게 입고 다녔어?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이 나올 수 있다. 날나리, 양아치, 거지(딱히 거지를 말할 것 같진 않지만)등등. 또 다른 단어들을 넣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내가 평소에 창녀같았나 보지?' 라는 말은 안할거다. 세상 어느 여자가 자신을 칭찬하는 남자에게 반응하면서 '나 창녀같았나보지? 나 창녀로 생각했나보네' 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어느 여자가 창녀라는 워딩을 입밖에 내는가. 친근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이도, 친구 사이도, 연인 사이라도,

나 창녀같아? 라는 말은 대체 어느 여자가 한단 말인가. 하아.



나는 저 워딩에서 남자 작가의 한계를 느꼈다. 전(前)작에서 소수자의 삶, 여성들이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삶,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여성을 실컷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가였지만, 그러나 그가 남자임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저기서 왜 창녀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가. 우아함의 반대로 여자들은 창녀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상함의 반대, 아름다움의 반대, 지적인 것의 상대어로 여자들은 창녀를 떠올리지 않는다고. 우아하다는 칭찬에 평소에 창녀로 봤냐는 대답은 정말이지, 남자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다. 맹세코 나의 경우 단 한 번도, 나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칭찬하는 상대에게 '왜? 나 평소에 창녀같았어?' 라고 되물은 적이 없다. 우아함의 상대어로 바로 창녀를 들이밀다니. 대체 이게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상식이야, 어디서 튀어나오는 대응이야. 우아함의 상대어로 창녀를 바로 끌어올 수 있는 거, 아무리 주인공이 여자라지만, 그런 여자의 입을 빌어 '창녀'를 언급하다니. 너무 성녀와 창녀 이분법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거 아닌가.


나는, 우리는, 여자들은,

성녀와 창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아할 수도 있고 덜 우아할 수도 있고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아한 것의 상대어가 창녀같다는 생각은, 우리는, 여자로 살아오면서 하지 않는다.

내가 여성인 친구들을 만나 '와 오늘 옷 되게 잘받는다' 라는 말을 한다거나, '머리 잘랐어? 잘 어울려'라는 말을 한다거나, 뭐 기타등등 어떤 칭찬을 할 때 그 누구도 '나 평소에 창녀같았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으면 저기서 우아하다는 칭찬에 창녀로 받아치냐. 이건 진짜 남자 작가라서 그런거야.



남자들에게 창녀는 뭘까.

창녀가 뭡니까, 남자들이여.

도대체 남자들은 창녀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내지 못하고 아무때나 구분도 못하고 튀어나와버려.

진짜 .. 하아-

좆같은 새끼들 진짜.



그러니까 아무리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려고 해도, 공평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이번 책에서는 승진하고 싶어하는 에리카를 보여주는데, 그러니까 야망 있는 에리카.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뿌리박힌 여성혐오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세상 어느 여자가 저기서 저렇게 말하냐고.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심지어 에리카는 전작에서 우리가 창녀의 죽음이든 창녀가 아닌 사람의 죽음이든 평등하고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열변했잖아.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머릿속에 졸라 창녀창녀창녀창녀 있는건가봐. 하아. 재미있게 읽다가 아, 이것이 바로 남자 작가의 한계로구나, 생각했다. 남자란 어쩔 수가 없어.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낼 수 없는건가봐. 우아함에 바로 창녀로 받아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 내 여자친구들로부터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말. 그 말을 '로버트 루인자'가 에리카의 입을 통해 한다. 정말이지, 실망 대실망이다. 하아.



우아함의 상대어는 창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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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다락방 2020-01-10 09: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9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