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 입니다.


실질적 해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청원입니다.

동의합시다.


https://petitions.assembly.go.kr/status/onGoing/9C11598F598C39B3E054A0369F40E8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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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텔레그램 단속강화
    from 퀸의 정원 2020-02-09 13:19 
    다락방님이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생기는 음란물 유통과 관련해서 국회청원 사이트를 알려주셨지요.텔레그램에서이 음란물 유통이 범람해서인지 경찰이 칼을 뽑아들었다는 기사가 났네요.n번방잡는다 경찰 텔레그램 TF 가동 66명 검거외국에 서버를 둔 음란물 사이트를 적발하기도 쉽지않고 폐쇄하기도 쉽지 않다는데 경찰이 국제 공조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단속해 나가길 바랍니다.by caspi
  2. 성폭력처벌법 개정안 통과
    from 마지막 키스 2020-03-09 08:39 
    청원 당시 숫자가 빨리 늘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여기, 알라딘에도 청원독려 글을 올렸었는데 흑흑 ㅠㅠ 청원 10만명 동의 얻었고 국회까지 가서 새로운 법안에 반영이 되었다고 한다. 흑흑 ㅠㅠ 정말이지 오랜만에 좋은 소식이야. 세상은 느리지만 조금씩 천천히 변하고 있구나. ㅠㅠ 계속 소리지르면 어떻게든 변하긴 하는 것 같다. 지치지 말아야지. 지치지 말고 계속 소리질러야겠다. 청원에 동의해준 분들, 감사해요 ㅠㅠ
 
 
단발머리 2020-02-05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원하는 건 청와대 홈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국회에서도 그런 제도가 있었네요.
동의하고 왔어요!

블랙겟타 2020-02-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끄럽지만 국회에 청원제도가 있는건 처음 알았어요.
동의해씁니다!

비연 2020-02-05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게 있었군요. 동의하고 왔어요!

카스피 2020-02-0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저도 국회 청원제도가 있는줄 처음 알았네요.그나저나 텔레그램은 단순 메세시 프로그램인줄 알았는데 동영상도 볼수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몰카 범죄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네요ㅠ.ㅠ
 

일전에 [이수정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에서 2020년에 이 프로그램에서 다룬 내용으로 책이 나올거란 얘기를 들었다. 그 프로그램을 몇 개 듣지는 않았지만 내용들이 다 좋아서 책 나오면 좋겠다, 읽어보고 싶다 하고 있다. 사실 그보다는 이수정 교수님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간 공부하는 과정, 그리고 일했던 것들을 써준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것. 이 나라에서 범죄심리학자로 살아간다는 것, 교수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써준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수정 교수님을 넣어 검색해 보았지만 이미 내가 읽었던 [사이코 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와 아마도.. 교재로 쓰이는 책만이 있는 것 같다.
















누가 이수정 교수님 에세이좀 내주세요...




어제부터 박완서의 책을 읽고 있다.
















이 책, [대범한 밥상]은 박완서의 단편집이다. 와, 진짜 너무 좋은게, 글이 담고 있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크- 글맛이 있는 거다. 이런건 내가 국내 작가의 책을 읽을 때 자주 느끼는건데, 진짜 처음부터 한글로 쓰여진 문장을 읽는 건 그것 자체가 주는 아주 큰 기쁨이 있는 거다. 내가 번역서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읽기는 번역서를 훨씬 더 많이 읽었고 그래서 내 문장도 사실 번역문에 더 가까울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 한국어로 쓰여진 책이 주는 그 맛, 그 기쁨은 너무 최고되는 것이다. 게다가 박완서나 박경리, 이승우라면 한국어를 다루는 데 있어서 더 탁월한 것 같다. 막 문장 읽히는 데 되게 찰지다고 해야 하나. 제일 처음 단편 <부처님 근처> 읽으면서도 너무 좋았던게, 그 한국어 문장들, 그 맛깔나는 단어의 배열들로 인물의 섬세한 심리까지 드러내서 정말 크, 그래 이거야- 하고 감탄하면서 읽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는, 와, 할 말이 많아지는데, 그래서 결국 내가 이 단편집을 다 읽지도 않고 이렇게 페이퍼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여자는 세번 결혼했다. 이 일은 동창들 사이에서도 비꼬는 화제가 되는데, 주인공은 세번이나 결혼한 여자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긋지긋해하고 그러나 위축되지 않으면서 깐깐하게 맞선다. 이런 것도 너무 좋은데, 그간 결혼한 남편들에 얘기하는 건 또 어찌나 재미있는지.



집의 입을 덜기 위해 엄마가 후딱 결혼시켜버려 맞이했던 첫번째 남편.



신랑은 무식하고 교만했다. 나는 여직껏 자기의 무식과 자기의 돈에 그렇게 자신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는 자기 외의 딴 사람의 삶에 대한 상상력이 철저하게 막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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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불리 먹고 건강했는데도 나는 아기를 낳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시앗을 보았고 나는 시집을 떠났다. 남의 집에 들어와 애 하나 못 낳는 주제에 시앗 좀 봤다고 시집을 아사는 년이 그게 어디 성한 년이냐고 시집 식구들은 욕을 했지만 나는 그렇게 했다.

이혼이란 확실히 결혼보다는 경사스러운 일이 못 되지만 나는 그 일을 내가 선택했고, 내가 생전 처음 어떤 선택을 행사했다는데 기쁨마저 느꼈다. (p.59-60)




둘째 남편은 그녀 스스로 택한 남편이었다. 지방대학 강사였고 지방 신문에 칼럼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그 글들이 참 좋았던 거다. 돈이나 명예나 하는 것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닌 터라 반했던 것. 그래서 그와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곧 내가 속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는 겁쟁이이고 비겁하고 거짓말쟁이였다. 순 엉터리였다. 그의 본심은 돈과 명예에 기갈이 들려 있었고 T 시와 T대학 강사 자리를 지긋지긋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곳에서 썩긴 너무 아까운 존재라고 억울해했고, 서울의 일류 대학에서 자기의 명성을 흠모하고 모시러 오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기도 했다. 그의 명성에 대한 자신이란 것이 또 사람을 웃겼다. 자기의 전공 공부에는 게으르고 자신도 없는 주제에 잡문 나부랭이나 써가지고 지방 신문을 통해 매명賣名을 부지런히 해쌓는 것으로 그런 엉뚱한 자만을 갖는 것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그는 그의 글을 통해 결코 도시 돈 명예에 대한 그의 절실한 연정을 눈곱만큼도 내비치는 일이 없이 늘 신랄한 매도를 일삼는다는 거였다.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이 비비 꼬인 남자였다. (p.61-62)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어떤 남잔지 알겠는 건 왜때문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특히나 글쓰는 남자를 싫어라 하는 이유인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박완서님 만세입니다.


자, 그러면 세번째 남편은 어떤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세번째 남편은 돈에 환장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남자였고, 여자는 위선적인 것보다 그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징그러..징그러운 것이다. 징그러...




"거 참 잘됐구려. 오래간만에 나가 바람 좀 쐬고 와요. 사람은 그저 사람을 많이 알아놔야 되는 거야. 다 써먹을 데가 있다구. 있구말구. 줄이나 빽이 별건가. 그렇구 그런 거지. 당신 동창 중에라도 재벌이나 고관 사모님 없으란 법 없잖아. 하다못해 세리稅吏 마누라라도 있어봐. 그게 어디게."

공현히 흥분해서 눈을 번쩍이고 삿대질까지 했다. 그러곤 엄숙하게 덧붙였다.

"어떡허든 우리도 한밑천 잡아 한번 잘살아봅시다."

나는 울컥 징그러운 생각이 났다. 그러곤 아아,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편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나쁜 징조였다. 더 나쁜 것은 숨가쁘게 아아,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첫 남편과 헤어질 때고 그랬었고, 두번째 남편과 헤어질 때도 그랬었다. 남들이 알기로는, 내가 첫 남편과 헤어진 것은 애를 못 낳아서 쫓겨난 것으로, 두번째 남편과 헤어진 것은 그까짓 일부종사 못한 팔자 두 번 고치나 세 번 고치나지 하는 팔자 사나운 헌 계집이면 으레 그렇게 하는 빤한 소행쯤으로 되어 있을 터였다. 내가 겪은 아아 징그럽다는 아무도 모른다. (p.48)



아아, 그러나 제가 알겠습니다, 그 징그러움. 아마 다른 많은 여자들도 그 징그러움을 알 것 같습니다, 박완서 님이여..



이 세번째 남편은 참... 꼴보기 싫은데(다른 남편들처럼) 조금 더 옮겨보겠다.




그의 눈은 의욕 과잉으로 핏발이 서 있었고, 몸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마디로 눈부셨다. 그는 나도 자기의 손발처럼 덩달아 바쁠 것을 강요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잘 되지를 않았다. 나는 그의 분망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아홉시에 중요한 용건으로 만날 사람이 있으니 서둘러야겠다고 시계를 골백번도 더 보면서도, 별로 급한 것 같지도 않은 전화를 몇 통화씩 거는가 하면, 통화중인 곳에는 욕지거리를 해가면서도 끈질기게 돌리다가 아홉시를 삼십 분도 못 남겨놓고서야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를 질러대면서 옷을 주워입고, 내가 골라주는 넥타이를 마땅찮아하고, 다시 고른 것도 또 신통찮아하고, 거듭거듭 그 짓을 하면서 그는 교묘하게 자기가 이렇게 늦고 만 것이 마치 내 탓인 것처럼 뒤집어씌웠다. 그리고 겨우 고른다는 게 내가 처음 골랐던 것을 다시 고른 것도 모르고 만족해하다가, 다시 시계를 보고는 불난 집을 뛰쳐나가듯 곤두박질을 치면서 뛰어나갔다간 오 분도 안 돼서 숨이 턱에 닿아서 되돌아와서 중요한 서류를 잊고 나갔다고 찾아내라고 고함을 쳐댔다. 그럴 때 만약 내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보관했던 서류를 단박에 첫째 서랍에서 꺼내주면 도리어 남편은 나를 핀잔주려 들었다. 답답하다느니 안차고 다라지다느니 하면서. 그런 핀잔을 듣지 않으려면 나도 덩달아 "어머머, 큰일났네. 이 일을 어쩌누. 글쎄 그 서류를 어디 뒀드라. 에구구 …… 내 정신이야"하며 하던 일을 내던지고 뱅뱅 맴을 돌며, 발을 구르며 이 서랍 저 서랍 날쌔게 빼보고, 말을 안 듣는 서랍을 냅다 빼동댕이치며, 콩 볶듯이 날뛴 끝에 서류를 찾아내야만 했다. (p.45-4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 서류를 어디 뒀드라. 에구구 …… 내 정신이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소설이 쓰여진 게 1974년이다. 남편이 아니라면 경제적 능력을 갖추기가 힘들었을 것. 소설 속 여자는 행복해지고 싶고, 돈을 부족함없이 쓰고 싶어서 다시 결혼을 선택해 여기까지 온거다. 그러나 지금 남편도 너무 징그럽다. 그래서 거울을 보지만, 이제 다시 결혼하기엔 너무 늙어버렸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 소설은 이렇게 남편 얘기만 하다가 끝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내용이 이렇게 진행되어 이렇게 끝나지, 하게 되는데, 박완서가 그려내는 남편들의 모습이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은 바로 전에 실린 단편속 주인공과 달리 나이들어서까지 혼자 사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녀에게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녀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 그러나 전문의가 아니라서 동네 어디쯤 자리를 잡고 주로 소파수술과 성병치료를 하는 산부인과를 개업했다. 이 소설은 1980년의 소설이고, 주인공 역시 강간을 당해 낙태한 경험을 갖고 있는 걸로 되어 있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소파수술을 하게한 것. 한 자리에서 30년간 산부인과 의사로 일해오고 있지만, 그녀가 출산된 아이를 받은 건 처음 딱 한 번 뿐이고 지금까지 계속 소파수술과 성병치료만 해왔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에 치를 떨고 억울해 하면서 세상에 대해 보복하고 싶어한다. 친절하거나 다정한 것과 거리가 먼 성격의 여자인데, 그녀 스스로 그것을 잘 알고 있고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안달까. 이제 병원 폐업을 앞두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아이를 한 번 받아볼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여전히, 소파 수술과 성병을 치료하기 위한 여성과 포주들만 방문한다.

그리고 태반을 먹기 위한 동네 여자들과.




그런 여자들을 구경하노라면 진찰대에 치부를 얼굴처럼 쳐드는 자세로 누워 있을 때하곤 또 다르게 여자의 추악함이 그 극한까지 다다른 것을 보는 것 같은 잔혹한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 남의 미숙한 태반을 먹이고, 그 비릿한 입으로 음담을 지껄이게 하는 것도 내 나름의 여자들에 대한 박해의 한 방법이었다. 증오로써 할 수 있는 일 중 박해처럼 자연스러운 일도 없다. 이렇게 끊임없이 나는 내가 여자이기에 받은 치가 떨리는 박해의 기억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에게 분배함으로써 나만의 억울함을 덜어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결코 덜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남을 비참하고 추악하게 만들어놓고 비교해도 역시 내가 더 비참하고 추악했다. (p.143)




나는 자신에 대한 어떤 의구심에 사로잡혔다. 왜 나는 내가 이렇게 이해할 수 없어지나? 자기로부터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해할 수 없는 거동이나 기색을 보일 때 기분이 더 나빠진다. 하물며 자기 자신에 있어서랴. 하긴 그 우스꽝스러운 날림 결혼식 구경을 하면서 느닷없이 살아 있는 완전한 아기를 받아보고 싶단 생각을 품기 시작하고부터 나는 나로부터 떨어져나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될 수 있는 대로 따지지 말고 내버려두자고 벼른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분리되는 수은처럼 자신이 산산조각날 것 같아 나는 두렵다. (p.140-141)




이 책에 실린 열편의 단편중 나는 아직 네 편의 단편밖에 읽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이 너무 인상적이다. 뒤에 실린 이야기들은 또 어떤 이야기들일까.

아직 내가 읽지 않은 박완서의 작품이 많다는 게 너무 좋다. 제대로된 한국어로 쓰여진 짜릿한 맛을 느낄 생각을 하니 너무 좋은 거다.




지난 설연휴에 친구와 만나 닭도가니탕을 먹으러 갔었다. 삶아진 닭과 죽이 함께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데, 그릇 가득 녹두가 담겨있었다. 노란빛이라고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고 연둣빛도 아닌, 그 색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녹두를 모르는 사람에게 녹두를 설명하자면 노란 것보다는 빛이 바랬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흐린 노랑? 그러나 녹두를 아는 사람에게는 녹두색, 이라고 하면 금세 떠올릴 수 있을테다.

내가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좋아하는 데는 바로 그 이유가 있다. 녹두색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그걸 알아들을 수 있는 바로 그 지점.





대기실과 상담실을 겸해서 넓고 쾌적하게 꾸며진 방의 남으로 난 창가에 아직도 우단의자는 놓여 있다. 그 의자는 허구한 날, 내 눈에 거슬렸던 것처럼 오늘도 눈에 거슬린다. 손으로 우단천을 결과 반대방향으로 쓸면 다 바랜 잿빛 속에서 밝은 녹두색이 살아난다. 그 녹두색은 삼십 년 전의 쑥색의 잔재다. 그 의자는 쑥색이었을 적에도 녹두색이었을 적에도 잿빛이 된 후에도 나의 병원과는 안 어울렸다. (p.138)



위의 문장을 읽는데 너무 좋은 거다. 쑥색이라니, 녹두색이라니. 그리고 잿빛. 역시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문장이 다 쑥쑥 들어와.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정말이지, 아 이맛이야~ 이러면서 읽을 수 있다니까?


좋다. 좋아.



아 할일이 많은데, 그래서 어제도 요가하면서 내내 '내일 뭣도 해야 하고 이것도 해야하고' 하면서 일 생각했는데, 왜 회사 나오니까 책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는가. 어쨌든 책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하였으니, 이제 페이퍼쓰기를 마치면 점심식사에 대한 생각을 하는 걸로 하겠다. 뭐먹나..








창녀의 사타구니와 정숙한 여자의 그것과를 감히 비교하는 것은 정숙한 여자에겐 모독이 되겠지만 나는 다만 외관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상식적으론 창녀의 것은 더럽고 정숙한 여자의 것은 깨끗한 걸로 돼 있지만 육안을 통한 관찰에 의하면 그와 정반대다. 어떤 창녀의 그곳은 거의 백치의 얼굴처럼 청결하다. 그러나 자기의 그곳이 가장 정숙하다고 믿는 여자일수록 그곳의 불결에 파렴치하다. 그것은 마치 뉘 집에서나 응접실이 가장 깨끗한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그 가을의 사흘 동안>-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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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박완서 작가님 소설책을 일곱 권이나 모아놓고 한 권도 안 봤네요. 스스로도 깜짝 놀람ㅎㅎㅎ.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니 읽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2-05 08:41   좋아요 1 | URL
우와 대박. 일곱 권이나 모아놓으셨다뇨!! 이제 읽는 일만 남았네요.
저도 사놓고 안읽은 책이 너무나 많지만, 나중에 읽을 책 많아지니 좋다..라는 긍정적 마인드를 자꾸 끼워넣으며 살고 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님은 아무때고 내킬 때 읽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ㅎㅎ

slobe00 2020-02-04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은 드물게도 남편과 제가 공통적으로 애정하는 작가님이셔요^^
저도 역시나 번역서 비중이 높다보니 외국어 좀 잘했음 하는 마음도 불쑥불쑥~

다락방 2020-02-05 08:41   좋아요 0 | URL
저도 번역서를 많이 읽고 그래서 원서로 읽고 싶은 욕심에 방통대 영어영문학과에 편입했다가..한학기 다니고 자퇴했지요. 공부는 내 길이 아닌것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0-02-0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박완서 작가님 글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20-02-05 08:42   좋아요 1 | URL
쟝쟝님도 읽어봐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죠!!
 

<밀레니얼의 시사친구, 듣똑라> 라는 오디오파일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팟캐스트나 오디오파일을 거의 듣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혼밥을 자주 하는 편이고 그 때 함께하기에는 독서나 영화보기 보다도 이렇게 '듣는' 프로그램이 딱이다. 영화는 화면(자막)을 봐야 하니까. 듣똑라 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그 프로그램 명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얼마전 트윗을 통해 이 프로그램에 이수정 교수님이 출연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오오, 하고 이수정 교수님 편을 듣게 되었다.





이수정 교수님이라면, 뭐랄까, 딱히 페미니스트 라고 본인을 정체화하지도 않으시고, <이수정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에서 이다혜 기자랑 얘기하는 걸 들어도 '나는 무조건 여자편이다' 라는 식의 뉘앙스로도 전혀 얘기하지 않는 분이시지만, 그 분이 애초에 범죄심리학을 공부하고 또 지금도 계속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유는 피해를 당하는 약자의 편을 들기 위해서라고 누누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런 피해는 여자나 아동들이 많이 당하고. 요즘은 아주 열심히 채팅앱의 미성년자 성폭행 피해를 알리고 막기 위해 힘을 쓰고 계신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을 보는 것도 힘이 되지만, 한 여성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누구보다 앞서 나가고 또 정상의 자리에 있는 걸 보는 건, 그것대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얼마전에 '한나 아렌트' 전기를 읽고 생각했던 것처럼, 여성이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정상에 있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다른 여성들에게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과 실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요즘 이수정 교수님은 내가 매우 응원하는 분이고 또 감사히 생각하는 분이다. 작년에는 BBC 의<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셨는데, 아, 얼마나 롤모델로 적합한가.



그저 정상에 계신 그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그래서 듣똑라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마침 공부 얘기를 하셨다. 국내에서 박사학위까지 따고 정부의 일을 하게 되었지만 데이터분석으로 어떻게 강력범죄위험성을 알 수 있을까 싶어 재소자 면담을 신청한다. 그러나 너무 위험한 범죄자라 만나게 해주지를 않았고, 이수정 교수님은 이렇게 데이터 분석을 하는 것도 의미있지만 더 잘 알려면 재소자를 만나보는 게 맞는거다 싶어 해외파견을 신청한다. 여전히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엄벌주의인 텍사스 헌츠빌로 가 그곳 대학에서 오전엔 대학원생들과 재소자들을 만나 심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오후에는 대한민국에는 없는 형사정책 학부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는데 너무 짜릿한거다. 누군가 정상에 있다면 정말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게다가 여자라면 더하다. 남자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뒤를 봐주고 하는 것에서 멀어져있고, '여자라서'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수시로 닥쳐올텐데 정상에 올랐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걸까.



듣똑라는 기자 세 명이 진행하는 프로니만큼, 기자라면 누구나 이수정 교수님께 전화해 의견을 듣지 않은 적이 없을 거라 했는데, 바쁜데도 어떻게 그렇게 기자들에게 대답을 잘해주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수정 교수님은 언젠가의 여름에 '강간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 기자가 묻는 걸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했다 하셨다. 강간, 성폭행을 피하는 방법이 어디있냐고, 그런 멍청한 질문이 어디있냐고. 그걸 자신이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서 계속 말하기로 했다는 거다. 최근에는 민주당에서 영입하려고 했다는데 5분 고민해보고 거절했다고 한다. 비비씨에서 자신을 선정한 건 자신의 지위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열심히 떠들고 있었기 때문일거라며, 그동안 하는 일이 잘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일거라는 거다. 그러니 자신은 앞으로도 솔잎을 먹는 송충이처럼 하는 일을 계속 열심히 할 거라고.



인터뷰가 다 참 좋았는데 특히나 외국가서 공부하는 얘기를 듣는 게 너무 좋았다. 짧게 나오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이미 박사 학위를 땄으면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더 공부하는 부분이 너무 좋은 거다. 게다가 외국에서 공부하는 건 한국에서 모국어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을텐데. 내가 부족하고 그러니 더 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사고방식인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니까. 내게 필요한 게 뭔지도 파악하지 못하니까. 그저 자신이 아는 게 최선이고 최고라고, 전부라고, 옳다고 생각하니까. 으으, 역시 공부하는 여성 그리고 자신이 맡은 바 일을 꾸준히, 한결같이 열심히 해 정상에 오른 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큰 힘이 된다.



















이수정 교수님 인터뷰 때문에 '공부'에 대해 또다시 생각하게 됐고, 그래서 사두고 미뤄뒀던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 156쪽 까지밖에 못읽었고, 이 책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타라'는 열한살 무렵이다.


타라의 아버지는 절실한 모르몬교 신자이며 학교와 병원을 불신한다. 그곳은 사탄이 잠재해 있는 곳..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병원에 보내지도 않으면서 아프면 아이들의 엄마가 약초로 치료해주는 방법으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폐철 처리장에서 폐철을 회수하고 그걸 팔아 돈을 버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로 하여금 그 일을 돕도록 한다. 아직 어린 타라도 그렇게 폐철처리장에 가 일을 하는데, 하아,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크게 다친다. 폐철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던지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면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나는 거다.


어린 '타라'는 그곳에서 크게 다치고 다시는 폐철 처리장에 가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제대로된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타라는, 자신이 그곳에 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언니처럼 다른 곳에서 돈을 버는 것' 이라 생각하고 마을로 가 베이비시터 자리를 구하고, 마카다미아 포장하는 일을 구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베이비시터 임금을 받지 않을테니 내게도 피아노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며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 처음 피아노 독주를 들었을 때의 짜릿함과 강렬함, 그래서 배우고자 하는 욕망이 어린 타라에게 저절로 생겼던 거다. 이건 오빠가 들려준 교회 성가 합창 레코드에서도 느꼈던 경이로움. 그렇게 타라는 자신의 욕망으로 피아노를, 댄스를 배우게 되는데 댄스복장은 아버지가 '창녀이며 사탄'같다고 한 복장이라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되고, 이번에는 노래를 배우게 된다.



내가 읽은 부분에서는 아직 타라가 학교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는 타라가 여전히 아버지의 생각이 자신을 많이 휘두르고 있어 발레하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어린 창녀들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새로움과 놀라움에 이끌려 배우고자 하는 건 경이롭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타라의 아버지는 고집이 세고 본인만의 신념에 갇혀 있다. 운전하기 위험하다는 할머니의 조언에도 이동을 감행해 큰 사고를 한 번 내고서도, 다음에 또다시 감행해 또 큰 사고를 낸다. 할머니는 그런 타라의 아버지에게 실수로부터 배우지 못한다고 하는데도 타라 아버지의 고집은 꺽이지 않는다. 1999년 12월 31일에 종말이 올거라 식량과 총을 잔뜩 준비해두지만, 그러나 그 날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라의 아버지는 '내가 잘못된걸까'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타라의 오빠는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는 과정에서 크게 화상을 입는다. 아버지에게는 막강한 권력이 있어 아직 어린 아이들은 아버지가 허락한 세상에서만 살아야 한다. 학교도 병원도 금지되고 어린 나이에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저 이것이 세상이려니, 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다쳐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걸 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자기 신념, 자기 고집으로 아버지는 어린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으니까. 그 어린 자녀들에게 폐철 처리장에서 일하도록 시키다니, 아동학대가 아닌가.



타라 웨스트오버는 열여섯살까지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면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으면서 그러나 현재는 케임브리지 박사가 되었다. 이 과정이 어떨지 너무 궁금해 빨리 읽고 싶다. 열살, 열한살의 타라가 성가의 합창 레코드를 반복해 듣고자 했던 그 욕망,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던 욕망, 댄스를, 노래를 배우며 열심히 했던 그 욕망이 다른 학문에 어떻게 적용되어 실현됐는지 너무 궁금하다.


타라 위로 오빠인 타일러도 어느 순간 아버지에 반대하며 집을 떠났다. 대학에 가고 싶다며. 타라 역시도 아버지에게 무서움을 무릅쓰고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한다. 그러니까 이런 순간들. 어린 자식들이 자라서 결국은 옳지 못한, 강압적인 아버지에게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순간들은 얼마나 짜릿한가. 어린아이들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만큼 약하지만, 자라서 혹여라도 겪었던 부당한 일들에 목소리를 낼 수 있을만큼 강해지는 순간이 온다. 결국 아이들은 부모보다 힘이 세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타라가 어떻게 아버지에게 더 목소리를 높일지, 어떻게 학교로 가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여기까지 온것만도 너무 대단한데, 그 다음은 또 어떻게 진행될까.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게 나는 너무 좋다.



내가 타라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으면서 나는 타라처럼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폐철처리장에 가기 싫으니 다른 방법을 찾자'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저 아버지가 보여주는 세계가 전부인양 살면서 그렇게 늙어가진 않았을까. 사람이 자라는 데 환경은 분명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러나 자신의 본성 역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 정말이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좋다.




아 맞다. 그래서 책을 샀다...(응?)

배움은 소중하니까..




프랑스어 첫걸음 펴본 적도 없는데 베트남어 첫걸음 산 나를 어찌해야 할까... 정말이지 답이 없다.





「난 완전히 머리가 텅 빈 여자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단다.」 나와 오드리 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자신감이 깃들었다. 「남자들은 곤경에 빠진 바보 같은 여자들을 자기가 구하고 있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단다. 엄마는 그냥 비켜서서 그 사람이 영웅 역할을 하도록 해주기만 하면 됐지!」-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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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30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타라였다면,의 다락방님의 질문을 저도 수차례 했던 것 같아요. <배움의 발견> 읽으면서요. 읽으면서 타라의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우리 모두, 현대인이라면 거의 대부분 일정 정도의 강박이 있잖아요. 근데 타라의 아버지 정도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지 전, 그게 참 안타깝고 궁금하더라구요. 타라의 어머니가 다 받아들이니까요. 그걸 자신의 삶이라고, 인생이라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으니까 그 아이들이 스스로 탈출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건지 그 지점이 참 그랬어요.
다락방님 페이퍼 기다리고 있을께요, 기대만발, 개봉박두!

다락방 2020-01-30 09:45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 저도 아이들이 학대 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탈출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요. 타라의 할머니도 타라를 데리고 도망치려고 시도하지만 그러나 타라의 아버지는 너무 셌죠. 타라의 어머니도 나름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편이 되어주려고 하지만 타라의 어머니 역시 남편의 피해자이며 동시에 아이들에게 가해자였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스스로 아버지에게 맞서며 학교가고 싶다, 고 말할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결국은 해야할 말이었지만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런 상황에 아이들을 놓아두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싫어요.

게다가 엄마도 처음의 교통사고로 뇌를 다치잖아요. 그것도 빨리 병원 갔으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알고 고칠 수 있었을텐데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게 너무 짜증났어요. 아 정말 너무 속상해요. 결국 가부장제에서 아버지에게 너무 힘이 실린 게 진짜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ㅠㅠ

2020-01-30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30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han22598 2020-01-3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이 언급하셨듯이..우리 모두에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타라 아버지처럼 자기만의 신념과 강박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정도의 차이는 인정할 수 있는데, 하지만 어느정도가 사회에서 용납할 것인지는 고민해야할 문제인것 같아요. 또 그리고 개입이라는 부분...타라 아버지의 행동은 의도성을 봤을때는 악의가 없어요...과연 이러한 행동과 신념을 무작정 비판하고 개입할 수 있을지....참 어려운 문제인것 같아요... 다양성이라는 컨테츠로 봤을때는 그 스페트럼이 넓은 미국에서는 사실 타라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타라 스토리를 그 다양성의 측면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 같고요...


다락방 2020-01-31 07:38   좋아요 0 | URL
개입이란 게 쉬운게 아니니까요. 내 선의라고 해도 상대에게 선의로 다가갈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고요. 만약 제 주변에 타라가 있다면 제가 타라 아버지에게 이런식은 안된다 라면서 그 사람에 개입할 수 있을지... 아마 못할것 같더라고요. 그렇지만 분명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환경이 주어지잖아요. 저는 타라 아버지가 어떻게 살든 그건 상관없는데, 그 삶이 강제적으로 주어진 아이들 때문에 미치겠더라고요. 지금 읽는 부분에서는 타라가 오빠로부터 폭력을 당해요.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게 옳은 게 아닌가. 폭력은 어떤 경우든 ‘안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그 가족으로부터 그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설사 데리고 나온다면, 그 다음은? 역시 쉽지 않은 문제고요.

지금은 타라가 막 수학공부를 시작했어요. 얼른 더 성장한 후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아이들이 고통 당하는 얘기는 너무 괴로워요 ㅠㅠ

han22598 2020-02-0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하게 읽고 계시네요 ㅎㅎ 다 읽고 나서 저도........리뷰 한번써볼까해요..글쓰기는...두렵고. 못하고...영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할 이야기가 많네요 ㅎㅎ

다락방 2020-02-02 15:19   좋아요 0 | URL
앗 이 댓글 읽으니 오늘 오후는 이 책 읽기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다 읽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될지 모르겠네요. 다 읽고 다시 만나요!

2020-02-28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8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몇년만에 설에 집에 있는다. 집에 오신 할머니는 '너가 어쩐일로 집에 있냐' 라고 하셨고, 나는 할머니 보려고 아무데도 안갔어요, 했다. 그렇지만.. 친척들이 곧 들이닥쳐 번잡해질 게 또 너무 싫어... 조용함을 원한다. 어제부터 집에 있어본 결과 나는 오늘 식구들에게 말했다. '역시 명절엔 여행을 가야겠어, 다음부턴 여행 갈게' 했다. ㅎㅎ

아무튼 그래서 맥북과 책들을 가득 싸들고 집을 나왔다. 엄마, 밤에 들어올게, 하고 나와버렸어...  돼지갈비 잔뜩 먹고 나와 배고플 걱정 없으니 가져나온 책을 다 읽는게 목표인데, 그럴 수 있을까.




책읽기에 앞서 책 구매를 하려고 한다. (응? 왜?)

아니, 비연님도 책 구매 하셨고...(그게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0년에 다시 책구매 안하고 사둔 책만 열심히 읽으려고 했는데... 아니, 박완서 책을 사면 독서대를 준다는거다. 내가 딱히 굿즈 욕심 없는데, 독서대는 요며칠 계속 벼르던 아이템이다. 하나 사야겠어, 마음먹고 있었던 것. 

집에 와 계시는 엄마가 매일 성경책을 읽으시는데 내 독서대를 사용하시는 거다. 그래서 내가 독서대를 사용하려고 하면 엄마 책을 내려두고 내껄 올려두고 다시 내껄 내려두고 엄마 책을 올려두고...해야 하는데 얼마나 성가신가...상당히 귀찮은 일이잖아? 독서대 하나 더 있는게 낫잖아? 그런 참에 독서대를 준다고 알라딘이 똭- 그러니까, 아, 또 신이 나를 사랑해 힘들게 책 읽게 하지 않으시려고...



















페미니즘 도서를 여러권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읽는 그 당시에 당장 이해되는 게 아니어도, 나중에 다른 책을 읽다가 '아 그 때 그 책에서 말한 게 그런 내용이었구나' 하는 별안간의 깨달음이 오는 순간. 비단 페미니즘 책에서만 그런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최근에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그런 경험을 해서 너무 즐겁고 신났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내가 읽는 책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좋겠다. 갑자기 다른 책을 읽다가 훅- 하고 과거의 책 내용이 '아 이 내용이었구나'하는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어. 그렇다고 보면 책을 읽는 게 바로 내게 다 쌓이는 게 아니어도 어떻게든 내게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인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윤김지영 선생님의 역서.

















알라딘 책소개: 그린비 몸문화연구소 번역총서 두 번째 책. 프랑스 페미니스트 철학자 엘자 도를랑이 제시하는 페미니즘적 혁명 윤리의 태동.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폭력의 활용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몰수되어 왔는지, 왜 여성들에게 비폭력을 본질화해 왔는지를 역사적 소수자 운동의 계보를 통해 설명한다. 도를랑이 제시하는 호전적·전투적 자기윤리와 자기방어 전략은 지배자가 독점해 온 폭력의 구조를 깨뜨리고 다른 몸들을 발명해 내기 위한 혁명의 시론이 될 것이다.




내가 그간 읽어온 책들은 이 책을 읽는데 영향을 미쳐 이해를 도울 것이고, 또 이 책을 읽는다면 과거의 나의 독서를 끄집어내올 것이고 앞으로의 독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것이다. 책을 계속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이라 해도 독서 근육을 키우는 일이다. 근육이 단단해지면 더 무거운 걸 들어올릴 수 있는 것처럼, 그간 읽지 못했던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여러분, 독서를 하자. 물론 알라딘에 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사실 독서는 계속 하고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페이퍼 제목은 '명절의 독서'지만, 아직 독서는 시작도 안했다는 사실... 오늘은 1월의 도서를 다 읽도록 하자. 해보자.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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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1-25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휴가 중에 또 피신을 가시다니 ㅎㅎ 이번 해에도 열심히 읽자구요 ㅎㅎ

다락방 2020-01-25 13:1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ㅋㅋㅋ 왜이렇게 집을 나오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해에도 열심히 읽읍시다, 트랜님. 열심히 읽고 열심히 운동합시다. 저는 사실 2월에 요가 등록 끝나는데 연장 할까말까 생각중이거든요. 퇴근하고 요가 가는게 세상 귀찮아서... 그렇지만 요가를 해야 그나마 굳은 몸이 좀 풀리고.. 갈등중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읽고 열심히 마시고 즐겁게 삽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moonnight 2020-01-25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친척들 피해 도망가고 싶은데 조카들이 와 있어서 어쩔 수 없네요ㅎㅎ 좀아까 외갓집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선언하고 갔어요^^; 데리러 가야해서 술 한 잔 못 하고 북플에서 노닥거립니다. 다락방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책 많이 읽으셔요♡

다락방 2020-01-27 19:25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는 여동생네 가족이 와서 오늘 돌아갔어요. 덕분에 조카들 실컷 안아주엇답니다. 조카들..정말 너무 좋아요. 조카들은 축복입니다. 우리 새해에도 복 맣이 받고 조카들 듬뿍 사랑하면서 살기로 해요. 문나잇님, 해피 뉴 이어!

비연 2020-01-27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락방님의 책구매에 한몫한 비연, 여기 있습니다. 책과 함께 새해 복 왕창!

다락방 2020-01-27 19:25   좋아요 0 | URL
좋네요, 비연님. 책과 함께 새해 복 왕창!! 꺅 >.<

얄라알라북사랑 2020-01-27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 최대 2권(?) 정도 까페에서 쌓아놓아봤던 거 같은데, 제가 10분 간격으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하는 꼴이 스스로 염치없어져서 못 올려놓겠더라고요. 다락방님은 초집중하시나봐요^^ 요가로 정신수련을 하셔서 더 가능하신가요?^^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20-01-28 07:56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북사랑님 ㅋㅋㅋㅋㅋㅋㅋ 요가로 정신수련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랑 너무 관계 없는 말이구요 ㅋㅋㅋㅋㅋ 저도 책 꺼내놓고 스맛폰 잘만 들여다보는걸요. 저 날도 저렇게 세 권 가져갔지만 한 권도 채 끝내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네시간이나 있었지만 실제 독서에 몰입한 시간은 얼마일지..

얄라얄라북사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작년보다 훨씬 더 즐거운 시간 많이 가지시길 바랄게요!

책먹는엔지니어 2020-01-28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엔 자고로 책 구매죠!ㅋㅋ

다락방 2020-01-28 11:2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ㅋㅋ
 

그녀가 펜시오네 체사리나에 혼자 있는 것은 연애가 끝났기 때문이다. - 「비 온 뒤」p.120


















연애가 끝나지 않았다면 해리엇은 그녀의 애인과 함께 그리스의 한 섬에 가 있었을거다. 그곳에서 애인과 함께 2주간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으니까. 그러나 연애는 끝났고, 그녀는 혼자 이탈리아에 와있다. 어릴때부터 가족들과 해마다 왔던 곳이기에 익숙했고, 그 익숙한 곳에 혼자 와 머물고 있는 것. 그녀는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와인을 마신다. 남은 와인은 침실로 가져가 마시기도 한다.



그녀는 내내 헤어진 애인을 생각한다. 연애에 있어서의 자기자신을 반성하기도 하지만 애인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던 그 당시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고야 만다. 그걸 어떻게 안떠올릴수 있겠는가.



그가 둘의 연애가 제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한 건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에서였다. 그녀가 "하지만 우리 행복하지 않았어?" 하고 외친 게 그때였다. 그들은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중에, 왜 영화관 휴게실에서 그 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었을 때조차. 모르겠다, 그가 말했다. 그냥 그 순간이 적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어떤 단편적인 분위기 때문에. 만일 휴가 여행이 그렇게 이르지 않았다면 그들은 관계를 한동안 더 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게 훨씬 낫다, 그는 말했다. (p.134)




해리엇은 자신들이 행복한 연애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당신과 내가 만드는 관계에서 당신과 내가 진행하고 있는 관계에서 왜 나는 행복을 느끼는데 당신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느낄까. 이게 어디 해리엇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해리엇은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이별의 말을 듣고 의아하다. 우리 행복하지 않았어? 그 행복은 해리엇의 것이었으되 애인의 것은 아니었는가보다.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 극장의 휴게실. 그는 왜 하필 거기에서 내게 이별을 말한걸까. 해리엇으로서는 당연히 궁금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거기에서 말했어? 그런데 왜 하필 그 때 말했어? 이건 아마도 이별통보를 받은 사람쪽에서는 그 이별을 받아들이기까지 수십번 수백번 물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뭐가 달라질까.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이 아니었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에서 마침 그 때 얘기한 게 아니었다면, 그들의 관계는 유지될 수 있었을까. 하필이면 그 장소, 그 때가 아니라해도 언젠가는 '하필이면 그 장소, 그 때'가 오는 거잖아. 렘브란트 시네마 휴게실이 아니라 올림픽공원 이면 달라졌을까? 그 시간이 아니라 다음날 아침이면 달라졌을까?

이별하기에 적당한 장소와 적당한 시간이라는 게 있기는한가?



나는 한 번도 이별을 말했던 연인에게 '왜 하필이면 거기서 그 때'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나는 그랬어야 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해리엇처럼 나는 우리가 행복하다고 믿었다. 우리는 완전하고 완벽하다고, 단단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깔깔 웃고 있는데 그는 이제 이 관계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우리는 몇 개월 후에 외국에서 만나기로 했고, 비행기표도 끊어두었고, 비자 발급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오전만 해도 깔깔대고 웃으며 좋았는데, 오후에도 그는 내내 다정했는데, 그런데 밤에 그는 이제 그만두자고 말했다. 하필이면 내가 거기에 있을 때, 하필이면 그 시간에. 나는 그래서 그 말을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게와 정확히 그 뜻이 이해되기 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그 말인즉슨 그러니까, 내가 예약한 비행기표를 취소해야 함을 의미하는거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몇몇 친구들이 하필이면 그 때 그 타이밍에 이별을 말한 나의 애인에 대해 의아해했다. 아니, 왜 거기 있을 때 그랬대? 왜 어떤 기미도 없이 그 때 그랬대? 나는 그가 아니기에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이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걸. 그러나 짐작해 친구들에게 그를 대신해 대답했다. 아마 내내 그러고 싶었겠지, 그리고 참고 참고 미루고 미루다가 그 때는 더이상 미룰 수 없었겠지.

아마 그런거겠지.

그러니, 거기에서가 아니었던들, 다른 장소였다해도, 뭐가 달라졌을까. 그날 밤이 아니라 다음날 밤이라고 하면 또 뭐가 달라졌을까. 어차피 그렇게 되었겠지. 그도 아마 몇월며칠 몇시에 어디에서, 라고 계획했던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마침내 입밖으로 내야겠다고, 그 때,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래서 궁금했다. 그렇다면 뭣 때문에 더는 안되겠다, 이쯤에서 그만두자, 그로 하여금 입밖으로 내게 했을까.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돌이켜보고 돌이켜봐도 좋았던 기억 밖에는 없었는데, 오늘 우리 대화를 아무리 곱씹어 봐도 우리 좋기만 했는데, 우리 많이 웃었는데, 뭔 얘기만 하면 이렇게 잘 웃는걸까, 그런 생각도 했는데, 그건 다 뭐였을까.



나는 우리가 단단하고 안정적이라 믿었고 우리둘이 모두 행복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로부터 이별의 말을 들었던 것이 당황스러웠고. 그러나 놀랍게도 나 역시 이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몇개월 전부터 짐작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됐다. 나중에. 내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웃으면서 즐거워했으면서 일기장에는 불안과 불만이 가득했다. 좋지 않은 예감들이 내 일기장에는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단단하다고, 안정적이라 믿었던 것은 그저 보이는 내가 그러는 것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마음이 크게 작용했는가 보았다. 이별할 당시에도 나조차 알지 못했던 것을, 그러나 일기장에서는 몇개월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짐작하고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장소가 아니었어도, 그 때가 아니었어도, 그 일은 일어날 일이었다. 이별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장소 다른 시간으로 아무리 바꿔봤자 달라질 건 없었다. 일기장 속의 나는 불안했다. 단단하지 못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해리엇은 자신에게 이별을 말하는 애인에게 우리 행복하지 않았냐 물었지만, 그리고 그렇게 물을 당시 해리엇은 자신은 내내 행복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러나 해리엇 안의 또다른 해리엇, 좀더 솔직하지만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해리엇은 알고 있었을거다. 그 관계가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걸,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걸. 해리엇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내 안의 또다른 나는 그걸 들여다보고 일기를 썼다는 것. 해리엇이여, 일기를 쓰자... 일기를 쓰면 이렇게 자기 안의 또다른 나를 마주칠 수 있게 된다.


여러분, 일기를 써요. 일기를 쓰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쓰자.


이것이 나의 오늘 페이퍼의 결론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이게 아니고, 쓰다 보니까 갑자기 일기를 쓰자 이렇게 되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이거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될줄 나도 몰랐어? 아 다시 우중충 분위기로 어떻게 끌고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비 온 뒤》에서 표제작 「비 온 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이 단편집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비 온 뒤」가 특히 더 좋거나 하진 않다. 오히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재미나 감동 면에서 덜하달까. 그러나 해리엇이 놓여있는 상황이 몇해전 나의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봄에 나는 이별을 맞닥뜨렸고, 나는 행복했는데 그는 아니었던건가, 수개월 아팠고, 그리고 나 역시 해리엇처럼 그와 함께 계획했던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대신 혼자 여행을 했다. 해리엇은 혼자 여행하면서 헤어진 그에게 엽서를 쓸까, 생각하지만 쓰지 않는다. 나는 혼자 여행하면서 헤어진 그에게 엽서를 보낼까, 하다가 엽서를 보냈었다. 이게 바로 해리엇과 나의 다른 점이었다. 해리엇은 이탈리아로 갔지만 나는 베트남으로 갔다. 해리엇은 이탈리아어를 조금 할 줄 알았지만 나는 베트남어를 할 줄 몰랐다. 해리엇은 애인과 함께 그리스로 가려고 했었지만, 내가 그와 함께 머물기로 했던 곳은 다른 섬나라 였다.




당연한듯 해리엇은 그가 다른 사람과 함께 그리스에 갔을지 궁금해한다. 왜 아니겠는가. 아직 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설사 헤어진 후 시간이 오래 지났다해도 그런것들은 궁금해지지 않나.



해리엇은 그가 결국 거기에 갔을지, 런던에 남지 않고 오늘 거기에 있을지, 심지어 함께 갈 사람은 찾았는지 궁금하다. 그가 스키로스에 있는 모습, 이야기하던 대로 아트시트사 만에서 윈드서핑을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트시트사 만에서 복잡하지 않고 행복한 동반자, 그저 뭔지 알아보려고 치유를 받아보는 동반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선하다. (p.138)




내가 그때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그 시간에 거기 있기로 했던 계획들이 다 취소되었을 때, 그래서 내가 결국은 혼자 베트남에 가 있었을 때, 그때 그는 함께 머무를 다른 사람을 찾았었을까. 그래서 그 다른 사람과 거기에서 나대신 함께 있었을까. 그때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그는 행복했을까, 행복한 동반자를 찾았다고 생각했을까. 행복한 동반자와 함께했을까. 그래서 좋았을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모두 '그렇다' 아니, 모두 '그랬다'. 우리는 그 후에 다시 만났고, 그는 나와 헤어진 뒤 다른 사람을 만나 함께 지냈다. 내가 갈 수 없는 곳에서, 그러니까 가지 못했던 곳에서 그는 다른 동반자와 함께 했더랬다. 그걸 나는 나중에 그를 통해 들어 알게 되었다. 해리엇의 애인은 아마도 다른 동반자를 찾아 그토록 좋아하는 해를 온 몸으로 받아가며 윈드서핑 중일것이다. 그런일들은,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아도 일어나곤 한다. 해리엇은 그에게 정말이지 작별을 고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작별을 고하기 위해 혼자 거기에 갔을 것이고. 그러나 혼자 거기에 갔어도 뭐 그게 그리 마음 먹은대로 잘 되나. 아마 거기까지가 끝이었을거다, 해리엇과 그와의 관계는. 그 시점에서는 해리엇이 돌아서는 게 맞았을 것이다.









어제 이 노래 왜케 생각나나 했더니 해리엇 때문이었구먼....





그녀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자,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상황을 바꾸려고 더 밝은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의 불변성을 강요하자,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물러섰다. (p.141)



이별후에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랑에 많은 것을 기대했나? 아니면 내가 사랑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나? 내가 너무 관심이 많았나? 아니면 내가 너무 무심했나? 내가 너무 빈틈이 많았나? 아니면 내가 너무 빈틈이 없었나? 내가 너무 잘했나? 아니면 내가 너무 못했나?


그러나 내가 어느쪽이었던들 그 시간은 왔을 거다. 그 장소가 아니었어도, 그 시간이 아니었어도 왔을 거다. 뭐가 어떻게 되었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거다. 그랬을거다.




올해도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 하와이를 가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타이밍의 비행기표가 뜨지를 않네. 안되면 베트남 가야지. 하노이... 내 영혼의 안식처..... 쌀국수가 맛있는 곳. 호안끼엠 호수 근처도 걷고 더운 기운도 흠뻑 받아들이고 쌀국수도 배터지게 먹고 와야지. 와인도 주문해 마시고 남은 와인은 룸으로 가져가 더 마셔야지. 재작년인가 혼자 갔을 때도 호텔 레스토랑에서 와인 시켜서 마시다가 남은 거 룸으로 가져갔었는데.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하와이 안되면 하노이 가야지. 눈누난나. 그러면서 그에게는 이제 행복한 동반자가 생겼을까, 행복한 동반자와 함께 서핑하고 있을까, 이런거 생각해야지. 뭐, 인생 그런 거니까... 가서 타투도 해야지. 쇄골에다가 큼지막한 태양 그려 넣을까.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쌀국수 만세!

엘리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있는 것들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얼마 전의 과거에, 연애하던 여름에 살면서 오직 현재 알고 있는 것으로만 미래를 예상했다. 자신을 사랑한 여름 부제, 그녀가 여전히 사랑하는 그 사제가 기적적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는 엘리가 그의 자식에게 생명을 준 일조차 몰랐다. ˝그럴 수는 없어.˝ 그는 지금은 감자밭이 되어버린 풀밭에 누워 있을 때 말했다. ˝절대 그럴 수 없어, 엘리.˝ 그녀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제는 사제였다. 그는 보상을 하듯 다짐했다. 그의 온 생에 이런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다. -「감자 장수」-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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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1-2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쇄골 태양타투... 기대됨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23 12:16   좋아요 0 | URL
어딘라고 떠나면....타투를 하고 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ㅋㅋ

단발머리 2020-01-2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사람 만나오.
사는 동안 날 잊고 사시오..... 에서
쌀국수로의 이 자연스러운 안착!
키햐!!!! 좋아요 102개!!!!!

다락방 2020-01-23 15:00   좋아요 0 | URL
어휴... 편지 정말 가사가 절절하지 않습니까. 점심시간에 울면서 몇 번이나 따라부르고 그러면서 쌀국수 생각을 했습니다.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0-01-2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결국 베트남 쌀국수를 부르는 글. 지금 당장 먹고 싶어지는 부작용...

다락방 2020-01-25 12: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베트남 쌀국수는 베트남 가서 먹으면 정말이지 진짜 맛있어서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블랑카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쌀국수는 드셨을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블랑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