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알라딘 이웃의 파트리크 쥐스킨트 의 《좀머씨 이야기》리뷰를 보고 이십대 중반의 내 연애가 떠올랐다. 당시에 이 책이 엄청 인기 있어서 나도 읽었는데, 읽다보면 중간에 화자인 어린아이가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선생님의 코딱지가 붙은 건반을 누르는 일이 생긴다. 너무 누르기 싫었는데 선생님은 건반을 얼른 치라고 윽박지르고 이에 아이는 할 수 없이 이걸 눌렀다가 치욕스러워 하면서 죽자, 죽어버리자, 하고는 학원을 나가 달려가서는 한 나무 위로 올라간다. 죽을거야, 치욕스러워, 죽겠다, 하고 그 위에서 고통스러워 하다가 지나가는 좀머씨 를 보게 되고, 그러다가 '내가 왜 코딱지 때문에 죽어야하지?' 하고는 나무 위에서 내려오는 장면.


그 장면이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당시의 애인에게 데이트중 만났을 때 씐나서 설명했었다. 내 얘기를 듣던 그는 껄껄대고 같이 웃었더랬다. 내게 좀머씨는 그렇게 코딱지-이십대 중반의 애인-웃음 으로 마무리되고, 그 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고 결국 내 인생에 오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고 최종적으로 생각하지만, 그 순간의 즐거움만큼은 남아 있다. 내가 읽던 책 이야기를 해주고 그가 듣고 함께 웃던 장면.



오늘 이 일이 갑자기 떠오르자, '그러고보면 나는 늘상 책 이야기를 해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이야기를 하는게 얼마 안된거라 생각했었는데, 나는 그냥 책 이야기 하는 사람이었어.



《올훼스의 창》은 원작이 만화지만 나는 만화의 존재를 모르는채로 세권의 소설로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등장인물들 써가면서 짝꿍에게 속삭이다가 선생님에게 걸려서 혼나기도 했었다. 짝꿍 바뀔때마다 얘기해줬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뿐 아니라 영화 이야기도 그렇게나 많이 했다. 중학교때 한창 빠져있던 영화 《더티 댄싱》얘기도 앞에 앉은 애들 뒤에 앉은 애들 할 거 없이 다 해줬는데, 내가 얘기를 해주면 애들이 모여서 듣고 그러다가 어떤 애들은 꼭 그 영화를 자기가 직접 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이런 말을 듣게된다.



"야, 니가 말해서 더티댄싱 봤는데 재미없어. 니가 말해준 게 더 재밌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너무 과장했었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지간에 그랬더랬다.



















이십대 후반이었나, 친구를 만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얘기를 해주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다. 친구는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내가 다니는 회사 앞으로 왔고, 나는 친구를 데리고 회사 근처의 삼겹살집에 갔다. 삼겹살을 구우면서 나는 이 책을 읽는 중인데 너무 씐난다고 말을 했던 거다.


주인공의 언니는 주인공이 선물 받은 사랑이 담긴 장미꽃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는 온 몸에 욕망과 열기로 불타버릴 지경이 되어 찬물로 샤워를 하러 가는데 그래도 잠재워지지 않아 발가벗고 춤을 춘다. 저 멀리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던 한 군인이 그녀를 보고는 자기 말에 들어 태우고, 그들은 달리는 말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언니는 그렇게 그 군인과 떠나버리는 거다.


뭐랄까, 당시에 이 장면이 너무 놀라워서, 대체 소설가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상상하고 만들어내는가, 너무 놀라서 친구에게 씐나서 얘기해줬다. 친구는 들으면서 웃었지만 나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얘기하는 내가 더 씐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한편 점심을 함께 먹던 회사동료와 사무실로 들어가던 길에는, 《피츠제럴드 단편선》의 <컷 글라스 보울> 얘기를 해줬더랬다. 여자와 남자가 사귀다가 헤어지고 여자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데 이에 전남친이 저주를 담은 컷 글라스 보울을 그녀에게 결혼선물로 주는거다. 그의 저주는 통해서 이 보울에 칵테일을 만들어 손님을 접대하다가 남편은 취해서 실수를 하고, 이 보울에 담긴 편지는 아들의 전사소식을 담고 있었다. 이에 여자가 이게 다 이 보울 때문이야, 하면서 너무 화가나 이 보울을 들고 나가 머리 위로 들고 바닥으로 던지는데, 발을 헛디뎌 그 보울 위로 넘어지게 되는...



이 얘기를 해줬더니 동료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거다. 그래서 내가 책 읽어봐, 했더니 '차장님이 얘기해주는게 더 재밌더라고요, 제가 읽으면 재미가 없어요'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 동료는..그냥 책 읽기 싫어서 그런것 같다.....




나는 이렇게 늘상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어. 이렇게 알라딘에 페이퍼를 쓰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책 이야기를 했을 사람이구나, 라고 오늘은 새삼 생각했다. 다, 좀머씨 이야기 때문이다.




귀찮아서 핸드드립은 결코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드리퍼와 필터를 샀었는데, 아아, 나는 오늘 ..그러니까 방금 전에, 서버를 주문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하리오 드립서버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나 오늘 아직 커피를 못마셨어. 주문한 커피가 아직 오지 않았거든. 알라딘 내 커피 빨리 내놔... 내게 올 알라딘 박스가 세 개다.... 자, 차례로 오라, 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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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6-2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립포트도 추가요....예쁜 걸로 다가...있으면 다른 모양으로 또...

다락방 2020-06-29 12:26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저 진짜 그런 사람 아닙니다. 핸드 드립해 내려먹는 사람 아니라고요. 안살거에요, 안살거란 말입니다. (흐느낀다)

반유행열반인 2020-06-29 15:30   좋아요 1 | URL
드립포트의 가늘고 매끈한 곡선 주둥이로 물줄기를 요렇게 저렇게 낮게 높게 조절하며 달라지는 맛을 음미하며...왜 다락방님 주머니를 털지 못해 안달인 것인가...저만 당할 수 없다...도 포함인 듯...드립포트는 정말 이쁘고 귀여운 게 많습니다. (집요)

페넬로페 2020-06-2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먹으며 차마시며 언제든 책 얘기 할 수 있다는게 참 좋네요^^

다락방 2020-06-29 13:43   좋아요 1 | URL
책 얘기는 너무 재미있죠. 책 읽으면 할 얘기도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후훗.
 

어제 낮에까지만 해도 가슴속에 사랑이 차오르고 기분이 좋았는데 퇴근무렵에 확 기분이 나빠졌다. 스스로에게 참으라고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괜찮지 않았다. 나는 내 안의 이 기분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모멸감'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 이건 모멸감이었다. 나는 이런 감정을 끌어안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만약 모멸감을 느끼면서도 내게 내려진 일을 해낸다면, 그러니까 내가 이것을 하기로 허락한다면, 앞으로 이것은 당연히 주어지는 일이 될것이었다. 나에게 그리고 내 뒤를 이을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러니 애시당초 싹을 끊어놔야 했다.


나는 항의했고, 사과를 받았고, 그 일은 이제 다시는 직원에게 주어지지 않게끔 조치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퇴근길에 소설책을 꺼내들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쩌나.


나는 집에 사두고 안읽은 책중에 모멸감이란 책이 있었던 걸 기억했다. 모멸감을 느꼈으니 모멸감이란 책이 나를 위로해줄지도 몰라, 이 책은 이럴 때 읽기 위해 내 책장에 있었던거야, 하고는 집에 도착해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 침대 위에 두었다. 약간의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그리고 침대로 돌아와 이 책을 들었다. 이게 나을까 아니면 소설이 나을까. 어쩐지 소설이 나를 더 위로해줄것 같긴 한데, 아니야 어쩌면 모멸감은 모멸감이 달래줄거야, 그렇게 모멸감을 펼쳐 들었다.



















내가 오후에 회사에서 느낀 감정, 그건 수치심이 아니었다. 수치심은 내 판단에 의하면, 나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감정이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감정은 나 때문에 내게 온 것이 아니었다.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타인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직장 상사로부터 온 것이었다. 모욕? 그것과도 좀 달랐다. 나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려고 시도하는 일이었으나 내 자존감이 그렇게 내려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존중하지 않으려는 행위에 대해 나는 내가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충돌이었다. 바깥에서 내게 주는 행위와 내가 나를 지키려는 행위사이의 충돌.


'김찬호'의 《모멸감》은 수치심과 모욕이 다르다고 처음부터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어서 모멸감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그렇듯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형태의 모욕보다도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우리 일상 속의 은근한 모욕이다. 대개 무시나 경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후배가 출세 좀 했다고 건방지게 군다. 가게에서 물건을 파는데 나이 어린 고객이 반말을 쓰면서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 을의 입장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바쁘다면서 만나주지 않는다.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 대가가 형편없다. 돈이나 지위의 힘으로 내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다 …… 이러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은 '모욕감' 보다는 '모멸감'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p.66)



바로 이거다, 바로 이거였다! '돈이나 지위의 힘으로 내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다'가 바로 내게 일어난 일이었다. 상대는 지위로 나에게 일을 시켰는데 내게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지시를 받고 자리에 앉아 감정을 삭이려고 해보았지만 결국 나는 내 스스로 내가 느낀 것이 모멸감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해결하였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해서는 해결되지 않았다. 상황은 제자리를 찾아갔지만 감정은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했다. 퇴근하는 내내 나는 나에게 '다 해결했잖아, 할 말 다했잖아, 이제 잊어'라고 말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책장에서 모멸감을 빼내어 읽기 시작했고, 66페이지에서 바로 이거야! 하는 문장을 찾아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위로가 되진 않았다. 술을 마시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스물다섯살에 사귀던 남친이 '기분 나쁠 때 술 마시지마'라고 말했던 것이 내게 깊이 각인되어, 오늘은 마시지 말자, 하게 되었다. 그가 내게 준 것중에 가장 유익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66페이지의 저 문장에서 급반가웠지만 잠이 쏟아졌다. 자야했다. 불을 끄고 베개에 머리를 뉘이면서도 아, 이런 기분으로 나를 잠들게 하고 싶진 않은데, 라고 생각했다가 잠들어버렸다.




자고 일어나면 나아질까 했지만 어젯밤과 별다를 바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걸까. 오늘을 살다보면 다 잊고 새로운 일들로 인해 새로운 감정들이 생기겠지, 그렇게 출근을 했다.

지하철 안에서는 도나토 카리시의 소설책을 꺼내들었다.
















도나토 카리시는 책의 첫장부터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서 일단 펼치면 흠뻑 빠져들어 읽게 된다. 몇 장 읽지도 않고 이 책을 다 읽으면 남동생에게도 권해야지, 싶었다. 물론 중간중간 응? 하는 지점도 없진 않지만, 어쨌든 흥미로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늘은 형사인 '밀라'가 범죄자의 이웃을 찾아가 대화하는 장면을 읽었다.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아니, 고양이랑 함께 살았다.


윌콧 부인은 털실내화를 끌며 종종걸음으로 낡은 마룻바닥 위를 걸어갔다. 그녀는 유리 세공품, 이 빠진 도자기, 옛날 사진 등 온갖 골동품들로 거의 쓰러지기 직전인 가구들 사이로 난 길을 용케 찾아들어갔다. 그러고는 쟁반 위에 찻주전자와 찻잔 두 개를 담아 돌아 나왔다. 밀라는 소파에서 일어나 노부인이 쟁반을 탁자 위에 내려놓는 것을 거들었다.

"고마워요, 아가씨."

"괜히 번거롭게 해드렸나봐요."

"나야 좋지.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밀라는 자신도 이렇게 외롭게 늙는 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웅크린 자세로 흔들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이따금 주변을 살피기 위해 눈을 떴다 이내 다시 잠 속에 빠져드는 다갈색 고양이가 윌콧 부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말 상대일 것이다. (p.80-81)




밀라는 일가족을 죽인 살인범의 집에 찾아갔다가 이웃인 노부인을 만나 인사를 건네며 노부인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40년전부터 이 집에 살았다는 노부인은 남편이 죽고 이제 혼자이며 고양이 한 마리와 살고 있다. 밀라는 형사였지만 노부인에겐 오랜만에 찾아드는 손님이었다. 그런 노부인을 보며 밀라는 그녀가 외로울거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자신에게도 그런 삶이 찾아올지 몰라 좀 두려워하는 것 같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살았던 익숙한 집에서 혼자 사는 여성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좀 평화로운 기운을 느꼈다. 밀라는 '나도 이렇게 외롭게 늙는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나는 '나도 이렇게 살게 됐으면 좋겠다, 결국 이렇게 되겠지, 나쁘지 않아, 좋은데?'한 것이다.


오늘 한 알라디너의 글에서 '자유의 댓가는 외로움이다'라는 글을 읽었는데, 나는 그 구절에 동의한다. 이견 없이 동의한다. 책 속 노부인은 당연히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외로움이란 사실 모두에게 찾아드는 감정이 아니던가.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외로움은 찾아들 수 있다. 또한 노부인이 느끼는 감정중에 '혼자이기 때문에', '방문하는 사람이 좀처럼 없기 때문에' 느끼는 외로움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내가 노부인과 같은 삶을 산다고 해도 역시 그럴 것이다. 어떤 밤에는 문득 외로울것이다. 창밖을 보며 누구든 좀 찾아주었으면, 누군가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감정을 느끼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해도 혼자 사는 삶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혼자인 그 모든 시간들은 자유였다. 꽃에 물을 주는 것도 바깥을 보며 멍때리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외출을 하는 것도 낮잠을 자는 것도, 모두 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하면 될터였다. 익숙하고 안락한 감정 역시 외로움만큼 아니 외로움보다 더 찾아들지 않을까. 혼자 있으면서 필연적으로 함께갈 고독감 그리고 조용함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노부인의 삶이 참 괜찮게 느껴졌다. 비록 이 이야기는 살인범을 잡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혼자 사는 여성'인 노부인도 일순간 공포를 안고 가긴 하지만 말이다.



양재역에 도착했고 나는 읽고 있던 책을 가방에 넣었다. 아 책 재미있다, 노부인의 삶 아무리 생각해도 난 좀 괜찮은데?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아, 내 감정이 어젯밤보다 좀 나아졌네, 하고 깨달았다. 역시 내겐 소설이 답이구나, 소설이 있어야 해. 자고 일어난 것, 모멸감을 조금 읽었던 것, 시간이 좀 지난 것 모두가 나를 도와주었겠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금세 내려야할 역에 도착한 것은 어제 느낀 모멸감을 조금은 지워주었다.



회사를 향해 걸으면서는 자꾸 노래를 흥얼댔다. 요즘엔 노래를 잘 듣지 않는 삶을 산다. 물론 늘상 노래를 흥얼거리는 건 변함없지만. 오늘은 그렇다면 좀 들어볼까, 하고는 계속 흥얼댔던 노래를 이어폰을 껴고 재생시켰다.






아, 너무 좋았다. 너무 좋다, 너무 좋으네...

이문세와 이소라는 이 노래, <잊지 말기로 해> 에서 '난 그대의 가슴속에 머물고 싶어'라고 말하고 있다. 크- 좋구먼... 나도 그대의 가슴속에 머물고 싶다...




그러자 갑자기 오만년전에 보았던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영화 《약속》이 생각났다. '가슴속'이라는 가사 때문이었다. 영화속에서 의사인 전도연과 조직폭력배인 박신양은 사랑하게 되는데 이러저러한 오해가 쌓여서 전도연이 박신양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만이 배신이 아니야, 니 가슴 속에서 나를 지우는 게 배신이야!' 라고 했던 거다. 갑자기 그 부분이 생각나서 그래...니 가슴속에서 나를 지우는 거 배신이야.... 막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 장면..약속에서 나온 게 맞나... 아무튼지간에 그렇다.


이 영화를 그당시에 여사친과 비디오방에서 함께 보았는데, 마지막에 박신양이 사람을 죽이고 자수하러 가는 장면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서 막 우는거다. 박신양도 울고 전도연도 울고....내친구도 울었다. 나는 내 친구가 우는 줄은 모르고 계속 보고 있는데 아니 '자수하러 갈거야'라고 말해놓고 계속 울면서 자수를 안하는거다. 나는 너무 빡이친거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아니 저새끼 자수하러 간다면서 왜저렇게 안가고 질질끌어?"


그때 친구는 내게 울부짖었다.


"넌 사람도 아니야!"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돌아보니 친구가 펑펑 울고 있었던거다............................먀네...........................내가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나오는 차가운 도시여자라서 미안해..................................신이시여, 왜 저를 이토록 차갑게 세상에 보내셨어요? 네? 왜요?



아무튼지간에 니 가슴 속에서 나를 지우는 건 배신이다... 잊지마..... 꼭 기억해..........




자, 이제 나는 오늘을 살자.

인터넷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악플이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은 정도가 심하다. 악플러들 가운데는 피해의식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에게 악플의 즐거움은 무엇인가. 자신이 올린 글 한 줄에 다른 사람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맛볼 수 있다. (그것은 컴퓨터 파이러스를 유포해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나 시스템을 파괴하는 해커들이 느끼는 쾌감과 비슷하다. 그들도 의외로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가 많다고 한다.)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자신의 삶과 환경을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무력감에 시달리는 사람일수록 공격적인 발설로써 자기 효능감을 느끼려 한다.- P140

그런데 자기 효능감은 상대방의 반응에 좌우된다. 마구 욕을 퍼부었는데 상대방이 별로 개의치 않는다면, 계속할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P140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 - P161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사회에서 행해지는 차별은 언제나 상징적인 조작을 수반한다. 피차별 집단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면서 한 차원 낮은 존재로 격리시키는 담론이 작동한다. 예를 들어 한자에서 奸邪(간사), 姦淫(간음), 嫉妬(질투) 등에 女자를 부수로 취하고 있다. 또한 많은 사회에서 생리혈을 근거로 여성이 불결한 존재라고 믿었는데, 그것을 가리켜 ‘오염 신화‘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경북지역에서 전해지는 민담을 보면, ‘월경 중인 아녀자가 깔고 앉은 빗자루는 도깨비가 된다‘ ‘월경하는 여인네 속옷은 악한 귀신도 쫓는다‘라는 말들이 발견된다. 너무 불견한 나머지 혼령마저 도망친다는 뜻이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불결하다는 관념은 꽤 보편적이었다. 특히 종교행사와 관련해서 그러한 경우가 많았는데, 우리 전통사회에서 산신령께 제사를 드릴 때 ‘부정 탄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배제했던 사례를 들 수 있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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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2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멸감> 저 책에 시디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데 시디는 뭐예요??

다락방 2020-06-25 09:27   좋아요 1 | URL
저 책에 맞추어 음악을 작곡해달라고 저자가 부탁했대요. 그래서 작곡가가 글을 다 읽고 각 장마다 음악을 작곡해서 포함했대요. 저는 이 책을 중고로 사서 시디는 못받았고요, 그런데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큐알코드가 있더라고요. 저는 들어보진 않았습니다. 독특한 기획이죠.

단발머리 2020-06-2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지 말기로 해> 너무 좋으네요ㅠㅠ 완성형의 가수가 두 명이나... 완벽합니다.
오늘 날씨에도 딱이구요. 오늘 목요일이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고요.
물론 <이별이야기>만큼은 아니지만요.... 아무도 못 이겨요, 이별이야기는. 이소라도, 심지어 이소라도 못 이깁니다.

다락방 2020-06-25 11:09   좋아요 0 | URL
너무 좋죠? 며칠전에 이소라의 이별이야기 듣다가 연결연결해서 잊지 말기로 해도 오랜만에 듣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크- 감탄하면서 들었어요. 그리고 단발머리님,

이별이야기는.... 잊어주세요. 부탁드려요. 흙흙 ㅠㅠ

바람돌이 2020-06-25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 새끼 자수하러 간다면에서 빵 터졌어요. 저랑 똑같아요.ㅎㅎ
살면서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 자주 있죠. 그래도 정당하게 항의라도 하고 표현이라도 하면 잊혀지더라구요. 힘내세요

다락방 2020-06-26 09:20   좋아요 0 | URL
그 영화 엄청 인기 많은 영화였는데 전 싫더라고요 ㅎㅎ 자수하러 간다고 말해놓고 자수하러 안가는 것도 너무 짜증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내다보면 이 모멸감을 잊게될 수 있을까요? 상처로 남을까봐 걱정돼요. 어쨌든 오늘은 오늘을 살아야죠. 금요일이라 신나요!

clavis 2020-06-28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락방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상처로 남지 않을 수 있게 저도 멀리서 작은 기도를 보탤게요.
하지만 너무 멋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모멸감을 떨치기 위해, 모멸감에 대한 책을 읽자고 생각한 것도,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서 또 그에 맞는 책을 뙇 떠올릴 수 있는 것도요.

제가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 1이 목소리인데요, 목소리에서는 그 사람의 인격과 지성, 모든 것이 사실 다 드러난데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었어요. 다락방님 목소리는 정말 최고! 제가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유투브에 그림책 읽어주시는 것 들었거든요..(앗, 혹시 제가 그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이 저어되시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자가격리를 인생에 두번째로 하고 있어요.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제가 사는 곳에서는 확진자 숫자도 늘고..그 만큼 제 주위 사람들이 많이 걸리고 있다는 것이라서 걱정도 되고요. 하지만, 이 기회에, 휴가라고 생각하고 책도 보고, 락방님 올려주신 음악도 듣고 그러려고요. 늘 응원하고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락방님이 최고야!!뿜뿜!!

다락방 2020-06-29 07:46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에요, 클래비스님! 잘 지내느냐고 습관처럼 묻고 싶었는데 자가격리 중이시군요 ㅠㅠ 너무 답답하고 불편하시겠지만 조심 또 조심하셔서 걸리지 않도록 하세요. 말씀하신 서처럼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그래요!

유튭에 제가 책 읽어주는 거 올린건 다른 사람들 보라고 올린거니까 전혀 저어되지 않습니다. 반복해 들으셔도 돼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거기 아마 제가 노래 부른 것도 있을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이없어 제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원.
그렇지만 목소리 최고라고 하시니, 흐음, 책 읽어주는 거 또 올려볼까, 하는 마음이 드네요. 칭찬은 다락방을 책읽게 한다 ㅋㅋㅋㅋㅋ 감사해요. 목소리 좋다는 칭찬, 좋아해요! 뭐 칭찬은 다 좋지만 말입니다.

2020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벌써 상반기가 끝나버렸어요. 코로나 조심하자고 마스크 쓰면서 지낸 것만 생각나는 상반기에요. 하반기에는 좀 달라졌으면 좋겠는데, 다들 마스크도 쓰지 않고 답답함에서 해방되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저는 앞으로 여행을 또 갈 수 있기는 할까요? 답답하고 불안한 날들이지만, 우리 잘 지내봅시다, 클래비스님.

clavis 2020-06-30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ㅠ 또 들려주세요..예전 것도 여기에 올려주셨던 링크를 타고 들어갔던 것 같은데 그게 벌써 수 년 전이라 ㅠ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흙흙 너무 다시 듣고 싶습니다!! 자가 격리자에게 기쁨을!! 락방님 만세!

다락방 2020-06-30 08:32   좋아요 1 | URL
https://www.youtube.com/channel/UCNz45brYvB34F5-ahMuX-5A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으흐흐흐. 곧 시간내어 또 올려볼게요!!

clavis 2020-06-30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오늘 언니 생일이라서, 읽어주신 내용이 언니 생일에 딱이라 보내줬어요..락방님!!.. 너무 감사드려요

다락방 2020-06-30 11:56   좋아요 0 | URL
헤헷. 감사해요, 클래비스님. 으흐흐흐흐

clavis 2020-06-30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오늘 언니 생일이라서, 읽어주신 내용이 언니 생일에 딱이라 보내줬어요..락방님!!.. 너무 감사드려요
 















2004년 개봉 당시 이 영화 《클로저》를 보고 이게 뭐여.. 했던 감상이 내게 남아 있었다. 불륜 혹은 바람피는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자세한 걸 기억하진 못했지만, 친구중에 한 명은 그 당시부터 이 영화를 꽤나 좋아했더랬다. 너무 좋아서 반복해 본다고 했다. 내가 보지 못한 걸 친구는 본 모양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노래만 좋았던 걸로 기억하던 차, 며칠전에 이 영화를 다시 보자, 그 때 보지 못했던 걸 이번에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했다. 처음 보았을 때와 지금 사이에 무려 16년의 시간차가 있지 않은가.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보다 열여섯살이나 더 많아졌으니(오 신이시여...) 이 영화는 그 때 내가 받았던 것과 분명 다른 것을 줄터였다. 어쩌면 나는 그 당시의 내 친구처럼 오오, 이게 이런 영화였다니! 하면서 반복해 돌려볼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시작부터 개빡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 만남부터 이렇게 영화적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이 영화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네 명인데 이 주인공 네 명 다 좋아할 수가 없어.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다 싫을까. 개개인으로 보면 다들 너무 잘난(!) 사람들인데, 어쩌면 각자가 가진 위치에서 자존감이 다들 이렇게 바닥에 떨어져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역시 자존감은 내 신분이나 외모가 주는게 아닌 것이야. 게다가 이 네명은 모두다 어째서 이렇게 한결같이 사랑 아니면 못살것같이 굴까? 어째서 그럴까? 연인 때문에 힘들어 헤어졌으면 혼자 있게된 순간을 맞닥뜨리게 될텐데 잠시도 그 시간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인것 같다.



기자이자 작가 지망생인 '댄(주드 로)'은 길에서 우연히 교통사고를 당한 '앨리스(나탈리 포트만)'를 병원에 데려다 주면서 그녀와 아는 사이가 되는데, 이미 동거하는 애인이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매력에 푸욱~ 빠져버린다. 그렇게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되어 이제는 댄과 앨리스가 동거를 하게 되는데, 그 사이에 댄은 책을 출판하고 책에 들어갈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인 '안나(줄리아 로버츠)'를 만나게 되면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데이트 신청을 한다. 안나는 나름대로 '너는 애인이 있잖아' 라며 피해보려고 한다. 안나와의 데이트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자 댄은 온라인 채팅방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안나라 칭하고 안나인 척, 한 남자와 사이버 섹스를 한뒤 그와 오프라인 만남 약속까지 정한다. 안나를 만날 생각에 들떠 그 자리에 나간 피부과 의사 '래리(클라이브 오웬)'은 자신이 안나를 사칭하는 사람에게 당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어쨌든 그 일을 계기로 안나와 래리는 연인이 되고 결혼에 이르게 된다. 댄의 책은 잘 팔리지 않았고 안나의 사진전은 성황인 가운데, 댄과 안나는 그날부터 연인이 된다. 각자의 연인이 있는 상황에서 만남을 지속하는 이들의 마음이 평안할 리 없다. 출장을 다녀온 래리는 '사실은 출장 중에 매춘부랑 바람피웠어' 라면서 고백하고 안나는 '나는 댄과 연인 사이야' 이러고, 댄은 집에 돌아가 앨리스에게 '나 사실은 안나 만나' 이러고들 있다. 하..대환장...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섹스를 했다는 사실은 당연히 배신감 느껴지고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일인데, 래리는 안나에게 자꾸 묻는다. 걔랑 잤어? 좋았어? 우리집에서 잤어? 어디에서 잤어? 나보다 잘해?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스트레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각자의 연인에게 자신들의 불륜상황을 알린 뒤에 안나와 댄은 자유롭게 만나면서 서로 결합하기를 희망한다. 그전에 안나의 이혼이 선행되어야 함은 필수. 안나는 이혼 서류를 들고 싸인해달라고 래리를 찾아갔다가 '나랑 섹스 한 번 해야 사인(이혼)해주지~' 이래가지고 어쩔 수 없이 섹스를 하는데, 그러고나서 댄을 만나러 가자 댄은 '너 그새끼랑 잤지' 이러면서 팔짝팔짝 뛰고.... 야, 남편하고 이혼 안했을 때 너랑도 잤잖아. 어오.. 그런 안나를 용서할 수 없어하면서 댄은 분노하고 그렇게 안나는 자신의 남편에게 돌아간......... 하아-


한편 댄은 래리를 찾아가 안나를 돌려줘, 돌려줘 이러는데 래리는 '그녀의 선택으로 내게 돌아온거야, 너에게 가지 않겠대' 라고 말하면서 '너는 너의 엑스걸프렌드인 앨리스를 찾아가봐' 라고 한다. '나는 그녀가 어디있는지 모르는걸?' 댄이 대꾸하자 래리는 '사실 내가 그녀를 클럽에 갔다가 만났지, 그녀는 스트립댄서 일을 하고 있더구나, 답한다. 이에 댄은 그녀를 만나러 가려고 하면서 래리에게 묻는다.


그녀랑 잤어?


그러면 래리가 답한다.


잤어. 하룻밤에 몇 번이나 했지.



아오 ............시궁창 같은 새끼들 진짜. 자는게 제일 중요한 쓰레기같은 새끼들. 아무튼 그래서 댄은 앨리스를 찾아가 앨리스랑 다시 연인이 된다. 그들은 이미 예전에 3년간 동거한 적이 있던 터라, 함께 누워 사소한 일들에 대해 공유할 수가 있다. 그렇게 다정할 수 있지만, 그러나 댄의 머릿속에는 '앨리스가 래리랑 잤다'는 사실이 박혀있다. 그걸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것이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이렇게 말하지만 섹스를 무시할 순 없지. 섹스를 어떻게 무시해. 엄청 화딱지 나지. 그러니까 너무 화가 나서, 너무 속상해서 나는 저렇게 물어보지를 못할 것 같다. 그여자랑 잤어? 어땠어? 좋았어? 나보다 잘해? 어휴... 이걸 어떻게 물어본담? 그래서 대답을 들으면 그 다음은? 찢어지는 내 가슴 밖에 안남잖아..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잔인해지는거지? 나를 사귀는 중에 다른 사람이랑 잤으면 빡치고 돌아서면 되지 대체 어디서 잤는지, 좋았는지 어땠는지는 왜그렇게 집착하는거야...설사 나랑 잔것만큼 좋다고 하지 않는다한들, 상대가 배신한 건 사실이잖아. 다른 사람하고 잤는데 역시 별로였어 니가 최고야, 이러면 오케바리 이러면서 받아줄거야 뭐야....
















"내 말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일들이 완전히 끝나버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지."

"내 상관하고 1년 동안 그 짓을 벌인 게 없던 일이 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어요."

"저드,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다. 물론 그 애가 바람을 피웠고 그 일로 네가 마음을 다쳤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래봤자 결국 섹스란다. 가려울 때 엉덩이를 긁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우리들은 섹스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도록 세뇌가 된 것 뿐이야. 그 결과 다른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마는 거지. 섹스는 온 숲에 가득한 많은 나무들 중에 한 그루일 뿐이란다." (p.202)


"저한텐 엄청 큰 나무처럼 보이는데요." (p.202)



그런데,

만약에 안잤으면,

다른 사람이랑 섹스를 안했으면,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걸까? 섹스는 연인간의 가장 최고점에 위치하는 걸까? 그것은 다다라야 할 목표이며 종착지일까? 섹스야말로 사실은 그냥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대화가 잘 통했던 것, 그래서 그 시간을 소중히 나눠서 서로에게 깊이 각인된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섹스일까? 다른 사람과 섹스를 했다면 그것은 상대에 대한 배신임에 틀림 없겠지만, 그러나 섹스를 안했으면 배신이 아닐까?


나는 오래전에 남자1과 사귀고 섹스하면서 남자2를 더 좋아했던 적이 있다. 남자 3과 사귈때도 그랬다. 남자2와 나는 섹스를 한 적 없는 사이였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터였는데, 나는 가끔 남자2를 만나 대화를 하는 시간이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그의 웃음소리를 듣는게 좋았고, 그가 나를 웃게 하는게 좋았고,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게 좋았다. 그 사이를 망치고 싶지 않았고, 그러나 우리는 연인이라고 부를 순 없는 사이었기에 내게 연인은 따로 있었다. 오래전에 친구가 나를 만났을 때, 너는 인생에서 사랑한 남자가 누구야, 를 내게 물었고 그 때 내가 과거시제로 답한 건 연인이었던 남자1과 남자3이 아니라, 남자2였다. 그러나 내가 남자2와는 섹스한 적 없었으므로 나는 내 연인들에게 배신하지 않은 순수한 연인이었나?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었나. 나는 그들에게 잘못하지 않았나? 잘못하긴 또 뭘 잘못했어. 정서적 만족을 못주니까 그런거 아녀..자고로 정서적 안정을 주지 못하는 사람과는 연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거야... 젊은이들이여, 명심해.....



안나, 앨리스, 댄, 래리 모두의 복잡한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사랑은 순간적인 감정의 문제이든 혹은 의지의 문제이든, 우리는 이미 연인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다. 그렇게 '다른'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어느 순간 짜릿하거나 즐거웠을 수도 있지만, 죄책감을 동반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나만 보고 있는 사람에게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혹여라도 내 연인에게 그 관계를 들켜 지금 연인 사이의 관계가 끝장날까봐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하는 시간을 그들은 보내야한다. 무엇보다 그 사랑은 '숨김'을 필요로 한다. 숨긴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지만, 나는 사랑과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숨김이 필요한 사이를 만들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를 사귀는 것을 숨긴다는 건, 그것부터가 그와 오래 가지 못할 사이임을 뜻한다. 내가 누군가를 숨기는 것도 싫고 누군가가 나를 숨기는 것도 싫다. 어차피 우리 모두 끝을 향해 가는데, 이렇게나 분명히 끝을 알면서 나아가는 관계에 우리가 어떻게 최선을 다하겠는가. 나는 나를 숨기던 사람으로부터 느꼈던 그 때의 비참함을 분명히 기억한다. 나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쏟고 가장 많은 마음을 쏟으면서 그러나 나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사람 때문에 마음이 갈기갈기 찢겼던 것을 기억한다. 그게 아직도 내 안에 있고 그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 안에서 피가 나는 것 같다.




처음에 했던 얘기를 다시하자면, 이 주인공 모두가 사랑하는 대상이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로 보인다. 사랑하는 시간들이 끊기지 않고 그러므로 연인이 있는 상태가 지속되는데(물론 그렇지 않은 상황들이 그들이 얽히기 전에 분명 있었다), 상대를 배신했거나 상대를 배신했을 때만큼이라도 혼자인 시간을 좀 가졌어야 하지 않았을까. 안나의 경우 댄에게 호감 느꼈지만 래리랑 결혼하고 래리의 아내인 상태에서 댄이랑 바람피고 그러다 댄에게 정착하려 했으면서 다시 래리에게 간다. 댄에게 빡쳤다면 다시 래리에게는 왜 가나. 댄의 경우도 앨리스에게 반해서 동거해놓고 안나랑 바람피고 그래놓고 안나가 다른 남자랑 섹스했다고 버럭버럭 하다가 다시 앨리스의 연인이 되다니. 다들 왜그래? 왜 '연인 없는 상태'인 스스로를 견디지 못할까? 왜?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렇게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사람들 보면 너무 답답해지는거다. 결국 사랑을 위한 사랑을 선택해버리기 때문에 사랑도 뭣도 아니게 되고 연인을 배신하거나 배신당하면서 방황하잖아. 그러니까 덜 사랑하면서도 옆에 있는걸 선택하잖아. 아니, 어쩌면 인간이 너무 약한 존재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 하고 누군가의 연인이어야 되는게 반드시 필요한, 그런 약한 존재. 앨리스 사랑했다가 안나한테 움직였다가 안나가 떠나니까 냉큼 앨리스에게 가버리는 댄은 또 뭐야. 아이고.




사랑이란 것은 지독하게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 인간으로부터 비롯되는 감정이란 게 어차피 다 그렇긴 하지만. 분명 댄은 앨리스에게 반했다. 그래서 연인이 되었다. 그러나 3년쯤 되자 안나에게 반한다. 그렇다는건,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걸까? 첫눈에 상대에게 반할 수 있고 그렇게 지내다가 다른 사람을 보고 또 반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왜 그런 일들이 있는걸까. 있는데, 왜 있는걸까. 이 사람에게 반했고 그래서 이 사람과 함께하기를 선택했다면, 그 후에 다가오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반하지 않으면 좋을것을. 어째서 우리는 또 반하게 될까. 다른 사람에게 또 반한다는 것은, 혹은 동시에 반한다는 것은, 기존의 내 사랑에 완전하지 못하다는 건 아닐까. 어딘가 비어있고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너에게 반하고 너도 나에게 반하고 그렇게 우리가 함께 하기로 했으면, 그 다음에 우리에게 신뢰와 의지가 찾아들어 관계를 단단히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수많은 연인들이 헤어지고 또 헤어지고 또 헤어지고..... 인생이여.....



에휴...

사람들아, 때로는 사랑을 버리자. 사랑 버린다고 안죽는다. 사랑 버린다고 뭐 큰일 안난다.

사랑하기 위한 사랑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버리는 쪽이 스스로에게 훨씬 더 건강하고 이로운 일이다.



지난 주말에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마신 뒤, 엄마와 산책을 했다. 그때 엄마가 내게 말했다. 너한테 정말 부탁하나만 할게, 라면서 엄마는 제발 나쁜 기억좀 지우고 살아, 라고 하셨다. 너가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런건지 왜 나쁜 기억을 아무것도 잊지를 못해, 지우면서 살아, 잊으면서 살아, 하셨다. 엄마 내가 기억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기억에 그게 있어, 라고 나는 엄마한테 말했다.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기억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기억이 됐어.

나쁜 기억, 아팠던 기억들이 내 안에 다 있다. 사랑했던 감정도 감사했던 감정도 안에 있지만, 아프고 쓰렸던 것, 죄책감을 느꼈던 것까지, 내 안에 다 있다. 아마도 그날 엄마랑 술을 마시면서 내가 대학시절 죄책감 느꼈던 일에 대해 잠깐 언급했기에, 엄마가 이번참에 말해야겠다, 하고 이르신 것 같다.

이렇게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할 때 어떤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걸 끄집어내면, 그 때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난다. 그래서 아픈 걸 끄집어내면 안돼, 그때처럼 다시 아프니까.




아무튼, 책을 샀고 책이 왔다. 같은날 주문했지만 두번에 걸쳐 왔다. 이렇든 저렇든 어쨌든 책을 사는 건 변함이가 없구먼.






















그리고 장바구니에 다시, 책을 담는다. 책이..자꾸 나오니까 어쩔 수가 없다. 세상에 넘쳐나는 어쩔 수 없는 것들...


















곧 점심시간인데 아직 점심메뉴를 정하지 못해서 초조하다..... 뭐 먹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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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2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로저> 보고 나서의 그 복잡다단했던 감정이 뿅 떠오르는...
그러나저러나... 이 책들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꽈...ㅎㅎㅎㅎ;;;
(도나토 카리시 소설은 읽고 얘기좀 해주세요. 이름없는 자 이후 또 사야 하나 막 고민 중 ㅎ)

다락방 2020-06-23 12:19   좋아요 0 | URL
하틀랜드가 그렇게 좋답니다, 비연님... 그리고 갱년기는 저랑 멀지 않은 것 같고요.
샬롯 퍼킨스 길먼의 책이 새로 나오지 않았겠어요? 안살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이번 지름은 7월로 넘겨보자, 다짐에 또 다짐 중입니다.

도나토 카리시는 그때 그 뭣이냐, 그 드라마 뭐죠, 하이에나! 하이에나에서 김혜수랑 주지훈이 ‘가장 처음 작품이 제일 좋다‘고 해서 사실 그 뒤는 안읽으려고 했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님 글 보다가 걍 두 권이나 더 사버렸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입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다 읽으면 페이퍼나 구매자평 쓸게요. 후훗.

잠자냥 2020-06-23 1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클로저> 영화 저도 진짜 싫어했어요. 주인공 네 명 다 빡치는 캐릭터.....이 영화에서 좋은 것이라곤 대미언 라이스 음악뿐.... <하틀랜드>랑 <내가 깨어났을 때>는 저도 곧 사려고 하는 책인데. 흐흣.

다락방 2020-06-23 12:40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보고 끝날때까지 이 영화에서 좋은건 음악 하나뿐이네... 했어요. 네명다 진짜 너무 싫은 캐릭터에요. 제가 평소 몰입하고 공감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지만(!) 이 영화속 캐릭터에는 누구 하나 공감할 수가 없더라고요. 다 빡쳐요 다. 전부다 짜증나는 인물들... 어휴....

저는 7월달로 미루고 있습니다. 제 충동을 불러일으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요한 수면에 돌던지지 마세요.....(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6-23 12:56   좋아요 0 | URL
휙~ (돌)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7월에 살 거예염... ㅋㅋㅋㅋㅋ 아 책 사고 싶다.

다락방 2020-06-23 14:49   좋아요 0 | URL
저 진짜 이번에는 꾹참고 7/10 에 살거에요. 그때까지 안살겁니다. 월급날만 책 사는걸로 예전부터 정해놨는데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어서..이번엔 지킬거에요. 지킬겁니다. 그때까지 안살거에욧!!

moonnight 2020-06-2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클로저 정말 싫은 영화였어요 저 영화 이후로 배우 네 명도 싫어졌어요ㅎㅎ;
젊은이들이여, 명심해..에서 죄송하게도 웃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다락방님의 페이퍼♡

다락방 2020-06-23 14:52   좋아요 0 | URL
젊은이들이 제 말을 듣고 명심해서 연애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는 사람과 해야 할텐데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연애를 하지 않는게 나아요... 젊은이들이 명심해야 할텐데, 참 초조하고 그렇습니다. 아까 이 문장 쓰고나서 음.. 꼰대가 다되었군,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꼰대입니다.

클로저는 어쩌면 이렇게 등장인물이 죄다 싫은걸까요? 신기한 영화에요. ㅎㅎ

단발머리 2020-06-2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밑에 댓글 다 주인공 네 명 공평하게 욕하는데... 아.. 저는 이 영화 보고 싶네요. 어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6-23 14:16   좋아요 0 | URL
음악을 제외한 한 가지 더 즐거움은 클라이브 오웬 빼고는 다들 소싯적 한 미모 할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 그 정도?? ㅋㅋㅋ

단발머리 2020-06-23 14:39   좋아요 0 | URL
나탈리 포트만, 줄리아 로버츠 팬입니다. 봐야겠어요. 데헷!

다락방 2020-06-23 14:54   좋아요 0 | URL
단발님, 보고 싶으면 봐야지요. 봐야 까도 깔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 단발님은 좋을 수도 있겠지요. 네이버 굿다운로드 1,300원 입니다. 가격이 매우 착하지 않습니까?!

잠자냥 님, 저는 음악 말고 좋은 건, 안나와 래리 부부의 집이었어요. 와, 집 너무 좋아서..아니 줄리아 로버츠여, 이 집을 포기하지마..하는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그런 집에 살아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결혼도 해볼만할듯.... 나는 이층 쓸게 너는 1층 쓰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북깨비 2020-06-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저도요 저도 네 명 다 싫고 이 영화도 싫고 오로지 대미언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만 지금도 꾸준히 듣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0-06-29 07:47   좋아요 1 | URL
아니 어째 여기 오시는 분들은 이 영화속 주인공을 다들 싫어하십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재미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래만 좋아한다는 것도 같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네 명은 왜 우리 모두가 싫어할만한 영화를 찍은걸까요? ㅋㅋㅋㅋㅋ

감은빛 2020-06-29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우연이 또 있네요.
저도 이 영화 개봉 당시에 보고, 최근에 다시 한 번 더 봤거든요.
분명히 본 건 기억이 나는데, 음악이 진짜 좋았던 건 기억이 나는데,
주드 로가 부고기사를 쓰는 기자라는 것도 기억이 나는데,
뭔가 불륜 이야기였던 것도 기억이 나는데,
결말이 기억이 안 나더라구요.
그래서 한 번 더 보자 하고 봤습니다만,
절반도 다 못 보고 후회했어요.
다시 보지 말 걸 그랬어.
별로 기억할만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내용이 기억이 안 났던 거야.

뒷부분에서 주드 로가 섹스 때문에 집착하는 모습 보면서 너무 어이없고 화가 나더라구요.

다락방님 서재에서 이 영화를 만나니 묘한 기분이네요. ㅎㅎ

다락방 2020-06-30 11:59   좋아요 0 | URL
제가 감은빛님과 책도 잘 안겹치고 영화도 잘 안겹치고..뭐랄까 관심사 자체가 좀 안겹치는 편인데 ㅋㅋ 어떻게 이 영화를 우연히 같은 시기에 또 봤을까요? 신기하네요.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저 감은빛님이 엄청 추천하신 [거짓말의 발명] 마침 넷플에 있길래 봤는데 너무 재미없어서 ㅋㅋ 끝까지 못봤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이렇게나 다른 사람입니다. ㅋㅋㅋㅋㅋ

주드 로가 섹스에 집착하는 거 너무 찌질했어요. 진짜 찌질했고 주인공 네 명 다 싫어요. 윽-
 


















마침 무료로 떴길래 벼르던 《월드워 z》를 보았다. 책으로는 추천받은만큼 좋지 않았는데 영화는 책보다 나았다. 언젠가부터 좀비 영화 다 보고 싶어져서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넷플릭스에서 보게된 《좀비랜드》는 차마 끝까지 볼 수가 없더라. 그건 보다 말았고 더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월드워z 는 집중해서 끝까지 보았는데, 어쩌면 좀비가 그렇게 자세히 클로즈업 되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제리'(브래드 피트)는 UN소속 조사관인데, 전세계에 나타나는 감염증상 때문에 원인을 밝히기 위해 평택(그렇다, 한국이다) 미군기지에 파견된다. 그러나 거기서도 뚜렷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이스라엘로 가게 되고, 처음 제리가 살던 미국에 좀비가 나타났던 때부터 평택과 이스라엘로 옮기는 그 모든 과정에서 그가 날카롭게 관찰한 결과, 건강하지 못한 인간은 물지 않는다는 걸 파악하고 일단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게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제리에게는 아내가 있고 또 아이들이 있었다. 그가 UN소속 조사관인만큼 그의 신분은 어디에서나 보장이 되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그에게 헬기를 보내 그의 가족들을 구해준다. 물론 정부는 '너희 가족을 구해줬으니 가서 원인 파악해서와' 하고 그를 부려먹지만. 그런 제리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우선, 내 아빠 혹은 내 남편(애인)이 능력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너무 잘났기 때문에 이런 위기 상황에 가족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과연 자랑스럽기만 한일일까. 차라리 존재가 희미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끼리 더 붙어있을 수 있었을텐데. 아내는 남편이 건네준 휴대전화를 늘 들고 다니면서 남편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기다린다. 남편이 잘 도착했는지, 무사한지 내내 걱정이 된다. 너무 잘난 남자랑 함께 사는건 그 나름대로의 피곤한 점이 있겠구나 싶으면서 역시 잘나지 않은게 정답인가..라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거다. 그게 남편이든 아빠든... 사실 흔치 않은 아빠기는 하지.

그런 한편, 그가 어느 나라에가서 누구를 만나려고 하든 그가 UN 소속 조사관이라는 것은 그의 신분을 보장해준다. 넌 누구냐, 왜왔냐, 란 물음에 미정부 사람 바꿔주며 내가 누군지 말해줘~ 하면 어느 나라든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 UN소속 조사관이라는 신분은 정말 좋구나, 싶으면서, 또 그게 되게 뿌듯한거다. 내가 아닌데 왜 내가 뿌듯하죠... 그러면서 나는 내 안에 권력에 대한 흠모를 본다. 나는 권력을 좋아해.. 어디서나 통하는 신분이라니, 너무 좋잖아.....



이들 부부는 처음 좀비들을 맞닥뜨렸을 때 한 아파트의 가정집으로 피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그들을 받아주었던 가족들 중에 아들인 '토니'(이름이 토니가 맞는지 기억이 안난다. 찾아봐도 이 아이 이름은 안나오네.)와 함께 도망치게 되는데, 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염려됐다. 제리부부의 아이들이야 무사히 부모가 살아남으면 부모랑 이 일들을 극복하며 살아가면 되지만, 토니의 경우는 지금 부모를 다 잃었고 제리네가족과 함께 다니고 있는데, 만약 세상이 안정되면 그 후에는? 이라는 걱정이 생기는거다. 아직 아이인데, 혼자서는 도무지 살 수 없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가족을 잃은 피난민 단체나 이런 곳에 보내지게 되는걸까. 제리 부부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내심 이 상황이 끝나면 제리 부부가 토니도 함께 살게 해주고 함께 돌봐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그 입장이 아닌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생각일 뿐이지, '내 일'이 된다면 기꺼이 내가 토니를 맡을 수 있을까? 나는 자꾸만 상황이 안정된 뒤의 이 아이가 걱정되는거다. 이 아이는 어쩌나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아이의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좀비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나 빨리 감염(?)되어 좀비로 변해가는데, 그 안에서 나는 모든 책이나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끝까지 맞서 싸우고 도망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월드워Z에서도 이스라엘이 좀비의 공격을 받지 않는건 높은 벽을 세워서인데, 결국 좀비들은 그 벽을 타고 넘어와 순식간에 나라 전체에 좀비가 들끓는거다. 제리를 비롯해 모두가 도망치는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러니까 어떤 마음이 드냐면, 여기저기서 좀비가 튀어나오고 쫓아오는게 너무 두려워서 차라리 걍 좀비가 되자, 라는 마음이 생겨버릴 것 같은거다. 그런 마음으로부터 나는 달아날 수 있을까? 뒤에서 옆에서 쫓아오고 문을 닫으면 문을 부수려고 하는 그 존재들 앞에서 내가 끝까지 살아남자, 도망치자, 물리치자,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물려버리는 게 속편하겠어,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도망이나 숨는게 계속되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까?




지난 주말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미용실에 갈 계획이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식당에서 식구들과 밥을 먹자고 얘기해 두었었다. 그런데 트윗을 통해서 이번 주말과 다음 주말은 제발 외출을 좀 자제해달라는 어느 의사의 협조 요청을 보게됐다. 그래, 나가지말자, 나가지말고 제발 조심해달라는 당부를 나부터 지키자, 하고는 토요일에 잠깐 마트를 다녀오고는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고, 일요일엔 집 밖으로 한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나부터 조심하고 외출을 자제해야지,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했고 퇴근을 하는데, 퇴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은거다. 아마도 월요일 퇴근길이라 더했겠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안에서 갑자기 무력해졌다. 내가 아무리 주말에 외출을 안하면 뭐하나, 밥벌이를 위해 출퇴근을 하는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뒤섞이게 되는데. 그러면서 너무 무력하고 기운 빠지는거다. 내가 사람 많은 곳에 가지 않으려고 해도, 외출을 부러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위험은 내게 찾아올 수 있을 터였다. 이 모든게 다 무슨 소용이람. 피하고, 숨고, 도망치고, 조심하고...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지치는거다. 언제까지라는 기간이 정해지기라도 했으면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니 오늘 또 하루가 지났구나 이제 며칠 남았다, 하면서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기분이라도 느낄텐데, 이건 아무것도 약속할 수도 내다볼 수도 없으니 자꾸 지치는거였다. 언제까지 조심해야할까. 언제까지 마스크를 써야 하고, 언제까지 멀리 사는 친구와 만남을 미루고, 언제까지 외출을 자제해야 하나. 사람 많은 곳을 피해야 하는건 언제까지 해야할까. 마음속에서 순간순간 '차라리 걸려버리는게 속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차라리 그러면, 그렇다면 더이상 조심하고 피하고 자제하는 것들을 그만해도 되지 않나. 걸리지 않으려고 하니까 이렇게 하루하루 지쳐가는 거잖아, 하게된거다. 자꾸 그렇게 힘이 빠지고 기운이 빠지는거다.



그런참에 본 월드워Z 에서 제리는 끝까지 싸운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옮겨가면서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도망치고 싸운다. 도대체 그런 에너지가 어떻게 나올까. 그는 자신의 가족과 세상의 안위를 걱정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걸까. 그런 것들이 그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을까. 누구보다 더 많이 좀비를 맞닥뜨렸으면서도, 좀비의 눈앞까지 갔으면서도 '아, 차라리 물려버리는게 속편하겠다, 더이상 도망치지 않게' 라는 생각을 어떻게 머릿속에서 몰아냈을까. 자꾸만 지치고 약해지는 나를, 나는 어떻게 달래야할까. 나만 그런건 아닐텐데,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만 닥친 건 아니니 모두가 지치고 약해질텐데, 다들 좀비들에게 쫓기면서 차라리 물리는게 낫겠다, 하는 수시로 찾아드는 마음을 다들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쳐야 해 그냥 물려버리자, 언제까지 숨어야 해 그냥 물려버리자, 하는 마음... 더이상 도망치기도 숨기도 싫어, 하는 마음..다들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걸까. 정신줄 꽉 잡고 약해지는 마음 다잡다보면 결국 제리가 그랬듯이 감염되지 않는 약도 찾아내고, 혼돈에 차있는 세상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그 순간에 함께할 수도 있겠지. 어떻게 정신줄을 꽉 잡나, 어떻게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나. 휴.



기운냅시다. 좀비로부터 끝까지 도망치자. 빠샤.





그나저나 브래드 피트 디게 멋지더라. 예전에 쥴리아 로버츠랑 나온 영화의 포스터에서(그 영화는 안봄) 브래드 피트가 면티셔츠 입고 있는 거 보고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머리는 ... 그러니까 헤어 스타일은.... 그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인데... 너무 멋진것. 참 멋지구나, 브래드 피트는, 저 머리 누가 소화하냐 싶었던 거다. 내가 아는 남자한테 다 대입해봐도 노노... 브래드 피트니까 가능하다. 저런 단발 대체 누가 할 수 있는가.... 내가 좀 더 길러볼까, 브래드 피트 단발하게... 나도 좀 더 길면 단발 될 수 있어!




어제 페이퍼 쓴 《스펙타큘라 나우》의 주연들이 모두 다 본 사람들이라서, 아 근데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계속 생각해야 했다.





남주인 '마일즈 텔러' .. 분명 주연으로 본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본걸까... 해서 검색했더니, 맙소사, 내가 별로 안좋아하는 영화 《위플래쉬》그 남자였어. 아. 그래서 내가 본거구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주인 '쉐일린 우들리'가 너무 매력폭발하는데, 분명 이 여자도 어디서 봤는데, 주요하게 봤는데, 하고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거다. 그래서 필모를 봤더니, 오호라, 내가 페이퍼 쓴 적도 있던 《어드리프트》의 주연이었다. 꺅 >.<

그리고 조연인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도 계속 어디서 봤지 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버즈 오브 프레이》의 석궁 킬러였어! 으하하하. '브리 라슨'이 고등학생으로 나오길래 대체 이게 언젯적 영화냐 봤더니 2013년 영화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다들 어릴 때였군요. 2013년... 꼬꼬마 시절에 다들 함께 모여 이 영화 찍었네요? 저는 2013년에 세기의 명저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냈지요....... 우걀걀걀걀


















좋은 시절이었다.....




책을 또! 샀다. 오늘 친구에게 '나 이거 병인걸까?' 묻기도 했다. 책이 또 왔다.




나는 여름이 좋은데 여름은 나를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 슬픈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여름에게는, 여름이 좋아할만한 것들을 좋아할 권리가 있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권리도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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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6-18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사는 것이 병인양 하여라... 알라딘에 이런 병 걸린 사람들 많은... including me.. ㅠ
월드워Z는 저도 예전에 심지어 극장에서 보았는데, 브래드 피트가 잘 생겼다 와 좀비 무서워.. 라는 감상만 남은.
저도 오늘.. 책 삽니다... (휘릭)

다락방 2020-06-18 11:30   좋아요 0 | URL
비연님, 책 사는거 화이팅이요! ㅎㅎㅎㅎㅎ

좀비가 들끓는 세상에서 생을 포기하게 될것 같아요, 저는 ㅠㅠ 그러지 말아야지 ㅠㅠ
브래드 피트 멋있어서 브래드 피트 나오는 영화 좀 더 봐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꼬마요정 2020-06-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샀어요!!! 우하하하 이젠 모르겠어요. 책에 파묻혀 살다가 죽죠 뭐 멋진 죽음일 것 같아요 ㅎㅎㅎ

인간의 생존본능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것 같아요. 그러니 어떤 상황에서도 일단 살려고 발버둥치는데, 그렇다고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살아남으려는 사람은 또 안 좋아하죠.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어떤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튼 좀비는 무섭고, 브래드 피트는 좋아요!!

다락방 2020-06-19 08:25   좋아요 0 | URL
저 방금 또 샀어요. 오늘 내일 계속 책 박스가 도착합니다. 저는 미친것 같아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본능적으로 살려고 발버둥칠것 같긴 하지만, 어느 순간 지쳐서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비 영화 볼 때마다 해요. 어떻게 주인공들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이 세상이 좀비 영화의 축소판이라면 저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되진 못할 것 같아요. 아, 이런 비극적인 생각 하지말고 기운내야지.. 휴..

저도 좀비 영화 너무 무서운데, 좀비 영화에는 무서운 것 말고 뭔가 더 있는것 같아요. 무서워서 그동안 보지 않고 부러 피하고 다녔는데 요즘엔 계속 보네요. 하하하핫.
브래드 피트 너무 멋있어서 어제 줄리아 로버츠랑 함께 나왔던 영화 <멕시칸> 봤어요. 둘이 연인인데 겁나 싸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0-06-18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셨죠? 앗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안나실려나? ㅎㅎ
저는 브래드피트 얼굴에 무조건 몰표입니다. ^^

다락방 2020-06-19 08: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돌이님! 오랜만입니다. 아니, 왜 기억이 안나겠습니까! 후훗. 우리 오래된 사이잖아요.
오랜만에 오신만큼 앞으로 자주 오실건가요?
브래드 피트 멋져요 우후후훗. 면티셔츠 입었을 때 제일 멋진 것 같아요. 으흐흐흐

blanca 2020-06-18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젠 지쳐요. 마스크 쓰는 것도 힘들고요. 그런데 더 힘든 사람들 생각하면 더 우울해져요. 평범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이젠 꿈처럼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책을 끄응 더 많이 사고 있어요. ㅋㅋㅋ 2013년 다락방님 명저 나온 해 헉 저도 좋은 시절이었어요. 다락방님. 흑 우리 나이 올해 진짜 너무 힘들지 않나요?--;; 좋은 시절 또 한번 오겠죠?

다락방 2020-06-19 08:4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말씀처럼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데, 그러다가도 불쑥불쑥 언제까지 이래야하나 싶고 그래요. 어서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새로운 일상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일상이 한순간에 파괴될 수 있다는 걸 이렇게 깨닫네요.

블랑카님, 저도 이번 해 너무 힘들어요. 안그래도 어제 친구에게 ‘올해 뭐가 이렇게 힘들어 ㅠㅠ‘ 이러면서 징징 거렸어요. 언제 좋아질까요, 우리는? 친구는 그런 제게 이제 나이들수록 고독과 힘든 것을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하는걸까요? ㅜㅜ

바람돌이 2020-06-19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간 너무 바쁘고 마음에 여유도 없으니 팩도 딱히 안끌리더라구요. ㅎㅎ 올들어서는 마음이든 시간이든 왠지 좀 제 몸에 쌓여있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요. ㅎㅎ 거기다가 각잡고 컴퓨터 켜기는 귀찮은데 북플은 딱이네요. 앞으로 자주 오도록할게요. ㅎㅎ

다락방 2020-06-19 13:55   좋아요 0 | URL
네네네네 저는 책 읽는 게 아직까지도 제일 재미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중간중간 읽기 싫어서 안읽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책이 제일 좋아요. 히히히히히
 



spectacular 를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보면 '장관을 이루는', '극적인' 이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이 영화 《spectacular now》는 '장관을 이루는 지금' , '극적인 지금' 정도의 뜻이 될텐데, 주인공 '셔터'(마일즈 텔러)가 언제나 현재를 즐기려고 하기 때문에 붙은 제목인 것 같다.


셔터는 고등학생이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주변에서는 셔터가 똑똑하다고 하는데 기하학 선생님이 하는 말이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학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그는 술취해 쓰러졌다 깨어난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학교의 모범생 '에이미'(쉐일린 우들리)에게 자기의 공부를 도와달라고 한다. 공부도 잘하고 이미 대학에 합격도 해놓았고 미래에 나사에서 근무하겠다는 꿈까지 가진 에이미는 그간 셔터가 만나온 여자들과는 달랐다. 셔터는 늘 현재가 제일 중요했고 미래가 없다는 듯 살았다. 그러니 매일 파티에 파티에 파티 연속이었고, 그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어느 파티에서나 셔터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캐시디'(브리 라슨)과 화려한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즐기는거다.


마침 캐시디랑 헤어지기도 했던 터라 그렇다면 에이미랑 파티에도 같이가자고 셔터는 생각한다. 그간 셔터를 보아왔던 친구는 왜 너랑 어울리지 않는 아이랑 사귀냐, 너가 그동안 만나왔던 아이랑 다르지않냐, 고 묻는데 이에 셔터는 여태 한 번 남자친구를 사귀어보지 않은 에미이를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쇼를 한다 진짜... 남자 없는 여자를 내가 도와주겠어..같은 그런 마인드는 상대에게도 못할 짓이지만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마음은 사실 에이미에게 끌리면서 폼 잡으려고 그렇게 말한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개멍청이.. 아, 그런데 내가 이래서 셔터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고, 남자들의 후까시야 뭐 두말하면 입아프니까.


매력은 개인적인 것이다. 매력을 가진 내 개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매력이 내게 다가서는 순간, 상대로부터 매력을 느끼는 순간이 개인적이란 거다. 극중 '셔터'는 정말 내가 안좋아하는 타입이다. 미래가 없다는듯 파티를 즐기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싫은건 그가 허구한날 술을 마신다는 거였다. 그는 일자리에도 술을 가져가서 홀짝홀짝 마시고 운전을 할 때도 술을 마신다. 술을 마셔본 적 없던 에이미에게도 술통(뭔쥬 알죠, 그거 이름이 따로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을 선물하고 에이미도 홀짝홀짝 아무때나 술을 마신다. 저렇게 운전하기 전에 술마시는 거 진짜 너무 싫다, 생각하는데 결국 술도 마시고 감정도 격해져있던 어느 날에는 사고도 낸다. 사실 사고도 한두번도 아니지..


그런데 셔터는 나름 인기남인거다. 게다가 학교 내에서도 유명하고. 그래서 공부를 너무나 잘하고 똑똑하지만 스스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남자친구도 한 번 사귀어본 적 없던 에이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셔터가 나같은 여자를 정말 좋아서 만날 리가 없다는 생각을 수시로 한다. 키스를 한 뒤로는 연락도 없어서 좌불안석(아아, 나 그거 알아. 나도 키스한 다음날 연락 오기전까지 이불킥을 수천번 했던 그 여름이 있다). 오늘은 공부를 하겠다는건지 어쩐건지도 연락도 없고... 어쩌면 졸업파티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술김에 한 말일지도 몰라, 진심은 아니겠구나, 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거다. 나로서는 도대체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여기 사는 이 나이의 나이기 때문이고, 저 나이또래의 학생들에게 학교의 인기남은 너무 핫한 동경의 대상이겠지. 어쨌든 그렇게 좀 위축되어 있는 거다. 나사에 들어갈 희망을 가진 여학생이 인기남이 자신과의 약속을 잊을까봐 기죽다니..



이게 남일이 아닌게, 나에게도 저런 일이 있었다. 오래전의 일인데, 나는 와 이렇게 멋진(?) 남자가 어떻게 나를 알게 되고 나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를 알고 지내기 시작하면서 나는 좀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상대와 나를 비교했고 나에 비해서 상대가 훨씬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다 부끄러운 과거 몇 개쯤은 있는 거잖아요...


어느날 그와 메신저로 대화를 하다가 다가오는 금요일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금요일이 될때까지 그로부터 별 말이 없길래, 장소도 정할겸 어디로 할래, 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로부터는 '음, 혹시 우리가 오늘 만나기로 했어?' 라는 답이 왔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그때 내맘 뭔쥬 알죠... 나는 그 날을 기다렸는데, 그 약속 조차 잊고 있었다니... 그때의 실망과 절망을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체념했다. '그럼 그렇지, 이 남자가 나를 만날 리가 없지' 라고. 나는 그에게 그렇다고 하자 그는 미안하다며, 자기가 그때 무슨 일이 있어 정신이 없던 까닭에 오늘 만나기로 했다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다는 거다. 자신도 당황스럽다며 정말 미안하다고, 이미 처음에 말한 사람과 약속이 되어있다고 해서 오케이, 하고는 그 날 그를 만나는 것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했다. 그의 말이 거짓일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내가 그에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잖아. 그런 오전을 보내고 매우 서운하던 차에, 하아, 평소에 만나자고 했던 다른 남자1에게 갑자기 연락을 했다. '혹시 오늘 보는 거 가능해?' 라고. 그러자 그는 콜! 하고는 선물까지 사들고 나를 만나러 왔다. 그렇게 남자1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웃고 떠들면서도 '이게 이게 아닌데..'하는 씁쓸한 마음을 도무지 다스릴 수가 없었고, 앞에 앉은 남자에게 집중도 되지 않았고, 술을 다 마시고 집에 바래다 준다는 남자에게 한사코 거절을 했다. 술자리에서 그가 화장실에 간 틈을 타 다이어리에 그 때의 감정을 시로 쓰기도 했는데(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졸라 문학여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문학적이다. 슬픔을 시로 승화시킨다. 예술인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나에게도 저런 찌질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에이미가 혹시나 하고 쪼그라들어 있는걸 보는데 '알아, 알아, 내가 그 마음 안다' 이렇게 되어버려.... 하아-



누구나 그렇지만 셔터는 셔터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 그에게 벌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는 오래전에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를 그리워했던 것. 엄마는 아빠가 바람을 피웠다고 했지만 그건 엄마 말이고, 셔터는 아빠의 말도 들어보고자 오만년간 연락없던 아빠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만나러 간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셔터에게 아빠에게 연락해보라고 말해준 것도 그의 여자친구 에이미였고, 그런 아빠를 만나러 먼 길을 갈 때 동행해준 것도 에이미였다. 가서는 돈도 없고 여자에게 껄떡대기만 하고 한시간 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깜빡하는 아빠를 보고 엄마의 말이 맞았다는 걸 깨달으며 좌절할 때 옆에 있어준 것도 에이미였다. 에이미는 그의 애인이면서 동시에 그를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해보지 못한 것을 시도해보게 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모든걸 다 알고 모든걸 함께 하는 사람. 셔터는 자신이 아빠와 똑같은 것 같아서 두렵고 에이미의 미래를 위해서는 에이미를 놓아주어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혼술을 할때면 텔레비젼을 보려고 채널을 돌리게 되는데, 평소에 텔레비젼을 보지 않았던 터라 무슨 프로그램이 있는지 잘 모른다. 지금 이때는 어떤게 방송하고 있나, 하고 편성표를 눌러보다 보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게 1도 없어서, 결국 유튜브의 운동뚱... 을 찾아보게 되는데.... 편성표에서 최근에 자주 봤던 제목이 <저녁 같이 드실래요> 였다. 편성표에서는 제목만 볼 수 있어서 제목만 보고 나는 <한 끼 줍쇼>같은 먹는 방송 예능일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엊그제 월요일, 갈비찜과 김치찜에 소맥을 말아 먹으면서(네?) 채널을 하나하나 돌리다가, <저녁 같이 드실래요>란 제목이 떠있는데 송승헌과 서지혜의 투샷을 보고, 오오, 이거 드라마야? 하게된 것. 그러다보니 얼마전에 송승헌이 제주도에 내려가 <나 혼자 산다>방송을 찍으면서 드마라 촬영차 왔다고 햇었는데, 이것이 그것?


송승헌은... 참.... 너무 잘생겼지만 매력없는 대표적인 인물인데, 아까도 얘기했지만, 매력이라는 것은 느끼는 사람에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잘생긴 것은, 잘생겼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매력이기도 할테니까. 그러나 나에게 다가서는 매력은 그것이 아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은 결코 잘생김과는 거리가 먼..........(그만 두자, 보고 있으면 어떡해.)


아무튼 그래서 소맥을 홀짝이면서 이 드라마를 보게 됐는데, 내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 파악한 바로는 김해경(송승헌)과 우도희(서지혜)는 자기들이 정한 '디너 메이트' 였다. 서로의 직장도 본명도 모른 채로 가끔 저녁을 함께 먹는 사이인 것. 그 전 회차들을 보지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남자와 디너 메이트 같은 걸 할 수 있나, 나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다 싶었지만, 서로의 요구가 맞아떨어진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다. 그러니까 각자 그 당시 어떤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다른 관계 필요없고 가끔 밥이나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했는데, 나도 그런데 너도 그래? 이러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별로 그럴 생각은 없다. 이름도 소속도 모르는 남자와 디너 메이트? 흐음.


아무튼 그런데 우도희 에게는 우도희에게 집착하는 전남친이 있다. 오 신이시여, 대체 왜 전남친들은 그렇게나 찌질한 집착남에 머저리들인가요? 왜 하나같이 그렇게 되는건가요? 왜죠? 아무튼 이 전남친은 자신과 우도희가 헤어질 수 없다고, 우도희도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해서 집착하는데(개새끼), 그 날도 우도희의 집앞에서 우도희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그를 거절하는 우도희의 손을 잡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하는거다. 우도희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이렇게 불쑥 집앞에 오는 것도, 팔을 잡는 것도 해서는 안되는 짓이다' 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다시 우도희의 팔을 잡고, 아아, 우리의 백마탄 기사님인 송승헌 님께서 '그 손 놓으시지' 이러면서 등장하시는 겁니다.... 어이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이러면 안되는거야' 까지는 말할 수 있지만, 어쨌든 이 남자로부터 나를 구해주는 다른 남자..... 라니요. 그러다가 좀 씁쓸해졌다. 그럴 때 이 남자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거, 나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게 주춤하게 만드는 게 다른 남자여야만 가능하다니. 만약 혼자였다면 나는 그 위기를 피할 수 있었을까. 너무 좆같은 상황 아닌가. 약속도 없이 찾아오는 거, 싫다는데 붙드는 거, 모두 구질구질한 전남친의 잘못인데, 그런데 그 상황에서 피하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의 힘으로 안된다는 거, 너무 엿같잖아. 결국 다른 남자가 등장해야만 쪼그라들어서 사라지다니...



아무튼 이 전남친과 전여친은... 참... 뭐랄까... 그러니까 김해경에게도 전여친이 있다. 오래 사귀어온 전여친인데, 이 전여친 역시 자신이 허락하면 김해경이 자신과 다시 잘 될거라고 생각해. 어제 본 방송에서 다시 잘해보고자 하는 전여친에게 김해경은 '나는 너에게 화가 남아 있지도 않고 미련이 남아 있지도 않고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와, 그 말에 진짜 공허해지는 거다.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아무것도. 그러면서 나 자신에 대한 반성모드로 들어갔다. 나도 결국은 그런 전여친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상대는 내게 화도, 미련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데, 나 혼자 뭔가 잔뜩 남아서 터뜨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거다. 김해경의 전여친에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정리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내가 이걸 지금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주제인가 싶었던 것. 가슴이 시리네요...



우도희는 알고자 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김해경의 이름과 직업을 알게 되고, 그가 이름과 직업을 가짐과 동시에 그와의 관계가 그려진다. 그러니까 그는, 우도희가 함께 일하는 사람의 전남친이고, 그여자는 전남친에게 죽고 못살고...그렇다면 이 관계는 더 진행하지 않는게 맞고..해서 김해경을 불러내 이제 밥먹는 사이 그만두자고 말한다. 우도희에게도 그리고 김해경에게도 상대에 대한 마음이 생겨나고 있는 터에 이런 결정이라니, 우도희도 마음이 아프고 영문을 모르는 김해경도 마음이 시리다.


내가 어제 본방을 보기로 결정했던 건, 그 후에 김해경의 태도 때문이었다. 김해경은 이대로 디너메이트를 끝내고 싶지 않다. 그녀에게 마음이 생긴 까닭이고 자꾸 생각나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도희를 찾아가 자신의 명함을 건넨다. 이 이름이, 이 번호가 나다, 이 사람과 다시 연락하고 싶다면 이 명함을 보고 연락하면 된다, 고.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은거다. 나는 거짓말을 싫어하고 숨기는 걸 싫어한다. 내가 누군가를 숨기는 것도 싫고,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숨기는 것도 지독하게 끔찍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누군가를 만난다면 나는 그 일에 대해 세상 당당하고 싶고, 상대 역시 그러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숨겨야 할일이 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살다보면 그러나 그런 일이 있게 마련이고, 나 역시 숨겨야 하는 몇몇 관계들이 있었다. 그런 관계들 틈에 놓여있을 때는 만족과 행복을 크게 가져갈 수가 없다. 만족과 동시에 한 편에 우울함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환한 대낮에 만날 수 있는 사람, 누군가가 물었을 때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지우고 꾸며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는 좋다.


김해경이 환한 대낮에 우도희를 찾아와 명함을 건네는 것은 이 모든것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나는 여기에 속해있어, 이런 일을 해, 이런 이름을 가졌어, 이것이 내 번호야, 앞으로 니가 나를 만나게 된다면 이렇게 나를 표현하면 돼, 라는 모든 것들의 상징. 나는 명함을 건네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다. 업무적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그간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던 사이에서 건네는 명함은, 내게 예의바름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았고, 그 장면이 마지막이어서 그 뒤가 궁금해지는 거다. 정장을 입고 찾아와 명함을 건넬 때의 김해경은 무척 매력있는 남자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의바른 사람을 좋아했다. 깍듯한 사람, 숨길 것도 없이 정중한 사람. 그러나 나는 숨겨야 했던 사람도... 그만두자, 이런 얘기는.




















수이와의 연애는 삶의 일부가 아니었다. 수이는 애인이었고, 가장 친한 친구였고, 가족이었고, 함께 있을 때 가장 편하게 숨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수이와 헤어진다면 그 상황을 가장 완전하게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이일 것이었다. 그 가정은 모순적이지만 가장 진실에 가까웠다. - <그 여름>, 최은영,  p.253




최은영의 <그 여름>에서 위의 구절은 정말 핵심적인 구절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애인, 나의 연인이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도 했던 사람, 모든 얘기를 나눌 수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내가 애인과 헤어졌다는 얘기, 이렇게나 좋은 친구와 헤어졌다는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도 이 사람인데, 그런데 그 사람과 헤어진거라 더이상 말할 수 없는 상황.

연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한 사람인 것은 그렇다면 축복인가, 아닌가.



















작아. 귀여워. 엉덩이가 예뻐. 진짜 반투족이야. 슈그는 나한테 모든 걸 다 말하는 데 버릇이 들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는데, 갈수록 더 들뜨고 사랑에 빠진 사람 같아 보였어. 그녀가 그의 앙증맞고 작은 발이 춤을 출 때에 대해 이야기를 마친 뒤 다시 금갈색 곱슬머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 기분은 진창에 처박혔지.
그만해, 슈그. 나 죽을 것 같아. 내가 말했어.
그녀는 하던 말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어. 슈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얼굴이 일그러졌지. 아, 셀리. 슈그가 말했어. 미안해. 그냥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데, 나는 늘 너한테 이야기하니까.
말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면, 나는 이미 앰뷸런스를 탔을 거야. 내가 말했어. -《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21




셀리는 슈그를 사랑했고 슈그도 셀리를 사랑했다. 이들은 오래 사랑했고 앞으로도 오래 사랑할거라 생각했는데, 슈그에게는 '새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새로 사랑하게 된 귀여운 사람에 대해 슈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셀리에게 조잘조잘 수다를 늘어놓는다. 슈그와 셀리는 서로의 마음속 얘기까지 다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장 좋은 대화상대, 그리고 연인. 연인이면서 가장 좋은 대화상대였고, 늘 모든 걸 이야기 나누던 사람이라서, 슈그는 했던대로, 습관처럼, 새로운 사랑에 대해 셀리에게 수다를 떠는거다. 그러나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는 셀리는 어떤 기분이 되어야 했을까. 늘 나에게 수다 떠니까 이 모든 걸 다 열심히 들어주는 대화상대가 되어야지, 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슈그를 사랑하는데, 슈그가 새로운 사랑에 빠진 얘기를 대체 어떻게 대화상대로서만 들어줄 수 있단 말인가. 셀리는 너무 아프다. 너무 아프고 괴롭다.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슈그의 사랑에 대한 말들이 자신을 죽이는 것만 같다. 죽을 것만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가장 친한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닌가.




셀리는 슈그를 사랑한다. 슈그가 사랑하는 사람, 가장 마음을 열었던 사람, 모든 대화를 나눴던 사람.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슈그의 친구로서 슈그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는가. 그러나 다른 사랑에 빠졌다는 그 말은 이토록이나 고통스러운데!

그러나 셀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폭력적인 전남친과 다르다. 그러나 셀리는 집착적인 전남친과 다르다. 셀리는 사랑에 대해 성숙한 태도를 지닌다. 그녀는 슈그가 다른 사랑에 빠진 것이 몹시도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권리가 슈그에게 있음을 '안다'. 슈그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자신이 정해줄 수 없다는 것도 역시 '안다'.


나도 슈그하고 같이 다니고 싶기도 하지만 슈그라도 그럴 수 있는 게 다행이야. 때로는 슈그에게 화가 나기도 해. 슈그의 머리카락을 홀랑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러고나서 생각하지. 슈그는 자기 인생을 살 권리가 있다고 말이야. 내가 슈그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런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지.-《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46



너무 좋은 친구였던 터라, 다른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랑과 함께 있는 슈그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그 우정이 그립다. 셀리와 슈그는 가장 좋은 친구였으니까. 셀리는 슈그가 돌아오길 바란다. 그 우정이 너무나 그립다.



유일하게 괴로운 건 슈그가 돌아온다는 말을 안 한다는 거야. 나는 슈그가 보고 싶어. 슈그와의 우정이 어찌나 그리운지 슈그가 저메인을 데리고 오겠다고 해도 두 사람 모두를 환영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려고 애쓰다가 죽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뭐라고 슈그에게 누구를 사랑하라 마라 할 수 있겠어? 내가 할일은 그저 스스로 진실되게 그녀를 사랑하는 것뿐이야.-《컬러 퍼플》, 앨리스 워커, P346



아아, 나의 연인이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닌가.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축복일 것이다. 그런 행운은 좀처럼 찾아올 수 없으니까.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은 가장 궁극적인 관계가 아닌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게 아닐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마땅해야 하는게 아닌가. 그게 어려워도 실은 그래야 하는거잖아? 그러나 이건 위험이 너무 크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가장 좋은 친구 역시 동시에 사라져버려. 리스크가 너무 크다. 고위험.. 최은영이 단편에서 말했듯이, 연인과 헤어지고난 후의 슬픔이나 고민을 가장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친구 관계인 것을 유지하면, 셀리처럼 내 사랑의 새로운 사랑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고통에 몸부림 쳐야해. 아아, 어쩌란 말인가.

나는 연인과 친구를 분리해둔 채로 살았었고 그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가 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이 발생했는데, 이건 그 당시에 극도의 행복과 안정감을 주지만, 헤어지고 난뒤에 멘탈 찢기는게 장난이 아녀.. 최은영의 소설처럼, 내 모든 슬픔과 아픔을 다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그와 헤어지기까지 내가 겪었던 고민들과 그와 헤어지고 나서 아팠던 일들, 그를 기다리는 마음, 새로운 사람을 만났던 시간들, 새로운 남자를 만났는데 섹스가 즐겁지 않았던 것들까지, 이 모든 얘기를 가장 잘 들어줄 사람이 그였는데 그 사람과 헤어져버려서 리스크가 너무 커... 나는 아직까지도 내 생각과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없다. 동성의 친구들조차 이해하지 못할 것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그사람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없다. 연인과 가장 친한 친구가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건 인생에서 너무 치명적이야.. 그래서 친구만 가져올까, 생각해보지만, 그랬다가 셀리처럼 그의 말들로 나를 죽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아니야, 이제 좀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그런 것들을 다스릴 수 있다, 고 생각해보지만 그렇다면, 친구는 과연 나 혼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연인이든 친구든 나 하나의 의지로는 되지 않는다. 내가 내민 손을 상대가 잡아야 가능한 것인데, 나는 과연 무엇을 잃은 것인가...



그러니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가 따로 있다는 것은 또 그런대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것이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서 우도희는 전남친의 집착이 짜증나고 새로운 남자에 대한 호감이 자라는 시점에 항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친한 친구가 있다. 혼자 침대에서 뒤척이기도 하고 혼자 중얼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연락해주는 친구가 있다. 썸남때문에 고민이라고 하면 '저질러버렷!'하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다쳤다고 하면 죽을 싸들고 오는 친구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좀 더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연인과 가장 좋은 친구를 분리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아 모르겠다.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가 아닌건, 사실 연인으로도 별로라는 거 아녀? 그냥 다들 알아서 잘 살자. 마음대로 살아요.. 연인이 가장 좋은 친구이든 아니든, 건강한 관계 여러개 만들어놓고 한 사람에게만 몰빵하진 말자. 그것은 하이 리스크에 다름 아니여... 우리는 살아가야 할터이니...



제이슨 므라즈는 <Lucky>에서 가장 좋은 친구가 연인이 되다니, 이 얼마나 행운인가, 노래하지만, 오오, 제이슨 므라즈여, 그것은 하이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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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6-17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시간 축복이라 생각했지만, 축복이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페이퍼를 읽고 나서 하게 됐어요. 한 사람이 나의 모든 면를 이해할 수 없다고도 생각하구요. 오후에 읽은 <빌레뜨>에도 셀리 같은 마음이 그려져서 전 무척 괴로웠다죠.
락방님 페이퍼 전체적인 내용은 좀 슬픈데 그런데도 전 몇번이나 웃었답니다. 남자들의 후까시야~ 뭐 이런 명문장 덕분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17 16:31   좋아요 0 | URL
연인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과 가장 좋은 친구가 되는게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연인이 되겠어요? 그런데 그걸 한사람이 다해주면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전 어떡해요? 오 마이 갓 영혼이 박살나는거죠. 제가 제 삶을 잘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서 단단한 관계를 여러개 만들어두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단단한 관계는 그러나 원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죠. 제가 상대에게 다정하고 마음을 열어야 상대 역시 저한테 그럴테니까요. 저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좋아요.. 우리 다정한 똑똑이들....

페이퍼가 슬픈데 웃음이 나는건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일겁니다. 살다보면 슬프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뭐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삶을 녹여낸 뛰어난 페이퍼다, 뭐 그런 말이 되는겁니다. 엣헴.

단발머리 2020-06-17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제가 땡투했어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 도서에요. 부자되세요! 😤

다락방 2020-06-17 16:28   좋아요 0 | URL
네? 벌써 9월 도서를 사셨다고요? 8월 도서도 이미 준비된걸로 아는데, 아니, 비연님에 이어 단발머리님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에 진심인 부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땡투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부자가 되는데 이렇게 도움을 주시네요. 복받으세요, 단발머리님. 샤라라랑~~

2020-06-18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18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