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















이 책의 뒷표지에는 이 책의 이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만약에 내가 지금보다 젊어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면, 그 남자는 분명히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여야 할 거예요. 원대한 목표와 이를 성취할 능력이 있으며 동료들에게도 주목받는 뛰어난 사람이어야죠. 나의 헌신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는 평범한 남자를 사랑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아요." (p.174)



뒷표지에 인용된 문장은 저게 전부라, 나는 당연히 이 책 속의 주인공이 저렇게 말했으며, 저것이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가장 대변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저 말은 우리의 여자주인공인 '에드나'가 한 말이 아니었다. 저 말은, '라이즈'가 에드나에게 한 말이다. 남편과 두 아이를 가진 여자인 에드나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 '로버트'를 사랑한다고 짐작하기에, 저 말을 라이즈가 한다. 만약 자기가 사랑에 빠진다면 이러한 남자와 사랑에 빠질 것이다, 라고. 거기에 대해 용감한 에드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라이즈 양, 이제 거짓말로 나를 속이려 하는 건 바로 당신이예요.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단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모르는 거겠죠. 무엇 때문에 여자들이 사랑의 이유를 분명히 알 거라고 단정하는 거죠? 여자들이 상대를 골라 가며 사랑한다고 생각하세요? 속으로 '자! 여기 대통령이 될 가망이 있는 뛰어난 정치인이 있어. 저 사람과 사랑에 빠져볼까?' 아니면, '이 음악가에게 내 마음을 줘야겠군. 이 음악가의 명성이 온통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잖아.' 라고 할까요? 그도 아니면, '세계 금융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이 금융가는 어떨까?' 이런 식으로 행동하나요?" (p.175)



에드나는 이런 걸 아는 여자다. '가치가 있는 남자'라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가치는 사랑한 후에 찾아온다는 걸. 그러니 책의 뒷표지의 저 인용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 뒷표지에 이 책의 인용문이 실려야 했다면, 그건, 에드나의 이런 말이 왔어야 했을 것이다.



"왜죠?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인데, 어째서 그를 사랑하나요?"

라이즈 양이 물었다.

양 손으로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에드나는 무릎을 꿇은 제 친구 앞으로 두어 번 몸을 끌어당겼다.

"왜나고요? 그는 머리카락이 갈색이고, 관자놀이까지 길게 자라고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눈을 떴다 감았다 하기 때문이고, 코는 조금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이죠. 입술은 두 개이고 턱은 네모난데다, 어렸을 때 야구를 너무 열심히 한 탓에 새끼손가락을 똑바로 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또 ‥‥‥." (pp.175-176)



아니면 이 말이 와도 좋았을 것이다.



"로버트가 돌아오면 어쩌실 건가요?"

"어쩌다니요? 아무것도요. 그저 살아 있다는 게 기쁘고 행복하겠죠."

에드나는 로버트가 돌아온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낮게 깔린 어두침침한 하늘에 우울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철벅거리는 거리를 걸으면서도 기운이 솟고 상쾌한 기분이었다. (p.176)




나는 연애를 할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은 짝사랑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름다운 구속' 이란 단어를 믿지 않는다. 그건 성향의 문제일 수 있겠는데, 나는 구속이 아름답게 느껴진 적이 없다. 누군가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눈을 마주치고 끌어안는 것은 물론 행복하지만, 상대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요구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길 요구하는 것들이 진행되다보면 금세 지치고 만다. 힘이 빠진다. 특히나 상대가 나에게 그런 걸 요구할 때 미칠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만두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의 무심함 때문에 상대가 서운해하고 속상해하고 힘들어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런 모든것들이 없는 상황으로 되돌리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역시 사랑은 짝사랑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연애가 완벽한 게 아니라 짝사랑이 완벽하다. 나 혼자 시작하고 나 혼자 애를 끓이다가 나 혼자 원망하고 종국엔 나 혼자 뒤돌아서고 울면 끝나는, 그런 짝사랑. 상대에게 가혹한 말을 할 필요도 없고 냉정하게 뒤돌아서며 눈물을 삼킬 필요도 없다. 상처를 받는 건 온전히 나 혼자만의 몫이고 상대에게 미안함도 가질 필요가 없다. 상대는 당연히 나 때문에 서운해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않아도 된다. 생각할수록 완벽한 건 짝사랑인 것만 같다. 



아, 근데 이 얘기가 왜 나왔지. 아, 에드나. 에드나의 로버트에 대한 연정. 에드나는 로버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쑥쑥 자라, 그녀는 자신의 '아내로서의' 또 '엄마로서의' 일상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고 싶고, 혼자 지내고 싶은 마음도 자꾸만 커진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초조하고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 때 완벽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는 로버트의 소식을 좇는다. 라이즈 양에게는 로버트가 편지를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집에 찾아가 편지를 읽곤 한다. 그를 생각하고 그를 기다린다. 



에드나는 로버트가 돌아오는 장면과 두 사람이 재회하는 첫 순간을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려 왔다. (p.212)



에드나는 로버트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숨쉬는 게 기쁘다고 느껴졌고, 그렇기에 그가 돌아오는 순간을, 돌아와서 자신과 처음으로 마주치는 그 순간을, 그토록이나 기다려왔다. 그러나 재회의 첫순간은 그녀가 기대한대로 오지 않았다. 그녀가 라이즈양을 찾아갔던 날, 라이즈 양이 집에 없어 그녀의 열쇠를 찾아 문을 따고 들어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때, 그렇게 예정에도 없이 로버트가 라.이.즈.양.의.집.으.로, 방문했다. 반가울 수 있었다. 물론, 반가울 수 있었다. 얼마나 그리워한 사람인가. 그런데.



"언제 돌아오셨어요?"

에드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피아노 의자 위에 앉은 그녀의 모습이 불편해 보였는지 로버트는 그녀에게 창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옮겨 앉는 사이 로브트가 대신 피아노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저께 왔습니다."

그가 이렇게 대답하며 피아노 건반 위에 팔을 올려 기대자, 귀를 거슬리게 하는 불협화음이 울렸다.

"그저께요?"

그녀가 큰 소리로 로버트의 대답을 반복하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저께라"하고 계속 되뇌었다. 그동안 로버트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아올 거라는 상상을 해 왔는데, 그저께부터 같은 하늘 아래 그와 함께 살고 있었으며 자신과는 그저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라이즈 양이 "바보 같은 사람, 로버트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라고 말한 건 분명 거짓말이 틀림없다.

"그저께라고요?"

그녀는 라이즈 양의 제라늄 꽃가지를 꺾으며 또다시 되풀이했다.

"그럼, 오늘 여기서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당신을 못 만났을 수도, 아니, 그러니까, 나를 보러 올 생각은 없었던 거죠?" (p.210)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가슴 아파서 못읽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도 정확히 이런 적이 있었다.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런데....흑흑. 머릿속으로 내내 그를 떠올리며, 돌아오면 그는 나에게 가장 먼저 연락할거야, 나에게 가장 먼저 찾아올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 에드나에게 '그저께' 돌아왔다고 말하는 로버트라니. 아, 야속하기 짝이 없어. 물론, 나는 알고있다. 로버트가 왜 그랬는지를.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는 에드나를 사랑하는 자기의 마음을 꾹꾹 눌러담으려고 했던 그를, 나는 안다. 그러나 그가 그렇다고 에드나에게 말하지 않았으므로, 에드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야속하고 또 야속할 따름이다. 그가 돌아온다는 기대로 설레이고 희망에 가득 찼다가,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는 않은, 이 상황. 



그녀는 로버트가 미웠다. 그래서 그녀 역시 로버트에게 무심해지기로 결심했다. 이는 한 사람에 대한 연정을 품다가 그에 대한 서운함이 몰아칠 때 누구나가 다 쓰는 방법이다. 나도 이제 너한테 관심 안 둬, 니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무심해질테야! 그러나, 해봤다면 알겠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가.



에드나는 로버트를 만나면 최대한 무관심하게, 그리고 그가 그런 만큼 최대한 거리를 두기로 마음먹었던 터였다. 이런 결심은 그녀가 조금만 의기소침해지면 자연스레 드는 이성적인 사고의 고된 훈련을 통해 이뤄 낸 것이었다. 하지만 작은 정원에서,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눈앞의 그를 보자 그토록 단호했던 결의는 눈 녹듯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신이 모든 일을 계획하여 자신이 가는 길로 그를 인도해 준 것만 같았다. (p.228)



이런 빌어먹을, 젠장. 왜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되는거야. 대체 왜.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 그녀에게 끈질기게 구애하는 또다른 남자가 자꾸 그녀의 열정을 톡톡 건드리니, 자기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이 자꾸만 바깥으로 터질듯 새어나오니, 이 모든걸 그녀는 무슨수로 막아내는가. 아니, 그 욕망과 열정은, 그리고 자신안에 그런 것들이 넘쳐나고 있었다는 걸 그녀는 대체 왜, 이제서야 깨달았단 말인가. 사회로부터 '헌신적인 아내, 헌신적인 엄마' 가 되기를 압박받고 있는 바로 이 위치에 있을 때. 왜 하필 이 때 에드나는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한 것인가. 왜 바로 이 때. 대체 어느 누가 그녀를 이해하고 지지할 것인가. 남편과 아이가 있고, 그들과 사이가 나쁜것도 아닌데 '혼자만의 공간'이 갖고 싶다며 따로 작은 집을 얻는 그녀를. 그 곳에서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그녀를, 대체 어느 누가 지지하고 이해해줄 것인가 말이다. 남편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세상이 그녀를 손가락질 할 걸 알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의지를 밀고 나간다. 그림을 그리고 작은 집을 얻는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기 위해, 살고 싶은대로 살기 위해 용기를 낸다. 그러니, 그녀를 사랑하는 로버트도 용기를 내기를, 그녀는 바란다. 




그녀는 로버트가 자신에게 왜 거리를 두는지 그 이유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것들은 극복될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로버트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그런 이유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열정 앞에서 분명 무너지게 될 것이다. (p.223)



바로 여기에 에드나와 로버트의 차이가 있다. 바로 여기에 에드나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이 '극복될 수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로버트에게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에드나는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그에게 다가서려하고, 로버트는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뒤로 물러서려 하는 것이다. 한 쪽은 이루려 하고 한쪽은 잊으려 한다. 모든걸 다 버리고 그를 선택하려고 용기를 냈는데, 그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했다면,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 혼자만 용기를 낸다고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이 책 생각이 계속 났다.





어제는 퇴근전에 배가 너무 고팠고(늘 그랬지만!), 곤드레밥이 무척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퇴근시간을 다른때보다 더 기다렸다. 퇴근하는 즉시 곤드레밥 먹으러 가야지,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따뜻한 곤드레밥이 나오면 양념장을 넣어 슥슥 비벼 먹고 싶었다. 얼른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퇴근길. 발걸음을 빨리해 식당으로 갔고, 들어가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곤드레밥 하나요!' 라고 크게 말했다. 옷을 벗고 의자에 앉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꺼내고 물을 따르고 책을 보며 기다리자 싶어 책을 꺼냈는데, 주문한 밥이 나왔다. 꺅!



 

 


 

 



반찬중에 달래무침이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 번 더 달라고 해서 달래무침을 두 번이나 싹 비워냈다. 너무 맛있어서 저렇게 한 숟가락 가득 떠 한 입에 넣고 씹는데 진짜 행복한거다. 너무 맛있어. 흑흑. 나는 몇 번이나 입에 가득가득 밥을 넣고 씹으며, 만약 곤드레밥 먹는 나를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흑흑, 음식 광고 모델 섭외가 들어왔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아- 나 이러다가 곤드레밥 지면광고에 실리는 거 아닐까. 곤드레밥과 달래무침 사랑합니다. ㅠㅠ 히융.





오늘 출근길에 읽기 시작한 책이 너무 메롱이라서 짜증이 나는데, 고작 몇 페이지 안읽은거니 끝까지 다 읽고 판단하자 싶어 판단을 보류하고, 쌀쌀한 출근길, 오랜만에 커피소년의 노래를 들었다. 사랑이 찾아오면~ ♪ 


에드나 생각이 났다.






커피소년의 음악을 들으며 양재역에서 버스를 기다렸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버스에 탔는데, 버스 안에서 L 대리를 만났다. 귀에서 이어폰을 꽂고 함께 역에서 내렸는데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라고 그가 묻는다. 좋죠! 라고 말하고 가는길에 있는 스벅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나 가끔 여기 일찍 오면 저기 구석에 앉아서 샌드위치 먹고 가요, 라고 말했다. L 대리가 빵터지며, 아니 왜 구석에서 먹어요 환한 데서 먹지, 안 뺏어 먹어요, 하는거다. 그래서 말했다.


뺏어먹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 그리고 샌드위치 진열장 앞으로 가서 나는 이 샌드위치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L 대리는 어느 케익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얘기하다가 주문한 커피가 나와서 커피를 들고 걸어가는데, 앞에 C 과장이 보인다. L 대리가 크게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나는 말했다. 안돌아볼걸요? 뛰어가서 때려야 돌아봐, 귀에 이어폰 꽂았을 거에요, 라고. 사무실에 도착해 물으니 역시 귀에 이어폰을 꽂은 상황이라 부르는 소리를 못들었다고 했는데, C 과장은 스벅에서 나를 봤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L 대리랑 두분이서 굉장히 다정하게 케익코너를 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안들어갔어요.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ㅋㅋㅋㅋ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완전 빵터졌다. 난 .. 난.. 케익 코너 앞에서는 한없이 다정한 여자가 되고야 마는걸까.



덧. 이 책을 읽도록 해주신(번역서가 있음을 알려주시고, 인용문으로 읽기의 충동을 부채질해주신) ㅇ ㄹ ㄱ ㅅ 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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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1-2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에게 최고의 환희와 깊은 비애의 유일한 원천이 되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아무런 책임도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나는 지나이다의 손안에서는 마치 말랑말랑한 밀랍과도 같은 존재였다.<첫사랑>

1.참... 신기하죠. 늘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자발적 '을'이 되어버리니까요.

2.에드나는 '강신주적'으로 산다고 봐야겠군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삶.

3.곤드레밥 맛나겠다! 한번도 못먹어 봤어요. 고기 반찬이 없었는데도 그렇게 맛있게 드셨다니 믿을수 없습니다만....

4.그나저나 다락방님, 이리 와요, 이리와서 나랑 족발이나 먹읍시다.

5.푸헬헬헬 축하합니다!!!!!!!!!!!!!!!!!

2013-11-21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3-11-2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퐈요. 책임져!!!
제목만 보고 밥먹고 읽어야지 했는데 그만 클릭 해버렸네~ ㅋㅋㅋㅋㅋㅋ

비연 2013-11-2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드래밥... 아.. 꼴깍...ㅜㅜ

2013-11-21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1 2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코죠 2013-11-22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축하해요 마이페어레이디!♥.♥

비로그인 2013-11-22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리 소문 없이 책을 내셨네요.
음, 고수는 역시 다르군요ㅎㅎ
표지가 아주 멋지던데요.
얼른 구입해 읽겠습니다.
축하합니다 다락방님!^^

2013-11-22 0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2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3-11-22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어제 다락방님 예전 페이퍼를 보다가, 다락방님 이름을 알게 된 거예요.
이멜 주소로 막 추정을 해서...
너무너무 기뻐서, 아, 나는 다락방님 이름도 안다~ 흐믓해하고 있었는데...
책 소식을 오늘 아침에 들었어요~

아, 책에 이름이, 나만 알고 있다 좋아했던 이름이 떡!하니.
역시나, 나만 알고 있을수는 없구나.
나만 좋아할 수는 없구나.
이 인기 많은 다락방님을....

책 내신거 축하드려요.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그래도 너무 기쁘네요.

노란곰 2013-11-22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박대박대박^^ 서민 교수님 블로그갔다가 알게됐어요^^
매일 들어오는 다락방님의 서재, 이젠 다락방 작가님의 서재라고 불러야겠네요^^

저도 꼭 책 살께요. (그런데 저자강연회나 사인회 안하시나요? 아니면 족발파티라던가.. 기뻐서 마구 친한척 하고가요오-)

비연 2013-11-2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여기 와서 다시 축하드려요!!!!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 예상되리만치... 글을 잘 쓰시지만,
막상 책을 냈다 하니 너무너무 반갑네요! 축하 파뤼해요!!ㅎㅎㅎ

네꼬 2013-11-2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락님 내가 바쁜데 지금 막 빨리 댓글 달고 싶어서 일단 이렇게 해요. 축하해요! 꺅 멋져!! 원샷해라!

heima 2013-11-2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식듣고 제 심장이 두근쿵쾅했어요! 아아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다락방님!!

hnine 2013-11-2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축하드려요. 무지, 진짜, 많이, 대따 많이! ^^

dreamout 2013-11-2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작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ㅎㅎㅎ
축하해요!!! ^^

2013-11-22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3-11-2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정말 놀라운 혹은 당연한 소식을 들었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예전같이 맨날 드나들었으면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지만 발걸음이 뜸해진동안 저를 위한(?) 서프라이즈를 준비하셨군요. ㅎㅎ
정말 축하드리고요, 작가로서의 나날도 즐거보세요 ^^

moonnight 2013-11-22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축하합니다. 당장 주문해야겠어요. ^^

자작나무 2013-11-22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해요! 금방 나왔네요~이런 날이 올줄 알았죠 대박나서 음식공감,남자공감 시리즈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보스에게 책을 주는건 조심해야해요. 보스라는 사람들은 대개 업무시간에 일안하고 책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첨에생각없이 보스에게 책을 줬다가 오히려 엄청 후회했어요. 이후로는 나오는 책마다 꼬박꼬박 보스를 공저자로 넣어줘야 했다는...;;;;;
아뭏든 다과장님 사인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출판기념회랑 저자와의만남 행사에 꼭 참석할게요~족발 사들고 막 뛰어가고싶네요~~

kimji 2013-11-22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문이 자자~^^ 축하해요!!! 내 이런 날 올 줄은 알고 있었으요!! 와방 축하!! 올 연말, 화끈하게 보내시겠어요!! 으아~ 둏다둏다!

여울 2013-11-2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꼭 사볼께요!! 기분 좋은 소식이네요 - - -

paviana 2013-11-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대박나실거에요. 미녀 작가님!!!

페크pek0501 2013-11-22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 님, 축하드려요.
책 대박 나시길!!!!!!!!!! 기원합니다.
(나도 꼭 구입해 읽어야지... ㅋㅋ)

2013-11-2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내셨구나! 웅와웅와
많이 많이 팔려서 다락방님이 맛있는 거 많이 먹었으면 좋겠어요 헤헤. 축하해요!

건조기후 2013-11-23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 댓글 저에요. 어느 새 로그아웃이 돼있었.. ㅎ

프레이야 2013-11-2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전 왜 눈치를 못 채고 있었을까요ㅎㅎ 제가 다 설레고 떨리고 기뻐요. 진심 많이 축하드려요♥♥ . 파티 해야되는 거 아니에요? ^^.

2013-11-23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3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서있는 자리가 위태로움을 느낀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학살'을 보고도 보지 못한척, 듣고도 듣지 못한척 하려하고, 그 학살을 이끄는 자들의 무리에 속하고자 한다. 그렇게 된다면, 그녀의 자리는 굳건히 지켜질 수 있으니까. 그녀는 잘 해낼수 있으리라 믿었다. 소수를 희생해서 다수가 살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은가, 자기 자신을 합리화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사랑을 알게 됐다.



사랑을 알게 되니 그 사랑이 소중해진다. 그 사랑을 지키고 싶고, 그 사랑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 누군들 안그럴까. '한수영'의 로맨스 소설인 <연록흔>과 <혜잔의 향낭>에 보면 '널 사랑하기 때문에 내게도 약점이 생겼다' 라는 남자 주인공들의 대사가 나온다. 이 소설속의 여자에게도 약점이 생겨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사랑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누군가를 구해내야겠다는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채 계속 두 눈 질끈 감고 잔인한 행동에 합류할 수 있었을텐데.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 계획이 위험하다는 말을 들어도 그녀는 못들은 척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나자 더이상 무시할 수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이 모든 일들이 서늘하게 그려진다. 서늘하고 잔인하게. 그녀가 사랑하는 순간만 잠깐, 반짝이는 불이 켜질 뿐.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처럼.



럭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말했다.

"뇌를 촬영한 영상이 있어요. 본 적 있어요?"

"글쎄요."

"난 본 적이 있어요. 사람의 뇌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뇌 속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요. 그걸 포착한 사진인데, 꼭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것 같았어요. 불빛이 켜졌다가 꺼졌다가 다시 빛났다가 꺼졌다가. 반짝반짝하거든요."

"크리스마스트리 본 적 있어요? 여긴 더운 나라인데."

"크리스마스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곤 럭이 혼자 웃었다.

"사실 직접 본 건, 리조트가 생기면서부터네요. 그것보다 더 많이 본 건 저 별들이죠. 그러고 보니, 뇌의 영상이 저 하늘을 닮은 것도 같네요. 검은 바탕에 흰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거든요."

요나는 럭을 따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다음 순간 럭의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이 고이고 말았다.

"내가 당신을 떠올릴 때,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빛나고 있을 거예요. 나도, 당신도, 그걸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별이 반짝이고 있을 거예요." (pp.188-189)



이 소설은 내내 찬바람이 부는데(물론 배경이 되는 나라는 더운 나라이지만), 이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만 온기가 돌았다. 


잠깐, 

데워지는, 

공   기. 


그리고 소설은 여자와 남자를, 더 큰 바람, 더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내몰고 만다.



조금만 더, 아주 약간만 더,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흠잡을 데 없이 서늘한 소설이다. 고발성만 갖추고 마는 작품이 아니다. 작가는, 주인공에게 가차없다. 아니, 이 세상에 누가 주인공인가. 어디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주인공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나 역시, 커다란 자연앞에 하나의 생물에 지나지 않을진데.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읽기전에 감히 말하자면, 아마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 이 책이 더 좋지 않을까, 한다. 이 생각이 깨지면 좋을텐데. <무중력 증후군>을 읽을까, <1인용 식탁>을 고를까?















지난 토요일, 친구와 레스토랑에 들러 스테이크와 와인을 먹었다. 와인과 손톱을 꼭 한 데 묶어 촬영하고 싶었는데, 그러려고 하다보니, 스테이크가 너무 빈약하게 나와 시무룩..


 



지방에서 만난 우리는, 이걸 다 먹고, 후식으로 나오는 아주 맛있는 티라미수 까지 다 먹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아 글쎄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덕진게 먹고 싶다며 족발을 주문하는거다! 그러나 우리도 사람인지라, 몇 점 먹고 포만감에 더이상 먹을 수 없게 되어 족발을 남겼는데, 크- 남긴 족발은 다음날 아침에 더 맛있어 진다는 걸 다들 알고 계시는지?


다음날 아침. 배가 고파져서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넣고(참깨라면~) 사다 놓았지만 다 마시지 못해 냉장고에 들어있던 맥주를 꺼내 컵에 따라 마시면서(500 두 캔이나!), 지난밤 남긴 족발을 함께 먹는데, 와- 완전 맛있는거다. 그 시간이 아침 아홉 시. 으크크크크크크크크크. 아침에 먹는 푸짐한 식사. 라면과 족발과 맥주! 아, 너무 맛있고 행복해서 정말이지 쉬지 않고 먹었다. 이렇게 먹는 나를 보고 친구는 '너 정말 배고팠나보구나' 라고....난.........난.................아침도 푸짐하게 먹는 게 좋아. 흑흑. 지난밤의 스테이크보다 아침의 차가운 족발과 뜨거운 사발면, 그리고 아침맥주가 더 맛있었다. 아하하하.



체크아웃을 하고 그 도시의 영풍문고에 들렀다. 그러다 한 책장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고 말았는데, 그 책장에 내가 읽은 책이 너무 많았기 때문. 내가 읽은 책들을 꺼내어 보았다. 그리고 이쪽 저쪽 방향에서 찍어 보았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물론, 이게 소설 코너니까 가능했지, 다른 코너였으면 어림도 없었을 거다.



 

 


 

 


 


그나저나, 오늘 점심은 또 무얼 먹을까. 일단은 커피를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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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3-11-1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이 손톱이 느무느무 이쁘네요. 그리고 저 책 ㅋㅋㅋ 재미나요.

다락방 2013-11-19 13:21   좋아요 0 | URL
한 칸에 제가 읽은 책이 너무 많아서 신났어요! 그렇지만 저렇게 제가 읽은 책이 많은 칸은 딱 저 한 칸 뿐이었어요. 하하하핫

단발머리 2013-11-1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위의 인용하신 문장들 넘 좋아요. 나도 이런 이야기 듣는 여자주인공이고 싶다~~~
근데, 저 부분 빼고 다 서늘하면.... T.T

와인과 손톱, 그리고 스테이크 모두모두 아름다워요~~ (묶여서?)
아침맥주랑 족발, 사발면도 같이 나왔다면 내가 이쁘다고 해줬을텐데.. ㅋㅎ

다락방 2013-11-19 13:20   좋아요 0 | URL
좋죠? 낭만적이고 따뜻하고..전 가뜩이나 크리스마스를 좋아해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트리 같다고 하니까 참 좋더라고요. 뇌가, 누군가를 생각할 때 저렇게 된다니. 멋져요..

지금은 매니큐어 지웠는데 손톱 엉망이에요. 어휴..메롱이에요 메롱. 손톱 메롱 ㅠㅠ
아침맥주랑 족발, 사발면은..먹느라 정신 팔려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네요. 전 음식 보면 먹느라 정신을 잃어서 거의 사진을 못찍어요. ㅋㅋㅋㅋ 그나마 저 사진은 작정하고 있었기 때문에..빨간 손톱, 빨간 와인, 하고 말이지요. 하하하핫

Forgettable. 2013-11-1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인용 식탁 내가 줄게용!

다락방 2013-11-19 13:19   좋아요 0 | URL
꺅 >.< 좋아요 좋아요. 안그래도 1인용 식탁이 더 끌리더라공 ㅋㅋ

건조기후 2013-11-19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은 책이 하나도 없 ;

아침의 캔맥주와 뜨거운 컵라면과 차가운 족발 ㅎㅎ 그냥 보면 생뚱맞은 조합인데 다락방님이 먹으니까 뭔가 찰떡궁합같아보여요. 다락방님이 먹기 전까지 너는 단지 캔맥주와 컵라면과 족발에 지나지 않았다 다락방님이 먹어 주었을 때 너희들은 비로소 근사한 아침메뉴가 되었다 ㅎㅎㅎ

손톱 정말 예뻐요!

다락방 2013-11-19 16:39   좋아요 0 | URL
건조기후님이 서점의 책장 앞에 서서 읽은 책들을 뽑아 내신다면, 저 역시 그 목록들 중에 제가 읽은 책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장담합니다. ㅎㅎ

오랜만이에요, 건조기후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와락- 안고싶네요. 반가운 마음이 가득해 말이지요..

2013-11-19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dreamout 2013-11-19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고은,, 손보미.. 이 작가들 평이 좋네요. 전반적으로..
저도 읽고 싶어졌습니다.

다락방 2013-11-20 08:55   좋아요 0 | URL
윤고은은 처음인데, 가볍게 읽고 말겠지 싶었는데, 참 좋았어요. 기대하는 작가가 될 것 같아요.
:)
 

똥을 싸는 게 미안하다




나는 왠지 미안한 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안한 건 남편이 아침밥 먹을 때 똥을 싸는 것이다
안방 옆에 붙은 화장실에서 똥을 싸는 게 미안하다 남편
은 예의 그 사람 좋은 얼굴로 생리 현상인데 뭐 어떠냐고
어깨를 두드리지만 남편은 내가 밥 먹을 때 옆에서 똥을 
싸지 않으니 나는 더 미안하다 남편은 똥도 한 때 밥이었
다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밥을 먹는데 ‥‥‥ 나는 어쩌자고
똥은 똥이고 밥은 밥일 뿐이라는 일념으로 남편이 아침상
받은 안방으로 그런 내 생각이 구린내 되어 솔솔 넘어가
게 하는지‥‥‥ 똥을 오로지 똥으로만 생각하는 내 외곬이
싸는 똥은 똥을 수밖에 없어서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다



















일전에 미국에 갔었을 때, 집집마다 제2출입문이 달린 것을 보고 꽤 놀랐더랬다. 미국에서는 집에 출입문을 두 개 만드는 게 법으로 정해진 거라 했는데, 그러고보니 미국영화를 보면 그렇게 뒷문이 있고 등장인물들이 철제 사다리로 왔다갔다(라기 보다는 거의 도망)했던 장면들이 종종 나오곤 했었다. 아, 그게 집집마다 있어서 그런 거였구나. 특별한 곳, 특별한 것이 아니었어.


문득 집집마다 화장실이 두 개인것도 법으로 정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집도 작은 집도 모두 화장실이 두 개인거다. 그러면 식구들이 밥 먹고 있을 때, 나는 똥냄새 안나게 저 쪽에 있는 화장실에 가서 마음껏 똥을 싸면 되니까...하아- 그러나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땅덩어리는 좁고 사람과 차는 많아 지하를 파고 파고 또 파서 주차장을 만드는 이런 나라에서, 무조건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을 만들 수 있을까. 많은 식구들이 아직도 한 방에 모여 자는 가구가 여전히 많은데, 그 사람들은 화장실보다 차라리 그 면적을 방으로 넓혀달라고 하겠지. 화장실이 두 개인 집에 살려면 어느정도의 평수가 되는 집에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작은 집보다 돈이 더 많이 드는 게 사실. 예의를 지키고 싶어도, 매너있게 행동하고 싶어도, 그게 돈이 있어야 가능해지다니, 슬프고 씁쓸하구나. 쩝.


미안해도, 어쩔 수없이, 똥은 싸야지. 별 수 있 나. 똥 참 으 면 얼 굴 노 래 져.





중학교시절, 아이들은 저마다 앙케이트 노트란걸 만들어 돌렸다. 아마도 지금 중학생들은 그런 유치한(?) 행동을 할 것 같진 않은데, 그 땐 참 유행이었다. 그러니까 질문이 있고, 거기에 답을 하는 노트인거다. 질문이래봤자 진짜 별 거없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은? 취미는? 좋아하는 노래는? 뭐 이정도. 나도 그 노트를 만들어 돌렸었고, 다른 애들의 노트에 답도 하고 그랬는데, 내 노트 였는지 다른 아이의 노트였는지 질문 중 하나가 '잘하는 것(특기)'을 묻는 거였다. 그 때 무척 예쁘게 생겼던 s 는 '손으로 하는건 뭐든지 다' 라고 답했었다. 그 문장을 한참이나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너무 근사해서. 그 때 그 대답이 어찌나 근사하던지. 그러고보니 그 아이는 글씨도 잘썼고, 그림도 잘그렸고, 피아노도 잘쳤다. 간혹 자신이 그림을 그려 엽서를 만들어서 내게 주곤 했는데, 그 때마다 글씨와 그림을 보며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 대답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나도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간 다른 애들은 피아노치기, 그림그리기 등 평범한 대답을 했었는데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다' 라니. 그 때부터 사람들이 물으면 나도 별생각 없이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해. 라고 대답했다. 뭐,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하는 것이 뭐 별거 있나. 못할거 없잖아? 난 피아노도 배웠고, 경필대회에서 상 탈 수준은 아니지만 글씨도 그럭저럭 쓰니, 뭐 다 되는거 아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했었는데. 하- 참 철이 없었다. 나는 이제는 안다. 나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못한다.



피아노는 6년을 배웠지만 외우는 악보가 없고 손은 악보와 따로 놀았다. 글씨는 개떡같고, 그림은 때때로 기본 점수를 간신히 받는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맛없을 수가 없는 김치를 재료로 김치찜을 해도 맛이 없어지는 게, 내 손이 하는 일이었다. 손으로 못하는 것의 절정은 매니큐어 바르기에 있었다. 헐. 


엊그제. 갑자기 매니큐어를 바르고 싶어졌다. 집에 있는 매니큐어들의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아 퇴근길에 화장품 가게에 들렀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색을 발견. 집에 돌아가서 밥을 먹고 텔레비젼 앞에 앉아 룰루랄라~ 매니큐어를 바르기 시작했다. 빨간색 계통이라 전체를 다 바르면 회사에서 너무 튈 것 같아, 프렌치로 바르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프렌치를 했는데, 하아- 삐뚤빼뚤 정말  무슨....어휴..발로 칠한 것 처럼 되는거다. 게다가 손톱 옆으로 다 번졌어. 다 바르고 마른 뒤에 한참을 들여다봐도 이걸 도무지 봐줄수가 없는거라, 아세톤을 이용해 다 지웠다. 흑. 그런데 ㅠㅠ 내가 얼마나 못발랐으면 ㅠㅠ 손톱 사이로 매니큐어가 다 들어가 있는거다. 이게 어떻게도 수습이 안돼 ㅠㅠ 지우고 나니 손에 때 낀 뇬이 되어 있었다. ㅠㅠ




다음날 회사 오니 동료가 자지러지게 웃고..뭐한거냐고 ㅠㅠ 저게 사진으로는 약간 붉게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보면 검정에 가까워 보인다. 진짜 때같아...이제 나이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 손톱에 때가 덕지덕지 낀 것처럼...이게 뭐야 ㅠㅠ 손에 때 끼는 건 머리 안감던 초딩시절에나 일어나는 일 아닌가 ㅠㅠ


어제 직장상사에게 보고 드릴 게 있어 들어갔다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가리켜야 해서 초난감했었다. 손톱에 때 낀 과장.. ㅠㅠ



난..손으로 하는 건, 그게 뭐든, 다 못해!





오늘 아침에 새삼 깨달은 바가 있으니, 그건 바로,


평일날 아침 식탁에서 갈치반찬은 곤란하다


이다. 뜨거운 밥 옆의 튀긴 갈치가 반가워, 젓가락을 들고 갈치살을 바르기 시작했다. 조기 같은 건 무섭게 발라내 두 마리 먹는게 일도 아닌 터라, 고등어 역시 슁슁슁 가시를 발라내 맛있게 밥을 뚝딱 금세 비워낼 수 있는터라, 갈치 역시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가시바르기 신공으로 두 토막을 먹어치우자,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가시 바르는데 오천년 걸리는거다. 아..너무 짜증나. 나는 가시를 발라 살을 밥 위에 얹으면서-그 부서지는 살들!- 계속 소리내어 중얼거렸다.



이거 뭐야, 갈치는 아침에 먹으면 안되겠네, 두 토막 먹을라 그랬는데 가시 바르느라 시간이 너무 오래걸려, 한토막 밖에 못먹겠잖아, 갈치 두 토막 먹겠다가 회사 지각하겠네..........



그러면서 먹으니 엄마가 맞어, 이러면서 엄청 웃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말했다.



갈치는 이제 저녁에 튀겨. 



갈치는 저녁에 튀겨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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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11-1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치를 저녁에 튀겨야 하는 이유... 가시 바르느라 오천년이 걸려서...ㅋㅋ 오천년이란 표현이 재밌어요.
(나도 써 먹어야겠어요.)

화장실이 두 개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아마 하나라면 아침에 식구들이 서로 화장실 쓰느라
전쟁이 일어날 거예요. 두 개를 청소하는 건 힘들지만 그래도...

똥을 생각해서 식탁은 화장실에서 먼 곳에 두기, 가 중요하네요. ^^

다락방 2013-11-15 17:23   좋아요 0 | URL
네, 식구 많은 집은 더욱이 화장실 두 개가 꼭 필요하죠. 저희 식구들도 예전엔 화장실 하나인 집에 살았었는데, 그 때 정말 전쟁이었어요. ㅠㅠ

여동생 집이 화장실 하나인데요-대부분의 젊은 부부들은 화장실 하나인 집에서 살겠죠-, 놀러가서 자고 오려고 하면 꽤 불편하더라고요. 제부도 있는데...좀..... 그래서 가면 가급적 자고 오지는 않으려고 해요.

지금 저희 집은 부엌하고 거실이 분리가 안되어 있고 화장실하고도 가깝고 그래서 부엌에서 식구들 식사하면 화장실 이용할 사람은 안방..으로 가요. 하하핫;;

단발머리 2013-11-15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살던 집에서는 화장실에 앉으면 식탁에 앉은 사람 얼굴이 보이는.... 요상한 위치 선정.
나 저 시가 막 이해되고...쩝

다락방님은 손톱에 때낀 과장인데, 그 와중에 갈치를 아침에 두 토막 먹고싶어하는 사람이고,
나는 이 페이퍼의 태그에 뭔가, 한 글자짜리 뭔가가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무개 2013-11-15 12:31   좋아요 0 | URL
똥!

다락방 2013-11-15 17:24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똥이란 한 글자를 왜그리 쓰기 어려워하시나요. 그냥 뱉어버리세요. 똥! 하고. 따라해보세요, 똥! ㅎㅎ

혼자 사는게 아닌이상 화장실은 두개 이상이 되어야 아무래도 좀 더 좋겠죠. 그렇지만..화장실 두개인 집에서 사는게 쉬운 일도 아니니까..특히 젊은 사람들에겐 말이지요. 돈이 어딨어서 화장실 두 개인 집에 살겠어요. ㅠㅠ 대출 받아서 집 사거나 빌리는데 ㅠㅠ 슬퍼 ㅠㅠ

단발머리 2013-11-15 19:04   좋아요 0 | URL
아무개님~ 부끄러워요.
다락방님~ 돈이 없어요.

dreamout 2013-11-15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당에 와서, 파스타를 시켜놓고 다락방님 불로그에 들어온거죠. 샐러드가 나왔길래 한입 베어물고 신선한네 하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보니 똥이 나오네요. ㅎㅎ. 똥은 똥이고 샐러드는 샐러든데... ㅎㅎ

다락방 2013-11-15 17:27   좋아요 0 | URL
아, 드림아웃님! 24시간 중에 하필이면 점심식사 시간....이었습니까. 첫 줄부터 똥 이야기인데...

어떻게, 식사는 맛있게...........하셨나요? 드림아웃님 점식식사에 물의를 일으켜 유감이네요. 흑.

아무개 2013-11-1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갈치 가시를 잘 발라주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면 아침에도 갈치 두토막 먹을수 있습니다!!!

2.저희집은 오래된 빌라인데 신기하게 화장실이 두개에요. 한개 있을땐 몰랐는데 편하긴 하더군요.

3.손으로 잘하는건 코파기와 딱쟁이 띠어내기뿐인 1人. ㅠ..ㅠ

4.지금 한창훈<그 남자의 연애사>읽고 있어요. 기대이상으로 좋은데요?
한창훈 다른 책 중에 추천해주실만한거 있나요?

다락방 2013-11-15 17:29   좋아요 0 | URL
1. 갈치 가시를 잘 발라주는 남자가 현빈같이 생겼다면, 그 때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킁킁. 가시만 잘 바르면 별로 쓸모 없으니..( ")

2. 화장실은 두 개가 확실히 편하죠. 집에 손님 오셨을 때도 그렇고.. ㅠㅠ

3. 전 손으로 잘하는 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젓가락 숟가락..질??

4. 저는 한창훈의 책중 <그 남자의 연애사>가 가장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ㅎㅎ 아무개님, 저는 <나는 여기가 좋다> 읽고 한창훈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책을 추천! 물론 <홍합>도 좋고, 아무개님의 경우에는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특히 좋아하실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책을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 왜 사뒀는지 모르겠다. 고양이 사료 받을라고 산거였나...여튼, 별로 좋지 않겠지, 그렇다면 빨리 읽고 중고샵으로 고고씽, 하며 책을 펼쳤는데, 아이쿠야, 나는 이 책에 밑줄을 긋고 있었다. 밑줄을 그은 이상 내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 옆에 꽂아둘까 어쩔까 고민 좀 해보고. 


그러니까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처음 밑줄을 그은 건 바로 25페이지의 이런 문장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다고 해서, 모두에게 그렇게 살라고 희망적인 메세지만 던지려고 하지 않는 저자가 마음에 들었던 거다. '나봐요, 나는 이렇게 했잖아요, 이걸 진정 원했기 때문이에요, 당신들은 왜 못하죠?' 대부분의 꿈을 이뤘다는 멘토들이 해대는 멘트들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웬디 웰치는 알고 있다. 모두가 다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음을.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그 무엇보다 먹고 살기에 전념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아주 힘든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점이 고마웠다. 꿈을 좇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의지박약아 취급하지 않아서. 


그런데 읽다보니 이 저자가, 유머감각도 넘치고 마음도 따뜻하다. 새로 정착해 중고서점을 열게 된 마을에 서서히 섞여들어가는 모습이 인상깊다. 헌책방이 단순히 책에 대한 애정만으로는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실감했다. 헌책방은 책과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책과 사람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 중고서점에 들러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소개되는 사연들이 인상깊은데, 그 중 몇 개의 이야기에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에세이가 이럴 수 있다니, 이 에세이는 내가 그간 읽어왔던 에세이들에 비하자면 아주 훌륭한 에세이로구나.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빨아들이다니.



어느 화창한 봄날, 잘생긴 청년이 들어오더니 제임스 패터슨의 책을 찾았다. '터커(라고 하자)'와 나는 교회에서 만나 아는 사이로, 나는 그가 좀더 고전적인 소설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터커는 이 지역 독서클럽 회원이었는데, 그 독서클럽 회원들은 사람 많은 곳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혼자 욕조에 앉아 있을 때도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 같은 건 절대 손에 잡지 않을 사람이었다. 터커는 자기가 찾는 책의 제목조차 몰랐다(패터슨 군단이 출판한 책이 일흔두 권이나 되는데 제목을 모르면 어쩌라는 건가). 그게 "처음에 나온 책"이라는 것만 알았다.

"혹시 《스파이더 게임Along Came A Spider》을 말하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터커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어쩌다가 이 작가한테 재미 붙였어요?" 터커를 미스터리 및 스릴러 방으로 안내하면서 물었지만, 사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짐작할 수 있었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가 대답했다. "어떤 아가씨를 만났거든요."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계산한 페이퍼백을 건넸다. 물론 둘이 잘 안 될 거라고 그 자리에서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내 일이 아니라서 그냥 입 다물었다.

터커는 그 뒤로도 패터슨의 소설을 두 권 더 사 가더니 여자친구와 헤어졌음을 알렸다. 그리고 나중에 리 스미스를 좋아하는 멋진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 우리는 두 사람에게 결혼 선물로 《결혼은 살인이다Marrige Is Murder》《사랑하고 소멸하고 To Love and To Perish》같은 코지 미스터리 열댓 권을 선물했다(코지 미스터리가 뭔지 모르는 독자들은, '주인공들이 새로운 요리법이나 섬세한 수공예에 푹 빠져, 옆에서 누가 죽어다고 콧방귀도 안 뀌는 범죄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pp.229-231)




터커가 고전 취향인데, 좋아하는 여자가 전혀 다른 취향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둘이 '잘 안 될 거' 라고 생각하는 게 내게는 좀 낯설었다. 나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책을 좋아하는 취향은 전혀 다를 수 있는게 아닌가. 나는 오히려 전혀 다른 취향의 책을 읽어보려고 한다는 게 너무 예뻤다. 물론, 저자가 예상한대로 그 둘이 깨지긴 했지만. 이 일화는 '책방 안에서 일어난 일은 책방 안에서만 머문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소개한건데, 뒷 얘기 때문이다. 뒷 얘기가 더 재밌다. 나는 이 뒷 얘기를 하기 위해 저 긴 걸 옮겼다능...



터커와 그의 아내 '비키(라고 하자)'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때까지 우리 책방을 자주 찾았다. 한번은 내가 비키에게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비키는 뒷표지의 소개글을 읽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두어 권 읽어봤는데, 터커는 한 권도 안 읽어봤대요."

머릿속의 생각보다 먼저 내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에요. 전에 우리 가게에 와서 몇 권 ‥‥‥" 여기까지 말했을 때 아차 싶었다.

터커의 아내가 썩은 미소라고밖에 묘사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러더니,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윙크를 내게 날리고는, 남편이 고전문학을 고르고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듣는 귀가 그렇게 많은데 신경도 안 쓰고 패터슨의 책을 남편 얼굴 앞에 휘두르며 소리쳤다. "거짓말쟁이! 그년하고 데이트한 적 없다며!" (p.231)



하하하하. 어쨌든 이 일로 저자인 웬디 웰치는 교훈을 깨닫게 된건데, 서점을 차리고 정착하기까지 그리고 그 서점의 매출이 안정권에 접어들게 될 때까지, 무모한 도전이었던 만큼, 무계획의 도전이었던 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된다. 


사실,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특히나 마을 주민 한 명이 고양이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이야기는 눈물이 핑 고여서 얘기하고 싶은데, 내가 이것저것 다 얘기하다 보면 타자 치느라 팔목이 아플 것 같으니, 다 생략하고, 하나만 더 이야기 해야겠다. 팔목이 두껍다고 더 많은 타자를 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루는 글을 읽을 수 없는 남자가 서점에 찾아와 '글을 읽는 법'에 대한 책을 사고 싶다고 한다. 웬디 웰치는, 그런 책들이 몇 권 있지만, 이건 글을 아는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줘야 한다, 혹시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라고 묻는다. 남자는 없다고, 혼자 산다고 한다. 그러자 웬디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 거라고, 이 동네에도 읽기 강좌가 있을 거라고 하며, 그런 강좌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 세 명에게 급하게 이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이 분도 안 되어 전화벨이 울렸다. 제시카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스티브(라고 하자)'를 어디로 보내면 되는지 알려주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또 전화가 울렸다.

"전화하라더니 통화 중이야?" 이사벨이 뿌루퉁하게 꾸짖었다. "설명해주게 전화 바꿔봐."

그렇게 해서 알아낸 수업 장소로 잭이 스티브를 직접 데려다 주었는데, 알고 보니 스티브의 집에서 몇 블록 안 떨어진 곳이었다(스티브가 이정표와 설명만으로는 못 찾아갈 듯해 일부러 데려다준 것이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마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청소년 단체 관계자가 읽기 강좌를 진행하는 선생님에게 연락해서, 그 선생님이 다시 내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온 잭이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음료가 담긴 잔을 만지작거리다가-밖의 기온이 32도는 됐을 것이다-한마디했다. "대단했어."

"나도 얼떨떨해요." 내가 대꾸했다. "쉰네 살이나 됐는데 자기 이름밖에 못 읽는다니, 믿겨요?"

잭이 손사래쳤다. "내 말은, 우리가 몇 분 만에 네트워크를 가동시킨 게 대단했다는 거야. 그 사람, 겨우 ‥‥‥얼마였더라, 십 분만에 도와줄 사람들이 생겼잖아."

방금 일어난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잭의 말을 듣는 순간 따스한 감동이 밀려왔다. 먼저, 한 남자가 비웃음이나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외지 출신인 우리 책방에 들어와 도움을 청했다. 둘째,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을 세 명이나 떠올린 것도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취한 세 명 모두 거의 곧바로 전화를 해주었다.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pp.302-303)



글을 읽지 못하는 당사자인 스티브에게,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서 도움을 요청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당연히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가 용기를 내기 전에 누군가가 먼저 강의 얘기를 했다면, 자칫 스티브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들에겐 자존심이 가장 중요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는 도와달라고 자기 사정을 얘기했고, 이에 웬디는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내고 연락한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도움의 손길을 맞잡아 응대한다. 그들이 거절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했기 때문에, 스티브는, 쉰넷의 나이에 비로소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흑.



게다가 웬디는 헌책방을 운영하면서 자신이 인정하지 않았던 분야의 책들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모든 사람들의 책에 대한 취향이 다른것처럼.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나이든 여자가 '딘 쿤츠'의 책을 찾는걸 보고, 그녀의 취향이 이해되지 않았던(전혀 다른 취향의 책도 찾는 여자니까) 웬디는, 그녀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나는 딘 쿤츠의 소설이 그렇게 좋더라고요. 온갖 시름을 싹 잊게 해주거든요. 이 양반 책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에 비하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p.377)




아주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헌책방을 운영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좀 희미해졌다. 그녀의 헌책방이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그곳을 마을회관처럼 찾는 사람들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단골이 되고,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되고, 웬디의 책방을 사랑방처럼 찾는 건 물론 의미있고 뜻깊은 일이지만, 내가 해낼 수는 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장소에서, 내가 일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뜨개질을 하고 독서모임을 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는 일. 그 일을 내가 좋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나는 아마도 처음부터 그런 모임을 가지려 하질 않았을 것이고, 추진도 하지 않거니와, 설사 제안이 들어와도 '다른곳에서' 하라며 거절하게 됐을 것 같다. 지역공동체가 살아가는 건 바로 그런 끈끈함이 바탕이 되기 때문일텐데, 나는 그보다는 이방인이기를 더 즐겨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고 고르고 사는 일까지는 즐겨할 수 있지만, 자리잡고 앉아 그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건 못할 것 같은, 나는 그런 사람인거다. 어딘가에 소속이 된다는 건, 내게는 그다지 달갑지가 않다. 학교도 싫었고 회사도 끔찍한데...쩝. 어딘가에 소속되는 건 이것만으로 정말이지 완전 충분하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당연히 몰랐던 책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는데, 제일 기가찼던 건, 새뮤얼 리처드슨의 [클래리사] 라는 작품. 이 작품은 웬디와 친구들이 '싫어하는 작품'에 대해 얘기하며 언급한 작품인데, 뭐길래 그렇게 싫어하지? 하고 검색해봤다. 호기심에 읽어볼라고. 그런데 헐. 여덟권이나 되는 게 아닌가! 윽.











'보디스 리퍼'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알게됐다. '남자가 여자 주인공의 속옷을 찢는 장면이 자주 등장해 붙여진 로맨스소설의 별칭' 이라는데, 아흑, 이런게 어딨단 말이냐, 대체. 보디스 리퍼 장르의 소설 아시는 분들은 제게 추천 좀 해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꾸벅) 읽고싶다 읽고싶다 읽어보고싶다...



밑줄 그은 문장들이 제법 되는데, 그건 봐서 마음이 내키면 옮기던가 해야겠다.




오늘 이 책방에 대한 영상을 찾았는데, 하하하하, 잭과 웬디 모두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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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11-13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근하고 들어왔는데, 베트남 쌀국수.. 제목이 반갑네요. 지난주 토욜에 괜찮게 먹었는데.. 다시 생각나네요. Pho....

다락방 2013-11-13 09:12   좋아요 0 | URL
저도 어제 퇴근하면서 베트남 쌀국수 먹었어요. 국물이 너무 좋아서 그만...소주를 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하핫. 음주후의 베트남 쌀국수는 정말 좋거든요. 하하핫

에르고숨 2013-11-13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잭과 웬디의 실제 모습 되도록이면 보지 않으려고 책소개에 실린 사진도 애써 외면했던 기억이 나네요. 읽으면서 상상하려고요. 제가 이상한 건지, 때로는 책에 실린 저자 사진도 독서에 거슬릴 때가 있더라고요.
보관함이 또 쑥 커지겠네요, (실례가 아니라면) 지금 몇 권이나 들어있어요?

다락방 2013-11-13 09:17   좋아요 0 | URL
ㅎㅎ 맞아요. 수키시리즈의 '샬레인 해리스' 사진을 보고 책 안의 남자들 멘트에 계속 고개를 갸웃했었던 기억이 나요. 아니, 이 정신나가는 달콤한 멘트들이 어디서 나온걸까. 설마, 설마 다 그녀의 경험에서 나온것인가? 하면서 말이지요. 물론 그보다 더 큰 멘붕은 <아웃랜더>의 '다이애너 개벌든' 이었어요. 저자 사진을 보면 정말이지 ..어..음.....암튼 엄청난 여자가 딱- 보이는데, 그녀가 그려내는 여주인공이 '글래머' 이며 모든 남자들의 정신을 빼놓는 '큰 엉덩이'의 소유자로 나오거든요. 그 때마다 주인공을 매력적인 모습으로 상상하려다가 탁탁 걸려요. 저자 자신이...모델인가. 저자는 자신을..글래머로 생각하는건가, 글래머란 이런 것인가, 하면서 말이지요. 하하하하.

어제 벌써 '샬롯의 거미줄'을 주문 넣었고요, <분노의 포도>도 사야겠고, <성 안의 카산드라>와 <벌들의 비밀생활>도 장바구니에 들어있고. 하아- 의미는 없지만 일단 보관함에 들어있는 책의 권수를 말씀드리자면 '745'권이네요. -0-

아무개 2013-11-1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보디스 리퍼 장르 좀 있음 누군가 댓글 달아주실껍니다. 암요....
터보레이터도 다들 알고 계시는데. 보디스 리퍼 장르 소설쯤이야!!!

2.저도 이 사람들처럼 헌책방 운영하라고 하면 흠...솔직히 자신없어요. 아니 싫다고 해야하나..
이렇게 사람들과 개인적인 접촉을 많이 해야한다는건 생각만해도 손에 땀이... ㅜ..ㅜ

3.저는 오늘 점심에 굴짬뽕 먹으러 갑니다. 회사근처 뽕생뽕사 체인점이 있는데 요근래 먹었던 어떤 짬뽕보다 맛나요 ㅎㅎ

다락방 2013-11-13 09:20   좋아요 0 | URL
1. 보디스 리퍼 장르 제발 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어요. 읽고싶단 말입니다. 아니, 근데 속옷을 왜 찢는담? 돈 아깝게...전 남자가 제 속옷 찢으면 싸다구 날릴 거에요.

2. 저도 친절한 마음으로 손님을 응대하는건 엄청 자신있는데요, 그들과 개인적 친분을 맺는 건 좀 꺼려져요. 그 많은 사람들과 친밀해지다니. 어휴. 전 때로는 남자친구 하나도 감당이 힘든 사람이라...orz

3. 움화화화핫. 저는 굴짬뽕 싫어하지롱요~ 하나도 안부럽지요~ 움화화화핫

아무개 2013-11-13 10:10   좋아요 0 | URL
오호..... 현빈이 찢으면???? @..@

다락방 2013-11-13 10:11   좋아요 0 | URL
흐음. 흐음. 흐음. 흐음. 이런 곤란한 질문을 하시면 정말 곤란합니다 아무개님.
그럼....어.....

"너 자꾸 이럴거면 니네 집에 내 속옷 많이 사다놔." 라고 해야겠지요. 킁킁.

Mephistopheles 2013-11-13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은 베트남 쌀국수로...저녁엔.....히레사케에 오뎅탕....

다락방 2013-11-13 09:42   좋아요 0 | URL
하앍- 히레사케 오뎅탕..좋다...하잉. 좋으네. 그치만 일단 매운족발 먼저 해결해야겠어요. 매운족발이 급히 땡기네요. 크-

유부만두 2013-11-13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재밌는 동영상이네요.
전 중고서점 경영의 꿈은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 책을 재밌게 읽었어요. 중간 중간, 제가 좋아한 책에대한 험담이 나올 땐 분노도 하고 애정하는 책에대한 찬사에는 같이 침을 튀기면서(?) 격하게 공감도 하고요. ... 제일 끝 부분의 비추천 리스트와 그 이유 보셨어요? 재밌다니까요! (안나 카레리나가 너무 길어서 비추래요! ㅎㅎ)

다락방 2013-11-13 09:47   좋아요 0 | URL
전 그 비추목록 보고 아 이 사람이랑 나랑은 취향이 정말 다르구나, 안맞겠어, 라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안나 카레니나 비추라니. 그 불륜이야기는 세 장으로 끝낼 수 있다니. 톨스토이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니. 전 마음 상했어요. 흥!!

그래도 샬롯의 거미줄 궁금해서 주문했어요. 샬롯의 거미줄이 그런 내용(비극)인줄 몰랐거든요.

자작나무 2013-11-1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책 안읽어 주시나요? 낭독도 잘 하시던뎅.

다락방 2013-11-13 10:12   좋아요 0 | URL
요즘엔 매일 술 먹고 잠드는 게 일상이라...쿨럭.

레와 2013-11-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보겠어요!!!

다락방 2013-11-13 15:12   좋아요 0 | URL
네네, 읽어봐요 레와님!!

프레이야 2013-11-13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트남쌀국수가 급 먹고싶어지는 페이퍼^^ 이 책도 소문 자자하던데 역시 다락방님 페이퍼가 지름신 하강에는 최고에요.

다락방 2013-11-14 08:54   좋아요 0 | URL
저도 베트남쌀국수 먹고 싶어서, 생각하면서 페이퍼 썼다가, 결국 이 날 쌀국수를 먹지 않았겠습니까. 하핫.
 

우리는 그와 헤어진 후 요기를 하러 새거모어 요트 정박장으로 갔다. 잡화상과 우편엽서 가게가 나란한 작은 항만이었다. 화창한 날씨에, 강렬한 색의 풍경과 거대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닿을 정도로 물가에 인접한 색색의 작은 집들이 잘 손질된 작은 정원과 함께 눈에 띄었다. 우리는 말뚝을 박아 바닷물 위로 테라스를 만들어놓은 식당으로 들어가 스테이크와 맥주를 주문했다. (2권, p.163)

















뭘 준다고 했더라, 여튼 뭘 준다고 해서 이 책의 1권을 사두고 있었다. 근데 뭐였지?... 여튼 1권 읽으며 2권을 살지말지 결정하자, 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와- 엄청 빨려들어가는거다. 재미있고 뒷 이야기가 궁금해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어지는거다. 마구 속도가 붙고.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1권의 절반도 채 읽지 않았을 때 당일 배송으로 2권을 주문했다. 


이 책은 재미있다. 팍팍팍팍 책장이 잘도 넘어간다. '조정래'의 <정글만리>도 그랬고, '스콧 스미스'의 <폐허>도 재미있게 팍팍팍팍 넘어갔다. 그러나 이 책,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포함해서 이들 모두를 내가 사랑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가 물으면 재미있다고 답할것이고,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달라면 이 책들을 추천해주기도 하겠지만, 누가 그 작품들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고민없이 '아니' 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그 작품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사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는게 아니라, '엄청난 속도감'이 있는게 아니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우아한 문장' 이 필요하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서처럼 대단한 사건은 없어도, 그 인물이 되어 그 감정을 느껴볼 수있게 하는게 내게는 더 중요하다. 나는 그런 작품들을 사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기 보다는 '나였다면' 할 수 있는게 더 중요하다. 아, 그런데 내가 뭘 사랑하는지 얘기하려고 한 게 아니니까 이쯤하고.


위의 인용한 문장을 보며 나름대로 그 풍경을 상상하다가, 너무 좋아서 자지러질뻔 했다. 요트정박장과, 우편엽서 가게를 떠올려보니 너무 좋은거다. 현 빈같은 남자랑 손을 잡고 요트정박장 앞에 멈추어 한껏 요트와 바다를 바라보다가 우편엽서 가게로 들어가 엽서 몇 장을 고르는거다. 이거 좋지? 이건 어때? 이거 살까? 그리고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하고...홍홍홍. 완전 좋아. 나는 이곳의 풍경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인지 궁금해져서, 새거모어 항만이 있는 뉴잉글랜드의 이미지를 검색해봤다.





밑에 사진은 출처를 모르겠고, 위에 사진은 출처가 써있는데, 저기에 써있는 대로라면, 뉴잉글랜드는 '대서양에 면한 미국에서 제일 작은 주' 란다. 아..좋다. 내가 떠올린 풍경은 위의 사진에 더 가깝다. 레스토랑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천천히 꼭꼭 씹어 육즙을 느끼고, 그것을 와인으로 삼키고...아 쓰읍. 침나온다. 굉장히 행복한 그림이 떠올라서, 내가 살면서 언젠가는, 기필코, 꼭 한 번은, 단 며칠이라도 뉴잉글랜드에 가보겠다고 결심했다. 새거모어 항만으로 가서 레스토랑에 들어가야지. 불끈!




"내 조카 중에 보스턴에 사는 애가 있는데, 금융 쪽 일을 하지. 매달 엄청난 돈을 벌고, 결혼을 해서 자식도 셋이고, 아름다운 아내와 멋진 차가 있고, 이를테면 이상적인 삶이었어. 그런데 그애가 어느 날  자기 아내에게 떠나겠다고 선언한 거야. 사랑을 찾았다고, 강연회에서 만난 딸 또래의 하버드 대학생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이야. 다들 정신이 나갔느냐고 펄쩍 뛰었지. 청춘에 대한 회한으로 이성을 잃었다고. 하지만 난 그냥 사랑을 찾은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보통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하면 결혼을 하잖아.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사랑이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찾아오고, 그렇게 진짜 사랑을 만나게 되지. 주위에서는 욕을 하고 난리가 나고 말이야. 수소가 공기와 섞이는 순간처럼,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모두 휩쓸려 가지. 30년의 결혼 생활이 한순간 날아가버리는 거야. 거대한 분뇨 정화조가 끓어오르다가 폭발해 주위 사람들한테 오물을 튀기듯이 말이야. 사십대의 위기, 중년에 찾아오는 육신의 유혹이라는 건 결국 사랑의 중요성을 너무 늦게 깨닫는 사람들, 그로 인해 삶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사람들 얘기인 거야." (2권, p.190)



오래전에. 짧은 연애가 끝났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슬펐다. 다시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것 같지 않아서, 내 삶에 사랑이 이게 마지막일 것 같아서. 그 연애 전에도 그랬다. 이제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거야. 그 생각이 차오르면, 그게 슬펐다. 그러나 그 뒤로도 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거나 내가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은 나타났고, 그 뒤로도 연애는 이어졌고 헤어짐은 반복됐다. 이제는 앞으로 내 남은 삶에 얼마나 다른 남자가 나타나고, 얼마나 다양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게 될까를 기대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설렌다. 정착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랑은 한가지 종류가 아니고, 상대가 바뀔때마다 그 사랑의 빛깔도 달랐다.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들이 많다고 생각하면, 나는 어느 남자도 놓치고 싶지 않아지는거다. 그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서 숱하게 사랑 고백을 주고받고, 또 내가 그들에게 미칠듯한 사랑을 느껴 뒤로 넘어가고도 싶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어느 날에는, 그게 당장 내일이든 일흔넷이 되었을 때건간에, '엄청난 폭발' 이라고 느껴지는 사랑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내가 그 때 그 순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건간에, 모든걸 뒤로 내팽개치고 그 사랑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주변 누군가가 뜯어말릴지도 모르고, 손가락질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도, 다 감당하며 그 폭발속으로 걸어들어갈지도 모른다. 이건, 진짜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만약 내가 그 때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로 묶여있다면?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정을 지키고 내 사랑을 포기하겠다'고 감히 단언할 수가 없다. 만약 그게 진짜, 진짜, 진짜 사랑을 찾은거면 어떡해. 그런데 어떻게 이를 악물고 남편 옆에 있기로 할 수 있느냐고. 아이까지 낳은 상황이라면 결정은 더 힘들어지겠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할지, 어떤 결정을 내릴 지, 지금은 정말이지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다. 


쉽게 예로 들자면,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그렇다.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연인이 되었다고 했을 때, 우아- 만날 사람들이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브래드 피트는 결혼한 상태였고, 졸리를 만나면서 이혼해야 했다. 그 이혼은 그의 아내에게 상처를 주었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졸리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했다는 사실 때문에 속상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트와 졸리가 서로 '사랑을 찾은'거라면, 거기다대고, 바람을 핀 나쁜놈이라고 무조건 욕하기가 너무 어려운 게 아닌가 싶어지는거다. 그래도 되나.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남편과 아내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지 않고 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가정을 지키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쉽게 비난해도 될까. 나는 이걸 잘 모르겠는거다. 물론 가정을 저버리는 사람들이 저마다 '사랑을 찾았다'는 이유로 가버리는 건 아니니까, 대부분은 순간적인 욕망이나 욕심 때문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외도는 나쁜짓이 되어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이들은, 정말 어떤이들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랑을 맞닥뜨린 게 아닐까. 아, 이런게 사랑이구나, 이게 사랑이야, 하는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면. 그러면 어떡해. 할 수 없지 우리는 이어질 수 없는 운명이야, 이렇게 늦게 만나면 안되는 거였어, 하고 뒤돌아 가야하나. 아, 젠장. 뭘 어째야하는거야!!




가족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언젠가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젊은 남자랑 바람도 피고 연애도 하고 그러면서 살어. 뭐라고 안그럴게. 엄마도 새로운 남자가 있고 새로운 사랑이 있다는 걸 알아야지. 많은 남자를 만나봐야 할 거 아냐. 그러자 엄마가 내게 말했다.


미친소리 하지말고 너나 잘해.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그러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남자 없었는데 엄마한테 남자 생기라고 그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말해놓고 웃겨서 웃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니. 사랑이 도대체 뭐니. 사랑이 뭘까. 모든일의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쑤셔놓기도 하는, 대체 그 사랑이 뭘까.



"사실 전 별로 소심하지 않은 편인데, 이상하게 제니만 보면 말문이 막혀요. 왜 이러는지 저도 ‥‥‥"

"사랑이지."

"그럴까요?"

"그럼."

"제니는 너무 멋져요. 부드럽고, 똑똑하고, 아름답죠!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전 이따금 제니를 보려고 일부러 클락스 앞을 지나가요. 그냥 보기만 하죠‥‥‥ 제니를 보고 있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요. 사랑인 거죠?"

"그렇다니까." (1권, p.337)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으면 어떡해야할까. 그 사랑을 드러내고 숨통을 트이게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럴 때면 차에서 내려 클락스에 들어가서 인사를 건네고 싶고, 혹시 일 끝나고 같이 극장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어요. 하지만 용기가 안 나요. 이것도 사랑일까요?"

"아니, 그건 바보라서 그래. 그런 식으로 했다간 사랑하는 여자를 놓쳐버리지. 소심하게 굴면 안 돼. 넌 젊고 잘생겼고 능력도 뛰어나잖아." (1권, p.337)



나는 많은 순간 바보였고, 바보가 아닌 용기를 택했을 때 절망을 맛보았던 적이 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쓰라린 실패로 기억되는데, 그러니 나는 어쩌면 앞으로도 몇 번이고 또 바보가 될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뒤늦게 '이거구나!' 하는게 찾아왔을 때도, 바보가 되어 바이, 사요나라~ 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내 자신을 찔러댈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사랑이 오지 않는 것보다는 오는 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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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3-11-0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는거 참 쉽죠.
예전엔 가정을 버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내가 뭐라고.
똑같은 고민을 해봤어요. 다른 사람이 생겼는데 하필 그 사람이 내가 기다려온 바로 '그'사람이였을때, 끝까지 가정을 지켜야 하는건지 마음이 가는대로 해야 하는건지. 어느쪽으로든 선택을 하겠지만 제3자가 그 선택을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건 잘못된거죠.
무튼 아직도 모르겠어요. 지켜야 하는건지, 마음가는대로 해야하는 건지.


현빈같은 남자랑 같이 있다면 마산앞바다 어시장이라도 좋겠수..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3-11-07 12:20   좋아요 0 | URL
마산앞바다 어시장 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졌음. 광어회 먹고 싶네요. 크- 차디찬 소주랑 먹으면 정말 좋겠다.
그러게 현빈같은 남자라면 어디든 안좋겠습니까!! ㅎㅎ

아무개 2013-11-0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젊을 적에 죽을것 같은 싸랑 한번 하고 나면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해서
어차피 어떤 놈이랑 살아도 그게 그거인 삶이란 생각이 들꺼고
손해보고 산다는 생각은 안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그러다가도 심장이 터질것 같은 사람을 늙으막에라도 만난다면
쫒아가야죠 ㅎㅎㅎㅎ

다락방 2013-11-08 08:53   좋아요 0 | URL
저는 곰곰 생각해보니 제가 그 사람을 따라서 여정을 함께할 것 같진 않아요. 아마 저는 정말 사랑하는, 가슴 뜨거워지는 사람이라면 소울메이트로 지내면서 옆에 둘듯. 헤어지기 싫으니까요. 하하하하. 모르죠 뭐. 성적 매력이 폭발해서 소울메이트는 얼어죽을, 하면서 매일 붙어 있을지도. ( ")

아주아주 늙어서까지도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헤헷
말씀하신대로, 결국 다 그놈이 그놈이지만 말이죠.

단발머리 2013-11-0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페이퍼 진짜 좋아요. 진짜 사랑이란 뭘까요? 사랑이란 건..... 참....

사실 저도 생각 바뀐지 얼마 안 됐는데요 (웬, 커밍아웃?) 뒤늦게 사랑을 찾아서 사랑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을 욕할 수만은 없더라구요. 가정을 깬다는 점에서, 아이들에게 무한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일단, 욕은 좀 먹어야겠구요.
하지만, 어떻게요. 찾았는데요. 사랑을요.
인제서야 눈이 떠졌는데 어떡해요? 사랑을 잡아야지요. (엥? 잡아?)

근데.... 어떤 사람과 느끼는 사랑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느낌, 감정, 이런 것들도 사실 그렇게 오래가는 거 아니잖아요. 그 사람하고도 언젠가는, 짧게는 3개월, 길게 3년 안에는 시들해지는 거잖아요. 그 때, 또! 아, 이 사람이이야! 하면 또 그건 아닌거 같구요.

결론은 나두 잘 모르겠다는건데.
그래서, 결혼 앞둔 후배들에겐 얘기하죠.
죽도록 좋은 사람, 없으면 안 되겠는 사람하고 결혼해. 그래두 맨날 싸워.

참고로 전 싸우진 않습니다^^ 이게 뭐죠?

다락방 2013-11-08 08:57   좋아요 0 | URL
나는 내 사랑과 감정을 희생해서 이 가족을 지키는데 너는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냐, 왜 못하냐, 하며 비난의 눈빛과 손길은 무서운 것 같아요. 더 커지고요. 자신은 포기했으니 말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는 못했는데 너는 왜그래' 라는 속상함이 아니라, 내가 저걸 포기한 대신 이걸 꽉 쥐었지, 하는 수긍과 확신일 것 같아요.

뭐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저도 잘 못할 것 같긴해요. 이런 문제 말고 여러가지 문제들에 있어서 말이지요. 어휴.

아마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제가 뭘 어떻게 결정할지도 모르겠을 뿐더러 앞으로도 모를것 같아요. (이게 뭔 말인지, 원..)

자작나무 2013-11-08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로스는 내 안에 결핍된 것에 대한 갈구지요.
상대방을 원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내 안의 무언가를 상대방에게 투영하고, 그것을 충족시키고자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는 것.
심장이 터질 듯한 느낌이 괴로우면서도 그것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는 건 그것이 젊었던 옛날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일 거예요.

다락방 2013-11-08 09:00   좋아요 0 | URL
자작나무님의 이 댓글은 뭐랄까...좀 추상적이에요. 현실적으로 확 손에 잡히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어떤 개념에 대한 뭐 그런거요.

'젊었던 옛날' 이라니. 하윽- 네, 벌써 그런걸 떠올릴 때가 되어버렸나보네요.

자작나무 2013-11-08 10:3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내가 락방 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 안에 결핍된 현실감과 생동감 때문이지요~

네꼬 2013-11-0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너무 쿨싴 ㅋㅋㅋㅋ
사랑이라고 하면 언제나 뜨거운 여자 다락님. 나는 그래서 다락님이 좋아요. (너무 단순한가!)

다락방 2013-11-11 17:08   좋아요 0 | URL
울 어머니 쿨싴? ㅋㅋㅋㅋㅋ
나는 요즘 네꼬님이 리뷰를 올려줘서 너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