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고명섭 기자  
 
밥을 먹듯 책을 파먹고 숨을 쉬듯 문자를 호흡하는 이들. 인터넷상을 어슬렁거리는 책벌레들이 있다. 새 책에 관한 정보를 재빨리 잡아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책의 내용을 평가하며 책의 허점을 일러준다. 열렬히 옹호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냉정히 외면하는 책도 있다. 책에 관한 한 이들은 인터넷상의 안내자이며 파수꾼이고 정보의 허브다. 책에도 여론주도층이 있다면 이들이야말로 익명의 바다에서 등대 노릇을 하는 책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집합처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 포털 다음의 카페 ‘비평고원’이다. 책의 숲이라 할 이곳은 저마다 무림의 고수를 자처하며 갈고 닦은 내공으로 일합을 겨루는 공간이다. 일본의 최근 소설에서부터 프랑스 현대 철학까지 막 출간된 책들이 품평의 대상이 된다. 서슬 퍼런 칼날이 책의 허점을 찌르고 오래 쌓은 지식으로 책의 특장을 증명한다.

지난 2000년 문을 연 이 카페의 회원은 줄잡아 3천명에 이른다. 매일 500여명이 이곳에 들어와 책의 정보를 얻어간다. 이 무림에서 돋보이는 고수는 30~40명 정도다. 대다수가 문학·철학·정신분석학 등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 박사과정이다. 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서 매번 새로운 초식을 선보인다.

이들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사람이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 알려진 필명 ‘로쟈’다. 로쟈의 강점은 문학·역사·철학·사회서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 나온 책은 거의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개해준다는 점이다. 로쟈의 순발력은 전광석화급이다. 책이 나오면 즉각 해당 책의 내용과 배경을 설명해주고 저자의 다른 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며 중요한 서평을 끌어다 덧붙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 책과 관련이 있는 해당 분야의 다른 책들도 성격별로 정리해 소개해준다. 말하자면 로쟈는 최근에 나온 책의 지도를 그려주는 사람이다. 로쟈의 지도는 오차가 적을 뿐더러 군더더기가 없고 신속한 편이어서 책 정보 전달꾼으로서 그의 지위는 확고하다. ‘비평고원’의 초기화면에는 로쟈가 운영하는 코너 ‘책의 바다’가 떠 있다.

비평고원 회원인 최성희(37·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씨는 “로쟈처럼 책에 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올려주는 회원도 있지만, 회원들의 다수는 책 자체를 놓고 평가하고 토론하는 일을 주로 한다”고 이 카페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글 쓰는 이들이 주로 대학 박사과정급 이상이기 때문에 전공 지식이 풍부하고 그러다 보니 논쟁이 일며 격렬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한번 싸움이 붙으면 몇 달씩 진행되기도 하고 논쟁에서 졌다 싶으면 아얘 카페에서 탈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논쟁은 저자의 주장에 대한 평가가 많지만, 외서의 경우 번역의 질을 놓고 벌어지기도 한다. 잘못된 번역을 문제 삼아 품평이 오고가는데, 때때로 번역자가 직접 들어와 항의하다가 일대 격전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다. 최성희씨는 “비평고원은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좋은 번역서를 추천하고 질 나쁜 번역서를 걸러내는 기능을 하는 곳”이라며 “대학에서 강요하는 답답한 논문식 글쓰기의 대안을 찾아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상에서 필명으로 교류하지만 1년에 한두 번씩 오프라인 모임도 연다. 지난 연말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10여명이 서울 종로 맥주집에서 모여 송년회를 열기도 했다. 이 카페를 만든 운영자 조영일(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씨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많다”며 “책에 관한 수준 높은 담론을 원하는 네티즌들이 물어물어 이곳으로 찾아들다보니 지금은 인문학 책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곳으로는 가장 다채로운 곳이 됐다”고 말했다.

논문 글쓰기 벗어난 대안공간

비평고원이 인문학 연구자들의 자생적 모임이라면,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나의 서재’는 서점에서 북마니아들을 위해 만들어준 방이다. 로쟈를 포함해 비평고원의 주요 필자 가운데 일부가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 글을 쓰는 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알라딘의 인문서 담당 김현주씨는 “‘나의 서재’는 서점을 찾는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해줄 수 있는 필자들이 주로 사용한다”며 “2003년 8월에 문을 연 뒤 3만~4만명이 서재에 필자로 가입했고 그 가운데 40여명이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현직 일간신문 기자로 알려진 필명 ‘딸기’, 대학 3학년 때부터 3~4년째 활약하고 있는 ‘평범한 여대생’, 계간지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서평을 쓰는 ‘바람구두’, 단국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인 ‘마태우스’ 등이 알라딘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대표급 필진이다. 김현주씨는 “이분들은 책이 서점에 깔린 직후에 번역이나 내용을 꼼꼼히 따져 품평하기 때문에 일종의 검증장치로서 기능한다”며 “특히 인문서의 경우엔 이들의 평가가 초반 판매량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 말했다.

책을 선택하는 기준 제시

알라딘은 이들이 쓴 글을 읽고 책을 구입할 경우 책값의 1%를 적립해주는 인센티브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장 영향력 있는 필진은 한달이면 1만원 이상의 적립금을 받기도 한다고 김현주씨는 말했다. 적어도 100명의 독자가 필자의 글을 읽고 책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이들의 의견이 책을 선택하는 데 기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데, 말 그대로 책의 오피니언 리더들인 셈이다.

또다른 인터넷서점 예스24도 알라딘과 유사한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리뷰를 전문으로 쓰는 사람들을 위해 독자칼럼란을 두고 있는데, ‘시라노의 주책잡기’는 한동안 인기를 끈 난이었고, 요즘 가장 조회수가 많은 칼럼난은 ‘정군의 책 대 책’이다. 이 칼럼의 필자인 ‘정군’은 1주일에 한두 번씩 두 권의 책을 선정해 비교 분석해준다. 예스24에서 블로그 관리를 담당하는 심현숙씨는 “40명 정도가 개인 블로그에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적으면 1주일에 한두 편, 많으면 하루에 한 편 정도 책 리뷰를 올린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필자들 가운데 특히 인기가 있는 필자에게 따로 코너를 마련해주기도 하는데, 정군의 코너가 바로 이 경우다. 심현숙씨는 “주목도 높은 필자들의 글에는 적어도 열 건 정도의 댓글이 달린다”며 “대다수 댓글이 좋은 정보를 고맙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교보문고도 알라딘·예스24처럼 서평자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터넷 책 오피니언 리더의 시대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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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왜 러시아 혁명인가?

지난달인가 MBC에서 창사특집 다큐멘터러로 '러시아 혁명' 편을 방송한다는 얘기를 후배로부터 들었지만 결국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강의자료로도 요긴할 듯싶어서 녹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흐지부지됐다. 오마이뉴스에 이 다큐를 직접 제작한 한홍석 PD와의 인터뷰 기사가 게재되었길래 반가운 마음에 옮겨놓는다. 특집다큐는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보든가 해야겠다. 다큐에서 공개된 아래 사진은 박헌영과 그의 딸 박비비안나라고.  

오마이뉴스(06. 12. 28) "왜 러시아 혁명이냐고? 분단국이니까"

2006년이 저무는 시간, 지나간 한 해를 돌이켜 보면 올해도 TV의 위력은 대한민국에서 대단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고도 친숙한 매체로 TV는 자리했다. 온갖 종류의 드라마뿐 아니라 월드컵 축구 등을 전달한 TV는 여전히 사랑받은 매체임이 분명하다. 그러면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는 TV에서 어땠을까? 보통 야심한 밤에 편성되는 시간표가 웅변적으로 말해주듯,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소위 시사 교양물들은 우리나라 TV의 비인기 종목이다.

하지만 경제 성장과 함께 우리 문화적 역량의 지표로 다큐멘터리가 자리매김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한 예가 지난 11월 21일부터 12월 17일까지 근 한 달간 MBC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5부작 <세계를 뒤흔든 순간- 러시아 혁명(한홍석 연출)>이다.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1917년 혁명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 그리고 그 혁명이 다다른 곳까지를 객관적이고 다채롭게 담아냈다. 깊이와 재미는 물론이고, 충실한 자료화면, 고증을 통한 역사 재연, 4개국을 넘나들며 직접 따온 다양한 역사학자들의 해설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두루 갖춘 빼어난 수작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러시아 혁명>의 진가는 우리의 시각으로 '러시아 혁명'을 조명했다는 데 있다. 19세기 말 몰락해가던 제정 러시아 시대부터 국가가 국민에게 가하는 끔찍한 테러가 만연하던 스탈린 시대까지, 그 먼 북구의 땅에도 '우리'는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독립의 꿈을 꾸며 1920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대회에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또 소련의 각 지역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우리 동포들이 스탈린 숙청의 희생물로 스러졌다. 박헌영의 딸은 아직도 그곳에 살며 아버지를 추억한다.

그런데 소련이 사라진 지금, 신자유시대를 사는 21세기의 우리에게 '러시아 혁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전대미문의 노동자 혁명이었던 '러시아 혁명'의 이상은 본산지에서조차 실패했는데 말이다. 재미있고 내용도 알찬 이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러시아 혁명'의 교훈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특히 신자유경제 체제와 분단 체제라는 두 짐을 걸머진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년간의 기획, 세 대륙을 돌며 100일에 걸쳐 진행한 촬영, 그리고 지난 두 달 반을 '노가다' 모드로 편집실에 틀어박혀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주인공, 한홍석 PD를 지난 12월 19일 오후 서울 남산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러시아 혁명>이 종영되고 이틀 후다. 다음은 한홍석 PD와 나눈 일문일답.

- 대장정을 끝낸 소회는?
"아직도 끝났다는 실감이 안 난다. 너무 큰 주제를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맡았다는 생각이 든다. 반응도 아직 잘 모르겠다. 편집실에서만 두 달 반을 지내서 시청자들 반응은커녕 동료들의 반응도 아직 모른다."

- 이 다큐멘터리를 자평한다면.
"정치사적 흐름을 어느 정도 정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시청자들에 대한 서비스라 생각한다. 이걸 보고 이 주제에 흥미를 느껴 전문적인 관심까지 두게 된다면 좋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구성상 빠진 부분들이 안타깝다. 정말 많이 촬영했는데…. 러시아 문화·사회 문제 쪽으로도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는데 시간 제약 때문에, 그리고 현실의 제약 때문에 완성본에 결국 포함하지 못한 것들이 안타깝다."

- 이 작품을 기획하며 세웠던 목표나 의도는 무엇인가?
"이전에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에서는 한국 현대사를 다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러시아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이제까지 미국 이야기만 너무 많이 했다. 우리의 분단 체제를 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40~50대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그들은 젊은 시절 러시아 혁명에 대해 많이 듣고 읽었다.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책으로만 읽었던 트로츠키가 이렇게 생겼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이 이런 사건이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40~50대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웃음). 실제로 <러시아 혁명>을 40~50대들이 많이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재미'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역사는 재미있는데, 이제 '재미'가 뭔지도 헷갈리지 않은가. 역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발전시키고자 '장르 실험'을 했다. 러시아 현지 배우들을 출연시켜 역사를 재연했다. 역사를 좀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것이 이제까지 전 세계적으로 아무도 해보지 않은 실험적 형식은 아니다. 그러나 외국에서 현지 배우들을 고용해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은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역사상 처음이다."

- <러시아 혁명>을 만들기 전과 만든 후, 러시아 혁명에 대해 다르게 이해하게 된 지점이 있는지.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 다양한 가치는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아직도 효용성이 있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를 보완할 수 있는 가치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스탈린 체제하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은 몰락했지만 사회주의 이상이나 평등에 대한 이상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러시아 혁명이 실패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지고지선의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 지금 러시아에서 아직도 구소련 체제를 그리워하고 그 때의 좋은 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단순히 그들이 반동적이어서가 아니다."

- 매편 폭넓은 학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러시아·영국·미국 학자들 수십 명이 등장했는데.
"섭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연락을 취하면 그쪽에서 놀라고는 했다. '왜 한국에서 러시아 혁명을?'이라며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면 나는 항상 설명했다. '우리는 아직 분단국이다.' 그러면 그쪽에서는 금방 이해하고 인터뷰에 응했다.

방송국 게시판에 보면 '왜 러시아 혁명을 다루면서 러시아 학자들보다 영미 학자들이 더 많으냐'고 불평하는 의견들이 있었다. 이유는 이렇다. 러시아는 소련 체제를 거치며 자국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관변학풍이 심했다. 그에 비하면 영미 학계에서는 지난 몇십 년간 광범위하게 축적된 객관적, 역사적 학문 전통이 있다. 대가도 그쪽에 분포되어 있고. 그들은 우리와 인터뷰를 아주 즐겼다. 소련이 붕괴한 후 영미권에서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 요즘 침체해 있었던 터라 우리와 인터뷰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던 것 같다."

- 그 학자들을 전부 다 직접 만났나?
"그렇다. 미국 학자들의 경우는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학자들을 만나느라 미국을 횡단했다.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 보스턴으로 나왔다. 미국 학자들은 쉬웠다. 연락만 되면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쉽게 인터뷰에 응했다. 도리어 러시아 학자들 중에 인터뷰를 거부한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미국 학자들은 인터뷰를 즐기면서 진행했다. 그들은 말을 시키면 자기가 즐거워서 마구 말을 하는데 보고 있으면 흥이 날 정도였다."



- 박헌영의 딸이 구소련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서야 알았다. 어떻게 찾아냈나?
"사실 박헌영 딸에 대한 소식은 몇 년 전 국내 일간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그래서 찾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 외에도 스탈린 딸을 만나 인터뷰를 하려고 무척 노력했다. 연락처까지 알아내 다섯 번인가 부탁을 했지만, 아무리 설득을 해도 안 됐다. 우리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 우리와 인터뷰하는 것이 해가 되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듣지 않았다."

- 총5부 중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나다고 평하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4부가 가장 인상적이다. 관심도 가장 많았고. 4부는 러시아 혁명 후 진행된 소련의 산업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후에도 국가와 노동자 간의 갈등은 그치지 않았다. 그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다."

- 차기 작품도 기대된다. 어떤 걸 구상하는지.
"구소련과 한국 전쟁을 묶어서 다뤄보고 싶다. 가제는 '스탈린과 한국전쟁: 1945-1953'. 러시아에서 한국 전쟁 관련 비밀문서들이 요즘 많이 공개되고 있다. 이걸 바탕으로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시청자 요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나는 요구한다!). MBC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그것이 사회 공익에 얼마나 기여 하는가도 보지만 시청률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은 시청자가 원하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는 '드라마 왕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드라마가 강세고 세계사 시리즈 같은 교양물은 점점 위축되고 약화하여가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윤새라-조경국 기자)

06. 12. 29.





 

 

P.S. 인터뷰의 마지막 대목이 흥미를 끈다. '스탈린과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것. 시청자의 요구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요구해줄 수 있다. 러시아쪽 자료들이 다수 공개되고 있는 걸로 알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된다(재작년 러시아 체류시에는 러시아 TV에서 제작한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를 잠시 볼 수 있었다. 김일성 정권의 성립과정에 러시아가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를 생존하고 있는 고위 관계자들 인터뷰와 함께 자세히 보여주었었다).

한편, 러시아 혁명에 관한 자료/도서들은 얼마간 나와 있다. 트로츠키의 <러시아혁명사>(풀무질, 2003-4)를 아직 갖고 있지 않은데, 그게 좀 아쉽군. 거기에다 따져보니까 러시아쪽 시각의 혁명사 소개는 빈곤한 듯하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러시아혁명과 스탈린시대에 대한 관련서들은 러시아나 영미권에서 차고 넘친다. 가장 정평있는 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영어권 저작으론 <공산주의>(을유문화사, 2006)의 저자인 저명한 러시아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 교수의 <러시아 혁명사> 같은 책들이 기본서로 번역/소개되면 좋겠다('간략한 역사'라고는 하지만 430쪽이 넘는 분량이다). 왜냐고? 우린 아직 분단국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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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시간은 언제나 널널, 실컷 놀고…일해요

깔끔해도 너무 깔끔했다. 만화가 이원복(60·덕성여대 예술학부) 교수의 서울 테헤란로 작업실은 벽 한쪽에 캐비넷이 줄지어 있는 것 말고는 온갖 잡다한 것이 일체 없었다. “사실은 오히려 어지르는 편이에요. 이것 저것 늘어놓으면 찾지를 못해서 꼭 필요한 것만 꺼내놓아 깨끗해 보이는 겁니다. 대신 집은 완전 난장판이에요. 집은 제 놀이공간이거든요.”

이 교수는 뜻밖에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놀기’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교수의 1년 작업량은 책 2권 정도. 쪽수로는 500쪽 안팎이므로 하루 작업량은 대략 2쪽 분량이니 실제 작업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인맥이니 그런 것을 아주 싫어해서 사교 모임에 나가지도 않으니까 시간은 언제나 ‘널널’합니다. 실컷 놀고 남는 시간에 즐겁게 일하면 되요. 창조적 휴식을 갖는 거죠. 그게 확대재생산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노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또 있으랴. 놀려면 돈·시간·건강이 필요한데, 대부분 사람들에겐 늘 이 셋 중 한두가지가 없기 마련이다. 이 교수는 그런 점에서 선택받은 사람이다. 저술가로 거둔 성공, 그리고 교수란 직업이 그에게 경제적 여유와 시간을 확보해준다. 휴식이 필요하면 과감하게 여행을 떠난다. 가장 자주 가는 곳은 9년 동안 유학했던 독일. 해마다 두 세번씩 간다. “행복해요. 만화 그리면서 대접 받고, 내 시간 즐길 수 있고, 남는 시간에 일할 수 있으니 행복하지 않으면 이상한 거죠. 남들 염장 지르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사실이니까…. 제 보기에 돈은 생존 개념만 넘어가면 자유의 의미에요. 여행 떠나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것, 그게 돈이고 자유죠.”

분명 이 교수의 말이 듣는 사람을 배아프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그가 44년 동안 만화를 그려왔다는 사실이다. 올해 환갑인 이 교수의 일정은 언제나 집-학교-작업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다른 만화가들과 달리 ‘교양 만화’라는 ‘블루 오션’을 개척했다는 점이다.

44년 개척한 ‘블루오션’ 교양만화

이 교수가 만화를 그린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1962년 우연히 후배 아버지가 다니는 소년신문에 놀러갔다가 후배 아버지가 그가 만화를 잘 그린다는 말을 듣고는 “아르바이트 한번 해보라”고 권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필명을 쓰면서 미국 만화를 트레이싱지로 베껴가며 만화를 그렸다. 일찍 부모가 돌아가셨고, 7남매 중 막내여서 별다는 간섭을 받지 않았던 덕분에 가능했다. 대학에 들어간 197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림풍은 일본것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던 그의 인생에 최대 전환점이 왔다. 바로 독일 유학이었다.

유학을 결심한 것은 만화를 제대로 배우고 싶고, 또한 그림체도 바꾸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유럽에도 만화를 가르치는 대학은 없어서 가장 비슷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골랐다. 유학 생활 6년에 접어들 즈음 그동안 유럽 생활속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유럽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아스테릭스>에서 영향 받은 새 그림체와 구성방식으로 시작한 만화가 <먼나라 이웃나라>다. 유럽 문명에 대해 알아야 할 각종 교양 상식을 알기쉽게 들려주는 새로운 방식의 만화였다. “만화에도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우영, 허영만씨처럼 그림을 잘 그릴 수는 없겠고…, 그래서 제게 맞을 것 같은 저만의 장르로 찾은 게 ‘교양’이었어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미국편으로 끝나기까지 20년 넘게 이어온 이 만화는 지금까지 1000만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되며 여전히 이 교수의 만화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다. 또한 이 만화는 ‘이원복 만화’의 틀을 완성했다. 이후 이 교수의 만화는 이 만화에서 세운 틀을 벗어나지 앟는다. 어려워보이는 지식을 이 교수식으로 객관화, 일반화해 설명하는 것이다.

이 교수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제 선정이다. “세상을 싸돌아 다니다 보면 뭔가 보이는 게 있어요. 우리 사회에 지금 이게 빠져있구나, 이게 부족하구나 느껴지는 것들이 주제가 됩니다.” 그 다음은 자료 차례. 외국 이야기면 현지에 가서 실제 ‘분위기’를 가장 중요하게 눈여겨본다. 나머지 자료는 물론 책과 인터넷으로 구한다. “인터넷은 신이 내린 선물이에요. 예전에는 외국 신문·잡지 구독료로 월 100만원씩 썼는데, 요즘에는 실시간으로 다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게 우리나라에선 인터넷 신문이 왜 공짜냐는 거에요. 외국은 다 유료인데 말이죠.”

이렇게 모은 지식은 백과사전을 기본으로 해서 가공한다. 정확성과 중립성을 위해서다. 그 다음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린다. 연필 밑그림까지는 그가 그리고, 펜 작업은 제자들에게 맡긴다.

세상 모든 것엔 ‘키워드’가 존재

이 교수는 자신을 콘텐츠 생산자라기 보다는 콘텐츠 전달자라고 본다. 교양만화는 ‘콘텐츠 70, 그림 30’이며 당연히 그 핵심은 콘텐츠 전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가 하는 작업을 오만하게 이야기하면 문화 통역인 것 같아요. 문화라는 것을 만화라는 언어로 통역하는 겁니다.”

이 콘텐츠란 것의 기본 원리는 ‘단순명료’란 네 글자다. 지식이나 정보 자체는 단순·명료한 것인데 이걸 어렵게 해석해서 그 위에 덧씌웠기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것이므로, 다시 이런 해석을 벗겨내 단순명료한 본래 알맹이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복잡해보이는 여러가지를 묶어 명쾌하게 일반화하는 것인데, 말은 쉬워도 상당한 지적 자신감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것에는 키워드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는 신앙,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이교수는 말한다.

난 만화가…교수는 직업일뿐

이런 일반화 능력에는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독일에서 유학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외국에서 10년 가까이 살아봐서 동양과 서양의 사고를 모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독일에 자주 찾아가는 것도 유럽식 사고를 수시로 접하기 위해섭니다.”

실제 이 교수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가 합리성이다. “만화는 과학이에요. 결정적인 순간에 웃기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을 통한 결정적 반전이 필요해요. 그걸 짜내는 데에는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합리적 사고를 깰 때 웃음이 나오는 것이니까 합리적 사고를 알아야 역발상이 나오는 거죠. 그 역발상이 과학입니다.”

한국 만화사에서 이 교수는 자신이 의도한 이상의 의미와 위상을 지닌다. 만화가 저질문화로 취급받던 시절 그처럼 학벌좋은 교수가 만화를 그린다는 점 자체가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실제 그가 처음 한 인터뷰의 주제는 어떻게 교수가 만화를 그렸냐는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저를 뽑았던 대학 재단 이사장께서 몇년 뒤 웃으면서 ‘당신 본질이 만화가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교수로 안뽑았을 것’이라고 하신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이 교수는 요즘 덕성여대 학교 모델이다.

세상이 바뀌고 만화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한 이 교수의 대답이다. “제 정체성이요? 당연히 만화가죠. 교수는 제 직업일뿐입니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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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11-2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러운 이야기네요. 따라하고 싶은. ^^
 

1. 들어가며

현재 국회에는 2005년 11월 8일에 발의된 2개의 지식재산법안(정성호 의원안, 김영선 의원안)과 2006년 7월에 발의된 지식재산기본법안(이병석 의원안) 등 유사한 법률제정안 3개가 논의되고 있다. 이 법안들의 기본 이념과 실체 규정들은 모두 일본의 지적재산기본법을 차용해 온 것으로 내용에 차이가 거의 없고, 추진 기구만 다를 뿐이다. 정성호 의원안과 김영선 의원안에 대해 과기정통위에서 지식재산부 또는 지식재산처를 신설하는 것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을 2006년 6월에 냈고, 이병석 의원안은 이 과기정통위의 의견을 수용한 형태이다. 이러한 경과에 비추어, 아래에서는 이병석 의원안을 중심으로 지식재산기본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힌다.

2. 기본이념의 문제점

법안은 ‘지적재산권’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들과 지적재산권에 해당하지도 않는 것들(도메인 이름, 상호)을 모두 끌어안아 ‘지식재산’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포괄한 다음, 이것이 국가경제와 인류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러한 단정에 기초하여 법안은 지식재산의 창조, 보호, 활용 3가지를 핵심 정책으로 삼고, 이를 위해 모든 국가조직을 비롯하여 지방자치단체, 대학교, 공공연구기관은 물론 심지어 사기업까지도 정책 수행을 위해 적극 노력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어떤 사고과정을 거치면 발명이나 저작물, 상호, 영업비밀, 도메인 이름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렇게 묶은 ‘지식’을 ‘재산’으로 만들고 이것을 권리로 보호하면 인류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법안이 제시하고 있는 3가지 정책은 바로 특허청이 추진하는 정책과제다. 특허청이 2006년에 발표한 4대 정책 과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심사·심판 서비스 수행’, ‘지식재산의 창출기반 강화’, ‘지식재산권의 활용 촉진’, ‘지식재산권의 보호 강화’이다. 어떻게 특허청의 정책과제가 국가 전체의 책무로 바뀌고, 대학교와 공공연구기관의 책무가 될 수 있으며, 사기업의 의무로 둔갑할 수 있다는 말인가?

3. 일본 고이즈미 내각의 전략을 따라가는 것이 한국의 국가 전략인가?

일본의 고이즈미 내각은 2002년에 지적재산기본법을 제정하였고 2003년에는 지적재산전략을 담당할 지적재산전략본부를 설치하였다. 여기서 만든 일본의 지적재산전략대강은 이렇게 시작한다. “전후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은 근면한 국민성과 중화학공업, 특히 가공조립형의 산업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제품 제조’가 강점이었고, 그 토대는 구미의 기술을 도입, 개량하고, 강고한 팀웍을 살려 현장에서 생산기술을 향상시켜 나간다는 일본형 생산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저렴한 노동 단가와 생산기술의 향상을 배경으로 하는 아시아 제국 등의 추격, 글로벌 사회의 정보화 진전 등에 의하여 과거의 성공을 지지하는 경제모델로부터 탈피해야 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성장 모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결국 고이즈미 내각이 지적재산권 전략을 추진하는 것은 1990년대 들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일본의 산업경쟁력 저하와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돌파하려는 전략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1970년부터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원천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생산현장에 적용하여 저가의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일구어왔던 일본이 90년대 들어 급격한 생산성 약화를 격자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이나 중국, 대만 등의 기술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일본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사용했던 ‘사다리’를 개도국들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걷어차는 것이다.

지적재산을 확대하고 보호를 강화해야 많은 창작물이 생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언제나 이미 많은 지적재산을 확보하고 있는 나라였다. 미국이 의약품 특허를 강조하는 이유는 미국 제약사들의 기술 수준이 낮아서 특허권 보호를 강하게 해야 의약품 개발의 투자가 늘어나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특허를 확보할 의약품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적재산권을 강조하는 이유가 첨단 기술분야에서 경쟁력이 낮아 이를 높이기 위한 것인가? 절대로 아니다.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자기보다 경쟁력이 낮은 나라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을 때 그 기술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나라는 없었다. 한미 FTA 협상에서 터무니없는 저작권 보호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도 자국의 저작권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을 때에는 외국 저작물을 미국의 출판업자들이 ‘해적질’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해 주었다. 미국 저작권법이 외국 저작물을 차별한 것은 1790년부터 1986년까지 무려 2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저작권에 관한 최초의 국제조약인 1886년 베른협약에 100년이 넘게 가입하지 않았다. 미국이 베른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첫 번째 이유가 외국 저작물에 대한 내국민대우를 하기 싫어서란 점은 미국 저작권법 교과서에도 나오는 얘기다.

지적재산권의 보장이 없으면, 지적 ‘상품’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지적상품을 독점하려는 거대 독점 기업들이 만들어낸 논리이다.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과가 있는지는 분명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개별지식 상호간에 의존성이 높은 첨단기술분야일수록 특허권의 강화가 기술발전에 오히려 부정적이라는 연구결과가 많다. 또한, 가장 공격적인 지적재산권 강화를 주장하는 미국의 의회 보고서에서도 지적재산권 제도로 인한 사회적 편익이 손실보다 많은지는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제도의 정당성은 여전히 논란 중이라고 한다.

4. 변리사회와 특허청의 조직 이기주의로 추진되는 법안

지식재산기본법이 추진되는 동력 중 하나는 변리사의 직역 이기주의다. 즉,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확대를 위한 것이다. 현재 변리사에게는 특허침해 민사소송에 대해서는 대리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특허법원이 관할하는 행정소송에 대해서만 대리권을 인정받고 있다. 변리사회는 소송대리권을 확대하기 위해 그동안 행정소송에 대한 관할만 맡고 있는 특허법원을 민사소송까지 관할해야 한다고 관할집중을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특허법원에서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을 인정해 왔으므로 특허법원이 민사소송까지 관할하게 되면, 소송대리권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논리가 바로 재판의 전문화, 소송절차의 신속화이다.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강조하고 이를 국가의 책무로 규정한 법안이 통과되면, 지적재산권자의 보호를 위한 재판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고 이를 담당할 법원을 전문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된다. 실제로 법안에는 “지적재산권 관련 사건에 대한 소송절차가 보다 신속하게 진행되고 권리구제가 충분하기 이루어지도록 재판의 전문화에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법안 제14조).

지식재산기본법이 추진되는 또 다른 동력은 특허청의 조직 이기주의다. 특허청의 주수입원인 특허출원, 상표출원을 더 많이 하도록 하고 특허와 상표가 대접받는 사회로 가면 자기들의 역할이 커지지 때문이다.

변리사와 특허청은 특허권을 얻으려는 기업들을 고객으로 삼기 때문에, 될수록 많은 기술 지식을 특허출원하여 재산화하고 상품화하는 것이 조직의 이익에 부합된다고 믿고, 이를 극대화하는 사회체제를 구축하려는 동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는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자기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하여 특허청 또는 법원에 대해 해야 할 사무의 대리를 업으로 하는 자이고(변리사법 제2조), 특허청은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무와 이에 대한 심사, 심판을 위해 만든 행정조직이다(정부조직법 제37조). 이에 따르면, 정작 특허청이 해야 할일은 기업들이 기술 지식을 독점화하려고 특허출원을 했을 때, 독점의 가치가 있는 기술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심사하는 것이다. 일종의 규제 역할을 해야하는 곳이 바로 특허청이란 말이다.

지적재산권의 경제적 효용에 대한 결론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을 모방한 지적재산권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 득이 되는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추진되는 이 법안은 지적재산권 강화로 이득을 보는 특정 집단의 이기주의와 다를 바 없다.

5. 지적재산권 제도의 내재적 한계

지적재산권은 헌법 이전의 자연적 권리가 아니고 실정법상의 권리이며 따라서 입법권자에 의한 재산권 형성에도 일정한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한계는 바로 공익과의 균형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7조 제1항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 다음, 제2항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조한 모든 과학적, 문화적, 예술적 창작물에서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다.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5조 제1항도“이 규약의 당사국은 모든 사람의 다음 권리를 인정한다. (a)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b) 과학의 진보 및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 (c) 자기가 저작한 모든 과학적·문학적 또는 예술적 작품으로부터 생기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의 보호로부터 이익을 받을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인권규범은 지적재산권의 보호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나 과학의 진보, 응용으로부터 이익을 향유할 권리와 상호보완 관계에 있음을 밝힌 것이다. 2001년 12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UN 위원회에서는 “지적재산권법의 시행과 해석에 국제인권 규범이 융화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지식에 대한 사적 이익과 공공이익의 보호 사이의 균형 문제에 대해서는 “창작과 혁신을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노력에는 사적 이익이 과도하게 충족되어서는 아니되며, 새로운 지식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을 향유할 공중의 이익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하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처럼 지적재산권 제도가 갖는 내재적 한계와 공익 사이의 균형은 법안에서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권리의 창출과 보호 및 권리의 활용 3가지만 정책으로 삼았기 때문에, 지적재산권 제도가 원래 의도했던 목적은 이 법안으로 인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고, 오히려 ‘지식’의 생산과 사회적 이용은 저해되고, 시장독점을 무기로 하는 ‘재산’의 덤불만 늘어날 것이다. 발명과 같은 기술 지식이나 저작물은 돌연변이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지식을 바탕으로 생긴다. 개별 지식들을 모두 재산권으로 만들어 사유지에 편입시키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 이하로 지식이 소비되는 ‘사유지의 비극’ 문제가 생길 수 있다.

6. 통합 추진 체계와 입법의 필요성 문제

미국이나 일본의 공격적인 지적재산권 전략에 대해 범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추진할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 추진을 위해 입법이 필요하다고 볼 수 없다. 이미 국무총리실에서 범정부차원의 대책 마련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총리실에서 추진하는 작업이 지나치게 권리의 보호에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4년부터 국무총리실에서 ‘지적재산권보호정책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협의회는 국무조정실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법무, 외교, 교육, 문화, 산자, 정통부, 예산처 차관, 관세, 경찰, 특허, 식약청장, 국정홍보처 차장을 정부 위원, 분야별 전문가 10명이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가 여러 부처에 분산 추진되어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할 범정부종합대책 수립의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해 조직된 것이다.

따라서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의 수립이 필요한 경우라면 국무총리실에서 필요에 따라 위와 같은 협의회를 구성하면 충분하므로, 지식을 재산화하는 것을 국가의 책무로 규정하려는 위험한 내용의 법안을 굳이 입법할 필요는 없다.

7. 결론

지적재산권 제도가 지식의 생산과 사회적 이용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제도의 운영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지적재산권을 통한 사유지의 담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지적재산권에 의존하지 않고도 생산될 수 있는 지식,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의 공유지를 많이 확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법안은 국가의 역할은 정반대로 규정하고 있다.

안전하지 않고 약효도 없는 의약품이 시장에 유통되었을 때 생기는 위험만큼이나, 독점의 가치가 없는 기술이 특허권을 통해 시장독점을 할 때 생기는 사회적 해악은 크다. 따라서, 지적재산권 제도에서 정부가 할 역할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지식인지 아닌지를 엄격하게 가려내고, 지적재산권자가 시장에서 부당한 독점을 행사하는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역할이다.

정작 해야 할 정부의 역할은 포기한 채, 산업경쟁력이란 미명으로 지식의 상업화·상품화만을 부추기는 법안은 지식과 문화의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므로, 법제화가 되어서는 안된다.

2006년 11월 1일
이하 단체 연명

공공의약센터, 문화연대,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평화마을
피스넷,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 HIV/AIDS인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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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이 정권은 EBS가 '수능방송'인 줄 아는가" 

EBS 구관서 사장을 둘러싼 파문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월 구 사장이 임명된 뒤, 이를 거부하는 EBS 노동조합과 팀장 전원은 연일 구 사장의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조와 팀장들이 구 사장을 반대하는 까닭은 그가 교육부 관료 출신이라는 점 외에도 의혹이 제기되는 부당한 행태들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구 사장은 아들의 위장전입은 시인하면서도 딸의 교사 임용 특혜와 본인의 박사학위 논문 중복 의혹 등에 대해선 거부하며 맞대응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구 사장은 노조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에 냈다. 그는 이어 지난달 27일 보직을 사퇴하고 간부회의에 불참 중인 팀장들에게 "사내질서를 위반하는 행위 등을 계속하고 있어 규정에 의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구 사장의 이런 강경대응에 EBS 노조도 성명을 내고 "지난달 19일 국정감사에서 구관서 씨는 국회의원들에게 적극적인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며 "칼을 들이대며 대화를 강요하는 군부독재의 퇴물 관료는 EBS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계속되고 있는 노조와 구관서 사장과의 팽팽한 갈등은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EBS 추덕담 노조위원장을 만나 노조가 생각하는 문제와 해법을 들어봤다. 지난 9월 초 구관서 사장에 반대하며 삭발했던 그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많이 자라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노조에 대한 가처분신청도 노태우 정권 이후 방송계에선 처음"
 
프레시안: EBS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추덕담: 구관서 씨가 EBS 사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려 싸움을 시작했다. 여러가지 대응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구관서 씨가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고 물리력을 동원하겠다는데 우리도 법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어차피 구관서 씨가 이 상태로 사장이 돼도 사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구관서 씨가 물러날 때까지.

프레시안: 구 사장의 자진사퇴만이 해법일까?
추덕담: 공인들은 대부분 흠결이 나오면 '부끄럽다. 물러나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그런데 구관서 씨는 '무슨 잘못이냐. 문제없다'며 버틴다. 교육부 관료가 아들을 위장전입해서 부정입학시켰다? 그것은 건설교통부 직원이 개발예정지에다 말뚝 박아놓은 것과 같다. 주동황 전 방송위원도 위장전입 때문에 물러났다. 논문 문제에서도 민교협이 '박사 논문이 거의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아무리 교육부 관료들에게 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이 시대 관행이었다지만 이제 바뀌었다. 황우석 사태 이후로 연구윤리도 강화된 시점이다.

프레시안: 구관서 사장이 임명된 뒤 어떤 점이 달라졌나?
추덕담: 인사 단행이다. 오자마자 며칠 새에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부서장들을 다 바꾸고 새 인물들을 임명했는데 임명 근거를 잘 모르겠다. 들리는 얘기로는 고등학교 후배, 옛날에 교육부와 연관됐던 이들 중심으로 뽑았다고 이야기한다. 회사가 장난도 아니고 본인이 방송에 문외한인데 EBS의 정체성을 생각치 않고 자기에게 맞는 사람만 뽑아서 회사를 꾸려나가겠다니. 노조에 대해 업무정지방해 가처분신청을 낸 것도 방송계에서는 노태우 정권 이후 처음이다. 교육부 관료 시절 관련기관대책회의를 부활시켰던 것처럼 전형적인 관료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열린우리당은 비겁했고, 한나라당은 열의가 부족했고…"

프레시안: 지난달 19일 방송위원회와 EBS 국정감사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안 된 듯 하다. EBS 사태를 KBS와 연관지어 정파적으로 해석 혹은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어 사태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추덕담: 국감 때 구관서 씨에 대해서는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도덕성이 결여돼 있는 사람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으로 접근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비겁했고, 한나라당은 열의가 부족했고, 민주노동당은 고군분투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EBS 사장이 밀리면 정연주 전 사장도 못 지켜낸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정연주 끌어내리기 위해서 EBS 사장도 사퇴시키자'라고 말한다. 사실 정연주 전 사장과 구관서 씨의 개인적 부도덕성이 무슨 관계가 있겠나.

프레시안: 방송위원회는 왜 그랬을까? 재검증을 거쳤지만 결국 처음 결정대로 구 사장을 임명했다. 현재 사태에 대해서도 아무 반응이 없다.
추덕담: 방송위는 지금 구관서 씨에게 다 맡겨놓는 분위기다. 국감 질의 때도 방송위원들은 '사장 임명 뒤에는 우리도 모른다'고 답변하더라. 최민희 부위원장은 본인의 직무대행 시절에 구관서 씨를 사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책임이 무엇인가. 언론운동을 했던 이가 책임지는 자세는 자신의 철학을 건 행동 아닌가. 최 부위원장은 그 누구보다도 EBS 정체성에 대해 같이 고민했던 분이다. 지난 6월 EBS의 사외보에 'EBS의 정체성을 위해서 노력해달라. 공익성 강화가 EBS 경쟁력의 강화다'라는 요지의 기고까지 했다. 그런데 방송위원 되자마자 "그동안 방송전문가가 사장으로 가서 해놓은 것이 뭐가 있나?"라고 말하다니.

"공적재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없고, 제작비용은 부족하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노조와 팀장들이 구 사장을 반대하며 지키려 하는 EBS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추덕담: 2000년 공사로 독립한 이후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편성제작 특별팀(TFT)도 만들었다. 문화채널, 직업채널, 지식채널, 또는 그런 규정을 하지 않는 방법까지 두고 고민했다. 그런데 정권에서 지키고 싶어하고 관심있는 유일한 것은 수능방송이다. 수능은 EBS의 한 영역이다. EBS는 평생교육, 민주시민교육, 문화교육 등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방송이다. 그런데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나 깊은 고민 없이 오직 참여정부의 가시적 성과라고 자평하는 수능사업을 어떻게 좀 더 잘 할 것인지 생각해 교육부 출신 관료가 낫지 않겠느냐는 접근으로 사장을 임명했다. 이것은 EBS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다. 오랜 기간 '공사 독립'을 주장한 것은 단순히 형식적인 기관 형태가 중요해서가 아니었다. EBS가 학교 교육의 보완재가 아니라 문화·교양을 아우르는 채널로 가야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 산하기관이 아닌 공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프레시안: 일각에서는 EBS 구성원들의 자기정당성 문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수능교재 사업에 구성원들 자체가 매몰돼 있다는 비판도 심심찮게 들린다.
추덕담: 수능방송의 역사는 매우 길다. 전두환 정권부터 시작했고 참여정부 때 다시 한 번 국책사업으로 발전시켰다. 자세히 말하면 한나라당에서 안을 내고 현 정부의 청와대에서 발전시켰다. 우리가 '책 파는 데 함몰된 것 아니냐'고들 하는데 실제로 EBS 재원구조를 볼 필요가 있다. 예산 1800억 중 26%가 공적재원이다. 이것이 전부 제작비로 쓰이는데 실제 제작비는 더 든다. 공영방송의 재원은 공적재원이 되야 되는데 돈을 벌어서 제작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수능교재사업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적재원을 어떻게 해줄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방송위는 "우리는 늘려줄 방안이 없어서 국고보조금 잘 타올 수 있는 사람을 사장으로 임명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은 세금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방송은 KTV와 같은 관제방송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정책을 홍보할 수밖에 없다.

"지금 EBS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통을 겪는 중"

프레시안: 추 위원장은 공영방송의 공공성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추덕담: 사회적으로 관심을 못 받는 사람들, 그러나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시청 기회와 교육적 기회를 주는 것이 공익성이라 본다. 교육방송의 공영성은 좀 특별하다. 유아·어린이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 시골 아이들도 서울 강남 아이들도 <방귀대장 뿡뿡이>를 보고 같이 놀 수 있게 해야 한다. TV를 통한 교육적 효과는 유아, 어린이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교육기회의 평등에 대해 특별히 유아·어린이 분야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시청대상층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소외계층이다. 유아 프로그램은 품이 많이 드는 반면 돈은 안된다. 광고도 안붙고 시청률도 낮고. 돈 많이 들지만 꼭 필요하기 때문에 공적재원이 필요한데, 재원이 부족하니까 수능 사업을 통해서 조달한다. 바람직한 재원구조는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공영방송 모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재원을 그런 식으로라도 충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본말이 전도되서 수능이 전부다, 그러니까 교육부 관료인 구관서 씨를 임명했다?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공영방송 프로그램을 잘하기 위해서 수능 사업이 필요한 것인데 수능사업이 전부라고 규정한다면 지난 16년간 벌여 왔던 노력을 완전히 무시당하는 것과 다름없다.

프레시안: 오랫동안 투쟁하고 있다. 지치기도 할 텐데.
추덕담: 힘들다. 빨리 끝내고 싶다. 그런데 본인이 저렇게 막무가내로 버티는 이유가 개인의 독선이나 오기뿐만은 아닌 듯해 안타깝다. 내부적으로는 본질적인 정체성 문제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이해관계에 비롯된 것보다는 덜 힘들다. 파업도 고려하고 있다. 계속 말했듯이 이 싸움은 구관서 씨라는 일종의 상징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다. 정권이 EBS의 역할이나 철학을 1980년대처럼 수능방송, 학교방송으로 되돌리려 한다. EBS가 공영방송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 고민이 계속되고 있다. 구관서 씨에 대한 반대는 그 시작이다. 이 싸움이 EBS를 망가트린다기보다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성장통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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