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시절 가난은 人生의 힘 [2005. 1. 1]

등산을 해보면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에서 다칠 위험이 훨씬 더 많다. 빠른 것하고 쉬운 것하고는 다르다.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작년에는 오랜만에 소설 한 편 쓴다고 김매듯이 힘겹게 보냈다. 50년대 이야기이기 때문에 한 해를 꼬박 그때를 살다 오고 나니 내 생애가 바로 우리의 근세사였구나 싶었다.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수치스럽지도 않다. 금년이, 오늘이 너무도 빨리 역사가 된다는 걸 알아먹고 나니, 금년을 열심히 제대로, 작년에 한 실수를 되풀이 안 하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생각이 든다.

50년대 그 시절엔 담 너머로 음식 냄새가 솔솔 넘어오고, 사람의 기척이 들리고, 뉘 집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서로 사정이 빤했다. 뉘 집에서 김치나 부추 부침처럼 이웃에 냄새를 풍길 별식을 할 때면 으레 넉넉히 부쳐서 나누어 먹었다. 그러나 월급날 고기 근이라도 사게 되면 아이들이 아무리 숯불 피워 구워먹고 싶어해도 어른들은 냄새나지 않게 냄비에 볶아먹자고 했다. 나눌 수 없는 건 냄새라도 안 피우려는 이웃 간의 배려가 곧 정이 아니었을까. 우린 이런 정으로 가난을 건넜다.

젊어서 가난을 겪었다는 게 만만치 않은 힘이랄까, 저력이 되어 남아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IMF 때였던가, 내 친구 할망구한테서 들은 얘긴데, 돈 잘 버는 자식들 덕에 풍족하게 살던 집안이 별안간 기울면서 식구들이 어쩔 줄 모르는 걸 보면서 자기는 하나도 겁이 안 날 뿐 아니라, 살맛까지 나고 씩씩해지더라는 것이었다. 노욕도 가지가지라고 웃어넘겼지만 지지리도 못 사는 시절을 겪었던 이들에겐 요즈막의 물질적 풍요가 전적으로 대견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어쩌면 이렇게 잘 살게 되었을까, 휘황한 겉보기가 꿈만 같으면서도 아직 돈 벌 나이가 안 된 미성년의 씀씀이나 지천으로 내버리는 음식이나 입성을 보고 있으면 문득 하늘 무서운 생각까지 들 적이 있다. 풍요의 그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통으로 겨우겨우 사는 사람도 잘 상상이 안 되는 극빈지대에 버림받은 청소년,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이 도움을 호소하는 소리를 매스컴을 통해 듣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그들이 도움 받지 못하고 그 지경까지 가게 된 사연을 살펴보면 결코 제도가 부족해서도 인정이 매말라서도 아니다. 그런 제도나 기관이 없는 게 아니라 다만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도움을 청할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고, 도움을 청해도 안 들리게 인가나 인기척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도 있다. 복지제도도 제도이기 때문에 딱딱하고 일정한 자격을 요하고 수속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그렇듯이 규격에 맞게 가난한 게 아니다. 틀에 끼우거나 자로 잴 수 없이 유동적이고, 자존심 때문에 아무도 눈치 못 채게 방어적인 가난도 있다. 그들에게 제도에 앞서 다가가야 할 것은 인기척, 정이 아니었을까.

세금을 잘 내면서 국가에 분배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좋고, 자선 단체에 내는 기부금 영수증을 면죄부처럼 챙겨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만, 내 이웃이나 친척 중 눈치껏 보살피고 안부를 물어야 할 이들을 마음으로 챙겨가지고 있으면서 자주 오가고 정을 주고받아야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너무 올려다보고만 살았지 내려다보고 살 줄 몰랐다.

새해의 작은 희망은 올려다 볼 때보다 내려다볼 때 더 잘 보일 수도 있다.


(박완서 소설가)=조선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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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동네--책따세가 권하는 책목록 [04/12/31]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책/따/세· www.readread.co.kr·대표 허병두)가 2004년 겨울 방학 때 청소년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는 책 목록을 내놓았다. △중1부터:<도토리의 집>(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한울림), <뚱보 내 인생>(미카엘 올리비에 지음, 바람의아이들), <불균형>(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우리교육), <유진과 유진>(이금이 지음, 푸른책들), <천둥아, 내 외침을 들어라!>(밀드레드 테일러 지음, 내인생의책), <프란시스코의 나비>(프란스시코 지메네즈 지음, 다른) △중2부터:<국경없는 마을>(박채란·한성원 지음, 서해문집), <그래, 엄마 나 미쳤어>(서철인 엮음, 맥스미디어), <낭군 같은 남자들은 조금도 부럽지 않습니다>(장재화 지음, 김형연 그림, 나라말), <알케미 동굴의 비밀 지도와 영원의 불꽃>(전화영 지음, 살림),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이해되는 우리 역사 이야기 1~2>(장콩 지음, 살림),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이영미 지음, 부키), <푸른 사다리>(이옥수 지음, 사계절) △중3부터:<과학 교과서, 영화에 딴지 걸다>(이재진 지음, 푸른숲), <그냥 떠나는 거야>(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풀빛), <박사가 사랑한 수식>(오가와 요코 지음, 이레),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도종환 엮음, 나무생각), <서유기>(오승은 지음, 현암사), <우리들의 교실에는 절망이 없다>(요시이에 히로유키 지음, 양철북), <의사가 말하는 의사>(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엮음, 부키), <한국생활사박물관9­조선생활관1>(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사계절) △고1부터:<살아있는 우리 신화>(신동흔 지음, 한겨레신문사),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1~2>(정민 외 지음, 휴머니스트), <이름 없는 너에게>(벌리 도허티 지음, 창비), △고2부터:<거기 당신?>(윤성희 지음, 문학동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빌 브라이슨 지음, 까치글방), <난 몇 퍼센트 한국인일까>(강정인 외 지음, 책세상),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역사>(정두희 지음, 청어람미디어), <마틴 루터 킹>(마셜 프레디 지음, 푸른숲), <브레인 스토리>(수전 그린필드 지음, 지호), <숲의 생활사>(차윤정 지음, 웅진닷컴), <옛 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김풍기 지음, 해토), <좁쌀 한 알>(최성현 지음, 도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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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허구 뒤섞고, 인문·소설 아우르고…  [04/12/31]
 
[사실·허구 뒤섞고, 인문·소설 아우르고… Faction·지식소설, 불황 속 ‘대박’]

다 빈치 코드, 검은 꽃, 연금술사, 미쳐야 미친다,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등 강세

올 한 해 우리 도서 시장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려야 했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 속에 책을 구입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손길이 그 어느 해보다도 줄어든 것이다. 도서 시장이 불황 국면에 빠진다는 것은 독자들이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충실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한 번 서점에 갈 때마다 책을 두세 권 사던 사람이 한 권 사는 것으로 줄이게 된다. 그 결과, 팔리는 책과 팔리지 않는 책의 간격은 더욱 커진다. 그래서일까? 올해 우리 출판계는 매출 규모의 양극화가 심해졌다. 최상위권의 몇몇 출판사와 그 아래 출판사들의 매출 규모의 간격이 커져버린 것. 이런 현상은 내년에도 계속되리라는 것이 많은 출판인들의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단행본은 두 권으로 나온 댄 브라운의 소설 ‘다 빈치 코드’(베텔스만)였다. 12월 말 집계로 100만부가 넘게 팔린 이 책은 올해의 유일한 단행본 밀리언셀러가 된다. 밀리언셀러급 도서가 나오면 일종의 파생 도서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 빈치 코드’도 예외는 아니어서 ‘다 빈치 코드의 진실’(시몬 콕스, 예문), ‘다 빈치 코드 깨기’(어윈 루처, 규장),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다 빈치 코드의 비밀’(마가렛 스타버드, 루비박스), 심지어 보드 게임 ‘다 빈치 코드’(게임올로지)도 나왔다.

2003년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 소설은 4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1000만부 넘게 팔렸다. 이야기는 루브르박물관 관장 자크 소니에르의 살해 사건에서 시작된다. 복부에 총을 맞은 소니에르는 죽기 전 자신의 주위에 원을 그리고 벌거벗은 채 팔과 다리를 활짝 펴, 시신이 다 빈치의 스케치 작품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 모습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더구나 시신 옆에는 뜻을 알 수 없는 글이 적혀 있다.

소니에르의 손녀이자 프랑스 사법경찰 암호해독요원 소피느뵈는 이를 할아버지가 자신에게만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남긴 암호라고 판단한다. 살해범으로 몰린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 로버트 랭던과 소피느뵈는 암호를 풀며 진실에 접근해간다. 이들은 소니에르가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등이 수장을 맡았던 시온 수도회의 수장이었고, 시온 수도회는 900여년 동안 막달라 마리아의 시신을 일컫는 ‘성배’와 예수와 마리아의 관계가 나와 있는 비밀문서를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작품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혼인하여 그 사이에서 아이까지 태어났다는 내용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바로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라는 것. 이에 따른다면, 오늘날 우리가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예수 이미지는 기독교회가 1000년에 걸쳐 조작한 허구가 된다. 당연히 미국 기독교계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 사실과 허구의 교차와 중첩

위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다 빈치 코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든다. 역사적인 사실인가 싶으면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고, 상상력의 산물인가 싶으면 역사적인 사실처럼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 아니며, 진실은 그 너머 어딘가에 감춰져 있고, 그 감춰진 진실을 역사적인 실마리를 통해 밝혀나간다’는 게 기본 설정이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은, 도서평론가 이권우의 표현을 빌려서, 지식 소설이라는 데 있다. 독자들은 추리 과정을 따라가면서 서양의 종교, 역사, 미술, 철학사상 등에 걸친 방대하고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올해 번역, 출간된 ‘단테 클럽’(황금가지), ‘자본론 범죄’(생각의 나무), ‘임프리마투르’(문학동네), ‘진주 귀고리 소녀’(강) 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사실과 허구의 교차와 중첩이라는 특징은 본래 역사 소설의 특징이기도 한 바, 올해 우리 문단 안팎에서 크게 주목받은 대표적인 소설, 김영하의 ‘검은 꽃’(문학동네)도 좋은 예가 된다. 대한제국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에 돌입했던 즈음인 1905년 4월, 영국 기선 일포드 호가 조선인 1033명을 싣고 제물포항을 출발해 멕시코로 향한다. 그들은 대륙식민회사의 농간으로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채무노예로 팔려간 것이다. 의무 기간 4년에 걸쳐 그들은 여러 농장에 분산 수용되어 착취당한다.

계약기간 만료 후에도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멕시코 전역을 떠돈다. 멕시코에 불어닥친 혁명과 내전에 휩쓸렸고, 과테말라 혁명군은 그들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참전을 요청한다. 42명의 조선인들은 과테말라 북부 밀림지대에 도착, 정부군과 교전하면서 ‘신대한’을 국호로 새로운 국가를 세우지만, 정부군의 소탕 작전에 대부분 전사한다.

작가 김영하는 멕시코와 과테말라 현지에 석 달 동안 체류하면서 이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농장을 찾아 다녔고, 과테말라의 밀림에도 들어갔으며, 스페인어를 듣고, 남미 음식을 먹으며, 과테말라에서 차별 받는 마야인들과 만나기도 했다. 그밖에도 대한 제국 시대에 관한 자료를 광범위하게 모으기도 했다. 광범위한 취재와 조사가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인 셈이다.

‘다 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도, 다 빈치가 자신의 작품에 여러 비밀을 숨겨놨다는 미술사 강의를 들었던 대학 시절의 관심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럽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기도 했으며, 집필을 위해 수천 종에 달하는 자료 조사와 검토에만 1년을 보냈다. 치밀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와 천착에 근거하지 않는 ‘골방의 상상력’만으로는 더 이상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한편 1993년에 다른 제목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 새로운 출판사에서 다시 낸 2001년에도 반응이 신통치 않다가 작년 말부터 불이 붙기 시작해 지금까지 40만부 가까이 팔린 소설이 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문학동네)인데, 이 작품은 일반적인 의미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성인들을 위한 우화에 가깝다.

* 우화 형식 담은 처세서도 강세

책 좋아하는 양치기 산티아고는 계속 같은 꿈을 꾼다. 양과 함께 놀던 아이가 자신의 손을 잡아끌어 이집트 피라미드로 데려가는 꿈이다. 어느 날 책을 읽고 있는 그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가지고 있는 양의 10분의 1을 내놓으면 피라미드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는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 산티아고는 노인에게 값을 치르고 금으로 된 흉패 한가운데 박혀 있던 흰색과 검은색 보석 ‘우림과 툼밈’을 받아든다. 그리고 꿈과 희망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 결국 삶의 참 의미를 발견한다.

문학적 완성도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대신에 일종의 자기계발서 성격이 강하다. 이른바 뉴에이지풍인가 하면, 성장 소설 혹은 교양 소설로도 보이고, 소설이 아니라 그냥 우화로도 보인다. 바꿔 말하면 쓰임새가 넓고 다양한 소설, 일종의 범용성(汎用性)에서 강점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이와 달리 소설이 아닌 처세실용서로 분류되지만 소설 혹은 우화의 형식을 갖춘 베스트셀러로 스펜서 존슨의 ‘선물’(랜덤하우스중앙)이 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이미 우화 형식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펜서 존슨은 ‘선물’에서도, 한 소년이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년이 마침내 깨달은 것은 이렇다.

행복과 성공을 원한다면 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고,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으라는 것.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원한다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고 그것에서 소중한 교훈을 익혀 지금부터 다르게 행동하라는 것.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멋진 미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지금 당장 계획을 실천으로 옮기라는 것. 수많은 처세실용서의 핵심 내용을 압축적으로 정리해 놓은 셈이다.

* 인문서+실용서 ‘새 장르’도 눈길

이제 인문 분야로 눈길을 돌려보자. 올 한 해 인문 분야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책은 정민 교수(한양대)의 ‘미쳐야 미친다’(푸른역사)이다.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들을 중심 테마로 삼아, 그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한 가지 주제에 미쳐서 끝장을 보고야 마는 일종의 매니아 문화에서 찾고 있는 책이다. 남들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 혹은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성실과 노력으로 일관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표구에 미쳐 하루 종일 옛 그림 수선에 매달린 방효량, 좋은 돌만 보면 벼루를 깎은 정철조, 수석에 미쳐 돌을 주우러 돌아다닌 이유신, 담배를 너무 좋아해 담배에 관한 기록을 주제별로 모은 문헌 ‘연경(煙經)’을 펴낸 이옥, 비둘기 사육에 열중해 ‘발합경’을 남긴 유득공, 앵무새 이야기를 집대성한 이서구도 있다. 조선의 선비라고 하면 유교 경서에만 몰두하는 도덕군자부터 떠올리던 통념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이 큰 인기를 모은 까닭으로,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이 책은 단순히 옛날 사람들 가운데 이런 특이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걸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이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일종의 ‘인문 실용서’로 볼 수도 있다. 출판에서 인문 분야와 실용 분야의 결합은 최근 몇 년 사이 두드러진 추세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특히 우리 옛 인물과 고전에 관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밝혀준다는 미덕까지 더해져 있다.

이런 특징은 조선의 과거 시험에서 마지막 관문으로 임금이 묻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책문(策問) 가운데 중요한 것을 가려 뽑아 번역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김태완 엮음, 소나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까닭은 내용의 동시성(同時性), 즉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 대입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단순히 책문 내용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엮은이가 오늘날의 현실과 관련지어 책문을 해설하는 부분이 이 책의 백미다.

예컨대 명종 이후 훈구 세력의 붕괴와 함께 국정을 주도하게 된 사림 세력은 잔존하는 훈구 세력을 포용하지 못했다. 관료로서의 훈련을 쌓지 못한 사림 세력은 정국 운영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고, 결국 조선의 관료 사회는 동서 붕당으로 갈라져 누적된 모순 개혁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옛 것, 옛 문헌을 통해 오늘날의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편 여러 서점에서 인문 분야로 분류되어 큰 인기를 모은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강민경 외 지음, 휴머니스트)는 보다 더 직접적으로 실용성을 포괄한다. 한자의 배경이 되는 문화와 역사에 관한 인문 교양서인가 싶으면, 그런 문화와 역사를 배경 삼아 한자를 배울 수 있는 실용서 성격도 강하다. 예컨대 고대 중국의 역사가들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어휘를 선택했다. 엇비슷한 세력이 싸울 때는 공(攻)자를 쓰고, 강한 세력이 약한 세력을 칠 때는 벌(伐)자를 썼다. 상대의 잘못을 응징할 때는 토(討)자를 쓴다. 이런 원리를 알게 되면 우리가 자주 쓰는 ‘공격’이나 ‘토벌’ 같은 말의 의미를 더욱 가려서 정확하게 쓸 수 있다.

이상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도서 시장에서도 더 이상 순수한 것만으로는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문 지식과 추리, 인문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과 실용성 등을 두루 결합한 책들이 각광받는 추세인 것이다. 또한 문학이든 인문이든 철저한 자료 조사와 취재에 바탕을 둔 책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허구와 사실, 상상력과 구체적인 자료, 어떤 의미에서는 이질적인 것들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능력이 저자에게나 출판기획자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가상현실이 범람하는 시대의 징표인지도 모르겠다.


(표정훈 출판평론가)=주간조선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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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재테크서적 뭐가 잘 팔렸나  [04/12/30]
 
올해는 어느때보다 ‘출판 불황’이란 말이 각인된 한해였다. 막판에 다빈치 코드가 그나마 역할을 해주었을 뿐 자칫 ‘올해 책 좀 나왔나’하는 물음이 나 왔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경제 쪽과 재테크 서적도 마찬가지다. 눈에 띄는 ‘ 대작’이 보이지 않았다. 올해 경제경영 도서 중 재테크 서적을 중심으로 화제 작을 알아봤다. 공식적으로는 베스트셀러 집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교보문고, 반디앤루니스(서울문고), 영풍문고와 인터넷서점 알라딘, 예스24 등 재테크 서 적 베스트셀러 자료를 기준으로 부동산, 금융, 주식, 창업, 보험 등 5개 분야 와 재테크 종합 부문을 비교했다.

■2004년 재테크 관련 출판시장■

봄부터 시작된 소위 ‘땅책’은 4월에는 매주 3~4권씩 나오기까지 했다. ‘땅 책’ 붐은 여름까지 쭉 이어지는가 싶더니 가을로 들어서면서 ‘신행정수도 위 헌 판결’과 함께 부동산 경기의 급속한 위축은 결국 부동산 책 붐을 1년천하 로 만들어 버렸다. 비록 반짝 천하로 끝나긴 했어도 올해 재테크 관련 책중 주 인공은 ‘부동산’이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동산 - ‘한국형 땅 부자들’등 5위권 안에 3권 포진

‘한국형 땅 부자들(한국경제신문, 조성근)’은 교보문고 경제경영 도서 15위 에 오르기도 했다. 14위까지는 자기 계발에 관한 책들이 대부분이므로 재테크 부문에선 1위를 차지한 셈이다. ‘집 없어도 땅은 사라(국일증권경제연구소, 김혜경)’는 초보자를 위한 투자원칙설명과 거래법, 유의사항 등을 비롯해 땅 의 가치를 분별하는 안목을 키워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기를 모았다. 반디앤 루니스에서 부동산 부문 1위, 각종 인터넷서점에서도 상위에 랭크돼 있다.

‘400만원으로 2억 만든 젊은 부자의 부동산 경매 투자 일기(21세기북스, 조상 훈)’는 철저하게 자신의 부동산 경매 경험담과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초점을 맞춰 인기를 끌었다.

▶금융 - ‘~은행을 떠나라’은행탈피 = 재테크 제시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부자가 되려면 은행을 떠나라(한국경제신문, 심영 철)’ ‘금융투자로 승부하라(마젤란, 이건홍)’ ‘세금 절약 가이드(국세청) ’ 등이 약간 돋보였을 뿐이다.

‘~은행을 떠나라’란 책은 저금리 시대를 살면서 ‘은행이 안전하다’는 철칙 을 무시하고 안전성보다 수익성에 더 초점을 맞춰 현 시점을 냉정하게 분석하 고 현명하게 돈 굴리는 방법을 정리했다.

▶주식 - ‘해외 번역서’‘주식 ~100가지 방법’등

지난해 ‘고변호사의 주식강의(개미들출판사, 고승덕)’가 교보문고 경제경영 부문 6위였던 것에 비하면 2004년 종합 부문에서는 주식서적을 찾기가 힘들다.

외국계 서적이 그나마 선전했다. 알라딘 1위는 보도 섀퍼의 ‘나는 이렇게 부 자가 되었다(21세기북스)’다. 주식투자에 관한 얘기다. 이 밖에 ‘워렌 버핏 투자법(청림)’ ‘짐 로저스의 어드벤처 캐피털리스트(굿모닝북스)’ 등이 각 각 3위, 5위를 기록했다. 이밖에 본지 증권 전문기자가 쓴 ‘한국에서 주식으 로 성공하는 100가지 방법(이지북, 정광재)’은 하반기에 출간됐음에도 불구하 고 예스24 주식부문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창업,보험 - ‘변액보험 셀링포인트 7’돋보여

창업이나 보험 쪽은 전반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반디앤루니스에서 2위를 한 ‘하나마루 우동집 성공기(씨앗을뿌리는사람, 마에 다 히데토)’와 ‘돈버는 식당 비법은 있다(청림, 백종원)’가 그나마 선전한 책에 속한다. 주로 성공스토리를 다뤘다.

보험 쪽은 특별한 비법보다는 기본 베이스를 설명하는 책 위주다. 신상품에 관 한 책도 꾸준하다.

그나마 올해는 변액보험이 인기였다. 역시 ‘변액 보험 셀링 포인트7(보험일보 , 민병철)’이 교보문고 재테크 9위를 차지해 그나마 약세 속 강세를 보였다.

▶종합재테크 - ‘인생재테크 펀드 투자로~’자산관리 비법

재테크 종합 부문에서 눈길을 끄는 책은 ‘150만원 월급으로 따라하는 10억 재 테크(영진닷컴, 박윤옥)’다. 교보문고 상반기 내내 1위를 지키다가 부동산 서 적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더난출판, 혼다 켄)’는 상반기에 교보문고 16위, 종 합 11위에 올랐다. 동일 저자의 두 번째 서적 ‘행복한 돈의 IQ·EQ’도 출간 한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현재 반디앤루니스 3위, 알라딘 5위, 예스24 6 위를 기록하는 등 온라인에서 더욱 인기다. 저자가 직접 한국까지 날아와 세미 나를 연 효과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여름 이후 꾸준히 팔리고 있는 ‘30대 이후의 인생재테크 펀드투자로 시작하라 (팜파스, 강창희)’는 오히려 내년 이후 주목할 만한 책. 저성장 저금리 시대 에 단견이 아닌 ‘냉철하게 긴 호흡으로 재테크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 했다는 점에서 인기다.

웬만한 은행 PB직원들치고 읽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특히 ‘본 업에 충실한 것도 좋은 재테크’라든가 ‘노후 연금에 대한 새로운 이해’ 등 을 강조한 점은 큰 호응을 얻었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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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등 인터넷 서점들 베스트셀러 파격 할인  [04/12/30]
 
올해 베스트셀러 책을 사려면 지금이 ‘딱’이다. 내년 1월까지 베스트셀러 할인행사를 벌이는 인터넷 서점이 여러 곳이다. 할인율이 높은 곳은 적립금을 포함해 정가의 최고 65%까지 깎아 팔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www.kyobobook.co.kr)는 ‘2004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기획전’을 2005년 1월 12일까지 열고 있다. 올해 잘 팔린 책 1,200종을 적립금을 포함해 최고 65%까지 할인해주고, 구매고객에게 ‘서양미술 400년전’ ‘톨스토이전’ 초대권을 추첨해 경품으로 준다.

또 출판사별 주요 도서를 모은 ‘연말연시 선물 도서전’(400종ㆍ최고 35% 할인), 푸코, 데리다, 들뢰즈의 책을 모은 ‘위대한 사상가 저서전’(14종ㆍ최고 25% 할인)도 열고 있다.

인터파크(www.interpark.com)도 내년 1월 16일까지 베스트셀러를 적립금을 포함해 최고 50% 할인 판매한다. 2004년 베스트셀러 204종과 1999~2003년의 연도별 베스트셀러(사진)가 대상이다. 예스24(www.yes24.com)는 1월 17일까지 ‘대한민국 최초 최저가 보장’ 이벤트를 진행한다.

출판사에서 추천한 책 550종을 적립금을 포함해 최고 50%까지 할인판매하면서, 더 싸게 파는 인터넷서점을 신고하면 가격을 최저로 낮춰 판다.

알라딘(www.aladin.co.kr)은 1월 21일까지 ‘자기계발도서 특가할인전’을 열고, 리브로(www.libro.co.kr)는 1월 2일까지 ‘2004 리브로 독자들이 사랑한 책 기획전’을 통해 베스트셀러 500종(일반단행본 300종, 어린이책 200종)을 최고 35%까지 할인 판매한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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