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60년 을유문화사·현암사 [05/01/06]
 
[책과 길] 설립60년 을유문화사·현암사…격랑의 현대사 담아낸 우리시대 ‘큰 그릇’

1945년,을유년은 한국 출판계에 역사적인 해로 남아있다. 광복과 함께 빼앗긴 말과 글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일제 말기 강제로 출판활동을 중단당했던 정음사,삼중당,박문서관 등이 묵은 먼지를 털고 다시 문을 열었다. 젊은 지식인들은 문화입국을 표방하며 의욕적으로 새로운 출판사 설립에 나섰다.

미 군정당국이 공포한 ‘군정법령 19호’에 따라 45년말까지 등록한 출판사는 모두 49개. 새로 간판을 내건 30여개의 신생 출판사도 포함돼 있었으며 이 가운데 을유문화사와 현암사,탐구당,두산동아,학원사 등 5개가 지금까지 출판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로 ‘갑년(甲年)’을 맞이한 이들 출판사의 60년 여정에는 현대사의 격랑과 출판계 안팎의 부침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창업자 정진숙(93) 회장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을유문화사’는 45년 12월 1일 혈기방장한 30대의 젊은이 4명이 설립 주역이었다. 훗날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민병도씨가 재정을,정 회장이 살림을,문인이자 편집경험이 풍부했던 조풍연·윤석중씨가 출판기획 및 편집을 공동으로 책임졌다. 이듬해 2월 한글을 익히기 위한 글씨본인 이각경의 ‘가정글씨체첩’을 처음으로 내놓은 을유문화사는 그해 무려 35종의 책을 펴내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47년에는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조선말큰사전’(전 6권) 가운데 1권을 펴냄으로써 한국출판계에 획을 그었다.

그러나 6·25전란의 와중에 사옥이 불타면서 출판사는 빚더미에 올라섰고 설립동인들도 차례로 떠나가는 시련을 겪었다. 정 회장 단독경영체제로 전환된 ‘을유’는 재건작업에 박차를 가해 54년에는 진단학회와 함께 최초의 한국통사인 ‘한국사’ 출판을 기획,65년까지 전 7권을 완간했다. 이어 60∼70년대에는 ‘세계교양사상전집’ ‘한국학백과사전’ ‘세계문학전집’ 등 굵직한 기획물들을 내놓으며 대표적 출판사로 성장했다. 을유의 성장세는 80년대 들어서면서 대내외적인 환경변화와 정 회장의 대외활동으로 다소 주춤해졌지만 2000년 정 회장의 손자인 정상준 상무가 합류하면서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창업자(현암 조상원)의 장남인 조근태(63) 사장과 편집자 출신의 형난옥(46) 전무이사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현암사’는 45년 12월 대구에서 시사종합지 ‘건국공론’을 창간하며 설립됐다. 현암사가 출판계에서 날개를 단 것은 59년 일제의 잔재인 ‘육법전서’를 대체하는 ‘법전’을 출판하면서 부터다. 도매상에서 선금을 받아 제작비를 대고 실용신안특허까지 받은 ‘법전’은 판매 첫날 매진돼 웃돈이 붙을 정도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현암사는 그러나 70년대 초반 사운을 걸고 추진한 ‘육당 최남선 전집’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하게 된다. 60년대 중반 대학졸업과 함께 입사한 조 사장은 편법 대신 정공법으로 맞섰고 80년대 들어 황석영의 ‘장길산’,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최순우의 ‘한국미술 5000년’ 등 베스트셀러를 내놓으며 재무구조 개선에 성공했다. 90년 형 전무가 편집장으로 영입되면서 현암사는 한국의 자연과 문화를 포괄하는 기획물들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한 단계 도약했다. 90년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꽃 100가지’를 내놓은 이후 현재까지 51종이 출간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는 확고부동한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으며 현암사는 한국학 출판의 대표주자로 부상했다.

대구에서 ‘대양문화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학원사’는 52년 창간한 학생교양지 ‘학원’이 공전의 인기를 모으며 출판사로서 입지를 굳혔다. 59년 발간한 ‘학원사 대백과사전’을 필두로 ‘문예대사전’ ‘철학대사전’ 등 다양한 부문의 사전을 출간했고 여성지 ‘여원’(55년),농촌잡지 ‘농원’(64년),‘주부생활’(65년) 등을 잇따라 창간하며 잡지출판의 선두주자가 됐다. 현재 창업주(김익달)의 2세인 김영수 회장이 경영을 맡아 여성지와 단행본 등을 출판하고 있지만 한때 ‘잡지왕국’으로까지 불렸던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을유’와 ‘현암사’ 등이 창업에 이어 수성에도 성공한 것과 달리 ‘탐구당’은 세대교체에 실패하면서 사세가 위축된 경우다. 은행원 출신의 홍석우(86) 회장이 광복직후 설립한 탐구당은 50년 지리,세계사,영어,공민 등 우리나라 최초의 문교부 검인정교과서를 발행하고 52년에는 대한검인정교과서의 창립을 주도하는 등 초기 교과서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1964년부터 308종을 발행한 ‘탐구신서’는 대표적 문고본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65년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을 영인,출간해 국학연구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2세들이 출판사 경영에 뜻을 두지 않은데다 전문경영인 체제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홍 회장이 와병,최근에는 물리·생물 등의 대학교재를 펴내는 것으로 맥을 잇고 있다.

김상문(90) 전 회장이 설립한 ‘동아출판사’는 주인이 바뀌면서 이름도 ‘두산동아’로 바뀌는 비운을 겪었다. ‘동아전과’ ‘완전정복’ 시리즈 등을 내면서 참고서 시장을 석권,연 매출 1000억원대의 출판재벌로 성장했던 ‘동아출판사’는 84년 펴낸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 때문에 빚더미에 올라 85년 두산그룹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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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문화 ‘변화의 시대’ 연다  [05/01/06]
 
문지 30돌, 민음사 내년 40돌, 현대문학 50돌 맞아 새길 모색

한국 현대 문학사의 주요한 축을 형성하며 문학출판의 중심을 이뤄온 문학과 지성사(이하 ‘문지’), 민음사와 현대문학이 올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문지는 올해 30주년을 맞았고, 내년 창립 40주년을 앞둔 민음사는 새해 들어 지난 39년간 민음사를 이끌어온 박맹호사장 체제를 마무리하고 2세대 체제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대문학은 1월 창간 50주년을 맞았다. 이들 출판사들은 이를 기념하며 각종 행사를 준비중인데 이 과정을 통해 공통적으로 자사의 개별성과 정체성을 재확인하면서도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체질개선과 현장감있는 출판’(문지), ‘전통을 지키면서도 유연한 변화’(민음사), ‘현대문학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난 과감한 출판’(현대문학). 이렇게 방향을 잡은 이들 출판사들이 풀어낸 변화의 공통방향중 하나는 기존의 문학 중심에서 벗어난 보다 유연한 출판영역의 확대로 모아진다. 이는 문학 시장의 위축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학이외의 다른 문화영역의 상대적 확대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이기도 하다.

◈문지

문지는 올해 12월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채호기 문지 대표는 “지난 30년간 많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한 것이 우리의 주요한 성과였다”며 “문지는 지난 2000년 세대교체후 그간 출간하지 않았던 아동서적, 수필집 등을 내면서 출간영역을 넓히며 변화를 모색했다. 이같은 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채대표는 “다만 30년에 들어서면서 몸이 둔해진다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체질개선도 하고, 보다 현장감있는 책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기존의 시리즈들을 다듬고, 인문·사회과학 쪽에서 새로운 기획과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문지는 올해 30주년을 기념해 문지 30년사 발간 등을 준비중이다. 정식 사사를 발간하기에는 조금 이르지만 문지 1세대들의 기록은 남겨놓아야한다는 판단 아래 간이 문지 30년사를 내놓기로 했다. 이는 일반 기업의 사사와는 다르게 30년간 문지에서 활동했던 문지의 주역들이 지난 30년간의 문지와 문학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을 묶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 문지측은 문지의 탄생, 문지의 설립과 70년대, 문지적 자기 설정과 참여 방식 등 10여개의 소주제를 정했고 문지 1세대인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씨, 2세대인 문학평론가 정과리씨, 3세대인 문학평론가 이광호씨 등이 총출동해 글을 쓰고 있다.

◈민음사

지난 4일 이뤄진 민음사 2세대 교체과 관련해 박맹호 회장은 “2선으로 물러난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감각을 위한 1.5선 후퇴”라며 세계문학전집 출간 등에 대해 여전히 의욕적인 활동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민음사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문학과 인문이라는 기존의 민음사 제작방향의 양대축을 유지하면서 세대교체에 따른 보다 다양하고 새로운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40주년과 올해 세대교체 등을 통해 한 시대의 마침표를 찍는 민음사는 올해 민음사 출신 편집자들을 초대해 한자리에 모으는 ‘홈커밍데이’를 마련할 계획이다.

1966년 민음사가 문을 연 직후 박맹호 회장의 부탁에 따라 사랑방손님처럼 민음사에 매일 드나들며 기획아이디어를 던지곤 했던 시인 고은씨부터 최근의 소설가 권지예씨에 이르기까지 문학, 출판계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모일 것으로 보인다. 1대 주간이었던 소설가 김원우, 2대 주간 시인 황지우, 3대 주간 시인 최승호씨를 비롯해 이갑수 궁리 대표, 이동숙 한국프뢰벨 이사, 정홍수 강 대표, 김수영 해냄 주간, 북디자이너 정병규씨, 시인 이진명, 문학평론가 서영채, 문화평론가 강상희씨 등이 민음사를 거쳐간 문인들이다.

◈현대문학

1955년 1월 창간 첫호를 낸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은 이번에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현대문학사는 ‘현대문학’ 2005년 1월호를 50주년 기념호로 냈다. 5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의 두툼한 특집호에는 소설가 박경리, 현기영씨 등이 축하메시지를 보냈고, 소설가 최일남, 박상륭, 김원일, 조정래, 김훈씨가 신작 단편을, 시인 고은, 황동규, 이승훈, 정현종, 고형렬, 박상순씨 등이 시를 실었다. 특히 프랑스 작가 미셀 투르니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쿳시 등의 특별 기고도 실렸다. 양숙진 대표는 “현대문학이 갖는 위치, 이미지가 지금까지 하나의 무거운 구속력으로 작용했다. ‘현대문학이 이런 책을 내놓다니’라는 반응을 걱정해 과감한 작품들을 내놓지 못했었다”며 “이제 50년을 맞아 이같은 압력을 벗어던지고, 과감하고, 발랄한 작품들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문학중심에서 벗어나 예술, 전기 출간등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문학안에서도 보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들을 발굴, 내놓겠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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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독서계획 어떻게 세울까  [05/01/06]
 
[책세상]새해 독서계획 어떻게 세울까

무슨 책 읽을지 방향·주제부터 선택
구입비용·시간 등 고려 가능한 책의 권수 결정
'독서 다이어리' 만들어 실행여부 스스로 점검을

'독서와 음악 감상.' 이력서나 프로필의 취미 기입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취미가 아닐까 한다. 시쳇말로 하면 '만만한 게' 독서와 음악 감상이다. 1년 동안 겨우 책 한 권만 읽는 사람의 취미가 독서고,택시 탔을 때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만 듣는 사람의 취미가 음악 감상인 경우는 그 얼마나 많은지.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독서와 음악 감상'이 취미라고 말하는 건 '나는 별다른 취미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많다.


말 꺼낸 김에 취미(趣味)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세 가지 뜻이 있다. 마음에 느껴 일어나는 멋이나 정취,아름다움이나 멋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전문이나 본업은 아니나)재미로 좋아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것. 그렇다면 독서 취미를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느껴 일어나는 멋이나 정취,책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교수처럼 직업적으로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면서) 재미로 좋아서 책을 읽는 것.

결국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어 그 내용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길러 갖추어야 한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읽는 게 아니라,어디까지나 재미로 좋아서 자발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요컨대 이해 능력과 자발성이 관건이라 하겠는데,문제는 이해 능력과 자발성도 책을 꾸준히 읽어야 생긴다는 점이다. 적어도 독서에서는 양질전화의 법칙이 진리다. 어떤 책이 되었든 가리지 말고 일단 많이 읽어야 한다.

일단 많이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책을 보는 눈,감식안과 판단력이 생기게 되어 있다. 이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한다.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좋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뭘까?' 하지만 그런 고민은 애당초 잘못 설정된 고민이다. 단적으로 말하면,좋은 책과 나쁜 책은 없다. 그냥 책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독자,나 자신이 있을 뿐이다. 요컨대 좋은 책이란 '나에게' 맞는 책이며 나쁜 책이란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이다. 여기에서 '맞는다'는 건 지적 수준이 맞는 책일 수도 있고,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필요로 하는 책일 수도 있으며,저자의 주장에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공감하게 되는 책일 수도 있다.

책 을 많이 읽어서 나에게 맞는 책이 어떤 건지 판단할 수도 있게 되었다면,이제 독서 계획을 세워볼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독서 계획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올 한해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인가', 즉 책의 수효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독서 계획에서 책의 수효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독서의 방향 혹은 독서의 주제를 정하는 일이다. 윈스턴 처칠의 예가 있다. 처칠은 영국 제4경기병 연대 소속으로 1896년 인도로 갔다. 인도에서 그는 촌음을 아껴가며 독서에 몰두했다. 특히 국제 정세와 정치 및 경제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에 집중했고,역사서도 각별히 챙겼다. 마치 나중에 영국 수상이 되어 국제 정치 무대에서 크게 활약하게 될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필자의 경우를 예로 들면,필자는 올 한 해 서양 미술사 도서를 집중적으로 읽을 계획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어서 서양 미술사의 전체적인 얼개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주헌의 '서양화 자신 있게 보기'(학고재)를 읽어서 서양 미술사 이해에 필요한 기본 개념과 감상법을 익힌다. 그리고 노성두의 '고전미술과 천 번의 입맞춤'(동아일보사)을 읽어서 서양 고전 미술과 친해진다. 그리고 현대 미술에 관해서는 최형순의 '현대 미술을 위한 변명'(해토)을 출발점으로 삼아 본다. 이상 네 권의 책을 읽은 뒤에는 서양 미술사의 개별 사조나 화가에 관한 책들을 읽는다.

그 렇다면 부차적인 문제로 들어가서,과연 몇 권의 미술사 도서를 읽을 것인가? 지금 계획으로는 약 50권을 생각하고 있다. 매주 한 권 꼴이다. 과연 50권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읽을 수 있다. 50권 모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 따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 경우도 있겠지만,한 권의 책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분,특별히 흥미가 가는 부분만 읽는 발췌 독서 혹은 밑줄 긋기 독서를 할 작정이다.

또 하나 부차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문제,즉 책 구입 비용은 대략 얼마나 될까? 미술 도서는 다른 분야 도서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다. 도판 자료가 많이 들어가 있고 고급 종이를 사용하는 책이 많은 데다가,미술 작품 사진 사용료를 지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50권이라면 넉넉하게 잡아도 100만원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독서 계획을 요약하면 결국 이렇다. '올 한 해 나는 서양 미술사를 독서 주제로 잡아서,입문 성격의 책과 통사(通史) 성격의 책들을 기본 틀로 삼고,서양 미술사의 보다 세부적인 문제들을 다룬 책들을 읽어나간다. 읽을 책의 수효는 50권으로 잡고 도서 구입비로 100만원을 책정해 놓는다.'

이 게 독서 계획의 끝일까? 아니다. 새해 새 결심으로 구입한 다이어리의 주간 일정표에 앞으로 구입할 서양 미술사 도서 목록을 적어 놓고,언제 어느 부분을 읽었는지도 적어 놓는다. 신문 서평에 소개된 서양 미술사 도서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책이 있으면,신문의 해당 부분을 오려 다이어리에 붙여 놓는다. 독서 계획의 실행을 점검하는 일종의 독서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블로그나 게시판을 통해 독서 계획을 갈무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매년 주제를 달리하면서 독서 계획을 세워 여러 해를 실천한다면,다른 사람들이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게 되는 날, 요컨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자신의 지적인 성장의 발자취라고 할 수 있는 독서 다이어리 여러 권을 들춰보는 재미도 보너스로 주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퀴즈 하나를 풀어보자.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독서 계획은? 정답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시대 유물인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다. 모르긴 해도 세계적으로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독서 계획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유교 경전을 습득하고 실행할 것을 두 사람이 다짐하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시(詩),상서(尙書),예기(禮記),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서하되 3년으로 하였다'라는 부분이 있다. 사뭇 결연하기까지 한 독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오늘날의 독서인들이 독서 계획을 세우는 데 그런 결연함까지 발휘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리라는 것만큼 유익하고 뜻 깊은 새해 새 결심도 없으리라.


(표정훈 출판평론가)=부산일보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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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며] 묵은 책 정리하셔야죠

지금은 그런 일이 드뭅니다만 20여년전만 해도 제가 살던 소도시에서는 여성이 시집을 갈 때 혼수품 형식으로 전집을 가져가는 것이 유행인 적이 있었습니다. 20권은 족히 넘을 듯한 세계문학전집도 있었고 '왕비열전' '대망' '전설따라 삼천리' '법창야화'니 하는 책들도 있었습니다. 요리책도 필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특히 요리책 전집을 사면 계량컵이라든지 오븐 등을 덤으로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책들은 대개 할부로 거래가 됐습니다.

딱히 혼수품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런 것들을 뭣 때문에 여성들이 챙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여하튼 동네 누님들의 결혼 때는 빠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남성들은 그런 책들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몇몇 여성은 결혼때 가져온 책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시집온 뒤 한번도 보지 않았으나 버리기도 아까워 책장에 그대로 두었는데 이제는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좀도 슬어 흉물이 됐답니다. 결혼생활 십수년에 몇번 이사를 했더니 그때마다 몇 권이 없어지기도 해 제대로 짝을 맞추기도 힘들 지경이 됐다고 합니다. 게다가 오래된 책들은 하나같이 본문이 세로로 편집되거나 한자가 섞여 있는 까닭에 아이들은 아예 쳐다보지를 않는다는군요. 요리책도 신혼 때는 마음먹고 몇번 펼쳐봤으나 점차 뒷전으로 밀렸고 이제는 있는지조차 모른답니다.

집에 책장이 없으신 분은 안계실 겁니다. 말 나온 김에 한 번 쭉 둘러보시죠. 거기에는 젊은 시절 고뇌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 있는 책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며 읽고난 뒤 베갯잇을 흠뻑 젖게 만든 감성적인 책들도 숨어 있을 겁니다. 몇 번을 읽었지만 또 읽고 싶은 책들이 들어 있을 터이고 책 제목만 봐도 슬며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것들도 보일 겁니다.

책장에 꽂힌 책은 책 주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시 70, 80년대에 대학에 다니셨던 분이라면 암울한 시대를 준엄하게 꾸짖어 주던 사회과학책에 눈길이 한 번 더 갈 것이고, 가을을 넘어가려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으셨던 문학도는 손 때 묻은 소설책들이 애틋한 느낌으로 다가 올 게 뻔합니다. 떨어지는 낙엽에 눈물 짓던 분이시라면 시집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석이 됩니다.

반면 책장을 살피다 보면 "어, 이런 책이 우리 집에 있었나"하는 낯선 것들도 적지 않게 나올 겁니다. 낯설다는 것은 사랑이 식었거나 사랑을 한 적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의 속성상 언젠가는 한 번은 읽게되겠지 하고 내버려두시겠지만 제 경험에 비춰 보자면 존재조차 몰랐던 것들은 특별히 그 책을 찾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면 책 주인 손에서 굄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된장과 책은 묵힐수록 가치가 있다고 합디다만 오래됐다고 해서 다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고서'는 아닐 겁니다. 채우려면 버려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그 빈 공간만큼 곧 새로움이 자리하는 까닭이겠죠. 가끔은 묵은 책을 정리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구나 지금은 새 해 아닙니까.

(국제신문 염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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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0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무지 공감됩니다...

찬타 2005-01-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툽니다요^^
 

4人 대표작가의 '문학같은 삶' 들여다본다 [05/01/05]
 

황석영, 장정일, 신영복, 박완서
KBS1 'TV, 책을 말하다' 특집에

‘문학의 위기’가 회자된지 오래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추고 두터운 독자층을 거느린 작가들이 적지 않다. 황석영, 장정일, 신영복, 박완서씨는 그런 작가를 꼽을 때 빠지지 않을 이들이다. KBS1 ‘TV, 책을 말하다’(목 밤 10시)는 2005 신년기획으로 1월 한 달간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화제의 작가, 4인’ 특집을 마련했다.

6일에는 멀리 영국에 머물고 있는 황석영씨를 찾아간다. 그는 소설 ‘손님’이 프랑스의 페미나문학상 외국어소설 부문 후보작에 오른 것을 계기로 유럽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1998년 출감 후 무려 27권의 책을 내는 무서운 창작욕을 보였던 그가 갑작스럽게 런던 행을 택한 까닭을 들어보고, ‘황석영 문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한다.

13일에는 ‘삼국지’를 들고 5년 만에 돌아온 장정일씨를 만난다. 그는 1990년대 ‘내게 거짓말을 해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 도발적 작품으로 한편으로는 음란물 논쟁에 휘말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문화 전 장르에 ‘장정일 신드롬’을 일으켰다. 낯가림이 심한 그가 모처럼 TV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문학관과 타인의 평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털어놓는다.

20일에는 새해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킨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의 저자인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를 초대한다. 1980, 9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저자이기도 한 신 교수는 이 책에 담긴 메시지와 자신의 삶의 철학을 들려준다.

27일의 초대작가는 ‘그 남자네 집’의 박완서씨. 칠순을 넘긴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애틋하고 행복했다”고 고백한 이 작품은 무려 11만부가 팔려나가며 문단의 거목 박완서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그의 문학과 삶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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