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지금, 여기에서 산다는 것 [2004. 12. 22]

사람살이의 모습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또 그 극복의 차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궁핍에서 오는 듯하다. 예로부터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리라.

만화가 허영만씨가 노숙자들을 위해 매트리스를 선물하려 했더니 매트리스 제작처의 사장이 그것을 제작원가로 만들어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역, 영등포역 등지에서 노숙자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경제 사정의 어려움과 함께 노숙자들의 모습도 우리 가슴 속으로 바로 내려와 꽂힌다.

카드를 여러 장 돌려 막기를 하다 금년에는 아예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는 어느 중소기업 사장의 고백도 가슴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었으니 나는, 그리고 당신은 행복한가 하고 묻고 싶다. 최근에 읽은 노벨상 수상작가 존 쿠시의 소설 ‘마이클 K’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의 의미를 에둘러 생각해본다.

내란이 발생하여 주거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주인공 마이클 K는 정원사로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잊고 있던 어머니가 연락해온다. 애초에 입술이 기형으로 태어난 그는 상류계층의 하녀인 어머니와 떨어져서 혼자 살고 있었던 것. 어머니는 깊은 병이 들어 마지막 의탁처로 하나뿐인 아들을 찾은 것이다.

마이클은 생의 마지막 날을 고향에서 보내려는 어머니를 위해 길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이동을 위한 허가서는 끝내 발급되지 않는다. 수레에 어머니를 싣고 길 떠나는 마이클.

숱한 어려움 속에서 결국 어머니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다. 재로 화한 어머니의 유골을 자신의 고향에 묻는 마이클.

그는 이제 어머니가 하녀로 일한 고향의 그 옛집에서 살기를 원한다.

너무나 위험한 세상에서 너무나 지친 그는 움막을 짓고 마침내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또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완벽하게 잊혀지고자 한다. 그리고 그 불모의 땅에 마침내 ‘이데아적 정원’을 꿈꾼다. 그 소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된다.

“물은 어떻게 할 거요?” 하고 물으면, 마이클 K 자신은 호주머니에서 찻숟가락 하나와 기다란 실타래를 꺼낼 것이다.

그는 펌프의 파이프 입구에 있는 벽돌조각을 치우고, 찻숟가락의 손잡이를 구부려 둥글게 만들어 거기에 실을 매달아 땅속 깊이 내려뜨릴 것이다.

그것을 들어올리면, 숟가락에 물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이런 식으로 살 수 있을 거지요.”

갈증도 해소하지 못할 찻숟가락에 담긴 물로 연명하겠다는 이 백일몽은 그러나 나약하지 않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어디엔가 있어야 한다. 그곳이 현실체제의 안이거나 밖, 그 둘뿐이어야 할까? 주인공은 자신을 옥죄는 현실체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저항할 뿐이다.

존재는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이 현실세계에서 온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것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저무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한 인간의 이 간절한 실존적 고백과 함께 오래도록 방황할 것이다.


(정은숙 도서출판 ‘마음산책’대표 시인)=서울신문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되돌아본 2004 문화] ④문학계-서울신문 [04/12/22]
 
“김훈, 김영하 두 작가로 기억될 한해였다.”

한 출판사 편집장은 2004년 문학계를 이렇게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재기발랄한 젊은 작가 김영하와 3년전 출간한 장편소설 ‘칼의 노래’로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입지를 굳힌 김훈이 침체에 빠진 문학시장의 자존심을 추슬러 주었다는 얘기다.

이에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오빠가 돌아왔다’‘보물선’ 등으로 김영하는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는 기록을 세웠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올해도 국내 소설 가운데 최다 판매부수(45부)를 기록했다.

올해 초 장편 ‘현의 노래’를 새로 발표하며 왕성한 창작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김훈은 단편 ‘화장’으로 이상문학상까지 차지해 50대 늦깎이 작가의 저력을 과시했다. 그는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문단의 ‘브랜드 작가’ 1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출판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두 작가의 ‘스타 스토리’말고는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은 한해였다.1981년 문을 연 교보문고 광화문점조차 사상 첫 매출액 감소를 기록한 해였으니 ‘실족’했다는 소설시장 형편이야 말할 것도 없다. 한 국내소설 전문출판사의 대표는 “유명작가에게서 원고를 받아놓고도 시장이 워낙 얼어붙어 있어 출판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한 둘이 아니다.”고 푸념한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중진 작가들이 우연히도 모두 4년여의 공백을 깨고 새 소설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완서의 장편 ‘그 남자네 집’, 서정인의 연작단편집 ‘모구실’, 최일남의 창작집 ‘석류’ 등이 그것. 특히 박완서는 지난 10월 출간한 새 장편을 지금까지 11만부 넘게 팔아 ‘장편 승부사’로서의 내공을 입증했다. 김원일(‘물방울 하나 떨어지면’)도 12년 만에, 이청준(‘꽃 지고 강물 흘러’)도 3년 만에 소설집을 발표했다.

30대 작가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린 것도 올해 문학계의 큰 변화.2000년대를 이끌어갈 신인작가들이 다양한 개성의 화법으로 줄이어 등장했다.

김영하를 비롯해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 출간 뒤 평단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이기호, 왕성한 필력으로 여성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천운영, 윤성희 등이 그들이다.

10만부를 넘기면 대단한 베스트셀러로 분류되는 한국문학의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댄 브라운의 ‘다 빈치 코드’는 100만부가 팔려 나가며 국내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역사적 상황에 상상력이 결합된 쉽고도 ‘실용적’인 서사로 소설읽기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독자들을 달랬다는 분석이다.

올해는 또한 남북간 문학교류와 관련한 논의가 어느 해보다 활발했다. 정치 상황이 경색되면서 막판에 무산되긴 했으나, 지난 8월말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작가대회가 추진되기도 했다. 또 창비가 제19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북한작가 홍석중의 장편 ‘황진이’를 선정, 금강산에서 작가에게 직접 상을 전달한 것도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서울신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연하장 대신 책 선물을  [04/12/22]
 
[책장을 펄치며] 연하장 대신 책 선물을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요즘처럼 이메일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보내기 등이 없었던 학창시절에 저도 남들처럼 연애편지를 꽤 썼습니다. 그때 빠지지 않고 들어갔던 시가 '행복'을 비롯해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로 시작되는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 '얼굴' 등이었습니다. 이런 시에는 편지를 받을 여학생들이 '끔뻑 넘어갈 수 있는' 글귀가 한껏 들어있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연애작업의 성패는 얼마나 여학생들의 가슴을 절절히 흔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고백하건대 남들보다 외모가 상대적으로 뒤졌던 저로서는 글로써 승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좋은 시(문학적 가치가 아닌 여학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시)를 찾기 위해 눈에 보이는 시집은 다 뒤적거려 보았습니다. 컴퓨터가 없었던 터라 분홍빛 꽃 그림 등이 그려져 있는 편지지를 수십장씩 구겨가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최근에 군소 일곱개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 '성탄-연하 도서'라는 것을 펴냈습니다. 하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독자들의 발길을 서점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머리를 맞댄 끝에 만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 연초 때 받는 각종 카드와 연하장은 보내준 사람의 성의는 고맙지만 며칠후면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이런 낭비를 줄이고 보내준 사람의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하자는 뜻에서 책 속에 연하장을 붙였습니다. 책도 그냥 한번 보고 버리는 가벼운 것들이 아니라 제법 읽을 만한 내용으로 꾸몄습니다.

동보서적 영광도서 등 부산지역 서점들도 출판사들의 이런 뜻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매장내에 빨간 우체통을 설치하고 우표도 판매합니다. 비용은 책 값 2800원에 우표값 550원을 합쳐 3350원입니다. 웬만한 찻집의 차 한잔 값입니다.

한 출판사에서는 또 독서수첩이라는 것도 내놨습니다. 기존의 포켓수첩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중간중간에 책을 읽은 소감을 적도록 원고지를 삽입했고 편지지도 끼워 넣었습니다. 하루하루 바쁜 생활을 점검하면서 때때로 책도 읽어보고 편지도 써보라는 의도입니다.

글을 쓰다보니 마치 성탄-연하 도서나 독서수첩을 홍보하는 꼴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관련해 어떠한 제의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금방 잊히는 의미없는 카드나 연하장보다는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책도 선물하자는, 잠깐씩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는 여유를 갖자는 이들의 취지에 공감할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상투적인 인사말보다는 받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할만한 예쁜 말들을 학창시절 연애편지 쓸 때처럼 한번쯤 적어 보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유치하고 닭살이 돋으면 어떻습니까. 짜릿하지 않습니까.


(국제신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4-12-23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도 책 선물 하려구요. 찬타님도 참여해 주세요^^ 님 메리 크리스마스!!!

찬타 2004-12-2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선물? 저도 참여할게요~ 끼워 주세요~ & 물만두 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교보문고 매출 감소 [04/12/22]
 
[만물상] 교보문고 매출 감소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은 알아주는 애서가였다. 책이 물에 젖거나 손때가 묻지 않도록 셀로판지로 싸서 들고 다녔다. 20세 때는 탑골 공원 옆에서 서점 ‘마리서사’를 경영했다.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이봉구 오장환 장만영 김수영 등 시인 소설가 화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956년 박인환이 31세 때 종로에서 술을 마신 후 돌아와 “아! 답답해” 하며 숨을 거둔 그의 집은 복개되기 전 중학천변에 있던 세종로 135번지였다. 책과 서점을 그토록 좋아하던 박인환의 집 자리에 지금 한국 최대의 서점이 서있으니 인연치곤 기이하다.

▶교보생명 창업자 신용호는 1980년대 초 광화문에 거대한 사옥을 지으며 지하공간을 어떻게 쓸까 고심했다. 서점을 해보라고 권한 게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이었다. 이병철은 일본을 자주 드나들며 ‘기노쿠니야’ ‘마루젠’ ‘산세이도’ 등 대형 서점의 운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식산업은 신용호의 꿈이기도 했다. 금싸라기 땅에 웬 서점이냐며 반대도 많았지만 신용호는 결단을 내렸다. 81년 교보문고가 개점하는 날 이병철은 신용호의 손을 꼭 쥐고 “잘했다”며 부러워했다.

▶23년 동안 광화문 교보문고는 우리나라 서점의 상징이었다. 매장 면적 2700평에 서가 길이 60리(24.7㎞), 그동안 1억5000만권(백두산 높이의 1000배)의 책이 이곳에서 팔렸다. 한국의 지적 흐름은 일단 이곳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흘러갔다. 모기업 교보생명은 기업 이미지 면에서 교보문고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개업 이래 한 번도 전년에 비해 매출이 떨어진 적이 없던 광화문 교보문고가 올해 처음 매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IMF 외환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작년에 비해 0.91% 떨어진 것이다. 경기 침체로 돈이 없어 씀씀이를 줄이게 되자 일차적으로 문화 분야가 피해를 입고 있다.

▶배부르고 등 따습다고 책을 읽게 되는 게 아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고 불렀다. 서출(庶出)에다 영양실조로 어머니를 잃은 극빈 속에서도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영-정조 르네상스’로 일컬어지는 조선 후기 문예부흥은 정조에 의해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임명됐던 이덕무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어려움을 헤쳐나갈 정신의 힘은 결국 책 속에 있다. 가난할 때 읽는 책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조선일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美 출판계 '두 거인' 격돌  [04/12/21]
 
최대출판사 랜덤하우스 온라인 판매 선언

더이상 책 판매가 늘지 않아 고전하고 있는 미국 출판업계에서 출판사와 서점을 대표하는 ‘두 거인’이 세차게 한판 붙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미국 최대의 출판 사인 랜덤하우스의 피터 올선 사장은 지난주 자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직접 책판매에 나설 계획을 밝히자 미국 최대서점 회사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미국 최대 서점체인인 반스앤 노블사의 스테판 리지오 사장은 “랜덤하우스사가 서점들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미 출판·서점업계의 양대 거인인 두 회사간의 반목과 갈등은 사 실 2년째 계속 책 판매량이 전혀 늘어나지 않고 있는 장기불황에 서 비롯됐다. 책을 사보는 독자들의 연령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 며 아동도서와 신앙 서적을 제외하고는 다른 영역의 출판에서는 전혀 새로운 독자가 생겨나고 있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최근의 베스트셀러인 더블데이 출판사의 ‘다빈치 코드’나 로데일 출판 사의 ‘사우스 비치 다이어트’, 하이페리온사의 ‘천국에서 만 난 다섯 사람’은 사실은 모두 지난해 출판된 책들이다.

이같은 출판불황 때문에 출판업계는 저마다 판매량을 늘리고 새 고객을 찾기위해 안간힘을 쏟아왔다. 이런 마당에 출판사들은 최 대 서점체인인 반스 앤 노블이 독자적인 출판사업을 벌이는 새로 운 경쟁상황에 직면했다. 최근에 반스앤 노블사는 자신들이 출판 하는 책에 대한 일간지 전면 광고까지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이 는 그동안 반스앤 노블사에 서적을 공급해온 출판사들을 당혹스 럽게 하고 있다. 랜덤하우스가 온라인 판매를 하겠다고 밝힌 것 도 최대서점의 이같은 도전에 대해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 한 조치지만 앞으로 출판업계 양 기둥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화일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