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철학 -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강분석 옮김 / 사람과책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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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사회에서의 절대 강국인 로마 제국에 의해 피를 뿌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 로마제국의 제국주의성을 논하더라도 5현제 시대의 꽃을 피운 마지막 황제인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는 시대의 업 속에서 휘말려 살더라도 자신의 자아를 초월해서 진리를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황제의 신분으로 부패를 청산하고 노예를 해방시키고자 노력했으며 나아가 참된 인간의 삶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지에 대해 고민했던 진실한 영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에서 그는 어느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하지 않았으며,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가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발견하는 특별한 눈을 갖추었다. 진리를 향한 길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길목 길목에서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였음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물이나 사건 사람들은 그저 있는 그대로 놓여져있을 뿐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이 결국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나에게 일어나는 하루의 무수한 사건들과 장면들이 결국은 선도 악도 없는 것이다. 모든 일들이 나를 위해서 나를 원인으로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생각들이 사라질 때, 우주의 온 작용들은 온전히 자신의 마음에 투영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사방팔방으로 막힌 벽을 통과해야 한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신의 오감각을 통해 생각으로 빚어지기 전에 우리는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허상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 진실로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는 깊은 성찰과 의문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런 의문들과 함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생각으로 덧칠하지 않고서 말이다.

  그것은 지금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다. 과거의 여러 가지 선행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기, 오지 않은 미래의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내기, 나라고 하는 실체없음을 바로 보기, 그것은 지금 영원이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창조행위에 마음의 시선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 순간 만들어진 그 형상들이 영원의 무덤 속으로 끊임없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해치려는 사람들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로 내가 괴로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일상의 느슨한 빈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요놈. 한 순간도 긴장하지 않고서는 나를 잡아삼키는 그것 때문에 오늘도 나의 하루는 지옥 속을 헤매이고 있다. 황제의 다사다난했던 삶 속에서도 자신을 본성을 놓치지 않고 살다간 수행자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질책이 된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죽비가 된다. 남들 다 하는 행위, 먹고 자고 마시고 싸고 하면서 나는 얼마나 영혼을 놓고 사는가? 그러면서 한 번도 나 스스로의 주인된 적이 없는 삶의 허울을 벗어나 참된 세상의 한 가운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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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12-27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님의 리뷰가 더 철학적이라고 여깁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는 일 거 아무나 하는 일 아니거든요.
오늘 하늘은 아주 쨍그렁 하더군요.
새해인사 미리 드릴께요. 방명록에 써야 하는데 핑계김에 이곳에다가
님의 건강과 시윤이의 건강, 아내의 건강을 모두 기원해요.
반딱반딱 시윤이, 잘 있죠?^^..아이의 마음이 곧 청명한 하늘 같지 않을까요?
더불어 어둔이님의 안부도 묻습니다. 그립다는 인사를 전해 주세요.

달팽이 2005-12-27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텅 빈 하늘에 때로는 구름이 끼었다가 때로는 비가 오다가 때로는 눈도 내립니다.
하지만 텅 빈 하늘은 텅 빈 그대로 있어 모든 대기 현상을 드러냅니다.
그 텅 빈 하늘에서의 인사 드리고 싶군요.
시윤이는 잘 큽니다. 내년 2월이 두돌이 되네요.
요즈음 스무가지 정도의 노래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말도 많이 하고 먹기도 잘 먹습니다.
어둔이님도 잘 있습니다.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텅 빈 하늘을 볼 수 있는 한 해였으면 합니다.

비로그인 2005-12-3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은 모르는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노예를 해방시키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었나봅니다. 그렇다면 정말 놀라운 일인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이해가 가는데 과연 그러면 로마제국의 사회적 시스템이 원활히 유지될 수 있었는가 하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 같습니다.
달팽이님의 글을 읽고 현재에 충실히 살아간다는 것이 왜 이리 힘든 일인지 저도 생각해봅니다. 저의 마음은 내년에 쏠려있어서..ㅋㅋ 이곳 서재에서 오래 전부터 글을 쓰신 것 같아서 꾸준함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글들이 워낙 많아서 아직도 정보의 바다에빠지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 내년에도 좋은 한해 되세요..

달팽이 2005-12-3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오님도 내년 복 많이 지으시고 좋은 일 많이 하세요...
앞으로도 좋은 만남 되었으면 합니다.
 
하버드에서 만난 부처
소운스님 지음 / 도솔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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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니의 몸으로 출가한 그녀는 진리를 찾기 위해 속세로 나왔다. 남들은 머리를 깍고 산에 들어가고 절에 들어가서 세상과 끊어진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데 그녀는 오히려 밖으로 나왔다. 참된 진리를 걷기 위해 그녀가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찾아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인생 여정 자체가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기나긴 과정이지만 그 구체적인 길은 개개인에게 같을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순간 순간 자신에게 펼쳐지는 우주의 작용이 그녀에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였던 것이다.

  오늘, 별다른 일없이 일찍 학교를 나서서 강변로를 달리다 문득 햇살 비치는 금빛 강물을 쳐다보다가 세상이 무엇하나도 의미없음이 없다는 생각이 스쳐지났다. 저 석양, 저 하늘, 저 산들이 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의문을 품고 달리다 어느새 신호등도 걸리지 않고 일찍 도착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장모님을 만났다. 집에 소독을 한다고 와계셨던 것이다. 장모님을 모셔드리고 오는 길은 막혔고  긴 운전이 몸을 피로하게 했지만 오늘 장모님을 모셔다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모님은 차막힐 시간이라서 자신이 혼자 가시려고 먼저 버스를 타려고 나오셨는데 오늘따라 내가 5시 10분에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제 각각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그녀가 수행자로서의 마음의 결심을 했을 때 이미 그녀앞에는 자신의 길이 어떤 모습이든지간에 수행자로서의 삶이 놓여져 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학문으로서의 길이 그녀에게 주어졌지만 그것도 수행자로서의 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녀에게 더욱 강조되었던 것은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족한 자신만의 내면의 동굴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처님의 길을 걷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서 낯선 길들을 걸을 수 있는 용기가 그녀에게서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보다 중요한 가치를 위해 나머지 것들을 희생할 줄 아는 용기와 아직 그녀의 인생에서 헤쳐지지 않는 새로운 길을 내는 용기가 그것이었다. 그것은 일반인으로서 진리의 길을 가고자하는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사람과의 만남에서 일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나만의 마음의 동굴을 필요로 했다. 그 마음의 동굴안에 정착해야만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하나다. 그 표현이야 어떻게 되든지...하지만 그 길을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늦을 수도, 둘러갈 수도, 지름길일수도(그런 길이 있는지 잘 모르지만).... 빠른 길이라고 해서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듯, 나에게 주어진 길에서 순간 순간 삶의 의미를 담아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모험하고 탐험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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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10-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을 판다
자기만의
파들어가기 위해서인지
파나오기 위해서인지

그건 끝을 보아야 알 수있다
그 처음부터...
 
백일법문 -하 - 성철스님 법어집 1집 2권 성철스님 백일법문
성철 지음 / 장경각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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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님의 이 책을 마음으로 따라가면서 내가 얼마나 깊은 무명의 뻘에서 허덕이고 있는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현재의 내 모습을 처절하게 알게 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 준 고마움이었다. 상권에서 스님이 준 화두,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를 들고서 있을 때에면 저절로 상념들이 잦아드는 경험을 하곤 하였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끊어지는 화두 속에 망념들이 얼마나 많이 고개를 드는지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마음 속의 망념들이 사라진다는 것, 그것은 마음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하는 것으로만 없어지지 않는다. 관하는 것은 그 망념들이 더욱 부풀지 않게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화두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몸과 오감으로 느끼는 외부의 경계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것도 나의 생활에서 극한 상황을 맞지 못해서 그런지 그리 크게 느끼지 못한다.  부처도 아니라는 말씀, 마음속의 망념과 외부의 경계가 사라진 중도라고 불리우는 것에 어떤 실체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인데 역시나 화두를 들고 깨어 있을 때 내가 아직 못 느끼는 공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스님의 화두가 주로 마음이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모아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화두를 들고 있다고 느끼는 때에도 오래 묵은 무명의 습이 눅눅하게 묻어나서 마음 속이 깨끗하지 못함을 느끼곤 한다. 그래서 때로는 그 큰 아상덩어리가 만져지듯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 어찌 요행을 바라고 공부하겠는가? 그저 욕심없이 한다는 생각없이 공부할 뿐인 것을....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공부에 많은 장애가 된다는 것도 느낀다. 스님이 준 화두를 들고 있는 때에도 뭔가 글로 이해하려는 마음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생각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해심은 있다와 없다로 모아진다. 그래서 양변을 여윈 상태가 단순히 말로 가늠할 것이 아님을 이해할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나에게 묻는 물음인 것이다.

  성철 스님의 법문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전체에 대한 의문의 씨앗을 마음 속에 심어주는 행위인 것이다. 자신이 지금 처한 상태가 어떠한가를 보여주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땅으로 걸어가도록 마음을 부추키는 것이다. 삶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의문으로 말이다. 내가 책을 통해서 알아야 하는 것, 버려야 하는 것 모두에 대한 의문이 여기에서 또 한 번 나를 질책한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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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5-10-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명의 뻘에 빠져 허덕일 때에도
마음도 아니고 한 물건도 아니며 부처또한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고?라고 하니

아니라고 말한다면 털끝만큼도 달리할 수 없지만
해와 달이 밤낮을 바꾸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것이라

진리의 바다를 헤치면서도
마음도 아니고 한물건도 아니며 부처 또한 아니니 이것을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큰도는 일체의 것을 끊고 밤과 낮으로 바뀌니
한 순간에 일만팔천리 벌써 멀어져 버렸네


 
백일법문 -상 - 성철스님 법어집 1집 1권 성철스님 백일법문
성철 지음 / 장경각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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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속의 갈증은 늘 무엇인가를 찾게 만든다. 내 스스로의 본성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밝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늘 어두운 마음은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만들어내어서 본성을 가리고 그런 생각들이 나의 마음을 혼탁하게 하는 것이 느껴질 때에서야 비로소 나를 돌이킨다. 그래서 또 무지한 나는 책을 든다. 더 모르는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불교에 대해 관심이 많아진 것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나의 본모습을 알지 못하고서는 아무것도 온전히 경험할 수 없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공부를 가리키는 모든 말들이 나에게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비록 짧은 시간의 공부를 거쳤지만 내가 이른 결론은 내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공부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은 불교의 역사에서 나타난 네 가지의 교학을 중도 사상의 관점에서 꿰어낸 것이다. 근본 불교, 원시 불교, 부파 불교, 선 불교의 내용을 부처님의 중지라 할 수 있는 '중도'의 관점으로 모아낸 것이다. 마음이 짓는 모든 생각들이 '있다'와 '없다'로 모아진다. 그 모든 것이 아니다. 양변의 생각을 떠난 뒤에라야 비로소 현묘한 지혜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간에 단편적으로밖에 잘 몰랐던 중도의 개념에 대해서 성철스님의 마음의 경계로서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명쾌한 설명으로 나타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개념적인 이해가 중도에 대한 깨달음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말처럼 양변을 떠났다고 해서 그거을 떠난 어떤 것이 또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증득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 책이 나에게 준 모든 것이 이 하나의 화두로 모아진다. 세상은 마음으로 그려진대로의 세상이다. 성철스님이 가진 마음으로 설한 교학이 어찌 학문에만 바탕을 두었겠는가? 스님의 마음이 지향한 바대로이지 않겠는가? 

  세상이 활활 타올라야 한다. 그 타오르는 세상 속에 모든 것이 재가 되고 남은 것이 없어야 비로소 열린다. 모든 것이 타오르고 없다는 그 마음마저 없어야 한다. 오직 이 뿐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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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5-09-2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일 법문, 사다 놓고는 아직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어려운 느낌이 들어서....

달팽이 2005-09-2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능력에도 벗어난 책입니다...
그저 읽으면서 마음을 쫓을 뿐입니다.
마음이란 놈은 참 요상해서 우주와도 같은 프리즘을 갖고 있어서
맞추다보면 따라가는 면도 있잖아요..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오쇼 라즈니쉬 지음, 장순용 옮김 / 들녘미디어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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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은 늘 수많은 문제들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의 문제를 안고 고민하고 해결하는 동안에도 열가지, 스무가지의 문제가 새롭게 생겨난다. 따라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방법은 늘 또 다른 문제의 눈더미속에서 헤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쇼 라즈니쉬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그것을 보라고 한다. 그럴 때에야 우리는 문제가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문제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빈 바탕에 우리는 우리 존재의 본질을 보게 된다.

  "지혜는 어리석음을 먹고 자란다." 지혜는 지식과 다르다. 우리는 일생동안 지식을 쌓아감으로써 인생의 문제를 보다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식을 쌓아감으로써 우리들이 맞닥뜨리는 것은 보다 많아진 문제이며 보다 복잡해진 문제일 뿐이다. 참다운 지혜는 우리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진리의 문이 놓여져 있다. 그 문 앞에서 우리는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재산, 명성, 지식, 자신의 자아마저도...그러나 진리의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들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허상뿐인 자아만 내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얼마나 어렵고도 쉬운 일인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는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외로움을 벗어날 친구들을 가지지 않은 이는 없다. 그러나 우리들 중 고독함을 가진이는 드물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감정이요 외부로 드러난 것이다. 고독함은 깊은 침묵의 바탕이며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도 진정한 고독함을 느낄 줄 아는 자만이 비로소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은 자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자아로부터의 자유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이 비로소 삶과 죽음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시간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마음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시간이 없는 곳이 바로 영원성의 공간이다. 말이 공간이지 그것은 공간도 없는 곳이다. 과거와 미래가 없는 오로지 현재만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것은 과거에 얽매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감과 두려움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오직 지금을 온전하게 느끼고 있을 때 나는 뽑은 이의 고통도 느끼지 않았으며, 오로지 책을 읽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온 몸의 세포는 보다 민감해지고 그 뚜렷한 각성 앞에 '있음'의 상태만이 현존할 뿐이다.

  지혜는 바보만이 가질 수 있다. 바보는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바보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바보도 없다. 바보라는 생각만으로도 삶과 죽음이 생긴다. 지혜는 삶과 죽음이 사라진 바보 그 자체가 되어야만 수직적으로 우리를 통과해서 생긴다. 어리석음은 그러한 생각없음이다. 지식없음이다. 생각의 뿌리가 잘려나갈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지혜의 빛을 느낄 수 있다. 뿌리뽑히지 않은 잎을 보라 가지를 보라 뿌리로부터 끝없이 제공되는 양분으로 또 다른 잎을 또 다른 가지를 만들어내지 않는가?

  몸착의 뿌리, 자아의 뿌리가 깊다. 그 깊은 뿌리를 어떻게 뽑아낼 것인가? 걱정하지 마라. 그저 뿌리가 실체가 아님을 보면 된다. 그저 빛의 현존을 느끼면 된다. 순간 순간 현재에 살면서 각성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진리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 눈빛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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