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요지 - 주머니속대장경 301
허운 화상 지음 / 여시아문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것이 예전에 읽었던 글인데도 달리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겨우 이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두를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가물하게 만져지는 것이 생겼다는 정도이다. 백성욱 선생님께서 '미륵존 여래불'하고 바치라고 하셨는데 이 책을 들다가 문득 책을 놓고 '미륵존 여래불'하면 그 마음이 올라오는 그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가볍게 생기게 된다. 아직은 마음에서 크게 올라오는 것 정도라야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이지 티끌처럼 올라오는 마음은 지나고 나서야 아!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참선에 내가 인연이 있는 것일까? 잠자리에 앉아서는 제대로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망상과 잠 속으로 빠져드는 내가 그래도 왜 '참선'이라는 글자에 마음이 끌리는 것인지 가끔 생각한다. 과거의 어느 생에 승려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날 문득 꿈에서 눈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은 스님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그 스님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정하게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자판을 두드린다. 그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마음이 먼저 올라온다. 그 마음이 영글기 전의 마음 바닥이 있다. 그 바닥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끝도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갖은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미세하게 올라왔다가는 마음이 보태어지면 어느덧 내가 쉽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가물하다'라는 '현'자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정말 미세한 마음일수록 가물가물하다. 그 가물가물한 밑바닥에서 백년 3만 6천 여일 동안 쉬지 않고 망상이 일어난다. 그러니 불쌍한 대중인 내가 언제 한번 모두 놓아버리고 편히 쉴까!

  화두를 들려고 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 있다. 미륵존 여래불 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 있다. 거칠게 화두 들려고 하지 말고 가볍게 한 번씩 들고 들어서 이어주는 노력이 나에게 필요하다. 너무 마음이 앞서니 집중이 되어 머리만 아플 뿐이다. 한동안 머리가 아파 토할 것 같은 시간에서 한숨만 푹푹 쉬어대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아, 그래도 게을리 놀고 지나가는 시간들도 나에겐 필요했던가? 이런 식으로 나의 나태함이 정당화될 것은 아니지만 좀 쉬고(?) 난 뒤의 글들이 다시 마음에 붙는 맛이 있다.

  그렇지만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한다는 것은 기연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느낀다. 일상의 일들에 쉽게 마음뺏기면서 설렁설렁해서 생사의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쉬는 듯 쉬지 않는 듯 해도 마음의 긴장은 뾰족하게 세워야 하며 올라오는 생각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며 어디로 또 사라져가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섬세하고 미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럴 때 조금 공부에 힘이 붙는다. 그래서 잘 되면 화두가 나를 이끌 것이고 아니면 내가 끙끙 대며 화두를 끌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바퀴가 굴러갈 때까지..나는 가슴에 마음을 품는다. '직지인심'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6-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다들 서재구경 다니느라 조금은 들떠있는 것 같아요.
님은 여전히 마음을 붙잡고 혹은 놓고 계신가요? 편안한 밤, 빗소리에 집중해보고
싶어요. 사실은 조금 취해보고도 싶구요. 늘 마음공부가 되는 글들, 감사합니다.

달팽이 2007-06-14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침에 더욱 굵어진 빗줄기를 맞고 출근하였습니다.
그 빗줄기는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뒷산의 초록이 한 층 더 무성해졌습니다.
음반 하나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북치는 소리가 우렁찹니다.
둥둥둥~

글샘 2007-06-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면... 골똘해져야 하는데요...
저는 요즘 좀 산만한 상태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요즘 공부가 잘 되시는 것 같네요.

달팽이 2007-06-1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봐야 노력하는 수준이랍니다.^^
오늘 날씨가 좋군요..

혜덕화 2007-06-1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서재라 그런지 모든게 낯설군요. 전에는 즐찾 서재의 글이 첫화면에 보여서 좋았는데, 이젠 찾아 다녀야 보겠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_()_

달팽이 2007-06-17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그렇군요. 이젠 찾아다녀야 하는군요.
유월의 햇살이 데워집니다.
안녕히 보내세요.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속세에서 먹물 깨나 먹었던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단순하면서도 정갈하고 진실하면서도 치열한 수행의 기록이다. 아상으로 단식수행을 하던 스님과의 이야기를 보면 자신의 먹물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도 그의 수행일기 전체에 흐르는 느낌은 단촐하면서도 잡다한 사변을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이 그려내는 절간의 이야기들이 깊은 사연과 애절한 마음을 자아내면서도 마치 한 걸을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것처럼, 그것이 슬픔과 연민을 넘어서 지향하는 바가 분명해지는 것이다. 그 길에 놓인 승려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찍어내게 하기도 하지만 모두 아름답게 변하고 만다.

   심지어 스님이 그려내는 선객의 고독조차도 아름답다. 이백의 '월하독작'은 너무 가슴을 울린다.

  "꽃이 만발한 숲 속에 한동이 술이로다. 그러나 친구가 없어 홀로 마실 수밖에,

잔을 들어 돋아오르는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를 대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은 본디 술을 못하고 그림자는 부질없이 나를 따라 움직일 뿐이로구나"

고독과 대면하는 수 밖에 없다. 그 고독과 대면하여 이겨내는 방법은 화두로 타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고독을 회피하고 두려워한다. 그 고독의 뿌리에 우리가 세상의 구멍 속으로 빠지고 마는 삶의 뿌리가 있다. 인연되어 선방에서 공부를 치열하게 하면서도 깨달음의 길에 놓인 고독이라는 길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 스님의 모습에 진정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병든 스님의 이야기를 읽을 때는 눈물이 절로 났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대사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절에 들어왔지만 기연이 닿지 않아 일을 마치지 못하면서도 낯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꾸는 스님의 마음씀과 삶의 애절함이 뼛속으로 파고드는 겨울추위같았다.

  이 길을 가는 것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 많이 알고 적게 알고의 지식의 유무, 속세에서의 지위 등 온갖 겉치레가 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이 길엔 세상 모든 것을 베어내는 날카로운 지혜와 의지의 칼만이 필요할 뿐이다. 어느 곳에도 마음 묶이지 않고 꿋꿋하고 바른 길을 걸어가려는 지허스님의 구도의 이야기는 내 느슨한 마음에 조그만 촛불을 하나 켜기에 충분했다.

  갖은 해석과 말을 줄이고 나아가 행동도 줄이고 오로지 진리의 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기 위하여 생활의 다른 에너지들은 모두 아끼는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진리를 향한 마음만이 흔들림없이 서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체의 우상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가야할 조화되는 길로 향한 느리지만 빈틈없고 착실한 발걸음에 담긴 삶의 무게에 가벼웠던 나의 오늘이 돌아보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6-1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오늘 하루도 평정심 잃지 않는 하루 되소서..
이책은 담아가겠습니다.

달팽이 2007-06-1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이미지가 바뀌었군요.
님 말씀대로 사는 하루가 되기를...발원합니다.
 
행복한 공부 - 밝고 편안한 인생을 사는 공부의 핵심
김정섭 지음 / 김영사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성욱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공부한 사람이다. 따로이 자신에 대한 어떤 설명이 없다. 백성욱 선생님의 아래서 공부했다는 말이 다인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어보면 백성욱 선생님의 향기가 자연스레 베어나온다. 백성욱 선생님을 인연으로 공부한 사람들의 글은 모두가 일체의 화려한 수식과 기교를 생략한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직설적인 말로써 우리들의 마음살림을 그대로 보게 한다. 신심명의 앞부분을 보면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라했듯이" 백성욱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분들은 하나같이 일체의 수식을 생략하고 오직 하나의 말을 꺼내어보인다.

  삶에서 수행을 하며 살면서 우리들이 부딪히는 어려운 고비고비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에 대해 '견법'과 '바치는 법'으로써 간명하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그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평생을 길어먹어도 마르지 않는 우물물같은 말씀이다. 다른 공부들 참 많이 있지만 마음공부로 백성욱 선생님은 오로지 금강경 공부를 강조하신다. 내 마음의 공부도 어느덧 조금씩 금강경으로 모아지는 느낌이다. 때가 되면 제대로 금강경 공부를 하겠다. 지금은 좀 더 저변을 탐색하고 싶다. 부처님 가장 수승한 기운으로 진리를 설한 정오의 에너지를 받고 그곳에 머물매 마음이 밝혀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인가?

  소의경전으로서의 금강경에 대한 해석과 설명은 많지만 백성욱 선생님의 바치는 설명은 공부해보려고 하는 나의 마음도 아주 단촐하면서도 갖은 격식과 지식을 버리라 한다. 깊은 진리는 형식과 격식없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것에 있다 했는데 선생님과 인연되어 공부하신 분들의 글이 그런 느낌이 든다. 세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지만 그 마음의 길을 쫓았던 몇 안되는 사람들의 삶과 마음에 이렇듯 그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니 역시 백성욱 선생님답다. 그만큼 깊은 진리로 제자들의 마음을 끌여들였던 것이리라.

  알라딘서 선생님과 관련된 새로운 책을 찾아본다. 애석하게도 한 권 말고는 찾을 길이 없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한 권이라도 건졌으니..  이렇게 책으로라도 만날 수 있는 인연에 감사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혜덕화 2007-06-04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통 책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김재웅 법사님의 책을 간간히 다시 읽고, 지허 스님의 선방 일기를 읽는 정도입니다. 지허 스님의 글 또한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서 소박한 무명 저고리를 마주 대하는 느낌, 혹은 보리밥에 간장 종지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그러면서도 글은 이렇게 쓰는 것이 제대로 쓰인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장식이 본질을 전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네 삶도 이렇게 정갈하고 소박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마음의 방향을 가늠하느라, 잡다한 책엔 손이 가지 않네요.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달리 구한 한 권도 소개해 주시면 함께 주문하고 싶네요.

프레이야 2007-06-04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새로 단장하신 서재 지붕의 레이스단이 아기자기 예뻐요.
스킨도 연분홍에, 완전 새로운 느낌이에요.
백성욱 선생은 전 처음 들어보는 훌륭하신 분 같으네요. 좀 찾아보고 배우렵니다.^^

달팽이 2007-06-04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미래를 여는 금강경 독송"이란 책이 있군요. 정천구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한분의 백 선생님의 제자인 듯 하군요.
혜경님/제가 손꼽을 정도로 존경하는 분입니다. 혜경님도 한번 보세요.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닦는 마음 밝은 마음>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그 마음을 바쳐라> 모두가 저의 어려운 시절 힘이 되었던 책입니다.
그리고 혜경님 새 서재는 제가 단장한 바 없는데 그리 되었군요..ㅎㅎ

파란여우 2007-06-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지 못하고 있기로는 혜덕화님뿐만 아니랍니다.
저도 이런저런 밀린 숙제같은 일상이 자꾸만 더 뒤로 쳐지는군요.
그래서 그런가 어제는 금강경을 펼쳤습니다. 한 두어달만에요.
거기 그렇게 써 있더이다. "한 마음이 한 마음이다"
앞의 한 마음은 뭔지, 뒤에 한 마음은 뭔지..@@
그냥 제 궤변대로 해석해서 마음을 잡고 놓는 일은 불가능하다.
원래 마음이란 형체가 없는 듯 있는 듯한대..흐르는대로 살자 이겁니다.
잡고 놓는 일 대신에 보는 일만이라도 성취할 수 있다면..그게 用神인가요?
 
꽃과 벌
청안 지음, 이민영 옮김 / 김영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청안 스님이 제목을 이렇게 정한 데에는 숭산 스님에 대한 각별한 마음이 담겨 있다. 꽃과 벌은 숭산스님이 고봉 선사와의 최후 선문답에서 즉여의 답을 내리자 고봉 선사가 네가 꽃이 되었는데 내가 춤추지 않겠는가!하고 덩실 춤을 춘 이야기를 말할 것이다. 그래서 꽃과 벌은 줄탁동시의 이야기이자 우주의 피어난 아름다운 인연의 이야기일 것이다. 청안 스님의 법문에는 숭산스님의 기운과 어투가 그대로 살아 있다. 숭산스님은 가신 것이 아니라 여러 제자들의 가슴에 그리고 여기에 그대로 남아계신다. 어리석은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이제야 비로소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즈음에 이 책을 만난 것이 반갑다. 하루 공부의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하고 낮에는 그 공부의 이어짐이 있어야 공부의 진전이 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다시 공부방법에 대한 귀중한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당장 불교 서적으로 달려 나가야겠다. 절방법론에 대한 책을 찾아보니 서재지인의 리뷰가 하나 올라 있다. 아침시간을 좀 더 일찍 일어나서 108배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과중 틈틈히 반야심경 정도의 경전 염불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중생인 나로서는 사실 하루에도 몸으로 짓는 그리고 입으로 짓는 업들이 많다. 그것을 순간 순간 부처님께 바치거나 정화하지 않고서 공부가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백성욱 선생님 말대로 미륵존 여래불 하고 순간 순간 바치는 것이 공부가 된다. 하지만 공부가 정착되기까지는 이런 저런 방편들을 사용하면서 자신에 몸에 맞는 옷을 고르듯 맞추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몸이 출가를 해서 출가인의 생활을 따르자면 그대로 맞추어서 생활하면 되지만 일상인으로서 방향도 없이 공부하는 나로서는 이런 좌충우돌을 두려워할 필요도 주저할 필요도 없으리라.

  한 사람의 지혜로운 사람이 나오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드리우는 광채가 크다. 그 주변의 사람들이 생활을 지혜롭게 하고 또 지혜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 아직 익지도 못하고 세상에 나아가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을 스님은 "장님이 장님을 이끌고 간다"라고 표현하였다. 눈이 밝아야 상대방의 업장을 바로 보고 깨뜨려 줄 수 있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스님이 책 내내 강조하신 이 말씀을 옮겨보도록 한다.

 "내일 죽으면 어떤 몸을 받을 것인가? 이것이 마음의 가장 중요한 질문 아닌가. 서둘러라, 서둘러.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구름은 천상까지 떠다닌다."

  한 사람의 깨달은 이가 나오면 그 사람의 할 일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의 입장이 된다고 했다. 그 깨달음의 깊이와 정도에 따라 주변의 사람들인지, 국가와 사회를 위할 것인지, 전 인류를 위하는 것인지, 나아가 온 우주와 생명의 세계가 될 것인지 결정 된다. 그렇다고 수행하는 사람이 자신만 보며 살 것은 없다. 성인들의 모습을 따라야 하니까. 바로 내 옆의 사람에게 옮겨가는 화가 나에게서 멈추도록 노력하고 바로 내 옆의 사람의 마음에 환한 밝음의 꽃 하나 피워내도록 그렇게 살면 되는 것 아닐까?

  꽃이 피어나면 벌이 모여든다. 한 사람의 깨달은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에게로 정신적인 양식을 찾아 사람들이 모여든다. 같은 이치다. 그리하여 또 깨달음은 촛불이 옮겨가듯 옮겨가고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정신적양식으로 먹고 사는 세상, 우주가 바로 극락천지이며 우아한 우주가 아닌가?


댓글(5)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2-0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달팽이님 평안하시지요.
달팽이님 글 보러 들렀습니다.


달팽이 2007-02-05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한사님.
입춘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걸음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혜덕화 2007-02-0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안 스님 만나셨군요. 축하합니다.
책으로 만난 인연이라도, 육신의 만남 못지 않음을 많은 서재인들의 글을 통해 느낍니다. 생활 속에 수행이 자리 잡기를.....

짱꿀라 2007-02-0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깨달음은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나 봅니다. 늘 올바른 깨달음을 위해 삶 자체가 진실되어야 할 텐데 저는 그러지를 못하니...... 좋은 하루 되세요.

달팽이 2007-02-06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에겐 이미 그 가능성도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타님의 방대하고도 멋진 자료에 요즘 제가 사료의 호사를 누립니다.
감사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 - 암자에서 만난 성철 스님 이야기
정찬주 지음, 유동영 사진, 송영방 삽화 / 열림원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不欺自心


사실 이 책을 사기로 결정한 데에는 성철 스님의 자필 인쇄본 윗 글이 동봉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책을 먼저 받자마자 이 글을 펼쳐보며 ‘자기를 속이지 말라’ 무슨 말일까? 하고 한참을 쳐다보았던 생각이 난다. 때때로 우리는 사람들이 사람을 속이는 경우를 접할 때가 있다. 그것이 선의에 의한 것이든 악의에 의한 것이든 그 말을 하는 사람 스스로의 마음에선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에 거짓을 증하게 된다. 그러니 요행히 인간관계에서 그 결과를 자신이 직접 받게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선량한 마음 속에 찍은 거짓된 마음의 인과는 피할 길이 없다.


때로는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어떤 약속 같은 것을 한다. “나는 앞으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라든지 “앞으로는 남들 앞에서 특정인을 욕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라든지 “앞으로는 부지런히 공부하겠다”라는 다짐의 약속을 한다. 하지만 그 약속이 삼일을 넘겨서 초심이 지속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볼 때에도 확 불붙는 듯한 약속이나 다짐을 하기보다는 끊일듯말듯 하면서도 꾸준하게 하는 다짐이나 약속이 더욱 신뢰성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자신에게 너무나 철저한 분이셨기 때문에 불같은 약속을 스스로에게 한 경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으셨다. 자신이 일생의 큰 뜻을 품고 공부하는 것과 관련해서 그 약속은 더욱 철저했으며 일반대중이 보기에는 너무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를 모른체하고 만나주지 않는다던지, 자신을 찾아온 속가 아내를 내쫓는다든지, 환속시키기 위해 찾아온 아버지의 입에서 ‘부처가 나의 평생 원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셨다.


그런데 한번은 이 말씀을 자신의 본성을 속이지 말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본래 부처임을 잊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 물론 내가 타인에게 또는 내 스스로의 생활상의 약속도 다 못 지키며 사는 세인이지만 이렇게 마음을 돌리니 그 긴장성과 더불어 내 마음을 돌려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성철 스님에게 있어서는 큰 진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신 분이니 일상생활이 수행이요 수행이 일상생활이었으니 일반인인 우리에게 있어서의 생활 속의 자기와의 약속과 자신의 본성을 속이지 말라라는 뜻이 다르지 않았을 터이다.


이렇게 마음을 두게 되면 자연히 “그러면 과연 나의 본성은 무엇인가?” “원래 내가 부처라는데 그 부처의 자리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지속되다가 보이는 모든 사물이 ‘불기자심’하게 된다. 마치 모든 사물에 글자를 붙여놓은 듯 그것이 마음으로 계합되는 경우가 생긴다. 원택 스님도 해인사에 와서 삼천배를 하고 이 말을 받아 서울로 갔다가 생활하던 중 이 말을 다시 새기게 되고 그렇게 출가를 하셨다. 아마 그 분의 마음 속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던 성철 스님의 그 마음이 담긴 화살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언제이던가? 제일 처음 공부에 입문하고자 책을 편 것이 성철스님 시봉일기라는 책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읽었던 백일법문에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읽었던 신심명 증도가에 돈황본 육조단경까지 하면 옛날에 출판되었던 “고경”이란 책을 구하지 못해 단행본으로 나온 책들을 나름대로는 구해 읽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철스님의 글이, 그 힘이 넘치고 포효하는 듯한 글이 나름대로 친근함으로 수용되어진다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고 스님의 책 두 권을 더 보관함으로 담았다. 이제 몸으로 스님을 만날 수 없으니 남긴 글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쫓아 보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