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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76년에 초판이 발행된 후 25여년이 지낚지만 그의 글들은 우리 사람에 절절한 가르침을 준다. 자신이 살아가는데 정작 필요한 것은 몇 가지 되지도 않는데, 우리는 어쩌면 너무나도 많은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의 마음속에도 일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많은 것을 소유함으로써 갖게 되는 마음속의 집착과 동요, 그로 인한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글에는 마음속의 평화와 기쁨을 얻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화분을 버림으로써 마음 속에 갖고 있던 화분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떨쳐버림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안도감 그리고 기쁨을 얻게 되었다는 그의 배움은 현실에서 자신이 가진 지위와 소유한 부의 정도에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는 속세의 판단기준에 대한 물음과 가르침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언가가 내 것이다 하는 집착 속에 그것을 배타적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이 일고 그 욕망 때문에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잃지 않기 위해 갖게 되는 마음의 집착과 불안, 그로 인한 고통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자신의 가진 것들을 자꾸만 버림으로써 마음을 비우는 그의 행함과 그로 인한 가르침은 우리 마음 속에 일고 있는 집착과 고통을 버림으로써 마음 속에서 가득히 차오르는 평화와 기쁨을 누려보라는 자비의 마음이 아닐까?

몇 일 전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지역 일간지에 글을 실어 달라는 청탁을 겸손한 마음으로 정중히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는 신문에 글을 실어 자신의 흔적을 남김으로써 존재의 욕구를 드러내고 명예를 소유하고자 하는 세인들의 욕망을 나무라듯이 한없이 겸손해짐으로써 그 이야기를 접하는 나에게 큰 배움을 주었다. 이렇듯 소유함으로써 얻는 것보다는 '크게 버림으로써 큰 배움을 얻는 것이다'는 옛 가르침을 일상의 사소한 것들의 잃고 얻음에서 마음을 상하는 우리들의 생활에서 좋은 교훈으로 받아들였으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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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편지
법정 지음 / 이레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법정 스님의 이 글들은 강원도의 어느 두메 산골에 자리잡은 오두막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연이 내는 소리에 귀담아 자연이 전하는 깨우침의 메시지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사실 이 오두막 생활은 그에게 있어 수도생활이다. 작은 일상의 단면에서 마음을 몰입함으로써 얻게 되는 세상과 사물이 가진 본질적 속성을 담백하고 깨끗한 이야기로 제시함으로써 물질주의의 횡포에 시달리며 온갖 감각의 지배하에 살면서 투명한 마음의 눈을 갖지 못하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다.

하지만 이 글은 흔히들 얘기하는 수도승의 수행과는 좀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많지는 않지만 스님의 몇 안되는 글 중에 담긴 정치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는 그 색깔을 더욱 뚜렷하게 한다. 차라리 이런 글들은 책에 담지 않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도를 추구하는 자는 속세의 일을 멀리하고 오로지 정진하는데 몰입하더라도 그의 삶과 깨달음은 중생들에게 더욱 큰 감화를 주게 됨을 성철스님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속세에 대한 그의 가르침 한 수는 오히려 아껴 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상생활에 대한 편안한 소재에서 출발하여 삶과 생명 그리고 우리 인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짐으로 해서 우리가 생활 속에서도 좀 더 깊은 생각과 침잠을 통해 삶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바로 '순박하고 진실한 마음이야말로 도의 터전'이라는 그의 말은 이기심과 욕망의 폐해가 우리들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 멍들게 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간직할만한 교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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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시봉이야기 1
원택 지음 / 김영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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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다른 잡념이 티끌조차 생기지 않고 책에 몰입이 되는 그런 이상한 책이라는 점이다. 성철스님을 시봉하던 원택스님의 마음으로 들여다 본 부처의 세계가 바로 이 책에 담겨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불교지식이나 교리가 아닌 참선을 통해 참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성철스님의 말은 돈오점수가 아닌 돈오돈수의 사상으로 나타나며 그것은 동정일여(動靜一如)에서 몽중일여(夢中一如)를 거쳐 숙면일여(熟眠一如), 즉 寤寐一如의 경지에 이르러야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과 일치한다.

데이비스 호킨스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에 보면 세계의식 또는 의식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하고 인간은 누구나가 의식을 집중하면 그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성철스님이 1300만 불자 앞에서 종정스님으로 한 첫 말이 '나를 믿지 말어, 나의 말에 속지 말어'라고 한 뜻이 바로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부처를 만나라고 한 의미와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속에 있는 부처에 다다르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세속을 멀리하라고 가르치는 스님들의 말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바뀐다. 인간의식은 위대하며 그것은 절대의식과 닿아 있는데 그것이 속세의 온갖 일들로 인간의식에 닿는 길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절대의식을 느낄 수 있는 가장 경건한 시간은 그러한 속세의 일들과 잠시 떨어진 숙면의 시간이며 따라서 성철스님은 화두를 안고 숙면까지 간 이후에야 깨달음이 있다고 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위대한 의식, 절대의식과 닿아 있는 숙면에까지 화두를 안고 가야 비로소 그 답이 풀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선 우선 동정일여와 몽중일여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인데, 동정일여라도 제대로 하자면 바로 인간의 온갖 욕망과 집착과 감각과 감정들이 사라진 무념의 평화로운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고 따라서 속세의 연을 끊는 것은 그것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속세에서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속세에서는 동정일여와 몽중일여 숙면일여를 거쳐 깨달음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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