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색 ''대나무코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느냐?/ 저렇고 사시(四時)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조선 중기 시인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선조들은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를 절개 있고 강직한 군자의 인품에 비유하며 남다른 애정을 표현해왔다. 그런데 대나무에 대한 사랑이 우리 민족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으니, 중국과 일본의 문화 속에서도 다양하게 표출됐다.

이 책은 한중일 3국의 역사와 문화, 생활 속에서 대나무가 어떻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상희 전 내무부 장관 등 20여명의 저자가 대나무와 관련된 3국의 문화를 낱낱히 비교·분석했다. 이는 한중일 문화코드 일기로 기획된 시리즈의 하나로, ‘매화’와 ‘소나무’에 이어 세 번째 주제이다.





◇청나라 화승 석도의 작품 ‘여왕원기학작난중파석도’


“고기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 서예 대가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 역시 “어찌 하루라도 ‘이 사람(此君)’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며 대나무를 사람처럼 여기며 아꼈다. 대나무가 이처럼 문인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과 쉽게 동화될 수 있는 식물이면서 동시에 의연한 선비의 기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절개를 지킨 인물의 일화 속에 대나무가 빠지지 않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중국 위진(魏晋) 교체기 끝없는 전쟁을 피해 대숲으로 들어간 ‘죽림칠현’과 고려를 부정하는 역성혁명에 반대하다 철퇴로 척살된 정몽주가 숨진 선죽교(善竹橋), 구한말 을사조약에 반대하며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이 숨진 곳에서 자라났다는 혈죽(血竹) 등 모두 대나무로 그 절개가 기려진다.

한국과 중국의 경우 대나무는 선비의 문화코드로 작용했지만, 일본에서는 상업적 코드로 기울어 세속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무사들은 대나무로 만든 다구(茶具)를 모으고 즐겼으며, 상인들은 대나무를 이용한 상품 개발에 일찍부터 눈을 떴다. 대나무를 상징화한 행사도 다양하게 개발됐다. 에디슨과 일본 대나무의 인연도 특별나다. 1879년 백열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은 6000여가지 재료로 실험했지만 실용화 단계의 전구를 개발하는 데는 실패한다. 그런 이를 구해낸 것이 일본 야와타(八幡)의 오토코야마 대나무. 에디슨은 이 대나무를 이용해 1450시간 동안 빛을 밝히는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이후 텅스텐 필라멘트가 대체할 때까지 대나무 필라멘트 전구가 세상을 밝혔다. 야와타 시민들은 이를 기리기 위해 지금도 에디슨을 대나무 상징으로 바뀌 신처럼 모시고 축제를 벌인다.





◇대나무를 본떠 만든 타이베이 101빌딩


대나무의 이중적 성격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대나무는 풀인가 나무인가. 이름에 ‘나무’가 들어 있으니, 나무인듯 싶지만 벼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열대우림지역에서 잘 자라는 대나무는 물과 친하지만 중국에서 폭죽의 소재로 사용되는 등 불의 상징도 갖는다. 대로 만든 붓은 선비를 상징하지만 창과 화살은 무사를 뜻한다. 문구와 무구의 소재로 동시에 사용되는 대나무는 문무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받는다. 곧디곧은 성질로 유명한 대나무지만 항상 그런 성정을 지킨 것만도 아니다. 대나무는 한번 뿌리박은 자리에서 함부로 옮겨 심으면 죽는다. 그런데 일 년에 한번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날이 있으니 음력 5월13일 죽취일(竹醉日). 선조들은 대대로 이날 대나무를 옮겨 심으면 뿌리가 잘 내린다고 믿었다. 아무리 고매한 선비라도 일 년 내내 맑은 정신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일탈과 여유의 미학이 드러난다.

생활 속 대나무는 플라스틱 등 다른 소재에 상당 부분 그 역할을 잠식당했지만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쉰다. 조그만 이쑤시개부터 김밥을 만드는 발, 치약과 각종 건강식품은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고 죽비와 대금, 해금으로 변신한 대나무는 사람들의 사랑과 감정을 대변하고 깨달음의 도구로 사용된다. 저자들은 한중일 3국의 정신문화 속에 대나무의 기강과 절개는 여전히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높이 508m의 대만 타이베이 101빌딩. 대나무의 마디를 형상화해 만든 이 초고층 빌딩은 대나무의 절개와 영성을 믿는 인간의 믿음과 함께 지구상 가장 큰 ‘대나무’로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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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디스토피아, 그리고 아이들의 일그러진 영웅
[조선일보 김태훈 기자]
 
  
‘얼굴없는 소설가’ 듀나(Djuna)가 네번째 소설집을 펴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태평양 횡단특급’을 낸 지 3년여 만이고 첫 소설집인 ‘나비전쟁’(1997) 이후로는 9년 만이다. 네 권의 소설집이 나오는 사이, 그(혹은 ‘그녀’)는 사이버 공간을 점령했고, 이어 오프라인에서도 만만찮은 인기를 과시하는 대표적 SF 문학 작가로 자리잡았다.

전보다 유명해졌고(영화평론 분야에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에 대한 세간의 호기심도 강렬해졌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장막 밖으로 나오길 거부했다. 이메일로 이유를 물었더니 “익명성이 편하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소설상 수상자가 되면 상금 받으러 나오겠느냐”고 다시 묻자 “온라인으로 송금받겠다”고 했다.

이번 소설집은 ‘대리전’을 비롯해 ‘토끼굴’ ‘어른들이 왔다’ ‘술래잡기’ 등 네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리전’은 부천이라는 실제공간을 무대 삼아 벌이는 우주인과 지구인의 전쟁 이야기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외계인의 지구 유람을 안내하는 관광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독특한 것은 외계인들의 여행 방법. 지구는 너무 멀어 우주선을 탔다가는 도착하기도 전에 늙어 죽는다.

외계인들은 인터넷망과 흡사한 엔시블이란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신의 정신을 인간의 몸 속에 전송하는 방식, 즉 인간의 뇌를 숙주삼아 기생충처럼 여행하는 방법을 고안한다. 그렇다면 너무 멀어 방문하기도 힘든 행성과 어떻게 전쟁을 벌인다는 걸까.

듀나는 ‘우주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를 침공한다’는 SF 고전들의 상투적인 가정을 버리고 지금까지의 SF들과는 다른 괴상한 전투 풍경을 만들어냈다. 비행접시는 커녕 광선총 한 자루도 가져오지 못하고 오직 네트워크를 통해 정신만을 전송할 수 있는 그들은 인간의 마음을 점령해 다른 인간을 공격하는 대리전을 택한다. 그런데 그 대리전의 풍경이 아주 고약하다.



배가 나온 아저씨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장난감 권총이나 손전등 총으로 싸워댄다. 영락없는 애들 전쟁놀이. 그것이 우주전쟁이란 걸 모르는 이의 눈으로 본다면 얼마나 볼썽사나운 광경인가. 듀나는 이처럼 어이없고 코믹한 풍경의 우주전쟁을 그려냄으로써 전쟁을 조롱하고 그런 전쟁이나 일으켜 대는 현실세계의 한심한 어른들 또한 절묘하게 비웃어 버린다.

함께 수록된 나머지 세 편에서도 어른과 그들의 세상에 대한 조롱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소설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을 적대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동경한다는 점에서 윌리엄 골딩이 ‘파리대왕’에서 그린 어린이 유토피아의 궁극적인 실패, 우울한 디스토피아(distopia)적 세계관과 맞물린다.

작가는 또한 화자로 하여금 실체가 없이 오직 정신으로만 존재하는 외계인에 대해 끝없이 존재의 진위를 의심하게 한다. 실체는 없고 정보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사이버공간)는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정교하게 조작된 거짓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경고이다.

따라서 듀나의 소설을 읽을 때는 ‘그그그카탕모그무인’ ‘퐁야퐁야’ 등 그가 말장난을 위해 만들어낸 단어들에 키득대며 재미있어 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벼운 문체와 언어의 유희 속에 숨겨둔 현실 비판과 풍자까지도 함께 읽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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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차 한잔


[조선일보 신용관 기자]

‘항다반사(恒茶飯事)’란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처럼 늘상 일어나는 일을 일컫는다. 차는 그만큼 예전부터 우리네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차의 은은한 맛을 즐기는 인구가 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다인(茶人)들은 21세기는 ‘차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중국차의 이해’(다도)의 저자는 몸에 좋고 입에도 달짝지근한 봉황단총, 인고(忍苦)의 노력 끝에 탄생하는 천량차, 향기에 취하는 차 벽라춘 등 중국 명차(名茶)의 종류와 만드는 과정을 세부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같은 잎 다른 맛 중국차 이야기’(안그라픽스)는 중국차의 과거와 현재를 작은 판형에 꼼꼼하게 담았다. 생으로 씹어먹던 차를 물에 달여 먹기 시작한 진한시대, 중국 차 문화 형성시기인 당나라 시대 등 시기별 개관과, 색·맛·향·형태가 우수한 중국의 10대 명차가 정리돼 있다.

‘산사에서 만든 차’(정리퍼블리케이션)에서는 우리 불교문화 속에서 이어져 온 한국의 전통 차문화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쑥차·국화차·죽향차·매화차 등 산사(山寺)에서 전수해온 스님들의 계절별 차 만들기 비법이 정성스레 찍은 사진과 함께 소개된다.

차 만드는 사람들’(김영사)은 한국차(茶)의 원형을 구현하기 위해 야생차밭과 다기(茶器) 장인을 찾아 전국을 누빈 차 순례기이다. 오랜 세월 나름의 제다(製茶) 법을 발전시켜 온 다인(茶人)들의 비법부터 차살이를 예술로 승화시킨 장인(匠人)들을 만날 수 있다.

‘차도구-차생활의 모든 것’(솔과학)은사라져버린 다구(茶具)가 아닌 이 시대에 실제 사용하고 있는 다구를 중심으로 실용성과 조형성에 역점을 두어 서술했다.

‘차의 과학’(대광서림)에서는 건강 음료로서 차의 면모를 알 수 있다. 항산화 작용, 항암작용, 콜레스테롤 저하작용 등 차의 여러 기능과 화학성분이 설명돼 있다.

◆‘항다반사(恒茶飯事)’란

밥 먹고 차 마시는 일처럼 늘상 일어나는 일을 일컫는다. 차는 그만큼 예전부터 우리네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차의 은은한 맛을 즐기는 인구가 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다인(茶人)들은 21세기는 ‘차의 시대’가 될 것이라 고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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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만나다!!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영화와 책을 좋아하다보니 종종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쩔때는 원작을 읽고 영화를 만날때도 있고, 영화를 보고 원작을 만날때도 있지요.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먼저 선택했던 작품이 좋아서 찾게되는 경우도 있구요.)

어떻게 만나냐에 따라 영화와 책이 주는 재미가 다른것 같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원작을 둔 영화들이 참 많더군요.
한번쯤 영화와 책을 비교해보는것도 좋겠다 싶어서 제가 본것을 위주로 정리해볼까해요.

그 많은 리스트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솔라리스'랍니다.
스토리가 강력하게 뇌리에 남았다기 보다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었거든요. 소설과 영화 둘다 말이죠.

'솔라리스' 같은 경우는 저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영화 '솔라리스'를 먼저 접하고 책으로 만났습니다.
솔직히 영화 속 엔딩을 잘 이해를 하지 못해서 책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보상받으려 했었거든요.
(
영화를 보기 전에 '솔라리스'라는 책이 있다는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그리 염두에 두던 책은 아니었었어요.)

하지만, 왠걸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소설과는 다른 엔딩을 내었던것입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도 있다는걸 아는데도 여건상 구해보기가 어렵네요.

대체적으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가 더 좋다는 평이 있어서 언젠가 꼭 봐야할것 같습니다.
뭐, 그래도 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영화도 좋았습니다.

소설과 영화중 선택하라고 하라면 선택하기 힘들만큼 말이죠.
소설을 읽는데,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어떤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 재미있을수도 재미 없을수도 있습니다.^^

 

  책은 솔라리스 행성에 더 많은 초점을 두었습니다.
  어찌보면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는데요. 
  책을 읽다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손을 놓을수 없는 책이 있는가 하면,
  너무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재미없는것도 아니고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낌이 좋은 책이 있잖아요.   '솔라리스'가 후자인 경우예요.
  그런면에서 볼때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것도 나쁘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영화의 영상이 책을 읽을때 많은 도움을 주거든요.

물론, 영화를 재미없게 보신분이라면 원작을 좋아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드네요. 그리고 책 겉표지도 무척 마음에 들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푸른 색을 좋아하는 탓도 있을것 같습니다. 행성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봐야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만한 논점인데, '유년기의 끝'이 생각이 나더군요. 솔라리스의 가장 큰 매력은 복제 능력이라고 봐요. 영화도 그점은 놓치지않지요.

 

그런 반면에 영화는 주인공의 사랑에 더 초점을 맞춘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면이 다른분들에게 외면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지만서도...  
만약 원작 소설을 알고 선택했다면,  
이 영화가 다른 SF와 다르게 액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르겠네요.  
SF액션으로 이 영화를 선택하셨다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서 이 영화가 더 마음에 들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면... 정말 꿈과 같은 현실이지요. 물론 같은 사람이라면 좋으련만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겉모양만 같을뿐 인간을 구성하는 입자는 완전히 다른 입자거든요. 정확히 말해 사물의 형상만 복사한거라 말할수 있네요. 그런면에서 영화는 비지터의 고민도 함께 다룹니다. 과연 복제된것은 존재하는것으로 인정해야할까요? 말아야할까요?


 
  기회가 되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도 보고 싶네요.
  꽤 상영시간이 긴걸로 알고 있지만 말이죠. ^^
  솔직히 그의 작품 '희생'을 보고 제가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잔 기억이 있지만...
 
  과연 스티븐 소더버그는 안드레이의 작품을 리메이크 한것인지,
  아님 소설을 영화화 한건지도 알고 싶거든요.
  
 

 

관련 품목들

 솔라리스의 구판 - 개정판의 일러스트가 훨씬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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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7-1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 한표입니다. 그의 영화는 한 편의 시 같아요. 이후에 소더버그의 영화를 봤는데 적응이 안되던걸요.
 

해리포터 시리?6권 '해리포터와 혼혈왕자'가 발간 하루만에 1억 달러의 수입과 함께 각종 진기록을 세우며 지구촌을 강타했다.

그런 와중에 이 책의 발간 하루 전날 개봉된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잊혀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개봉 첫 주 미국과 프랑스에서 흥행 1위를 달리며 초콜릿 마법도 만만치 않은 흥행돌풍을 불러 일으켰다.

1964년 출간되어 전세계 32개 언어로 번역돼 40년 동안이나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동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0. 시공주니어)에도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두번째 영화화된 로알드 달의 가장 뛰어난 작품

로알드 달(Roald Dahl. 1916?1990)은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과 같이 영국출신이다. 그런데 그가 작가가 된 사연이 재미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왕립 공군의 전투기 파일럿으로 참전했다가 이집트에서 격추 당한 후 '머리에 기념비적인 한방을 얻어맞고서' 미국으로 건너가 소설가가 되었다. 그의 달변에 유혹 당한 부인은 당대의 여배우인 패트리셔 닐이다.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1964년 출간 이후 줄곧 스테디셀러로 1천 300만 부가 팔려나간 아동문학의 고전이다. 영국과 미국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교과서보다 더 자주 읽히며, 로알드 달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졌고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유명하다.

로알드 달의 다른 작품인 '멍청씨 부부 이야기'나 '마녀를 잡아라' 등에서는 수염에 곰팡이가 핀 멍청씨나 징그러운 마녀 등 기괴한 주인공이 많다. 하지만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꿈과 환상의 세계인 초콜릿 공장이 등장한다. 대도시 변두리 판잣집의 찢어지게 가난한 찰리가 찾아가는 판타지의 현장이 동화의 세계요 환상의 세계인 것.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이번에 개봉된 팀 버튼 감독 작품 이전에도 한차례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1971년의 영화 제목은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이었다.

로알드 달의 탄탄한 원작의 힘을 바탕으로 재 탄생한 두 번째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판타지를 쏟아 놓았다는 평.

원작에서 등장하는 초콜릿이 흐르는 강에 거대한 폭포, 사탕이 열리는 나무와 설탕으로 만든 보트까지, 1억 5천만 달러라는 제작비를 들여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를 섬세한 화면으로 재현해 냈다. 초콜릿 공장이 놀이터를 뛰어넘어 스펙터클까지 제공하는 한판 '마술 공장'으로 변신한 셈이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미국 현지에서는 팀 버튼의 환상적인 비주얼과 조니 뎁의 제대로 된 변덕스런 연기를 흥행 요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또 어렸을 때 원작과 영화를 보고자란 부모세대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가를 찾아가리라 예상했다. 이렇게 세대를 뛰어넘어 판타지를 공감하는 작품이 된 셈이다.

더욱이 조니 뎁 팬들은 물론 '가위손' '에드우드' '슬리피 할로우' 등에서 찰떡궁합을 과시해온 팀 버튼-조니 뎁의 재결합은 천연덕스런 판타지로 재현되었다는 평가다.

불가사의한 '초콜릿 마법' 스크린 넘어 다시 책으로?

역시 찰리보다는 월리 웡카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신비의 인물이다. '가위손'에서처럼 조니 뎁이 연기하는 괴팍하고 불가사의한 매력이 듬뿍 묻어난다. 원작을 토대로 했다지만 영화 속 달라진 점을 짚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대도시 변두리에 찢어지게 가난한 찰리는 친 조부모와 외 조부모, 부모와 함께 살며 추위와 끼니를 걱정하며 산다. 그가 가장 먹고 싶은 것은 초콜릿. 1년에 단 하루 생일에 선물을 받아야 먹을 수 있다. 그것마저 아끼고 아껴 1달 동안 조금씩 배어먹는다.

그러나 그보다 더 끔찍한 고문은 찰리 집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어마어마한 초콜릿 공장이다. 공장 너머 800미터까지 퍼져 나오는 초콜릿 향기. 하루종일 허기에 시달리는 찰리가 간절히 먹고 싶은 건 '늘 속도 든든하고 맛도 있는 것' 바로 초콜릿이다.

찰리가 가고 싶어하는 초콜릿 공장엔 비밀이 하나 있다. 녹지 않는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의 제조비법이 스파이에 의해 빠져나간 후 공장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나 새 초콜릿은 계속 생산된다.

10년만에 다시 나타난 월리 웡카가 초콜릿 속에 5개의 황금초대장을 넣어 발매한다. 티켓을 찾아낸 어린이들은 평생동안 초콜릿과 사탕을 공짜로 먹을 수 있게 해주고, 베일에 싸인 초콜릿 공장을 견학할 자격을 준다.

마침내 찰리는 황금초대장을 손에 쥐고 5명의 어린이, 부모들 9명과 함께 기상천외한 초콜릿 공장으로 들어간다. 월리 웡카의 초콜릿 마법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영화에서 찰리는 아버지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초대받은 어린이도 미국의 어린이 5명이 아니라 영국 미국 독일 등지에서 황금티켓을 찾은 아이들이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서였을까. 남미의 어느 나라에서 마지막 티켓이 발견되었다가 위조된 걸로 나타나 긴장감을 높인다. 공장 동반자도 단 1명이지만 원작에서는 찰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부모와 함께다.

이런 작은 차이를 제외하면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다는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9월 한국 개봉과 함께 로알드 달의 책에 날개를 달아줄지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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