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추리소설의 결정체
[오마이뉴스 정아은 기자] 세월을 따라 나이를 먹으면서 한 가지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의 핵심에는 결국 개개인의 인간이 있다는 것. 커다란 사업의 영업도, 한 나라 영수의 통치행위도, 작게는 한 가정의 자잘한 대소사도 결국 개개 인간의 품성과 특성이 그 당락을 좌우한다.

옷 한 벌을 만들어 팔 때에도 영업의 성공가능성은 기술 자체에 있기 보다는 그 옷을 파는 영업사원의 눈빛과 품성, 사고방식, 그리고 그날의 분위기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 물품은 인간이 편하기 위해 마련한 도구에 불과한 것, 결국 핵심은 인간 개개인인 것이다.

 
퍼트리샤 콘웰 신작, 카인의 딸 1권 표지.
ⓒ2006 노블하우스
퍼트리샤 콘웰은 이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가 그려내는 최첨단 법의학 소설이 전세계적으로 대량의 독자군을 형성하게 된 것은 그녀의 소설 속에 나오는 고도의 법의학 지식 때문도 아니고 고도의 추리 소설적 기교 때문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을 품고 가는 한 개인, 케이 스카페타라는 여성 법의관이 한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자잘한 특성과 매력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내가 변함없이 분명하게 나만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이 집 복도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웨슬리는 대형 사건이나 특이한 사건들을 조사하느라 이곳저곳 다니지 않을 때면 나와 함께 지냈다. 늘 내 중심으로 사고하고 내 것을 챙기는 성향 때문에 웨슬리가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결혼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공동으로 소유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음을 이해했다. 나는 중년의 나이를 넘겼고, 가족이든 연인이든 내 숨입을 법적으로 나누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케이는 첫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살아가는 법의관이다. 주로 살인현장에서 시체를 부검하여 살인의 동기를 추적하는 역할을 하는 케이는 시체의 살점을 직접 떼어내어 뼈를 검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뼈를 끓는 물에 삶아 남은 물질을 분석하기도 한다. 거친 현장에서 일하며 악랄한 범인들과 고도의 두뇌싸움을 하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범인을 죽이는 사태에 처하기도 하면서 케이의 성격은 냉정하고 개인적인 쪽으로 변해간다. 사람에게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잔인하고 지능적인 살인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케이는 주위 사람들-연인, 친구, 직장동료, 조카 루시-과의 갈등관계를 자꾸만 반추해보곤 한다.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그리고 의도와는 다르게 자꾸만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는 대화. 갈등관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친지이면서 동시에 함께 일하는 동료이기도 한 루시와 함께 연쇄살인 사건의 현장 사이를 드나들던 케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충격적인 이별을 맞게 된다.

케이가 맞은 이별은 주위 모든 이들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로 남는다. 인간이기에, 그리고 특수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기에 겪게 되는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오열하며 자신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되는 케이. 그런 케이에게 내미는 주위 사람들의 손길. 케이는 그렇게 상처를 받고, 사건을 해결하고, 다시 주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

…차에서 먼저 내린 나는 진입로에 서서 마리노를 지켜보았다. 어둠 속에서 커다랗고 지친 몸뚱이를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연민이 느껴졌다. 마리노는 혼자이고, 틀림없이 사는 게 지옥 같을 것이다.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것도 많지 않으리라. 직업 때문에 할 수 없이 폭력을 사용해야 하고 그 외에도 인간관계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의 삶에서 변치 않은 건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대개는 친절했지만, 항상 따뜻하게 대해준 것은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인 마리노 형사를 바라보는 케이의 눈길. 그녀가 동료에게 보내는 이 연민어린 시선은 그녀가 자기 자신의 삶에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독자는 이 장면을 통해 케이와 그녀의 동료 형사, 그리고 인생이라는 험한 여정을 끝까지 걸어가야 하는 인류 전체에 대한 연민에 휩싸이게 된다.

소설 곳곳에서 사회 전반에 대한 콘웰의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쏠쏠한 재미이다. 대량학살로 목숨을 잃은 인디언들의 뼈를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베시 박사가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을 대하는 독자는 별안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에 대해 반추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인디언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추리소설이 얼마나 될까. 콘웰이라는 작가의 역량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이 박물관은 바닥에서 천장에 이르는 녹색 나무 서랍들 안에 3만여 개의 사람 뼈가 보관돼 있는 거대한 화강암 창고에 불과한 곳이었다. 그 뼈들은 미국 원주민들, 정확히 말하면 아메리카 인디언을 연구하는데 사용되는 귀중한 수집품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것들을 그들의 후손에게 돌려주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그 법안이 통과되자 베시는 의회에서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가 일생 동안 연구한 것들이 거의 대부분 실려 나가 이제는 문명의 때를 입은 서부로 돌아가게 된 셈이니 말이다

<카인의 딸>은 기존의 스카페타 시리즈가 가졌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같은 등장인물이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를 해결해가는 방식도 기존의 시리즈와 너무나 유사하다. 시신을 분석하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조금 더 적나라해지고 잔인해졌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겠다. 혹시 기존의 것과 조금 다른 추리적 기법이나 충격적인 새로운 패턴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굳이 읽어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케이 스카페타 박사의 인간적인 면모, 한 사람으로서 힘든 일을 겪고 아파하고 그를 극복하고 다시 시지푸스처럼 일상을 살아내는 끈질긴 모습을 따라다니던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 어떤 작품에서보다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의 케이 스카페타를 만나게 될 것이므로. 감정이입이 강한 독자라면 후반부의 어느 한순간, 눈물이 폭포수처럼 솟아오르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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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

집에서 기르는 개가 주인을 알 수 없는 물건을 물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양이가 다른 집 신발이나 헝겊 조각 같은 것을 물어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고양이가 사람의 손바닥 이하가 잘린, 그리고 손가락 두 개가 붙어 있는 손을 물어온다면 어떻게 하실래요? 일단 으스스 하세요?

‘20세기의 애드거 앨런 포’라고 평가 받고 있는 미국 퍼트리샤 하이스미스(Highs mith·1921~1995)의 단편집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민음사)를 권해 드립니다. 이 책에는 모두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요, 최근 번역됐습니다. 원래 1981년 첫판은 책 제목이 책의 맨 마지막에 실린 ‘검은 집’(The Black House)이었는데, 이번에 한국어 번역판을 내면서 두번 째로 실린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Not One of Us)로 바뀌었습니다.

이 책의 첫 단편 ‘고양이가 물어 온 것’을 보면, 단어 만드는 게임인 스크래블을 하던 등장인물들이 고양이가 물어온 사람 손목 때문에 경악하는 대목이 시작입니다. 하이스미스는 우리 무의식 속에 억눌린 상태로 존재하는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선남선녀인 것처럼, 고매한 인격과 교양을 가장하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주변 인간들은 얼마나 추악하고 독선적인 면을 감추고 있는가를 파헤치는 작품들입니다.

아, 하이스미스의 데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첫 장편 ‘낯선 승객’(1950) 또한 교환 살인이라는 색다른 소재와 낯선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차갑고 우울하고 거무칙칙하게 묘사하면서, 추리적으로 인생의 비밀을 파고 들어가는 수법은 어김없이 독자를 매료시키고 맙니다. 하이스미스가 무쟈게 재미있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로 유명한 앤서니 밍겔라 감독,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 프랑스의 클로드 샤브롤 같은 영화감독이 앞다투어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영화로 탐을 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탄생한 영화가 ‘리플리’, ‘미국인 친구’, ‘올빼미의 울음’ 등입니다.

이 책의 끝에 실린 ‘검은 집’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동네에 있는 폐가 한 채가 배경입니다. 한 무리의 중년층 사내들이 술집에 모여 ‘검은 집’이라고 불리는 그 폐가에 대해 허풍을 떱니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티모시라는 한 청년이 혼자서 그 폐가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폐가가 사실은 검은 집이 아니라 갈색이며, 오랜 세월 방치된 빈집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검은 집’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졌던 카리스마와 신비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용감하게 증명한 것이지요. 그런데 티모시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검은 집의 카리스마를 모독한 죄값을 받았던 것일까요?

하이스미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쥐가 오르가슴을 느끼듯 시도 때도 없이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스토리의 요정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면서 늘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는 것이지요.

설 연휴, 모두다 어딘가로 떠나고 없는 빈집을 홀로 지키고 계세요? 그렇다면 방마다 불을 환하게 켜놓고, 안방에 홀로 앉아서 이 책을 펴 들고 한편씩 그 으스스함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기에 있는 단편들을 읽고 설날 고향에 가시면 얼나들 앉혀 놓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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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어도 고속도로는 이미 주차장이다. 그렇다면 그 누구와도 부대끼지 말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친구 같은 책 한 권과 함께 당신만의 여행은 시작된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해 주는 데는 추리적 기법과 고고학, 사실과 허구가 버무려진 ‘팩션(fact + fiction)’만한 것이 없다. ‘이중 설계’(예담)는 바다 위에 뜬 것 같은 몽환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몽 생 미셸에 얽힌 이야기다. 11세기와 21세기의 두 이야기가 몽타주 기법처럼 교차되면서 “하늘에 오르기 위해서는 땅을 파야 한다”는 주문 속에 담긴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사라진 도시 우루아드’(현대문학)는 수메르 문명을 배경으로 한 고고학 스릴러.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풍부한 지식 속에서 추리적인 기법이 살아나는 이 소설에서 ‘3000년 전의 DNA 복제인간’은 놀랍게도 그다지 황당하지 않게 다가온다. 진짜 고고학의 세계를 알고 싶다는 독자라면 ‘고고학자 조유전의 한국사 미스터리’(황금부엉이)를 추천할 만하다. ‘한국 고고학의 산 증인’인 저자가 들려주는 발굴의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은 우리 역사가 이렇게까지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동양화 놀이’만 하고 있는지 안타까운 적은 없었는지? 그렇다면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도 한번 읽어볼 만. 저포·격구·쌍륙·투전에서 마작과 고스톱까지, 한국 도박의 역사를 흥미롭게 훑는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호칭에 혼란이 생긴다면 ‘한국 사회의 차별과 억압’(지식산업사)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존댓말과 반말로 이루어진 한국어의 특징이 한국 사회를 유사 신분관계로 뒤틀리게 하고 있다며, 반말을 없애고 서로 존중하는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내는 두꺼운 책에 도전하는 것도 한 방법. 29개 언어로 번역돼 8500만부가 팔렸다는 판타지 소설의 백미 ‘나니아 연대기’(시공주니어)나 고대 제국의 실체를 추적하는 ‘아틀란티스로 가는 길’(김영사) 등이 이런 책들.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마로니에북스)을 한 장씩 넘기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이 기회에 남들 다 읽었다는 ‘삼국지’를 독파해 봐야겠다는 사람이면 가장 최근에 나온 완역본인 ‘본 삼국지’(금토)를 추천할 만하다. 120회로 된 원 체제를 충실히 따르고 12가지 판본을 대조해서 낸 좋은 번역본이다. 하지만 너무나 친절한 해설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원본 삼국지'(범우사)를 권한다.

모든 게 다 귀찮다고? 그렇다면 소파에 누워 ‘코 파기의 즐거움’(씨앗을뿌리는사람)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코 파기라는 인간의 본능조차 부정하는 문명과 예절’을 사정없이 풍자하는 이 책은 그 내용을 실천하기가 무척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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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교사들이 남미로 간 까닭은?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
ⓒ2006 푸른길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의 저자는 19명으로, 이들은 여행 떠나기 전 1년 동안 자주 만나 토론하면서 '여행의 목적과 주제'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들의 24일간의 남미여행은 여행이 주는 낭만과 여유 보다는 여행의 목적을 답사에 두고 냉정하고 공정한 시각으로 여행지를 관찰하고 사진 찍기 등의 자료 수집에 우선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여행지에서도 매일 토론하면서 가장 냉정한 관찰자의 시각을 두고자 노력하였던 이들은 또한,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자주 모여 발표와 토론을 하고 글로 옮겨 다시 퇴고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였다고 한다. 이런 과정으로 <지리 교사들. 남미와 만나다>는 한권의 책이 되었다.

이들은 왜 하필 남미를 택하였으며, 여행자의 낭만적인 여정보다 답사자의 관찰과 사진 같은 자료 수집을 우선하였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리를 가르치고 있는 현장의 교사이기 때문이다. 내 발로 뛰어 다니면서 보고 느꼈던 것들을 통해 더욱 자신감 있고 실감나는 수업을 베풀어 주고 싶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뒤흔들, 아이들의 꿈을 채워 줄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싶었다."-머리말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남미로, 잉카는 '타완틴수요'로! 부르는 것부터

서문에서 이들은 두 가지 제안을 한다. 우리가 무심코 부르는 라틴 아메리카를 중남미나 남미로 부르자는 것과, 잉카를 그들 고유 이름인 '타완틴수요'로 부르자는 것. 중남미나 남미가 동아시아, 서남아시아처럼 지리학적인 순수한 구분이라면, 라틴아메리카는 침략자 라틴족의 문화에 대한 오만이며, 따라서 인종차별과 인권침해까지 포함하고 있다. 잉카는 어떤가?

'타완틴수요'는 마추픽추를 건설한 나라로, 유럽 인의 침략 당시 남미에서 가장 강력하고 넓은 영토를 형성하였다. 인구는 당시 조선보다 몇 배가 많은 2천5백만 명이었다. 타완틴은 4, 수유는 방향을 뜻하니 4방국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유럽 인들은 침략 당시 안데스를 중심으로 했던 이 광대한 나라를 잉카 제국이라고 불렀다. 잉카는 '왕'을 지칭하므로 잉카 제국은 '왕의 제국'이라는 뜻이다.

유럽 인들이 타완틴수요를 잉카 제국이라고 부른 것은 타완틴수요를 한 왕실의 나라로 폄하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대한 제국에 흠집을 내고, 국민과 왕실을 분리시키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일본이 일제 강점기에 조선을 '이씨 조선'이라고 부르며, 500년 이상 유지해 온 조선의 역사를 '이씨'라는 한 가문의 역사로 축소시키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잉카 제국'이라는 이름 대신 원래의 이름인 '타완틴수요'나 '타완틴수유'로 불러 주어야 마땅할 것이다."-책 중에서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고 여행지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여행자의 시각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며, 여행자가 어떤 시각을 갖는가는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 되고 결과는 달라진다.

이들은 왜 남미를 택하였을까?-우리가 남미와 만나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

지구의 반대쪽은 어떤 곳이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남미대륙을 직접 체험해보자는 것이다. 남미 대륙은 지구에서 가장 광대한 열대 밀림과, 안데스 고산지대에는 만년설이 쌓여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이 전개되기도 한다. 또한 안데스는 최근 서태평양의 활화산대를 연구하는 중요한 열쇠다. 첫째와 둘째 이유다.

셋째와 넷째는, 고산지대에 꽃피운 문명을 찾아보자는 것으로 12세기 잉카문명을 꽃피웠던 남미대륙은 지금도 여전히 고산 문화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독자적인 대륙문화를 발전시켰던 이들이 어떻게 전통을 잃어버렸는가를 찾아보는 것은 세계사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신대륙 발견과 침략, 식민통치의 3세기를 거치며 원주민은 대부분은 그들의 노예가 되어 그들의 발전과 부의 축적을 위하여 인권이 짓밟혀졌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그들만의 것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현재 침략자의 종교와 언어는 물론 우리들이 그들의 전통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은 식민통치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들이 남미의 전통복장이라고 알고 있는 옷은 침략자 에스파냐의 농민복장이며 가르마를 탄 가랑머리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문화와 남미 대륙 문화의 이식과정을 본다.

우리가 먹는 작물의 절반인 고추, 감자, 옥수수 등은 남미의 고대문명에서 발전된 것으로 세계의 많은 작물들의 기원지가 남미다. 하지만 오늘날 남미의 농업은 어떤가? 지금도 여전히 브라질 플랜테이션 농장에서는 커피와 사탕수수 등 유럽인들을 위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에서는 유럽인들이 가져온 소나 양을 사육하는 농목업이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이런 것들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누구의 노동력을 이용한 것인가? 농업이 요람이었던 남미가 오늘날 착취농업으로 전락하고 만 이유는 무엇인가? 남미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도 왜 여전히 가난하며 발전은 한없이 더디기만 한가? 대다수 원주민들의 가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것은 다섯째와 여섯째 목적이며 마지막으로 지구산소 주요 공급원인 열대우림 아마존을 둘러싼 개발과 보존을 묻기 위해서다.

이 책은 이런 물음을 바탕으로 한 여행의 결과물이다. 세계사와 남미의 고대문명, 지리, 현재의 국가, 사회적인 문제 등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풍성한 사진까지 알찬 답사자료다. 이들 19명의 교사들이 교실에만 머물지 않고 남미에 직접 찾아가 인문학적으로 배웠던 것을 확인하고 관찰하여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열정과 소신이 아름답다.

이 밖에도, 검은 강과 흰 강이 수 킬로미터를 나란히 흐르는 장관, 아마존 강 역사의 중요한 시점이 되는 돌고래 이야기, 체 게바라추키카마타의 구리 광산, 바다가 없는 볼리비아가 해군을 훈련시키고 있는 이유, 달의 계곡과 팜파스, 드넓은 소금 사막과 기둥도 침대도 모두 소금으로 이루어진 소금호텔, 사람 키보다 큰 선인장이 가득한 섬과 설탕산과 오렌지산, 커피와 와인과 삼바와 땅고(탱고), 세계 최고의 폭포 이과수 등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인디오'가 아니라 '인디헤나'라고 불러야

▶ 아메리카 원주민을 뜻하는 이 말은 에스파냐어로 인디오, 영어로 인디언이라고 하지만 대륙의 주인 원주민들은 이 말을 싫어한다. 이말에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경멸하여 '죠센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 있기도 하다.그래서 인류 학자들은 인디오나 인디언 대신 '인디헤나(indigena:원주민이라는 뜻)로 부른다.

원래 인디오(인디언)은 인도사람을 의미한다. 영어와 에스파냐어 두사전 모두 '인도사람/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오(인디언)이라고 불렀을까?

당시(15세기) 유럽은 후추나 다른 향료를 동남아시아로부터 비싸게 수입하고 있었고, 이슬람 상인들이 지리적 위치를 이용하여 많은 이윤을 남기자 직접적인 항로를 찾아 콜럼버스 일행이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아메리카를 인도로 알고 원주민을 이렇게 부른 것으로 아메리카 대륙이 침략당하는 역사를 포함한 치욕적인 지칭이다. 더 나아가 침략과 식민정책과 함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지칭이다(책 속에서 정리)

지리교사들, 남미와 만나다-지리교육 연구회 지평 / 2005.12.25 / 1만8천원

지리 교육 연구원 지평은 1995년 현장 지리 교육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던 7명의 고교 교사가 모여 스터디 그룹을 만들면서 그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지금은 10명이나 더 늘어 났지만, 아직도 소수의 스터디 그룹일 뿐입니다. 매주 또는 격주로 모여 학습 자료를 만들고 토론하며, 외국의 지리교과서도 분석하고, 또 필요에 의해 국내외로 답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지리교육에 공헌한 몇 가지 작은 결실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지리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답사를 다닐 계획입니다.(책 안표지에서)

http://geopyong.com에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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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라덴이 부시에게 권한 책 '인기 폭발'
[오마이뉴스 김명곤 기자] 지난주 아랍 언론 알자지라에 의해 공개된 테이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 부시 대통령과 미국인들에게 일독을 권한 미국인 작가의 책이 미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빈라덴의 일독 권유로 뒤늦게 베스트셀러가 된 윌리엄 블럼의 <불량국가>.
윌리엄 블럼(72)이 지난 2000년에 쓴 <불량 국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에 대한 안내서> (The Rogue State: A Guide to the World’s Only Superpower)가 그것으로, 이 책은 1월20일 현재 아마존의 '가장 많은 주문을 받은 책' 목록 20만5763위에서 26위로 껑충 뛰어오른 상태다. 이 같은 주문량 쇄도는 빈 라덴의 일독 권유가 있은 지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나온 결과다.

책을 쓴 당사자인 블럼은 몰려든 기자들에게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기쁘다"며, 미국의 다른 나라에 대한 개입이 적을 만들었다는 기존의 비판을 침착하게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책에 대한 빈 라덴의 언급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테러리스트 팬들은 거부하며 자신에게 테러리스트가 접촉해 온다면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일반 독자들보다는 진보계열이나 대학 강단에 더 잘 알려진 블럼은 주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해 온 전직 기자 출신이다. 그의 동료들은 블럼을 '대안 저널리스트'로 지칭하며, 그의 저작들이 많은 자료를 모아 총체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역사가적 탐구정신에 의해 쓰여졌다고 평한다. 그는 매달 '반제 보고서'(Anti-Empire Report)라는 이메일 뉴스레터를 발송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빈 라덴은 지난주 공개된 테이프에서 "만약 부시가 거짓말과 압제를 계속하고자 한다면 <불량국가>라는 책을 읽기를 권한다"면서 "그 책의 서문에는 '내가 대통령이라면 미국의 공격을 멈추게 할 것이다. 첫째, 나는 모든 미망인들, 고아들, 그리고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에 대해 사과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영원히 다른 국가들에 대해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할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전했다.

<프로그레시브> 편집자 "빈 라덴의 언급은 이 시대의 서평"

블럼의 팬이자 워싱턴 <프로그레시브 리뷰>의 편집자인 샘 스미스는 "나는 빈 라덴의 언급을 이 시대의 서평이라고 부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빈 라덴은 어떻게 블럼의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불량국가>가 이집트와 레바논에서 아랍어로도 출판되었기 아랍어판을 봤을 수 있다. 그러나 블럼의 책을 전부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정이다. 왜냐하면 그가 인용했던 구절은 <불량국가>에 나온 말이 아니라 블럼 저작선인 <세계를 죽음으로 이끄는 자유: 미 제국에 대한 에세이들>(Freeing the World to Death: Essays on the American Empire)의 뒤표지에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블럼은 9/11 테러사태에 대해서는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할 수 있는 보복행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21일 <워싱턴 포스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책이나 글의 주제는 '반미 테러리즘'이 미국 외교정책의 결과라는 것이다. 미 정부의 행위가 전 세계인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테러리즘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테러리즘은 수많은 정신병자들만이 저지르는 행위는 아니다. 우리가 같은 실수를 계속 되풀이한다면 소위 말하는 '테러에 대한 전쟁'은 마약에 대한 전쟁처럼 실패할 운명에 놓여 있다."

블럼은 이 책의 '왜 테러리스트들은 계속해서 미국을 괴롭히는가?'라는 장에서 미국이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되고 있는 이유를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독재자들에 대한 미국의 지원, 중동에 있는 미군기지의 존속,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에서 이스라엘 편을 드는 행위 때문이라고 열거했다. 이와 관련, 그는 "빈 라덴도 이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책에 대한 그의 언급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내 주장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미국정책이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이라는 반론에 대해 그는 이라크에서도 미국의 전술로 인해 많은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가정집을 폭격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시민들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행위는 테러리스트들의 행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블럼에 대해 크게 다루지 않았으며 그의 책에 대한 서평도 거의 싣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의 재야 학자 놈 촘스키는 발간 당시 블럼의 책을 칭찬한 바 있다.

"내 인생의 사명은 야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

현재 블럼의 책 <불량국가>와 <희망죽이기>(Killing Hope)는 영문판만 10만권 이상 팔렸으며, 번역본은 5만권 이상 팔려 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블럼은 "미 제국주의를 끝장내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진행을 더디게 하는 것, 적어도 야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 자기 인생의 사명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야수는 전 세계적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2002년 가을, <뉴욕타임스>에 이라크 전을 반대하는 전면광고 게재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하나기도 하다.

폴란드 출신 이민자의 아들인 블럼은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했으며, 1960년대 중반 미 국무성에서 낮은 직급의 컴퓨터 관련 일을 하기도 했다. 당시 공산주의에 반대하며 외교관이 되고자 했던 그는 베트남 전으로 인해 생각이 바뀌어 국무성을 떠났다. 그는 이후로 반체제 성향의 <워싱턴 프리 프레스>(Washington Free Press)를 설립하는 데 일조했다. 독일인 아내와 이혼한 후 혼자 살고 있으며 집에서 저술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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