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로렌츠

동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이 학문적 방법으로 정립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오늘날 ‘비교행동학’이라 불리는 이 학문을 말할 때면 1989년 86세로 세상을 뜬 ‘콘라트 로렌츠’를 떠올린다. 후세의 비평가들은 이 20세기의 대표 과학자를 가리켜 ‘동물학의 아인슈타인’으로 칭하기도 한다.

성공한 정형외과 의사를 아버지로 둔 로렌츠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했다. 회색기러기 까마귀 개 고양이 원숭이 등이 그와 함께했다. 이들 동물과 함께 살며 관찰한 내용을 담은 ‘솔로몬의 반지’는 세계 지성계에 잔잔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로렌츠는 회색기러기와 오랜 시간 보내면서 작은 몸짓과 울음소리만으로도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정도가 된다. 알에서 깨어난 회색기러기가 성장하면서 사랑을 느끼고 미워하는 것을 지켜보며 애증은 인간만의 특권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는 회색기러기의 알 굴리기 행동에 관한 연구로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동물 연구에 독보적인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그는 나치에 협력한 국가사회주의자였으며 우생학적 시각을 지닌 결점 많은 과학자이기도 했다. 과학저술가인 클라우스 타슈버와 베네딕트 푀거는 평전 ‘콘라트 로렌츠’에서 이처럼 로렌츠의 과학적인 성공을 평가하면서도 그의 어두운 과거도 그려낸다. 그에 대한 평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고 권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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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미술

비스듬히 누운 여자의 누드는 서양 회화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 중의 하나다. 여성은 거의 예외 없이 응시의 대상이다. 이는 남성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남성 중심의 미술사가 그 주범이다. 그 유명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도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없다. 진정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많았지만, 다만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대부분의 미술사 책이 남성이 만든 작품, 남성을 위한 작품, 남성이 위대하다고 평가한 작품만을 다뤄왔다는 평가다.

저자는 한 미술관의 소장품을 예로 든다. 미국 페미니스트 그룹 ‘게릴라 걸스’ 조사에서 메트로폴리턴 미술관 소장품의 85%가 여성을 그린 그림인 데 비해 여성이 그린 그림은 단 5%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림들이 대부분 벌거벗은 채로 남성 관객을 유혹하는 여자들,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조숙한 소녀들, 지나치게 이상화한 미의 상징들, 예쁘게만 묘사한 가정 생활, 무시무시한 노파 등 천편일률적이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남성 미술가들이 여성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따져본다. “얼마나 잘 그렸든, 소파에 누운 여자 누드화 한 장을 더 그리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또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를 표현할 때도 단아하고 인자한 모습만을 고집하며 임신 기간의 다양한 단계와 출산의 모습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경험은 재현할 만큼의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했고, 출산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어머니의 모성과 그 상징성은 높이 사면서도 실체를 부정하는 모순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위대함’이란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지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책은 여성이 누드를 공부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20세기 초까지 여성의 올림픽 참가가 금지됐던 사실을 환기시킨다. 근육질 여성은 아름다움과 힘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흔들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만들어 가는 균형 잡힌 미술사, 진정한 ‘인간 미술사’를 생각케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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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가슴

이 책은 여성성과 에로티시즘의 대표적 이미지로 꼽히는 가슴의 문화사적 보고서다. 원래 “오직 유럽 중세만이 문명화 과정을 거쳐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는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독일 사회학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나왔다.

저자 한스 페테 뒤르는 전작인 ‘은밀한 몸’과 ‘음란과 폭력’을 통해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을 비판하고 “서양이 자기들만 문명화됐다는 믿음에 기초해 식민지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수단으로 그 이론을 써 먹었다”고 반박해 왔다.

뒤르는 이번엔 동서양 문명화 과정을 밝히는 소재로 여성의 가슴을 택했다. 지난 1000년 동안 유럽 사회가 어떻게 여성 육체, 그 가운데서도 가슴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거나 제한했는지, 또 유럽 외부 세계에서는 어떻게 유럽보다 여성의 ‘상품화’가 더 혹은 덜 이뤄졌는지 등을 살피며 서양 문명 우월론을 비꼰다.

엘리아스가 문명의 탄생기라고 부른 중세에도 여성의 상반신 노출 패션은 있었다. 가슴골이 깊이 팬 의상 데콜테는 심할 경우 배꼽까지 드러났으며, 이미 중세 말엽부터 유럽 여성 사이에 남성들의 이상형에 맞추기 위해 만든 ‘가짜 가슴’이 유행했다. 18세기 초 유럽 가면무도회는 너무나 외설적이어서 ‘공창들의 놀이터’라고 불릴 정도였다. 익명성이 보장된 이곳에선 ‘정숙한’ 부인들은 너나없이 반라의 상태로 성적 자유를 느꼈다. 물론, 많은 경우 여성의 본능적 충동은 억제됐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넘쳐났다. 문명화되지 않았다고 유럽인이 손가락질한 아프리카나 아시아도 비슷했다. 인도와 일본, 한국, 중국에서도 가슴에 대한 복합적 시선은 늘 존재했다. 때로는 문명화된 정숙성이, 때로는 본능적 충동이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그러나 이는 시대를 막론한 문화일 뿐 동서양의 차이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제목부터 얼굴을 붉히게도 만드는 이 책은 27장으로 된 본문과 삽입된 사진 모두가 여성 가슴에 대한 묘사와 논의에서 노골적이다. 독일의 한 서평가는 사람이 붐비는 전차나 해변에서 읽지 말고 조용한 방에서 혼자 읽을 것을 충고했을 정도다. ‘여성의 가슴이 왜 에로틱한가’ 원론적 설명도 시도된다. 저자는 “여성의 가슴은 남성들이 어머니의 가슴을 통해 만족과 쾌락, 보호 받는 느낌을 주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프로이트의 가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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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하프타임! 행복한 후반전은 준비됐는가


[조선일보 선임기자]

축구 경기에는 ‘하프타임’(작전타임)이 있다. 전반전을 뛴 선수들이 휴식을 가지면서 후반을 어떻게 뛸 것인지 작전을 협의하는 시간이다. 전반전에 밀리던 팀이 하프타임 후에 새로운 팀으로 변신해 경기를 뒤집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본다. 그래서 축구 경기는 전반전이 아니라 후반전에서 판가름 난다는 말이 있다.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80으로 본다면 45~50세가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일반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에서 퇴직을 막 했거나 퇴직을 2~3년 정도 앞두고 있는 나이다. 45~50세 이전 시기를 인생의 전반부라고 한다면, 45~50세 이후는 인생의 후반부에 해당된다.인생도 축구경기와 비슷하다. 하프타임을 이용하여 전반전에서 저지른 실수를 되짚어보고 새 기술을 연마한 사람은 후반전에서 ‘인생 역전’을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후반전에서도 부진할 수밖에 없고, 일부는 아예 후반전을 뛸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된다.

인구 고령화 추세에 맞춰 2~3년 전부터 국내 출판계에서도 성공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한 실용서적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책도 이런 트렌드를 타고 나온 책이다. 책 제목 ‘서드 에이지’는 인생의 시기를 4가지 단계로 나누는 서구인의 분류법에서 나온 말이다. 인생의 첫 번째 시기(first age)는 태어나서 학습을 하는 시기이며, 두 번째 시기(second age)는 직장을 갖고 가정을 이루는 시기이며. 세 번째 시기(third age)는 40대 이후에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시기이며, 네 번째 시기(fourth age)는 몸이 늙어가는 노화의 시기다.

저자는 이 서드 에이지(third age)가 성공적인 후반 인생을 맞는 데 중요하다고 말한다. 육체는 늙어가지만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신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고 변화를 이뤄냄으로써 활기찬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육체가 성장하는 20대 까지를 1차 성장(first growth)에 비유하면서, 40대 이후의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과정을 2차 성장(second growth)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젊은 시절엔 돈과 명예, 지위를 쫓는 삶을 경쟁적으로 산다. 그러나 돈을 벌고 명예와 지위를 얻으면 인생이 만족스러워 지는가. 그렇지 않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부를 뿐이다. 그래서 인생의 전반부가 ‘돈과 성공’을 좇는 삶이었다면,후반부는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찾는 삶이 돼야 한다.

중년과 노년 시기를 성공적으로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저자는 6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일’과 ‘여가활동’의 조화, ‘자신에 대한 배려’와 ‘타인에 대한 배려’의 조화, ‘현실주의’와 ‘낙관주의’의 조화, ‘진지한 성찰’과 ‘과감한 실행’의 조화가 그것들이다.

저자는 중년의 위기를 잘 극복하려면 ‘일의 포트폴리오’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월급을 받는 직장에만 매달려 아등바등 살 게 아니라, 자원봉사·집안일·취미활동·새로운 공부 등 다양한 여가활동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족과 직장에 대해 쏟는 시간 못지않게 이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도 시간과 돈을 투자할 것을 권고한다. 그렇게 하여 자기 자신, 가족, 직장, 사회공동체를 4가지 꼭지점으로 삼은 삶을 살 때 인생의 후반부를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의 주제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읽어볼 만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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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男이 파리, 상어, 늑대라고?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홍콩 영화 감독 왕가위는 90년대 이후 한국 청년 문화 코드의 열쇠어다. 도시 한 복판에서 외롭지만, 고독이 감미로운 아시아의 젊은이들. 워낙 가부장제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동양 문화에서 일탈 욕구를 지향하기 때문에 고독을 즐기는 아시아의 청춘 군상. 사랑도 이별의 예감 속에서 미리 아파하지 않은 채 그 예감마저 즐기는 젊은이들이 하루키 소설과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열광한다. 그들이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하루키와 왕가위를 합쳐 놓은 듯한 아시아의 소설가를 꼽으라면 대만의 왕원화(王文華·사진)를 꼽을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이 영화로 만들 예정인 그의 소설 ‘단백질 소녀’는 지난 2002년 대만에서 출간돼 중국 대륙과 대만에서 40만 부 이상 팔렸다. 하루키 소설을 연상케하는 감각적이면서 청춘의 상실감을 꿰뚫는가 하면, 하루키에 비하면 더 세태 풍자적이면서도 존재의 근원적 슬픔을 통속적 이야기 속에서 풀어놓는다. ‘단백질 소녀’의 주인공 ‘나’와 ‘장바오’는 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사라진 현대 도시 문명 속에서 그 낭만에 대해 냉소적이면서도, 궁극적으로 낭만의 갈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들이다. 그들은 외모와 학력, 재력을 겸비한 여자들을 쫓아다닌다. 도시의 숲에서 그들은 사냥꾼이다. 사랑의 신화는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에서 대만의 남자들은 ‘파리’ ‘상어’ ‘늑대’로 분류된다. ‘파리’는 엄마를 대신할 여자를 찾는 남자들이다. ‘상어’는 여자를 달콤하게 유혹해서 섹스를 즐긴 뒤 포만감을 만끽한 상어처럼 사라진다. ‘늑대’는 ‘영문 닉네임을 가지고 있고, 안경을 끼고, 영화배우처럼 차리고 다닌다’는 유복한 바람둥이들이다.



이런 남자들의 파트너가 되는 대만 여자들은 ‘냉장고’ ‘다리미’ ‘세탁기’로 나뉜다. ‘냉장고’는 ‘까무라칠 정도로 아름답지만, 감히 가까이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차갑다’는 유형이다. 학벌도 좋은 그 여자들에게는 심각할 정도의 귀족 콤플렉스가 있다. ‘다리미’는 ‘금방 차가워졌다 금방 뜨거워졌다 해서 드러난 모습만으로는 판단을 내릴 방법이 없는’ 스타일이다. 이런 여자를 만나는 대부분 남자들은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편 ‘세탁기’는 모든 남자들이 바라는 유형의 여자다. ‘당신은 세상의 온갖 더러움에 푹 절어 있지만 그녀는 거침없이 당신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여성인가. 그러나 남자들이여, 속으면 안된다. ‘그렇지만 옷이 너무 많아서 같이 엉키게 되면, 세탁기도 멈추어 설 것이다. 그때 당신이 두껑을 열면 제멋대로 뒤엉켜 버린 옷들은 온통 젖어있다’는 것이다. 그때 세탁기에서 벗어난 남자들은 ‘탈수기’같은 여자를 찾아가야 하는데, 어디 그런 여자가 세상에 있는가.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은 그래서 ‘단백질’과 같은 여자를 찾는다. 그들은 생을 걸고 기도한다. ‘하늘이시여, 사랑이 더 이상 미네랄처럼 차갑지 않기를. 콜레스테롤처럼 미끈거리지 않기를. 그녀를 영양실조에 걸린 내 생명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자.’고. 봄날에 새록새록 돋아나는 햇잎의 색채를 감상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경쾌하게 읽어갈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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