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에 읽는 예수 -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시리즈 21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21
김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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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관한 책은 성경외에는 특별히 읽어본 기억이 없었던 차에 30분에 읽는 시리즈로 '예수님'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왜, 예수님이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는지.. 하지만 예수님은 유대교의 가르침에서만 머물려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나는 예수님의 탄생이 과학적으로만 이해하려했지, 종교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0분에 읽는' 시리즈는 콕콕 찝어서 문제 제시와 요약 정리를 잘한 책인것 같아요.

다른책에 비해 짧은 이야기를 담았고, 읽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이 100% 풀리지는 않았지만, 80%는 풀렸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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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예수 -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시리즈 21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21
김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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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사두개파 사람들에게는 율법을 무시하고 하나님과 성전을 모독하면서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는 파렴치한 '촌놈'이므로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었고,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죄인들과 밥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절제하지 않는 호식가이며 손발을 제대로 씻지 않는 불결하기 짝이 없는 부랑아였다. 정통 에세네파 사람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함을 모르는 인물로 치부해서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젤롯당원들에게는 로마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무력하기 그지없는 소시민적 개혁가 정도로 비쳤을 뿐이다.
예수의 주장과 삶은 당시의 사람들 중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율법해석과 적용에서 철저할 때는 어떤 율법학자보다 그 정신에 더욱 철저했으며, 종교지배자들이나 율법학자들의 모순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래서 예수는 당시 종교를 지배하던 어느 당파에도 환영받지 못했지만 홀로 자신이 믿는 하늘의 뜻을 새기면서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갔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시기를 받았을수밖에 없었던 상황
-.쪽

예수잉태에 얽힌 의미는 인간의 구원자로서 예수의 신적이고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그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현실 속에서 온전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두 이야기에서 이미 하나님과 인간, 신성과 인성, 초월과 내재, 하늘과 땅의 만남을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고백에 따르면 역사적 예수는 완벽하고 조화로운 신과 인간의 일치를 보여준 사람이다. 곧 예수는 신이며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고 고백한다. 예수잉태와 탄생 이야기는 이 두 차원의 융합을 보여주기 위한 예수 삶의 프롤로그다.

->예수님의 탄생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당시 종교관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설명될수 있는 사실이다.-.쪽

예수 삶의 중심은 갈릴리였으나 역설적이게도 그는 공생애 기간 중 몇 번 간 적이 없는 예루살렘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사실은 예수의 사상과 삶이 누구에게는 '희망'이 되었고 어떤 계층에게는 '위협'이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부활한 이후에 예수가 제자들을 향해 "나는 먼저 갈릴리로 간다."고 말했다는 성서의 기록은 그의 삶의 시작과 펼침뿐 아니라 죽음 이후의 새로운 예수운동의 시작점으로서 갈릴리가 지닌 상징성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갈릴리'는 더 이상 하나의 지역이나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희망하는 소외된 민중들을 위해 살았던 민중지향적 예수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미지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 분명 예수는 '예루살렘의 예수'가 아니라 '갈릴리의 예수'다.


-.쪽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는 사람들을 자유롭고 행복한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초대했다. '회개(悔改)'는 이 삶을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통과의례다. 예수가 말한 회개는 단순히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통회(痛悔)의 차원이 아니다. '회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metanoia'는 '생각을 바꾸다', '삶을 돌이키다'라는 뜻을 담고 있는 단어다. 곧 예수가 말한 회개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이에 따라 삶을 완전히 뒤바꾸는 전적인 삶의 변화로서의 회개다. 이런 회개가 필수적인 것은 지금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에 걸맞은 삶의 양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회개는 지금까지 자신들을 지배하고 종속한 삶의 가치나 전통,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에 지배당하는 삶으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예수는 이런 전환 없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으며 그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갈 수도 없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복음(福音), 기쁜 소식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자신을 억누르던 종교제도와 법, 정치적인 수탈, 사회 문화적인 차별의 벽이 허물어지고 인간의 본래 가치가 회복되고 누려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소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것은 자유와 해방의 소식이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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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시리즈.

성경외에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읽어본 기억이 없었기에 한번 읽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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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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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제목을 보고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이 책을 선택했는데, 이 책이 동유럽 작가의 책이라고 하니 더 마음에 들더군요.

아무래도 북유럽과 가까운 체코 프라하에 몇년간 살아야하겠기에 북유럽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거겠지요.

자살을 하려던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이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의 집단 여행으로 발전되기까지 과연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읽는동안 유럽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언젠가 저도 그들이 거쳐갔던 곳을 한번 가보고 싶더군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념이 옮겨가면서 북유럽인들의 허무함을 함께 읽을수 있었고, 차가운 공기가 코끗을 스치듯 북유럽의 겨울을 함께 느낄수 있어 좋았습니다.

자살여행자들 중에 제일 먼저 죽은 코수넨의 장례식을 통해 인간의 위선이 느껴졌습니다.

보잘것없는이의 죽음으로만 치부했던 그의 장례식이 어느 대령과 그럴싸한 조문객의 조문으로 위대한이의 애석한 죽음으로 둔갑하는 순간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하더군요.

전반적으로 책속의 이야기는 사회에 대한 조롱과 악의가 가득차 있는데, 자살자들과 함께라면 그렇게 놀라운 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그들이 절벽끝에서 자신들의 삶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림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2부에서는 새로운 삶과 죽음을 찾아 스위스로 향하게 됩니다.

과연 그들이 성공하면 죽고, 실패하면 사는 '자살'을 성공하게 될런지..

그리고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라는 말이 되듯이 삶의 희망을 찾게 될런지는 이 책을 읽고 싶어하시는 분에게 남기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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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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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람들의 가장 고약한 적은 우울증이다. 비애, 한없는 무관심, 우울증이 이 불행한 민족을 짓누른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우울증에 굴복당했으며, 그들의 영혼은 음울하고 진지하다. 그 결과는 아주 파괴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생각한다. 암울한 마음은 과거의 소련연방보다도 더 심각한 적이다. 그러나 핀란드인들은 투사의 종족이다. 절대로 굴복하는 법이 없으며, 끝까지 폭군에 저항한다.

-> 그전까지는 핀란드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없지만 이제 북유럽에 속해 있는 핀란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네요.-.쪽

죽음은 원래 그런 것이다. 해마다 수천명의 핀란드 남자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 가운데 죽음이 어떤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돌아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죽음에서 돌아와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도 믿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쪽

대령은 공동의 운명이 두 사람의 운명을 도왔다고 시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적어도 잠시나마 도운 것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대령은 결국 언젠가는 목을 매달 것이기 때문이다. 그 며칠 동안에 문제는 사라진게 아니라 다만 연기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하는것 같습니다-.쪽

켐파이넨 대령은 렐로넨이 알코올을 아주 헤프게 다루는 것에 놀랐다. 렐로넨은 술병을 3분의 2 정도 비웠다 싶으면 병뚜껑을 단단히 막았다가, 호수 안쪽으로 바람이 부는 즉시 술병을 호수에 던졌다. 술병은 물에 둥둥 떠내려가서 언제든 다른 편 호숫가에 다다를 것이다. 반대편 호숫가까지는 족히 몇 킬로미터는 되었고, 술병을 보낸 사람은 자신의 우편물이 어디로 떠내려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부근의 여름 별장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한다네. 3분의 1 정도 남은 술병을 떠내려 보내는 것이 이곳에서는 일종의 관습이야." 렐로넨이 설명했다.-.쪽

대령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핀란드에서 알코올 값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비싼 술을 호수에 마구 던진단 말인가? 그것은 호숫가에 사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라고 렐로넨이 말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의도적이기보다는 실수로 오래전에 그걸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칠 년 전, 8월의 어느 날 아침에 처음으로 도수 높은 술병이 온니에게 떠내려왔다. 아주 맛 좋은 샹트레 코냑이었다. 당시 온니는 간밤에 마신 술 기운으로 심한 숙취에 시달렸는데, 적시에 떠내려온 코냑 병이 숙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술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가 호수에게 빚을 갚았다. 그 후로 이따금 병이 떠내려왔으며, 몇 년 전부터는 부쩍 그 횟수가 늘었다. 그 관습은 차츰 전체 호숫가 주변으로 퍼졌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크게 떠드는 사람은 없었으며, 후말라얘르비 호숫가 주민들 사이에서 그것은 무언의 비밀이었다. "작년 여름에 쉐리 세 병이 떠내려온 데다가 호수가 얼기 직전에는 보드카하고 코스켄코르바까지 횡재했다니까. 술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었는지, 병이 겨우 물에 뜰 정도였어. 그런 일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고. 나하고 비슷한 사람, 맛 좋은 코냑을 즐기는 마음씨 후한 친구, 아니면 호수 건너편 미지의 이웃을 생각하는 성실한 보드카 애호자가 저 너머 어딘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야."

->처음엔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읽어보니 재미있는 관습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은 아닐런지..



-.쪽

자살하려는 생각이 아주 나쁜것만은 아닌것 같아요. 세상이 사실 특별히 살기 좋은 곳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특별히 살기 나쁜곳도 아니다.-.쪽

동유럽과 발트 해 연안 국가들에서의 변혁 이후로 삶의 의욕을 잃었다. 지금까지 평생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감탄해왔는데, 이제 그 모든 게 사라진 것이다. 마치 그동안 헌신적으로 후원한 소비에트 연방에게 속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실컷 우롱당한 기분이었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로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먼저 세상이 혼란스러워진 데 이어 해키넨의 세계관이 혼돈에 빠졌다.

->그래서 동유럽의 느낌은 호기심과 음울함이 함께하는것 같습니다.-.쪽

저녁이 되면서 뇌우는 핀란드 편에 머물렀다. 코르펠라는 카우토케이노를 지나 얼음 바다를 향해 달렸다. 그곳 노르웨이에는 해가 비치고 있었다. 곧 자정이 될 시각인데도 해가 지지 않았다. 소르요넨은 라플란드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소유하지 못한 탓에 그곳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겨울에는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지만, 그때에는 대지가 눈과 얼음에 뒤덮인다.

코르펠라가 이 길로 곧장 목적지까지 달려야 할 만큼 죽는 게 급하냐고 승객들에게 물었다. 쿠사모에서 여기까지 몇백 킬로미터를 달려왔더니 좀 피곤하군그래. 여기 한적한 고원에서 최후의 밤 아닌 밤을 보내는 게 어떻겠소. 자살자들은 아무도 코르펠라의 생각에 반대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다.

작은 호수 몇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버스가 정차했다. 이제 그들은 바람이 거세고 해수면보다 높은 평원에 있었다. 숲은 거의 없는 대신 늪지대가 그만큼 넓게 이어졌다. 울라가 불을 피우고 나서는 커피를 끓이고 한 호숫가에 텐트를 쳤다. 물속에서 송어 한 마리가 첨벙거렸다. 잔잔한 물 위에 동글동글하게 물살이 퍼져나갔다.

->핀란드에도 백야가 있는것일까? 이 문장때문이라도 핀란드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습니다.-.쪽

붉게 작렬하는 한밤중의 태양빛을 받으며, 자살자들은 두고 온 조국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조국 핀란드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잘못 다룬 탓에, 특별히 조국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행자들은 핀란드 사회가 냉혹하다고 입을 모았다. 삭막한 관습이 핀란드를 지배했으며, 핀란드 사람들은 서로에게 잔인하고 질투심에 찌들어 있었다. 탐욕스런 마음이 널리 팽배했고, 완강하게 돈을 움켜쥐기에만 급급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음흉했다. 웃는 경우에는 기뻐서라기보다는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마음이 컸다. 사기꾼, 협잡꾼, 거짓말쟁이들이 많았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눈앞이 핑 돌 정도로 많은 집세를 갈취했으며, 터무니없이 엄청난 이자를 우려냈다. 가난한 사람들은 걸핏하면 소동을 피우고 모든 걸 망가뜨리기 일쑤였으며,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줄 몰랐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애물단지였다. 집과 물건, 기차와 자동차에 지저분하게 낙서를 하고 창문을 깨뜨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잔뜩 토해놓든지 아니면 용변을 보았다. -.쪽

핀란드의 관직에 앉아 있는 신사 분들은 앞을 다투어 새로운 신청서 양식을 만들어내서는 국민들을 욕보이고 이 창구에서 저 창구로 허겁지겁 달려가도록 강요했다. 소매업자와 도매업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동전 한 닢까지 우려내었고, 투기꾼들은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비싼 집을 지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달려가면, 교만한 의사들이 사람을 당장 도살해야 하는 늙은 말처럼 다루었다. 이런 모든 걸 참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리면, 정신병원의 험상궂은 간호사들이 강제로 환자복을 입히고서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분명한 생각마저 흐리게 하는 주삿바늘을 정맥에 꽂았다.-.쪽

자살자들은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울라 리스만키가 이번에는 정말이냐며, 지금 바다 속으로의 주행을 보기 위해서 두 번째로 달려갈 생각인데 괜히 헛수고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제 대령이 나섰다. 대령은 마이크를 잡고서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죽음을 향한 주행의 절정에서 적어도 열 명 내지 열다섯 명의 여행객이 정차 스위치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고 고백했다.
코르펠라가 죽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자신의 버스에 앉아 있냐고 물었다. 대령은 자신이 심리 치료를 목적으로 모험을 감행했다고 대답했다. 죽음의 경험이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진 지혜였다.
"내가 버스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소? 그랬더라면 우리 모두 지금쯤 저 아래 바다 속에서 물고기의 먹이가 되었을 게요."
코르펠라가 투덜거렸다.
"살다 보면 때로는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법이오."
대령이 말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죽음의 주행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방금 전의 경험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모두들 다시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려면 시간과 휴식이 필요했다.-.쪽

오늘날의 가난한 사람은 백년전의 유복했던 시민보다 더 잘사는데도,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들에 둘러 싸여있는 탓에 고통 받았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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