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쓴 소설가 이재운

“소설가 이재운은 마치 적의라도 품은 것 같이 10년 가까운 기간을 바쳐 <천년영웅 칭기즈칸> 전 8권을 탈고했다. 책을 쓰는 동안의 엄청난 수고는 그렇다 치고 이것을 쓰기 위한 공부와 취재까지를 생각할 때 작가는 거의 초인적이다. 야망의 실현으로서의 소설은 역사를 역사가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과 문학을 영웅과 영웅의 무대로서의 세계 없이 하나의 단순 주제에만 충성을 다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재운은 큰일을 해냈다”

<천년영웅 칭기즈칸>(전8권. 해냄. 1998)의 저자 이재운(49)에게 보낸 고은 시인의 극찬이다. 시인은 ‘적의’라는 표현을 쓰며 소설가의 긴 집념에 박수를 보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 석사학위를 받고 소설가의 길에 뛰어든 이재운은 1991년 발표한 <소설 토정비결>(명성)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새 열하일기>(명지사. 1997) <소설 금강경>(서해문집. 1994) <천년영웅 칭기즈칸>(해냄. 1998) <당취>(명성. 2000) 등 많은 역사소설을 집필했다.

최근 발표한 <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현문미디어. 2006)에서 이재운은 “나관중의 삼국지는 8할이 거짓”이라는 문제적 발언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삼국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작한 작가를 만나 역사소설을 향한 불타는 집념의 연대기를 추적해봤다.


“장편집필은 재미있는 작업”

“<칭기즈칸>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적이 없기 때문에 몽골, 러시아, 프랑스 등 많은 국가의 자료를 구해 사비를 들여 번역했습니다. 자료를 수집한 다음 기존 연구 자료와 비교, 분석해 가며 새로운 차이점을 발견해 나갔죠. 의문을 벗겨 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했습니다”

작가는 장편 역사소설 집필을 “재미있다”고 표현했다.

8~10권으로 이뤄진 한편의 대하역사소설을 쓰기 위해 그는 100권 이상의 관련 책을 읽는다. <칭기츠칸> 집필 당시에는 수 백 권의 관련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방대한 자료 수집과정과 인물 창작 작업이 “마냥 즐겁다”는 이재운에게 소설가란 천직(天職)이다.

“역사소설을 쓰는 이유”

이재운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가장 알린 첫 작품은 <소설 토정비결>이다. 이후 역사소설의 길을 오롯이 걸어온 그는 ‘전문작가 부족’을 문단에 대한 아쉬움으로 꼽았다.

“역사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입니다. 최소 10년은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 분야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장르에서 전문작가들이 나와야 문학이 풍성해 질 것입니다”

이어 “대표작이 정해지면 고정 이미지 안에 갇힐 수 있다”는 한계점도 토로했다. 10만부 이상 팔린 작품들이 많은 데도 여전히 자신을 <소설 토정비결> 작가로만 기억하는 독자를 만날 때면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재운은 SF장르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

“나관중의 삼국지는 8할이 거짓입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에 반기를 든 <태사룡의 거꾸로 읽는 삼국지>는 <칭기즈칸> 자료조사차 중국을 오가면서 구체화 됐다.

“조조의 고향에 방문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향에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중국인들은 원소와 조조가 벌인 유명한 ‘관도대전’에조차 관심이 없습니다. 고향에서 조차 모를 정도로 조조에 대해 무관심한 중국인들 사이에서 어떻게 <삼국지>라는 작품이 나왔는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는 고향에서도 기억해 주지 않는 조조를 영웅화 한 <삼국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원나라(몽골) 치하 열등민족이었던 중국인에게 <삼국지>는 희망이었으며, 유비의 저항 정신은 경외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어 삼국지를 ‘몽골치하 중국인들의 독립항쟁서’로 해석한 중국인들의 생각에 “왜 우리까지 동의해야 하는가?”라는 반문을 갖게 됐다. 상하이 복단대학에서 유학한 후배가 가져온 삼국지와 관련된 수 권의 지도와 책은 집필에 불씨를 당겼다.

조조의 승리 비결을 ‘꾀와 기술’로 꼽은 나관중의 해석에도 동의 할 수 없었다.

“조조는 기마군을 이끌었습니다. 여포의 흉노와 강족(진시황의 부대, 북위, 수나라 당나라)의 기마군을 갖고 있었죠. 그런데 무슨 수로 이기겠습니까? 잔꾀나 기술로 이긴 것이 아니라 기마군으로 승리했다는 해석이 맞습니다”

반론은 계속됐다.

“중국인들은 한족정신을 고취하려고 이야기를 꾸며댔다지만 우리가 왜 그 생각에 동조하고 공감해야 합니까. 특히 청소년들이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는다면 모화사상(중국의 문물을 흠모하여 따르려는 사상)에 빠질 수도 있으니 <삼국지>는 해악에 가까운 책입니다”

작가는 나관중의 <삼국지>를 ‘현실 도피 문학’으로 정의했다.

“요동치는 우리말, 한글을 탐구하자”

이재운은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작가다. <뜻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사전>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 한자어 사전>(책이있는마을. 2005)을 만든 이유도 한글과 한자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제가 모르는 단어는 소설에 쓰지 않습니다. 한글은 물론 한자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의 가장 큰 한계점은 뜻이 불분명하다는 사실입니다.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을씨년’의 뜻은 뭘까? ‘어이없다’나 ‘트집 잡다’의 ‘어이’ ‘트집’은 무슨 뜻일까? 라는 궁금증을 늘 갖게 됩니다. 분명한 뜻을 알지 못하는 단어를 작품에 사용할 수없습니다“

작가는 한글을 바르게 써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후손들이 현대작품을 본다면 우리가 기미독립선언문 원문 보는 것 같은 혼란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한글은 요동치고 있습니다. 창작 수단으로 사용되기에는 많은 언어적 약점도 갖고 있죠. 작가가 탐구 정신을 갖고 정확한 한글을 사용해야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어 한자와 영어를 한글의 비교 대상으로 꼽았다. 한자로 쓴 2000년 전 공자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 300~400년 전 쓴 셰익스피어의 뜻도 파악 할 수 있는데 비해 우리말은 100여 년 전 글만 봐도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재운은 “모르는 게 있으면 끝까지 알아내고 말겠다”는 집념과 탐구정신으로 역사소설과 한글, 한자어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할 생각이다.

“나는 행복한 사람”

한나라의 국민성은 역사에 기초한다. 이재운은 중국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태사룡의 거꾸로 보는 삼국지>가 중국인에 대한 이해를 도울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는 멀리는 인도, 아랍을 배경으로 한 소설까지 계획 하고 있는 `통 큰` 소설가다.

작가는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좌표를 알고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 공간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조언을 전했다. 역사는 작가라면 누구나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역사를 이해하면 소명의식도 생깁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이재운은 글 쓰는 일을 ‘복’ 이라 칭했다.

“출퇴근도 안하는 자유로운 작가라는 직업을 허락해 준 독자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써 보답하고 싶습니다.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독자를 섬기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 이재운. 쉽지 않은 역사 고증이 한없이 “재미있다”는 소설가에게 글쓰기란 조금의 고됨도 없는 신명나는 춤사위일 뿐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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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명화 기자]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이야기는 곧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책이나 그림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무언가를 남긴다. 눈부신 햇살과 신록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안락한 의자에 몸을 기대어 책을 읽는 이의 얼굴 표정은 마냥 평화롭다. 이처럼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겉그림.
ⓒ2006 웅진지식하우스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서 우리는 책을 읽는 정지된 순간을 아름다운 그림의 형태로 만끽하며 덤으로 13세기부터 21세기까지 독서의 역사까지 알게 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렘브란트, 베르메르, 마티스, 고흐, 호퍼 등 수많은 화가들을 매혹시킨 책 읽는 여자들은 무슨 책을 읽고 있으며 어떤 상념에 잠겨 있는 걸까.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과는 달리 놀랍게도 그 옛날에는 책읽기가 권장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실용성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실한 시민 계층인 가장은 아이들에게 독서를 권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독서는 '시간 낭비이고 게으름뱅이나 하는 나쁜 습관'이며 '다독은 일종의 정신병으로 간주했고 아이들이 그 병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고 하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수긍하기 힘든 이야기일 수밖에. 책읽기의 좋은 점은 어디에 꼭꼭 숨어버리고 나쁜 점만이 부각되어 나타난 걸까.

여자에게 무제한적으로 허용된 독서는 고작 성서와 종교서적뿐이었다는데 아버지가 무섭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미있는 책 읽기를 거둘 수는 없는 법. 여자들은 가장의 눈길을 피해 침실로 숨어들어 독서를 하기에 이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책을 읽을 때의 긴장감, 아마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되었을 것 같다.

지나친 독서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이든 엘리트적 남자의 지적 우월감이 깔려 있었다. 즉 독서란 지적 능력을 지닌 특정한 남자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여자와 교양이 없는 대중은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계몽의 대상이라는 생각을 거의 모든 지식인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자에게 책은 잠재된 위험이며,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가장의 임무를 지닌 남자는 그런 위험을 감지하고 예방해야만 했다. 이제 가정에서 독서는 가장의 도덕적이고 엄격한 시선에 노출되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여자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권위주의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다.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남자여야 한다는 남성 우월주의적 시각이 아니라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말은 애초에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여성들은 비로소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 여자들은 숨어서 책을 읽다가 양지로 나와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단지 책을 읽기만 하는 독자에서 급기야는 책을 집필하기에 이르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때문에 더 이상 독서 장소는 침실로 제한되지 않았고 거실이나 부엌 정원 등에서도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역사는 진보하기 마련이고 아무도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저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다. '오히려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책 읽기의 기능 중 그런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책에 몰입함으로써 우리는 잠시 버거운 현실을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 그러나 현실 세계와 책의 세계를 혼동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몰입은 불가능하므로 아주 잠깐 동안 누릴 수 있는 감정의 유희에 불과하지 않을까.

책을 통해 더 넓은 세계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우리의 몸은 '지금'이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제한적인 공간 안에 머물러 있지만, 책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와 만날 수 있고 세계 어느 곳에나 다다를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 속 세상과도 만날 수 있게 된다.

화폭에 담긴 아름다운 자연과 무언가에 홀린 듯,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 여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시대와 역사를 읽고, 독서가 우리 삶에서 어떤 부분을 차지하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슈테판 볼만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그런 점에서 이채로운 책이었고 수록된 그림과 함께 독자들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각인될 책이었다.

/정명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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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4-0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가장 좋았어요^^
 
30분에 읽는 제인 오스틴 - 30분에 읽는 위대한 예술가 29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29
롭 애벗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영화 때문인지 몰라도 제인 오스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것 같아요.

너무 빠른 나이로 요절해서, 완성된 작품이 몇편 안되지만 영화로 많이 만들어 진것을 보면,
그녀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구나..하고 인정하게 될수 밖에 없네요.

아쉽게도 저는 '오만과 편견' 밖에 책으로 만나지 못했어요.
'엠마'와 '분별과 감성'은 영화로 먼저 만난 작품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 좀더 이해하게 되고, (그녀의 베일속에 가려진 삶은 무척 아쉽지만)
덕분에 작품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단순한 듯한 대중적인 스토리지만,(전체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삶과 중세시대의 생활환경에 대해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그녀의 작가적 솜씨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아마도 그래서 그녀의 작품이 사랑 받는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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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에 읽는 제인 오스틴 - 30분에 읽는 위대한 예술가 29 30분에 읽는 위대한 사상가 29
롭 애벗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1월
절판


여성들의 무기, 아이러니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으면 우리는 활기차고 익살스러우며, 굉장히 즐겁고, 복잡하고 아이로니컬한 시점으로 드러나는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녀의 많은 작품의 아이로니컬한 어조는 논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수많은 독자들이 처음에는 많은 내용이 교묘한 아이러니를 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평론가들은 이 아이러니의 목적과 효과를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아이러니는 확실히 정교한 수단이다. 후에 보겠지만, 어떤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은 아이러니는 특성상 여성적인 도구이며, 의도적으로 표리부동한 해석을 구축하는 데 쓰이는 전복적인 도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에는 더 단순한 측면도 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의 허약함과 약점에 미소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쪽

베일에 싸인 인물

제인 오스틴의 모든 전기 작가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그녀와 그녀의 삶에 대한 정보가 지극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녀는 일기를 남기지 않았고 편지도 거의 쓰지 않았다. 160통 정도의 편지가 남아 있는데, 대부분이 그녀의 언니인 캐산드라에게 쓴 것으로 전부 20세 이후의 것이다. 몇 통의 다른 편지들은 제인이 죽은 후 캐산드라가 제인의 개인 생활을 보호하기 위하여 없애 버렸다고 한다.
동시대의 것이라 할 만한 다른 자료로는 그녀의 조카인 제임스 에드워드 오스틴 리가 그녀가 죽고 난 지 50년 후에 쓴 전기가 전부다. 그것은 공들여 씌어져 읽을 만한 훌륭한 전기였지만, 오스틴 리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감수성에 따라 자기 이모의 인생을 깨끗하게만 표현했다. 오스틴 리가 보여 주는 그림을 재검토하려는 다른 전기들이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그녀는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쪽

다아시의 청혼은 오만하고 모욕적이다.
발버둥을 치며 자신과 싸워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어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뜨겁게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오만과 편견≫, 제34장

엘리자베스는 분노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청혼을 거절하고, 그에게 왜 청혼을 거절하는지 그리고 왜 그녀의 언니와 매력적인 위컴 씨에 대한 그의 태도와 행동을 경멸하는지 이야기한다. 다아시는 자신의 청혼이 그토록 무참하게 거절당하자 크게 놀란다. 그녀의 거절로 인해 그의 오만함은 고개를 숙인다. 훨씬 후에 두 사람이 화해할 때 그는 이렇게 털어놓는다.

그때, 제가 한 얘기를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그때의 제 행동, 태도, 또 저녁 내내 지었던 표정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말할 수 없이 괴롭습니다. 그렇게 적절했던 당신의 질책을 저는 잊을 수가 없어요.
≪오만과 편견≫, 제58장
-.쪽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겸손함의 교훈을 가르쳤듯이, 그 또한 그녀에게 교훈을 준다. 그는 편지를 통해 그녀가 일련의 사건들을 얼마나 잘못 판단하고 있었는가를 보여 준다. "이 순간까지 난 내 자신을 너무 몰랐던 거야." 그녀는 이 경험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며 탄식한다(제36장).

오스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토니 태너는 바로 이 장면이 엘리자베스가 덕성을 쌓기 시작하는 순간이며, 그녀가 펨벌리 저택에서 다아시의 초상화를 보면서 그것이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진짜 다아시의 크고 진실한 그림 앞에 선 엘리자베스는 이제야 그녀의 여정을 끝낸다. 바깥마당에서 다아시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의 진정한 가치를 더는 의심하지 않는다.
T. 태너, ≪제인 오스틴≫, 맥밀런, 1986

작품의 원래 제목이었던 '첫인상'이야말로 소설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것은 첫인상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어서, 콜린스 씨와 캐서린 드 버그 부인 같은 사람들의 첫인상은 역시나 옳은 것으로 판명된다. 그러나 다아시와 엘리자베스가 서로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꾸고 나서야 소설은 완전히 행복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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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오만과 편견' 때문일까요.

책도 함께 재조명 되어가고 있는것 같아요.

제인 오스틴의 책은 사실 '오만과 편견' 밖에 읽지는 못했지만, 영화로는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접하게 된것같아요.

그녀의 일대기를 알아보는것도 나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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