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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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앗 한알이 싹을 틔워 올리고 맺힌 이슬에 산과 강이...우주 하나를 품고 있는 씨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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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진선 |
누리장나무는 겨울이 되고 눈이 내려야 비로소 가을에 맺은 열매를 벌려 작고 까만 씨앗을 눈 위에 뿌린다. 이제 머지않아 봄이 오고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계곡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면 누리장 씨앗은 녹은 눈과 함께 떠날 것이며 싹을 틔우기에 적당한 흙이 감지되면 재빨리 싹을 틔워 올릴 것이다.
몇 년 전, 알게 된 누리장 씨앗의 신비함에 '씨앗의 세계'에 대해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씨앗들이 싹을 틔우기 위해 동물이나 바람을 이용하는데 누리장은 왜 하필 눈을 이용하며, 대체 눈이 오는 것을 어떻게 감지하는 걸까?
채송화처럼 아주 작은 씨앗들이 겨울 혹한을 어떻게 이겨내고 봄이 오는 것을 감지하여 재빨리 싹을 틔우는 걸까? 어떤 씨앗들은 동물의 똥을 거쳐야만 탈피를 하고 비로소 싹을 틔울 수 있다던데… 대체, 씨앗이란 무엇일까?
"소박한 인상을 주는 야생식물도 잎이나 꽃, 씨앗은 눈길을 끕니다. 그러나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씨앗이 싹트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씨앗이 펼쳐 보이는 세상은 섬세하고 다양하며 역동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씨앗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이런 놀라운 씨앗의 세계를 소개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 저자의 말제비꽃 씨앗의 비밀을 아시나요?<씨앗은 어디에서 왔을까?>는 씨앗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대체적으로 많이 알려진 식물이나 꽃 이야기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씨앗의 세계만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그간 씨앗에 대해 궁금했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듯하다.
그토록 작은 씨앗들이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신비로움과 영특함이 놀랍다고 할까? 아울러 책 속에는 그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씨앗과 새싹 사진이 가득하다. 책을 읽는 재미가 여간 풍성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저 감탄스러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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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문 제비꽃씨앗이 터져 퍼져 나가는 이 모습은 2시간동안에 걸친 연속촬영. 제비꽃은 자체의 힘으로 2~5미터까지 날아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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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진선 |
동물들은 어떻게든지 새끼를 가까이 두는 반면 식물들은 대부분 씨앗을 멀리 떠나보낸다. 동물들이야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오고 갈 수 있지만 식물들은 한번 뿌리내린 곳에서 일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필사적인 방법으로 씨앗을 퍼뜨린다.
어미 가까이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우기란 좀처럼 힘들 것이며 운 좋게 싹을 틔워도 어미나무에 가려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 튼실하게 자랄 수 없다. 또 형제끼리 한곳에 모여 살면 생존을 위한 경쟁으로 원하지 않는 피해를 서로에게 줄 수도 있다. 그래서 식물들은 어떻게든지 유리하게 번식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만의 특성을 갖춘다.
저마다 자연조건의 유리한 점만 받아들인다면 결과적으로 나약한 식물군은 멸종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세심한 진화가 필요한데 이런 점을 토대로 식물은 우리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신비하고 복잡한 유전체계로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한다. 씨앗은 식물의 시작이며 무한한 가능성이기에 식물 생태계의 비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시종일관 흥미롭다.
씨앗. 어떤 것은 바람을 이용하고 어떤 것은 물에 떠내려간다. 어떤 것은 동물의 먹이가 되어 배설물의 성분에 의해 탈피를 한다. 어떤 것은 사람이나 짐승의 털에 달라붙어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어떤 것은 사람이나 수레바퀴에 밟히는 방법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제비꽃처럼 특정 곤충이나 동물이 좋아하는 특별한 것을 일부러 씨앗에 붙여 아름다운 공생으로 새로운 터전을 찾는 것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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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라이오솜이 붙어 있는 제비꽃씨앗.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든 씨앗이 엘라이오솜을 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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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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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제비꽃의 계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제비꽃의 씨앗에나 희고 작은 알갱이가 붙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엘라이오솜(elaiosome)이라고 하는 개미가 즐겨 먹는 먹이다. 제비꽃의 씨앗은 이렇게 엘라이오솜이라고 하는 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는 개미의 먹이를 붙이고 있다. 개미는 제비꽃의 씨앗을 마치 맛있는 음식이 담긴 쟁반처럼 조심스럽게 개미집으로 옮겨간다. 제비꽃은 어떻게 개미의 먹이를 붙인 씨앗을 만들까? 개미는 왜 엘라이오솜만을 씨앗에서 떼어 내 자기 집으로 옮기지 않을까?"- 책 속에서저자의
제비꽃과 개미의 아름다운 공생관찰은 계속된다. 나아가 개미의 특성에 제비꽃의 신비로움까지 더하여 들려준다. 제비꽃은 자신의 성장에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아니 오히려 어느 정도의 영양분을 빼앗기면서까지 엘라이오솜을 만들어 개미에게 준다. 제비꽃에게 오직 개미와의 공생만이 그토록 절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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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중을 향하여 넝쿨손을 뻗는 나팔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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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진선 |
제비꽃만이 아니라 모든 식물들은 씨앗 퍼뜨리기에 전력을 다한다. 책 속에서 만나는 식물의 세계와 작은 씨앗의 충만한 세계가 놀랍다. 식물의 특성과 씨앗의 특성을 1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뤘다면 2부에서는 씨앗 전체의 특성에 대해 들려준다.
씨앗은 어떻게 봄이 온 것을 아는 걸까? 겨울을 이겨낸 빈 가지의 겨울눈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 도토리 한 알의 일생을 통하여 보는 생태계의 신비로운 그물코, 물속씨앗들의 비밀, 수 백 년 동안 잠자며 발아를 기다리는 씨앗과 아주 미세한 틈이라도 생기면 싹을 틔우는 것들,
붉나무처럼 산불과 같은 높은 고온에서 유리한 것과
예덕나무처럼 약간의 온도에도 싹을 틔우는 것 등등. 식물의 세계와 기특한 씨앗의 세계가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넝쿨식물들은 다른 식물들에 의지하다보니 다른 식물에 비해 늦게 싹을 틔운다. 감고 올라가야 할 식물의 성장에 주시하다 비로소 싹을 틔우고 공중에서 넝쿨손을 펼치는 것이 신기하다. 나무에 뿌리를 내려 일생을 살아가는 겨우살이 열매와 씨앗의 비밀도 흥미롭다. 겨우살이의 생태특성이 그간 참 궁금하였는데 이 책을 통하여 맘껏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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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춤을 추듯이 하늘높이 날아오르는 낙하산 모양의 서양민들레 씨앗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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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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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씨앗들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싹 틔울 준비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작은 불편함을 주는 봄비, 하지만 씨앗들은 그것을 즐기며 싹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좀 더 깊은 땅속에는 수십 년 동안 발아를 기다리면서 잠자고 있는 씨앗들도 있을 것이다. 씨앗의 세계를 맘껏 볼 수 있어서 너무 뜻깊었다. 지금 당장 땅에 귀를 대보면 저마다의 세계를 꿈꾸는 씨앗들의 웅성거림이 마구 들려 올 듯 생생하다.
이제 머지않아 민들레가 지천으로 필 것이다. 할미꽃이나 민들레처럼 홀씨를 만드는 식물은 바람을 최대한 이용하는데, 꽃이 피는 동안에는 꽃대를 비교적 낮게 유지하지만 꽃이 지고 홀씨를 만드는 순간부터 꽃대를 쑥 밀어 올려 높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해마다 만나는 민들레 홀씨 꽃대들이 유독 길었었다. 왜 그럴까? 이 봄, 민들레를 유심히 살펴보며 그들의 비밀을 나름대로 추측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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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인터뷰] 진선출판사의 김창원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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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싹을 틔우고 있는 탱자나무 씨앗 |
| ⓒ진선출판사 |
| <씨앗은 어디에서 왔을까?>를 만난 감동이 남다르다. 씨앗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간 책을 찾아보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저자는 일본인, 그렇다면 국내에는 씨앗관련 어떤 책이 있을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이 책의 출판사 진선의 김창원 편집장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 혹시 예전에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씨앗 관련 책이 있었나?
"우리 출판시장을 조사한 결과 전문적으로 씨앗만을 다룬 책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식물에 대한 일반적인 책들이나 전문서들은 씨앗에 대해 조금씩 다루곤 했다. 이 책처럼 씨앗의 세계를 다양하게 보여준 책은 없었으며 일부 책들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좀 어려운 전문용어까지 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쉽고 재미있으며 내용도 충실하다. 이런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책의 내용, 사진도 모두 놀랍고 감탄스럽다. 저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글쓴이 와시타미 이즈미는 20년 넘게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살펴보는 생태학 연구를 해 온 사람이다. 씨앗과 식물의 발아는 식물의 시작인데도 불구하고 식물의 많은 이야기들 중에 비교적 덜 알려진 분야인데 책을 보는 사람들은 저자가 관찰, 연구하여 들려주는 씨앗과 식물의 비밀스러움에 누구나 감탄한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식물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관찰 연구하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일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사진을 찍은 하니 샤보우는 식물 생태계에 대한 사진만 중점적으로 찍는, 이 분야의 권위 있는 사진가다. 일본에서 식물과 생태관련 사진은 이 사람을 제쳐두고 절대로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 출판사에서 이 두 사람의 공동 저작물을 출판했다는 자체가 영광이다."
- 편집장으로서 하고 싶은 말은? 추천하고 싶은 진선의 책이 있다면?
"<씨앗은 어디에서 왔을까?>가 화보와 텍스트가 적당히 섞여 있어서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 맞는 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의 사진을 찍은 '하니 샤보우'의 <식물일기>는 1700여 컷이란 방대한 사진으로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폭넓은 연령층에 맞춘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식물과 자연생태계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자연환경과 그리 멀지 않았는데 요즘 아이들 중에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 다시 도시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자연의 신비함을 모른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 김현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