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 한송이 '꽃'이 되기보다 자유롭게 활공하는 '새'의 길을 택한 조선후기의 여자 거상(巨商)이다.

미시사 영역에 천착해 온 정창권 고려대 초빙교수(국문학)가 이번에는 남성, 권력층, 수도 중심의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조선의 여장부 김만덕의 일대기를 '꽃으로 피기보다 새가 되어 날아가리'(푸른숲)라는 책에서 생생히 복원했다.

부제는 '조선의 큰 상인 김만덕과 18세기 제주 문화사.'

김만덕은 조선 후기 유통업을 통해 수천 금을 모았던 제주의 거상이었고, 제주 최악의 기근이 닥쳤을 때 전재산을 털어 내놓아 굶주린 백성을 살리고 그 공으로 임금을 만나기까지 했다.

제주에서는 '만덕 할망'으로 불리며 신화적 존재로까지 인식되고 있지만, 그 삶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책에서 김만덕은 역사서술의 형태를 벗어난 이야기 형식으로 한결 더 생생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관기(官妓)에 의탁해 살았던 그녀는 스무 살 무렵 스스로 관아에 찾아가 양민의 신분을 회복하고 바로 상업에 뛰어들었다.

행상으로 돈을 모은 그는 포구에 객주를 차려 일에 매진하면서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노비나 기녀가 아닌 여성이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

저자는 이를 두고 "만덕에게 주체적인 삶에 대한 자각과 사회제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조선후기 영ㆍ정조 시대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규모의 상업도시들이 생겨나 상권을 이루는 등 경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만덕은 운송 체계에 기초한 유통망이 상업 발전의 근간이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녀는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과 과감한 투자, 모험 정신으로 변방이라는 지리적 한계와 여성에게 강요된 시대적 굴레를 극복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이런 이유로 요즘 사회 일각에서는 김만덕을 여성 화폐인물 1호로 거론하기도 한다.

만덕의 일대기가 서술되는 과정에서 역사적으로는 유배의 땅이었고, 현재는 관광지의 성격만 부각된 제주는 독특한 산물과 뛰어난 해운기술을 가진 상업교역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난다. 244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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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기 기자 = "히힛, 제가 꽤 나무를 잘 탄답니다. 시골촌놈이라요. 제 어릴 적 별명이 그래서 타잔이었어요. 왜 영화 '타잔' 나왔을 때 극장 몰려가서 보고 그랬잖아요. 정말 제 우상이기도 했죠."(89쪽)

김윤영(35)의 두 번째 소설집 '타잔'(실천문학사)에는 외롭고 슬픈 현대인들의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마장동 김씨'는 어린시절 영화나 텔레비전 시리즈를 통해 만났던 '타잔'을 마음속 우상으로 간직하고 살아간다. 정글을 그리워하던 그는 단체 여행객의 일원으로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유적을 방문했다가 실종된다.

일행을 애태우던 그는 실종된지 12시간만에 나타난다. 그러더니 이렇게 변명한다. "오랜만에 나무를 타다 보니까 그것도 재미있더라구요. 그래서 이 나무 저 나무 옮겨가다 보니까 왔던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라고.

소설은 '타잔을 꿈꾸던 푸줏간 주인'의 처절한 몰락을 그렸다. 작중 화자인 '나'는 앙코르 와트 관광안내를 하다가 만났던 '마장동 김씨'와 우연찮게 다시 만나는 과정을 통해 그가 비정한 현실세계에서 내쫓기는 모습을 그려보인다.

순박한 노총각이던 김씨는 빚을 갚아주고 술집에서 빼낸 예쁘장한 여자와 결혼해 곱창집을 열어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곱창 다듬는 것 싫다고 징징거리는"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대학가에 '우아한' 테이크아웃 커피점을 열지만 실패하고 만다.

"시골 아저씨 같은 주인이 가게 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술집 아줌마 같은 아줌마가 다 먹었으면 나가요, 하는 것처럼 째려보고 앉아 있으니 분위기가 황이라고 소문"이 났고, 그런 뒤 젊은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어진 것이다.

커피점에서 화장품가게로 업종을 바꾸는 등 업종을 전전하던 김씨는 텔레비전 홈쇼핑 중독으로 카드를 마구 긁어댄 아내의 낭비벽을 이기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어 파산하고 만다. 결국 사채를 얻어썼다가 기하급수로 늘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내는 도망간다. 김씨는 빚을 받으러온 폭력배들에게 "천 만원에 손가락을 하나씩 잘리는" 상황까지 이른다.

"마장동 김씨는 많이 배우거나 커다란 목표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어린아이 같은 소망을 갖고 도시적 삶에 회의를 품고 있는 순진한 인물이죠. '타잔'이 되고 싶어 하는 그런 인물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서 하나둘 떠나고 있는 것 같아 이런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소설속 '마장동 김씨'는 타고난 낙천가여서 시시각각 닥쳐오는 불행에 대해서도 언제나 의연하다.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는 도망가버린 아내를 찾아 전국을 헤매는 그의 모습은 부활한 돈키호테 같다. 아내는 소비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타락한 인간의 전형이지만 그에겐 여전히 '마법에 걸린 둘씨네아 공주'인 것이다.

"배운 사람들은 '마장동 김씨'처럼 '타잔'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죠. 그 대신 전략적이고 경제적인 이야기를 하겠죠. 이번 소설집에는 약삭빠르고 주도면밀한 사람들의 위선을 묘사한 작품이 많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지식인이나 운동권 출신들은 옳은 말을 곧잘 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매우 계산적일 뿐 아니라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인물로 묘사되곤 합니다."

수록작 가운데 '그가 사랑한 나이아가라'에는 캐나다로 이민간 젊은 부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주식투자로 한몫 챙긴 남편과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이민을 떠났지만 아내의 눈에 비친 남편은 그곳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식탐 밖에 남지 않은 불평분자이다. 소설에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거듭 말하고, 남편의 돌연사를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결말부분에 이르러 아내가 자신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남편을 죽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책에는 실업자로 살아가는 남자의 자기분열적 모습을 다룬 '산책하는 남자', 변절한 운동가인 애인과 부양해야 할 가족의 사채이자에 시달리던 여자가 태국으로 떠나는 이야기 '세라' 등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30-40대 소시민들의 탈출과 변신 욕구를 그린 8편의 소설이 실렸다.

작가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보다 당대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서 "소설의 시공간을 넓히기 위해 여행을 많이 하는 젊은이들을 등장시켜 토론토, 시드니, 앙코르 와트 등을 무대로 이야기를 전개시켰다"고 말했다.

김씨는 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에 중편 '비밀이 화원'이 입선돼 등단했고 4년전 첫 소설집 '루이뷔똥'을 발표했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 김씨는 "조봉암 등을 다룬 역사 장편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320쪽. 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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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번역가는 고달프다. 문화와 문화를 만나게 해주는 막중한 일을 하건만 사회에서 받는 대우는 서럽기만 하다. 직업을 택할 때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진지하게 통하는 곳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2006 즐거운 상상
그럼에도 번역가들이 있다. 자리를 지키는 것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고달픔을 딛고 그들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다. <번역은 내 운명>에서 만난 여섯 명의 번역가, 책 제목 그대로 '번역을 운명'이라고 말하는, 강주현, 권남희, 김춘미, 송병선, 이종인, 최정수씨이다.

그동안 번역가들의 고단한 처지,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은 많았다. 하지만 번역가들의 속내를 그들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이 땅에서 번역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주는 6인의 전문 번역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만남부터 설레게 한다. 그럼 번역가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짝 엿보도록 하자.

첫 번째로 만날 수 있는 이는 강주현이다. 촘스키 작품의 번역가로도 유명한 그는 번역가이자 에이전트로 활동 중이다. 강주현은 <번역은 내 운명>에서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그는 번역해도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하며 번역가로 사는 소소한 즐거움을 털어놓는다. 소소한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하루 8시간을 자면서 서재와 거실 사이를 들락대면서 텔레비전 보는 재미가 있고 새벽에도 술 먹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다.

너무 소소하게 보이는가? 어쨌든 이 모습은 골방에서 산더미 같은 책을 쌓아두고 있을 번역가의 풍경만 생각하던 이들에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잘 나가는 번역가 대열에 속한 경우라고 해도 말이다. 두 번째로 만날 수 있는 이는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권남희는 어떨까? 권남희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다. 애 딸린 이혼녀가 된 과거를 꺼낸 것이다. 왜 이것을 꺼낸 것일까? 그토록 어려운 시기, 먹고 살 걱정을 하던 시기에 번역을 했고 충분히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번역이 쉽다는 말일까? 그건 절대 아니다. 권남희는 “이판사판 목숨 걸고” 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여 “막혀 있는 미래”를 뚫어보라고 말한다. 유명한 번역가가 이렇게 말했다면 뻔한 소리로 여겨졌을 테다. 하지만 권남희이기에 그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아무리 고달파보여도 뜻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는 것일까? 그렇게 권남희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면서 좋은 방법도 알려준다. 인터넷에서 외국 사이트 직접 들어가서 작품을 찾고 검토서를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라고. 가만히 앉아서 토끼가 오길 바라지 말고 직접 가서 잡으라는 말일 게다.

다음으로 만날 수 있는 김춘미와 송병선은 어떨까? 김춘미는 좋은 번역을 이야기해주며 일본 문학이 각광받게 된 과정을 설명해준다. 번역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이들이 귀기울여 들을 귀한 내용을 들려주는 것인데 이는 송병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남미 작품을 주로 번역하는 송병선은 말린체를 소개하고 있다. 송병선은 왜 말린체를 이야기하는가? 라틴 아메리카 최초의 번역가라고 할 만한 말린체는 ‘반역자’와 ‘창조자’의 행위를 동시에 보여줬다.

송병선은 그것을 통해 번역가들이 문화들의 가교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자’라는 점을 밝히며 번역가의 정체성, 나아가 그 중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번역가들 입장에서 보면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할 테지만 동시에 큰 격려가 되는 말일 게다.

이종인과 최정수는 어떨까? 이종인은 번역가의 고단함에 대해 꽤 상세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특히 원고료에 관한 것이 그것인데 이 내용은 번역가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 번역가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종인이 고단한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이종인은 번역가의 즐거움, 특히 언어를 표현하는 것을 말하는데 듣고만 있어도 그 재미가 쏠쏠해 보인다. 이는 힘들어도 번역가의 끈을 놓지 않은 이유를 엿보게 한다. 파울로 코엘료의 이름을 알려준 최정수는 자신이 번역한 작품들을 이야기하는데 주력했다. 자부심이랄까. 작품을 언급하는 말 하나하나에 뿌듯함이 보인다. 아마도 번역가로서 가장 기쁜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이상 여섯 명의 번역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든 번역가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고단한 처지에서 일하는 이들도 많을 것인데 그런 면에서 <번역은 내 운명>에게는 그들에게 즐거운 지향점이 될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큰 의미는 대중에게 번역가들의 삶을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그동안 번역가를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웠던가. <번역은 내 운명>은 다소나마 그들의 모습을 엿보도록 해주고 있다. 비록 이것이 단편적인 모습일지라도 그것으로 족하다. 간만에 번역가들의 즐거운 표정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아가 번역의 중요성을 두 번, 세 번 알려주고 있으니 대중에게 번역가를 소개하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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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는 아니지만 읽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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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향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 호마윤 에르사디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2년 9월
품절


예전에 목매달아 죽기 위해 줄을 매려고 나무에 올라간적이 있소. 그런데 나무에 달린 체리가 눈에 띄어 무심결에 먹어보니 너무도 달더군. 그래서 계속 먹어보니 문득 세상이 너무 밝다는것을 느껴졌소. 붉은 태양은 찬란하게 빛나고 하교하는 아이들의 소리는 너무도 평안했지. 그래서 아이들에게 체리를 따서 던져주고 나무에서 내려왔소.-체리 향기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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