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양성희] 세기말 비엔나

칼 쇼르스케 지음, 구운몽

507쪽, 3만원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비엔나. '벨 에포크(belle Epoque.좋았던 시절)'라고 불리는 시대다. 600년여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 비엔나는 당시 제국의 몰락과 새로운 자유주의 부르주아 등장을 목도하고 있었다. 부르주아 지식인들은 '아버지'를 부정하고 욕망으로 들끓는 심리적 인간형을 찾아냈다. 르네상스 지식인에 버금가는 전방위문화인이었던 그들은 훗날 비엔나 학파를 통해 문화의 혁신을 이끌었다. 심리학.예술사에서 음악.회화.건축에 걸친 성취였다.

20세기 지성사의 격변을 주도한 프로이트, 현대건축의 개념을 정립한 오토 바그너, 현대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 클림트코코슈카가 그 맹장들이다. 이들이야말로 20세기 문화의 싹을 움트게 한 현대적 자아의 원형질인 셈이다. 책은 세기말 비엔나에 대한 문화사.지성사 연구. 허무와 퇴폐로만 상징되는 세기말의 전형적 풍경을 창조와 변혁의 열정으로 바꿔놓았던 시기에 대한 세밀화다.

유럽문화 전공의 프리스턴대 석좌교수인 저자는 스스로 포스트 홀링(post-holing)이라고 명명한 연구방법론을 제시한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눈밭에 허리춤까지 빠지는 발을 한 발 한 발 끌어당기면서 걸음을 옮기는 전진 방식'이다. 정치사상. 건축 등 각 분야를 최대한 깊게 파고 들어가 연관성을 밝히고, 그를 통해 세기말 비엔나의 다층구조를 파헤친다는 얘기다.

책은 이어 세기말 비엔나가 20세기 현대성과 맺고 있는 관계로 나아간다. 19세기 중엽 이후 압축적 정치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비엔나의 도시건축, 프로이트적 본능의 시각화로서 클림트 회화 등이 분석된다. 문화예술의 전방위를 아우르는 저자의 식견과 통찰력이 또 하나의 비엔나 지식인의 출현을 보는 듯, 매혹적인 저작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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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후남] 한국언론인물사상사

조맹기 지음, 나남출판

343쪽, 1만6000원

흔히 '사상의 자유시장' '언론의 자유'같은 생각은 서양에서 도래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저마다의 치열한 사상적 모색과 실천으로 1896년'독립신문'창간 이래 100여년의 언론사를 이끌어왔다.

이 책은 '독립신문'의 서재필.윤치호를 시작으로 장지연.신채호.이광수.홍명희.안재홍.천관우.최석채.장준하.송건호 등 11명의 언론인의 사상적 기반과 함께 이것이 언론에 나타난 양상을 되짚는다.

이들은 좌와 우, 혹은 친일과 항일 뿐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핵심적으로 추구한 가치도 달랐다. 저자에 따르면 '임꺽정'의 소설가 홍명희는 '사실성'에 충실한 언론인이었다. 이는 소설가 이광수나 독립운동가 신채호와는 좀 다른 입장이다. 신채호는 민족사의 전통에 입각해 민족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언론의 역할에 집중했다. 반면 이광수는 "언론의 목적합리성에 익숙한 나머지 가치합리성에 갈등을 빚었다"는 것이 이 책의 평가다.

언론학 교수가 쓴 이 책은 자연히 각 인물의 사상과 이력을 간추린 평전으로도 볼 수 있다. 언론학 연구자가 아닌 여느 독자라면 대개 독립운동가.소설가로 불리는 인물들이 신문.잡지의 기자.편집국장.사장 등으로 활동한 이력을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을 듯 하다. 서재필을 '정보혁명의 선구자'로 보는 시각에서 짐작하듯, 우리네 언론의 발전과정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려는 노력이 들어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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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우석] 심산 김창숙 평전

김삼웅 지음, 시대의창,

1만6500원, 538쪽,2006년 출간

한국사에서 선비 정신의 맥은 고려말 조선초의 정몽주.길재로 시작한다. 이후 김숙자.김종직.김굉필.조광조.조식.이황.이이.정약용으로 이어지지만, 20세기 선비인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은 흔히 남명(南冥) 조식(1501~72)과 비견된다. 조식이'칼을 든 선비'로 불려서만은 아니다. 심산은 평생 남명을 사숙하면서"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 같이, 자신에게는 추상같이"라는 말을 새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선비'심산은 현대 유학이 보여줄 수 있는 역동성의 한 끝자락을 보여준 사람이다. 선비 정신이 낡은 유물만은 아니라는 점, 조선조와 또 달리 망국.식민지.해방.분단.독재로 점철된 현대사의 복판을 걸을 때 선비정신이어떻게 책임있는 자세로 연결되는가를 보여줬다. '심산 김창숙 평전'은 주로 역사적 접근을 한다. 활동 중심이다.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임정 참여, 일제경찰의 고문으로 앉은뱅이 신세가 된 뒤 해방 이후 성균관대 설립, 반(反)이승만 운동과 투옥 생활 등이 주축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너무 엄숙.거룩하다. "대장부.군자.지사를 합친 참선비"라는 저자 스스로의 규정 때문일 것이다. 위인전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그 때문이다. 섬세한 뉘앙스도 부족하다. 심산을 다뤘다는 것 자체가 반가우나, '끌림'이 덜한 것은 그 때문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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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선민] 원 맨 탱고

앤소니 퀸 구술,

다이엘 페이스닉 지음,

청아출판사, 571쪽, 1996년 출간

"책은 연기 못지 않게 또 하나의 '작품' 이었다."고(故)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01년 앤서니 퀸의 자서전 '원 맨 탱고'를 그렇게 평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로마 근교를 자전거 산책하며 삶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자서전은 흡인력이 크다."위대한 명배우의 한쪽 구두에 두 발을 집어넣고 어떻게 해서든 걸어야 하는" (156쪽) 집념으로 연기를 익혀가는 과정 서술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덧칠하지 않은 삶 자체가 주는 인간미가 매력이다. 여인 6명 사이에서 자녀 13명을 뒀으며, 그중에 엄마를 밝힐 수 없는 아이도 있다는 고백을 털어놓는다. "전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 작업"이라는 한국어판 서문의 고백을 퀸 자신이 실천한 셈일까. 하이라이트는 16세 빨강머리 에비와, 그의 어머니 실비아 부인 사이의 삼각관계. 리얼하면서도 아름다운 대목이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 "무식꾼"(117쪽)이 쥐었던 거대한 행운. 퀸은 실비아 부인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따라 보들레르.헤밍웨이의 책에서 모차르트.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를 빠르게 향상시킨다. 생산성이라는 잣대로만 치면 제도권 교육 뺨 친다. 결국 이 책 자체가 특별하다기 보다 서구 자서전.전기.평전의 평균 수준이 이만하다는 점이 놀랍고 부럽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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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우석] 함석헌 평전

김성수 평전, 삼인,

218쪽, 2001년 출간

5년 전 선보인 '함석헌 평전'은 국내 평전 풍토에 관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본래 이 책은 영어로 쓰여진 박사학위 논문을 뼈대로 한다. 영국 에섹스대학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던 저자에게 담당 교수들이 했던 주문은 '영웅 함석헌'묘사가 아니었다. "연약한 한 인간에 관한 평가.비평 논문"(8쪽)을 요구했다. 바라보지도 못할 위인으로 그리는 것은 학문적으로 봐도 큰 가치가 없음을 보여주는 얘기다.

1개월 전 선보였던 고려대 김용준 명예교수의 함석헌 평전 '내가 본 함석헌'(아카넷)이 오랜 교유 속에서 만들어졌다면, 이 책은 함석헌(1901~89)의 두 세대 뒤의 사람이 본 함석헌이다. 김교수의 글이 여유롭고 따듯하다면, 이 평전은 일관된 시선과 해석이 특장(特長)이다. 사람냄새가 약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학적 관심 속에서 함석헌을 재해석하고 있어 좀 딱딱할까.

문제는 사람 함석헌은 이런 몇몇 평전.전기로 다'퍼낼'수는 없는 그릇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1956년)등 제도권 종교와 독재정권 비판에 불을 뿜었던 1인 저널리스트로 볼 수도 있다. 또 특유의 입말(口語)구사의 함석헌체(體)를 구사한 20세기 문장가 측면도 재해석해야 옳다. 동서양을 오간 사상가의 측면 역시 충분히 밝혀진 것도 아니다. 더 많은 함석헌 평전 버전이 기다려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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