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김태훈기자]

‘범죄는 피아노 같은 거다. 예술적 경지에 이르려면 일찍 시작해야 한다.’

여기 소개하는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범죄는 나쁜 것인가? 일상에서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변수에 의해 범죄는 이 소설에서 아름다운 예술, 또는 구원의 메시아적 행동으로 추앙받는다. 그 범죄의 구체적 행위는 살생이다.

주인공은 올해 열살 난 꼬마 아스카. 이 아이의 취미는 고양이 죽이기. 그것도 아주 엽기적인 방법으로 죽인다. 먼저 제물이 된 고양이에게 나폴레옹, 맨슨, 피노체트, 에바 페론 등 유명한 살인자나 정치가 등의 이름을 붙인다. 이어 죽이는 방법을 선택한다. 찔러 죽이는 것은 너무 쉽다. 태워 죽이고, 감전사시키고, 갈아 마시고, 술 먹여 교통사고 유발하고, 무식하게 그냥 때려죽이고, 뾰족구두 뒤꿈치로 밟아 죽인다. 자식의 만행에 넌더리가 난 부모는 아이를 정신병원에 데려간다.

사회가 비정상적인 아이를 정상적 대응방식으로 맞서는 것은 여기서 끝이다. 아스카가 사는 유토피아의 성스러운 지도자가 백혈병에 걸리자 사회의 기존 가치가 뒤집힌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병따위로 죽을 수 없고 권위에 걸맞는 독특한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 필요를 맞추기 위한 작전으로 지도자는 형사 미성년자인 아스카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사회는 ‘고양이 킬러’인 아스카의 살의를 일으키기 위해 ‘지도자는 고양이다’라는 제목의 백일장을 학교에서 개최한다. 유토피아 곳곳에 ‘지도자는 고양이를 닮았다’는 벽보도 나붙었다. 비정상적이고 엽기적인 살해극의 주범으로 가족의 걱정거리였던 아스카는 공동체의 신화를 지키는 영웅으로 거듭났다.

어이없는 줄거리지만 이 익살스러운 모순이 독자로 하여금 질문 하나를 던지게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 또한 가치가 뒤집혀 있거나 뒤집힌 가치의 지배를 받는 곳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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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06-04-16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양이 살인과 관계있는 책인가요. 좀 잔인하네요.
 



[조선일보 박해현기자]

금괴를 훔친 좀도둑이 공범을 따돌리고 튄다. 황량한 겨울 핀란드의 숲으로 숨는다. 도둑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알코올 중독자인 육군 소령, 양로원 환자 되기를 거부한 노파, 정체불명의 미녀들, 수렵 관리를 맡고 있는 경찰관 등등...그들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방외인들이다. 숲은 마치 거울의 뒷면처럼 존재하는 현실의 이면이다.

이 책을 쓴 파실린나는 소설 ‘기발한 자살 여행’으로 이미 국내에 소개된 핀란드의 인기 작가다. 1942년 전쟁의 한 복판에서 독일군을 피해 달리던 트럭 안에서 태어났다. 벌목 인부에서 신문 기자까지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숲에서 일하면서 땅을 일구고, 나무를 자르고, 고기를 잡고, 사냥을 했다. 그때의 경험들이 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파실린나의 소설은 먼 북구의 풍경을 향한 상상력의 초대장이다. ‘둘은 함께 사우나를 가서 땀을 빼며 자작나무 가지다발로 열심히 몸을 후려쳤다. 혈액순환에 좋은 민간요법이었다’는 문장을 읽다보면 몸에서 김이 나는 듯하다. ‘밖에서는 북극광의 화려한 불빛 속에 늑대 세 마리가 노르웨이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는 문장은 유럽의 변방을 향한 일탈 욕망을 부추긴다.

파실린나의 소설은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 문학이다. 현실을 벗어나 숲으로 기어든 인간들은 숲 바깥의 국가와 사회, 제도의 부조리를 비아냥거린다. 이 소설에서 ‘목 매달린 여우’란 어리석은 욕망에 목을 매고 사는 인간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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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아내 로라가 선물한 800여쪽짜리 두툼한 책 한 권을 독파했다. 얼마나 감명 깊었던 지 며칠 뒤 백악관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도 권할 정도였다. “평화 시에 발생한 7000만 명이 넘는 죽음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인물”. 마오쩌둥(毛澤東)을 스탈린이나 히틀러 못잖은 독재자로 그린 전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오는 초창기 모스크바 지시에 앞장서서 따른 인물로 나온다. 국민당과의 합작을 지시한 코민테른에 대해 천두슈(陳獨秀)를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반발했으나 마오는 국민당에 입당했다. 코민테른 특사 마링은 “마오는 중국을 구하는 길이 소련의 간섭뿐이라고 보았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마오가 주인공인 장정(長征) 신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홍군이 장정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산당의 뛰어난 전술 때문이 아니라 귀저우(貴州)·쓰촨(四川) 군벌을 압박하기 위해 홍군을 이 지역으로 유도한 장제스(蔣介石)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소련에 사실상 인질로 붙잡혀있던 아들 장징궈(蔣經國)의 송환을 위해 소련을 달래려 했던 장제스의 의도도 깔려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타격이 될 만한 것은 장정 참가자가 내놓은 증언이다. “(지도자들은) 평등을 말하면서 지주들처럼 가마에 편안히 누워 가고 있다고 우리들은 수군거렸지요.”

마오는 젊은 시절부터 농민과 노동자뿐 아니라 은인이나 동지에게도 등을 돌린 비정한 인물로 나온다. 그는 당초 ‘장정(長征)’ 대열에 끼지 못하고 후방에 남아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는 게릴라전을 펼칠 운명이었다. 그러나 동굴 속에 감춰둔 금·은·보석을 지도부인 보구(博古)에게 ‘뇌물’로 주면서 장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출발 직전에는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의사 푸롄장의 도움으로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게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은 푸롄장이 도움을 요청했으나 마오는 외면했고 결국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평생 그를 따른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72년 방광암에 걸리자 마오는 수술은 물론 치료까지 막았다고 했다.

문제는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마오가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중국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컬럼비아대 앤드루 네이선 교수가 “이 책은 마오의 승리를 가져온 심리적·사회적·역사적 요인을 설명하지 않은 채 만화책의 괴물처럼 그리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옳다.

그럼에도 이 책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저자들이 책을 쓰기 위해 쏟은 공력 때문이다. ‘대륙의 딸들’로 유명한 중국 작가 장융은 남편인 역사학자 존 핼리데이와 함께 마오의 가족과 친척, 옛 친구와 동료, 측근들은 물론 36개국 400여 명을 인터뷰하고 러시아·알바니아·불가리아·독일 등의 문서보관소까지 뒤졌다.

한가지 지적할 것은 번역의 오류다. 천두슈가 발행한 잡지 ‘신청년’을 ‘새청년’으로, ‘사회주의청년단’을 ‘사회주의청년연맹’으로 잘못 옮긴 것은 그렇다 치자. 사기(史記) 한서(漢書)같은 중국의 정사인 ‘24사(二十四史)’를 ‘24권짜리 역사’로 번역한 것은 좀 심했다. 논란이 될 만한 기술의 근거를 책에서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아쉽다. 분량이 늘어날 것을 염려한 출판사에서 주(註)를 싣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주를 내려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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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유석재기자]

아무리 봐도 ‘뭉치’라는 이 주인공은 강아지다. 함께 살고 있는 놀라 아줌마가 시도 때도 없이 깜짝깜짝 놀라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조용하다는 ‘홀로 동굴’로 이사 오게 됐는데, 사진 액자를 벽에 걸려고 못을 콩콩 치다가 그만 아줌마가 쓰러지고 만다. 뭉치는 아줌마의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을 구하러 ‘칠곡 동산’으로 떠난다. 그곳으로 가려면 일곱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첫 번째 고개에서 주인공에게 다가온 것은 ‘줄넘기 귀신’. 이제부터 엄청난 모험을 겪게 될 것 같지만 귀신의 요구가 황당하다. “나랑 함께 줄넘기를 100번만 해 줘.” 두 번째 고개에서 만난 돌리바돌리바는 “내 머리가 도대체 어딘지 알려 줘”라고 부탁한다. 세 번째 고개에선 마스크랑 목도리로 상대방을 따뜻하게 해 주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재미있는 줄거리, 친근한 구어체가 살아나는 문장들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그림이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감춰져 있을 법한 발랄하고 깜찍한 캐릭터들이 기상천외한 모습으로 그림책 곳곳에 등장한다. 올해 볼로냐 국제어린이도서전에서 ‘라가치 상’을 수상한 작가의 신작 팬터지다. 4~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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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윤덕기자]

“모든 아기들은 신의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다/때로는 성장하지 못하는 아기들도 있다/인간들은 삼 퍼센트의 아기들을 미워하고 비난한다/아기가 울면 하늘에서 신도 운다….”

3년 전, 동성애자로 태어난 자신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10대의 실화를 모티프로 쓴 성장소설. 우리 사회 ‘성적(性的) 소수자’의 문제를 따뜻한 인간애로 풀어냈다.

동성애자로 태어났다는 걸 알지만 엄마에게조차 버려질까봐 스스로를 감추고 혐오하면서 살아가는 고3 수험생 정현. ‘나를 그저 나로 바라봐 주는 곳’을 꿈꾸지만,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가 가하는 폭력 앞에 무기력하기만 한 모범생이다. ‘커밍 아웃’과 동시에 죽음을 선택한 친구 상요는 정현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나 엄마의 출산이 다시 희망의 끈을 던져준다. 3%의 동성애자로 태어나든, 97%의 이성애자로 태어나든 모든 생명은 존엄하고 고귀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

작가는 상요가 즐겨 읽던 ‘장자’에 기대어 메시지를 던진다. “가장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타고난 참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발가락이 붙었거나 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육손이라도 스스로 불구라고 생각하며 비관하지 않는다”고 위로한다. 고등학생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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