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아내 로라가 선물한 800여쪽짜리 두툼한 책 한 권을 독파했다. 얼마나 감명 깊었던 지 며칠 뒤 백악관을 방문한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도 권할 정도였다. “평화 시에 발생한 7000만 명이 넘는 죽음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인물”.
마오쩌둥(毛澤東)을
스탈린이나
히틀러 못잖은 독재자로 그린 전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오는 초창기 모스크바 지시에 앞장서서 따른 인물로 나온다. 국민당과의 합작을 지시한 코민테른에 대해
천두슈(陳獨秀)를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반발했으나 마오는 국민당에 입당했다. 코민테른 특사 마링은 “마오는 중국을 구하는 길이 소련의 간섭뿐이라고 보았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마오가 주인공인 장정(長征) 신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홍군이 장정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산당의 뛰어난 전술 때문이 아니라 귀저우(貴州)·쓰촨(四川) 군벌을 압박하기 위해 홍군을 이 지역으로 유도한
장제스(蔣介石)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소련에 사실상 인질로 붙잡혀있던 아들 장징궈(蔣經國)의 송환을 위해 소련을 달래려 했던 장제스의 의도도 깔려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타격이 될 만한 것은 장정 참가자가 내놓은 증언이다. “(지도자들은) 평등을 말하면서 지주들처럼 가마에 편안히 누워 가고 있다고 우리들은 수군거렸지요.”
마오는 젊은 시절부터 농민과 노동자뿐 아니라 은인이나 동지에게도 등을 돌린 비정한 인물로 나온다. 그는 당초 ‘장정(長征)’ 대열에 끼지 못하고 후방에 남아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없는 게릴라전을 펼칠 운명이었다. 그러나 동굴 속에 감춰둔 금·은·보석을 지도부인 보구(博古)에게 ‘뇌물’로 주면서 장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출발 직전에는 말라리아에 걸렸는데 의사 푸롄장의 도움으로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문화혁명 때
홍위병에게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은 푸롄장이 도움을 요청했으나 마오는 외면했고 결국 그는 감옥에서 죽었다. 평생 그를 따른
저우언라이(周恩來)가 1972년 방광암에 걸리자 마오는 수술은 물론 치료까지 막았다고 했다.
문제는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마오가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고 중국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컬럼비아대 앤드루 네이선 교수가 “이 책은 마오의 승리를 가져온 심리적·사회적·역사적 요인을 설명하지 않은 채 만화책의 괴물처럼 그리고 있다”고 지적한 것은 옳다.
그럼에도 이 책을 간단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저자들이 책을 쓰기 위해 쏟은 공력 때문이다. ‘대륙의 딸들’로 유명한 중국 작가 장융은 남편인 역사학자 존 핼리데이와 함께 마오의 가족과 친척, 옛 친구와 동료, 측근들은 물론 36개국 400여 명을 인터뷰하고 러시아·
알바니아·불가리아·독일 등의 문서보관소까지 뒤졌다.
한가지 지적할 것은 번역의 오류다. 천두슈가 발행한 잡지 ‘신청년’을 ‘새청년’으로, ‘사회주의청년단’을 ‘사회주의청년연맹’으로 잘못 옮긴 것은 그렇다 치자. 사기(史記) 한서(漢書)같은 중국의 정사인 ‘24사(二十四史)’를 ‘24권짜리 역사’로 번역한 것은 좀 심했다. 논란이 될 만한 기술의 근거를 책에서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아쉽다. 분량이 늘어날 것을 염려한 출판사에서 주(註)를 싣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판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주를 내려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