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예전에 한줄자리 글을 시라고 그것이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라고 이야기를 들었을때, 그 신선함에 무척 끌렸지만 왜 그때 하이쿠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게 생각되네요.

한줄도 길다고 이야기한 5.7.5조의 하이쿠는 글이 짧기 때문에 그 함축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더 오래동안 곰새겨 보게 되는 글인것 같습니다.

이 책은 에도시절의 하이쿠와 그리고 하이쿠로 인해 함께 발달된 색채 목판화인 우키요에 대해서 설명을 한후 우키요에와 하이쿠를 함께 소개해 준답니다.

계절에 맞춰 화려한 우키요에와 그림에 맞는 하이쿠가 참 운치가 있다...라고 생각이 들어요.

삽화도 마음에 들고, 전체적인 구성도 마음에 듭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마도 하얀 기모노에 그려진 홍매화가 아닌가 싶어요.

그전에 '세상이 내게 가르쳐 준 비밀'이라는 만화에서도 기모노에 그려진 그림에 대해서 나왔을때도 참 멋있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깐 더 인상적이더군요.

우리나라 한복에 저렇게 자연의 그림을 그려 놓은것이 없는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혹, 있다면 알려주세요.)

우키요에는 어찌보면 촌스럽고 그래서 때론 벽지 같고 때로는 화투장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서 더 정겹고 가까운 느낌이 드는것 같습니다.

우키요에와 하이쿠는 결코 예술이 어렵다고만 이야기 않거든요.

모든 사람이 함께 공유할수 있는 대중성 때문에 더 오랜동안 사랑을 받는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명백을 이어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우키요에와 하이쿠는 다분이 일본적이고 일본적일수 밖에 없지만 그래서 때론 예술로써만 바라보기 힘들기도 하지만(일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예술을 예술로 바라볼수 없는 현실이 조금은 슬프네요.), 어쩜 그런점을 본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옛것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 그들의 힘을 우리도 본 받아야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일본어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일본어로 적힌 하이쿠도 함께 있으니 함께 감상해보시는 것도 좋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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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절판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

=>왠지 가슴을 설레게 하내요.-잇사쪽

산길 걷다가 나도 몰래 끌렸네, 제비꽃이여

=>정말 그래요. 산길을 가면 제비꽃만 끌리겠어요. 지천에 피어있는 꽃들에게 추파를 보내게 되지요.-바쇼쪽

얼마 동안은 꽃 위에 달이 걸린 밤이겠구나

=>짧아서 더 멋있게 느껴지는 글입니다.-바쇼쪽

흰 팔꿈치 괴고 선승이 조는구나. 초저녁 봄날

=>때로는 유머러스한 하이쿠가 마음에 듭니다.-부손 쪽

죽이지 마라, 파리가 손으로 빌고 발로도 빈다.

=>파리 입장을 생각하면 슬프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우습네요.-잇사쪽

떠나는 내게 머무는 그대에게, 가을이 두개

=>어찌 가을이 두개일뿐이랴... -시키쪽

한밤중 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갉는다.

=>가을녁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하이쿠입니다.-바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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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사람 정말 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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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김성동 지음 / 청년사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만다라(·←Mandala )

1.불교 본질 달음의 경지, 또는 부처 실제 증험 그림으로 나타.

2.부처 보살 모시 예배 공단 .
  

어릴적 영화로 봤던 기억이 있는 책이네요.

만다라의 뜻을 앍고 싶어서 선택했는데, 책 속의 스님들도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고뇌를 하더군요.

깨ŸL침을 얻으려는 법운이 파계승 지산을 만나 그와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처음엔 법운 역시 지산을 보고 땡초라고 불쾌해했는데, 그를 알수록 지산을 향한 불쾌감이 절에 대한 불쾌감으로 바뀌어 가네요.

나중에 법운이 지산과 함께 사형이 있는 절을 찾아가지만 사형 역시 지산의 겉모습만 보고 지산뿐만 아니라 법운까지 타박할때 법운은 지산 앞에서 사형이 무척 창피했을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종교인도 사람인지라 완벽할수 없지만, 다만 일반인보다는 나을거라는 생각은 참 많이들 하게 되는것 같아요.

법운이 절이 너무 많아졌다고 한탄하는 대목에서 비단 절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절뿐만아니라 교회는 어찌나 많은지...

저녁에 십자모양의 네온사인이 안보이는 곳을 찾기 힘든것을 보면 말입니다.

인간이 집단에 소속하면 어찌되었든 개인의 행복이 변질된다는 말도 어쩜 불교 역시 너무 방대해진 크기에 불심이 눌려버리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교의 용어가 다소 생소했지만, 그래도 읽는동안 마음에 많은 감동과 생각을 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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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김성동 지음 / 청년사 / 2005년 2월
구판절판


"그대에겐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나?"
지산은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을 자기의 이마 높이로 들어올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지금 술에 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산이 말했다.
"그대의 눈에는 이것이 술잔으로 보일 테지. 그러나 내겐 부처로 보인다. ……이거야. 바로 이것이 부처와 중생의 차이야. 그대가 찾는 부처는 법당에 있고, 내가 찾는 부처는 이 방 안, 이 술잔 속에 있어. 나무소주불."
-.쪽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처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보통명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부처는 신이 아니라 완전한 인격체, 완벽한 인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극치라는 것이었다.

=>30분에 읽는 부처에서 알았어요. 부처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라는 사실을...-.쪽

부처가 신이 아니고 인간일진대 그렇게 태연자약한 얼굴로 요지부동 침묵만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숱한 중생들이 배고파서, 병들어서, 옥에 갇혀서, 권력과 금력 가진 자들에게 억눌려서, 억눌려서 신음하고 있는데…… 그렇게 빙그레 웃고만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얼굴이 아니야. 티끌 같은 인연으로 울고 웃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고. 적어도 석가가 인간이었고 인간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라면, 하나쯤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분노하는, 그리하여 팔만사천 번뇌에 싸여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의 불상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말이야? 함께 울고 함께 웃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야?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 부처를 그대는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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