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생리전증후군이 일어나는 시기엔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프로게스테론금단증상을 골고루 경험하게 된다. 에스트로겐의 감소는 갑작스러운 초조, 우울, 불안을 불러오고 테스토스테론 금단증상은 자신의 외모와 능력에 대한 불안감도 일으킨다. 프로게스테론 금단증상은 사소한 일에 눈물을 쏟게 만들기도 한다.

<28days>(두드림. 2006)의 저자 가브리엘리 리히터만은 프로게스테론 금단증상으로 지하철에서 신문을 수거하는 노인이나 버려진 인형만 봐도 눈시울이 뜨거워 질 수 있으니 늘 휴지를 갖고 다니라고 충고한다.

생리전증후군 시 카페인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다. 커피와 녹차, 이온음료 등의 카페인 함유 음료는 생리 전 증후군을 악화 시킬 수 있으니 커피 대신 과일주스를 마시는 편이 낫다.

재미있는 시트콤이나 코믹영화는 우울함과 생리 전 통증을 잊게 해주는데 제격이다. 트립토판(동물의 영양에 필요한 아미노산)이 함유된 닭고기를 먹거나 우유를 마시면 세로토닌이 만들어지니 권할 만 하다.

이때는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감소로 운동신경과 민첩성이 떨어지기도 한다. 술을 마시면 더 빨리 취할 수도 있으니 술이 약한 사람이라면 술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좋다. 줄어드는 에스트로겐이 진통제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 수치를 낮추므로 통증에 점점 민감해 진다. 에스트로겐이 증가해 다시 둔감해지는 생리 2일까지는 다이빙이나 복싱 다이어트처럼 격렬하고 위험한 운동은 피하는 것이 좋다.

‘생리주기 첨성술의 창시자’라 불리는 작가 가브리엘리 리히터만은 생리시작일을 ‘1일’로 생리주기를 ‘28일’ 로 정해 여성의 생리주기를 분석한 최초의 생리실용서 <28days>를 완성했다.

책에 따르면 day1~3일은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 서서?늘어나 몸은 피곤하지만 우울한 기분이 사라지고 평상시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는 ‘잠 깬 숲 속의 공주’ 시기다.

day4~10은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 늘어나 다소 피곤하긴 하지만 자신감이 샘솟고 사람만나는 일이 즐거워지는 ‘봄처녀’ 시기, day11~13은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 최고조에 달한다. 매력이 철철 넘치고 유능함과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할 수 있어‘슈퍼스타’라 불린다.

day14~22에는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고 프로게스테론이 늘어나 식욕이 늘고 집에서 쉬고 싶은 ‘귀차니스트’가 된다. 마지막 day23~28은 세 호르몬이 모두 감소해 신경이 예민해지고 걸핏하면 짜증이 나는 ‘딴지 마녀’시기다.

“호르몬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조금 더 지혜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28days>은 여성의 3대 호르몬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프로게스테론에 대한 설명까지 들어있는 유익한 실용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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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임수 기자]
 
▲ <삐삐는 언제나 마음대로야>를 읽고
ⓒ2006 우리교육
70년대에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말괄량이 삐삐'를 기억할 것이다. 양옆으로 딴 머리는 위로 뻗혀 있고,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입 꼬리가 광대뼈까지 닿아 있는 삐삐. 외모부터가 충격이었다. 그런 삐삐는 생김만큼이나 자유분방한 언행으로 정제된 사고에 갇혀있던 우리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충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알았던 시절, 삐삐는 제도권의 틀을 거부하고 고정된 사고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삐삐의 언행에 우리는 경악했지만, 사실은 우리 안에 꿈틀대는 욕구를 펼쳐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삐삐가 TV에 방영되던 시절을 생각해 보자. 당시 기억나는 학교생활 중 하나가 웅변대회였다. 웅변대회의 주된 주제는 '반공'에 관한 것으로 이승복 어린이가 간첩에게 저항하다 죽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웅변하는 아이는 마지막 피날레로 '이 연사 강력히 주장합니다'고 말하며 불끈 쥔 두 손을 쳐든다. 이쯤 되면 웅변하는 아이나 청중으로 앉아있던 아이들은 모두 공산당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며 눈물바다를 이룬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운 광경인가.

선생님들의 권위적인 태도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 5학년 때 우리 반 여자 아이들 중 손끝 야무진 아이들은 한 학기 내내 집단 노동에 동원되었다. 담임선생님이 집에 걸어놓을 초대형 스킬장식을 만드는 일을 시켰던 것이다. 그것도 교실에서 책상을 이어 붙인 채 작업이 이뤄졌다. 지금에야 아동학대고 노동력 착취지, 당시에 나는 그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그렇게 체제에 순응하고 권위를 선망하는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이었다.

착하고 순진하기만 했던, 그런 우리들에게 삐삐의 말과 행동은 충격적이었다.

ⓒ2006 말괄량이삐삐
아니카 : 우리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셔, 너도 틀림없이 우리 선생님을 좋아하게 될 거야.

토마스 : 학교에 그렇게 오래 있는 것도 아니야 열두 시 반까지만 있으면 돼.

아니카 :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가랑 부활절 휴가랑 여름 방학도 있어.

삐삐 : (조금 생각하고 나서) 그건 불공평하다.

토마스 : 뭐가?

삐삐 : 아주 아주 불공평해!

아니카 : 뭐가?

삐삐 : 너희만 크리스마스 휴가랑 부활절 휴가랑 여름 방학 있는 거. 난 아무것도 없단 말이야.

토마스 : 넌 학교에 안 다니니까 그렇지.

삐삐 : 겨우 그까짓 크리스마스 휴가 하나 얻으려고 학교를 다녀야 돼?

아니카 : 응, 안 그러면 안 돼.

삐삐 : 그럼 나도 학교에 다닐래. 나도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고 싶으니까. 그래야 공평하잖아.

아니카 : (환호성을 지른다.) 야호, 신난다! 어서 가자!

삐삐 : 에이, 그렇게 서두를 거 없어. 갈 때가 되면 알아서 갈게. 크리스마스 휴가를 주기 전에만 가면 되잖아. 안녕!


삐삐는 다른 아이들처럼 크리스마스 휴가를 얻기 위해서 학교에 가기로 했다. 그래야 공평해지니까 말이다. 이 말을 잘 풀어 보면, 아이들은 결국 공평해지기 위해서 자유를 희생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학교에 간 삐삐가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자.

ⓒ2006 말괄량이삐삐
삐삐 :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 제가 코 파기 시간에 딱 맞춰서 온 거죠?

선생님 : 그래, 하지만 조금 더 조용하게 왔으면 좋을 것 그랬구나. 아무튼 학교에 온 걸 환영한다. 삐삐야.

삐삐 : 고맙습니다.

선생님 : 우리 학교가 네 마음에 들면 좋겠다.

삐삐 : (줄곧 아주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선생님이랑 아이들이 행동을 늘 바르게 하면 마음에 들 거예요.


삐삐의 태도는 얼마나 당당한가. 학교에 처음 와본 고아 아이가 선생님께 행동을 바르게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삐삐가 등장하기 이전엔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당당한 어린이 모습이다. 우리는 경악과 동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뿐인가,

"오늘 셈 하기는 그만 끝내는 게 좋겠다!"는 말에 삐삐는 선생님 뺨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이 여태까지 하신 말씀 가운데 가장 똑 소리 나는 말씀이었어요. 선생님은 참 친절하고 상냥하세요.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정말 좋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사람을 조금 피곤하게 만들기는 해요. 그건 선생님도 인정하시죠?"

삐삐의 이런 행동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삐삐는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행한 억압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으며, 그것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이것은 말괄량이 삐삐가 1945년 처음 발표된 뒤, 지금까지 세계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 린드그렌은 삐삐를 통해 규율과 제도권 교육의 문제점, 어른과 아이들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특유의 유머를 담아 풀어 놓고 있다.

아이들이 비판적 의식을 갖지 못한 것을 탓할 수 없다.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에게 반공교육을 세뇌시킨 권력자나 권위적인 선생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 아이들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만약 그때 우리에게 삐삐와 같은 괴력의 힘이 있었다면, 금화가 잔득 든 가방이 있었다면, 그 누구도 나를 구속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는 삐삐처럼 학교에 가지 않았을 거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 달라고 요구했을 것이다.

삐삐가 지금까지도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직도 어린이들이 억압된 규율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때와는 다르지만, 요즘 어린이들도 경쟁체제로 인해 어린이가 누려야할 자유와 인권을 희생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어른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약하고 경제적으로 무능한 존재이다. 그러니 삐삐는 여전히 대리 만족을 주고 부러운 대상일 수밖에 없다.

<삐삐는 언제나 마음대로야>(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우리교육)는 린드그렌이 말괄량이 삐삐이야기를 동극으로 꾸민 것이다. 그래서 전체내용이 동극 극본이고 뒤편에 이 작품을 어떻게 동극으로 올릴 것인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릴 적에 보았던 삐삐를 추억했다. 나는 이제 삐삐를 처음 보았을 때 내 나이의 아이를 둔 부모다. 지금 내가 보는 삐삐의 모습은 단순히 통쾌하고 우스운 재미만 주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 구조적으로 분석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이들은 어릴 적 나처럼 단순히 보고 즐겼으면 한다. 왜냐하면 재미있게 읽어야 할 동화책을 구조적으로 분석하라고 요구한다면, 어린들에게 동화책 읽는 즐거움을 빼앗는 것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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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6-04-2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삐삐..정말 좋아합니다..
고로 내가 못해보는걸 너무나 당당하고 멋지게 해 내는게 속이 확 풀린다고나 할까??퍼갈께요??

보슬비 2006-04-25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삐삐가 좋아요.
말광량이 삐삐, 슬픔을 모르는 착한아이 삐삐...^^ㅎㅎ
 


"둘 다 끝장을 안 봐서, 바닥을 안 쳐서 미련이 남은 거야..."

SBS 월화드라마 ‘연애시대’(연출 한지승)에서 동진(감우성)과 은호(손예진)을 두고 미연(오윤아)이 했던 말이다. 이에 질세라 닥터 공(공형진)도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애정인 거야"라는 말을 덧붙인다. 누구보다 헤어졌던 시점에 미련을 두고 있는 건 동진과 은호 두 사람이다.

"너랑 헤어진 걸 이해해줄 사람이 너 밖에 없어"

두 사람이 나누는 가슴 아픈 대사에 일본의 감성작가 이시다 이라의 <1파운드의 슬픔>(황매. 2006)에 실린 단편 ‘옛 남자친구’가 어우지면 슬픔이 배가 된다.

“그러고 보니 하루카 너, 다케히로 씨하고 헤어진 뒤로는 남자들하고 오래 간 적이 없는 것 같아”

친구 가즈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 하루카를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이다. 하루카는 가즈미의 말에 수긍했다. 헤어진 지 18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옛 남자친구’ 다케히로. 그와 헤어진 후 세 명의 남자와 사귀어봤지만 길게 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루카에게 6년을 사귀면서도 권태기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다케히로와의 관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다케히로와 하루카는 ‘연애시대’의 동진과 은호처럼 ‘다시’ 만난다. 머뭇거리던 전화기를 들어 하루카에게 전화한 다케히로는 묻는다. “근데, 하루카... 지금 사귀는 사람 있어?” 서로가 지금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기쁜 속마음을 애써 감춘 채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에야 하루카는 다케히로와 네 시간이나 통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년 반만의 대화는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카는 전화를 끊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이시다 이라의 아름다운 문체를 타고 다케히로와 하루카의 재회는 그림처럼 펼쳐진다.

“근데, 다케 하나도 안 변했다”

“난 지금도 하루카의 대학 때 모습이 기억나. 여름 내내 지지미면으로 된 체크 무늬 원피스만 입고 다녔지?”

“다케야 말로 늘 똑같은 청바지에 늘어진 티셔츠만 입고 다녔잖아”

소설속 두 사람처럼, ‘연애시대’의 동진과 은호 역시‘퉁명스러운’ 말투로 첫 만남을 회상한다.

"그때는 아직 선수시절이라 어깨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원피스를 입고 있더라구요. 하늘하늘 꽃무늬. 집에 거울도 없는지"(동진)

"첫인상? 기억도 안나요. 머리에 젤을 어찌나 많이 발랐는지 조명을 그대로 반사하더라구요"(은호)

소설과 드라마는 서로의 지난시간을 ‘흉’보는 마음이야 말로 간절한 ‘그리움’ 임을 잔잔히 그려낸다.

소설 역시 드라마처럼 두 사람의 미래를 섣불리 예고하진 않는다.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우니까 그렇지”

다케히로의 품에 안기자 하루카의 모든 말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그런 하루카를 아무 말 없이 다독여 주는 다케히로. 작가는 “이 사람은 굳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줄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라는 아름다운 문장을 덧붙인다.

10편의 단편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1파운드의 슬픔>은 ‘예고편 없는’ 사랑을 그린다.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게 되는 미련을 ‘아름답다’ 고 말하는 이시다 이라의 감성이 ‘연애시대’의 감성을 넘나든다.

(사진 = 방송장면)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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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공중그네>로 선명한 웃음을 맛보게 해줬기 때문일까?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특히 책 제목이 마법 주문의 일부인양 들리기에 <라라피포>에 대한 기대는 <공중그네>의 연장선상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다. <공중그네>의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허를 찔려도 아주 단단히 찔리게 될 테니까.

 
ⓒ2006 라라피포
<라라피포>는 <공중그네>와 구성이 비슷하다. 6명의 등장인물이 차례로 등장해 각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 인물은 명문대 출신의 스기야마 히로시, 한때 잘 나갔지만 대인공포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공중그네>에서 이라부 의사를 찾았던 첫 번째 환자 야쿠자가 떠오른다. 그렇다. 증세가 비슷하다. 그러나 <공중그네>에는 이라부가 없다. 그러니 히로시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

히로시는 기생오라비 같은 위층 남자의 섹스 소리를 듣는다. 여자 한번 집에 데려올 수 없는 히로시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히로시는 그 소리에 흥분한다. 그래서 소리에 집착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떠나 버리고 히로시는 혼자 남겨진다. 그럼 히로시는 어떻게 하는가? 직접 섹스를 해보기로 결정하고 거리로 나간다. 그런데 대인공포증이 어디 쉽게 가겠는가? 우물쭈물, 갈팡질팡할 뿐이다.

그럼에도 히로시는 적극적인 성격을 지닌, 뚱뚱해서 만만하다고 여기는 사유리라는 여성과 관계를 갖는데 성공한다. 자, 이쯤 되면 히로시가 사랑에 눈을 떠 '이라부'식의 처방으로 삶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선입견은 금물. 히로시는 망가진다. 뚱뚱하다고 사유리를 갖고 놀다가 버리더니 될 대로 되라는 듯 망가져간다. 그러다가 다시 사유리를 떠올린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섹스가 하고 싶어서. 그래서 사유리를 찾아갔는데 어처구니없는 망신을 당한다. 그러면서 히로시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히로시의 이야기에선 <공중그네>식의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당황스럽다. 쉽게 넘길 수 없는 결말이다. 진취적인 것도 없고, 희망적인 것도 없고, 즐거운 것도 없다. '자기 비하'적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다가 망가지는 이야기뿐이다. 혹시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뭔가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져볼 수도 있겠다. 정말 그럴까?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소설가 사이고지 게이지로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그는 왕년에 주목받는 소설가였다. 그러나 <라라피포>에서는 관능소설가로 나온다. 말이 좋아 관능소설가지, 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섹스 이야기만 질퍽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흔히 소설보다는 야설이라고 부르는 텍스트를 쓰는 작가다. 어쨌든 간에 게이지로는 잘 나간다. 책이 좀 팔리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문학을 하고픈 욕심에 게이지로는 가슴이 답답하다. 글을 쓰면서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공중그네>의 마지막 환자 여류작가가 떠오른다. 역시 소설가였던 그녀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게이지로도 히로시처럼 이라부가 없으니 직접 해결해야 한다. 게이지로는 노래방에서 여고생들을 만난다. 명목상 관능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지만, 진짜 속마음은 여고생들 때문에 흥분해서다. 매일같이 찾아가서 돈을 쏟아 붓는다.

어쨌든 새로운 경험을 해서인지 아니면 변화를 맞이해서인지 게이지로는 순수문학을 들고 자신을 등단시켰던 출판사로 찾아간다.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가 예상되는가? 분위기상 '이라부'식의 처방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게이지로는 절망한다. 그래서 다시 노래방에 가고 평소에 안하던 행위를 시도한다. 어처구니없게도 경찰이 출동한다. 게이지로는 완전히 망한다!

게이지로의 결말도 히로시의 것과 비슷하다.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라라피포>에 등장하는 나머지 4명, 여자를 등쳐먹고 살아가는 건달 겐지, 에로 배우가 된 아줌마 요시에, 남의 말을 거절 못하는 소심한 아르바이트생 고이치, 못생긴 뚱땡이 사유리의 이야기 모두 한결 같다. 정말 하나같이 성공과는 담을 쌓은 이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라라피포'라는 마법 주문 같은 뉘앙스의 책 제목과는 동떨어진 이 이야기는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이쯤에서 '라라피포'의 정체를 밝혀야겠다. 라라피포는 '어 랏 오브 피플(a lot of people)'을 빠르게 발음할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 책 제목은 '많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냥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성공과는 담 쌓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단지 이런 비주류 인생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일까? 아니다. <라라피포>는 경계심을 일으키는 책이다. 혹여 주세페 쿨리키아의 <빗나간 내 인생>을 기억하는지? 절망적인 인생을 보여줌으로서 어느 책보다도 강력하게 '이렇게 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줬던 <빗나간 내 인생>. 그 책은 지양할 것을 보여줌으로서 자연스럽게 지향할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라라피포>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공중그네>에서는 이라부가 등장해 치료해줬지만 <라라피포>는 반대로 알아서 치료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환자가 귀찮아서 치료하지 않으면? '우울'한 6명을 보게 된다. 그러니 어찌 자발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랴.

6명은 "인생 뭐 있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막 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생 뭐 있어?"라고 말하면서 변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이들처럼 자포자기하듯, 희망이라는 단어와 결별한 채로 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 성공과는 담 쌓은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라라피포'는 착각한 대로 마법의 주문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떻게? 방법이 좀 잔인할 수 있겠지만 <라라피포>의 주인공들을 자주 보면 된다. 그러면 어떻게든지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려고 발버둥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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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태 기자]
 
▲ <내 친구 흰멍이>
ⓒ2006 도서출판 청솔
어릴 적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밤, 채 눈도 못 뜬 어린 강아지를 방으로 데려와 이불 속에서 꼬옥 껴안으며 '낑낑' 거리는 개를 달래며 특유의 야릇한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 우리 안은 너무 추워 내가 꼭 방에서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마치 저 자신이 강아지의 엄마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김그네(44)씨의 책 <내 친구 흰멍이>에서 흰멍이에게 쏟는 식구들의 조건 없는 사랑과 헌신적인 보살핌은 독자들로 하여금 가슴 전체를 먹먹하게 만듭니다. 특히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는 이 시대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기에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이 책은 주인공이 할머니 댁에 다녀오다 앞 다리가 없는 선천성 장애견을 발견하고 데려다 정성껏 돌봐주면서 인간과 동물 사이를 초월해 진정한 가족이 돼 가는 과정을 정겹게 그려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자녀들) 눈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동화 형식을 빌려 쓴 <내 친구 흰멍이>는 동화작가 김그네씨 가족이 경험한 실제 사건을 이야기로 구성한 것입니다.

 
▲ 김그네 님 가족이 흰멍이를 처음 발견했을 때를 그린 그림(그림은 책 본문 10페이지 촬영)-이 그림은 그림을 사랑하는 여덟명으로 구성된 플러그가 그렸습니다.
ⓒ2006 플러그
이 책은 투박합니다. 행간을 아무리 찾아봐도 미사여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동화'여서 그런지 읽는 내내 동화 속 흰멍이 표정에 푹 빠지게 됩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편의 아내인 동화작가 김그네씨는 이 책에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가볍지 않은 청각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흰멍이에게 아이들 못지않게 애정을 쏟습니다.

이 책에서 보면 흰멍이는 피나는 노력으로 앞발 없이 뒷발로 걷고 서서 식구들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동네 아이들에게 '병신개'라고 모욕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SBS TV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흰멍이 사연이 방송되면서 누군가에게 바퀴 달린 신발을 선물 받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는 김그네씨 아파트에 불이 났는데 앞다리도 없는 흰멍이가 베란다 문턱을 넘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 엄마(김그네)를 깨워 큰 화를 면했다는 살신성인의 감동 스토리도 들어있습니다. 이 대목은 손에 땀을 쥐게 합니다. 이쯤 되면 흰멍이가 김그네씨 가족과 어떤 관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애완견을 기르는 분들이 꽤 있는데 사고나 질병으로 개를 잃었을 때 "아가야" 하며 몇 날 며칠을 슬피 우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동화를 읽고 나서야 그들이 왜 그토록 슬퍼하는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흰멍이가 제게 준 교훈이었습니다.

 
▲ <내 친구 흰멍이>의 실제 주인공 '흰멍이'
ⓒ2006 김그네
김그네씨는 이 동화를 통해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장애견을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가족들을 통해 많은 독자에게 감동 주기? 일차적인 측면에서는 맞겠지만 저는 그 이면의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흰멍이도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인 만큼, 사람이든 동물이든 간에 이를 바라보는 편견을 동등한 시선을 바꿔보자는 의지가 들어 있는 듯합니다. 또 흰멍이가 그랬던 것처럼 설령 장애가 있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위치에서 뭔가에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해석이야 독자 나름이겠지만 제 느낌은 그랬습니다.

최근 애완동물 등록제, 부담금 부과 등의 법 개정 문제를 놓고 설전에 설전을 더하며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애완동물 주인이 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치하고 유기하는 데서 비롯한 환경오염 때문에 이번 법 개정 문제가 나온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도 애완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있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최근 대전에서는 유기견 2백여 마리를 거둬 '헌신적으로' 키우는 아주머니가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물론 개발제한구역에서 개를 키웠다는 이유로 벌금을 물 처지에 놓였지만, 그 아주머니는 법은 전혀 모른 채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유기견들을 거두고 돌봤던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축산법 위반'이지만 실제로 그 아주머니는 '개들을 사랑한 죄'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하튼 김그네씨의 <내 친구 흰멍이>는 아무래도 추운 겨울날 읽어야 제 맛이 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읽는 동안 이야기가 훈훈한 난로가 되어 온몸은 물론 마음까지도 따뜻해지기 때문입니다.

▲ 시장에서 누군가에게 팔려가는 누렁이. 김그네 님 만큼만 돌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2006 윤태


"흰멍이는 우리 가족입니다"
[인터뷰] <내 친구 흰멍이>저자 김그네씨

 
▲<내 친구 흰멍이> 저자 김그네씨
김그네
- 요즘 흰멍이 근황은 어떤가요?

"가끔씩 발작을 일으켜서 식구들을 종종 깜짝 놀라게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닙니다. 또 낯선 사람들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 설사를 하기도 한답니다. 이런 점 빼고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 <내 친구 흰멍이> 동화에 보니 수화를 배운다고 하셨는데.

"배웠습니다. 그런데 딱히 사용할 기회가 없어서 배워놓고도 많이 까먹었네요. 그래서 수화도 더 익힐 겸 수화를 주제로 한 기획물을 쓰고 있습니다. 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책인데요. 이야기 거리와 함께 수화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책입니다."

- 애완동물 부담금 관련한 법 개정이 추진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넷에서 기사 봤습니다. 애완견 갖고 있으면 10만 원씩 세금 내게 해서 이들로부터 발생하는 환경오염 처리비용 등으로 쓴다고요. 글쎄요. 저는 법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애완견도 위하고 사람도 위하는 좋은 취지라면 나쁘진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10만 원이면 적지 않은 금액이네요."

- 흰멍이를 통해 배운 점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우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발도 없는 흰멍이가 뒷발로 일어서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짐승도 이러한 악조건에서 뭔가를 해내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뭔가 어려운 상황에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거 보면 안타깝더군요. 흰멍이를 보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우리 아이들은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생명을 보살피는 일이 늘 책임이 따른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 혹시 흰멍이 사연이 방송되고 나서 원래 주인한테 연락이 없었나요.

"네, 안타깝게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혹시 처음 흰멍이를 데려왔던 산책길에서 종종 만났던 분들 중에 주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키우지는 못했지만 늘 흰멍이를 생각 했을 거라고 믿거든요. 여하튼 방송 나가고 나서 많은 시청자가 자신 일처럼 나서서 관심과 사랑 쏟아주고 흰멍이 앞다리까지 만들어 준 일은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물론 흰멍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안 쓰고 있지만 잘 보관하고 있답니다."

- 원래 애완견을 좋아하셨나요. 장애가 있는 애완견이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제 손으로 개를 키워 본 건 흰멍이가 처음이에요. 좋다, 나쁘다 그런 마음이 없었지요. 처음에는 서툴러서 조금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자연스레 가족이 됐답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닌 가족이 된 거죠. 몸이 불편해도 가족은 가족인 것처럼 흰멍이는 우리 가족에게 그런 존재랍니다."

- 지금 준비하는 책이 있나요?

"<으뜸사냥꾼>이라는 동화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석기 시대 아이들의 성장 동화입니다. 사냥이 최고였던 그 시대, 사냥꾼들을 통솔하는 으뜸사냥꾼 이야기인데 아이들의 일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위에도 언급했지만 올해 안에 수화를 주제로 한 기획물을 완성하는 게 꿈이라면 꿈입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지난가을 스와츠잼펠 증후군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경남 마산의 원식이(9)라는 아이가 <내 친구 흰멍이>를 보고 흰멍이를 만나러 이곳 충주에 왔었습니다. 서울 병원 가는 길에 들른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힘들까봐 책 나오면 제가 가려고요. 아이 엄마가 저랑 동갑이라 친구처럼 연락 주고받는 답니다. 힘든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을 보니 흰멍이가 더 대단해 보입니다." / 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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