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우리부부는 아이 계획이 없기 때문에 읽지 않아도 될 책이지만,

경험을 통해 얻을수없는 부분을 책으로나마 얻어볼까해서 선택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마이뉴스 정아은 기자] 같은 소설가의 작품을 세 권 이상 읽게 되면 그 소설가에 대한 경외감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인간적인 친밀감이 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성격창조나 놀랍도록 세련되게 느껴졌던 이야기 구성 방식이 두 권째를 읽으면서 익숙해지다가 세 권, 네 권째에 들어서면 어느새 진부하게 느껴지면서 그 소설가에 대해 품었던 일종의 놀라움과 경외심같은 것이 어느 정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서는 건 같은 인간으로서의 친밀감이다. 아, 소설가도 결국 인간이구나. 한계와 약점을 가진 나와 같은 인간.

그러나 어디에든 예외는 있는 법이라 간혹 아무리 많은 작품을 읽어도 결코 경외심을 줄일 수 없게 만드는 소설가들이 있다. 이들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경외심이 커진다. 뿐만 아니라 어디 당신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나 한 번 해보자는 오기를 발동시켜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조리 찾아내어 읽도록 만들기까지 한다. 일본의 소설가중 이런 예외적인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무라카미 류'를 선택할 것이다.

무라카미 류, 기어코 '한' 건 하다

 
▲ <반도에서 나가라> 겉그림.
ⓒ2006 스튜디오본프리
<반도에서 나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보았을 때 이미 나는 예감하고 있었다. 이 작가가 기어코 한 건 했구나. 아주 욕심을 크게 부렸구나. 지금부터 5년 후, 허물어져버린 경제와 함께 아시아의 '지는 해'라 불리는 일본에 북조선의 반란군이 상륙하여 섬 하나를 차지하고 그 섬을 지배하려 한다. 웬만한 이야기 구성 능력을 가지고는 허황되고 부피만 큰, 그저 그런 액션 소설로 그치기 쉬운 황당한 소재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무라카미 류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줄거리를 흘깃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이 이야기를 이루는 두 축은 북조선 반란군 부대와 일본에서 '인간쓰레기' 정도로 취급받아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광기어린 살인자 집단이다. 북한은 반란군으로 위장한 군부대를 일본의 섬 '후쿠오카'에 상륙시켜 일본 일부를 지배하려 한다. 외국에 의해 한번도 영토침략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일본, 스러져가는 경제로 인해 국제적인 고립을 맞고 있는 일본은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북한 반란군에게 순식간에 섬을 빼앗기고 만다.

섬을 빼앗기고도 일본 정부는 서로 책임을 미루느라 바쁠 뿐 앞날에 대한 어떤 뚜렷한 대책도 내놓지 못한 채 우왕좌왕 언론 플레이만 벌인다. 이때 사회의 한 구석에서 주민등록번호조차 없이 살아가던 '전과자 집단'들이 북한 반란군과 맞설 궁리를 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깊고 정확한 류의 '한국민 문화'에 대한 이해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스며 나오는 작가의 북한 문화, 나아가서는 한반도 전체를 이루는 한국민의 문화에 대한 이해는 놀라울 정도로 깊고 정확하다. 어떤 면에서는 남한인인 나를 능가하는 뛰어난 정서적 예리함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자꾸만 이 이야기가 한국 사람의 손에 의해 쓰인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북한의 군장성 체계와 각종 무기류에 대한 정보, 일본인 전과자 무리가 대항의 도구로 사용했던 각종 벌레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이 이야기를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사의 회고담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가에게 감탄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은 벌레와 파충류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수많은 총기류에 대한 자세한 묘사도 아니다.

…조수련은 깜짝 놀랐다. 씨호크 호텔 주변을 달리면서 얘기를 들을 예정이었다. 나카스가 아니라 지교하마로 갑시다. 조수련은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호소다 사키코는 상반신만 뒤로 돌려 조수련의 눈을 가만히 보더니, 싫어요 하고 말하더니 웃었다. 호소다 사키코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순간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일본어가 모르는 언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지시나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을 대한 적이 없다는 것은 그 이후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공화국에서는 군대만이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나 가정에서도 지금의 호소다 사키코처럼 아랫사람이 지시나 명령을 거부하는 일이 없다…

현 일본정치에 대한 노골적이고 신랄한 비판

일방적인 명령과 복종 체계를 가진 나라, 불복은 곧 죽음이나 수용소로 보내짐을 의미하는 나라에서 자라난 청년 조수련은 호소다 사키코라는 일본여인이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자신에게 '싫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충격 속에서 그는 여인이 이끄는 대로 겨우겨우 번화가의 만두집까지 따라가고 차츰 자본주의 문화, 그리고 그 문화 속에서 피어나는 각종 인간적인 관계와 감정들에 눈을 뜨게 된다.

작가는 조수련과 호소다 사키코라는 일본인 여인의 교류를 통해서 북한인, 일본인, 남한인 모두 결국은 보편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강변하고 있다. 자라온 역사와 환경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 같지만 한계 상황에 처하여 서로 교류를 하게 되면 인류의 마음 저 밑바닥에 있는 보편적인 따뜻함 같은 것 하나가 떠오르게 되는 것임을 이야기로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현 정치 상황과 외교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노골적으로 튀어나온다.

…일본은, 센 남자라고 해서 있는 대로 갖다 바쳤는데 돈이 떨어지자 버림받은 여자와도 같았다. 그렇지만 센 남자에게 돈을 바치는 건 나쁜 일도 불합리한 일도 아니다. 누가 뭐라하던 자기 의지에 따라 돈을 바치기로 한 여자라면 버림받더라도 후회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상대가 기뻐할 거라고 믿고 일편단심으로 갖다 바친 여자는 후회하고 상대 남자를 죽도록 미워하기 마련이다…

일방적으로 미국을 추종했던 일본이 결국엔 미국에 버림받는 다는 시나리오를 류는 이런 식으로 희화화시키고 있다. 일본의 대미외교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시선이 어떤 식으로 갈라지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속의 주요 등장 국가의 하나로 등장하는 한국의 현재상황과도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욱 흥미롭다.

북한 심리에 바짝 다가선 고도의 심리극

무라카미 류는 일본의 소설가중 가장 시사성이 강한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각종 사회문제를 담고 있고 그 문제를 전개해감에 있어서 어김없이 일본 정부의 현재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드러낸다.

그의 시선은 마약, 청소년 문제, 테러문제, 성범죄 등 각종 사회 현안과 범죄 분야 곳곳에 고루고루 미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통해 그가 결국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이다. 인간의 보편에 내재되어 있는 온기에 관한 성찰. 마약중독자나 방화범, 연쇄살인 사건을 저지른 흉악범들의 내면에도 출발선에는 보통 사람들과 같은 심성이 있었다는 것. 그러한 심성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흉악범으로 변질되게 되는지를 서서히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따뜻함에 대한 그의 탐구가 이번에는 이웃나라 북한과 남한에 미쳤다. 그러고 보면 일본과 우리나라는 정말로 가까운 나라가 아닌가. 일본은 비단 지리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역사, 문화적으로 끊임없이 우리와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몇 번의 거대한 전쟁이라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선가 한민족과 일본 민족의 피는 일치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일본인이 쓴 북한의 이야기이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보다도 더 북한 사람들의 심리에 가깝게 다가 선 고도의 심리극이다. 일본의 극우파들에게 몰매 꽤나 맞았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만드는 역동성 있는 액션 활극이기도 하다. 또한 무라카미 류의 팬이라면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대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싸이질’ 마니아들에게 “회사 사람과는 1촌 맺지 마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는 <여자생활백서>(해냄. 2006)의 저자 안은영씨가 여성들에게 보내는 80가지 강령 중 71번째. 안씨는 별 뜻 없이 미니홈피에 쓴 자신의 넋두리를 읽은 회사 후배의 느닷없는 ‘참견’ 을 들은 후에야 회사 사람과 1촌 맺은 사실을 후회했다고 한다.

‘일촌’ 이나 ‘이웃’이 불필요한 개인의 역사를 공유하는 위험스런 존재도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공감 할 만 하다. “미니홈피, 블로그 는 성인들에겐 생활의 두께를 하나씩 벗어 던지는 곳”이라며 직장생활을 똑 부러지게 하고 싶은 여성이라면 절대 “회사 사람과는 1촌 맺지 마라”는 충언을 던졌다.

귀가 솔깃해지는 ‘잔소리’는 이 뿐만이 아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남자 선택 하는 기준은 ‘참을성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객관적인 남자인가’ ‘균형감이 있는가’ 이며,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라”라는 강령에는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문학과지성사. 2001), 김현의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지성사. 1995),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문예출판. 2001),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푸른숲. 1999),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현대문학. 2001) 등의 눈길 가는 추천도서 목록도 덧붙여 있다.

“내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끼적이던 습관과 사람과의 소통이 즐거워 기자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저자는 ‘메트로 신문’ 대중문화팀 기자로 활약 중이다. 12년차 베테랑 기자의 맛깔스런 글 솜씨와 생활에 접목시킬만한 행동강령들이 눈길을 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6-04-27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깊이 동감하죠

BRINY 2006-04-27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전세계적으로 4천600만부 이상이 팔린 댄 브라운의 화제작 <다빈치 코드>의 동명영화가 내달 18일 국내 개봉된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자손을 퍼뜨렸다는 가설을 담고 `예수의 신성 모독과 부활 부정, 기독교도의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대상이 된 문제작이다.

예수와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이해가 필요하고 수도사가 수도과정중 금욕하기 위해 자해하는 장면 때문에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영화뿐 아니라 원작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종교학부장 바트 어만(Bart Ehrman. 사진) 교수는 2004년 펴낸 저서 <다 빈치 코드의 진실과 픽션>(옥스포드대출판부)를 통해 댄 브라운이 저지른 많은 역사적 실수를 지적하고 있다. 원제는 The Truth and Fiction in The Da Vinci Code.

어만 교수는 <다 빈치 코드>와 달리 시온수도회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초기 기독교에 대한 박학다식한 지식을 통해 소설의 문제점을 짚어냈다.

댄 브라운은 소설 속에서 성배연구가 티빙의 입을 통해 교황청이 325년 니케아공회 당시 4대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만을 채택해 인간 예수를 신격화시켰다는 입장을 밝힌다. 또 사해문서를 근거로 예수는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이며 막달라 마리아는 교회의 남성우월론자들에 의해 그 역사적 존재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어만 교수는 ▲ 초기기독교 교회가 `평범한 인간 예수`를 신성시하는 작업에 관련됐는가 ▲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약 80여개에 달하는 복음서 중 예수를 신의 아들로 묘사한 4대 복음서만을 신약성서에 넣도록 했는가 ▲ 예수는 막달레나 마리아와 결혼 했는가 ▲ 로마 가톨릭 교회, 교황청이 예수와 마리아의 결혼비밀을 담은 복음서들을 금지시켰는가 등에 대한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니케아공회에서 교단의 지도부와 신도들은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식했고 공회는 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를 공식화시켰으며 이미 4대복음서의 정통성은 공회소집 전에 인정됐다고 반박한다. 또 나머지 복음서는 예수를 지나치게 신비화시켜 신약에서 제외됐을 것으로 판단을 내린다.

예수의 결혼에 대해서는 예수가 심판론을 믿었기 때문에 당시 유대교 수도사와 마찬가지로 독신으로 살았다는 것이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의 기적으로 은혜를 입은 여인들 역시 예수를 `신의 아들`로 간주해 우러러 볼 수 밖에 없었다고.

초기기독교 연구자로 유명한 어만 교수는 <다 빈치 코드>와 달리 사해문서를 기독교적 내용이 아니라고 보고, 이 문서의 발견을 통해 초기 기독교 학자들이 가장 믿을 만한 역사적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지난 반세기 동안 연구해온 다른 복음서들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어만 교수는 78년 일리노이주 위톤대를 우등졸업하고 프린스톤 신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약성서 해석과 초기 3세기 기독교 연구에 탁월한 학문적 성과를 이룬 그는 정통유대교와 이단, 교회법과 계율의 형성과정, 예수와 12사도, 필사본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마이뉴스 유성호 기자]
 
ⓒ2006 열림원
이탈리아의 문학 거장 알베르트 모라비아(1907~1990)의 <선사시대 사랑이야기>는 일단 시대 배경이 평범치 않은 우화집이다. 세상이 이기적인 인간들에 의해 피폐해지기 이전인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동물들 사이에 이루어진,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좌충우돌 공존'을 그렸다.

우화를 읽기 전에 먼저 모라비아가 누군지 궁금하다. 모라비아는 이탈리아 출신 소설가로 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는 단단하다. 그는 22살 때 이탈리아 중산층의 부패와 무기력한 삶을 그린 <무관심한 사람들>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가장무도회> 등을 발표하지만 발매를 금지당하는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이후 발표되는 <로마의 여인> <고독한 청년> <권태> 등은 도발적이고 악의적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그의 글을 한번쯤 접한 독자라면 이번 우화집에서 드러난 '뜻밖의' 변화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치열한 리얼리스트인 그가 한갓지게 우화라니.

<선사시대 사랑이야기>는 1982년에 발표됐다. 모라비아가 1990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니 그의 나이 75세에 쓴 글이다. 말년 작품인 셈이다. 도발과 악의적 비극으로 천착했던 작품세계를 우화로 마무리한 것이다. 거장다운 발상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책은 거장의 마지막 내공을 펜 끝에 모아 날린 듯, 가벼운 우화 속에 묵직한 교훈의 무게가 느껴진다.

가볍게 읽혀지는 우화, 느껴지는 묵직한 교훈

모라비아는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를 한입에 잡아먹으려는 게으른 악어, 그릇된 신념을 고집하는 펭귄, 황새를 사랑한 올빼미, 자기가 어떤 동물인지 모르는 기린, 벼룩에게 당해 자멸하는 디노사우루스 등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시킨다.

어미 품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서 홀로 먹이를 잡을 수 없는 게으른 악어에게 공생관계의 악어새는 멋진 이벤트를 준비한다. 악어의 커다란 입 속에서 물고기들의 무도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벤트는 계획대로 진행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

악어의 입속으로 물고기를 불러 모으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악어가 끝내 군침을 억제하지 못해 침을 뚝뚝 흘리는 것을 눈치 빠른 철갑상어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물고기들은 악어의 입을 모두 빠져나갔고 악어는 오랫동안 입을 벌리기 위해 괴어 둔 주먹만한 바윗돌을 애꿎게 씹었지만 자기 손해였다.

이후 악어가 무도회를 연다는 말에 누구도 속지 않았고 배고픈 악어는 나일강변 모래위에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악어의 눈물이 된 것이다. 악어와 더 이상 공생할 수 없는 악어새는 떠났고 무도회에 참석했던 도요새가 지나면서 말했다. 욕심이 과했다고.

동물들의 이야기, 인간 군상의 세상을 대변하다

단번에 그간의 배고픔을 만회할 수 있는 '한방'을 노린 악어의 얼굴 너머로 로또의 대박을 기다리는 우리네 모습이 설핏 스친다. 우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동물들의 탈을 씌우고 우스꽝스러운 삶을 반성하는 교훈을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화는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몸을 빌려 이야기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구조로 돼 있다. 때문에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다만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없거나 도덕적 기반이 없이 쓰일 경우에는 화자(話者)인 동물이 필자가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회적으로 쉽게 쓸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기에 역부족인 사람이 써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우화는 작가의 오롯한 삶에서 나오는 우회 문학

과거 이솝이 들려주었던 인간의 도덕 재무장, 라퐁텐의 군주제 비판 등 우화는 여러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모라비아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주제파악 하면서 사는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같은 기린 무리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기린일 줄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너무 작다며 푸념하는 기린. 그 모습에서 아집으로 똘똘 뭉쳐 공동체와 융화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군상이 오버랩 되는 것을 모라비아도 경험했을 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사냐고.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축선으로 따라오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창조주'다. 선사시대 사랑 이전부터 존재했고 현재와 미래까지도 무한히 영속하는 창조주의 손바닥에서 인간의 탄생과 소멸을 거듭한다. 우화도 마찬가지다.

모라비아는 생의 마감이 끝날 무렵 우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신에 대한 경외심을 이 책에 담았다. 서툴게 인간 세계를 비판하기보다 창조주의 산물인 인간을 사랑하는 게 우선이란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다. 모라비아의 이 작품은 1994년 '동화의 노벨상'인 안데르센 동화상을 수상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